성도의 언행심사는 주님이 다 책임 짐

 

1988. 3. 20. 주일오후

 

본문 : 로마서 14장 7절-9절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

 

 ‘우리 중에’ 하는 말은 우리 구속받아 예수 믿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우리  중에 말했습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어떤 사람이든지 ‘자기를 위하여  아는 자가 없고’ 과연 자기를 위해서 사는 자가 없습니까? 뭐 여기에 있는  전부를 다 친대도 하루 종일 자기 위해서 살지 주를 위해서 사는 생활 하는  사람이 아주 희귀합니다.

 이런데,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그러면 이게  무슨 말입니까? ‘사는 자가 없고’ 전부 자기 위해 사는 것밖에 없는데 자기  위해 사는 자가 없다고 말합니까?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그러면 누구 위해서 죽습니까? 우리가 순구자입니까? 그것도 아니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그러면 우리 사는 생활이 전부 주를  위해서 살고 있습니까? 아니오.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면 우리가  죽는 것도 주를 위해서 죽습니까?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살아도 주의 것이요 죽어도  주의 것이라. 제야 살기를 중생된 자가 공산주의를 위해서 살아도 그 사는  생활은 다 주께로 돌아갑니다. 또 제가 어떻게 어떤 사람의 인간의 종이 돼  가지고 살아도 그 산 생활은 전부, 주를 위한다 말은 주를 상대한 생활이  됩니다. 주의 것이 살고 주를 상대해서 사는 생활이 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죄에게는 사망의 형을 받아서 거기에서 우리를 구원해냈고 또 하나님 앞에서는  그 형을 받은 것과 순종하는 것으로 우리를 구원해 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의 사활의 대속으로 값을 주고 사신 주님의  것입니다.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 됐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가 아무리 개망나니 노릇을 해도 제 애비 자식은 제 애비  자식이지 딴거 못 되고 제가 아무리 효성을 해도 애비 자식이지 딴거 새끼는 못  됩니다. 우리는 이래 살든지 저래 살든지 주님의 것 된 것이 살고 있는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여기에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다 그 말은 잘 살든지 못살든지  그 전부 그것이 다 주님에게 상관되는 생활이 됩니다. 주님이 사는 생활이  됩니다. 주님을 위한 생활이 돼요 주님이 사는 생활이 돼요. 우리가 벌써 죄는  우리가 짓고 형은 주님이 받으시고 주님이 모든 것을 하셔 가지고 우리를  거기에서 구원해 내서 당신의 것을 삼았기 때문에 우리가 아주 사람 말로  개망나니 행실을 하연 주님에게 진뜩 욕이 돌아가고 또 우리가 잘 살면 주님에게  영광이 돌아갑니다.

 이래 살든지 저래 살든지 우리 생활은 다 주님에게 관련된 생활이요 주님에게  다 상관된 생활이니 주님이 다 책임 맡습니다.

 우리가 구속받은 후에는 자기가 아무리 나쁜 재를 저질러도 주님이 다 그거  부담하고 책임져야 되고, 또 잘한 일을 해도 주님이 거기에 대해서 참 기쁨과  칭찬과 영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어데서 어떻게 살든지  그 생활은 전부 주님의 것된 것이 사는 생활이요, 주님의 것 된 것이 사는  생활입니다.

 내가 뭐 주님 버리고 내 맘대로 살면 내가 살지 그래도 제맘대로 사는 그 모든  행위가 만 가지면 만 가지 죄를 지었으면 그거 전부 주님이 다 책임지고 벌은  당신이 받습니다. 형은 당신이 받소. 또 우리가 옳은 일을 했으면 그것은 다  주님이 그로 인해서 영광을 받으시고 뜻을 이루십니다.

 그러기에,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로라’ 우리는 요 진리를 바로 깨달아서  구속받은 우리들은 이래 살든지 저래 살든지 우리 생활은 전부 주님에게 다  관련된 생활이요 주님과 관련이 없는 생활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혼자는 아무리 죄를 지어도 나쁜 것 하는 것도 주님 차지 좋은 것 한 것도  주님 차지, 우리가 뭐 참 비유컨대 일생 동안 죄를 이 우주같은 큰 죄를 많이  지었습니다. 지었으면 고 죄지은 댓가는 주님이다 책임집니다. 주님에게  돌아갑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도 거기에 속한 사람이 나쁜 일을 했으면 그 책임자에게  전부 다 돌아갑니다. 또 좋은 일을 했으면 책임자에게 영광이 돌아가는  것입니다. 뭐 동회 같은 데도 동회 서기가 잘못했으면 벌금은 동장이 뭅니다. 그  직원은 자기가 뭐 면직을 당하든지 어짜든지 하지마는 그 책임은 전부  총책임자가 다 그거 당하는 것입니다. 이것보다도, 주님이 우리를 영원히  책임지시고 값으로 사셨기 때문에 우리의 생활은 전부 주를 위한 생활이 됩니다.

주를 위한 생활, 살아도 사는 것 전부가 주를 위한 삶이 되고 또 죽어도 죽는 그  전부가 다 주를 위한 것이 다 됩니다. 주님과 떨어지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님을 떼놓을 수 없고 전부 주님의 것이  돼 가지고 주님의 것으로 행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행동은 전부 주님이  행동하신 일이 됩니다.

 매맞을 짓은 우리가 하고 매는 주님이 맞습니다. 우리는 맞을래야 맞을 자격이  없어. 그까짓게 벌 받아봐야 뭐 욕얻어 먹어봤자 뭐 욕투성인데 똥을 똥이라  하는데 무슨 욕이 되겠소?  전부 우리의 언행 심사의 행동은 이것이 다 주님하고 연합한 언행심사의  행동이기 때문에 우리의 행동 나쁜 것은 주님을 다 고통 주는 것으로서. ‘두 번  십자가에 못박게 한다. 현저히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한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또 우리가 의를 행하는 것은 그것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요  주님의 하시는 일을 도와서 하는 것이요 주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빚을 탕감해 주는 이것은 전부 주님의 빚을 탕감하는 것이요 또  주님을 돕는 것이요 주님을 위하는 것이요, 또 이렇게 정반대로 인간을  멸망시키는 그것은 주님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요  주님을 십자가에 현저히 못 박아 욕을 보이는 것이요 고통을 주는 일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말씀에서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라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 산 자와 죽은 자의 주가 된다  말은 주라 말은 책임자를 가리켜서 말합니다. 산 자의 책임도 주님이 책임자요  죽은 자의 책임도 주님이 책임자요,  그러면, 이 세상에서 선을 행하든지 의를 행하든지 우리의 행한 것에 대해서  책임자는 주님이십니다. 또 세상에서만 책임 맡는 것이 아니고 영원무궁토록, 이  세상에 있어도 당신이 우리를 책임 맡으셨고 또 무궁세계에도 책임 맡으셔서  이는 참 사나 죽으나 주님이 책임지시고 주님이 맡으셨습니다.

 주가 되려 하심이라 말은 주님이 책임지셨기 때문에 책임지신 이일을  감당하시려고 주님이, 십자가에 죽기도 하시고 사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밤이든지 낮이든지 주님을 떨어질 수없고 주님과  하나가 됐습니다. 주님과 하나가 됐습니다. 하나가 됐는데도 순 똥보다 더  더러운 송장 같은 게 하나가 됐습니다. 송장같은 게 하나가 됐어.

 이거 사람 같으면 그까짓 거 그만 똑 잡아서 그만 지옥에 잡아 던져버리면  되는데 이걸 던지지 아니하시고 항상 하나가 돼 가지고서 세상에서 벌써 과거만  말해도 우리들이 잘못한 그 죄의 값을 전부 다 담당하셨지 또 현재도 담당하고  계시지 무궁세계도 담당하고 계시지 이거는 뭐 참 생각하면은 이상한  신부입니다.

 이거는 남편 골만 빼고 남편을 생명까지 뺏들어 먹고 지위 영광 다 뺏들어 먹고  이래 가지고 죽기까지 고생을 시키고 항상 고생시키는 자요. 금생만 고생시키는  게 아니라 영원무궁까지도 이 전부 책임은 주님이 다 지십니다.

 이래서, 주님과 우리는 나뉘어지지 못한다는 요것을 우리가 깨닫고. 주님이  우리에게 좋은 것 있으면 그때는 당신이 좋은 것도 당신이 영광을 칭찬을 존귀를  받고 우리가 나쁜 행동한 그 전부 당신이 다 대신 형벌을 받으시고 대신 또  수치를 다 당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우리는 나뉘어지지 못한다, 나뉘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물에  기어들어가면, 비유컨대 물에 기어 들어가면 죽구로 냅둬라 물에 가서  개글개글하다가 그만 쭉 뻐드러져 송장이 돼 나오구로, 물에 들어가서 죽을 때  들어가도 주님은 같이 들어가시고 불에 들어가도 같이 들어가시고 죄를 범해도  같이 따라 다니고, 그분이 같이 죄짓습니까? 죄지으면 죄의 값과 죄에 대한 욕과  죄에 대한 수치와 죄에 대한 그 상당한 댓가는 주님이 전부 대신 담당합니다.

 이래서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로라’ 너거가 살면 제 자신 위해서 사는  시간이 있고 제 자신을 위해서 사는 일이 있고 자신을 위해서 행동, 한 일이  있는 줄 아나 그것이 전부 다 주님에게 관련돼서 주를 위한 일이 됐기 때문에  죄지은 것도 주께 관련된 일이요, 의를 행한 것도, 주께 관련된 일이요. 악을  행한 것도 주께 관련된 일이요. 선을 행한 것도 주님에게 관련된 일이라.

 주님이 우리와 떨어지지 못하고 항상 우리를 책임지고 우리와 같이 계셔서  우리가 지옥가니까 당신이 지옥에 따라와 가지고서 우리를 또 그 형벌 다 받고  구출하셨습니다. 또 세상에서도 그러합니다.

 이래서,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이 말은, 전부  우리가 자기 위해 살지요. 전부 자기 위해 살지마는 자기 위해서 사는 그것이  전부 다 죄입니다. 자기 위해서 사는 것이 전부 죄인데 자기 위해서 산 죗값은  주님이 전부 다 내놔야 됩니다.

 자기를 위해서 사는 자가 없다 말은 우리가 참으로 예수 믿는다고 해가지고서  자기 위해 살지 않고 대속하신 주를 위해서 사느냐 하면은 살지 안하요. 하루  종일 자기 위해서 사요. 제 욕심대로 사요. 제 마음대로 성질대로 뜻대로  삽니다.

 그러나, 그 산 것이 결국은 짐은 어데 넘어가느냐 하면은 주에게 넘어가기  때문에 주를 위한 생활이 됐다 말이오. 주님에게 책임지운 생활이 됐다  말입니다. 주님에게 관련된 생활이 됐다 말이오.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사는 것도 다 자기 위해서 산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까 삶의 책임은 전부 주님이 다 짊어집니다. 자기 위해 산 게 하나도  없어. 자기 위해 죽는 것도 없어.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죽나니’ 이것은  우리가 이 주관적으로 우리가 자기 위해 살지 안하고 주를 위해 살고 자기 위해  죽지 안하고 주를 위해서 죽는다. 우리 주관적으로 그렇다는 그말이 아니오.

우리 주관으로는 순전히 우리는 우리 위해 살고 우리 하고 싶은 대로 살지요.

 그러나. 벌써 예수님의 대속의 법에서 주님이 우리를 총책임을 졌기 때문에  우리 일동, 일정의 전행동은 다 주님에게 책임되는 생활이기 때문에 다 주를  위한 생활이 됐다. 주를 위한다 말은 주를 섬긴다 말이 아니오. 전부 주님에게  책임지우는 생활 주님에게 관련된 생활이 다 된다 그말입니다.

 이러니까,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그러면 우리가  살든지 죽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의 모든 행동은 다 주를 위한 행동이 된다.

주를 위한 행동이 된다. 우리가 어떤 나쁜 행동을 해도 그것이 다 주님을 위한  행동, 좋은 일 해도 주님을 위한 행동, 내가 벌받을 일 내가 했으면 내가 벌을  받아야 할 터인데 그 벌받을 일 한 그것이 주를 위한 일을 한 것이기 때문에  주께 관련되는’ 일이기 때문에 벌을 주님이 받아야 됩니다. 벌은 주님이 받아야  돼.

 이것은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이를 위하여’ 이 일을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사셨으니’ 이거 위해서 주님이 사람되어  오셨고 또 이거 위해서 사활의 공로를 베풀었습니다. ‘다시 사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 주가 되려 하심이라 그말은 우리의  책임자가 되신 이 책임자 이 책임을 감당하시려고 주님이 죽으셨고 이 일을  감당하시려고 주님이 살으셨습니다.

 죽고 산 것이 영원 전 우리를 책임진 이 책임을 이것을 감당하시려고 사람되어  오셨고 또 죽으셨고 또 부활하셨고 지금도 계속해서 우리를 위해서 노력하고  계시는데 지금만 아니라 영원무궁세계에, 죽은 다음에 무궁세계에도 항상 우리는  주님이 책임지시고 주님에게 애만 먹이고 주님에게 늘 그저 빚이나 짊어지고,   이놈의 아내는 무슨 놈의 아내인지 그저 집구석에 있다가서 나가면 빚 짊어지고  저 돌아다니면, 빚 짊어지고 돌아다니면 그 빚 다 갚아 줘야 되지, 또 나쁜 행동  해 가지고서, 나쁜 행동하면 그 나쁜 행동 욕 다얻어 먹어야 되지, 죄는 계집이  지어놓고 뚜드려 맞기는 만날 이 신랑이 돌아 다니며 뚜드려 맞아야 되지,  남에게 빚은 져놓으니까 빚은 지니까 항상 빚은 제가 지고 돌아다니고 항상 빚은  따라다니며 갚아 줘야 되지, 맞을 행동은 계집이 했는데 남편이 끌겨가 가지고  죽도록 뚜드려 맞아야 되지 이게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진리를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오. 나는 독립적으로 살 수가  없고, 살지 못하게 돼 가지고 있어. 독립적으로 살 수 있으면, 나는 그런 생각  많이 가져봤었어요. 독립적으로 살 수 있으면 그만 ‘주님 내가 내 행동을 볼  때에 어떻게 미운지 놓아 주십시오. 요거는 유황불 구렁텅이에 가서 영원히 불에  타야 됩니다.’ 요렇게 못된 게 없고 요렇게 더러운 게 없으니까 불에 타고 타고  타고 타고 뭐 얼마나 타야 될는지!   이럴 수 있는 자신이지마는 이리되면 불에 타서 형벌받고 타기는 주님이 타고  이 더러운 것을 밉다고 이걸 제 자신을 형벌하면 나중에 형벌했는데 보니까  형벌은 또 사랑하는 주님이 받고 있다 말이오. 이러니까 주님의 사랑 때문에  꼼짝을 못 하고 만물보다 거짓된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입고 사는 것입니다.

 정말로 자기를 위하고 자기를 좋아하는 인간은 아직까지 자기를 모르는  인간이오. 철이 없는 인간이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행동을 어데서 무엇을 하든지 내가 하는 행동은  거기에 대해서 나쁜 것은 주님이 대신 댓가를 다 받게 되고 내가 바로 한 게  있으면 당신이 나 때문에 나로 인해서 칭찬을 받게 되고 하는 이 두 가지 행위가  우리가 구속받은 성도들이 땅 위에 있는 행동인 것입니다.

 그래서,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하는 말은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고 의로  건설해서 이렇게 죄를 멸하고 사망을 멸하고 마귀의 유혹에서 구출하고 하나님과  연결을 시키고 진리와 연결을 시키구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혀서 참 사람이  만분의 일이라도 되게 한다든지 다문 얼마라도 되게 하면 이보다 더 주님 대접한  일이 없다. 이보다 더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 없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없고  주님을 위하는 일이 없다.

 이것을 가리켜서 ‘불의의 재물로’ 없어질 거, 저주와 진노와 사망과 징계  아래에 있는 없어질 것 이거 이 우주는 다 저주 아래 있습니다. 이 우주는 다  멸망받소, 다. 예수님이 오시면 확 불에 타서 완전히 태워서 원소로 다 변화시켜  버립니다. 이게 다 없어질 것들이요 불에 탈 것들이요 지금 형체는 다 없어질  것들입니다.

 이런데, 이것 가지고 친구를 사귀라. 친구를 사귀라 말은 주님을 사귀라  말이오. 주님을 대접하라 그말이오. 주님을 사귀라.

 어떻게 사귀어? 어떻게 사귀는데? 마음으로 몸으로 죄에 매인 데서 해방시키고  범죄하는 것을 회개시키고 하나님. 과 진리와 연합을 시키는 이 인간 구원하는  거 복음 운동, 복음 운동은 이게 복음입니다.

 왜 복음이라 해요? 복 복(福)자 소리 음(音)자라. 복 복(福)자 소리 음(音)자.

왜 복음이라 하는가? 참 복음이라. 이거는 만 번 죽여도 죄가 남은데 이걸  영원히 떨어지지 못하고 떼놓지 못하고 금생과 내세에 어데까지든지 나쁜 거는  책임 다 짊어져서 형을 받아야 되고 좋은 거는 잘한 거는 제게 상되고 주님은  기뻐하시는 것뿐이라. 이러기 때문에 이런 사랑이 없어.

 아무리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는 젖먹이 그걸 사랑한다고 해도 그런 사랑을  여기 대면은 아주 성글고 텁텁하고 너무 껍데기고 눈가림이고 가치가 없어.

 또, 무슨 뭐 부부 사랑 그까짓 거는 속에 껍데기 막 꾀우는 악과 독과 꾀우는  궤휼이 가득 차서 썩어 냄새가 뭐 얼마나 펑펑 난 썩고 더러웠어. 아주 더러워.

흉하고 징그러워. 가죽 껍데기를 떼고 보면 더러워  부모와 자식 사이에 사랑, 짐승도 에미와 새끼 사이의 사랑 이 사랑에서 그  호형이 조금 있지마는 그까짓 것도 다 유한하고 다 무능하지마는 주님이 우리를  사랑해서 구원하시는 것은 이는 아무리 인간이 그렇게 사랑한다고 논리를 해도  인간의 논리로는 도달하지 못해, 그러기 때문에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아무도 측량을 못한다  했어요.

 이 사랑을 가지시고 우리를 과거 현재 미래를 책임지시 고, 기본적으로  책임져서 대속하셨고 지금도 우리의 전생애를 책임지고 대속하시는 이 일을  하시니 주님 대접은, 우리가 하나님의 법에 걸리는. 하나님의 심판에 걸리는  죄되는 거, 불의한 거, 삐뚤어진 거. 평가적으로 잘못된 거, 비판적으로 잘못된  거 이거 하는 것은 막바로 주님을 지금 몽둥이로 때리는 것입니다. 주님을  몽둥이로 때리는 것이오. 주님을 지금 창으로 찌르는 것이오. 주님을 또 지금  십자가에 현재 못을 박는 것이오.

 그러기 때문에, 내가 오늘에 하나님 법도에 걸리는 모든 언행 심사의 행위는  이것이 그냥 하고 지나가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지공법이 있기 때문에 내가  그와같이 한 거 이거 전부 다 주님이 다 형을 꼭꼭 받아야 되지 형 안받고는  그냥 놓여지는 거 아니라.

 형을 안 받으면 나는 멸망하기 때문에 나는 멸망하면 당신이 내게 대해서  책임지신 그 책임이 완수가 안 돼. 책임 완수가 안 돼. 책임완수가 안 되면  당신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삐뚤어진 잘못된 죄가 돼, 이거는 이리도 못 하고  저리도 못 하고 꼼짝 못 하고 주님이 우리를 책임지시고 있는 이 사실을 깨닫고  우리들이 이 주님을 어떻게 하는 것이 대접하는 것인가? 나 한 사람이 사죄를  입어서 죄를 범하지 않는 것과 칭의를 업어서 의롭게 사는 것과 마귀에서 해방을  받았으니 마귀와 관계를 끊는 것과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서 나 한 사람이  이렇게 행동 하는 것이 이것이 주님에게는 더 소원이 없어. 없을 만치 주님에게  대접하는 일이 됩니다.

 대접하는 일이 되고, 다른 사람을 이렇게 구출하는 그것이 주님을 섬겨서  주님을 대접하는 일이 되고 주님을 기쁘시게 높이는 일이 됩니다.

 우리는 이 구속하신 주님과 자기와 행동에 떨어져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것이 아주 잘못 안 것입니다. 떨어져서 행동할 수가 없어, 관계없이 행동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범죄한 것, 내가 범죄한 것 나 혼자가 아니라, 그분이 내 안팎을 싸고  있기 때문에 내가 탄환 맞으면 그분이 먼저 맞아요. 내가 칼에 찔리면 그분이  먼저 찔려. 내가 범죄하면 그분이 나보다 먼저 더러워져 나 때문에. 내가 욕얻어  먹을 일 하면 그분이 나보다 욕을 먼저 먹어 먼저 형을 받아.

 이런고로, 우리, 구속받은 사람들은 자기가 무엇을 하든지 자기는 자기 혼자  따로 독립해서 이렇게 사는 자가 아니고 주님하고 한덩어리 돼 가지고서  움직이는 자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래서, 잘못된 것은 정죄를 그분이 받고 형도 그분이 받소. 바로 된거는  그분은 기뻐하고 칭찬받고 그것은 우리에게 상이 터고 의가 되고 면류관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없어질 때에 저희가 너희를  영원한 처소로 영접하리라’ 이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참 이거 말할 수 없는 마구  애걸복걸의 사정을 하십니다. 애걸복걸의 사정을 하고 계십니다. 주님의 하시는  일은 한번도 어느 한 구석도 봐야 되면 되고 말면 말고 네맘대로 해 봐라 하는  일이 한번도 없어.

 뭐한다고 하나님이 더러운 우리 죄인들에게 고만 싹 쓸어서 지옥불에  가가지고서 구더기도 죽지 안하는데서 영원히 멸망받도록 집어 치워버릴 건데  이분이 놓지 못하는 것이 이분의 사랑이라. 떼 놓지 못하는 것이,  그러기 때문에, 당신은 우리에게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사정을 합니다. 참  꺼꾸로 됐소. 사정을 해. 그분이 우리 덕 볼 거 하나도 없고 전부 우리는 그분의  덕 볼 것뿐인데 우리는 천지를 모르고 제 배짱대로 제맘대로 하고 돌아다니는데  이분은 한 번도 하나도 놓지 안하시고 당신이 책임을 지시고 끝까지 우리의 하는  일을 하는 일이 다 당신에게 갑니다. 책임졌기 때문에 당신에게 가,  세상일도 그래요. 우리 총공회도 말이요, 내가 금년에 공회장 안 할라 하다가서  또, 인제 할 수 없이 투표에 돼서 됐는데 되나 안 되나 공회장이라. 총공회장.

욕은 전부 총공회장에게로 다 와. 뭐 무슨 일이든지. 오는 게 필연한 일이고  그게 정상이라. 그거 당연한 일이라. 하기는 그 집안 식구가 행동 나쁘게 했는데  전부 호주에게로 다 갑니다. 이런데,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공심판이 있고 또  송사자 마귀가 있고 모두 다 만물들이 있기 때문에 모두가 다 공정한 만물  심판이 있는 이 세상이요 우주 영계요 영원한 세계입니다.

 이런데 여기에서 주님이 내 책임을 지셨기 때문에 내가 행동하는 거는 전부  그분에게 가 닥쳐지요. 행동은 내맘대로 했는데 행동한 그것은 그 모든 행동은  그분에게 가 부딪혀 가지고서 잘못된 거는 그분에게 다 댓가를 받아. 그분에게  분을 풀어.

 그분이, 그 잘못된 것의 수치당할 것도 그분이, 욕얻어 먹을 것도 그분이,  벌받을 것도 그분이, 형을 받을 것도 그분이, 죽을 것도 그분이 천해질 것도  그분이, 손해 볼 것도 그분이 전부 다 주님이 대신 받고 우리가 잘 했을 때에는  당신은 찍해야 기쁠 것뿐이오. 기쁠 것,   우리가 잘못해서 손해를 주님이 다 담당했으면은 우리가 잘해서 유익도 당선이  해야 될 것 아니라? 당신 그거 없어. 당신은 그게 필요 없어. 이거는 백방에  잘못된 걸 그분이 다 담당하고 잘된 것은 우리에게 상급으로 주시고 이런 입장과  이런 처지가 세상에는 이런 이치가 없습니다. 이런 관계가 없어. 이런 일이  없어. 그래서 성경에 말하기를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 하나님의 사랑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인간의 지식으로는 측량 못할 사랑이라.

 그러기에, 내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는 것은 주님과 한 몸 돼서 하기 때문에  내가 잘하는 것이나 잘못하는 것이나 그것은 전부 다 주님과 함께? 해서 주님이  하신 일이 됩니다. 내가 잘한 것은 칭찬은 내게 돌아오고 잘못한 것은 전부 다  책임은 당신에게로 돌아갑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일생 동안 어떤 사람은 주님을 참 만족케 하고 주님을  대접하는 사람 있고, 주님을 대접하는 사람 있고 일생 동안 주님 애먹이는 사람  있습니다. 일생 동안 남편에게 현처 현모로서 잘하는 아내도 있고 일생 동안  남편에게 골탕 쥐먹이고 애먹이고 처처이 애먹이는 그런 여자도 있습니다.

이것은 뭐 세상에 그까짓 거 이혼하면 그만이지. 주님과 우리 사이에는 이혼도  안 돼. 그분이 책임진 것을 완수를 해야 되지 비위 맞지 않다고 이혼해 버리면  당신 책임을 감당 못하기 때문에 또 그분에게는 또 정죄가 돼. 안 돼.

 이거는 떼 내버리지도 못하고 책임지고 하나님이 사람되기까지 오시고 또  사람되어 가지고 오시고 형벌 받으시고 또 영원히 하나님이 사람되어 가지고  같이 있지 안하면 안 될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했으니 이 사랑이 어떤 사랑이며  이 책임성이 얼마나 하나님께는 이 책임성이 진실하고 신실하신지!  이래서,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내가 행동하는 그 언행 심사의 행동은 주님을  욕 얻어먹게 벌 받게. 주님을 참 형을 받게, 주님을 고통을 당하게, 주님에게  짓밟히게, 주님에게 말할 수 없는 못할 이 악행이 돼서 주님을 말할 수 없이  괴롭히는 생활이 되든지 주님을 기쁘시게 대접하는 생활이 되든지 둘 중에  하나이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일은 없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지금 부활하셔 가지고 사람으로 계시는 주님에게 매를  때리는 것이 무엇이며 주님을 지금 창으로 찌르는 게 뭐이며 주님을 지금 못을  십자가에 박아서 이와같이 사형을 주는 것이 뭐이냐?  성경에 말하기를, 너희들이 알고 난 다음에 다시 짐짓 죄를 범하면 주님을 두  번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니라. 너희들이 주님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한번도 너희들이 감당 못 하는데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주님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언행심사를 하는 이거는 막바로 주님을 지금, 내가 주님을  지금 막바로 박해를 주는, 내가 현재 생활하는 이것이 막바로 주님을 주먹으로  쥐박는 일이 되든지 칼로 찌르는 일이 되든지 못을 박는 일이 되든지 곤장으로  뚜드려 패는 일이 되든지 주님의 꺼풀을 벗기는 일이 되든지 주님을 죽이는 일이  되든지 그렇지 안하면 내가 주님을 대접하는 일이 되든지 주님을 위하는 일이  되든지 주님을 보호하는 일이 되든지 주님을 섬기는 일이 되든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데 가서든지 밤이든지 낮이든지 나 혼자 살든지 언제든지 내 행동은  주님을 내가 해치는 행동이 되든지 주님을 위해서 섬기는 행동이 되든지  행동이지 주님과 관련 없는 행동이 없다는 요것을 우리가 이 성경이 말한 대로  똑똑히 알아야 될 것입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파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하는 이 말을 사람들은 하나의 법도로만 말해서 ‘다 주를 위해서  살아야 되고 주를 위해서 죽어야 되고 주의 것이기 때문에 살아야 된다’ 이렇게  사람들이 해석을 하는데 그게 아니라.

 주관적으로는 전부 제맘대로 저 위해 사는 것 같지마는 하나님의 구속의  법도에서 딱 따질 때에는 이거 전부가 다 주님에게 관련된 일이라. 주님에게  관련. 그러기 때문에, 내가 주님을 때리고 상하고 욕하고 해치고 하는 일이 돼도  자기 딴에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데 주님과 상관없는 줄로 하고 있지마는  상관없는 게 아니라 말이오. 사는 것이나 죽은 것이나 전부는 주님에게 관련된  일이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이 우리를 십자가에서 이렇게 사활로 대속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마땅히 주님을 섬기는 것이 옳고 주님을 위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나 위해서 고난당했으니까 이제는 고난당할 일 있으면 내가 당해도  주님은 고난을 안 받도록 해야 될 것 아니겠소? 주님을 위해야 되지 않겠소?   그러면, 구속받은. 우리들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는 주님을 위하느냐 지금도  주님을 계속적으로 지금 내가 주님을 해하고 있느냐? 그러면 주님과 주님의  원수노릇을 지금도 하고 있느냐 주님을 내가 사귀는 일을 하느냐 둘 중에  하나라. 원수되는 일을 하든지 사귀는 일을 하든지, 주님을 해쳐 상우는 일을  하든지 주님을 대접하는 일을 하든지 하는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주님을 사귀는 대접하는 일은 어떤 일이 대접하는 일이냐? 곧  빚을 탕감해 주는 것이 주님을 대접하는 일이니 복음으로 인간을 구원하는  그것이 주님을 대접하는 일이요 이 일이 주님의 일을 돕는 일이요 이것이 주의  일을 하는 것이라.

 갑이라는 사람에게 죄가 열 개가 있는데 한 개를 벗겨 줬으면 그게 막바로  주님에게 지금. 짐을 한 개를 벗겨 준 거라. 다섯을 벗겼으면 주님께 다섯을  벗겨 준 거라.

 주님과 우리와의 나쁠 때도 하나 좋을 때도 하나니 우리가 이제 이 구속의 주의  사랑을 깨닫고 났으면 깨달은 자로서는 이제는 주님을 이렇게 계속 주님을  해치는 이런 일을 우리가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주님을 해할 수가  없다 이라지마는 주님이 지금도 육체를 가지고 우리 가운데 계시면 주님이  매맞을 일이 닥치면은 내가대신 맞지 주님 맞도록 안 냅둘 것이고 만일 주님을  죽일라고 누가 달라들면은 내가 생명 내놓고 가루어서 내가 죽었으면 죽었지  주님을 죽구로 안 냅두지마는 주님이 지금 신인 양성 일위로 보이지 않는 이  부활한 신령한 몸으로 이렇게 계시고 우리는 생활하니까 우리가 주님이 구속한  모든 사람들의 그 전생활을 주님이 다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죄 가운데  빠뜨리는 것이 주님을 다시 멸망 속에 집어넣는 것이고 그것을 다문 얼마라도  덜어 주는 것은 주님을 거기에서 구출해내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어데서 무슨 일을 하든지 할 때에 과거에는 혹 생각하기를  나는 내 개인으로 사는 사람이라, 내 개 인이라, 내가 뭐 이리되든지 거리  되든지 나는 내 개인으로 사는 자이기 때문에 내가 좋은 일에서 좋은 것 닥쳐도  내 개인이 하고 나쁜 것 닥쳐도 내 개인이 한다. 나는 독립성을 가지고서 사는  사람으로 과거에는 이렇게 알았지마는 지금부터는 이렇게 알면 안 됩니다.

 나는 나 개인으로 사는 게 아니고 주님과 나와는 떨어질 수 없는 하나가 돼  가지고서 살기 때문에 구속받은 자의 모든 죄는 다 주님에게 책임진 짐이 돼  있고 구속받은 모든 자들에게 범죄로 당하는 형벌은 다 주님이 대신 당하시는  형벌이 되어 있고 구속받은 자들이 망하는 그것은, 잘못해 가지고 망하는 것은  주님이 다 같이 망하시는 이 멸망을 같이 받는 것이 주님이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내가 범죄하는 것은 주님에게 죄를 두터 씌우는 것이요 범죄로  내가 지금 화를 징계를 받는 것은 주님과 나와의 같이 징계를 받는 것이니  주님이 나 때문에 징계를 받으면 내가 주님을 징계를 받게 하는 것이요 내가  내게 있는 내 죄를 하나를 회개하면 회개하는 나도 좋지마는 회개하는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도 주님에게 죄짐을 그만치 벗겨줬으니 내가 기뻐하는 것보다  주님이 더 기뻐하시고,  다른 사람에게서도 의를 행하면 행하는 나도 좋고 의를 행할 때 그 사람도  좋지마는 의를 행하게 할 때에 그만치 주님을 의롭게 하셔서 당신을 부요하게  의롭게 대접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주님이 사귀면 영원한 처소에서 갚아 주겠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내가 형을 받지 않기 위해서, 어떤 형이 있을 때 형을 받지 않기  위해서 죄를 범하면 나는 형을 면 하고 주님은 죄를 당신이 다 부담하게 되고  짊어지게 되기 때문에 내차 형을 받고 죄를 범하지 안하는 것은 내가 주님에게  그 죄를 씌우지 안하고 죄를 씌우지 않기 위해서 내가 형을 받으니까 그것이  주님을 위하는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도들이 어떤 형을 받아도 죄를 지을 수 없는 이 구속의 이  도리를 깨달은 거기에서 근거해 가지고 이와같이 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오늘 오후에는 무슨 일을 하든지 나와  주님과 하나되어 있다는 요것을 여러분들이. 말을 해도 여러분들에게 통하지  안해. 다 육덩이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락간에 희로애락 간에 죄나 의나 망하는 것이나 흥하는 것이나 이모든 것이  내가 떨어져서 독립으로 개체로 있을 수가 없어. 주님과 나와의 연합체라.

주님과 나와의 연합체라는 요것을 새겨서 깨달아야 할 것이고, 그러면  연합체이니까 내 맘대로 하지를 못해.

 비유가 될는지는 모르지마는, 자기와 자기 사랑하는 가족과 한 덩어리가 돼  가지고 있으니 나 하나같으면 마음대로 행동하지마는 이 가족과 단체 된 한  덩어리가 돼 놓으니 나 하나 잘못하면 가족이 다 잘못한 행동을 같이 받고  이라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사람이 그렇게 제맘대로 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나쁜 일을 할라 해도 저 혼자만 형벌 받으면 나 혼자 뭐 형벌 받으면 받고  이라지마는 다 공동체 다 연결 그런 공동체의 그 관련이 있기 때문에 나 하나  잘못하면 가족이 다 벌 받기 때문에 그 짓 못 해.

 군에 가서도 나 하나 잘못하면 여러 수백 명 되는 사람이 다 꼭 같이  연관성으로 공동 형을 받게 되기 때문에 나 하나가 내가 잘못해 형 받아 죽으면  죽고 살면 살고 하지만 나 때문에 다른 사랑이 하는 일을 위해서 못 하는 것처럼  이렇게 우리가 주님은 무엇보다도 이렇게 우마를 사랑하시는 지극히 크신  분이신데 이분이 나와의 공동체, 불가분의 나눌수 없는 공동체가 돼 가지고 있어  내 모든 언행 심사의 죄나 의나 다공동적으로 책임을 지고 공동 적으로 범하는  것이 되고 공동적으로 형을 받는 일이 되어지는 이것을 깨닫고. 또 잘하면은  이것은 공통 적인 그런기쁨이 되고 의가 되는 이것을 우리가 생각해서 내 행동을  내 단독이라고 생각하고 제마음대로 그렇게 하는 행동을 할 수가 없는 우리들인  것을 깨달아야 하겠고, 요거 하나 깨달아야 되겠고  이러니까, 우리는 갈 사람들인데. 언제 가도 갈 사람들인데 우리가 가면은  어데가 살 건가? 주님 모시고 주님 슬하에서 살 우리들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모든 것은 그분에게 매달렸습니다.

 세상에서 찍해야 삼사십 년, 삼사십 년 같이 생활하는 그 결혼도 자기가  결혼하면 그 남편 모시고 같이 삼사십 년을 고락간에 같이 산다는 이것을 느끼는  사람은 그분에게 대해서 조심을 하는 것인데, 그렇지 안해요? 조심을 해요. 시집  가 가지고서 그 남편에게 혹은 불신임을 받을라 의심을 받을라 또 인정을 못  받을라 이라니까 조심해. 그분과 대립되면 뭐 세상에 이혼하면 되지마는  하늘나라는 이혼을 못 합니다. 주님하고 우리하고 맺은 인연은 이혼을 못 해.

떨어지지를 못해. 영원히 그분과 더불어서 같이 살아야 돼요. 그분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야 돼. 그분을 주재로 모시고 살아야 돼. 그분을 주권자로 모시고  모든 것이 다 그분의 것이라.

 이러니까, 이런 것을 이 세상 자연 계시를 가지고서 이 세상에서 어떤 그  위대한 사람으로 더불어 자기가 친밀히 사귀어지고 친근해지면 그것도 좋다고  하지 안해요?  이러니까 뭐 어느 나라든지, 민주주의서는 보면은 그 나라의 머리되는 수상하고  그 대통령하고 사귈라고 애를 쓰고 또 이북같은 나라에서는 뭐 수단 방법을  가루지 안하고 김 일성이하고 김정일하고 사귈라고 애를 쓰는 것은 오늘  부숴질지 내일 부숴질지 모르는 그놈의 나라에서도 그 제일 주권자 그자를  사귈라고 애를 쓰고 그분으로 더불어 친근하려고 애를 쓰는데 그들과 그  권세자와의 관계와 우리와 영원한 나라에서 주님과의 관계가 어찌 되는 고 이런  것도 자꾸 비교해 봐야 됩니다. 자꾸 비교해 봐야 돼요. 자꾸 비교해 봐야 돼요.

 그들이 지금 그렇게 친교를 가질라고 그렇게 인정을 받을라고 이렇게 애를  쓰는데 그와 그라면 우리 주님과의 그 크기가 어떻게 크며 시간이 어떠며 세월이  어찌 되며 가치가 어떤가 이런 것도 자꾸 비교해 봐. 비교해 보는 데에서 아이쿠  이보다도 뛰어났다 뛰어났다, 할 때에 주님과 나와의 이 영원한 관계를 오늘  맺는 것보다 더 귀중하고 중대한 일이 없다 하는 고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자꾸  이런 것을 그게 자연계시이기 때문에 자꾸 비교를 해 봐요. 마귀란 놈은 비교를  못 하게 해, 이러기, 때문에, 밤이나 낮이. 나 한적한 곳이나, 누워서도 이런 것  자기가 자꾸 비교해 볼 때에, 비교해 볼 때에 그저 주님의 주신 구원이 땅 위에  이 구원과 비교되는 거, 이 구원과 비슷한 비중이 같을 거 그런 것은 땅 위에  아무것도 없어,  이런데, 이분을 땅 위에서 사귀어 가지고 영원무궁한 세계에서 나를 대우하고  영접해 주는 그 영접을 오늘 우리가 마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분과 영원한  그 친밀하고 존귀하고 밀접하고 환영하고 대우하고 그분과 만물이 전부 환영하고  대우하는 그 대우와 존귀를 오늘에 마련할 수 있는 것이 오늘 우리들의 이  현실인 것입니다.

 마련하는 것은 뭐이 마련하는 건가? 빚 탕감해 주는 거라.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없어질 때에 저희가 너희를 영원한 처소로 영접하리라’  대우한다는 비유로 말씀한 것입니다.

 여러분들과 너무 도가 거리가 멀기 때문에 말을 해야 말이 나가지를 안해.

도무지 나가지 안해. 참 육덩이오. 예수 믿는 사람 뭐 이게 있어야 되지 이거  없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할 일이 뭐인가? 제일 수입되고 제일 가치 있고 할만한 귀한  가치 있는 일이 뭐인가? 무궁세계에서 그분이 나를 대우해 주도록 그 대우를  오늘 마련하는 거, 무궁세계에서 그분과 나와 의 친밀하게 되어지는 그 친밀을  오늘 마련하는 거 이거보다 더 가치 있는 일 있습니까? 이보다 더 가치 있는 일  있소?   그거 뭐 저거 딴에는 이 나라나 저 나라나, 뭐 우리나라뿐 아니고 모든 각  나라에서 하 장관, 하니 뭐 하니 뭐하니 하면은 뭐 우쭐해 가지고 야단이지마는  그거는 잠깐이요 주님은 영원무궁합니다. 그거는 그까짓 거 먼지 뽀스래기만도  못하요. 썩은 곰팡이 뿌스러기만도 못하요. 이분은 무궁하고 무한해.

하나님이야. 대주재라.

 이분과 친교를 맺고 교제를 할 수 있다는 여기에 대해서는 믿지 않기 때문에,  믿지 않기 때문에 땅에 것 썩은 것, 삼사 년이면 없어질 놈의 것 그것도 야단을  지기고 우쭐해지는데 이걸 새기고 사귈 욕심이 얼마나 있을 것이며 생길 것이며  또 사귀었으면 얼마나 기쁘고 즐거워서 어깨가 우쭐한 건가? 안 믿기 때문에  그거야 거짓말로 인정하기 때문에 아무 감각이 없어. 욕심도 안 생기고 분발도  없고 가져도 좋은 줄도 모르고 기쁜 줄도 몰라.

 이러기 때문에 이분을 이 사귀는 거, 이것이 제일 중요한 일인데 사귀는 것은  곧 사람을 복음으로 구원하는 일이라, 복음으로 구원하는 일이라.

 복음으로 구원하는 일은 그 사람을 보다 세상과 인연이 멀어서 세상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하늘나라 가치를 높이고, 하늘나라 팔아 가지고서 세상 것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 것 이거 가지고서 팔아서 하늘나라를 사고, 죄를 지으려고 도모하는  것 그것보다 의를 행할라고, 죄를 안 지을라고 죄를 벗어서 의를 행할라고 그  사람이 참사람으로 살라고, 의인이 이렇게 되도록 하는 것이 그것이 빚을 탕감해  주는 것이라. 그것이 막바로 친구 주님을 사귀는 것이라. 영원한 대우를 지금  마련하는 것이라,  그러면, 그런 일을 하는 데에 뭘로 우리가 합니까? 인간을 죄에서 구출할 때에  뭘로 합니까? 구출하는 방편이 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 가지고도 합니다. 내  입으로 말씀 가지고도 합니다. 내가 또 하나님에게 기도해 가지고 기도로도 또  그와 같은 그 운동을 합니다. 또 내 행동가지고도 그들에게 감화를 줘서 죄를  미워하는 사람 의를 사랑하는 사람, 의롭게 살고자 하는 사람 하늘나라에 소망을  가진 사람으로서 감화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내 언행 심사의 내 행동으로 그 사람을 구원하는, 그 사람에게 구원이 되는  일을 할 수 있고 내 인간의 모든 속성을 가지고 내 속성을 가지고도 그 사람에게  구원. 이 되게 하는 식사를 할 수도 있고 내라는 그 사람의 사람됨읖 가지고도  그렇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을 하는 것이 곧 친구 주님을  사귀는 것이라.

 그러기에, 자기가 크고 작은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 기독자에게, 무슨 일을  하든지 요것을 친구, 사귀는 일로 해야 되겠다, 주님 사귀는 일로 해야 되겠다,  요 구속하는 일로 해야 되겠다, 요 사람을 조금 구출해가지고 구원이 되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해야 되겠다,   요렇게 하는 것을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지, 자기가  시장에서나 자기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어데서든지 이 시간 나는 주님을 사귈  것이 뭐이냐? 내가 이 불의의 재물 가지고 주님을 사귈 것이 뭐이냐?  이  자리에서 사귈 것은 뭐이냐? 이 자리에서 사귈 것은 내가 저 사람 볼 때에 참 안  되면 길가 가면서 길가에 도로가 더럽게 어지러워져 가지고 있으면 휴지 하나를  집어서 넣어 가지고내 호주머니 넣는 것도 친구 사귀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언제 어제인가, 죽은 박 대통령에 대해서 어떤 사람하고 둘이 얘기를  했습니다. 그분이 새마을 운동을 시작하면서 길바닥에 담배꽁초 있거들랑 주워라  하는 것이 소인 같고 어리석은 것 같지마는 그 사람은 불신자로서는 도통을 한  도인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 사람이 말하기를 ‘맞습니다. 그것은 그분은 왜정 때에 대구  사범학교 다녔고 그 다음에는 일본서 사관학교 다녔고 이랬는데 대구 사범학교  학생은 학생들이 수백 명이 지나가도 사범학교 학생하나가 끼였으면 먼 데서  봐도 고 학생이 표가 났다. 행동하는 것이나 몸단장하는 것이나 모든 걸 볼 때에  조것은 지금 사범학교 학생이다 고렇게 확실히 들날 만치 교육이 그때 정확하고  엄하고 참 모범적으로 굉장했다, 거기에서 배웠고 또 일본 가서 사관학교서  공부했기 때문에 그분은 이 보통 말쟁이 말이 아니고 그분은 참 남의 나라에서  배웠지마는 그분은 도를 통한 사람이다.’ 하는 그 말을 하는 것을 둘이, 그  사람 나하고 통해 보니까. 말했어.

 그 담배꽁초 줍는, 거 사소한 것 같지만 그게 아니라. 그거 하는 데에서, 그거  하는 데서 사람의 마음이 변화가 된다. 고게서 마음이 산마음 인간의 참된  정신이 고게서 움이 터서 살아나기 시작한다 고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담배꽁초  주워라 했어.

 이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무슨 물건 하나 살 때에도 ‘나는 여기에서 어떻게  주님을 사귈까 내가 돈을 주고 사는 데도 돈을 많이 주고, 살까 그라면 깎을까  적게 주고 살까?’어떻게 하면 이 사람에게 물건 하나 사는 데서도 이 사람에게  나 예수 믿는 사람인 줄 모르면 예수 믿는 사람을 알도록 하고 예수 믿는 사람인  절 알면은 나를 봐서 그 사람이 ‘예수는 믿어야 돼’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소망을 가지고 할 수 있도록 ‘여기에서는 어떻게 하면 요렇게 주님을 사귈 수가  있겠느냐?’ 소청을 생각해 가지고서 주님을 사귀는 일이 되어지는, 인간을  복음으로, 죄에서 구출하는, 죄에서 해방하고 구출하는 일이 되어지는 일을 할까  요것을 생각하고,   같이 동행을 하면서도 ‘나는 이 시간에는 내가 이 동행하는 이 사람에게  어떻게 해서 주님을 내가 사귈까?’ 직장에서 같이 일을 하면서도 ‘나는  일하면서 나는 여기에서는 내가 어떻게 주님을 사귈까?’ 요 마음이 그 속에  있을 때에 그는 천국입니다.

 요게 있을 때에 그 사람은 결단코 피곤하지 안하고 그 사람은 가치없는 생활,  지루한 생활, 짜증나는 생활, 권태나는 생활 ‘이까짓 거 암만 많이 해 봤자  이런 거 그런 낙심되는 생활이 그에게는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애를 쓰다가 국회의원으로 당선이 되고 대통령으로 당선이 됐으니까  얼마든지 좋을 줄 아요? 아니오. 당선되고 난 다음에 얼마 안 돼서 ‘이까짓 거  해 봤자 뭣하노?’ 한숨과 탄식이 되지마는 안하면 안 되고 자기 의무와  책임에서 하는 것이지. 다 우리가 세상에 많은 일이나 큰 일이나 작은 일이나  일반의 성질을 가졌는데 우리가 경험하고 체험하기를 다 그렇습니다.

 마는! 영원무궁세계를 나는 오늘 갈지 내일 갈지 모르는데, 주님이‘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없어지는 날에 저희가 너희를 영원한 처소로 영접하리라’  하는 이것이 굳건한 약속이 되어 있는데 ‘이 시간에는 나는 주님을 어떻게  사귈까? 어떻게 사함을 다문 얼마라도 복음으로써 복음의 효력을 입을 수 있도록  할까?’ 하는 이 마음이 시장에서 있을 때에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시장은  천국이요 그 사람은 그 시장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는 사람의 생활 할 것이요  직장에도 그럴 것이요 뭐 군에서도 그럴 것이요 남의 종노릇하는 데도 그럴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미국에’ 가니까 흑인종이 여종인데 나이가 한  오십이나 돼서 쪼글쪼글한 여종이 쪼끄만한 게, 어데서 찬송 소리가 나는데  그래서 무슨 찬송인가 들으려 가보니까 그 시냇가에서 빨래를 하면서 그렇게  하늘나라의 소망을 가진 그 찬송을 하더라고,  그래 가지고서 ‘자기는 뭣하는 사람이냐?’ ‘나는 남의 종노릇하는  사람이라’ ‘어데 있느냐?’ ‘조 건너 저 집에 내가 종노릇하는 사람이라’  ‘그래 뭐이 좋아서 그와같이 찬송을 부르고 그러느냐?’ 나는 지금 아버지 집에  갈 준비를 하기 때문에 기쁘다고. ‘아버지 집에 갈 준비하면 이거 빨래하는 게  준비냐?’ 이게 아버지 집에 갈 준비요 이게 주님. 사귀는 것이라. 이래  놓으니까 그 가정이 그로 인해서 무슨 일 날는지 몰라요. 나아만 가정에는 그  포로된 여인 하나로서 그 나라가 다 구원 얻지를 안했습니까? 그래 하늘나라  소망을 가지면서 그래 기뻐서 찬송하더랍니다.

 이런데, 그 목사님이 여기 김길창 목사님인데 미국 가 가지고서 뭐 대통령  용상에도 가 앉아봤고 오만 거 다 해 봤지마는 그분이 깊은 은혜를 받은 것은 그  흑인 여종이 빨래하면서 하늘나라의 소망을 인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그  기쁨의 감화는 늙을 때까지 그에게 삭아지지 안하고 항상 밤낮으로 역사하고  있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어데 가든지 언제든지 ‘나는 이 불의의 재물가지고서  어떻게 친구를 사귈까? 여기에서는 내가 주님을 어떻게 사귈까?’ 요것을 잊어  버리지 안하고 친구 사귈 그 방편을 거리를 생각하면 반드시 거기에서도 있을  것이요 없는 자리가 없을 것이요 사귈 그것을 바로 꼭 잡아 가지고 했을 때에는  남이 모르는 그에게는 한없는 평강이 있을 것이고 그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은  구원 얻어서 다른 사람은 해방 얻어 그 죄 빚에서 무거운 짐을 벗고 구출된 그런  사람들이 반드시 생길 것입니다,  그런고로, 여기에 우리 사찰들도, 이 모두 다 깨끗이 정리된 걸 보고서, 떡  보고서 다른 사람들이 보고 ‘야, 이거 참 서부교회는 다르다. 이거 보니까,’  그 사람들은, 우리가 좋지도 못하지만 그 사람들은 지금 좋다는 소문 듣고  시찰하러 왔기 때문에 이 의자만 반듯해도 ‘야, 의자만 봐도 정신이  까랑까랑해진다. 아주 요렇게 쪽쪽 고르게 놨구만.’ 은혜가 됩니다.

 어떤 사람은 강단에 이렇게 막 울긋불긋 쌓는데 이래 가지고 있는 걸보고서 그  사람이 나한테 편지를 만리장성을 써 가지고서 ‘나는 그 강단 그렇게 지금 모두  사치하는데 그렇게 수수하게 해 가지고 있는 거기에 나는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래 내가 말하기를 ‘우리가 그 장식을 할 만한 그런 실력이 없고 장식을 할  만한 그런 머리도 없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그런데 이제 저 한 군데 달아서  더 내 짓든지 하면 그거 할 겁니다. 교인이 지금 아직 좀 많이 지금 한 몇 천 명  더 불으면 또 더 짓고 인제 그걸 할 겁니다. 그거는 뭐 좋아 그런 게 아니라 할  자격이 없어 지금 그래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내가 대답하고 말았습니다.

 이랬는데, 이래 떡 와 가지고, 전국에서 오지 미국서도 오지 일본서도 오지  이렇게 와 가지고 벌써 구백 한 이십여 차혜를 와서 이래 다녀갔는데 가보니까  떡 들어오니까 욕질을 하면서 여기 지금 사찰들이 싸웁니다. 네니 내니 뭐 더  쓰니 덜 쓰니 뭐 이래 아당아당하고 싸우는 것을 떡 보면   이랬는데, 이래 떡 와 가지고, 전국에서 오지 미국서도 오지 일본서도 오지  이렇게 와 가지고 벌써 구백 한 이십여 차례를 와서 이래 다녀갔는데 가보니까  떡 들어오니까 욕질을 하면서 여기 지금 사찰들이 싸웁니다. 네니 내니 뭐 더  쓰니 덜 쓰니 뭐 이래 아당 아당하고 싸우는 것을 떡 보면 ‘저 사람들이 이  교회 안에서, 어데 딴 사람이 왔는갑다.’ 이러다가 만 사찰이라는 것을  들어놓으면 그 사람들, 왔다가 돌아가지 안하기는 안 하지요. 안 하고 뭐 보기는  보지요. 보지. 마는 마귀란 놈이 고놈을 탁 가지고 걸어서 뭐 ‘야, 보니까  여기에도 사람 사는 곳이라 별곳이 없다고 여기도 보니까 막 욕질을 하고 그뭐  이래 싸우더라. 그러니까 사람 사는 데 별군데가 있나? 뭐 볼 게 있노?’ 그  사람 속에 먹장을 새까맣게 끼워 가지고서 그 사람에게 완전히 지옥을 이루고,  왔던 거 먼 거리에 왔다가서 듣고 보고 배울라 하던 감동 다 없어 버리고 하면은  그게 술취해서 친구를 때리는 것이라 이랬습니다. 술취한 거는 세상주의라  말이오. 세상주의 육신주의기 때문에 그렇게 시비를 하지 그리 안 하면  시비하겠습니까? 그래 가지고서 친구 때린거는 온 사람 온 목사를 때렸어.

‘아이구야, 거기에도 보니까 막 싸우고 년이니 그래 쌓고 막 오만 워 못할 욕  없이 그라더라.’ 그게 죽이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후에는, 우리가 언제든지 나 혼자 사는 것 아니다. 주님이  내게 대해 더러운 거 다 책임지시고 이라기 때문에 내 맘대로 할 게 아니라 재는  내가 저지르고 매는 주님이 맞으신다. 욕은 주님이 얻어먹으신다.

 이러니까, 주님이 사정하고 원하는 거는 ‘내가 너 위해서 죽었다가  살아나기까지 구속했기 때문에 이제는 내 일 좀 해 달라. 나를 좀 대접해  달라.’ ‘뭘 대접해 주랍니까?’ ‘빚진 자의 빚을 탕감해 줘라. 네가 죄인을  이 복음을 입어서 그 사람이 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다문 얼마라도 감동되든지  네가 하늘나라와 심판을 보고 두려워하는 걸 보고 그 사람이 두려워하든지  어쨌든지 죄에서 해방되어서 새사람으로 변화되는 요 일을 네가 해 달라. 요  일에 대해서는 냉수 한 그릇 수고만한 고 수고도 결단코 내가 상을 잃지 않고  무궁세계에서 갚아 주시겠다.’ 말씀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어데서든지 우리는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없어질 때에  저희가 너희를 영원한 처소로 영접하리라’ 요 말씀을 생각하고 요절로 외워서  어데서든지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다 외우지 못하면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요거라도 해 가지고서 ‘이 자리에서는 내가 주님 사귈 것이  뭐이냐? 이 자리에서는 주님 대접할 것이 뭐이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곧 나에게 행한 것이라. 티끌 하나 줍는 게 그것이고,  저 기도하러 가서 뭐 하나 가는데 다른 사람 보니까 덜렁덜렁 내려갑니다. 그  사람은 가면서 찍해야 껌 종이 하나 요만한 거 흐른 거 그걸, 다른 사람 보는 줄  알고 탰으면 덕이 덜 되지, 다 없는 데 저 혼자 내려가면서 고걸 주워 가지고서  또 요래 쥐고 또 저기 내려가며 또, 주워가지고 내려가고, 저 안 보는 데서  숨어서 엿보시는 주님이 저 숨어서 볼 때 고것만 해도,   ‘참, 저 사람 속에는 주님이 계신다. 저 사람은 이 기도산을 애끼고  사랑한다.’ 그 사람은 주님을 보고 계시고 주님을 대접하는 사람이다, 그거 본  사람에게 설교 열 번 한 것보다 낫습니다. 설교 열 번 한 것보다도 감화는 더  받습니다.

 아무리 청산유수의 설교를 해도 그에게 벌써 아니라 하는 것 한 번 보였으면  그것은 다시 회복을 못 합니다. 산성 문을 빗장을 안으로 잠겨 놓은 걸 밖에서  어찌 끄릅니까? 인간의 마음을 한 번 딱 잠기고 난 다음에 뒤에 끄르기가 그렇게  힘든다 했습니다.

 이러니까, 오늘 오후에는 우리는, 어데 가든지 ‘불의의 재물 없어질 내 마음,  없어질 내 몸뚱이, 없어질 내, 힘없어질 내 지식, 없어질 지위 권세, 지위 권세  가지고 나 누리지 말고 지위 권세 그거 다 내가 써먹지 말고, 지위 권세 내가  누리면 그 지위 권세를 다른 사람 구원하는 데에 쓸 수가 없습니다. 내가 안  누리고 죄인을 구원하는 데 그걸 써야 효력이 있지. 그라는 데는 나는 손해 가.

그게 주님 사귀고 대접하는 것이라. 이래서, 이제부터는 우리들이 어데서든지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하는 요 말씀을 기억하면서 어데서든지 주님 사귀고 주님 대접할  것을 찾읍시다.

 찻간에서도, 혼자 있으면서도, 혼자 있으면서 ‘거기에서는 어떻게, 아무도  없는데?’ 혼자 있으며 ‘여기에서는 내가 다른 거 할 수 없고 여기에서는  기도해야 되겠다’ 저는 갈 수 없는 데는 기도합니다. 갈 수 없는 데  OOO교회 저 오늘도 저 사람들이 지금 예배도 보지도 못하고 또 지금,  자기네들이 나간다고 다 그렇게 작정을 해 놓고 돈 오천 오백만원 주고 저  기도산 그게 삼억이나 되고 또 아파트가 한 사오천 되고 하니까 오천 오백만  주고 하면은 나간다고 말하고 이렇게 약속을 철통같이 세 번이나 네 번이나  하고서 안 나가고 싸우고 있어.

 이래서, 나는 거기에 대해서 나가구로 해 달라 소리도 못 하겠고 있구로 해  달라 소리도 못 하겠고 어짜든지 주님 이걸 빨리, 이 짓 함으로 구원 이루지  못하고 자꾸 손해 가니까 빨리 해결해 달라고서, 내가 가지는 못하니까, 내가  전화는 안 하기로 작정을 해 버렸어, 하나님 앞에. 내가이 전화하면 내가 여기에  잘하든지 못하든지 동참하니까 나는 기도만하고 하나님에게 이것을 판정을 해  주십시오 그렇게 그 기도하는 그거는 그 봉사는 천막에서도 하고 방에서도 하고  차타고 오면서도 하고 어데서든지 할 수 있어.

 이러니까, 불의의 것 없어질 것 내게 있는 내 몸과 생명도 다 불의의  재물입니다. 속했습니다. 이것 가지고서 친구 사귀는 이 일을 잃지 맙시다.

어데서든지 여기에서는 내가 친구 주님을 뭘로 가지고 사귈까하는 그 사귈 것을  잃지 말고 사귈 것을 찾아 가지고서 그 친구를 사귀는 그 일이 엾는 그런 공백  장소나 공백 시간은 없는 우리들이 되도록 남은 때를 힘을 씁시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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