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재세의 목적과 방편

 

1981. 3. 10. 새벽 (화)

 

본문:고린도후서 9장 6절∼15절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한바 저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만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를 인하여  넘쳤느니라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저희와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또 저희가 너희를 위하여 간구하며 하나님의 너희에게 주신  지극한 은혜를 인하여 너희를 사모하느니라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기도> 무한한 대속과 구속을 베푸사 측량 못 할 무한한 소망을 우리에게 주시고  무한하신 성령과 진리가 보증이 되사 주의 만드신 모든 것을 다 주의 이 구속을  위하여 이용하시려고 목적하신 그대로 모든 것을 구비해 놓으시고 주의 은혜를  힘입어 영원 무한의 불변의 완전을 향하여 얼마든지 자유롭게 달음질할 수 있게  하신 주의 은총을 진실로 감사하옵고 찬송을 드립니다.

이렇게 지극히 큰 은혜는 무한하신 성령으로만 감당할 수 있고 주의 무한한  능력으로만 우리를 길러 이룰 수 있지 우리에게는 이만한 요소가 아무것도  없음을 아옵나이다. 다만 우리에게 있는 것은 이렇게 지극히 큰 은혜를 조부랍고  어리석고 약고 미련한 자기 아닌 자기에게 언제든지 갇히고 붙들려서 자유하지  못하는 이 면을 보고 주님도 탄식할 뿐만 아니라 저희들도 탄식을 합니다.

완전히 이 꺼풀을 벗고 자유케 하시는 이 도를 받아 자유로 우리 앞에 있는  경주를 경주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에게 거스리는 모든 것은 다 눌리는 것이며 붙들리는 것이며 다 멸망케 하는  무서운 옥이 되는 것을 밝히 깨닫는 성령의 지혜와 총명을 저들에게 더하여  주시옵소서.

영원 무궁한 빛의 나라 생명의 나라에 이 감옥을 결단코 호리라도 갚기 전에는  벗어날 수 없는 영원 무궁에 첩첩에 제한되어 있는 이 사실을 밝히 보게 하사  오늘이라는 오늘에 완전히 탈옥하고 온전히 자유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도록  전적 부인하고 산 제물로 주께 바쳐 온전히 주의 것이 되고 주님만이 저희들의  전부되어 전생애에서는 주님만이 쓰시고 주만이 나타내는 이 영광의 이 생명의  생활에 돌진하며 용진하며 견고하며 인내하는 저희들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조부랍지 말게 하여 주시고 어리석은 사욕에 갇히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주님이 같이 하시고 주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곳마다 함께 하시며 지금도  주님 앞에 소유와 몸과 생명을 바친 주의 성도들의 그 모든 피를 신원하여  주시고 곧곧마다 복음의 자유를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우리가 이 믿음의 길을 바로 잡아 가지고 걸어가야 성공이 있지 믿음의 길을  잘못 들면 죽자껏 힘을 써도 안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제일 노력하는 것은 안  죽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게 하시니까 다 죽지 안 죽는 자 없는  것은 그분만이 절대자시요 인간은 절대자가 없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분과 그분의 법칙에 따라 살려 하는 자가 지혜 있는  자요 잘 사는 자입니다. 그분과 그분의 법칙을 무시하고 제가 어데까지 위대하고  또 노력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다 허공을 치는 것이요 자기 죽을 함정을 스스로  파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천천 금은보다 나은 게 아니라 우주보다도 낫습니다. 하나님  다음으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말씀이 우리에게  무엇을 소개해 주고 있는가 하는 것을 바로 알기 위해서 성경을 열심히 상고하는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또 성경을 읽어 성경에게서 소개를 받고, 천지는 없어져도 없어지지 않는 이  사실을 확실히 인정하고, 이대로 살면 됩니다. 이 사람이 피조물로서는 제일  존귀한 자입니다. 뭐 세계를 다스린다 할지라도 여기에 삐뚤어진 자는  마지막에는 이렇게 사는 사람의 발 아래 밟힙니다. 영원히 밟힙니다.

오늘 아침에 봉독한 말씀 중에서도 몇 가지를 우리가 간추려 붙들어야 한다  생각이 돼서 이 말씀을 증거합니다. 첫째는 많이 심는 자가 많이 거두고 적게  심는 자가 적게 거둔다는 이 진리를 알아야 됩니다.

심는다는 것은 자기에게 있는 것을 버린 것처럼 내놓는 것이 심는 것입니다.

인간이 자기 가진 것을 빼앗기는 것 있고, 또 자기가 쓰는 것 있고, 그대로 물쿼  두는 것 있습니다. 빼앗긴 것도 헛일, 자기가 쓴 것도 헛일, 물쿼 둔 것도 헛일,  심은 것만 가치 있습니다.

심는다는 말은 무궁세계의 하나님의 갚아주심을 바라서 당신에게 꾸어주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빌리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내가 빌려준다고 성경이 말했습니다. 당신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궁세계의 하나님의 갚아주심을, 하나님이 무궁세계에서 대우해 주실 이  대우를 인하여 땅위에 그 대우를 바라서 이 세상에서 투자하는 것을 가리켜서  심는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심으면 그 추수가 한없는 배가 되어 나오는 것처럼 인간이 하나님이 갚아주시는  이 갚음, 하나님이 대우해 주실 이 대우, 하나님이 기뻐하실 이 기쁨 이것을  위해서 세상에서 사는 사람이 복있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무궁세계 가 가지고 하나님에게 갚아주심을 받을  수 있는 이 일을 얼마나 했는가 하는 그것을 세상에서 생각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서 한 것 없으면 하늘나라에 가서 받을 게 없습니다. 세상에서  한 대로 받습니다.

다 천국은 가서 있기는 있지마는 천국은 세상처럼 굶는 거지는 없습니다. 또  벗고 돌아다니는 그런 거지는 없습니다. 이렇지마는 영광과 존귀와, 영광과  존귀와 환영과 권위 이것은 천층 만층 억억만층도 더 됩니다.

그 층어리는 형언할 수 없기 때문에 성경에 표시한다는 것이 “땅에 있는 형체와  하늘의 형체가 다 형체는 형제지마는 그 권위와 영광과 존귀가 다르지  않느냐?”땅에 있는 모래알도 형체입니다. 하늘의 해와 달과 별도 형체라  했습니다. 해 하나와 땅에 있는 모래알 한 개와 형체는 형체지마는 가치와  권위가 얼마나 다르냐? 이처럼 예수 믿는 자도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알고 살아야 됩니다.

그러기에 땅위에 믿는 성도들의 사는 목적이 뭣이냐? 잘 먹으려고 잘 입으려고  사는 것 아닙니다. 권세나 지위나 영광이나 자기의 실력이 많아 가지고 세상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다’ 해서 이렇게 자랑하고 영광스럽기 위해서 사는 것  아닙니다. 천하 영광 다 준다 할지라도 그것은 없어집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은 없어지는 것을 보는 눈이 있는 사람이 믿는  사람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모든 보이는 것보다 크고 보이지 않는  하늘나라는 이 세상보다 무한히 가치 있는 것을 내다 보면서 세상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이 기독자입니다. 세상을 보고 사는 것은 다 허무한 이것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것이 기독자입니다.

이런고로 목적은 “떠나든지 거하든지 주만 기쁘시게 하기를 힘쓰노라”  고린도후서 5장에. 왜?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서 선악간에  행함을 따라 갚으려 함이라” 무궁세계에 하나님의 대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네가 땅위에서 어떻게 살았나 하는 그 대우가 있어. 이러기 때문에 세상에  살든지 떠나든지 그를 기쁘시게 하려는 것,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기를 원하노라” 어떻게  하면 주님을 존귀케 할까? “네가 모든 사람으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어떻게  하면 하나님에게 영광되게 할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하나님을 존귀케  할까?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할까? 나 위해서 모든 것 다 희생해 주신 우리의  구주가 되신 이 하나님 어떻게 하면 이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 존귀케 할까?  영광스럽게 할까? 이것만이 우리의 재세의 목적입니다. 이 목적을 굳게 잡아야  됩니다.

만일 결혼도, 가정도, 공부도, 사업도, 목회도, 정치도 제가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어떤 분야에서 살든지 자기는 일편단심 주만을 기쁘시게, 주만을 존귀케,  주만을 영광스럽게 하려는 요 목적만 가지고 요 목적 달성하는 요것만 자기  수입으로 알고 자기 생애로 알고 사는 이것이 기독자입니다.

그분에게 기쁨이 된다면 자기의 빈곤도, 자기의 고난도, 그분만 기뻐하신다면  자기의 억울도 애매도, 매장도, 존귀도, 어떤 비천도, 배고픈 것도, 갇히는  것도, 죽는 것도 당신만 기뻐하신다면 됐다. 이로 말미암아 당신만 존귀해지면  됐다. 당신에게만 영광이 되면 됐다. 왜? 언제 떠날지 모르는 우리들입니다.

그분은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십니다. 그분의 나라는 알파와  오메가십니다. 변동이 없습니다. 전능의 나라십니다. 그분을 향하여 그분만  상대하여 그분이 어떻게 평가하든지 어떻게 대우하든지 그분과 관련 이것만  가지고 우리는 영생할 사람들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전부를 거게 기울입니다.

이것이 기독자의 목적입니다.

오늘 기독자들이 이 목적을 잊어버리고 자기의 구속받은 자의 목적이 혼돈되는  데에서 필요 없는 복잡이 생기고, 필요 없는 시비가 생기고, 필요 없는 공포와  비겁이 생깁니다. 우리는 목적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 목적을 달성하는 그 방편이 무엇인가? 이 목적을 달성하는 그 방편이  무엇인가? 그다음에 보니 “가난한 자에게 주어 넉넉하게 함으로 그의 의의  열매가 가득 찬다” 했습니다. 또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고  ‘그분은 높으신 분이다’ 하나님 앞에 존귀를 돌리고 성도들의 그 행동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그 성도로 인해서 존귀함을 받고, 성도로 인해서 영광을  받고, 성도로 인해서 기쁨을 받는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영광스럽게 존귀케  하는 유일한 방편입니다. 이 외에 방편이 없습니다.

마태복음 25장 31절 이하에 보면 오른편에 있는 의인들에게 ‘내가 배고플 때에  먹여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워주었고, 헐벗을 때에 입혀주었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대접하였고, 병들었을 때에 방문하였고, 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보았느니라’ ‘언제 그렇게 했습니까?'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곧 나에게 행한 것이다.’우리는 육만  가진  사람이 아니요 영육을 가진 사람이요 고기덩어리만 가진 사람이 아니요 혼을  가진 그 심신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앞에는 몸이 이렇게  비참한 자, 마음이 비참한 자, 영이 비참한 자들이 가득 쌓여 있습니다.

이것을 상대해서 이것에 굶는 것을, 목마른 것을, 그의 벗은 것을, 나그네된  것을, 병든 것을, 갇힌 것을 이것을, 무엇 때문에 내게 있는 것 기울입니까?  무엇 때문에 내게 있는 것을 기울여서 그들을 구출하려고 애를 쓰겠습니까?  그들이 불쌍하고 그들이 동정이 되고 그들이 아까와서? 아니오. 인간 위해 함이  아닙니다.

나를 위해서 모든 부요를 다 희생하시고 생명까지 희생하신 하나님이신, 만왕의  왕이신, 만주의 주이신, 영원 무궁토록 그분이 주권하시고 그분 앞에 가서 살  내가 그분을 위해서 그분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그분을 존귀케 하기 위해서,  그분을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서, 자기의 부강한 그 문화의 나라를 버리고 미개한 야만국에 자기 소유와 몸과  생명을 기울이고 자기 당대가 부족해서 아들에게 유언해서 이대가 그다음에  삼대가 사대가 거게서 다 생명을 기울이는 것이 그분들이 무지한 사람 아닙니다.

그분들은 포부가 큽니다. 멀리 바라보는 눈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뭣 때문에 땅위에 돈만 본다면은 지금도 한 달에 몇백만 원 아니라 천여만 원 수 입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뭣 때문에 헐벗고 굶주리면서 아무도 몰라주는,  일생 동안 종노릇 해야 되고 천대받아야 되고 멸시받아야 되는 목회 생활로  나옵니까? 이것을 깨닫지 안하고 목회로 나오면 아예 장사꾼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되든지 내가 일생 동안 산 가운데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내 소유나 몸이나, 내 생명이나, 이 내 시간이나 모든 것을 어느 정도  희생했는가? 주님의 존귀를 위해서 어느 정도 썼는가?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어느 정도 썼는가? 썼는데 그것이 정말로 기쁨과 존귀와 영광이 어느 정도 돼  가지고 있는가? 여게 대해서 무거운 짐진 것처럼 탄식한 것이 성령의 사람  바울의 탄식이었습니다.

세상에서 해도 할 수 있는데 예수 믿으면서 예수 믿는 이것을 이용하고 이리  해서 자기의 사욕을, 자기의 세상을 마련해 보려고 날뛰는 예수 믿는 사람은  너무도 어리석은,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길을 잘못 들었어. 새 술을 헌 부대에  넣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 세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복음을  받았습니다.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을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목적 세 가지를 굳게 잡고 이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는  간단합니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해라” 이것입니다. “도적질하던  자는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자기의  손으로 선한 사업을 하라” 이랬습니다. 저 위해서 하지 안하고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해서.

빈궁한 자는 어떤 자가 빈궁한 자입니까? 자기만 못한 자가 빈궁한 자입니다.

자기만 못한 자, 만석꾼은 구천석꾼도 그 사람에게 대한 빈궁한 자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사람이 자기 같은, 자기 이상은 해 주지 못하지마는 자기와 같은  동등된 행복되기를 원하고 이것 위해서 노력하는 자가 이것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입니다.

자기에게 돈이 있으면 돈으로, 자기에게 권세가 있으면 권세로, 자기에게 건강이  있으면 건강으로, 자기에게 고상한 진리가 있으면 진리로, 영감이 있으면  영감으로, 자기와 같은 자 되기를 원하여 자기에게 있는 것을 기울여 이 심정과  이 행위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이로 인해서 존귀함을 받고 영광을  받으시는 이것을 위해서 사는 것이 우리 기독자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존귀케 영광스럽게 하는 이것이 밤이나 낮이나  어데 가든지 어떤 처지에서든지 언제든지 이것만이 우리 목적입니다. 이것이  수입 됐으면 성공이오. 천하를 얻어도 이것을 깨뜨렸으면 실패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산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부끄러워하지 안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란 말을 부끄러워하지 안했소. 그분은 생애한 걸 보면은 그  전부가 이 세 가지를 목적했습니다. 롯으로 더불어 시비한 것도 이 세 가지가  목적이오. 소돔 왕으로 더불어 결론지운 것도 보면은 이해 못 하나 그 결말은  목적은 이 세 가지입니다. 이것 때문에 살았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가 이해 못 할  생활 했습니다. 넉넉한 생활 했습니다. 큰 포부의 생활 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선이 측량 못 할 굵은 선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우리가 살려고 할 때에 우리의 주는 데는 자원이 있어야 되겠고  봉사하는 데는 자원이 있어야 될 터인데 그 자원은 어떻게 해야 된다고  했습니까? 여기 똑똑히 말해 놨습니다. 7절에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걸 모두 다 사람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8절에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요렇게 살  때에, 요렇게 살 때에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있는 것 가지고 요렇게 살면  하나님이 세상에서 그렇게 산 댓가를 많이 불궈서 갚아줍니까 안 갚아줍니까?  자기가 이렇게 하나님의 이 기쁨 존귀 영광을 위해서 그 실지의 방편이 되는  형제들에게 형제를 구원,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 방편을 사용하면 하나님이  땅위에서 여러 배로 백 배로 갚아줍니까? 안 갚아줍니다. 안 갚아줍니다.

이렇게 산 것은, 자기가 하나님의 기쁨과 존귀와 영광 위해서 산 것은 털끝만한  것을 살아도 이것은 완전에 속한 것입니다., 여러분들. 완전에 속했소. 영원에  속했소.

생명에 속했소. 완전과 영원에 생명에 속한 것을 하나님께서 썩은 것으로  갚아주지 않습니다. 산 생활을 썩은 것으로 갚아주지 않습니다. 이것에 갚음이  온다고 생각지 마십시오. 갚음이 온다 말이 성경에 없습니다.

렇게 하는 자에게 은혜로 넘치게 해 준다 했습니다. 이렇게 살면 하나님께서 또  살 수 있는 자원을 또 줍니다. 이것을 달라고 구할 필요도 없다 했습니다.

10절에 보면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의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이렇게 심는 자 이렇게  사는 자에게 심을 것을 하나 주니까 심으고 자기 먹을 것은 자기가 먹고, 씨와  양식. 양식은 제가 소비할 것이오. 제가 소비할 것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부를 주니까 그것 다 제것인 줄 알고 제 양식인 줄 알고 제가  쓰고 제가 쓰고 남으면 후손들에게 유산으로 넘겨주려 하는 요런 망령을 부려서  하나님의 것이 지체되고 있지 씨와 양식을 주실 때에 씨는 심고 양식은 제가  사용하고 이렇게 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또 더 많은 씨를 주시고 또 자기에게도  풍성한 양식을 주시고, 그러면 양식도 그전보다 좀 정도가 낫게 살고 또 심을  것은 심으고 더 많이 주시고 더 많이 줘서 “의의 열매를 가득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은 다 너희들에게 은혜로 주시는 것이라” 말씀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는 대로 윌리엄 부으드가 그분이 물질로서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자기는 세상이 물질로 빈곤한 걸 보고 물질로 하는 일로써  그리스도를 기쁘게 존귀케 영광스럽게 하려 하여 그 부부가 빈손 쥐고  나섰습니다. 옆에 있는 친구가 말하기를 ‘네가 이 목적을 가지고 나선다  하지마는 네가 한푼도 없는 것이 네가 무슨 일을 한다고 네가 하느냐?’ ‘나는  심으는 자에게 씨와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가겠다.’ 하고  나갔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할 수 있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할 수 있는 자기 몸으로  했습니다. 마지막에는 몸을 주다가 돈을 줄 때에 돈으로 했습니다. 그리 해서  그분은 물질 가지고 하나님의 이 세 가지를 위해서 봉사 생활 한 그것이  아직까지는 역사에서 그보다 많은 액수를 봉사한 사람 없다 합니다. 그게 구세군  창설자입니다.

우리가 이 계약을 잡아야 합니다. 성경에 교훈은 전부 계약 교훈이오. 성경에  있는 예언은 전부 계약 예언이오.

성경에 있는 경고는 전부 계약 경고요. 성경에 있는 소망은 전부 계약  소망입니다. 거게는 조건인 계약이 다 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진영에 이 교회들이 하나님의 진리에 입각해 가지고 나가면  하나님은 의의 열매를 넘치게 하시려고 하고 있지마는 믿는 사람이 없어. 이 세  가지가 안 돼 있어. 목적이 잘못돼 있고 목적을 달성하는 방편이 잘못 돼 있어.

이 두 가지만 되어 있으면 심을 씨와 아직 먹을 양식은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에 구하지 말라 했어. 이 두 가지만 위해서 살면 자원 되는 그 하나는  하나님께서 “너희들에게 있어야 할 것인 줄 알기 때문에 이방인같이 구하지  말라” 했어.

씨와 양식을 주시고 또 씨와 양식을 더 많이 주시고 또 씨와 양식을 더 많이  주셔서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의의 열매가 더하게 하시리니”  점점 더하게 하시는 것 이걸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자를 원해서 당신이 구속하셨느냐? 어떤 일을 원해서 당신이  구속을 하셨느냐? 어떤 자에게 주시려고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시느냐? 요 세  가지를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가 가장 원하시는 이 기쁨 존귀 영광 위해서 예수님은 그 목적이  그것이었습니다. 방편은 무슨 방편 살았습니까? 세상에 존귀받으러 오지 안했어.

섬기러 왔습니다. 몸과 생명을 다 주어 섬기려고 왔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주님이 친히 말씀했소. 소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곧 내게 행한 것이니라는 것을  주님이 직접 말씀하신 말씀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모든 부요를 우리 위해서 다 내놓아 가난해졌고, 모든 존귀를  우리  위해 내놔서 이상 낮아질 수 없는 데까지 낮아지셨고, 생명을 우리 위해서 다  바쳐 주셨고,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말씀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버지는 예수님의 인성을 피조물로 가장 존귀히 대우했습니다.

목적이 발랐고 방편이 발랐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뭘 줬습니까? 마태복음  28장 17절 이하에 보면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을 다 내게 줬다”  이랬습니다. 예수님이 다 받았어. 이것이 하나님의 생명의 도의 원리입니다.

목적은 유일하신 자존자이신 하나님을 이분을 위해서, 이분을 위해서, 이분이  뭣인데? 이분이 참이요, 이분이 완전이오. 완전을 위하는 자, 참을 위하는 자,  영원 불변을 위하는 자, 자존자 이분을 위하는 자 이자, 이분을 위해서  뭣하는가? 이분을 위해서 모든 피조물을 자기같이 사랑할 수 있는 자, 그러면  그자에게 하나님은 뭣 하고 계시는가? 당신에게 있는 것 다 그자에게 줘,  그자에게.

뭣 하려고? 주면 그것 가지고 자기 아닌 다른 것들을 꼭 자기와 같은 행복스러운  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쓰도록 주셔. 그래 쓰면 뭣하려고? 그게 하나님에게  기쁨이요 존귀요 영광이라. 요 삼각을 단단히 깨달아야 됩니다. 요것을 잡고  예수를 믿어야 되지 요게 없는 예수는 헛일입니다.

오늘 믿는 신자들이 뭣 때문에 복잡하뇨? 뭣 때문에 번민 고통을 하고 있느뇨?  뭣 때문에 시비를 하고 있느뇨? 어리석은 일입니다. 요 세 가지를 몰랐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뭣 때문에 얻어 가지기 위해서 시비를 하느뇨? 하나님의 모든 것이  제것 될 수 있는데.

무한의 수원지에 달려 있는 그 수도관이 그대로 졸졸 내놓으면 그대로 나오지.

내놓는 구멍을 키우면 많이 나오지. 더 많이 키우면 더 많이 나오지. 키우는  대로 물은 나오지. 조부랍지 맙시다.

하나 심으는 자에게 하나 나오고 둘을 심으는 자에게 둘을 나오고 있는 대로 다  심으는 자에게 또 더 많이 주지. 또 심으는 자에게.

그러기에 자기 소유나 몸이나 생명을 하나님을 기쁘시게 존귀케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서 유일의 방편이 되는 인간을 위하여 자기 소유 몸 생명을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인간을 복되게 하기 위해서 인간을 위해서 기울이는 자에게 그자에게  하나님의 모든 것은 그의 것입니다.

인간들이 뭣 때문에 시비를 하고 있느냐? 시비하고 있는 것은 적다고 얻기  위해서 시비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습니다.

“도적질하는 자는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키라” 했습니다. 도적질이 뭣이  도적질이요? 남이 해로와야 제가 유익이 되고, 남이 떨어져야 제가 올라가고,  남을 침해해야 자기에게 유익이 된다고 하는 요 사상이 세상 사상입니다. 세상  경제 사상도 이 사상이요, 정치 사상도 이것이요,  도덕 사상도 이 사상이요, 저 도덕이 깨져야 내 도덕이 올라간다는, 전체가  이겁니다. 기독교는 그것이 아니라. 그걸 하지 말고 돌이키라 했습니다.

“오히려 빈궁한 자에게 도울 것이 있도록” 남을 해하여 남의 것을 내가  빼앗아야, 남을 해해야 내가 유익이 있는 요 사상 버리고 도리어 다른 사람을  유익되게 하려는 요것으로 방향을 전환해라, 돌아서라. 요것을 자기 현실의  사업에서 착착 이루는 사람은 참으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대우하는 사람이오.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이오. 요것을 자기 현실에서, 이렇게 요 방편을 쓸 때에 원수는 없습니다. 요 방편을 쓸 때에 원수는  없습니다. 두려움이 없습니다. 심판받을 염려가 없습니다. 요것은 받는 자밖에는  아무도 모릅니다. 인간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귀한 비밀입니다.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의 염려가 있느니라”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내 몸에서 존귀케” 또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거기 온전히 담대라 말 있습니다., 온전히 담대라는 것. 이 세 가지를 목적을  삼고 그 목적 달성하는 이 방편을 자기의 생애 방편으로 삼고 이럴 때에 씨와  양식은 당신이 책임질 것을 믿는 자 이자에게서는 온전한 담대를 가지게 됩니다.

이 사람이 온유한 사람 됩니다. 이 사람이 세상은 점령했습니다. 무궁세계도  점령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실천합시다.

실천하면 우리가 비록 이 진영이 소수일지라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무한이 이  관을 통해서 이 운동을 통해서 이 복음 운동을 통해서 하나님의 무한함이 이  복음 운동을 통해서 막 쏟아져 나올 수 있어. 세계도 홈폭 잠굴 수 있어. 넘칠  수 있어.

이 세 가지를 믿는 자, 위로 하나님께 대해서, 그 방편인 이웃에 대해서, 그  자원인 이 자원에 대해서 요 세 가지 신앙을 확고하게 가지고 요것을 자기  현실에서 실행해 보십시오. 더디지 않습니다. 시간 걸리지 않습니다. 늦어도 일  년 안 갑니다. 일 년 안 가서 막 기울어집니다. 일 년 안 가서 모든 사람이 다  보고서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것이요 칭찬할 것이요 복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것이요 알려줄 것입니다. 굶어봤자 일 년 아니오. 벗어봤자 일 년 아니오.

자기 직장에서 ‘나는 월급 보고 하지 않겠다. 나는 가족 생활 내가 이런다고  가족 생활 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께서 시켜 주셔야 되지. 내가 월급을 많이  받아 가지고 가도 그 월급을 우리 가족이 입에 하나도 못 넣을 수도 있다. 입에  넣어도 소화가 안 돼서 토해서 배나 내트릴 수도 있다.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안  된다. 나는 이 직장에 내가 비판해 볼 때 하나님이 나에게 이 준 직장이라는  것을,’ 일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불신자보다 더 악하다 했기 때문에, 그는 죽으라 하기  때문에, 자기가 무슨 일에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존귀케 기쁘시게 할까? 무슨  일에서 할까? 자기로서는 가만히 놀아 가지고는 안 되겠고 또 일 안 하면 그  주인이 도적인 줄 알고 마다 하는데 안 되겠고 자기로서 죄짓지 아니하고 신앙  자유 가지고 얼마든지 있는 힘 다 들여서 일할 수 있는 힘, 있는 힘은 다 들여서  일을 해야 거게서 하나님의 기쁨도 존귀도 영광도 나타나야 될 터인데 자 뭣  할까? 자기로서는 이 일밖에 없다.

그러면 그 일 들어가 했으면 ‘뭐 하려고 너 여기 하느냐?’ 하나님을 내가 이  일을 통해서 기쁘게 존귀케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서, ‘그러면 이 일을 통해서  하면 이 일을 네가 어찌 하는데?’ 이 일을 나는 인간 구원하기 위해서 이  일에서, 이 일에서 영적이나 육적이나 어쨌든지 내가 내게 있는 걸 줄 수 있는  대로 이 일에서 배고픈 자 먹이고, 목마른 자 마시우고, 벗은 자 입히고, 나그네  된 자 대접하고, 병든 자 옥에 갇힌 자 내 힘대로 구출하기 위해서, 그들에게는  신령한 게 없고 내게 신령한 게 있으니까 신령한 것을 그들에게 주기 위해서,  주기 위해서,입술로는 말하면서 이러니까 사장이 와 가지고서 주먹으로 쥐박으며  ‘야, 이놈아 나가거라. 너 이놈아, 무슨 얘기하고 입놀리라고 여기 보냈느냐?’  쫓아내지마는, 쫓아내면 제가 거기 못 하지.

목적은 내가 여게서 모든 면으로 감화 감동이 돼야 되겠고 모본이 돼야 되겠고  사장으로 나를 존귀하게 여겨야, 뭣 때문에? 내가 존귀하기 위해서? 아니, 주님  존귀케 하기 위해서. 복음을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자기로서 자기에게 줄 것 있습니다. 진리가 그들에게 없으면 진리를  주고, 사람이 없으면 사람을 보여주고, 의가 없으면 의를 보여주고, 천국을  모르면 천국을 보여주고, 죄를 모르면 죄를 무서워하는 걸 보여주고, 심판을  보여주고, 어쨌건 하나님을 기쁘시게 영광스럽게 존귀케 하기 위해서 요 세 가지를 가지고  요 목적을 가지고 요것을 달성하는 그 실질적인 방편인 인간을 구출하는 요것이  유일한 방편인 요 구출하는 것으로 요 세 가지가 되기 위해서 자기가 그  자리에서 요 마음을 가지고 방편을 써서 며칠을 일하면 주목을 당할 것이오.

어떤 자에게? 게을은 자에게 주목을 당할 것이요 그 회사를 좀먹는 자들에게  주목을 당할 것이요 그 회사를 애끼고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본이 될 것이요.

나중에 그러다가 얼마 동안은 그 회사를 해치는 좀먹는 나쁜 사람들에게  모둠매를 맞을런지도 모릅니다. 맞아도 주를 위해서 맞는 줄 알고 또 거게서도  영광 돌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얼마 안 가서 악인들이 감동받을 자는 감동받고 또 감동받지 아니하고  나쁜 자는 이제 그 주최측에서 그들을 다 도태시킬 것이고 마지막에는 그 한  사람으로서 그 회사에 하나님의 기쁨이 가득 찰 것이요 존귀가 가득 찰 것이요  영광이 가득 찰 것이오.

이러면 그의 성공은 하나님 기쁘게 했으니까 그게 성공이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에게 소금의 간물이 배 들어갔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배  들어갔습니다. 하늘나라 복음이 배 들어갔습니다.

‘저 사람 보니까 죄짓는 값이 있구나. 그 사람이 죽었으면 죽었지 죄 안  지으려고 뻘뻘 떠는구나. 저 사람 보니까 인간의 마음을 감찰하고 계시는  하나님이 정말 계시는구나.’ 그에게 하나님 없는 자에게 하나님을 줘서 배부르게 했고, 하나님 벗고 사는 자  하나님 입혀줬고, 복음 입혀줬고, 그가 방향을 정하지 못하지 자에게 인간의  행로를 환하게 알려줬고, 그가 만신창된 자가 의인이 됐고, 그분이 첩첩이 자기  사욕에게 갇혀 있는 자에게, 자기 주관에게 갇혀 있는 자에게, 자율에게 갇혀  있는 자에게 해방을 시켜서 모두 자유하는 자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만 존귀히” “떠나든지 있든지 주를 기쁘시게” “몸으로 산 제사를  드려서”이렇게 살 때에 그분은 얼마든지 살 수 있는 건강이 필요한 건강 주실  것이요, 진리가 필요하면 진리 주실 것이요,  영감이 필요하면 영감 주실 것이요, 구변이 필요하면 구변 줄 것이요, 지혜와  총명이 필요하면 지혜 총명 줄 것이요, 꿈 해석이 필요하면 꿈 해석 줄 것이요,  사자구덩이가 필요하면 사자구덩이 줄 것이요, 불미불이 필요하면 불미불을 줄  것이요 모든 것이 합해서 하나님께 영광됩니다.

이렇게 크신 하나님 이렇게 큰 계약을 가지고 사는 우리들이 왜 조부랍습니까?  왜 우리가 이렇게 못났습니까? 우리는 자기를 떠나서 이 복음을 믿고 살아야  됩니다.

이것 때문에 시비요. 꼭 남을 헐어야 제가 올라갑니까? 남을 이단이라고  정죄해야 제가 정통이 됩니까? 남을 끌어내려야 올라갑니까? 다 세상 방법이오.

세상 방법이오. 우리는 먼저 하나님 위하고,  둘째는 인간을 위하고, 셋째로 자기에게 있는 것 다하면 무진장으로 당신이 필요 하면 주셔. 이것을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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