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지혜

 

1981. 4. 12. 주일 오후

 

본문 : 누가복음 16장 10절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우리가 자기의 소유나 몸이나 생명에 다소라도 다른 사람이 해치면 여기에  대해서는 괭장한 방비와 또 시비를 하는 우리들입니다. 또 실은 다른 사람들은  구속받은 우리의 것을 털끝만치라도 해할 자는 없습니다. 해를 하려고 천인  만인이 달라들어도 본인이 해받지 아니하도록 할 때에 해는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해하려고 할 때에 자신이 그 해하는 데에 피동되면 해를 당할 수 있는  것 뿐인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자신의 모든 것에 와 자신을 해치는 일에 있어서는 전혀 무지하기  때문에 별 관심이나 시비나 또 원수시 하지를 아니합니다. 이것을 가르쳐 ○○씨  저 빨리 나가요. 뭐 한데 그카고 다니요. 자기 앉은 자리 잊었습니까? 그러면  옆에 앉은 사람이 말해 주십시오. 빨리 옆에 앉은 사람이 앉았던 사람이 말해  주십시오. 빨리 옆에 앉은 사람이 앉았던 사람이 말해 줘. 어디라고 저 뒤에  인데, 뒤에 자기 앉았던 자리 잊어버리고 자꾸 인자 의자 수를 세이라고 있는데  그 수를 세아리면 맞는가) 이래서 성경에는 "자신이 자기 일을 속이지 말라" "자신이 자신을 해하지  마라라" 이렇게 많이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지식으로도 알고 있고 또 입으로도  말하지만 알때로 아는 것은 아닙니다. 성신의 감동이 아니면 이 사실을 알아야  할만치 알자도 없고, 느끼야 할만치 느낄 자가 없는 것입니다. 이는 성령의  감동으로만 되는 것입니다.

오전에 이 비유에서 우리의 무지 둘을 가르치고 있고, 우리가 깨달아 가져야 할  지혜 셋을 여기에서 가르치고 있고, 또 우리가 빨리 단행해야 될 한 행동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고, 또 우리가 빨리 단행해야 될 한 행동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거기에 덧붙여서 해석을 하시기를"네가 불의의 재물로"  불의의 재물이라 말은 우리가 가진 이 물질의 것은 다 불의한 것들입니다.

일단 범죄 아래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불의한 것은 없어지는 것이고 의로운 것은  영원히 없앨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도 불의의 물질입니다. 우리의  몸도 불의의 물질입니다. 영은 영물이지만 이 몸이라는 것은 물질입니다. 마치  물질로만 되어 있는 짐승에게 본능이 있는 것과 같은 성질의 것들인 것입니다.

또 우리 소유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생명도 물질입니다.

"불의의 물질로 친구를 사귀라" 여기에 친구로 말하는 것은 "소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곧 나에게 행한 것이라" 우리가 이웃에게 하는 것이 곧 주님에게 하는  것입니다. 이웃에게 박절하게 한 것이 가보면 주님에게 박절하게 한 것이  됐습니다. 이웃에게 후대한 것이 바로 주님에게 대해서 후대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소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나에게 행한 것이요. 소자 하나에게 행치  안한 것이 곧 나에게 행치 아니한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전부를  다 기울려서 구속한 당신의 자녀요 당신의 백성이요 당신의 기업이요 당신의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사랑함이 주를 사랑함이요 이것을 애낌이 주를 애낌이요  이것을 위함이 주를 위함입니다. 주님의 피로 구속받은 이 성도 이것을 위함이  주를 위함이요 이것을 멸시함이 주를 멸시함이요 이를 후대함이 주를 후대함이  되는 것입니다.

왜 주님이 지위와 모든 부요와 영광과 몸과 생명 이것을 다 드려서 형벌도 대신  했고, 순종도 대신 했고, 불목의 그 벌도 대신 받아서 우리를 구속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가치 없는 것이지만 당신에게 있어서는 당신 생명으로 구출한  당신 생명보다 더 애끼는 우리들이며, 당신의 지위 권세보다 애끼는 우리들이며,  당신의 그 무한한 부요보다 더 애끼시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막바로 이웃에 하는 것이 그것이 택한 자들에게 하는 그것이  주님에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택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전 인류 이웃에게 하는 것이 곧 주님에게 하는 것입니다.

불의의 재물로 없어질 마음이나, 몸이나, 소유나, 생명이나 이런 것들을 가지고  친구를 사귀라. 예수님을 사귀라. 친구를 사귀라. 죄인을 위해서 노고하는  그것이 막바로 주님을 위하여 노고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주님을 사귀는  것이라는 것을 여기에 비유로 말한 것입니다.

'주님을 사귀라' "없어질 때에 이 자연의 것 이 모든 몸이나 마음이나 생명이나  이것으 끝났을 때에 영원한 처소로 너를 영접하리라" 영접한 처소에 대접한다  말입니다. 영원한 처소에서 무궁세계에서 한대로 대접하겠다. 또 주님  말씀하시기를 "냉수 한 그릇의 수고도 내 구속받은 자를 위해서 수고한 것을  결단코 내가 그 상을 잃지 않고 갚겠다" 보증했습니다.

그런고로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없어질 때에 영원한 처소에서 너를  영접하리라" 또 말씀하시기를 "불의의 재물로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주겠느냐" 이미 저주받아 정죄받아 없어질 이것을 구속하시 가지고  구속하시 가지고 없어질 이것을 잠깐 너희에게 맺겨도 이것 가지고 주님 위해서  주님의 원하시는 대로 이웃을 위해서 살지 않고 쓰지 않는 너희에게 영원히 네가  가질 수 있는 것을 주면 더 하지 안할 것 아니겠느냐 하는 것을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했습니다. 이거시은 우리에게 경계하고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오늘 건강을 다 버리게 될란지, 생명을 버리게 될런지, 소유를 오늘 다  손떼게 돌런지, 우리의 기능의 작용이라는 것이 오늘로 끝날런지도 모르는  이것도 이렇게 간곡히 말씀하신 주를 위해서 이것을 쓰지 못하고 곧 주님을  대접하는 일, 인간들을 죄에서 구출하는 이거 위해서 쓰지 못하는 너희들에게  영원히 네가 가질 수 있는 참된 것 완전한 것 영원히 네가 가질 수 있는 그것을  주겠느냐? 임시 가졌다가 버릴 것 가지고 나 섬기지 안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나  섬기는 것은 곧 이웃을 죄에서 구출하는 이것이 나 섬기는 것인데, 잠시 후에  없어질 것 가지고 나 섬기는 일을 하지 아니하는 너희에게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할 것으 로 너희에게 주면 욕심을 얼마나 더 챙기겠느냐? 얼마나 네가  욕심부려서 나를 위해서 살지 않겠느냐? 그러기 때문에 불의의 것 가지고 충성치 아니하는 자에게 어떻게 참된 것을  주겠느냐 말씀하셨고 또 말씀하시기를 "네가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네가  남의 것에게 충성이라 말은 주님의 피로 구속한 구속을 전제로 두고 하는  말입니다. 충성이라는 것은 종이 주인에게, 값에 팔린 종이 주님에게 혹 위에  있는 상관이 부하를 등용했을 때에 그 주인과 종에게 위에 상관과 부하에게  여기에만 쓰는 언사입니다. 이 충성이라 말은 다른 데는 못 씁니다. 그 아내가  그 남편에게 충성했다 그 못 씁니다. 요 두군데만 꼭 쓸 수 있는 충성이라는  단어입니다.

이러기에 이 충성은 주님의 피로 값주고 산 이것을 전제로 하고 말이고 또  만왕의 왕이신 우리는 우리의 왕이시며 우리는 그의 백성입니다. 이것을 전제로  두고 하는 말입니다. "네가 남의 것에 대해서 충성치 안하면 누가 참된 것을  너희에게 너에 것을 너에게 주겠느냐" 네가 내 것에 대해서 충성하지 안하면  내가 네것에 대해 네게 할 일 내가 하겠느냐? 생각해 봐라. 이거는 공평의  법리를 말합니다. 이것은 그 공의의 보수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계약을 해놨으니 이 계약이 심판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심판대 앞에 설 때에 심판 받는 것은 심판의 법이 딴 것이  아니고 우리에게 주신 신구약 성경 이 말씀이 그때 법입니다. 이 법을  가지고우리는 심판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피로 구속하신 주의 백성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언행심사에  관심을 가졌든지 그대로 주님이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구속받은 백성들에게 내가 어떻게 무관심하고 어떻게 인색하고 어떻게 냉정한  대로 주님은 곧 그 사람에게 냉정하고 인색하고 무정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그 주기도문에 그 짧은 간추린 주기도문은 괭장한 범위를 가지고 있는데  거기에 또 말씀했습니다. 네가 남의 그 멸망된 그 죄에서 건져 낼라고 애쓰지  아니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내 죄에서 너를 건져 낼려고 애쓰지 아니한다 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거기에 사함이라 말은 해방이라 말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멸망에서 해방 하려고 애쓰지 안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를 너 멸망에서  해방시킬려고 하지 아니한다" 요렇게 조건을 딱 붙여놨씁니다.

오늘 우리가 이 사실을 어느정도 인정하는지, 어느정도 느끼는지 정말로 주님이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늘과 땅 이 지구상에 바다가 넓지만  그 바다 모든 것 과학자들이 이 별에서 저 별을 건너 가면서 큰 소리를 떵떵  하지만 이 별과 별 사이에 이 항성과 항성사이 측량 못할 이 광대한 우주 그것을  지으신 주님으로 믿는지, 이것을 지금도 혼자 운영하고 계시는 것을 믿는지, 그  보다 더 크시고 그보다 더 무섭고 그것을 없앨 수도 있고 있을 수도 있고  엿세동안에 그런 것 지으신 이 능하신 주님으로 믿는지, 이것이 주님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저가 나를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이렇게 주님을 아는 자는 높아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물을 발 아래 밟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를 만물 위에  높히는 자는 만물은 그의 발아래 등산이 됩니다. 그를 만물보다 낮추는 자는  만물의 종이 되고 만물의 발등상이 될 것입니다. 이거는 필연한 일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모든 걸 다해서 구속하신 주의 백성 구원에 대해서 어떤 관심을  가진 것만치 주님은 나에게 대해서 영원히 그대로의 관심을 가지고 행하시겠다는  것이 여기에 계약되었습니다. 내 전부를 구속받은 형제를 구원하기 위해서 다  기울였다면 일생동안 기울렸다면, 소유를 다 기울렸다몃, 몸과 모든 기능과  생명을 기울렸다면 하나님의 그 전부는 영원히 그 사람 위해서 기울이겠다는  그것이 계약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에게 물질 바치는 사람, 시간을 바치는 사람, 힘을 바치는 사람,  몸을 바치는 사람, 생명을 못 바쳐서 애터지게 생명을 바치는 사람, 이렇게  바치는 사람들이 욕심이 없어 그런 것 아닙니다. 욕심이 큽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불택자보다 뛰어난 큰 뜻을 큰 욕심을 큰 욕망을 품지 못한 사람 예수 못  믿습니다. 이것을 깨닫은 자는 천하에 있는 권세 있는 자를 다 내편 삼아서  무가치 하요. 무가치합니다. 온 천하에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다 내 것  삼아봤자 몇닢푼치 안 됩니다. 이것 가지고 마음이 차지 안 해. 주 되신 그분을  내 주로 모셔야 그분의 모든 것을 내가 기업으로 상속받아야  그러기에 믿는 사람은 마음이 넓고 크다. 포부가 크고 욕망이 크다. 시야가  넓다. 전체를 자기의 시야로 삼는 자이다. 모든 걸 다 채워도 그 마음을 채울 수  없는 자가 하늘나라를 소유한다. 조그만한 요만한 권세 요게 조그만한 몇 마리가  모이 가지고 뭉치 가지고 꼬불 꼬불 하고 있는데 거기에 요 지위 조 지위 조  권세 가지니까 만족하는 그 자는 하늘나라가 그 속에 들어가지를 못한다.

조그마한 국부적인 티끌 같은 권세와 소유로 배가 차서 어깨가 벌어지는 그런  자는 하늘나라를 담을 그릇이 없다 마음이 빈자는 천국이 저희 것이다. 네가 내  것에 대해서 어떻게 함 같이 내가 너에게 대해서 해 주겠다 이것 때문에 생명  받힙니다. 이것 때문에 일생동안 헌신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보기에는 다 같이 장사하고 다 같이  사업하고 다 같이 가정 이루고 사는 것 같지만 남이 모르는 그 이면에 제대로는  주님의 구속의 이 구원 역사를 위해서, 이 복음 역사를 위해서, 인간 구원  역사를 위해서, 내기 비록 못난 이 식모의 한 사람이라도 요게서 빛을 발하겠다.

여기에서 주의 복음을 영광스럽게 하겠고, 여기에서 인간 구원을 나타내겠고,  여기에서 하나님 계시는 것을 보여주겠다.

누든지 천국을 깨닫은 자마다 자기의 있는 소유를 다 팔아서 이것을 위해서  투자합니다. "천국은 보화와 진주를 발견한 자가 있는 소유를 다 팔아서 진주를  삿고 밭을 산거와 같다" 깨닫으면 자기의 소유를 다른데 기울릴 데가 없습니다.

주님을 사귀는 거 외에 큰 일이 없습니다. 주님과 결탁하는 것보다 더 큰 일이  없습니다. 주님을 내 주님으로 삼는 것보다 더 큰 일이 없습니다. 주님이 나  위해서 살게 해주시는 이보다 더 급선무와 지배한 일이 없습니다. 이것은  계약입니다.

"네가 네것 아닌 내것에게 충성하지 아니하는데 네것에게 대해서 해 줄 것을  해주겠느냐" 우리가 이 말씀을 빼골에 박아야 됩니다. 우리가 이 무정한  사회에서, 죄악이 날마다 관영해 가고 관영해 가는 사회에서, 배은하는 이  사회에서, 정당한 보응이 없은 암흑 사회에서, 공로는 다른 사람에게 있고 그  열매를 따 먹는 것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이 착취의 전체가 도적의 이  사회에서, 우리가 이 성구를 굳게 잡지 안하면 자기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할  것입니다.

감사치 못하는 자나, 배은하는 자나, 배은으로 복수하는 자나, 가증스러운 자나,  이중 삼중 십중에 감언이설에 외식하는 자나, 보기 싫은 것, 듣기 싫은 것,  접촉하기 싫은 것, 참고 견디기 어려운 것, 치지 안할 수 없는 것, 멸하지 안할  수 없는 것 이 모든 것으로 가득찬 세상이나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곧 나에게 행한 것이니라" 그에게 참은 것이 나에게 참은 것이요, 그에게  기울린 것이 나에게 기울린 것이요, 그를 용납한 것이 나를 용납한 것이요, 그의  어려움을 도운 것이 나에게 도은 것이니 하는 주님이 계약하신 게약, 내 눈에는  보이게 하나의 불의의 불법에 가증스러운 독사와 시랑이 같은 죄인이지만 이  이면에 연대책임을 지고 앞세우고 있는 그 주님을 바라보는 이것이 아니면  우리는 서너을 행하다가 낙심하고 실패하기 쉬은 것입니다.

"내가 불의의 것으로 친구를 사귀라 없어질 때에 영원한 처소에서 너를  영접하리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암만 애껴도 이것은 정죄 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저주 아래에 있는 것입니다. 구속받은 자가 가지고 있는 몸도 마음도  소유도 죄 아래 있습니다. 중생된 영만은 의 아래 있습니다.

죄 아래 있는 것을 우리가 여기에서 구속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언젠가 아무리 단단히 거머쥐고 있어도 제가 손을 쭉 펴고 가야 합니다.

아무리 애껴도 조롱을 하면서 내것을 다시 임대해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안 주고 간 자가 하나도 없소. 백오십 년 전에 가지고 있던 자는 자, 주고 다  빼앗기고 갔소. 인간 사람이 하나도 안 주고 가지고 간 사람도 하나도 없소.

이것이 언젠가 종말 시간인지, 언제 없어질지 분명히 나와 한번은 손을 뗄  것인데 불의의 것인데, 이것 가지고 오늘이라는 세상 떠나면 없어지고 두고 갈  것 이것 가지고 만유의 대주재를 사귈 수 있는, 만왕의 왕을 사귈 수 있는데,  창조주를 사귈 수 있는데, 주권자를 사귈 수 있는데 오늘에 사오 년, 육칠 년,  칠팔 년 오늘도 그 권세가 없어질지 모르는 땅에 있는 이런 모든 지저분한 것도  그 권세자를 사귈라고 하루 밤, 이틀 밤, 사흘 밤, 한 달가서 찾아 기다리고  그의 비유에 그의 성미에 그가 호감을 가질 수 있어.

나를 사귀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오만 것을 연구해 가지고 준비해 가지고  노력하는 우리들이 만유의 대 주재를, 만왕의 왕을, 창조주를, 주권자를 없어질  것 가지고 사귈 수 있는데, 사귐의 보응은 영원한 처소에서 나를 영접하는데,  영원한 처소에서 갚아 주시는데 오늘에 그분을 위해서 사귄 이것을 영원한  처소에서 그분이 그 사귐 가지고 영원히 나를 사귀 주고 알려줄 이 사실을  우리가 어느정도 인정을 하는지, 어느정도 느끼는지, 느끼면 소유나 몸이난  생명이나 이걸 위해서 투자할 거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정말로 느끼느냐?  느끼면 자살은 못 하지만 이를 위해서 생명을 바치게 될 기회를 놓지 아니할  것입니다. 깨닫은 성도들은 이것 때문에 매일 기도합니다.

"네가 불의의 재물로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주겠느냐"  없어질 것 가지고 주님 섬기지 아니하는데, 없어질 것 가지고 주님 원하시는  대로 하지 안하고 너 좋고 너 원하는 대로 하는데, 없어지지 아니할 영원한 것을  너희에게 주면 얼마나 네가 싹 돌아서서 눈 지끈 감고 너 좋은대로 네 욕심대로  할 것이냐? 네 욕심대로 네 좋은대로 하는 것이면 그게 다 불법이요 죄기 때문에  영영히 참혹하게 멸망하는 것이니 멸망으로 주님이 줄 수 있습니까?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내대로의 부정모혈로 난 이대로 있는 것 아닙니다. 주님의 피로 구속함을  입은 우리들입니다. 구속하시 가지고 주신 우리들입니다. 나도 주님이 구속해서  된 나요 내 소유도 몸도 주님이 구속하시 가지고 된 내 모든 소유입니다. 내  심신입니다. 이 구속하여 된 이 것을 이 청직이가 주인의 것을 보관하고 있는  것을 잊어버려서 그는 쫓겨났습니다. 주님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되어 있는  내라는 것을 잊어버리면 반드시 그 다음에 행동을 이것은 제 마음대로  자행자지할 것입니다. 제 욕심대로 제 뜻대로 제 성질대로 할 것입니다.

그러면 영원히 그는 없어졌습니다. 영원히 빼앗깁니다. 저를 제 마음대로 하는  것이 영원히 저를 빼앗겼습니다. 기본구원으로 중생된 영과 부활해서 가기는  갔지만 자기라는 가치와, 자기라는 미와, 자기라는 기능과, 자기라는 영광과,  자기라는 존재의 그 위치 이것은 완전히 박멸됐습니다. 박별 됐어.

내 언제 보니까 그 사람이 천재인데 한국에서 최고의 지식을 가진 사람인데  벼슬을 줘도 안할라 하는 사람인데 모든 사람이 그 사람 얼굴만 한번 보기  원하는 사람인데 갑자기 정신 이상자가 되어서 모든 그 사람의 가치가 완전히  없어지고 하나의 미치괭이가 됐을 때에 그 사람의 가치는 전혀 없어졌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떤 구비한 자라 할지라도 주님의 구속받은  자기와 자기의 것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주님의 피로 값주고 산 주의 것이라.

주님이 구속하신 것이라. 주님이 지옥에서 생명으로 사냈어. 저주에서 당신이  주저 받고 건져냈어. 유황불구렁텅이 있는 걸 당신이 지위와 권세 팔아서  구출했어.

주님의 이 구속의 이 사실을 깨달아 '나는 구속받은 자라' '주님이 구속하신  주의 것이라' '주의 피로 값주고 산 주의 것이라' '나는 살아 있으나 주의  것이라' '나도 내 생명도 소유도 주의 것이라' 이러기 때문에 다시는 내  마음대로 내 원하는 대로 내내로 살 수 없어.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구속하신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니라. 살아도 주를 위해서,  죽어도 주를 위해서, 먹어도 마셔도 주를 위해서,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로라.

이렇게 살아야 된다는 이 사실을 잊어버린 이 무지 이것을 자기 목을 끊는  원수보다도 더 큰 원수고 이걸 잊어버리게 하는 것이, 이걸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이, 이 감동이 우리에게 강한 감동의 뜨거운 충격을 주지 못하게 하는 모든  것들이, 자기의 목을 끊는 것보다 큰 원수인데 이것을 우리가 느낍니까? 천지는  없어져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요 위치 요대로 입니다.

이 비유에 그 청직이도 잘못했으니까 다시 쫓겨나 가지고 청직이 사업  못봤습니다. 그게 비유요. 우리는 이 구속받은 자가 이것을 구속받은 것  잊어버리고 '나는 낸데 내 몸이야' '내 마음인데, 내 소유인데, 내것인데,'  '낸데' 하여 산 것은 영원히 되찾지 못합니다. 영원히 되찾지 못합니다. 우리가  몇 해를 땅에 살았는지 사는 가운데 제대로 산 것은 다 죽었습니다. 내 진액을  내가 죽였습니다. 내 기능을 내가 죽였습니다. 내 몸을 내가 망쳤습니다. 내  소유를 내가 망쳤습니다.

얼마나 망쳤고 영원한 나라에서 살 수 있도록 살려 놓은 것이 얼마나 있는지  땅의 것을 위해서 살았고 육체로 심었으니까 제 마음대로 살았고 제 고기덩어리  욕심대로 살았으니까 썩어진 것을 거뒀지 썩어진 수입 뿐이지 우리가 이것을  얼마다 느끼고 있는지 얼마나 이 큰 이 사실에 놀래야 되고 자물서야 되고  느끼야 될런지 우리가 일이 문제가 아니고 먹고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걸 우리가 느끼야 됩니다. 이래 한 시간을 살아도 하루를 살아도 우리 생활할  수 있고 가치 있는 생활할 수 있고 어리석음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것은 주님의 피로 구속한 주의 것으로 우리가 자기고  있습니다. 나는 주의 것으로 내가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의 피로 구속한 주의  것으로 나는 살고 있습니다. 지옥에 있던 것이 주의 구속한 주의 것으로 천국에  와 있습니다. 생명에 와 있습니다. 생명에 와 있는 거는 주의 것이기 때문에  생명에 왔습니다.

이런데 이것을 한번 빼앗기면 다시 못 찾습니다. 쫓기나면 그만이라. 내가  쫓기나면 다시는 돈 한푼도 손 못 되겠고 문서 하나도 손 못 되겠고 지금 내가  자유하지만 다시는 손 못 된다. 이 별세에 문밖에 나가면 다시는 내 몸 가지고  아무리 선한 일하려 해도, 아무리 봉사하려 해도, 아무리 하나님을 섬기려 해도,  계명을 지키려 해도, 의를 위해서 생명을 바치려고 해도 헛일이라. 후회는 소용  없어.

일단 세상이 끝났으면 다시는 이것은 내가 손댈 수 없는 요 사실을 이 청직이가  청직이 직책을 놓고 쫓기나가고 난 다음에는 다시 제가 보관하고 있던 부자의  소유는 손 못댈 수 없는 이것을 크게 탄식하고 느낀 요 비유와 같이 그거는  비유지만 우리는 우리의 구속 받은 것 우리가 오늘 은 얼마든지 죄 짓는 데도 쓸  수 있고, 의롭게도 쓸 수 있고, 욕심대로도 쓸 수 있고, 정욕대로도 쓸 수 있고,  성령의 감동대로도 쓸수 있고 얼마든지 이렇게 쓸 수 있지만 일단 끝이나면 다시  못 씁니다. 단번에 주신 도라 말은 내게 쓰는 것 요 시간에 쓸 것 다음 시간에  쓸 것 있는데 기회는 한번 뿐인데 고 기회 놓이면 고 기회에서 살든지 죽든지  끝나버립니다. 고 다음에 것은 고 다음 순서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한번 산 정욕을 다시는 되풀이 못합니다. 산 정력은 죽음으로  살았든지 삶으로 살았든지 그 정력의 순서는 지나갔습니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어느정도 느끼는지 내가 오늘은 이 손 가지고 얼마든지  주님 대접할 수도 있고, 주님 섬길 수도 있고, 만물에게 칭찬 받을 일도 할 수가  있고, 인간들에게 환영 받을 일도 할 수가 있고, 사람들에게 칭찬받을 일도 할  수가 있고, 내 소유는 돈 한푼이라도 어떻게 이렇게 가치 있게 쓸 수도 있지만  일단 내가 세상을 떠나면 내 숨이 끊나면 육의 생애가 끊나면 다시는 소유가  암만 있어도 이것 가지고 손 못대고 내 몸도, 명철도, 총명도, 언변도, 열정도,  힘도 다시는 손 못 댄다.

요 종말 시간이 언제든지 종말 시간은 필연적으로 있는데 언젠지 요게 대해서  인간이 죽음과 동시에, 자기에게 동결되는 죽음과 동시에, 사용권이 끊나는  죽음과 동시에, 이용권이 끊나는 죽음과 동시에, 무한한 가치에 일을 마련할 수  있는 이 공장은 끝나는 이 역사는 끝나는 이 사실에 어느정도 느끼는지 이러니까 내가 할 일은 빚진 자 탕감해 주는 이거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그러면 "쫓겨나고 난 다음에 그분이 대접하리라 하면 다 그렇게 할 것  아니겠느냐 하물며 너는 이 땅위에서 네가 죄로 멸망 받고 있는 인간을 구원한  것은 냉수 한 그릇이라도 값을 잃지 않겠다 그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 감사치 안한 자에게 하는 것은 말로 눌러가면서 더 많이 갚아 주겠다.

이렇게 주님이 계약하시고, "네가 지극히 작은 것 가지고 인간 구원에 투자한  것이 만유의 주재를 대접하는 것이 되어 나를 내가 굶을 때 먹을 것 주었고  목마를 때 마시 주었다" "언제 주님이 직접 그래 했습니까" "곧 소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곧 나에게 행한 것이다" 이런 게약을 선포했는데 이 계약을 보고  자기의 것을 여기에 투자하는 이 지혜가 생기지 안하면 우리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성신의 감화가 와야 이를 느끼고, 그 감화라야 인간이 애착하는 제 생명도  이것을 위해서는 애낌 없이 받혀지는 것, 자기가 복음을 위해서 형제의 구원  위해서 고문과 고행을 다하게 될 때에 이것이 주를 대접하는 것, 이것이 주를  사귀는 것, 이것이 형제들에게 구원을 돋아 주는 것, 이것이 썩어질 것으로  주님을 대접하는 것이라는 것을 강하게 느끼질 때에 '솔박 주님에게 다 대접하고  형제 구원에 다 투자하자' 요것이 원하는 자는 고문과 고행이 그에게는 빈약해서  '더 고문과 고행을 강하게 해라' '더 주님을 대접하는 것이 대접하기 용이한  환경을 만들어 도라' 주님을 대접하는 데에 환경아 도와 달라 할 수 있으나 이  고개를 넘지 못한 그 미달에 있는 자는 반드시 십자가의 원수의 길을 꿈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여기에 보니까 빨리 앉아서 급하다 말이오. 빨리  앉아서 고쳐라. 우리는 뒤로 미룰 기회가 없습니다. 자기의 소유나 몸이나  생명이나 주님의 피로 구속한 이 인간 구원 이 피운동, 죄인들을 구원하는 운동,  죄인들 회개시키는 운동, 죄인들을 성화시키는 운동, 이 운동에 기회 놓이지  말고 기회 되는 대로, 기회 안 주는데 하면 자살입니다. 기회를 주지 안하는데  투자하면 이것은 방탕이요 방종이요 남용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기회라야 내가  돈도 투자할 수 있고, 주님이 주시는 기회라야 내 몸도 헌신할 수 있지, 주님이  기회를 주시지 안하는데 하면 생명을 투자하면 자살이 되고 말 것이고 물질을  투자하면 잘못 쓰는 남용이 되고 허비 남용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즉시 앉아, 빨리 앉아, 즉시 앉아, 구역에는 즉시라 말했습니다.

빨리 앉아 우리는 일에 투자하는 것을 기회를 놓이지 맙시다. 저 이 예배당을  처음에 지을 때에 자 주님 다 받혀 우리 사랑했는데 우리도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한번 바쳐보자. 생명을 바치는 것은 기회를 줘서 순교할 수 있는 때라야 되지  힘을 바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회주시는 데라야 바칠 수 있지만, 물질 주신  것은 바칠 수 있는 기회로 말미암았으니까 한번 시험 삼아 바쳐보자.

그래서 자기에게 있는 소유 다 바치니까 입고 있는 옷이 있습니다. 신고 있는  신이 있습니다. 이래서 옷과 신을 몇닢푼치 안되지만 바칠라 하니까 빨가 벗고  이거는 부덕스러워 안되겠고, 그러니까 와 가지고 요거 가격이 얼마니까 좀 비싼  가격으로쳐 주십시오. 비싼 가격으로 쳐서 고거는 작정해 놓고 자기가 고 힘 고  노력 해 가지고 대금을 받혔습니다. 자기 껍데기 완전히 소유를 완전히 받힌  사람 그때 한 오십여 명 있었습니다. 오십두 사람이나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식모살이 하는 사람인데 그 다 바치는 것 보고 주인이 '어리석다'  '미련타' '꼬있다' 했는데 고 젊은 사람인데 고거 바치고 난 다음에 석 달인가  있다가서 세상을 떴습니다. 갔습니다. 놔뒀으면 뭐 합니까?얼마나 슬기롭게  했습니까? (하계순) 집에 가정부로 있는 분입니다. 똑똑한 분입니다. 인물  잘났고,  네 우리는 소유와 몸을 어리석게 하지 맙시다. 오후에 주신 말씀은 거기에  우리에게 지혜를 가지고 슬기로운 이 단행에 일을 시작할 때에 네가 어떻게 해야  되나 하는 그것을 우리에게 능숙하게 구체적으로 용이한 방편을 말씀해  줬습니다. 그것이 곧 16장 10절입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면 큰 것에도 불의하다" 충성이라  말은 주를 위해서 바로 사는 걸 말하고, 불의는 주님을 배반하고 안 믿을 때의  그대로의 사는 것을 가르쳐서 불의라고 말합니다. 충성은 주를 위해 사는 생명  생활을 말하고 불의는 안 믿는 사람의 생애와 같은 멸망의 생애를 가르쳐서  불의라 그렇게 여기에 나누어서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주를 위한 생활할 때에 어떻게 해야 되나? 내가 주님을 위해서 소유를 다  바치고 싶어, 몸을 다 바쳐 헌신을 하고 싶어, 목숨을 다 바쳐 순교를 하고 싶어  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안 됩니다. 그것은 능력입니다. 안 됩니다. 거기에서 부터  시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서 충성하라" 지극히 작은  것, 네가 보통 말, 네가 무슨 죽음 앞에서 '너 예수를 믿겠나 안 믿겠나?  말해라' '믿는다면 목아지 끊는다' 그때에 주를 위해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거는 지극히 큰 충성입니다. 죽음 앞에서 '나는 죽어도 예수님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다 하는 그 말은 지극히 큰 충성의 말이요. 그 말에 네가  하려고 하지 말고 작은 데서 부터 시작해라. 네가 보통 말할 때에 동무들과  친구들과 많은 말을 하고 있는, 보통 말에 주님이 너를 구속한 것을 생각하고  주님을 생각해서 네가 말을 주님에게 합당한 말을 하도록 해라. 앉아 놀면서  합당한 말을 하도록 해라. 서로 보통 지나가면서 네가 말에 대해서 주를  생각하고 말을 해라. 이렇게 저렇게 모든 사람이 이 말 저 말하고 있는 데에  그때에 네 귀로 들을 때에 주님을 생각하고 네가 그걸 들으라. 네가 주님을  생각하고 네 마음을 가다듬어라.

지극히 작은 사소한 말, 사소한 데에 쓰는 보편에 그 마음 보잘 것 없는  그까짓거야 사람의 눈으로 보지도 않는 내 힘으로 하기 쉬운 아주 지극히 작은  그 행동을 주님을 생각하면서 지극히 작은 행동을 해라. 네가 주님을 생각하고  지극히 작은 조심을 생각하면서 쓰라. 네가 날마다 보고 있고 많은 것을 보고  있는 거기에 네가 보통 보고있는 거기에 주님을 생각하면서 네 보는 것을 주님을  생각하면서 봐라. 네 보는 것에 주님을 생각하고 거기에 제재가 있고, 보편의  마음에 주님을 생각하고 네 마음에 '내가 이래서 안 되겠다 이래야 되겠다' 내  마음에 제재를 하고 절제를 하고 보통 짜다라하고 하는 말에 주님 생각하고 네  마음에 말에 대해서 조절하라. 조정을 하라.

지극히 작은 그 물질을 네가 취하는 데에 그 물질을 주고 받는 데에 그 물질에  대해서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을 생각하는 그 힘으로써 네가 움직이진 것을 해라  이러면 죽음 앞에서 네가 정직을 행할 수 있고, 죽음 앞에서 네가 할 말 할 수  있고, 안 할 말 안 할 수 있고, 천하 인간이 가질 수 없는 위대한 마음을 너는  그 위대한 마음을 가질 수가 있고, 천하를 호롱치는 담대한 권위있는 그 우렁찬  소리를 네가 할 수 있다.

외정말년에 평양서 총회가 모였을 때에 모든 경관들 다 무장하고 빽 둘러섰고  총회장에게 '그 개회 해라' '신사참배 개회 하라' 총회장이 벌벌벌 떨면서 '자  우리 신사참배 우리 총회서 어떻게 할랍니까?' '하기로 동의 없습니까?'  '동의합니다.' '재청합니다.' '그러면 가부 뭍겠습니다.' 할 때에 주기철  목사님이 거서 고함을 질러서 '이는 신사참배는 우상 숭배기 때문에  기독자로서는 이계명을, 이계명을 범하는 것인데 할 수 없다.' '총회에서 이  결의를 못한다.' 고함을 지른 그 소리는 지극히 큰 충성입니다.

그게 지극히 큰 충성에 권위의 말을 할 수 있는 것이 네가 사소한 이 사소한데  주를 생각하고 네가 말 조심하는 데서 거기에서 시작되어 나간다. 네 목숨을  바치는 것도, 네 소유를 있는 데로 한몫 있는 것을 있는 대로 톡 다 바치는  것도, 지극히 작은 거기에서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을 생각하여 주님 때문에 네가  제재를 받고, 주님이 내 마음에 자유하고, 내 사소한 마음에 자유하고, 네  사소한 행동에 주님이 자유해서 너를 주님이 주관하게 하면 이것이 지극히  큰데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네가 지극히 작은데 주님 생각지 안하고 이까짓거야 하면서 네 마음 네 욕심대로  네 생각대로 네 주관대로 어떤 인간대로 지극히 작은 것 그대로 한 그것이  마지막에는 '예수를 나는 모른다' 참 우주가 놀랠만한 네 일생에 완전히  망쳐지는 그런 무서운 불의도 범할 수 있게 된다 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입술만 가지고 안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권능에 있습니다. 지식에 있지 않습니다. 권능에 있습니다. 열매를 보아서  그 나무를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어느정도 아는지 그것은 느낌으로 나타나고,  느낌이 어느정도 느끼는지 그거는 각오로 나타나고, 각오는 실천에서  나타납니다. 한번만 준 기회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존영을 만났는지 모릅니다.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일각이 참 천금 만금으로 비교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입니다.

 


선지자선교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3196 성도의 생활법/ 마태복음 24장 1절-2절/ 800504주전 선지자 2015.11.05
3195 성도의 성공/ 누가복음 5장 4절-11절/ 1979년 8공과 9공과 선지자 2015.11.05
3194 성도의 세 가지 생애/ 시편 1장 1절-3절/ 810306금야 선지자 2015.11.05
3193 성도의 소망/ 에베소서 1장 18절-19절/ 1978년 39공과 선지자 2015.11.05
3192 성도의 소망과 할 일/ 요한일서 3장 1절-3절/ 820204목새 선지자 2015.11.05
3191 성도의 언행심사는 주님이 다 책임 짐/ 로마서 14장 7절-9절/ 880320주후 선지자 2015.11.05
3190 성도의 인격/ 아가 4장 1절-16절/ 810114수새 선지자 2015.11.05
3189 성도의 인도자는 둘/ 갈라디아서 5장 16절-26절/ 861203수야 선지자 2015.11.05
3188 성도의 입장/ 요한계시록 2장 8절-11절/ 890809수후집회 선지자 2015.11.05
3187 성도의 입장/ 마태복음 10장 16절-20절/ 1976년 20 공과 선지자 2015.11.05
3186 성도의 재세 목적/ 고린도후서 5장 8절-10절/ 1981년 11 공과 선지자 2015.11.05
3185 성도의 재세의 목적/ 로마서 14장 7절-9절/ 810308주전 선지자 2015.11.05
3184 성도의 재세의 목적/ 고린도후서 5장 8절-10절/ 810308주후 선지자 2015.11.05
3183 성도의 재세의 목적과 방편/ 고린도후서 9장 6절-15절/ 810310화새 선지자 2015.11.05
3182 성도의 재세의 목적과 방편/ 마태복음 5장 21절-26절/ 810311수새 선지자 2015.11.05
3181 성도의 절대성/ 신명기 28장 1절-24절/ 800423수야 선지자 2015.11.05
3180 성도의 존귀/ 신명기 28장 10절/ 1976년 8 공과 선지자 2015.11.05
3179 성도의 존귀/ 성구 생략/ 890804 지권찰회 선지자 2015.11.05
3178 성도의 주님사랑/ 이사야 63장 7절-14절/ 860812화새 선지자 2015.11.05
» 성도의 지혜/ 누가복음 16장 10절/ 810412주후 선지자 2015.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