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소망과 할 일


선지자선교회 1982년 2월 4일 목새

 

본문 : 요일 3:1-3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원 전 목적 안에서 예정하시고 또 때가 되면 예정하신  그대로 우리를 목적 안에서 출생하게 하시고, 또 주님의 대속해 놓으신 이  공로를 입히시고, 우리 각자에게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기에 족한 환경을  만드셔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게 하십니다.

 그러기에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집니다. 생겨진 것도  하나님으로 인하여서 우리가 생겨졌습니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우리가 생겨지기  전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해서 작정한 그대로 생겨졌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해서 작정하시기 전에 하나님이 목적하신 그 목적 안에서 된 것입니다. 그러면  목적이 있기 전에는 당신의 영원 자존하신 온전한 뜻, 자존하신 온전한 뜻,  온전한 뜻이 있기 전에 자존하신 기쁨, 자존하신 기쁨 전에 자존하신 사랑,  자존하신 존재 전에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  이렇게 논리로 말하면 이런 순서로 되는데, 자존하신 하나님, 자존하신 사랑,  자존하신 기쁨, 자존하신 뜻은 존재케 된 시간도 시작의 시간도 없고 영원 전 한  하나님이십니다. 이러기에 우리의 구원은 자존하신 분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구원입니다. 이 구원이 차차 차차 나타나서 여기까지 이루어진 구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구원의 근원은 영원 자존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자존자,  자존의 사랑, 자존의 기쁨, 자존의 뜻, 자존이라 말하면 그 원인이 하나도 없는  홀로 스스로 계신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구원은 근원이 깊고 또 영원 전입니다. 이렇게 시발된 구원은  어떤 구원인가? 하나님과 같은 예수님의 신인양성일위, 예수님과 같은 우리, 또  우리와 같은 모든 피조물 이렇게 되는 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구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이요, 예수님의 신성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다시 증거할 것이 없지마는 예수님은 신성만이 아니고 인성을  가지셨습니다. 신성과 인성 양성일위이신 예수님이신데 예수님의 인성까지도  하나님과 꼭 같은 형상을 이루었습니다. "예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라" 말씀했습니다. 또 "하나님을 본 자가 없으나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뭣 때문에 이렇게 영원 전부터 시작해 가지고 우리를 구원하는  역사를 이루시는가? 하나님과 꼭 같은 예수님의 신인양성일위를 만드신 것같이  우리는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과 꼭 같은 자를 만드시기 위해서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우리 자체가 예수님과 꼭 같은 자  되는 이 역사, 이 역사를 이를 때에 우리는 없는 가운데서 혼자 살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는 데는 우리의 이웃이 많습니다. 접하여 있는 영물들도 있고,  사람들도 있고, 물건들도 있고, 일들도 있고, 이것들이 있는 이 속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들이 시간마다 바꾸어지고 날마다 갈아 듭니다. 우리가 접하는 영도  또 사람도 만물도 갈아 듭니다. 그러면 사람이 바꿔지지 않아도 껍데기만  바꿔지지 않지 그 사람 속에 측량 못할 기능의 부분이나 마음의 부분 그것은  자꾸 바꾸어 집니다.

 바꾸어지는 그 속에서 우리가 예수님과 꼭 같은 자가 되어지는 이 일을 하는  데에서 우리가 접하고 있는 모든 것도 또 우리와 같이 됩니다. 그러면 내가  접촉하고 있는 하나 예를 들어 내 사업이라고 하면 내 사업이 나와 같이 됩니다.

물론 그 사업은 사업이지마는 그 사업이 이 사람이 하는 사업은 이 사람과 그  사업이 같고 저 사람이 하는 사업은 저 사람과 그 사업이 같습니다.

 사기 협잡의 사람이 하는 그 사업은 그 사업이 모두 사기 협잡적입니다. 또  정직한 사람이 하는 사업은 그 사업은 모두 다 정직적입니다. 또 자비의 사람이  하는 사업은 그 사업이 하나 하나 살펴 보면 모두가 다 자비적 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환경 이것은 나와 같은 자를 만들게 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 모형이라 말이오, 모형. 우리는  예수님의 모형, 우리의 모든 사업은 우리의 모형, 모든 우리에게 관련된 모든  것들은 다 우리의 모형이 됩니다.

 그러면 하늘나라는 수많은 사람들이 갔지마는 하나님과 꼭 같습니다. 하나님과  꼭 같은 사람들, 또 하나님과 꼭 같은 물건들, 하나님과 꼭 같은 일들 이것으로  되어 있는 것이 하늘나라입니다.

 그러기에 계시록 21장 이하에 보면 거기에는 사람을 거리로 말했고, 사람을  문으로 말했고, 또 문을 사람을 말했고 하는 것은 그 종류는 각각 다르고 이름은  다르지마는 그 성질과 또 지식, 움직임, 조성하는 것은 같습니다.

 마치 우리 한 사람에게 수많은 지체가 붙어 있고 수많은 세포들이 붙어  있지마는 그것이 전부 내입니다. 이 손가락이 다 내요. 누가 말하기를 손가락을  거머쥐고 '이게 누고?' 하면 반드시 손가락 주인이 '내다.' 이렇게 할 것이오.

또 그 손가락 끝을 무엇으로 상우게 되면 '왜 나를 이렇게 상우느냐?' '너를 왜  상해? 이 발가락 끝을 이래 하는데.' '그게 내다.' 분명히 이럴 것입니다.

 그와 같이 하늘나라는 무엇으로 표현할 수 없어 한 사람에게 한 몸이 있고 그  한 몸에 여러 지체와 부분들이 있지마는 그것은 한 사람으로 되어 있는 것처럼  이런 조직체입니다. 무슨 자갈을 여러 수천 개를 한데 주모아 놓은 자갈 무더기  모양으로 이렇게 우리가 하나되는 것도 아니고 이런 저런 부속품을 한데다가  조립시켜 가지고 한 기계를 만든 것과 같은 그런 조직 단합이 아니고 우리 한  몸에 여러 지체와 세포가 있으나 그것이 모두 다 합해서 한 몸이 되고  희로애락이 같고 모든 소원이나 경영이 같습니다. 우리 한 몸에 속한 모든 지체  분자 세포들은 이와같이 하늘나라는 이런 나라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현실 현실마다 모든 것을 이 바꾸어 가지도록 다른 현실을  주는 것은 그것을 나 화시키라 그말이오. 그것을 나, 자기화시키라 말이오.

그것을 자기 화시키고 자기는 하나님이신 예수 님, 예수님 화시키고, 예수님이  하나님 화된 것같이 이렇게 우리는 예수님화되고 또 내가 예수님화된 것같이  내가 접한 모든 사물이 나 화된 그것이 나의 무대입니다. 그것이 영원무궁세계에  나의 소유입니다. 그것이 내가 사용할 내 분깃입니다.

 한 므나를 남긴 자에게는 한 고을 주고 열 므나 남긴 자에게는 열 고을을  준다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자기의 하늘나라의 활동 무대요, 활동 범위요,  자기가 사용할 수 있는 소유요, 기관들인 것입니다.

 이러기에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자기화시킨 것이 없는 사람은 무궁세계에  자기는 가만히 앉았어야 되지 아무데도 활동할래야 활동할 수가 없어. 그런고로  이 세상에서 퍼뜩퍼뜩 지내가는 현실이지마는 그저 순간순간으로 지나가는  찰나찰나로 지나가는 요 현실은 영원무궁의 불변을 이루어 나가고 있는 이  현실입니다.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할 영원한 것을 마련하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러기에 이 현실은 영원입니다. 이런 소망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 아들이라,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이렇게 이름을 붙여 주신 것은  우리 자체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서 하나님과 같은 자 된다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같이, 거룩하심같이, 깨끗하심같이 깨끗하라" 하나님과  같이 되어지는 이것이 첫째로 발표를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 새끼는  애비와 어미를 닮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인 이 중보자,  신인양성일위, 참 신은 아버지라면 인은 우리의 어머니와 같이 이리 돼서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났고 생겨졌고 그 안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인 예수님의 형상을 우리가 입고 또 우리의  형상대로의 모든 것을 조성해 가지고 무궁세계에 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모 저모로 우리의 소유를 만들기 위해서 하시는 것인데, 첫째가  하나님을 닳는 것, 하나님의 형상을 입는 것, 둘째는 그 분의 모든 권세를  우리가 받아서 그분의 각양 온전한, 거룩한, 깨끗한, 이 권세를 우리가  본능적으로 본질적으로 본성적으로 받는 이 면을 나타내서 아들이라, 또  그다음에는 그분의 모든 가진 것을 다 우리가 상속받는 이 면을 인해서 아들이라  이렇게 발표한 우리의 구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지금은 우리가 계약상으로 하나님의 자녀요, 또 우리가  교훈적으로, 우리가 활동하는 것이 스스로 제가 하는 것 같지마는 우리 속에  능동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움직여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나 이다음에 주님이 무궁세계에서 나타나실 그때는 그와 꼭 같은 자만  하늘나라 갑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주님과 같은 자로서 큰 자도 있고 작은  자도 있고 각각 그렇게 그와 같은 자만 갑니다.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안다."  그러기에 이 구원이 이루어지는 데는 그 방편이 무엇인가? 그 방편은 깨끗게  하는 것입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같이 자기를  깨끗게 한다" 했습니다.

 깨끗한 것은 그 자체 아닌 것이 붙어 있으면 그게 더러운 것이고 아닌 것이  없어지면 깨끗한 것입니다. 숯덩이, 숯 보면, 은이나 그런 것이, 금이나 그런  것이 더 가치 있고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숯에다가 은을 발랐든지 금을  발랐든지 했으면 그 숯은 깨끗하지 못합니다. 더러워졌습니다. 숯에 좋은 것이  붙어도 숯 그것 본질 본성 본색 본가치 그대로 있어야 깨끗한 것이지 좋은 게  붙어도 나쁜 게 붙어도 그건 더러워졌습니다.

 이루어지는 그 방편은 깨끗게 하는 이것이 그 방편이라, 깨끗한 것은 어떤 것을  표준하는가?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그대로의 것이 깨끗합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그대로의 것이 깨끗합니다.

 첫째 아담은 하나님이 만드신 그것에 자율 사욕 주관 그것이 거기에 붙어서  그만 더러워졌습니다. 그 더러운 것을 거기에다가 묻힌 자가 누군가?  배암입니다. 배암은 사탄입니다. 배암이 사탄을 통해서 그것을 묻혀서 사람이  그만 더러워졌습니다. 더러워졌기 때문에 본 지위에서 쫓겨 났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깨끗해지기를 어떻게 하면 깨끗해지는가? 첫째 아담으로 죽은  것이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구속됐습니다. 우리가 깨끗해지는 것은 예수님이  구속하신, 예수님의 사죄와 칭의와 하나님으로 더불어 신인 화목을 이룬 이 세  가지 구속 요대로의 사람이 되는 것이 깨끗한 사람입니다.

 사죄대로 된 사람, 칭의대로 된 사람, 하나님과 화친해서 된 사람, 성령같이 된  사람 진리같이 된 사람, 예수님의 피같이 된 사람, 요것이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요 깨끗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에게 이런 저런 현실을 자꾸 바꾸어 주시고,  현실을 바꾸어 주는데 현실에게 삼켜지는 자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지극히  큰 능력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중생된 것이 지극히 큰 성령으로 중생됐고, 진리로 중생됐고, 예수님의  대속으로 중생됐습니다. 우리 속에 이 세 가지 능력으로 우리의 생명이  살아났습니다.

 우리의 생명을 살리신 이 세 가지 능력이 우리의 생명을 통하여 우리의 중생된  영을 움직이고 중생된 영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과 몸을 움직이고 우리의 모든  사업과 소유들을 움직여서 화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구원 이루는  것인데,  그러기에 우리의 재미는 어데다가 붙일 것이냐? 우리의 재미가 깨끗해지는  이것이 우리의 재미가 돼야 됩니다. 우리 재미는 깨끗해지는 것이오. 또 우리의  소망은 무엇인가? 이 소망은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같이 되어지는 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예를 들면 장사하는 사람이, 장사하는 사람의 그 소망은 무엇입니까? 장사하는  사람의 소망은 돈벌이요, 돈이오. 그 사람들의 취미는 무엇입니까? 돈벌이 되는  취미입니다.

 그날 그 사람이 피곤한 줄 모르고 아주 기쁨이 충만합니다. 뭣? 사고 팔고,  사고 판 그 재미요. 사고 팔고 한 그 재미. 사고 파는 것 이것이 좋아서? 사는  데도 움직여야 되고 깎는 데도 움직여야 되고, 사람들은 몸뚱이 움직이기를  싫어하는 것이 사람인데 파는 데도 또 수족을 놀려야 되고 또 사는 데도 수족을  놀려야 되는데 그 재미 있을 게 뭐인가?  그 사람이 하루 종일 밥먹을 여가도 없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사고 팔고 하는 데 뭐 분주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짜증을  낼 건데 짜증내지 않고 기쁨이 충만합니다. 오늘 종일 쉴새도 없이 이렇게  활동하는데 이 사람이 뭐이 좋아서 재미가 있고 이렇게 기쁨이 충만한가? 왜  그렇게 재미 있겠습니까? 왜 그렇지요? 그 재미있게 하는 원인이 뭐이지요? 뭣  때문에 그리 재미가 있겠습니까? 그것 몰라? 그렇지. 여기 빵장사 여기 있구만.

빵은 참 잘 구워. 대 기술자야.

 하루종일 굽고 어쩌고 자꾸 이렇게 분주한데서 그날은 뭐 기쁨이 충만합니다.

'집사님, 오늘 종일 뭐 참 눈뜰 여가도 없다 하더니마는 이렇게 바쁜데 뭐이  좋소?' 좋은 것은 돈벌이 때문에 그렇다 말이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입어 내 자체가 하나님 화되고 모든 주위 환경을  내화시킨 것은 전부 내것입니다. 이것이 하늘나라 영원한 내것입니다. 이 소망을  우리가 깨달으면 이것이 이루어지는 데에는 자기를 깨끗게 하는 요것이 유일한  방편이 되기 때문에, 이 소망 없이 깨끗하면 그 날은 기쁘지 않고 짜증이  납니다.

 한 상점에서 보니까 한 사람은 더 바쁘고 분주한데 기쁨이 있어 충만한데 한  사람은 그만 한 열두시 되니까 시투른해 가지고 물건 사러 오는 손님들 팔러 온  손님들이 기분 나빠서 딴데로 가져갈 만치 기분 나쁘게 합니다. 뭐 시투른하게  이래 가지고, 나중에 두 시 세 시 되니까 짜증을 내고 안된 성질을 내고 이래  가지고 오는 손님들도 다 싫어하고 그 기뻐하는 사람 그 사람은 걱정을 하고  근심을 합니다. 왜? 암만 분주하게 해 봤자 제 소망은 없다 그말이오. 되기만  됐지 뭐 그 돈벌이가 제 돈벌이기 아니기 때문에 그 품꾼이라. 품꾼이니까 그  사람은 정한 품이 있으니까 기쁨이 없다 말이오.

 그 주인이 '야, 몇 할수로 이익의 배당으로 주마' 하니까 그 사람이 그만  그때부터 기쁨이 하루종일, 많이 팔리고 분주할수록 좋아할 거라 말이오.

그러니까 요새 우리 나라에도 사업을 경영하는 사업주들이 그런 방편을 씁니다.

'이제 내가 사장이라고 뭐 직책뿐이지 수입은 꼭 같이 자기 활동한 대로  배당하자. 같이 살고 같이 굶고, 같이 부자되고 가난해지자. 성패를 같이  누리자.' 이러니까 요런 방편을 쓰는 사업가들은 그뭐 말단에 있는 직원까지도  모두 기뻐서 야단이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 모양으로 우리가 이 소망, 우리의 소망은 뭐이냐? 주님같이 되어지는 것,  모든 또 나와 관련된 이 모든 것을 다 하나님과 같이 된 나와 같이 되도록 하는  것, 이 소망을 우리가 단단히 깨달으면 이 소망을 이루는 방편인 깨끗게 하는  이것은 취미가 붙고 재미가 있고 피곤한 줄 모르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선을 행하다 낙심치 말라 피곤치 아니하면 때가 되매 거두리라"  그렇게 말했어, 피곤치 아니하면 때가 되매 거두리라. 왜 피곤치 아니한가? 이  소망이 피곤치 않게 만드는 것입니다. 소망이.

 그 장사하는 주인도 주인은 소망이 들어서 그를 기쁘게 만들었지마는 품꾼은  분주하나 안 분주하나 수입은 같기 때문에 주인이 기를 때마다 이 삯꾼은  시투른하니까 주인이 기쁠 때는 반드시 품꾼 직원은 간식을 주든지 무슨 용돈을  주든지 뭐 좀 달개야 된다 그거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는 소망이 없기 때문에  그래.

 우리는 이 소망을 인해서 우리는 그 방편이 깨끗게 하는 일을 해야 되고,  깨끗게 하는 이 일을 하는 이것이 피곤치 아니한 그것이 뭐이냐? 소망이 있는 것  없는 것 증거라 말이오.

 그런고로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게 하느니라" 깨끗한 것은 그것이 본질 본성 본체 그대로 있고 그것이  딴것이 붙어 있지 않아야 돼요. 딴것이 붙여 있으면 안돼요. '그 사람 계산이  깨끗하더라' 그말은 그 사람 계산에 들 것이 다 들어야 깨끗하고 또 외에 돈이  더 붙어 있어도 또 깨끗지 않아 그 보니까 그 정확하다 말이오. 그거는 계산이  깨끗하다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 사람 글씨가 깨끗하더라' 그말은 획이 없을 획이 붙어도 안 되고 있을 획이  없어도 안 되고, 길어도 안 되고 짧아도 안 되고 그것이 꼭 정상적으로 됐을 때  '그 사람 글씨가 깨끗하다' 이런 것이라 말이오. 숯은 검고 또 불이 잘 댕겨야  그게 깨끗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깨끗게 하는 것이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방편인데 또 깨끗게  하는 그 방편을 며칠 전에 말했습니다. 깨끗게 하는 방편이 무엇인가? 자기가  무엇이든지 하나 결심을 하라 그말이오. '내가 요것 하나 해 보겠다.'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뜻을 정하는 것, 작정하는 것,  어떤 사람은 다 작정해 가지고 달성을 했고 한 가지만 지금 미완성인 것이 있는  그 사람은 그 한 가지 미완성의 그것을 '기어코라도 내가 이루겠다.' 무슨 도덕  면이나 또 물질면이나 윤리면이나 사회면이나 자기의 의무나 무슨 책임면이나  어떤 면이든지 자기가 하나를 붙들고 '내가 요것이 지금' 하나님이 요것 없기를  원하고 '요것을 없애라' 원하시는 것이든지, 하나님이 '네가 요것을 암만  어려워도 마련해라' 하는 것이든지 무엇이든지 하나 작정한 그것을 하는 사람도  있겠고,  어떤 사람은 너무 하나님이 하지 맡라는 것도 숫자가 많고 하라는 것도 숫자가  많으니까 뭘 해야 될지, 아이들 말로 엉망이라. 이래 놓으니까 뭐 엄두도 내지를  못하겠어, 너무 안된 게 많으니까. 잘못된 것도 많고 해야 될 것도 많으니까.

 그런 사람은 낙망하지 말고,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러니까 그 총중에 자기가 하기 쉬운 것 할 수 있는 것 그것  하나를 찾아 잡아요. '내가 딴거는 못 해도 요것 하나야 하겠다. 요것 하나만  하는 것도 주님이 기뻐하셔서 요것만 가지고 하나 하면 다 된다 하더라.' 그것  하나를 붙들고 그것을 지켜 나갑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이니까. 할 수  있는데 그것을 잊어버리지만 않고 마음만 가지면 뭐 힘 안 들고 합니다.

 그렇게 그 일을 실행을 해서 하루 이틀 계속하다가 그만 잊어버려 가지고  중단됐으면 새로 또 계속하십시오, 낙망하지 말고. 계속하고, 이래 가지고 그것  하나가 계속을 하려고 그것 하나를 표준해 가지고 그것을 꺾지 아니하고, 그것이  변동되지 않고, 중단되지 아니하고 그걸 하나 하려고 하니까 제법 처음에는 힘이  안 들더니마는 힘이 듭니다. 그것 하나 하려 하니까 하지 못하게 하는 친구가  오고, 하지 못하게 하는 뜻밖에 병이 생기고, 뭐 이런 일들이 생깁니다. 그래도  그것 하나를 계속해 해 나갑니다.

 이렇게 해 나가다가 보니까 '야, 이것 하나 하는 것이 참 힘든다.' 그런  가운데서 하나님도 알고, 자기도 알고, 이웃도 알고, 좋은 것도 알고, 원수도  알고, 해하는 것도 알고, 유익되게 하는 것도 알고, 이제 하나님의 교훈도 알고,  인간들의 말에 찌적거려 쌓은 그까짓 게 아무 가치 없다는 것도 알게 되고,  이렇게 이것 하나 하려고 하다 보니까 나중에 가서 그것 하나 하려고 작정하고  하니까 차차 차차 어려워지는 게 자꾸 옵니다. 어려워지는, 그것 하나 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자꾸 환경에 몰아옵니다. 그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그 한  줄기를 통해서 나를 살살 살려 가지고 일을 되도록 만들려 하는 것이라 그거요.

 이래 하다 보니까 나중에 가서는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같이 자기를 깨끗게 하느니라" 이것 하나 하다 보니까 자기도 모르게  자기는 깨끗함이 됐습니다. 이 면도 깨끗하고 저 면도 깨끗하고 모든 면이  깨끗함이 됐다 말이오.

 그것이 마치 지난밤에, 수도관이 얼었는데 물이 녹아서, 저 안에는 따신 물이  있으니까. 많은 물인데 따신 안 언 물이 있으니까 그게 조그매씩 솔솔 나오니까,  그 나오니까 그만 솔솔 녹아 가지고 조금씩 조금씩 한 방울 떨어지는 것이  방울이 빨리 떨어져 그다음에는 쫄쫄 나와 얼마 안가서 그만 수도관이 환하게  틔여집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조그만한 것 요것 하나 하려고 하는 요것이 뭐이냐?  하나님하고 나하고 실낱끝같이 붙은 그거라, 실낱끝 같이 붙은 것.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하나 그 작은 것 그것 하나 하나님의 뜻에 그걸 하지 말아라 하는  게 그게 하나님의 뜻인데 그것 하나를 내가 하려 할 때에 하나님과 나와의  실낱끝 같은 연줄이 돼 있다가 그것을 자꾸 계속해 하다 보니까 수도관 녹듯이  녹고 녹고 해서 하나님과 나와 가리워진 것이 차차차 틔워집니다.

 저수지에 물과 우리 부엌과 가리워져 있는 그 얼음이 그게 차차 차차 녹아  빠진다 그말이오. 녹아서 없어져. 이것 모양으로 하나님과 나와의 가리워진 것이  이것이 차차 헐어지고 이러니까 구멍이 커지니까 하나님의 것이 더 많이 나오고,  제가 있던 그 위천에 못 물 터지듯이. 모래 구멍이 나와 가지고 물이 조그매  솔솔솔 나왔는데 자꾸 모래가 헐어지니까 물이 나오지 못하게 강하게 막아 놓은  못둑이 확 헐어져 가지고 다 나와 버렸다 말이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무한함이 내게 나오는데 무한함이 나오는 것을 막은  것이 뭐이냐? 막은 것이 내가 막았고 또 모든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이  막았는데 요것 하나를 실행하다 보니까 막힌 그것이 차차 차차 모래둑 모양으로  터져 자빠져 가지고 모든 것이 다 터지고 하나님과 나 사이가 확 그래서  하나님의 모든 것이 내게 싹 다 온다 그말이오. 이것이 우리의 구원 방편입니다.

 이러기에 우리의 소망이 무엇이냐?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 또 그 방편이  무엇이냐? 깨끗해지는 것.

 깨끗해지는 데에 쉽게 깨끗해지게 할 수 있는 그 요령의 참 비밀의 그 방편이  무엇이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이 요거는 하지 마라  요거는 하라 하는 그 하나님의 틀림없는 하나님의 뜻을, 작은 뜻이라도 하나님의  뜻 하나를 붙들었으면 그것 하나를 놓지 않고 그것 하나라도 실행을 해 보라  말이오.

 그것 하나라도 실행을 해서, 그러면 실행하면, 실행하니 그게 뭐입니까?  실행하니까 그게 뭐입니까? 그 실낱끝 같은 것이지마는 그게 믿음이라 말이오.

그만 그 뽀스래기 믿음이라 하겠습니다. 뽀스래기 믿음. 뽀스래기 믿음이지마는  그 믿음에 하나님의 능력이 오고 오고 오고 하니까 이것이 나중에 커 가지고 참  우주와 영계를 점령하는 이런 믿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 면으로 가르치고 조 면으로 가르치지마는 진리는 하나라. 그것이  도가 통해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여러분들이 또 작정한 그것을 놓지 마십시오.

또 새롭게 하십시오. 그러면 이제 점점 자기 생활이 깨끗해지고, 자기 사상이  깨끗해지고, 사람이 깨끗해지고, 방편이 깨끗해지고, 지식이 깨끗해지고 모든  것이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3196 성도의 생활법/ 마태복음 24장 1절-2절/ 800504주전 선지자 2015.11.05
3195 성도의 성공/ 누가복음 5장 4절-11절/ 1979년 8공과 9공과 선지자 2015.11.05
3194 성도의 세 가지 생애/ 시편 1장 1절-3절/ 810306금야 선지자 2015.11.05
3193 성도의 소망/ 에베소서 1장 18절-19절/ 1978년 39공과 선지자 2015.11.05
» 성도의 소망과 할 일/ 요한일서 3장 1절-3절/ 820204목새 선지자 2015.11.05
3191 성도의 언행심사는 주님이 다 책임 짐/ 로마서 14장 7절-9절/ 880320주후 선지자 2015.11.05
3190 성도의 인격/ 아가 4장 1절-16절/ 810114수새 선지자 2015.11.05
3189 성도의 인도자는 둘/ 갈라디아서 5장 16절-26절/ 861203수야 선지자 2015.11.05
3188 성도의 입장/ 요한계시록 2장 8절-11절/ 890809수후집회 선지자 2015.11.05
3187 성도의 입장/ 마태복음 10장 16절-20절/ 1976년 20 공과 선지자 2015.11.05
3186 성도의 재세 목적/ 고린도후서 5장 8절-10절/ 1981년 11 공과 선지자 2015.11.05
3185 성도의 재세의 목적/ 로마서 14장 7절-9절/ 810308주전 선지자 2015.11.05
3184 성도의 재세의 목적/ 고린도후서 5장 8절-10절/ 810308주후 선지자 2015.11.05
3183 성도의 재세의 목적과 방편/ 고린도후서 9장 6절-15절/ 810310화새 선지자 2015.11.05
3182 성도의 재세의 목적과 방편/ 마태복음 5장 21절-26절/ 810311수새 선지자 2015.11.05
3181 성도의 절대성/ 신명기 28장 1절-24절/ 800423수야 선지자 2015.11.05
3180 성도의 존귀/ 신명기 28장 10절/ 1976년 8 공과 선지자 2015.11.05
3179 성도의 존귀/ 성구 생략/ 890804 지권찰회 선지자 2015.11.05
3178 성도의 주님사랑/ 이사야 63장 7절-14절/ 860812화새 선지자 2015.11.05
3177 성도의 지혜/ 누가복음 16장 10절/ 810412주후 선지자 2015.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