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생활법

 

1980. 5. 4. 주전.

 

본문 : 마태복음 24장 1절-2절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고린도전서 3장 16절-17절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이스라엘은 육체의 이스라엘과 신령한 이스라엘 둘로 구별되어 있습니다.

구약교회를 육체의 이스라엘이라 하고 신약교회를 신령한 이스라엘이라  말씀합니다. 구약교회의 종말에 예수님이 오셔 가지고 구약교회가 멸망하는  원인을 24장에 말씀하시고 또 주의를 주셨습니다. 이 교훈을 삼가 들은 사람들은  구약교회에서 신약교회로 들어와 구원을 이루었습니다.

 구약교회가 멸망하게 되는 원인을 여러 가지를 말씀하는 중에 그 중에도 제일  원인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힌 것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알지 못하느뇨?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그 사람은 하나님이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말씀하신 이 말씀대로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힌 까닭에 구약교회가  마지막 실패를 당한 것입니다. 구약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힌 그 값으로  인류 역사에 가장 비참함을 당한 것이 구약교회들입니다.

 이렇게 구약교회의 전 멸망의 원인이 성전이 더러워져서 하나님이 멸망을  시키시는데 그때에 이스라엘 백성들로서는 멸망받을 성전을 멸망받을 그 원인은  하나도 알지못하고 껍데기만 번들번들하니까 껍데기 성전만 보고 모든 사람들은  존귀히 여기고 성전 자랑을 했던 것입니다. 이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성전  껍데기만 보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그 눈먼 소경같은 그 제자들의 마음의 눈을  예수님이 책망하시면서 "이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에도 첩 놓이지 아니하고  멸망을 받을 뿐만 아니라 이 성전을 더럽힌 그 값으로 이스라엘 전부가 멸망할  터인데 너희가 이것을 보지 못하느냐?"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예루살렘 성전은 돌 위에 돌 하나도 첩 놓이지 안했고 다 파괴를 당했고  이스라엘 백성도 역사에 없는 비참함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신약교회에 가르쳐 주신 것은 신약교회의 말년이 되는 예수님의 재림  때도 그때와 같이 눈에 보이는 껍데기 성전의 아름답고 웅장한 이것으로 성전의  가치로 삼고 참 성전의 가치가 되는 그 내부는 알지 못하는 신약교회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경고시켜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우리 개인도, 가정도, 우리의 단체도 다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  밖의 것은 다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으니 하나는 세상이요, 하나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세상과 성전은 아주 다릅니다. 세상은 악령이 그 안에 왕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 세상이요 성전은 하나님이 그 안에 주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이 아니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성전이  성전되어 있으면 성전되어 있는 이거 하나로 인해서 이스라엘 전민족은  평안합니다. 아무도 침략하지 못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이 단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올바른 변질되지 아니한  올바른 성전이 되어있으면 이 단체는 해할 자가 없습니다. 해하면 그것이  깨어지고 해는 절대로 받지를 아니합니다. 가정도 그러합니다. 그 가정이  하나님의 성전이 바로 되어있다고 하면 그 가정은 가면 갈수록 영광스럽고  존귀해지지 그 가정을 해할 세력은 땅위에도 없고 하늘에도 없고 땅아래에도  없습니다. 개인도 그러합니다. 이스라엘이 국교 운동을 많이 했고 문화 운동을  많이 해서 앞섰고 모든 경제 운동들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면은 조금씩 발전되어 나갔지마는 하나님의 성전은 점점  더러워졌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더러워지니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역사가  끝났고 도리어 하나님께서 그것을 멸하시려고 선언하신 그대로 멸하시기 때문에  성전을 더럽힌 이스라엘은 어느 시대든지 비참해졌습니다. 성전을 깨끗하게 한  그 이스라엘은 어느 시대 어느 정권자의 때든지 성전을 깨끗하게 한 그 때에는  그 민족 그 나라는 부강해졌고 형통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거울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거울을 보아 자기 얼굴을 아는 것처럼 그들에게 하나님이  섭리하신 그것을 보아 우리도 그와 같습니다. 우리가 무엇보다도 성전이 바로  되도록 성전을 바로 구비할려고 해서 성전 구비로 성전이 온전해 진다고 하면 그  개인이든지 가정이든지 단체든지 그것은 어떤 피조물도 해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해할 수도 없고 결과적으로는 모든 피조물이나 창조주가 깨끗한 그 성전을  위해서 봉사하고 이용되는 결과를 맺게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을 보아 신약교회의 말세에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이 종말,  최종말인 이때에 우리의 힘쓸 것은 성전 건축입니다. 성전을 바로 건축해야  되겠고 성전 청결을 하여야 합니다. 성전 청결하는 것이 국제 운동보다 국교  운동보다 안보 운동보다 민족 운동보다 경제성장 운동보다 모든 문화 운동보다  이는 비교할 수 없는 지름길입니다. 아주 열세입니다. 이만 바로 되면 모든 것은  저절로 바로 되게 마련인 것입니다. 이 성전이 깨끗해지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모든 것이 형통하고 청청하고 해하는 자는 해할려고 하는 그것이 도리어  깨끗한 성전에게는 유익이 되고 해할려고 하는 것은 자기에게로 돌아가서 스스로  함정을 파고 스스로 그물을 친 것과 같이 자멸의 결과를 맺게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도 성전된 우리를 해치 아니하고 환영하고  협조하므로 그들이 복받기도 원해야 하겠고 그보다도 우리 자신들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깨닫고 우리 안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깨닫고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개인이든지 가정이든지 단체든지 나라든지 세계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힌 것은 모조리 멸망입니다. 시기상조지 결과적으로는 전멸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우리들이 하나님의 성전 청결에 은혜를 받아서 깨끗한 성전, 본질, 본성  그대로 있는 구비한 성전이 되어지도록 노력하는 것이 인생 행복의 구원의  첩경입니다. 지름길로 질러가는 그런 걸음입니다.

 그러므로 첫째 우리가 생각할 것이 우리는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이다  하는 것을 직장에서도 생각할 것이고 사회에서도 생각할 것이고 자기가 어느  무대에 활동을 하든지 이것을 생각해야 할것입니다. 가정과 가정에 대해서,  '우리 가정은 세상이 아니다. 우리 가정은 주의 피로 구속받는 하나님의 성전인  가정이다. 가정 성전이다.' 어디가 있든지 '나는 세상의 사람이 아니다. 주의  구속을 받은 하나님의 성전인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우리 가정은  하나님의 성전이다. 우리 단체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하는 것을 명심하고  잊어버리지 아니해야 먼저 하나님의 성전이 더럽혀지지 안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잊어버리면 벌써 전체적으로 더러워졌습니다. 그 가정이 세상이 아니요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잊어버렸으면 그 가정은 벌써 가정적으로는  더러워졌습니다. 그 상태로 나가는 그 시간이 한시간이든지, 십 년이든지, 몇십  년이든지 그 생애는 전멸된 것입니다. 산 것은 하나도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가정이든지, 개인이든지 단체든지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라.

세상이 아니라 하는 이것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도 이를 생각하고 행동해야  되고 소원하는 것도 이를 생각하고 소원해야 되고, 경영하는것도, 비판하는것도,  평가하는 것도 이것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성전으로 알고 성전으로 생각할 것,  성전으로 소원할 것, 성전으로 경영할 것, 성전으로 행동으로 할 것, 성전으로  처세해야 할 것을 해야지 이것을 떠나서 많은 세상 사람들이 살고 있으니까  '우리 가정도 세상 가정이나 같은 가정이라' 했으면 벌써 그 성전은 전부  더러워졌습니다.

 '우리 단체는 세상에 있는 어떤 단체와 같은 단체중의 한 단체라' 했으면 그  단체의 이름은 교회일지라도 이것은 벌써 더러워졌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은  추호도 없습니다. 개인도 자기는 세상 사람중에 한 사람인 줄 알았으면 벌써  개인 성전은 더러워졌습니다. 자기는 모든 세상 사람과 다른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먼저 깨닫고 하나님이 자기 안에 계시는 것을 그 다음에 깨닫고 행동해야  되고 여러 가지로 처세해야 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적으로 삼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성전 바깥  마당이라는 제일 낮은 일단이 있고 그 다음에는 성소라는 제 이단이 있고 그  다음에는 지성소라고 하는 제 삼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는  언제든지 삼단 생활을 해야됩니다. 삼단 생활을 해야되고 삼단 인물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둘째로 갖출 것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는 것을 인식하고 이 사람으로 사는 것이 첫째 깨끗이 하는  것이요, 둘째로 깨끗하게 구비하는 것은 우리는 삼단 성전이라. 삼단 생활을  해야되고 삼단 인간성을 가져야 된다 하는 이것을 기억하고 행동해야 됩니다.

 일단은 모든 세상 사람으로 더불어 하나님의 법칙대로 서로 관계를 가지고  인인관계를 가지고 상호협조의 생활을 하는 것이 이것이 우리로서는 초단입니다.

제일 외부입니다. 초단입니다. 그 다음에는 세상 사람과는 가질수 없는 성도와  성도끼리 교제하는 성도의 교통하는 것과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교통이라는  말은 사귈 교(交)자 통할 통(通)자입니다. 이는 성도가 성도로 더불어 관계를  가지는 이 관계는 세상과의 관계를 가지는 관계와 다릅니다. 성도와 성도가 서로  관계를 가지는 것도 성경 법칙대로 관계를 가져야 되고 세상 사람과 나와의  관계를 가지는 것도 성경 법칙대로 살지마는 구별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성소안에는 지성소가 있습니다. 지성소가 최고의 높은 제일 높은  삼단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자기와의 사귐,  하나님과 자기와의 맺는 언약, 하나님을 자기 안에 모시는 그 위치, 여기에는  아무리 위대한 성도의 사귐이라도 이 안에는 들어오면 안됩니다. 이 안에는  용납되어서는 안됩니다. 자기의 제일 중심인 그 보좌, 자기의 제일 높은 그  위치의 보좌. 여기에는 하나님만이 모셔야 합니다. 이는 아무리 성도와 성도끼리  어떠한 그 성경대로의 결탁이 있고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협동을 하고 어떤  역사를 한다고 해도 그 역사를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끼워놓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과 자기와의 그 관계는 그는 언제든지 그대로 보존하고 유지해서 내  마음을 줘도 제일 높은, 하나님을 모신 그 마음은 아무 것에도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환영하고 좋아해도 내가 하나님을 좋아하고 환영하는 그  위치에는 어떤 성자라도 용납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고 부러워하고  사모하고 존대한다 할지라도 그를 내가 하나님을 존대하고 사모하고 앙망하고  섬기는 그 위치에 올려놓아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인 그 위치가 내  마음 안에도 있고 내 행동 안에도 있고 내 인격 안에도 있고 거기에는 아무것도  용납지 않은 이것이 밀실이요, 골방입니다. 이것이 지성소입니다. 자기에게 자기  생활에도 지성소가 있고 자기 인격에도 지성소가 있어. 지성소에는 그 성소가  용납지를 않습니다.

 성도가 성도와의 서로 관계를 가지고 협동을 하고 어떤 그 존경이나 사모나  따르는 것이나 이렇게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인 그 위치를 내어  주어서는 안됩니다. 거기에 용납을 시키면 안됩니다. 하나님을 자기의 인격의  제일 높은 자리, 자기의 마음의 제일 높은 자리, 자기의 생활, 자기의 행위의  제일 최고의 그 위치, 거기에는 하나님으로 더불어 의논하고 하나님을 모셔야  되고 성도의 관계가 거기에 들어와서는 안되고 성도와 성도끼리 하는 이 복음  운동, 성도의 서로 교통, 여기에는 아무리 필요하고 요긴하고 친근한 세상이라도  거기에 구별하지 아니하고 용납해서는 안됩니다.

 교회 운동에는 세상을 용납지 안해야 됩니다. 성도끼리 하는 성도의 교통,  여기에는 세상을 용납지 아니해야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을 바벨론에서  돌아와가지고 지을 때에 사마리아에 있는 사람들이 같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그들이 성전 짓는 일을 같이 하자고 할 때에 함께 했으면 문제가  없었는데 같이 하지 아니하므로 14년간을 성전을 짓지 못하고 중단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성전을 같이 지었으면 그들은 전멸입니다. 다시 포로되어 가야  됩니다. 14년을 머물렀지마는 기어코 거기에서 성전은 지었고 연단은 받았고  하나님은 그 성전으로 영광을 받으셨다고 성경에 발표했고 이스라엘은 그  성전으로 말미암아 모든 그 위험이 다 방어되었고 구원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전 안에는 이방인의 마당과 성소와 지성소가 있습니다. 성전  밖마당이라고 성경에 말씀했습니다. 이방인의 마당이라고 했습니다. 성전  밖마당과 또 성소와 밖마당 안에 성소가 있고 성소 안에 지성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된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 삼 단적인 생활을 해야 되고, 삼 단적인  인격을 가져야 되고, 삼 단적인 모든 비판과 평가를 가져서 이 범위를 구별해야  합니다. 밖마당과 성소를 타지 못합니다. 그러면 망합니다. 성소와 지성소를  한테 통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망합니다. 세상에서 잘못 생각하면 그러면  기독자가 삼중생활을 한단 말이냐? 이중, 삼중은 다 나쁜 것이요 하나로 살아야  되는데 그렇게 그 이중, 삼중의 표리가 다르게 산다는 말이냐? 오해할 것입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기독자들이 이방인에 대해서도 성경의 법도대로 살고  성신의 감화대로 살고 양심대로 살고 사랑으로 삽니다. 신자 끼로도 그러합니다.

하나님께 대해서도 그러합니다.

 그러나 이는 일단, 이단, 삼단으로 내가 이 세상으로 더불어 모든 관계를 맺는  그 관계는 세상으로 더불어 내가 관계를 맺었다고 해서 그 관계가 성도와  성도끼리의 관계 속에 용납은 못합니다. 그 사람이 신자가 되어 가지고서 믿고  난 다음에 성도와 성도끼리의 이 관계가 맺어져야 됩니다. 그러기에 사도신경에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라고 말씀했습니다. 그 다음에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죄사함 속에 성도와 성도의 교통은 있는 것입니다.

죄사함 밖에 것과 성도와 성도의 교통은 없습니다.

 이러기에 결혼도 불신자와 믿는 사람은 결혼 못합니다. 불신자와 믿는 사람이  얼마든지 동거동행 할 수 있으나 그것은 성도와 성도끼리만 동거동행 할수 있는  그 범위내에는 들어오지 못합니다. 요 범위를 구별해야 됩니다. 또 성도와  성도끼리의 영감대로 온갖 교통을 하지마는 그 교통이, 교통이나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되는 신인관계나 마찬가지로 생각하고서 혼합하면 안됩니다. 성전  밖마당과 성소와 지성소를 이렇게 구별되어 있는 것처럼 우리를 삼단적인 생활,  삼단적인 행동, 삼단적인 교제, 삼단적인 경영, 삼단적인 인물, 삼단적인 인격을  갖추어 가져야 둘째로 성전을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 성막 공부를 하는 일이 옛날에는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기 때문에  교회들이 혼탁해졌습니다. 이래서 이방인의 마당과 성소가 담이 헐어져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면으로 성전이 더러워졌습니다. 또 성도와 하나님과의 이 차별이  없이 성소와 지성소가 담이 무너져서 휘장이 찢어져서 하나가 된 이것이 성전이  더러워진 것입니다. 이래서 이것 때문에 예수님 재림 때에는 자기를 가리켜서  '내가 예수라' '내가 그리스도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는 그런  것들이 많이 날 것을 말씀했습니다.

 마산에서 어떤 사람이 제가 살아난 예수라고 하면서 아주 그 긴 그 문서를 아주  돈이 많이 들겠는데 그 출판 문서를 매월 저희에게 보내더마는 요새는 뭐 안  옵니다. 그 사람이 어디 구속을 당했는지 그 사람이 지금 이제 망쳐졌는지  모르지마는 자기가 예수라고 하면서 그렇게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성자, 성녀, 위대한 지도자, 목회자라 할지라도 그와의  자기와의 교통과 하나님과 자기와의 교통을 혼합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과  자기와의 교통은 이 지성소에는 그 성자와 성녀와 자기의 유일한 지도자가  거기에는 들어오지 못합니다. 언제든지 하나님만이 자기에게 절대성을 가진  지도자입니다. 그의 지도를 찾도록 하기에 협조하는 지도자지 지도자의 지도가  최종적인 지도가 아닙니다. 최고적인 지도자가 아닙니다. 유일적인 지도자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방인이 세상과 이방인의 마당과 구별해서 세상 속에 성전 밖마당이  있고, 성전 밖마당 속에 성소가 있고, 성소 속에 지성소가 있는 이 네 단계로  되어 있는데 하나는 세상이기 때문에 세상은 떼어놓고 하나님의 성전인 기독자는  이 삼단의 성전으로 되어있는 이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그러기에 세상과  세상과의 관계가 어떻게 크다해도 성도와 성도의 관계에 비하지 못합니다. 같이  평가하면 안됩니다. 비하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갈라디아서 7절이하에 보면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하되 믿는 사람들에게 더욱 할지니라"는 "더욱"이라는  말씀을 붙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회가, 세상과 바깥마당, 성전 다 구별해야 되고 성전의 밖마당과  성소를 구별해야 되고 성소와 지성소를 구별해야 됩니다. 지성소는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성소는 제사장들이 있는 곳입니다. 성전 밖마당은 일반 신자,  이방인들이 출입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인간은 아무리 존경은  해도 숭배는 못합니다. 숭배는 지성소에 속한 것입니다. 아무리 인간의 지도가  발라서 그 지도에 따르지마는 하나님 버리고는 못 따릅니다. 인간의 지도와  하나님의 지도가 둘이 나타날때에는 인간의 그 지도를 버리고 하나님의 지도를  따라야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성경은 사람들에게 배워서 성경이 말하는데 까지는 사람들의  지도를 받지마는 '성경이 이렇게 하지 않느냐?' 받지마는 그 이상은 "너희 안에  기름부음이 인도하는 그 인도를 받아야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배울 것이나 지도받을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지도를 못합니다. 이  지도는 하나님이 직접 지도를 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영감과 진리를 구별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성전 안에 놋쇠로, 만든 주석으로 만든 제단이 있었습니다. 이  제단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완성을 했는데 대속으로 완성한 이 구속을 우리가  입은 신앙생활을 할 때에 이 생활에 사용하는 이 제단을 가져야 됩니다. 이  제단에서는 죄와 허물을 하나님 앞에 용서받는 이 제단이요, 또 하나님과 서로  멀어진 그것을 다시 고쳐서 화합하는 이 제단이요, 하나님 앞에 자기를 바쳐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이 이 제단이요, 자기의 모든 소유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이것이 제단입니다. 이 제단이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  안에는 우리 마음 안에는, 우리 생활 안에는, 우리 인격 안에는, 우리 속성,  사상 안에는 하나님의 이 제단이 있어야 됩니다.

 제단이 있어야 되는 것은 성전된 우리에게는 항상 하나님 앞에 내가 모르고  실수한 사소한 이런 것도 하나님 앞에 고해가지고 하나님 앞에 용서받는 일이  있어야 됩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사람으로 있는 잘못이든지, 물질로 인한  잘못이든지, 사상으로 인한 잘못이든지, 행동으로 인한 잘못이든지, 하나님의  법도에 삐뚤어진 그것을 찾아 가지고 하나님 앞에 항상 용서를 구하는 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저 성전이 더러워지는 거 아닙니다.

 아무리 그 사람이 잘믿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기가 하나님 앞에 실수한 것이  없는가? 그것을 찾아서 하나님 앞에 용서를 받는 것. 자기가 현재에 하나님 앞에  뚜렷이 잘못된 죄가 없는가? 이것을 찾아서 하나님 앞에 용서받는 것. 내가  하나님을 멀리한 것이 없는가? 하는 이것을 찾아서 하나님과 가까이 할려고 하는  노력하는 것.

 내가 하나님의 구속으로서 하나님의 것이 된 것인데 혹 내가 하나님의 것인  것을 잊어버리고 망령되게 나는 내것이라고 생각해서 사는 이런 일이 없었는가?  자기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다시 인식해서 하는 이것이 있어야  되고 자기의 모든 소유 이것도 이것을 내것이라고 혹 가지지 않았는가?  내것이니까 내 마음대로 한다는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았는가? 이것이  하나님의 구속으로 하나님의 것이니까 내가 보관하고 있는 것이니 암만 내가 번  돈이라도 그것이 구속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을 보관하고 있으니 이것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인 것을 깨닫고 이것을 사용 할 때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여야 되지 이것을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가 없다는 자기 소유물도  하나님께 바쳐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할 것.

 하나님이 옷 사입으라고 하면 옷 사입고, 떡 사먹으라면 떡 사먹고, 자녀  교육을 시키라면 교육비로 교육을 시키고, 여행가라면 여비로 삼고, 또 가난한  사람 구제하라면 구제하고, 예배당 지을 때는 예배당 연보를 하고, 또 이  주일학생들을 이렇게 인도하는데에 그 차비가 이렇게 도우라면 돕고, 어쨌든지  성경말씀대로 자기 양심이 깨달아지는대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하나님의  것인 것을 알아 하나님의 뜻대로 이것을 사용할려고 '아, 내가 이 떡 한 개는  사먹으면 안 되는가? 아냐. 이것은 너무 사치야. 하나님이 사 먹는 것을 금한다.

아, 이것은 사먹을 수가 있다. 아, 오늘은 내가 지금 아주 불고기를 한번 해  먹어야 되겠는데, 불고기 해먹는 것이 어떠나? 아, 하나님이 해 먹으라고  했는데, 해 먹을 수 있다. 해 먹어야 되겠다. 아니다. 오늘 이 불고기 해먹는 것  틀렸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겠다.' 그 못 해먹는다 말이야. 예를 들면, 이렇게  해서 이것을 하는 것을 제단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으로 더럽히지 안하는 것은 우리 속에 이것이 있어야  됩니다. 그 주석으로 만든 제단이 우리 속에 있어야 됩니다. 우리가 성경에  가르치지마는 성경에 가르친 그것만으로는 잘 모르니까 하나님이 그 모양을  만들어가지고서, 형상을 만들어 가지고서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 성전이요  성막입니다. 이것은 구약되는 어린, 영적으로 아주 어린 때이기 때문에 그렇게  그 형상을 가지고서 가르쳤고, 신약시대에는 그 형상이 없이 우리는 그저  성전이라 했습니다.

 그러면 성경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는 자는 이 성전 도면을 가서 찾아가지고서  성전에 어떻게 했는가? 성전 지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말씀해서 짓게  했는가? 성전 터에 가가지고서 거기에는 제단이 있으니 이 제단은 뭐하는  것이냐? 제단은 자기가 모르고 지은 사소한 잘못, 또 죄는 뚜렷한 죄, 또 자기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불목된 것, 또 하나님의 것인 것을 이해 못하고 저는  제것인줄 알고 소유도 제것인줄 알고 날뛰었던 잘못, 이런 것을 고치는 이것이  우리 속에 있는 것이 주석으로 놋쇠로 만든 그 형식 성전 안에 있는 주석 제단과  같은 그 주석 제단이 그 사람 속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주석 제단이 있어야 우리 성전이 더러워지지 않하는 것이요, 주석  제단이 있어서 내가 잘못을 하나님 앞에 용서를 받아야 되고, 이것을 고쳐야  되고, 뚜렷한 죄를 용서받아야 되고, 고쳐야 되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불목한  이것을 용서받아야 되고, 고쳐야 되고, 하나님의 것인 것을 잃어버린 이것을  용서받아야 되고 하나님의 것임을 재인식해서 고쳐야 되겠고, 하는 이것을  지식으로 알고 있다고 할지라도 이것은 제단만 있었지 제단 행사는 못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제단이 없어서 성전이 절단난 것 아닙니다. 제단은  있었지마는 제단이 제단답게 제사를 드리지 못하는 여기에서 더러워져서  절단났던 것입니다. 우리 속에 지식적으로 '우리가 잘못을 하나님께 용서받고  고쳐야 된다. 뚜렷한 죄를 우리가 용서받고 고쳐야 된다.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불목한 이것을 하나님 앞에 용서받고 고쳐야 된다. 하나님의  것인 것을 인식 못하고 내것인줄 알고, 내 자체가 내것인줄 알고, 내 소유가  내것인줄 알고, 내 마음대로 썼던 이것을 용서받고 이것을 고쳐서 이제 내  몸뚱이도, 내 모두도 나도 하나님의 것이요, 내 소유도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명령하신대로 그대로 나는 행동하고 그대로 사용해야  된다.' 하는 이것을 지식적으로 알고 있다고 할지라도 이 행사를 하지 않을  때에는 이 성전은 벌써 파괴된 것이고 더러워진 것이고 이렇게 한다 할지라도  자기가 입술로는 하나님 앞에 '용서해주십시오.' 이렇게 하고 진정으로 자기가  진정으로 자기 마음 가운데에 그 자기 인격이 여기에 대해서 가책을 느끼고  감동을 받으면서 참 자기의 인격이라는 그 성질이나 마음이나 감정이나 이것이  다 합해져서 이 허물을, 이 죄를, 불목을 하나님이 주인인데 그 주인을 바꿨던  이것을 마음 아프게 이렇게 느끼면서 하나님 앞에 매일 고치는 이것이 있어야  깨끗한 성전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괴로운 것이 아니고 여기에서 하나님의 전능의 보호를 내가 입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적 도우심의 은혜를 입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책임지십니다. 우리가 이것을 잊어버리고 다른 무엇에 제가 전력을 기울여  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지 않으니 우리의 원수는 천천이요  만만입니다. 그 속에 마귀가 들어있는 사람은 전부 우리에게 말하자면 암병과  같습니다. 전체가 우리를 망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막아서 그렇지. 이러니까  하나님이 돕지 않으니 모든 예외적인 해를 우리가 방어할 힘이 없고, 또  하나님이 우리를 멸하시니 우리가 어떻게 서겠습니까?  이러므로 이런 어리석은 일을 하지말고 우리가 성전을 깨끗이 하는 일을 해야  됩니다. 놋제단, 이 제단이 있으나 제단 행사를 못해서 이스라엘이  멸망받았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우리는 이렇게 해야될 사람으로, 우리는 제단  생활을 해야될 사람으로 알고만 있어도 제단 생활 안하면 이는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책임 안집니다. 제단 생활을 한다고 할지라도 입술로만 형식으로만  하지 그 인격이 거기에다 기울여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더럽고  가증스러운 제물입니다. "네가 더러운 재물을 내 마당만 밟지 말아라. 그 제물을  내가 기뻐하지 않는다. 그 제물은 가증스러운 것이라"고 이사야 1장에  말씀했습니다.

 시간 많이 지나가서 오후에는 거기에서 계속해서 세숫통이 있고 등대가 있고  떡상이 있고 금향로가 있고 법궤가 있고 그룹이 있고 속죄소가 있고 하나님이  계시는 거기에 대해서 차례로 오후에 증거하겠습니다. 오전에 나온 사람들이  오후에 다 나와서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모르면 못합니다. 모르는 행동을  어떻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알아도 맞추기 어려운데 모르고 어떻게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서 멸망받지 아니할 생애를, 멸망받지 아니할 자기로 건설할 수가  있겠습니까?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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