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입장


선지자선교회 1989년 8월 9일 수후집회 

 

본문 : 계2:8-11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에베소 교회에 그렇게 여덟 가지 훌륭한 행위가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노여워하시고 기뻐하시지 아니하셨습니다. 그 여덟 가지 흘륭한 행위도 다 에베소  교인 자기네들이 한 것이지만 자기네들이 한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그들을  통해서 그 아름다운 행위를 하게 해서 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에베소 교회는 나타나신 주님이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승리의  주님이 에베소에 있는 목회자 그 책임자를 붙드시고, 또 일곱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에베소 교회 전체를 다 관리 순방하고 계시는 주님으로 나타난  것은 에베소 교회의 장점이라고 하는 모든 좋은 행위를 다 주님이 그렇게 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에 들어서고 난 다음에 옳은 행위는 전부 그것이 다 주님이  우리를 붙드시고 일하신 것이기 때문에 그 일에 대해서는 알고 보면 우리가  자랑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붙들고 일하실라 할 때에 방해한 점이  많습니다. 방해한 점 그런 것을 우리가 찾아서 자꾸 회개를 하면. 방해하는 일이  적어지면 주님의 뜻이 점점 잘 이루어지고 또 주님은 계속해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무엇 때문에 세상에 사람들이 많은데 하필 에베소 교회, 하필 택한  자들을 이렇게 붙드시고 의로운 일을 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영원 전  택하셔서 이미 주님이 사활의 대속의 큰 것을 여게 투자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마음과 사랑과 애착이 거게 갈 수밖에 없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에게 좋은 점이 있는 것은 주님이 자기를 붙들고  역사하셔서 그 결과가 맺어진 이 사실을 알아야 되고 또 그러면 주님이 자기를  붙들고 일하실 때에 온전히 자기가 찬 주님에게 붙들려서 다 이루어졌느냐 하면  방해한 것이 많고 뭐 순종해서 이루어진 것은 적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목회자가 설교하고 난 다음에 주님이 나를 붙들고 역사하시는데  내가 전부 다 죽지를 안했고, 다 부인하지를 안했고 믿는 믿음이 모자라서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를 방해한 이 사실을 찾아서 자기의 방해한 걸 가지고 주님  앞에 용서를 구하고 이제 앞으로는 이런 방해를 하지 안하겠으니까 같이 해  달라는 간구하는 그것이 주님에게 새 은혜를 구하는 좋은 방편입니다. 그런데  벌써 이 의로운 일을 해 놓고 난 다음에 그것을 제가 한 줄 알고 제가 자랑하고,  또 제가 혼자 단독이 한 줄 알고 그것이 없는 사람은 업신여기고 이렇게 한다면  그 사람은 참 죽은 사람이요 참에서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이래서, 잘못된 것은  주님이 하시는 일을 거역하고 고집피워서 제가 그 일을 했기 때문에 잘못된 거는  전부 우리 사람이 들어서 잘못한 것이요 또 옳은 것은 주님이 우리를 붙들고  역사해서 옳은 일을 다 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누구든지 의로운 일을 하고 난  다음에 그 의로운 일을 자기가 한 것으로써 그렇게 자랑을 하면 그 사람이  스스로 섰다고 하는 사람, 자기가 그 일을 성사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은 반드시 넘어집니다. '넘어질까 조심하라' 이랬습니다.

 이래서, 장점은 주님이 하신 일인데 내가 방해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그것을  찾을 것이고, 또 단점에는 이것은 내가 주님을, 내가 단점의 행동을 하고 싶어했던  것보다도 주님을 거역하고 했기 때문에 자기가 주 믿는 자가 잘못됨이 있는  그것은 잘못된 것만이 아니고 주님이 옳게 할라 하는 것을 거절하고 또  자행대로의 잘못된 행위를 했으니까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회개를 해야 됩니다.

 단점에 대해서는 주님이 붙들고 좋은 일을 할라고 하시는데 자기가 패역을  부리고 거절해서 좋은 일을 하지 못한 것과 주님 배반하고 사탄으로 더불어 나쁜  일 하게 된 그것을 생각해서 양면으로 회개를 해야 합니다.

 그러고 그렇게 하나님이 간섭하시고 안타깝게 하시는 이유가 뭐인가? 그거는  피값 때문에 그렇습니다. 당신이 사활의 대속의 큰 희생을 제공했기 때문에, 보물  있는 곳에는 마음이 있다고 말한 거와 같이 당신의 전부를 다 기울여서 물붓듯이  쏟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활의 대속  때문에 우리를 간섭하고, 대속 때문에 우리와 함께 하고, 대속 때문에 우리를  붙들고 기어코라도 의의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이름과 의를  위해서 우리들을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아무리 신앙 생활을 잘 하다가도 그 신앙 생활이 다만 주님의  피공로로 말미암은 여기에 촛점을 두고 여기에 붙들려서 모든 것이 시발하지  아니하면 그것은 결국은 뿌리 없는 나무와 같이 다 말라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대개는 그래 가지고 다 말라집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은 우리의 바로  생명입니다.

 생명이 떠나면 죽고 죽으면 썩어지는 것처럼 누구든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하루를 잊었으면 하루 동안에는 죽었습니다. 하루 동안에는, 그 하루 동안에  해당된 것은 다 죽었습니다. 또 전부 썩어지고야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생명을  떠나면 죽고 썩는 것을 이 모든 자연 만물에게서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아주  강한 동물 맹수니 그런 동물이라도 생명 떠나면 그까짓 거 뭐 아무 힘 없습니다.

 성도들이 주님을 잊어버렸을 때에는 성도에게는 털끝만한 의의 힘도 없습니다.

 완전히 사자가 죽은 거와 같이 아무 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그 속에 오셔서,  자기가 새김질 할 때 주님으로 말미암아 동하고 정하게 되면 굉장한 전능의  능력이 거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독자는 어짜면 아주 하나님처럼 강하고  어떻게 하면 마귀처립 자꾸 자멸하는 일만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기억하고,  이기는 자는 낙원에 있어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겠다고 하는 말씀대로  이기는 자는 곧 처음 사랑을 생각하고 그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그 행위하는  것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의 그 사랑에 감격해서, 그 사랑에 충격돼서 그  사랑으로 인하여서 모든 행동하는 것, 그러면 주님을 사랑함으로 인하여 모든 걸  사랑하고, 주님을 섬김으로 모든 것을 섬기고, 주님 때문에 이것 저것 모든 일을  하는 요 생활이 처음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해 나가서 요것이 숙달돼 가지고  주님의 구속의 은혜를 인하여 이것 저것 행동하는 고 행동하는 그것이 낙원에  들어가는 일이요 낙원 생활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주님의 사대 대속의 사랑을 잊어버리지 안할 그때의 그 사람의 모든  그 자체나 생활은 낙원 속에 있는 생활입니다. 낙원 속에 있는 생활이라 그말은  이 세상에 있는 생활이지만 순전히 그것은 죽음 너머 있는 무궁세계의 소망만을  기대하고, 소망만을 목적하고, 그 소망에 자기의 심신은 다 기울어지고, 그 소망에  대한 것만 지금 현재에 행동하는 사람이 된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낙원 생활  한다.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게 한다, 그러니까 주님하고 자기하고 합작돼 가지고  행동하는 그 결과를 맺게 된다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여기 서머나 교회에 보면 서머나 교회에 대해서는 주님이 '나는 이런 주님이라,  시간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 내라, 또 생명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 내라, 또 고난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하는 나라, 또 모든 빈부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하는 나라.' 이렇게 주님이 시간관, 생사관, 고락관. 빈부관을  말씀하시고 '나는 이런 인생관을 가지고 있다. 이런데 너거 서머나 교회도 이와  같은 인생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와 하나다.' 하는 뜻으로,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하는 것은 그걸 훼방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훼방에 잘못하면,  사람들이 훼방하면 거기서 넘어지고 믿음이 흐려지기 쉽습니다.

 우리는 노아 시대에 그 노아가, 그때에 인구가 얼마라 하는 것은 기록되어 있지  안하지만 벌써 그때가 인간 역사가 생겨진 지 후 근 이천 년이 돼 가는  시대이니까 그 인구 수가 뭐 지금만 못지 않는 그런 수라고 그렇게도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 가운데에 노아의 여덟 식구만 마지막에 남았으니까 그린  훼방이 얼마나 했겠습니까? 훼방을 해서 마치 불에다가 아주 큰 집채 무더기만한  것을 넣고 자꾸 구워 대니까 타고 타고 다 타서 나중에 남은 것은 정금만 남는  거와 마찬가지로. 모두가 다 이런 훼방이라는 시험을 하고 하고 하니까 다 모두  녹아지고 남은. 정금으로 남은 것이 그것이 노아의 여덟 식구가 남아서 그분들만  비로소 홍수 심판에서 심판을 이기고 세상을 정죄하고 하나님의 후사가 됐던  것입니다. 이것을 베드로전서 1장 6절인가 7절 그 다음에 내리보면 우리를  가리켜서 '우리의 믿음이 불로 연단한 금보다 더 깨끗다, 금보다 더 의롭다'  그렇게 말씀했어.

 그거는 우리의 믿음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의 우리가 가진 지식이요  뜻대로 우리가 행동하는 행동이요, 뜻대로 만들어진 그것이 다 믿음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따라서 된 것, 하나님으로 인하여 될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따르는 것인데 지식이 하나님 따르는 것도 믿음이요, 행동이 하나님  따르는 것도 믿음이요, 또 해 놓은 이력이 하나님 따르는 것도 믿음인 것입니다.

 여게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이 훼방이라 말은 핍박한다 말이오.

 훼방이라 말은 삦고 깎는다 말이오. 자꾸 사람을 삦고 깎고 이래 훼방하는 걸  말합니다.

 성도들이 신앙 생활을 해 나가다가 훼방하는 이 훼방에 충격받아 가지고  떨어지는 일이 많습니다. 노아 때도 노아의 동지로 그렇게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이 꼭 노아 식구만이 아닌데 그래 걷다가 자구 훼방을 하니까 그 훼방에  못 견뎌서 하나 떨어지고 둘 떨어지고 자꾸 그렇게 떨어지는 것입니다.

 개명교회에 제가 거게 있을 때 자기 남편이, 예수 믿는다고 못 믿구로 하다가 꼭  믿을라고 이래 하니까 그 남편이 목수인데 톱으로 자기 다리를 끊어서 피가  나오고 뭐 뼈는 끊겼던가 몰라도 이렇게 뼈가 나오고 이래도 꼭 믿겠다고 이래  가지고 나왔었는데 내가 그 자리 떠나고 난 다음에는 그분이 낙심해 가지고 지금  살았기는 살았는데 믿지 않는다 그말을 들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목자가  중요하다 그 말이오.

 왜 그러냐? 그런 사람 다 훼방을, 동네 사람이 자꾸 예수 믿으면 안 된다고 믿지  말라고 자꾸 이래 훼방을 하니까 그래 그 훼방에 떨어져서 다 그렇게 택한  자인지 불택자인지는 모르나 그 사람이 믿음을 다 그만 뺏겨 버리고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택한 사람이라면 뒤에라도 믿겠지만 택한 자가 아니라면 안 믿겠지요.

 이래서,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안다' 한 사람이 훼방하는 게 아니라  유대인이라 하는 모든 자들이 훼방한다, 유대인은 뭐라고 말했습니까? 정통 신앙.

 법통 신앙. 다 이거는 모두 진리대로 믿는 사람이라고 하는 그런 사람들을 여게  상징해서 자칭 유대인이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유대인의 훼방을 나도 안다'  주님이 유대인들의 훼방을 내가 안다. 그 유대인들이라 하는 그 유대인이 참  유대인이 아니고 자칭 유대인이요 사탄의 회들인데 '그들의 훼방을 내가 안다'  그렇게 말씀 했습니다.

 그러면 이 훼방은 그때 무엇을 훼방했을까? 그 훼방은 이 사대관이 다르기  때문에 훼방을 했습니다. 그러면 이 훼방은 누가 했는가? 유대인이 훼방을  했습니다. 또, 유대인이 훼방을 했는데 또 누가 훼방을 했는가? 거게 보니까  사탄의 회라 했으니까 사탄이 훼방을 했습니다. 또 그 다음에 보니까 마귀가  이들을 시험할라고 옥에 던져서 그렇게 시험을 했습니다. 또 마귀가  훼방했습니다. 그러면 훼방한 자들은 자칭 유대인이요, 사탄이요, 또 마귀입니다.

 껍데기는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는 정통 신앙, 아주 정통 신앙가들이요 그 속에  보면 그것은 사탄이라, 사탄의 회라, 사탄이라 하는 것은 이 세상 권세를 붙들고  일하는 마귀를 가리켜서 사탄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또 마귀라고 하는 이것은  아주 간교한 미혹을 가지고 이렇게 마귀의 역사를 하고 있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마귀라고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유대인의 훼방이 있었다, 또 사탄의 회라 했으니까  사탄의 훼방이 있었다, 또 마귀의 훼방이 있었다. 이래 우리는 어떨 때는 훼방하는  것이 나라에서 훼방하고, 사회에서 훼방하고, 어떤 종교 단체에서 훼방하고, 또  가정에서 훼방을 하고, 또 그 교회 내에서 훼방하고, 이리 훼방하는 것들이 이런  형체를 가지고 나타나고 저런 형체를 가지고 나타나는 그 외형은 많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외형을 보고 모든 것을 확정지우면 안 됩니다. 외형은 셋 넷  다섯 이렇게 열로 갈라진다 할지라도 그속에 알맹이는 하나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모든 존재들이 움직여질 때에 그 움직여지는 것을 외형만  보고, 겉어머리 이름만 보고, 간판만 보고 이것은 딴것 이라고 이래 생각할 것이  아니고 그 속에 그 행동의 질적으로 본성적으로 그 내용이 어떠하냐? 방편도  이런 방편도 쓰고 저런 방편도 쓰기는 쓰지만 그 하는 역사의 내용이 어떠하냐?  내용에, 내용이 뭐입니까? 내용이 어떠하냐? 그 내용에 이치가 어떠하냐 그것을  우리는 따져야 됩니다.

 그러면 국가에서 이런 방편 쓰고 저런 방편 쓰고,사회에서 이런 저건 방편을  쓰고, 교회에서도 방편 쓰고, 가정에도 방편 쓰고 방편 쓰는 그 방편은 그거는  외부의 모양이기 때문에 방편은 이런 방편 저런 방편 여러 방편이 있어 가지고  각종의 방편이 있지만 그 속에 하는 이치를 따져보면 하나일 수가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인 그 이치를 가지고 여러것이 갈라 가지고 이런 모양으로  나타나고 저런 모양으로 나타나고 이라니까, 이 모양으로 나타나고 저 모양으로  나타나니까 딴건 줄 알지만 열 가지로 나타나도 우리는 껍데기 외형을 보고  그것을 판단하지 말고 그의 행동하는 내적 이치를 보고 이치로 따져야 돼. 내적의,  내적으로 하는 행동의 이치를 따져보면 열이 해도 꼭 그 하나다 그렇게 우리는  판정을 바로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훼방은 무슨 훼방인고 하니 이 사대관이 다르기 때문에 여기서 훼방과  대립이 생겨진 것입니다. 그러면 이 훼방의 겉어머리 나타난 것이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겉어머리 나타난 것이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그것이 하나  나타났고, 또 하나는 뭐입니까? 실은 사탄의 회라 하니까 사탄이 나타났고, 또 그  다음에는 또 뭐라고 말씀했습니까? 마귀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서이로 이렇게  말했는데 이 셋이, 이 셋을 합해서 한 말로 말하면 이것이 무엇입니까? 이 셋을,  이 셋이 합한, 이 셋의 이 뿌럭지는 하나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머리가  일곱이고 뿔이 열이라 이렇게 말했는데 그 몸통은 내나 짐승 한 마리입니다. 짐승  한 마리에 뿔이 열이요 몸통이 일곱입니다.

 그래 여게는, 여게는 지금 나타나기를 이 세 가지로 나타났는데, 자칭  유대인이라고 나타났고 그걸 사탄이라고 주님이 밝혀 주셨고 또 마귀라고 밝혀  주셨으니까 이 마귀, 사탄,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는, 자칭 정통파니 보수파니  이렇게 하고 있는 이것들 이걸 다 총칭해서 합하면 이것들이 무슨 단체입니까?  이거 무엇입니까? 이게 뭐입니까, 이거? 이 셋을 합해서 그 이름을 뭐라고  합니까? 내나 뭐 사탄 여기 있는데? 악? 자, 악, 또 사탄, 또 뭐? 사탄이고 또?  너는? 너 O? 너 뭐 공부는 좋은 데 다닌다고 서울 무슨 뭐 서울대학에 다니는가  어디 다니는가 몰라도 암만 다녀봤자 그거 가지고는 거게 생명은 한 내끼도 없다.

 생명은 한 내끼도 없어. 이것을 합해서 세상이라 말합니다. 이게 세상입니다.

 세상이 잘 믿는 정통 보수파 정통파 신자의 껍데기를 입고 나와 가지고, 신자로  나타나 가지고 이 사대관을 훼방을 합니다. 또 권세잡은, 권세 있는 권세들을  붙들고 또 비방을 합니다. 권세자를 붙들고 훼방하는 걸 가리켜서 사탄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탄은 어찌 됐던간에 세상에 있는 권세를 붙들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마귀의 왕을 가리켜서 사탄이라고 말하고, 또 마귀는 그  밑에 부하를 말하고, 또 귀신도 그 밑에 부하를 말하고, 또 잡신이라 하는 것도 그  밑에 더 아래층에 부하들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인데 이것을 합해서 세상입니다.

 세상이, 사람이 말이지요, 한 일곱 사람이 뭉치면 한 사람 병신 만듭니다. 또  일곱 사람이 뭉치면 멀건 사람을 하나 그만 죽도록 만들 수가 있어. 이 사람이  이라지. 그저 꼭 같은 한 의논을 해 가지고 이 사람이 있다가 아무 보고 '이  사람아 자네 어째 요새 몸이 그러노? 좀 혈색이 안 됐네. 그 어째 그런고 이  사람아.' 또 하나가 떡 또 가더니만 '자네 오늘 어디 갔다 왔나? 요새 몸이 왜  그러노? 그 안 됐는데.' 이 사람이 거게 피동이 됩니다. 또 나중에 좀 있으니까  다른 사람이 있다가 말하기를 '야 자네 좀 엑스레이를 찍어 보든지 좀 가 봐라.

영 안 됐는데.' '괜찮은데?' '야야, 그렇지 않다.' 또 나중에 보니까 또 한 사람이  또 달라들고 합니다. 이러면 멀거니 괜찮은 것이 그말에 피동이 돼 가지고 나중에  가서는 '이거 참 어짠지 속이 깨꾸름하다. 이상하다. 밥맛이 없다. 뭐 잠이 잘 안  온다.' 이래 가지고 그만 몇 번 몇이 돌아가 가지고 이래 말하면 그만 그 사람  병신돼서 그만 헛일돼 버리고 마요.

 마귀가 이 수단을 씁니다. 같은 일이라도 이것을 시켜 가지고 또 우리를  대적하고 저걸 시켜 대적하고 대적하니까, 대적하는 게 여러 것이 대적을 하니까,  그만. 우리는 여러 것이 나를 대적하니까 여러 것이라는 수를 우리가 권위를  생각해 보고 이것도 딴것 이것도 딴건 딴것인데 이거는 이것대로 이걸 이래 하고  저건 저래 하니까, 이게 훼방하는 게, 하나라 하는 것 같으면 그까짓 거 뭐  무시하지만 하나가 안 하고 여럿이 그래 하고 있으니까 이거는 뭐 참말인갑다  이렇게 다수에 사람은 자꾸 거기서 침노를 받아 가지고 약화되기 쉽다 그 말이오.

 우리는 그것을 일을 할 때에 열이 하거나 천이 하거나 만이 한다 해도 그것을  이치로 따집니다. 그 이치로 따지면 '천 명이 말해도 내나 하나다. 만 명이 말해도  하나다. 하나 이놈을 이놈들이 주 단합이 돼 가지고 자꾸 이렇게 하고 있구나.'  아예 그것을 그렇게 하나가 그렇게 여럿으로 말하는 것처럼 해 놓으면, 그걸  깨달아 놓으면 거게 그렇게 손해를 보지 않습니다.

 요새 전화도 그래요. 전화도 사람이, 한 여나뭇이 어울려 가지고 이래 거기서  이런 전화 한 마디 하고 또 어떤 사람 또 그런 전화하고 전화하고 자꾸 이래 좀  협박 전화로 하면 이 사람이 밥을 못 먹는다고. 협박 전화를 하면 밥을 못 먹어.

 그만 나중에 병이 들어요. 마귀란 놈이 이런 수단을 잘 압니다. 그것을 여기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 잘 믿는 사람을 들어서 훼방을 하지, 또 사탄을 또 들어서 훼방을 하지,  마귀를 들어서 훼방을 하지 이래 가지고 그들이 어디까지 훼방 했습니까?  훼방하는데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열흘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요 말씀 그러면 여게 여럿이 들어서 훼방하는데 여럿이 들어서  훼방하는 것은 무엇을 훼방하겠습니까? 이 훼방하는 게 어짠다고 훼방을 합니까?  사대관 때문에 훼방을 합니다.

 또 그러면 그들이 유대인이 그렇게 했지만 또 사탄으로 마귀로 나타났는데 이제  이들을 '너희들이 앞으로 큰 환난을 만날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무슨  환난인데? 너거를 감옥에, 몇 사람을 감옥에 가둬 가지고 시험할 것이다  이랬습니다.

 감옥에다 시험한다 했으니까 그거 또 시험은 무슨 시험입니까? 무슨 시험이요?  사대관의 시험이라. 사대관의 시험. 사대관의 시험이라니? 네가 사대관을 가진  것이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나와 같은 사대관을 가지고 있는데, 나와 같은  사대관을 가지고 있는데 그때 네가 사대관을 어느 정도 굳게 잡고 있느냐? 네가  어느 정도 네가 굳게 잡고 있느냐? 그것을 시험합니다. 이 사대관을 어느 정도  굳개 잡고 있느냐? 정말로 네가 남 따라서 지금 말쟁이로서 사대관을 그와 같이  말하고 있느냐 실상 이 사대관을 참으로 바로 네가 진실되이 가지고 있느냐  그것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시험하는데 시험하면 그 시험은, 시험치러 가면 좋아요  나빠요? 예? 시험 치르면 좋아요 나빠요? 시험 치르면 좋아요 나빠요 이 학생?  안 됐어? 시험 치르면 좋아요 나빠요? 저 OOO목사님? 좋아? 시험 치고 나니까  울고 불고 뭐 자살하는 학생들도 있던데 좋아? 시험 치르면 좋아요? OOO목사님?  다 그거 말 틀렸어. 뭐이냐? 인제 합격하면 좋고 불합격하면 안됐지. 그렇지  안해요? 그러니까 시험은 시험은 우선 없는 게 좋아요 있는 게 좋아요? 있는 게  좋지. 있는 게 좋은데 그 시험은 어떤 사람에게 시험 치르고 나면 좋아요? 합격된  사람은 시험 치르고 나면 좋지만 합격 안 된 사람은 시험 치르고 나면 울고  야단이 나지.

 이 시험이, 이 시험을 치르는데 이 시험에 대해서 점수 매기는 채점은 누가  매깁니까? 채점은 주님이 매깁니다. 또 이 시험을 이렇게 내고 시험하도록 시험  치르는, 모든 시험 치르는 직원들은 누굽니까? 직원들은? 사탄,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훼방하는 자들, 마귀, 다시 말하면 그걸 다른 말로 하면 뭐입니까? 세상.

 세상입니다. 세상이 이래 시험을 합니다.

 이렇게 세상이 시험을 하는데 '네가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러면 우리 믿는  사람들이 시험하는 것은 시험 문제를 내는 것은 전부 주님이 내는 문제입니다.

 주님이 시험 문제를 내는 것이고 그 시험은 통과만 하면 좋아지고 통과 못 하면  그만 전보다 더 좀 손해가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열 처녀가 시험에, 밤중에 신랑  맞이한 통과하고 나니까 좋았고, 이 전보다 좋았고 거기서 떨어져서 영접하지  못하니까 그전에 대기하고 있을 때는 네나 내나 같았지만 그 다음에는 그만 신랑  영접 못한 사람들은 손해가 됐습니다.

 이래서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래서 시험에 대해서는 두려워하지 말아라. 또  야고보서 1장에 말씀하시기를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렇게  말씀했는데 시험을 두려워하지 말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는 것은 그 이유가  뭐인고 하니, 이유가 뭐인고 하니 그 시험 치르는 분이 주님이시요, 시험을 치르게  하시는 분이 주님이시오.

 또 그 시험은 우리를 두 가지를 소망해서 시험을 치릅니다. 두 가지를 소망해서  시험을 치르는 것은, 시험을 치르는 것은 두 가지 목적으로 시험을 치릅니다. 두  가지 목적으로 시험을 치르는데 하나는 무슨 목적이냐? 너는 네가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실상은 너는 실력이 없다 하는 것을 본인에게  알리기 위해서 시험을 치르는 것이요, 본인에게 알릴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 가지고 이 사람은 이렇게 평가하지 마라. 너무 지나치게  평가하지 마라. 자기가 자신도 지나치게 평가하지 말고 다른 사람도 그 사람에게  대해서 지나치게 평가하지 않도록 해서, 지나치게 평가받는 그것을 꺾어서 정평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시험을 치르십니다. 맞아요? 이치가 맞아요? 또 이  사람은 실력은 있는데 사람들이 실력보다 너무 과소 평가를 합니다. 아주  실력보다 업수이 보고 아주 실력 없는 것으로 그렇게 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시험을 치러 가지고 쑥 뽑아 올려서 '실력 있다' 이렇게 보여 줘야 되겠다  그거요, 이렇게 훼방을 하고 시험을 하는데 시험하는 것은 언제든지 주님이  시험의 주인공이 돼 가지고 시험하시고 시험하실 때에 일꾼으로 쓰는 것은  오늘은 서이가 나왔는데 정통이라고, 자칭 정통이라고, 자칭 보수라고, 자칭  예수를 잘믿는다고 하는 그런 사람들과 사탄과 마귀의 이런 것을 일꾼으로 써  가지고 우리를 시험합니다. 시험하는데 시험하는 시험의 주인은 주님이시오.

 그런데 그 시험을 하는 목적은 뭐이냐? 우리를 점점 온전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시험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님이 온전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 시험하신  것이니까 우리가 잘못해도 유익 있고 잘해도 유익 있습니다. 잘못하면 나를 바로  알도록 하니까 유익 있고 또 잘못 알면, 알았으면 고치가 위해서 된 것이니까  유익이 았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는 것은 시험 닥치면 기뻐해야 되겠다 그래 가지고 기쁘새  여기는 것은 온전히 기쁘개 여기는 것 아니오. 시험을 닥칠 때는 반드시 이  시험은 뭣 때문에 오는 시험이다. 그것을 알 수 있는 대로 알면 좋습니다. 이  시험은 무엇 때문에 오는 시험이다. 이 시험에는 무슨 문제가 나오겠다. 시험  문제도 알고 시험을 치르는 목적도 알고 또 문제도 알고 이래 가지고 거기  합격만 딱 해 버리면 그 시험은 즉시 물러가고 마는 것이오. 즉시 물러가고 마는  것이라.

 이래서,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말은 그 시험에 대한 구비 지식을, 그 시험에  대해서 관련돼 았는 구비 자식을 완전히 자기가 다 알아 깨달아 가지고 그래  가지고 그는 참 논리적이요 과학적이요 그거는 합리적으로 이렇게 앉아 가지고  기삐하는 그것이 온전히 기쁘개 여기는 것입니다. 왜? 그 시험 목적이 뭐인데?  야고보서 1장 2절 아하에 있는 그 시험 목적은 뭐입니까?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아 없는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서 시험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험에 대해서 여게 말씀하시기를 첫째 뭘 권고했느냐 하면 '두려워하지  말아라' 하는 것을 먼저 권고했습니다. 또 야고보서 1장 에는 '시험을 만나거든  항상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또 기쁘게 여기라. 두려워하지 말아라. 또 야고보서  1장 12절 이하에는 보면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대해서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네가  얻으리라' 이랬어. 이러니까 참고 견디라,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러니까 우리에게 신앙 생활 하다가 어려움 닥치는 그것을 총칭 말해서 우리가  신앙 생활 하다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오든지, 사회적으로 어려움 오든지,  가정적으로 어려움이 오든지, 도덕적으로 어려움 오든지 자기 출세적으로  어려움이 오든지, 또자기 사업적으로 어려움이 오든지 모든 어려움이 오는 그  어려움을, 그 어려움을 베푸시는 이는 누굽니까? 어려운 일을 베푸시는 이는  누굽니까? 주님. 그러면 우리의 현실을 만든 이는 누굽니까? 우리 현실 만든 이는  주님 외에는 우리 현실을 못 만듭니다.

 이러니까 그런 시험을 당하면 무슨 일이든지 우리 믿는 사람에게 어려움이  온다는 것은. 주님이 나에게 어려움을 줬다는 것을 언제든지 확정을 짓고 있어야  돼. 확정을. 확정을 짓고. 그러면 그 어려움을 주님이 베푸시는 것은, 베푸시는데  쓰는 일꾼들은 뭐입니까? 일꾼들은 세상입니다. 일꾼들은 한 말로 말하면  세상인데 그걸 여게는 보니까 제일 잘 믿는다는 신자, 잘 믿는다는 신자 그것도  일꾼으로 삼고, 대마귀도 일꾼으로 삼고, 소마귀도 일꾼으로 삼고 이래 가지고  지금 우리를 시험을 합니다.

 시험하는데 여게는 권면하기를 '두려워하지 말아라. 어떤 시험까지 있을 것이라.'  시험을 받고 난 다음에 말합니까 시험 전에 말합니까? 시험 전에 말했어. '옥에  갇히워서 너희들을 시험할 것이라' 그런데 다 시험합니까 몇 사람 시험합니까? 몇  사람 시험해요. 몇 사람 시험하는데 그 몇 사람 그 사람은 딱 당사자가 돼 가지고  지금 그 사람에게 똘똘 뭉쳐 가지고 지금 그 사람을 시험합니다. 그 사람 시험할  때에 그 사람 시험하면 그 사람만 합격하고 다른 사람은 합격 안 합니까? 그  사람 시험할 때에, 그 사람 시험받을 때에 이거는 가만히 있다가 면류관 얻어.

 그 사람아 시험을 받을 때 옆에 사람이 있다가 '아이구, 저라는 거 보니 나는  예수 안 믿어야 되겠다.' 이라고, 그 시험을 당한 때에 두려워하지 안하고 같어  시험을 안 해 그렇지 '나도 당했으면 나도 그래 내가 좀 하겠다' 하는 것으로  시험당하는 사람과 같이 해서, 의인을 의인으로 선지자를 선지자로 대접하고 그  시험받는 것을 자기가 자기도 받기를 원하고, 또 받는 거게 대해서 자기가 두려워  떨면서 후퇴하고 약화되지 안하고, 자기는 시험 안 받아도 백지 지금 절단난다  말이오.

 그러면 순교자 한 사람이 나면, 순교자 한 사람이 나면 거게 순교자가 많아  납니다. 순교자는 한 사람뿐인데 이제 '나도 죽여라. 나도 이 진리에, 나도  신사참배 안 하고 나도 죽겠다.' 이래 가지고 그렇게 나가는 사람들이 생겨지는  것은 그것은 의인을 의인으로 대접하는 사람이요, 선지자를 선지자로 대접하는  사람이요, 그럴 때에 '아이구, 저런 것 보니까 내게 닥쳤으면 큰일 나겠다.' 하고  그때 이제 감옥에 안 들어가도 감옥에서 승리하는 사람과 같은 승리할 사람이  있고 감옥에 안 들어가고도 거기서 패전할 사람은 패전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공연히, 하나님께서 몇만 시험하면 나머지기 시험은 뭐 그 사람을  할라고, 몇만 시험하면 그 교회 시험 다 합니다. 그 교회 한두 사람만 시험하면 온  교인 다 시험하는 게 다 돼요. 한두 사람 시험하는데 옆에 거는 공연히 놀라서 다  꺼꾸러지고 다 절단나 버리고 또 시험할 때에 옆에서는 참석 안 해도 승리한  사람이 다 되고 만다 말이오.

 저는 개명교회 있을 때에 그때에 보수 안 받고 집사로 있으면서 셋 교회를  시무했어. 봉산교회 개명교회 봉계교회 이래 셋 교회를 시무했는데 다른 교회들은  다 내가 책임 안 졌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신사참배 다 했어. 다 했는데 제가  단독 예배보고 있는 데에 개명교회 교인들은 그 교인들 하나도 시험받지도  안하고 그 사람들은 하나도 불려가지도 안하고 하나도 신사참배 안 했어요. 안  해도 그 사람들은 다른 면으로 환난당해 가지고 다 이기고 남았기 때문에 그거  다 이긴 사람이 돼 버렸어. 그래서 '마귀가 너희 가운데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이러니까 몇 사람 시험받는 거기에서 감옥에 안 들어간  사람들도 다 패전에 동참하는 사람 있고 승리에 동참하는 사람으로서 남은  사람도 전부 승패가 다 결정된다 하는 말입니다.

 제가 그때 여기 개명에서, 그때 왜정 때가 아니고 해방 후에 공산주의자들히  인민공화국을 건국할라고 그때 발기회 모운다고 이래서 거창 군내가 전부 발기회,  인민공화국 발기회 전부 동참 다 했어요. 안 한 면이 하나도 없었어.

 고제면만큼은 못 했어. 고재면 그들이 하러 왔다가 그래 나는 인민공화국에는  내가 줄 수가 없다. 이거는 우리는 그저 하나님을 인정하는 그런 정치에 주지  하나님 부정하는데 안 주겠 다고 이라니까 그들이 하다가 안 되니까 나를 총을  대고 '이놈의 새끼 너 그러면 죽어도 줘으냐?' '죽어도 괜찮다. 너거가 나 죽이고  싶으면 죽이라. 나는 그거 못 하겠다.' 이래 가지고 오만 게 다 됐는데 나 한  사람이 반대해 가지고 인민공화국 발기회를 고제면만은 못 하고 갔습니다.

 요게 적혀 가지고 위로 올라가 버렸어. 이래 놓으니까 그 다음에 6·25 때에,  6·25 때 그 사람들이 여게 백영기를 찾았는데 백영기가 있어 야지? 내가  영희인데 영기라고 이래 적었어요. 그 백영기 찾아서 양사방 교회 다녀야  백영기가 있어야지? 하나님이 그 이름을 또 틀리게 해 가지고 그래 찾아  다니다가 그것을 못 하고 말았습니다.

 그래 이래 가지고 그러니까 그런 줄은 모르고 나를 독실한 예수 믿는 신자라  하니까 공연히 나를 어만되게 공산주의라고, 나를 뺄갱이라고 이래 주 몰아  가지고 뺄갱이 토벌대가, 뺄갱이가 토벌대에 들어와서, 열다섯 명이 둘어와 가지고  그것이 몽땅 고제면으로 와 가지고 그게 지금 이세 공산주의 토벌한다 하는 것이  지금 참된 신자 토벌하는 거라. 민주주의 토벌하는 거라.

 그래 가지고 그들이 와서 뭐 내게 대해서 굉장한 박해를 하고 많은 그때 내가  구타를 해서 받았습니다. 많이 맞았지만 이상해요. 하나님이 대신 맞아 주니까  아프지 안해. 모두 사람이 말하기를 '저거 죽었다. 저거는 저거 뭐 이제는 저렇츰  사함이 맞고야 안 죽을 수가 있는가?' 해 가지고 죽었다 하는데, 몽둥아가 여러  개, 이런 몽둥이가 여러 개 뿔라지니까 죽었다 이래 하는데 나는 어짠자 뭐 그래  하는데 자꾸 내가 대항해 싸울 수는 없고 맞고 있는데 아프지 안해. 그래 다  때리고 난 다음에 '이제는 죽었으니까 이거 그만 가자' 하면서 저거끼리 가요.

 그래 내가 벌떡 일어나 가자고, 그때 그게 해방 후에 지서던가 몰라. 해방 후에  지서인가? 해방 후에, 내무서 아니고 해방 후에 임시 뭣이 있었지? 그때 건국은  됐고 이 박사가 정권을 잡다시피 되고 그때 토벌할 때인데. 그래 거기서 나를  공산주의라 그래 가지고 막 뚜드려 패고 우리집에는 그 사람들이 집 가에 장작을  동리에 져 오라 해 가지고 장작을 수십 짐 져다 놓고 우리집 가에로 뺑  돌아가면서 막 장작불을 놓고 불을 거석해 놓고 이라니까 밤으로 아무도 개미도  못 와. 아무도 못 와요. 겁이 나 가지고.

 이라는데 그래 나는 그라고 난 다음에 이제 가서, 지서에 가 가지고 '너거  이렇게 하니까 너거 이래 해서는 안 되니까 지금 가자. 가서 상소하러 가자.'  이라니까 저거가 빌어 쌓아서 뭐 그까짓 것도, 하나도 아프지 안해. 그래 나는  일어나 가지고 집에 갔어. 집에 가니까 또 인제 되개 뚜드려 맞았으니까 이거  보신해야 된다고 뭣을 약도 지어다놓고 했는데 하나도 안 아프요. 내가 이거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신맞아 주시기 때문에 안 아플 수 있다 그 말이오.

 주남선 목사님이 그때에 산사참배 때문에 너무 되개 때려 가지고 제죽었다  싶으니까 끌어서 현관문 밖에 갖다 놓고 겨울인데 찬물을 부어 놔 버렸어. 깡깡  얼었어. 이러니까 '저게 아마 저래 가지고 인제 죽을 것이다' 이랬는데 그 이튿날  아침에 뉘가 보니까 그래 가서 말 하니까 뿌시시 떨고 일어나는데 보니까 땀이  흠씬 났어. 아, 잘 자고 일어났다고, 그 아픈 더는 하나도 없고. 우리에게 감당치  못할 그런 시험은 당하지 않게 하십니다.

 이래서 나를 이래 놓고 이라니까 우리 집에 아내가 혼자 있었는데 얼마나  그들에게 혼이 났든지 그만 낙태를 해 버렸어. 낙태를 했는데 낙태해도 사람  아니요? 이래 놓으니까 초상을 쳐야 되는데 누가 초상 칠 사람이 있어야지?  교인들이 하나도 못 와요. 온 동리에 돌아다니며, 부락에 돌아다니면서 '백영희  그놈 뺄갱이지? 뺄갱이 분명하지?' 아니라 하면 쏴 죽을 터이니까. '분명하지?'  '예,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전부, 교인들은, 뭐 그러니까 그 소리 안 할라고  숨었고 전부 다 그래 증거해. 아무도 못 왔어. 못 왔는데 저 OOO목사가 혼자 와  가지고 널 짜다가 그래, 짜고 갖다 묻었대요.

 그럴 때에 한 순교자에 많은 순교자가 난다는 그걸 말하기 위해서 하는 거라.

 그럴 때에, 한 사람이 순교의 박해를 당할 때에 다른 사람들은 겁이 나 가지고  근방에 못 가. 그럴 때에 겁내지 안하고 두려워 안 하면 내나 그 간 사람이나  옆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그렇게 신앙을 지켜 나간 사람이나 꼭 같은 신앙이요  면류관도 꼭 같은 면류관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잡아가고  자기는 잡아가지 안하면 '나는 상관 없는 사람이라' 이렇게 생각지 말고 자기도  거기서 승패가 결정 된다는 것을 생각하고 믿음을 지키고 요동치 안해야 돼요.

 그래, 이렇게 훼방하는 것이 이럴 때 그 훼방을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요것이 이  교회요. 세상이, 우리가 말하기를 세상이지 예수 잘 믿는 사람. 또 거기서 모든  권력가들, 또 그 다음에는 이 모든 서민들 단체 이런 단체가 마귀요, 또 아주 고급  고위충에 있는 사람들의 단체로 가지고 이거 훼방하는 것이 그것이 사탄으로  이렇게 표현을 해 놨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잘못보면 '이거 뭐 전부 세상이 다  이거 한편이 돼 가지고 이런갑다' 이렇게 보여지는데 실상은 그것이 여러  모양으로 이렇게 하지만 여럿이 아니고 내용은 하나라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싸움의 대상이 수백이 나타나도 수십이 나타나도  그것을 조거는 검은 거 흰 거 몇 가지인고 하나 둘 이래 헤아릴 게 아니라  몇이든지 그 속에 이치로 따져야 됩니다. 그 속에 이치로 따져. 이거 아주 지혜  있는 말입니다. 이치로 따져. 이치로 따져서 그라면 이치가 하나이면 백이든지  천이든지 그거는 한 뭉텅이라. 그까짓 거 하나가 나서는 거나 열이 나서는 거나  백이 나서는 거나 꼭 같은 문제라 그 말이오.

 이래 가지고 하는데 '열흘 동안 시험을 받는다' 이라니까 이 시험 받는 한정이  돼 가지고 있습니까 무한정입니까? 한 시간도 더 안 해요. 그거 똑 그 시험  하는데 거게 적당한 시간만 거게다 시험하지 필요 없는 시간은 하나도 안 해.

그러니까 우리에게 필요 없는 그런 고난은 하나도 안 받는 것입니다. 요것도  '열흘 동안' 주님이. 지금 말씀해 미리 다 정해 놓은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예정을 믿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어야 됩니다. 또 모든 예정과  창조와 모든 섭리 그것이 뭐 위해서 있어요? 그것이 무엇을 위해서 있습니까?  예정이 뭐 위해서 있어요? 창조가 뭐 위해서 있어요? 창조가 뭐 위해서 있어요?  이거 모르네. 창조가 뭐 위해서 있는지 몰라요? 또 하나님의 섭리가 뭐 위해서  있어요? 자, 이 전부가, 하나도 먼지만한 것도 빠짐이 없이 그 전부가 똘똘 뭉쳐서  우리 구원을 위해서 있는 이 사실을 믿는 사람 손 들어 봅시다. 믿어. 이만하면  마귀 그놈도 떨어요. 하나님은 기뻐하셔. 오늘도 저 햇볕에는 깡깡 쬐워서  굉장한데 이 위에 이거 뭐 함석을 이래 놨으니까 더울 터인더 아, 시원하다. 안  시원하요? 하나님께서 불기둥으르 구름 기둥으로, 이렇게 시원하면 밤에는 추워서  야단일 건데 또 밤에는 또 괜찮다 말이오. 우리 주님 참 좋으시오.

 '열흘 동안을 환난을 받으리라' 이러러까 우리를 시험하는 것은 주님이 하시고  시험하는 목적은 우리가 과대평가하고 있으면 그것을 정평하라고 하고 또 우리가  과소평가 하면 또 정평하라고 하고, 이래서 야고보서 1장에 보면, OOO목사님 잘  외우지? 1장 9절에 뭐라 했노, 9절에? '저희 낮은 자는 높아진 것으로 자랑하고  저희 부한 자는 낮아진 걸로 자랑하고' 그래, 이거 모두 어떤 시험이든지  시험하는 것은 시험은 주님이 하시고, 시험의 목적은 우리를 정평 정가하는 사람  되도록 하기 위해서 이 시험을 해 주시는 것이고, 시험할 때에 일꾼들은 온  세상에 모든 일반 서민들을 다 부하로 삼아 가지고 할 때도 있고, 고위층에  권력들을 부하로 삼아 가지고 할 때도 있고, 예수 잘 믿는다고 하는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이런 사람들을 부하로 삼아 가지고 이렇게 훼방하는 일이  있는데, 훼방하는 그 시험하는 것은 주님이 하시는 것이고, 그 목적은 우리를 과대  과소도 하지 않고 정평 정가하는 사람이 되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고, 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하는 것이고, 이러니까 그  시험도 할 때 열흘 동안이라고 한정을 해 가지고 시험하니까 무한정이라고  생각지 말고 언제든지 한정이 있는 줄 알아야 돼.

 그런데 그 시험이 계속하거들랑 우리가 '이 시험이 그만 끝났으면 좋겠다' 하는  그거는 뭐이지요? 그거는 하나님이 작정하는 것을 제 주관대로 변경할라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작정대로 하기를 원하는 것입니까? 변경할라 하는 것이라.

 이래서, 아가에 보면 그런 말씀이 있어요. '왼손으로 베개하고 오른손으로 나를  아듬고 계시는 주님께서 원하시기 전에는 나를 깨우지 말아라' 했어. 아듬고 누워  자는데 원하기 전에 나를 깨우지 말라 했어. 그게 무슨 말이요? 그것이 지금  감옥에 들어 가지고 있는 그게 뭐이냐 하면 감옥에 들어 있는 게 사랑하는  주님의 왼팔 베개하고 오른손으로 주님의 품 안에 안기워 가지고 지금 환난에  시험받고 있는 것이니까 주님이 원하시기 전에 깨우지 말라는, 주님이 원하시기  전에는 이 환난이 없어지도록 그렇게 기도하지 말라 그말입니다. 그 환난이  없어지기를 기도하지 말라 말이오. 주님이 만족하도록까지, 시험하시고 주님이  '이제 됐다' 할 때 그때 이제 나를 깨우고 그전에는 나 백지 지금 석방 운동 하지  말아라 그 말이오. 갇혀 놓으면 교인들은 막 자꾸 석방 운동한다고 돈을 들이고  뭐 들이고 이래 가지고 이제 주님을 근심하게 한다 말이오. 그럴 때에 '나를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 나를 깨우지 말아라' '왼팔로 베개하고 오른팔로  아듬고 계신다' 또 이번에 내가 찬송 하나 간단하게 하나 지어 놨는데 그 찬송이  몇 장이요? 그러니까 '흉흉한 파도 입고 고문 고형 잔치' 하고 또 뭐라 했지?  '섭리의 고개턱' '섭리의 고개턱 너머' 하나님이 섭리의, 섭리하는 그 섭리의  고개가 있어요. 절정이 있다 그 말이오. '섭리의 고개턱' '섭리 고개턱 너머 숨어  엿보시는' 가만히 숨어 가지고 '어짜는고 보자. 나의 사랑하는 자가 저거 정절을  팔아서 저 간부들에게 굴복을 당하나 안 당하나? 죽을 지경이면 그만 정절을  양보하나 안 하나?' 가만히 뒤에 이래 숨어서 엿본다, 창살틈으로 엿봐요.

 아가서에 보면 창살틈으로 엿본다 했어. 방안에 가만히, 방안에 앉아서 방안에  앉아서 사랑하는 자가 밖에 돌아다니면 어떤고 볼라고 고거 바늘로 구멍을 똑  뚫어 놓으면, 그래도 그거 환하게 보이요. 온 마당이 다 보이요. 바늘 구멍 뚫어  놓으면. 그래 놓고 딱 보면 저는 몰라서 사랑하는 자가 모르는 줄 알고 오만  수치스러운 거 다 하지. 이러나 그거 다 보거든. 이제 주님이 창살틈으로 본다  요래 놨어. 이러니까 지금 우리가 이 전투를 만났는데 이 전투 만났을 때에  이때에 이제 섭리의 고개턱 너머서 사랑하는 주님이 나를 숨어 엿보시고 계시는  '마중의 주님' 숨어 엿보시고 계시면서 나를 마중 나와 가지고 '네가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가 보자. 얼마나 정조를 굳게 지키는가 보자.' 이렇게 딱 숨어서 가만히  엿보면서 지금 나를 마중 나와 가지고 고개턱 너머서 기다리고 있어. '마중의  주님' '생명을 전하고 가리다. 생명을 전하고 가리다.' 이렇게 말을 한 것이라.

 이래서, 시험받는 가간도 열흘 동안이라는 그 환난 기간이 있어요. 요것도  믿여요. 지금 믿어 둬야 돼요. 그때 어려움이 있으면 '이 어려움이 얼마나 갈  건가?' 이래 가지고, 그래 벌써 '아이고 이거 어서 그만 끝났으면 좋겠다.' 그라면  벌써 귀신이 자꾸 충격을 줘 가지고 안 돼요. 그저 어짜든지 나는 그것으로  끝나면 되는 것이지, 끝나면 되기 때문에 더 뭐 딴것을 바라거나 생각할 필요가  없어. 그래서 그것도 인제 그것보다도 아는 사람은 더 쉬워. 열흘 동안이라  했으니 이것도 한정이 있다. 그 한정이 차면 저거가 가둬 둘라 해도 가둬 두지  못한다. 한정이 있으니까 한정이 차면 안 내보낼라 해야 안 내보낼 수 없고 또  한정 차기 전에는 안 된다. 이라기 때문에 한정이 있다는 이 지식을 미리 예비  지식으로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 너머에서 또 평안하고 유익이 있고 든든하다  그거요.

 '하리니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죽도록 충성하라 말은 이 기독교의 생활은  전부가 죽도록 충성 생활이오. 죽도록 충성하라는 것이 '네가 죽을 때까지 네가  이렇게 하라. 죽을 때까지 이렇게 하라.' 그 말인지. 네가 마구 결사적으로 이렇게  하라는 그 말인지? 죽도록 충성하라는 이 말은, 우리 기독자의 생활은 작은  것이나 큰 것이나 쉬운 것이나 어려운 것이나 그거 하는 일이 뭐, 주님의 일 하는  거 손가락 하나로도 할 수 있는 일 있지 안해요? 손가락 하나로 할 수 있는 일도  나는 자본은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들여 가지고 들고 가 있어야 됩니다.

손가락으로 놀릴 만한 것도, 일을 손가락으로 놀려도 될 만한 그런 것이지만 나는  다 내놨다 말이오. 나는 다 내놔. 어디든지 소유와 몸과 생명은 주님이 나에게 다  내서 나를 구속한 그 구속에 팔렸기 때문에 나는 언제든지 다 내놓고 주님에게  복종한 요것을 가져야 되지 뭐 '요거는 작은 일이니까 요거는 손가락 하나만  내놔도 되겠다. 요거는 작은 일이니까 돈 얼마 내놔도 되겠다. 요거는 시간 몇  시간만 내놔도 되겠다' 아니야. 작으나 크거나 주님의 명령에는 나는 소유와 몸과  생명은 다 내놔야 된다. 암만 그거 필요한 것은 하나라도, '필요한 건 하나밖에  없는데 필요 없는 이상을 그렇게 뭐 허비로 내놓을 게 뭐 있는가?' 필요 이상으로  허비를 그거는 당신이 할 일이고 나는 언제든지 다 내놓소. 소유와 몸과 생명은  한목 다 내놓고 당신이 '이거 뭐할라고 이렇츰 많이 가져왔노? 하나만 쓸 터인데.

꿀밤 한 개만 쓸 터인데 다 내놨어?' 꿀밤 한 개만 써도 나는 다 내놔요. 다  내놔야 그게 우리의, 다 내놓는 게 우리의 할 일입니다.

 '주님이 요번에 뭐 얼마나 쓸 겁니까? 그것은 내 손 하나로 해도 되겠구만. 손  하나만 해도 되겠구만.' 하면서 손 하나만 해 놓으면 하나님께서 그거 집어던져  버려요.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네가 나한테 어떻게 해?' 책망 받아요. 손  하나로 할 것인데 몸뚱이 소유 생명 다 가지고 왔습니다. '이거 뭐할라고 이렇게  남용을 해? 손 하나면 될 것인데 그만치만 가져오지 필요 이상의 것을 가져왔어?'  주님이 그렇게 할란지도 몰라. 그럴때에 '주님이 나에게 다해서 나를 샀기 때문에  나는, 다해서 대속하신 그 공로가 내것됐기 때문에 언제나 나는 다가 당신의  것이기 때문에 다를 가져오는 것이 지당하지 않습니까?' 이라면 주님이 '그놈  똑똑하다. 지혜롭다. 정상의 생각을 가졌다.' 이렇게 하실 것이라.

 '죽도록 충성하라 그러면 생명의 면류관을 내가 너에게 주겠다' 생명의  면류관이라 말은 권투 면류관 주겠다, 뭐 레슬링 면류관 주겠다, 또 뭐라 하더라,  이거 뭐? 축구 면류관 주겠다. 이런데 여게는 생명의 면류관 준다 했어. 생명의  면류관은 뭐이 생명의 면류관이요? 예? 생명의 면류관은 뮈이 생명의  면류관이요? 생명 승리인데 생명 승리가 뭐요? 생명이 뭐이요? 하나님하고 둘이  합작한 승리를 네게 주겠다 그 말이오. 하나님하고 나하고 둘이 합작한 승리.

 이것이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이보다 더 좋은 거 있어요? 하나님하고, 나 혼자  승리한 게 아니고 하나님하고 나하고 둘이 연결된 승리라. 연결 승리. 연결된  승리. 생명의 면류관, 생명이 뭐이요? 연결이 생명이라. 생명의 면류관. 연결 승리.

 연결됐는데 유대인들이 와 가지고 막 이거 훼방을 하지, 사탄이 훼방을 하지,  마귀가 훼방을 하지, 세상에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다, 잘난 사람은 뭘로 여게  상징했어요? 잘난 사람은 뭘로 상징했어요? 뭐 장군? 그래 왕 그런 걸 잘난  사람이라 하는데 그걸 여기서 상징은 뭐라고 했느냐 그 말이오. 상징은 뭘로  했어? OOO목사? 막 엉뚱이 대답들만 하네. 저 너 O군? 너 말이야, 너? 그래.

잘난 사람들은 뭘로 상징해 놨어? 나는 뭘 하기 때문에 지금 안 물어서 참 이거  좀 섭섭해하는가 싶어 물었더니만 그래 그만 너 대답해 봐. 그 밑에 O조사가  O집사가? 말해 봐. 너, 너? O가 아니가? 왜 엉뚱이같이 딴데 보노? 너 말이야,  너. 그래. 모르니까 떡 엉뚱이 슬며시 버물어 가지고 이래 뭐 어찌 할라고. 내가  그걸 잘 알기 때문에 꼭 너를 꼬집어서 말하는 거라. 그래 모두 말이, 목사님은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데 꼭 모를 사람만 딱 묻는다고. 모를 것만 내가 보거든.

 모를 것 보고 딱 묻거든.

 자, OOO목사님, 제일 잘난 사람은 뭘로 상징했어요? 엉뚱한 말 하네. 자칭  유대인은 예수 잘 믿는 사람 정통 법통 이제 그런 사람들 이라고 말하지 안했어?  사탄으로 상징했어, 사탄으로. 잘난 사람들은 사탄. 잘난 사람들은, 사탄은 마귀의  대왕이야. 제일 왕이라. 이러기 때문에 이제 이 세상에서 잘난 사람들. 또 마귀는  뭐이야? 이 서민들 못난 사람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뚤뚤 다 뭉치지, 또 예수  잘 믿는다고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것 다 뭉치지 이래 가지고 막 훼방을 합니다.

 이래 가지고 훼방을 하니까 하나님께서는 훼방을 해도 이게 꼭 요 사대관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니까 '네가 이놈 사대관을 정말로 네것을 삼아 가지고 있느냐?  너하고 나하고 정말로 동지할 수가 있는 놈이냐?' 이제 사대관을 그랬지만 좀  어려움이 있으면 그만 배신하고 빽 돌아가 버릴 그런 놈인가 그거 지금 당신도  시험해 보기 위해서 지금 시험한다 그 말이오. 당신도 우리를 시험 안 해 보고  하는 줄 압니까? 시험을 안 하고 속을라고? 그래. 이거 그만 이 서이를 합하면  뭐이요 이게? 세상이라. 이거 합하면 세상이라. 교회 세상, 세상에 모든 권세 세상,  모든 일반인 세상, 이게 뚤뚤 뭉쳐서 그게 세상이라. 이랬는데 시험을 하는데,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말은 네가 모든 것 다 기울여서 네가 이 일을  감당하도록 해라. 모든 걸 다 기울여서, 죽도록 충성하라 말은 너는 소유와 몸과  생명 다 기울여 가지고 이 일을 승리해라. 그러면 조그만한 거 들어도, 예를 들면  우리는 우리의 소유나 몸이나 생명을 만일 백 점짜리라 하면 한 점짜리 가지고  능히 승리할 수 있는 그런 때 우리는 백 점을 내놔야 돼요 한 점만 내놔야 돼요?  백 점 내놔야 돼요, 백 점.

 있다가 '너 왜 그래 한 점만 하면 될 때에 너무 남용하면 되는가? 절용을 해야  되지. 왜 남용을 해? 한 점만 하면 되는데 백 점 뭐할라고 가져왔어?' 주님이  그라면 어떻게 해요? 그라면 '주님이 나를 사신 것이 백 점 다해서 하나님이 백  점 다해서 샀기 때문에 나도 백 점을 다 거머쥐고, 가지고 내가 이 종의 값에  팔린 이것을 감당해야 되지 않습니까?' 이라면 주님이 칭찬하실 것이라 말이오.

 그런데 '충성하라 그라면 생명의 면류관 네게 준다' 하니까 생명의 면류관이  뭐이야? 어? 자, 이거 말이 많다. 생명의 면류관은 생명이 승리한 것이 생명의  면류관인데, 생명이 승리한 것이 생명의 면류관인데 생명의 면류관이 뭐인가? 저  먼데 사람 한번 물어 보자. 생명의 면류관이 뭐이 생명의 면류관이지요? 생명의  면류관? 저 먼데 사람. 아멘 내가 물을까 싶어서 저 먼데 가서 숨어 가지고 있어.

 물으면 어짤꼬 싶어서. 생명의 면류관. 자. 우리 OO교회 장로님 우리 그 장로님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O장로님 어디 있노, 내가 한번 언뜻 눈에 보인다. 생명의  면류관이 뭐입니까? 어? O장로님이라? OOO교회 장로님이라? OOO교회 장로님?  OO교회 장로님 말하니까, 그러면 OOO교회 장로님이 나섰으면 자, 백점인가  오십점인가 보자. 그라면 생명의 면류관이 뭐이지? 똑똑히 말해 봐요. 전달해 봐.

연결된 승리? 네, 한 팔십점 됐어. 생명의 면류관이라 말은 연결 승리라 그  말입니다. 연결 그 연결을 승리했다 말이오. 연결 이걸 뗄라고 막 온 세상이  달라들어도 떨어지지 안하고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안하고 붙는 것으로 승리했다  그 말이오. 생명의 면류관. 연결 승리. 연결돼 가지고 어떤 사건을 해서 승리한 게  아니고 연결, 그 연결 자체 연결 승리라, 연결 성공이라. 연결 성공. 자, 연결  성공보다 더 좋은 성공이 있습니까? 하나님하고 나하고 둘이 하나된 성공보다도  더 좋은 성공이 있어요 없어요? 이보다 더 좋은 성공이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없어. 제일 좋은 성공이라.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니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하나님하고 연결돼 가지고 있는데 거기 사망이 근방에 올  겁니까? 못 와. 둘째 사망의 해라 그말은 예수 믿는 사람은 자, 처음에 뭐이지요?  처음에 일호가? 일호가 살았고 살고, 또? 이호가? 죽었고, 또 삼호가? 삼호가  살았고. 이러니까, 삼호가 살았는데 이 삼호가 살았는데 이 산 삼호가 그대로  영원히 계속하는 사람은 이제 둘째 사망의 해를 보지 않습니다. 이 세번째 산  것이 새로 죽습니다. 그것은 몇 번 죽음이라요? 그게 두번째 죽음이라. 주님하고  나하고 둘이 연결돼 가지고 있으니까 그뭐 사망이 근방에 올 수가 있어야지?  이러니까 '둘째 사망의 해를 보지 아니하리라' 이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이 산  것이 첫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죽었고 또 죽은 것이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산  것이 그것이 이제 산 그것이 어떻게 하면 둘째 사망의 해를 보지 안해요? 두번째  살아난 것이 어떻게 하면 둘째 사망의 해를 보지 안해요? 하나님과 딱  들어붙어서 하나되면 둘째 사망의 해가 없습니다.

 좋아요 나빠요?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이 훼방을 견디는 게 문제라. 이  훼방을 견디는 게.

 자, 첫째는 시간관인데 자기 주변에 아버지고 어머니고 모든 주변의 사람들은 이  현재라는 시간에 맞춰 가지고 살라고 하는데 이거는 엉뚱이같이 현재 시간만  맞추지 안하고 영원 무궁의 시간까지를 맞춰서, 과거에, 다윗이 과거를 어머니  태중에서 죄 중에 잉태했다고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과거 시간. 현재 시간. 미래  영원 시간 그 시간에 맞춰 가지고 할라 하는데 아버지는 당장 이 시간에 맞도록  할라 하니까 이 시간에 맞도록 할라 하는데 '그라면 안 됩니다.' 하고 이제 과거  시간을 맞추니까 이거 겸손해져야 되지 '네가 좀 배짱 좀 내라' 이라는데 과거  시간에 맞춰 놓으니까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놈의 새끼 좀 어깨를 벌리고  기운을 차리지 안하고 왜 다 죽어가는 놈 같이 이래?' 과거 시간을 맞춰 놓으니까  이게 퍽 풀이 죽는다 말이오. '아이고, 아버지는 모르지만 나는 지금 이렇던  자이니까 내가 머리를 들 수가 없습니다.' 또 '그러면 지금 이제 현재 시간을  위해서 네가 이렇게 용기를 내라. 용기 내서 버쩍 한번 일을 해 재끼라.' 이라니까  영원에 보니까 그것이 자멸 자살 행위인데 그 일을 할 수가 없다 말이오.

 그라니까 암만 하라 해도 안 한다 그 말이오. '이놈의 새끼 왜 안 하노?' 이래  가지고 뭐, 저거 아버지가 부애난다고 뚜드릴 거라. 안 한다고. 이렇지만, 저거  아버지는 오늘 당장의 시간만 맞추고 영원을 맞추지 안하니까 서로 대립이  되겠소 안 되겠소? 은행에 가 가지고 '자, 저기 돈이 있으니까 얼른 한 주먹 불끈  쥐어 가지고 가자.

 이라는데 좀 있으면 감옥에 갇힐 터이니까 이거 그 뒤에 장래 뒷 시간을 보니까  그 시간에 일을 하지 못하니까 안한다 말이오. '야, 이놈아 저 돈이 꽉 있지  않느냐? 한 주먹 있지 않느냐? 한 주먹 거머쥐어라.' 이라는데 이것은 그 다음  시간을 보니까 문 밖에 나가지 안해서 이제 볼끈 붙들려서 감옥에 갈 터이니까  그거 잡을 수가 없다 말이지. 아버지는 안 잡는다고 야단을 치지 저는 잡을 수가  없지. 그거 무슨 문제요? 시간관이 틀려 그래. 시간관이. 그 시간만 알았지 그  다음 시간을 몰라 그래요. 그러기 때문에 그 일시만 아는 자와, 그 다음 시간  노래(老來)를 아는 사람과, 또 그 다음에 이제 영원 장래를 아는 사람과 달라.

 그라면 시간관이 좁아야 좋아요 넓어야 좋아요? 시간관은 당장 속력 있게 그  시간만 딱 보고 그 시간만 딱 맞추면 되지 안해요, 좋지 안해요? 이것은 이만치  계산을 대 보면 이만치 어둡고 계산이 맞지 않습니다. 오산이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시간을 그 사람은 천 년만 계산 잡아도 안 돼요. 시간이라는 전체, 알파와  오메가, 영원 전과 영원 후까지의 그 시간을 내가 살 시간이기 때문에 그 시간을  딱 계산해 가지고 그 시간에 맞춰서 제일 유익한 그 길을 내가 걸어가야 되겠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시간관이 틀리면 시비가 나겠소 안 나겠소? 부자간에 시비가  나겠소 안 나겠소? 부부간에 시비가 나겠소 안 나겠소? 난다 그 말이오. 나도  영원 시간관을 가지니까 소경 같은 일시만 보는 사람을 따라갈 수가 없어.

생사관이, 또 이거는 자꾸 생사관이 아버지는 자꾸, 지금 첫째 아담의 생명은 자꾸  죽어가는 거라 말이오. 첫째 아담의 생명은 죽어가는 것 아니요? 죽어가는 건데  첫째 아담의 생명은 세상법대로 살고, 인간의 자율대로 살고, 이 세상 인간  지식대로 사는것인데 인간 지식대로 사는 것은 죽는 것입니까 사는 것입니까, 저  군인? 어? 죽는 것인데 아버지는, 하나님의 지식대로 살면 서로, 자식이 하나님의  지식대로 사니까 아버지는 자식 죽었다고 야단을 지기고 또 자식은 아버지가  세상 지식대로 사니까 아버지 죽는다고 야단이고 서로 죽는다고 야단입니다.

이러니까 이게 맞겠소 안 맞겠소? 이거 훼방이 있겠소 없겠소? 훼방이 있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이 시간관, 생사관, 또 고락관, 고락은 하나님 그분에게, 그분이 주는  고생하고 이 피조물이 주는 고생하고 둘이 있는데 피조물이 주는 고생을 당해도  창조주가 주는 고생은 안 당할라 하니까 피조물에게 현재 고생을 단단히 당할,  당장 죽을 일을 당하고 있는데 뭐 '하나님, 하나님' 뭐 하고 고난당하는 길을  뿍뿍 걸어가고 하니까 애가 터질 것 아니요? '이 바보야. 자식도 더럽게 낳아  놨네.' 하며 귀때기를 때리며 야단일 거라. 이런 바보같은 놈이 어디 있느냐고.

 그거는 하나님이 주는 고난을 알기 때문에 인간의 피조물의 주는 고난 그까짓  거는 문제가 아니라 말이오. 피조물이 고난 주는 거는 암만 있어봤자 그게 영원히  나를 고난 주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은 영원하기 때문에, 이제 고난도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과 피조물이 주는 고난과 하나님이 주신 평안과 피조물이  주는 평안이 영 다르기 때문에 이 세상 고난 세상 평안만 아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고난 하나님의 평안만 아는 사람이 둘이 맞겠소 안 맞겠소? 안 맞아. 안  맞아. 이러니까 서로 훼방을 하지. 빈부도 그래요, 빈부도. 하나님이 주시는 부요는  영영한 부요인데 세상이 주는 부요, 하나님 법을 어겨서 받는 부요 그거는 당장  거지되는 것이니까 이렇게 빈부관이 달라 놨으니 합해질 수가 없다 그 말이오.

 요 사대관을 우리가 공부했는데 요 사대관을 자기가 이 세상 현실에 살아나갈라  하면 모든 세상 사람과는 마찰이 됩니까 안 됩니까? 이 세상 사람들과 마찰이 다  됩니까 혹 됩니까? 다 돼. 전부 다, 이 온 세상과 마찰되는 이 생활을 참고  견뎌서 나가야 이제 신앙이요 이것이 교회 생활을 한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서머나 교회 신앙 생활이 이것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네가 정말로 이 사대관을 성경대로 가지고 사느냐 안 사느냐 보기  위해서 마구 세상에 잘난 사람들을 막 동원시켜 가지고 자꾸 그래 살지 못하도록  막 방해를 합니다. 또 일반 평민 전부를 다 동원해 가지고 방해를 합니다. 잘  믿는 사람들을 동원해 가지고 또 방해를 합니다. 이렇게 방해하는데 방해해서  어디까지 방해를 해요? 옥에 가두기까지 방해했어요. 옥에 가두니까 자유 없이 뭐  재산도 뺏들고 뭐 오만 거 다 해요, 그런데 그렇게 방해하는 걸 누가 그렇게  방해하게 해요? 주님이 방해하게 해요.

 뭐할라고? 우리를 정평 정가해서 참으로 실상을 만들기 위해서, 거짓부리는  거짓부리인 줄 알고 실상은 실상인 줄 알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고쳐서 온전자  만들기 위해서 하시는 것이라 그거요. 사랑의 주님이 나를 온전케 하기 위해서  하시는 그거라 그거요.

 그런데 그거 한정이 있어요 없어요? 얼마나 한정이 돼 가지고 있어요? 열흘  동안 한정돼 가지고 있어. 얼마 돼 가지고 있어? 열흘 동안 한정돼 가지고 있어.

 열흘 동안 한정이 돼 가지고 있어. 그래 그라는데 그거 그래 가지고 훼방을  받으면 자꾸 삦고 깎고 '저거 등신이라, 저거.' 그래 가지고 나한테 자주  찾아와요.

 '우리 아들 이거 영 버려 놨습니다.' 이래 놓으니까, 처음에는 욕을 하다가  나중에는 아무래도 안 되니까 버려 놨습니다. 아무래도 이거 목사님밖에는 이걸  고쳐 줄 이가 없으니까 어짜든지 부탁합니다. 목사님 부디 부탁합니다.' 이래  쌓아면서 아들 죽고 등신됐다고 야단납니다. 그래 내 보기에는 아버지가 불쌍하고  가련한데 그 아들은 지금 괜찮은데 자꾸 이래 하고 있다 말이오. 그래서 '제가  어짜든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그렇게 힘을 써 볼 터이니까 안심하고  가십시오.' 이라면 또 그 사람은 또 제대로 듣고 또 저는 저대로 듣고 나는 또  내대로 말하고 그래요.

 이렇게 훼방을 받아도, 이 네 가지를, 이 사대관 가지기야 누가 못 가지요?  입으로 누가 못 가져? 지식으로 누가 못 가져? 가지는데 실지로 생활을 이대로  하기가 힘든다 그 말이오. 이래 하는 데는 여러 가지 시험이 있는 건데 이 시험을  이기면 좋을 게 뭐 있소? 이 시험을 이기면 뭐이 좋아요? 어? 이 시험을 이기면  좋을 게 뭐 있어? OOO? 생명의 면류관. 금면류관인가? 연결해 가지고 작업한  것이야 연결한 연결이야? 연결 승리. 하나님이 나하고 합작된 승리라. 이보다 더  큰 승리 있어요? 할랠루야!! 할랠루야!!! 이보다 더 좋은 거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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