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주님사랑

 

1986. 8. 12. 새벽(화)

 

본문:이사야 63장 7절∼14절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자비와 그 찬송을 말하며 그 긍휼을 따라, 그 많은 자비를 따라 이스라엘 집에 베푸신 큰 은총을 말하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은 실로 나의 백성이요 거짓을 행치 아니하는 자녀라 하시고 그들의 구원자가 되사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 사랑과 그 긍휼로 그들을 구속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신을 근심케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 백성이 옛적 모세의 날을 추억하여 가로되 백성과 양무리의 목자를 바다에서 올라오게 하신 자가 이제 어디 계시뇨 그들 중에 성신을 두신 자가 이제 어디 계시뇨 그 영광의 팔을 모세의 오른손과 함께 하시며 그 이름을 영영케 하려 하사 그들 앞에서 물로 갈라지게 하시고 그들을 깊음으로 인도하시되 말이 광야에 행함과 같이 넘어지지 않게 하신 자가 이제 어디 계시뇨 여호와의 신이 그들로 골짜기로 내려가는 가축 같이 편히 쉬게 하셨도다 주께서 이같이 주의 백성을 인도하사 이름을 영화롭게 하셨나이다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렇게 사랑하셔서 언제든지 함께 하시므로 강퍅한 바로도 거게는 아무 침해를 주지 못했고, 또 그들을 인도하실 때에 홍해의 바다가 가로막고 또 애굽 대군이 뒤에 추격했지마는 아무 상관이 없었고, 그 홍해를 갈라서 육지같이 건너게 하셨고, 또 지방에 이르렀을 때에 그 모든 물이 써서 먹는 자마다 다 죽게 되는 그런 어려움을 당해도 그런 것이 상관이 없었고, 농사 짓지 안해도 먹을 염려가 없었고, 물이 없어도 반석에서 물을 내서 마셔서 어려움이 없었고, 또 여러가지로 아무런 준비하지 안했지마는 인체의 영양에 모든 것이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다 충족시키셨고, 아무 훈련 없었으나 수많은 강한 나라들의 대적을 받았지마는 하나도 손해보지 안하고 그렇게 다 무사히 통과했습니다.

주님이 이렇게 극렬히 이스라엘을 사랑하셨으나 그들이 패역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그저 입술로 ‘참,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의 능력 크다.’ 이렇게 하나님이 하신, 지극히 크신 분이 이스라엘들에게 베푸신 이 은혜를 업신여기고 예사롭게 여기고 패역을 부리는 그것을 오래 동안 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차차 차차 당신이 함께 하심을 끊어서 마지막에는 하나님이 그들을 극렬히 극성스럽게 사랑하심같이 아주 극성스럽게 그들을 진노하고 배척해서 참 역사에 있는 민족 쳐 놓고 이스라엘처럼 기적과 축복을 본 민족이 없습니다.

그들이 당한 축복이나 기적은 사람들이 상상도 못 할 그런 기적과 축복으로 그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패역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오래 동안 선지자를 두어서 경고했으나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안하고 패역하고 저거 생각대로 저거 욕심대로 저거 지혜대로 하다가 다 비참하게 망해서 인류 중에 제일 이 세상에서 비참을 통과한 민족들도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큰 긍휼을 지금 베풀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을 그저 우리가 미련해서 깨달음이 모자라지 그분은 우리에게 대해서 대구 집회 때 기적을 나타내신 것도 보이는 그 육체의 기적이 그러하니까 그 심령 변화에 대해서는 주님이 얼마나 역사하시고 이런 것을 우리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뿐이고 그만 그 은혜 받아서 예사롭게 생각하고, 또 그 후에 거창 집회에서도 그러하고, 또 금년에도 대구 집회에서 또 그리하고, 또 이번에 거창 집회에서도 또 하나님이 기적을 보여서 역사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미련케 마귀란 놈의 미혹에 들어서 ‘그럴 때라 그렇다’ 하면은, 우연이라, 자연이라 말하면 그만 다 또 그대로 미혹을 받아 들어갑니다.

하나님이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낱낱이 계획하시고 창조하시고 창조하신 목적이 있어서 그렇게 창조도 하시고 보존도 하시고 관리도 하시고 이렇게 하지마는 온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자연이라 이래 돌리고 맙니다.

‘하늘이 생긴 것도 자연히 생겼다, 뭐 땅이 생긴 것도 자연히 생겼다, 인간이 나는 것도 자연히 생겨졌다.’ 또 망령되게 ‘애비와 에미가 자식을 만들었다' 이렇게 패역을 부려서 아예 모든 존재는 스스로 있는 존재라 이렇게 하고 있는 숫자가 전 인류 가운데 얼마나 많으냐 하면은 그것이 한 십분지 팔구나 됩니다.

이렇게 다 미혹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온갖 은혜를 베풀었어도 거게 대해서 아무런 감각 없이 ‘우연이라, 자연이라, 또 그럴 수도 있다.’ 사람이 범죄해서 망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서 축복받아 흥해도 ‘아, 보라. 산도 골짜기 있으면 만당 있고 만당 있으면 골짜기 있고 그렇게 순서적으로 순환 이치로 되는 것이 아니냐?’ 그렇게 말하는 자는 또 그렇게 말합니다. 이래서, ‘그게 사람 운명이 아니냐?’ 뭐 미혹을 받을라면 얼마든지 미혹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대집회 때나 또 개인에게 대해서나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우리에게 굉장히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를 사랑하셔서 애타하시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무시할라면 얼마든지 무시해서 버리는 패역한 마귀의 유혹을 받으면 그대로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이런 말씀에는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긍휼을 베푸셨으나 차차 차차 하나님의 긍휼이 끊어지는 것은 뭣을 보아서 알 수가 있느냐 하면은 하나님의 선지자가 끊어집니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끊어져서 하나님의 도리를 바로 증거하는 증거가 차차 차차 끊어져서, 예를 들면은 그 민족의 십분의 구가 하나님 말씀을 바로 증거하다가 십분의 팔, 십분의 육, 십분 오, 십분의 일 이렇게 하나님의 도리를 바로 그대로 전해 주는 선지자의 은혜가 차차 차차 줄어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가 가까왔고 하나님의 긍휼이 차차 거두어지는 그런 증거입니다.

지금 전도하는 일 많고 교회 세우는 일이 심히 많습니다. 그러나 교회 세우는 그것을 깊이 분석해 보면은 바로 세우는 것도 있지마는 전부 자기의 구멍가게를 만드는 거와 마찬가지로 자기 상점 만들고 기업체 만드는 거와 꼭 같은 이런, 그 뿌럭지에서 전부 악이 들어서, 자기 중심 자기 위주가 들어서 하고 있고 참으로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를 위해서 하는 그런 일이 아주 적습니다.

교파마다 이 교파는 저 교파를 시기하고 대적하고 훼방하고 하는 그게 막바로 뭔가? 그 뿌리를 보면은 하나님의 뜻이나 구원 이루어지는 거는 생각지 안하고 그 사람이 저희에게 오면은 저거 교파로 오면 좋고 남의 교파에 있으면 어짜든지 헐어서 죽일라고 하는 것이니까 그게 악이 아닌가? 그게 자기 중심 자기 위주들이지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가 아닌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또, 그뿐만 아니라 그러니까 하나님이 선지자의 은혜를 끊어서 도무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참 전하는 데가 희귀합니다. 봐서 여게 생명을, 지금 이 서울 지방에서 생명의 도를 전한다, 한 군데 전한다 하면은, 알면은 가만히 둬 두면은 모든 교인들이 그리 다, 아무것도 안 하니까 집회 참여하러 가자 하고 그 집회 가서 참여해 가지고 그리 끌릴 터이니까 맞집회를 합니다, 맞집회. ‘거기 집회하니까 우리도 집회하자. 거게 집회하니까 우리는 대심방하자.’ 이래 가지고 어떻게 하든지 그 집회에 참여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그런 역할을 하는 일을, 해방 후에 처음에는 그런 일이 없이 모두 ‘어데든지 은혜 있거든 받고 은혜를 받아 가지고 살자. 과거에 우리가 은혜를 받지 못해서 신사참배 때 다 패전하고 말았으니까 어데든지 은혜를 가서 받도록 하자.’ 이래 가지고 뭐 은혜 있는 집회한다고 하면은 사람들이 들이 모아들고 이렇게 했지마는 그후 지금부터 한 이십오 년 됐습니다. 됐는데, 지금 해방이 얼마 됐어? 그랬는데 그때에, 지금 한 이십오 년쯤 그때부터 그게 시작됐습니다. 어느 생명 있는 집회가 되면은 맞집회는 할 줄 몰랐어. 집회가 되면은 자기 교인들을 ‘이번에는 특별히 우리가 기도 주간으로 하자’ 하면은 제가 거기에 같이 기도하러 같이 가야 하니까 그렇지 안하고 ‘대심방을 해야 됩니다’ 이래 가지고 대심방을 시작해서 대심방 시작합니다. 몇 집 하고 난 다음에는 ‘모두 다 서로 심방들 하십시오’ 그라고 저만 살며시 그 은혜 있는 집회에 옵니다.

와 가지고 교인들은 못 오도록 딱 그래 놓고 그 나중에 교인들이 알고 심방 얼른 해 놓고 와서 보니까, 와서 보니 교역자도 숨어서 그래 은혜 있는 집회는 참석을 하고 그래 다니는 그런 일 하다가 마지막에는 ‘이런 거 아니다, 이것도 사람 보기에 도리어 마음에 야비하고 이러니까 그럴거 아니라 맞집회를 해야 되겠다.’ 맞집회라 하는 걸 시작했습니다.

시작해서 자기네들과 하나가 되지 않는 그런 교파나 그런 사람이 집회 인도를 하면 자기네는 마주 꼭 한날 한시에 맞집회를 해 가지고 그렇게 교인들을 그런 집회에 참여를 못 하도록 그렇게 했었습니다. 지금 인제 그것이 공통화돼 가지고, 기다립니다. ‘아무 데 보자. 아무 데 그 집회에 집회가 어느 날짜인고?’ 한 날짜에 뭐 전국의 집회가 거의 다 됩니다.

이번에 거창에 보니까 어떤 목사님이 한 분 와 가지고 저한테 인사를 하는데 자기 진영에서도 우리와 같이 한 날 집회를 시작하기로 그렇게 했는데 그분이 강사라. 시작하기로 했는데 아예 딱 중단해 버리고 ‘이 집회 한번 참석해야 되겠다’ 하고서 와서 참석을 하러 왔다고 이라면서 첫날부터 와 가지고 단식하고 그렇게 참석하는데 나중에 마지막 집회를 마치고 난 다음에는 ‘백 목사님이 삼봉산에 가 가지고 기도를 했다 하니까 삼봉산에 한번 가보고 가야 되겠다’ 하면서 그 ○○교회에 있는 전도사님의 안내를 따라서 삼봉산을 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찾는 사람은 찾고 그러합니다. 그것이 일반 교계에서만 그런 게 아니고, 또 우리 자기 진영 안에서도 그러합니다. 자기 진영 안에서도 어떤 진영이든지 거게 은혜 있는 집회가 있으면 그 집회에 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가지고 자기 교인들을 어짜든지 은혜 받는 걸 가로막습니다. 다른 모든 진영이 다 그러합니다.

그런데 우리 총공회 진영에서도 자기가 와서 총공회 참여는 안 할 수 없으니까 와서 참여하지마는 교인들은 가자고 광고도 안하는 그런 교회가 있다 말을 들었습니다. 또 될 수 있는 대로 교인들을 참석하도록 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 참석하지 못 하도록 그런 모든 사건을 일으켜 가지고 그래 가지고 참석 못 하게 그렇게 합니다.

인제 그것보다도 더 허무하게 참 말라진 그런 분들은 ‘이 집회에 내가 가면은 교인들이 갈 거라. 내가 가면은 교인들 안 갈 수 없고 내가 가면은 교인들 갈 거라. 교인들이 따라가면은 교인들 다 뺏긴다.’ 그러면 뺏기면 어디로 가겠습니까? 자기가 진리를 못 가르치면 진리 안으로 인도해도 인도해야 벌이나 면하지.

선지자의 은혜가 끊어지는 그것이 벌써 하나님의 진노의 저주를 받은 그 증거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선지자 끊기고 나면은 여게 보니까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이 자기에게 끊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시는 것이 보여지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됩니다. 모든 일을 해도 제가 혼자 하고 하지 하나님이 돕는 그런 일이 보이지 안하면 벌써 그 다음은 오늘인가 내일인가 하나님의 저주와 징계가 온다는 것을 그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그 뜻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고 애를 쓰면 즉시 효력이 또 있는 걸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학개서에서는 “네가 성전 기초를 쌓던 그날부터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라. 네가 그 성전 기초를 쌓기 전에는 너에게 이런 그 모든 것이 다 고갈하고 다 동결되는 그런 형편인 것을 네가 추억해 보라. 그러나 그날 이후로서는 너에게 마치 봄 날이 돌아오면은 모든 데 온기가 오는 것처럼, 모든 생물들이 다 움이 트고 이래 싹이 트는 것처럼 네가 이렇게 바로 옳게 살라고 작정을 하는 그날부터 네 모든 소행을 네가 살펴 보면 알 것이다.” 이래서, 하나님과 가까이 하면 그 모든 것이 다, 뭐 아무리 제가 온상을 한다 해도 봄만은 못합니다. 이제 하나님이 거석하면 모든 자기가 생각도 안 한 저 주변에 널리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로서 축복으로 이와 같이 생기가 돌아오고, 벌써 하나님에게 패역하면은 자기가 생각보다도 자꾸 모든 것이 계획이 다 줄어지고 끊어지고 또 그뿐 아니라 의외의 일이 생기게 됩니다. 이래 가지고 망치게 됩니다.

이러니까 이런 걸 봐서 우리가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는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에게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 내가 며칠 전에도 말한 거와 마찬가지로 마음에 겁이 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츰 사랑하시는데 우리가 회개하지 안하고 패역을 부리면 하나님의 진노가 오지 않느냐 늘 그런 두려움이 생겨집니다.

그래서 저는 내가 어제도 말했지마는 내가 이제까지 믿어 나온 대로는 내가 하나하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셋이나 넷이나 한 양으로 과장되이, 좋은 점이 과장되이 이렇게 선포됐으니까 앞으로는 과소의 선포 있는 그것이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는 선을 행했는데 악으로 선포되고 선을 열 했는데 선을 하나 한 것으로 선포하는 그것이 있어야 내가 하늘의 심판을 면하겠다. 왜? 땅 위에서 행한 것보다 오히려 광고가 더 많이 돼 가지고 칭찬을 많이 받고 이렇게 다 인정을 많이 받았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느냐 그것을 생각하고, 내 개인으로서는 또 그와 같은 성질이 오지 않느냐 이렇게 늘 생각을 가졌는데 그래도 그것이 나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마음이 강하게 나에게 있는 것이 하나님이 내게 대한 진노를 풀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긍휼을 입도록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제가 가졌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가 오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은 내게 은혜 베푸신 것이 이렇게 크셨는데 그 은혜에 대한 합당한 행위는 우리에게 너무 희귀하고 희소하게 되어 있다 하는 이 점을 찾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노를 푸는 일이 되겠고, 하나님의 긍휼은 업신여기고 제가 하나님에게 대해서 행한 일은 크게 여겨서 하나님의 하신 은혜는 아주 과소 평가하고, 지나치게 아주 적게 평가하고 제가 행한 행동은 과대 평가해 가지고 ‘나는 이렇게 행동을 크게 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그것이 벌써 멸망하는 그 징조요, 심리 상태요, 그 사람의 정신 상태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번에 뭐 역사하신 거 보십시오. 하나님이 역사하신 일이 얼마나 컸는지? 거창서 그렇게, 전국에 측후소에서 말하기를 ‘이번 주간이 제일 일 년 중에 제일 더운 주간이라’ 했는데 그 주간에 우리 때문에 날을 선선하게 했습니다. 또 비온 것이라든지 물이라든지 우리 비위에 맞도록 안해 줬습니까? 어제도 저는 감사했습니다. 가 가지고, 양산동 가서 좀 거기에 뭐 시킬 일이 있어서 조금 시키고 그래 산에 기도실에 가 가지고 딱 하고서 이렇게 딱 준비하고 다 쳐놓고 앉으니까 소나기가 되게 퍼붓습니다. 퍼부어서 평안한 가운데에서 거기서 또 기도하고, 또 기도 다하고 또 올라 하니까 날이 바짝 들어서 또 왔어.

그러면 기적으로, 그거 끌어다 붙이는 게 아니고 기적을 기적으로, 긍휼을 긍휼로 깨닫는 사람은 깨닫고 그것을 뭐 ‘그럴 때도 있지 않느냐?’ 자연으로, 우연으로, 패역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패역하게 생각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신 그 기적과 긍휼도 세밀히 알아야 되겠고 하나님의 진노의 흔적도 세밀히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흔적도 사람들이 분명히 하나님의 진노이건만은 그 본인은 뭐 ‘그럴 때도 있지?’ 하는 그자는 마지막에 절단이 나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아가서 8장 6절에 보면은 “너는 나를 인같이 마음에 품고” 인같이 마음에 품으라 말은 도장을 꼭 찍어 놓으면 도장의 것이 됩니다.

어떤 것이라도 문서든지 기록하고 난 다음에 도장을 찍어 놓으면 그러면 그 도장 찍은 사람이 책임져야 됩니다. 도장을 찍으면 도장 찍은 그이의 것이라 말입니다.

“너는 나를 인같이 마음에 품고” 그러면 주님이 내 마음에 도장 찍은 거와같이 나는 주님의 것이라, 나는 주님의 것이라. 인을 찍어 놓으면 변동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이거 모양으로 주님의 것이라 하는 것이 금방 주님의 것이라 했다가 마귀의 거 됐다가, 또 세상것 됐다가, 인간의 것 됐다가 그렇게 하지 말고 인을 찍어 놓은 거와 같이 너는 내것인 것을 항상 기억해라.

“인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이는 도장을 가지고 손으로 찍으면은 다 찍은 사람이 도장의 주인의 것이 되는 것처럼 너희의 모든 행동은 행동 그것이 낱낱이 다 주님의 것이 되어지는 이것을 해라. 너도 주님의 것이요, 네 행동은 이거는 주님의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항상 네 모든 행동 한 것이 다 주님의 도장 찍어 놓은, 주님의 것이 되는, 네 행동 전부가 주님의 것이 되고 네가 주님의 것이 되도록 이렇게 해라.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참 세상 사랑도 사랑하는 그것은, 죽음같이 강하다 그말은 죽음이 올 때에 그 죽음을 사람들은 벗어날라고 애를 쓰지 않습니까? 죽음을 있는 힘 다 기울여서 죽음을 당하지 안할라고 하는 것처럼 사랑도 있는 힘을 다해서 그 사랑을 뺏기지 안할라 하는 것이 그것이 필연적이 아니냐? 네가 어떻게, 안 죽을라고, 죽음이 올 때에는 안 죽을려고 네가 있는 힘을 다 기울여서 그 힘이 있는 마지막 하나까지 다 죽음을 면할라고 애를 쓰는 것인데 네가 나를 사랑하면 내 사랑을 네가 뺏기지 않고 잃지 않기 위해서 네게 있는 최후의 힘 남은 것 하나까지도 전부 나를 사랑하는 그 사랑을 뺏기지 안하고 놓지 안할라고 애를 쓸 것이 아니냐?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이 사랑하는 것이 이것이 필연한 일인데 “투기는 음부같이 잔혹하며” 그 미움이라 하는 미움은 참 지옥같이 냉정하고 무정한 것이며, “불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주님의 사랑을 참으로 깨닫는다면 뭐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그러면 이 세상에, 이사야 43장에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강물을 건너도 그 강물이 너를 침몰치 못하게 한다” 그말은 온 세상 이 부귀 영화가 가득이 찬 그 속에 가도 그런 것들에게 네가 파묻히지 안하고 항상 거게서도 주님만 사모한다는 것입니다.

산다씽은 그의 전기에 보니까 뭐 미국이니 이런 데 다닐 때에는 한번도 주님을 깜박도 잊어 본 일도 없었는데 불란서 콜이라 하는 그 거리를 갈 때에는 너무 화려하게 꾸며 가지고 있어서 거기서 다니다 보니까 네 시간을 주님 잊어버렸다고.

네 시간을 주님 생각지 못하고 그만 보고 하는 바람에 네 시간이 그냥 그것이 평생 그에게 암흑 중에 큰 암흑입니다. 자기가 불란서 거기 가 가지고 거리를 걷는 그 아주 화려한 거기에서 자기는 주님을 네 시간, 늘 주님하고 연결하고 사모한 그것이 네 시간 끊어진 그것이 원통해서 평생 말하면서 그 전기에 기록해 놓은 것을 봤습니다.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 뭐 홍수라도, 홍수는 어떠한 죄악이 가득찬 죄악 속에 아무리 파묻어 놔도, 마치 옥이 진흙 속에 들어도 그 진흙에 물들지 않는 것처럼 이렇게 어떤 죄악이 가득찬 죄악 속에 파묻혀도 그 죄악으로 인해서 주를 잊어버리는 그런 죄악에 물들지 않는 그렇게 하는 걸 말합니다.

“못하나니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온 재산 전부하고 사랑하고 바꿀라 해도 다른 사람은 다 재산 치워 버리고 사랑할라 하지 그 사랑을 팔아서 재산을 살라 하는 것이 없는 것인데 너희들이 나를 사랑하는 그 사랑이 어떻게 내가 너를 사랑했는데 나를 사랑하는 그 사랑이 너희들에게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는 그것을 반성하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리 복잡한 일이고 복잡한 일이 있고 아무리 뭐 좋고 기쁘고 즐거운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는 우리를 대속해 주신 사랑하시는 주님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또 우리에게 암만 벼락 같은 산 벼락 같은 그런 어떠한 뜨거운 일이 있어도 주님이 나를 사랑하는 그 사랑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하는 주님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내 모든 사업이나, 기업이나, 가족이 어떻게 된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인해서 주님이 나를 사랑하는 그 사랑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산다씽 같은 그런 분은 일생을 살면서 주님의 그 사랑을 잊지 안하고 항상 주님의 사랑이 자기 속에 충격해서 그 사랑에 충격이 돼 가지고, 거게 감격이 돼 가지고 늘 살다가, 불란서는 세계에 제일 사치스럽고 화려한 곳입니다. 그 나라는 사치와 화려로 특수한 나라입니다.

제가 불란서 사람 하나 만나봤는데 보니까 그 사람들은 참 사치라도 추접한 거라.

뭐 코에도 귀에도 고리 다 하고 손가락, 남자인데 보니까 열 손가락이 그뭐 아주 진주로 가지고 열 손가락 다 끼어, 엄지 손가락에도 끼어. 이래 가지고 이라고 있는데 그 참 곤욕인데 저거딴에는 그게 좋은 거라.

그렇게 사치, 화려, 미를 좋아하는 사람들인데 그만 거게 가 가지고 이렇게 보다가 네 시간 동안 주님 잊어버린 것이 평생 원통해서 자기 전기에 기록해 놓고 그렇게 혹 잠깐 동안 오 분 십 분 그렇게 주님을 잊어버린 그런 일이 있었는데 주님을 잊어버린 그 암흑이 세 번 있었는데 세 번 중에 불란서 가 가지고 네 시간 있은 것이 제일 많이 있었다고 그렇게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 이는 다 주님의 사랑을 참 깨닫고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함이 그렇게 컸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만 함정에서 나오도록 그렇게 했습니다. 주님 사랑했는데 보니까 주님 사랑하는 그것이 ‘요렇게 하면 내가 이 세상과 나를 사랑하고 요렇게 하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된다’ 할 때에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되는 요렇게 한 그것이, 요렇게 한 그것이 나중에 하고나서 보니까 결국은 자기를 함정에서 구출한 일이 되는 그것이 모든 성도의 생활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자기를 사랑 할 수 없어.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위하고 자기를 돕고 자기의 유익되도록 자기의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유익되게 하려고 한 그일이 보니까 자기 망친 일이요, 자기 사랑하는 자를 망치는 일이요, 그때에 그만 자기는 뭐 망하고 해하고 자기에게 속한 자야 어찌 됐든지 주님 사랑하는 그 사랑함으로 행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함으로 행한 그것이 나중에 보니까 자기를 함정에서 건진 것이 되고, 또 “저가 나를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그러면 주님을 ‘주님은 이런 분이시니’ 하고서 주님 대우한 것이 나중에 보니까 전부 자기의 발판 만들었고, 주님 대우한 그것이 자기를 높인 거 되었고, 주님을 사랑함이 자기를 함정에 건진 것이 되고 하는 이것이 기독교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는 이 사랑을 자꾸 우리가 사랑하면 사랑하게 돼집니다. 사람도 말이요, 사람도 자꾸 사랑하면 점점 사랑이 커지고 미워하면 미움이 점점 커집니다. 아무리 사랑치 않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을 외식으로 그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사랑해도 자꾸 사랑하면 나중에 참 사랑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속담에 그런 말 있지 않습니까? 옛날에는 시어머니들이 며느리에 대해서 너무 학대를 많이 했는데, 그 고부끼리 아주 불목하고 있는데 그 아들이 보니까, 아들이요 남편인데 그 남편이 보니까 자기 아내와 부모가 불목하고 있으니 아무래도 이거 화목을 해야 되지 이거 안 되면 가정이 망하겠다 싶어서 그 아내에게 말하기를 ‘여보, 저 할마이 저거 그만 죽여 버리자.’ 그라니까 며느리가 있다가 따그르 웃으면서 ‘아이고, 죽이면 되는가요?’ 이래도 좋아한다 말이오.

그래서 ‘밤을 삶아 먹이면은, 한 말만 삶아 먹이면 늙은이는 대번 죽는다는데, 매일 딱 잊어버리지 말고 매일 한 개씩만 꼭 삶아 먹이면 죽는다는데 이 밤을 한 말 그러면 삶아 먹이자.’ 이라고 한 말 삶아, 한 말이 몇 개나 되겠습니까? 하루 한 끼 한 개씩 하루 세 개씩 삶아서 이래 먹이니까 한 말 먹이니까 할머니는 좀 살이 찌고 그 밤은 다 없어지고 ‘아, 그런 거 아니라 이거 한 말 먹여 가지고는 안 되니까 그 조금 더 먹이면 된다 하니까 그러면 한 말 더 삶아 먹이자.’ 그러니까, 나중에 한 말 삶아 먹였는데 며느리가 있다가 ‘아이구, 우리 어머니는 세상 떠나면 안 됩니다.’ 그 죽는 일은 그라면 안 된다고 그래 마다고 그래 반대를 하더랍니다.

그게 뭐냐 하면은 자꾸 밤을 구워 먹이고 ‘시어머니, 시어머니.’ 죽이기 위해서 계획하고 ‘시어머니, 시어머니.’ 사랑하고 이랬지마는 나중에 시어머니도 며느리 사랑하게 되고 또 그 껍데기로 시어머니를 사랑했지마는 그 사랑이 참 사랑이 되고 말았다 그말이오.

그렇습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좋은 일을 억지로 해도 자꾸 좋은 일 하면 좋은 사람이 돼 가고 나쁜 일은 자기는 할 마음이 없지마는 그저 한 방편적으로 계획적으로 그렇게 한다고 이렇게 했지마는 나쁜 일한 것은 자꾸 하면은 그게 몸에 배서 나쁜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이 사랑을 자꾸 주님을 사랑하고 사모하고 애를 쓰면 주님을 사랑함이 우리 속에 이루어져서 내가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가 되고 주님을 잊어버리고 물질을 자꾸 생각하고 물질 물질 생각나면 나도 모르게 나중에 물질의 사람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는 예사롭게 생각하지마는 이 세상에 역부러 했든지, 외식으로 했든지, 어떻게 했든지 자기 생각 가진 대로, 자기 마음 가진 대로, 자기 행동 가진 대로 자기가 되고 만다는 그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이래서, 베드로전서 1장에는 말씀 하시기를 “하나님께서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그 행한 대로 갚으신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뭐이냐 하면은 자기 행동이 자기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행한 대로 갚는다 말은 자기 된 대로 무궁세계에서 대우 받는다 그말이오. 자기 행한 대로 갚는다 그말은 자기 된 대로 대우 받는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행함과 자기와 다르지 않는가?’ 그라지만 아니오. 행한 대로 됩니다.

거짓걸로 했든지 참으로 했든지 한 번 행했으면 그만침 그 사람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억지로라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꾸 사랑할라고 애를 쓰면 마지막에는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돼 버리고 맙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완전을 사랑하는 사람이며,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며, 전능을 사랑하는 사람이며, 대주재를 사랑하는 사람이며 우리가 그래 가지고 다 가면 전능자 앞에 설 거라 말이오. 전능자 앞에 다 서면은 자기 모양 생긴 것이 보니까 주님 사랑함이 다 주님 사랑하는 사람됐고, 주님 사랑하는 것이 요만침 있는 사람 있고, 주님 사랑하는 것은 쌀내끼만치도 없는 사람 있고 그것이 무궁세계에 하나님 앞에 가서 서는 자기의 영광이요 차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번에 가서 배운대로 주님을 사랑하는,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또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보다도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이신 그분을 내가 전폭으로 내 전부가 그분을 사랑한다면 그분도 그 전부로써 나를 사랑할 것 아닙니까? 이보다도 더 좋은 결실이 어디 있으며 성공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고로, 주님을 사랑하는 방편은 이번에 배웠는데, 늘 집회 한 데도 배우는데 언제 사랑하느냐? 우리 현실에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이 이루어집니다. 우리 현실은 언제든지 두 사이에 나는 끼어 있습니다. 두 사이에 오른편에는 몇이라 했습니까? 오른편에 몇입니까? 넷. 피, 성령, 진리, 중생된 영 이 넷은 내 심신을 이 넷의 것이 되자고 하고, 또 왼편에는 몇입니까? 왼편에도 넷인데 악령, 악성, 악습, 또 세상. 녜, 그래 너이입니다. 악령, 악성, 악습 그 셋이 합해서 그걸 세상이라 합니다.

그런데 넷이고 요 넷이 요래 있는데 우리 현실에서 요 넷이 요래 가지고 오른편에 넷, 왼편에 넷 요래 가지고 있는데 내 심신이 요 가운데 끼어 있다 말이오.

가운데 끼어 있는데 그때 내가 왼편을 사랑하느냐 오른편을 사랑하느냐 거게서 하나님도 당신을 사랑하라고, 또 이 왼편에서는 세상을 사랑하라고 요렇게 하고 있는데, 그때 마치 자기의 사랑하는 정절 부인의 아내가 있는데 그 사이에 간부가 있고 본남편 자기가 있는데 거게서 지금 누구를 사랑하느냐 할 때에 그때에 간부가 수만가지로 꾀우지만 간부를 버리고 본남편을 사랑한다는 그것으로서 뭐 일 년 내내 평생 주님을 사랑한다 어떻게 하는 것보다도 그 현실에서 주님을 사랑하는 그것으로서 주님은 사랑을 받고 주님과의 사랑은 결실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는 방편은, 현실은 마치 본 남편과 간부와 그 사이에 간부가 오만 미혹과 협박과 모든 보배를 주면서 요렇게 할 때에 그때에 주님을 사랑함으로 그걸 배반하고 하는 거게서 결실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네가 나한테 절하면 나한테 굴하면 모든 걸 다 주마” 할 때에 그 때에 예수님께서 “사단아 물러가라 그만 경배하고 섬기라 하셨느니라” 요 말에 아버지는 만족한 것입니다. 요 말에 아버지는 만족하고 사단은 물러가고 천사들을 보내서 수종들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짜든지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요것을 자꾸 길러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돼야 되겠고,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돼야 되겠고, 영감을 사랑하는 사람이 돼야 되겠고, 주님의 피를 사랑하는 사람이 돼야 됩니다.

우리가 땅 위에 있는 뭐, 이것만 하면,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이 모든 것을 더 하시마” 이렇게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주님이 모든 걸 다 협조해 주는데 누가 그를 망치겠습니까? 우리는 마귀에게 꼬여서 자꾸 자살하는 행위를 자꾸 찾아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남편이 어떻게 해도 주님을 사랑하고 ‘남편을 순종하느냐, 주님을 순종하느냐?’ 요럴 때 생명을 내놓고도 남편을 사랑하는 것보다 주님을 사랑하는 그것이 나중에 남편을 살리고 남편을 사랑하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큰 축복으로 지금 향하고 계시기 때문에 요때에 우리는 바짝 일어섭시다. 이때에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날 수 있고, 머리되고 위에만 있을 수 있고, 남에게 꾸어 주고 꾸일 것이 없는 우리가 될 수 있습니다. 뭐 어떤 궁지에 빠져도 주홍 같고 진홍같이 붉은 죄라도 눈과 같이 양털같이 희게 되고 땅에서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수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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