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28 08:02
중생된 새사람 생활
본문 : 로마서 8장 18절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이 본문을 많이 읽어서 18절로부터 39절에 있는 이 말씀을 많이 읽어야 깨달아지게도 되고 또 거게 대해서 체계적으로 뜻이 우리에게 믿어지게 됩니다.
체계적이라는 그 말을 종종 쓰는데 단어에 체계적이라, 체계적이라는 말의 반대는 뭐이냐 하면 기형적이라 그런 말입니다. `기형적이라 말은 사람으로 말하면 그 이목구비 수족이 다 고루고루 다 더 클 거는 크고 작을 것은 작고 이렇게 그 모든 균형이 바로 갖추어져 가지고 있는 그것을 가리켜서 체계적이라고 말하고, 기형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느 한 부분만 크고 다른 부분은 작은 그런 것을 가리켜서 기형적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눈은 눈만치 크고 귀는 귀만치 크고 또 팔은 팔만치 길고 다리는 다리만치 길고 이런데 다리는 서너 발 되고 다리 한 개는 서너 발 되고 몸뚱이는 그저 한 뼘이나 되고 이라면 그거 다 병신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깨달음도 깨달음이 체계적으로 골고루 모든 균형이 갖추도록 이렇게 구비하게 깨닫는 깨달음이 있고 사람 몸뚱이 기형인 모양으로 그렇게 기형적으로 그렇게 깨닫은 것도 있다 그거요.
이래서, 어떤 사람은 이런 면 너무 지나치게 믿고 저런 면 전연히 안 믿고, 이 면 단단히 강하게 알고 있고 또 다른 면 전 모르고 있고 하는 그런 게 모두 다 기형적인 신앙입니다.
초두에,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라고 할 때에 우리 신앙 생활 하나님의 뜻대로 이렇게 신앙 생활은 어떤 게 신앙생활인, 하니 중생된 새사람 생활이 신앙 생활입니다.
그러면, 새사람 생활은 어떤 생활인고 하니 하나님의 의, 완전한 의입은 의인 생활이 새사람의 생활입니다. 그러면, 의인 생활은 하나님의 지공 지성의 공심판을 다 완전 통과한 그 의인입니다. 이러면 이것은 우리가 그런 실상으로 우리가 행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대신 행하셔서 우리는 아무 행한 공로 없지만 예수님이 대신 행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의인으로 하나님의 공심판을 다 통과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 대신 이 하나님의 의를 행하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공심판에 다 무난히 합격되어 통과되게 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내가 입고 내것 삼았기 때문에 이렇게 되어졌으니까 나는 예수님의 것이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댓가를 내는 것은 그거 댓가되는 거는 아니지만 예수님이 내 대신 행하시고 죽기까지 하신 그 모든 행위를 다 내것 삼으니까 이제 나는 예수님의 것이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것으로 영생합니다.
예수님의 공로로서 나는 의인이 됐고 하나님의 자녀가 됐고 영생하는 자가 됐고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들을 다 통치할 수 있는 그런 복있는 자가 됐습니다. 그러면 이게 의인 생활이요, 산 사람의 생활이요, 하나님의 아들 생활이요, 새사람 생활이요, 참사람 생활이요. 완전자의 생활입니다.
그러면, 이 생활을 할라고 하면 이 세상에서 대립이 있고 마찰이 있습니다.
그러면 대립이 있고 마찰이 있는데 그 대립하고 마찰하는 것들이 몇 종류나 되느냐 하면 기껏 두 종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이제 받는 고난, 이제 고난 받은 것은 왜 고난 받느냐? 우리와 이질적인, 이질이라 말은 본질이 다르다. 다를 이(異)자, 바탕 질(質)자, 그러면 바탕이 다르다 그말이오. 우리와 질이 다른 이질적인 것들이 있습니다. 또 우리와 이질적인 것들이 있으니까 항상 행동에 우리와 대립이 되어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들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없으면 고난을 당하지 안하지만 그것들 때문에 고난을 당합니다.
그렇게 대립되고 우리와 마찰되고 우리와 이질적인 것이 되고 우리와 반대되어 있는 그런 것들이 종류로 말하면 몇 종류입니까? 두 종류입니다. 이거 두 종류인데 두 종류는 뭐뭐인고 하니 천사가 변질된 그 마귀입니다. 사탄이라고도 하고 붉은 용이니 뱀이니 용이니 귀신이니 마귀니 사탄이니 하는 그런 것들이 다 타락한 천사입니다. 변질된, 천사가 변질돼 가지고 마귀가 됐습니다.
또 변질된 거 하나는 뭐인고 하니 변질된 이 마귀가 와 가지고 에덴 동산의 인간의 시초를, 하와를 꼬와 가지고 배와가 거게 꼬임 받아 가지고 또 변질됐습니다.
그러면 변질된 것은 천사 중에 한 단체가, 천사 중에 한 머리 천사가 변질됨으로 그 부하가 한목 내려왔는데 그 부하가 수가 참 바다 모래 수 같습니다. 그러면, 변질되지 안한 천사의 수는 얼마나 되는가? 변질되지 안한 천사의 수는 그런 것의 명 억억만 배도 넘습니다. 변질 안 된 천사의 수는 변질된 천사의 수의 여러 수억억만 배도 넘습니다. 억억만 배도 넘는다 그말이오.
또 그것으로 말미암아 변질된 사람들이 있으니 변질된 사람들은 전부 다 사람들은 다 변질됐었습니다. 전부 변질돼 가지고 본 지위에서 쫓겨났습니다.
이렇게 사망에 속해 있고 저주 아래에 있었는데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께서 구출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이 세 가지 하나님의 진노를 다 풀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세 가지를 다 완전히 행한 그 하나님의 의 이것을 행해서 변질된 사람의 모든 변질의 값을 예수님이 대신 내시고, 변질된 값을 형으로 대신 내시고 변질되지 않는 자가 행해야 될 온전한 행위를 또 대신 행해 가지고 우리에게 칭의를 줬습니다.
그러면 사죄와 칭의를 줘서 이 행동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과 화친되는, 마귀하고 하나되는 것을 이제는 떼 가지고 하나님과 화친해서 하나님이신 성령으로 우리가 중생되고, 하나님의 성전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는 이래 가지고 밀접한 친교의 영생을 가지게 됐습니다.
이래서 이렇게 우리가 변질된 우리들이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이 변질에서 예수님의 대속으로 완전히 변질 회복이 됐습니다. 변질 회복이 완전히 돼서 이제는 변질된 것이 하나도 없도록 그 변질된 것을 다 예수님이 담당해서 완전히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근본 그대로 올바른 것이 돼져 버렸습니다. 완전한 것이 돼졌습니다.
완전한 것이 된 이것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인데 이 공로를 입혀 줘서 이제 이 공로로 가지고 우리가 삽니다. 이 공로대로 살고 구원해 주신 이 구원대로 살고 살려 주신 대로 이 살려 주신 그 생명 가지고 살고, 의인으로 살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고, 변질 안 된 정상적인 사람으로 우리가 삽니다. 이렇게 살라고 하니까 변질된 것과 마찰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마찰이 될 수밖에 없는데 그 마찰된 것을 가리켜서 `이제 받는 고난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고난이 왜 있느냐? 이 변질된 둘과 마찰이 돼 가지고 지금 고난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받는 고난과' 이제는 고난이 있어 봤자 변질된 둘과 서로 대립이 돼 가지고 고난이 있지만 장차 나타날 영광은 앞으로 변질된 둘 이것이 무저갱에 가둬 버려서 없어지고 나면 그때 나타날 영광, 그러면 이 변질된 것을 다 없애 버리고 나니까 우리와 동질이 돼 가지고, 우리와 동질이 돼서 우리와 같은 것들과 만나게 될 때에 우리와 같이 된 것들이 모두 다 참 환영을 하고 칭찬을 합니다.
왜? 그러면, 우리가 중생된 새사람으로 살 때에 우리의 생활은 변질된 이 마귀와 타락한 인간과는 대립이 되고, 대립이 되지 안하고 서로 동질 동성으로 본질과 본성이 같다 그말이오. 같아서 서로 하나가 돼 가지고 그 뜻이 같고 마음이 같고 생각이 같고 성질이 같아서 우리와 같이 되는,우리와 꼭 같은 그런 본질과 본성이 같은 우리와 같은 것들은 숫자가 몇이나 됩니까? 같이 된 우리와 같은 것들은 숫자가 몇이나 됩니까? 우리와 반대되는 것은 그 종류가 두 종류고, 또 우리와 하나되어 있는 그 종류는 종류가 몇 종류나 됩니까? 둘. 창조주와 변질된 것 외에 모든 피조물, 창조주와 변질되지 아니한 모든 피조물들은 전부 우리하고 한 덩어리입니다. 우리하고 하나입니다. 하나니까, 장차는 이 변질된 것 둘을 가두니까 우리와 동질된 것이 우리가 나타날 때에, 자체와 저 하늘의 별이든지 초목이든지 어떤 피조물이든지 그 피조물이 우리를 만날 때에 그 피조물과 반대되는 자, 그 피조물과 반대되는 자하고 지금 전쟁을 해 가지고, 피조물과 반대되는 자로 더불어 전쟁하느라고 아주 수고도 했고 고생도 했고 많이 고생을 당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고난당하는 그 고난은 변질된 것 둘 외에 있는 모든 창조주와 모든 피조물과는 우리 고난당하는 것이 그들이 당하는. 그들 편이 돼 가지고 그들을 위하고, 그들 편이 돼 가지고 그들을 대리하고 대표해서 당하는 고난입니까 그냥 그들과 상관없는 고난입니까? 어찌 됩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 새사람 생활하느라고 고난당하는 그 고난은, 고난당하는데 이 고난당하는 고난이 대립된 것은 몇과 대립이 됩니까? 둘과 대립이 됐고, 둘과 대립이 됐습니다.
대립이 됐고, 또 대립되지 안하고 하나된 것은 몇과 하나됐습니까? 또 그것도 둘과 하나됐습니다. 둘과 하나됐지만 그저 그 너무 소리가 큰 소리가 돼 놔서. 피조물, 변질되지 않는 피조물과 하나됐다 하면 변질되지 안한 피조물이 얼마나 됩니까? 그 숫자가 얼마나 돼요? 뭐 그 숫자가 말할 수 없습니다. 그들과 하나돼 가지고 이랬으니까 그들이 이 전투한 데 대해서 환영을 합니다. 환영을 하고 기뻐합니다.
예를 들면, 제가 일본 있을 때에 그때 나이가 열 일곱 살인가 그래 됐었는데, 그때에 여기 만주에 전쟁이 났을 그때인데 온 국민들이 오늘 부대장이 온다고, 출전했던 부대장이 온다고, 그때 그 전쟁을 승리했었습니다. 출전했던 그 부대장이 온다고. 부대장이 온다고 온 전국이, 제가 그때는 구주 있다가 지금 대판으로 갔었는데 보니까 대판이고 구주고 뭐 동경이고 온 전국이 온다고 막 환영식을 하는데 굉장합니다.
그런데, 그 마침 부대장이 그때 대판을 통과했어요. 대판을 통과하는데 제가 그때 가서 이것들이 무슨 장난을 하며 어떤고 보자 보니까 그 부대장이 오니까 전 국민이 막 총동원했어요. 해서 사람들이 도무지 다닐 수가 없이 어떻게, 대판도 그렇고 동경도 그렇고 시노도 그렇고 그 전부 어디든지 뭐 이래 가지고 크게 이 환영식을 하고 있는데 그래 보니까 그뭐 영광이 얼마나 있는지 몰라. 영광이 있는지 뭐 막 환영을 해 가지고, 그 일본 사람들은 참, 우리나라서는 부대장이지만 부 다이쪼 부다이쪼 하며 막 하늘같이 이래 떠바칩니다. 왜? 자기 나라를 대표해서 가서 전쟁하고 온 사람이라고 해 가지고 이 부다이쪼라 하면 뭐 굉장히 하늘같이 높인다 말이오. 영광이 굉장해요.
그래 내가 그때 열 일곱 살 먹을 때인데 그걸 보고 이거 참 나도 꼭 군인 생활 한번 했으면 좋은데, 그때는 일본 나라에 벌써 점령돼 가지고 있는 지가 한 십칠 년 됐기 때문에 군인 생활할라면 할 수 있었어요 그때. 일본 군인으로서 지원을 하면 군인이 될 수 있어요. 그 일본 나라에, 원수의 나라에 그 지원병 보기는 싫다 말이오. 싫고, 언제 우리나라가 독립이 됐으면 내가 나이가 좀 많아도 나도 한번 전쟁에 한번 출전하지 이래 가지고 참 군인 생활하기가 소원이었는데 군인 생활 못 한 그게 내 평생에 원통이고 후회가 돼요. 군인 생활 못 해 본 것이 그것이 참 마음에 유감이라 그말이오. 군인 생활이 그게 참 좋은 게 얼마나 많습니다.
이래서 그때 생각에 그저 대표로 출전해 가지고 승리한 장성으로 오는 그 승리 장병의 그 영광과 존귀 그걸 보고 나도 군인 생활했으면 나도 한번 승리하고 내가 승리의 장성으로서, 승리해 대장이 돼 가지고 내가 한번 환영을 한번 받을 건데 이래 가지고 그게 부럽기가 뭐 짝이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하나님이 그때 그걸 보여 주신 것이라.
그러면, 그들이 왜 환영하느냐? 환영하는 것은 저거 온 국민을 대표해 가지고 만주 가서 전쟁해 가지고, 생명을 내놓고 전쟁을 해 가지고 그 전쟁을 이기고 돌아오니까 그렇게 환영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보니까 부대장이라고 이라는데 그때 거기서 살아 돌아오지 못하고 죽어 돌아왔다 말이오. 죽어서 그 부대장 시체가 온다고 해 가지고 마구 그 시체를 환영하는 그 환영식이 굉장했다 그말이오. 그래서 그때 그걸 내가 좀 유심히 봤고 마음에 내 속에 부러워한 것이 많았습니다.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이제는 내가 전쟁할 전쟁을 내가 만났기 때문에 이제는 나는 참말로 영영한 전쟁의 부대장으로서 한번 승리의 장병으로 한번 나타나야 되겠다 하는 그런 것을 예수 믿은 후에 가져 봤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전쟁하다가 죽은 그 전사자, 또 전쟁하고 승리한 장병 그들이 오니까 막 온 국민이 막 환영을 한다 그말이오. 그 환영을 하는데 그와 마찬가지로 이제 이 모든 피조물들의 원수요 하나님의 원수는 누군고 하니 타락한 변질된 이 천사가 원수요 변질된 인간이 원수인데 이 원수로 더불어 우리가 전쟁하느라고 고난 아닙니까? 우리 이재의 고난은 무슨 고난인요? 이 전쟁하는 고난이라 말이오. 그런 걸 격파하고 이걸 격멸하고 없애기 위해서, 예수님도 오신 것은, 마귀와 죄와 사망의 일을 멸하기 위해서 오셨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요한1서에 멸하시기 위해서 오셨다 이랬는데, 이제 그러니까 이렇게 모두 다 변질되지 아니한 모든 피조물, 또 하나님이 편에 서 가지고 이 변질된 원수 둘로 더불어 싸워 가지고 세상에서 고난을 받았으니까 고난 받았다고 이제 그 배후에 모두 변질되지 안한 이 우리와 한편되어 있는 그 모든 존재들이 환영식을 하는 것이 굉장하다 말이오, 그 환영식, 또 존대하는 그영광이 굉장한 것을 가리켜서 이제 받는 고난과 장차 받을 영광은 족히 비교할 수가 없다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면, 둘에게 반대되는 이 투쟁하고 억억억억만으로도 헤아릴 수 없는 모든 존재에게 환영받는 이 환영과 수고했다고 모두 다 이래 찬성하고 이렇게 하고 있는 그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가 없다 그것을 여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지금 여러분들이 다 알았기 때문에 그걸 하나하나를 말할라 하면 한정 없으니까 그것을 지금 종류만 들어서 말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누구 누구가 좋아하며 우리 구원을 위해서 협조하고 우리 구원을 위해서 전심 전력을 기울여서 우리 구원을 이룰려고 애를 쓰고 있는 그 존재들이 누구 누구인가 그것을 한번 여기 본문에서 봐서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성부입니다. 성부는 우리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독생자를 아끼지 안하고 보냈다 이랬습니다. 여게 본문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해서 내어 줬다' 그러면 성부는 우리를 위해서 독생자를 내어 줬습니다. 독생자를 내놨어. 우리 구원하기 위해서 독생자를 내놨다 그말이오.
또, 삼위일체인데 성자는 우리 구원을 위해서 도성인신하셔 가지고 십자가에 못 박힌 대속의 이 큰 공로, 이렇게 큰 희생의 큰 공로의 사랑을 베풀어서 역사하셨어. 우리 구원을 위해서 했습니다.
또, 성령님은 적게 보니까 성령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이랬습니다. 이 성령은 우리 위해서 말할 수 없는 탄식과 간구로 기도하시고 또 우리 송장과 같은 우리 썩은 속에 지극히 거룩하신 성령님이 뚫고 들어을라 하니까 얼마나 더럽겠습니까? 이 송장 속에, 송장과 같애, 우리는 죽어 있기 때문에. 송장으로 비할 수 없는 썩은 우리 속에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찾아오셔 가지고 우리를 살리지 안했습니까? 어떤 사람이 예수 믿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장질부사, 장질부사 그거는 염병이라. 염병이라 하는 병입니다. 장질부사를 앓아서 교인들이 막 온 교인들이 드러눕는데 드러누우니까 그 교회 교인들은 이렇게 장질부사 들었으니까 모두 다 거게 사람들이 모두 줄을 쳐 놓고 사람 못 들어 가구로 하고 아주 그래 합니다. 또 장질부사 있는 그 마을이 되면 마을 근방에다가 다른 마을에서 줄을 쳐 가지고 그 마을에 가지 못하도록 이래 경계를 합니다.
이런데, 그 장질부사 하는 사람들 집에 가 가지고 그뭐 같이 위로하느라고 간호하고 이래 가지고 그라지, 또 그라다가서 벌써 죽으면 모두 말하기를 장질부사 하다가 죽은 사람은 그 속에서 죽을 때 막 균이 나오기 때문에 그 근방에는 가면 당장 전염하기 때문에 못 가구로 야단을 지깁니다. 그런데, 그 죽은 시체를 아듬고 이 시체를 아무도 안 올라하니까 시체를, 혼자 그 시체를 염을 해 가지고 혼자 또 짊어지고 혼자, 아무도 안 오니까 뭐. 그 구렁이가 막 쿡쿡 나오니까 못 온다 말이오. 그런데, 또 구덩이를 파고 그래 가지고 송장을 치르고 이래 하는 그런 교회들이 있었는데 그 교회에는 장질부사 한 사람도 박지지 안하고 다 했어. 다하고, 그러니까 안 믿는 사람들은 저놈들 때문에 우리 다 죽는다 이랬는데 믿는 사람 장질부사 하면서 어린 아이 하나도 안 죽었습니다.
아이 낙태 하나도 안 했어.
이랬는데, 안 믿는 사람들은 그 다음에 장질부사 해 가지고 그 동네가 거의 씨를 멸해 버렸어. 막 씨를, 굉장히 죽었다 말이오. 죽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거게 갈라고 합니까? 아무도 안 간다 말이오. 안 가니까 또, 믿는 사람 전부 장질부사 다 했어요. 장질부사 다 했는데 또 장질부사 한 사람 또 아직까지 안 한 사람 있는데 안 한 사람이 가 가지고 그 송장을 치러 주고 이라니까 그때 감사해서 예수 믿으러 나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감동돼서 예수 믿은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게 끝까지 열매 맺느냐 하면 그래 가지고 또, 믿었지만, 감탄해서 믿었지만 나중에 며칠 믿어 주고 그만 몇 달 믿어 주고 만다 그말이오.
그러면서, 그 사람들 해석이 뭐라 했느냐 하면,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송장 구덩이 우리 속에 들어와 가지고 우리를 중생시켰는데 이 사랑으로 우리가 구원 얻었는데 이거 무슨 병이라고 우리가 그 속에 우리가 못 들어가고 이 전염병 속에 못 들어가고 이라는 것은 이건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다. 그래 가지고 서로 들어갈라고 애를 써 가지고 그때 솔빡 그 사람들이 전부 전염병에 다 걸렸어요, 그 깨달음을, 성령님이 우리 속에 들어왔는데 이렇게 성령님이 우리 속에 들어온 것과 우리가 전염병 속에 들어간 것과 비교하면 비교할 수가 있겠느냐 이렇게 깨달아 가지고 그때 행한 사람들 많았습니다.
지금도 저 미개한 야만국에 가 가지고 아버지가 가서 선교하다가 그만 거기서 죽임을 당해 버립니다. 죽임올 당하면 그 다음에 또 아들이 대를 이어서 또 선교를 갑니다. 또 아들이 대를 이어서 선교 가면 또 그 다음에 죽고 나면 또 손자가 대를 이어 가요. 삼 대 사 대 가 가지고 선교해 가지고 그 지방을 구원시킨 그런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앞으로 가면 놀랠 일들이 많을 것이라.
그런 거는 우리가 역사로 지금 모두 다 교회사에 봐서 알 수가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다 어떻게 했느냐?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이 인간 속에 찾아왔다, 창조주가 피조물 속에 들어와서 피조물이 됐다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우리를 중생시켰다 예수님의 대속의 사랑을 깨닫고 내가 못 들어갈 데가 어디 있으면 못 갈 데가 어디 잇겠느냐? 이것을 다 깨닫고 예수님의 대속의 이 사랑에 감격해 가지고 모두 다 그런 일 하는 것이지 명예로 하거나 또 무슨 다른 사람에게 무슨 인기를 끌기 위해서 이렇게 무슨 간판을 만들기 위해서. 하는 일 아닙니다.
이러니까, 성부가 우리 구원을 위해서 역사했지, 성부는 뭐했습니까? 독생자를 내줬지,또 성자는 어쨌습니까? 친히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역사하셨지, 또 성령은 또 우리를 위해서 이 더러운 죄인들 속에 직접 들어와 가지고 우리를 지금 살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중생될 때는 누구로 살아요? 누구 중생되요? 우리가 중생될 때는 뭘로 중생돼요? 성령님이요! 우리가 중생을 어찌 했느냐?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우리 속에 들어와 가지고 우리를 살렸다 말이오. 이러지, 밤낮 탄식으로 간구하고 있지.
또 누굽니까? 중생된 영들이 탄식하면서 고대하면서 중생된 영 단체들이 지금 우리 구원을 위해서 역사하고 있습니다.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들까지도 탄식으로 양자될 것 몸의 구속을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중생된 영이 우리 구원을 위해서 전적 단합해 가지고 협조하고 있습니다.
또, 그라고 난 다음에 이제 우리 구원을 위해서 지금 협조하는 것은 어떤 것이 협조하고 있습니까? 모든 피조물이 협조하고 있습니다. 요걸 알아야 돼. 모든 피조물이 협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피조물이 협조하고 있으니까 모든 피조물이 협조한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공기가 협조한다 말이요 시간이 협조한다 말이 하늘이 협조한다 말이요 땅이 협조한다 말이요 바다가 협조한다 말이오. 모든 만물이 다 협조하고 있습니다. 협조하고 있는데, 그러니까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모든 것이 이렇게 이 큰 배경들이 우리를 협조하고 있습니다.
이라기 때문에, 35절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게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어떤 것이 와 가지고 이 구원을 없앨 수가 없습니다. 이 구원을 없앨 수가 없어.
그러기 때문에, 여게 28절에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러면 모든 게 우리 구원에 협력이 되지 우리 구원에 방치는 자는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보면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해서, 대속하신 주님을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매일 우리를 죽일라고 이렇게 하고 있다 말이오. 우리는 지금 이 뭐 예수 믿어서 고난 없어. 우리는 예수 믿어도 고난이 없는 거라. 우리가 가는 절음은 어떤 걸음인가 보라 말이오.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매일 계속 죽임을 당케 된다 말이오.
지금 남한에서야 복 예수 믿는 것 어려울 게 뭐 어려운 게 있습니까? 이북에서 믿는 사람들 지금, 중국에 믿는 사람들, 소련에서 믿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매일 죽임을 당코 있다 말입니다. 그저 죽일라고, 그저 죽일라고 달라들고 자꾸 이렇지만 하나님이 못 죽이게 하니까 못 죽인다 말이오.
그러면, 우리가 죽임당하는 그런 걸음으로서 걸은 것은 그때 왜정 말년 때에 신사참배 안 할라 하니까 일본 사람들이 밤낮으로 파수를 하고 죽일라고 늘 이래도 그저 생명 내놓고 살았었습니다. 또 6.25 때도 그랬었습니다. 그럴 때는 참 이 신앙생활을 바로 한 때지만 지금 남한에 여기서야 평안 무사한데 무슨 신앙생활에.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도살이라 말은 도살장에 가 가지고 양을 잡아서. 잡아먹을라 하는 양 모양으로 '저거는 잡아 가지고 구워 먹자. 저거는 언제 어느 시간에 잡아먹자' 지금 입맛을 쭉쭉 다시며 지금 잡을라 하는 것 모양으로 우리를 그들이 잡아 먹을라고 이렇게 막 입맛을 다시는 이런 대상이 돼 가지고 산다 그말이오. 이런 가운데서 살아요.
이 남한에는 그런 일이 지금 없어. 여게서도 아마, 핍박을 당한다 해도 이 핍박이라 하는 그까짓 것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니까 이런 좀 앞으로 환난이, 지금 하나님이 오게 할 것입니다. 이 예수 지금 모양으로 이래 믿으면 아무 맛이 없어. 제가 뭐 모든 게 좋아서 예수 사랑했지 참말로 어려운데 예수 사랑한 일이 없다 말이오. 주를 위해서 고난당한 일이 없어.
예수 믿는 정상 생활을 보십시오.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누구에게 죽임을 당케 됩니까, 누구에게? 몇 가지에게 죽임을 당케 됩니까? 두 가지에게 죽임을 당케 돼.
우리가 이 똑똑히 살면 그랬을 터인데 뭐 두 가지에게 죽임 당케 될 이유가 뭐 있어야지? 마귀하고도 합작하고 마귀란 놈이 죄 짓게 하면 오만 죄 다 짓지 일계명 죄 짓지. 이계명 죄 짓지, 오계명 죄 짓지, 칠계명 죄 짓지, 뭐 십계명 죄 짓지, 전부 죄를 짓는 대로 다 짓고 그놈들 하자 하는 대로 다 하니까 이 실은 예수 믿는 것 같지만 이 마귀들의 첩살이라 말이오. 마귀들의 계집이라. 마귀들의 이 창기라. 이래 놓으니까 그들이 저거 것으로 해할 게 뭐 있습니까? 오늘도 하나님 말씀대로 똑똑히 살라고 하면 지금 아는 데 모르는 데 속으로 마구 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와같이 살라고 하면 이렇게 마찰이 많다 그말이오. 마찰이 많아. 이게 정식 생활이라. 이러니까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도살장에 가 가지고 잡아먹을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이런 입장에 우리가 살고 있다 말이오.
37절에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우리 배경이 몇 가지라요? 다섯 가지. 이 다섯 가지가 우리 구원을 위해서 하고 있으니까 넉넉히 이기고 남습니다. "넉넉히 이기느니라" 38절에 "내가 확신하노니" 이 신앙의 사람은 이렇게 믿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요것을 믿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반하지만 안하고 믿고만 나가면 어떤 피조물이라도 다 그것은 결과적으로는 우리를 `위하는 것이 되지 해하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다섯 가지 깨달음을 말했는데 세째는 뭐라 했습니까? 이 말씀의 수호의 말씀, 이 말씀이 책임지고 지킵니다. 또 모든 하나님의 말씀은 다섯째는 뭐이요? 계약에 대해서는 다 완성할 수 있는 절대성이 있는데 우리가 자꾸 배반해 그렇지 우리만 배반하지 안하면 다 된다 그말이오. "넉넉히 이기느니라" 이래서, 우리에게 이렇게 든든한 배경이 되어 있고 이 구원에서 이런데 이 구원이면 넉넉한데 우리가 믿지 못해 가지고 도글도글 떨면서 이 망령을 부린다 그말이오, 믿음은 그렇기 때문에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 말은 이 사실을 인정하고 그대로 행하기만 행하면 못 할 게 없어. "환난이나 곤고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어떤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에게 끊을 수가 없어. 이제 것이나 장래 것이나 천사나 뭐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뭐 사망이나 생명이나 어떤 것이라도 우리 구원을 조그매라도 해할 수가 없어.
이러니까 이래 영광스러운 구원인데 우리가 믿지 안해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구원이 있는데 하나 여러분들이 이 비밀을 잘 깨달아야 돼. 하나 잘 깨달아야 되는 것은 뭐이냐 하면 모든 피조물들이 탄식하는 것은 썩어질 것에 종노릇하는 데에서 어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아들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썩어짐의 종노릇이니까 썩어짐의 종노릇한다는 것은 누구에게 종노릇한다 말입니까? 그러니까, 옛날 말이지요, 개혁 시대에 그때 한창 칼빈의 개혁 시대에 거석할 때는 설교하면은 보통 세 시간 네 시간 설교를 했어요, 세 시간 네 시간 설교했는데 이제 모두 다 이 장로들은 기다란 장대에다가 달구터럭이, 달구 깃을 가지고 이러면서 졸면 달구 깃으로 슬슬 쓸어 가지고 이래 잠을 깨 가면서 그래, 그래 가지고 하나님의 도가 들어오지 그리 안 하면 들어옵니까? 안 들어온다 말이오, 이런데, 이 신사라 하는 것들은 일주일 내 제 욕심대로 살고 나서 주일날 와서 한 시간만 돼도 아이구 길다. 에, 뭐 허리가 아파서 어짜고, 고놈의 허리가 싶이 들어서 잘크라졌으면 좋겠어. 그렇지 않아? 뭐 허리가 아프다고, 그래 가지고.
귀골, 그 귀골이 이다음에 불 속에서 귀골들이 타는 것 보면 하나님이 막 손뼉을 치고 좋아할 것이라, 분하기 짝이 없지만 지금 참습니다.
이런데, 썩어짐에 종노릇하는 이것이 만물들이 원치 안하는데, 만물들이 원치 안하는데 썩어짐에 종노릇하도록 하나님이 이렇게 허락해서 썩어짐에 종노릇한다 그말이오. 이 칼이 말이요, 칼이 성도의 가슴을 이렇게 쿡 찔러서, 변판원 선생 가슴을 이 칼이 쿡 찔러서 이라니까, 이래 찌르는데, 이 칼이 찌르는데 이 칼은 지금, 칼은 지금 뭐라 하면서 찌르고 있습니까? 탄식하며 찌르고 있습니다.
탄식하면서, 하 이놈, 이놈이 나를 이용해 가지고 이 의인 성도를 이 칼로 찌르니.' 이거 마음에 탄식하면서, 그래 탄식을 하면서 하나님한테 호소를 할거라.
`나는 이 성도를 내가 칼로 찌르고 싶은 마음 없습니다. 나는 찌르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없는데, 찌르기도 싫고 나는 여기 들어가기도 싫고 암만 사용해도 사용하지 안하고 도로 칼이 꺼꾸러 삑 돌아 가지고 칼 찌를라 하는 인민군 이놈을 쿡 찔러서 죽여 버리면 싶은 데도 하나님이 이 썩어짐에 종노릇을 하라고 굴복하라고 했기 때문에 내가 굴복하는 것입니다.' 하고 한다 말이오.
그러니까 이거 모순된 일 아니겠소? 왜 그렇게 하시요? 그러면 썩어 짐에 종노릇 하도록 이렇게 만물을 모두 악에게 악용을 당하도록 이렇게 만물을 하나님이 하도록 해 놓은 그 이유와 목적이 뭐입니까? 그거만 아는 사람 있으면 내가 그만 설교 그만 그치겠어. 이유와 목적이 뭐이겠지? 이유와 목적이 뭐이겠지? 예? 이 변질된 둘을 하나님께서 왜 변질되도록 타락하도록 냅뒀느냐? 변질된 둘이 없으면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 믿는 게 표가 나타나지 안해요.
변질된 둘이 있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의 표가 나타나고 잘 믿고 못 믿고 예수님을 더 믿고 덜 믿고 더 사랑하고 덜 사랑하는 요것이 뭐이냐 하면 변질된 둘 때문에 표시가 나타난다 말이오.
둘 때문에 표시 나타나는 것은 이제 이 둘이 없으면 뭐 나도 잘 믿는다 나도 잘 믿는다 하지만 반대가 있으니까, 반대가 있으니까 그만 낙심해 버리고 안 믿는데 이제 죽어도 믿으니까 그 사람이, 반대되는 이것 때문에 죽어도 예수 믿는 그것, 그 영광의 구원을 이루고 주님을 뜨겁게 사랑한다는 게 표시됐지 그게 아니면 표시 안 돼.
그러니까 이 반대된, 모든 변질된 자들에게 만물이 이용을 안 당하면, 이용을 당하지 않는다면 성도들이 의의 걸음에 이 구원의 걸음이 돼지지를 못한다 말이오. 영광이 되어지지를 못해.
그러니까 그런 것 때문에 이 만물을, `칼로 이 성도를 이거 이 지금 찌르라 하니까 내가 찌르겠습니까?' `안 돼. 지금은 그 변질된, 썩을 것들에게 복종해야 돼. 썩을 것들에게 이용이 돼야 돼,' 그러면 그러니까, 이용당해야 되니까 칼이 원치 안하면서 지금 성도의 가슴을 찌릅니다. 가슴을 찌르니까 칼은 원치 안하고 이렇지만 원치 안하는데 이게 그만 칼이 성도의 가슴을 찌르는 것은 누구에게 순종해서 찔러요? 저 O집사님, 누구에게 순종해 찌르지? 성도의 가슴을 칼이 찌르는 것은 누구에게 순종해서 찌르지? 잘 알 것 같은데. 고 옆에 그라면 O선생? 제법 어려운 거로구나, 그거 보니까, 중간반 반사도 모르니까. 또 여게 또? 변질된 그것들에게 순종해서 찔러? 썩어짐에 종노릇해라 하는 그분에게 순종해 한다 말이오.
그러면, 이 칼이 성도의 가슴을 찌르는 것은 그 칼이라는 그 피조물이 원해서 찌릅니까 원치 않는 것 찌릅니까? 원치 안하는 것 찌릅니다. 그러면 원치 않는 것 찌르면 그 칼은 누구에게 복종하느라고 그렇겠습니까? 창조주가 썩어짐에 종노릇 하라 했기 때문에 이제 그 복종해 그런 거라. 이다음에 그러니까 이 피조물을 악용한 것들이 심판을 받아서 무궁세계에 갈 것이고, 이 피조물이 이 변질된 것들에게 악용당하는 그게 자기 뜻이 아니고 악용당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다음에 호소가 있을 것이라 `너는 피조물이 성도의 가슴을 찔렀지? 너는 심판 받아야 된다.' 그라면 그 칼이 뭐라 하겠오? 저 O조사님 말해봐. 그 칼이 뭐라 할까? 하나님의 심판에서 `너는 성도의 가슴을 찔렀기 때문에 너는 이제 심판을 받아서 벌을 받아야 된다 그러면 그 칼이 뭐라 할까요? 칼이 뭐라 하겠소? OOO집사 칼이 뭐라 하겠어? OOO집사, 칼이 뭐라 하겠어? 비슷한 말을 하는데 똑똑히 말을 똑똑히 해야 되지.
칼이 하나님에게 시비합니다. `하나님이여! 어떻게 나를 심판합니까? 어떻게 나를 심판합니까? 심판 못 합니다.! 어떻게 정죄합니까?' `네가 의인의 가슴을 찔렀기 때문에 심판 받아야 되지 않나?' 이라면 `썩어짐에 종노릇 하라고 했기 때문에 당신이 그래 말했는데 내가 어길 수가 있습니까? 당신 명령 순종하느라고 나는 그놈한테 악용을 당했으니까 당신 명령 순종하느라고 악용당했지 만일 당신 명령, 어겼으면 꺼꾸로 해 가지고 그놈을 찔러 죽였을 겁니다.' 만물의 심판이 이겁니다.
이러니까, 여게 있는 걸 깊이깊이 읽어보면 여게 간단하나마 여기 만물관에 대한 이 한 일면의 구석을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제, 내가 내일 아침에는 여게 안 섭니다. 양산동 가면 내가 안 올 겁니다. 안 오는데 오늘 아침에 내가 여기 나와 가지고 재독할라 했는데 그 재독을 아껴 놨습니다. 이래서, 내일 아침에는 어제 아침에는 증거한 것을 재독할 것이고, 또 그러면 언제고? 모레 아침이가? 또 그 다음에는 오늘 아침에 증거한 거 재독할 것이고, 여러분들이 몇 십번이나 들어야 됩니다. 이거 그전에는 자꾸 말 구경만 시켜서 내가 큰 죄를 지었어. 이거 자꾸 듣고 가 가지고 이 말씀이 여러분들이 깨달아져야 여러분들이 변화됩니다.
이래 가지고 우리가 복이 못 오는 거 우리가 변화되지 안해서 복이 못 오는 것이고 변화되지 못한 거는 깨닫지 못해 그런 것이고, 깨닫지 못했으니까 행하지 못해 가지고 변화가 못 왔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어짜든지 재독을 들어요. 내가 보니까 OO목사가 뭘 이래 가지고 이래 꼽아 가지고 이래 가지고 나한테 오면서 이래 꼽아 가지고 왔어요 `왜 요새 좀, 귀가 잘 안 들리나?' 내가 이라니까, 요래 조금 요래 가지고 '귀가 잘 안 들리나?' 이라니까 `아닙니다. 이건 여기 저 설교 듣고 있습니다.' `설교 어디 들어?' 여기 보니까 포케트에 조그만한 것 넣어 있어요. 요게 있고, 어떤 사람은 또 차고 있어요, 보니까 요게 응문에 조만한 것 차 가지고 이래 가지고 요래 가지고 딱 이래 가지고 듣고 있어요. 가며 오며 낮이나 밤이나 자꾸 들으니까 이 말씀 들으니 악령 악성 악습 그놈이 와 가지고 꼬울 여가가 없어. 그놈에게 꼬일 여가가 없어 자꾸 이 말씀 듣다 보니까.
이라니까 자꾸 성화가 돼 가지고 빨리빨리 성화된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 어짜든지 여러분들 들어서, 우리 참 이 영광된 구원이 있습니다. 이 구원만 잘 이루면 살림살이는 어째 살고? 이 구원 잘 이루면 살림살이는 더 잘 삽니다. 왜? 이 구원을 이루면, 예를 들면 아주 문화인으로서, 문화인 아주 모든 지능이 많은 사람 사는 것과 야만이 사는 것과 달라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야만이 일생 동안 하는 것을 문화인은 하루면 다 해 버리요.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믿음만 좋아지면 우리가 모두 다 전지 전능의 사람이 되기 때문에 믿음 없을 때 몇십 배 일해요. 또 하나님의 축복 오지, 이러니까 염려하지 말고 어쨌든지 회개하고 믿기만 잘 믿어서 사람만 변화되면 모든 것 다 돼요, 이걸 자꾸 인제, 이렇게 물으면 모르고 조렇게 물으면 모르고. 그거 이 박사들이 자랑하는데 이 박사들이 꼭 와서 앉았으면 박사만 내가 한 몇백 명 앉혀 놓고 얘기했으면 실컷 설교해 놓고 문제 내놓으면 빵점 빵점 맞을, 문제 내놓으면 빵점 빵점으로 뭐 다 떨어트리도록, `너 왜 가르쳤는데 모르노?' 이거 좀 콧대를 좀 꺾어서 좀 이래 놓겠는데 이거 도무지 아예 오지를 안합니다.
왜? 뱀 지식 많으니까 뱀 고놈이 꼬와 가지고 못 오게 해, `시시 하이들을 것도 없다. 그거 시시하이 들을 것도 없다. 뭐 원자탄을 말해야 들을 것이 있지.' 이래 가지고 썩을 지식은 말하면 대가리를 싸짜매고 하지만 영생하는 지식은 시시하게 여겨서 듣지를 안 한다 그거야.
여러분들 이 재독에, 오늘 아침에 보니까 사람들이 얼마 안 나왔는데 이 참, 안 나오거든 집에서라도 자꾸 재독을 들으십시오. 녹음기 사. OOO목사님, 녹음기 지금 국산 좋은 거 얼마 가요? 여게 포케트 들어가는 것', 호주머니에 들어가는 게 만 팔천 원이라. 만 팔천 원 가지고 그거 테이프해서 그래 가지고 한 여남은 번 열 댓 번 듣고 난 다음에는 또 딴것 또, 녹음하면 되거든. 또 딴것 녹음하면 되고 그래 몇 번이든지 쓸 수 있어. 쓰고 난 다음에 그래 가지고. 이래 가지고 해서 우리 서부 교인들이 마구 전부 이 성화가 되어지면 하나님께서 막 복을 막 내리 쌓아서 세계 모든 민족 위에 한번 뛰어나게 될 터인데.
그래, 나는 어제 어떤 그 학생, 그 집회에 간 학생을 어떻게 아름다운지 보고 싶어서 원했어. 원했더니만 그 둘이 왔는데 보니까 참 사랑스러워. 그래 내가 기도해 주고 이랬는데, 나는 이거 만날라고만 생각했지 만나면 기도만 해 주고 만날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거 말이지. 학생 그거는 말이요, 또 `아이고 목사님 만날라 하니까 좋다.' 이래 하면서 저거 남매 둘이 주머니를 톨툴 터니까 천 백 원인가 얼마인가 돈이 있더래요. 이래 천 백 원 가지고 뭘 음식을 만들어 가지고 왔어. 야곱이 이삭에게 축복 받을라고 아주 맛있는 음식 만든 거와 같이 음식을 만들어 가지고 왔어. 그랬는데 그 내가 엊저녁에 먹으면서 `야 맛있다. 이거는 참 아주 잘했다. 그 어머니가 참 솜씨가 좋은가 보다,' 그랬는데 어머니가 솜씨가 좋은 게 아니라 이거 기도를 해서, 그 참 귀한 걸 내가 어제 먹어 봤어요, 먹었는데 그래 내가 내가 기도는 해 줬지만 나는 예물을 준비 못 했다. 나는 그런 사람들 비하면 내가 근방에 참 신벗어 놓은 데도 못 가겠다. 그런 것은 이 하나님의 종에 가니까 그 무엇인가 대접할 예물을 가져와야 외겠다고 둘이 주머니를 톨톨 터니까 그 둘이 돈 모아 놓은 것이 천 백 원이 있더래요. 아마 연보할라고 모아 놨는데 나한테 다 바쳤어. 천 백원을 들어서 그 요리를 만들어 가지고 왔어요 그래 나는 인제 속으로 작정하기를 뭘 내가 해 줄까 이래서 그래 '나는 인제 성경, 신구약 성경 합부,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있어요. 그런 거 두 개 사 가지고 이 선물로 드려야 되겠다 그렇게 내가 작정을 했었어.
그 얼마나 귀한지. 뭐 학교 집회 간다고 뭐 하거나 말거나 말리든지 뭐이든지 가 버렸고, 또 갔다와도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니까 그 선생이 갈라 하니까 그라더래요. `꼭 갈래?' 꼭 간다 하니까 `그러면 가거들랑 네가 이 선생님 속에 이 악한 마음을 감동돼서 변화되도록 네가 기도를 많이 하고 오너라' 그 믿는 선생이래요. 그러니까 오면 자기 마음에도 `이거 집회 가는 게 옳은 건데 이거 그라니까 내 마음이 변화가 돼야 될 건데.' 그 변화가 됐는지 갔다 오니까 잘 갔다 왔나 이렇게 칭찬 하고 하나도 나무래지 안하더래.
믿으면 사자 구덩이도 다 무난히 통과하고, 믿으면 불 속에도 아무 무난히 통과하고, 믿으면 홍해 바다도 무난히 통과하고, 믿으면 환난이나 곤고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 무엇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끊치 못하는 이 길을 갈 수 있는 건데, 이 길을 갈 수 있는 건데 우리가 믿지 못하니까 자꾸, 믿는 건 우리가 자꾸 듣고 보고 하는 데서 자꾸 믿음이 생겨져요. 이러니까, 재독을 자꾸 들어요. 재독을 자꾸 듣고 좀 이 녹음기 포케트에 넣어 가지고 자꾸 다니며 그래요. 다니면서.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참 좋습니다. 우리 구원은, 그러면 이 다섯 가지 가운데에 우리 구원을 뭐 협조하고 찬동하고 환영하는데, 우리 구원을 환영하고 이렇게 좋아하는데 싫어하는 거는 몇 개 있습니까? 싫어하는 것 두 개 두 개 외에는 다 좋아해요.
바다물도 좋아하고 고기도 좋아하고 하늘도 좋아하고 땅도 좋아하고 만물이 다 좋아해요. 이런 영광된 구원이 어디 있습니까, 이 영광된 구원? 참 생각하면, 이러니까 어떤 성도가 생각하고 난 뒤에 저 혼자 산에서, 방구석에서 훌훌 뛰면서 밤새도록 춤췄답니다. 너무 좋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