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

 

1989. 2. 8. 수저녁

 

본문 : 요한복음 3장 16절∼17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선지자선교회 세상은 깨끗한 세상이었는데. 세상은 깨끗한 세상이었는데 악령이 세상에  들어와서 세상을 하나님의 대리주로 직책을 가진 그 인류에게 침범해서  미혹시켰습니다. 그 미혹에 빠져 인류와 인류가 관할하고 있는 모든 물질계라고  하는 이 우주는 다 정죄받아서 하나님 앞에 버림을 당하고 하나님의 그 생명적인  관계는 완전히 절단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셔서 창세기 3장 15절에 하나님이 이 세상을  구원하실 것을 예약으로 선포하시고 늘 계속 역사하다가 구원을 완성케 하기  위하셔서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제사장 선지 왕직을 잘 감당하여서.

세상을 구원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완전 멸망으로 영원 멸망에 빠져 있는 세상을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셔서 독생자를 보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예수님이 하나님이신데 사람되어 오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예수님에게 따르는 자마다 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말은 예수님의 교훈에 따르고, 인정하고 그대로 순종하여  교훈에 따르고 또 하나님께서 베푸신 대속의 공로에 따르고 이 대속과 약속하신  약속에 소망을 가지고 믿는 것을 가리켜서 저를 믿는 자마다라고 한 것입니다.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됩니다.

이 성구를 가지고 어떤 교파에서는 전인류 구원설을 말하고 있습니다. 전인류  구원설을 말하고 있으나 또 성경을 바로 깨달은 장로교에서는 제한적 구속을  말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 얻는다는 말씀은 맞은데 믿는  자 되는 것이 그것이 제한되어 있어서. 하나님께서 믿는 자 되게 하셔야 믿지  믿는 자 되게 하시지 안하면 안 되기 때문에 세상에는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다 섞여 있는 이것이 곧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 하는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17절에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하나님의 아들은  완전자시요 자존자시요 창조주 하나님이시요 또 모든 것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신데, 이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심판하러 오신 게 아니라, 마귀로 말미암아  세상은 완전히 원죄와 본죄로 멸망 가운데에 빠지게 됐는데 이 멸망 가운데에  빠지게 된 이 범죄를 그것을 심판해서 멸망시킬라고 오신 게 아니고 이 멸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고 재림하시는 주님은 그때에 멸망시킬 자들을  멸망시키러 오십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은 범죄한 세상이니까 주님이 심판하러 오시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이것이  공의요 정의요 진리인데 하나님의 그 사랑에서 심판해서 멸하실 수가 없어  구원하시기 위해서 일단 하나님의 독생자가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되어  가지고 오셨습니다.

지금은 어떤 때인고 하니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셔서 무조건 예수님의 이 대속을  믿는 자면 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기간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연약하기 때문에 신앙 생활을 시작한다고 해도 그  신앙 생활이 일관되지를 못하는 그점에 대해서 제자들이 들었을 때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회개하면은 다시 용서하고 새로 받아  주라는 그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몇 번이든지, 어떤 죄악에 빠져 있든지 그저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것은 구원하시려고만 하여서 오셨습니다. 지금은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는 뭐  실수한 그 횟수가 상관이 없고 또 죄악의 종류가 상관이 없고 또 그 죄악의 양이  상관이 없이 얼마든지 용서하고 얼마든지 참고 얼마든지 회개하면 받아 주고  받아 주고 이렇게 해서 구원을 하시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저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언젠가 모르지마는 이  주님이 이다음에 오실 때를 가리켜서 재림하신다 말씀했어. 재림하신다 말은  처음에 오셨다가 두번째 오신다는 것을 재림하신다 이랬는데, 재림하실 때에는  그때는 공의의 하나님으로 심판의 하나님으로 재림하십니다.

 이러니까 그때는 사람들의 크고 작은 모든 죄와 허물과 또 가리워 있는 거  감취어 있는 거 다 그때 싹 다 드러나 가지고 하나님이 그것을 공의와 정의의  공평을 가지고 심판하시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은 사랑과 긍휼의  주님이시나 재림하실 때는 심히 두려우신 주님으로 오시기 때문에 두려우신 이  주님을 가리켜서 심판의 주님이라, 또 모든 불의를 소멸하시는 하나님으로  오십니다.

이래서,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시면 이 우주는 다 불로 살라집니다. 저 공중에  있는 수많은 별들도 있고 수많은 세계들도 있지마는 이 물질계라 하는 이 전부는  다 불에 타서 원소가 됩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다시 그 원소를 가지고 하나님이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드셔 가지고 거게는 죄악이 없는 의만 거하게 되고 모든  불의한 것은 유황불 구렁텅이로 그렇게 몰아 넣는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그 불이 이런 물질의 불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의 불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곧 진리의 불입니다. 곧 의의 불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세상을 태우실  주님으로 오신다는 말입니다. 그는 모든 불의한 것을 소멸하시는 불이라,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라' 했는데, 그분의 의로움이 모든 피조물의 깨끗지 못한  것을 다 태워서 완전히 청산하는 그것이 재림으로서 '모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고 모든 일들이 드러나고 또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다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되는데 거게는 의인들이 거게 거하게 된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지금은 아주 우리가 어떻게 해도 하나님은 참고 견디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대해서 어떤 망령된 행실을 해도, 하나님을 어떻게 멸시를 해도,  어떻게 모욕을 해도, 우리가 하나님에게 어떻게 욕을 돌리고 영광을 가루고  떨어뜨려도 하나님은 몇 번이든지 재림하실 때까지는 그저 무조건 참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만 역사하십니다. 그러나 주님의 재림이 되면 그때는 소멸하는  불로 오십니다. 모든 죄와 관련된 것은 다 불로 태우시는 하나님으로 오십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은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에 이 모든 피조물들을 다  정복하고 다 그것을 관리하고 다스리는 것으로 하나님의 대리의 청지기의 직책을  가지고 이렇게 있었는데 이 책임자인 사람이 범죄했기 때문에 우주는 다  범죄했습니다. 뭐 해도 달도 별도, 요새 천문학자들 말대로 한다면 항성이든지  위성이든지 유성이든지 할 것 없이 그거는 전부 더러워졌습니다. 전부 더러워졌기  때문에 더러워진 것을 소멸하시는 어두움을 소멸한다, 더러워서 어두워진 거,  더러워서 어두움과 같이 되어 있는 그 모든 것들을 다 소멸하는 빛으로서  하나님께서 오시게 됩니다.

 그런고로, 지금은 우리가 주님에게 대해서 어떻게라도 해도 상관하지 안하고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참으시고 용서하시고 또 새로 소망을 주시고 붙들어 주시고  이렇게 오랫동안 참으시고 이렇게 하십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하나님이 이렇게  불로 소멸하신다고 해 놓고 세월이 지나가니까 이는 공연히 말뿐이지 실상이  이루어지지는 아니할 것이라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하나님이 또  거짓말한다 또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별별 그런 말을 하고 있지마는 그  날과 그 시는 아무도 모르고 다 정해져 있습니다.

 이랬는데, 그 날과 그 시가 오는 것을 마치 노아 시대에 홍수 심판이 온 거와  같이 오고 또 아이 밴 여인에게 해산 기약이 임하는 거와 같이 그렇게 임한다  그런 비유로 말씀을 했습니다. 아이가 뱄으니까 해산은 되는 것은 필연한  일입니다. 그 말은 세상이 죄악으로 관영해졌으니 세상을 만드신 주인이 되시는  주재의 심판이 있는 것은 필연하다 하는 말씀이요 또 마태복음 24장에 보면은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이느니라' 그런 필연성을 말했습니다. 죄악이  있는 데는 하나님의 심판이 필연적으로 오게 된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하는 것은, 오늘은 사랑의 주님이시요 용서의 주님이시요  얼마든지 우리에게 새 소망을 주시고 붙들어 주시는 주님이시지마는 언제든지  이런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시면, 오시기 전에는 한없는  무한의 긍휼의 하나님이시지마는 일단 재림하실 때에는 불의의, 모든 불의인 것을  소멸하시는 불로 오시는 두렵고 무서운 하나님으로 오십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뭐 이런, 혹은 지으신 물건들 가운데에 맹수성을 가진 그런  것들을 우리가 무서워하고 또 이 모든 피조물 이런 것 저런 것들의 그런 악한  자들을 우리가 무서워하고 또 사람들을 해치는 모든 질병이나 전쟁이나 흉년이나  이건 것들을 다 우리가 무서워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약간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그렇게 우리를, 사람을 많이  해하지 못합니다. 사람을 해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거슬리는, 하나님에게 삐뚤어진  죄, 죄라 말은 하나님께 삐뚤어졌다 말인데 하나님 그분과 뻐뚤어진 거, 그분과  대립이 되는 거, 그분과 동질이 안 되고 동정이 안 되고 이질이 되는 저, 그분과  다른 거, 그분과 다른 거 그분에게 삐뚤어진 거 이것이 제일 무섭습니다. 이것이,  이 우주는 그것 때문에 이제 지금 있는 이 공중도 이 모든 고체들도 액체들도  공기들도 완전히 다 타 가지고 원소가 돼 가지고 새로이 개조를 받게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세상을 우리를 멸망시키는 멸망의 바다라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멸망시키는 것이 없는 곳이 없고 우리를 멸망시키는 것으로  가득 찬 것이 세상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이런 사람은 이것을 믿고 저  사람은 저걸 믿고 뭐 믿는 것도 많고 의지하는 것도 많고 바라보는 것도 많고  가르치는 자도 많고 배우는 자도 많지마는 실상은 세상은 전체가 다 멸망시키는,  우리를 멸망시키는 것으로만 가득 찬 것이 세상입니다. 가정에도 우리를  멸망시키는 것으로만 가득 찼고 사회에도 그러하고 온 세상이 다 멸망시키는  것으로 가득 찼습니다. 멸망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고 전부 멸망시키는 것만 가득  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을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말씀은, 이 세상은 전부  멸망 뭉텅이요 멸망 구덩이요 전부 멸망만 가뜩 찼고 멸망 아닌 것이 하나도  없는 이 세상에 멸망이 아닌, 이 멸망한 것을 구원하는 것이 하나 왔으니 곧  하나님의 독생자라 그말입니다.

 '멸망치 않고' 그 말은 온 세상에는 멸망으로 가득 차 있다는 말씀입니다.

멸망으로 가득 차 있어 멸망 아닌 것이 하나도 없는데 멸망을 하나님이  구원하시기 위해서 구원의 길을 하나 보냈으니 곧 독생자다. 독생자를 믿는 자는  이 멸망에서 그대로 멸망되지 안하고 거기에서 구출되어서 영생을 얻게 된다.

영생 얻는다 말은 영원히 살 수 있다 말이요 영원히 존재할 수 있다 말이요 또  영원히, 생명이라는 건 힘이라 말인데 영원히 아무것에게도 해를 받지 않는  생생한 영생하는 그 구원을 얻게 하신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3장 16절은 신구약 성경 중에 하나가 되는 요절입니다. 이  신구약 성경에 제일 근본되는 요절을 하나 말해라 하면은 요한복음 3장 16절을  모든 성경학자들이 다 대고 하나님의 종들이 다 공통으로 이 절수를 댑니다  이러니까 이 절수는 다 외우지마는 이 절수에 대해서 우리들이 관심을 가지지  안하고 예사롭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는 것은  세상이 사랑할 만한 가치 있는 것이 아니고, '이처럼 사랑하사' 하는 것은 당신의  자체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이지 우리가 사랑을 받을 만한, 우리에게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어서 그런 것 아니라 말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당신의 사랑을 가지고 세상을 사랑한 것이지 세상에 사랑을 받을 만한 것이 없고,  세상은 어떤 세상이냐? 멸망할 세상이라. 멸망할 세상인데 하나님이 이 멸망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한 줄기 생명의 이 줄을 내려보냈으니 이 생명의 구원의 줄이  곧 하나님의 독생자, 신인양성일위로 오셔 가지고 사활로 대속하실 이 대속주라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밤에 이 말씀을 가지고 우리가 다 같이 생각할 것은 세상은 전부  멸망만 가득 차 있는 멸망의 뭉치다. 섞인 것이 하나도 없는 멸망뿐이다. 요걸  우리가 첫째 구별해서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세상은 멸망뿐이다. 뭐 크고  작고 높고 낮은 것, 먼데 있는 것 가까운데 있는 것, 뭐 이런 것 저런 것 말할 것  없이 전부는 다 멸망 덩어리다. 멸망에 그 섞인 것이 하나도 없이 전부  멸망뿐이다.

멸망뿐인데 이 멸망하는 것을 하나님이 공의로 상대하면 이를 멸망시켜서 없애  버려야 되겠는데 하나님이 사랑으로 상대하기 때문에, 이 멸망하는 것을 사랑으로  상대하니까 하나님이 친히 사람되어 가지고 오실 수밖에 없어서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이것들을 구출할라고 하면은, 죄로 멸망받은 것이기 때문에 구출할라고  하면은 이 죄의 값으로 대신 형을 받아야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오셔서 친히  대신 형을 받으셔 가지고 우리를 구원하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래서, 이 세상은 멸망으로 가득 찬 세상이라. 여게는 뭐 멸망 아닌 것이 하나도  없다. 멸망 아닌 사상이 없고, 멸망 아닌 지식이 없고, 멸망 아닌 주의가 없고,  멸망 아닌 선생이 없고, 멸망 아닌 지도가 없고, 멸망 아닌 소망이 없고, 멸망이  아닌 희로애락이 하나도 없어. 기쁜 그것도 멸망이요 뭐 놀라는 것도 멸망이요, 또  담대하는 것도 멸망이요, 장담하는 것도 멸망이요, 의라고 자랑하는 것도 멸망이요  이 세상에는 전부 멸망덩어리뿐이고 거게 멸망 아닌 것은 먼지 만한 것도 섞여  있지 안하고 완전히 멸망이라 하는 요것을 우리가 똑똑히 요 절수에서 알아야  됩니다. 그것은 '멸망하지 않고' 하는 그말은 이 전부가 멸망이기 때문에, 다  멸망인데 다만 그 멸망해서 구출되는 거는 한 길밖에 없으니 그게 무슨 길이냐?  하나님의 독생자를 보낸 이 독생자를 믿는 요거 하나밖에는 없다 하는  그말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전체가 멸망뿐이라. 우리가 분주해서 배울 것도 많고,  지도받을 것도 많고, 서로 교섭할 것도 많고, 서로 또 사교할 것도 많고 의지할  것도 많고, 구비해야 될 것도 많고 이렇게 분주합니다. 전부 심히 분주한 세상이요  필요한 것들이 가득 찬 세상이지마는 하나님은 멸망으로 가득 찼지 필요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것을 여게 말씀한 여게서 우리가 확정을 지워야 합니다. 요것이  하나님이 독생자 보내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요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오. 요게  독생자를 믿는 것이오.

 신구약 성경은 예수님을 나타낸 것이 신구약 성경이라. 신구약 성경은 예수님의  하나의 나타난 곧 하나의 모형이요 실상입니다. 그러기에, 신구약 성경 말씀은 곧  예수님이시요.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당신이 글씨 하나 쓴 것도 남겨  두시지를 안했고 당신의 초상도 하나 남겨 두지 안하셨고 당신이 또 어떻게 하신  것, 사람들이 좀 무슨 기념품으로 가질 수 있는 그런 것 있는 것을 하나도  없앴습니다. 또 무형의 존재로 지금 신인양성일위로 부활해 가지고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그 이유는 신구약 성경적 예수님으로 나타나시고 우리들로 하여금 빌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신구약 성경이 곧 주님이시라. '내가 곧, 진리라. 내가 곧 진리라.

내가 곧, 하나님이 말씀이라는 그 말씀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을 어떤  무엇으로 생각지 말고 신구약 성경 가운데에 계시는 주님이시라, 신구약  성경대로의 주님이시라, 신구약 성경적 주님이라, 진리적 주님이라 그렇게 우리가  믿도록 주님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둘째로 우리가 생각할 것은 전체는 멸망뿐인 세상인데 여게서 멸망을  피하고 구원 얻는 것, 멸망을 피하고 영생 얻는 한 길이 있다. 멸망을 피하고  영생하는 한 길이 있다. 한 길이 있는데 그 한 길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독생자다. 하나님의 독생자가 왔기 때문에, 독생자 그분이 세상을 멸망 가운데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에 이 멸망에서 구원할 자는 독생자뿐이다.

멸망에서 구원할 자는 독생자뿐이다 요것을 둘째로 우리가 굳게 잡아야  되겠습니다.

멸망에서 구원할 자는 독생자뿐이다. 세상은 멸망으로 가득 찼다. 어떤 뭐  일류대학 그것도 멸망으로 가득 찼고, 어떻게 문명한 그런 선진국가, 아주 강성한  강대국가 그런 국가도 다 멸망이라, 이 세상은 멸망으로 한 덩어리 돼 가지고  있고 전부 멸망 아닌 것은 먼지 만한 것도 있지 않다.

 이렇지마는, 이것이 지금은 이래 말하지마는 좀 있으면 이것을 이렇게 말을 못  하게 됩니다. 지금 듣고 여러분들이 강직해야 되지 앞으로 되면 이 말을 할래도  하지 못하는 것이 하는 사람을 저 몰아다가 어데다 없애 버리고 그 말이 이  세상에 나오지 안하도록 하려는 것이 악령이지마는 하나님이 아직까지는 때를  두어서 그런 것들을 다 제어하기 때문에 이런 말이 자유로 나옵니다.

 세상은 멸망 뭉텅이입니다. 이래서, 요한일서 5장에는 세상은 악한 자 속에 들어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러기 때문에 세상은 멸망할  세상인데 멸망할 세상에서 독생자로만 구원 얻는 한 길이 있다. 저를,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고 구원을 얻게 할라고 왔다.

그러면 세상은 어떤 세상이냐? 세상은 심판받을 세상이다. 세상은 멸망만 가득 찬  것이 세상이다. 세상은 심판받을 세상이다. 세상이 그러기 때문에 멸망받을  세상인데, 심판받을 세상인데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구원의 한 길을 주셨다.

구원의 한 길이 무엇인가? 구원의 한 길은 곧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시니. 그분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셨다  그러면, 멸망을 우리가 기억하고, 이 세상은 멸망이 가득 찬 세상이라 하나님의  심판받을 세상인데, 하나님이 심판하시기 전에, 심판하시기 전에 잠깐 동안 한 이  멸망에서 헤고날 수 있는 짤막한 기간을 주신 것이 곧 신약 시대의 이 구원  기간인 것입니다.

 전체가 멸망할, 멸망할 것들인데 이거는 곧 하나님의 심판이 올 것인데 이  멸망이 심판받기 전에 이 멸망에게 먼저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독생자를  보내셨다. 그러니까 이 독생자만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구주시다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다른 데는 천하에 다른 이름으로서는 구원 얻을 만한 그런  길이 없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세상에 별별 종교들이 있지마는 하나님께  범죄함으로써 멸망받은 이 세상온 하나님이 구출하는 거 이 외에 딴 길은  없습니다. 이래서, 아들은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라, 인을 치신 자라. 하나님이  이분만이 구주로 하나님이 이제 인쳐서 정하신 자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오늘 저녁에 둘을 우리가 배웠습니다. 세상은 멸망으로 가득 찬  세상이요 심판받아서 완전히 이것은 하나님이 불로 태워 가지고 완전히 원소로  해서 변질시켜 가지고 새로 창조할 것인데, 이 세상은 멸망으로 되어 있는  멸망덩어리 세상이요 심판으로, 불심판으로 완전히 소멸될 멸망될 이 세상이라.

이런데 멸망 심판을 맞이하기 전에 그 중간에 잠깐 하나님의 구원의 긍휼이 온  것이 하나님의 독생자를 보낸 것이라. 그러면 멸망에 구원은 하나님의 독생자  보낸 이것밖에는 없다 요 두 가지를 배웠습니다.

 그러면, 하나만 더 배울 것은, 그러면 이 멸망의 이 우주에 하나님의 구원의 한  구원 길, 곧 구원할 구주가 오셨으니 그분이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분인데, 그분  하나로만 구원 얻을 수 있도록 구주는 그, 한 분만이 하나님이 구주로 보내셨는데,  그러면 이 구주의 구월을 우리가 받는 데는 어떻게 받느냐? 이 구주의 구원을  받는 데에는 우리가 어떻게 해서 이 구주의 구원을 받게 되느냐? 받는 방편은  하나뿐입니다. 하나뿐입니다.

 세상은 멸망으로 가득 찬 세상이요 잠시 동안, 지금 불심판이 이르기 전에, 잠깐  동안 하나님의 사랑의 긍휼이 와 가지고 역사해서 구원의 한 구세주를 보냈으니,  구세주를 보냈으니까 이제 심판 이르기 전에 구세주로써 구원을 받아야 된다.

심판 이르기 전에 구세주로 구원을 받아야 되는데, 이 멸망에 구주가 왔으니 이  구주로 말미암아 구원 얻는, 이제 멸망의 세상이지마는 구주가 왔으니까 우리가  절망이 아니고 소망이 있는데 이 구원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야 되느냐? 그러면  이 구주가 왔으니까 이 구주의 구원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야 되느냐? 거게  말씀을 했습니다.

 '저를 믿는 자마다'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다 영생을 얻게 하신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믿는 자라, 말은 그러니까 여게서 사람이 믿고 싶으면  믿고 믿기 싫으면 안 믿고 이것이 인간의 주관에 매여 있다고 하면은 다 그건  믿을 수도 안 믿을 수가 있겠지마는 이는 다른 성경에 말하기를 성신의 감동을  받지 안하고는 믿을 자가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또 하나님이 일찍부터,  영원 전부터 하나님이 작정하셔 가지고 택한 자들을 구원하시노라고 이렇게 했기  때문에 그는 사람의 행위로 말미암은 게 아니고 순전히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그  은혜로 말미암아 된다 또 그렇게 다른 데 성경에 말씀을 했습니다.

 이런데, 근거는 그러하지마는 우리 할 일은 뭐인가? 우리 할 일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할 일은 멸망의 세상이기 때문에 아무 데도, 전부 멸망덩어리기 때문에  아무 데도 붙을 데가 없습니다. 이걸 믿어야 됩니다. 붙을 데도 없다. 의지할 데도  없다. 바라볼 데도 없다. 배울 데도 없다 인도 받을 데도 없다. 의지할 데도 없다.

뭐 뭣을 좀 부탁받을 데도 없다. 멸망덩어리인데 거기는 접하는 게 전부 멸망이지  암만 해 봤자, 접해 봤자 멸망, 열을 접해도 멸망, 스물을 접해도 멸망, 세계가 다  달려들어도 내나 멸망뭉텅이와 하나됐기 때문에 멸망뿐이지 딴 거 없다 요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오. 이것이 아주 중요한 믿음입니다.

세상은 다 멸망덩어리다. 이러니까, 나는 분주해서 나는 이렇게, 지금 출세를  하겠다 그것도 내나, 출세하는 그것도 내나 멸망이요, 또 나는 입신 양명 하겠다  그것도 멸망이요, 뭐 분주하게 예수 믿는 사람들이 무슨 큰 일을 하는 듯이  세계의 이 유명한 인물들을 만나고 저 인물들을 만나고 또 이런 교섭을 하고  저런 교섭하고 아주 제법 큰 일을 하는 것같이 하지마는 성경은 말하기를  멸망뭉텅이다. 멸망뿐이다. 거기는 섞인 것이 먼지만한 것도 없고 전부  멸망뭉텅이로 되어 있는 것이 세상이다.

 거기에 이 멸망에서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구원할라고 하는 구주를 보낸 것은 곧  하나님의 독생자 신인양성 일위이신 사활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신  예수님뿐이시다. 구주시다.

 그러면 예수님뿐이신데 예수님이 구원하시는 이 구원을 우리가 받는 데는  어떻게 해야 받을 수 있느냐? 받는 데는 어떻게 해야 받을 수 있느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어떻게 하면 받을 수 있습니까? 여게 말하기를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면 우리가  이 구원을 받는 방편은 믿는 것뿐입니다. 딴 거 없습니다. 믿는 것뿐입니다.

이 믿는다는 것은,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해 놓으신 이 말씀이 마귀  지식으로써는 이해가 안 됩니다. 마귀 지식은 멸망케 하기 위해서 내놓은  지식이요 멸망한 지식이요 멸망케 하는 지식이요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식은  구원 얻기 위해서 하신 지식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식과 마귀 지식은  정반대입니다.

이러기에, 이것은 이 세상이 뭐 이해할 만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런 지식이  아닌데 이 믿는다는 것은 뭐이냐? 믿는 다는 거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 세상  지식을 부인해야 믿을 수 있습니다. 세상 지식을 부인해야 믿을 수 있습니다.

자기를 부인해야 믿을 수 있습니다. 나도 세상 지식도 모든 세상도  멸망뭉텅이뿐인데 다만 독생자가 오셨으니 이 독생자만이 멸망이 아니요  이분만이 생명이요 이분만이 구원이기 때문에, 이제 이 세상 것 가지고 그게  이해가 되는 게 아니고 세상을 부인하고 자기를 부인해야 이 멸망에 구원할라고  온 구원의 한 생명의 줄기가 왔으니, 이 구원하실 구세주가 오셨으니 이 구세주를  인정할 수 있다, 믿을 수 있다.

그러면, 방편은 믿는 것인데, 믿는 것은 그분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인정하는  것이요, 첫째는 알고 인정하는 것이요. 믿는 거는 뭐이 믿는 것인가? 그분이  우리에게 선포하시는, 선포하신 이 신구약 성경, 당신이 '나는 이렇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하는 그 교훈과 약속과 예언과 당신의 그 자체를 이렇게 문서로  나타냈는데 문서로 나타낸 이 사실을 알고, 모르고는 안 돼. 알고 그 다음에는  인정하고 그대로 따르는 것입니다. 알고 인정하고 따르는 이 방편 외에는 구원  얻는 방편이 없습니다.

이것을 합해서, 알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 신구약 성경에 나타내신 하나님의  지식을 알고, 이 외에는 다 거짓부리요 이 말은 참되다. 천하 지식이 다 반대해도  이 지식만이 참되다 인정하는 사람 이것이 믿는 자요, 인정하고 난 다음에 그대로  따르는 자, 그대로 사는 자, 그대로 행하는 자, 그대로 졸졸 따라가는 자, 그대로  순종하는 자라 말이오. 알고 인정하고 행하는 이것을 한 말로 합해서 믿음이라,  독생자를 믿는다, 저를 믿는 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밤에 이 말씀하는 것은 독생자를 믿어서 아무래도 독생자의 이  은혜를 받아야 우리가 되지 독생자 은혜 받지 안하면 안 되기 때문에, 독생자  은혜 받는다고 이렇게 말하지마는 실질적으로 어떻게 하면 독생자의 은혜 받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요것은 사람들이 잘, 저절로 다 돼 가지고 된 사람들은 되지마는 안 된  사람들은 안 돼 가지고 있는데, 그러면, 이 독생자를 믿는다 말은 독생자를 따른다  말이오. 독생자에게 연결됐다 말이오, 믿는다 말은 독생자를 따른다 말이요  독생자을 좇는다 말이요 독생자를 배운다 말이요, 독생자에게 끌린다 말이요  독생자에게 소속한다 말이요, 그런 그 모든 걸 한 말로 말해서 믿는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그러기 때문에 온 세상에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독생자 외에는 다른 것은 구할  것도 없고 찾을 것도 없고 만날 것도 없고 원할 것도 없고 의지할 것도 없고  관계 맺을 것도 아무것도 이 한 분뿐입니다. 이 하나 외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세상은 멸망의 덩어리라, 멸망 외에는 먼지 만한 것도 섞인 것이 없고 순전히  멸망뿐이라, 그런데 하나님께서 구원의 한 길을 보냈으니 그는 곧 하나님의  독생자라.

 그러니까, 이 멸망은 우리가 들어서, 우리 인류가 들어서 멸망을 마련했고 멸망에  구원할라고 하나님이 구원은 보내셨고, 보내신 이 구원을 우리가 그러면 내것을  삼는 데는 어째야 되느냐? 내 것 삼는 데는 믿는 것 뿐이라. 믿는 것 뿐이라.

믿는 것이라. 그러면 믿는 다면은 믿는 것은 어떤 게 믿는 것이냐? 알고 인정하고  그대로 좇아서 따라가는 거, 거게 소속해서 가는 것이 믿는 것입니다.

이래서 저 지난번에도 이랬지마는, 그러면 우리가 믿을라면 어떻게 믿느냐? 자꾸  그라면, 지금 우리가 구원 얻는 것은 멸망에서 자꾸 벗어나는 것이오. 멸망에서  벗어나는 것이요 자꾸 구원을 자기가 입어서 구원으로 채우고 채워서 충만케  하는 것이니까 내가 그 죄악을, 죄악을 자꾸 벗고 죄악의 세력이 내게 차차 차차  벗어지고, 죄악의 세력이 내게 벗어지고 죄를 이기는 힘이 자꾸 생겨지고 이래서  우리 구원이 이루어지는 건데, 이 구원을 실질적으로 우리가 할라고 할 때는  어째야 되느냐? 오늘밤에도 지금 기도하러 산으로 갈 그런 사람들이 있겠는데, 저  지난밤에도 말했는데 내나 그 말입니다. 그저 어짜든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외에 딴거는 접할 게 없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가 왔는데 무슨 뭐 신인양성 일위의 그런 어떤 형체를 가지고  오시지 안했고 무형의 존재로 왔어. 무형의 존재로 오는 것은 세제의 모든 사람이  밤이고 낮이고 어데서든지, 바다에서든지 얼마든지 모든 사람들이 다 접할 수  있도록 오시기 위해 가지고서 무형의 존재로 오셨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주님은 곧 신구약 성경에 가득 차 있고 신구약 성경에 내재해  계십니다. 신구약 성경에 어느 성구라도 그 성구를 잡으면 예수님의 팔을 잡았고  예수님의 다리를 잡았고 예수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예수님은 곧 성경 중의  구주십니다. 성경 중 우리 구주요 신인양성일위로 계시는 분이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걸 뭐 자꾸 연습을 해야 되지, 어짜든지 성경 말씀을, 시간  통해 성경 말씀을, 우리는 제일 초보에서 성경 말씀을 자꾸 들어야 되겠습니다.

오늘밤에 여기 성경 말씀을 듣습니다. 성경 말씀을 듣고 또 자기가 읽고, 듣고  읽으면서 거게서 얻을 것이 있습니다. 또 듣고 읽고 그 다음에는 외우면 조금  거짓부리가 떠나고 자기 마음이 거게 좀 기울어집니다. 듣고 읽고 외우고  이라면은 좀 달라집니다.

 듣고, 설교 소리를 자기가 듣든지 재독을 듣든지 듣고 읽고 또 외우고 또  그라면서 자기가 한번 그대로 살라고 애를 써 실행을 한번 해 보고 요라면서  우리가 거게서, 듣고 읽고 외우고 행하면서 우리가 만날 이가 누구냐 하면은  그라면서 이 독생자를 만납니다. 그라면서 또, 달리는 독생자를 못 만납니다.

그라면서 독생자를 만납니다. 성경 말씀을 들으면서 독생자를 만나고 읽으면서  독생자를 만나고 또 외우면서 독생자를 만나고 요와같이 지금 자기가 행할라고  하면서 독생자를 만나야 됩니다.

 독생자 만난다는 것은, 곧 내가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 나에게 말씀해 주시는  이가 누군가? 곧 주님이십니다. 이 시간 지금 여러분들에게 말하는 거 껍데기는  백 목사지마는 속에서 이 말씀을 말씀하시는 이는 주님이시오. 그러기에 성경대로  바른 말을 할 때에는 그 말하는 이는 껍데기는 사람이라 누가 말하든지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는 주님이십니다. 그분을 만나십시다.

 그분이 곧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보내 주신 독생자입니다. 그분을 성경을 읽을  때에 들을 때에 성경 말씀을 내게 말씀해 주시는 분이 그분이요, 성경을 읽을  때에 나에게 읽도록 지금 해 주실 때, 성경을 읽을 때에 이래라 저래라 자꾸 이  성경 말씀할 때에 고 성경을 통해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그러면 목사를 통해서, 설교자를 통해서 말씀하는 이 주님이시요 이 문서 계시를  통해서 나에게 내가 읽을 때에 말씀하시는 이가 주님이시요, 내가 또 이 말씀을  외울라고 이래 할 때에 나에게 외우도록 자꾸 나에게 감각시켜 주고 내게 좀  깊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면 외우도록 해 가지고 또 못 외우면 또 외우고 외우고  하는 가운데에서 외우도록 해 주시는 이가 주님이십니다. 외우도록 나한테 가르쳐  주시는 이가. 외우도록 가르쳐 주시는 그분이 곧 주님이시요, 내가 그대로  실행할라 할 때에 이제 주님이 나에게 실행하도록 권유를 하고 독촉을 하시고  이래 실행하도록 자꾸 하시는 이가 주님이시라. 여게서 이 독생자를 우리가  접합니다.

 독생자를 접하고, 그 다음에는 이제 이래만 할 게 아니라 조금 더해서 양심으로,  양심으로 듣고, 양심을 가지고 듣고 또 양심을 가지고 읽고 양심을 가지고 외우고,  양심을 가지고 행한다. 양심으로 행한다 그말은, 양심이라 하는 것은 영 외에  심신으로 되어 있는 이 심신에게 제일 권위를 가진, 권위 가진, 바른 공의와  정의를 가진 자입니다. 심신에게 제일 주격이 되는 높은 위를 가지고 있는  자입니다.

 지금은 그 양심을 다 저버리지마는 양심으로 한다 그말은 다른 마음을 다  집합해 가지고 최고의 자기의 남김없는 최고적인 자기 마음을, 그 마음을 다른  말로 하면 진심이라 말할 수도 있겠고 마음의 제일 주체라 할 수도 있겠고  마음의 주격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것 아무 것 딴것이 없이 자기 마음을 다  기울여서, 그게 뭐이냐? '마음을 다하고' 하는 거라. 마음을 다한다는 그게 곧  뭐이냐 하면은 양심이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하면은 거게서 하나님이 찬성해 주는 영감을 받습니다. 영감으로 듣고,  영감으로 읽고, 영감으로 외우고, 영감으로 행하고, 영감이라 하는 것은, 양심은  자기 주관이오. 양심은 자기 주관이기 때문에 양심이 할 때까지는 자기에게 있는  요소기 때문에 그래도 자기가 안면이 있고 이러니까 자기 힘으로 애를 쓰면  됩니다. 애를 쓰면 되나 영감이 올 때에는 자기의 주관, 자기 인적 요소 자기 요소  가지고 사는 거게 자기 요소가 아닌 다른 요소, 자기 요소가 아닌 객관의 힘이 와  가지고 나에게 알게 해 주고 또 인정하계 해 주고 또 소망하게 해 주고 거게서  소욕을 가지고 그 행할 수 있는 힘을 나에게 주고, 순전히, 우리 주관으로서,  양심으로 하는 것이 우리 주관으로서는 최종적으로, 최종 최고적으로, 나는 그  이상 할 수 없는 노력하는 것이고 그럴 때에 내가 아닌, 주관이 아닌 객관  역사로서 내게 와 가지고 역사하는 것을 우리가 만날 수 있다 그겁니다.

그것이 영감인데, 이라면은 나중에 어데로 가느냐? 이라면은 필연적으로 이제  사죄에 가게 됩니다. 사죄에 가서 죄로 더불어 투쟁하게 되고, 의는 자기와  하나돼서 의를 행하게 되고, 그라면 하나님과 자기와의 동행하는 그거 동행이  돼지고 그라면 영생이 돼지고 이라니까 이것은 말할 것 없이 자기가 해 보면  됩니다. 이거 다 필연적으로 되어지기 때문에.

여래서, 오늘 저녁에. 여기서 그만 지금 결혼식이 있기 때문에 마치겠는데  어짜든지 성경을 듣고 읽고 외우는 일을 좀 힘을 씁시다. 외우는 거, 자기가 뭐  다른 것 많이 못 하면 시편 1편이든지 어데든지 외우기 쉬운 데 차차 차차 이래  가지고 외우는 것, 성경을 읽고 듣고 외우고 요렇게 하는 여게서 우리 구원은  자꾸 이루어지고, 우리 구원을 이루는 힘은 여게서 나오지 딴데는 아무데도 오는  게 없습니다. 딴데는 전혀 오는 게 없습니다. 요게서만 옵니다.

 이러기 때문에, 성경을 듣든지 읽든지 외우든지 자기가 지금 행하든지 이래 하는  거게서만 우리 구원이 나오지 딴데는 나오지 안하는데, 이 구원이 가다가  중단되는 것이 어떤 사람은 듣는 데서 그치는 사람, 읽는 데서 그치는 사람, 또  어떤 사람은 외우는 데서 그치는 사람, 이러고, 듣고 읽고 외우고 생각하고 실행해  보고 요렇게 하는 데에서 그 양심으로 하는 거게 건너가지 못하고 그만 중단되는  데에서 헛일하는 사람, 양심에서 건너가 가지고 좀 생각하면, 양심에서 그거  영감받기는 쉬운 것인데, 양심에 되면은 벌써 영감이 접할라고 하는 것인데 그래  가지고 거게서 더 나아가서 영감에 도달할라고 이래 할라고 애를 쓰지 안하고  그만 중단하든지, 영감에 도달하면은 결국은, 영감받으면 자체가 변화되기 때문에  죄악은 전부 자기와 적이 됩니다.

 죄악이라 하는 것은 자기와 적이 돼 버려. 평소에는 죄 그놈이 자기와 하나돼서  죄를 떨어져서는 살지를 못하는데 그라면 죄악과 적이 돼 버리고 맙니다. 자기가  하나님에 삐뚤어진 그 죄 무슨 죄든지, 물욕 죄든지 무슨 악독의 죄든지 무슨  탐욕의 죄든지 어떤 죄든지 그 죄악을, 그 죄악의 마음 그것을 버릴라고 암만  해도 버리지 못하고 뭐 잠을 못 자고 하니까 죽을 지경이고 그걸 버릴라고 애를  쓰고 이래도 버리지 못합니다.

 우리가 나쁜 마음 그걸 버릴라 해도 못 버립니다. 그 나쁜 욕심을 버릴라 해도  못 버립니다. 그 버릴라고 애쓰는 사람 많아요. 아무리 버릴라 해도 못 버립니다.

못 버리는데, 이거 버리는 거 실지로 말씀을 듣고 읽고 또 자기가 외우고 그대로  행해 볼라고 애를 쓰고 거게서, 말씀하는 이가 누가 말하는지 말씀하는 이,  말씀하는 이를 만나고, 그 말씀에서 그라면 주님이 말씀을 듣는 가운데서 믿음도  주시고 '이렇게 네가 믿어라. 또 이렇게 소망해라. 또 이렇게 네가 행해라.' 하는,  그분이 나에게, 밖에 있는 사람들이 내게 말해 주는 것보다도 그분이 나에게  세밀히 자꾸 계속적으로 말하는 것을 자꾸 듣게 되는데 들은 데에서 거게서 조금  나가 가지고 그러면 나도 마음을 다하는 것이, 뭐 '내가 양심적으로 해야 되겠다'  그게 아니야. 내가 마음만 다하면, 이런데 그 마음을 열 군데나 나눠 놓고 이와  같이 하는 그게 양심 아니라. 다, 아무 데도 없이 똘똘 뭉쳐 한테 뭉친 이것이  마음 다하라는 것이요 양심입니다.

이라면 거게서는 무한의, 무진장의 기쁨도 쾌락도 오기 때문에 이 맛을 본 사람은  땅의 것을 배설물과 같이 그렇게 여기지 안할 것 없고 자기 어떤 욕심이라도 그  욕심을 다, 욕심이 다 도망가 버리고 그 욕심이 자기를 해칠 욕심이 하도 없는 그  지경까지 가는 것을 체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자꾸 읽고 외우고 듣고 하는 요것을 가진 가운데서 여러분들이 체험하고  경험해서 차차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길 외에 딴 길 없어. 천하에 멸망으로 가득  찼는데 한 줄기 독생자 주신 이것은, 독생자 됐기 때문에 이분 외에는 구원  없는데 이 구원을 받는 데에는 듣고 읽고 외우고 행하고 하는 이 길 외에는 딴  길이 없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어데서든지 주님을 만날 때는 잘못하면, '주님' 하는 것도  좋지만 '주님' 하는 것보다도 말씀을 통해서 주님을 만나는 게 좋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 불쌍히 여기는 게 성경이오. 불쌍히 여기는 주님이오. 나를  깨끗하라 하는 주님,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과 거룩함을 좇으라 하신 주님, 또  나에게 거룩하라고 하신 주님이여, 나에게 범죄하지 말라고 하신 주님이여,  뭐이든지 말씀을 가지고 이 말 하신 주님이 말 하신 주님. 자꾸 이렇게 주님을  만나고 찾아 들어가면은 잠깐 찾아 들어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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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7 중풍병자의 표적/ 마태복음 9장 1절-8절/ 1980. 12. 28.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