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


선지자선교회 1988년 7월 3일 주전 

 

본문 : 요3:1-15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오늘 주일학교 공과를 거듭난다 하는 도리를 가르쳤습니다. 이 거듭난다는  말씀은 한문 글자로 음을 따서 중생이라 그렇게 말해 나오고 있습니다. 중생이라  말은 거듭난다는 말입니다. 중생은 거듭 중(重)자 날 생(生)자 거듭난다 그 말이  그 말입니다.

 이 거듭난다는 말은 다시 살아난다는 말입니다. 다시 살아난다는 말은 이미 있는  것이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을 다시 살아난다 이렇게 말을 하고 또 그 속에는  죽은 것이 다시 살아나는 것만이 아니고 그 속에는 새로 생겨 나온다 하는 것을  뜻하고 있습니다.

 중생에 대해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데는 영육으로 된 사람이  중생된다. 이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영육이 다  중생되는 것이 아니고 영만 중생합니다. 영만 중생한다 이렇게 구별을 해서 알고  있는 사람은 좀 희귀합니다.

 또 그보다도, 우리가 처음 아담으로 생겨진 영육의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그 거듭남만 아니고 첫째 아담으로 생겨난 자에게 아담으로 생겨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으로 생겨난 자가 있습니다. 하나님으로 생겨난 자가 있는 것은  이것은 모두 다 일반적으로서는 말하지 안하고 있고 이것은 교계에 나가면 많은  물의들이 일어날 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교리는 쉽게 말하지 안하고 혹  새벽기도에나 말을 해서 서서히 일반 교계 신앙들이 자라감을 기다리면서 있는  교리들입니다, 그것은 새로 생겨난다는 것은 하나님으로 나는데 하나님에게도 그러면 무슨  새것이 있느냐? 하나님이 자존해 계시면서 그분이 역사하지 아니하던 그 부분에  처음으로 역사를 시작한 그것이 곧 우리의 거듭난 내부입니다.

 이래서 우리에게는,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하시고 완전하시기 때문에 범죄한  죄인들과 같이 있을 수 없어서 하나님은 떠나셨습니다. 하나님이 떠나시므로서  하나님이 없으므로 인생은 생명에서 끊겨졌으나 하나님이 인생에게 와서 인생을  멸하시는 그 심판 역사를 하지 아니하고 계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범죄함으로 죽기만 죽었지 하나님이 멸망시키는 그  멸망을 받지 아니였기 때문에 세상에서 존재해 있었는 것입니다. 그라다가 세상을  떠날 때가 된 그는 비로소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끝이 나는  것입니다.

 이런데, 우리의 이 거듭나는 것은 하나는 죽은 것이 살아나는 것을 가리켜서  거듭난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고 하나님이 착수하시지 아니하신 것을 처음으로  착수하시는 것을 가리켜서 거듭난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이면입니다.

 이것은 아직까지 교계에 나타나지 안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말을 벌로 하면  도리어 정죄함을 받기 쉽습니다. 정죄함을 받으면 정죄함을 받는다고 해가 되거나  그런 거는 아니지만 정죄함을 받고 정죄하고 이렇게 되면 그 사람들에게 이  도리가 전파돼 나가기가 어렵고 거기서 가로막히기 쉽기 때문에 악령은 이 점를  노리고 그렇게 사람들을 유혹해서,  하나님이 처음으로 역사하심을 시작한다 하는 이건 것을 자기네들이 들어서  생각해 볼라고도 '하지 안하고 그만 이단이라고 이렇게 정죄케 해 가지고 바로  말하는 자와 모르는 자 사이에 담을 쌓아서 적이 되도록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악령의 역사이기 때문에 깨달은 사람들은 변론을 할라고 하지 않습니다.

 알아도 그들에게 말해 놓고, 옳은 거는 옳다 아닌 거는 아니라고 말해놓고  그대로 둬서 연구 제목을 줘 놓으면 저들이 스스로 제가 되면 연구해서 알게 될  적에는 거리낌이 없이 진리를 찾아서 영접하게 되지만 미리 어떤 사람이 자기는  특수하다 하는 그런 무슨 자기 자랑을 할라고 하면 그것이 마귀 역사가 돼서  그것이 도가 전파돼 나가는 데에 아주 장애의 방어선이 돼서 전파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람은 첫째 아담으로 난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 아담으로 난  사람은 우리 부정모혈로 난 사람은 다 첫째 아담의 자손입니다. 그러면 첫째  아담의 자손은 다 부모로 말미암아 났느냐 하면 반은 나고 반은 안 났습니다.

 육은 부정모혈의 그 분자가 와 가지고 우리의 육이 낫습니다. 그것은 첫째  아담의 유전의 존재로 생겨진 것입니다. 그러나 영은 유전이 아닙니다. 영은 그  사람의 육을 하나님이 창조하실라고 유전으로 분식할 때에, 분식이라 하는 것은  나누어 가지고 살리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의 인류 시조는 분식을 할 때에 갈비대를 빼 가지고 분식을 해서  하와가 됐습니다. 두 남녀가 되고 난 이후에 사람을 분식하는 것은 부정모혈의  분식으로서 사람이 이렇게 자꾸 분식 제도로 해 가지고 번식이 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분식이 될 때에 그는 순전히 심신으로 된 육 뿐이지 영은 없습니다. 영은  부모의 영이 분식돼 가지고 자식의 영으로 그렇게 분식 존재가 아닙니다. 영은  불가분의 존재이지, 나눌 수 없는 존재지 영이 그렇게 나누어 번식을 시킬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부모의 영이 자식의 영되는 것 아닙니다. 육이  되지만 영은 그렇게 되는 것 아닙니다.

 여게 대해서 많은 논리가 있어서 이단들이 여게서 많이 났습니다. 그런데 옳은  정통 성경대로 되는 것은 하나님이 그 사람의 육을 만드실 때에 육은 그 부모를  통해서 분식법으로 만드시고 영은 만드실 때에 직접 하나님께서 영을  창조하십니다.

 그러면, 사람은 영육으로 된 사람인데 육은 분식으로 유전된 것이고 영은  하나님의 창조로 된 것입니다.

 그러나, 왜 그러면 부정모혈로 난 그 사람과 영육이 하나냐 하는 것은 그것은  영이 육을 입지 않고는 물질계에 들어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물질을 입어야 되고, 또 자기에게 해당된 물질을 입어야 되고, 또 사람이라는 이  종류, 사람이라는 종류 속에 들어오는 데에는 영을 가져야 되는데 영을  창조했지만 그것이 사람 종류에 들어올라고 하면 유전된 그 육을 입지 않고는 안  되기 때문에 불가불 영과 육이 하나되어 가지고 한 인격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육은 정죄받은 육이 유전적으로 돼서 번식이 되고 영은 유전이  아니면 이 영이 어떻게 범죄가 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만일 영이 범죄한 영이  된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범죄한 것을 창조하시지 안했느냐 하는 그런 논리가  됩니다.

 하나님은 죄 있는 것을 창조하시지 안했습니다. 죄 있는 것을 창조하시지  안했는데 죄 없는 영으로 창조했으나 이 영이 인간의 심신을 입지 안하고는 안  되기 때문에 인간의 심신을 입고 인간계에 들어오게 되는 그때에 인간계에  들어와서 인간에게 가입했기 때문에 인간이 된 그때부터 영이 정죄함을 받습니다.

 이래서, 육은 일찍부터 정죄함을 받은 그 선조의 유전으로 조성되는 것이고 영은  범죄한 그 죄악의 영이 아니나 그 영이 영과 육이 하나되어 사람들은 그때에 그  영이 정죄함을 받아서 이러기에 영육이 다 정죄받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처음부터도 영이 범죄로 죽은 것은 영이 범죄해 죽은 게 아니고  육이 범죄한 것을 주격 위치에 주격 책임으로 정죄받아 가지고 죽은 것이고 또  오늘 나는 사람도 역연 육이 범죄한 것을 영이 그것을 입고 들어가 가지고 저  범죄한 영이 되는 것입니다. 입고 들어가도 사람이 될라고 하면 영이 육을 안  입을 수 없고 육을 입을 때에 정죄함을 받아 가지고 그렇게 영육이 다 범죄해서  죽게 된 것입니다.

 이래서, 첫째 아담에게서 난 자는 다, 육만이 아니고 영육이 합하여 사람이 된  것인데 사람은 다 정죄 아래에 있어서 사망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이  세상에 나는 것은 다 살고 있는 사람들은 다 영육이 정죄받아서 영은 단번에  사망하게 됐고 육은 이 종합체요 중복체, 종합체, 마음도 수많은 요소가 종합돼  가지고 되는 종합체요 영은 단일체요 단일성의 존재이기 때문에 그거는  정죄받음으로 단번에 죽었고 육은 이미 정죄받아 죽은 것이나 그것이 세상에  자기에게 해당된 그 토막을 통과해서 다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땅위에 사는 것은 그것이 생명이 살아가는 것인 줄  알지만 생명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생명이 지금, 죽은 생명이 죽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을 떠날 때는 그때에 이미 죽어 있는 것이 완전히 생기가  다 떨어지는 그것입니다.

 마치 산 나무를 베어 놓으면 이미 베였으니까 죽은 나무지만 그 나무를  부분적으로 본다면 그래도 푸른 기가 있고 그거 진액이 있고 이렇게 있으나  뿌리에서 끊겨 있으면 죽기는 죽은 나무입니다. 그와 같이 육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사람이 누구든지 첫째 아담으로 난 한 번 난 사람은 다 지옥입니다. 한  번 난 사람은 다 지옥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도 부정모혈과 창조의 영이 합해서  사람이 되어서 났을 때에는 뭐 그것은 어떤 사람이든지 다 지옥갑니다. 그거는  첫째 아담으로 난 사람은 다 지옥입니다. 첫째 아담으로 난 사람은 지옥인데,  여러분들이 좀 듣기가 까달스럽지만 이것을 말하지 안하면 내가 또 언제 떠날지  모르겠고 여러분들이 잘못 알아서. 나가면 이 교리를 밝힐 사람 없습니다. 지금  내 밑에 수십 년 배웠지만 이 모든 교리들을 밝힐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  있던 것은 죽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불러 갔습니다. 서영준 목사는 밝힐 수  있었는데 다른 이는 지금 밝힐 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니까, 이 가운데도 들은 사람이 있고 또 녹음이 되든지 설교록에 나가든지  하면 뒤에 기억하리라 해서 말한 것입니다.

 첫째 아담으로 난 사람은 다 영육이 아담으로 말미암아 유전된 것은 아니요  육만 유전이고 영은 하나님의 창조로 생겨진 것인데 왜 아담의 자손이라 했느냐  하면 아담의 자손인 인간에게 창조된 영이 가입하지 안하면 그것이 사람으로  나타날 수 없기 때문에 부득이 범죄 정죄 받은 육에게, 그 육과 더불어 합해  가지고 인간에게 가입돼서 인간이기 때문에 그때에 원죄로 정죄받아서 죽은  것입니다.

 이래서, 여러분들이 첫째 아담에게 난 사람은 영육으로 된 사람이라 하는 것을  기억하는 그 속에 영은 창조되어서 된 것이고 부모의 유전으로 된 것은 아니라  하는 것을 그렇게 구별해서 알아야 앞으로 교리를 연구하고 영생을 연구해 나갈  때에 거게 바로 길이 열려지지 그것만 하나 막혀도 영생의 문제가 해결이 안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모든 교리는 자꾸 막히고 막혀서 어떤 사람으로서 고 시대까지에  필요한 데까지는 개방이 되고 또 그때에 필요가 아직 없는 것은 그 후세대에 좀  더 장성해질 때에 개방이 돼서 지금 자꾸 새로운 교리가 나오는 것은 없던  교리가 나오는 게 아니라 성경에 그 교리가 있는데 사람들이 어두워서 깨닫지  못하던 것을 사람들이 밝아짐에 따라서 깨달음이 점점 더 깨달아지고,  깨달아짐이 더 되는 것은 그 시대에 모든 이 세상을 다 제어하고 능가하고  그것을 능히 논리로 대항하고 승리하고 이렇게 사람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 죄악이 점점 발달될 수록 하나님의 성경말씀에 대해서 깨닫게 해 주시는  이 깨달음이 점점 전진돼 나가는 것입니다.

 이래서, 세상 종교는 그래 보니까 새로 연구되고 보니까 연구돼서 이렇게 자꾸  경험하고 체험함으로 연구되는 그 진화론, 이 철학은 다 진화론입니다. 철학은  사람들이 자꾸 연구해서 자꾸 발명돼 나오는 것이지만 기독교는 진화론이 아니고  계시 종교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다 알려 놨는데 사람이 그것을 몰라서 못  보다가서 눈이 열리니까 다시 보고 이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계시 종교입니다.

 이래서, 철학과 하나님의 도가 아주 다른데, 철학을 일생 동안 공부한 사람도  철학 속에 든 사람은 모르고 또 기독자들이 철학을 공부해도 시야가 좁아서  모르는 사람들 많이 있습니다.

 학문으로서는 기독교에 일대 적이 뭐이냐 하면 철학이 일대 적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들에게 다른 것을 지울 게 없으니까  이제 있는 것을 너희들이 감당해라' 말씀하신 사탄의 깊은 것은 철학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불교도 철학입니다. 유교도 철학 반 도덕 반입니다.

 이래서, 철학이라 하는 것은 사람에게서 발원해 가지고 사람을 파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람에게서 발원해서 사람을 파고 들어가는데 실상 있는 것을 파고  들어가는 것도 있고 없는 것을 수상해 가지고 만들어 가지고 자꾸 이렇게 파고  들어가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철학은 인간에서 발원된 것이 순전히 인적 요소입니다. 철학이라는 건  순전히 인적 요소입니다. 그 지식이라 하는 것이 모두 인적 요소인데 여게서 자꾸  발원돼 가지고 어디로 파고 들어가느냐 하면 첫째는 사람 속으로 파고 들어가고  사람과 관계되는 모든 존재 속으로 파고 들어가서 자꾸 이렇게 파고 올라가고  있고 기독교는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는 도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것만치 알고 그리 안 하면 알지를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철학은 자기네들이 기초부터 자꾸 거기서 발전 진화 연구 이렇게  돼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사람이 애를 쓰면 쓰는 것 만치 자꾸  들어갑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다 사탄이 하는 것인데 그 전부는 다 인간을  속여서 멸망시키기 위해서 고등 술책으로 사람을 유혹시키는 것이 그것이  철학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제일 멸망시킨 것이 뭣이 멸망을 시켰느냐 하면이 중세대에 와  가지고 철학이 들어서 기독교를 완전히 속화시키고 혼합시켜 가지고 썩히게 된  것입니다. '이래서, 철학이 들어서 기독교를 그렇게 권위있게 썩혔고, 또 기독교를  제일 처음에 썩힌 것은 뭐이냐? 역연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인간 중심인 그것이  들어와서 썩혔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상고 시대에 기독교를 부패케 한 것은 뭐이냐? 불의한 교권이  교회를 부패케 했습니다. 불의한 교권. 불의한 교권이라 말은 인간 중심으로  하나님의 도를 상대하는 거기에서 교회가 부패해져서 천주교가 생겨져 나온  것입니다. 그러기에 천주교를 사람들이 알기 쉬운 말로 말할라면 천주교는 불의한  교권으로서 이렇게 교회가 썩어졌다.

 이래서, 불의한 교권을 그후에 방지하기 위해서 이제 이렇게 교황무오주의로  이렇게 나가면 안 되니까 이걸 반대해서 이제 장로교 이모든 장로 정치로 장로  많은 사람들의 장로들의 그 중론을 따라 가지고 교회를 행정해 나가자 하는  것으로써 장로를 아무래도 강조해야 되겠다 해 가지고 장로 정치가 생겨졌어.

그때 벌써 장로는 있었지만 장로의 권위를 건 가지고 교회를 이것을 바로 잡아  나가자 하는 그 주장이 장로교 정치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반대해 그렇느냐 하면  교황 정치 불의한 교권 정치를 방어해 가지고 장로 정치가 생겼습니다.

 장로 정치가 생기고 나니까 장로 정치가 생기고 나니 또 장로들이 단합해  가지고 이와 간이 점점 교회가 타락해 나가니까 안 됐다, 이거는 아무래도 감독을  해야 되지 감독 안 해 가지고는 안 되겠다. 감독을 하기 위해서 감독 정치된 것이  그것이 감리교가 생겨져서 감독 정치가 생겨졌습니다.

 이래서 아직도 기독교는 그때에 장로 정치 때부터 그게 그것이 바로 민주  정치라 이래 가지고 칼빈이 개혁을 하면서 칼빈도, 기독교는 무슨 정치냐 할 때에  기독교는 이제 민주 정치로 해야 된다 이래 가지고 민주 정치를 한 것은 그분이  알고 했는지 모르고 했는지 모르나 민주정치로 그만 그렇게 해 가지고 지금은  기독교는 민주 정치라 하는 것이 세계에 다 통일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반대로 기독교는 민주 정치가 아니고 기독교는 독재정치라 하는  이것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 순교를 당했지만 그 뒤에 그만 끊어지고 말아 아주  끊어지고 말았는데 지금 기독교는 민주 정치가 아니고 독재 정치라 하는 그런  것이 뜨문뜨문 아마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지금 반대적으로 이것을 선포한 것이 제가 먼저 처음으로  선포하고 지금 많은 투쟁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 총공회에서부터 벌써 투쟁을 해  가지고 OOO목사님 OOO목사님 OOO목사님 이런 분들을 잃어버린 것이 뭐이야  하면 이 독재 정치민주 정치 여게 대립이 돼 가지고 그들은 민주 정치가  기독교라고 해가지고 총공회는 이 벌써 민주 정치로 하지 안하고 독재 정치로  하니까 이거 변질됐다 해 가지고 그렇게 정죄하고 갈라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독재주의는 이거는 독재 정치는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서도 민주 정치 하지 안했고, 하나님에서 그저 동산을 다스리라, 지키라  명령 일하에 움직였지 뭐 너거 형편에 이러냐 저러냐 그런 모든 의논을 해서  의사를 듣지를 안했습니다. 또 그 후에 아브라함에게도 하나님께서 이래라 저래라  명령 일하에서 움직인 것이 모든 성도들이요 하나님이 하나님 백성들을 다스릴  것입니다.

 또 예수님도 오셔 가지고,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동등 될 걸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어 종의 형상을 입었다 하는 것은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의 독재에 복종한, 제이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의 독재에 복종한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정을 해서 모든 것 위에 뛰어난 이름을  줬습니다.

 그때서, 독재받은 예수님도 그 뒤에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독재했었습니다.

사람들의 의논과 타협하지 안하고 당신의 꼭 하나님 뜻을 그대로 시행시켰지 뭐  타협이나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고, 그 뒤에 사도들이, 어디서 또 민주주의가 힘을 얻었느냐 하면 사도들을,  집사를 택할 때에 사도 택한 것은 이 사람은 사도될 만한 사람이냐 아니냐 하는  그것은 민주주의를 춰하지 안했습니다. 독재주의를 취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했지만 집사들을 택할 때에는 백성들 너희들에게 택하라 이래서  백성들이 이 사람이 좋으냐 저 사람이 좋으냐 선택했기 때문에 그것을 보고  민주주의라 이래 가지고 뿌리를 거기서 또 힘을 얻어 가지고 기독교 민주주의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그거는 성경을 잘못 알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 당시에 교인들이 집사를 택했을 때에 '택해 가지고 오라' 택해가지고 왔을  때에 사도들이 검사해 가지고 사도들이 볼 때에 인정될 때에 집사가 됐지  사도들이 인정하지 안할 때는 집사가 안 됐습니다. 그래 가서 선택한 것을  사도들이 보고 검열해 가지고 '이거는 집사 될 수 있다' 했기 때문에 집사가 됐어.

그것도 사도들의 독재입니다. 독재에 다만 사도들에게 청원을 한 것뿐이지 청원한  것이 결정된 것은 사도들의 독재로 결정이 됐습니다.

 하나님은 주권 의지로 모든 것은 예정했기 때문에 그것도 독재입니다. 또  하나님은 주권 능력으로 창조했기 때문에 그것도 독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다른 무엇을 타협하지 안하고 힘입지 안하고 단독이 하시는 그것이  하나님의 독성입니다. 하나님의 독성입니다.

 왜? 하나님은 그분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요 완전자이시기 때문에 그 분과  동등되는 것이 있을 수 없고 유사한 것도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전부 혼자  하셨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완전을 깨달으면 이런 걸 깨달을 수 있고 하나님의 주권 개별  섭리, 그러기 때문에 개미 한 마리가 수염을 요리조리 하는 것도 하나님의 단독  주권 개별 섭리로 하셨다 하는 요렇게 믿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지만 굵닥굵닥 커단한 일 구원에 대한 것 몇 가지만 주권을 믿지,  구원에 대한 몇 건만 하나님이 주권하시지 나머지기는 주권하시지 안했다 이래  가지고 주권도 종류가 많고 예정도 종류가 많습니다.

 개미 한 마리 수염을 요리조리 흔드는 것도 하나님 혼자 하신다 하는 그 주권을  말한 것은 그것은 어디서 나왔느냐? 하나님의 완전자인 것과 하나님의 유일하신  분과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라는 것을 믿고 주권 의지로 예정했고 주권 능력으로  창조하신다는 요것을 믿는 믿음에서 그 생산 나온 것이 그것이 개미 한 마리  수염도 거기서 무엇이 자유할 수는 없다. 꼭 하나님 한 분의 능력에 따라서  움직여졌다. 뭘 통했든지 말았든지 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것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사람은 첫째 아담으로 난 사람은 영육으로 된 사람인데 영도 아담의  자손에게서 유전으로 났느냐 그걸 여러분들이 단단히 지금 알아야 됩니다. 앞으로  이걸 모르면 구원이 복잡해지고 구원이 안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시편 주석가들이 오늘까지 많이 나왔지만 시편 주석가들이 그  시편 주석을 똑바로 하지를 못한 일이 많이 있습니다. 왜? 시편에 보면 나는  완전자라, 하나님이여 나를 살펴보십시오, 내게 흠이 있는가 보십시요,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나 하나님 법을 지키는 것이나 모든 면에 완전자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그것을 해석을 달리는 할 수가 없으니까 사람 쳐놓고는 완전자라 하는  어떻게 그 에누리를 할 수 있겠습니까? 에누리를 하나님은 에누리해서 그래  말하지 않습니다. 성신의 감동으로 시편 기록한 것인데 그러면 시편 기록한 자가  어디 완전자가 어디 있겠느냐? 완전자가 있는 것은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새사람은 완전자입니다. 거게는 흠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시편에서 자체의 완전을 자랑하고 크게 하고 찬양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 대속의 중생을 크게 자랑하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크게 높이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제가 어제도 시편 136편을 제가 오늘 설교를 할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  설교를 먼저 시작하다가 말았는데 그 시편 136편에 큰 뜻이 있지만 그 뜻을 지난  주일에 증거할라다 시간이 없어서 못 썼고 그 뜻을 이 중요하니까 증거해야  되겠는데 그러면 이 주석이 어떤고 싶어서 비로소 오늘 아침에 칼빈 주석을 제가  봤습니다. 시편136편에 대한 칼빈 주석을 봤는데 거기서는 엉뚱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대로 그 요지 그것은 하나도 언급하지 안하고 있고 피상적으로  모든 걸 말하고 있어. 그거는 그때는 그것쯤만 알아도 되기 때문에 알았지만  오늘에는 벌써 원자가 생기고 사람들이 과학을 가지고 이 별에서 저 별에  건너가고 하는 이런 때기 때문에 사람의 지식이 더해져서 이렇게 더해졌기  때문에 그런 정도 가지고는 되지를 안합니다. 그런 정도로서는 논리가 서 갈 수가  없고 그 구원이 세상을 이기고 정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그 설교를 할라고 했는데 오늘 새벽에 제가 주일학교 공과를 약간  가르치고 나서 제가 기도하는 가운데에 아무래도 이거 거듭난 데 대해서 증거를  해야 되겠다. 이 거듭남에 대해서 모두 우리 교인들이 모르고 있고 알고 있다고  해도 이 거듭남의 이 은혜를 자기가 힘입지 못하고 있다, 힘입지 못하고 있다.

이걸 힘입어야 구원이 되는데 힘입은 사람이 심히 희귀하다. 이래서 다시  증거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 아담으로 난 사람은 영육으로 났는데 영은 하나님이 지어 가지고  육에게 가담이 돼 버렸고, 그래서 영육으로 된 그 사람이 그것은 다 지옥 갑니다.

지옥 안 갈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첫째 아담의 자손은 한 사람도 지옥 안 갈  사람 없어. 전부 지옥 갑니다. 전부 지옥가고 다 죽어 있습니다. 지옥 가고 다  죽어 있습니다.

 뭐 죽어가고 있는 게 아니라 다 죽어 있습니다. 완전히 죽어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 앞에서 벌써 공심판에서 정죄받아 가지고 다 사형을 받아다 죽었습니다.

영은 단번에 죽었고 육은 지금 죽는 것이 아직까지 남아 있지만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걱정한 것은 예수님이 대속하신 것은 완전히 죽은 우리를  대속하셨다 하는 것이 우리 총공회 교리인데 우리 총공회에서도 완전히 죽어  있는 자를 예수님이 대속한 게 아니라 죽어가고 있는 자를 대속했다 하는 것이  이것은 중생 문제가 되는 것이고 예수님의 대속 문제가 되기 때문에 이것이  기독교의 제일 씨종자입니다.

 기독교의 씨종자이기 때문에 이 교리가 틀려 가지고는 안 되겠다해 가지고 그  교리를 바로 잡을라고 이렇게 얘기도 하고 권유했으나 사람은 강퍅해서 듣지  안하고 회개치 안하고 자꾸 변명만 하고 이래하다가 나를 괴롭히니까 나는  간다고 하고 가 버렸습니다.

 갔는데, 그분이 가도 요거는 고치면 좋겠는데 고치지 못하도록 마귀란 놈이  달라들면 못 고칠지 모릅니다. 요걸 고쳐야 둬 것인데 요걸 고치지 안하고 요거  고칠라고 죄라 틀렸다 하고 고쳐야 되는데 틀렸다 하기가 싫어 가지고 요걸  고치지 안하고 변명을 해 나가게 되면 그 사람의 신앙생활 전체가 다 죽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단이 이래 가지고 이단이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 교인 서기관들 제사장들 이분들이 예수님과  교리에 서로 대립이 됐습니다. 예수님의 교리는 완전히 그거는 완전이고 그들의  교리는 틀렸으니까 교리 틀렸으면 '틀렸습니다. 주님이 말씀한 것이 맞습니다.'  하고 그만 그 앞에 굴복했으면 살고 그 한없는 은혜를 받아서 이스라엘을 살렸을  터인데 이스라엘의 지도자 되는 사람들이 틀린 줄 알면서도 자기 지위와 권위와  모든 사람이 랍비여 선생님이여 하는 이 대우 문제가 틀리니까 저거들의 지위나  권세나 대우나 영광이나 존귀나 이 세상의 저 문제를 위해서,  저가 희생되기 싫어서, 제가 매장되기 일어, 제가 깨지기 싫어, 매장도 아니오.

제가 깨지기 싫어서, 제가 꺾어지기 싫어서, 제가 깨지기 싫어서, 제가 잘못된 그  가르친 죄를 범한 죄인되기 싫어서, 제가 되기 싫어서 이걸 변명해 가지고  이스라엘을 다 죽인 것이 구약 제사장들이요 서기관들입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예수님을 죽여 놓고 난 다음에 '그가 삼 일만에 부활한다  했으니까 너희들이 단단히 지키라. 만일 시체를 다른 데 가져가고 난 다음에  살아났다 하는 날이면 또 유혹이 더 많을 터이니까 단단히 지키라.'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 교인들이 다 돈을 주고 지켰고 로마에 총독도 협력을 해 가지고  군인들을 보내 가지고, 지켰던 것입니다.

 지켰던 것은 그들이 그렇게 예수님의 교훈으로서는 옳다고 인정했지만 예수님이  참 죽은 가운데 사흘 만에 부활하시는 메시야가 될 줄은 모릅니다, 아직까지. 그건  또 못 믿습니다. 그거 이미 믿어도, 믿어도 자기 중심인 악 그게 들어서 부정하고  이와 같이 예수님을 정죄해서 죽이면 없어질 줄 알고 죽였습니다.

 군대로 지켰는데 삼 일만에 부활하셔서 천사들이 오고 예수님은 거기서  부활하시고 그들은 거기서 놀래서 기절해 가지고 죽을 지경으로 이래. 있다가서  마구 도망을 쳐 가지고 와 가지고 '예수님이 살아났습니다' 살아났다 하는 걸  증거하니까 이제는 그들이 그때에 살아났으니까 더 메시아인 것을 확실히  알았지만 그때에 '우리가 메시아를 정죄해 죽였다' 하는 날이면 돌로 쳐서 죽일  터이기 때문에 자기 생명이 죽을 터이니까 과거에는 명예 지위 권세 대우  문제지만 이제는 더 큰 생명 문제가 되니까 이 생명이, 지금 죽으면 사는데. 그래  가지고 자기네들이 참 '우리가 그와 같이 주님을 주님으로 모르고 정죄했다'  이렇게 사형을 받았으면 그들은 참 첫째 부활에 참여하고 영광스러운 사람들이  될 터인데 자기들의 생명을 애낌으로 그 길을 걷지 못해가지고 돈을 줘서  '어짜든지 너희들이 어떤 자들이와 가지고 우리 졸 때 그만 도적해 가지고 갔다  그렇게 말해라' 그래 말을 해서 그 때 그들이 했습니다. 그들이 알고도 강팍했다  그말이오. 이거는 뭐이냐? 사람이 알고도 하나님이 성령으로 감동시켜서 깨달아  회개케 하시면 회개하지만 안다고 해서 회개케 하지 안하면 회개되는 것은  아닙니다.

 강팍해서 자기 중심, 그러기 때문에 자기 중심을 완전히, 자기를 원수인 줄 알고  자기 중심 이놈을 원수인 즐 알고 이놈을 죽이지 안하면 그는 아무리 뭐 목사고  장로고 암만 돼도 소용없습니다. 항상 제 구원 이룰 때는 자기 중심인 고놈이  나서 가지고 제게 해가 된다, 제게 해가 된 고놈은 죽이라 했는데.

 그래 가지고 그들이 예수님을 부정하고 그다음에 사십 일 동안 살아나셔 가지고  다시 제자들로 더불어 만나기도 하고 수백명으로 더불어 이와같이 설교도 강의도  하고 이렇게 해도 그들은 항상 거짓말로 안 살았는데 살아났다 한다' 이렇게 말을  해 나왔는데 아마 지금은 죽어 가지고 영계에 가 가지고는 후회가 될 것입니다.

후회가 됩니다. 왜 후회가 돼? 이미 죽는 거 그때 생명 내놓고 주님이 메시아라  하는 걸 증거할 걸 요렇게 둬 것인데 이미 죽을 생명 애껴 가지고 못 했습니다.

생명 아끼기 전에는 뭐 아까워서 못 했어? 대우가 아깝고 자기 지위와 권세가  아까와서, 그거 얻어봤자 소용없는데. 마귀가 들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틀린 줄 알고, 그것을 틀린 줄 알고, 욕을 하면서 틀렸다 하든지 뺨을  때리면서 틀렸다 하든지 틀린 것을 틀린 줄 알고 자기 감정에 북받쳐서 뭣으로  말미암아 고치지 못하면 벌써 마귀에게 홀켜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은  하나님이 긍휼히 여겨서 어떤 때에 다시 살게 되면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못살아  납니다. 이단자가 다 이단자 되고자 되는 것 아니오. 자기 때문에 됩니다.

 이래서, 처음에 첫 아담에게 난 사람은 다 지옥 갑니다. 다 죽습니다. 다 죽어  있습니다. 다 이미 다 죽어 있어. 죽을 자가 아니라 다 죽어있어.

 고기덩어리는 살아 있는데? 살아 있는 거는 산 게 아니라 사형받아서 죽었는데  그게 지금 죽는 것이 지금 요거 죽고 저거 죽고 자꾸 중복적으로, 종합체이기  때문에 하나씩 둘씩 죽는 것입니다.

 세 살 먹는 아이하고 열 살 먹는 아이를 비교하면 열 살 먹는 아이는 벌써 그  요소가 많이 죽었습니다. 요소가 많이 죽었습니다. 크는 게 아니오. 죽었습니다. 또  열 살 먹는 아이와 또 열다섯 살 먹는 아이와는 그 요소가 많이 죽었습니다. 세  살 먹는 아이와 갓난아이와 그 요소로 하면 벌써 세 살 먹는 아이는 많이  죽었습니다, 자꾸 요소가 자꾸 죽어져 갑니다.

 그러면, 요소가 지금 이 커져 나가는 요소가 붇는 게 아니고, 요소가 붙는 게  아니고 그것이 자꾸 이렇게 조그만한 것이 자꾸 커져 가지고 자꾸 커지니까  사람은 커지는 것 같지만 갯수는 줍니다. 이미 뭉텅이는 그것이 차꾸 이래  커지니까 조그만한 아이가 이만침 큰 아이가 되니까 큰 것 같지만 갯수는 줄고  종류마다 그 종류는 커집니다. 커지나, 종류는 커지나 점점 종류의 갯수는 차꾸  준다 그말이오. 그래 다 줄면 다 줄어지면 다 죽으면 이제 죽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십 살 먹는 사람은 살아 있는 종류가 적고 또 육십 잘 먹는 사람은 더  적고 또 팔십 살 먹는 사람은 더 적고 마지막에 죽을 때는 남은 종류가 다 죽을  때에 그때에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 죽어 있는 것을 살렸습니다.

 그러면, 첫째 아담에서 난 사람은 다 지옥 가고 다 죽는데. 그 중에, 첫째  아담으로 난 사람 중에 거듭나는 이런 일이 있는 사람은 이제 하늘나라 갑니다,  거듭난 사람은 다 하늘나라 갑니다. 거듭난 사람으로서는 하늘나라 안 갈 사람이  하나도 없고 지옥 갈 사람이 하나도 없고 거듭나지 안한 사람으로서는 지옥 안  갈 사람이 하나도 없고 하늘나라 갈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이거는 절대성으로  불변적인 절대성 입니다. 불변적으로 절대성이기 때문에, '그러면, 우리는 첫째  아담으로 나 가지고 다 죽었던 자입니다. 죽었던 자인데 우리가 거듭날 때에  우리의 영이 거듭났습니다. 우리의 영이 거듭난 것은 우리 영이 다시 살아났다는  말입니다. 우리 영이 다시 살아났고 우리의 심신은 예수님이 대형, 대행,  대화친으로 공심판을 다 예수님이 대신해서 다 해결지웠기 때문에 공심판  법적으로는 우리가 산 사람이지만, 영육이 다 산 사람이지만 실상은 영육이 다  죽어 있는데 죽어 있는 영을 하나님이 그 기회에 따라서 영을 살리면 영은  살아났고 육은 죽어 있습니다. 그러면, 육이 죽어 있으면 죽어 있는 그 육은  법적으로는 지금, 중생된 자의 육이 법적으로는 죽어 있습니까 살아 있습니까?  죽어 있습니까 살아 있습니까? 살아 있습니다. 중생된 사람은 그 심신이  법적으로는 살아 있습니다. 법적으로는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법적으로만 살아 있지 실상으로는 살아 있지 못하기 때문에 산 행사는  못 합니다. 산 행사는 못 합니다.

 이런데, 이 영을 살리는 것은 하나님이 순전히 하나님 능력으로 영을 살립니다,  영을 살리는 것은 우리가 알 수 있게 살리지를 아니하십니다. 영을 살리는 것은  우리가 볼 수 없습니다. 영을 살리는 것은 그것을 볼만한 눈이 없습니다.

육안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영을 살린 것은 예수님이 비유로 가르치기를 마치 바람과 같다  그렇게 해서 그 진상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면 바람이라 하는 것은 우리가 이  육안으로는 볼 수가 없지만 그 바람이 부나 안 부나 하는 것은 그의 결과를 봐서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람이 불면 무엇이 흔들리고 안 흔들리면 바람이 안 부는 것이고 또  동풍인지 남풍인지 그것을 눈으로 봐서는 안 보이지만 그 결과를 보면 '이거는  동풍이로구만' '이거는 남풍이로구만' 그 결과를 봐서 아는 거와 마찬가지로 영이  중생된 것은 사람들이 볼 수 없으나 중생된 그 결과를 봐서 알 수가 있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중생된 결과를 봐서 아는데 중생된 결과 중에 제일 첫째로 나타나는  것이 뭐이냐 하면 예수님을 자기 구주로 믿는 것입니다. 이래서, 악령은 하는 일이  두 가지 있는데 첫째는 뭣을 하고 있느냐 하면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 일을  악령이 책임지고 지금 하고 있고 또 한 가지는 예수님 믿는 생활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그것이 악령이 책임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겼기 때문에 악령은 예수님이 부리는 영이 돼 가지고 지금 예수님의  종노릇을 두 가지를 하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을 못 믿게 하는 것과 또 믿는  행위를, 믿는 생활하는 것을 못 하게 하는 것과 그거 두 가지를 지금 하고 있는데,  그러기 때문에, 이거는 물샐 틀 없이 하고 있는고로 그 사람이 만일 예수님을  자기가 믿고 싶은 마음이 한 번 있었습니다. 믿고 싶은 마음이 어찌 한 번  있었습니다. 믿고 싶은 마음이 한 번 뻐뜩 있었어. 또 자기가 또 믿겠다고 말을  하든지 또 한 일이 한 번 있었습니다. 또 믿을 마음이 있어서 예배당에 한 번  갔었습니다.

 믿는 마음이 한 번 있은 것이나 말을 한 번 한 것이나 행동을 한번 한 것이나  믿는 데 관한 것을 지극히 적은 양이라도 그 사람이 한번 믿는 고 믿음을 그  사람이 가져봤다는 것은 믿음을 가졌다는 것은 그것은 벌써 중생한 증거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믿겠다고 이래 작정하고 믿다가서 나중에 낙심하고  무신론자와, 저 김일성이도 천국 갈란지 모릅니다. 그 사람이 예수 믿던 사람인데  지금 무신론의 대가리가 돼 가지고 저래 있지만 주위 환경에 끌려서 사람이 그런  것입니다.

 사람이 잘 믿던 사람이 고만 못된 남자에게 시집가니까 그만 믿는 일을 못  합니다. 김일성이도 믿던 사람이 그렇게 그만 이 반동가리라도 차지해 가지고  정권을 차지할 그런 것이 눈에 그 권리가 얼렁거리니까 그만 권리에 미혹받아  가지고 신앙을 버릴지 모른다 그말이오.

 어쨌든지 이 중생된 사람이 아니면 예수 믿는 일을 못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한  번이라도, 중생한 사람은 믿는 뽀스래기 하나라도 시작했으면 그것이 중생된  증거라 그말이오. 중생 안 되면 그 짓을 못 해. 마귀가 막기 때문에.

 다른 일은 잘 해도 이 예수 믿는 일에 대해서는 절대 반대요 그거를 못 하도록  그렇게 막아났기 때문에 단단한 방어가 있기 때문에 그 방어를 송곳 끄트머리  같은 바늘 끄트머리라도 그 방어를 뚫었으면 그게 벌써 그거는 중생된 그 중생의  능력으로 그렇게 뚫혀 졌다 그거요.

그러면, 지금 시간이 많이 갔는데 지금 몇 시입니까? 그라면 안 됐어. 오후에 이  거듭남에 대해서 증거 하겠습니다. 이 거듭남을 목사라도 다아는 거 아니오. 신학  박사라도 다 아는 거 아니야. 이러기 때문에 이걸 잘 알지 안하면 헛일이야.

 잘 모르면 자기 구원을 이루지 못해.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이 썩으면 썩고 세상  가는 대로 가고, 왜 신앙에 생명의 능력이 없는 것은 이 교리와 신조를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능력이 와서 역사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모르는 예수는 못 믿습니다. 알고도 믿을라 하면 힘드는데 모르는 거 어떻게  믿겠소? 그러니까 암만 배우기가 힘들어도 와서 배워야 되고 배우기도 어려운데  행하기는 더 어렵지, 어려워서 배우지도 못하는 것이 행해야 구원이 될 터인데  어떻게 우리가 행하겠습니까?

{기도}  사람의 지식으로 측량할 수 없는 지극히 큰 사랑, 지극히 큰 영광, 지극히 큰  권위의 존귀의 이 거듭남을 우리에게 큰 힘 들여서 주셨지만 저들이 깨닫지  못해서 지극히 큰 구원을 등한히 하고 항상 마귀에게 붙들려서 속고 속는  것으로서 일생을 비참하게 지내는 저희들인 것을 아시고 오늘도 깨우쳐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는 주님의 피의 능력과 성령님의 감화 감동의 능력과 진리의 능력이 우리를  살려 주셔야 깨닫지 우리 스스로는 깨달을 수 없다고 주님이 하지 안했습니까?  주님이여 긍휼히 여겨 주셔서 우리에게 이 세 능력으로서 한 사람도 빠짐없이  깨닫게 해 주시옵소서. '깨달으면 이 은혜와 소망에 기뻐 넘쳐서 자기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바쳐서 순생하지 안할 자 한 사람도 없고 순교하지 안할 자 한 사람도  없습니다. 주님이여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님이 긍휼히 여기시면 되고 주님이 또 되게 하는 것만치 되는 줄 아옵나니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사 깨달을 수 있도록 성신의 감화로 충만시켜 주시옵소서.

오후에 증거할 때에 주님이 같이 하사 다 깨달을 수 있는 은혜를 주시옵소서.

믿을 수 있는 은혜를 주시옵소서.

 많은 형제를 불러 구원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들에게 신령한 눈을 열어  주셔서 모든 것보다 크신 하나님이 저희 아버지된 것을 깨닫고 주님으로 더불어  의논하면 모든 것에 다 조금도 잘못됨이 없이 영생이 되어지는 것을 확실히  깨닫고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주님에게 모든 것을 의논하고 모든 것을 맡겨 놓고  악한 세상에라도 염려없이 평강의 걸음을 걸으며 날마다 뿍뿍 승리하는 거룩하고  의의 걸음을 걸을 수 있는 저희들이 되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수많은 노력으로 그 사랑으로 힘쓴 사랑하는 종들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주시고 그리스도의 사랑에 더욱 불붙게 하여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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