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28 07:56
중생
본문 : 요3:3-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하는 이 말씀에 대해서 사람들이 의문을 가지기 쉽습니다. 왜? 다른 데는 진실로라는 말씀을 하지 안하고 또 어떨 때는 '진실로' 하는 말씀을 또 덧붙여 하시고 여게는 진실로 진실로를 이래 두 번이나 거듭 말씀을 하셨으니 예수님의 하신 말씀에 대해서도 그 진실성에 대해서 그 차이가 있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을 하기 쉽겠습니다.
예수님의 하신 말씀은 어떤 말씀이든지 그 진실성과 권위성과 책임성이 꼭 같습니다. 또 한 번 말씀하신 것이나 수십 번 말씀하신 것이나 그 권위성도 다 같습니다. 같은데 여게는 특별히 진실로라는 말을 두 번 거듭한 것은 이 말씀에 권위성이 어떻다는 그것이 아니고 우리들의 이 모든 연약성을 향해서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들이 더욱이 기억하고 또 인정하고 또 원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더욱 더 많이 힘써야 되는 그 점을 나타내서 진실로 진실로 이렇게 두 번 붙이신 것입니다.
거듭남에 대해서 그 모든 근거가 되는 그런 유래의 순서는 오전에 많이 말씀을 했습니다. 오전에 말씀하신 것도 여러분들이 잘 기억하고 굳게 잡지 안하면, 이 밖에 교계에 나가면 다 그대로 예수 믿는 것 아닙니다. 이래서, 그것을 잘못이라 이단이라 하면서 반대하는 그런 모르는 사람들, 모르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 여러분들이 요동치 아니하고, 미혹을 받아서 이 도리를 빼앗기지 안해야 되지 빼앗기면 자기 구원은 다 실패되는 것입니다.
거듭난다는 말은 다시 난다는 말인데 다시 난다는 말은 다시 출생한다는 뜻도 있고 또 다시 살아난다는 뜻도 있습니다. 살아난다는 뜻은 그것은 좀 외부적이 돼서 알아듣기가 쉽고 다시 출생한다는 말은 알아듣기가 어려워서 그것은 지금 일반 교계에서 부정하기 쉬운 교리들입니다.
첫째 아담에게 난 사람들은 또 다시 살아나야 되느냐 하면 죽었기 때문에 살아나야 합니다. 영은 단번에 죽었고 이 심신은 이미 죽은 것이 마지막 아주 없어지기까지에는 그 시간이 상당히 걸려서 어떤 사람은 뭐 오십 칠십 팔십 구십 이 세상에 사는 그 연수, 사람들이 나이라고 하지요. 나이 수, 나이의 그 숫자는 곧 죽은 육이 마지막 다 없어지기까지에 기간을 가리켜서 그것을 가리킨 건데.
이래서 그것은 사는 날이 아니고 죽는 날이라 요렇게 했으면 맞보기로 그 뜻을 가리킨 것이 되겠고 그러면 그 사는 날이라 그 말은 이제 그것만 살고 그 다음에는 다 삶이 없어진다는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이니까 뜻은 같습니다.
죽은 것은 원죄와 본죄로 다 죽었습니다. 원죄라 하는 것은 우리 인류시조가 하나님으로 더불어 계약할 때에 전 인류를 다 대표해서 계약한 계약인데 대표자가 그 계약을 어겨서 그 계약에 다 동참한, 보통 생육법으로 난 사람들은 예수님 재림까지에 난 모든 사람들이 다 이 대표된 아담의 패전에 다 거기에 같이 포함돼서 정죄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원죄로 죽었다 그 말은 그것은 뱀에게 유혹받아 가지고 사람의 본성이 죽었다는 말이고 또 본죄로 죽었다는 말은 본성이 죽었기 때문에 본성 죽은 자가 세상에서 몇 해를 살든지 사는 전 생활은 다 범죄하는 생활이 돼서 죽는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본죄는 자기가 일생 동안 지은 죄를 말하고 원죄는 인류 시조로 말미암아 사람에게 본성이 죽은 것을 가리켜서 원죄라, 죽은 본성이 범죄한 죄를 가리켜서 본죄라. 원죄는 본성이 죽은 죄요 죽은 본성이 범한 죄를 가리켜서 본죄라 그렇게 신학에서 명사를 붙여서 말을 합니다.
그러면, 본죄는 일생 동안 자기가 지은 죄고 원죄는 선조가 지은 죄를 가리켜서 원죄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래서, 영육이 다 죽어 있는데 죽어 있는 이것을 다시 살릴 것을 가리켜서 거듭났다, 또 거듭 살아났다, 거듭 출생했다 말하는 것입니다. 거듭 출생했다는 것은 여러분들이 알기 어렵고 배우기 어려울 터이니까 그거는 좀 내비두고 그만 거듭 살아났다 요렇게만 여러분들이 알고 차차 장성해 가면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 죽은 영이 살아나고 또 우리의 이 육이 살아나야 되는데 영이 살아나는 것은 단번에 살아나고 육이 살아나는 것은 여러 차례 걸쳐서 살아나게 됩니다.
왜 영은 단번에 살고 육은 여러 차례로 거쳐서 살아나게 되느냐 하면 영은 단일성이요 단일체입니다. 영은 하나뿐입니다. 하나로 되어 있기 때문에 죽어도 한목 죽고 살아도 한목 살아나고 이런 것입니다. 이러나, 이 육이라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수많은 분자 세포들이 뭉쳐 가지고 된 것이기 때문에 죽어도 하나 죽고 나면 또 나중에 남은 거 있고 있고 이래서 만일 백이면 백 번 죽어야 되고 천이면 천 번 죽어야되고 만 개면 만 번 죽어야 되는 것처럼 그렇게 이 마음도 수많은 개수가 합해 가지고 된 종합체요 또 고기덩어리도 수많은 갯수가 합해 가지고 된 종합체입니다.
이래서, 육체는 요새 의학적으로 몸의 세포라 이렇게 표현을 하고 있고 또 이 마음의 죽는 것은 심리학자들이 그 마음의 수많은 그 요소라 그저 그렇게만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수많은 종류가 있습니다.
이래서, 그러기 때문에 영은 행하면 행하고 안 행하면 안 행하고 그렇게 단행을 하는 것이지만 우리의 육이라 하는 것은 행하자 하는 것도 수없이 많고 하지 말자는 것도 많고 이렇기 때문에 사람이 무엇이든지 할라하면 이랄까 저랄까 하는 그런 모든 방황 유리하는 그런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래서, 사람이 정신 이상자는 어떤 사람이 정신 이상자인고 하니 자기 그 마음의 요소들이 다 그것이 서로 통하고 건해서 회의를 해가지고 그 전회의에서 결의된 그대로 행하는 그 사람이면 건전한 사람이고 거기서 다른 그 마음의 요소들은 다 허약해져 버리고 어떤 사람은 욕심 하나만 또 욕심이라는 그 마음만, 또 감정이라는 마음만, 자기에게 원수 갚는 복수의 마음만, 또 악한 그 정욕의 마음만 뭐 어떤 그런 거 삐뜩삐뜩 하나 그것들만 힘이 세어 가지고 그것들이 강제해 가지고 온 몸을 억압해 가지고 그렇게 할 때에는 그대로 행하나 온 마음은 강제를 당하기 때문에 마음에 기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그 불의의 걸음을 걸을 때에는 온 마음에 어떤 사람은 마음 전부가 기뻐서 즐거워하는 일도 있고 마음 가운데에 몇은 즐거워하지만 나머지기는 다 슬퍼 고통하는 그런 마음들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몸도 그러합니다. 몸도 이것이 하나로 단일로 이렇게 의논을 해 가지고 집합되는 것도 있고 안 되는 몸들도 있습니다.
이래서, 육체의 연습을 하는 사람들은 뭣을 연습하는고 하니 사람이 몸에 없는 힘을 만드는 게 아니고, 만드는 힘이 아니고 자기에게 있는 힘이 이제 합동되는 그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리 힘을 쓸라 할 때에 이리 힘쓰는 것도 있고 이 힘을 반대하는 것도 있고 달리 또 힘쓰는 것도 있고 이러니까 그 힘이 몸의 힘이 집합되지를 안해서, 집합되지 안해서 그 몸의 힘이 그 합일되지 않아, 합일되지를 안하기 때문에 그 힘을 못 쓰고 약한 것인데, 그것아 훈련받아 연습한 사람들은 그 사람 몸에 있는 힘이, 저 사람은 몸에 있는 힘의 한 십분지 일이 지금 거게 주력을 하고 있는데 이 사람은 십분지 십이 다 단일화 돼 가지고 힘을 쓰기 때문에 그 사람이 이기는 것입니다.
이래서, 육체의 연습은 다 그런 것으로서 육체의 강건도 협의해 가지고 하고 마음들도 협의해 가지고 하는데 그 협의를 해서 의논이 맞아서 정상적으로 결의해 가지고 제일 옳은 것이 거기서 주장을 하고 다른 것은 협동해서 따라갈 때에는 그 사람은 건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마음에 제일 밝은 것은 자연의 빛이라고 하는 양심입니다 이래서 그 마음에 제일 밝고 옳고 깨끗한 것은 양심인데 어떤 사람이든지 그 사람 마음에 여러 가지 요소가 양심이라는 그자의 주장을 따라서 다 그리 다 통일이 되고 합일이 되면 그 마음은 복된 마음으로 깨끗한 마음이고, 또 어떤 마음은 나쁜 마음, 물질 욕심내는 물욕심, 어떤 마음은 정욕심 이런 것들이 우세해 가지고 그게 들어서 온 몸을 주장하면. 그 사람은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 마음은 많은 그 분자로 합해 가지고 된 것이요 몸도 그렇기 때문에 이 몸과 마음이 살아나는 것은 여러 차례로 살아납니다. 단번에 살아나는 게 아니고 여러 차례로 살아나고 영은 단번에 살아납니다.
그러면, 영이 살아나는 것은 이것을 가리켜서 거듭난다 말했고, 여기 본문에 말하기를 성령으로 난자는 영이니 하는 것은 성령으로 살아 난자는 영이라, 성령으로 난자는 영이니 하는 그 영은 성령은 하나님을 가리킨 것이고 영은 사람의 영을 가리켜서 말한 것입니다.
이래서, 그러면 우리의 영이 단번에 살아났는데 무슨 힘으로 살아났느냐? 살아난 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힘과 또 성령님의 힘과 진리의 힘 이 세 가지로 살아난 것이 우리의 영의 살아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살아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살아나는 것이 많이 있지만 기절됐던 것도 살아나고 하는 그런 것은 다 내나 죽은 것이 죽은 그대로 있는 것이지 살아나는 것은 아닙니다. 살아난다는 것은 천 년을 가도 죽지 안하고 만 년을 가도 죽지 안하고 영원히 살아나고 산 그것이 생명이요 힘입니다.
그러면, 영원히 죽지 안하고 사는 그 힘은 어디만 있느냐? 영원히 죽지하고 또 늙지 안하고 쇠하지 아니하고 영원히 사는 그 힘은 무엇이 가지고 있느냐? 세 가지만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거는 가지고 있지를 못합니다.
하나는 뭐가 가지고 있는고 하니 진리라는 이 진리가 가지고 있습니다. 진리는 늙지도 안하고 쇠하지도 안하고 죽지 않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진리로 구원함을 받아 가지고 진리로 살아나야 그것이 영생으로 살아난 것이지 진리로 살아나지 안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혹 이 세상에서 그 사람의 권세가 죽었다가 살아났다. 권세가 죽었다가 살아났다. 우리나라도 보면 그 정권 야욕자들의 모든 권세가 죽었다 했는데 또 떠들고 또 살아나고 또 그 사람의 재벌이 죽었다 했는데 또 살아나고 그런 거 살아나는 거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다 영생으로 살아난 것이 아닙니다. 영생으로 잘아난 것은 꼭 진리로 살아나야 영생이 됩니다. 진리는 영생하고 변하지 안하고 늙어지지 안하고 쇠해지지 안하고 병들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영이 살아난 것은 진리로 살아났습니다.
또, 우리의 영이 살아난 것은 성령으로 살아났습니다 성령은 곧 하나님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하나님으로 살아났습니다.
또, 우리 영이 살아난 것은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으로 우리 영이 살아났습니다.
이래서, 우리 영이 이렇게 이 세 가지로 살아난 것은 우리가 살아날라고 애를 써서 살아난 게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도 알기 전에 살려서 우리 영이 살아났습니다.
그러면, 영이 살아난 것은 린 큰 사람 작은 사람 차이가 있느냐 하면차이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나 베드로나 요한이나 우리나 또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에 제일 안 믿다가 마지막에 한 십 분 예수 믿고 구원 얻은 사람도 있고 삼 분 예수 믿고 구원 얻은 사람도 있는데 그 사람의 영이 살아난 것이나 또, 다 꼭 같습니다.
영이 살아난 거는 꼭 같습니다. 같은데, 영과 영에 그 권위가 차이가 납니다.
권위가 차이나는 것은 어떤 사람의 영은 살아나 가지고 자기 마음을 완전히 점령해서 마음을 백프로 복종시키는 그런 영도 있고 자기 마음을 하나도 복종시키지 못하고 마음은 마음 제 맘대로 하도록 하고 영만 살아 가지고 있는 그런 사람은 이제 그 영의 권위가 아주 없는 사람입니다. 이래서,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그저, 우리 영이 진리로 살아났고 성령으로 살아났고 예수님의 피공로로 이 세 가지로 우리 영이 살아났습니다 우리 영이 살아났는데 그러면 우리의 육온, 마음과 몸 이 두 가지를 합해서 육이라고 하는데 그러면 마음은 뭘로 살아나는가? 마음도 진리로 살아나고 성령으로 살아나고 예수님의 피공로로 살아납니다. 또 우리의 몸은 뭘로 살아나는가? 몸도 진리로 살아나고 성령으로 살아나고 예수님의 피공로로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살아나는 것은 전부 이 세 가지로만 피조물이 죽었던 것은 살아납니다.
피조물이 죽었던 것이 살아나고 죽는 것은 뭘로 죽느냐? 죽는 것은 다 죄값으로 다 죽게 되는 것입니다.
요것만 이제 대충 알고 지금 증거할라 하는 것은 이 영이 살아난, 영이 살아난 것을 본인이 알고 깨닫고 느끼고 영이 살아난 이 살아난 가치, 산 영의 가치와 또 산 영의 그 권위, 산 영의 실력, 산 영의 영광과 존귀 이것을 우리가 깨달을라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러면, 중생된 영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세상의 무엇과 바꿀 것이 없고 그 권위를 아는 사람은 아무것에게도 거세서 굴하거나 절하거나 뭐 꺾기거나 할 그럴리가 없는 것이고 또 이 영광과 존귀를 아는 자는 온 천하를 주고도 이 중생된 영과 바꿀 것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하는 말은 중생된 영을 잊어버렸다는 그말입니다.
중생된 영을 잊어버리는 것은 중생된 영을 잊어버릴 수 있고 찾을 수도 있느냐 하면 중생된 영은 자기 안에 있는데 잊어버린다는 것은뭘 잊어버렸다 하느냐? 중생된 영을 잊어버렸다 하는 말은 이거 뭐 자꾸 빨리 하니까 여러분들이 지금 녹음을 이제 수 번 들어야 돼. 안 들으면 몰라요.
그러면, 중생된 영을,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잊어버리면 손해갔다, 소용없다 이렇게 말했는데 온 천하보다 그러니까 중생된 영이 가치가 무한히 큰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그런데, 그러면 중생된 영을, 자기를 잃든지 뺏기든지 했다고 자기를 잃는다 하는 것은 중생된 영을 잊어버린 건데 중생된 영을 누가 잊어버렸습니까? 중생된 영을 누가 잊어버렸다 말입니까? 심신이 잊어버렸다 말이오. 심신이 중생된 영을 잊어버렸습니다.
심신이 중생된 영을 잊어버렸는데 뭣을 탐하다가 중생된 영 참 자기를 잊어버렸습니까? 뭘 탐하다가 잊어버렸습니까? 세상 것을 탐하다가 잊어버렸기 때문에 온 천하를 얻었다 해도 너는 손해갔다.
그러면, 세상 걸 탐하다가 그만 중생된 영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마음과 고기덩어리 육에 대해서 주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네가 온 천하를 얻어도 너를 잊어버리면 손해갔다 그말은 네가 천하 이것 탐해 가지고 이것 얻기 위해서 네가 날뛰다가서 중생된 너 참 너를 잊어버렸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잊어버렸으면 중생된 영이 어디로 도망쳤습니까? 중생된 영이 어디로 도망을 쳤습니까? 도망을 안 쳤습니다. 중생된 영은 내나 자기 안에 있습니다.
자기 안에 있는데 중생된 영을 잊어버린 자는 어떤 자가 잊어버렸느냐 하면 마음이라는 자가 잊어 버렸습니다, 그러면 마음 안에 이제 주님이 계시다가 그것이 자꾸 세상을 탐하고 엉뚱한 짓하고 있으니까 죄를 지으니까 중생된 영도 거게 있을 수도 없고, 중생된 영은 하나님과 동행하기 때문에 중생된 영이 그 마음에 비껴주지 안하고 있으면 그 마음은 전멸을 당할 것이기 때문에 그 중생된 영이 재빨리 하나님을 모시고 마음 밖으로 나와서 마음 밖에 와서있습니다.
마음 밖에 와서 있으니까 그 사람의 마음 속에는 중생된 영이 계시지 안하고 자기 마음 밖에 자기 안에 이래 계시는 것입니다.
이래 이것을 가리켜서 '문을 두드리노니 문을 열어라 그러면 내가 들어가서 너로 더불어 같이 먹고' 이 말은 마음의 문을 열어 가지고 마음 밖에 밀어내고 쫓아낸 그 중생된 영과 이 진리, 성령, 피공로 이 넷이 함께 있는데 이 넷을 네가 영접하면 다시 들어가겠다 그말입니다.
'문을 두드리노니 문을 열라 그러면 우리가 너 안에 들어가겠다' 들어가는 것은 넷이 들어갑니다. 넷이 들어가면 '너는 나로 더불어 먹고 나는 너로 더불어 먹는다' 그말은 여게 성경에, 먹는다는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행한다는 말입니다.
인격은 뮐 먹는 게 아니고 인격은 행하는 것이 양식이요 아는 것이 양식이요 느끼는 것이 인격의 양식입니다.
이래서, 너로 더불어 먹는다 말은 네게 대한 의무와 책임 영원한 의무와 책임을 이 넷이 들어가면 완성을 할 수가 있다 하는 그말입니다. 또, 나는 너로 더불어 먹는다 그말은 중생된 영은, 중생된 영과 진리와 성령과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는 그 심신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또 그 심신은 하나님을 힘입어서 이루고 이래서 우리가 합작이 되면 우리는 진리와 성령과 예수님의 대속 이 세 가지 공로를 힘입어서 우리에게 대한 의무와 책임과 사명과 행복을 다 갖추어 완성할 수가 있고 이 셋은. 또 우리를 통해야 완성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나는 너로 더불어 먹는다는 것은 우리를 통해서 이 셋은 성공하고 또 우리는 이 셋을 힘입어서 성공합니다. 이 셋은 우리를 이용해서 성공하고 우리는 이 셋을 힘입어서 그 도움을 입어 가지고 성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 심신이 살아나는 것도 다른 것으로서는 살릴 수가 없고 꼭 진리로만 살리고 성령으로만 살리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만 살립니다.
그러면, 우리 현실을 당할 때마다 언제든지 이 진리가 와서 기다리고 있고 성령이 와서 기다리고 있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현실에서 우리 마음과 이 몸이라 하는 것이 이 현실에는 수많은 유혹이 있는데 이 세상 악령들이 저거 사람을 군대로 삼아 가지고 별별 유혹, 물질로 유혹하고 돈으로 유혹하고 뭐 사람으로 유혹하고 정으로 유혹하고 애정으로 유혹하고 다 유혹하는데 창세기 6장에는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유혹해서 그들이 유혹에 빠져 가지고 다 멸망을 받고 말았습니다. 이러니까 여러 가지로 이렇게 유혹을 합니다.
그런데, 그 유혹을 할 때에 그 유혹에 빠지지 안하고 이 진리와 동행하고 영감과 동행하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동행하고 이 셋을 배반치 안하고 이 셋과 하나가 되면 이 샛으로 말미암아 그 현실에 해당된 심신은 완전히 살아나 버리고 맙니다.
그러면, 그때에 이 살아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악령과 악성 악습이 들어서 이 온 세상을 다 거머쥐고 유혹을 합니다. 왜 세상을 거머쥐고 유혹을 하느냐 하면 세상은 저희 것입니다. 세상은 저희 것이기 때문에 이거 주마 저거 주마 그렇게 해서 유혹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만일 참 깨끗한 성도가 그 사람이 악령이 그 사람을 범죄케 해라고 해서 무엇을 줘서라도 범죄케 할라 하면 그 나라에 제일 큰 임금의 아내라도 그 사람에게 주어서, 참 성자는 그 사람에게 아내로 줘 가지고 유혹을 할 수 있으면 아내라도 당장 줄 수 있습니다. 악령이 제것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할 수가 있습니다. 또 그 성자를 권세를 가지고 꼬울라면 어떤 권세라도 그 사람에게 줘 가지고 꼬울 수 있습니다. 마귀는 이 세상은 저희 것이기 때문에 그걸 얼마든지 줘 가지고 꼬울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모든 걸 가지고 꼬울 줄도 알고 꼬우지만 성도들은 자기의 받은바 이 구원이 크기 때문에 그런 것과 바꾸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믿는 사람이 아직까지도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가치로 보고 탐을 내는 것은 중생한 이 사실을 알지도 못하고 믿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땅에 있는 것을 그와 같이 지금 가치로 보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이 사는 것은 그래 삽니다. 육이 살아나는 거는 그래 살아나는 건데 육이 살아나는 것은 뭘로 살아나느냐? 육이 살아나는 것을 이번에 공과에 보면 현실에서 우리가 힘써 살아나야 된다 그렇게 말해 놨습니다.
힘써 살아나야 된다 말은 거게는 힘만 쓰면 제 힘으로 살아난다는 것으로 돼 가지고 았는데 그것은 사람들 말로 듣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 그와 같이 한 것입니다.
살아나는 것은 그 우리가 힘씀으로 우리 힘으로 살아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릴라고 이렇게 이렇게 힘을 쓰실 때에 그분의 힘쓰게 하심이 와야 우리가 힘을 쓰고 또 힘쓰게 하심이 와도 또 우리가 힘씁니다.
힘쓰게 하심이 오면 힘만 쓰고 힘쓰게 하시는데 '내가 거게 따라서 힘을 쓰도록 하시면 또 힘을 씁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와서 은혜 베푸시고 역사하는 것은 천층 만층입니다. 어떤 사람은 요만치 하다 말고 시작도 말고 요만치 요만치 해서 모두가 다 하나님 그분 한 분의 은혜 역사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루어지는데 다만 이루어진 외부의 표현된 것을 말하면 진리로 살아나고 성령으로 살아나고 예수님의 대속으로 살아납니다. 살아나는데, 오늘 지금 오전과 오후에 설교하는 목적은 어디 있느냐? 우리를 살리신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거듭나게 하신 이 세 가지에 대한 이 크심과 가치와 그 능력 그것이 어떠한 것을 말해봤자 사람 말로서는 뭐 더 크게 말할 수 없습니다.
말할 수 없는데 이렇게 말하는 가운데에 여러분들에게 성신의 감동이 오면 그 혹 깨달아 가지고 큼과 또 강함과 영광스러움과 존귀함과 그 고귀한 것을 깨달을까 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는 데에는 세 가지 능력이 와서 거듭나게 했는데 제일 먼저 우리를 살리는 것이 뭐이냐? 예수님의 피공로가 우리를 살립니다. 피공로가 아니면 성령도 못 옵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오면 바짝 타버립니다.
성령이 오면 바짝 타 버리는데 예수님의 피공로로서 성령이 와도 우리가 타지 안할 수 있고 진리가 와도 타지 안할 수 있고 성령과 동거동행을 할 수 있고 진리와 동거 동행을 할 수 있는 그 모든 탈 수 있는 문제를 해결 지웠고 안 타고 동거 동행할 수 있는 그 모든 자격을 구비시켜 놓은 것이 예수님의 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피가 없는 데는 생명의 역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피로 우리를 중생 시켰으니 예수님의 피가 어떤 피인가 하는 것을 지금 간단하게 증거를 하겠습니다.
우리가 거듭나는 데는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셔야 됩니다. 나를 거듭나게 하는 데에는 하나님이 나를 거듭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나를 영원히 살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가지고 오셔야 됩니다.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 일이 얼마나 큰일이고 어려운 일인 것을 여러분들이 좀 생각하는 그 생각이,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그 나라의 대통령이 온다할지라도 그것도 어려운데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대통령이 온다 해도 그것도 어렵고 또 다른 나라의 대통령이 온다고 하면 그것도 또 어려울 것 아닙니다. 땅위에 있는 온 세계의 대통령이 다 온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는 것의 억억억억 만분의 일도 안 됩니다. 안되는데 이렇게 큰 역사가 우리를 거듭나게 하기 위해서 오신 큰 역사가 있었지만 이 역사를 크게 느끼는가? 이 역사의 큰 것을 어떤 사람은 돈 백 원만치는 느끼지만 천원하고 문제가 되면 천 원을 자기가 차지하지 예수님의 도성인신을 차지 안 하는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만일 자기의 천 원 만 원보다는 크게 여기지만 자기의 재산 전부 톨톨 턴 것보다는 예수님의 사람되어 온 도성인신하신 이것을 자기가 이 은혜를 받을라고 할 때에 자기의 온 재산만치는 못 여기는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자기의 재산 다 냅두고 자기 몸뚱이보다 오히려 지금 이 예수님의 도성인신을 크게 가치 크게 귀하게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자기 생명보다 귀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으니까, 하나님이 나를 거듭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이 오심이 그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얼마나 큰 일인가? 이 도성인신하심의 그 크심과 그 가치와 그 권위를 자기가 생각하는 그것이, 생각하는 그것이 바로 자기 심신이 구원 얻는 그겁니다.
이거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사람의 말로는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이래밖에는 못 해. 여러분들이 기도해 가지고 성령의 감동으로 알아들어야 되지, 그래서, 어떤 사람은 '나를 거듭나게' 거듭나는 데에는 온 천하가 다 달라들어도 거듭나게 못 해요.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셔야 거듭나게 해요.
하나님이 나를 거듭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이것은 자기의 소유와 몸과 생명으로도 비교할 수 없이 이거는 한없이, 자기 몸보다 크고 자기 생명보다 크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이 도성인신하셔서 자기를 거듭나게 하신 이 은혜를 자기 몸 때문에 생명 때문에 거리끼지 안하고 몸과 생명을 다 애끼지 안하고 이 도성인신하신 이 거듭나게 하는 이 능력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 심신의 구원은 어떻게 이루느냐? 심신의 구원은 이 영을 거듭나게 한 그 능력을 아는 것만치 의지하고 바라보고, 거듭나게 한 그 영광을 아는 것만치 세상 영광을 포기하고, 이 거듭나게 된 것이 얼마나 행복되다는 걸 아는 것만치 땅위의 모든 것을 버리고 여게 기울이게 되고, 또 이 사랑이 얼마나 큰 그 가치를 자기가 느낀 것만치 이 외에는 딴데에 사랑이나 그런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에 이렇게 이것을 아는 사람은 마지막에 예수님 한분에게 다 기올이고 그 한 분으로서 그만 만족하고, 다입니다. 그 한 분이면 다 돼. 못 할 것 없어. 우주를 다 차지하는데 못 할 게 뭐 있어? 사람들이 눈이 어두워서 딴걸 찾고 있지.
이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는 데에는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셔야 되지요.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는 그 일이 어떠한 일인지? 또, 하나님이 오시면도 안 되고 하나님이 오시되 사람하고 둘이 합해서 신인양성일위, 하나님하고 사람하고 이 한 격위를 이루는 이일이 돼야 되니까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 일은 뭐 이런 것은 온 천하가 달라들어도 거기에 먼지만치도 이런 것들은 다 달라들어 봤자 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러면, 도성인신하셔서 신인양성일위가 되어야 나를 거듭나게 할 수가 있고, 그러면 일위가 되면 일위가 됐다고 해 나를 거듭나느냐? 일위가 되신 그분이 내 죄를 없애기 위해서 내 죄를 책임을 져야 됩니다. 내 죄를 없애기 위해서 신인양성일위이신 그분이 내 죄를 없애기 위해서 내 죄를 책임을 져 줘야 되고, 또, 나를 사망에서 건져내야 내가 뭐 사망하면 그만이기 때문에 사망에서 구출해야 나를 거듭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사망에서 나를 건지도록 내 사망을 책임을 지고 그 사망에서 건져서 죽지 안하도록 나를 만들어야 하고, 또, 악령을 다 책임져서 악령이 나를 영원히 침노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하고, 그러면, 도성인신 하신 분이 하나님이 나를 거듭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신인양성일위로 되신 이 예수님께서 내게 대해서 몇 가지를 책임을 졌습니까? 지금 말한 데 몇 가지 책임졌습니까? 세 가지를 책임을 졌습니다. 죄, 사망, 마귀를 책임을 졌습니다.
또 무슨 책임을 졌느냐? 하나님의 공심판에 하나님의 전지자가 입법해 놓은 입법인데 그 전지의 입법을 가지고 나를 정죄할라고 아무리 살펴도 내가 정죄할 것이 없도록 전지의 입법의 공심판에서 나를 아무리 다루고 시달리고 아무리 삣고 깎고 파 혜쳐도 내게 그 공심판에서 정죄할 것이 하나도 없도록 그렇게 완전히 나를 의롭게 해결을 지워 줘야 하는 것입니다. 이 공심판에서 아무 정죄할 수 없는 그런 의로 우리를 만들어서 책임을 져 줘야, 우리에 대한 공심판에 인정하는 의를 책임을 져 주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또, 이뿐만 아니라 양성일위 그분이 대주재이신, 만주의 주 만왕의 왕이시요 자존하신 하나님이신 자존자 주권의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 한 분뿐이신데 그분과 나와 원수가 되어 있는 이 원수된 이것을 해결을 지워 주어야만 이제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몇 가지입니까? 예수님이 자, 하나님이 나를 거듭나게 하기 위해서 오셔야 되고, 하나님이 오셔야 되고, 이거 자꾸 생각해야 돼요. 하나님이 나를 멸망에서 거듭나도록 살릴라면 거듭나야 되기 때문에 거듭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내게 오는 것이 미국 대통령이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는 것보다 큽니까 작습니까? 큽니까 작습니까? 얼마나 큽니까? 세계의 정권자들이 똘똘 뭉쳐 가지고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는 것과 하나님이 땅위에 오시는 것과 어떤 것이 큽니까? 입술로는 그런데, 무한히 큽니다. 이걸 자꾸 우리가 생각하고 느껴야 됩니다. 자꾸 생각해서.
이렇게 이 큰 역사를 해 가지고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이 일이 얼마나 컸는가? 이 일이 얼마나 큰가? 얼마나 이거 어려운 일이며 얼마나 큰 일이며 얼마나 힘드는 일인가? 이것의 가치와 힘듬을 아는 것만치 이 거듭난 것을 귀중하게 여기고 이것을 알아서 거듭난 것을 귀중하게 아는 것만치 이 거듭난 것을 그렇게 헐봐서 마음대로 하지 안하고 이 거듭난 것을 귀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거듭난 것보다 큰 것이 세상에는 없기 때문에 무엇에라도 이 거듭난 것에 조그마치라도 거리끼고 손상되면 다 태워버리고 없애버리고 이 거듭난 것을 자기 생명도 거리끼면 치워버리고 이 거듭난 것을 놓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거듭난 것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거듭나게 한 그 자본이요, 거듭나게 한 그 근거가 어떠한가 근거의 가치의 이 큼을 느끼는 그것이 바로 거듭남의 가치를 느끼는 것이요, 거듭남의 가치를 느낀 그것이 거듭남을 자기가 보배로 여겨서 이 거듭남을 강직하게 되는 것이요, 거듭남을 강직하는 이것이 꼭 심신이 살아나는 방편인 것 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그뭐 듣든지 알든지 모르든지 그렇게 말해놓으면 듣는 사람 듣고 아는 사람 알고 그라겠지요.
그러면, 예수님의 피가 나를 거듭나게 하는 데에는 그 몇 가지 큰일이 있었습니까? 자, 하나님이 오신 것 또 하나님이 사람되신 것 또 하나님과 사람이 일위를 한 격위를 이루었다 말이오. 이거 도무지 이거는 뭐 피조물 가지고는 그런 거 우주와 영계 이거 다 뚜드려 뭉쳐야 그까짓 거는 억억만의 일도 안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구원을 위해서 모든 걸 예정하셨고 우주와 영계를 창조했습니다.
이거는 이것보다 훨씬 크지만 오늘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믿는 거는 우주와 영계의 한 분자 중의 하나로 알고 한 종교 중의 유사한 단체로 이래 알고 있지 이것이 이렇게 우주와 영계와 비교 못 할 지극히 큰 비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기독교를 모르고, 그러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예수 믿는 것처럼 뭐이 평안 무사하면 제가 노회장 총회장 제가 뭐 진리 정통 까불고 있고 떠들고 있지만 이제 조그마한 시험만 와도 다 썩어버리고 만다 말이요.
왜정 말년에 총회장 쳐놓고 죄 안 지은 자가 없고 신학자 쳐놓고 다 범죄 안 한 자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OOO박사는 신사참배 안했습니다. 신사참배 안 했는데 그분은 안 해도 숨어 돌아다니며, 숨어 돌아 다셔서 꾀를 부려 숨어 돌아다녔지 대항해서 싸우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안 하게 하시니까 안 하기는 했습니다. 그들로 더불어 대항해서 싸우면서 안 한 사람들은 그 사람들은 다 능력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신인양성일위가 되지, 그러면 하나님이 오셔야 되지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야 되지 하나님과 사람이 둘이 서로 마주 만나는 게 아니라 한 격위를 이루어야 되지, 이거 다 이걸 깨달은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사랑이면 만족하고 그분에게 다 기울여서 다 삽니다. 또 그러면 몇입니까? 셋.
또 그 다음에는 이분이 우리 죄를 다 담당을 해야 됩니다. 이거 쉽습니까? 또 우리를 영원히 죽일라 하는 사망을 이것을 다 담당을 해야됩니다. 또 마귀를 담당해야 되고, 또 공심판 통과를 담당해야 됩니다. 또 하나님과 원수된 것을 다 담당을 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피가 한 일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피가 아니면 우리가 그 중생하지 못하는 것은 예수님의 피가 이 여덟 가지 일을 허기 때문에 비로소 성령이 우리에게 오지 그리 안 하면 성령이 우리에게 못 습니다. 이 여덟 가지 일을 예수님의 피공로가 이루었고 이 이루어 놓은 피공로를 인해서, 피공로를 통해서 우리에게는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오실 수 있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셔 가지고 이제 성령님이 우리를 살렸습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살린 것은 우리의 영을 살렸고 이제 지금 우리룰 살리는 것은 우리의 몸의 기능과 마음의 기능을 살립니다. 우리 몸의 기능과 마음의 기능이 성령님하고 동거 동행하면 이는 죽일 자가 없습니다.
이래서, 우리의 이 마음의 기능과 몸의 기능이 성령님과 영원히 나뉠 수 없는 하나가 돼야 됩니다. 나뉠 수 없는 하나. 이것이 성화요 이것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이라면 성령과 하나되고 또 진리가 우리와 하나돼야 됩니다.
그라면, 진리와 하나된다 말은 이 진리와 나와 동거 동행하는 것이고 성령은 하나님이 나와 동거 동행하는 것이니까 이 일이 자꾸 자기가 벌로 해서 그렇지 새겨 볼수록, 새길수록 크고 크고 이래서 이걸 사람들이 생각하면서 놀래지 안한 사람이 없고 만족하지 안한 사람이 없고 새기면서 이게 이랄 수 참 있을까 의심 안 한 사람이 없고 의심하다가 시험해서 보자 하고 시험해 볼 때에 이 여덟 가지가 자기에 실상으로 이루어진 것을 하나씩 둘씩 경험하고 체험할 때에 사람은 완전히 그 사람은 우주와 영계를 통치할 수 있는 그 위치에 빨리 속도로 올라가게 승격되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 여덟 가지로 우리가 거듭났습니다. 이 여덟 가지로 거듭났는데 영은 여덟 가지로 거듭날 때에, 여덟 가지로 영이 거듭날 때에 그는 단번에 거듭났는데 하나님이 살려 주셨고, 우리는 생각도 못 했고 살려 주셨고 영이 살아난 중생 후에 오래 후에 예수 믿는 행동이 나타났습니다.
이래 예수님이 가르치기를 바람 부는 것으로 가르친 것은 영이 살아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아니하나 살아난 그 증거가 영이 살아나고 난 다음에는 행동에 나타난다 하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바람 부는 것으로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영이 그라면 이 여덟 가지로 영이 살아난 것은 단번에 살아났고 또 육이 지금 마음과 고기덩어리가 살아나는 것도 이 여덟 가지로 살아나는데 이제 이 여덟 가지가 어디 들었습니까? 이 여덟 가지가 어디 지금 머물고 있지요? 여덟 가지가 어디 들었습니까? 중생된 영 속에이 여덟 가지가 내주해 가지고 여덟 가지가 중생된 영의 생명이 된것입니다. 중생된 영의 생명이 여덟 가지가 중생된 영의 생명이 돼가지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죄가 와서 해하지 못하고 사망이 와서 해하지 못하고 마귀가 와서 해하지 못하고 공심판이 와서 해하지 못하고 하나님과 이 불목이, 하나님이 와 가지고 불목이 하나가 됐으니까 해하지 못하고 또 성령이 해하지 못하고 진리가 해하지 못하고 이 여덟 가지가 중생된 영 속에서 영을 보호하고 살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여덟 가지가 이제 중생된 영 속에 있는데 우리에게 우리 마음을 살릴라고 올 때에 우리 현실에 마음을, 현실에서 마음을 살릴라고 오는데 이 여덟 가지가 와야만 우리 마음도 살아나고 우리 몸도 살아날 수 있는데 이 현실에 우리 마음에 이 여덟 가지가 올 때에 뭣을 타고 옵니까? 비행기를 타고 옵니까 말을 타고 옵니까 자동차 타고 옵니까? 중생된 영을 타고 옵니다. 이래서 성경에 말하기를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증거해서 살린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타고 와 가지고 우리 변실에 이 여덟 가지가 우리 이 마음의 기능 몸의 기능을 살릴라고 이렇게 영을 타고 와 가지고 이 마음 속에 들어갈라고 이렇게 하니까, 영을 타고 마음 속에 들어갈라고 하니까 이 마음이라 하는 것이 망령을 부려서, 망령을 부려서 악령, 악성, 악습하고 하나가 돼 가지고 쫓아냅니다. 쫓아내면 밀려나옵니다.
쫓아낼 때는 몇을 쫓아냅니까, 아홉을 쫓아냅니다. 아홉을 쫓아내는 거는 중생된 영하고 한목 쫓아내요. 쫓아내니까 제 주인을 쫓아내는 거라. 그거 망할라고 죽을라고 하는 거라, 그래 가지고, 쫓아내면 쫓아낼 때는 어떤 놈이 쫓아내? 쫓아내는 그놈 이름이 뭐입니까? 악령, 악성, 악습 그거는 제 중심으로 살라 하는 그것이, 제 중심으로 살라 하는 그게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이걸 모르고 사람이 제 중심 제 위주로 사는 그게 사는 것인 줄 알고 마귀에게 완전히 이렇츰 그만 속아 가지고 완전히 변질이 돼 가지고 이와 같이 됩니다.
그럴 때에 이제 이 아홉 가지가 이렇게 왔을 때에 내가 이 아홉 가지를 마음 속에 모셔서 이 아홉 가지로 그 현실에서 이 마음이 동하고 정하고 이 몸이 동하고 정하면 그것은 다 영생이 됩니다. 영생이 되고 이 아홉 가지를 물리치고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사는 건 다 영원히 멸망하게 됩니다. 그 시간에 해당된 거는 영원히 멸망되고 그 시간에 해당된 거는 영생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시간에 멸망을 취했다 할지라도 그다음 시간에 또 남은 게 있으니까 그것은 남은 것은 또 살릴 수도 있습니다. 이 시간에 살린 것이 그다음에는 죽일 수도 있고 이 시간에 죽은 것이 그다음에 살릴수 있는데 그러면 죽은 것을 그다음에 살립니까 죽은 것은 죽은 것으로 끝나 버렸고 산 것은 산 것으로 끝나 버리고 그 이튿날 사는 건 또 새 것입니까 내나 어제 잘못해서 죽인 그것을 다시 살릴 수 있는 기회입니까? 살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그거는다시 죽어서 만나지 못하고 다음날 사는 건 또 새것으로 이렇게 아는 사람들 손 듭시다. 예, 새것이요.
이러니까, 우리가 뭐이든지 그 가치를 모르면 우리는 거게 대해서 소욕을 가지지 않습니다. 가치를 아는 것은 사람들이 모두다 자기딴에는 제일 가치 있는 걸 취하지 않습니까? 어째요? 사람이 제 맘에는 둘째 가치 있는 걸 취합니까 자기로서 취할 수 있는 중에는 제일 가치 있는 걸 취합니까 어떻습니까? 자기로서는 취할 수 있는 대로는 제일 가치 있는 것을 취합니다. 가치있는 걸 취합니다.
가치 있는 걸 취하는데 만일 자기가 이 중생된 영의 가치, 중생된 영의 가치를 제일로 알면 중생된 영을 자기가 영접할라고 하고 중생된영의 가치보다 땅위에 가치 큰 것이 있으면 그것을 위해서 중생된 영을 쫓아낼 것입니다.
또 중생된 영의 가치를 아는 것은 뭘 보고 아느냐? 중생된 영의 가치라는 것은 영을 중생케 한 여덟 가지 그 가치를 알아야 돼. 중생케 한 여덟 가지 가치를 알면 중생의 가치를 알아요. 중생의 가치가 온 세상에 있는 모든 것보다 더 귀하고 자기 몸보다 생명보다 귀하다고 하면 중생한 그 영을 위해서, 두 가지가 있으면 중생된 영과 자기 생명과 둘 중에 있으면 생명을 버리겠소 중생된 영을 버리겠소? 생명을 버리지 중생된 영은 버리지 안해요.
이러기 때문에, 중생된 영이 이렇게 가치 있다는 거 살아나는 것이 가치 있다는 거, 거듭나는 것이 이렇게 가치 있는 것을 아는 데는 무슨 가치를 알아야 그 가치를 알게 됩니까? 중생된 영이 이래 중생이 가치 있다, 거듭나는 것이 가치 있다, 거듭나는 게 온 천상 천하보다 가치 있다 하는 것을 아는 것은 뭣이 가치있는 것을 알면 중생된 것이 가치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까? 중생케 한 그것의 가치를 알면 중생된 것의 가치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중생케 한 그것의 가치를 알면 그것의 가치가 크면 중생이 크고 그것의 가치가 그까짓 거 몇 닢푼치 안 되면 중생이 가치 없는 것인데 중생케 한 것이 몇 개 있습니까? 우리를 중생케 하는 데에는 몇 가지가 들어서 중생케 했습니까? 예, 여덟 가지.
여덟 가지가 중생케 했는데 여덟 가지 중에 어느 것이든지 한 가지 하고 이 우주하고 바꿀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OOO씨. 바꿀 수 없어? 참말로 바꿀 수 없는 그렇츰 가치 있는 줄 아는가? 그렇게 가치 큰 것이 나를 살렸다는 걸 아는가? 요걸 믿는 게 믿음이오! 요걸 믿는 그 사람은 딴데 가도 탐하지 안해.
요거 믿는 게 믿음이야.
여덟 가지의 이 가치를 알면, 나를 중생케 하기 위해서, 또 한번 되풀이 한 번만 하고 맙시다. 내 영을 중생케 하기, 거듭나게 하기 위해서 첫째 일호가, 하나님 오셨고, 또 하나님이 사람됐고, 또 하나님과 사람이 일위가 됐고, 하나님과 사람이 일위되는, 우리하고 뭐, 우리하고 똥하고 한덩어리되는 것, 우리하고 똥하고 한덩어리 되는 거야 뭐 그렇지만 하나님하고 피조물 인간하고 하나 된다는 이거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걸 자꾸 새기며 자꾸 느껴.
명상하는 것이 뭣 때문에 명상하느냐? 자꾸 명상하는 사람이 제일 천당 가 보니까 제일 크더라 하는 그말은 자꾸 그것을 눈감고 깨달아느끼고 느끼고 자꾸 느껴서 이제 깨달아지는 거라 그말이오.
또 네째로는 뭐입니까? 내 죄를 다 책임지셨고, 누가 죄를 책임졌어요? 또? 내게 대한 또? 사망을 책임지셨고, 또? 마귀를 책임지셨고, 또? 뭐? 공심판 통과를 책임지셨고, 공심판 하나님의 전지자가 입법한 것이니까 안 빠졌어요. 어떻게 그전지자가 입법해 놓은 그 심판을 통과해? 이것도, 세상에 인간 등신들이 만들어 놓은 이 모든 육법도 또 대한민법도 이거 다 통과할라 하면, 뭐 고등고시 통과할라 하면 좀 공부가되는데 이 알기만 해도 그런데 이 세상의 법에 안 걸리고 통과할라하면 그것도 힘드요. 이 법이 다 자서 그렇지 다 하면 안 걸릴 사람이 없다 말이오. 하나님의 공심판 법에 통과되고, 또 하나는 뭐이요?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
이 여덟 가지가 뭘 살렸어요 여덟 가지가 뭘 살렸어요? 우리 영을 살렸어요.
우리 영을 살렸는에 이제 이 살렸으니까 산 영이, 지금 우리가 노력하는 것은 산 영이 노력하고 성령이 노력하고 진리가 노력하고 영감이 노력하고 예수님의 대속이 노력하고 이 노력하는 것은 지금 뭐할라고노력하고 있습니까? 심신을 살릴라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심신을 살릴라고 노력하는데 이 살리는 것은 살리는 기회는 언제입니까? 현재, 장소는? 현장, 또 그 모든 사건은? 현재 사건, 현 물건. 그런데, 우리 마음을 살릴라고 몇이 와요? 아홉이 와요. 아홉이 살릴라고 오는데 영은 제 주격입니다.
자기 속에 참사람입니다.
이런데, 이 아홉이 지금 큰 응원대를 모시고 이래 오는데 요 악이라는 놈이, 자기 중심 자기 위주란 놈이 탁탁 받아 내 가지고 멸망을 맞습니다. 망해야 마땅해.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영원히 유황불 구렁텅이에 태울 때에 막 꼬시다고 막 손뼉을 쳐요. 후회 안 해요. 그렇게 하나님이 애를 쓰고 이래도 고게 망령을 부렸기 때문에 유황불 구렁텅이에 태울 때 하나님이 원통히 여깁니까 좋다 기쁘다 합니까? 좋다 기쁘다 해.
왜? 노아홍수 때 그리 수십억을 홍수로 멸망받을 때 하나님께서 뭐, 거게 쓰기를 후회했다 하니까 하나님 마음에 뭐 섭섭하고 후회한줄 알아도 그 후회란 말을 그 번역을 하기를 더럽게 했어. 후회다 말은 후회했다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이 한 번만 했지 다시는 또 이 짓 하지 안하겠다 이거야. 다시 이 짓 하지 안하겠다.
이라니까 물로 심판하지는 안하겠다. 그래서 무지개를 해 가지고 그것을 선언을 했어요. 이제는 또 불로 해요. 불로 할 때 그때나 노아 때나 같아. 하나님이 제일 분한데 마음에 분풀이 한 것이 홍수요 둘째 분풀이 하는 건 언제입니까? 불심판이오. 세째 분풀이 하는 건 언제입니까? 유황불 구렁텅이라. 세세토록 거기서 이를 갊이 있으리라 이랬고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이거 거듭 살아난 거듭 살아남의 가치를, 거듭살아남의 우리가 가치를 아는 데에는 뭘로 가지고 거듭 살아남의 그 가치가 큰지 작은지 알 수가 았습니까? 거듭 살린 그 가치들을, 거듭 살린 그것의 능력들을, 거듭 살린 것들이 어떤 건데 그걸 보니까, '야, 저게 지금 뭣을 저 뭣을 나무를 하나 세우고 있다.' 나무를 세우고 있는데 나무를 세우는 나무가 그거 무거운 나무인데 세웠다. 무거운 나무를 세웠으니까 거기 가치가 있소? 그 무거운 나무를 세웠는데 그거는 우리 나라의 전국이 다 모여가지고 전국이 다 국회에서 결의해 가지고 대통령이 세우라 해 대통령이 그거 세웠다. 그러면 무거운 거 세운 것이 더 가치 있습니까 대통령이 세웠기 때문에 가치 있습니까? 대통령이 세웠기 때문에 가치있지.
그 나무는 우리 나라에서 세웠는데 대통령이 세운 게 아니라 세계의 유엔이 의논해 가지고 한국 거기에다 그걸 세우기로 했다. 이러니까 바로 그 세운 걸 유엔이 세웠으면 자, 유엔이 세운 것이 그 힘이 있고 가치가 있소 또 우리 나라 대통령 혼자 세운 것이 가치 있겠소 또 어떤 기계로 가지고 이래 뻐뜩 들어 세워 놓은 게 가치 있겠소 뭐가 가치있소? 새운 그자의 권위와 능력을 봐서 가치가 있다 그말이오. 알겠어요? 이러니까, 우리를 거듭나게 한 그 근거가 어디 있느냐 이것의 가치를 깨닫는 자는 이 거듭나는 이것보다 더 큰 게 없기 때문에, 이미 영은 거듭났으니까 감사할 것뿐이고 이제 우리 심신이 아무래도 거듭나야 됩니다.
우리 심신이 뭐 돈을 무슨 지위를 위해서 권세를 위해서 그까짓 놈의 학문을 위해서 사업을 위해서 자기가 현실에서 거듭날 건데 거듭난 거를 팔아먹어 가지고 팔아 가지고 돈을 사고 직장을 사고 이런 썩은 일을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도리를 아는 사람들은 뭐 현실에 거듭나는 거 이거, 거듭나는, 이 심신이 거듭나는 이것을 팔아 가지고 사장하고 이것 팔아가지고 취직하고 이것 팔아 가지고 뭘 할라고 하지 안해요.
이러기 때문에, 공부를 내나, 학생들 보면 상업 고등학교 그 공부한다고 없는 재산에 이랬는대 하필 이 나라에서 시험을 치면 똑 주일날 쳐. 주일날 치니까 공부는 일등이지만 응시하지 못하니까 떨어져. '야, 시험쳐야 안 되나? 시험 안 치면 어짜노?' '아이구 안칠랍니다' '왜? 그날 그라면 내 구원 손해 가는데 뭐 할라고 그거하겠습니까?' 어린 그것들도, 이 학교 학생들도 '야, 오늘은 가야 되지 않느냐?' '오늘은 나는 은혜받는데 집회에 가지 나는 거기 안 갈랍니다' '안 가면 퇴학 맞는다' 퇴학 맞으면 퇴학 맞는 퇴학보다 이 거듭나는 구원의 은혜가 크다는 걸 깨닫는 아이들은. 뭐 그거는 건드리지를 못해. 해 봤자 소용이 없어. 이러기 때문에, 이 도리를 깨닫고 난 다음에는 자기의 모든 사업도 모든 초개와 같이 버리고 자기의 소유와 몸과 생명도 초개와 같이 버리고 뭐 생명도 아무것도 아끼지 안하고 그저 거듭나는 이 일만 뿍뿍 해나가는 것이 그것이 신앙의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 다 그런 사람들 다 어리석고 등신인 줄 압니까? 등신 아니오.
한상동 목사님도 다대포에 제일 부자라. 부자의 양아들이 됐는데 그 양아들이 되면 제사 지내야 되거든. 제사 지낼 거, 다른 때에 뭐 봉양하는 것이야 얼마든지 봉양하고 하지만 제사 지내는 그거는 이 거듭나는 일에 손해 가. 거듭나는 일에 손해 가니까 '네가 이거 제사 안 지내는 날이면 이거 양자 재물 다 내놔야 된다' 하니까 두 말 하지 안하고 양자 재물 딱 내어놓고 다 내놓고 그래 가지고 이 거듭난 이 행위에 가 가지고 그렇게 세상의 한국을 구원하는 성공을 하고 갔습니다.
그 내외분이 결혼할 때에는 결혼하면 뭐 결혼의 첫 사랑이라고 죽을똥 살똥 모르지만 그 내외분이 결혼해, 우리가 결혼해 가지고. 이것으로써 이 거듭남에 손해 가면 안 되니까 이것 손해 안 갈상 부르면 우리가 결혼 생활하고 그렇지 않으면 말고 이래 가지고 결혼하기 전에 금식하고 결혼하고 난 다음에 사일 동안 둘이 금식하고 이 결혼생활로서 자기의 거듭나는 이 구원에 손해 안 갈 그것을 단단히 작정을 하고 안 갈 수 있으면 그라고 만일 생활하다가 이거 손해 가면 다 치워버릴 요량하고 그래 각오하고 결혼하고 난 다음에 나흘 동안 금식기도하고 그 다음에 둘이 뭐 동침을 했는지 뭐 어디 신혼 여행을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말 내가 들었어. 이 거듭나는 이것을 깨달은 사람은 아무것도 이 거듭나는데 비해서는 가치 있을 것도 없고 가치 삼을 것도 귀할 것도 취할 것도 없어.
이러기 때문에, 막 정욕에 불이 타도 이 놈을 꺾어 재끼고 암만 물질로 곤고를 당해도 여기 대해서는 이 손해 보고는 하지 안해요.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됩니다. 이 거듭남에 손해 가는 것은 하나님에게 구해서 그것을 도와 달라고 기도해요. '주님이여, 물욕이 나를 이 거듭나는 은혜에 손해가 가니까 물욕 요놈을 죽여서 성령의 소욕과 바꿔 주시옵소서. 이 음욕 정욕 이게 들어서 이제 거듭남에 손해 보이니까 음욕과 정욕 이거는 죽여 버리고 성신의 소욕으로 바꾸어 주시옵소서.'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바꾸어 주시요. 이걸 기도할줄 몰라 그렇지 다 바꾸어 달라고 기도하면 바꿔 주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