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도리

 

1982. 05. 17 월새

 

본문 : 벧전 1:21-23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지난밤에 녹음으로 재독할 때에 저도 들었는데 그렇게, 아주 필요하고 중요한 그런 일이 시작됐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중요한 줄 모르기 때문에 참석한 사람이 적습니다.

다른 교회는 1부, 2부, 3부, 5부 예배를 보는데, 한 사람이 하루 주일날은 다섯 번 예배 보는데 다 참석을 하는 그런 사람들이 많은데, 여기 있는 설교는 아마 자기들에게 은혜가 안되니까 이 서부 교인들은 그런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테레비에 나오는 화면이나 또 이런 방송에서 나오는 그 연속극이나 그런 것은 들어도 맛있고 재미있고 자꾸 취미있기 때문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듣고, 또 아무리 금해도 보고, 그것만 보면 잠도 오던 잠이 깨 버리고 또 재미도 있고 다른 일이 낭패가 되어도 자꾸 듣고 싶고 보고 싶어서 합니다.

그 말에는 생명과 은혜가 있어 그런 것 아니오. 은혜있고 생명 있고 자기에게 유익돼 그런 것 아니오. 그것을 취미있게 보는 그런 자는, 취미있게 여기는 그자는 자기 중의 새사람인가 옛사람인가를 여러분들이 구별을 해야 됩니다

 옛사람 그놈이 좋아하는 것이요, 보고 싶도록, 볼 때에 자기 마음에 실감이 느껴지고 감동되는 그것이 성신의 감화입니까 악령의 감화입니까? 성신의 감화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악령의 감화라고, -잘못 알면 큰일 나기 때문에 -악령의 감화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네, 악령의 감화입니다. 당당히, 우리 말은 심판을 받는데, 악령의 감화라고 나는 정죄를 합니다.

믿는 사람에게도, 잘 믿는 사람에게도 옛사람으로 살 때에는 악령의 감화요 새사람으로 살 때에는 성령의 감화입니다

 그런 말이 은혜가 있고 귀한 말이고 자기에게 유익한 말이라서 그렇게 재미있고, 듣고 싶고, 또 기분 좋고, 잠도 깨는 것 아닙니다. 여기서 가르친 말씀이 말씀이 은혜가 없는 말씀이라 그런 것 아니오. 설교를 잘못해 그런 것 아니오. 내가 한 것 아니고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말씀했는데 여러분들이 책임이 있습니다.

 내가 어제 낮에, 어제 낮에 가서 주석을 보라고 내가 말했기 때문에, 내가 주석을 보라고 했는데 주석을, 내가 주석들에는 어떻게 말했는고 해서 이것을 한번 봐야 되겠다 하고 지난밤 한 여덟시 아홉시쯤 되어서 내가 주석을 봤습니다.

유력한 주석, 한국에서는 제일 유력한 주석들을 봤습니다.

봤는데, 그 주석을 오늘 아침에 내가 와서 여러분들에게 이 주석, 그 사람은 말하지 않고 이 주석들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하는 그 해석을 여러분들에게 읽어 주려고 했는 데 '여기서 읽어 줘 봤자 뭐 거기 대해서 아는 사람 있겠나? 이러니까 금요일날 밤에 교역자들 왔을 때에 읽어 줄까?' 그래서 그만 책을 정리해 있는 그 몇권을 읽어 줄려고 하다가 지금 덮어두고 왔습니다. 거기는 다 사랑과 사랑을 구별없이 하기 때문에 내나 인간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거기는 영혼이 뭐인지 영이 뭐인지, 영과 영혼을 구별없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하나가 틀리면 해석은 전부가 다 틀립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 하나님을 믿어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에게 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는 이 중대성도 거기는 뭐인지 하나도 그걸 보지 않기 때문에 거기는 파묻혀 버리고 지나 갔습니다.

이거 여러분들에게 말하는 것이 여러분들이 진리의 말씀을 듣는 것도 복이 있지마는 듣는 자에게는 책임이 있는 줄 알아야 합니다. 얼마 전에 편지 오기를, 건의서 나오기를 '서부교회는 사랑이 없다.'

' 다른 교회보다 사랑이 많은 교회입니다. 저는 그렇게 확신이 됩니다. 인간 사랑은 없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있습니다

 온 교인이 전심 전력을 기울여 하나님의 사랑에 주력하고 있는데 사랑이 없어? 주일학생들도 말하기를 '왜 서부교회 안 오나?' '서부교회는 너무 딱딱해서 갈 맛이 없다.' 다른 교회는 취미있고 그들의 취미에 맞추어서, 그들의 심리에 맞춰 그러니까 재미있는데 서부교회는 너무 딱딱하고 재미가 없대요.

그 학생들이 물으면, '그러면 어디서 천국 가는 이치를 많이 가르쳐 주느냐?' 물으면 서부교회에서 많이 가르쳐 준다고 한대요. 그래도 딱딱해서 재미가 없대요. 그 학생들도 압니다. 여러분들이 이 말씀이 듣고 싶지 아니하고 또 다른 것은 취미있는 그것이 순전히 옛사람입니다.

옛사람으로 장로도, 집사도, 권찰도, 목사도, 신학자도 될 수 있습니다. 옛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옛 사람이 된 숫자가 많습니다.

목사 사태가 났다고 하는 것은 옛사람으로 살고 사는 사람이 사태가 나서 쓸모없지 새사람으로 정말로 자기가 옛사람 새사람 발견해서 옛사람을 죽이고 새사람으로 살려고 애를 써 가지고 새사람의 그 사람이 목사가 된 사람이면 이는, 뭐 보석이 귀하다, 정금이 귀하다, 뭐 세상 무엇으로서는 그렇게 귀한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한 목사라면 아는 데는 열 군데도 백 군데도 필요할 것이오. 목회자 될 사람은 옛사람을 기르는 그놈을 기르지 말고 새사람으로 기르는 그 일을 시발부터 할려고 애를 써야 됩니다

 남녀 반사 선생님들, 중간반 반사 선생님들, 권찰님들 이런 분들 옛사람과 새 사람을 계속 구별해 가지고 옛사람이 해서 무슨 성과가 당장 일어 난다 해도 그 일을 안 합니다. 역부러 안 합니다. 목회하는 사람이 인간 수단의 정치를 부리면 당장에 효력이 나고 그 일이 그만 임시에 당장 수습이 될 일이 있어도 그 정치성을 가지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번연히 그말 한마디만 하고 그렇게만 하면 획 돌아갈 수 있는 것도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하는 것이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 같지마는 역부러 그렇게 할려고 합니다.

왜? 그거는 옛사람으로 사는 생활을 안 할려고 애를 씁니다. 그것을 꺾어 죽일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000교회서 제일 반사 노릇 잘하는 사람인데, 제일 잘하는 사람인데, 남자인데 그 사람이 들어서 000교회 주일학교를 완전히 죽였습니다.

그것이 인기를 끄니까, 인기를 끌어 가지고 남학생들은 그 밑에 제자로 끌게 하고 남반사니까 여반사들은 전부 저한테 전부 마음이 기울여서 다 인기 독점을 해 가지고 힘쓰는 것이 전부 악령 역사입니다.

이래도 교역자들의 눈이 어둡기 '때문에 그 사람을 일 잘하는 줄 알고 그 사람만 손잡아 가지고 하지 그것이 순전히 옛사람이요 마귀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 사람으로 인하여서 차차 차차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제일 유력한 권찰을 자기 배경으로 삼아 가지고, 교역자가 그렇지 권찰이 그러하지 이래 놓으니까 그 사람을 흔들 사람이 없어. 제가 그것을 보고, 그런데 거기 살아있는 사람들하고는 대립이 돼

 그 사람으로 인해서 000교회 반사를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전부를 사면시킨 일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 하나로 전부 사면을 시켜버려 가지고 그다음에 한 사람씩 등용해 가지고 반사를 다시 구성했습니다.

이러다가 마지막에 '그 사람이 회개했으니까, 그 사람도 이제 고쳤으니까' 그래 쌓아서 '그러면 말단에, 그러면 네가 단단히 이 점을, 이만침 큰 수술을 하고 소동해야 되는 이 큰 점이라는 걸 네가 알면 그러면 등용해 봐라.' 등용했었는데 그 사람 이번에 000 목사님이 가 가지고 그 하는 것을 보니 좀 안됐다 해서 그걸 바로 잡을려고 바로 말하고 하니까 딴 데로 가버렸습니다. 딴 데로 갔어. 000 목사님 밑으로 갔어.

 그것이 팩 돌아서지 않으면 헛일입니다. 돌아서지 않으면 헛일이오. 돌아서야 됩니다. 아무리 회개해 봤자 기본회개가 없는 그 회개는 소용이 없습니다. 기본회개가 있고, 회개의 씨가 있습니다.

회개의 씨는 하나님께서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시키는 이것이 기본 믿음의 씨입니다. 그것이 회개의 씨요. 그것이 마귀에게 속한 것인가 하나님께 속한 것인가 이것은 인간이 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순전히 하나님께 소속을 시켰고 하나님에게 소망을 있게 했고, 이렇게 해서 꼭 마귀에게 꾀였던 그와 비슷하게 하나님과 관계를 가지게 된 이것이 회개의 씨입니다

 기본회개는 어떤 게 기본회개인가? 기본회개는 자기는 자기로 사는 사람은 옛사람이요 자기는 구속하신 주님으로 인하여 사는 것이 자기인 것을 알아, 자기가 자기 속에 둘이 있어서 자기대로 살고 싶은 그자 있고 구속하신 그리스도로 인하여 살고 싶은 사람 있으니, 그리스도로 살고 싶은 그 사람은 새사람이요 자기로 살고 싶은 그 사람은 자기 영도 아닌, 자기 아닌 자기, 자기를 죽인 자기, 자기의 제일 원수된 자기 이 자기라는 것을 발견하고 그자로 사는 것을 죽일려고 애를 쓰고, 그자를 죽이고, 자기가 자기를 죽일려고 애를 쓰고 구속하신 그리스도를 향하여 사는 자기로 살려고 애를 쓰는 이것이 기본회개입니다.

 이 기본회개 있고 난 다음에 뭐 도둑질을 회개한다, 거짓말을 회개한다, 음행을 회개한다 해야 되는 것이지, 옛사람으로 있으면서 그놈이 연극해 가지고 내나 그놈이 그래 놓고 또 이거 좀 마음에 갈급해서, 갈급해서 설교 듣고 가면 답답하니까 '이제 과거는 이렇게 후회하고 앞으로는 이렇게 하기로 결심하면 되지 않느냐?' 과거를 후회하는 놈도 내나 옛사람 그놈, 앞으로 이러겠다고 결심하는 놈도 그놈입니다. 이래 가지고 헛일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이 얼마나 있는지 모릅니다.

 주석들 보니까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했으니" 거짓이라는 거게 중대한 문제가 들어 있는데 거기 대해서는 언급을 안합니다. 이제 진실되게 사람을 참 어떤 일이 있어도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우리 속에 있다, 중생했기 때문에 우리 속에 있다 그것을 말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랑을 이루겠다면 인간 사랑은 가다가 좀 무슨 형편이 있으면 그만 사랑은 끊어져 버리고 없어져 버리고 식어져 버리고 이렇지마는 끝까지 사랑할 수 있다 하는 그말인데 그거는 인간 사랑을 두고 말한 것이지 인간 사랑이 아닌 하늘에서 내려온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해석입니다.

보면 알아요. 그러니까 두루 뭉실이오.  여기 기본이 되는 것을 세 가지를 말했는데 첫째번에 말하는 23절에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 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살아 있고" 살아 있는 것, 하나님의 살아 있음으로써 중생됐다 살아 계시는 하나님으로 중생됐다.

살아 계시는 하나님으로 중생됐다. 하나님의 살아 있음으로 중생됐다 같은 말입니까? 살아 계시는 하나님으로 중생됐다 말과 하나님의 살아 있음으로써 중생됐다는 말은 아주 다릅니다. 이런 것이 구별이 돼야 됩니다.

구별이 안되면 안됩니다. 살아 계시는 하나님으로 중생됐다 말은 하나님이 우리의 중생의 씨라 말입니다. '너희들이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고 썩지 아니할 씨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으로 됐다' 하면 하나님이 우리 씨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씨가 아닙니다. 우리 씨가 될 수가 없습니다. '영원히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하면 그 말씀이 우리 씨입니다. 말씀이 씨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 영원히 있는 말씀, 항상 있는 말씀 아주 다릅니다.

그러면 뭐입니까?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하는 그 말은, 살아 있다 말은 하나님이 영존하셔서 활동하시는 그 활동면을 가리켜서 살아 있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하나님이 영원히 활동하시는,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그 움직임,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그 움직임으로 우리가 살아났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움직이심이 없으면 우리는 죽습니다. 하나님의 움직이심,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우리가 살아났다 그말입니다.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다 말은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하실 때에, 하나님은 무슨 물건에서 역사하시지 아니하시고 당신 본체에서, 하나님의 본체에서 나온 것이 뭐이 나왔느냐? 본체에서 나온 것이 영감이 나온 것입니다.

본체가 역사할 때에는 그 역사가 영감입니다. 영감이 한바퀴 더 나오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영감으로 일하시고 당신의 뜻인 말씀으로 일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그 역사, 역사되는, 역사되는 그 자체를 말하고, '하나님의 살아 있고' 말한 것은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역사하시는 하시는 그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하시는 그걸 말하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역사해 놓은 그것을 말합니다. 역사해 가지고 겉에 나온 것. 이러면 우리가 거듭난 것이, 거듭난 것이 어떻게 해서 거듭납니까? 하나님과 결합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어. 하나님과 이렇게, 하나님이 움직이신, 예를 들면 하나님이 이렇게, -여기 보십시오. -내 팔뚝같이 하나님이 이래 계신데, 하나님이 이래 계시는데 하나님이 움직이는 이 움직임에 붙었다 그말이오. 하나님의 움직임에 붙었다 말입니다. 움직임에. '하나님의 살아 있고' 살아 있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우리가 거듭난 것 아닙니다.

 하나님은 불가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거기 닿으면 죽소. 녹아 버려요. 그는 완전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그 역사는, 하나님이 역사하는 역사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중생되고 하나님으로 결합된 그자를 통하지 않고는 나오는 역사가 없습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 움직이시는데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그 대목에 딱 붙어 버렸소. 거게서 중생됐습니다. 또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하나님이 움직이시는데 그 움직이심이 나오니까, 하나님이 움직이시는데 움직이시는 그 움직임이 나오니까 그게 뭐이요? 그게 영감입니다.

그 영감이 또 나오니까, 겉으머리 나오니까 뭐입니까? 하나님의 뜻입니다. 또 그 뜻이 나오니까 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거듭난 것은 하나님과 결합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움직이심으로 우리가 움직이는 그것이 우리의 생명이오. 하나님이 움직여서, 움직여 가지고, 움직여 가지고 되어진 그것이 뭐이냐? 말씀인데 그 말씀으로 거듭났다 말은 이미 해 놓은 그 말씀으로, 이미 해 놓은 그 말씀으로 거듭났느니라.

계속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그 말씀에 연결돼 가지고 거듭난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이미 한 마디 천년 전에, 백년 전에, 몇십년 전에 해 놓은 그 말씀으로, 그 말씀, 그 말씀으로 인해서 거듭난 것이 아니고, 살아난 게 아니고, 계속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그 말씀에 연결돼 가지고 우리가 거듭났다 그말이오.

이것이 구별없으면 안됩니다. 이것을 자꾸 인간의 말로 암만 말해도 듣는 사람은 그말이 그말이고 자꾸 이렇게 들리기 때문에,-우리가 살아난 생명은 하나님과 이렇게 결합됨으로 살아났다는 그말이 그말입니다.

하나님에게서 한번 떨어져 나온,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 해 놓은 그 말씀으로 거듭난 게 아니고 하나님에게서 계속 나오는 그 말씀 거기 연결됐다 그말이오.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역사하는 그 역사에 연결됐다 그말이오

 하나님의 살아 있음으로 우리가 거듭났습니다. 하나님의 살아 있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역사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살아 있음으로 우리가 거듭났습니다. 하나님의 살아 있음 그것이 우리의 생명의 씨입니다.

종자입니다. 하나님의 살아 있음이, 또 항상 계속 오늘도 말하고 내일도 말하고 계속 영감받아. 계속 영감하시고 계속 그 영감이 나와서 말씀이 되고 하는, 계속 영감하는 그 계속 영감, 계속 영감에 우리가 연결돼 가지고 거듭났다는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할일 두 가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자 되었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것이 됐기 때문에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에게 있게 했다'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에게 있게 했다' 믿음은, 믿음은 순종인데, 순종이라 말은 의사도 그의 의사를 따르고 그게 순종이오.

소원도 그이 소원을 따르고, 행동도 그이 움직임을 따르고 이게 그분에게 순종인데, 그분을 좇는다 말이요, 그분을 따른다 말이요, 그분을 배운다 말이요, 그분을 본받는다 말이오. 이러니까 다른 말로 말하면 우리의 모본은, 우리의 표본은, 우리가 받을 체는 그말이오.

글씨 쓰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 글쓰는 그 체를 가지고, 체를 가지고 보면서 그 체에서 점을 찍는 것, 건너는 것, 삐치는 것 그것을 보고 그대로 한번, 우리가 그전에 서당에 다니면서 한문 읽을 때, 한문을 배울 때에는 선생님이 한번 한 줄 쪽 써 주면 그걸 보고 그대로 익혀서 그 체를 받아서 또 쓰고 또 쓰고 또 쓰고 한 20번 씁니다.

20번 써 가지고 그 체를, 언제든지 그 체가 잘못되면 안되니까 그 체받는 것, 이제 '하나님께 믿음을 가지게 됐다,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됐다, 믿음이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을 체받게 됐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바울이 나를 본받으라는 것을 이번에 대구에서 한번 언급했습니다.

 바울이라는 그 사람을 본받으라 말 아니오. 바울은 실수한 사람이오. 사도 되고 난 다음에 예루살렘에 올라가 가지고 실수했습니다. 베드로도 사도 되고 난 다음에 실수했습니다. 우리의 표본은 선지자도 아니요 사도도 아니오.

그분들의 생활한 것은 우리가 참고로 하고, 우리가 그들의 하는 생활 한 것을 참고로 보지요. 우리가 꼭 닮아야 될 분은 엘리야나 다니엘이나 그런 사람 닮을 것 아니오. 그것도 우리의 원형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닮아야 합니다. 우리가 체받은 것은 그분이 우리 체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을 하나님에게 있게 했다. 소망이 하나님에게 있게 했다' 이 말씀도 어떻게 크고 어떻게 많은지∼ 한 말로 말하면 우리가 본 따라가야 될 우리의 원형은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본받을 우리의 표본은 하나님이라 말이오. 예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을 표본으로 삼아서 하나님을 꼭 닮은 하나님의 형상이오

 우리를 부른 것은 예수님을 본받아 예수님을 꼭 닮은 예수님과 같은 예수님의 형상을 입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불렀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 믿음과 소망이 있게 했다' 이게 얼마나 큰 말씀인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사롭게, '아, 예수님을, 예수를 믿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믿게 됐다' 그런 거 아니오.

거기는 예수님이라고 말하지 않았고 그리스도라고 말했어. 예수님은 우리의 중보자이신데 이 중보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오는 각종 그 은혜의 구원은, 그 구원을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시공해서 조성하실 그 책임을 지신 그 하나님이 그리스도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인간 단독이는 안되지마는 하나님을 완전히 본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온전하심같이, 거룩하심, 깨끗함같이 될 수 있는 우리가 됩니다. 이 말도 20년 전에는 못 썼습니다.

20년 전에 언제 그말 했다가 내가 혼났습니다. 교만하다고. '인간이 하나님같이 된다.'

' 하나님같이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하다는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같이 된다는 말은 아니고, 인간이 암만 의로워 봤자 하나님같이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할 수 없기 때문에 이거는 인간이 교만하지 못하도록 인간에게 볼끈 눌러서 인간은 네가 암만 해도, 암만 제가 의롭다고 떠들어 쌓아도 이 말씀 가지고 딱 정죄를 해서 인간을 정죄하는 말씀이지 이 말씀은 인간에게 소망을 가지라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으로 주석한 것을 내가 봤습니다.

또 이 말을 거기서 그분이 말하니까 모든 설교자들이 이 말을 가지고 많은 사람이 써 먹는 걸 봤습니다. 그때 그말 한번 했다가 교만하고 참람된 자라고 말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본받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같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와 같이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할 수 있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우리로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됩니다

 이러기에, 왜 안되는가? 나를 본받으라 하는 그것은 성경 기자, 성경 기자 사도 바울이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성경 기록할 때에는 그는 사람이 기록했지마는 완전 무결입니다. 털끝만치도 완전 무결이오.

사람이 했는데 어찌 완전 무결이 되는가? 그는 하나님과 결합돼 가지고 했기 때문에 완전 무결이 됐습니다

 66권을 기록할 때에 하나님과 결합되니까 정확무오의 결과인 저서가 됐는데, 기록이 됐는데, 왜 그분과 결합이 되면 왜 하나님처럼 온전한 자가 될 수 없다는 말입니까? 주님의 말씀이 '나를 인하여서' 그로 인해 살면 완전입니다.

그로 인하여 살면 완전이오. 온전한 행위요. 사데교회에 온전한 행위라 말했소. 온전한 행위만이 구원입니다. 그로 인하여 된 온전한 행위 이것만이 영생입니다. 하늘나라 가면 하나님과 꼭 같은 요소만 갔지, 이렇게 된 것만 갔지 안된 건 하나도 못 갑니다.

이 기가 막히는 소리이지마는 사람들이 그렇게 듣고 지내 보내니까 이거 참 탄식이오. 뭐 할려고 여기서 이 설교를 하나님이 시키시는고? 나도 내가 하는 것 아니오. 하나님이 나에게 하게 하시니 하지.

설교할 때는 나도 같이 배웁니다. 같이 배워요. 이랬는데 중간반이나 주일학생들에게 보면 소망이 있습니다. 그게 어른보다 훨씬 낫습니다. 여러분들이 집에 가서 자녀에게 물어 보십시오.

세상 그 마귀 지식은 여러분들이 나아 가지고 그것을 억누르지마는 하나님께 대한 지식은 믿는 것이나 의지하는 것이나 의심없이 확신하는 것이나 깨닫는 것은 훨씬 낫습니다. 또 그것이 어리니까 등신으로 압니까? 아니오

 어른들을 놀릴 대로 놀립니다. 살살 달래서, 마찰되지 않고 달래서 자기에게 마음이 기울어지도록 다 합니다. 수단과 방법이 능해요. 남편이 억세도 아내에게 항상 죄이고 아내에게 끌리는 것처럼 부모가 암만 강하고 장성해도 자녀에게 항상 죄입니다.

부모의 전부가 거기 기울어질 만침 그를 달래고 잘 이용해요. 그렇기 때문에 어린 것들이 무지하지 않습니다. 무지하지 않고, 그게, 그게 있기 때문에, 주일학교가 있기 때문에 소망이 있어.

우리도 좀 깨야 됩니다. 늘 들으니까 예사로 듣는다 그말이오. 이 말씀에 굳게 선 사람은 가다가는 일반적인 표준 주석이니 뭐니 하는 그런 주석도 보면 '이렇다는구나' 하는 걸 알 수 있어.

알고 난 다음에는 그 주석을 다시 볼 필요가 없어. 몇군데 봐서 '아 이렇구나!' 하는 걸 알면 그다음에 그걸 볼 필요가 없어. 받고 달려야 되지. 사랑이 없다고 해도 인간 사랑을 말하면 그게 인본주의라 환하게 알 것이오

 하나님의 사랑 이 사랑을 말하면 모든 교인들이 은혜를 받을 것이오. 우리 000목사님은 서울로 부임하게 됩니다. 내가 말하기를 '아직까지 이르지 않는가?' 왜? '자기가 배운 것이 정리가 다 되지 못하고 이렇게 돼 가지고 흔들려서 말 한 마디 잘못된 것 해 놓으면 그 뒤에 수습 못합니다.

그 잘못된 것 해 놓으면 그거 수습할려고, 캄프라치 할려고 자꾸 딴걸 엮어 대다 보면 딴거 되어 버리고 맙니다. 딴거는 하면 당장 그분들이 알고 확 토해 내버릴 것이기 때문에, 그런 염려가 없습니다.'

' 하는 것을 말을 해서 결정이 됐습니다. 여기 좀 부산 가까운 데 두고 좀 같이 접촉하고 이래 가지고 양성원 의논도 하고 좀 이렇게 할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안되어서 서울로 부임하게 됐습니다.

다음 금요일날 오면 결정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20세기에 하나님이 주시는 이 복음을 알아야 됩니다. 이번에 대구 가서 증거한 말씀도 그 아무데나따나 있는 말씀이 아니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지 내가 한 것 아니오. 나도 하나님께 배운 말씀이오. 사면 됩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우리가 아침마다 하는 것 와 들어 보고 꾀임받았다 할 것이라.

'아이고, 그 목사가 교인들, 어리석은 교인들 앉혀 놓고 단단히 꾀우더라. 또 아무 소용없는 말 하더라.' 그들에게 소용있는 말이 한 마디라도 나옵니까? 한 마디도 안 나오는데 우리 보기에는 이치가 맞는 그것이 하늘의 복음입니다.

그들의 견해에 소용이 있으면 내나 죽은 복음이오. 어제도 '누가 이번에 완전히 한번 정리해 볼 사람 없느냐? 정리 하십시오.' 이 반사들은 아마 정리할려고 하면 쉬울 것이오. 한번 정리하십시오

 지금 정리 안 하고 나중에 줄줄 늘어 가지고 40, 50 되면 그때는 늘어트려 놓은 것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때 정리는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기 어렵고 그때에 정리할려면 자기만 정리하지 다른 사람은 강제로 정리시킬 수는 없어.

식구가 다섯이면 다섯이 재물을 소유를 전부 분배를 다 해야 돼, 분배해 가지고 자기 것만 정리하지 다른 식구의 것도 정리해 가지고, 그 사람들 분량이 있는데 그 사람 분량은 정리하지도 아니하고, 제가 강제로 정리해 가지고 그 사람들 고생시키면 그건 월권입니다.

안돼 제 모가치만 정리해. 정리하는데 단 가족들이 한번 정리할려고 하면 좋지요. 어쨌든지 한번 정리, 몇번이든지, 한번 정리 두번 정리해서, 있는 소유 나 위해서 다 바쳐 가난해짐으로 나를 구속하신 이분을 나도 내 있는 소유 다 바쳐 그분을 사랑하는 것으로서, 한번 주를 이렇게 사랑하는 것 좋습니다.

그저 '좀 다른 때 보자. 좀 다른 때 보자.' 몇살 먹어서 정리해 보고, 그전에는 하기 쉬우니까 했나? 30살 먹어서 '지금 한번 정리해 보자.'

' 야 지금 또 정리 한번 해 보고 '아, 내가 50살 되니까, 50살 되니까 지금은 또 정리할 수 있나?' 50살 돼서 정리 한번 해 보고, 어떤 사람은 정리하고 정리한 그대로,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 없다" 하는 이 주님으로, 나를 사랑했기 때문에 자기의 일생동안 그렇게 주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그렇게 사는 사람들 많습니다.

가 보면 놀래질 것이오. 자기 것을 있도록 자기의 실속기를 차릴려고 애쓰는 사람도 있는데 자기 것이,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 하는 이 주님을 자기는 자기도 아무것도 없는 사람으로 주님을 섬길려고 없는 사람 될려고 애쓰는 사람도 있고 있는 사랄 될려고 애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목사가 '늙어서 나중에 정년 퇴직 되면 다 불쌍하고 가련하게 되기 때문에 미리부터 실속기를 차려야 된다' 정년 퇴직이라 하는 것 성경에 없습니다. 정년 퇴직 만들어 놓은 것이 됫주머니 차라 그말이오.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 하는 이 주님으로 더불어 동행하고, 이 주님을 자기도 머리 둘 곳도 없는 사람으로, 머리 둘 곳이 없다 그말은 그 지방에서는 그렇게 쓰는 그런 지방어인데 여기로 말하면 송곳 꽂을 땅도 없다 하는 그런 말과 같은 말입니다.

 '그렇게 살다가는 큰일나겠으니까 그것을 미리부터 단속해야 되겠다.' 정년퇴직 하면 월급의 몇분지 1이 나온다더라? 000집사님, 몇분지 1 나와요? 몰라요? 000목사님 정년퇴직 했는데, 들었을 건데? 뭐 반이 나온다던가 3분지 1이 나온다던가? 그렇게 나와요.

이것이 좀 이상한 말 같지마는 정신없는 말이 아니오. 참 똑똑한 말이오. 참으로 후회없는 밝은 말이오. 이인재 목사님이 감옥에서 처음 나와 가지고 한창 불이 붙어 가지고 설교할 때에 이 서부교회서 집회를 했더랍니다.

나는 여기 부임하기 전입니다. 집회를 했는데 집회하다가 '자 여기 예수님으로 인해서 거지될 사람 없습니까?' 이러니까 모두 킥킥킥 웃으면서 '예수믿어서 자가용을 갖다가 예배당에 쭉 늘려 놓고 이렇게 예수 믿어야 되지 예수믿어 거지된다고? 무슨 놈의 설교를 그 따위 설교를 하느냐고?' 그래 모두 삐쭉삐쭉 웃으면서 다 달아나고 나중에 보니까 설교 듣는 사람이 몇 사람 없더랍니다.

부흥회 했는데 다 가 버리고 부흥회 참석한 사람이 몇 사람이 안 됐어. 이래도 가르치고 가르치고 그래 그래 가르쳐서 지금은 그런 말하면 하지는 못해도 '그 참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는 것이 거의 인식돼 가지고 있는 것이 오늘의 교회들입니다.

얼마나 지식이 다릅니까? 지식을 바꾸지 않으면 안됩니다. 지식을 바꾸지 않으면 구원이 안 이루어집니다. 지식을 바꿔야 돼. 하나님의 지식과 뱀의 지식이라는 그 지식은, '아, 목사님은 지식을 반대하고 이러는데, 지식을 부정하는데 과학도 지식인데, 목사님은 자가용을 타고 다니면서 과학의 지식을 부인한다'고.

내가 자가용을 타고 다니지 자가용에게 내가 끌려 다닙니까? 내가 집어 던질려면 던지는데? 그 뭐 종으로 부리면 되지. 또 뭐라더라? 테레비를 뭐, 뭘 사용하는데 그 뭐라 해? 비디오라던가 뭐 무엇을 이것도 사용하면서 그렇다고 그래 장서를, 긴 글을 써 가지고 보냈습니다.

그 과학이 우리 것인데 왜 못 써요? 세상 지식이 다 우리 것인데. 하나님의 선물도 될 수가 있고, 주인이 떡 가면서 남종 여종을 많이 세워 주면서 '이것은 부인에게, 자기의 남종 여종이니까, 남종 여종이니까 이 종을 궁색지 않게 잘 사용해서 편리하게 사십시오.'

' 하고 보냈으니까 남종 여종으로 잡아 부리면 좋은데 그 종의 것이 되면 어찌 됩니까? 남종의 것이 되면 어찌 돼요? 자, 그 주인 마누라 빼앗겼소 안 빼앗겼소? 대답해요. 주인이 마누라 빼앗겼소 안 빼앗겼소? 빼앗겼으면 그 종이 주인에게 필요합니까 그 아내된 여인에게 필요합니까? 필요합니까? 여인 망쳐졌지.

주인의 미움이 됐지. 주인과 이혼하게 됐지. 그것을 가리켜서 '음행의 포도주라' 말했습니다. 세상 지식은 '음행의 포도주라' 말했소. 그것으로 인해서 하나님 배반하고 그놈하고 둘이 합작돼 버렸소.

그놈의 계집이 돼 버렸소. 그놈의 종이 돼 버렸소. 그놈이 놀러 가자 하면 놀러 가고 자자 하면 자고 그놈의 계집이 돼 버렸어. 세상 지식이 나쁜 게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나 이 세상 지식이 자기를 주관할 때에는 우상이 되어지고 그것이 음행의 포도주가 된다는 것을 여러 수백 번 말했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그런 소리를 듣는 귀가 없는 모양이라. 왜 세상 지식이 나쁘며 왜 돈이 나쁘겠습니까? 그런고로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들을 귀라 하는 것은 양심을 말합니다. 양심이 있으면 들어서 깨닫고 해석할 수 있지만 양심없는 자는 이 말씀이 들려지지 않는 것입니다.

 "뜨겁게 사랑하라" 사랑이 딴 게 사랑 아니오. '사랑의 빚을 져라. 사랑으로는 빛져도 된다' 그 말씀도 땅의 사랑과 하늘의 사랑을 이것을 구별해서 해결짓지 않으면 사랑 외에 '다른 빚은 지지 말고 사랑에 빚지라' 하는 그 성구를 절대해석 못 합니다. 해석이 될 리가 없습니다.

 뜨겁게 사랑하라 말은 열심히 사랑하라 말인데 열심히 사랑하니까, 사랑하라 하니까 뭐 이종 사촌간도 없고 고종 사촌간도 없고 친구간도 없고, 여기 지금 저희 사촌끼리인데 이래 가지고 지금 벌써 같이 한방에 같이 생활하고 있는 지가 오래 됐는데, 그 문제에 대해서 머리를 앓고 '이거 어째야 되느냐?' 나누어야지.

 남 보기에는 그래 형제간이라 하니까, 형제간도 안돼. 형제간도 나이가 국민 학교 이상이 되면 동거하면 안돼. 실은 부자간도 동거하면 안돼.

그러면 얼마든지 사랑하니까, 사랑하니까 이거는 내 이종 사촌, 이거는 내 고종 사촌, 이거는 사촌, 이거는 오촌 뭐 무슨 무엇이, 이거는 우리 오빠, 이거는 우리 누나, 누나를 누나 오빠를 오빠라고 그렇게 말한 그 말이 통계인데 그 말이 맞소, 다는 아니지마는 그러기 때문에 조심해야 된다 그말이오. 그런 사랑이 아니라 "뜨겁게 사랑하라" '뜨겁게 사랑하라' 뜨겁게 뭣 하라 말이오? 00선생, 뜨겁게 뭐 하라 말이오? 예? 하나님 사랑. 뭘? 하나님 사랑 뭐인데? 그래. 예수의 대속.

 '뜨겁게 사랑하라,' 뜨겁게 성결 운동 하라. 뜨겁게 성결하라. 네가 성결을 줘라. 성결을 받아라 그거 외에는 받을 것이 없이 빚지지 말아라. 뜨겁게 피동되라. 뜨겁게 피동을 줘라.

네가 그 사람에게 주님에게 피동되는 그 피동을 그에게 줘라. 네가 그로 말미암아 받을 것은 그로 인해서 주님에게 피동되는 거 이것이, 불의는 자기 자율로 주장으로 자기 사욕으로 하는 이게 불의입니다.

칭의 준 것은, 의는 하나님에게 피동되라 말이오. 그로 인하라 말이오. 하나님을 인한 이것을 열심히 운동해라 이거 외에는 주지도 받지도 말아라. 그다음에 하나는 뭐입니까? 하나는 뭐이지요? 하나님과 화친! 네가 하나님과 화친해라

 네가 사귀면 네가 그에게 하나님과, 네가 만남으로 그 사람과 하나님과 친밀하도록 해라. 그에게 접촉해서 그에게 받을 것은 하나,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너와 친밀되는 것 이거 외에는 받을 것이 없다. '뜨겁게 사랑해라' 이것이 거짓없는 사랑입니다.

 천년 만년 억만년, 하나님의 심판, 무궁세계 가도 이 사랑은 변하 지 않습니다. 부끄럽지 않습니다. "거짓이 없는 사랑으로 사랑하게 되었으니" 이걸 구별하지 않으면 인간 행위 전부 두리뭉실이오.

이러기 때문에 이 복음이 들어 사람을 죽인다 그말이오. '내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말씀 그대로라. 이러니까 전부 두리뭉실, 마귀라는 놈은 구별하는 걸 정 싫어합니다. 구별하는 걸 싫어해.

중간반 반사들이 이 말씀 새김질하는데 막 주리를 틀고, 내가 보니까 억지로 와서 존대요. 그래 내가 남부장, 남 반사들은 안 그런 것 같애. 내가 꽃마을에 한번 가 보니까 녹음을 듣고 새김질하면서, 있는데 밑에 가니까 내가 이운 사람 부끄러울 만치 '주여! 억 억' 이래 쌓아 왁왁 쌓는데 보니까 000선생님은 밖에 내려와서, 밖에 내려와 가지고 밖에 와서 있어.

있던가 내려오던가? 내 속에 '다른 사람은 왁왁 저러는데 저 사람 보기에 너무 그러니 이웃 사람 보기에 부끄럽다, 이거 미치괭이 같다 해서 내려오나? 그러면 좀 염려스러운데.' 그것을 내가 느끼고 왔어. 왁왁 거려. 그게 뭐인가? 그 말씀에 느껴서 자기가 그 말씀으로 인해서 자기 속에 뭐인가 불이 붙었고 힘이 나왔기 때문에 왁왁 거려 그것이 성화요. 그 힘 가지고 일해야 됩니다. 미치괭이 아니오.

 말씀을 생각하니까 힘이 나오는 것, 감옥에서, 사형 앞에서 말씀을 생각하니까 '주여! 왁!' 이것이 빌립보 옥중에 있던 바울이 주와 주의 말씀을 생각하니까 그만 찬송이 나옵니다.

찬송이, 하나님의 전능의 능력으로 나온 찬송이, 찬송이 나오니까 그만 지진이 나 가지고 옥터가 떨리고 안에 갇혀 있는 죄수들의 묶여 있는 묶임이 다 풀어져 버리고 야단이 났습니다. 그것도 하나의 형식 계시라, 형식 계시. 이렇게 사모해서 자기 속에서 일어나는 불이 나오면 이 불은 주위 환경을 진동시키고 결박당한 죄인들을 해방시킨다 그말이오. 이것도 하나의 계시요. 이 능력의 계시라.

 이런데 여 반사들은 이 녹음으로 재독을 하면 전부 다 잔대요. 다 싫어 한대요. 그게 죽을 사람이고 망할 사람이고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이다. 그 사람들은 연속극이나 테레비를 보면 눈이 똥그래지고 재미가 날 것, 취미가 있을 것이오.

어때요? 0선생 그래요? 000선생님 그래요? 000선생은? 000선생님은 아이 하나를 낳았기 때문에 안 그런지 몰라. 아이 안 낳고 낳은 것 영 달라요. 영 달라.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는다' 그 말씀이 필요합니다. 50이라도 아이 안 낳은 그 사람은 보면 어린아이 면이 있는데, 다른 장점 면이 있지마는 모자라는 면이 있다 그말이오. 아무래도 아이는 아이라. 미완성품이라.

 성질이 아이든지 인간에 대해서 이해심이 아이든지 뭐인가 단점이 있다 그말이오. '해산함으로 구원 얻는다.'

' 다른 점도 좋은 점이 있지마는, 성경에는 '결혼하지 않는 사람은 마음을 다 하나님에게 기울여서 하나님을 사랑하지마는 결혼한 사람은 마음이 나누어진다 어떻게 하면 아내를 어떻게 하면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해서 마음이 나누어지느니라' 그 점에 보면 그렇지마는 또 우리가 보면 모자라는 점이 있다 이거요.

이런데 이 말씀을 들을 때는 취미가 없다 말이오. 그래 내가 부장에게, 여부장에게 말하기를 그랬어. '그리 말고 딱 들으면서 문답 할 것을 딱 거석해 가지고 딱딱 물어라 물으면 대답을 못 하면 수치가 되고, 한번 대답 못 하면 저거는 저 진리에 대해서는 저렇게 지금 어두운 사람이구나 해서 가치가 그저 푹푹 폭락이 될 터이니까 폭락되기 싫으면 억지로라도 귀담아 들어 가지고, 귀있게 들어 가지고 답할 거다.

어쩌든지 살려 보자. 어쩌든지 살려 보자. 일으켜 보자. 어쩌든지 변화시켜 보자' 이래서 한번 착수하면 기어코라도 살려 볼려고 애쓰는 그것이 그점입니다. 이러니까 자꾸 일일이 듣기 싫은 소리만, 하기 싫은 것만 자꾸 이렇게 말하니까 그만 신물이 나고 진저리가 나고 뭐 골탕먹어.

골탕먹는 그놈을 죽일려고 하는 것이오. 그놈을, 골탕먹는 그놈을 죽여 버려야 될 터인데 그놈이 아직 안 죽기 때문에, 그놈을 죽여야 돼. 그놈을 죽이는 것이 교회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마다 '너는 이걸 죽이라.

그것 죽여, 그것 죽이지 않으면 안된다. 너는 이걸 죽여야 된다' 그놈을 살리면 좋아하고 기뻐해요. 이 말씀을 들을 때에, 들을 때에 그때 감동이 됩니다. 감동되면 그 감동되는 것 없애버려야 됩니다. 그것을 내가 벌써 30년 전부터 주장을 합니다. 어디 가면 감동되는 그것이 내가, 감동되는 컷은, 하나님 말씀을 들어 깨달을 때에 감동은 필요하지마는 감동받아 하나님 말씀을 깨닫고 난 다음에 감동은 다 집어던져 버려요. 다 없애 버려요.

 없애고 그 말씀만 가지고, 나무 밑에 가든지 굴에 가든지 감옥에 가든지 어떤 역경에 가든지, 몽둥이로 뚜드려 맞으면서라도 눈감고 그 말씀을 이와 같이 생각할 때, 그 말씀을 생각하니까 그 말씀으로 인해서 속에서 힘이 나옵니다.

몽둥이로 뚜드려 맞아서 막 겁이 나다가 말씀을 생각하니까 힘이 나서 뚜드리면 '주여! 감사합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주님 나 위해 죽었으니 나도 주를 위해서 죽을 수 있기까지 하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합니다!' 힘이 나온다 말이오.

힘이 나오고 나면 안 때려. 안 맞을려고 그러기 시작하면 연극하면 때리지마는 정말로 주를 위해서 매를 맞고 싶어하면 그 가치있는 매는 마귀가 알기 때문에 얼른 치워 버려. '아이구 이놈 해되는 매를 때려야 되겠는데 이롬 수입 보겠다.

큰 수입 보겠다 면류관 장만하겠다' 이러니까 그만 안 때려요. 안 맞을려고 그렇게 생각하면 매가 자꾸 옵니다. '네까짓 놈 그래 생각해도 매가 가는가 봐라.' 자꾸 부인케, 주를 부인케 합니다

 맞고 싶어서 참 깨닫고 나니, 맞고 싶어서 하니까 매가 안 옵니다. 그러니까 그다음에는 '아 주여, 주를 위한 고생 내가, 내가 받지 않으려고 해서 매가 그만 중지됩니까? 좀 계속하게 해주옵소서.'

' 할 때는 매를 안 때려. 이러니까 00목사님이 군에 입대해 가지고 자기가 매 맞은 데 대해서 참 깨닫고 주를 위한 맞는 것을, 그거는 다른 게 아니라 순전히 섞이지 않은 주를 위해서만 맞는 매가 되었을 때에 그 매를 좀 더 맞을려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이러니까 안 때리더라고.

주를 위한 매는, 그렇게 많이 맞으면서 주를, 섞임이 없는 주를 위한 매는 한 번밖에 안 맞았다 해, 한 번밖에는. 뭐인가 자기가 그 속에 좀 잘못된 게 있어 그놈 때문에 맞았지 하나도 잘못된 것 없이 순전히 주를 위해서 매는 한 번밖에 안 맞았다고 그럽니다.

그 사람은 군에 가서 받들어 총도 안 했어요. 국기 배례, 받들어 총도 이것도 형식이지. 국기 보고 숭배하는 것이 된다고 받들어 총 이것도, 그거 해도 괜찮은데 받들어 총 그것도 안 해 가지고 두드려 맞고 이래 가지고 백지 그 병원에 있다 왔어. 맞아 가지고 병원에 들어와 가지고 이제 그가 그러니까 맞아 가지고 병원에 들어가면 성경 얼마나 볼 수 있고 거기서 성경을 봐 가지고, 성경은 거기서 봤어, 병원에서.

 다 주에 대해서 뭐 뽀족한 게 하나 있어야 됩니다. 그게 없으면 안돼, 그저 설렁설렁 제 지혜대로 하고 십자가 지지 않고 그래 가지고는 안돼요. 이것은 말씀을 듣는 데서만 됩니다.

'여반사들 내가 이거 두시에 한다는데 두시에 내가 시간 있으면 한번 내려가야 되겠다. 내려가 가지고 내가 문답을 해서 모두 조는 사람들 코를 딱딱 깨 가지고 그만 머리도 들지 못하도록 해야 되겠다' 이런 생각이 납니다.

남반들도 이거 참 녹음이 있어 가지고, 그것도 과학이지 그걸 우리가 이용하지 그것의 종이 됩니까? 이용하면 아버지의 선물이지. 네, 재독하는데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한지 모릅니다.

이걸 깨달으면 마구 그 시간에는 부리나케 와 가지고 들어서 행할 건데 뭐인지 보배를 모르기 때문에 어떤 의사가, 어떤 의사가 그 집에 가 보니까 그 집에 그 할머니가, 굉장히 유명한 의사라 그 어떤 병에 거기서 약만 지어다 먹으면 대번에 낫기 때문에 돈을 뭐 얼마나 끌어 모았는지 모르는데 그분 죽고 난 다음에 아들이 그 의사 노릇 하지마는 그만 그때보다 효력이 덜 나.

그러니까 약국질하면서 얼마나 착취를 했든지간에 손자대는 그만 거지가 돼 버렸소. 거지가 됐는데, 이 사람이 '그 집에 한번 가서 보자. 그 집에 꼭 그 의서가 혹 남아 있는가 한번 가 보자.'

' 가 보니까 종이 살 돈이 없어서 전부 의서를 뜯어 가지고 문을 발라놨는데 문 발라 놓은 데 거기 보니까, 아! 과거의 담박문 그게 문에 발라 가지고 있소. 그 이 사람이 거기 있는 책을 살려고 하니까 "아 종이 몇장만 사다 주고 그거 가져 가십시오

" 이랬는데, 책보다도 문 탈란 거 그걸 뜯어 가지고 가야 되겠는데 이걸 좀 뜯어가도록 문을 사정하니까 "아이구 그거 뭐 그걸 뜯어 가지고 새로 문 발라주면" 그렇게 해 가지고, 그래 해 가지고 되겠습니까? 이 사람은 창호지로 문 발라 주시고 그 의서를 뜯어 가지고 그대로 하니까 담박문이라.

하는 대로 다 낫아! 무식한 자는 그걸 문을 발랐다 이거요. 이것 모양으로, 그러기 때문에 모든 만물은 그 가치를 아는 사람은 기록합니다. 공구 이 공구는 가치를 아는 사람 집으로 결국은 몰려가요.

왜? 필요 없으니까. 고물상에 "이것 엿 줄렵니까?" 팔아 버리니까 고물상에 가 가지고 또 이제 돌아가고 돌아 가서 이 가치를 아는 사람 상점에 가 있고 결국은 가치 아는 사람 이 그 공구 사 가지고 자기 집에 갖다 놓는다.

무엇이든지 가치 아는 사람에게로 찾아간다는 것을, 물건도 그러 합니다. 지식도 그러합니다.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로 찾아갑니다

 이러니까 이 진리를 여러분들 장 이렇게 듣지마는 이렇게 듣지 않고 저 녹음의 부스러기를 갖다 들어도 그것 듣고 이제 거기서 보배를 알고 차지하는 그 사람에게로 결국 가고 맙니다. 어떤 사람이 영혼에 대해서 해석을 했는데 다른 해석은 거의 다 본받았는데 영혼이 뭐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뒤죽박죽이 되고 말았어.

제가 팜프렛을 보냈는데 그걸 읽어보니까. 듣고자 하는 사람은 지나가면서 일부러 들어요. 거창 읍내 집회에서 일주일 내 가서 사경회 한 사람들 그 사람들보다 내가 많이 받았습니다.

사경회 마치고 난 다음에 부스러기나 뭐 얻을 게 있을까 해서 좀 은혜받은 사람한테, 이 사람한테 가 묻고 저 사람한테 몇번 가 물으니까 그때 집회에 제일 중심되는 것이 한상동 목사님이 뭐이냐? 마태복음 28장 20절 끝절에 "세상 끝날까지 나는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는 그 성구를 하나 가지고 감옥 생활을 승리했다는 것 그게 요지라. 그거 하나 받아 가졌어.

 그거 하나 받아 가니까 그 사경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수백명이지마는 그때는 교인수가 적었어요. 수백명이지마는 수백명보다 제일 많이 받은 사람은 뒤에 가도 내가 많이 받았소. 이와 같이 여기 항상 있지마는 저 외지에서 한 마디만 듣고는 받는, 그 사람들이 많이 받는 사람 있습니다.

 이러기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그 설교 한 마디 들으면 나는 설교 서른 개 한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만 들어도 그래. 이러기에 보배성을 알아야 될 건데, 이 하나님 말씀으로만 우리가 깨끗해지고 우리 사람을 변화하는, 그 변화하는 방편은 몇가지 있다고 했습니까? 손가락으로 가르쳐 보십시오.

여기도. 반사 아닌 사람들은 하나도 모릅니까? 두 가지, 영감과 진리 이 두 가지로만 사람을 변화 시킬 수 있소. 순서는? 순서는 누가 순서입니까? 소리를 크게 내봐. 누가 순서요? 자기가 순서라 자기 보고 그다음 되지 자기 안되고 그다음에는 암만 애써 봤자 헛일이오. 다른 게 되기 전에는 안됩니다. 이것이 어제 반사회때 나온 말씀이라.

 얼마나 보배요, 얼마나 보배. 이러니까 반사가 두 가지로만 가르치기 때문에 영감은 진리 속에 따라다니고, 이러니까 말씀을 그들에게 가르치고, 가르치는 가운데 사람은 변화되어지고, 암만 가르쳐도 안되는 것은 제가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변화돼 가지고 가르치면 변화되는 것은 빨리 따라서 변화되고.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000집사님 구역에 초상이 났는데 아홉시 반까지 장례차가 교회로 옵니다.

 그때까지 오면 장례식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너무 많이 자나갔습니다. 한시간 이십분이 자나갔었는데 너무 많이 지나갔나? 십분 기도하고 난 다음에 권찰회 모입니다. 바쁜 이는 가시고 참석할 수 있는 이는 참석을 그래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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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5 중생된 성도/ 베드로전서 1장 22절-25절/ 1974. 5. 19. 제 20공과 선지자 2015.12.28
1044 중생된 영과 3가지 기능구원/ 로마서 11장 33절-12장 2절/ 1987. 5. 27. 수새벽 선지자 2015.12.28
1043 중생된 영의 성장/ 에베소서 4장 17절-24절/ 1986. 3. 23.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8
1042 중생된 영의 성장/ 에베소서 4장 17절-24절/ 1986. 3. 23.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8
1041 중생된 자의 생활, 욕심의 3종류/ 야고보서 1장 14절-18절/ 1983. 11. 10. 목새벽 선지자 2015.12.28
1040 중심을 고치기 전에는 좋은 날이 없다/ 사무엘상 16장 6절-7절/ 1986. 4. 11. 금새벽 선지자 2015.12.28
1039 중심준비/ 사무엘상 16장 6절-13절/ 1986. 4. 9. 수저녁 선지자 2015.12.28
1038 중풍병자/ 마태복음 9장 1절-8절 / 1981년 1공과 선지자 2015.12.28
1037 중풍병자의 표적/ 마태복음 9장 1절-8절/ 1980. 12. 28.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