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준비

 

1986. 4. 9. 수밤

 

본문:사무엘상 16장 6절∼13절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그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의 앞을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가로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이새가 삼마로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가로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이새가 그 아들 일곱으로 다 사무엘 앞을 지나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또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가로되 아직 말째가 남았는데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이에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사무엘이 기름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 가서 그 아들들을 불러 모으고 이스라엘의 왕될 사람을 선정할려고 모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선정에서 선정함을 당한 사람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또 선정함을 받지 못한 사람은 이스라엘 중에 일반적인 서민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일에 대해서 그렇게 별로이 느끼지를 못했지마는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흥하고 망하는 것이 이 이스라엘 왕을 선정하는 데에 달려 있는 줄을 알기 때문에 아주 중대한 문제를 가지고 왔습니다. 또 그 걸음은 현재 왕 사울이 이 사실을 알면 사무엘을 죽이고 그대로 두지를 아니할 것입니다. 사람 보기에는 예사로운 일 같지마는서도 아주 중첩적으로 중대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랬는데, 사무엘이 이새의 아들들을 데리고 오라고 하니까 장자로부터 사무엘의 앞을 통과시켜서 서로 면접하게 했습니다. 이랬는데 그 이새의 장자 엘리압이 지날 때에 사무엘이 그를 보고서 참 기뻐했습니다. 우리 이스라엘을 책임지고 구원할 이 위대한 인물이 여게 있구나 하고서 기뻐했습니다.

그래, 그 사람에게 기름을 부을라고 할 때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다. 사무엘 네가 보기에는 아주 용모와 신장이 훌륭하니까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책임 맡을 자로구나 하고서 너는 기름을 부을라고 하지마는 그 사람은 내가 이미 버렸다.

버렸노라 하시고, 「나의 보는 것은」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들이 사람을 보고 평가하는 거와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사람은 겉어머리 그저 용모도 보고 또 그 체격도 보고 또 학식도 보고 모든 지혜와 총명도 보고 또 활동성도 보고 담력도 보고 그 사람이 이제까지 한 그 모든 이력도 보고 하는 그런 것이 다 외모입니다. 외모를, 그런 것을 가리켜서 다 외모라고 말합니다. 그저 얼굴만을 외모라 하는 게 아니고 성경에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신다’ 하는 데에는 세상 명예나 지위나 권세나 학력이나 또 체력이나 용기나 그 사람의 그 온갖 이력이나 그런 것을 하나님은 보지 아니하신다 하는 말입니다.

「외모를 보거니와」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가지고서 사람들의 가치로 삼지마는 말입니다. 사람은 이런 것을 가치로 삼지마는, 「나 여호와는」 내가 계약을 선포한 하나님이신 계약대로 이행하는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했어.

「중심을 보느니라」 그 사람의 중심을 본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사람들과 아주 판이합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 번쩍거리고 훌륭한 그런 외모를 보고 그대로 그것을 가치로 삼아서 평가하지마는 하나님은 그렇게 사람을 평가하지 아니하시고 그 사람의 중심이 어떠하냐 하는 그 중심을 보고 평가를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래서, 이 이새의 가족들이 모인 거기에 사람들이 다 가치 있다고 유망하게 생각하는 모든 아들들은 하나님이 그를 버리셨다, 또 선택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시고, 부모네들도 무시하고 형제들도 멸시하고 참 보잘 것 없는 그저 그거야 뭐 사람 축에 간다고 생각지도 안하는 그런 말째 아들, 그저 짐승이나 먹이고 하는 그런 사람들, 그런 짐승이나 먹이고 목부, 아주 목동 초군으로서 목부노릇을 하고 있는 그 다윗을 하나님께서 이가 그로라, 네가 기름을 부으라 하시고 기름을 부었습니다.

기름 붓고 난 다음에 보면 「이날 이후로」 기름 부은 그날 이후로, 기름 부은 그날 이후로, 그러면 그때부터 말입니다. 그때부터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그러면 다윗이 계약을 선포하시고 계약대로 이행하시는 그 하나님의 영감 능력이 다윗에게 감동되었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하는 이 말씀의 뜻은 하나님이 계약을 선포해 놓으시고 하나님이 이 계약대로 이행하실 터인데 사람으로서 또 이 계약대로 이행할 수 있는 그런 그 능력의 신이 그에게 크게 감동되었다 하는 말입니다.

이 말을 세밀히 하면 하나님은, 신구약 발표한 하나님은, 그때는 구약인데 하나님은 구약을 발표한 이 계약대로 이행을 하시지마는서도 사람들이 이 계약대로 이행을 하지 못함으로 하나님의 계약에 한없는 은혜와 축복과 영광과 능력과 승리가 계약되어 있지마는서도 사람들이 그 계약을 이행하지 아니하고 또 못 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항상 하나님의 백성에게 원하시는 그 뜻은 이루지 못하고 원치 않는 징계, 원치 않는 징계와 또 진노와 저주 이것만 항상 하게 되니까 하나님도 고통이요, 또 하나님의 백성들도 고통이었는데, 이 다윗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계약을 이행하심같이 이 다윗도 그 계약대로 다 준행을 해서 하나님은 다윗에게 당신이 이스라엘에게 주실려고 준비한 모든 것을 다 주실 수 있고, 또 다윗은 하나님에게 그 모든 것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은 다윗으로 이제는 내가 만족하다 할 수 있는 만족을 받으실 수 있는 이 다윗의 행위가 됐고, 다윗은 또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충만히 받아 가지고 온전하고 구비한 그런 복된 사람이 될 수 있는 그것을 여게 표시해서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다윗을 대해서 내 뜻에 합당한 자를 내가 만났기 때문에 내 소원을 다 이루시겠다 그렇게 하나님이 말씀을 하셨고, 또 다윗을 하나님이 영원히 자랑하고 칭찬했습니다. 이래서 예수님도 다윗의 뿌리라고, 또 다윗의 자손이라고 이렇게 해서 하나님이 생명과 평강의 축복을 주시는 그 계통의 줄기를 삼아 가지고 그 줄기가 내려와서 메시아도 난 것인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는 이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불택자는 말할 것 없고 사람 중에 제일 복 있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선택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인데,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들 중에도 여호와의 신에 크게 감동된 이 다윗은 참 이스라엘 중에도 큰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면, 이 다윗이 이렇게 큰 축복을 받게 된 그 원인이 무엇인가? 다윗이 이 큰 축복을 받게 된 그 원인이 무엇인가? 무엇을 가지고 준비를 했기에 일국을 통치할 수 있는 권세와 또 수많은 이스라엘을 이렇게 잘 보호하고 복되게 할 수 있는 이 통솔의 이런 신임 권위를 가지게 되었던가? 그는 단순하게 아무것도 준비하지 안했습니다. 여게 보면 외모를 보시지 않는다 하는 것을 봐서 외모 가지고 준비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는 그저 밤이면 짐승들하고 같이 누워 자고 낮이면 또 짐승들 먹이고 거기서 다른 못된 무슨 짐승들이나 오면은 고 그렇게 그저 하루 종일 땡볕에 굽고 있으니까 그 얼굴이 굽혀서 빨갛다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준비 안 했습니다. 그는 뭐 공부한 것 아니오. 공부 안 했습니다. 공부도 안 했고 명예도 없었고 지위도 없었고 권세도 없었고 사람들이 보고 칭찬할 만한 아무 이력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없었는데, 단지 그분이 준비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중심 준비를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안하고, 외모를 가치로 삼지 안하고 그 중심을 가치로 삼는다 이렇게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그 중심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중심은 그렇게 좋았지마는서도 일자 무식이 무슨 아무런 공부도 하지 안하고 또 정치에 대해서도 무슨 공부하지도 안했고 이랬는데 그렇게 적이 많은 위기에 들어 있는 이스라엘을 어떻게 통치할 건가? 그 통치의 실력은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뭐 정치학 공부한 게 아니고 하나님이, 여호와의 신이 크게 감동되니까, 여호와의 신이 크게 감동되니 여호와의 신이 다윗을 총 주권하고 있고 다윗은 여호와의 신에게 전적 피동만 돼 가지고 있으니까 비록 사람이지마는 다윗이 하는 행동은 완전히 여호와 하나님이 하시는 행사가 됐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윗의 그 역사를 보면 그는 사람이 할 수 없는 그런 하나님이 하시는 그런 일들이 다윗의 일생 동안의 모든 생애였습니다.

그러면, 중심을 보면은 그 중심이 무슨 중심이었던가? 그 중심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중심이니까 그 중심은 그저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는 중심입니다.

사자가 오고 곰이 오고 그게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버리면 절단이고 하나님이 치면 절단이고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할 때는 땅 위에 이 피조물의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실 때에는 피조물은 돕기 마련이요 종되기 마련이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를 해할 수 없단다는 이 사실을 그는 확실히 믿고 있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만을 두려워함으로 피조물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를 안했고, 또 그가 믿기를 무슨 이 피조물 가운데에 이런 우뚝 솟은 아주 태산같은 그 위력을 가진 어떤 피조물 어떤 것도 그는 믿지 안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그분만 믿었습니다, 그분만을.

그분만을 믿는 믿음을 가졌고, 또 뭐 이런 저런 주위나 환경이나 조건이나 좋은 것 그런 것을 이것만 있으면 되겠다, 이 운동만 있으면 되겠다, 이 인물 들면 되겠다, 이 사람들이 인정하면 되겠다, 뭐 어떻게 되겠다 그런 거 하나도 바리지 안했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해 주시면 된다, 하나님이 해 주시면 된다. 하나님만을 바라봤습니다.

바라보고, 그러면 자기는 어짜고? 자기는 위험 천만의 그런 일들이 많이 있으나 그분은 자기를 자기가 책임지고 내가 나를 어떻게 하나 그렇게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내가 행복될까 하는 그런 것도 생각지 안하고 그저 자기는 하나님에게 맡겼습니다. 내가 나를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 봤자 어떻게 하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인지, 좋게 하는 것인지 그것도 모르는 내니까 하나님만이 아실 수 있고, 하나님만이 신실히 약속을 지켜 주실 수 있고, 내가 맡길 때에 잘 보관하시고 잘 책임져 주실 것을 믿습니다 하고서 그분에게만 맡깁니다.

맡기고, 그저 하는 일은 뭐인가? 그분에게 꼬박꼬박 순종하고 하나님이 잘 해 주시건 하고 기다리는 것뿐이었지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될라고 헛보도 꿈꾼 그런 일을 꿈꾸지 안했습니다.

요새는 보면은 글 쓰는 사람들이 꿈 얘기를 많이 하는데, 모두가 그런 꿈이 있어야 된다, 꿈 없는 민족은 망한다 그런 소리를 많이 말하는데 그것은 철없는 안 믿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지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그런 말 하지 않습니다.

그저 헛된 공상을 가지면 공상을 가진 것만치 자기는 더럽고 해독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저 자기에게 대해서는 하나님에게 딱 맡겨 놓고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만 순종하고 때를 기다릴 것뿐인 것입니다. 그러면 때가 되면 높이시리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성구를 우리에게 주실 때에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다 기록할라고 하면은 온 세상에 둬도 둘 곳이 없는 그런 많은 양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많은 분량 가운데서 그 많은 분량을 다 제하고 거게서 보다 보다 요긴하고 요긴하고 중요하다고 선택한 것이 이 구약 성경에 있는 말씀이요 신약 성경에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들은, 신구약 성경에 기록돼 있는 말씀은 온 세상에 가득 찰 만한 그 기록할 말이 많은데, 그것도 다른 일 아니오. 주님이 행하신 것을 기록할라 하면 그렇게 많다 했습니다. 뭐 세상 말 그까짓 것, 세상 말 그까짓 거야 지저분하게 암만 있어 봤자 그까짓 거는 뭐 수에 칠 것도 없지마는 하나님의 행하신 그 일을 기록할라고 해도 세상에 다 둘 만한 곳이 없다고 하는 그런 많은 양을 다 보고 그것보다, 보다, 보다, 보다, 온 세상에 가뜩 찰 수 있는 주님의 하신 그 모든 일보다 이 성경에 기록한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기록해 주셨다는 이 사실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밤에 이 말씀을 증거하는 것은 우리들은 이 세상을 살아나가는 데에 모두 분주 복잡하고, 또 실패하는 자도 많고, 뭐 성공했다는 것도 좀 뒤에 보면은 다 실패가 됩니다. 거의가 실패라고 볼 수 있는 이런 위험한 세상이지 또 실상, 사랑 사랑하지만 인정 없는 참 냉정한 세상입니다. 또 무정한 세상입니다. 아주 박정해서 잔인한 세상입니다. 뭐 거짓이 가득 찬 세상이오.

이런데, 이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이 처세의 길을 가질 것인가? 다윗이 가진 이 처세의 길을 가지는 것이 이것이 천인 만인의 가진 것보다 뛰어난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모든 준비의 그 방편인 세상이 무책임하게 지글거리는 방편 그거는 다 타락한 후에 공중에 권세 잡은 배암이 사람 속에 들어가 가지고서 이렇게 꼬와서 모두가 거짓말이오. 또 반거짓말, 인간에게 대한 말은 전부 거짓말뿐이오. 털끝만한 것도 옳은 말 없습니다. 거짓말이오. 또 물질에 대한 것은 반은 참말이요 반은 거짓말이니 그것조차 반거짓말입니다. 왜? 물질에 대한 말은 고것이 바른 말이지마는서도 고것이 사람들과 접해서 조화를 맺는 데에 요 조화가 잘못됐기 때문에 그거는 반거짓말입니다. 물리만은 참말인데 물리와 인간과 접하는 그것이 틀렸기 때문에, 그것도 반거짓말이 되어 있기 때문에 온거짓말보다도 더 미혹은 더 큰 것입니다.

그런고로, 그런 걸 떠나서 우리도 이 다윗을 하나님이 기뻐하신 거와같이 이런 중심을 우리가 가지는 것이 그것이 우리의 금생과 내세에 이 생활하는 데에는 제일 슬기로운 일이 되는 것을 우리가 굳게 잡고 다른 방편을 취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하나님만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딴걸 두려워하지 못합니다. 큰 두려움과 작은 두려움이 있을 때에는 큰 두려움 오면은 작은 두려움 그까짓 거는 다 없어져 버립니다.

하나님만 두려워하고, 하나님만 믿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에게 맡겨 놓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만 꼬박꼬박 순종하고, 참아 기다리는 이것이 슬기로운 일이요, 이것이 하나님 앞에 지음받은 사람들로서는 슬기로운 일이요, 더우기 선택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로서는 슬기로운 일입니다. 이것이 중심입니다.

거게서, 그러면 이 중심을 가지고 우리가 생활을 할 때에 어떻게 생활하나? 우리는 말이든지 행동이든지 생각이든지 뭐 어떤 뜻이든지 경영이든지 소욕이든지 어쨌든지 우리가 움직이는 모든 움직임은 하나님을 상대한 움직임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원수하고 둘이 상대해서 해도, 내가 원수하고 둘이 상대해서 내가 어떤 행동을 해도 사람 보기에는 그 원수하고 나하고 둘이 상대해서 가졌지마는 실은 눈을 뜨고 보면은 껍데기는 그 사람하고 나하고 둘이 상대하는 것같이 보이지마는서도 실상은 그 사람 배후에 있는 하나님하고 나하고 상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그 사람에게 하는 것이 막바로 하나님에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움직임은 어떤 움직임이요 뭐를 상대해서 움직인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의 껍데기로 우리 앞에 나타난 것뿐이고 우리의 언행 심사의 행동이 가서 부딪혀지는, 부딪혀지는 그 상대는 대주재이신 하나님이시요 우리를 대속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요걸 단단히 기억해야 됩니다.

이거야 뭐 이거는 존귀한 사람을 향해서 하는 일이라, 이거는 또 그뭐 못난 천한 걸 향해서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개를 대해서 하고 있다, 이거는 소를 대해서 했다, 소를 대해 하든지 뭘 하든지 우리가 그 현실에서 어떤 그 행동을 하든지 내가 하는 행동은 대주재자요 심판자요 우리에게 모든 것을 정확한 보응을 시키실 그분을 상대해서 하는 일이라는 걸 요것을 고 알고 행한 것이 다윗의 중심이었습니다.

또, 다윗은 자기에게 상대방이 좋은 것을 행하든지 나쁜 것을 행하든지 욕을 하든지 칭찬을 하든지 환난이 닥치든지 존영한 일이 닥치든지 어쨌든지 자기에게 닥쳐온 그 모든 것은 이런 것 저런 것을 통해서 온다 할지라도 그것은 자기가 바라보는 이 하나님이 도구로 이용한 것뿐이지 그 사실을 이행자는 하나님인 것을 자기는 알고 내게 모든, 나를 대해서 움직이는 모든 것은 주님이 하시는 것이다. 내가 하는 것은 전부 주님께 가서 다 마쳐지고 거게서 봉착이 된다. 내 하는 일은 주님에게 가서 다 부딪힌다. 내게 와서 부딪힌 것은 전부 주님이 하신 것이다. 요것을 가진 것이 다윗의 생활이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우리에게 뭐가 오든지 주님이 내게 하시는 것인 것을 알고 주님이 내게 하시는 것이니까 나는 거게 대해서 어떻게 대해야 될까? 주님이 내게 하시는 것이니 어떨 때는 회개로 대해야 될 것 있고, 어떨 때는 또 감사로 대해야 될 것 있고, 어떨 때는 반성으로 대할 것 있고, 또 어떤 거는 자기가 참고 견디는 것으로 대할 것 있고, 이럴 때는 하나님이 나를 시험하는 것이니까 이때는 내가 더 의롭게 진리대로 거룩하게 나는 여게 환경에 피동되지 안하고 요게 진리와 영감대로 환경과 모든 주위를 나는 극복하고 이런 것을 다 정복할 수 있는 이런 사람이 돼야 되겠다.

그래서, 자기에게 와서 부딪혀지는 것은 다 자기를 사랑하시고 자기의 구원을 책임지신 주님이 자기에게 하시는 것인 것을 알고, 그러면 그 부딪힘에는 내가 어떻게 하나, 저 부딪힘에는 어떻게 하나, 회개해야 될 것은 회개하고, 감사해야 될 것은 감사해야 되고, 또 참아야 될 것은 참아야 되고, 견딜 것은 견뎌야 되고, 거게서 노력해야 될 것은 노력해야 되고 그저, 나를 사랑하시는 자가 내 구원을 위해서 하는 것이니 권유하는 것도 있고, 가르치는 것도 있고, 시험하는 것도 있고, 징계하는 것도 있고 또 벌하는 것도 있고, 채찍하는 것도 있고, 칭찬하는 것도 있고, 복으로 주는 것도 있으니까 주님이 내게 하는 것이니까 여게 대해서는 내가 어떻게 지금 상대를 해야 되느냐 하는 이것을 가지고 상대했고, 또 자기가 하는 일은 전부 이것은 결말적으로는 주님에게 다 부딪히고야, 부딪히고야 만다.

이러기 때문에 결국은, 주님과 나 사이에 천태 만상의 수많은 종류들이 가운데 있지마는 그것은 하나의 이용물이요, 그거는 하나의 그 가운데에 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쓰시는 그런 것들이요, 단 이 세상은 나하고 주님하고 맞대는 이 생활이라 하는 요것을 발견하고 살았어. 그러기 때문에 그분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만족했고 그분에는 실패가 없었습니다. 그런고로 오늘 우리들이 요것을 가져야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 모든 일을 할 때에 요것을 단단히 기억하고, 오늘 아침에도 어떤 사람들이 예배당 지을 것을 말하기 때문에 예배당 지을 것을 말하면서 ‘돈이 지금 얼마가 더 필요합니다.’ 이렇게 말해서 그래 내가 ‘그러면 필요하면 그뭐 어짜라 말이냐? 그러면 필요한 대로 해서 지어라.’ 이라니까, 그라니까 뭘 입을 떱떱떱 하기 때문에 그래, 내가 ‘그러면 내가 하나님이가? 내가 그라면 내가 줘야 된다 말이가? 내가 뭐 돈이, 내가 돈 한 푼도 없다. 내 돈은 한 푼도 없는 사람인데 내가 어떻게 줄 수가 있노? 하나님께 달라 해 가지고 지어라.’ 내가 그렇게 하고서 말았어.

여러분들 우리들이, 세상에서 만일 지금 부자가 되고 싶습니다. 부자가 되면 뭐 가지고 될랍니까? 빚이 많이 졌으면 빚을 뭐 가지고 갚을랍니까? 갚는 길이 있습니다. 어려운 난제가 있으면 해결을 뭘로 가지고 할 겁니까? 우리에게는 지극히 큰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공로와 영감과 진리 이 셋은 전지 전능의 사랑의 권세를 가진 것입니다. 내가 이와만 연결돼 가지고, 이거와만 내가 연결돼 가지고 그대로만 움직이면 그가 그 능력이, 이 돌로도 이브라함의 자손을 만든다고 하셨는데 그 능력이 나를 붙들고 오만 것 다 합니다. 거지, 거지 교인 한 여나뭇 데려 놓고 앉혀 놔도 이 세 가지 능력이 거지 교인 열과 하나만 하면 그 열 교인은 없는 가운데서 있게 하시고 적은 것을 많게 하시고 작은 것을 크게 하시고 무한히 크고 많은 것도 당장 없애시는 그분과 나와 연결되면은 문제가 뭐이겠습니까? 그런고로 우리는, 나를 대속하신 이 피와 성령과 진리와 내가 연결되고 교인이 연결되어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말씀하시기를 하늘나라의 보고를 열어 주신다고 했지, 이 세상과같이 김가 있는 것 뺏들어 너 이가 줄까, 박가의 것을 뺏들어서 너 김가에게 줄께 그렇게 하지 안했습니다. 하늘 보고를 열고 너희들에게 곳간이 차고 넘치도록 주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이, 우리는 이 세 가지로 중생됐는데 피와 성령과 진리로 우리가 살아났습니다. 우리 영이 살아난 것은 예수님의 대속에 연결이 됐고, 영감에 연결이 됐고 진리에 연결돼 가지고 우리가 살아난 것입니다. 여게 끊어지면 죽습니다. 여게 연결되면 전능자요 만능이요, 여게 연결되면은 대주재요, 나는 주재가 아니지만 그 주재와 연결됐기 때문에.

이런데, 예수 믿는 사람이 이 길을 택하지 안하고 어만 길을 가지고서 날뛰는 그것은, 이것은 다 불신이요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자마다 큰 고통을 당할 것이요 실패를 할 것이오.

그러기 때문에, 내가 아침에도 말했어. ‘교인이 몇이 안 돼서’ `하나라도 좋다.

하나라도. 하나라도 좋다. 하나라도. 이 셋과 연결이 되면 그 하나가 대주재이니까, 엿새 동안에 우주를 창조한 그 능력과 연결이 됐는데 그 하나가 우주만한 것 창조를 하면 못할 것 뭐 있겠노?’ 하나라도 좋고 둘이라도 좋다.’ 이러니까, 이제 목회하는 데에는 교인 숫자 많은 것이 아니라 그저 한 사람이라도, 예수님의 피공로와 영감과 진리로 우리 영은 중생했는데 이 심신이라는 몸 이게 망령을 부려 가지고 안 되는 것이니까 이 심신만, 마음과 몸만 피와 성령과 진리와 중생된 영 넷과 이렇게 연결만 되면 한 사람이 천 사람도 될 수 있고, 만 사람도 될 수 있고, 거지가 온 세상을 다 차지하는 자도 될 수가 있고 이 세상 이게 아니라도, 하나님이 이런 세상을, 엿새 동안에 우주 만들었으니까 엿새면 또 이거 만들 수 있지 않소? 엿새 동안에, 꼭 엿새가 걸려야 만듭니까? 한 시간에 우주를 만들 수도 있고 한 시간에 우주 이런 걸 백 개 천 개 만 개도 만들 수가 있다 말이오. 이분과 우리가 연결됐소.

이런데, 이 비결이 있고 이 계약이 있는데 이거는 믿지 안하고 엉뚱한 짓을 하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에게 노만 끼치지 하나님에게 기쁨을 가지지 못합니다.

이래서, 지금도 저 양산동 기도원에 거기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고 있는데 내가 보니까, 기도하고 있는데 여러분들이 기도하러 가면 뭐 합니까? 하나님의 노를 푸는 일을 하십시오. 노 푸는 게 뭐입니까? 이 지극히 큰 능력을 힘입어서 살라고 하지 안하고 이 능력 버리고 제가 뭐 할라고, 이 피조물 아무것도 없는 것, 썩은 것, 죽은 것 이런 것들에게 비리 붙어 가지고서 그거 가지고서 뭐 해 볼라 하는 이런 어리석은 일을 했던 것을 다 회개해서 하나님의 노를 풀고, 이제는 전적 이 다윗과같이, 다윗의 중심과같이 하나님만 두려워하고 하나님만 믿고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에게 맡겨 놓고 주님만 의지하고 주님에게 예 예로 복종하고 뭐 참고 견디면 다 됩니다. 때가 되면 다 높여 준다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존귀해지는 것은 우리 중심 준비요, 우리 중심 준비는 뭐인가?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내게 오는 것도 하나님이 다 내게 하신다. 내가 하는 것도 하나님께 대해 한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천한 사람이지마는서도 그 사람에게 말한 것이 막바로 하나님에게 말하기 때문에 그 말을 할 수 없어. 모든 사람에게 모든 만물에게 대해서 하는 행동이 그것이 전지 전능자의 주님에게 가서 봉착된다는 이 사실을 깨닫고 요대로 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밖에 없어. 그 사람이 실수가 될 수가 없어.

내게 오는 모든 것이 다 사랑하는 주님이 내게 하는 것인 줄을 알고 거게 대해서 주님이 나한테 이래 하시니까 여게 대해서는 내가 어떻게 움직여야 되겠느냐,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이 그와 같이 하시는 것이니까 내가 이 사랑의 대상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해야 서로 이 사랑을 주고 받고 이거 사랑의 상대가 되고 대상이 되겠느냐 요거 찾아 가지면은 주님이 만족하시요.

이러니까, 이 사람은 뭐하는 사람이냐? 그 사람은 하나님 한 분으로 모든 것을 해결지울라 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뭐라고, 어떻게 나타나셨습니까?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은 피로 나타났고, 영감으로 나타났고, 진리로 나타났어요. 이 셋을 상대하는 게 하나님 상대하는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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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0 중심을 고치기 전에는 좋은 날이 없다/ 사무엘상 16장 6절-7절/ 1986. 4. 11. 금새벽 선지자 2015.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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