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5 19:06
국가 구원의 의인
1980. 1. 7. 교역자회 월야
분문 : 예레미야 5:1-2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 가 이 성을 사하리라 그들이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지라도 실상은 거짓 맹세니라
(교역자 회의)
하나님께서는 의를 이렇게 존귀히 여기시는 것을 우리가 성경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노아 시대에도 그 수많은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그 시대에 있었던 호흡하는 것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전멸하셨으니 하나님의 노가 얼마나 심하셨던 것을 우리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렇게 전 인류가 다 패역했으나 뭐 흰 쌀에 뉘라고도 할 수 없는, 참 몇 억의 몇 사람이 되는 노아의 여덟 식구를 기억하시고 그들을 남겨서 후사를 삼으셨습니다.
여기도 얘루살렘을 하나님이 멸하실려고 하시면서 공의를 행하고 진리를 원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하나님은 그 사람으로 소망을 두시고 참아 기다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새덥치기라는 새가 참새 한 마리를 보고 그것을 삼킬 욕심에는 집중되어 있지마는 제 뒤에 포수가 총을 들고 겨누고 있는 것은 보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들이 그런 무지함에 처하기 쉽습니다.
우리 앞에 있는 이런 것, 저런 것 다 자기 욕망을 가지고 날뛰지마는 더욱 우리 믿는 사람들로서는 참 이 현실에 있어서 이는 세계적 형편으로서나 모든 통계로서나 하나님의 특별하신 보호가 아니면 남한은 유지 안 됩니다. 이는 백에 백이 다 적화될 그 일로 뿐이지 어느 몇 부분이라도 반공 되리라는 그런 타산은 안 나옵니다.
지금은 참 도마 위에 올려놓은 고기와 같은 남한 이 교회들입니다. 불신자들이야 그들도 얼마든지 세뇌 역사가 가능하다고 인정도 하고 또 실상 그러합니다.
그러나 진실된 기독자라고 하면 이는 변화가 안된다고 그렇게 단정을 짓고 있습니다. 말 듣기는 뭐 이렇게 저렇게 말듣는 그런게 있지마는 그건 참 사자굴에 그 다니엘이 살아나오듯이 그렇게 만에 하나, 몇 십만에 하나 신앙을 유지하고 있지 다 교회라 하는 것은 전멸을 당한 것이 공산치하의 백성들입니다.
이런데 우리 남한 이 교회는 아무 모로 봐도 하나님의 특수한 보호가 아니면 유지될 희망성은 전혀 없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기독자라면 이 점을 깨닫지 못하고 어떤 그 소욕이든지 가지고 거게서만 분발한다는 것은 참 어리석은 일이요 어두운 일입니다. 불신자들은 그들은 그들의 방편을 가지고 국방을 하지마는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들의 방편 가지고는 안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남한에 있는 이 기독자라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진리를 행하며, 공의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발견하면 예루살렘을 사하겠다 하신 이 여호와는 지금도 그분이십니다. 변함이 없으십니다.
이런고로 하나님이 이 남한을 보호할만한 참 하나님의 위로와 기쁨과 소망이 되는 한 의인으로 이루어지는 한 의인이든지 이런 의인이 없으면 몇 십명, 몇 백명이 합해서라도 하나님의 노를 멈추고 하나님의 기대가 될 수 있는 이런 믿음의 사람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지금은 우리가 이런 것, 저런 것을 구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노를 풀 수 있고 하나님이 기대하실 수 있는 이런 개인이, 이런 교회가, 이런 운동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평소보다도 긴급한 위기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복음으로 사람을 구원하는 일도 급하지마는 복음 운동을 하는 것이나, 교회를 세우는 것이나, 목회를 하는 것이나, 자신을 살피는 것이나에 대해서 다 긴급한 이 하나님의 노를 풀고 하나님이 이것이면 내가 기대하고 참아 기다리시겠다 할 수 있는 이것이 이루어지도록 우리는 힘써야 할 때가 됐습니다.
뭐 이런 것, 저런 거, 아무리 시비하고 욕심 내 봤자 하나님의 노가 덮고 하나님의 긍휼의 손이 떨어지면 우리는 다 비참한 자 됩니다. 배신을 해도 비참한 자 되고, 뭐 믿음을 배반해도 비참한 자 되고, 또 믿음을 지킨다고 해도 비참한 자 되고, 교회를 부흥시켜도 비참한 자 되고, 무슨 개혁 운동이라고 뭐 사람들이 인정하는 어떤 큰 운동을 일으킨다고 해도 비참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또 여게 대해서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는 이 길이 있는데 이 길은 진리를 행하며, 공의를 구하는 이것으로만 하나님의 노를 풀고 긍휼을 끌어올 수가 있는데 이 길을 번연히 알면서 이 길은 버리고 제 사사로운 생각대로 이 지역, 저 지역으로 피해서 이 민족에게 이 지역에게 임한 재난을 면해 보겠다고 하는 것은 이것은 더욱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망상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들은 이 하나님의 긍휼이 지금 시급합니다. 하나님의 노를 푸는 것이 시급합니다. 지금은 사욕을 부려서 이런 것, 저런거, 그것을 욕망만 하고 낙관할 시기는 아닙니다. 세계 정세는 여러분들은 저보다 훨신 더 밝히 알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또 모든 그 일들을 듣고, 보고, 접할 때에 우리가 말은 아니해도 속에 기억하고 짐작은 되는 것은 아주 주의 재림은 시급합니다.
그런고로 누구의 그 의로 하나님의 노를 풀건지, 몇 사람의 단체의 그 의로 노를 풀 것인지, 하나가 안되면 어떤 단체라도 참 내가 하나님의 노를 풀만한 그 의가 안될지라도 어느 원수에게서라도 하나님의 노를 풀고 긍휼을 이 땅 위에 베풀 수 있는 그런 의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잠꼬대하는 거와 같이 뭐 내 의, 나로 인해서, 나 하는 그런 망상을 다 버리고 어느 교파, 어느 진영, 어느 교회, 어떤 사람이든지 하나님의 노를 풀고 하나님의 긍휼을, 하나님의 그 기대를 드릴 수 있는 이런 의인이 참 필요합니다. 이것이 참 애민족자요, 애국자요, 또 엘리야와 같이 국방의 사람이 되는 이 한 길밖에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이렇게 몰아쳐서 외나무 다리로 이끄시는 것은 하나님이 이것을 요구하시고 요구에 응하면 하나님도 우리도 다 기쁨이 되겠고 여기에 도달치 못하면, 캄보디아나 월남이라도 그 재판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금은 헛되게 조브라운 생각이나 사욕이나 너무 꿈꾸는 그런 잠꼬대 같은 그런 짓을 지는 할 때가 아닙니다.`시기, 질투, 원망, 시비, 야욕, 복술 이런 것을 쓸 때가 아닙니다.
어쨌든지 우리가 하나님의 노를 풀기 위해서 개척도 해야 되겠고, 복음 운동도 해야 되겠고, 목회도 해야 되겠고, 목회도 해야 되겠고, 성경 연구도 해야 되겠고 이제 이것을 두고 이 진노 아래에 있는 이 입장에 있는 우리들로 주님의 노를 풀기 위해서 우리의 구비시키는 모든 우리 생활이 돼야 되지 이것은 생각지 아니하고, 땅의 것으로 사욕 생활 하던 우리들이 오히려 신령한 것으로 사욕 생활을 할려는 이런 데에 머물러서는 안될 것이고 꼭 내 교회, 내 진영, 내 교파, 나 여기에서 하나님의 노를 풀려는 이런 의인이 있어지기를 바라는 이런 어리석은 옛사람의 욕심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버려서 우리가 된 그 다음에 공동체로 하나님의 노를 풀 수 있는 이 한 의인이 내가 못 돼도 누가 되기를 협력하고, 모세의 손을 든 거와 같이 이렇게 해서라도 하나님의 긍휼이 이 땅 위에 떠나지 아니하시도록 이렇게 할 긴급한 시기를 우리가 만난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주님은 우매무지한 저희들에게 몇 번이든지 깨우쳐 주시고, 우리 스스로가 환하게 알게 하시고, 말하게 하시고, 느끼게 하시고, 또 비판하게 이렇게 하시지마는 우리의 마음이 어둡고 어리석어서 잠깐 잠깐으로 지나가기 때문에 생각으로 그치고 마는 주를 너무도 답답하게 하는 저희들입니다.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님이 기뻐 기대하사 참고 기다릴 수 있는 이런 믿음의 사람이 우리 한국 어데서든지 솟아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심히 부족하지마는 저희들도 주님의 노의 이 뭉치를 다만 조그마씩이라도 헐어서 풀고, 주님의 기대에 응해질 수 있는 저희들이 되도록 성령님으로 감동시켜 주시옵소서. 이 시간 저들이 의논하는 모든 일에도 주님께서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