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주 탄생


선지자선교회 1983년 12월 25일 주후

 

본문 : 눅 2 :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기 전에는 세상에는 천국이 없었습니다. 어두움의  세상이요. 또 악령이 왕권을 가지고 통치하는 세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그  계약에 소망을 가지고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사모하면서 그 나라를 동경하는 그런  위치에서 있었던 것이 육체의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께서  도성인신하셔 가지고, 하나님이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하셔 가지고  탄생하실 때에 그때부터 세상에는 천국이 왔습니다. 천국이 왔으나 천국은  세상을 점령하지 못하고 마귀의 그 흑암 나라 속에 한줄기 생명의 빛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말하기를 '빛이 왔으나 어두움이 그 빛을 이해하지  못하더라 세례 요한은 빛이 아니요' 하는 말은, 구약 선지의 종말 선지로서 제일  큰 선지입니다. 여인으로 난 자 중에는 세례 요한보다 더 큰 선지가 없다 그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빛이 아니요 빛에 대해서 증거하러 온  자라고 하고 참 빛이 있으니 곧 하늘에서 내려온, 없는 가운데에서 모든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신 것이라고 증거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세 가지 있을 하러 오셨습니다. 이 세 가지 일을 하신  이것을 하늘 나라에서는 제일 가치있는 일로 높이 평가하고 영광을 돌렸습니다.

하늘나라는, 예수님이 세 가지 일을 하러 세상에 내려오셨고 아버지는 독생자를  보내신 이 일이 하늘나라에서는 제일 큰 영광으로 평가해서 모두 다  찬미했습니다. 하늘나라는 이러한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권세를 높이 평가하는  것보다, 모든 부요를 높이 평가하는 것보다, 또 그의 활동을 높이 평가 하는  것보다 지극히 크신 분이 당신이 지으신 지극히 천해지고 가련해진 이것을  구출하시려고 하나님은 독생자를 보내셨고, 또 제 이위의 하나님은 친히  피조물되어 가지고 땅위에 오신 이 일을 제일 높이 평가했습니다. 우리가 바라  보고 가는 나라는 이러한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그 능력도 있고 지혜도 있고  없는 가운데에서 창조도 하셨고 든 것을 다 보존도 하시고 관리도 하시고 다  양육도 하시는 그 은혜가 지극히 다 넓고 크고 높지마는 하늘에서 천군 천사와  모든 존재들이 영광을 돌리고 찬미한 것은 하나님이 독생자를 죄인들 위해서  허락해 주신 것과 또 하나님이 죄인들 위하여 창조주가 피조물되기까지 낮아져  가지고 오신 이것을 가장 높이 평가했습니다.

 여기에서 그 나라는 어떠한 나라라는 것을 우리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그 나라에 가서 살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그 나라에 가서 살 사람들이니  그 나라에저 제일 부끄러운 일이 무엇이며, 그 나라에서 멸시하고 천대하는 일이  어떤 것이며, 그 나라에서 존대하고 환영하고 영광을 돌리는 그 일은 무슨  일인가 하는 것을 우리가 여기에서 알 수 있습니다. 하늘나라의 그 본질과  본성과 모든 존재들의 그 비판과 평가가 어떠하다는 것을 우리가 여기에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기뻐하심이라 하는 것은 하늘나라의  천군 천사가 기뻐함이 아니고 하나님이 기뻐하심을 말합니다. 하늘나라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어떤 것을 기뻐하시는가? 하나님이 기뻐하신 것은  당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서 이 흑암 세상을 광명으로, 모든 영원한 고통에서  평강으로, 절망에서 소망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핍절한 그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풍부로 이렇게 구원해 내는 이 일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자, 하나님은 이것을 기뻐하시는데 이  기뻐하시는 이 구원에 참예한 자들은, 이 구원을 다 환영해서 받은 사람들은  인간들 가운데에서 영영한 평강을 소유한 사람들이다. 영원한 평화를 소유한  사람들 이더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구원을 받은 자들은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평화가 이루어지고,  피조물과 피조물 사이에 평화가 이루어지고, 이 종류와 저 종류 사이에 영영한  평화가 이루어지는 이것이 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구원을 입은 사람들의 그  행복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이 구원을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땅 위에서 무엇보다도 이 평화의 행복, 이 평화는 영원  평화를 가르쳐 말하는 것이니 모든 생명과 지능을 구비한 결과의 맺어지는 그  꽃이, 열매가 평화입니다. 인간이 아무데서나 자유할 수 있고 원수없는 그  세계에서 자유와 평화를 가지는 데에는 이 구원을 입는,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그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또 우리가 지금 멀리서  바라보느 이 자존자 하나님을 우리가 기쁘시게 할라고 하면 이분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다른 길이 없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가진 소유를 다 그분에게 바친다  할지라도 그것이 이미 주의 것이요 또 주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또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위해서 봉사를 하고 희생을 하고 무엇을 한다고 해도  그것으로서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예수님이  사람 되어 땅에 오셔 가지고서 이 세 가지 일을 위해서 당신은 완전히 제물이  되심 같이 우리들도 이 세 가지 종류의 일을 위해서 양이 적든지 많든지  우리에게 있는 대로 이 세 가지 일을 위해서 제물이 되어짐으로서 그 결과가  받는 사람들에게 평화의 결과를 맺게 하는 이거 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은 이 일 외에 다른 일이 없습니다.

 또 하늘나라에서 영광스럽게 존귀 하게 여겨 모든 하늘처 존재들이 다 찬성하고  칭찬하고 기뻐 환영하고 축하하는, 하늘에 있는 모든 존재들에게 영광이라  영광이라 하는 그 영광은 역연 하나님이 사람되어 이 세 가지 위해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 지극히 천한 인간의 그 모든 천대까지 희생하는 이것을 그  나라에서는 영광으로 평가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도 여게서 알 수 있고, 또 하늘나라에 하늘과 땅의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 그 나라에서 가치로 평가하는 그것도 어떤 것이라 하는 것을  우리가 짐작할 수가 있고, 또 인간 이 자체가 평화의 행복을 누리는 것도 어떻게  한다는 그 세 가지를 여기에서 우리는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참 요새 그 불우의 이웃을 돕는다는 그것으로서 어떤 사람은 보니까  그 회사에서는 뭐 이억도 내고 이억 몇천만원도 내고, 그날 잠깐 제가 통계를  보니까 삼십 몇억인가 불우의 이웃돕는 그것이 다 헌금 돼 나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대단히 참 귀한 일입니다. 그런 일이 다 예수님의 이 성탄을  축하하는 데에서 깨달은 성도들이 적은 힘이나마 나타내는 그 외형을 보고서  시발된 것이 세계의 시발입니다. 적십자라든지 구호 기관이라든지 또 그럴게  아무런 무료 치료를 하는 봉사라든지 어떤 그 불구자 낙오자 아주 쓰지 못할  그런 초범 재범 몇범이나 그 형무소에 갔다가 온 그런 모든 희망없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구출하는 그 구출의 정신과 그 이념과 방편들은 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 탄생하신 이 일로 인해서 거기에서 움터 가지고 비추어 나온  일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꺼풀이 없는 알맹이가 없고 알맹이 없는 꺼풀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껍지가 잘 생겨도 알이 없으면 소용없고, 또 껍지 없는  알은 없습니다. 먼저 껍지가 생기고 그 다음에 차차 알이 생겨지는 것이요.

껍지는 잘 생겨도 알이 없으면 그것은 또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또 우리는 그  속에 알맹이 알맹이라고 생각을 하고 말을 하면서 우리가 그 겉은, 껍데기는  소용이 없다 그렇게 생각을 가지기 쉬운데, 모든 자연 식물들이나 동물들이나 그  모든 것을 보면 다 겉이 생겨 가지고 속이 생겼지 속부터 먼저 생긴 그런 것은  없습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곤충이나 식물이나 모든 것은 다 그러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사람들이 무슨 질병으로 고난을 당하든지 무슨 심령의  정신적 고난을 당하든지 경제적 고난을 당하든지 고난 당하는 그 일을 우리가  거기에서 그저 힘있는 대로 도와서 구원하려는 이것은 가장 외부적인 일이요  이거 꺼풀이 되겠습니다. 껍데기가 되겠습니다.

 또, 다른 사람이 이런 환경으로 또 어떤 사람으로 자기의 전공하던 전공으로  자기가 욕망하던 그 모든 출세로, 이런 것 저런 것으로서 자기는 희망을  잊어버리고 절망 가운데에 참 낙망 가운데에 있는 그런 사람들을 우리가 보고  구출하는 그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 것을 보고 우리가 못 본 체하고 그만  그래 지난다고 하면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지를 아니하십니다.

우리는 그럴 때에 우리 힘이 미치는 대로 그 성질에 따라서 이런 것을 내가  희생해서 그이에게 다소나마 소망을 주고 희망을 주고 그에게 삶의 그 희망을  가지도록 그렇게 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또 사람들이 참 경제의 궁핍도 있고 또  인정의 궁핍도 있고 사랑의 궁핍도 있고 위로의 궁핍도 있고 자기가 활동할래야  활동의 이웃의 아무런 응원이 없는 궁핍도 있고 궁핍도 수많은 종류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 궁끝당한 사람을 우리가 만나면 우리는 내 몰라라 하고 지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럴때에 우리는 그 사람이 어떤 종류로서의 그 궁핍을 당하고  있든지 내 힘이 미치는 데 까지 해서 그 사람을 그 궁핍에서 다소라도 도울 수  있는 길이 있으면 우리는 자기의 희생을 애끼지 않고 돕는 그런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귀한 일이로되 어디까지나 다 외부요, 외부요 꺼풀입니다.

이것은 다 외모요 꺼풀이요 속에 알맹이는 아닌 것입니다. 아무리 내가 고난  당하는 사람에게 내 모든 것을 희생해서 그에게 만족을 해 준다 할지라도 그것은  한정이 있어 반드시 다시 고난으로 돌아갈 것이요, 절망이 있는 자를 내가 어떤  희생을 해서 그에게 일시 기뻐하는 소망을 준다 한지라도 반드시 다시는  절망으로 돌아가고야 말 것이요, 또 그이의 궁핍을 내가 무엇으로 해서 면제해  준다고, 도와 준다고 할지라도 반다시 그 궁핍은 얼마 안 가서 다시 내가 구원해  수 없는 궁핍으로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런 외모적인 이런 그리스도의 이 양태의 이 세 가지 구원의  이 방편과 종류를 우리는 보고 그것을 등한히 하고 그렇게 못 본 듯이 냉정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럴 때 참 동정하는 사람이 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에는 우리가 그것만 하면 되는 줄로 알았지마는 예수님의 이 도를  들으므로 말미암아 그것은 다 결과요, 원인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알았습니다.

그러면 그 결과를 우리가 아무리 해결해 준다고 해도 원인을 우리가 그것을  해결해 주지 못하고 뿌리뽑아 주지 못한다고 하면 그 결과의 돋아 오르는  순애기를 자른다 할지라도 연달아서 그 밑에서 다시 그 고난의 절망의 궁핍의  새움은 돋아 오를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안에 원인은 무엇인가? 원인은, 고난의  원인은 두말할 것 없이 자기의 언행 심사의 모든 소행이 다 잘못된 죄 때문인  것입니다. 고난의 원인은 하나님의 그 절대적인 그 법칙에 이탈된 그것이 죄가  돼 가지고서 죄 되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의 율법의 세력이 그 뒤를 눌루고 있기  때문에 그는 아무도 피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망아 네 쏘는 것이 무엇이뇨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사람이 어떤 고난을 당하든지 우선  외모적으로 긴급하게 그 외모에 있는 그 고난을 우리 힘 있는 데까지 거기에서  구출하도록 노력을 하는 동시에 연달아서 그 기회를 놓지 말고 그 사람을 그  원인되는 죄에서 벗어나게 하는 그 일을 우리가 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그 일을  즉시, 외모를 돕는 그 일이 끝나기 전에, 그 힘이 끝나기 전에, 그 운동이 그  효력이 끝나기 전에 그 원인인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그 길을 그에게 열어 주지  못한다면 우리의 한 일도 헛일이요 그도 우리는 결과적으로는 구원하지 못하는  일이 되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원인인 죄에서 그 사람이 벗어나게 하는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죄는 뭐이냐? 죄는 간단하게 말해서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이 죄요  자기 양심의 법을 어긴 것이 죄기 때문에 그 사람이 무엇인가 자기가 아는  대로의, 잘못, 자기가 몰라도 하나님의 법도에 비추어서 잘못된 그 잘못된 것을  그 사람에게 알려서, 외모의 고난으로 이웃의 도움을 인해서 잠깐 숨쉬는 동안에  그 원인되는 잘못을 찾아 자지고 거기에서 마음 아피 회개하고 돌아설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만들어야 우리는 되겠습니다. 또 사람이 낙망이나 절망이나 되는  그것은, 돈으로 낙망된 사람에게 돈을 주고 출세에 낙망한 사람에게 출세를  도와주고 자기의 뭐 목적 달성에 낙망 된 사람을 자기 힘대로 도와 준다  할지라도 인간은 그것이 절대자이신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소망을  인간이 주면 소망 끝에 연달아서 낙망될 원인이 닥쳐옵니다. 그것을 아무도 막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이 지으실 때부터 하나님에게 지음받은  것이 하나님을 바라봄으로만 그 희망은 영영하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지이  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가진 사람은 그 소망이 그칠 날이 없고  영영합니다. 그러기에, 그의 소망의 원인인 하나님을 모르고 살기 때문에  거기에서 절망 낙망 그 모든 것이 결과적으로 맺어진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에게 하나님을 알려 주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외모를 돕지 안하고 하나님만  알려 준다 하면은 그것이 그이에게 효력을 내지 못할 것이나 이 외모의 구원을  연달아서 그 근원이 되는 그 구원을 우리가 신속히 손을 써야만 할 것입니다. 또  사람이 그 궁핍의 원인은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실 때에 하나님의 법도에  순종하는 그 순종을 통해서만 자기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얻어지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지어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그 순종이라는 그 순종을  통하여서만 자기 영육에 필요한 것을 얻도록 되어 가지고 있는 것이 인생 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그 사람의 이런 저런것의 궁핍은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져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다시 말하면 인간이 의를 버렸기  때문에 의가 없는 그것으로서 궁핍이 온 것이니까 그이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그 모든 풍부의 유일한 방법인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의를 손쉽게 그이에게  알려서 잡도록 해 줘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각양 좋은 상급과 온전한 은혜는  빛들의 아버지께로서만 말미암는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자기의, 자기 안에 빛이 있는 자기  양심대로 하는 거기에서 이 사망 안에 있는 그 모든 것을 자기가 붙들어 가질  수가 있고, 하나님의 이 광명의 법에 연결되어서 거기에 피동될 때에 영영한  것을 무한한 것을 잡고서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궁핍의 원인은 하나님에게 피동되지 아니하고 자율대로  사욕대로 주관대로 움직이는 그것이 궁핍의 원인이 된 것이니 모든 부요의  원인인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이 순종하는 믿음 이것을 그이에게 알려서  연결시켜 주는 이 일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껍데기 안에 알맹이, 고난의 원인인 죄를, 또 그의 절망의  원인인 하나님이 없는 무신론을, 또 그의 궁핍의 원인인 하나님에게 순종이 없는  그것을 우리가 해 주는 것이 그에게 해결해 주는 것이지마는 그것은 우리는  하지를 못합니다. 그것은 다만 하나님과 인간과의 지성한 법에서 정죄받은 이  죄를 아무도 해결 못합니다. 우리가 인인 관계의 인간 입법의 이떤것은 다소 할  수 있지마는 그것은 껍데기요 하나님의 영영하신 입법이 있기 때문에 아무도  해결 못합니다. 이 해결의 원인은 이제 오늘 봉독한 말씀대로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예수그리스도 이분으로만 해결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인간의 고난의 원인인 그 죄를 해결하는 것도 예수님의 이  대속으로만 해결이 됩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끊겨져서 절망 가운데 있는 이것도  하나님을 잡으면 되지마는 잡을 권리가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으로만  하나님과 화친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또 우리의 궁핍의 해결이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것이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지마는 우리는 하나님에게 순종할 그런  권리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대행의 이 칭의를 입고야만 비로소 하나님에게  속해서 그에게 피동될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길이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안하면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없다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길이요 우리의 생명이요 우리의 아는 참된  이치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근본이신 예수그리스도를 그이의 고난의 대속주로, 예수  그리스도를 그 사람의 영영한 소망의 주로, 예수그리스도를 그의 영원한 부요로  안겨서 예수그리스도를 그의 구주로 영접하여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의지하고  바라볼 때에 우리는 그 사람을 완전히 구출한 일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껍데기 그것을 우리가 힘써 하지 안하면  알맹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껍지없는 알맹이가 이루어지지를 않습니다. 껍지  없으면 상대방에게 그 알맹이를 줄 수가 없고 그가 받지를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외부적인 이 고난의 해결과 절망의 해결과 모든 궁핍의 해결을 우리의  힘 있는 대로 해서 도와 주면서 그 도와 주는 그것으로 다 됐다 생각 하면 안  됩니다. 그 일을 하면서 그 일과 동시에 우리는 그에게 있는, 죄. 하나님과  끊겨진 것, 제 마음대로 피동되지 안하고 독단으로 행동한 것 그것을 그들에게  알려서 그것의 문제의 해결을 홀로 해결할라고 오신 도성인신하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그들에게 알려 줘 가지고서 예수님을 그의 구주로  영접하도록 해서 그가 예수님으로 자기의 전부를 삼아, 고난의 해결의 전부로  절망의 해결의 전부로 궁핍의 해결의 전부로 삼아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평강과 영영한 소망과 영영한 그 풍부를 믿음으로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했을 때에 우리는 완전히 구원하는 일이 되겠습니다. 이것은 다만 구원하는  방편을 말했습니다. 방편은 이런 방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방편을 쓰는 데에는 그저 아무 조화가 없습니다. 이 방편을  쓰는 데에는 수단도 지혜도 민첩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여기에는 내게 있는  것을 희생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기를 희생하는 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자기를 희생해서 이렇게 구출하는 이 일을 할 때에  예수님은 있는 것 다 희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성 지공법에서 그를  그대로 두지 아니하셨고 아버지 우편에 올리셨고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그에게  다 줬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뒤에 그것을 경험한 모든 사람들은, 성령의 사람은 말하기를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 그렇게도 표현을 했고, 있는 것을 흩어 가난한  자에게 주었기 때문에 그의 의가 영영하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그 일을 다시  땅위에 있는 동안에 다시 하게 하고 또 할 때에 또 다시 하게 해서 자본을 새  자본 새 자본 주기 때문에 심은 자에게 씨와 양식을 주어서 의의 열매가 더하게  하신다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주의 기뻐하심이요  하늘나라에서 높이 평가하는 일이요 또 우리가 하는 일이요 또 우리가  하나님에게 모든 충만을 받는 유일한 방편인 것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 가지 일을 위해서 그저 자기 힘닫는 대로, 은혜  주는 대로, 어떤 사람은 자기의 소유의 몇부분을 들여서 이 일에 희생하고. 어떤  사람은 자거의 가진 시간 중에 몇부분을 들여서 희생하고, 어떤 사람은 자기의  지위나 권세나 영광을 자기가 얼마든지 누리고 부릴 수 있지마는 이 일을 위해서  자기가 없는 자와같이, 높은 자가 낮은 자와같이 희생하여 이 일에 투자하는  일을 하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자기의 일생을 이 일을 위해서  바쳐서 그렇게 희생하여 사람의 절망에서 소망으로 구출하고 고난에서 평강으로  궁핍에서 부요로 이렇게 하나님 없는 자에게 하나님을 모셔 가짐으로서 하나님은  전부의 전부요, 이래서 하나님 한 분으로 전부의 전부를 삼고 하나님이 주신 이  법칙을 모든 것의 옳은 것을 이루는 유일한 법칙으로 삼아서 사는 사람들이 되게  하는 여기에 자기의 일생을 바치는 사람도, 또 자기의 소유의 몇부분을 바치는  사람도, 다 바치는 사람도, 근근 생활하고 나머지기 다 바치는 사람도, 시간을  다 바치는 사람도, 정력을 다 바치는 사람도, 자기의 구재를 기술을 활동을  자기의 지위나 권세를 다 바치는 사람도,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자기가 참  한없는 영광의 지위의 권세를 가지지마는 자기는 권세 가짐으로 권세 한 번도 못  써보고 그 권세 때문에 일생 동안 종노릇만 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고  그 권세 때문에 종 노릇 종노릇 함으로써 비로소 그 권세의 희생으로서  제삼자에게 녹아지는 소금이 돼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이렇게 절망에서 소망으로  고난에서 평강으로 궁핍에서 부요로 이렇게 옮겨지는 그런 구원을 이루는 것이  모두다 이 구속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널리 먼데 하지 못할지라도 자기의 이웃에서, 자기  이웃에 갈 힘 없는 사람은 자기 집에서 자기 가족들에게, 자기 가족들에게도  얼마든지 지금 고난당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고난은 심적 고난 육적 고난  경제적 고난 모든 감정적 고난 그런 정서적 고난 분노적 고난 뭐 고난도 그저  우리 이웃에 고난 당한 사람이 많고, 이리 저리 가서 날마다 낙망 절망 된  사람들이 많고, 모든 일이 그이에게 없어서 '참, 나는 부자라 배부르고 따시게  입는다' 하지마는 자세히 볼 때에는 그 사람이 벌거벗은 사람이요 아무것도 없고  먹을 것이 없어서 참 심히 굶주려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면으로, 육으로 힘으로 정신으로 물질로 모든 것이 있으니까 자기 옆에  이웃사람에게, 자기 집안에 있는 식구들에게 이 세 가지를, 자기 이웃에게 이 세  가지를, 자기의 믿음의 식구들에게 이 세 가지를, 자기 힘이 뻗치는 대로,  자기의 무대가 넓으면 넓은 대로 이 세 가지를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는 이 일을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피를 기념하는 것이요 예수님이 지워  주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 이 희생을 가르쳐서 십자가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기독자는 정당 방위에서 살 수가 없습니다. 옳고 그른 바른  것을 따지는 데에서 우리는 살 수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옳고 그른 것을 정당하게 따지는 정당 방위에서 우리는 그분이 상대해  줬다면 우리는 벌써 지옥에서 영원한 멸망을 받아야 하는 우리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구원의 도를 입은 우리이기 때문에 옳아도 옳은 줄로 알면  잘못입니다. 옳아도 그른 자가 되고, 잘했어도 죄인이 되고, 돕고도 해친 자로  되어지는 것이 그것이 필연한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이 십자가의 생의  법칙으로 받은 우리들입니다.

 그런고로, 주일학교 반사들도 이 일을 여러분들이 깊이 기도하고 예수님의 그  구속을 입은 그것을 깊이 깊이 느끼고 새겨서 거기에서 나온 힘이면은 피곤치  않을 것입니다. 이래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 피는 참된 음료요 내 살은 참된  양식이라 내 피를 마시고 내 살을 먹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나로 인하여 살리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의 피와 살을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저 높은  하늘나라에서부터 우리 위해서 그분이 이렇게 오신 그 모든 순서의 그 노정  노정에서 마지막에 십자가상에서 끝을 마치신 거기까지의 그 모든, 주님이 날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그 노정 노정을 생각하면서 절정까지 생각하는 거기에서  우리에게 깨달음도 오고 각오도 오고 결심도 오고 우리에게는 용기도 나오고,  어떻게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피곤해도 우리는 거기에서 참 젊은 독수리처럼  솟아날 수 있습니다. 억울함에 애매함에 첩첩에 쌓여서 깊은 함정 가운데에  빠졌을지라도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을 때에 우리는 거기에서 만족하고  감사하면서 그 원수 위해서 자기가 자기 것을 아직 까지 다하지 못한 거기에  대해서 바울은 빚진 자라 말하고 피곤치 안했고 거기에서 새 힘을 얻어서  독수리처럼 올라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고로, 주일학교 반사 선생님들이든지 중간반 반사 선생님들이든지 또 남녀  권찰님들이라든지 집사님들 장로님들 목사님들, 각 분야에서 주의 복음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 결코 돈 보고 하지 맙시다. 사람 보고 하지 맙시다. 인간의  이목 보고 흔들리지 맙시다. 언제나 흔들리지 안하고 우리에게 계속하고 계시는  예수님의 피와 살을 보면서 우리가 일해야 우리는 피곤치 안할 우리입니다.

우리는 피곤치 않고 고단치 않고 권태나지 않고 불만 불평이 우리에게 가까이  오지를 못할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는 작정 합시다. 우리 세 가지 꺼풀을 우리는 본둥 만둥 이렇게 냉정스럽게  지내왔던 것을 우리가 회개하면서 앞으로는 그렇게 무정한 사람이 되지 맙시다.

냉정한 사람이 되지 말고 동정하는 사람이 됩시다. 우리는 희생하다가 피곤치  맙시다. 주님을 바라보면서, 내가 아무리 해도 주님이 나한테 한 것 만치는  못했을 것이요. 아무리 해도 하늘나라에 가서 보면은 너무했다 싶을 것 없을  것입니다. 못한 것이 원통하지 너무 지나치게 했다고 그렇게 후회될 일 없을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주님의 피를 생각하므로서 거기에서 일어나는 힘, 거기에서  나오는 결심, 거기에서 각오, 거기에서 나오는 참고 견디는 것으로서 우리는  양식 삼아서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고 피곤치 않는 생활을 계속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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