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27 14:40
신인접선의 긍정과 부정
1982. 4. 24. 토새
본문 : 눅 1:34-38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구원의 시발이 예수님이신데 하나님 편에서 시발된 구원이 인간에게 와서 시발될 때에 하나님과 사람이 접선되는 신인 결합에서 이 구원이 시발이 됐습니다. 처음에도 이러하고 그 후에도 이러하고 영원히 이러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우리의 모든 구원은 하나님과 그 사람과 접선되는 이것을 통해서 구원이 이루어지지 이 일 없이는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때에 접선된 최초의 종자적인 접선이 하나님을 긍정하느냐 자기를 긍정하느냐, 하나님을 부인하느냐 자기를 부인하느냐. 부인하는 것은 배척을 당하고 긍정하는 것을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첫째 아담은 하나님을 부정하고 자기를 긍정하여 그 긍정에 따라 사망을 일으켰고, 둘째 아담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자기를 부정하고 하나님에게 따름으로 생명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이 구원을 하시는 이 구원이 올 때에는 반드시 신인 접선으로 이 구원이 이루어지는데, 거게는 긍정과 부정, 긍정과 부정 순종과 거역 이 순서를 통과해서 이루어지는데 왜 사람들이, 하나님을 긍정하고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를 배척하고 하나님을 따르면 구원이 되어지는데 왜 이 일을 하지 않는가 않는 이유는 하나님과 사람과의 접선되는 이 접선이 이제까지에 있는 역사와 반대되기 때문에, 모든 세상과 이치가 맞지 아니하고 세상 이치에 맞지 않는 비세상적이요 비인간 지식적이요 비통계적이요 비공식적이라, 이러기 때문에 사람들은 부정하게 되는 이유 하나가 이것입니다.
이런 순서를 밟게 되는 것은, 모든 인간에게 있는 것이 첫째 아담이 하나님 부정 자기 인정으로 자기를 따른 이 종자가 뻗어 나왔고, 장성한 사망케 한 모든 이치요 또 사망하는 이치이기 때문에 죽은 지식이요 죽이는 지식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와 반대인 산 지식이요 산 행동이기 때문에 대립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대립으로 오지 않으면 다 사망의 것인데 사망에서 구출하는 생명의 것이기 때문에 사망의 것과 대립되는 것은 필연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괴롭히려고 하필 이런 방편을 쓰는 게 아니라 이는, 죽은 것을 살리는 데는 죽는 법칙 죽은 법칙과 산 법칙과 살리는 법칙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 다른 게 아니면 안 됩니다.
이러기에 사람을 이렇게 살리러 오는, 기본구원에 속한 것은 인간의 주관 행동이 상관없이 객관의 단독 역사로 왔기 때문에 지장 없이 다 이루어졌지만 일단 기본구원을 이룬 후에는 기본구원으로 말미암아 유한한 자유지만 자유를 가진 주체성이 있고 그 개체성이 살아났기 때문에, 하나님이 살려 놓은 그 개체성 그 주체성,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 된 영 그것을 짐승처럼, 기계처럼 무시해서 그렇게 하나님의 단독으로 할 수 없고 그 자유성을 살려서 구출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강제는 하지 못하고 자기 주관이, 자기 주관은 사망과 사망의 지식만 가득찼지 산 것과 산 지식이 없기 때문에, 영은 살았지만 육체적으로는. 이러기 때문에 이것이 부정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이 이치가 저들에게 부정이 되는 것이 이것이 필연한 일인 것입니다. 그는 "빛이 비취되 어두움이 빛을 알지 못하더라" 요한복음 1장에 말씀하신 거와 꼭 같은 말씀입니다.
이러니까 성령과 중생 된 영이 합작해서 그 심신에게 타이릅니다. 하나님이 성령과 중생 된 영,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된 것을 자꾸 증거 해 줍니다. 그것이 타이른다 말이오. 타이른다는 말입니다. 이러고 사람을 통해서도 이렇게 타이릅니다.
그러나 자기 주관에는 언제나 대립이 되어 가지고 있는, 이러기 때문에 자기를 부정하지 않고는, 세상을 부정하지 않고는, 배반치 않고는 긍정도 할 수 없고 따를 수도 없는 일입니다.
이럴 때에 마리아가 부정하고 배척했습니다. 부정하고 배척할 때에는 자기를 긍정하고, 다시 말하면 세상을 긍정하고 세상을 따르기 때문에 배척한 것입니다.
그럴 때에 가브리엘 천사가 부정하고 배척하는 그것을 돌이키려고 할 때에 그 쓴 방편이 엘리사벳이 잉태한 그 증거를 댔습니다. 보라 이것도 이렇게 부정의 일이요 배척을 해야 될 일인데, 네게 당한 거와 꼭 같은 일인데, 성질은 다르고 종자는 다르지만 그 방편은 같은 방편인데 지금 아이가 잉태해서 6개월이 됐다 하는 그 증거를 대 줄 때에 마리아의 주관적 지식, 세상적 지식 이것은 그 증거로 인하여서 쫓겨났고 죽었고 "주의 계집종이오니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는 그 긍정과 복종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도 이 구원이 올 때에는 반드시 부정적으로 오고 배척해야 될 것으로 올 때에, 우리에게는 이미 구원이 되어 있는 요소가 있기 때문에 우리 요소에는 전적 부정, 반대하는 것만이 있지 아니하고 새사람으로 구원이 되어 있는 이 양만치는, 이 요소만치는 인간 이치에, 이 세상 이치에 맞지 않는 부정적으로 오는 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이치를 긍정하고 환영할 수 있는 그런 요소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기에 처음 믿을 때보다 점점 가까워지고, 하나님을 긍정하고 영접 순종하는 이 일을 돕는 요소가 자기 속에 차차 이것이 점점 많아져 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마리아에게 가브엘이 이 잘못된 부정을 살리고 배척을 살리고, 저가 인정하는 그 인정을 이것을 죽이고 또 따르는 이것을 죽여 없애려 하는 그 역사를 가브리엘이 할 때에 증거를 가지고 이 역사를 했습니다. 이 역사를 할 때에 가브리엘은 성공을 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에게도 천사 혹은 하나님의 종들이 설교하는 그 설교가 다 가브리엘 천사가 말한 거와 같은 그런 역사인 것입니다. 또 성경 말씀이 선지 사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이 말씀이 다 증거 하는, 가브리엘이 증거 한 거와 꼭 같은 그런 증거의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현실 현실마다 하나님과 나와의 접선이 되는 데에서 구원이 이루어지는데, 이 접선의 초기는 하나님과 나와는 대립적이요 비합리적이요 비세상적이요 비통계적이기 때문에 반드시 부정이 나오고 배척이 나오게 되는 것이 필연한 일이니 그럴 때마다 가브리엘의 증거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우리는 증거를 받아야 됩니다.
성경에 이렇게 말씀했다, 성경에 말씀하신 그 말씀을 자기가 자꾸 되새깁니다.
자기 현실에서 진리가 인도대로 따르라고 할 때에 따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내 주관이요 내 지식이요 이 세상인데, 그럴 때에 따르지 못하게 하는 이놈은 내 원수요 나를 죽이는 첫째 아담에게 속한 것이요, 따를 수 없는 부정적으로 오는 것은 곧 나의 구주요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진리이기 때문에, 내 현실에서 하나님이 나를 접선하려고 할 때에 내가 부정되는 그는 내 구주요 나의 구원이요, 긍정하고 하나님을 부정하게 하는 내 주관이라는 이것은 반드시 내 원수요 나를 멸망시키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이것을 꺾어서 나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믿어 복종케 하는 이 역사는 가브리엘 증거밖에 없었으니, 모든 천사들, 하나님의 천사 선지 사도가 우리에게 증거해 주신 이 신구약 성경 말씀 외에는 이것을 부인케 하는 방편이 없으니, 신구약 성경, 천사가 우리에게 전해 준 신구약 성경 말씀, 천사는 하나님 부리는 자가 천사인데, 하나님의 사자가 천사인데, 이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는 천사였지만 우리에게는 선지자들도 다 천사요 또 사도들도 천사입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하나님의 심부름으로 하나님 말씀을 우리에게 증거 해 주는 것이요 또 나를 신앙 지도하는 사람, 여러분들에게 내가 지금 설교하는 이 설교는 설교하는 내가 천사입니다, 이 면에 있어서는.
이러니까 천사의 증거 하는 이 증거를 우리는 자꾸 이렇게 접합니다. 증거를 접하면 내가 부정했던 하나님과 하나님의 이치를 긍정을 하게 되고 내 주관과 이 첫째 아담에게 속한, 옛사람에게 속한 것은 부정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그 천사의 말한 바 엘리사벳이, 이것을 초월해서 초자연의 역사로 이루어진 엘리사벳의 그 증거를 받은 것처럼 이제는 자기와 자기 아닌 다른 모든 사람들이 과거의 역사에 있는 모든 신앙 선배들에게 하나님이 인간의 이치에 맞지 않게 온 그 모든 일이 부정한 자에게는 성사가 안 됐고 긍정하는 자에게는, 인간의 이치에 맞지 않게 오는 그 일을 자기를 부인하고 오는 그 하나님과 하나님의 이치를 인정하고 따랐을 때에는 역사에 없었던 초자연의 역사들이 다 이루어진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또 자꾸 새겨야 됩니다.
아, 성경 말씀, 또 어떤 설교 말씀, 또 누구에게도, 엘리야에게도 이렇게 됐다, 다니엘에게도 이렇게 되었다, 마리아에게도 이렇게 되었다, 모세에게도 이렇게 되었다, 출애굽에도 이렇게 되었다. 된 그런 모든 증거를 자꾸 이렇게 하나님이 자기에게 끌어다 주는 것이니까, 출애굽에 된 그 일도 성경에 기록한 것은 우리는 계속 우리에게 이렇다는 것을 증거 해 주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은.
이러니까 이렇게 하나님의 사자들이 증거 해 주는, 또 하나님의 사자들이 증거 해 준 대로 이루어진 역사 사실, 초자연적으로 이루어진 역사 사실,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살아났다, 썩어서 냄새나는 자가 살아났다,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돌을 굴러 놓으면 네가 오빠가 살아나는 것을 보리라, 굴러 놓으니까 살아났습니다.
이제 이런 것을 자꾸 우리는 끌어들일 때에, 끌어들여서, 이 증거를 자꾸 끌어들여 가지고 이 증거를 자기가 접할 때에 그때에 죽어지는 것이 뭐이 죽어집니까 죽어지는 것이 뭐이 죽어지지요. ○○○목사님, 뭐이 죽어집니까. 자기 주관이 죽어집니다. 하나님을 부정하던 그놈이 죽습니다. 또 하나님의 이치를 부정하던 이치, 세상 이치 그게 꺾어지고 죽어집니다. 자꾸 그럴 때에 비로소 하나님을 인정하고 따르려고 할 때에, 주의 계집종이오니 주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이렇게 긍정을 받을 때 아, 하나님이 날 지었고 내가 하나님에게 구속을 받았고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의 소유라, 그분의 뜻대로 하려 해야 되지 내 주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종이라는 이것을 깨닫게 되고 긍정하게 됩니다.
그럴 때에 그 이기는 방편으로써 하나님을 긍정하고 영접하는 데는 이 방편 외에는 없습니다.
또 둘째로 왜 이렇게 마리아가 배척했더냐 마리아를 말하는 것은 마리아는 우리의 첫 열매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여기, 구원의 종자가 여기서부터 시발됐습니다. 구약성경도 여기 와서 들어 붙었고 신약성경도 여기 들어 붙었고 구약성도들도 이 일이 아니면 그들이 구원이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서 구원 이루어진 것을 히브리 11장에 끝절에 말씀해 놨습니다.
왜 둘째는 이렇게 부정하고 배척하게 됐더냐. 영접해서, 이치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영접을 하면 영접된 그 결과는, 사람이 살려고 사는 것이고 잘되려고 사는 것이고 잘되어지고 좋아지기를 원하는데, 영접한 그 결과는 돌무더기 속에서 돌조산으로 사형 받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말이오. 사형 받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어. 이 결과는 이렇게 멸망하는 결과 외에는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배척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로 제 생각대로 돌조산 속에 묻혀진 것은 아니고 오히려 만인의 구주가, 전인류의 중보자 구주가 났고, 참 마리아는 좋은 점이 있으니까 마귀라는 놈은 그렇게 해서 천주교에서는 마리아가 예수님보다 훨씬 위에 있습니다. 그거는 잘못 섬겨 그렇지만 실상은 마리아의 지위가 큽니다. 여인으로 난 자로서, 여인으로서는 마리아보다 더 큰 높은 지위를 가진 자가 영원히 없습니다.
이러니까 돌무더기 속에 매장되리라고 생각됐던 그 모든 주관이나 이 세상 역사의 모든 통계나 이스라엘의 그 모든 일들은 그것이 그렇게 말했지만 그것도 거짓말은 아닙니다. 돌무더기에 죽는 것이 맞지만 하나님 말씀은 그것을 초월합니다. 초월한, 그게 아닌 딴 세계의 것이 있기 때문에, 그 세계의 것이 이 세계의 것보다 강하기 때문에 누르고 꺾어서 기어코 라도 그 세계의 것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마리아는 돌무더기 속에 매장되는 것이 아니라 이로 인해서 마리아는 여인 중에 제일 존귀한 여인의 위치를 성공했다 하는 것을 우리가 또 깨달아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 현실에 하나님이 신인 접선으로 나와 접선하려고, 내 구원을 주려고 올 때에는 반드시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에 하는 이것이 올 때에는 이것은 증거를 가지고 이것을 꺾어서 우리가 영접하고 따르도록 이렇게 해야 되고, 또 이 세상이 나를 유혹시키기를 너 이래 하면 망한다, 이렇게 네가 말씀대로 순종하면 망한다. 이렇게 하면 당장 절단 난다. 그 결과는 봐라 뻔하지 않느냐. 뻔하다고 그 결과를 말해 주는 것이 세상 이치로 말하는 것이고 세상 지식으로 말하는 것이고 세상 통계로 말하는 것이지 그것이 하나님의 이치는 아니라 그말이오.
그러면 인간 이치를 초월한 강한 하나님의 전능한 이치이기 때문에 인간 이치 저거 이치에 맞지는 않지만 그 이치가 박살을 당하고 기어코 라도 마리아는 이렇게 존영한 그 결과를 맺은 것을 우리가 또 증거 받고, 그뿐 아니라 과거에 이렇게 다 망한다는 것, 미가야 선지도 아합왕이, 아합왕의 그것은 미가야 선지의 현실인데, 미가야 선지의 현실의 요소에 아합왕이 거기 한 요소로 가담됐고 그때 전쟁도 가담됐고 된 것인데, 그럴 때에 미가야가 하나님과 접선되는 이 진리를 따른 말 바른 말을 한 것은 당장 그는 멸망을 받을 것이고 사형을 받을 것이고, 미가야 선지는 참 마리아가 지금 돌조산 속에 매장되는 거와 같은 그런 종류의 결과가 맺어질 것이라는 것이 틀림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런 것보다 크다는 것을 인정하고 미가야는 믿는 것만침 자기에게는 담대가 나왔고 믿는 것만치 평안했고 믿는 것만침 능력이 와서 역사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과연 그렇게 했는데, 그 결과는 고난의 떡을 먹고 물을 마시우라, 와 가지고 잔치하겠다.
이놈을 죽여서 분을 풀겠다, 복수를 하겠다 했지만 아, 당신이 살아와 가지고 그렇게 하면 참 좋겠는데 살아오지 못합니다. 이런 말까지 했다 그말이오. 이러나 그 말대로 아합왕은 전쟁에서 전사했고 미가야 선지는 그것으로서 유명해졌고 존귀해졌고 위대해졌다 그거요.
그러면 이런 것이 다 천사의 증거라. 이것이 하나님의 사자들이 우리에게, 성경 기자들은 하나님의 사자인데, 하나님의 심부름을 기록한 건데 이 하나님의 사자, 천사, 하나님의 사자 성경 기자들이 우리에게 기록해 준 이걸 자꾸 인용해서 증거를 받을 때에 이제 그 주관이 죽어지고 객관이 살아지고 자기를 배척하고 하나님을 따르는 이 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런 요 두 가지 방편을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에 요럴 때에, 요럴 때에, 세상과 자기를 긍정할수록이 자꾸 더 긍정이 강해지고 더 긍정해야 되고 이는 틀림없이 긍정이 되어지고, 하나님이 증거 해 주는 이 증거를 자꾸 하나씩 둘씩 받아들일 때에 비로소 자기 주관과 세상에 내나 긍정하던 이것은 차차 세력이 깨어지고 없어지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이치는 자기가 조금씩 긍정이 되어져 가지고 이것이 바로 되어지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은 전부 구원이 자기 부정이 우리 구원이요 자기 배척이 우리 구원이요, 하나님을 긍정하는 것이 우리 구원이요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우리 구원입니다.
이것이 우리 구원이기 때문에, 이 전체가 다 이것이기 때문에 이 순서와 이 종류를 거치지 않고는 되는 일이 없다 그거요.
그럴 때에 세상과 자기를 배척하고 부정하고 자기 반대로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따르는 일이 이루어지는 데에는 증거밖에는 없다, 천사의 증거밖에는 없다 하는 요것을 우리가 굳게 잡아야 합니다. 천사의 증거는 신구약 성경이 다 천사의 증거요, 또 역사 세계에 신구약 성경 그 이후에 신약 교회 2천년 동안에 우리는 많은 소식을 들었고 또 많은 사실을 우리가 참관한 일도 있습니다.
그런 걸 가지고 자꾸 내가 멸망으로, 멸망으로 되어 있던 긍정이 부정됨으로 멸망이 죽어지고, 멸망을 따르던 이것이 배척을 당함으로서 멸망이 깨어지고 배척하던 하나님을 따르고 부정했던 하나님과 그 이치를 긍정할 때에 구원은 이루어진다 그말이오. 요것을 우리가 굳게 잡아야 됩니다.
왜 요것을 자꾸 말하느냐 하면 요 동정녀 마리아에게 하나님이 접선된 요것의 탄생된 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우리의 구주입니다. 이와같이 우리의 구원은 지금 오늘도 또 요대로 지금 되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현실을 만났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세상을 거쳐서, 내 주관을 거쳐서, 내게 사망을 거슬려서 오는 하나님과 요 진리의 이치를 내가 받아들일 때에는 뭐이 생겨지느냐. 내 속에 의가 생겨집니다. 내 속에 의가 생겨지요. 의가 생겨지는 그 의가 뭐이냐. 하나님의 사랑이요,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이 생겨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생겨지는 것이오. 그때에 주님은 내 안에 들어와서 왕으로 내주하시게 되고 나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내 안에, 그러면 주님이 부스러기로 가른다는 말이 아니고 주님은 나에게 그만침 권위를 더 가지게 되고 나는 주님에게 바쳐 주님의 것이 된다 그거요. 요걸 잘못 알고, 야 거게는 현재 순종하면 예수가 자기 속에 밴다더라 이렇게 말을 해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말해 가지고 이단이니 뭐이니 이렇게 말해 가지고 자기 정죄 심판거리를 만드는 일이 있으니까, 여러분들이 충분히 모르면 제 구원이나 이루지 나가 가지고 벌로 반거짓말 해 가지고 마귀 노릇을 하지 말라 그말이오. 이는 틀림없기 때문에. 진리입니다. 이는 틀림이 없습니다.
이렇게 자기에게 현실에서 자기를 부정하고 하나님을 인정하고, 자기를 배척하고 하나님을 따름으로서 자기에게 그 현실에서 생겨지는 것은 다 구주의 요소요 구원의 요소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럴 때에 주님은 나에게 들어오십니다. 마리아 속에 들어오심 같이 들어오십니다. 들어오시는데, 주님이 내게 다 들어와 있지만 이 요소에는 들어오지 못하는데 그 요소에 주님이 들어오시고 또 저 부분에는 들어오지 못하는데 저 부분에 들어오시고, 주님이 그 안에 들어오시고, 또 이렇게 영접하도록 우리에게 전달하는 그 전달은 뭐이냐. 진리입니다. 진리.
이 진리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영계나 물질계나 창조하실 때에 이 창조하는 심부름을, 창조하는 심부름, 실지 공사를 누가 했느냐 하면, 이 공사를 떼 맡아 가지고 실질적으로 시공 공사를 한 이가 누구냐 하면 이 진리입니다.
진리가, 영계와 물질계의 창조의 시공 역사를 할 때에는 진리가 시공 역사를 했고, 그러면 이 영계와 물질계를 창조할 때 책임자각 그 주인공은 누군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이 진리를 가지고 시공했기 때문에 마리아에게 온 이 가브리엘이 전하는 이 소식인 이 진리, 이 진리는 영계와 물질계의 것을 창조 시공을 한 그자라 그말이오. 창조 시공한 그자, 능치 못함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에 말씀으로 창조했습니다. 말씀을 시공자요. 이 말씀으로 창조한 창조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십니다.
이러니까 거기 온 말씀은 우리 현실에게 하나님께서, 너는, 보라 네가 지금 기도하면 죽으니까 기도하지 말아라 이것 지금 다리오왕이 말하지만 기도해야 네가 살지, 기도 안 하면 너는 죽는다 하는 요 이치가 하나님의 말씀이라 그말이오. 오늘 우리에게도 다 이러합니다. 이 말씀은 우주와 영계를 창조한 시공자이신 독자적인 능치 못함이 없는 전능한 능력을 가진 말씀인 것을 다니엘은 인정했다 말이오. 다리오왕이 말해도, 다리오왕이 말할 때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 중에 보스라기 보스라기 보스라기 중에 몇해 동안을 권세를 가진 다리오왕인데 네가 크냐 모든 걸 창조한 하나님이 크냐, 이러니까 다리오왕이 말하는 그 말이 다니엘에게는 먹혀 들어가지 않는다 말이오. 먹혀 들어가지 않아.
도무지 충격이나 요동되지를 않아 또 이렇게 말씀하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지극히 크신 자존자이시기 때문에 다니엘에게는, 이 사실을 믿으니 그에게는 평안하고 기쁘고 즐겁고, 뭐 사자구덩이에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이 허락해야 되지 사자 그게 뭐 죽인다고 죽고 거기 달린 것이 아니라 절대자이신 이분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분이 역사한다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이 크신 분이 이 일에 가담해 가지고 이 일을 책임을 졌지, 창조의 실지로 시공한 이 진리가 이 일을 책임을 졌지, 순종을 함으로 자기에게 이루어진 이분이 자기에게 구주지, 자기 속에 이루어진 의, 이러기 때문에 이 세 가지를 이것을 다니엘은 알았습니다. 마리아도 알았습니다.
이래 가지고 이제 긍정하고 영접해서 예수님이 그 속에 뱄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현실에서 긍정하고 영접하고 따름으로 말미암아 자기에게 배었는데, 다니엘에게 기도하지 말아라 이랬는데 다니엘이 척 기도를 했다 말이오. 기도를 함으로, 긍정하고 영접함으로 다니엘이 기도한 것이 됐습니다.
이것이 폭로가 되어 버렸어. 이제 다니엘이 잡혀갔어. 다니엘이 잡혀갔으니, 다니엘이 잡혀갔는데 뭣 때문에 잡혀갔느냐 하면 아이 밴 것 때문에 잡혀갔다 그 말이오.
다니엘이 뭐이냐. 이제 주님을 영접해서 주님이 자기 속에, 구주를 영접해서 구주가 자기 속에 왔고 이랬기 때문에 지금 다니엘은 이것이 발부가 된다 말이오.
마리아가 배가 불룩해지니까 와 가지고 자꾸 유혹을 합니다. 봐라, 너 배부른 것이 환하이 드러나지 않나, 이러면 지금 유대 법에 너는 돌무더기에 돌 매장이 되어야 되지 않느냐 자꾸 계속해서 말해. 계속해서 말하는 게 끊어지지 않습니다.
탄생할 때까지 계속해서 말합니다. 계속해서 말하는 게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보다 자기 주관, 속에 지금 주관이 자꾸 말하고 있소. 마귀가 자기 속에 자꾸 말하고 있소. 이것이 계속합니다.
다니엘에게는 계속이 됐소. 너 벌써 기도하지 않은 것이 소문이 났다. 그들에게 벌써 폭로가 됐다. 이러니까 네가 지금 이러면 네가 죽는다 이러니까 낙태를 시켜 버려라. 없애 버려라. 자꾸 이래, 낙태가 됩니까. 안 되는데 자꾸 부정하라고 이러니까, 다리오왕이 다니엘을 그렇게 사랑해서 하루종일 말했는데 하루종일 말한 것은 다니엘에게 긍정과 순종으로 잉태된 구원, 잉태된 구원, 영접해 들인 주님, 이 주님을, 만들어 놓은 의, 이제 순종으로 기도한 사람이 된, 이 만들어 놓은 의 이것을 지금 유산을 시키라고, 유산을 시키라고 다리오왕이 말하는 것입니까 다니엘에게 구원을 주려고 말하는 것입니까 대답해 보십시오.
○○○목사님, 다리오왕이 뭘 하고 있습니까 더듬을 게 뭐이라, 꽉 말하지, 유산시키라고 지금 말합니다. 유산시키라고 말합니다.
유산을 시키면, 유산을 시키면 다니엘은 누구를 배척하는 것입니까. 하나님 배척, 이 시공자 진리를 배척, 자기 속에 들어와 계시는 자기 구원의 구주가 되는 구주를 배척, 이 배척이 됩니까. 배척이 돼. 배척이 됩니다. 배척은 결과는 이루어지지 않지만 자기 주관으로는 배척합니다. 그러면, 배척을 했다고 하면 다니엘은 어떻게 되겠소. 다니엘은 결국 자기는 고생 고생, 고통 고통으로 이루어져서 한없는 고통으로 자기는 산 지옥의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다니엘은 부정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 가브리엘 증거를 자꾸 받았다 말이오. 가브리엘 증거를 마리아가 받은 것처럼 하나님의 천사들의 증거를 다니엘이 자꾸 이와같이 받고 받고 하니까 다니엘에게는 평강이 왔고 그것은 부정되고, 긍정과 부정이 바꾸어졌고 이제 배척과 순종이 바꾸어진다 말이오.
그러니까 처음에 한 대로 요동치 않아. 다리오왕의 말한 것이다, 그것은 허사가 되고 말았고 다 배척을 당하고 말았지 그게 와 가지고 성공을 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면 요것이,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하고 난 다음에 배가 불러지니까 자기 주관에서 자꾸 위험천만이라고 자꾸 말하는 거와 같이, 배가 불러지고 커지니까, 요것 모양으로 다니엘이 금한 기도를 그대로 기도했으니까 요거 의가 됐고 요거 구원이 됐는데, 요것을 하고 나니까 자꾸 요것이 그만, 그때 아무 말 없이 기도만 했으면 하나님 앞에는 문제가 없고 인간에게 난제도 없고 이렇게 될 터인데 이게 폭로가 된다 그말이오. 아이 밴 것이 폭로가 되는 것, 아이가 배니까 배가 자꾸 불룩해진다 말이오. 불룩해져야 일이 성공이 되지요.
불룩해져야 성공이 되고 이게 커져야 성공이 되는데 이 커짐에 따라서 위험천만이라고 자꾸 미혹이 들어온다 그말이오. 미혹이 들어오지만 마리아는 믿기 때문에 미혹 들어오는 것이 도로 깔보여지고 미혹 들어오는 것이 멸시를 당해졌고 미혹이 들어옴으로 더 기쁘고 즐거웠다 그말이오. 하나님 말씀은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자꾸 이랬을 거라. 하나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할 때에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 자꾸 이렇게 나갔다 말이오.
이래 나가 가지고, 이러니까 마지막에 하필 해산 기약이 최종적으로 자기 가까운 친척들만 딱 모여 있는데, 왜 돌무더기로, 돌조산으로 모아 가지고 돌매장을 해 가지고 죽이느냐 하면 자기 족속의 모욕이라고 자기 족속에서 죽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 족속의 모욕이 되어지기 때문에 족속에서 먼저 선발해 가지고 죽이는 것이기 때문에 그 족속의 족속 속에서 해산하게 되어지니까 얼마나 이게 폭로가 되어집니까. 이게 최고 시험이라. 그럴 때에, 하나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이분이 구주라, 믿는 믿음으로써 마리아는 평강을 누렸고 또 하나님은 거기서 무난히 다 역사를 하게 된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리아가 자란 것이나 다니엘이 기도한 이것이 폭로가 되어 가지고 점점 이게 확대가 되어서 소문이 나지는 것이나 이것이 같다 그말이오.
다니엘이 그 기도한 것이, 기도하지 말라고 할 때에 기도한 그 기도한 것이 그것이 성공은 폭로가 되어 가지고 다리오왕을 통하고 사자구덩이 들어가고 이래 가지고 사자구덩이에서 죽지 아니하고 살아나고 이래야 성공이 될 것 아닙니까.
이래야 성공이 될 거라 말이오. 그러나 그 성공이 최종적으로, 요걸 못 알아들으면 참 예배볼 때 고통입니다. 최종적으로 고통 된 것은 베들레헴에서 해산한 그것이 최종 마지막의 어려운 고비라. 다니엘이 이와 같이 자꾸 성장해야 되는데, 다리오왕이 말하고, 지금 마지막으로 구해 준다는 이것이 다리오왕의 미혹이 마지막 미혹이요.
그때에 사자구덩이에 들어가면 이제 죽는다 하는 그것이 마지막의 시험이요 미혹이요 어려움인데 그것을 통과해야 된다 그말이오. 그러면 베들레헴에서 해산하게 된 그것이 최종 시험이요 어려웠던 거와 마찬가지로 다니엘에게는 다리오왕이 지금 붙들고 하루종일 신강하는 것이 최종의 어려움이요 시험이었는데 그 시험과 함에 사자구덩이 던져지는 이것이 마지막 최종 시험입니다.
던져졌을 때에 마귀는 마귀대로의, 세상은 세상대로의 저거 성공을 했고 하나님은 하나님으로서 이제 세상 성공하고 난 다음에, 마귀 성공하고 난 다음에 마귀 성공 세상 성공 완전히 잡아먹고 성공한 그 성공이 영원한 성공이요 거기서 영광이 이루어졌다 그거요.
이와 마찬가지로 꼭 이런 순서로 우리에게 되어지는 요것을, 마리아가 장성함으로 폭로되는 것처럼 우리가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복종해서 내 속에는 의가 이루어졌고, 의가 이루어진 것은 그것이 뭐이냐 하면 하나님의 속성이 이루어진 것이요 하나님이 내 속에 더 나를 점령한 것이라 말이오. 고 현실에 사용되었던 그것을, 그것이 하나님의 성전 되었고 하나님이 나에게 와서 내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부정했으면 그때 그 현실에 가담된 자기 요소 그것은 성전이 되지 아니하고 마귀의 소굴이 되어서 마귀의 전하는 마귀의 전이 되어 버리고 말았고 하나님은 거기서 배척을 당하고 마는 것인데 순종으로써 나는 성전이니까, 성전이니까 구원이요 하나님의 것이 됐고 영생의 것이 됐고 하나님은 내 속에 그 요소를 점령하게 됐고 주관하게 됐기 때문에 구원이 됐다 그거요.
이런고로 그것을 알고, 요 성장되는 거와 같이 우리도 무슨 일을 하나 해 놓으면 성장이 된다, 반드시 무슨 일이든지 해 놓으면 다니엘과 같이 그렇게 성장이 됩니다.
6·25 때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진리를 가지고 외쳤으니까 벌써 임신 안 됐습니까.
성공이 안 됐습니까 됐는데 진리대로 외치니까 외쳐 놓은 그것이 지금 장성해야 일이 될 터인데, 장성해야 일이 될 터인데 장성해 가니까 자꾸 위협이 온다 그말이오.
6·25가 나 가지고, 이 사람들은, 우리는 예수 이래 안 믿습니다, 우리 거창 군내에서, 거창군 함양군 협천군 3군 내에서 이래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래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세 교회밖에 없습니다, 이래 예수 믿는 사람은 우리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래 예수 믿지 않습니다. 이 교회 가도 이래 우리는 예수 믿지 않습니다, 저 교회 가도 이래 우리는 예수 믿지 않습니다, 예수를 이래 믿는 교회는 개명교회, 위천교회, 저 봉산교회 그 세 교회가 이래 믿지 다른 교회는 이래 믿지 않습니다, 그 세 교회는 백조사라 하는 그 자가 있어 가지고 지금 이래 믿지 우리는 이래 믿지 않습니다. 그분들 지금 안 죽고 살아 있소.
성기교회에 ○장로님 지금 살아 계시지. ○○○장로님, 그 장로님과 그때 뭐고, 미싱 장사하는 사람, 그분들이 다 그래 말하고, 그래 말하니까, 아 그렇습니까, 그러면 됐습니다. 하고 그분들은 갔는데, 가고 난 다음에 얼마나 겁이 났든지 다 도망을 쳐 가지고 콩밭에 다 숨어 버렸다는 소리를 내가 그들의 입에서 내가 들었습니다. 그것이 다 심판입니다.
이러나, 그러고 난 다음에 자꾸 오기를 야, 너 설교한 것이 전부 들려왔다. 다 그것이 기록되어 왔다. 박기천조사님이, 박기천조사님이 지금 잡혀갔다. 잡혀간 것은 박기천조사님이 설교한 것이 그들이 담 밑에, 울타리 밑에서 듣고 가 가지고 전부 그것을 그대로 다 거석해 가지고 그 설교가 다 거기 들려 올라가 있다. 이래 가지고 그것 때문에 그래 되어졌다. 이러니까 백조사 너도 이제 그때 설교한 것이 지금 다 들려 올라가 가지고 너 찾느라고 야단이다. 찾느라고 왔는데, 그자가 이름이 백영기인데, 백영기인데 그 백영기가 어데 있느냐. 백영기는 그 사람이 아니라. 백영기, 여기는 백영기가 없다 이제 백영기 찾아서 자꾸 돌아다녔는데 백영기가 없어. 저 북상교회가 가지고도 찾았어. 찾았는데 그 이름이 내 이름이 아니라 희 자가 기 자와 달라. 이래 가지고 찾아다녔소.
이러니까 그때에 오는 것이 마치 마리아 배부름이 오는 것처럼 그게 자꾸 확대해져야 성공이 있고 일이 있다 말이오. 있는데 그런 동시에 위협이 옵니다.
이러니까, 위협이 와서 이런데 네가 이래 되겠느냐. 그때에 봉산교회 개명교회 위천교회 셋 교회는 6·25 때에 하루 세 번씩 종 치고 계속해서 예배봤어, 계속해서. 6·25가 끝날 때까지, 처음에는 세 번씩 종 치고 예배 봤는데, 개명교회는 계속해서 세 번씩 종 치고 예배봤고 봉산교회도 계속해서 세 번 종 치고 예배봤고, 위천교회는 집회할 때에 고 두 달 동안만 계속해서 세 번씩 종 치고 예배 봤고 고 뒤에 집회, 사경회가 끝마치고 난 다음에는, 두 달 동안 했소.
끝마치고 난 다음에는 그때 아침 저녁으로 두 번만 종을 치면서 예배를 봤습니다.
이렇게 하는 이런 위협이 온다. 반드시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고 나면 그 뒤에 그것이 점점 확대되어 가지고 영광스럽게 존영하게 성공이 된다고 할 때에는 이제 점점 위협이 따른다. 저 ○○○장로님이 그때 주일학교 부장으로 있었는데, 그때 6·25 때에 인민군들 점령하고 가고 난 다음에 우리는 하루 세 번 종 치고 집회를 해 가지고 근 4백명이 모여 가지고 집회를 했습니다.
그랬는데 그때에, 참 그때까지는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는 이 말씀을 믿음으로 평안하고 즐거웠는데 고때 그 여반사하고 저 청년들이 와 가지고 아마도 이 교회 예배당 위에 뭐 쳐어치라던가 뭐이라던가 이렇게 기록을 해서 공중에서 보면, 인민군 그까짓 거야 겁이 안 나지만 공습이 겁납니다, 공습이 겁나는 게 아니라 인민군이 겁나지만 이제 우리는 그때 하나님의 보호를 입으니까 이거 뭐 인민군이야 뭐 너무 시쁘게 보이고 아무 것도 아니게 보이니까 모두 그랬다 말이오.
이러면서, 아 이거 글을 써 올립시다, 글을 씁시다. 뭘로 글을 쓰노. 내게 백목 있습니다. 여선생이라고 그때 처음 그 남편은 이혼하고 있는, 그 남편이 환자라서 이혼하고 있는 그 여자가 있었는데 여반사가, 우리 집에 백목 있습니다, 명베가 있습니다. 그러면 가서 써라. 그래 가 가지고, 그거는 쓰라 하니까 어떻게 좋았던지 퍼뜩 가서, 써 놓고 왔습니다. 이래. 그때 ○○○목사님도 참가했던가 모르겠소. 이래 써다 놓고 왔습니다. 써 놓고 왔는데, 내가 점심 먹으니까, 오전예배 보고 점심 먹으니까, 다 해놨습니다. 뭘로 눌렀노. 돌로 눌러 놨습니다.
다 해놨다 하는데 고만 그때 가슴이 철렁거리며 내게 그만 능력이 빠져 나가 버립니다. 네가 이제 하나님 믿는 것이 아니라 친미파로구나. 그래 가지고 당장 내가 철거하라 했지. ○장로님 기억 있어 당장 철거해라. 철거했지만 벌써 이것이 한번 정조를 팔았다 그말이오. 이래 가지고 남은 한 달 동안은 죽자껏 참 고통으로 지냈습니다.
이것이 잉태되면 예수님이, 배가 불러야 성공이 되지 않겠소.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현실에서 순종으로 이렇게 의가 이루어졌으면 그 의를 이루어지게 한 그 실지의 시공한 것은 능치 못함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요, 또 그를 지배한 이는 자존자이신 창조주 하나님이시요, 내가 순종으로 이루었을 때에는 마리아에게 예수님이 밴 것처럼 내 안에 벌써 예수님이 그만침 나를 주관하게 됐고 내 안에 와서 계시게 됐고 나는 예수님의 것이 됐기 때문에, 점점 커져야 성공이 되는 것인데 커질수록이 위험천만이라는 위협이, 반드시 이와 같은 성질이 꼭 따른다. 따를 때에 그때에 위협을 받아서 네가 부정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과 네 속에 들어온 이가 지극히 큰 분이신 것을 요 현실에서 순종으로 말미암아 네 속에 내주 하게 된, 네가 영접하게 된 이분이 지극히 크신 분이라, 이분이 지극히 크신 분이라는 이 사실을 네가 믿을 때에는 네가 평안함으로 점점 자라게 되고 대성공이 되어지고 믿지 못할 때는 너는 지옥의 고통을 당하고, 그러나 그 일은 성공이 되어진다 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이렇게 위협이 오는데 위협을 주는 그 상대방들보다 나와 함께 하는 분이 크다는 것을 이것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위협을 주는 것, 유대나라의 법칙이 위협을 주고 이스라엘 종교법, 이스라엘 백성들이 위협을 주고 하지만 백성 그 까짓 것들보다, 로마나라의 그 정권 세력보다 지극히 큰 하나님이 지금 이 일을 이루었고, 영계와 물질계를 창조할 때에 실지 시공을 했던 이 진리가 이 일을 이루었고, 자기 속에, 만인간의 구주이신 예수님이 자기 속에 와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껍데기가 볼 때에는 마리아가 예수님을 보호하는 것 같지만 이제 초자연으로 유대법을 꺾고 인간들의 그 눈을 기리고 인간들의 입을 막고 인간들이 말 못하게, 꼼짝 못하게, 행동하지 못하게 베들레헴에 가 가지고 탄생을 해도 그들이 꼼짝 못하게 이렇게 한 이것은 다 초자연의 능력인데, 속에 든 구주 예수님이 그를 보호했습니까 마리아가 그 예수님을 보호했습니까. 누가 보호했소. 사람 보기에는 마리아가 보호한 것 같지만 실상은 예수님이 보호했다 그말이오.
우리가 밴 의를, 이것을 내가 이 의를 배척하지 아니하고 이치를 간수하는 것 같지만 실은 그것이 밴 의의 보호를 입는 것입니다. "만물이 불타서 그 체질이 불에 녹아지나 우리는 의의 거하는 바 새하늘과 새땅을 바라보도다" 이 의가 자기를 지키지 의를 자기가 지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사람 보기에는 제가 하나님을 배척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으로 보여지고, 사람 보기에는 제가 진리를 지키고 진리를 배척하지 않는 걸로 보여지고, 사람 보기에는 제가 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이 의를 제가 간수하는 것 같이 보여지지만 실은 그 속에 내주 하시는 의가 그를, 자기를 간수하고 이 진리가 자기를 간수하고 하나님이 간수하기 때문에 인정만 하면, 이 일을 하고 복종만 하면 이 절대자가 보호하는 것인데 요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지옥만 자기가 만듭니다. 이루어지기는 이루어지지만 자기 지옥만 만드는 것이오.
그런고로 우리가 요것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오늘 아침에 증거 하려 한 그 둘은 앞으로 시간 있으면 증거를 하겠습니다. 혹은 답답한 이가 있으면,
우리 현실은, 현실은 이렇게 신인 접선의 성공을 시키려고, 모든 우리 현실은 신인 접선에 대해서 네가 이러면 접선이 안됐다, 접선이 된다. 접선 안 되고 되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우리 현실입니다, 이해가 되는지 안 되는지 몰라도.
신인 접선이 된다 안 된다, 되고 안 되는 이치를 가르쳐 주시는 우리의 선생님입니다. 현실이라는 것은 자기가 복 있는 사람이 된다면 현실은 자기를 바로 가르쳐 주는 선생님이오. 평소에는 몰라. 신인 접선을, 하나님을 부정하는지 날 부정하는지, 하나님 따르는지 날 따르는지 모르지만 그 현실에서는 하나님을 따르고 나를 따르고 하나님을 부정하고 날 부정하는 것을 확실히 명백히 가르쳐 주는 것이 현실이라 말이오. 명백히 가르쳐 주는 것이 현실이라. 이러기 때문에 현실은 나에게 대해서는 선지자요 나에게 대해서는 선생님이라.
요럴 때에 내가 평소에, 나는 하나님을 긍정합니다, 하나님을 긍정합니다, 나를 부정합니다. 암만 해도 긍정되는 것도 아니고 부정되는 것도 아닌데 현실 거기서만 이제 하나님을 긍정하면 긍정이 탁 되어 버리고 자기를 부정하면 부정이 탁 되어 버리고, 거기서, 하나님 긍정 자기 긍정, 하나님 부정 자기 부정, 하나님 따르는 것 자기 따르는 것 요것이 현실에서만 되어지는 것이니 자기가, 현실이 하나님을 긍정하고 자기를 부정하고 하나님을 따르는 일을 돕는 일이 현실이니 그때에 자기가 자기를 부정하고 하나님을 긍정하면 내가, 내가 말이오.
내가 하나님을 긍정하고 자기를 부정하고 하나님을 따르고 자기를 배척하는 이 마음을 가지고, 이 마음을 가지고 자기가 이와같이 하려고 할 때에 그 현실이 아니면 그 일이 성공 안 됩니다. 그렇게 하려고 할 때에, 그렇게 하려고 할 때에 이 현실에 네가 그렇게 하면 이 현실이 들어서 내가 이와같이 하는 일 딱 고정을 시켜 버리고 결정을 시켜서 성공을 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실은 나를 돕는 자라 그말이오. 현실은 하나님을 긍정하는 데 나를 돕는 현실이요, 나를 부정하는 데에 돕는 현실이요, 요것을 고정시키는 현실이기 때문에 현실은 나를 돕는 자라, 돕는 자라. 내가, 내가 부정을, 나를 긍정하고 하나님을 부정하는 이런 망령을 부릴 때에 그 현실은, 너는 이놈아 하나님을 부정하고 널 긍정했다, 너는 하나님 안 따르고 너는 널 따랐다 큰 소리로 외쳐서 나에게 심판을 내려 주는 것이 현실이라 그말이오. 그런고로 우리가 요것을 단단히 기억하고 굳게 잡아야 됩니다.
제가 이 설교를 거창 있을 때에는 많이 증거를 했소. 증거를 해 됐는데 또 여기 와서는 종종 했지만 요 근경에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굳게 잡아서 요동치 않아야 됩니다. 안 믿는 데에서 불안이 오고 안 믿는 데에서 고통이 오고, 안 믿는 데에서 고통이 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배 타고 가는 사람들이 자꾸 자기 주관이 나와 가지고 부정하는 데에서 바람도 일어났고 고통도 됐지, 하나님이 배타고 건너가라 했으니까, 절대자가 말했는데 그걸 누가 변개를 시킬 것이오. 물에 들어가면, 물 속에 들어갔다가 이제 저 건너 건너편에 가겠다, 하나님 솜씨를 보자 하고 있으면 귀한 역사가 이루어지고 평강의 참 재미있는 꼴을 볼 터인데, 모세는 하나님 하시는 솜씨를 구경하자 이랬는데 다른 사람은 기절해 죽게 되는 것이 그거 뭐이냐 그것이 자기 주관 그놈에게, 그놈으로 말미암아 손해 당한 그 손해요 고생 당한 고생이라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자기 주관은 만 가지에 손해만 주는 것이지 유익 주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놈을 배척해 버리고 부정해 버리라 말이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 말씀을 여러분들이, 중간반 반사들은 녹음을 가지고 열 번 스무 번 들으십시오. 들어 가지고 이것이 자기에게 꽉 잡아 가지고 들으면 날아갑니다.
이러면 세상을 이겨. 이러면 이 모든 것이 이 구원관이 틀리지 않아. 지금 한국 교회도 구원관이 어지러워져 가지고 마귀 삐뚤어진 데로 막 넘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뭐 세계 기독교 선교회, 선교회 가지고 그것을 이용해 먹은 것이 다 미국에다가 적은 두고 여기 와 있다가 퉁 하면 날아갈 그런 꾀를 파는데, 어리석어서 그자들을 지도자라고 영접해 가지고, 참 세계 선교회라 하는 것이 뭐이냐. 그것이, 이번에 그것만 보면 싹수를 알수가 있어 일곱 머리가 있는데 하나 죽었다가 사는 것을 보고 놀라서 더 복종하는 자 있고 그것으로 깨닫는 자는 깨닫는 자입니다.
이번에 방화사태 마흔 두 명 목사들이 나서 가지고 한 그분들이 다 세계 선교회에 다 가담한 그런 사람들이요 그 주체들입니다. 거기서 나온 역사들이오.
그 마귀 역사입니다. 이런데 그걸 뭐, 그게 공산주의자들이 하는 게 아니고 우리 민주주의에서 너무 감정이, 반미의 감정에서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우리 민주주의에서 일어난 것인데 공연히, 그게 마귀라는 놈이 지금 도매금으로 막 수입하려 하는 것인데, 이렇게 유혹에 빠졌기 때문에 자신들이 그런 자라 말이오.
그런 자로 지금 나타나 있다 그말이오. 뭐 공산주의자야 아니지. 아니지만 세상은 한 가지요.
일곱 머리가, 짐승 한 마리에 일곱 머리가 있는데 일곱 머리 그 모든 사상이라 하는 것은 밑 뿌럭지는 짐승 한 마리에게 대가리가 일곱이라, 뿔이 열 개고.
이러니까 껍데기는 이런 것 저런 것 대가리 가 딴것이지만 더듬어 찾아 들어가면 내나 몸뚱이는 짐승 한 마리 몸뚱이, 짐승은 세상을 가리켜 말해. 그게 세상이라 그말이오. 얼마나 이거 알아서, 심령이 밝아져 자기 생활하면 깨달아져요. 이렇게 살지 않으면 깨달아지지를 않는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 말씀이 부정되는 자는 부정됩니다. 긍정되는 자는 긍정되고, 이제 이 말씀이 자기 목숨을 바치고도 남음이 있다는 깨달음을 가지지 못하는 자는 여기 암만 있어도 소용없어. 몇백명 있어도 소용없어. 몇십 명 있어도 소용없어.
아무 소용이 없어. 들은 것이 자기를 정죄 합니다. 너는 이래 안 배웠나. 배웠는데 너 이랬느냐. 마지막에 자기를 정죄 할 것뿐이지 구원은 되지 못한다 그말이오.
너무 늦어서 5분 기도하고 권찰회 모입니다.
이제 이 녹음이 있으니까 중간반 반사들은 두 시에 이 녹음을 듣기로 매일 해 가지고 듣는다 하는데, 두 시에만 들을 게 아니라 듣고 또 듣고 열 번 들어도 여러분들이 다 깨닫지 못할 것이고, 또 그 말은 외워도, 들어서 외운다 할지라도 그 지식의 범위와 그 사실에 인정하는 것은 감감합니다.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된다 말은 성화 된다 말이오. 성화가 되고 난 다음에 성화 된 것만침 진리를 압니다. 진리를 알면 그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