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27 14:37
신의 성품에 참예하라
1981. 10. 7. 수새
본문 : 베드로후서 1장 4절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 그러면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본체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을 말씀합니다. '신의 성품에 참여한다' 이는 하나님의 속성에 참여한다, 하나님의 속성에 참여하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과 같이 된다. 하나님의 속성과 같은 속성을 가지게 된다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속성은 일반적으로 다 알고 있기를 성경에 발표된 대로는 열두 가지 속성으로 그렇게 분류를 해서 일반 신학자들이 다 그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열두 가지 속성 중에 네 가지 속성은 우리에게는 없고 하나님만 가지고 계시고 또 여덟 가지 속성은 우리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분류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열두 가지 속성에 네 가지 속성없는 그것까지도 합해서 열두 가지 속성을 이루어가는 그것이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열두 가지 속성으로 이루어가는 것이 그것이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같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 믿는 사람은 이 열두 가지 성품이 없느냐? 안 믿는 사람에게는 네 가지 성품과 또 여덟 가지 성품이 그들에게 있습니다. 네 가지 성품은 바라보는 것이고, 그렇게 되려고 목표를 하는 것이고, 여덟 가지 속성은 다 자기네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고, 이런데 우리가 과거에는 이 네 가지 속성을 목표로 했고 또 여덟 가지 속성을 우리가 가지고 있었지마는 목표로 한 것도 죽은 것을 목표로 했고 가진 것도 죽은 것을 가지고 있던 우리들입니다.
과거에는 죽은 열두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던 우리가 이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열두 가지 속성을 살리는 이것이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죽은 열두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마귀에게 속해서 마귀와 같이 된 것이고 또 이 열두 가지 속성이 살아나는 것은 마귀에게서 이제 옮겨 하나님에게 속하고 하나님 같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과거에는 마귀의 성품을 가졌던 우리가 이제는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게 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마귀의 성품은 죽은 성품이요, 하나님의 성품은 산 성품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죽은 성품은 다 삐뚤어진 것이요, 잘못된 것이요, 다 심판을 하나님의 심판에서 재판하면 다 정죄로 또 모든 만물들이 재판할 때에 만물들이 다 그건 틀렸다 정죄받을 그런 것이 다 죽은 것들입니다. 산 것은 하나님의 심판에서도 이는 틀렸다고 하지 못하고 이는 옳다 그렇게 심판에서도 옳다 인정하게 되고 모든 만물도 지금은 어둡지마는 그때는 밝아서 모든 만물도 다 이는 옳다. 우리는 이를 환영한다 이렇게 모든 피조물에게 인정과 환영을 받고 하나님에게도 인정과 환영을 받는 이것이 산 것입니다.
그러면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지금 알게 됐습니다.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 하나님의 속성과 같이 내가 속성 같은 속성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이라. 그러면 과거에는 마귀 성품과 같은 성품을 가졌던 우리가 이제는 예수님의 보배피 공로로 인해서 하나님의 성품과 같은 성품으로 지금 살아났습니다.
종자적으로 종자를 하나님의 성품의 씨를 우리에게 뿌려놨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에, 1장 23절에 이랬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23절에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을 되었느니라" 진리로 되었느니라. 우리에게는 죽는 것 속에 산씨가 들어 왔습니다.
비유컨데 화분에 아주 죽은 것 썩은 것 흙이 썩고 또 이 식물들이 썩고 모든 것이 썩은 그것이 화분에 하나 담겨 있습니다. 그러면 썩은 것이 담겨 있으면 썩은 흙과 썩은 모든 식물 거름 이것이 아주 화분에 담겨 있지마는 그것이 조금 썩은 것이 아니라 아주 많이 썩어 있습니다. 아주 썩어서 참 그만 썩어서 아주 거름이 되버렸습니다. 그런 흙을 화분에 넣고 씨를 뿌린 것과 또 그 썩기 시작하기는 했지마는 아주 썩지를 안하고 생 땅으로 되어 가지고 있는 것의 씨를 뿌리는 것과 어느 것이 잘 자랍니까? 예 썩은데 뿌린 것이 훨씬 잘 자라지요.
그러면 썩은데 뿌린 것이 자랄려고 하면 그게 뭣 먹고 자랍니까? 썩은 것을 먹고 자랍니다. 그러면 썩은 것이 산 생명있는 씨에게 삼키워집니다. 삼키워지면 그 흙이 변해서 꽃도 되고 썩은 흙이 변해서 열매도 되고 그렇게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이 속성은 열두 가지 있는 그것이 다 죽어 썩어 생명이 없었는데 다 마귀적인 것인데 거기다가 하나님의 이 산 진리와 영감의 씨를 심었습니다.
우리에게 씨는 많이 있습니다. 가꾸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에게 씨는 와서 있는데 가꾸기만 하면 되는데 가꾸면은 뭣 먹고 자랍니까? 뭣 먹고 자라지요? 남반에. 녜 썩은 속성을 산 속성이 잡아 먹어야 산 속성이 자라게 됩니다. 썩은 속성을 산 속성이 잡아 먹으면 산 속성은 차차 자라고 썩은 속성은 차차 적어지고 약해지고 나중에는 없어지고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이 우리에게 심기워 있는 산 하나님의 산 속성이 이것이 우리에게 죽은 속성 마귀적인 속성 이것을 잡아 먹어서 마귀적인 속성이 하나님의 그 속성적인 이 속성에게 잡아먹히고 그래야 되지 그렇지 안하면 신의 성품으로 자라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간단하게 아주 알기 쉽게 말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속성이 열두 가지인데 네 가지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소망합니다. 네 가지는 소망을 하는 것이고, 그렇게 되려고 네 가지는 소망을 하는 것이고 여덟 가지는 우리가 가진 것입니다. 가졌는데 이 소망을 네 가지 속성은 소망하고 여덟 가지 속성은 가지고 있는데 안 믿을 때는 죽은 것을 가지고 있고 죽은 것을 소망하고 있었지마는 이제는 우리에게는 이 속성이 산 속성만 있습니까 죽은 속성만 있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여반에. 예 두 가지 죽은 속성도 있고 산 속성도 있고 이렇게 두 가지 속성이 있습니다.
그러면 처음 믿을 때에는 산 속성이 큽니까 장성합니까 죽은 속성이 장성합니까? 죽은 속성은 장성하고 산 속성은 겨우 종자로 뿌려져 있습니다. 사도바울 같은 그런 분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죽은 속성이 강합니까 산 속성이 강합니까? 산 속성이 강해서 죽은 속성이 꼼짝을 못해서 죽은 거와 같이 자꾸 삼켜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아주 죽은 속성이 화분이 하나가 될 뿐 아니라 죽은 속성이 이런 예배당에 아니 죽은 흙이 썩어서 죽은 흙이 화분에 하나 될 뿐만 아니라 이 예배당하고 꽉 찼습니다. 하나 아주 수북하게 예배당 안에 있다 합시다. 그러면 흙이 죽은 흙이 많고 산씨는 하나를 심어놨습니다. 심어놓으면 산씨가 이깁니까 그 많은 흙이 이깁니까? 산씨가 이깁니다. 많은 흙은 암만 많아봤자 산 자에게는 꼼짝 못합니다. 삼켜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는 산 속성이 와서 있기 때문에 산 속성이 자랄려고만 하면은 죽은 속성이 아무리 강하고 커도 그거는 삼키워져야만 하는 것이 마치 흙에 생명있는 씨를 심으면 결국은 흙이 많아도 그 산 씨에게 삼키워지고 삼키워져서 밥이 되는 것처럼 그렇게 되는 그것을 비유해서 씨를 심었다 그렇게 알기 쉽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죽은 속성은 마귀의 속한 마귀와 같은 속성이요, 산 속성은 하나님의 속성과 같은 속성인데 이 죽은 속성이 산 속성에게 삼키워질라고 하면은 우리는 아주 힘을 많이 써야 됩니다. 힘을 많이 써야 되는데 얼마나 써야 되느냐? 자기에게 있는 힘을 다 써야 되고 또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 해야 되지 있는 것 무엇이라도 남겨두면 남겨두고 이것을 바꾸려고 하면 처음에 조그만한 것은 바꿔지지마는 마지막에 최종으로 바꿔질 때에는 바꿔지지 못합니다. 처음에 바꾸는 시작은 하지마는 이제 바꾸는 것으로 완성하는 최종 바꿈에는 그게 안된다 그말이오.
최종 바꿈에는 너무 힘이 들어서 그 힘드는 그것을 가르쳐서 밤중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또 그것을 가르쳐서 시험이라 불 시험이라 불 시험을 만나거든 이상한 일 당한 걸로 여기지 말고 그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며 성령이 너희 위에 임하시는 것을 너희가 깨달아라 그리고 기뻐하고 온전히 담대하라' 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여덟 가지 공통성있는 속성 여덟 가지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공통성있는 그런 다 틀리기는 틀리지마는 같이 그 가지수를 가지고 있는 것인데 그 여덟 가지 속성을 여러분들이 잘 외우고 있는 줄 압니다.
한번 헤아려 봅시다. 첫째 지식 첫째가 지식입니다. 이게 제일 중요해요 지식. 또 둘째 지혜, 또 셋째 선, 또 넷째 사랑, 또 다섯째 진실, 또 여섯째 거룩, 또 일곱째 의 또 여덟째 주권, 이 여덟 가지고 다음에 또 우리가 바라보는 네 가지 첫째는 자존, 자존 스스로 계신 우리는 그 있을 수 없는 그 자존성 또 둘째 완전성 또 셋째 영원불변성 또 넷째 단일성 이래서 열두 가지인데 이것은 우리가 소망합니다. 바라보고 갑니다. 바라보면서 갑니다.
그러면 첫째 지식을 우리는 죽은 지식으로 죽은 지식의 성품이 있는데 지식이 성품이 있는데 하나님의 산 지식의 성품이 있고 성품 중에는 지식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성품 중에는 지식이라는 지식이 있고 인간의 성품 중에 속성 중에도 지식이라는 그 속성이 있는데 하나님의 그 속성인 하나님의 지식은 살았고 인간 지식은 죽었습니다. 다 삐뚤어졌다 그말이오.
그러면 죽은 것은 뭐 뭐와 끊어지는 것이 죽은 것입니까? 하나님과 끊어진 것이 그것이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과 끊어졌다 말은 하나님은 완전자시기 때문에 완전과 끊어진 것은 죽었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영원불변과 끊어졌으니까 그거는 변할 것이니까 죽었지. 이것은 다 우리가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식에 우리는 삐뚤어진 지식 인간 지식을 가졌는데 인간 지식은 그것이 다 거짓말이 됩니다. 왜 거짓말이냐?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과학도 거짓말이 됩니다. 거짓말이 되는 그 이유는 과학은 딱딱 들어맞는 말 하는데 어찌 과학이 거짓말이 되는가? 녜 과학이 그것이 안 맞는 말 안 하지요. 과학이라는 것은 물질의 이치인데 물질의 이치는 딱 들어 맞습니다. 딱 들어맞는데 그 과학이 죽은 지식이라. 왜 지식은 사람을 참 복되게 하는 것이 지식인데, 복되게 하는 것이 사람을 유익되게 하는 것이 지식이요 지식이지 사람을 죽이고 망하게 하는 그 지식은 그 지식이 망하게 하는 지식은 인간을 속이게 하는 지식이요, 인간을 유익되게 하는 지식이요, 인간을 속이는 지식이고 해하는 지식이지요. 인간을 해하는 지식은 속이는 지식이요, 거짓된 지식이요, 또 인간을 참 유익되게 복되게 영원히 가도 속인 것이 없이 인간에게 바로 이렇게 알려 준 그 지식은 산 지식이요, 옳은 지식이지요.
이러니까 사람에게 참으로 복이 되고 유익이 되는 그것이 그 사람이 지식을 뭐할라고 가집니까? 지식을 가진 것은 그 지식 가지고 자기를 옳게 바로 알아 가지고 유익되기 위해서 지식을 가진 것 아닙니까? 이러기 때문에 자기를 해하는 지식은 결과적으로 자기를 해하는 지식을 가졌으면 그 지식은 그 사람에게 있어서는 죽은 지식입니까 산 지식입니까? 녜 죽은 지식이지요. 그 지식은 그 사람을 속이는 지식입니까 그 사람을 유익되게 하는 지식입니까? 속이는 지식이지요.
그러기 때문에 과학은 옳은 말이지마는 옳은 지식이지마는 그것이 결과적으로 사람을 망치는 것이고 유익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그건 사람 속이는 지식이요 다 사람 해하는 지식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있어서는 다 거짓 지식이요, 해독이 된 지식이라 그말이오.
좀 알아듣기 여러분들이 어려울 건데 그러면 거짓말은 있는 걸 있다고 없는 걸 없다고 했으면 그것은 거짓말입니까 참말입니까? 예 있는 거는 있다 하고 없는 거는 없다 했으면 그것은 참말입니까 거짓말입니까? 참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두고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두고 참말인지 거짓말인지 그 결과를 봐야 안다 요렇게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녜 이렇게 모두 잘 압니다. 녜 그렇습니다.
그 말이 남을 속이는 말인지 해하는 말인지 유익을 주는 말인지 결과를 봐야 압니다. 왜 있는 걸 있다 하고 없는 걸 없다 했을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 뜻을 이루는 데에 해독이 되고 방해가 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거짓말이 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하는 이 구원 역사에 인간을 영원히 유익되는 이 아는 유익되게 하는 이 역사에 도움이 되고 유익이 된 것이라면 그것은 참말이 됩니다. 참말이 돼. 그 사람에게 참된 말 사람에게 유익된 말이 고 말이요.
하나님과 사람에게 유익된 말은 그것은 다 참의 것이요 옳은 것이요 바른 것이요.
아무리 옳은 것 같애도 하나님과 인간에게 해독이 되어지는 그것은 속이는 말이요 꼬우는 말이라 말이오.
유익된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는 속여서 망치는 것이라 말이오. 그러면 에덴 동산에서 뱀이 해와에게 말할 때에 네가 선악과 먹으면 선악을 아는 것이 하나님과 같이 될 줄 알아서 그래 못먹게 했다 그 마귀 한 말이 그게 그렇게 되는 것을 말했소 안되는 걸 공연히 말했소? 그렇게 되는 걸 말했습니다. 되는 걸 말했소.
그러니까 고거 결과를 말하지 안하고 그대로만 말하면 고 말이 맞은 말이요.
거짓말이요 맞은 말이요? 맞은 말이지마는 그것이 아담 해와에게 하나님 된다 하니까 아담 해와는 그 소리 듣고 우쭐해 가지고 아이구야 이것 먹으면 하나님 같이 되겠구나 하나님 되겠다고 좋겠다고 먹었는데 나중에 그 해와는 죽지 안했습니까? 아담도 죽고 죽지 안했소. 그것은 사탄이 동기가 요렇게 말하면 조것이 꼬이서 넘어 가 가지고 하나님 된다고 하니까 하나님 된다 하니까 하나님 될 줄 알고 좋아서 지금 먹을 것이다 거 계획을 가지고 해와를 꼬왔단 말이요.
꼬우니까 해와가 꼬임에 넘어 가 가지고 선악과를 벌떡 다 먹어버렸거든. 따먹고 나니까 그 선악한 것이 하나님 같이 된 것은 무슨 말이요.
하나님은 당신을 중심으로 해 가지고 당신 좋아하는 선 당신 싫어하면 악인데 이제 아담 해와가 하나님 같은 입장에 서서 저거 좋아하면 선으로 저거 미워하면 악으로 이렇게 판정했으니까 이제 이 판정이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아담 해와 판정이 맞서 안맞소? 안맞는다 그말이오.
그 무슨 말인고 자꾸 이래 배워서 말귀를 알아 들어야 됩니다. 선악을 아는 것이 우리 중 하나와 같다 인간들이 하나님 같이 완전자가 돼 가지고 자기 좋아하는 선, 자기 미워하면 악 이렇게 완전자가 돼 가지고 그러면 그렇게 자기중심으로 판단하는 그것이 옳습니까 틀립니까? 예 옳지요. 그러나 자기가 완전자가 되지 못하고 거짓뿌리자 거짓된 자가 되어서 자기중심으로 선악을 판정하면은 그 선악 판정은 바른 것이 되겠습니까 삐뚤어진 것이 되겠습니까? 삐뚤어진 것이 되지요.
고걸 말한 것입니다.
뱀이 하와에게 말한 것은 하나님 된다 말은 네가 하나님이 당신 중심으로 선악을 규정지우는 것처럼 이것 먹으면 네가 네 중심으로 모든 선악을 규정지우게 된다.
그러면 그게 망하는 것이요 사는 것이요? 망하는 것 아닙니까? 마귀라는 놈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그 말은 사실이라 그말이오.
사실이지마는 동기와 목적이 그 사람을 죽여 망하게 하기 위해서 그런 동기와 그런 목적을 가지고 고렇게 아담 해와의 그 심리를 이용해 가지고 해와의 그 무지를 이용해 가지고 고렇게 죽일 목적으로 계획으로 해 가지고 고렇게 했으니까 고 말이 아담 해와에게 대해서는 속이는 말입니까 그 살리는 말입니까? 속이는 말 죽이는 말이니까 그거 거짓말이요 참말이요? 거짓말이지. 이러니까 뱀이 해와에게 한 말은 거짓말이라 그말이오.
여러분들이 거짓말 참말에 요렇게 내리십시요. 이것도 이제까지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역사에 있는 말이 아니라. 이러기 때문에 이 말 하면은 다른 사람들이 놀래.
여리고 성에 기생 라헬이 있었지요. 라헬이 왜 구원을 얻었느냐? 그 정탐꾼이 여리고 성에 갔을 때에 여리고성 그 파수꾼들이 정탐꾼 들어왔다고 잡아 죽이려고 지금 우 서두는데 그 라헬의 집이 가 있었다 말이오. 라헬이지 라합의 집에 가 있었다 말이오. 라합의 집에 가 있었는데 와 가지고 정탐꾼이 여기 들어왔느냐? 지금 정탐꾼이 이리 갔다 저거 이층에다가 숨겨놓고 저리 갔다 이렇게 말했다 말이오. 그러니까 그 거짓말이요 참말이요? 거짓말 아닙니까? 거짓말이지 그랬는데 하나님께서는 말했다고 기생 라합을 여리고 성을 멸할 때에 멸하지 말고 기생 라합은 멸하지 말아라. 그래 가지고 기생 라합이 누구의 조상이 됐지요? 누구의 조상이 됐어요? 예수님의 족보에 보면은 라헬이 기록해 있었다 말이오. 라헬을 통해서 그 라헬이 예수님의 조상 중에 하나로 들어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그런데 기생 라합이 여리고 성에 있었지마는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을 멸할 때에 '그 기생 라합의 집을 멸하지 말아라 그건 구원해라' 그건 구원을 받았다 이거요. 무엇 때문에 그 정탐꾼을 구원해줬기 때문에 어떻게 구원해 줬는데 이층에 두고서 저리 갔다 거짓말 했기 때문에 구원해 줬는데 거짓말 했다고 하나님께서 그 라헬을 구원했다 그말이오.
그러면 하나님은 거짓말 한 자를 구원합니까? 거짓말 한 자는 멸합니다. 거짓말 한 자는 거룩한 성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라헬이 말한 것이 거짓말입니까 참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참말을 했다 말이오. 왜 참말이라 그것이, 하나님께서 인생을 구원하려고 하는 구원 역사에 거기 협조를 했지 방해하지를 안했다 그말이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참일입니까 거짓일입니까? 참일 하시는데 협조했기 때문에 그이는 있는 것을 없다고 했지마는 거기 그건 인간에게는 인간에게 대해서는 참 옳은 말이요. 인간에게 대해서는 돕는 말이 아니고 인간에게 유익을 주는 말이 됐다 그말이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협조하는 말이 됐다 그말이오. 이래서 성경에 난해 중에 이 거짓말을 함으로 구원을 주시다니 그게 난해절입니다. 난해절인데 해석을 못했어요. 해석을 이제까지 못해 나왔어요. 그래서 신학의 난해절 가운데에 그 절수가 들어갑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해석을 한다 이거요. 그거는 거짓말이 아니고 그건 참말이다 아무리 있는 걸 있다 해도 하나님을 하나님의 하시는 역사를 대적하면은 하나님의 하시는 역사는 인간과 피조물을 구원하시고 복되게 하는 역사인데 인간과 피조물로 복되게 하는 역사를 방해하는 그 말은 아무리 있는 것 있다 해도 그거는 인생에게 대해서 하나님에게 대해서 참된 말이 아니요 다 속이는 말이요, 해치는 말이요, 거짓된 말이다 그말이오. 그 거짓된 말 아닙니까? 이해가 됩니까? 이게 이해가 돼야 되요. 여러분들이 이해가 안 되면은 바깥에 나가면은 마구 신학자들이 와 달라들어 가지고 막 버석거리고 이럴 판인데 그만 넘어가기 쉽다 그말이오. 똑똑히 알고 있어야 요동치 안하지 거짓의 정의는 어떻게 내리느냐? 거짓은 하나님과 인간의 속이는 것이 거짓이라. 알겠소? 속이는 것은 어떤 게 속이는 것인데 해하는 것이 속이는 것이라. 그러면 해하는 것은 속이는 것은 거짓이라. 해하는 것은 거짓이라.
하나님의 하나님에게 해를 끼치지 안하고 하나님 하시는 일에 피조물을 복되게 하는 일, 피조물을 복되게 하는 말, 피조물을 유익되게 하는 일, 그것은 다 그것을 선이라 해야 되겠소 악이라 해야 되겠소? 예? 어째요? 선이라 해야 되지.
모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피조물 유익되게 하는 그런 말이라면 그 말을 선한 말이라 해야 되겠소 악한 말이라 해야 되겠소? 그 말을 참말이라 해야 되겠소 거짓말이라 해야 되겠소? 녜 고것을 여러분들이 고 정의를 잘 알아서 하십시요.
하나님의 지식과 인간 지식이 있는데 하나님의 지식은 산 지식이요, 인간 지식은 다 죽은 지식, 다 과학도 그것이 죽은 지식이라 말이오. 거짓지식이라 말이오. 왜 거짓지식이라 그 지식은 인간을 전부 죽이고 망치는 것뿐이지 인간을 살리는 것은 한내끼도 끼어있지 안하거든요. 그러니까 그 지식이 죽이는 지식이요, 해하는 지식이니까 그 지식은 그 거짓된 지식이요 참된 지식이요.
김 뭐고 계명 김장로님 아들 뭐이요? 그거 알아봐. 이거 모르면 안되요. 여기서 새벽으로 배운 거는 아주 진주입니다. 이것이 이제까지의 하나님과 사이에 장벽을 마구 뚫고 장벽을 뚫고 들어가는 것인데 그러니까 장벽 뚫는 것이기 때문에 고함을 지르면 여러분들이 알고 난 다음에는 고함을 언제 지르느냐? 고함을 지르는 것은 다 알고 난 다음에는 왜이렇게 하지 않느냐? 고함을 지르지마는 처음에 가르칠 때에는 고함을 지르면 못알아 들어. 그렇기 때문에 솔솔솔 한다 이거요 알아 듣도록.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이 가로막는 벽을 막 뚫고 들어가는 것인데 이러니까 뚫고 들어간 것만치 저 깊히 뚫고 들어갔으면 그다음에 세상 사람들 보면은 저 밖에서 지금 생각하고 논리하고 있다 말이오. 거기서 맞은 것 같지마는 이 안에서 보면 틀린 게 많다 그말이오.
인간이 가진 지식은 전부 다 죽은 지식이요, 죽이는 지식이요, 하나님의 지식은 산 지식인데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은 하나님의 지식으로 자기의 지식을 삼는 그것이 지식이라는 속성이 살아나는 것이라 그말이오. 하나님의 지식으로 자기 지식을 삼으려고 하면 그 지식을 바꾸는 것인데 그 지식이 내게 커지고 이 지식은 잡아 먹히는 것인데 그러면 하나님의 지식대로 하나님의 지식을 자기가 가지고 인간 지식은 죽고 하나님의 지식은 살고 하는 것이 언제 시작됩니까? 시작은 언제 되지요? 예 그 시작도 현재에 됩니다.
요거 여러분들 잘 알기 어려워 시작도 현재에 됩니다. 인간 지식을 그 하나님의 지식 산 지식이 죽은 지식을 잡아 먹는 그 시작도 현실에서 됩니다. 시작도 현실에서 되고 아주 그 지식을 잡아 먹어서 하나님의 지식이 살이 찌고 인간 지식은 거기 삼켜져서 마치 죽은 생선 한토막을 산 사람이 척 먹었으면 그 죽은 생선 토막은 없어졌지마는 없어진 그 생선 토막이 뭣 됐습니까? 녜 산 살과 피가 됐지요. 그렇지 않소? 그렇지 않아? 왜 모두 죽은 생선 그 한토막을 말이오. 내가 먹었으면 그 죽은 고기가 내 산 피와 살이 됐소 안됐소? 산 피와 살이 되고 나머지기는 찌끼로 나가고 산 피와 살이 됐지.
이것 모양으로 죽은 지식을 산 지식이 잡아 먹으면 그것은 그 죽은 지식이 산 지식의 피와 살이 됩니다. 그러면 죽은 지식이 산 지식에게 잡아 먹히면 죽은 지식 그것이 없어집니까? 죽은 지식 그것이 변해서 살아났습니까? 예 살아났지요.
그거 여러분들 이해가 됩니까? 살아났지요.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고린도후서 5장에 "썩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기 위해서 지금 힘쓴다" 바울이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죽은 지식을 산 지식이 잡아 먹기로 시작하는 것도 현실에서 된다 그말은 시작하는 게 뭐인데? 이 인간 지식 이 지식은 죽이는 지식이요, 죽은 지식이요. 하나님이 선포해 놓은 이 성경 지식과 영감 지식은 산 지식이라. 이제 이것은 살았고 이것은 죽었다 이 판정이 언제 됩니까? 예 판정이 현실에 되지요. 판정이 현실에 되기 때문에 현실에 있는 요거는 산 지식이 죽은 지식을 잡아먹기 시작하는 것이라 말이오.
잡아먹기 시작하는 것 잡아 먹어야 되겠다 잡아 먹으려고 이거는 잡아먹어야 되겠다. 산지식이 죽은 지식을 잡아 먹어서 죽은 지식이 산지식에게 삼키워야 되겠다 죽은 지식이 산지식에게 지배를 받아야 되겠다. 죽은 지식이 산 지식 시키는 대로 해야 되고 산 지식은 죽은 지식을 통치를 해야 되겠다 요것이 자기 마음에 작정되는 고것이 산 지식이 죽은 지식을 잡아 먹기 시작하는 것이라 그래요. 이런데 언제 완전히 잡아 먹습니까? 잡아 먹기를 언제 완전히 잡아 먹습니까? 잡아 먹는 그것은 과거에 잡아 먹소 미래에 잡아 먹소 현재에 잡아 먹소 요 다음에 잡아 먹을 시기가 온다 말이요. 고것도 현재에서 잡아 먹어야 된다 말이오.
현재에서 어떻게 잡아 먹는가? 인간 지식대로 하면 너를 살려두고 하나님 지식대로 하면 너를 죽인다 그러면 다니엘이 그때에 당했을 때에 기도해야 된다는 그것은 누구의 지식이요? 또 기도하지 말아라 하는 것은 누구의 지식이요? 그러면 두 지식이 지금 싸우느라고 사자구덩이 넣고 자 네가 이제 인간 지식대로 안하고 하나님의 지식대로 하면 사자구덩이 집어 넣는다 너는 할 수 없이 죽는다 하면서 참 온 전국이 다 그렇게 결정을 해놨고 마지막은 다리오왕도 이제 네가 그러면 사자구덩이 가서 죽으니까 어짜든지 요번만은 하나님의 지식대로 하지 말고 인간 지식대로 해라 그것을 하루종일 달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지 안했어요? 그럴 때에 다니엘이 인간 지식을 하나님의 지식이 잡아 먹고 인간 지식은 거기서 하나님의 지식에게 정복을 당하고 하나님의 지식은 인간 지식을 정복하고 하나님 지식 기도해야 된다 하는 그 지식은 기도하지 말아라 하는 그 지식을 잡아 먹어서 기도하지 말아라 하는 그 지식은 기도하라 하는 이 하나님의 지식에게 졌지요. 정복을 당했지요.
그래 가지고 다니엘은 하나님의 지식대로 하지 안했습니까? 그러니까 어디 들어갔어? 사자구덩이 들어갔지요. 이러니까 다니엘이 그때 하나님의 지식을 자기 지식으로 삼고 인간 지식을 그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지식을 마귀 성품이 하나님의 성품으로 바꾸어지는 것 마귀 지식이 하나님의 지식으로 바꾸어지는 것 자기는 하나님의 지식을 자기 지식으로 삼고 이제 마귀 지식은 자기에게 정복을 당해버리고 죽어 멸살을 당해버리고 이제 하나님의 지식이 자기를 주장하게 됐고 다니엘의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이 이제 완전히 됐지요.
어 나는 사자구덩이 들어가도 하나님의 지식대로 하겠다 이러니까 다니엘을 묶어 가 가지고 사자구덩이 넣으려고 할 때에는 그때는 다니엘에게 네가 하나님의 지식대로 하지 말고 요 동안은 기도하지 말아라 하는 그 인간 지식이 다니엘에게 말을 하고 있습니까 다니엘 앞에 있습니까 다니엘이 그거에게 완전히 절단났습니까? 예 다니엘은 하나님의 지식으로 완전히 결정을 지워버렸소.
아직까지 인간 지식이 거기 와 가지고 자꾸 침노를 하면서 하지 말아라 그렇게 그 침노하고 있습니까? 침노하지 않고 하나님의 지식으로 단일 지식으로 딱 되버렸지요. 그 하나님의 단일 지식으로 이 두 지식이 그리 하지 말아라 하라 자꾸 다니엘은 안 그랬지마는 옆에 하라 하는 게 있다 말이오. 꼬우는 게 있다 말이오.
인간 지식이 자꾸 깨트리지 말아라 이랬는데 그리 하지 말아라 인간 지식도 바싹 다 깨버리고 하나님 지식 하나로 꾹 꾹 섰을 그때에는 어느 때입니까? 다리오왕하고 둘이 이야기할 때입니다. 언제지요? 이제는 묶어서 사자구덩이 넣어라 결정짓고 이제는 말하는 사람도 없고 그런 말하는 사람도 없고 이제는 다니엘을 묶어서 사자구덩이 집어 넣을 그때가 결정될 때라 이거요.
그러면 인간 지식을 그것을 하나님의 지식 산 지식이 잡아 먹는 것, 마귀의 속성을 하나님의 속성으로 이렇게 변화시키는 것, 하나님의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하나님의 지식을 변화시키는 데에 어북 힘이 듭니까 조그매 힘이 듭니까? 힘만 가지고 됩니까? 다니엘은 뭣 드려 가지고 됐지요. 생명까지 다 드려 가지고 됐다 그말이오.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 그렇게 쉽지 않다 이거요. 알겠습니까? 그러므로서 이제 고 지식 면에 대해서는 벌써 다니엘은 신의 성품에 참여했다 말이요. 신의 성품같이 신의 성품같이 됐어. 고 지식 면은 고 지식이면 다입니까? 고 지식은 또 딴 지식 또 있다 말이오.
그러니까 요 지식을 죽은 지식을 하나님이 삼켜서 나는 하나님 지식이 내 지식이 되고 그러면 내 속성에 하나님 속성과 같은 속성으로 내 속성이 되어지는 것이 그 지식 하나를 바꾸려고 하면은 단번에 다 됩니까? 다니엘 그때 다 됐습니까? 또 할 게 또 있습니까? 수십 번 수백 번 있는지 모릅니다. 단번에 되는 것 아니요.
이래서 우리가 요 현실 현실에서 이 마귀의 성품 가지고 있던 우리들이 마귀적으로서 열두 가지 있던 것이 이제 그 하나님과 같은 열두 가지로 변화가 되나가는 데에는 얼마나 힘이 듭니까? 그렇게 힘을 써야 된다 이거요. 이게 지극히 큰 소망이라 말이오. 하나님 같이 내가 되어져. 하나님 같이 되어지는 그것이 이 현실에서 되어집니다.
이러니까 요것이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라 신의 성품과 같이 되어지는 자라.
대통령 회에 참여했다 그러면 그 참여했으면 벌써 그만한 수준 아닙니까? 신의 성품에 참여했다 하니까 하나님은 아니지마는 그 하나님과 서로 교제할 수가 있고 그 참여를 할 수 있는데 그 근거주름하이 예수님께서 그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거의 같은 걸 뭐라 하지요? 이 세상에 말하기를 키 작은 걸 모가지 밑에 내려온다 하면 어찌 됩니까? 작다 말입니까 크다 말입니까? 모가지 밑에 내려오는 것 작다 하지요. 그래도 어깨 절음을 하고 있다 어깨 절음 한다 말은 같다 말이요 작다 말이요? 어깨 절음 어깨 비슷하다 말이오. 예 그러면 같다 말 아니요.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 하나님의 장성한 분량에 참여하는 자라 말이오. 하나님은, 피조물은 피조물이지마는 하나님과 어깨 절음을 한다 말이오. 하나님과 비슷하게 된다 이말이오. 이것이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이러니까 우주와 영계를 통치할 수 밖에 더 있겠소? 이런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기지 이러니까 우리가 신의 성품에 하나 하나 참여하는 이것이 무궁세계에서 영계와 물질계 이 모든 것을 상속받는 이것을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상속권리를 만들고 있는 거라 이런데 이걸 방해하는 놈이 어떤 놈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요? 예 (부호)씨 (부호)선생 그래 바로 대답했어.
(부호) 이것 아마 어북 목회 하겠어. 어북 바로 대답해 보면. 엉뚱한 소리 안하고 벌 똑똑이 아니고, 그래 그 반대가 뭐이냐 하면은 정욕이라 말이요. 정욕으로 인해서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할 그것을 못하게 해 가지고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해. 그놈부터 꺽어놔야지. 그놈 안 꺽어 놓으면 헛일이라 말이오. 정욕 그놈이 우리 하는 일에 원수입니다.
이래 가지고 이 욕심 이것을 이름을 뭐라고 지었소? 성경에, 예 유혹의 욕심 꼬우는 욕심이라 말이오. 꾀워 가지고 어짜든지 달콤하게 요것 주마 조것 주마 요래 꼬와 가지고 일생동안 헛일하도록 완전히 꼬우고 꼬와 가지고 일생동안 온박 꼬와 가지고 멸망하도록 만든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그놈을 단속해서 참 바로 잡아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다 헛일이라 이거요. 이렇게 예수를 믿는 것인데 말도 들으면 듣기 싫고 저 듣는 말만 듣고 싶고 어려운 것은 알아 듣기도 싫은 그것이 말도 듣기 싫은 것이 구원 이루어 되겠습니까? 여기 와서 진리를 배우고 이 진리를 배우는데 재미가 없다고 조는 그것은 여기 있어도 그렇소. 졸면 구원 못얻어. 요걸 들으면 마구 정신이 바짝 차리는 것이 좋아서 못견뎌서 음 요대로 되어지고 좋아서 못견뎌서 요대로 되는데 이 책을 먹어라 이 책을 갖다 먹어라 입에는 어떻다 했소? 예 꿀과 같이 달지. 이 지식을 받을 때는 참 달콤하이 좋습니다.
배에는 쓰다 했어. 소화시키려면 써. 이러니까 이 진리를 배울 때는 좋다고 이래 우쭐 우쭐거릴 게 아니라 요것이 실행을 하려고 하면은 고통이라. 고통이라 말은 쓰다 말이오. 요대로 살라 하면 고통이라. 고통이 오니까 그만 도망쳐 버립니다.
우리 저 대학생 요새는 시험이 지나갔다고 해서 새벽기도 참여하려고 여기 와서 어디 가서 예배당에서 잔다든다 자고 그 새벽에 참여할라 하는데 지금은 손 한번 들어봐. 녜 이런데 지금은 무슨 맛으로 보고 하느냐? 하면 꿀같이 단맛 보고 합니다. 꿀같이 단맛 보고 고것만 봐 가지고는 헛일입니다.
요 다음에는 배에는 쓰다 했어. 입에는 꿀과 같이 다나 배에는 쓰다. 소화하려 하면은 쓰다 그말이오. 참 자기 영양을 채울라 하면은 쓰다 그말이오. 소화할라 하면 써.
이것을 들어 가지고 요대로 실행을 할라 하면은 굉장한 고통이 옵니다. 고통이 오지마는 고통이 와도 한번 소화를 시켜 놓으면은 영향이 오니까 기운이 번쩍 나는 것이 되어진다. 그러니까 믿음으로 믿음에 나간다 행함으로 행함에 나간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요걸 깨달아야 돼요. 중간반 반사들이 이거 가지고 어떤 사람은 일주간 동안에 엿새 설교를 열네 번 했다 하는데 이번에 얼마 조사 안나오네요. 해놨습니까? 녜 그다음 인자 내일 아침에 발표하겠습니다. 그 열네 번 설교했데. 엿새 동안에 열네 번 이런데 이 진리를 자기가 깨달아 가지고 여기서 느껴서 마음에 자기가 실행하면 힘이 나오고 실행하면 참 유익을 봤으니까 능력 올거라 말이오.
이래 가지고 증거해봐. 부흥사가 안되는가? 껍데기만 앵무새 같이 전하면 안돼 자기가 깨닫고 그 속에 사무친 게 있어야지. 그런데 이놈이 원수라 말이요.
정욕이 원수라 이놈의 원수는 정욕이 원수라. 이놈이 들어서 망친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원수는 그놈이라 그러기 때문에 그놈을 그놈이 하는 일을 어찌 됐던간에 물리쳐서 정욕으로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일 하는 것을 그것을 어짜든지 피해야 돼. 피해야 되지 안피하면 안돼. 죽어 망해. 그 부지런히 피해야 돼. 피하고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이 일을 해야 되겠다 그거요.
이렇게 우리 사는 길이 환하게 있는데 이 길을 알지도 못하고 뭐 무슨 활만 쏘우면 새가 잡힙니까? 녜 물속에서는 고기가 잡히겠소 새가 잡혀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짜든지 이 자리에서 그만 듣고는 후덕 달아나지 말아요. 이 자리에서 요걸 새기고 새기고 새겨 가지고 첫째는 이치적으로 맞아서 아멘 옳은 이치다 진리다 과연 진리다 옳은 이치다 그거 맞다 옳다 요것이 자기가 긍정이 되고 난 다음에는 내가 요대로 살겠다 요 자리에서 결심을 가지고 결심을 해놓고 결심을 들고 가야 됩니까? 결심은 해 놓고 결심을 그 책상 위에 놓고 가야 됩니까? 들고 가야 되는데 대개는 결심을 책상 위에 놓고 그만 책상 위에 놓고 달아난다 이거요.
그러니까 헛일, 그 결심을 들고 가야 돼요. 들고 가다가 가다가 보니까 잊어버리고 또 결심해 가지고 또 서 가지고 결심하고 가는 요 다리 건너가 촌에 가면 돌로 요래 다리놔 놨어. 하나 둘 이래 놨어. 이때까지는 왔는데 이 물이 장 이러니까 빠질까 해서 건너갈라 하다 잊어버렸다 말이오. 놓쳤다 말이오. 그러면 도로 건너와 가지고 그걸 새로 잡으려고 애를 쓰니까 그만 어디로 갔는지 없어.
없으니까 아이구 얻은 자리로 가자 도로 저 산골로 날은 저물어서 어두운데 저 산골로 가 가지고 바위 앞에 앉아서 자리 얻었던데 그 자리 가 가지고 자기 암만 가야 안 만나요.
암만 해도 못만난다 말이오. 잊어버리면 그렇습니다. 이러니까 이것을 할 수 없어 내려오지는 못하고 밤에 자면서 자꾸 밤새껏 찾으려고 애를 쓰고 이러니까 주님이 떡 오셔 가지고 만나주게 된다 말이오. 그러면 그때는 잡고 난 다음에는 놓지 안하고 어두운데 잡고 난 다음에 노트에 대략 잊어버리지 안하고 넣고 단단히 챙겨 가지고 이래 가지고 갑니다.
이제 노다리 갈때에 다른 사람 보면 똑 미친 사람 같이 중얼 중얼 자꾸 이러며 간다 말이오. 속에서 자꾸 베인다 말이요. 베이져 가지고 그날 주일날 가 가지고 이것 척 증거하면은 모든 양떼들이 양식을 먹고서 살아난다 이거요.
이 반사들도 이렇게 해야 돼. 그러면 뭐 남반은 다 목사될 것이고 여반은 성경에는 목사 없는데 앞으로는 목사 다 할런지 모르요. 이 세상에 안되도 권사면 우리 여기 (이말출) (김현찬) 저런 이는 목사도 아주 특등 목사요, 일등 목사가 아니라 가면 살리니까 뉘 집에든지 나중에 망할런지 흥할런지 한마디 떡 말해주면 살아난다 말이오.
이러니까 죽고 망하는 게 자기에게 있는데 안갈 수 없으니까 다리를 질질 끌고도 가지. 이러니까 나이가 많을수록 필요가 있지 추집사님 없으니까 그만 그 구역에 힘이 흔들흔들해. 이런데 그 내일 옵니다. 내일은 인자 와서 일을 좀 잘 할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짜든지 정욕 고놈을 우리가 죽여야 됩니다. 정욕을 이 세상에 온갖 욕심 하나님 앞에 죄가 되는 그 욕심은 다 정욕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