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계약

 

1987. 5. 31. 주일오후

 

본문:마태복음 5장 17절∼20절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오전에는, 하나님께서 일반적으로 인류들에게 선포해 놓으신 신인 계약이 있고 또 그 범위 안에서는 특별히 택함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한해서 신인 계약 선포해 놓은 것이 있는 것을 말했습니다.

이방과 택자를 망라해서 선포해 놓으신 신인 계약도 진리이기 때문에 영원히 폐해지지 않습니다. 하늘나라 가서도 지켜야 하고 영원히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구속을 받아 중생된 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선포해 놓은 계약도 진리기 때문에 폐해지지 안하고 영원히 존속돼서 우리 사람들과 다 관련을 가지고 보응합니다.

우리 신자들은 불신자에게 하나님이 선포해 놓으신 그 계약은 상관이 없느뇨, 생각하기 쉬우나 그렇지 않습니다. 신불신자에게 선포해 놓으신 그 계약이 제일 처음 기초 계약입니다. 그 기초 계약 위에 중생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또 선포해 놓은 신인 계약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신인 계약은 신불신자를 망라해서 선포한 계약과 믿는 사람에게만 선포해 놓은 계약과 계약이 두 종류가 있다 이렇게 분류할 수 있습니다.

불택자들은 불택자들에게 해당된 계약만 지키지 그 계약 외의 거는 지킬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또 상관이 없습니다. 그 계약에 대해서 계약 이행하고 이행하지 안한 거게 대한 아무런 보응이 없습니다.

택자들은 전인류에게 선포해 놓은 그 계약 위에 택자들에게 대해서만 선포해 놓은 계약이 있으니 잘못 생각하면 택자들에게만 선포해 놓은 계약만 지키면 되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을 가지기 쉽습니다.

불택자들은 자기네들이 지키고 안 지킬 계약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해당된 계약은 지켜야 되고 그들에게 해당되지 아니한 택자들에게 해당된 계약은 지킬 이유도 없고 지킬 수도 없고 지켜 보았자 아무런 효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택함을 받고 중생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전인류에게 일반적으로 선포해 놓은 그 계약도 기초 계약으로 지켜야 하고 또 그후 그 계약의 토대 위에 택자들에게만 또 선포해 놓은 그 계약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에 선포된 신인 계약은 택자들은 다 지켜야 한다 하는 것이 결론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택자들에게 간단하게 말해 놓은 그런 계약만 지키면 되지 이전 계약은 지킬 이유가 없다 그렇게들 생각해 가지고 마귀의 시험에 많이 듭니다. 신인 계약이라 하는 것은 이는 진리입니다. 진리는 없어지지 않고, 진리는 늙어지는 것도 아니고 진리는 쇠해지는 것도 아니고 진리는 차차 도태돼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진리는 영원히 있습니다. 신인 계약은 진리이기 때문에 영원히 있어서 신인 관계를 관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하늘나라는 가면은 거게는 계약 지킬 이유가 없겠고 좋겠다 하지마는 창세기 1장에 “인생이 모든 피조물을 통치하고 생육하고 번식한다” 하는 그 계약은 하늘나라에서도 그대로 계속됩니다.

또 아담 하와에게 “에덴동산을 다스리고 지키고 먹고 먹지 말아라” 하는 그 계약은 하늘나라 가서도 지킵니다. 영원히 지킵니다. 그런 것들을 다 지키고 초월하고 초월해서 있어서 그와는 상관없는 거 같지마는 그 계약은 다 지키게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들에게 선포하신 계약은 그 시만 선포되고 문서로 그 뒤에 우리에게 보존해 주지 아니한 그런 신인 계약도 있으나 그 신인 계약은 사람들의 양심과 성령의 감화로 다 깨달아 알게 돼 있기 때문에 하나도 폐해지지 안했습니다.

그러기에, 계약을 초월한 계약, 또 그 계약을 초월한 계약, 그 계약의 토대 위에 건설된 계약, 또 건설된 그 계약 위에 또 새 계약 이렇게 얼마든지 층어리를 내서 제일차적으로 선포해 놓은 계약도 폐해지지 않고 그대로 존속하고 다 우리와의 관계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왜? 이것은 창조주와 만물의 영장인 사람들과의 관계점에 없어지지 아니할 이치기 때문에, 관계에 올바른 이치요 법칙이기 때문에 이거는 폐해질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창세기 1장으로부터 계속해서 나온 하나님의 법칙은 이 문서계시에 명문되어 있지 않는 것도 있고 명문되어 있는 것도 많이 있는데 명문되어 있지 않는 것이든지 명문되어 있는 것이든지 이거는 신인 관계에 관한 진리인 계약이기 때문에 이것은 폐해지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 모든 신인 계약을 우리는 중요하게 여겨서 심사하고 또 잘 익숙하게 해서 항상 그 계약 안에서 살아야 되고 그 계약을 준해서 우리는 움직여야 우리에게 사망의 해가 오지 안하고 모든 생명된 것이 우리에게 계속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일반인에게나 택자들에게 선포해 놓은 그 모든 계약은 신인 관계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점과 또 올바른 관계점인 그 진리를 우리에게 선포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곧 그 계약은 우리에게 있어서 생명이요 영생이요 생애 법칙이요 또 모든 사망을 피하는 법칙들입니다.

공연히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슨 법조를 내 가지고 그렇게 우리들로 하여금 지키도록 하기 위해서 있는 그 법조문이 아니고 곧 이는 생명법입니다. 살게 하는 법이요 죽음은 피해서 이기게 하는 법이기 때문에 이 법칙은 영원히 존속되고 우리는 이 법칙 안에서 살아야 되지 이 법칙 밖에 나가면 죽는 것입니다.

다만 그 법칙을 지켜 초월해 있으면은 그 법칙은 폐해진 것이 아니라 그 법칙은 벌써 지키기 익숙해서 초월했기 때문에 그 법칙 이행 위에서 살고 있는 것이지 그 법칙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 법칙이 기초 법칙이 되어 있고 제일 주춧돌 법칙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포해 놓은 법칙이 예를 들어서 만일 천 법칙이 있다고 하면은 일, 이, 삼, 사 나중에 구백구십구, 천 이래 되면은 제일 기초되는 지식이 뭐이냐? 제일 처음에 선포해 놓으신 그 법칙이 일호 기초 제일 중요한 기초 지식이요 법칙이요, 그 다음에는 이호요, 그 다음에는 삼호요, 그 다음에는 사호요, 그 사람이 지금 천 계약 법칙 중에 일천호가 되는 마지막 그 법칙을 지키고 거게서 지금 왔다 갔다 하면서 지켰다가 범했다가 지켰다가 범했다가 하면은 그 사람은 벌써 이하의 법칙은 다 지켜서 초월해 올라와 가지고 거게서 지금 다시 거게 더 그것을 통과해 갈라고 애를 쓰는 것이지 그 전에 법칙을 버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신인 관계에 입법으로 선포해 놓으신 모든 계약법은 그것은 하나도 폐할 것이 아니고 다 그 위에 그 법, 그 위에 그 법, 그 위에 그 법으로 이렇게 첩첩이 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일호법을 지키기 전에는 이호법을 지킬 수가 없고 이호법을 지키기 전에는 삼호법을 지킬 수가 없고 그렇게 순서적으로 지킬 수 있는 것이 마치 돌담을 쌓는 사람이 일호 첫돌 놓고 그 위에 둘째 돌을 놔야 되지 첫돌 놓고 둘째 돌 놓는 거는 누구든지 다 놓을 수 있지마는 첫돌을 놓지 아니하고 빈 데다가 둘째 돌을 놓을 수는 절대 없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겠습니다.

이래서, 오전에는 하나님의 율법은 폐할 수가 없다 하는 것을 증거를 했습니다.

에덴동산에 아담 하와에게 “이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너희가 죽으리라” 말씀하신 그 말씀은 오늘까지, 사람들은 잊어버리고 있어도 그 율법은 그대로 살아서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들이 다 신불신자가 나면 죽는다는 것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선악과 먹으면 죽는다는 그 계약이 그대로 지금 권위 있게 이행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둘이 신앙 걸음을 걸었는데 그 두 사람의 걸은 신앙은 오늘 교회들의 신앙 노선이라 그것을 신인 계약에서 보였기 때문에 그 계약은 지금도 폐쇠되지 안했습니다. 그 계약은 이 나라에서 세운 뭐 국법 모양으로 개헌이나 그런 것이 안 됩니다. 전인류가 다 달라들어도 으례히 안 되고 하나님도 그 법을 개헌하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님이십니다. 왜? 그는 진리기 때문에 폐해지지를 못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신구약 성경 전면에서 하나님이 신인 계약을 한 그 계약을 살펴보면 이 계약은 요 민족에게 한해서 있는 계약이라 그렇게 보여지지마는 그 계약을 살펴보면 자기는 그 계약을 초월해서 지나갔기 때문에 그 계약을 지키고 났기 때문에 지금 그 계약은 다 이미 지키고 있기 때문에 초월해 있는 것이지 그 계약은 내게 해당되지 안한 것은 아니고 또 내가 그 계약을 지키지 아니하고 현 단계에 온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고로 모든 계약에서 우리는 신인 관계의 계약을 낱낱이 다 알고 그것을 좀 세밀히 구별할라면 요것은 상고 시대의 기초다, 요거는 중고 시대의 기초다, 요거는 근세ㅡ가까운 이 근세ㅡ근세 시대의 계약이다, 요거는 현시대의 계약이다 그렇게 구분해서 그런 것을 다 순서적으로 다 지켜서 지내와야 되지 그걸 지내오지 않고는 건설이라 하는 건 있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기독교가 율법을 지켜 이행하는 데는 언제든지 초월적으로 지키지 초절 이행이라 하는 것은 없습니다. 초월 이행이지 초절 이행은 없습니다.

또 기독자가 법을 이제 예수님의 대속으로 다 예수님이 대행해서 율법을 다 행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의가 되었기 때문에, 또 대형으로 우리는 죄 지은 거 다 청산했기 때문에 우리는 죄와 의와 율법에 대해서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아주 속은 생활입니다.

여기 말씀하시기를 17절에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마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이 말은 하나님의 이 신인 계약의 이 계약법은 가감이 없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기독교도 진화의 종교다. 기독교도 진화의 종교다.

창세 이후 천 년 시대에 하나님의 계약과 이천 년 시대의 계약과 오늘 육천 년이 다 돼 가는 시대의 계약과가 많이 증가됐다. 이러니까 기독교도 차차 차차 자꾸 그 계약 조문을 하나 내놨다가 둘 내놓고 셋 내놓고 넷 내놓고 이래서 모든 계약이 차차 더 구비해져 가고 많아져 가고 이래서 진화되는 기독교다 그렇게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지마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에 선포해 놓은 그 계약을 분석하면 신약 시대에 선포된 계약이 그 계약 안에 다 내포되어 있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오늘에 신약에서, 범죄하지 않는 것이나 죄를 방어하는 것이나 마귀의 미혹이라 하는 것이나 이런 것이 자잔하게 여러 수백 수천으로서 분류해 가지고서 우리에게 기록해서 우리들로 하여금 간편하게 만들어 줬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에덴동산 신인 계약 그 계약 속에 전부 내포돼 있습니다. 그 안에 내포되지 안한 것이 새로 발명되고 새로 이제 입법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 안에 다 있습니다.

그러기에 “내가 완전케 하러 왔다” 말은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이 완전법을 이행하지 못하는 것을 이 완전법을 완전히 이행시키기 위해서 왔다 하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폐하러 온 줄로 알지 말아라 완전케 하러 왔다” 율법의 완전은 뭐이 율법의 완전인가? 율법의 완전은 두 가지로 율법의 완전이 됩니다. 율법을 이행하지 않는 자는 율법대로 완전히 치리해서 형에 처하는 것이 그것이 소극적인 완전이요 하나는 율법을 이행했을 때에 이행한 그대로 보상의 상급으로 축복으로 완전히 결론지은 그것이 율법의 완전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율법을 완전케 하러 왔다” 하는 이 말씀은 율법을 인간이 완전히 이행해야 그 율법이 실패가 아니고 또 그 율법을 이행하지 않는 자는 완전히 처벌을 해야 그 율법이 실패가 아니지 법을 어긴 자에게 대해서 처벌하지 못하는 것도 율법의 권위의 실패요 법을 이행한 자에게 상을 베풀지 못하는 것도 율법의 완성이 아니요 율법의 완성은 완전히 이행하고 안 행하는 것으로서 율법이 이행한 자에게는 상급이요 이행하지 않는 자는 벌로써 그대로 요것이 완료가 돼야 율법의 권위는 완전히 서지고 율법은 완전히 완성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일을 하시기 위해서 인간으로서는 율법을 완전히 이행치 못하고 또 율법을 범한 것이 있기 때문에 율법 범한 것은 형을 받아야 이 율법이 완성이 되어지는고로 택한 자들이 법을 범한 그 모든 범법의 그 값을 예수님께서 대신 내심으로서 이 법을 범한 자에게 대한 처리가 완전히 이루어졌고 또 이 법을 행할 수 없는 인간인데 대신 예수님이 이 법을 완전히 이행을 하심으로써 이 법 이행에 완전이 이루어진 것이 예수님의 대속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래서 이 율법은 예수님의 대형, 대행, 대화친으로, 또 부활의 영생으로 이 율법은 완전히 이루어졌습니다. 이래서 로마서 8장 1절 이하에 보면은 “율법의 요구에 완전을 이루지 못하는 연약한 인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독생자를 보내 그에게 정죄해 가지고서 율법의 요구에 완전을 이루었다”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불택자들은 이 율법의 완전이 언제 되느냐? 이 율법의 완전이 현재에 됐습니다. 불택자들에게는 이 율법의 완전이 현재 됐습니다. 이 율법을 범한 자는 영원히 사망시키는 것이 이 율법의 의무의 완전 이행인데 불택자들에게 대해서는 벌써 정죄돼서 영원한 사망의 그 사형을 벌써 선포해 가지고서 사형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데 택자들도 이와 같은 이 선포받은 거기에 예수님이 오셔 가지고서 다시 새로운 일을 시작해서 대형으로 이제, 대형으로 율법의 요구에 완전을 이루고, 대형을 했기 때문에 그 형으로 죽지 안하고 남아 있는 자가 있는 것이 택자들이니 이것이 이제 이 율법을 초월한 새 것입니다.

또 대행해서 이 율법을 완전히 이행한 자가 되어져서 적극적으로 이행한 자가 되었기 때문에 이행함으로 예수님은 죽었으나 살아 있는 자가 예수님의 대행으로 살아 있기 때문에 율법을 완전히 행한 자가 남아 있고 율법 범한 그 형을 완전히 받은 자가 남아 있고, 받은 자가 남아 있기 때문에 죄 없는 자가 남아 있고 율법을 완전히 행한 자가 남아 있고 이 두 가지가 해결되니까 하나님과는 완전히 화친이 이루어지는 것이니 화친이 이루어진 화친된 자가 남아 있는 것이 예수님의 대속입니다.

하나는 이 죄에 대한 형을 완전히 이 형으로써 완전히 끝맺어서 이 형을 완전히 받아서 다시는 형을 할 수 있는 죄가 남아 있지 안하고, 죄로 죽었기 때문에. 죄로 죽었기 때문에 남은 죄의 형이 없는 사람이 남아 있고 율법을 완전히 이행한 사람이 남아 있고 하나님과 완전히 화친된 사람이 남아 있으니 이거는 누군가?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사람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사람들이 남아 있는데 예수님은 우리를 대형해서 죽어버렸습니다. 우리를 대형해서 죽어버렸습니다. 영원히 죽었습니다. 우리를 대형해서 영원히 죽었습니다. 우리를 대행하느라고 영원히 죽었습니다. 우리를 하나님과 영원한 화친을 이루기 위해서 완전히 죽었습니다. 살 수 있는 자로 죽은 게 아니라 완전히 죽었습니다. 완전히 죽으셨는데 하나님의 많으신 긍휼로 하나님께서 새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려내셨습니다. 이래 가지고 예수님은 산 예수님으로 부활해서 살아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죄의 형이 완전히 전멸되었고 또 하나님의 전지 입법의 요구가 완전히 만족을 이루어서 완전 이행이 이루어졌고 또 하나님과 불목이 화친해서 완전한 화친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면 사죄가 완전히 이루어졌고 칭의가 완전히 이루어졌고 화친이 완전히 이루어졌는데 이것은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이루었기 때문에 이 일은 이루고 예수님은 죽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셨는데 그대로 있으면 예수님은 죽고 우리에게는 이 세 가지 완전이라 하는 것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와 가지고 우리에게 있고 예수님은 죽으셨습니다.

이랬는데 삼위일체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 가지고서, 긍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렸습니다. 예수님의 다시 산 것은 다시는 사망과 죄와 마귀와 상관이 없고 불목이 없는 완전자로 예수님도 살았고 대속을 입은 우리들도 살았고 산 자가 둘입니다.

완전히 없어진 거는 뭐이 없어졌는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그 형이 완전히 없어졌고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가 완전히 없어졌고 하나님과 불목이 완전히 없어졌습니다. 다만 그 형과 율법이 계속 명령하고 있는 그 율법의 명령과 하나님과 불목의 그 호소는 불택자들에게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불택자들은 그대로 남아 있고 택자들에게 완전히 해결이 됐습니다. 해결이 됐소.

해결이 됐는데 택자들의 영은 완전히 해결이 됐고, 택자들의 영은 완전히 해결이 됐고 택자들의 이 심신인 육은 법적으로 해결됐고 소망적으로 해결이 됐지, 법적으로 해결이요 소망적으로 해결이지 실상으로는 해결이 되지 못하고 미결 중에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들이 탄식하기를 양자될 것 곧 몸의 구속을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했습니다.

양자될 것이라 말은 우리의 심신으로 된 이 육의 양자될 것이라 아직까지 미결이라 말이오. 또 우리의 몸의 구속이 아직까지 안 됐는데 구속을 받을 이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탄식하고 고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시리라” “그리스도의 영이 너희 안에 계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분이, 그 살리신 분이ㅡ살릴 때에 성령으로 살렸는데ㅡ살리신 분이, 너희 안에 영이 계시면 그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다시 살리리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죽을 몸이라 말은 아직까지 죽지 안한 몸이요 살아 있는 몸인데, 살아 있는 몸인데 죽을 수도 있고 안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죽을 몸이라 말은 소망으로는 살아 가지고 있는데, 소망으로는 살아 가지고 있는데 소망으로는 살아 가지고 있는 이것이 소망대로 살 수도 있고 죽을 수 있기 때문에 “죽을 몸도 다시 살리리라” 우리의 몸을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의 이 심신은 예수님의 이 세 가지 대속으로서 우리의 이 남아 있는 심신은 죄가 없는 심신입니다. 완전 의로운 심신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 되어 있는 심신입니다. 이것이 이 자체의 행함의 공로로 된 거 같으면은 변동이 없지마는 예수님이 대신해서 이 대속의 공로를 우리에게 입혀 주어서 이 공로를 우리가 믿음으로 입음으로 우리가 깨끗하고 완전해졌습니다.

지금이라도 이 믿음으로 대속을 입음으로 깨끗해진 것이 깨끗해진 것을 믿는 믿음을 버리고 깨끗지 않는 것을 자기가 인정하는, 인정하는 예수님의 대속을 벗을 때에는 우리는 죄인되고 율법이 요구하는 율법을 이행해야 되고 하나님과 불목한 그 값을 받아야 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알아듣겠습니까? 요게 중요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대속으로 의롭다 무죄하다 하나님의 자녀라 하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이 자기 위해서 했다는 이 사실을 믿으므로 죄 없는 자가 되고, 믿으므로 의로운 자가 되고, 믿으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지 이 사실을 믿지 아니하면 불신자와 같은 것으로 다시 돌아가 버립니다. 예수님의 대속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면 그는 악령과 악성과 죄와 사망이 주관하게 됩니다.

믿을 때에, 믿어서 예수님이 대속하셨으니 나는 세 가지 대속을 입은 자기인 것을 믿을 때에 우리는 의로워지고 악령과 악성과 죄와 사망은 우리와 상관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구속받은 중생된 사람은 하루 백 번도 예수님의 대속을 입어서 무죄자, 의인, 하나님의 자녀 됐다가 백 번도 죄 있는 죄인, 하나님의 율법의 지금 심판을 받아야 되는 율법의 심판, 하나님과 원수 이것이 하루 백 번 됐다가 백 번 완전자 됐다 하는 것이 요거 기독자인 것입니다. 요거 단단히 기억합시오.

이 성경 해석들을 저거 마음대로 인본주의로 성경 해석하고 성경대로 해석 안 했기 때문에 오늘 건설구원도 기본구원과 같이 공짜배기로 얻는 것으로 이렇게 지금 생각하고 있는 데에서 전부 이 귀한 건설구원, 구원의 영광, 부활한 자의 영광을 전부 다 뺏기고 있습니다.

이 건설구원, 부활의 그 영광의 구원, 이 행위구원이라고 할 수 있는, 성화구원이라고 할 수 있는 이것은 성화가 돼야 됩니다. 자기가 건설해야 됩니다.

자기가 행위를 해야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루 몇 번이든지 예수님의 대속을 믿음으로 입어 완전자 되고 믿음을 버려, 믿음을 버려 예수님의 대속을 벗음으로서 완전한 죄인과 사망과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하루 열 번도 되고 백 번도 됩니다. 왜? 그것은 믿음으로 되는 거기 때문에 자기가 믿으면 의가 되고 믿음을 벗으면 죄가 됩니다.

믿음은 뭐이냐?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된 우리의 의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자기가 알고 인정하고 그대로 순종하면 믿음이 됩니다.

예수님이 내 죄를 대형해서 죽기까지 해 가지고서 형을 다 받으셔서 형을 완전히 말살하고 나에게 무죄한 사죄를 줬으니,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나의 죄를 다 면제해서 형을 받아 줬으니 이 사실을 알고 인정하고 이러기 때문에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 사죄 입혀 주신 이 사죄를 내가 안 죽기 위해서 사죄를 벗을 수 없다. 죽어도 나는 사죄는 벗을 수 없다. 생명을 주지 사죄는 벗을 수 없다 하는 것이 자기 몸과 생명이 다 믿는 것입니다.

마음으로는 믿으면서 행동으로는 안 하는 것은 마음만 믿지 행동은 안 믿는 것이오. 행동은 믿어도 목숨 문제가 있을 때에 믿지 않는 것은 목숨은 믿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으로 믿어야 되고, 목숨으로 믿어야 되고, 힘으로 믿어야 되고, 우리의 뜻으로 믿어야 되고 다 믿어야 영생이 됩니다.

그런고로 찰나에 예수님의 대속을 자기가 연약함으로 벗었다가 다시 깨닫고 믿음으로 다시 입으면 입었습니다. 입는 거는 쉽습니다. 입었습니다.

입었는데 입고 난 다음에는 반드시 세상이 벗길라고 애를 쓰는 게 있기 때문에 거게는 자기의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해서, 소유와 몸과 생명을 하나라도 가지고는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합니다. 하나라도 가지고는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입기는 찰나에 입었으나 그 입고 난 다음에 벗길라 할 때에 벗지 안해야 제것이 되는 것이지 벗기면 헛일입니다.

누가복음 14장에, “누구든지 자기의 가진 것을 다 버리지 안하면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 하는 그 말씀은 대속을 입기는 쉽지마는 대속을 입고 사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인데, 대속을 입고 사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인데, 대속을 입고 사는 것이 예수님과 꼭 같은 자인데, 예수님의 모형인데, 예수님의 지체요, 예수님의 것이요, 예수님의 종이요, 예수님의 성전이요, 주의 것인데 대속을 입기는 쉽지마는 안 벗기는 어렵다. 대속을 안 벗을라면은 있는 것을 다 내놔야 안 벗지 있는 것을 가지고는 안 벗을 수가 없다 하는 것을 그것을 말씀했습니다.

다하지 안하면 영생을 얻지 못한다 말은 대속을 입은 것은 생명을 입은 것이요 생명 입고 생명 생활 하는 것은 영생인데 생명 생활 하는 것은 이 네 가지를 다 이 대속을 입고 벗지 않기 위해서 다하지 안하면은 생명 생활 안 된다 그 말입니다. 요것을 기억하고,

또 여게 말씀하시기를 19절에, 마태복음 5장 19절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그러면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거 하나라도” 그러면 이 계명 중이라면은 이 계명은 어떤 걸 말합니까? 이 계명은 어느 계명을 말합니까? 이 계명 중이라 말은 신인 관계에 선포해 놓은 계약법을 다 총칭해서 이 계명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이 계명은 창세기 1장으로부터 2장 3장에 거기서부터 하나님께서 신인 계약으로 선포해 놓으신 이 계약, 요한계시 끝장 끝절까지에 선포해 놓은 계약, 계시 이 전부를 다 총칭해서 이 계명이라고 한 말로 말한 것입니다.

그때는 계시록이 기록되지 안했는데 어떻게 다 포함됐는가? 그것은 예수님은 전지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당신이 다 할 것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선포될 계약은 다 총칭해서 이 계명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에 다른 말을 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와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라” 여게서 하늘나라는 이 계명 지킨 그것으로서 크고 작은 것의 근거가 된다 하는 것을 똑똑히 말해 놨습니다. 하나 지켰으면 그만치, 열 지켰으면 그만치, 다 지켰으면 그만치, 하나 범했으면 그만치, 역력히 계명 지킨 행한 대로 영원한 하늘나라에서는 크고 작은 대우는 이루어진다 하는 것을 역력히 말했습니다.

이런데 오늘의 교회들은 이것을 막 묵살해 놓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다 된다’ 이라니까 예수님이 대속의 공로를 몰라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했겠습니까?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또 말하기를 ‘그거는 예수님이 대속하시기 때문에 지키지 안한 자는 작다 지킨 자는 크다 그래 말하는 것이지’ 이렇게 해서 예수님의 대속으로 버무려 가지고서 넘길라고 합니다. 천국에 지극히 작다고 말했으니까 천국 간 것 아닙니까? 예수님의 대속으로만 천국 갑니다. 대속으로 천국 간 자가, 천국 간 자들 중에 제일 작고 크다 그 말입니다. 이것은 다 행위구원입니다. 건설구원이오.

이번에 대구에서도 13장 비유에서 밝히 말할 때에 거게 다 지성인 유식자들은 반대합니다. 유식자들은 반대하요. 그것이 길가밭이 돼서 네가 그렇다. 불쌍하고 가련하다. 네게는 돌덩이가 커서 그렇다. 불쌍하고 가련하게 보여지지 그렇게 그 유식한 사람들이 항거한다고 조그만치나 염려나 그런 거는 없습니다. 불쌍하고 가련한 그것이지. 이 말씀을 그 자리에서도 내가 이 말씀을 했습니다.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이 계명을 다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 교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면 서기관과 바리새 교인은 예수님의 대속을 입지 안했습니까? 대속을 다 입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 교인들은 다 메시야의 공로를 입고 다 모형으로 예약으로 한 짐승의 제사를 드리고 믿고 철두 철미하게 계명을 지킨 그 사람들입니다.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 교인보다 낫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 해석을 ‘그거는 예수님의 공로를 서기관과 바리새 교인들은 입지 못한 그걸 말하는 것이고 우리는 예수님의 공로를 입은 것 아니냐?’ 입지 안했으면 어떻게, 입지 안했으면 그들이 어떻게 믿으며, 믿으며 어찌 믿지 않겠습니까? 요게서 행위구원을 똑똑히 말합니다.

막바로 바로 들어야 됩니다. 구약 시대에 바리새 교인과 서기관들이 철두 철미하게 율법을 지켰습니다. 율법을 지켰지마는 율법 지킴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알겠습니까? 율법을 지켰지마는 영감으로 지키지를 안했습니다.

시므온이라는 사람과 안나라는 그 사람은 여인들인데 나이가 그때에 근 백 세가 다 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탄생할 때. 백 세가 된 사람들이지마는 예수님이 할례받을라고 어린아이 예수님을 아듬고 가니까 아무 소식도 모르는 분들이 예수님이 오시니까 그만 아듬고 가 가지고서 울면서 ‘내가 이제 죽어도 나는 한이 없다. 이제 우리 메시야를 영접했다.’ 왜 그들은 메시야를 그렇게 영접한 걸 알고 그렇게 축하하고 섬기고 이런데 왜 서기관과 바리새 교인들은 몰랐습니까? 이들은 율법으로 지켰지 “하나님은 영이시니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로마서 12장 1절에 “영적 예배니라” 영감으로 섬겼더라면은 예수님을 알 터인데 영감 없는 율법만 외식으로 지켰기 때문에, 왜 영감으로 지키지 못했는가? 영감으로 지키지 못한 것은 양심을 쓰지 안하고 껍데기로 사람 눈가림만 해 가지고 지켰기 때문에 영이신 하나님께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고로, 서기관과 바리새 교인보다 행함이 낫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 말은 무슨 말입니까? 문서 율법을 지키는 동시에 영감과 함께 지켜서 네 율법 행위에 성령이 동행하시고 성령이 옳다 인정해 줘야 되지 천하 인간들이 옳다고 인정해 줘도 네 행위를 성령이 볼 때에 불합격 하면 헛일이다. 여게는 네 인격과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 들여서 정성을 다 들여, 내 인격을 다 들여서 너는 주에게 있고 또 주님의 대속은 네것 돼 가지고 지켜야 된다 이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그런고로 결론으로 하나를 똑똑히 말합니다. 예수님의 대속은 우리를 대신해서 행하셨기 때문에 믿을 때에 입어지고, 믿을 때에 입어지고 대속을 입고 행동할 때에 영생이 이루어지고 대속을 벗을 때에 다시 죄인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입기는 순간에 입을 수 있고, 입기는 순간에 입을 수 있고 입고 그대로 계속하기에는 있는 걸 다 바치지 안하면 계속을 못 합니다. 입기는 순간에 입고 벗지 안할라 하는 데에는 있는 것을 다 들이지 안하면 벗겨지지 안하고 입고 있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입고 있는 데에 입고 행한 것이 영생입니다. 입고 행한 것이 영생이요 입었던 자가 벗고 행동하는 것은 다 사망이지 영생에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요걸 똑똑히 아십시오.

그러면 예수님의 대속을 입는 것은 퍼뜩 찰나로 입을 수 있고 입고 난 다음에는 온 세상과 마귀는 벗길라고 애를 쓸 때에 벗지 안하고 있는 고게 전부 영생입니다.

그러기에 성도들이 자기가 실수해서, 자기가 연약해서 실수해서 예수님의 대속을 연약해서 벗었습니다. 실수로 벗었습니다. 대속을 벗은 행동해서 대속을 벗어 버렸습니다. 대속을 벗었는데 대속을 벗었으니 예수님의 대속과는 상관이 없고 죄와 사망과 마귀의 것이 됐고 하나님과 원수의 것이 됐습니다.

됐는데 자기가 그 자리로 있으면은 일 초 있으면은 그만치 주님의 원수로 있고, 한 시간 있으면 그만치 주님의 원수로 한 시간 지내고, 하루 지나면 그만치 주님의 원수로 하루 지내기 때문에 이 깨달은 사람들은 자기가 실수로 벗었을 때에는 빨리 ‘주님이여 내가 죄를 범했습니다’ 이 죄를 고하면 사해 준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왜? 급하니까, ‘주여 내가 이거 잘못을 범했습니다. 내가 다시 입습니다. 나는 주님의 대속을 입었습니다.’ 하고 찰나에 의인으로서 서는 것이 그것이 성도들입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죄인으로 실수해 범죄했을 때에는 깨달으면 즉시 입어서 예수님의 대속을 벗은 자로서는 일 분이라도 안 있는 게 좋고, 알고는 일 분이라도 일 초라도 예수님의 대속을 벗은 자로 있을 수는 없는 것이 그것이 주님을 대접하는 것이요 성도들의 지혜요 원수를 갚는 복수의 그 실력인 것입니다.

이런데 사람들은 그걸 깨닫지 못하고 ‘금방 범죄한 것이 금방 또 뻔뻔스럽게 의인인 체한다.’ 그것은 예수님의 대속을 몰라 그렇습니다. 벗었느냐? 깨달았거든 빨리 입으십시오. 일 분도 예수님의 대속을 벗은 그 자리에 머물지 마십시오. 빨리 입으십시오.

빨리 입고 자기가 과거에 벗은 것을 얼마든지 애통할 수 있는 것은 입고 애통하십시오. 입고. ‘내가 이렇게 과거에 이리해 가지고 벗었다. 나는 지금 입었으니 다시는 벗지 않겠다.’ 벗지 아니할라고 애통은 얼마든지 하십시오.

얼마든지 가슴 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속을 입은 자가 사는 생법은 무엇이냐? 대속을 입은 자가 사는 생명법은 무엇이냐? 대속을 입은 자가 사는 생명법은 곧 죄의 종되지 안하는 것이니 죄가 아무리 와서 어떤 협박을 해도 내가 다시 범죄하지 않는 것이 피의 종 되지 않는 것이요, 사망이 와 가지고서 어떻게 찢고 고문 고형을 해도 내가 죄짓지 않는 것이 사망의 종이 되지 않는 것이요, 마귀가 와 가지고 천하 사람들을 다 끌어모아 가지고서 온갖 유혹의 공작을 한다고 해도 그로 인해서 범죄하지 않는 것이 마귀의 종되지 않는 것이요, 하나님과 화친된 이 화친으로써 하나님을 향하여 영감대로 현실을 진리대로 현실을 한 걸음 한 걸음 살아나가는 것이 이것이 예수님의 대속을 완전히 입는 것이요 이것이 하나님의 계명을 완전히 이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 창세기 1장으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에 있는, 창세기 1장에는 “생육하고 번식하라 모든 것을 땅의 것을 다 정복하라” 하는 그것이 하나님이 인간에게 선포해 준 계약을 말합니다.

이 모든 계명은, 모든 계명은 예수님의 대속을 벗지 아니하는 데에서 이 계명은 다 이행이 됩니다. 대속을 벗지 아니하는 데서는 다 이 계명은 다 이행이 됩니다.

이 계명이 막 들어 올라옵니다. 이 계명이 막 들어 올라와 가지고서 우리로 하여금, 모든 계명이 막 들어 올라와 가지고서 우리에게 들어 댈 때에 그 계명을 범하지 아니하는 것이 예수님의 대속을 벗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중생된 우리에게는 과거에 잘못된 거, 하지 못한 거, 앞으로도 하지 못하는 거, 이런 거를 주님에게 다 고하면 해결되고, 우리가 못한 거 주님 앞에 고하면 해결되고, 우리가 과거 현재 미래에 하지 못하는 것 주님에게 고하면 해결되고, 요거 단단히 기억하십시오. 이거 성경 백 번 읽어도 모릅니다.

내가 하나님의 계명에 대해서 범한 모든 거, 과거 현재 미래로 범한 모든 거 다 이것은 주님에게 고하면 해결받고, 주님의 대속을 입은 자의 사는 영생법은 뭐이냐? 주님의 대속을 입은 자의 사는 생법은 뭐이냐? 생법은 뭐이냐? 하나님이 인간을 향해서 맺어 주신 모든 계약 이 계명은 전부이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자의 생법입니다. 알겠습니까? 자기가 과거 현재 미래로 잘못해 이행하지 못한 것은 주님에게 고해서 사함받고, 사함받은 것이 의되거나 면류관 되는 거 아닙니다. 사함받고, 내가 주의 계명을 지킨 것만 요것만 이제 의가 되는 것이요 자기에게 영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과거 현재 미래에 잘못된 이것은 주님의 대속으로 사죄는 받으니까 정죄는 받지 안하지마는 의는 없습니다. 이것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다 하늘나라 가고 그 몸뚱이도 다 가지마는 하늘나라 가서 영광의 의의 구원의 실력이 되는 것은 자신이 이 계명을 지켜 행한 것만 됩니다. 예수님의 대행한 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행한 것만 가지고 됩니다.

예수님이 대행한 것은 그 영에게 입혀 줬고 육에게는 다만 그가 과거 현재 미래로 행하지 못한 걸 행한 것으로 대속해 주시고 범한 것을 대속해 주시고 했지 앞으로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자의 새생명법, 대속을 입은 새사람의 법칙 이 새사람의 법칙을 새사람이 지키지 아니한 것을 예수님이 대속하는 권리는 없고 대속하리라는 약속도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그러면, 중생돼서 예수님의 대속을 입고 있는 자의 생애 법칙은 어떤 것이 생애 법칙입니까? 어떤 것이 생애 법칙이요? 몇 가지가 생애 법칙입니까? 19절에,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이 계명입니다. 이 계명이 예수님의 대속을 입고 새사람 되어서 중생된 자의 생애 법칙입니다. 이 계명이.

이 계명이 산 자가 지켜 삽니다. 이 계명은 영원 무궁토록 하늘나라 가서도 이 계명 생활 합니다. 이 계명이 힘들지 않는 자가 영생하는 자입니다. 이 계명 지키는 것이 힘이 들지 안하고 이 계명이 자기에게 힘이 되고 능력이 되고 이 계명이 모든 것을 승리하고 성공하고 성취시키는 유일한 능력과 법칙이 되는 것이 그들에게 영생법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벗은 자에게는 이 계명은 다 죽이는 것이요 갇히는 것이요 고통스러운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계명은 새생명의 자에게는 자기 생명법이요 옛사람에게는 죽이는 법입니다.

그런고로 새 부대에는 새 술을 넣어야 되고 헌 부대는 헌 술 넣어야 된다고 했는데 헌 부대에다 새 술 넣으면 다 깨집니다. 예수 믿는 법칙을 이 세상 만물보다 거짓된 자기 사욕, 흉측한 욕심 이거 달성하는 법칙으로 알고 예수 믿을라 하는 자는 다 파괴당하고 맙니다. 예수 믿는 법칙은 타락한 인간들의 욕심을 달성하는 것이 예수님의 법칙이 아니요 그거는 헌 부대기 때문에 헌 부대 땅에 속한 이 모든 썩은 생활은 예수님의 법칙이 속에 들어가면 산산이 깨져버리고 맙니다. 바싹 깨져버리고 마요. 활딱 벗어버리고 마요. 새 부대에 넣어야 술도 안 상하고 부대도 안 상하지.

예수님의 법칙은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 하늘나라를 자기 나라로 성취시키는 것, 영생을 이루는 거. 완전한 것을 달성하는 데에 이 법칙이, 새 술 이 법칙이 보관되고 보존되고 유익되지 이 법칙 가지고서 썩은 세상 것을 달성시키는 법칙으로 하는 것은 새 술을 헌 부대에 갖다 넣으면은 헌 부대가 터져버립니다.

깨져버려서 술도 버리고 부대도 다 깨져서 헛일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오늘 가르치는 이 촛점을 단단히 기억합시다. 예수님의 대속을 입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을 입는 것은 찰나에도 입을 수 있습니다. 찰나에도 입을 수 있습니다. 입으면 자기는 죄없는 자요 의로운 자요 하나님과 화친된 자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있기 때문에, 세상에 있기 때문에 죄 없는 자이지마는 죄에 시달림을 받을 수 있고, 마귀와 상관없지마는 마귀에게 시달림을 받을 수가 있고 사망에게 시달림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실상 알고 보면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자는 죄와 사망과 마귀와 이런 것이 상관이 없는 자인데, 상관이 없는 자인데 그들에게 시달림을 받아서 우리는 시험을 당할 수 있습니다. 왜? 그들은 우리의 이 대속을 벗길라고 애를 써.

벗길라고 애를 씁니다. 안 벗으면 그는 죽고 우리는 삽니다. 벗으면 그는 살고 나는 죽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대속하시고 마귀를 정복하신 주님이 지금을 연단기로 두시고, 연단기로 두시고 대속을 진정 입는 자 되도록 하기 위해서, 대속을 벗지 않는 자 되도록 하기 위해서, 대속을 입은 자로 경험하고 체험하게 하기 위해서, 대속을 벗은 것도 경험하고 체험하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대속에 대해서 확고한 지식을 가지고 대속을 자기가 요동치 아니하고, 하나를 입었든지 둘 입었든지 확고 부동의 대속을 입고 벗는 자로 판정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에 이것을 심판하는 것을 가리켜서 그리스도의 심판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공심판이 아닌 그리스도의 심판을 우리는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자는 신구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신인 계약은 다 자기의 생명법이요 자기 이행법이요, 이 법이 없어진 것 아닙니다. 이 법은 영원히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 없을 수 없는 진리입니다. 공연히 제대로 해석해 가지고서 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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