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지를 꺽지 말라

 

1984. 7. 25. 새벽 

 

본문 : 요한계시록 3장 10절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선지자선교회  땅에 있는 성도들은 누구든지 주님께서 가르치시는 일도 계속 하시고, 또  회개시키시는 일도 계속 하시고, 또 우리를 기르시는 일도 계속 하십니다.

가르치시고 또 기르시고, 또 우리를 회개시키시고 이 계속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시험도 계속 합니다.

그러기에, 땅에 있는 성도라면 회개할 것이 끝난 성도가 없고 회개할 것이 끝난  성도가 없고, 또 가르침 받는 일이 끝난 성도가 없고, 또 자기가 성장하는 그  성장이 끝난 날이 없습니다. 계속 합니다.

 그러면, 회개를 하면 무슨 회개를 그렇게 할 게 있는가? 네, 바울 같은, 그  노경으로 말하면 참 그런 분은 벌써 신앙 시작할 때부터 하나님의 이 율법의  말씀으로 하면 자기가 '이거는 내가 어겼다.' 그렇게 생각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자기 마음에 '이거는 내가 성경 말씀 어겼다.' 그렇게  자책할 것이 없다고 했는데, 나이가 많아 갈수록 회개할 죄가 더 많다 이래서  '죄인 중에 괴수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성과 지공이 우리에게 요구하시고  명령 하시고 우리를 대해서 소망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 끝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가서 보면 고친 사람은 굉장히 고쳐서 상상도 못할 만치 고쳐 있고 또  자란 사람은 굉장히 자라서 생각도 못할 만치 자라 있고, 자기가 배우는 것도 뭐  다 배우지만 배운 그것이 상상도 못할 만치 배움에 앞서 있는 그런 사람들이  있는 그것이 하늘나라의 영광의 차이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르치시든지 회개를 시키시든지 기르시든지 하는 이 일에는  행함이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식으로 듣고 행하면 또 배울 것이 있고 또  지식으로 듣고 회개 하면 또 회개할 것이 또 나오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면 자랐는데 또 자랄 것이 있고 자꾸 자라 갑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 말씀 하시기를 I0절에 이런 말씀 했습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그러면, 자꾸 계속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의 승리는 어디 있는고 하니  계속에 있습니다. 계속. 인내의 말씀. 계속에 있다. 계속에 우리의 승리가  있습니다. 어떤 걸 계속 하는가? 자기가 의지 계속이, 신앙의지, 신앙의지  계속이 계속인데, 따라 합시다.

 신앙의지! 신앙의지! 신앙의지!  신앙의지라는 것은 어떤 것이 신앙의지인고 하니 하나님을 인정하는 의지  순종하는 의지, 소망하는 의지. 교훈 받는 의지 이런 것이 다 신앙의지입니다.

신앙의지란 말은 하나님에게 피동적으로 된 의지를 말합니다.

우리는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지식으로 삼아서 하나님의 말씀과 또 내  양심과 또 내가 작정한 작정, 작정 그것이 의지입니다. 작정한 것이 계속 되면  의지가 죽지 안하고 꺾어지지 안한 것이고, 작정한 그것이 계속 되지 못하면  의지가 꺾어진 것이며 죽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사에 자기가 배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또 자기의  양심을 가지고 또 자기의 의지를 가지고 무슨 일을 작정을 합니다. 작정할 때에  갑자기 어디서 돌발적인 작정 그것은 돌발적으로 실패합니다. 우리는 작정을 될  수 있는 대로 천천히 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는 그 시간 그 시간 새로 나타난  일이라도 잘못하면 우리 욕심에 끌려서 언행심사 하기 쉽고, 우리의 감정에  끌려서 언행심사하기 쉽고, 또 살피지 못하면 자기중심이라는 자기중심 그놈에게  끌려서 하기 쉽습니다. 자기중심 그거는 언제든지, 그만 옛사람 그놈은 자기가  아닌데 그놈에게 해가 되면 그만 발악을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할일은 좀 천천히 해서, 급하게 되는 일이라도 아무래도  하나님 말씀이 인도하지 안하면 안 되니까, 하나님 말씀에, 인도는 아무리  바빠도 하나님 말씀의 인도, 하나님 말씀이 어떠냐, 하나님 말씀을 대조해서  살피는 그 일은 아무리 급해도 해야 되고, 또 그라고 난 다음에 자기 양심이 좀  이렇게 생각해서 '아무래도 이 일은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는 것은 어떤  게 생각하는 거냐 하면, 자꾸 이래 그걸 생각 하고 생각하는 그게 생각하는 게  아니고, 생각한단 말은 그 어떤 사건이면 사건 그 일에 대해서 이 시간도  생각하고, 요다음 시간에는 어찌 되겠느냐? 이라면 장래는 어찌 되겠느냐? 이래  자꾸 널리, 널리 퍼져서 이렇게 자기가 대조해 보는 것입니다. 자, 나는 좋은데  가족에게는 어찌되며 나는 좋은데 교인에게는 어찌 되며, 나는 좋은데  식구에게는 어찌 되며, 나는 좋은데 온 교회는 어찌 되며, 나는 좋은데 은 한국  교회는 어찌 되며. 나는 좋은데 이 세계 교회는 어찌 되며, 나는 좋은데 이 단일  교회에 대해서는 어찌 되느냐? 이래 자꾸 넓게 생각하는 것. 이 공간적으로  이렇게 넓게 이렇게 생각하는 것; 또 시간적으로 길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시간적으로 일시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이라고 나면 만일 내일은 어떻게  되느냐? 이라면 내일이 되면 이거 다 후회 할 것이다. 그러면, 시간적으로 길게  생각하고, 공간적으로 넓게 생각하고, 또 종류적으로 이것도 저것도 자꾸 이렇게  대조해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과 자기 양심으로 이래 가지고 요걸 생각하고 생각하고  이례게 좀 넓게 아무리 바빠도 좀 생각해야 됩니다. 그러기에, 감옥에 있는  사람은 감옥 속만 생각하니까 감옥에서 '이거 고생스러우니 얼른 나가면  좋겠다.' 그렇게만 생각하지 '내가 감옥에서 신앙 지조를 팔고 감옥 밖에 나가면  그 다음은 어찌 되겠느냐? 하는 그것을 사람들이 생각지 못할 때에는 감옥  안에서 실수하기 쉽습니다. 또 무슨 사건이라도 그 사건을 당면한 그 사건만  생각하고, 이 사건이 지나가고 나면 어찌 되느냐? 이 사건을 이렇게 처리하면  뒤에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이 사건이 이렇게 처리하면 후배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자꾸 이렇게 널리. 생각한다는 말은, 생각하는 것은 자꾸  요거와도 대조해 보고 요거와도 대조해 보고 자꾸 이렇게 대조해서 광범위하게  그렇게 연상하는 것을 가리켜서 생각한다 그랍니다. 그러면, 그것만 생각해 봤자  딴것 안 나옵니다. 자꾸 이거 공간적으로 시간적으로 종별적으로 널리 그와 한번  대조해 보라 그 말이오.

 그래서 우리는 아무래도 작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자기 양심이 합해  가지고 작정을 하는 것인데. 그러면. 작정한 그것이 혹 작정하고 난 다음에도  말씀대로는 맞았는데 성신의 감화가 가지 아니할 때가 있습니다. 말씀과 양심과  생각할 대로 생각해 가지고 이렇게 작정을 했는데 그 일이 성신이 협동하지  안하는 일이 있다 그 말이오.

 그 작정한 일이 성신이 협동하면 속에서 힘이 나옵니다. 속에서 힘이 나오고  마음에 쾌활해지고, 명랑해지고, 자신 만만해지고, 담대함이 나오고 이러나  그렇게 내가 성경 말씀 가지고 양심대로 생각했는데 어쩐지 힘이 안 나온다 그  말이오. 그라면 성령이 와 가지고 자기 근육에도 힘을 안 주면 근육이 어쩐지  근육이 힘이 없어지고, 자기의 피부에 힘이 없어. 피부에 힘이 있으면 피부가  카랑카랑하이 쾌활해지는데 그만 어쩐지 피부에 불쾌한 것이 생겨지는 것이  생겨진다 이거요.

 이래서 성신의 감화가 되면 먼저 평안하고 담대하고 용기가 나옵니다. 그러면  인제 그거는 자기가 참 바로 생각해서 신앙의지에다가 실어 놓은 것입니다.

신앙의지에다가 실어 놓은 것인데, 그런 것은 우리가 그걸 작정해 놓고 또 그만  그 작정을 꺾어 버렸어. 뺏겼습니다. 그 작정을 뺏기고 난 다음에 또 생각하니까  후회가 돼서 또 작정을 하고 그래 작정된 것이 바를수록 그것이 계속이 많고  바를수록 회개가 많습니다. 고침이 많습니다. 또 변동이 하고 난 다음에 '아  잘못됐다.' 그렇게 고치고, 고치고 이라는 것인데 우리가 자기 욕심에서 생긴  욕심의 의지와 자기의 감정의 의지 이런 욕심이나 저런 욕심이나 그런 욕심,  무슨 감정의, 그 정서의 의지 그런 것은 다 쓸데없는 못 쓰는 것입니다. 그거는  뒤에 그 의지가 발생하고 난 다음에는 그 의지로 계속 된 것이 후회가 됩니다.

의지로 계속 된 것이 후회가 됩니다. 그러나 신앙의지로 결정된 것은 그 계속을  못 하면 후회가 돼 가지고 또 새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잘못된 작정은 하고 나면 후회가 되고. 또 바른 작정은 그것을  실패하고 나면 후회가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실패하고 나면 후회가 되고 또  작정해서 그대로 하고 나면 후회되고, 하고 나면 후회되는 그거는 잘못된 것이라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이 계속이라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자기가 잘못된 작정  그런 거는 계속을 한다는 것이. 잘못된 작정 그거는 하고나면, 무슨 말  한마디든지 행동 하나든저 무슨 사업이든지 무엇이든지 하고 나면 후회가 되는  일이 있고, 또 하고 나면 마음에 개운한 일이 있고 또 자기가 안 하고 나면 후회  되는 일이 있고, 해서 후회되는 일, 안 해서 후회 되는 일 그것으로써 자기  생활을 살피면 그것도 아주 중요한 열쇠입니다. 하고 나서 후회되는 일이 있고.

또 그것을 그만 하다가 안 하고 나서 안 하고 나서 후회되는 일 있는데, 안 하고  나서 후회되는 그 일은 그래도 그 일이 가치 있는 일이고, 하고 난 다음에  후회되는 일은 그거는 분명히 자기 욕심이나 감정이나 욕이나 정이나 거기에서  발생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잘못된 그 악령의 충격을 받아 가지고 되는 것이지  그게 좋은 게 아니라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그걸 계속 하면 피곤하기는 하지만 기쁘고, 계속 하다가  그걸 그만 중단하고 나면 후회가 된다 그 말이오. 그런 것은 다 그것이 바로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걸 살펴보면 하나님의 말씀과 자기 양심이 이렇게 합해  가지고 연구해서 결정한 그것인데, 결정한 그것을 해 보면 성령님이 좋아서  찬성을 하고 동행해 주시는지 성령님이 동행 안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면  할수록 자기 힘줄에, 자기 근육이 힘을 얻고, 자기 피부가 힘을 얻고. 자기의  정신이 힘을 얻고 자기 양심이 힘을 얻고 자기 전체가 힘을 얻어집니다. 그러나  고 만 그것을, 무슨 일이든지 언행심사의 그것을 하고 나니까 자기의 근육도  힘이 빠지고 피부도 힘이 빠지고, 양심도 힘이 빠지고, 자기의 몸의 정기도 힘이  빠지고 그만 신앙생활에도 힘이 빠지고 하는 그런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  그거요.

 그러기에, 우리는 시작할 때에 천천히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왜 천천히  시작하느냐? 그것은 말씀으로 좀 심사해 보고. 양심으로 심사해 보고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말씀과 양심이 시작해도, 시작해서 말씀이 틀렸다 하고 양심이  틀렸다 하는데, 틀렸지만 안 하고는 못 견딘다 하면 그것은 자기가 바로  자살하는 행위입니다. '아마 이거는' 자기가 성경 지식으로도 '이거는 해서는 안  된다.' 생각이 돼지고, 양심으로도 해서는 안 된다 생각이 돼지는데 그것을 그  마음의 감정에 분해서든지 하고 싶어서든지 이렇게 한다고 하면 그것은 막바로  자기가 자살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을 우리가 살펴서, 하고 난  다음에, 또 그것을 중단하고 난 다음에 어찌 되는가? 하고 난 다음에 어찌  되는지 중단하고 난 다음에 어찌 되는지 그것을 잘 살펴서, 중단돼서 자기에게  좋지 못한 양심에나 정신에나 결과가 오는 것은 계속 하면 반드시 거기서 생수가  용솟음칩니다. 또 하고 나니까 후회되는 그 일은 자기가 그 일을, 후회되는 그  일을 가지고 하지 않는 그것을, 안 하는 그것을 계속만 하면 거기서 또 능력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 매일에 자기의 행동이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오늘 아침에 생각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말씀과 자기 양심이  합작해 가지고 일을 결정해라, 말씀과 자기 양심이 합작해 가지고 결정을 해라.

결정하고 난 다음에 그 일을 하고 나서 또 생각 해 봐라. 말씀과 양심이 결정을  한 일인데 그 일을 행해 봐라. 행하고 나면 힘이 빠지고 후회가 되면 그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다. 성령이 동행 안한 것이오. 자기가 말씀과 양심으로  결정을 했는데 그 일을 하고 나니까 자기의 마을이 힘이 나오고 마음이 힘을  얻고, 자기 몸이 힘을 얻고, 얻으면 그것은 바로 됐다 하는 것으로써 성령이  찬성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첫째로 말씀과 양심이 합작해 가지고 모든 것을 작정해라.

작정하고 난 다음에는 작정한 그 일을 실행을 하고 나서 뒤에 결과가 어찌  되는가 한번 재심사해라. 결과를 한번 가지고 재심사 해 보면 '아, 이 일은  하나님도 원하시고 진리도 원하고 또 내 영도 원한다는 증거다. 이러니까. 이  일은 이제 단정을 지워 놓고' 그것은 단정을 지워서, 말하자면 자기가 결정을  해서 '이 일은, 결정한 이 일을 안 하면 죄이고 하면 의가 된다. 그렇게까지 고  결정을 하는 게 좋습니다. 그 결정을 하는데, 그거는 다 우리가 아마 있는 줄  압니다. 뭐 무슨 일, '나는 이일은 꼭 해야 된다. 저 일은 해야 된다.' 이렇게  해서, 그러니까, 될 수 있는 대로 하루 생활의 시간표를 정해 놓는 것이  좋습니다. 시간표를 정해 가지고 하는 그것이, 그것이 무슨 기계적 생활 같지만  그래도 그것이 결과적으로 따지면 유익이 있습니다. 고 시간표들 정해 놓고  기어코라도 고 일을 그대로 계속 할 것.

 그걸 계속 하면 혹 거기서 하나님이 그 외에 특별히 무엇이든지 해야 되는 것을  주실 때에는 그것은 안 해도 좋습니다. 안 하면, 내가 이거 지금 요거  작정했는데 요거를 내가 지금 양심으로 내가 아는 성경 지식으로 이렇게 의논해  가지고 숙고해서 작정한 것이요 또 이거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을 내가 알고  경험해서 체험해서 보고 작정한 것인데 돌발적인 이런 일은 내가 못 하겠습니다.

이거는. 당신이 시키는 것이라면 내가 못 할리가 없는데 이게 또 어떤 도둑놈이  와 가지고 시키는 것인지 내가 모르기 때문에 당신이 시키는 것이지 도둑놈이  와서 시키는 것인지 내가 모르겠으니까 내가 이 일을 못 하겠습니다.

못하겠으니까, 당신이 시키시는 것이라면 당신은 전능자시니까, 내가 당신에게  순종 안 하려고 하는 게 아니고 순종을 하려고 지금 하고 있는 것인데, 당신의  뜻이 아닌지, 마귀가 시키는 것인지 당신이 시키는 것인지' 어디 우리 눈에  보이며 하지만 잘 안 보인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영을 구별 하기가 아주  힘이 듭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시키시는 것이라도 '나는 이거 못 하겠습니다. 왜? 내가  지금 시간표를 정해 놓고, 일과를 이래 정해 놓고 하고 있는데, 돌발적인  일이니까 내가 이 일은 내가 당신이 시키는 것인지 마귀가 시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왜? 내가 지금 매일 시간표를 정해 놓고, 일과를 정해 놓고 살고  있는 이것을 과거에 주님이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신다는 것은 내가 체험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고 나면 마음도 힘이 나고, 내 몸도 힘이 나고, 양심도 힘이  나고 이렇게 힘이 나니까 당신이 기뻐하는 일인 줄 아는데, 기뻐하는 일을 내가  하는데 이 기뻐하시는 일을 또 두고 딴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이러니까, 그때는  변개 안 하고 고집을 부려야 돼. 고집을 부리는 것이 좋습니다.

 자기가 예를 들면 자기가 이 교회로 이동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여러 가지  비판을 해 가지고 그 교회로 이동을 했는데, 이동하고 보니까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는 것이 증거가 되는 것은 강단에 설 때에 설교가 나오지 또 기도 할 때에  기도가 되지, 목회하는데 애로가 있어도 양심이 편고 신앙이 편고 힘이 난다 그  말이오. 외식쟁이, 껍데기 목회자들은 교회가 가지고 대접이나 잘하면 '하나님이  옮겼는 가보다.' 입이 뻥긋해. 입이 뻥긋하는 그거는 죽일 자요, 죽일 자.

그놈은 죽여야 돼 그 옛사람 그놈이지 참 목사가 아니라. 거기 가 보니까 여러  가지 애로가 있고 모든 게 있어도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것은 진리와 영감인데,  떡 이동하고 가보니까 진리가 나옵니다. 자꾸 말씀하신 말씀이, 진리를 깨달아서  증거 할 진리가 나오고 또 영감이 나옵니다. 진리와 영감이 나오면 거기서  죽어도 거기서 죽는 것이, 하나님이 옮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그 말이오.

 이런데.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바로 옮겨 주면 아주 은혜를 받고  거기서 성공을 합니다. 그러나 이 삯군. 양의 껍질을 입은 이리 그런 자들은  이동을 해 가지고 돈이나 안 나오고 생활에 애로가 되면 그만 거기서 빼고나리를  친다 말이오. 빼고나리를 쳐 가지고 결국은 실패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갑자기 위에서, 상부에서 이동을 하라든지 뭐 이동할 일이  생기든지 합니다. 그러면 자기는 혹 상부에게 복종 하는 것으로 그라는 것은  그라지만 '이동을 내가, 여기서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서 설교 할 때도 같이  하시고 내 모든 생활에 같이 하시는 것이 분명한데 또 여기서 이동을 한다는 것  이것 내가 이동을 내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내가 여기 와서 이  교회로 이동된 것 이 하나님의 뜻인 줄 내가 확실히 알아서 오늘까지 당신이  동행한 걸 알았는데 여기서 또 딴 데로 이동을 하라고 하니 이거 당신이 이동을  시키는 것인지 총공회에서 이동을 시키는 것인지 뭐인지 내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이러니까, 언제 당신이 여기에 일하라 했는데 또 어디로 또 가라 합니까?  당신이 시키면 하루 뭐 백 번이라도 옮기지만 이거 내가 당신이 시키시는  것인지, 위에 공회 상부의 선배 목사님들도 마귀 노릇 할 수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믿을 수 없습니다.' 그라고 발을 버티고 말이 지속으로 '당신이  만일 옮기시는 것이라면. 당신이 옮기신다면 증거를 해 주십시오. 내가 첫째  증거 할 것은 내가 안 옮기고 여기 있으면 그만 설교가 그전과 같은 영감이  없어지고 진리 깨달음이 없어지고 이게 없어지면 아이구야, 이거 하나님이  옮기라 하는구나 그래 내차 알고 옮기겠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신앙생활에도 그러합니다. 자기가 성경 지식과 양심이  의논해 가지고 무엇을 작정한. 그러면. 매일 '오늘 이런 생활 한다.' 일과를  계획을 짜 가지고 시간표를 정해 놓고 요렇게 생활하는데, 가다가 돌발적으로  무슨 일이 생겨졌습니다. 생겨졌으면 그 일은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시킨  일이라도 하지 마십시오. 안 하면서 뭐라고 말할 게 아니라 '나는 이거 모르기  때문에, 내가 뭐 생명이 끊어져도 순종을 할 터인데 내가 무슨 어려워서  괴로와서 내게 뭐 어때서 순종 안 하는 게 아니라 당신의 뜻인지 뭐인지 그걸  모르겠습니다. 내가 과거에 요래 하는 것을 당시의 뜻인 걸 내가 확실히  알았는데 또 이거 변동되는 일이 갑자기 돌발적으로 무슨 일이 생겼으니까 해야  될지 안 해야 될지 나는 모르겠습니다. 이러니까. 당신이 해야 된다는 것이라면  나는 모르겠으니 당신이 능치 못하심이 없으시니 나를 뒤에서 거머쥐고  미십시오.'  여기는 그런 말 없지요. 똥딴지 걸음이라고 있습니다. 똥딴지 걸음이란 말 들은  사람 손들어 봐. 똥딴지 걸음. 이거, 이봐 이 ○○○씨는 아는데. 똥딴지 걸음  아는 사람. 그 똥딴지 걸음이란 말은 말이요 뒤에서 모가지 거머쥐고 이 홍문을  말이지. 뒤에 허리끈을 거머쥐고 막 앞으로 잡아 미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안 자빠질려면 자꾸 발을 떼 놔야 된다 말이오. 고게 그건데 예를 들면 똥딴지  걸음, 주님이 뒤에서 거머쥐고, 막 거머쥐고 내가 안 가면 안 되도록 이렇게  뒤에서 밀어 재끼면 내가 밀려서. 밀어 재끼면 이래 안 갈려고 이래 밀리다가  한참 밀리며 보니까 '이거 당신이 미는 것이 분명하다. 섭리를 보니까 당신이 이  일 하라 하는 것이. 분명 하다.' 그럴 때에는 이제 '내가 이제 당신의 뜻을  알았습니다. 당신이 이 일을 시킨다는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알았기 때문에,  나는 이제는 당신이 시키는 것인 줄 알고 요걸 변개해서 요 일을 하겠습니다.'  그렇게, 시작할 때에도 천천히 하고 변경 할 때도 아주 천천히 하고 이래서  변경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과 양심으로 생각해 가지고 이렇게 작정해 놓은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 가지고 비판해도 잘 모릅니다. 양심 가지고 비판해도  잘 모릅니다. 그럴 때는 하나님의 섭리를 기다리라 말이오.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것 보니까, 하나님이 밀어 닥치는 것 보니까 이거  하나님의 뜻이다.' 그렇게 해서, 작정도 신중히 작정하고 작정한 일은 변경도  하지 말고. 작정한 것이면 계속 하는 것이 뭐이냐? 앞으로 환난 이기는  것입니다. '네가 내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너를 지켜서 시험의 때를 면케  한다.' 그 말은 시험의 때를 시험에 통과케 한다 그 말이오. 시험을 안 닥치게  한다 말이 아니고.

 이러니까, 자기가 진리와 자기 양심과 영감으로 작정된 이런, 이건 분명히  하나님이 작정시켜서 나에게 하라 하시는 것인데. 작정된 그것을. 그것을  깨트리는 것은 자기든지 물건이든지 사람이든지 친구든지 목사든지 누구든지  그걸 깨트리는 것은 그것이 앞으로 대환난에 대승리를 할 그 승리를 빳들어 가는  그 원수입니다. 승리를 뺏들어 가는 원수인줄 알고 그걸 용납지 안해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 신앙의지를 뺏드는 그놈이 내 일생과 면류관을 다 뺏드는  원수이기 때문에 아무리 부모라도. 남편이라도. 아내라도, 또 자기의 자녀라도.

자기라도, 자기에게 필요한 물건이라도, 아무리 신앙 선배라도 자기가 이렇게  심사숙고 해서 작정된 그것을 빼앗아서 그대로 계속 하지 못하게, 고 계속하지  못하게 하는 고 계속을 뺏드는 그것이 원수입니다. 그것이 무슨 원수입니까?  그게 무슨 원수입니까? 그게 무슨 원수요? 시험에 실패케 하는, 시험을 이겨야  면류관을 얻는데 면류관을 얻지 못하게 내 면류관을 뺏드는 원수라 그 말이오.

 우리가 공연히 나한테 욕한다고 원수 아니오. 욕하는 거야 성경에 말하기를  욕하면 욕 얻어먹을 만한 일이 있으면 어서 고치면 복 있고. 욕 얻어먹을 만한  일이 없는데 욕을 하면 거짓 걸로 핍박하는데 참고 견디면 복이 있다 했으니까  복이 있는 것. 우리가, 꼭 복을 주는 사람이 복인 줄 압니까? 욕하는 그 사람이  참 축복 아닌 것 같은 축복하는 것입니다. 욕하는 것이. 내가 욕 얻어먹을 일  없는데 자꾸 욕을 하면 그때는 그 사람이 저는 나한테 저주한다고 하지만 자꾸  실상은 축복이 온다 그 말이오. 참고 견디면 축복이 와.

 이러니까 오늘 우리들이 작정도 천천히 하고, 작정한 일이면 변경 하지 맙시다.

변경할 때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섭리로 밀어 닥치는 데, 밀어 닥치는 데 쫓겨서  변동하지 스스로 변동하지 마십시오. 그라고, 자기가 신앙의지로 작정해 놓은 그  작정을 '나는 요거 요거; 작정이 잘못되지 안한 것인데, 바로 된 작정을 그것을  계속 하지 못하도록 하는 그자가 원수입니다. 그러니까. 원수라고 말하면 안될  터이니까 원수라 소리는 안 해도 속으로, 속으로. 원수라. 그라면. 그 사람이  원수인데 그 사람이 원수가 아니라 마귀가 그 사람을 붙들고 지금 하기 때문에.

옛사람은 사람이 아닙니다. 옛사람은 사람 아니오. 옛사람은 악령. 악성 악습  그놈이 들어서 사람을 붙들고 하기 때문에 '아이구, 저 사람이 악령 그 원수  그놈에게 붙들렸구나.' 그때에 사람은 동정해야 되고 나의 신앙의지를 꺾게 하고  고 속에 있는 악령과 악성, 악습 그놈하고는 원수가 돼 가지고 그놈을 대적해서  싸워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중생활을 안 하는 게 아니라 이중  삼중생활도 해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속은 이렇고 껍데기는 이렇고 이래,  왜? 겉사람 속사람이 있기 때문에 겉사람 대항하는 것도 있고 속사람으로 사는  것도 있고 이게 있어야 된다 그거요.

 그러므로 오늘 아침에는 신앙의지를 빼앗기지 말아라. 신앙의지 빼앗기는 것이  면류관 빼앗기는 것이다. 환난 때에 평안을 뺏기는 것이다. 신앙의지를 빼앗기는  것이 환난 때에 평강을 뺏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지를 뺏기지 맙시다.

 신앙의지를 뺏기지 안하려고 하면 신앙의지 그것만 위주로 삼아야 되지  신앙의지 그것도 취하고 이것도 취하고 모든 것 다 취하려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뭐이든지 하나를 취해야 되지 둘을 취하려 하면 헛일이오. 하나만 취하려  해야지. 신앙의지 요것만 지킬라 하면 다른 사람에게 사람 노릇 못 하는 일도  많이 있고, 병신노릇 하는 일도 많이 있고, 참 멸시 받는 일도 많이 있고,  등신이라는 소리도 들을 수 있고, 이렇게 신앙의지 요것 하나 지키려고 하면  다른 일은 그렇겐 그 일을 다, 다 챙겨서 할 수가 없다 그 말이오. 신앙의지  요것만, 그 신앙의지는 자기 양심과 진리가 심사숙고 해 가지고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요것만 빼앗기지 안하면 자기 생활은 바로 됐다 이거요.

 이러니까, 그때 일시 일시 뭐 그런 거 지저분한 것 그것도 좋은 것이지만  악령은 대선을 소선으로 바꾸게 하는 것이 악령입니다. 대선을 소선으로. 커다란  선을 조그만 선으로 바꾸게 해 가지고 조그만한 선은 무선으로, 선 없게 바꾸고,  그래 가지고 선이 없어지고 난 다음에는 소악으로 시작합니다. 조그만한 악으로  시작해 가지고 소악이 중악이 되고 중악이 대악이 되고 이래 가지고 전체악이 돼  가지고 망하도록 요렇게 마귀가 작정하는 것이라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신앙의지를 우리가 빼앗기지 맙시다. 신앙의지를 빼앗는 것은  뭐이냐?' '내가 오늘은 신앙의지를 어디 뺏겼노?' 살펴보니 '아, 신앙의지를  어디 빼앗겼구나. 그놈이 내 원수다.' 하는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사람이라면 사람 그놈이 원수가 아니라 그 사람 속에 그 사람을 맡아서 주관하고  있는 그 악령. 악성. 악습 그놈이 그 사람을 붙들고 날 그랬구나. 그래 가지고  그 사람을 삼가해야 합니다. 사람도 성령의 도구되는 사람도 있고, 악령의  도구되는 사람도 있고, 악성의 도구되는 사람도 있고. 악습의 도구되는 사람도  있고 하기 때문에 사람을, '저 사람은 악령의 도구로 나한테 자주 오더라. 저  사람은 악숨의 도구로 자주 오더라 악성의 도구로 자주 오더라. 저 사람은  성령의 도구로 자주 오더라.' 그래 사람을 살펴 가지고 그 사람이 무슨 도구로  오는지 그걸 살펴 가지고 조 심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의지를 빼앗는  것이 앞으로 환난 때에 승리하는 그 승리를 빼앗아 가는 원수라 하는 그것을  기억합시다.

 자 그래서 요 계속, 그러니까. 새벽에 설교하는 그 설교를 하루 종일 계속하고  주일날 설교하는 것을 일주간 내 계속 하고, 어쨌든지 하나님의 말씀 이  말씀이든지 저 말씀이든지 말씀 계속 하는 것이 그것이 계속 되면 됩니다.

그러기에, 새벽에 주는 말씀을 계속하면 다른 말씀은 계속 안 해도 따라서 그만  계속이 되어집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은 똘똘 뭉쳐 하나입니다. 하나이기 때문에, 사람 그  사람은 한 사람인데 만일 손가락 하나 거머쥐고 잡아당기면 '손가락을 와  당기노? 전신을 당기지.' 손가락 하나 당기면 그 전신이 따라옵니까 안  따라옵니까? 따라와요 안 따라와요? 손가락이 끊어지기 전에 따라와야 됩니다.

그렇지 않소?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말씀은 떨어질 수 없는 한 덩어리라  말이오. 어디든지 하나라도 거머쥐고 그대로 놓지 않고 계속 하면 모든 말씀이  다 따라와서 다 자기를 운동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새벽에 들은 말씀은 하루 종일, 또 주일날 들은 말씀은 일주간  내내 요렇게 계속을 하면 다른 말씀도 절로 다 따라서 계속 하게 된다 그거요.

그러므로 우리가 그것도 하나의 신앙의지가 되겠습니다. 자, 새벽에 들은 말씀을  하루 종일 계속 하는, 하루 종일 사모하면서, 그 말씀을 새김질하면서. 그  말씀을 생각하면서 하루 생활 계속 한다는 그것이, 이것이 성령으로 시작된  것이겠습니까? 마귀로 시작된 것이겠습니까? 어떻습니까? 성령으로 시작.

성령으로, 지금 아침에 하나님께서 새벽 기도에 주신 그 말씀은 하루 종일 계속  해서 새김질해야 한다 하는 이것을 성령이 그렇게 우리에게 작정시켜 주신  것이라 그 생각되는 분들 손들어 봅시다. 네, 이거는 틀림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것을 무슨 다급한 일이 있어도 꺾어지면 그게 내 원수입니다.

이 말씀을 하루 종일 생각지 못하게, 이게 들어서 생각지 못하게 저게 들어서  생각지 못하게 했든지. 뭐 사람이든지 물건이든지 사건이든지 무엇이든지 생각지  못하게 했으면 그것이 앞으로 환난 때에 내 승리를 빼앗아 가는 원수라 단정  짓고 단속하면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이거는 아니라.' 싶은데. 아니라 싶은데, 그 아니라는 그  의지 작정한 그 의지를 꺾는 그게 막바로 자기의 영육을 삼키는 원수이기 때문에  그런 줄을 알고 원수로 삼아서 싸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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