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를 들을 때 6가지 주의 할 것

 

1986. 12. 21. 주일오후

 

본문:로마서 1장 16절 상반절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성경을 가지고 이제는 한 말씀 한 말씀의 뜻을 바로 깨달아 알도록 해야 됩니다.

그저 이렇게 두루 뭉친 덧배기 그런 신앙 가지고는 앞으로 좋은 구원을 이루어 가지 못합니다.

사층에는 중간반 학생이 그전보다 별로이 변동이 없다 하고 또 삼층에는 그전보다 조금 숫자가 더 왔다 하는 그런 보고를 들었습니다. 설교를 들을 때에 주의할 것은 설교는 어학을 가르치거나 배우는 것이 아니고 또 지방어나 표준어, 또 옛날 말과 지금 신식의 말 그런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도 아닙니다. 또 어떤 나라의 그 어학을 공부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인생의 제일 문제인 영생 구원을 받는 도리를 가르치고 배우는 것입니다. 어떤 말로 가르치든지 그 효력을 실상으로 받아서 자기가 가져야 합니다.

그 효력의 첫째는 말씀을 들을 때에 나는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하는 깨달음을 자기가 가져야 합니다.

둘째로는 평생 찾아보지 못하고 죄악에서 죄악으로 뭉쳐 다니던 자기 속에 파묻혀 있는 양심을 찾아서 때를 닦고 깨끗한 양심으로 만드는 그 시간이 돼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는 양심을 찾아서 깨끗하게 보호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는 그 말씀을 듣는 가운데에 자기가 변화함을 받아야 합니다.

넷째로는 말씀을 듣는 가운데에 성령님의 감화 감동이 자기에게 와야 합니다.

성신의 감화를 받아야 합니다.

다섯째로는 자기 속에 지극히 큰 담력과 평강과 능력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자기가 보고 영접해 들여야 합니다.

여섯째로는 영생하는 죽지 않는 생명이 자기 마음에 믿음 속에서부터 시작해 가지고서 자기 속에 확실한 그 영생이 자기 속에 이루어져야만 설교한 사람도 헛되지 않고 설교 말씀을 듣는 사람도 헛되지 않지 그렇지 안하면 다 헛됨을 하고 있는 일들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하는 이 말씀은, 영계나 물질계에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영계에 천군 천사도 있고 그 나라의 영광과 존귀 별별 좋은 것들이 많이 있고, 또 이 세상에는 우주 안에 수많은 지구 땅덩어리보다 큰 그런 별들도 많이 있고, 또 이 지구 안에는 유명한 강대국도 많이 있고, 유명한 인물들도 있고, 또 찬란한 이십세기의 문화들도 많이 있습니다. 또 거게는 온갖 사상들도 있고 주의들도 있고 운동들도 있습니다. 이 무슨 이런 개혁 운동, 이런 건설 운동, 이런 문화 운동, 이런 과학 운동, 이런 사상, 저런 도덕, 주의 뭐 그런 것들이 이 세상에는 운동이 가득 찬 세상입니다. 수많은 종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 이 복음은 뛰어나다 그말입니다. 이런 것과 비교할 때에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런 모든 것보다 복음은 자랑스럽다. 무한히 자랑스럽다. 무한히 탁월하고 영광스럽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안 믿는 자는 속습니다.

또 땅위에도 수많은 파괴들이 있습니다. 저런 파괴를 볼 때에 두려워 떱니다.

파괴도 많고 건설도 많습니다, 뭐 세계를 과거에는 멀다 하지마는 지금은 주름잡아서 아주 한 시간이면 온 세계 소식을 다 듣고 있습니다. 그러면 세계에 수많은 파괴 건설들이 있어서 어떤 건설을 보고 온 세계가 벌벌 떨고 어떤 파괴를 보고 온 세상들이 다 놀래고 하나 그런 모든 파괴 건설과 비교 못 할 큰 파괴와 건설을 가지고 있는 복음이다 그말입니다.

또 땅위에는 우리에게 필요한 오만 것들이 있습니다. 또 우리가 부러워하는 오만 것들이 있습니다. 자랑스러운 오만 것들이 있습니다. 영광나고 광채나는 그런 것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과 비교할 때에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말은 그런 것과 비교될 수 없는 그런 것보다 얼마나 영광스러우며 존귀하며 자랑스러운 가치와 능력과 영광과 우리에게 실지의 효력을 가지고 있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믿습니까! 믿읍시다. 이것을 안 믿는 자는 망합니다.

제가 현재 땅에서 어떻게 해도 이 복음을 안 믿으면 그는 조만간에 망합니다.

주님이 구름 타고 오시면 그런 건 다 불타 버리고 유황불 구렁텅이로 다 몰려갑니다.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천상 천하에 모든 피조물들의 별별 움직임, 영광, 운동, 힘, 가치 가지고 있으나 그런 것으로 비교할 수 없는, 그런 거와 비교할 수 없는, 그런 것보다 심히 탁월한 가치 있고 영광스럽고 존귀한 복음이다 하는 것을 여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복음을 믿습니까? 이렇게 복음을 믿습니까? 안 믿으면 망합니다.

사람들은 지금 이 세상 이십세기의 과학 만능이라 해서 과학이라면 제일인 줄 알지마는 과학은 이 복음에 비해서 억억억억?만분의 일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탁월한 능력을 가진 것이 복음입니다. 믿습니까! 믿읍시다! 믿어야 합니다. 이거 믿는 것이 예수 믿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자들은 이 복음이 정죄한 것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이 복음이 가치 있다고 하는 것은 죽음이라도 버리지 않습니다. 알겠습니까?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시면 온 우주가 불탈 것인데 불태우는 이유는 이 복음을 업신여긴 자들을 다 불태웁니다. 이 복음이 불을 태웁니다. 모든 체질이 녹아질 때에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옮겨가는 사람들은 다 이 복음의 권위성을 믿고 이 복음을 좇아서 따라서 산 사람들만을 무궁 영생 세계로 옮깁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모든 피조물 어떤 것보다 복음을 그것만은 못하다 하지 않는다. 땅위에 어떤 것보다 복음은 자랑스럽고 영광스럽고 지극히 탁월한 고차원의 것이다.

그러면 복음보다 크고 높은 거는 없느냐? 복음보다 크고 높은 것은 자존자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믿습니까! 안 믿으면 망합니다! 절대로 땅위에 있는 이런 저런 과학이 우리에게 죽음을 면해 주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영생을 주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자유를 주지 못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복음이 뭐인데? 복음은 간단하게 신구약 성경 말씀과 영감인데 신구약 성경 말씀과 영감이 어떻게 그렇게 권위가 큰가? 신구약 성경 말씀과 영감은 하나님이 사람되어 우리 대신 두 번 죽으시고 삼 일 만에 부활하신 사활로 일곱 가지 큰 구원을 만들어서 우리에게 주신 예수님의 사활 대속의 일곱 가지 구원이 이 복음 속에 싸여 왔습니다. 이 복음 속에는 이 일곱 가지가 들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복음은 이 일곱 가지를 우리에게 얻어서 가지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복음 속에는 이 일곱 가지가 들어 있기 때문에 이 복음은 모든 피조물보다 탁월한 영광과 권세와 가치를 우리에게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 위에는 뭐인가? 복음 위에는 자존하신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없는 가운데에서 모든 것을 예정하신 것도 복음 때문에 예정했습니다.

모든 걸 창조하신 것도 복음 때문에 창조했습니다. 이런 거 저런 거 지음받은 것들이 지저분하게 제가 자존한 것처럼 제가 제힘으로 된 것처럼 하지마는 너는 이 복음 위해서 지음 받았다. 네가 무신론을 말한다 할지라도 너는 이 복음 위해서 무신론을 주장하는 그 직책을 하라고 지음받은 네다 하는 걸 믿어야 합니다.

그런고로, 복음은 하나님 다음으로 존귀한 것이요 우리에게 가장 하나님 다음으로 효력을 주는 것이요 권위 있는 것이니, 무엇 때문에? 복음 속에는 하나님의 의 곧 예수님의 사활의 일곱 가지 대속 구원이 이 가운데 들어 있습니다. 이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모든 존재는 지음받아 있는 것들입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믿다니? 이 신구약 성경에서 가르치는 하나님을 가르친 그대로 믿고 또 하나님은 어떤 분이라는 것을 성경이 가르쳐 주신 대로 그대로 믿고, 또 인생과 만물이 어떤 것이라 하는 것을 성경에 가르쳐 준 그대로 알고 믿고, 또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이 일곱 가지 대속 구원을 그대로 사실이다 참되다 믿고 그대로 바라보고 그대로 구원 이루는 행동을 해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는 것입니다.

이 믿는 것은 물론 이 세상에서 믿는 것으로 병낫는 일도 있지마는 그까짓 것도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거는 일곱 가지 이 구원이 이 속에 든 것을 믿도록 하기 위해서 ‘네가 이것 봐라. 이것 봐서 이것 믿어지지? 네가 눈으로 보니까 사실 돼지지? 이거 봐서 이걸 믿어라.’ 이 복음의 구원을 믿도록 하기 위해서 증거물로 증거의 역사로 그와 같이 해 주는 것입니다.

또 이 복음을 믿으면 천하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는 그 세상 축복을 주는 것도 그까짓 것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이 복음대로 하니까 과연 허무한 거 같으나 그대로 되는구나’ 이 복음을 믿도록 하기 위해서 그런 것을 하나 증거품으로 해 주시는 것입니다.

복음을 믿어 처음에 저 북해에 해적 노릇하는 이 영국 해적 족속이 처음 믿어 가지고서 일차적으로 세계에 이름을 날려서 세계에 제일 신사국이요 강대국이 한번 됐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복음을 버릴 때에 지금은 뭐 형편이 없습니다.

이차적으로 거게서 이 복음을 믿다가 쫓겨나가 가지고서 저 아메리카라 하는 그 섬에 걸려 가지고 거게서 이 복음을 믿는 그 사람들이 세계 이차적으로 크게 한번 이름을 날리고 있습니다. 현재까지는 뭐라고 쌓아도 미국이 세계에 제일 부강국입니다. 소련이 말하지만 소련은 막가는 것이고 지금도 그 비중은 같이 달지 못할 만치 그와 같이 복있는 나라가 됐습니다.

일본 나라가 우리 나라에게 항상 종노릇했습니다. 거게서 사람 가죽 삼천 명 가죽을 매년 벗겨 올리라 할 때에 벗겨서 바쳤습니다. 조공을 바쳤습니다. 그렇게 한 나라이지마는 그가 명치 시대에, 우리 나라서는 복음 오는 것을 배척을 했고 거게서는 환영을 해서 우리 나라보다 사십오 년 동안 복음을 먼저 받았습니다.

먼저 받은 그것으로써 우리 나라를 삼십륙 년이라 하는데 그렇지만 앞서기를 지금 사십 한 오륙 년 근 오십 년 우리 나라보다 앞서 있습니다. 그거는 뭐이냐? 복음을 먼저 받은 관계입니다.

이래서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 주일 지키는 것도 잘 모르고 이라니까 공일날로 해 가지고서 이 날은 놀아야 된다, 토요일은 반공일로 해 가지고 놀아야 된다 이래 가지고서 그들이 복음을 받되 엉터리로 형편 없이 받았지마는 우리보다 먼저 받았으니까 그만치 우리보다 앞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우리 나라가 그 나라에 삼십륙 년 동안 노예 생활 하는 것은 복음을 배척하고 늦게 받은 관계입니다.

오늘도 우리 한국에 세밀히 조사를 해 보면은 모든 문예 부흥이나 경제 부흥이나 인물 부흥은 꼭 복음대로 갑니다. 복음이 그 집에 먼저 들어갔으면 먼저 들어간 것만치 그 가정은 반드시 먼저 성장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북이 복음을 바로 받지 못했지마는 이북이 이남보다 복음을 먼저 받았기 때문에 이북이 모든 면으로 앞섰습니다. 이북 사람의 머리가 이남 사람보다 앞섰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복음을 중간에 잊어 버렸습니다. 잊어 버리고 이 복음을 하나의 유물주의의 방편으로만 삼았기 때문에 그들이 결국은 이 복음을 버렸기 때문에 유물주의 공산주의에게 다 점령을 당해 가지고 그와 같이 돼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복음으로 인해서 여러가지 받습니다.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다고 했습니다. 우리 나라도 지금 그런 것이 아직까지 교회서는 그런 걸 간추릴라고 생각을 안 하고 사회에서는 자꾸 자기 잘난 것으로 자꾸 드러내고 이라니까 복음이 파묻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한국에 복음을 가지고서 그 복음을 받아 가지고 된 문화 운동이나 모든 발명 운동이나 경제 운동이나 인물 운동이나 다 보면은 복음 받은 순서대로 다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받아 가지고 잘나가고 난 다음에는 망령되게 복음을 버렸기 때문에 다 망합니다.

지금 우리 한국에서도 유력한 인물들 낱낱이 촐촐 추려서 물어보면 그 사람들이 다 복음 받은 사람이고 복음으로 그렇게 잘나는 걸음을 걸어 가지고서 복음 버리고 다 망했습니다.

이런 것은, ‘복음에는 기록한 모든 말씀이 진실하다, 거짓말이 없다, 다 복음은 그대로다, 거짓말 하지 안하는 진실한 하나님, 말씀을 약속했으면은 책임지시는 하나님 이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라.’ 하는 것을 이 복음은 말해도 모르니까 이 복음 외에 지저분한 이 세상 것 가지고서 믿는 대로 하니까 그게 됩니다.

마치 베드로가 주님 말씀하신 대로 하니까 고기 잡힌 거와 마찬가지로 믿는 대로 하니까 세상 것이 됩니다. 세상 것 되는 거게서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을 얼토당토 안 한 말씀으로 알았는데 말씀대로 순종하니까 이렇게 고기가 많이 잡혔구나, 주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고 말씀 그대로구나 그것을 깨닫고 난 다음에 베드로가 이 고기 잡는 게 아니라 이 말씀 가운데는 이 복음에 영원한 그 구원이 있으니 이까짓 거 볼 게 없다, 말씀대로 그대로 되니 성경에 영원한 구원을 말씀했기 때문에 이거는 내가 상관하지 않는다 이래 가지고서 주님 앞에 자복을 했습니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할 때에 주님이 ‘네가 이제 깨닫고 이 모든 것보다 내가 말한 모든 이 구원이 참되다 인정을 하느냐?’ ‘예, 인정합니다. 이제는 오늘까지 거짓말로 알았던 주의 말씀은 천지는 변해도 변치 않는 참된 말씀인 것을 내가 믿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네가 사람 수입에 착공해라.’ 그라고 난 다음에 배와 모든 그물과 고기를 다 버려두고 주님을 따라서 인간 수입에 나섰습니다. 인간 수입에. 인간 구원에 나섰습니다.

인간 구원에 나서서 자기의 일생을 바칠 뿐 아니라 마지막에 생명을 바칠 때에 ‘이 존귀한 데에 내가 천한 생명을 바치니 이 생명을 그저 바칠 수가 없다. 나는 십자가에 못박을 때에 바로 박지 말고 나를 꺼꾸로 못을 박아 달라. 이 영광스러운 바침을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같이 그냥 옳게 박힐 수 없다.’ 꺼꾸로 못박아 달라고 간청을 해서 베드로는 꺼꾸로 십자가에 못박아서 순교했다는 그런 전설이 있습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이 구원은 일곱 가지를 오전에 간단하게 말했습니다. 시간 있으면 일곱 가지 구원을 다시 한번 구체적으로 말할라고 합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이 사실을 인정하는 자 외에게는 필요 없어. 잘난 사람도 필요 없어, 하나님께서. 단지 당신이, 잘난 사람도 필요 없고 명철한 자도 필요 없고 영웅도 필요 없고 부자도 필요 없고 미인도 미남도 필요 없고 건강자도 필요 없고 활동력 많은 사람도 필요 없고, 병신이라도 좋아, 당신에게는. 당신이 만들라면 다 할 수 있기 때문에.

다만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서 우리가 멸망 만들어 놓은 그 멸망을 당신이 대신 값을 내시고 우리가 하지 못할 것을 당신이 대신 하셔서 우리에게 구원 주신 이 일곱 가지 이 사실을 성경에다 기록해 가지고서 이 사실을 선포할 때에 이 사실을 참되다 인정하는 사람, 참되다 믿는 사람, 요걸 믿으므로 요대로 사는 사람 그외에는 필요가 없어.

그 외에는 필요가 없어. 세계를 다 점령해도 필요가 없어. 세계 점령한 사람이라도 싹 쓸어 버려. 너는 내게 필요 없어. 네가 세계 점령해서 대왕 노릇을 하나 너 대왕 노릇하는 것은 일곱 가지 이 구원을 믿는 자들의 이 구원을 이루는 데에 네가 이용당하고 수종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지 네가 주체가 아니라. 네가 가치 있는 게 아니라. 외나 가치는 이 일곱 가지 구원에 가치를 두고 일곱 가지 구원을 위해서 이용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라. 믿습니까!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모든 예정을 이 목적을 위해서 예정을 정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정대로 모든 걸 창조할 때에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창조했습니다. 오늘까지 창조하신 것을 보존하시고 섭리하시고 하는 이 모든 것이 이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시는 것입니다. 목적이 뭐입니까? 일곱 가지 대속의 구원이 목적인 것입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 주신다” 이 구원은 믿는 자에게 줘. 믿으면 주시요.

믿으면 제것 돼. 믿으면 제것 돼. 못났든지 잘났든지 이 구원을 믿음으로 행동한 것은 다 영생이라.

나는 온 세계에 이십세기의 문화를 어떻게 했다, 어떤 과학에 노벨상을 내가 받았다 해도 하나님께서 다 내것 가지고 네가 이런 것 저런 것 한 그것은 이 일곱 가지 대속의 구원을 위해서 그런 것들을 다 이용할라고 내가 너를 이렇게 저렇게 만들어서 이렇게 저렇게 사용한 것이지 이 육천 년 동안 모든 창조 속에 이루어지는 것은 알맹이는 일곱 가지 구원 이것뿐이라. 일곱 가지 구원뿐이라.

일곱 가지 구원이 다 완성되면, 경건과 불경건이 완전히 구별되면 뭐라고 말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것은 다 불사른다고 했습니다. 내 말입니까? 아니오. 천지는 없어져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 불사르는 게 오늘인지 내일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노아 홍수 때에 온 천하가 물로 개벽을 한다는 말을 누가 믿었습니까? 안 믿었지마는 선지자 노아가 예언한 그대로 됐습니다. 온 우주가 불탈 것을 믿지 않지마는 선지자들이 신구약 성경에 예언해 놓으신 말씀 요대로 우주는 다 불로 종말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 사실들을, 성경이 가르치는 이 사실들을 옳다, 참되다, 거짓이 없다 인정하고 요대로 사는 사람만이 하나님께서 대우합니다. 이것을 부인하는 자는 암만 잘나도 유황불 구렁텅이입니다. 이거 내 말이 아니오. 성경이 말했소. 또 ‘네가 이놈아 이런 말 하노?’ 하고서, 죽어도 나는 말하지 안할 수 없습니다. 옳은 말 하는 것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옳은 말 하는 것이니 구원하는 구원의 역사 옳은 말 하다가 죽는 것은 영광으로 알고 있지 그것을 두려워하거나 섭섭하거나 손해라 해라고 생각지 않기 때문에 얼마든지 선지자들은 말했습니다.

“모든 믿는 자를” 이 영광스러운 구원, 천상 천하의 모든 피조물들의 별별 운동보다 큰 운동, 모든 존재보다 큰 존재, 모든 가치보다 큰 가치, 이 지극히 존귀한 보배, 하나님 다음으로 보배 이 보배는 어떤 자의 것이 되는가? 믿는 자의 것이라. 믿는 자. 이 사실을 모든 사람은 거짓말이라고 하는데 그 사람은 참되다 인정하고 요대로 바라보고 요대로 상대해서 요대로 살아.

영원 무궁한, 하늘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 영원 무궁한 세계, 빛과 진리와 사랑으로 넘치는 영생하는 생명 나라는 누구의 것인가? 믿는 자의 것입니다. 그 나라의 등급은 믿음의 등급입니다. 그 나라의 실력은 믿음의 실력입니다. 그 나라의 가치는 믿음의 가치입니다. 그 나라의 대우와 환영은 믿음의 대우요 환영입니다. 이러기에 보배로운 믿음이라고 성경에 말했습니다.

보배로운 믿음.

이 믿음이, 이 복음을 믿는 믿음이, 이 복음을 믿는 믿음이 땅위에 있는 모든 것보다 가치 있고 우리에게 효력이 있고 우리에게 유익하고 필요한 것을 믿는 사람은 손 한번 듭시다. 녜, 믿습니다. 이보다 더 가치 있는 일 없습니다.

오늘이라도 없어지는 건데, 참 좀 있으면 이제 언제 주님이 구름 타고 오실란지 오면은 인간들이 부인하는 이 말씀을 부인하는 부인은 똘똘 쓸어서 유황불 구렁텅이에 하나님이 진노해서 태워 버릴 것입니다. 이럴 때에 우리 민족은, 우리 이 인류는, 이 멸망 속에 안 들어가야 될 터인데 안 들어가야 되기 때문에 우리가 매를 맞으면서 전도를 하는 것입니다. 욕을 얻어먹으면서 전도를 하는 것입니다.

천대를 받으면서도 전도를 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그렇게 세상에서 멸시 천대받는 것을 우리가 천대로 여기지 않는 것은 이 복음대로 영원 무궁토록 이루어질 터이니까 이 복음에 위반된, 이 복음에 이탈된 온 영광스러운 것도 우리가 불쌍히 여기고 가련하게 여겨서 그를 구원하기 위해서 애터지지 부러워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이 복음대로 함으로 인해서 세상에 핍박 조롱받는 것은 복음대로 함으로 핍박 조롱받으니 옳고 참되고 영원히 행복된 것으로 훼방 받으니 훼방 받는 그것과 이다음에 이 나라가 나타날 때에 영광과 존귀의 그 참된 것과 비교하면 족히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여게서 모든 사람에게 욕 얻어먹는 이 복음대로의 믿음 행위는, 믿음 행위는 이 욕 얻어먹는 이거, 해라 하는 이거보다도 이 복음과 하나되었으니까 앞으로 영원 무궁세계에서 이 복음과 하나된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영광과 존귀를 얻는 것은 측량 못합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로마 8장 18절에 “이제 받는 고난과 장차 얻을 영광은 족히 비교할 수가 없다”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요 능력이라 말은, 요 능력의 성질로 말하면 폭발력과 같은 그런 능력입니다. 폭발력이라 말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마는 그게 터질 때는 굉장히 위력입니다.

이 구원의 능력이라 말은 이 구원은, 일곱 가지 구원은 하나님의 능력이라. 일곱 가지 구원은 하나님의 능력이라. 일곱 가지 구원은 하나님께서 이 일곱 가지 구원 속에 계셔 가지고, 일곱 가지 구원 속에 알맹이가 뭐입니까? 일곱 가지 구원 속에 알맹이가 뭐입니까? 알맹이가 피와 성령과 진리입니다. 알겠습니까? 피와 성령과 진리입니다.

피와 성령과 진리가 뭐입니까? 피와 성령과 진리는 하나님이 유일로 당신이 전부를 기울여서 역사해 놔서 완성해 놓은 것이 피의 역사입니다. 영감은 하나님이 피의 역사로 시작해 가지고 모든 것을 계속하는 것이 영감 역사입니다.

이 모든 것을 정리하고 통치하는 것이 진리 역사입니다.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말은 일곱 가지 사활의 대속 속에는 하나님이 내주하셔 가지고서 영생하는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 구원 속에 내주하셔 가지고 역사하시기 때문에 이 구원은 전능의 구원이요 영생의 구원이요 완전의 구원이요 불변의 구원이라는 것을 오전에 증거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안에 계셔서 완전자, 전능자, 전지자, 영원 불변자, 완전한 성결, 완전한 사랑, 이 완전자가 하나님이 이 복음 일곱 가지 구원 속에 들어 가지고서 역사하니까 이 복음에 나타내고 있는 일곱 가지 구원은 항상 청청합니다. 항상 청청합니다. 억만 년 가도 청청합니다. 쇠잔하지 않습니다.

비유컨대는 천 년 가니까 이만치 커졌습니다. 만 년 가니까 이만치 커졌습니다.

억만 년 가니까 이만치 커졌습니디. 자꾸 커집니다. 자꾸 커집니다.

이래서, 기독자의 구원을 이 삼각이라 이렇게 비유한 사람이 있습니다. 삼각이라.

요거 삼각인데 요게는 쪼부당하지마는 갈수록 넓어져. 갈수록 넓어져. 자꾸 넓어져.

이래서 이것을 가리켜서 일천 년을 지내니까 이 운동이 발목에 올라오고, 일천 년을 지내니까 무릎에 올라오고, 일천 년을 지내니까 허리에 올라오고, 일천 년을 지내니까 가슴에 올라오고, 일천 년을 지내니까 두부렁이 뜨고 모두가 전부 생명으로 충만해집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구원입니다. 이 구원의 비밀을 아는 사람, 믿는 사람, 상대해서 바라보면서 요대로 준비하는 사람이 복있는 사람입니다.

노아 때에 하나님이 예언하신 예언을 듣고 일백이십 년 준비해 가지고서 홍수 구원에서 세상은 멸망받고 하나님의 후사로서 우주를 차지한 노아의 구원은 우리의 영원한 구원을 하나 그림자로 보여준 하나의 계시 기관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영원합니다.

이래서 요것을 상대해서 요 구원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요 구원에 참여하도록 할라고 애를 쓰는 자에게는 주인이 와서 칭찬하고 주인의 무엇을 다 그에게 다 준다 했습니까? 주인의 무엇을? 주인의 모든 소유를. 영원 자존자 천상 천하의 모든 존재를 다 가지신 그분의 것을 이 구원을 믿고 이 구원을 위해서 수고하고 이바지한 사람 이 사람에게 다 맡겨 줘서 통치하게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때가 되면 거두리라.” 여러분들 주일학교 반사들이 자기 벌어 가지고 번 대로 다 토큰 사서 인간 구원에 다 하던 그 사람들이 언제는 그리하다가 지금은 망령을 부리고 이제 그런 것은 뒤 놓고서 어만 일 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그 동안에 복음에 바친 거 제가 믿든지 안 믿든지 그 모든 것에 대해서 하나님이 댓가를 주십니다.

내가 여기서 예수 믿다가서 낙심을 하고, 낙심하고, 반사노릇 하다가서, 벌어 바치다가 반사노릇 하다 낙심을 하고 간 사람 뒤를 알아 보니까 낙심하고 갔는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줘 가지고서 자꾸 부자가 돼. 부자가 되니까 제가 잘난 줄 알고 하지마는 그래도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서 그라니까 이제 가 가지고서 늦게사 다시 예수 믿는 과거의 그날을 그리워하면서 다시 신앙으로 일어서고 돌아섰다 말을 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죽는 날까지 이 복음을 위해서 투자하는 일, 복음을 위해서 바치는 일, 복음을 위해서 노력하는 일을 낙심하지 마시고 이 사실이 얼마나 존귀한 것을 깨달아서 마음에 염증나고 피곤치 아니하는 이 깨달음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에게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 중에 평화로다” 예수님이 자, 몇 가지를 예수님께서 인간 구원을 위해서 몇 가지를 바쳤기 때문에 하늘과 땅에 그의 영광과 효력의 혜택이 가뜩 찼습니까? 몇 가지 예수님께서 바쳐 살았습니까, 손가락으로? 뻐뜩 들어 봐요. 녜, 다 이 셋을 가리키는데 옳습니다.

당신의, 하나님으로 당신의 모든 부요, 당신의 영광과 존귀, 당신 지위 권세 실력 다 바쳤어. 우리 구원하기 위해서 다 바쳤어. 손해갔습니까? 아니오. 이제는 다시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얻었습니다. 다 권세 잡았습니다.

그런고로 요 말씀이 똑똑히 들어서 단단히 기억합시다. 잊어 버리지 말아요. 16절 다시 읽습니다. 16절, “내가 복음을” 복음이 뭐인데? 아시지요? 복음이 뭐인 줄 아시지요? “내가 복음을” 복음이 뭐인데?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부끄러워하지 아니한다 말은 무슨 말인지? 하나님 다음으로 모든 존재보다 탁월한 것으로 내가 믿고 있지, 탁월한 것인 것을 알고 내가 믿고 있지, 어떤 존재라도 이 복음보다 나은 것은 하나님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요렇게 믿는 것이 믿습니다. 요래 다 믿습니다. 나도 이래 믿습니다. 나도 이래 믿습니다. 이래 믿는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녜, 우리가 다 이래 믿습니다. 못 믿어도 이래 믿고 어리석어서 가다가 실수할지라도 믿기는 이래 믿습니다. 땅위에 아무 가치할 게 없어.

내가 언제 어떤 사람이 전화가 와서, 땅위에 매력 있고 좋은 거 좀 마음이 끌려갈 만한 그런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아무 데도 붙일라 해야 그런 게 없다고.

여게도 붙여야지. 아무 데도 없어. 주님 외에는 아무것도 가치로 매력으로 내가 끌리고 맡기고 탐할 것이 아무것도 없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이 복음은” 속에 일곱 가지 알맹이로 가지고 있는 복음은, 일곱 가지 알맹이로 가지고 있는 복음은, 일곱 가지 속에는 뭣 들었습니까, 손가락으로? 복음 속에는 몇 가지 들었습니까? 녜, 이 일곱 가지. 일곱 가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이 들었어. 이 사활 대속 속에는 뭣 들었습니까? 뭣 들었습니까?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폭발적인 능력이 이 속에 들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이 가운데 들어 계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진리와 영감이 이 속에 들어 계십니다. 알겠습니까?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구원을 주시는” “믿는 자에게” 이 구원은 누가 차지하는고? 믿음으로만 받을 수 있어요. 하나님은 돈도 필요 없어요. 엿새 동안에 당신이 다 만든 건데 뭐 돈이 필요하요? ‘나는 지금’ 요새 비싼 대지 저 서울서는 뭐 아마 한 평에 지금 한 일억 가는 그런 땅도 있어. 한 평에 일억 가는 거 있어. ‘일억 가는 땅을 몇만 평을 바치겠습니다.’ 하나님은 그까짓 거 돌아보지 안해요. 엿새 동안에 다 당신이 만든 거라. 오늘 지금 제일 천하다고 생각하기를 저 아마 여기 저 백두산 산만당은 지금 공산주의들이 제일 천하다고 볼 것입니다. 백두산 산마당을 한 평에 일억짜리를 만들라면 당장 만들어요. 사람을 그리만 다 모이면 거기가 일억짜리 돼 버려. 알겠습니까? 하나님은 그까짓 거 가치로 보지 안해. 다만 당신을 믿어 드리는 거, 당신이 선포해 놓은 계약을 믿고 그대로 실행하는 거 이거 외에는 가치로 치지 않습니다.

알겠습니까?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자, 여게 국민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들 많이 있는데 이 학생으로서 복음을 땅위에 모든 것보다 더 탁월한 가치로 여기고, 학교에 공부보다 복음은 못한 것으로 공부에 비해서는 복음은 수치스러운 것이라 이렇게 알지 않고 복음은 땅위에 있는 모든 천상 천하의 운동 모든 지식보다 이 복음은 무한히 탁월한 권능과 가치와 행복과 효력을 가지고 있다는 이 사실을 믿는 학생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요거 믿어야 돼요. 믿읍시다.

쥐고 놓지 마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이게 가치 있어.

그 외에, ‘나는 고관 대작으로 지냈습니다. 나는 어느 시대에 어떤 정권을 잡았습니다. 세계에 이런 무슨 상을 받았습니다. 문화 건설에 공로자입니다.’ 다 필요 없어. “죽은 자는 죽은 자에게로 가야 된다” 그건 다 죽은 운동이라. 그건 다 죽은 운동. 산 운동 생명 운동이 아닙니다. 알겠습니까? 요 일곱 가지 사활의 대속 운동만 산 운동입니다. 믿습니까! 믿는 사람 손 한번 듭시다! 녜, 됐어.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굳게 잡읍시다. 놓지 말아요. 공산주의 독침 앞에서도 요동치 말아요. 육의 생명을 빼앗겨도 놓지 말아요. 그라면 육의 생명 빼앗긴 것은 한없는 영광의 상급이 되고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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