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배울 때

 

1987. 4. 2. 새벽 <목>

 

본문:마태복음 23장 7절∼10절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어제 아침에 증거를 했습니다.

사람들은 다 타락한 후에는 전부 마귀의 거짓말 거게 유혹돼 가지고 전부 꺼꾸로 알고 있습니다. 마귀란 놈은 처음부터 그런 자요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을 모든 일을 꺼꾸로 하도록 해 가지고 멸망시킵니다.

꺼꾸로 하게 한다 말은 삐뚤어지게 하게 한다는 말이요 삐뚤어지게 하게 한다는 말은 죄되게, 죄가 되도록 하게 한다는 말이요 죄가 되게 하는 것은 사망하게 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11절에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큰 자는 이거 섬김을 받는 자가 큰 자 되는 게 아니고 섬기는 자가 큰 자 되는 건데 섬기는 그것으로써, 섬김으로써 자기의 실력이 인정돼지고 또 상대방에게 유익된 일 했기 때문에 좋아하지요.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마는 땅위에 오신 것이 제일 높은 분이시지마는 섬김을 받을라고 오지 안했고 섬길라고 왔습니다. 이래서 “생명까지 바쳐서 섬기기 위해서 왔다” 이랬습니다.

이랬는데 “큰 자가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이 큰 자 되는 것은 섬기는 자 되는 것이 큰 자 되는 것이요 자기를 자꾸 키워 가는 자는 섬기는 일을 자꾸 키워가는 것이 큰 자 되는 것인데 이 마귀란 놈은 가르쳐 놓기를 자꾸 섬김 받는 것이 큰 자라고 이래 가르쳐 놓으니까 어짜든지 섬김 받는 것만 할라고 자꾸 애를 써 가지고 자기를 망치고 만다 그거요.

12절에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자기가 자기를 높이는 자는, 자기가 자기를 높이면 첫째는 사람에게 천대를 받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자꾸 높이면은 사람이 자꾸 그 사람을 낮춰. 한 번 높이면, 자기가 자기를 한 번 높이면 다른 사람들이 또 한 번이나 두 번이나 그 사람을 낮게 보고 또 하나님도 그 사람을 낮아지게 만들고, 하나님은 낮아지게 만들고 사람들은 낮은 자로 인정하게 되고, 높은 자로 인정하는 게 아니라 낮은 자로 인정한다 그 말이오.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자기를 낮추는 자는 사람들에게 높이 인정받습니다. 높이 인정받아. 또 하나님도 그 사람을 높여 줍니다. 하나님은 실상으로 높여 주고 사람은 높이 인정하고,

이런데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는 사람이 정평정가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는 정평 정가를 해서 어떤 게 낮아지는 것이며 어떤 게 높아지는 것이며, 어떤 것이 높은 사람이며 어떤 것이 낮은 사람인가, 어떤 자가 큰 자며 어떤 자가 작은 자인가 이거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는 정평을 합니다. 자기에게만 딱 갖다 붙여버리면 헛일이라.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섬김 받는 것과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 그 두 가지 있는데 제가 다른 사람을 볼 때는 그 사람이 마땅히 섬김을 받을 사람인데 섬김 받을라고 하지 안하고 자꾸 섬길라고 애를 씁니다. 섬길라고 노력합니다.

그라면은 제가 정평을 합니다. ‘그 사람은 마땅히 섬김 받을 사람인데 섬김 받을라고는 하지 안하고 자꾸 섬기는 사람 될라고 한다. 그 참 귀한 사람이다.’ 이렇게 높여 줍니다.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는 그래 높여 주기 때문에 다른 이에게 대해서는 정평 정가를 합니다. 그러니까 아는 것이라 말이오.

그러나 자기에게 갖다 붙여 놓으면은 꺼꾸로입니다. 그러면 자기를 높이고, 다른 사람에게 섬김받을라고 애를 쓰고 높일라고 애를 쓰는 사람은 그 사람은 멸시를 당하고 천대를 당하는 줄 알면서 자기에게 붙여 놓으면 자기가 섬김을 받아야 자기가 큰 자 되고 자기가 높임을 받아야 큰 자 되는 줄로 이래 알기 때문에 요거 말이 아주 어려운 말입니다.

모든 행사에 대해서 다른 사람이 행사할 때는 제가 정평정가를 합니다. 자기에게 딱 부딪혀 놓으면 꺼꾸로 합니다. 또 모든 사리나 모든 일에 대해서 바로, 정평한다 말은 바로 평한다 말이오. 바로 평한다 말이요 정가라 말은 바로 가치를 정한다 말이오. 그러면 정평 정가,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는 정평 정가가 되는데 그만 자기에게 대해서는 달라져 버립니다.

이러니까 자, 하나만 묻고, 그거. 자기와 상관 없는 사람에, 자기와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 상관이 없는 사람에게 대한 평가가 바로 되겠습니까 자기의 원수에게 대해서 평가가 바로 되겠습니까? 어느 게 더 평가가 더 잘되겠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가, 상관 없는 사람에게 대한 비평과 평가가 바로 된다 말이지요, 더 바로 된다 말이지요, 원수에게보다? 그거 한번 좀 생각해 봐. 원수에게 대해, 원수가 하는 일을 볼 때에 비판과 그 평가가 더 잘될지 상관 없는 사람에게 잘될지 어떤 것이 더 잘될지? 그거 알면 말귀 알아듣는 건데. 원수에게 더 평가가 바로 됩니다. 원수가 만일 삐뚤어진, 참말로 조그매라도 삐뚤어진 게 있으면 아주 삐뚤어지게 봅니다. 또 원수에게 좋은 일이 있는 그것은 자기가 그렇게 좋게 보지 안합니다. 그게 나중에 가 보면은 실상이 바로 됩니다.

또 자기와 상관 없는 사람에게 대한 비평과 평가가, 평가라 말은 가치를 따진다 말이오. 비평이라 말은 옳으냐 그르냐 그걸 따진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자기와 상관 없는 사람에게 그게 더 바로 되겠습니까 자기와 가까운 사람에게 바로 되겠습니까? 자기와 가까운 사람에게 바로 되겠습니까 또 자기와 상관 없는 사람에게 바로 되겠습니까 어느 것보다 어느 것이 더 바로 되겠습니까? 상관 없는 사람에게 보다 바로 된다. 그 말이 맞습니까? 맞은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자기와 가까운 사람에게 그것이 보다 바로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좀 들어 봅시다. 그래도 남자들이 낫구만. 수는 여자들이 많은데 남자들이 나아. 이거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집사님 잘 모르는 것 같은데. 눈을 보니까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자기와 상관 없는 사람에게 대한 비평과 평가와 자기와 가까운 사람에게 대한 비평과 평가가 어느 것이 바로 되느냐? 자기와 상관 없는 사람이 자기와 멉니까, 자기와 가까운 사람, 뭐 사돈 팔촌이라도 걸리든지 뭐 친구든지 가까운 사람이 자기와 멉니까 어느 사람이 멉니까? 상관 없는 사람이 멀지요? 상관 없는 사람이 먼데 그거 비평과 평가는 가까운 사람보다 상관 없는 사람에게 대한 비평과 평가가 보다 정확하게 됩니다.

또 자기와 가까운 사람에게 대한 비평과 평가와 아주 자기에게 자기의 아주, 아주 가까운 사람, 자기 몸과 같이 자기와 아주 한덩어리와 같은 그런 사람에게 대한 비판과 평가 중에는 어느 것이 또 더 정평되고 정가 되겠습니까? 아주 자기와 한 몸 같은 그런 사람에게 대한 것이 정평 정가 되겠습니까 자기와 그저 가까운 그 사람, 그냥 가깝게 지내는 그 사람에게 대한 것이 정평 정가 되겠습니까? 자기와 가깝게 지내는 그 사람에게 더 정평 정가 됩니다.

또 자기와 아주 친근한 사람과 자기에게 대해서와, 그러면 그 둘 중에는 어데 대해서 정평 정가가 보다 더 정평 정가가 되겠습니까? 자기에게 대해서가 되겠습니까 자기와 아주 친근한 사람에게 대하겠습니까? 저 ○집사님? 자기에게 대해서가 더 정평 정가가 될란지 자기와 가장 친한 그 사람에게 대한 것이 정평 정가가 될란지? 뭐이 어느 게 보다 좀 잘돼요? 뭐라 하노? 친구? 친한 사람? 거짓말 했으면 나한테 하나님 앞에 죄되지. 알면서 그래? 알면서, 그거는 알 것인데 알며 그런 소리하면, 대답을 했으면은 죄가 돼. 그런 행동 하면 안 돼요.

정말로 몰라 그런가? 알며 그렇게 대답했지? 그것도 내가 알아. 안 돼요. 속에, 어찌됐든간에 옛사람 그만 뽑아버려 버려야 됩니다. 그놈이 원수인 줄 알고 그놈을 죽일라고 애를 써야 돼요.

자, 여게서는? 여게는 양성원 학생들 한번 말해 봐요. 어데가 보다 정평 정가가 될 건가? 자기와 아주 친밀한 사람에게 대해서가 정평 정가 될 건가 자기에게 대한 것이 정평 정가 될 건가, 어느 것이 보다 정평 정가 될 건가? 여게 누가 말하기를 ‘자기와 친밀한 자가 자기보다는 정평 정가 된다’ 이라는데 자기가 그걸 보고 비평할 때 말이오. 하는 행동을 보고 비판하고 평가할 때 말이요, ‘자기에게 대한 것보다는 자기에게 친근한 사람에게 대한 것이 보다 정평 정가가 된다’ 그렇게 대답을 하는데 그 대답이 옳습니까 틀립니까? 틀리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옳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인제 좀 차차 알아듣는 것 같구만. 옳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어두워지는 것이 어데서 어두워집니까? 어데서 어두워집니까? 남에게서 어두워집니까 자기에게 대해 어두워집니까? 자기에게 대해서 어두워집니다. 자기에게 가리워져서 어두워집니다. 자기 그놈이 원수라 그 말이오.

자기가 원수인데, 자기가 원수라? 그러면 자기가 원수라 말이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자기가 원수라 말이 맞다, 또 자기가 원수가 아니라 모든 피조물 중에는 자기가 제일 보배라 또 하는 말은 또 맞습니까 틀립니까? 저 ○조사? 맞아? 둘 다 맞아. 그거 또 우스운 대답 하네.

그러면 자기가 피조물 중에는 제일 원수고 또 자기가 피조물 중에는 제일 자기에게 대해서 보배고 둘 다 맞아요? 너는 맞아? 너? 맞나? 맞나? 안 맞나? 둘 다 맞아요 둘 다 틀려요? 둘 다 맞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인제 말귀를 조금 알아듣는 모양이라. 둘 다 맞아.

둘 다, 이게 틀리면 이게 맞고 이게 틀리면 이게 맞지 둘 다 맞을 리가 있는가? 그렇지 안하요? 둘 중에 자기가 제일 원수라 하는 게 맞다든지 자기가 제일 보배라고 하는 것이 맞다든지 이거 맞으면 이게 틀리고 둘 다 그래, 둘 다 맞는다 할 수가 있는가? 둘 다 맞는대요. 둘 다 맞는다고 손을 들었는데 둘 다 맞습니다.

알겠습니까? 둘 다 맞소.

둘 다 맞다니? 그러면 원수는 뭐인데? 자기 아닌 자기, 자기를 죽인 자기 아닌 자기, 원수인 자기, 그놈이 뭐인데? 그놈이 몇 가지로 된 놈인데? 손가락으로? 이 세 가지.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그놈은 원수 중에 원수입니다. 이놈을 원수인 줄 알고 잡아죽여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제일 고급 우상, 제일 상급 우상이 있다 했는데, 삼 계급의 우상 있는데 제일 상급 제일 높은 상급 우상 있는데 그놈은 뭐라고 했지요? 자기 아닌 자기 그놈이 제일 우상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놈 시키는 대로 해 가지고 다 죽소. 그놈이 제인 줄 알고 그놈 시키는 대로 하다가 다 죽습니다. 그놈이 자기입니까 자기 아닙니까? 그놈이 뭐 한 놈입니까? 자기를 죽인 놈입니다. 악령이 자기 죽이지 안했소? 악성은 뭐입니까? 무슨 죄입니까? 원죄. 악습은 무슨 죄입니까? 본죄.

이것도, 악령 악성 악습이 옛사람이라 하는 이 말도 나는 성경 보고 읽으며 알지를 못했어. 설교 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이 그 말 해서 그 말 쑥 내놓고 난 다음에는 가슴이 도근도근해. ‘이거 틀렸나 안 틀렸나?’ 나도 모르게 설교할 때 다 나와서 설교해 버렸는데 이거 틀렸는가 안 틀렸는가 몰라서 그 뒤에 자꾸 조사를 해.

차차 조사를 하니까 조금씩 조금씩 자꾸 알아져 지금은 확고합니다. 확고해서 그래,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그것이 옛사람이다.’ 또 그것도 또 이래 자꾸 뭐 이래 설교하는 가운데서 악령은 에덴동산에서 아담 하와를 꾀운 그 배암이요 악성은 그게 내나 원죄다. 악습 그게 내나 본죄다. 딱 들어맞다 그 말이오.

그래서 제일 성경 내가 많이 배우는 것은 어데서 많이 배우느냐? 하나님 말씀을 증거할 때에 당신이 나를 통해 증거해 줬는데 증거할 때는 몰라도 나중에 그래 놓으니까 ‘이게 어찌 되나?’ 그래 내가 출애굽기를 가르치면서 ‘여호와는 성부 성자 성령보다도 제이위 성자 그리스도를 가리킴이다’ 이렇게 말하는 그 말을 해 놓고 내가 오랫 동안 떨어서 걱정을 했다 그 말이오.

왜? 오늘까지는 전부 여호와는 지금 성부로 보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성부로 보고 있고 구약에 하나님은 딴걸로 이래 보고 있는데 이걸 “나는 너를 애굽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라” 이랬는데 그 여호와에 대해서 이걸 바로 해석을 해야 십계명이 우리에게 대한 계명으로 알고 있지, 신약 성경은 자기에게 필요한 줄 알지마는 십계명은 그저 구약 육체의 이스라엘들에게 말해 준 걸로 이래 보지 지금 십계명관이 틀렸다 그거요.

‘십계명이 곧 신구약 육십육 권의 강령이요, 그러기 때문에 육십육 권을 똘똘 뭉치면 십계명이 되고 십계명을 이렇게 주 풀어 놓으면 육십육 권이 된다.’ 이것을 지금 말해서 이 십계명을 살려야 돼서 십계명을 중요하게 여겨야 되겠는데, 사람들이 십계명 그것은 중요하지마는 구약적 계명이고 신약적 계명이 아닌 것으로 이런 관념을 가지고 모두 다 인식을 하고 있다 말이오.

이래 요걸 바로 잡아 놔야 되겠는데 요 바로 잡을라고 내가 설교하다 그 말이 나와 가지고 그만 그래 하고 난 다음에 뒤에 수습하기가 문제가 그 말이오.

그래서, 그라고 나서 며칠 지나고 나서 그 주간에는 여게 ○○○목사님이 여게 계셨습니다. 계셨는데 저분에게 한번 물어보면 저분은 교리학을 공부한 사람이요 교리사를 공부한 사람이요, 교리사를 공부한 사람이기 때문에 잘 비판할 거고 또 교회사도 공부했으니까 잘 알겠다 싶어서 물어볼라 해야 물어볼 시간이 없어 못 물어봤어.

이랬는데 저 포항서 백육십 교회가 뚤뚤 뭉쳐 가지고 ‘저 한국총공회라 하는 그 교파는 그거는 이단이니까 가지 마라’ 의논을 단합으로 딱 결의를 하고 ‘자, 그라면 여기 대해서 이단인 것을 지적하도록 지금 위원을 내자.’ 위원을 냈대요.

위원을 냈는데 지금 언제 나올란지? 지금 그 소리를 들으니까 가슴이 따끔따끔해요.

왜? 그거 내치 괜찮았는데 이거 여호와에 대해 가지고 지금 이렇게 해 놔서 이게 어찌 되나? 그거 지금 그래서 혼자 떨었는데, 그라니까 ‘이거 하나님께서 나에게 지금 이거 주시는 거 아닌가? 이거 무슨 잘못된 게 아닌가?’ 하나만 잘못되는 날이면은 그만 팍 꼬꾸라질 거라 말이오. 하나만 잘못되면 그만 정죄해 큰일 납니다.

이러니까 그래 가지고 여러날 동안을 고민했어. 여러날 고민해 자꾸 이라다가 이제는 차차 차차 그게 바르다는 것을 확신을 가졌어. 이제는 확신을 가져서 이거는 뭐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가 다 달라들어도 여게 대해서는 정죄받지 않는다. 여게 대해서는 요게 올바른 깨달음이다 하는 확신을 내가 가지게 됐다 말이오.

나는 제일 성경 배우는 것이 이 설교할 때 배우는 걸 제일 많이 배워요. 설교할 때 배우는 게 제일 많이 배우고 둘째로 어데서 많이 배우느냐 하면은 설교하고 난 다음에 강단에서 그날 아침에 설교한 데 대해서 기도하다가 기도하는 가운데서 많이 배우고, 둘째로 많이 배우고. 또 그라고 난 다음에 셋째로 많이 배우는 건 언제 많이 배우느냐 하면은 이래 지금 생활 하다가, 사람 접촉해 생활할 때 그때 딱 깨달아져. 사람 접촉해 얘기하는 가운데서 또 생활 행동 하는 가운데서 깨달은 것 셋째 배우고, 넷째로 배우는 거는 성경 보고 배우는데 성경은 읽으면 성경에 그렇다는 걸 기억만 하고 있고 기억만 하고 있는데 깨닫기는 제일 많이 깨닫는 것은 설교할 때, 둘째로 많이 깨닫는 것은 설교 하고 나서 강단에서 새벽으로 기도하고 있을 때, 셋째로 깨닫는 것은 자기 행동하는 데에서, 행동하는 데서 깨달아지고 성경 보고 깨닫는 건 넷째라 그 말이오.

그래서 이 성경을 가지고 자꾸 앉아 읽으면서, 읽으면서 깨닫겠다고 해 가지고 깨닫는 그 사람은 또 하나님이 그래 깨닫게 해 주는지는 모르지마는 내 경험으로서는 그 깨닫는 것이 그것이 방편이 제일 좋은 방편은 아니다 그래 봐요.

그래서 학습 문답 세례 문답할 때에, 학습 문답할 때에 성경을 바로 깨닫는 데 제일 좋은 방편이 뭐라고 했어요? 여기 말해. 학습 다 받았지? 뭐이요? 자기가 성경 읽고 그대로 행할라 할 때에 그때 깨달아지는 것이 제일 좋은 방편이라 그렇게 해서 학습 문답할 때에 그렇게 답을 하면 만점이고 그래 답 안 하면 다 틀렸다 그거요.

오늘 아침에는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그러면 하늘나라에서는, 하늘나라에서는 제일 큰 자는 섬기는 자가 큰 자 되니까 하늘나라에서 제일 큰 자는 누구겠습니까? 하늘나라에서 제일 큰 자는 누구겠어? 제일 많이 섬기는 자가 누굴까?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제일 많이 섬기는 자요. 그러니까 하늘나라는 하나님이 제일 큽니다. 땅에서는 제일 큰 자가 누굽니까? 섬김을 받는 자요 섬기는 자요? 섬김을 받는 자라. 이러니까 땅에 큰 자와 하늘에 큰 자와 다릅니다.

그러면 땅에 큰 자는 큰 자로 그렇게 평가하는 거, 섬김을 받는 자가 큰 자로 평가한 것은 누구 지식을 가지고 평가하니까 그리 됐습니까? 마귀 지식을 가지고 평가하니까 그렇소. 마귀 이놈이 원수라. 오늘 아침에 좋은 걸 많이 배웠는데 요걸 기억 안 하면 안 돼요.

이러기 때문에 이 보면 전부 꺼꾸로 지금 알고 있어. 마귀란 놈이 자꾸 꺼꾸로 가르치거든. 그러기 때문에 “너희가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뭐라 했소? 뭐라 했어? 지혜의 반대가 뭐입니까? 미련이지요. “미련한 자가 되어라” “네 마음에 요게 옳다 싶거들랑 정반대로 해라 그래야 지혜 있는 자가 된다” 그 말은 무슨 말입니까? 그 말로서 인간이 알고 있는 지식은 전부 꺼꾸로다 하는 것을 딱 정죄해서 하는 말이라. 꺼꾸로다. 이러니까 성경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인데 하나님의 지식과 인간의 지식이 정반대라.

이러니까 자, 무슨 일이든지 물건이든지 뭘 그것을 이게 유익이 되나 이거 손해가나? 뭣이든지 비판하고 평가할 때에는 그 이해를 말이요, 내게 유익이냐 해냐, 이거는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 틀렸느냐 옳으냐 하는 그런 것을 비평하고 평가할 때에는 어떻게 해야 돼? 정신을, 양심을 써 가지고 아주 정신을 써 가지고 그렇게 비판하고 평가해야 됩니까 이거 막 눈을 부릅뜨고 이래 가지고 막 ‘응, 바로 해야 되지, 바로 해야 되지’ 막 밥을 굶고 이래 해야 됩니까 어떻게 뭣부터 해야 바로 됩니까? 뭣부터 해야 돼요? 양심을 써야 됩니까, 애를 써야 됩니까, 그거 또 열심히 해야 됩니까, 조심 있게 해야 바로 정평 정가가 되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됩니까? 뭣부터 먼저 해야 됩니까? 양심을 써서? 양심을 써서? 어데서 왔지? 어느 진영에서 왔지? 어느 교회서 왔어? 인제 대답한 이 말이요, 인제 대답한 이 말이오. 어느 교회서 왔어? 어? ○○○교회서. 바로 몰랐어. 집회 잘 안 다녔지? 다녔어? 자 뭣부터 해야됩니까? 뭐 조심부터 해야 돼요? 양심을 써야 돼요, 정신을 차려서 해야 돼요, 또 마구 이리 저리 골고루 골고루 여러 다방면으로 자꾸 생각을 해야 돼요? 뭐 해야 돼요, 뭣부터 먼저 해야 돼요? 저 영도에 저 학생? 모르겠어? 그래 여기 똑똑히 배워야지, 인제. 저 대학생인데 잘 알 건데 모른다 말이오. 그 옆에 앉았는 사람? 지식과 지식을 구별해야 된다 그거 바로 안 거라.

지식. 자기가 마귀 지식 이 세상 지식 가지고 평하면은 이리 가야 된다 하는데 하나님의 지식 가지고 평하면은 이리 가야 된다 하거든. 그러면 세상 지식과 하나님의 지식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전체로 말하면 정반대입니다. 그러나 그거는 반거짓말이 섞였기 때문에 꼬우기 위해서는 같은 부분이 있습니다. 같은 부분이 있으나 뿌럭지를 찾아보면 다 틀려.

이러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자기가 비판하고 평가할 때는 지식부터, ‘내가 하나님의 지식으로 지금 비평하고 평가하나 세상 지식으로 비평하고 평가하나?’ 이래 가지고 하나님의 지식으로 하면은 바로 하게 되고 세상 인간 지식으로 하면 하나님의 지식에 정반대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것이 뭐 이러니까 말 들어보면은 정반대라.

이러니까 제가 그전에 고신에 있을 때에 대립이 돼서 내가 참 똘똘 몰려 가지고 외롭게 됐었는데 그때 나와 동지되는 사람이 있을까 해서, 한 사람이 동지가 있었는데 그 사람이 그래도 나 가는 걸 옳다고 주장을 하고 따라오기는 따라오고 주장하는 사람인데 그 사람이 친구는 하나입니다.

이랬는데 뭘 사건을 닥쳐 떡 말해 보면 정반대라. 인본주의라. 신본주의를 찾아내지를 못해. 그래도 그것을 뭐 박하게 하면 안 될 것이고 내가 있다가 그거 틀렸다 소리는 안 하고 ‘녜, 혹’ 그거 자기가 교회에 대한 걸 혹 물으면은 ‘요렇게 했다’ 묻기 때문에 그라면 했다고 말할 때는 ‘그렇게도 요렇게도 한번 좀 생각해 보십시오.’ 이라면 그거 틀렸다 말이오. ‘요렇게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라면 `그게 옳습니다.' 이래 놓으니까 잘 찾아와서 자꾸 묻고 이래 해요.

하나마 내가 마지막에는 딱 단절해 버렸어. 왜? 그 사람이 와서 말하는데 열 번 말하는 데 한번도 정평 정가 해 나가는 일이 없어. 모두 삐뚤어지게 이래 평해 나간다 말이오. 이래 놓으니까 그 사람하고 이렇게 하나로 이래 나갈라 하면 자꾸 지장이 돼서 안 되겠어. 그래서 그때 박혜영씨더러 소개를 해 달라 해 가지고 가 가지고 얘기하다가 그 시간에 내가 딱 단정지웠어. ‘이제는 내가 한 사람도 같이 나가지 안하고 그저 같이 나가는 데 따라오면 따라오고 그만 이래 나가지 사람하고 합해 나갈라 하니까 이 바른 길 가지 못하겠다.’ 그래 가지고 그때 그만 그 앞에서 내가 그분에게 말하기를 ‘나는 이제 누구도 같이 나가지 안하고 하나님이 내게 깨닫게 해 주시는 대로 그만 그대로 나는 나갈랍니다. 나가고 뭐 같이 동지가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고’ 그래 가지고 사람하고 합할라고 애쓰지 안하고 하나님하고 합하면, “앞서 가면 그만 뒤에 따라오느니라” 하는 그 요한복음 10장에 있는 그 말씀대로 그대로라, 보니까.

이러기에 사람들은 뭐 있으면 ‘이게 내게 유익이 되나 해가 되나?’ 그래 생각합니다. ‘이래야 유익할까 이래야 해가 될까? 어떻게 해야 유익이 될까? 어때야 내게 손해갈까? 덕이 될까? 이래야 바르나 저래야 바르나?’ 그걸 자꾸 조심해서 애를 쓰지 그것보다 네가 먼저 문제는 지식을 바로 정해라. 네가 하나님의 지식 가지고 비판할래 평가할래 세상 지식 가지고 할래? 어느 지식을 네가 취하는지 그게 문제지 마귀 지식 취해 놓으면 세상 지식 취해 놓으면 하나님이 하신 일 전부 다 틀렸고 하나님 지식 취하면 세상 것 다 틀렸고, 이러니까 자, 세상 지식 가지고 그라면은 하나님의 지식에, 세상 지식 가지고 비판하고 평가해 놓으면 그거는 하나님의 지식에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안 맞아.

두말 할 것 없이 하나님의 지식을 주장하면 하나님의 지식은 예를 들면은 오른쪽으로 이리 가라 이란다면은 세상 지식 가지고 하면은 왼쪽으로 이리 가라 정반대로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네가 그 지식이 어느 지식이 옳으냐? 지식부터, 옳고 그른 지식부터 선택해 가지고 옳은 지식을 네가 잡고 해야 되지 지식을 잡지 안하고 네가 뭐 어느 게 옳으냐 틀리냐 어느 게 유익이냐 손해가느냐 그런 것은 네가 생각하는 것은 지식이 틀리면 네가 꼭 이거는 백 가지 옳다, 온 천하 사람이 유익이다, 이게 바르다, 온 천하 사람이 유익이다 해도 심판에서 다 불타버리고 말지 옳은 게 하나도 없다.

이러기 때문에 모든 비판과 평가보다 앞서 뭘 해야 됩니까? 지식을 어째요? 지식을 바꿔야 됩니까 지식을 구별해야 됩니까? 자, 바꿔야 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구별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분 손 들어 봐요.

구별해요, 구별. 이게 중요합니다. 이게 작은 말이 아니라, 뭐. 양성원 학생들 공부해서 이번 학기에 하나도 공부 안 배워도 돼. 요거 하나만 알아도 그만 족해요, 요거 하나만.

모든 일에는 지식을 구별해 가지고 ‘내가 하나님의 지식 가지고 내가’ 지식이 모든 걸 비판하거든요. 양심도 지식의 지배를 받거든요. 이러니 ‘어느 지식을 지금 내가 사용하고 있느냐?’ 마귀 지식 사용하면 그거는 마귀대로는 옳고 하나님대로는 틀렸고, 하나님의 지식을 사용하면은 마귀대로는 틀렸고 하나님대로는 옳고 이러니까 지식 구별이 제일 먼저 앞서야 된다 그거요. 시간 다 됐는데 또 그 다음에 지금 배워서 할 터이니까 요걸 자꾸 읽어요.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형제라 말은 다 같다 말입니다. 동등이라.

동등이라 뭐, 형제라 말은 꼭 동등이라 그 말이오. 동등이지 거기 탁월하지를 못했다 말이오. 탁월한 분은 하나뿐이라. 탁월하신 분은 한 분뿐이라.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라” 아버지라 말은 내가 거기 나왔다 말입니다. 나왔다 말이오. 그런데 오계명은 지키는데 사람들의 선생님은 섬기지 말라 했어. 선생님은 섬기지 말라 했어. 선생님은 섬기지 말라 했는데, 선생님은 섬기지 말라 했는데, 왜? 이 영육, 영육 이것은 하나님께서 내놓은 건데, 하나님에게서 나왔는데 그 전달자는 누굽니까? 영육을 전달한 전달자는, 하나님께서 그거 내보냈는데 영육의 전달을 바로 한 전달자는 누구요? 저 봐, 가르쳐 봐, ○선생? 영육의 전달자는 누구지? 하나님이 내놨는데 영육의 전달자는 누구야? 뭐라고, 대답해 봐. 뭐라 해? 그 옆에○집사? 전달자는 부모야. 그 전달자는 바로 됐어. 그건 바로 했어.

부모라.

그런데 이 선생님이 말이요, 선생님은 지혜와 지식을 말하는 건데, 지혜와 지식을 전달하는 자는 이 모두 이 세상에 선생님들이 꽉 찼는데 그거는 귀중히 여기라 했소 그걸 조심하라 했소? 세상에 있는 선생을 귀중히 여기라 소리 안 했어.

삼가라 했지.

왜? 지식과 지혜는 전달을 바로 하지 못해. 하나님의 지식과 지혜를 바로 전달하는 자는 귀중히 여기지. 하나님의 지식과 지혜를 바로 전달하는 자는 뭐이요? 누구요? 하나님의 지식과 지혜를 바로 전달하는 자는 누굽니까? 누가 바로 전달하요? 바로 전달하는 자는 누구요? 누구? 예수님이 뭐 하나님이신데 바로 전달을 했지. 성경 기자가 제일 바로 전달했고, 성경 기자를 귀중히 여기요.

그런데 성경 기자를 가리켜서 이름을 뭐라고 해요? 선지자. 알겠습니까? 선지자.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바로 전달하는 이는 선지자라. 선지자는 귀하게 여겨야 돼. 선지자를 귀하게 안 여기면 죽어요, 망해요.

이런데 육체의 전달은 바로 됐기 때문에 부모를 공경하라 했지마는 선생을 높이 공경하라 소리 안 했어요. “미혹을 받지 마라 적은 누룩이 어떻게 큰 덩어리를 다 썩히는 거와 같다” 이 세상 선생들을 다 그렇게 말해 놨어. 누룩으로 비해 버렸어.

그런데 그라면 하나님의 지식과 지혜를 바로 전달하는 이는 선지자인데 선지자는 대우를 하라 했어요 대우를 하지 말라 했어요? 선지자는 하나님 다음으로 대우를 하라 했다 그 말이오. 그러면 선지자가 누가 선지자인가? 성경 기록자, 기록해 가지고 우리에게 준 자가 선지자요 또 그 말씀을 그대로 바로 전달해 주는 자가 선지자라 그거요.

시간 됐으니까 자꾸 와야, 배워야 되는데 모르면, 모르면 뭐할 거라? 아무 소용 없어. 그렇게 쉬운 건 줄 알아요? 어제도 내가 어떤 편지가 왔는데 이 설교록을, 못 가구로 막 이래 막고 이라니까 어떤 사람이 저거 그뭐 동서라든가 뭐 처남이라 하던가 동서인가 어데 그 집에 갔더래요. 가니까 뭐 이단이라고 자꾸 소문이 난 뭐 백 목사 설교록이라는 것이 뭐 책이 하나 보이더래요. 이게 뭐인고 싶어서 하도 좀 거석해서 한번 보니까 그만 그거 어떻게 좋아놨는지? 그래 가지고 그걸 읽어보고 난 다음에 그래 편지가 왔어. ‘어짜든지 지금 이 설교록을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든지 그리 안 하면 이 주소로 설교록을 보내 주면 내가 송금을 해 줄 터이니까 송금 어떻게 해 주면 된다든지 이거 설교록 받을 수 있는 길 좀 열어 달라’ 이랬어. 그래서 내가 그걸 편집실로 보냈는데 편집부에서 그거 할란지 모르겠어.

이렇게 귀가 뚫린 사람은, 좀 심령이 살아 있는 사람은 한 마디만 딱 들으면 알아요. 알면 그만 되는데 어떤 사람은 반대라. 어떤 이는 여기 지금 앉아서도 와서 반대하는 사람 있어. 설교하면 그 반대야. 그거는 얘기 들어보면 정 꺼꾸로 반대라. 육백육십육이라. 한 마디도 육백육십육 아닌 게 없다 그 말이오. 그 불쌍해. 똑똑한 사람이 그래.

사람 바꿔야 됩니다. 주인이 바꿔지기 전에는 마귀 것은 딱딱 들어맞고 좋고 하나님과는 틀리고, 또 주인을 바꿔서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새사람이 자기 주인이 돼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 말씀은 딱딱 들으면 맞고 세상 말은 전부가 틀리요.

이래 놓으니까 새사람이 보면 세상을 환하게 바로 보여서 이것은 참 허와씨라, 헛되게 막 번쩍거리는 세상이지 알속 없는 허와씨라. 이거는 전부 인생은 행인이요 나그네인데 이거 모르고 지금 이거 영주처인 줄 알고, 세상이 영주처인 줄 알고 지금 착각하고 야단을 지기는 거라.

새사람도 모두 다 보는 거라. 다 보는 그걸 이래 말해 주면 반대하는 사람도 어떤 사람은 ‘아, 그 말이 맞다.’ 이래 자기가 또 깨는 사람 있는데 새벽기도 안 나오면 아무것도 모르지. 제까짓 게 뭐 알 거라, 알기를? 세상 박사 가지고 되는 줄 알아? 안 돼. 안 되는 것은 말마다 해보면 다 육백육십육이라. 하나도 바로 알지 못하고 있어. 그대로 사니까 그대로 살면 다 구원은 건설구원은 다 지옥이야. 하나도 가지 못해요.

그러기에 주님 말씀하시기를 “네가 본다 함으로 죄가” 뭐라 했어? “죄가 그저 있느니라” “내가 온 것은 보지 못하는 자는 보게 하고 보는 자는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왔다” 주님이 그랬거든.

‘그거 무슨 소리인가?’ “이 세상 지식 가지고 아는 그자는 다 본다 하는 자이기 때문에 그거는 그래 봐서, 그래 알아서는 틀렸다. 모르게 하기 위해서 왔고 ‘나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하는 자는 알도록 하기 위해서 왔다” 그 말이오.

“네가 본다 함으로 죄가 그저 있느니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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