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1984. 6. 3. 주일오전

 

본문 : 히브리서 4장 4절∼10절 제 칠 일에 관하여는 어디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 칠 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또 다시 거기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하였나니 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이 주일과 안식일에 대해서 아직도 사람들이 깨닫지 못해서 미혹 받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안식교라는 그 교파는 지금도 안식일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고  그렇게 주장을 교파가 있습니다. 그 교파는 안식일만이 아니고 다른 교리와  신조면에 성경대로가 아니기 때문에 보수파, 정통파에서는 다 안식교를 이단으로  그렇게 이십세기 전반기까지는 정죄를 했습니다. 이단으로 정죄한 것은  천주교에서도 그러하고 개혁교에서도 그러하고,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장로교  모두 다 안식교는 이단으로 그렇게 다 취급했습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같이 이 안식을 하나님이 주신 것은 없는 가운데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이 창조된 것을 하나님이 복 주어서 잘 살게 하기 위한  안식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안식일을 지키는 거 가지고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지를 못하고   물론 구약에 있는 성도들은 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비로소  소망하는 구원이 완성이 되는 것이지마는   그 준비에도 바로 되지를 못해서 그  후에 다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안식할 날을 정해 놨다고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한다 말은 이 안식일을 저희들에게  줬지마는, 이 안식일을 하나의 구원 얻는 법칙 중에 머리되는 법칙으로 썼지마는  그들이 바로 지키지 안해서 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저들이 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 안식에 들어갈  사람들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하였나니  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였으리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런고로 처음 안식은 이것은 일차  창조의 것을 축복하는 안식일로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주신 것이고,

 또 골로새 2장 16절에 보면. 골로새 2장 16절에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와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일의 그림자이나' 이것들은 다 장래일의 그림자라고 이랬습니다.

안식일 지키는 그 제도는 장래 일의 그림자요 실상은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그러면, 이 안식일 지키는 것은 다 장래일의 그림자요 월삭이나  절기나 안식이나 또 짐승을 잡아서 제사드리는 것이나 그런 것은 다 장래일의  그림자로 하나님이 그렇게 예표로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그것은 다 패해지고  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 생겨진 것인 것을 말씀했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10절에 보면, 갈라디아서 4장 10절에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그때  그 유대교는 이 구약 안식일을 주장을 하고 이래 가지고 메시야가 와서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푼 것을 부인했습니다. 그래서  이 구약에 속한 이 절기를  성경에 폐하고 다시 신약에 안식일을 주일로 변경한 이 날을 지키라고 하셨는데,  이 날짜 변경해서 지키는 것과 구약에 있는 제도를 폐지하는 걸 인해서 박해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너희들이 지금도 그 구약 제도를  그렇게 지키고 있고, 그는 참의 그림자인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이후에는 이제 예표적으로 지키던 모든 제도가 이 실상으로 이루어졌으니까  실상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될 터인데 늘 그렇게 하고 있다 이라면서  너희들이 아직도 그것을 폐할 줄을 모르고 어두운 그 그림자에게 속해 가지고서  신앙생활 하고 있으니 내가 너희들에게 복음 전하는 이 모든 수고가 헛될까 해서  염려가 된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안식일을 지키고 주일을 지키지 않고, 메시야 예수님을  저거들의 구주로 영접지를 아니하고 다시 메시야가 올 것으로 그렇게 생각을  하고 허망한 짓을 하고 있습니다. 그거는 마귀에게 붙들렸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 육체의 이스라엘 그들이 예수님을 자기의 구주로  영접해서 신앙을 유대교가 완전히 이 신교로 그렇게 다시, 개종은 아니지마는  서도 안식일도 제도도 다 변개돼서 구약 시대에 한 그것은 예수님을 예표한  것이요, 모형한 것이요, 예약한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메시야로 영접해서  자기들이 구주로 이렇게 믿는 그 일이 시작돼야 유대인들에게 평화가 올  것입니다. 아직까지 평화가 오지 안하고 지금도 계속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연단시키시고 고난에 넣는 것은 그 들이 다 메시야 관이 잘못됐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서 바로 믿는 사람들은 영감을 받아서 다 예수님의 구주로  믿었지마는 바로 믿지 안하고 외식하는 그런 사람들은 그저 하나님의 도를  믿는다고만 했지 실상은 믿지 안하기 때문에 메시야가 왔을 때에 영감으로  얼마든지 증거해 줬지마는 서도 영감을 부인을 하고 지금 고집을 하고 있어서  유대인들이 저렇게 참혹한 꼴을 지금 계속 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신약 교회가 이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성경에 말한 대로 났는데  유대인들이 저렇게 아직까지 메시야를 찾지 못하고 저래가지고 있으니 아무래도  도를 전해서 예수님을 저희 구주인 것을 알고 구원 준비를 하도록 이렇게 해야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그들이 멸망하지 않겠다 해서 이 신약 교회에서 유대교를  예수 믿는 교회로 그들이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애를 많이 썼습니다. 지금도 이  개혁교에서 유대인으로서 뉘든지 예수 믿는 사람이 되면 그의 생활을 다 보장을  다 해 줍니다. 생활 보장 다 하고 교육 다 보장하고 이래도 그들은 안 믿습니다.

안 믿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성지 순례 하러 갔다가 온 사람한테 얘기를  들으니까 유대인들이 좀 어떻게 되었더냐? 좀 반성이나 회개했더냐?' 아주 뭐  유대인들은 아마 세계에 그런 민족은 없다고. 어떻게 거짓되고 물질주의가 돼  버리고 이랬는지 도무지 어느 나라에 가 봐도 그런 민족은 없다고 그러니까  메시야를 반대하니까 악령이 저희들을 붙들고 작용하니까 그렇게 점점 악화되어  가서 고난만 당하고 하나님의 은택은 하나도 보지를 못합니다.

 하나 예를 들면 택시 타는 사람이 '그러면, 아무데까지 갈라 하면은  얼마입니까? '네, 얼마입니다.' '그 길을 압니까?''네, 압니다.' 택시를 타  가지고서 '여기가 거기입니다. 내리십시오.' 내리고 보면 아주 엉뚱한 데를 갖다  놓는다고. 근방에 갖다 놓는 게 아니라 고만 저 먼데 엉뚱한 데 이래 갖다 놔요.

인제 그것도 성지 순례 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반감을 가진 것이오. 그렇기  때문에, 그만 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은 정반대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 이 안식교의 미혹을 받아서 예수님을  믿다가도 그 안식교의, 자꾸 안식일이라고, 성경에 보면 '안식일을 지키라'  안식일만 말했지 주일을 지키라는 그런 말은 별로이 없으니까 그게 옳지 않느냐  이래 가지고서 안식일로 들어가는 그런 미혹 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그 날짜는 똑똑히 성경에 변경을 시켰다 그렇게 말씀을 했고, 또 여러  군데 보면 '너희들이 지금 이날이냐 저 날이냐 하는 그런 것을 힐난 받는 그런  일을 하지 말아라. 너희들이 양심에 감화되는 대로 작정해라. 안식일은 폐지됐고  주일로 이렇게 변개됐는데 그렇게 고집을 피우고 있느냐' 하는 것을 성경에 많이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날짜는 변경했지마는, 날짜는 성경에 변경했다고  했지마는 서도 지키는 그 제도는 변경을 하지를 안했습니다. 이러니까, 그러면,  주일을 지키면 주일을 어떻게 지키느냐? 주일 지키는 그 법칙은 안식일 지키는  그 법칙을 끌어다가 주일 지키는 법칙으로 사용하면은 됩니다. 그 법칙 지키는  그 법칙은 변경 안 됐고 날짜 만 변경을 했습니다.

 그러면 안식일은 하나님이 없는 가운데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지은 만물을  복되게 하시고 그것을 구별하기 위해서 안식일을 주었고, 주일은 그게 아니고  일차 창조 한, 일차 창조 한 것이 원죄와 본죄로 타락을 해서 멸망 가운데에  있는 것을 둘째 아담 예수님께서 오셔 가지고 대속의 공로를 베푸셔서 구속을  이루어 놨기 때문에 이제는 예수님 십자가의 대속으로 사망에서 완전히 생명으로  옮겼고,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겼고, 마귀의 자식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 옮겼고  이렇게 완전히 이 구원을 이루어 놓으시고 이 구원을 우리들에게 입혀 주는,  예수님이 이 대속하신 구원을 입혀 주시는 날이 주일날입니다.

 첫째 창조한 그 모든 창조물을 하나님이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는 날이  안식일이요. 그러나 그것은 지키지 안해서 그들이 타락을 해 버렸습니다. 이제  두 번째 하나님이 주일 주신 것은 인간이 지키지 못한 것을 하나님이 친히  오셔서 대신 지키심으로서 하나님의 지공법과 지성의 완성을 이루시고 그 공로를  인해서 성령님이 오셔 가지고 같이 역사하게 됐고 진리가 역사하게 돼서 성경에  세 보증이 있다고 말하면서 '성령과 물과 피라' 이 피는 공로를 말했고 물은  성경 말씀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주일을 지키는 것은 무엇을 하는 것인고 하니 예수님이 도성인신  하셔 가지고 십자가상에서 이루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심으로 이루신. 예수님이  대신 죽으시고 대신 살아나심으로 이루어 놓으신 이 영원한 구원을 우리가 받아  가지기 위해서 이 주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주일은 무슨 날인고 하니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날이  주일날입니다. 죽으심을 기념하는 날, 또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  주일날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사죄와 칭의와  화친을 입히셨습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이 두 가지 죽음을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을 끼쳐 주신 이 구원을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심에 연합해서 죽는  일을 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어떻게 죽느냐? 죄 짓는 자를 내게서 죽이는 것이  우리 할 일이요, 또 하나님을 배반하고 제가 주장해서 사는 주관대로 사는 그  옛사람 이놈을 죽이는 것이 주일날 하는 것이요. 또 하나님과 원수된 것을  죽이는 것이 주일날 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죽이는 일을 주일날 하는  일이요 이 세 가지를 죽이는 능력을 받는 것이 주일날입니다.

 또 세 가지 사는 것, 죄 없는 자로 사는 것으로 끝을 마칩니다. 죄 없이 사는  것으로 죽는 것입니다. 죄 없이 살려고 하면 세상에서. 죽음이 두 가지 있는데,  자연으로 죽는 죽음이 있고 또 이런 모든 박해로 가지고 죽는 죽음이 있는데  자연으로 죽든지 박해로 죽든지 우리는 죄 없는 자로 살기 위해서 힘을 쓰다가  죽습니다. 또 하나님에게 피동 되는 순종으로 살려고 애를 쓰다가 혹은  자연법으로 죽는 사람도 있고 또 특별한 박해로 변사되는 그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죄를 짓지 않는 자로 살기 위해서 우리는  생명을 바쳐서 힘을 써야 되고, 또 하나님에게 피동 되는 자로 살기 위해서 생명  바쳐 힘써야 되고, 또 하나님으로 화친된 자로 살기 위해서 생명 바쳐 힘을 써야  됩니다. 그러면, 이 두 가지 예수님의 죽음에 연합한 이 연합의 은혜를 받는  것이 이 주일날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세 가지, 세 가지를 인해서 죽는 죽음. 또, 또 세 가지로 인해서  죽는 죽음. 세 가지는, 세 가지는 사망에 속한 것을 죽이기 위해서, 그것을  죽이기 위해서 우리는 죽기까지 힘쓰는 죽음, 또 세 가지로 살기 위해서  죽기까지 힘쓰는 이 죽음, 두 가지 죽음을 죽는 이 능력을 주일날 받습니다.

주일날 이 능력을 받습니다. 다른 날 받는 게 아니라 주일날 이 능력을 받아  가지고 엿새 동안에 이 능력을 받아 가지고 삽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들이  이 주일을 실패하면 다 실패입니다.

 또 하나는 예수님이 죽음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성령과  진리로 중생 됐습니다. 중생 됐으니까 이 새사람으로 살기 위해서 우리는  힘씁니다. 새사람으로 사는 자는 죽지 않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두 가지  예수님의 죽음에 연합해 가지고서 우리는 죽어야 되고, 두 가지 죽어야 되고,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에 연합한 것입니다. 연합 한 것이고,  예수님이 삼일만에 부활하신 이 부활에 연합해서 우리는 영원히 산 자로 삽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그 말은 예수님의 두  가지 죽으심에 연합해 가지고서 죽는 그 죽음은 죽는 게 아니라 죽는 그게 사는  것이라 말이오.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그 말은,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새사람으로 사는 그, 사람에게는 영원히 죽음이  없습니다. 영생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의 겉은, 겉은 두 가지 죽음에  연합해서 이 육체의 이 모든 생명과 이 몸이 죽습니다. 겉 사람은 죽고 속사람은  영원히 삽니다.

 그래서 이 주일을 우리가 지키는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기념하는  것이 이 주일날이오. 기념하는 것은 주님이 이 두 가지 죽으심으로써 나에게  사죄와 칭의와 화친을 주셨기 때문에 나는 이 사죄와 칭의와 화친을 기념해서  괴로와도, 이 사죄와 칭의와 화친은 괴로와도 내가 간직하고, 존귀해도  간직하고, 천하 것을 다 받아도 간직하고, 어떤 고난을 당해도 간직하고, 죽음을  당해도 간직하고 이 세 가지를 간직함으로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이  주일인데, 이날에 우리는, 기념하는 일을 하는 것이 주일날이오. 그러기 때문에  주일날은 주님의 이 두 가지 죽으심의 그 사랑을 깨닫고 나도 '주여, 이제는  주님의 죽으심에 연합해서 내게 죄 짓 는 자는 모조리 무슨 일이 있다 할지라도  내게 죄 짓는 자는 죽이고, 또 내 몸밖에 있는 이 세상에 있는 죄악도 내가 그  방편상 외유내강으로 하지 마는서도 나는 이 세상에 죄를 죽이는 것이 나 할일,  죄를 죽이기 위해서 내 생명을 바치는 것이라. 인간들이 자율대로 사는 이  인간의 자율을 주관을 죽이기 위해서 나는 모든 걸 바쳐서 사는 사람이라.

하나님의 원수된 자를 죽이기 위해서 바쳐 사는 사람이라.

 이래서, 죄 없는 자로 살기를 죽기까지 힘써서, 생명을 버려서, 생명을  빼앗겨도 죄 없는 자로 사는 이것은 빼앗기지 않는다. 그러면. 죄 없는 자로  사는 것을 생명을 뺏겨도 죄 없는 자로 사는 것은 뺏기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생명까지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죄 없는 자로 사는 거, 또 하나님에게 피동 되는  자로 사는 거. 하나님을 자기 보좌에 자기 신으로 자기의 주로 모시고 사는 거,  이 세 가지를 우리가 생각하면서 거기에서 자기가 깨달은 사람은 감사도 하겠고  또 눈물도 흘리겠고 거기에서 각오도 하겠고 해서, 이날에 주님의 죽으심을  자기가 깨달아서 마음에 감격해서 눈물 흘리는 사람도 있겠고, 우는 사람도  있겠고, 마음에 이제 마음을 찢어서 결심하는 사람도 있겠고. 각오하는 사람도  있겠고, 모든 순생과 순교를 작정하고 요 일을 강하게 내가 가지고 가짐으로써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고, 또 주님이 하나님이 피조물로서 부활하신 것이니까  하나님이 피조물 됐으니 우리가 말하면 똥구덩이 속에 구더기 되는 것보다도  더하지 않습니까? 주님이 이렇게 피조물 되신 이 고난이 얼마나 고난인지,  우리는 아직까지 이 원죄에 속해 있기 때문에 죽었다가 살아났으니까 좋겠다  싶지마는서도 이는 창조주가 피조물 된 그것은 얼마나 천해지고 얼마나 희생인지  모릅니다. 십자가 못 박혀 죽으심의 희생이나 예수님이 삼 일만에 부활하신  희생이나 한가지입니다.

 왜 주님이 그렇게 사람으로 부활하셨는가? 부활한 것은 우리만 내비두면 실족  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와 하나님과 연결을 시키는 그 중보 역할을 당신이 계속  가지고 하나님의 그 은혜로써 계속 입혀 주고 계속 분배해서 우리를 이렇게  살려야만 우리가 살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우리 위해서  부활하셨습니다. 이 부활을 기념한 것은 이제 주님께서 나에게 부활하심으로  이렇게 큰 희생 해 가지고서 다시 중생을 주셨고, 이다음에 또 부활을 주실  것이고, 지금 성화의 이 다시 사는 일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 일을 위해서  자기의 소유나 몸이나 생명을 다 바쳐서 이제는 내가 무엇이 어떻게 된다  할지라도 내 소유도 몸도 다시 주님이 부활하심으로 살아난 새사람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부활하심에 연합해 가지고 하나님을 향하여서 새사람으로 사는,  주님의 부활하심에 연합해서 사는, 연합해서 사는 여기에 내 전부를 다 기울여서  연합해 사는 생활을 계속 할 이 각오 깨달음과 또 거기에서 결심과 소원과  하나님이 이렇게 살 수 있는 능력과 이것들을 받는 것이 주일날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일날은 주님의 죽으심을 내가 기념하는 날이 주일날이요  주님의 부활하심을 기념하는 날 이 주일날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두 가지를 마음에 기념하는 원료를, 기념하는 원동력을  기념하는 이 원천을 내가 이 주일날 받아 가지고서 엿새 동안에는 이제 이  생활을 실천합니다. 엿새 동안에 주님의 두 가지 죽으심에 연합한 죽음, 그러기  때문에, 뭐 생명이나 소유나 그런 것이 어찌 된다 할지라도 이제 죄 짓는 자는  용납치 안하고 또 자기가 죄 없는 자로 살고 또 자기 주관대로 사는 것은 내  안에도 용납 안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용납하지 안해요. 자기 주관대로 사는 것.

자기로 사는 것. 또 하나님에게 피동된 자로 사는 이것으로서 모든 걸 다  기울여서, 하나님을 배반하는 거, 뭐 세상에 어떤 일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  배반하는 것은, 소유와 몸과 생명이 다 끊겨지겠지마는 끊겨질지라도 하나님  배반하는 그런 일은 용납할 수 없다. 또 하나님을 모시고 산다고 해 가지고서  사자 구덩이에 집어넣고 어데 뭐 불구덩이에 들어가고 독침을 가지고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일은 양보 없다. 요것을 강하게 우리가  깨달아서 어떤 사람은 눈물 흘리고 어떤 사람은 울고 어떤 사람은 가슴을 치고  어떤 사람은 구불고 어떤 사람은 그렇게 겉을 찢지 안하고 속마음을 찢어서  '주여, 이제는 내가 제물을 제단 위에 올려놓고 다시는 주의 죽으심을 내가  배반하지 안하겠고 부활하심을 내가 떠나지 않겠습니다.' 하는 요 깨달음과. 요  결심과 각오와 소원을 가지고 요렇게 살 수 있는 그 능력을, 주님의 죽으심, 두  가지 죽으심에 연합하는 능력을, 주님의 부활하심에 연합한 생활 할 수 있는 이  능력을 받는 것이 주일날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일날은 우리가 이거 지킨다고  하지마는 서도 주일날 예수님의 구속에 대해서 생각하는 그 생각이 없으면  헛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일날에 대해서 작정한 것이 주일날은 모든 매매와 업을 다  쉬고, 또 자기의 의복도 깨끗하게, 몸도 깨끗하게, 마음도 깨끗하게 이래  가지고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생각하면서 느끼고 느껴서 주일은 주님이 나  위해서 죽으심을 내가 기념하는 날이요 또 부활하심을 기념하는 날인데, 오늘은  그 죽으심을 참 기념할 대로 기념하고 기념할 수 있는 실력을 받는 날이  오늘날이라.

 이래서, 그 깨달음의 느낌을 가지고 어떤 사람은 주일을 지키기 위해서 주일날,  전날도 그러하지 마는 서도 주일날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느껴서 마음에  적어도 마음에 감사함을 느끼는 이거는 있어야 됩니다. 감사함을 느끼고 또  그보다 조금 더한 것은 참 감사함의 눈물이 나야 되고, 감사함의 눈물, 우리가  참 뜨겁게 강하게 느낄 때는 눈물이 없어집니다. 감사의 눈물보다도 마음이  찢어지고 우리 속에 '이제는 주님의 죽으심에 나는 연합한 자로 이제, 뭐 죽고  사는 그까짓 게 문제가 아니라. 어떤 고문과 고행, 어떤 일이 있다 할지라도  주님의 죽으심에 연합한 이 생활이 변동 없습니다. 또 주님의 부활하심에 연결  생활이 변동 없습니다.' 요것을 자기 마음에 다지고 다지는 그 마음을 가지고  주일날이면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 가 가지고서 이제 그 은총을 묵상해서  감사하면서, 이렇게 주님의 사활의 은혜를 받았으니 오늘 이 사활의 은혜 받은  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사활의 은혜를 받은 나로서 어떻게 살아야 된다는  것을 주님께서 가르쳐 주셨는데,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살아야 되는 것을  당신에게 다시 듣기 위해서 앉아서 이 음성을 듣고 또 이렇게 살 수 있는 능력을  받고,  이래서, 자기는 이 주일 지키는 데에서 두 가지 죽음에 연합한 사람으로 변화가  되고 부활에 연합한 사람으로 변화가 돼서 이제는 죄와 원수가 되어서 죄를 지을  마음이 전혀 없고. 죄가 미워서 죄를 지을 마음이 전혀 없고, 죄를 지을  마음이나 그런 것이 자기에게 꿈에라도 들어 올 수 없는 이런 사람으로 우리가  변화를 받는 것이 이것이 정상인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오후에 또 이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또 연구하고 또 새롭게 하고 또 새로운 그 힘을 얻고 이래  가지고 오후 예배를 마치면 밤에도 자기는 뭐 이리저리 오후에 다른 이런 일,  돌아다닌다 할지라도 겉으로만 돌아다니고 기 돌아다니고 걸어 돌아다니지  속에는 주님의 죽으심으로 나에게 가득 차야 되고 주님의 부활하심으로 가득  차서, 나는 죽으심과 부활에 꽉 연합이 돼서 이제는 뭐 세상이 온다 해도  꼼짝하지 않는 이런 사람으로 자꾸 다지고 다 지고 다지고, 나만 그럴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찾아가 가지고도 그 사람이 이 두 가지 연합을 하지 못하는,  죽음에 연합하지 못하고 부활에 연합하지 못하는 그것을 내가 있으면 그  사람에게 깨우쳐서 또 연합을 시키고 이렇게 하는 날이 주일날이오,  이렇게 하다가 월요일부터는 무슨 생활하는가? '자기 일을 힘써 한다.' 엿새  동안 자기 일을 힘써 하는 것은 주일날 이렇게 두 가지 연합에 결정하고  출발하고 은혜 받고 약속하고 각오하고 한 이 또 주님에게 방편을 배운 이  방편대로 엿새 동안에 이 일을 하는 것입니다. 뭐 내가 어떻게 소유가 다 절단  나도 이 연합은 변동할 수 없습니다. 또 자기가 어떤 고문과 고행을 당해도  연합은 변동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존귀한 자가 어떻게 천해진다 할지라도 이  연합은 변동할 수 없습니다. 자기의 생명이 어떻게 된다 할지라도 생명 때문에  이 두 가지 연합은 변화할 수 없는 요 사람으로 변화를 받는 것이 주일날이오!  이 주일날 이 능력을 받지 못한 사람은 세상을 이기지 못합니다. 입술로만  가지고 하는 거 소용이 없어. 과거에 6 25 때에나 왜정 말년에 그때 아무 일없이  피해 돌아다니면서 한 그런 사람 지금도 이 주님의 이 죽으심에 연합하는 그런  일, 죽이는 일 그런 일 또 자기가 살기 위해서 죽기까지, 죽을힘을 다해서 사는  것, 또 부활하심에 연합한 것, 이 생활이 돈 몇 푼만 해도 변동되고. 말 한 마디  해도 변동이 되고, 감정 하나에서도 변화되고, 직장 하나에서도 변화되고 이렇게  변화되는 사람은 구원에 참 천리 만리 멉니다. 이 주일날 은혜 받지 못하면  헛일입니다.

 이래서 주일에 대해서는 성경에 안식일의 법칙을 주시기를 주일날은 그 날은  아무 것도 하지 말라 했습니다. 다른 날 주일날 몫을 다 얻는다 이랬습니다. 다  수입을 본다 이랬습니다. 그러고 이 주일을 범해서 수입하는 그것은 다 썩고  자기에게 화가 됩니다. 또 주일은 그 안식일 법칙에 주일 범하는 사람은 용서  없이 죽이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일 범한 사람을 데려다 놓고 '이 사람을  어떻게 하랍니까?' 이라니까, 여호와 음성이 안 나와서 모두 기다리고 모두 다  가둬 놓고 있으니까 여호와 음성이나 가지고서 '그를 용서 없이 죽이되 저  이스라엘 군중 앞에 내세워 놓고 옆에 손을 대지 말고 먼데서 돌을 던져 죽이라.

더럽다 돌로 던져 죽이라.' 돌을 던져서 죽였습니다.

 그러면 오늘도 주일을 범하면서 죽는 죽음이 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주일을 범해서 그 심령이 죽어서, 그저 양복 입고 밥 먹고 이렇게  건들거리지마는 실은 날마다 죽는 그 죽음에서 새사람으로 중생된 기능은 다  죽고 또 중생된 자는 파묻혀서 일어나지 못 하도록.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광야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죽을 것만 준비하고 가나안에 못 들어간 거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 다 죽어지고 세상 떠날 때에 가지고 갈 것은 하나도 없고 하나님의  심판에서 인정받을 것은 하나도 없는 그런 믿는 사람되기 쉽습니다.

 그런고로 주일은 우리가 거룩하게 지킵시다. 주일날은 이 생명을 바쳐도 지켜야  됩니다. 새벽기도나 금요일 수요일은 생명을 바쳐서 지키라, 그거는 자유지  그거는 말하지 않습니다. 주일은 생명 바쳐서 지켜야 됩니다. 주일은 죽어도  지켜야 됩니다. ○○교파가 처음에 출발할 때에는 이런 계명들을 잘 지키니까  축복을 받았지마는 서도 나중에 그 계명이 흐려지니까 그만 모든 축복도  흐려졌습니다. ○○파에 있는 ○○○목사님이라고 거창 계시는 목사님인데  구호물자를 그때는 우리나라가 가난했습니다. 구호를 많이 받을 때인데  구호물자를 싣고 오다가 중간에 차가 고장이 나 가지고 고만 토요일까지  도착할라 하는 것이 도착을 못 하고 얼마 거리, 조금 거리 남고서 고장이 나  가지고 못 갔는데, 그래 그것을 고장을 고치기를 주일날 아침에 고쳤다 말이오.

주일날 아침에 고장이 고쳐져서 이제 지금 가면은 아무래도 오전 예배 설교는  하겠다 싶어서 부리나 하고서 가 가지고, 갔습니다. 그것이 주일날 차를 타고서  그렇게 구제 구호물자 싣고 온 차를 타고 이렇게 왔기 때문에 그것은 이 주일  범한 것이니까 이대로 둬서는 안 된다 해서 전국이 모여 가지고서 주일 범한  죄를 치리하기로 해서 ○○○목사님이 '그때 그 치리 받기를 육 개월을 받았는가  사 개월을 받았는가 치리를 받았습니다.

 받았는데 요새는 우리가 이 주일날 먼데서 지금 오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이  주일날 차를 타는 일을, 이것도 죄입니다. 차타는 죄도 범죄인데 이 주일날  차타는 죄를 짓느냐 주일을 그만 다 범하는 죄를 범하느냐, 두 죄의 중량을 달아  가지고, 주일을 범하는 것보다는 차타는 그 죄를 범하는 것이 오히려 경하다.

그러기 때문에, 차를 타고라도 주일을 지켜서 은혜를 받아 가지고 자기가  깨달으면, 차차 차차 그 사람이 깨닫게 되면 주일을 범하지 않는 데로 가까운  데로, 자기 교회로 가까운 데로 이사를 가든지 그렇지 않으면 뭐 주일날 범하지  않을 수 있는 무슨 자전차를 사든지 또 힘이 있으면 자가용을 사든지. 또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서 건강을 줘서 일찍 나서 가지고서 한 삼십 리 사십 리, 뭐  어떤 사람은 오십 리 백리도 걸어와요. 걸어와 가지고서 주일을 지키든지 이렇게  해서 그게 주일 차타는 것이 범죄인 줄 알고 이것을 차차 차차 고쳐 나가고  그보다 더 큰 죄, 은혜를 못 받아서, 은혜를 못 받으면 희망이 없기 때문에 이  사소한 죄를 범해서라도 은혜를 받아 가지고 차차 깨달아서 이제 고쳐져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가져야 되지, 뭐 주일날 차를 타는 것도 아무 문제가 없다  매매하는 것도 문제가 없다, 이래 가지고 점점 속화돼 나가서 이 주일을 범하는  것이 얼마나 더러워졌는지. 그만 성경에 있는 대로는. 성경 법대로는 지키지  않습니다. 이래 가지고, 어수의 잘 믿는 교회들도 주일 날 아예 편리하도록  주일날 장사하는 사람이 나와 가지고서 식당 해 가지고서 주일날 이제 식당에  가서 다 음식 사 먹고 또 그날 무슨 파티도 하고 이렇게 하는 것 이것이 다  주일을 범하는 것입니다.

 주일은 매매를 하지 안해야 되고, 자기 업을 금해야 되고, 학생들 공부하는  학생들은 공부를 안 해야 되고, 또 사업하는 사업을 쉬어야 되고 상점 보는  사람은 점방 문을 닫아야 되고. 또 병원의 의사들도 생명에 관한 일이면, 생명에  관한 일이면 치료를 해야 되고 그날 치료 안 해도 생명에 문제가 없으면 전날  준비하고 그날을 쉬도록 그렇게 하고 또 안 믿는 의사들이 많으니까 그런  의사들에게 그런 날은 양보를 해서 가도록 하고 이렇게 해서 우리가 주일을  엄격하게 지켜야 됩니다.

 '6 .25때 거창서 순교자 세 사람이 났는데, 나머지기는 죽은 사람 많지마는  그거는. 그까짓 거는 순교자가 아닙니다. 내가 아는 데로도 모두 죄 지어서  죽었지 순교해 죽은 거는 아닙니다. 아무나 따나 그때 죽으면 그만 다 순교자인  줄 알아도, 세 사람이 순교했는데, 한 사람은 하나님 말씀 증거 하다가, 이 칼을  꽂으면서 '네가 이 성구를 믿느냐?' '믿습니다.' '믿느냐?' 이래 가지고서 죽은  참 깨끗한 순교를 했고, 또 두 사람은 이 주일을 범하게 할 라고 할 때에 주일을  범하지 안할 라고 하다가 두 사람이 순교 당했습니다. 이러니까, 이렇게 다  생명을 내놓고 주일을 지키는데 오늘은 얼마나 속화가 됐든지 주일 뭐 범하는  것을 예사로 여깁니다.

 이러니까. 주일은 매매를 안 해야 되고, 또 일을 안 해야 되고, 그날은 종일  주님의 이 나 위해서 두 가지 죽음 죽으신 이 죽음을 연구해 가지고 서 그  죽음에 연합하고, 주님이 나 위해서 부활하신 이 부활을 연구해서 이 사랑에  감격해 가지고 부활에 연합하고, 이 두 가지 죽음과 삶에 연합한 이 연합을 내  지식으로 내 주관으로 내 감정으로 내 각오로 결심으로 하고 이렇게 연합한 자로  살 수 있는 이 능력을 우리가 받는 것이 주일날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일을  거룩하게 우리가 지켜야 되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안하면 헛일입니다.

 주 남선 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십계명 중에 제사계명이 중심 되는 계명이라.

주일 지키는 것이 중심 되는 계명이라.' 왜? 주일날 그날 하나님 앞에 은혜 받지  못하면 다른 계명 다 못 지킨다. 주일날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는데 그 분이  말하는 소리를 그때 살아 있을 때 나는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 죽고 난  다음에 차차 차차 나이가 많아 가면서 이제 자꾸 느낄수록 이 더 깨달아집니다.

지금 그 말씀에 대해서 말로는 했지만 실상 느끼는 것은 몇 해 안 됐습니다. 또  지금도 자꾸 더 느껴 갑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주일을 범하지 맙시다. 주일을 범하면 안 됩니다. 그 주일을  범하는 것은 이 능력을 받지 못 합니다. 주님의 죽으심에 연합하는 능력을 받지  못하고 부활하심에 연합하는 능력을 받지 못합니다. 이러면, 우리가 영생하는  사람으로 사는 이 능력 받지 못하면 날마다 산다는 것이 죽을 사람으로 살기  때문에 날마다 사는 것 같으나 실상은 죽는 것입니다. 날마다 죽는 것이요, 죽는  것.

 그런고로, 오늘은 우리가 주일을 어떻게 해도 범하지 않기로 작정합시다. 뭐  직장이 떨어져도 주일은 어림도 없습니다. 주일은 생명이 떠나도 어림도 없고,  만일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 '너거 주일 주일 예배 보며 지금 죽일란다' 하면은  모가지는 맡겨 놓고, 저거가 죽이면 죽이고. 주일 지키다 죽어야 합니다. 또  우리가 감옥에 갇혀 가지고서 '너거 주일 지키는데 주일날 이거 뭐 하면 살려  주겠다.' '우리는 주일날 일 할 수 없습니다.'  박 기천 조사님은 주일날 그들이 말하기를 '너거 오늘이 주일이지? 그러나 오늘  천상 내가 일을 안 시키고 놀릴라 했는데 이거 천상 이러니까, 아 각구목 한대를  아무데 좀 갖다 져다 줘라. 져다 주면 그만 내 보내겠다? 안 한다 했습니다. 내  보낸다 했는데 '내가 못 나가고 여기 있어도 주일날 내가 그런 짐을 질 수가  없습니다,' 이래 가지고 거기에서 나올 건데 나오지 못하고 거기에 갇혀 가지고  있다가서 마지막에 순교당했습니다. 변판 원 선생이라는 그 선생은 그들이  도야지를 한 마리 잡아 가지고 저거 도야지 뭐 뺏들면 저거 도야지 되니까.

뺏들어 가지고 '이 도야지 이것 좀 짊어지고 가자.' '다른 날 같으면 내가  얼마든지 져다 드리겠는데 주일날이라서 천상 할 수가 없습니다.' 이라니까,  뚜드리고 이러다가 안 된다 하니까 나중에 있다가 '그러면, 짐을 못 지면 개를'  또 남의 개를 한마리 홀까 가지고 저거가 잡아먹을 라고서 '이 개 좀 끌고  가자.' '그것도 내가 짐 지는 거와 같이 그거 안 하니까 이거 하라 하는 것이니  방편만 바꾸어진 것뿐이지 주일을 범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죽어도  주일을 못 범합니다.' 이라니까 마지막에는 '너 이 비로 가지고 마당을 한번  쓸어라. 마당 이거 쓸면 내가 살려 주마.' '마당 쓰는 것은 뭐 주일날 우리  집에도 씁니다. 쓸지마는 서도 자기네들이 나를 주일을 범하게 하기 위해서  도야지 짊어 개 끌고 가자, 이제 마당 쓸라 이라기 때문에 이게 내나 주일을  범하게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마당을 쓸지 못 합니다.' '네  이놈, 정 그러나? 못 쓰는가 보자.' 가 가지고, 산으로 데리고 가 가지고 총을  놓으면서 팔이 떨어졌습니다. '이래도 네가 마당 못 쓸겠느냐? 지금 마당 쓴다  하면 지금이라도 치료하면 되니까 이제 놔주겠다.' 이래도 '안 된다.' 또. 또  팔이 떨어져도 또 안된다. 이래 가지고 그 자리에서 죽었지 주일을 범하지  안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얼마 안 가서 우리가 주님하고 같이 올 때에 우리가 볼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이래나 저러나 어쨌든지 주님의 죽으심에 우리가  연합하므로 우리는 죽고 또 주님의 부활하심에 연합한 자로 살면 그 자는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그 고깃덩어리가 죽는다고 죽는 것 아니오.

 그런고로, 우리가 앞으로 환난을 두고서 깨끗하게 준비해야 되겠는데, 어쩌든지  주일을 범하지 맙시다. 차타는 것도 예사롭게 하지 말고 '내가 이거' 주님 앞에  논리 해서 '내가 차를 타고 가지 않으면 사람 힘으로서는 거기까지 걸어가지  못하겠으니까 차를 안타고 주일을 범하는 것보다, 또 차를 안타고 내가 은혜  되지 않는 가까운 교회가 있지마는 서도 암만 가야 구원 도리에 내게는 은혜가  안 되니까 은혜 못 받는 것보다, 주일을 지키지 못하는 것보다 이 차 타는 것도  죄인 줄 알지마는 또 내가 이와같이 하는 것이니 용서해 주시고 앞으로 어쩌든지  주일을 잘 지킬 수 있는 그런 방향으로 인도해 주옵소서.' 하면서 죄인 줄 알고  사함을 받아야 되지 그게 괜찮다고 생각하면은 우리는 거기에 걸립니다.

 예수님께서 그 부자에게 말하기를 '네가 잘했다,' 칭찬했소. 잘 했다  칭찬하시고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 있다.' 한 가지 부족한 거 있다는 그것을  들어서 말할 때에 그 부자는 다 영생도 내두고 도망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고 한 가지 고것이 우리에게 걸릴지 모르니까 우리는 무엇이든지  죄라 하는 것은 다 깨끗이 회개합시다. 우리 망치는 것이 죄입니다. 우리를  망치는 것이 죄요, 우리를 무능하게 하는 것이 죄요, 우리를 어둡게 만드는 것이  죄요,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 죄요, 우리를 천하게 만드는 것이 죄요,  우리를 망하게 만드는 것이 죄입니다. 우리 권위를 다 깨트리는 것이 죄입니다.

죄는 섞임 없이 죄는 우리를 망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죽어도  죄를 안 지으면 죽는 거 아닙니다. 우리는 삽니다.

 그러기 때문에, 죄 중에도 주일을 범하는 이 죄를 오늘 이 시간부터 단정 짓고  앞으로 뭐 어떤 일이 있어도, 그래 가지고 주일을 지키기 위해서 직장에서 쫓겨  나왔으면 쫓겨 나온 그것이 좋은 겁니다. 나중에 보면 손해 가지 않습니다. 또  주일 지키기 위해서 사업이 실패됐으면 실패된 게 좋습니다. 절대 실패되지  않습니다. 손해 보이지 않습니다. 나와 내 도와 복음을 위해서 손해 본 자는  여러 배 백 배를 얻는다고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제자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우주와 전부는 '하늘의 것과 땅의 거와 이제 거와 장래의 모든  것이 다 너희 것이 된다' 이거 과장한 거 아닙니다. 털끝만치도 에누리없소.

그대로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는 주일을 깨끗이 지킵시다. 돈 때문에 주일 범하지 말고, 인간 때문에  주일 범하지 말고, 사정 때문에 주일 범하지 말고, 무슨 사업 때문에 주일  범하지 말고, 직장 때문에 주일 범하지 말고, 자기의 뭐 어떤. 병든 거야 어쩔  수 없지마는 서도, 병들면 그 자리에서라도 주일을 잘 지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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