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선지자선교회 1979년 8월 12일 주후

 

본문 : 고후4:4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하나님은 물질로 된 형체도 없고 영으로 된 형체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형체가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이유는 형체가 있으면 벌써 그 형체 자체가 다 유한  안에 들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서는 그 유한의 하나님이 도리 수 없는 고로  하나님은 영체도 없고 물체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 몸과 마음은 물질의 형상을  입고 있는 물체고 또 영은 영물로 되어 있는 영체지만 은 하나님은 물체도없고  영체도 없으신 무형의 존재입니다.

그는 완전자시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그 영적 형체도 없고 물적 형체도  없고 영체도 물체도 없는 그 하나님의 형상은 어떤 형상일까 생각이  나겠습니다.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난 것은 하나님의 그 활동을 통해서 또 하나님의  계시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그 신성 하나님의 그 신의 본질과 본성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속성이 우리에게 나타난 거 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면  하나님의 영원하시고 무한하신 속성을 가르쳐서 말하고 또 우리들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고 하는 것은 예전 하나님의 속성과 같은 속성 가진 자로  지음 받았다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게 우리는 노력하는 것이 하나님의 그  신성과 같은 인성을 가질려는 것이 그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하나님과 같은 이  신성을 우리가 가지는 데에는 우리의 잘못도니 그 인격성을 이것을 고치는 것도  있고 또 버리고 새로 하나님에게 얻는 것도 있고 그렇게 여러 방편으로 이루어  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신성과 같은 그 인간성이 이루어져 가지고 하는 것이 자기 본체  구원이요 또 우리가 행동을 고쳐 가지고 하는 것이 자기의 행위의 구원인데 우리가  행동한 이 행동은 무궁 세계에서 의복과 같이 우리가 입고 답닙니다. 그 사람이 이  세상에 행동한 그 모든 행동을 무궁 세계에서는 그 행동한 그 덕을 입고 다니는데  어떤 사람은이런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벌거 벗은 사람이 아주 같은  사람이지만은 그 사람이 세상에서 의로운 행동을 많이 했으면 그 사람은 영광의  세계에 가가지고 입는 옷이 찬란하겠습니다. 세상에서도 다 같이 믿는  사람이지만은 어떤 사람은 그 영광이 굉장스럽게 영광스럽고 어떤 사람은 그저 잘  먹고 잘 입고 살았지만은 그 생애가 허무한 사람은 영광이 없는 것입니다.

게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과 같은 이런 자체가 되어지는 것이 우리의소망이라는  것을 오전도 말씀했습니다. 그면 하나님과 같이 되어 지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사람이 되는 것인데 사람은 만드실때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고 또  구속해서 중생시킬 때에도 그렇게 시키셨습니다. 그면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갖추어 가질라고 한다는 말은 하나님과 같은 그런 인격성 그런 인간성 그런  하나님의 속성과 같은 그런 속성을 가진 자가 될려고 하는 것입니다. 끼 하나님의  속성을 우리가 성경에서 간추려 뺀 12가지를 말하면 8가지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속성이차이는 있지만은서도 8가지는 우리에게 있고 4가지 속성은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스스로 계셨는데 스스로 계신이 자존성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또 하나님은 완전성이 있는데 완전은 완전성이 있는데 우리는 완전성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또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불변하신 영원성 불변성을 가지신  하나님이신데 우리는 영원성과 불변성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에 하나님은 이 모든 속성이 이것이 여럿이나 하나가 되어 있는 이ㅏ 단일성인데  여러 속성이 있지만은 그 속성이 걸으로 나타날 때는 여러 속성으로 나타났지만은  속에 들어가면 한 속성으로 되어 있는 것이 하나님의 속성인데 이것을 가르쳐서  단일성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면이 없습니다. 그렇지만은  차차차차 이 4가지 공통성 없는 하나님의 속성도 우리가 배우고 닮아 가지고  있는데 미래적으로는 이것이 없지만은서도 그 회고적으로는 우리가 걸어온 뒤에는  이런 것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불변성 우리가 불변성을 이루는 것이 우리  구원이고 영원성을 이루는 것이 우리 구원이고 단일성을 이루는 것이 우리들의  구원이 됩니다.

게 그 다음에는 우리와 하나님과 같은 속성이 8가지가 있습니다. 거기 첫째가  하나님이 지성을 가진거와 같이 우리도 이 지식성을가졌고 또 지혜성을 가졌고  무엇을 중시하든지 중심하는 그 중심성을 가졌고 또 사랑의 성품을 가졌고 또  진실성 거룩성 또의성 또 주권성 이렇게 8가지 공통성으로 가진 것이  우리들입니다. 거기 그 지식성이라고 지성이라 하면은 하나님의 그 완전한 그  지식을 우리 지식으로 가(                )하는 이것도 귀하지만은 하나님의  지식과 같은 지식을 우리가 가졌다는 그게 아니고 하나님이 하나님의 지식을  당신의 지식으로 가지는 그 성품이 우리에게도 차차 이것을 살려서 기르면 입게  됩니다. 그면 우리가 하나님의 지식을 내가 가지고 있다는 하나님의지식을 가지고  있는 그런 지성이란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지식을 자기 지식으로 삼고 다른 지식은  자기 지식으로 삼지 않는 하나님의 지식을 소유하는 그 본성이 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식이라면 참 지식인데 바로 아는 옮게 아는 거 바로 아는  지식인데 참 지식인데 바른 지식인데 우리가 바른 지식을 가지는 것도 보배지만  바른 지식을 가지는 그 인간성 그 인격성 그것이 문제입니다. 지식을 우리가  아무리 가졌다 할지라도 지식은 우리가 가진 소유지 그것은 우리 자체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식을 가질 수 있는 이 속성 하나님의 지식은 완전지식인데 완전한  지식을 가지고져 하는 이 속성이 이루어져 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면 완전한  지식을 자기가 가졌다 할지라도 자기 그 속성이 완전한 지식을 가지기만 가졌지  완전한 지식을 참 지식을 좋아하고 거짓 지식은 싫어해서 배격하는 그런 인격성이  없을 수도 있는거 없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식이라 한다고 하나님의 지식을 많이 가졌든지 적게 가졌든지 많이 가진  사람은 지식면의 그 지식의 속성이 장성했고 적게 가진 사람은 지식외 송성이  어리다 그런 말을 하는 것 아닙니다. 그 그 사람이 하나님의 지식을 많이 가졌든지  적게 가졌든지 간에 그 사람 그 인품이 그 인격성이 하나님의 지식을 좋아하고  기뻐하고이 지식이 아닌 지식은 배격해서 싫어하는 요런 인간이 되어야 되는 것이  요것이 문제입니다.

게 참 지식이 이런 참 지식 하나님 지식은 참 지식인데 사람이 모든 사람이 다  말하고 아주 이 지식은 참 필요하다 좋다 이거는 가치 있다 옳다 이렇게 높이  평가하는 이런 지식이라 할지라도 그 지식이 영원히 참되지 못하고 세상에 있다가  패할 지식이 많다 이기요 이 세상에 안믿는 사람들이 아주 고귀하게 여기는  지식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지식은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다 없어질 것들  입니다. 고린도 전서 13장에 보면은 지식이 패해진다 했어 그런게 다 없어집니다.

사람이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이 지식도 가지고 저 지식도  가지고 무슨 지식이든지 다 이렇게혼합해서 가질 수 있는 고런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요 참된 지식은 자기가 죽어도 내 놓지 않아고 온 사람들이 다 옳다 좋다  해도 고 참 지식이 아닌 그것은 싫어하는 고런 인간성이 되어지는 것이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면 여게 지식을 많이 가지고 적게 가지고 가지고 못 가지고 하는  것을 말하는게 아니고 우리가 입을 라고 하는거 하나님의 형상은 뭐 하나님이 참된  지식을 당신의 지식으로 삼고 있지만은 고거는 당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고  하나님은 그런 지식이 아니면 용납지 않아고 그런 지식만을 용납하고 그런  지식만을 당신의 지식으로 삼는 고런 신성이 있다 말이요 신성이 있는 것처럼  우리도 이러한 요 인격성이 요것이 이루어 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면 어떤  사람은 그저 어떤 지식이든지 지식이라면 막 받아 들입니다. 막 받아 들이고 좋다  이라는데 어떤 사람은 그 지식을 막 받아 들이지 아니하고 그 지식을 어짜든지  비판하고 비판하고 평가해 가지고서 그 지식이 자기에게 이것이 참되다 옳다  이것이 긍정되기 전에는 그 지식을 자기에게 용납시키지 않아고 한 연구 제목으로  이래 두고서 그 지식을자기 지식으로 가지지 않는 요런 인격성을 가진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뭐 꺼꾸로 아는 것이냐 옮게 아는 것이나이런 지식이나 저런 지식이나  마구 그저 잡렝이 뭐이 든지 알면 된다 무슨 지식이든지 오너라 하고서 마구 큰  서숙포대를 갔다 벌려 놓고 똥이든지 뭐 갔다가서 뭐 송장 찌끄러기든지 뭐이든지  막 집어 넣은 것처럼 이렇게 자기에게 마구 지식을 받아 드리는 이런 썩은 그  인격성이 있는 사람이 있고 고 사람의 그 인격성이 깨끗해서 무엇을 거석하면  자기가 아 요기 옳다 참되다 하는 요것이 확정되기 전에는 고것을 자기 지식으로  삼지 않안 그 사람 각급 한 사람들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자기 임에 가지고 있는  지식가지고 비판해서 옳은 것이라 그른 것이라 하는 그것을 모를 만치 현재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을 초월한 그 지식보다 위에 있는 그런 지식이 왔는데 자기  지식으로서는 그 지식이 틀린 지식인지 좋은 지식인지 그걸 구별하지 못해도 자기  그 본성이 인격성이 어쩐지 그걸 들으니까 환영이 안되고 이해가 안되고 거기 대한  뭐인지 모르면서도 백격성이 배격심이 노옵니다. 배격하는 거 배격심이 나와서 게  고 사람의 그 인격성은 고것이 무엇인지 그 아는 것도 꼭 바로 아는 것이라야 바로  아는 그 바로 아는 바른 지식이라야 고 사람 성미에 딱들어 맞지 바르지 않은  지식은 제가 바르지 틀린지 알지도 못하면서도 바르지 않은 지식은 어짠지 그  본성에 맞지 않 아고 자기가 갔다가서 그 성격에 맞지 않아서 틀린지도 틀린 것도  모르고 정죄도 못하면서 어짠지 그 지식은 받아들이기가 싫고 아이 싫다 그 지식은  나는 갔다 받아 들이기 싫다하는 요런 갔다가서 그 인격성을 가진 사람있습니다.

요 지식에 대해서 깨끗한 요 인격성을 가진 사람 있고 요 지식면에 대해서 아주  흐리러브리한 그런 참 뭐 종류 많습니다. 흐리러브리한것을 흐리러브리게 안한것을  좋아하는 지식성도 이기나 저기나 그저 그 텁텁하게 아는 것을 좋아하고 또 이렇다  저렇다 정확지 못한 거 정확지 못하고 전부 이거는 갔다가서 거짓되고 그 하나로  하나로 되 있지 않는 아주 거짓된 그 방량한 그런 지식을 좋아하는 고런 또  인격성도 있습니다.

또 지식에 고 지식이 들어야 또 고 또 거짓이 든 지식이라야 취미있게 재미있게  여기는 그런 속성도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게그 사람의 인격성이 잡것을 좋아하는  잡된 인격성은 지식도 잡된 지식이라 야 그 사람에게는 맞지 그렇지 않으면 맞지  않아요 이제 그 인간성이 거짓되서 그저 거짓된 것이라야 가분이 나고 거짓이 섞여  있어야 재미가 나고 하는 고런 또 인격성이 있는 사람은 지식도 따져서 야 이  지식이 옳은가 그른가 그만 머리 아픕니다.

이 지식이 옳은 지식인가 그른 지식인가 이거 바로가 틀렸나 이기 영원하나 이기  갔다 변화 아 그라면 머리 아픕니다. 아 싫어 싫어 싫어 그만 뭐이든지 그만 세상  사람들이 그래 아 이 사람 이래하고 저 사람 저래 하고 고만 된대로 그대로  지식하지 뭐 그걸 갔다가서 틀렸나 옳으나 바르나 곧으나 갔다가서 아 나는 그  사람 징그러워 재미 없어 삶어 하는 그런 그 인격성을 가진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대부분입니다. 게 요 지식면에 있어도 있어서도 자기가 무엇이든지 듣든지 보든지  접해든지 해서 고걸 알라고 할때에 고것을 아무나따나 누가 뭐라 해도 이거 뭐이라  아 그래요 그면 그대로 받아 들입니다. 또 저 사람이 아 그 틀렸다 이렇다고 아  그래요 받아 들입니다. 그거는 고것이 벌써 마귀의 그 속성입니다. 마귀의  속성이요 고것이 하나님의 형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다른 사람이 와  이래도 아 모든 사람이 이리 이칸다 모든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이기  맞는지 안 맞는지 또 어 가니까 또 그걸 또 다른사람이 저 캅합니다. 하 또 이  이리 말하는 사람 저리말하는사람 사람들이 있네 이거 맞는지 안 맞는지 의문 중에  자기 지식으로 삼지 않아고 이거는 한 연구의 과제로 떡 두고서 자기 지식로 받아  들이지 않습니다. 이제 이라다가 이렇게 저렇게 해 가지고서 어째 그 참된 지식이  자왓는데 자기 지식으로는 그기 옳은지 그른지 비판할 만한 그만한 구비 지식이 안  되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비판 못하지 만은 옳은 지식이 나왔다 말이요 그른 지식이  그 하나에 대해서 잘못하는 지식이 둘이 나왔고 이제 옳은 지식이 하나 나왔으면  잘 못도니 지식 둘 나온 것은 틀린 것도 말도 못하고 틀리긴 뭐이 틀렸노 그라면  네가 갔다 인정 안하는 뭐 틀린걸 말해야지 뭐이 틀렸노 틀린 걸 말할 수 없지만은  어짠지 자기에게 갔다가서 그 인격성 본성에 맞지 않는다 말이요(            )않아서 나는 뭐 틀렸다는게 아니고 틀렸다는게 아니고 어쟀든지 아 나는 좀  갔다가서 거 대해서 그렇게 그 반가워 지질 않아고 내 성미는 맞지 않아니까 내가  좀 연구를 해봐야 되겠다고 이라고 맞지 않는다 그말이요 이라다가 옳은 지식이 탁  나오니까 이거는 자기 지식으로 옳다고 비판하지도 못하면서도 이제 그걸 보고 고  지식이 나오니까 자기 성미에 딱 들어 맞아서 환영하고서 아 나는 나 요대로 갔다  지식하겠다 할 수 있는 고 인격성 고 그 인성이 그 인간성이 고것이 사람에게 있는  하나님의 지식면의 형상입니다. 하나님의 그 지성 하나님의 지식면에 형상  지식이라는 지식의 지식면의 그 속성 그 속성적 속성의 그 모형을 자기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걸 우리가 이루어야 되요 그러면 하나님의 지식을 다 내가 가져서 아는것도  문제지만은 그것보다도 하나님의 그 지식 속성과 같은 그런 속성을 내가 가지는  것이 이것이 문제입니다.

게 이 속성도 이걸 가지는 것이 하나님께서 자기 현실에서 가르쳐 주실 때에그  지식을 받아들이 또 행하라고 할 때에 행하고 요 두 가지가 믿음인데 요 믿음을  하는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지식을 자기 지식으로 받아 가진 것도 있지만은 고런  가운데에서 자기에게 하나님의 형상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  져서 게 자기가 모르는 것도 자기의그 지식의 속성이 이제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도 자기의 지식의 그 속성에 들어 맞은 그 속성대로 말을 하고 보니까 나중에  보니 성경하고 맞고 영감그 영감하고 맞드라 기요 이럴 수 있는 그 자기의 그  인격성 인간성 인간성 요 속성 요것을 가지는 것이 요것이 문제입니다. 그 인간의  그 본성 인간의 속성을 가지는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는 것인데 요거는  믿음으로만 됩니다.

그면 게 하나님이 지식하는 지식하는 지식성이 있는데 마귀가 준 지식성은 마귀가  준 지식성은 그 뭐 하나를 두고 하나에 대한 옳은 지식은 하나 뿐이겠소 하나에  대한 옳은 지식은 하나뿐이지만은 거기 대한 삐뚤어진 지식은 백도 열도 넘을 수  있소 넘을 수 있는데 마귀가 준 지식성은 그 사람은 아무리 유식해도 게 사람들이  이 사람이 이 지식을 말하면 아 그래 그것도 받아들이고 저래하면 저것도 받아  들이고 그저 천인 만인의 삐뚤어지고 거짓되고 무엇이든지 그 지식이 오면 자기의  그 본성에 맞아서 그 본성이 받아 들입니다. 받아 들이요 이러니까 그런 사람은  무슨 독서 든지 마구 해 제낍니다. 무슨 독서를 해도 다 취미 있소이렇지만은 그  사람이 진실되이 살아 하나님의 그 지식하는 그 지식의 속성인 그 하나님의 속성  고 하나님의 형상을 자기가 가진 사람이라면 자기가 평생 처음 듣는 것이요 처음  보는 것이니까 거기 대한 지식은 자기는 전연이 없습니다. 백지입니다. 거기 대한  지식이 전연 백지요 모르요 백지지 만은 그 지식이 자기의 본성에 맞고 안 맞는가  그말이요 처음으로 그 저식을 만났는데 그 지식이 자기 본성에 딱 들어 맞아  어짠지 환영이 되져 그러나 게 자기가 옳은 것도 처음 만났고 삐뚤어진 것도 처음  만났는데 삐뚤어진기 삐뚤어진 동 모르요 모르지만은 자기의 속성에 안 맞는다  기요 요기 문제입니다. 요기 문제요.

이러니까 기독자들이 아는 것은 지식면만해도 들어서 아는 거 보아서 아는거  성경을 읽어서 아는 것 아니요 그뿐만이 아니요 그 속성이 하나님의 속성으로  변화가 되어 있으니까 그가 몰라도 고 참된 지식이 아닌 것은 어짠가 거부가  됩니다. 성미에 안 맞아 참된 지식은 참 된 줄도 모르지만은 고 지식은 자기에게  딱 들어 맞는다 말이요 이러니까 그 사람은 자기 성미대로 말학도 보니까 성경에  맞고 자기 성미 자기 성미에 틀린 것 을 배격하고 보니까 나중에 보니까 잘했고  성경 적이 아니로 기요 이렇게 자기의 이 속성을 하나님의 속성으로 변화시키는  이것은 진실이 없으면 안됩니다. 의식은 안되요 어짜든지 자기를 완전히 부인해야  되지 자기 부인하지 않아고 이 세상살이 모양으로 안 믿는 사람들이 모든 선하는  것이 자기 자존심 가지고 하요 자기 의지 가지고 하요 자기 명예 가지고 하요 남의  이목구비 그것 때문에 하요 자기 위신 때문에 하요 이거 모양으로 예수 믿는 것도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속에 본질과 본성은 하나도 바꾸지 못합니다. 하나도 바꾸지  못하고 저건 내나 첬재 아담에게 속한 그 속성 그 형상 그대로 입고 있지 하나님의  형상을 도로 찾아서 입는 것은 아닙니다.

게 우리가 모든 그 지식을 언제 다 들어 가지고 알고 언제 다 보고 알고 경험해  알고 체험해 알겠습니까 우리가 뭐 가진 세월이라하는게 얼마 뭐되는데 또  활동버누이가 좁은데 그러니까 평생 배워 봤자 몇 마디 배우겠소 아 여기 뭐  대대학을 공부한다 하면 자드락 많이 한 줄 알아도 속지 마십시오 몇 내기  안됩니다. 몇 내기 막에 가추려 간추려 쓰면 노츠 몇 권 안되요 노트 열권 이내 막  것다 같다가서 이제 궁물을 부어가지고 물을 보시 갓다 자꾸 이래 늘어트려서 갔다  많이 해 놨지 내나 속에 갔다 보면은 노트 열권이 뭐요 한 이 삼권에 지나지  못하요 갔다가서 게 그것도 배울라면 참 끝이 많고 끝이 없고 또 이 사람 지식 저  사람 지식 사람 마다 다 제대로 갔다가서 무책임한 지식을 많이 말하고 있는데  그런데 많은데 언제틀린 걸 다 배워 가지고 틀린 줄 알고 언제 옮은 걸 다 배워  가지고 옮은 줄 알고 그래 하겠소 자기의 속성 변화 이것이 문제입니다. 속성 변화  여기서 이제 그기 되는 것이요 갔다가서 그러니까 틀린 걸 틀린 줄 모르지요 자기  지식을 지식이라 하는거 요거는 알맹이기 때문에 자기 아는 지식 가지고 암만  비판해도 요리 비판해 봐도 모르고 조리 틀리고안 틀린 거는 모르지만은 어짠가  자기의 본성에 맞지 않소 이것이 자기에게 하나님의 형상의 씨를 이것이 길러서  하나님의 그 형상이 자기에게 성장되 가고 있는 것입니다.

게 어떤 사람이 그런 말을 하는데 그분이 좀 참 신앙 생활을 진실되게 한  사람입니다. 한 사라인데 그 분이 말하기를 우리가 지식을 가지고 올다 그르다  이렇게 비판하지를 못하는 것도 비한하지 못하는것도 그 자기의 그 기분이  비판한다 기분이 비판을 한다 지식으로 진가를 비판 못하는 것도 자기 기분이  비판을 한다 자기 기분이 비판을 못하는 것도 그 자기 그 성품이 성품이 비판을  한다 또 자기 성품이 비판을 못하는 것도 육의 이 신경이 신경이 비판을 한다  신경이 비판을 한다 게 육의 신경에 소름이 끼치기도 하고 뭐 또 의실하기도 하고 어짠지 그 신겨이  아주 갔다가서 좀 고만 가라 앉기도 하고 또 그 신경이 아주 세로운 힘을 얻어  가지고서 용감히 움직이기도 하고 게 이런 것은 우리가 지식으로 비판하는 것보다  훨씬 예민하다 그러기 때문에 죄냐 의냐 하는 것을 비판할 때에 지식만으로  비판하는 것은 그것은 나무 범위가좁고 나중에는 그 자기 기분이 비판하고 성미가  비판하고 자기의육의 신경이 비판한다 게 그런 것들이 비판을 해 준다 옳은 것이  뭐 어쩐 자기는 옳은 줄 몰라도신경이 포근하게 은 유하게안정이 되 지고 틀린 걸  모르는 데도 어전지 그 신경이 안정되어 않아고 그 성미가 기분이 나지지 않아고  그 기분이 갔다가서 상쾌해 지지 않아고 그리 되진다 그런 설교를 하는 목사를  내가 언제 한번 만나 봤습니다. 그 목사가 설 그런 설교하는 것을 제가 언제 곡 한  번 들었소 다른 목사가 그런 설교하는 걸 내 못들었소 그 목사님 이 그런 설교  하는것을 한번 들었소 게 들을 때에 저분이 참 진실되어 살라고 애를 쓰는구나 그  참 자기 경험과 체험에서 하는 말이다 왜저는 갔다가서 그렇게살라고 애쓰지  않아지 못하지만은 혹 느낄때가 있었다 그말이요 느낄 때가 있었는데 그분이  그렇게 말하는 걸 볼때에 그분은 그렇게 늘 힘을 쓰니까 과연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자기 지식비판 이성비판 이것도 비판이 되지만은서도 그  가정비판 신경 비판 정서비판 그 뭐라고 표시할 수 없이 본능 본능인 그 본능비판  게 이것이 다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그 속성에 비추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에서 비추어 나오는 기요 하나님의 속성에서 비추어 이제 말한 그것들은 다  마음에 속한 것들인데 속성에 비추어 나와가지고서 이제 그것이 반사되서 나오는  것입니다.

게 이러면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을 지식 이사으로 자기는 비판과 평가을 할 수가  있고 전가를 구별할 수 있겠고 자기의 그 선악의 노선을 자기가 귀정 지을 수가  선택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게 이것이 영감이 아니겠느냐 이것이 영감이 아니겠느냐 하는데 그 영감이라면  영감이지만 영감이 아니고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기 위함이라 그리스도는 볼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기 위하여 그 아들의 형상을 닮기  위하여 하나님은 원형이요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의 그 모양으로 만드는 모형이요  그는 원형이요 우리는 모형이요 예수님은하나님의 형상인 우리에게 비해서  원형이요 우리는 그 모형이 더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형상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의 모형이요 모형인데 그 모형은 우리가 본 받아야 될 우리에게  대해서 원형인 것입니다.

이래서 이 세상 살이에서 자기의 인간성을 확 변화켜 가지고 자기는 자기대로 있고  자기의 지식을 쓰고 지혜를 쓰고 이성을 쓰고 감정을 써 가지고서 요와 같이  꾀쟁이로 사는 것이 아니고 완전히 자기라는 사람을 자기라 는 사람의 본질과  본성을 완전히 자기라는 사람을 자기라는 사람의 본질과본성을 완전히 변질시킨  것인가 본질과 본성을 오나전히 변화시키는 것이요 그래서 이것이 인지 하나님의  형상을 입는 것인데 아것이 참 굉장히 오묘한 것이버니다. 그러니까 아는 것도  그렇소 지혜에 대해서도 지혜라고 말하면 하나님의 그속성에는 지혜성이 있는데  쳐서 다 같이 알지만은 미래에 속한 것을 아는 것을 가르쳐서 지혜라 이렇게  말하고 과거 현재에 속한 것을 아는 것을 가르쳐서 지식이라 이렇게 말하는데 이  지혜성도 하나님이 가진 그 지혜성에 모형적 지혜성이 우리에게 있습니다ㅓ.

있어서 그 물론 이 지혜성이 있기 때문에 성경이 앞으로 이리 된다 이리 된다 모두  미래사를 말하니까 반가이 받아 들입니다. 받아 들이고 또 자기보다 크신  하나님에게 대한 것을 영감이 알려 줘도 그걸 반갑게 받아 들이고 하는 이것은 다  그 지혜성이 받아 들여 가지고서 지식성에게 다 넘겨 주는 것인데 지헤성이 받아  들여 가지고 이제 지식성에게 다 넘겨 주는 것인데 요 지혜성도 자기의 미래에  대한 것을 성경이 어찌 말해도성경이 말해도 참 성경을 틀림이 없지만은 요새는  가지고 이야기 성경으로 삐뚤어지게 만든 성경성이 많다 그 말이요 이러니까 그걸  모르고 사람인데 그 성경을읽으면 성경이 이렇고 이렇고 이렇다 삐뚤어진 걸  말하면 그 사람의 지헤성에 대해서 맞지 않는다 그말이요 아무리 말해도 그 사람이  납득이 안되 안되서 그 납득이 뭐 안되 그런 것 도 아니고 납득이 만되 그런것도  아니고 납득이 안되 그런것도 아니고 아 그러냐고 그래 그걸말하는 것이라고  납득은 되긴 되면서도 어쩐지 자기의 지헤성에 맞지 않는다 그말이요 맞질 않애  이러니까그 사람이 아무리데리고 앉아서 설복을 암만 시켜도 암만 시키고 이렇고  이렇게 그래도그 자서 아 내 그렇습니까 이래도 그 시간이 지나가고 나니까 어짠지  그것은 자기의 이 지혜라는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모형 속성에 모형인 이 속성에  맞지 않애서 그 지혜는 자기가 자연히 물리치게 되고 그거는 버리게 되더라  그말이요 이래서 요런 그 지혜성을 바꾸어서 하나님의 요 속성의 모형 하나님의  속성의 모형적 지헤성을 요 인간성 인격성을 본성을 딱가진 요 사람은 하나님의  지혜가 아닌 걸 가지고 그 사람을 암만 꼬울라고 해야 못 고웁니다. 그저 그 일년  십년갔다가서 설득을 시켜 나도 어쩐지 그거는 빙빙 들고 자기의 속성에는 맞지  않는다 그말이요 안 맞아서 마지막에는 그기 튀 나오고 갔다가서 배격하고 자기는  따로 자기대로 가게 됩니다.

게 우리가 요것을변화시키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가 입어야 되요  이러기 때문에 처음 뭐 어떤 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 철학을 많이 말하지 않소  철학자들이 유력한 철학자들은 그 논리도 얼마나 논리가 정연하고 얼마나 논리가  깊고 길던지 인간들이 일생을 다 드려서 그 길을 가도 끝을 못보고 끝을 마치는  것이요 불교라는 이 불경도 이 불교도 이것을 그들이 진실되게 연구할라 하면은  나중에 그 종착은 못 가지고 마치는 것이라 기요 게 다 알아서 들어가 보고 들어갈  대로 그 구멍따라 다 들어가 보고 틀리는가 들어가 보자 다 들어가 보고 틀렸다  이제 다보았다 난 도로 나갈란다 이럴 수없는 기라 다 드가는 도중에 뭐 죽여  버리고 말지 끝가지 못 들어간다 그말이요 그 사람의 이 그 상상이나 또 사람 의  연구성이나 연상은 굉장히 먼거 입니다. 어떤 사람의 그 연상하는 것을 자기보다  좀 위에 있는 사람 연상했으면 연상한 그걸 갔다 밑에 사람은 일생 동안 자꾸  헤엄쳐서 지금 따라 가도 그 사람 가서 말해 논 것을 다 못가 보고 마요  석가모니가 어디까지 갔는지 그 구베들이 가야 그 못가 복 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보자 보니까 또 새기 나오고 자꾸 이러니까 따라 나가보자  이래서 가다가 죽은 사람 게 그기 옳다고 주장하다 죽은 사람 이것이 모두 세상  사람들 아니요 이런데 기기 뭐이냐 하나님의 형상이 죽여 그렇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어 하나님의형상이 오나전히 죽어 그렇소 하나님의 형상이 죽었기 때문에 마귀의  형상이 그의형상이 되어 있는 고로 그런 것이 자꾸 재미 있고 오묘하고 또  긍정되고 이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형상을 되 살려 가지고 고것이 그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것인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하나님의 모형 그것이 영인데 그것이  영입니다. 그게 영인데 하나님의 그 모형인 산 영에게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  통치권을 마꼈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그 모든 땅의 것을 다 관할하고 정복하라  이랬는데 통치 권을 마겼음 마겼습니다. 그러니까 그때 맡아 있을 때에는 모든  만물이 다 그 앞에 와서 복정으 했소 다 복종했습니다. 처음으로 본느 것도 다  복종 했소 짐승은 하난미이 갔다가 모든 그 하나님의창조물 아담 해와 앞에 갔다  끌어다 놓고 아담 해와가 이거 이르을 잘 짓나 안짓나 보자 하고서 끌어다 노니까  아담 해와가 그것들의 이름을 짓는데 이름을 짓는데 말하는 대로 딱딱 들어 맞아  이름을 지면 또 갔다가서 피조물이 좋다고 예 이거는 영원한 내 이름입니다.

하고서 가져 간다 기요 얼마나 권위가 있소 자 서로 내통 안 되ㅆ는데 아담이 짓는  이름이 아담이 짓는 이름이 하나님이 짓는 이름과 딱 들어 맞았어 원형이 짓는  이름과 모형이짓는 이름이 꼭 들어 맞았다이기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하더라 잘 지었더라 이기요  게 그렇고 형상이 살았을 때는 그랬는데 죄와 허물로 요 형상이 딱 죽고 나니까  어찌 됐습니까 심지어 풀 한 포기도 아담 해와에게 복종을 안합니다. 복종 안하요  모든 만물이아담을 저주했습니다. 아담을 저주했소 모든 땅이 아담을 저주하고  엉겅퀴를 냈습니다. 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요 속성 요것이 우리에게 살아  났습니다. 예베소 1장에 죄와 허물로 너희들은 죽었다 자라 그말은 우리  고기덩어리가 죽었소 어데 호흡이 죽었소 요것은 하나님의 형상이 죽었다 그말이요  하나님의 형상이 요것이 하나님의 연결이 끊어졌기 때문에 요기 죽었는데 하나님의  연결만 되 노면 이것이 하나님의 속성과 같은 속성인데 하나님과 연결됐기 때문에  이거는 순전히 하나님이요 하나님 아니면서 꼭 하나님 같이 행동합니다.

게 이리 연결이 되 노니까 연결이 되 노니까 자기가 모르는 지식 이만은 불경  지식을 뭐 알겠소 모르는 지식이지만은 불교 갔다 불교갔다가서 거 아주 독신자가  앞에 데려 놓고 너 예수 믿지 말고 예수 님 미믿지 말고 부처를 믿으라 불교를  믿으라 이라면서 불교를 지금 해석해 주고 있습니다. 역설하고 있습니다. 있는데  있으니까 이 사람이 고 하나님의 형상이 고것이 중생된 고것을 자기가 길러 놨으면  말이요 길러 놨으면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뭐라고 변증을 해서 틀렸다고 정죄는  못해도 이거는 틀렸다 이게 알게 된다 그말이요 또 틀린지 그것 틀렸다 소리  못해도 틀린지 안 틀린지 그거는 모르지만은 자기 그 인격성에는 맞지 않애 자기  속성에는 맞지 않는다 그말이요 맞지 않애  게 이것은 중생도니 사람이라면 자기 속성에는 안 맞습니다. 이 중생은 하나님의  형상이 살아난 것인데 이 형상을 길러 가지고서 장성한 형상으로 있는 사람은 그  어떤 불교나 철학이나어떤 사람이 말을 할때에 고것을 정죄를 합니다. 네가 고걸  말하지만 고기는 요렇고 요렇기 때문에 틀렸다 고걸 정죄를 합니다. 고 사람은  요런 범위에서 말하는데 요 형상을 많이 입어서 성장된 사람은 이방 철학이 요런  돌방인 요거만한 범위를 가지고 말하는데 사람들은 꽁내끼 만한 범위를 가지고  있으니까 콩매끼 한 몇십개 들어갈 많나 범위를 잡아 가지고서 이 철학이 말하니까  그 철학을 정죄 못하고 전부 갔다 이 종교에 다라가고 있습니다. 있지만은 요  하나님의 형상을 자기가 본받기 위험이라 요 하나님의 형상을 덧입기 위함이라  했는데 요 형상을 입기를 노력하는 사람은 벌써 하나님의 형상을 입었으면 이런거  억억억억 만배도 크다 그말이요 이러기 때문에 철학이 요 범위에 서 말할 때에는  이 사람이 볼때 벌써 샘이 암에 갇혔다 감옥 안에 갇혔다 고 알기 때문에 이  사람에게 내 밖에 이런 세계가 있는데 네가 지금 여갇혀 가지고 있으니까 그것을  탈피하고서 여기 나와 봐라 그 사람이 못본 세계를 말해 줍니다. 자기는 평소  연구하지는 않았지만 그 사람이 그 말 하니까 그 범위보다 넓은 범위를 알게 되기  때문에 말을 하니까 그 사람을 그 말 하니까 그 범위보다 넓은 범위를 알게 되기  때문에 말을 하니까 그 사람을 정죄하고 그 사람을 거시서러 설복시켜서 이해를  시켜서 다시 구출할 수가 있고 또 그 사람이 잘 못된 것을 말할 수도 있고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기를 이거 힘쓴 사람이고 이걸 안하고 예수 믿는 사람도  중생됐으면 자기 성미에 맞지 않는 것이요 요것이 이제 하나님의 형상인데이것을 기르는 것이 자기를 기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미래에 대한 것을 천인 만언의 감언이설로 말해고 고 사람의 그 본성을  속일 수가 없다 그말이요 네 고 사람의 본성을 속일 수가 꾀울수가 없어 본성을  고것을 잡아 다닐 수가 없어 요것이 하나님의 형상 그 아담의 형상을 본받기  위함이라 이는 참 지극히 크고 영화로운 이복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인데  믿음을 떠난 자들은 이 세상 신이 그 사람 마음을 혼미케 해 가지고서 이것의  가치도 알지 못하고 해서 헛일하게 한다 기요  게 고 선이라는 선을 가지는 그 선의 속성 선의 속성 고것도 그렇소 선의 속성  고것도 그 선이라면 유일 신의 유일 신을 중심으로 하는것인데 유일신을 중심으로  한 요 속성이 지금 거서 성장 되어 나간 사람은 아주 무식한 사람이요 어떤 분은  보면 성경을 한글을 몰라서 성경을 읽을 줄 모릅니다. 성경에 대한 지식이 아주  무식하요 무식해요 요 사람이 진실되게 자기가 그 하나님이 가르쳐 주실 때 옳고  바른 것을 가르쳐 주는 그것을 받아 드려서 받아 드리고 인정을 고대로 그면 고  믿음이 됐다 그말이요 또 자기에게 옳고바른 행위를 지도해 주면 고대로 행하고  성경은 몰라도 요 실천하는 요것이 있는 사람 있습니다.

시골에 가면 할니들이 이런 할머니들이 많소 시골에 가면 이런 신앙들이 많애 이런  신앙들이 많은데 그 사람들은 그 뭐 하나님 중심 대한 것을 말을 해라 하면 한  마디도 못하요 한마디도 못하는데 고 속성은 고것이 속에서 잘 자라고 있다  그말이요 이래서 게 언제 한번 주남선 목사님이 세리 문답을 계명교회로 왔는데  아주 그 계명교회서는 잘 믿는할머니들인데 잘 믿는 할머니 들이고 참 동리  사람들이고 집안 사람들이 핍박하다가 마지막에는 다 굴하고 성녀하고 하는 잘  믿는 할머니들인데 세례를 줄라고 세례 문답을 하니까 뭘 말해 보라 하니 뭘  알아야지 하나도 뭘라 말 한마디도 몰라 게 나한테 말하기를 아 이거 저 아무래도  이 사람들을 이 세례를 못 세우겠습니다. 게 내가 말하기를 아닙니다. 그분들이 그  참 요새 세대에는 귀한 신자들ㄹ입니다. 와 귀한 신자라 하면은 요새는 말 신자가  많은데 말신자가 많은데 그 말 신자가 아니고 진짜 신자입니다. 문답을 달리 해  보십시오 그 백 조사 뭐 어찌해야 되겟노 아 그때 내가 집사라 백 집사 그럼  어찌해야 되겠노 이래 그런데 그분들에게 갔다가서 그 이기 뭐요 그리 묻지 말고  이기 옳으나 저기 그르나 옳고 그런 것을 그래 물어 보십시요 그래 인자 옳고 그른  것을 묻습니다. 지식에 대해서 지혜에 대해서 행동에 대해서 비판에 대해서 그 주  남선 목사님이 뭐 자기 맘대로 마구 지내 가지고서 요기 옳으나 요기 옳으나  물으면은 옳은 걸 딱딱 말하는데 목사 물어야 모릅니다. 여림도 없습니다. 목사  그분들 만치 아주 제가 아는거 설교하면서 다 잘 아는 것 같지만은 물으면 모른다  그말이요 그러니까 무슨 일을 비판을 못하니까 퉁퉁죄를 저지른다 기요 갔다가서  이런데 그거 물어 보니까 이기야 설마 모르지 싶어서 물으면은 자 요걸 해야  되겠습니다. 요걸 해야 되겠습니까 아 예 고걸 해야 되지요 호나하이 다 알아 게  주남선 목사님 놀랬어 아 과연 이들은 참 진실의 신앙이요 말 신앙이고 지식은  가지지 않았는데 속으롱라기는 다 알고 있으니 그기 뭐일까 이것이 속에  영감이겠지 그렇게 비판하고 이기 속에 영감 아닌가 성신의 감동으로 이래 알리는  것이지 그리 그 뭐 성신의 감도이라 그렇게 말하고 지나갔소  요새 와서 보니까 그렇게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의형상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하나님의 그 형상인 그는 하나님의 그 신성과같은 그 인격성 신성과  같은 그 속성을 점점 길러서 간 사람들이라 말이요 그 사람들은 믿음을 지키기  때문에 그리 자랐소 믿음을 안 지키기 전엔 신구약 66권을 막 외워도 소용이 없소  참 이거는 꼭 진실하고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이라야 구원을 이루지 그 꾀쟁이  요새는 갔다가서 요새 는 외인이 묶여 가지고 죄인이 뒤에 다라가면 이놈 하고  있습니다.

게 죄 짓는 자는 의인으로 상을 받고 의인은 죄인이라고 묶어 가는 세상이요  그래도 비판을 못한다 어느것이 옳은지 몰라 인간은 이런 세상에서는 이제  처세술이 뭐냐면은 이중 삼중 십중으로 꺼풀 많이 입어야 된다 이런데 예수교는  그거와 정반대요 여는 꺼풀하나만 입어도 안됩니다. 다 벗어 놓고 다 벗어 놓고  진실되이 실행해야되요 하면 알아진다 기요 그런데 요걸 하나씩 하면은 그 마음이  혼미에게 밝아져서러 점점 밝아 져서 귀신을 자가고 세상 신은 나가고 성령이 와  가지고고 알아지게 되는데 요 꾀를쓰는 사람은 요 믿음을 지키지 않아는 사람인데  요 사람은 그만 세상 신 그것이 들어서 그 사람 망하게 어떻게 해요 혼미케 해요  혼미케한다말은 어둡게 한고 꼬임 잘받게 어리석게 만드는 것입니다. 깜깜 어두워  고임 잘 받도록 만드는 고것이 혼미받은 것이요 혼미케 되는 것이요 그래 가지고  참 음성 중에 이러츰 좋은 음성 말이요 지극히영화로운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이 영광스러운 복음의 광체를 받지 못하게 하요 이 복음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영강의 광체가 굉장하게 이 광체를 자가기가 갔다 보지 못하게 해서 이 빛을 받지  못해 가지고서 이 복음은 헌 신짝 같이 버리고 썩을 것만 자꾸 잔득 욕심을 내  가지고서 탐한다 그기요 이러기 때문에 게 고 사랑도 사랑을 갔다가서 자기가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요  사랑은 사랑이 없어도 사랑할 수 있고 사랑은 없어도 외식사랑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망을 하는기 문제가 아니고 사랑의 역사를 많이 하고 적게  하는게 문제가 아니라 자기에게 사랑의 그 인간성이 이루어 지는게 중한 문제  입니다. 그 사랑의 그 속성을 자기가 이제 자기의 본능적 이 사랑이 안 될수 없는  자기는 아무리 안 할라 해야 안할 수 없는 요 사랑의 하나님의 속성을 모형한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의 모형인 이 모형 속성이 자기에게 이루어지는 것 어 문제라  그말이요 다시말하면 자기라는 그 인격성 자기 그 인간성 자기의 본성 요것이 변화  되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요거 변화되어지는 것은 진실이라는 요 방편을 써  나가고는 하나도 변화 못받습니다. 꼭 진실을 통과 해서만 변화를 받는  것이요그러기 때문에 요 진실을 버리고 (                  )요 진실을 버리고  자기의 멍철이나 자기의 수단이나 자기의 괴나 자기의 예민이나 자기의 수양이나  어떤 좋은 걸 가져 와도 요 진실 게 아니면 요 대용품 이 안됩니다. 요 진실의  대용은 천하 인간 수단을 다 가져도 진실의 대용은 안 되요 천하에 있는 좋은  방편을 다 가지고 통계를 가지고 농란한 수양을 가지고 어떤 것을 가져와도 요  진실의 대용품은 없습니다. 진실엔 진실로만 되지지 진실의 대용품 없는 것이요 요러기 때문에 요 진실을 가지고만 요 하나님의 형상은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자기가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이 가르친 대롭다아 드리는 그것도  진실 없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소 자기는 무실론자인데 내가 예수 믿는 것들  막 전부 갔다가서 이걸 꼬와 가지고서 공산주의를 만들어야 되겠다 요렇게 생각해  가지고서 성경을 배웁니다. 자기 성경을 배우는데 자기는 갔다가서 지금 진실은  없이 성경에 요렇게 요렇게 배워나가 전부 배워 다가지고서 있어 또 순종하는 것도  자기 ?? 순종을 했소 이러니까 다른 사람들은 다 성자로 알고 성녀로 알고 이제  목사로 세우고 지금 가르치는데 그 사람은 그걸 갔다가 가르치고 설설 사람을  낙심시켜 공산주의 만들라고서 그러는데 이제 지하 운동으로 그렇게 할 수 있다  기요 이렇게 까지라도 할 수가 있어 그러기 때문에 아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행동하는 것이 문제가 앙니라 알고 행동 암만해 봤자 소용없소 알고 행동하는  고기에 고 진실이라는 요 관문을 통해 야 됩니다. 고 요 알아는 것도 진실을  통해서 들어와야 되고 요 아는 것이 진실을 통해서 나가야 되고 행하는 것도  진실을 통해서 들어가야 되고 요 아는 것도 진실을 통해서 나가야 되지 요 진실을  버리고 그래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데 요러면 요 사람은 세상에 예수 믿는 모든  신앙 행위는 굉장히 능란할 수가 있고 굉장히 그 숙달될 수가 있고 그 성장될 수가  있지만은 하나님의 형상 은 못 입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입지 못하요 고것을  고걸 바리고 진실되이 진실되이 자기가 하나님의 그 인격성을 닮을라고 인격성  요기에 욕심을 부리고 요 인격성을 자기가 갖추는 고 방편으로 방편으로 알아야  되겠고 아는대로 먼저 행해 봐야 되겠다는 이 방편으로 하지 네 그것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요 하나님의 형상 입는 요 소망이 근거 되가지고서 요것 때문에 하는  요 진실이 그 사람에게 있어야 요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 지고 (???)이루어  집니다. 이러니까 사람들을 봐도 아주 표리가 다릅니다. 껍데기로 번들번들 보면은  아주 에수 믿는 사람으로 훌륭한 사람이고 잘 믿는 사람인데 딱 접촉해 가지고서  한 시간지내고 아니 이거는 순전히 옛사람이라 옛사람 껍데기 사람 그대로라  그대로인데 성경에 막 갔다 받아 전부 갔다 장식을 해 놨어 또 그 사람이 갔다가서  그 모든 행동을 장식을 해 놨는데 속에 그 사람의 본질과 본성은 하나도 변화가  안되 가지고 있어 내나 갔다 안 믿는 사람들이 처세술 로 이러 저거 다 구비 시킨  거와 같이 꼭 그래 가지고 있어 그러기 때문에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진실이  없이는 기독자의 구원은 못 이루어 집니다.

이러기에 사람들이 예수 믿는 거보다 더 좋은 것이 많고 큰기 많고 권세 있기는  많고 아름다운기 많은 것은 예수 믿는 거보다 좋은기 많아 그런게 아니라 내 눈이  어두워 그렇소 에 알겠습니까 눈이 어두워 그렇소 성경에 그렇다는 약속이 아니요  성경 약속 가운데에 하늘에 있는 거와 땅에 있는게 다 내것 된다는 그 계약에 쓰여  있소 계약 이 큰게 아니요 그 보다 더 큰 소망들이 많이 있소 영계와 우주를 자기  것만드는 아이구야 그러면 갔다 (???)큰 일 인데 그 큰 계약이지 아니요 하나님과  인간으로 더불어 계약한 가운데 그 계약이 그렇게 중요한 계약이 아닙니다. 그기  새끼 계약이요 새끼 계약 새끼 계약 제일 큰 계약이 뭐이요 신의 성품에 함게 하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 이기 참 큰 계약입니다. 하나님같이 되지는 이기 큰 계약이요  만물에게 하나님의 것으로 충만시켜 주는 이것도 큰 계약이요 어디 이런게 세상에  어데 그런 큰기사 가 뭐 있습니까 이런데이렇게 영광스러운 큰광채 있는 이 계약이  자기 눈에는 돈 천원만도 못하고 만 원만도 못하고 일 원만도 못하고 벼슬 만도  못하고 이렇게 무가치하게 보이는 것은 그것은 이것이 가치가 없어 그런게 아니고  그 사람이 눈이 어두워 져 그렇습니다. 눈이 어두워져서 왜 어두워 졌습니까  믿음을 떠나서 어두워졌지 믿음떠난다고 와 어두워집니까 마귀란 놈이 그 마음을  혼미케 했거든 참 예수는 요 진실히 믿으면 진주와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누구든지  있는 거 다 팔아서 그거 삽니다. 다 팔아서  예수의 이 안에 있는 이 구원을 바로 발견한 사람은 돈과 생명 아끼지 않소 아끼지  않습니다. 평생 소원이 그것이오 주여 소유도 지위도 권세도 행락도 다 좋은  것이지만은 이 구원 손해보기는 할 수 없습니다. 몸이고 생명이고 전부 주의 이  구속에 다 바치엑 해 주옵소서 평생 살길을 기도하는것보다 만날 갔다가서 순교를  기도하는 것이 숫자가 얼마나 많게 하는 것이 그것이 깨달은 사람들이 다 소원하는  소원입니다. 공연한 소원이요 어리석은 소원입니까 아니요 똑똑히 보고 똑ㄸ고히  보고 바로 안 참 지혜로운 영원히 후회 없는 소원입니다. 이거 외에 땅에 것에  지금 분주한 것은 다 후회할 것들이요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십시다.

예수믿는 거 진실히 믿으면 이 보다 쉬운거 없어요 오면 다 되는데 우리의 심신에  하나님의 형상 곧 여기 모인 이루어 지면 고만 다 되 버이는데 우리 영에는 또  와있지만은 이 심신에는와 있지를 않애요 이러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본 받기 위함이라 그 아들의 형상을 입게 하기 위함이라 깰때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세상 분깃을 받은 자들은 자녀로 만족하고 자기 먹고 쓰고  남은 거 있으면 자녀에게 유선으로 주고 만족하고 의로운 자는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할 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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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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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3 주의 재림/ 마태복음 23장 44절-51절/ 1982년 11 공과 선지자 2015.12.27
1132 주인은 하나님-자기는 원수/ 누가복음 16장 12절/ 1984. 5. 2. 수새벽 선지자 2015.12.27
1131 주인을 바꾸라/ 마태복음 10장 16절-20절/ 1988. 11. 12. 토새벽 선지자 2015.12.27
1130 주인을 바꿔라/ 요한일서 5장 5절-12절/ 1987. 12. 4. 금새벽 선지자 2015.12.27
1129 주인의 보충/ 마태복음 5장14-16절/ 1980. 2. 15. 금새벽 선지자 2015.12.27
1128 주일/ 요한복음 2장 13절-22절/ 1987. 6. 7.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7
1127 주일/ 요한복음 20장 19절-23절/ 1984. 10. 21 주일새벽 선지자 2015.12.27
1126 주일/ 요한계시록 1장 9절-16절/ 1983. 12. 11.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27
1125 주일/ 야고보서 1장 1절-4절/ 1979. 8. 28. 화새벽 선지자 2015.12.27
1124 주일/ 히브리서 4장 7절-8절/ 1980. 10. 21. 화새벽 선지자 2015.12.27
1123 주일/ 요한복음 2장 13절-22절/ 1987. 6. 7.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27
» 주일/ 고린도후서 4장 4절/ 1979. 8. 12.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7
1121 주일/ 히브리서 3장 12절-4장 13절/ 1980. 10. 12.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27
1120 주일/ 히브리서 3장 15절-4장16절/ 1980. 10. 12.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7
1119 주일/ 이사야 58장 13절-14절/ 1979. 12. 16.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7
1118 주일/ 이사야 58장 14절/ 1979. 12. 17. 월새벽 선지자 2015.12.27
1117 주일/ 히브리서 4장 4절-10절/ 1984. 6. 3.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