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재림

 

1982. 3. 7. 주후

 

본문: 마태복음 24장 37절 - 39절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니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영의 그 성전과 정도에 따라서 하나님이 인도하십니다.

그런고로 상고 때의 하나님의 가르치심과 중세 때의 가르치심과 근세 때의  가르치심이 각각 다릅니다. 그러나 그 속의 진리는 언제나 꼭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진리라 말은 이치라는 말씀인데 이러기 때문에 참된 이치를 이런 실물을 들어서  가르칠 때도 있고 저런 실물을 들어서 가르칠 때도 있습니다. 농부에게 어부에게  공무원에게 군인에게 가르치심이 그 표현된 이용된 서기관은 각각 다를지라도  속에 이치는 꼭 같습니다.

노아 때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시키시는 이대로의 준비를 하지 아니하고  자기 지혜대로 마음대로 욕심대로 준비한 것은 전부 이 홍수멸망에 다  멸망했습니다. 이 멸망을 벗어난 것은 전부 이 홍수멸망에 다 멸망했습니다. 이  멸망을 벗어난 인간의 준비는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보고 저는 크다  견고하다 유력하다 유명하다 좋다 나쁘다할 것 없이 모조리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신 한 그 외의 것은 크나 적으나 뭐 아름다우나 험하나 홍수 속에 멸망  받을 것은 꼭 같습니다. 그때는 홍수로 멸했지마는 그 다음에 심판 때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로 다 심판해서 멸하시고 또 지금도 그때입니다. 예수님 재림 때의  심판은 인간생애가 끝나고 난 다음에 마지막으로 심판하는 것이요. 지금도  하나님에 심판의 때입니다.

홍수 때에 노아는 방주를 예비함으로 그 모든 재앙이라면 하나님의 심판이라면  전 인류의 멸망이라면 멸망이라 할 수 있는 그 멸망에 다 멸망 받았고 다만  노아의 여덟 식구만 구원을 받았습니다. 노아의 여덟 식구가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이 구원을 만들라고 하시는 그대로 시키시는 대로 하나 둘 한 그것이 배가  만들어졌고 홍수를 이용하게 됐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홍수로 멸망을 받았지마는  노아의 여덟 식구는 홍수를 아주 잘 이용을 했습니다. 만일 노아가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하다가 어느 한 조각만 붙이지 안 했다 할지라도 그 구멍으로  물이 올라와서 그 배는 다 침몰되고 말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미련한 십자가의 도 하나님이 그에게 문서  이 계시를 가지고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인도를 하시고 신구약성경 문서를  가지고 인도를 하시고 또 이 문서 안에 성신에 감화 감동으로 인도를 하시는데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이것을 참되다 인정하는 것이 그것이 반 믿음이요. 인정한  그대로 실행하는 것이 그것이 이제 둘이 합하면 온전한 믿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치 아니하는 것 만치 자기는 무능해지고 어리석어지고 그  구멍을 통해서 자기를 멸망시키는 멸망은 들어오고 또 그 구멍으로 인해서  자기의 구원은 절단이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키시는 말씀을 만일 노아가  순종하지 아니한 그 부분이 있었다고 하면 그것으로써 자기를 침몰시키는  홍수멸망이 그 구멍으로 들어오면 그만 그 배는 침몰되어서 망할 것입니다.

그때와 지금과 꼭 같습니다.

구속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치 아니하는 것 또는 인정한다고 해도  순종치 아니하는 것 인정치 아니하는 것으로 모든 허약이 다 마음에 들어옵니다.

인정치 아니함으로 멸망이 마음가운데 다 들어옵니다. 저 성도가 왜 근심하느냐?  분명히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 말씀을 인정하지 않는 고 면으로 그에게 근심  고통이 들어 왔을 것입니다.

또 저 사람에게 마음의 고통뿐 아니라 실상의 자기 일이 낭패가 되고 자기의  몸이나 모든 것이 절단이 났다고 하면 분명히 그 사람이 순종치 아니한 고  구멍으로 통해 가지고 그에게 실지의 멸망은 들어왔습니다. 인정으로 마음에 모든  해를 방어하는 것이 노아 홍수 때와 꼭 같고 인정치 아니함으로 마음에 모든  불행이 들어오는 것이 배 모을 때에 조각 떼 놓은 거와 꼭 같고 물들어오면  자기들의 구원은 절단 납니다. 물들어오면 자기네들에 구원은 절단 납니다.

한쪽을 떼 놔서 구멍이 뚫렸으면 분명히 물들어오면 저희들의 구원은 다 절단  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성도의 심령에 모든 불행이 들어오는 것은 하나님이  문서계시나 영감계시를 자기가 인정치 안한 고 조그마한 틈을 통해서 자기의  신령의 지옥이 들어오고 모든 사망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또 그것을 행해야될 터인데 행하지 아니하면 행하지 아니한 고것을 인해서  자기에게 실질적인 어떤 불행이든지 멸망이든지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면 성도들이 자기의 심령에 생명과 평강을 자기의 모든 행동과 생활에  자기처지에 생명과 평강이 이루어지는 것은 다른 것으로 이루어지지를 않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고 인도를 자기가 인정하는 그것으로써 모든 해를 다  방어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오는 모든 심신의 불행을 그것을 이 세상  어떤 방편을 가지고 방어해서 자기의 해를 막고 자기에게 행복 된 것을  갖추려하는 그것은 노아 시대에 방주 만든 노아의 다른 모든 사람들과 꼭 같은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한 형식계시로 신령한 이스라엘 된 우리들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때에 무슨 유명이 슬기롭다고 무슨 지혜가 그 홍수 멸망을 방어를  했으며 홍수 멸망 오는 거기에서 구원을 일으킨 그 인간노력이나 인간공로가  있었습니까?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도 실상은 그러합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저렇게 자율대로 사욕대로 주관대로  해서 형편이 풀렸다. 이렇게 생각하지마는 성공 같은 실패가 있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실패 같은 참 성공이 있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큰 잔치를 베풀어 놓고 사람을 청해 오라 하니까 모두 다 장사 때문에  자기 사업 때문에 자기 가정 때문에 장가들었으니 토지를 샀으니 소를 샀으니  이렇게 말하니까 그 사람들은 다 모두 소원성취대로 성공이 된 사람들입니다.

이제는 그런 사람들은 다 안 올라고 합니다. 저 거리 저 구역 지방으로  돌아다니면서 거지 병신 가난한 거 마구 주어 몰아가지고 오라 그때 온 자들은  다 실패자 병신들만 왔습니다. 그때까지는 참 온 사람들은 다 실패자요 불쌍한  사람들이요 저 사람들은 다 성공한 사람들이지만은 임금이 와 가지고 거게 온  사람들 중에도 예복입지 않는 사람은 다 쫓아냈지마는 예복을 입은 사람은 어떤  병신이든지 그 왕의 잔치에 다 참례를 했고 나머지기 소 때문에 장가들어서 토지  때문에 하는 것은 모조리 전멸을 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있습니다.

그런고로 사람이 하는 일이 얼마나 하느냐 사람이 하는 일이 어떤 일에 대해서  이 일은 아마 99%는 사람이 하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은 한 100분에 1%도 안  되느냐 이렇게 생각을 하지마는 계산을 잘못돼 그렇습니다. 어떤 것이든지 사람이  하는 것은 백분지 일뿐이 아니라 천 분의 일도 안됩니다. 사람이 모르는 그 천의  구백 구십 구 라고 할 만치 그 이상으로도 예를 들면 계산을 하면 그렇다는  것이지 그것은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많은데  모르는 거 다 하나님이 하셨지 사람이 한 것 아니고 사람이 아는 것 중에도  사람이 하지 안한 그것은 저절로 되는 건 줄 알지마는 그건 다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또 백에 하나 천에 하나 사람이 한 그것도 사람이 한 것으로 알지마는  성경을 가지고 찾아서 따져보면 그것도 자기가 알기 전 하나님께서 일찍 해 놓고  그것을 자기가 한 것처럼 나타내라고 한 그것이 나타낸 것뿐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없는 가운데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심과 꼭 같이 이미  만들어놓은 것도 그분 한 분으로서 보존이 되고 또 그분 한 분으로서 이것이  유지도 되고 살기도 하고 성장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생겨진 것은  또 하나님으로 인하여만 보존되고 또 하나님으로 인하여서만 살고 하나님으로  인하여서만 좋아지고 이러기 때문에 "만물이 그에게서 나왔고 그로 말미암고  그에게로 돌아간다"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홍수 때에 노아가 순종은 하기는 했지마는 만일 거게 송판쪼가리  하나라도 대라는 것을 대지 안 했으면 그 구멍으로 물들어와서 해 놓은 일 다  헛일입니다. 시키는 시키시는 대로 다한 그것은 홍수의 멸망이 들어올 틈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구원을 다 받았어. 하나님이 말씀을 순종한  사람들에게는 거역한 자들을 멸망시키는 그 멸망이 노아에게는 구원이 됐습니다.

홍수가 거역한 자들에게는 멸망이 됐지만은 순종한 자들에게는 홍수 없었으면  노아는 실패입니다. 홍수 그것이 노아를 구원했습니다. 그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이 순종의 생애는 하나님이 거역하는 자들을 멸망시키는  하나님의 모든 섭리가 순종하는 자에게는 필요한 도움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노아의 방주 모은 것이 사람으로 그의 멸망을 방어할 수 없는 그 홍수가 올  그때에 필요했지 홍수가 안 오고 저희 인간 힘으로 다 하는 그것가지고 할 수  없는 그것뿐이라면 노아는 참 실패자요 부끄러울 자요 어리석은 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의 세계 결말은 시작과 중간은 이런 거 저런 거 많았지만은 결말은  인간의 지능으로 한 것은 전부가 허사다 하나님의 인도에 순종으로 한 것만이  구원이 되었다하는 것을 여기에 서서 보이는데 이것은 이치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이치입니다.

자기가 가정생활이든지 자기개인의 일생이든지 어떤 사업이든지 반드시 시작이  있고 중간이 있고 결말이 있다. 시작과 중간의 결말이 있으니 시작도 이것저것 다  할 수 있고 중간도 이것저것 다 할 수 있지마는 결말에는 인간이 하지를  못합니다. 결말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결말에는 그 멸망을 인간들이 방어도  못했고 구원도 인간들이 마련을 못했습니다. 결말에는 하나님의 시키시는 대로 한  그것이 모든 멸망을 방어했고 하나님이 구원시키는 그 구원을 받게 됐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시작을 중요시할 것이 아니고 중간을 중요시할 것이  아니라 결말을 중요시해야 됩니다. 아무리 장사를 한다 할지라도 시작도 번창하게  중간도 번창하게 한다 할지라도 마지막에 결말에 손해 갔으면 그 장사해서 무슨  소용 있습니까? 사건마다 결말이 있습니다. 인간마다 결말이 있습니다. 모든 좋은  거 마다 결말이 있으니 결말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순종한 것은 생명과  평강으로 거역한 것은 멸망으로 이렇게 하나님이 정하시고 역사 하시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습니다. 결말이 되기 전까지 인간들의 하는 것이  잘되어지고 성공이니까 그때뿐이라면 그것뿐이라면 십자가의 도를 믿는 사람들이  다 어리석은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거게 결말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러기에 시작도 결말을 보면서 시작하고 중간도 결말을 보면서  추진해야 됩니다.

베드로후서 3장에 보면 모든 것이 이렇게 다 불타고" 모든 일이 드러나리니" "  너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주의 날이  나타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간절히 사모하라. 주의 날이 나타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생각도  주님의 날 재림 날 마지막 날 개인으로 말하면 자기죽음이라 말과 같은 말입니다.

네가 소망은 죽음이라는 그 시간에 소망을 둬라. 너는 예수님의 재림이라는  그때다가 소망을 둬라 그 날을 바라보라. 네 간절도 거게 둬라. 네 모든 생각도  거게다 둬라. 그라면서 그 날의 것을 소망하고 그 날의 것을 계산하고 그 날에 네  마음을 전부 다 것다가 집중을 시켜라.

간절이라 말은 거게다 집중을 시키라. 네가 소망도 오늘에 있는 이것을 지금 있는  이 소망을 아니라 네 마지막 죽는 그 시간에 네 소망 그것을 예수님에 재림 때  그때의 소망 그 소망을 네가 가지고 소망은 그것만 가져라. 딴 거 가지지 말고  그것만 가져라. 오늘 암만 좋아도 네가 이것보고 계산했다면 너는 오산이요  실패합니다. 이것을 계산하지 말아라. 결말 마지막 네가 죽을 때 되 죽을 때 죽음  죽는 고게가 가지고 죽을 때 있는 죽을 때 고것을 네가 바라보고 고걸 소망하고  그것을 계산하고 네 마음은 거게 다 기울여 가지고 계산해라.

그러고 거기에 소망한 그것을 현실에서 와서 만들고 거기에 계산된 그 계산을  지금 네가 고쳐라. 거게서 계획한 그 계획을 네가 지금 만들어라. 그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이라는 현실은 현재 것을 만드는 것 아닙니다. 우리 현실은  죽을 때의 그때 것을 지금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재림 때의 그때 것을 지금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 수지 계산은 그때 것을  지금 수지계산대고 있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그때 것을 지금 소원하고 있는 것이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노아가 220년 동안이나 방주 모은 것이 아무데도  필요 없습니다. 그것이 무슨 화물선에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무역선에 필요  있습니까? 객선에 무슨 필요해 아무데도 쓰지 못할 아무데도 쓰지 못해. 육지에서  만들어놨으니까 그때 과학으로써는 노아가 육지에 만든 그 배를 바다까지 못  끌고 갑니다. 물까지 못 끌고 가요. 아무짝도 쓰지 못해. 다만 그것은 인간의 모든  준비와 노력이 모두가 다 헛일되는 그때에 필요했습니다. 인간이 멸망하는 그  멸망이 노아에게는 필요한 홍수였습니다. 멸망을 타고 돌아다녔습니다.

이러니까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시비하던 자들의 모든 것이 노아가 밭을 살라고  애를 썼소 집을 살라고 애를 썼소 좋은 살림을 자기가 만들라고 살림 살라고  애를 써 아무 애를 안 썼지마는 온 세상 것은 다 노아의 혼자의 것이요. 노아의  혼자의 것.

영계의 것과 물질계의 이것이 그것을 가지려고 생각지도 안하고 오늘에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웃으라 할 때에 웃고 희생하라 할 때에 희생하고 봉사할 때  봉사하고 충성하랄 때 충성하고 가라할 때 가고 오라 할 때 오고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한 이 자에게 그리스도가 시키는 대로 그리스도에 속해서  그리스도에게 피동 된 이 자에게 하늘에 것도 땅에 것도 이제 것도 장래 것도  모든 걸 다 그에게 준다고 말씀하신 그것이 어떻게 되어지겠느냐? 하나님 시킨  대로 배 모은 사람에게 왜 천하를 노아에게 다 줬습니까? 노아의 것이 됐습니다.

주인 아무도 없습니다. 온 천하는 노아에 것 됐어. 그러기에 인간의 모든  지혜적으로나 능력적으로나 평강적으로나 기쁨의 것이나 건강의 것이나 모든  것이 인간에게 모든 영과 육에 불행은 하나님 말씀을 인정치 아니하는 그 틈  순종치 아니하는 그 틈, 고 틈으로 다 들어오는 것입니다. 요것을 믿는 사람들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천하인간이 다 나를 해할라해도 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말씀을 인정하지 안하고  순종치 안 하는 고 틈으로 들어왔지 어떤 남이 해할라해도 해하지 못합니다.

요새는 이십세기의 과학이 떠들고 이북에서 칼을 갈고 이래 앉았으니까 사람들은  이렇게 적화남침하려고 야욕을 가지고 이렇게 악독을 가지고 있으니 우리가 뭘로  방어를 할까? 여기에 서서 어떻게 구원 얻을까 해서 도피하는 사람들도 별별  준비하는 사람들이 다 있지마는 그것은 노아 시대에 방주 만드는 것 그 외에  다른 방식입니다. 아무도 가 가지고 뭣해도 한가지요. 자기네들이 신문발표  했는데 보니까 미국에 있는 사람들을 세 개만 발사하면 소련에서 발사한 미국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바보가 된답니다. 죽도 안하고 전부 바보가 된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온 세계를 어지럽게 복잡하게 하는 이것은 곧 이것이 노아  홍수 때와 꼭 같은 것입니다. 노아 홍수 때와 꼭 같소. 하나님말씀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고게만 생명과 평강이 있고 그 개별적으로 고 사건에만 생명과 평강이  있고 고 행동에만 생명과 평강이 있고 고 사람에게만 생명과 평강이 있고 고  가정에만 생명과 평강이 있고 고 단체에만 생명과 평강이 있고 요렇게 이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동 없이 요대로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노아의 홍수 때에 멸망시키는 홍수가 하나님 말씀을 순종함으로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홍수가 없으면 안됐습니다. 홍수가 있어야 됩니다.

홍수가 필요 있는 그 노아 들의 행복을 일으켜 줬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믿음 없는 자를 멸망시키는 그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유익 됩니다. 모든 무신론 유물주의자들의 그 악독이 유익  되게 이렇게 홍수가 배를 더부렁 띄워 가지고 다닌 것처럼 하나님께서 공산주의  홍수 무신론자들의 홍수 이런 저런 모든 역사 하는 이런 것들이 믿음 없는  사람들은 거게 빠져 죽지만은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는 그 모든 것이 합력해서  도와줍니다. 이렇게 존귀케 합니다.

그러기에 모든 불안도 믿음 없는 틈을 모든 무지도 믿음 없는 틈을 미련도 믿음  없는 틈을 고통도 믿음 없는 틈을 실패도 믿음 없는 틈을 허영과 허욕에서  성공이라고 떠들다가 갑자기 낭패되고 절단 나는 그것도 믿음 없는 틈으로 다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것 들어오면 물들어오면 구원 다 절단 나버려요. 노아 배에  물이 들어왔으면 그 안에 무엇이 구원이 되겠습니까? 그런고로 하나님 말씀을 에누리하는 이것이 우리의 원수 중에 원수입니다. 믿지  못하게 하는 이 이것이 원수 중에 원수입니다. 말씀하시기를 주의 재림이 더딘  것이 아니라 한 사람도 멸망치 않고 구원에 이르도록 하시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무엇인가 믿지 않는 그것은 반드시 지금 구멍이 뚫려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신구약성경을 많이 읽어서 구구 절절을 아는 것이 복이  있고 인정하는 것이 복이 있으니 우리는 지금이 방주를 만드는 그런 시기와 같은  시기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까지 재림하실 때까지 재림이 언제 되든지 언제  우리가 세상을 떠나든지 그것은 내가 알지도 못하는 것이요. 내게야 알아봤자  소용도 없는 것이요 안 알려 주시는 것이고 이러니까 그저 그 시간까지는  신구약성경을 열심히 읽어서 하나 하나를 믿고 인정하는 사람되어야 될 것입니다.

아, 이를 믿는다 나는 인정한다 닥치면 이대로 살 것이다. 해서 우리는 성경을  읽어 방주 만드는 그 모든 조각 조각을 우리가 다 깨달아야 되겠고 실행함으로  그 방주를 만들어야 되겠고 내가 오늘까지 과거에 실행치 못한 것이 있으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죽기 전에 우리에게 그것을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한번 실패한 것은 두 번 세 번 열 번 기회를 주시는데 마지막 기회 주실 때까지  인정치 못한 것을 인정 못하는 그대로 행하지 못한 것을 행하지 못한 그대로  세상을 떠나가면 그것이 무궁세계의 불구자입니다. 무궁세계의 병신이요.

호리라도 갚기 전에는 결단코 네가 그 옥에서 나오지 못하리라. 그 말은 못  갑니다. 배가 없는 사람은 배가 없으니까 바다는 보지마는 못 갑니다. 배가  있어야 타고 가지 공중이 환하게 좋지만은 공중에 타고 갈 비행기가 있어야 타고  가지 못 타고 가니까 자기는 바다에 갇혔지 공중에 갇혔지 이 국경에서 그  국경을 넘지 못하면 그 국경 안에 갇혔지 이것이 무궁세계에 이런 범위 내에  갇혔다 저런 범위 내에 갇혔다 바다에 갇혔다 공중에 갇혔다 국경에 갇혔다  감옥에 갇혔다. 이것이 땅위의 자기가 만든 노아 때에 노아가 방주 만든 거와  같이 이거는 하나의 우리에게 형식 된 그 형식계시를 우리에게 우리구원 이치를  가르쳐줍니다.

자기가 안 믿었으니까 인정을 했으니까 그 면은 그것이 마련이 안됐으니까  비행기 마련 안됐으니까 공중에 못 날아가지 배 마련 안 했으니까 못날라가지 못  떠서 못나가지 네가 호리라도 갚기 전에는 네가 하나님말씀을 인정치 안하고 순종치 아니한  그것은 다 그대로 영원한 보응을 받나니 길에 있는 동안에 급히 사화하라  화평하라 왜 그건데 뭐 때문에 배를 가지고 말하는가 사화가 뭐이요 화평하라 그  말이요. 누구하고 사람하고 또 누구하고 만물하고 또 누구하고 하나님하고 그게  내나 하나님과 만물과 인간과의 서로 상호 관계점 그게 그겁니다. 그게 그거요.

그 관계점이 잘못됐으면 그것은 세상에서만 해결을 지울 수가 있지 세상을  떠나면 무궁세계에서는 호리도 해결을 지우지 못합니다. 그것이 열 고를 주고  다섯 고을 주고 자기의 활 무대의 이 범위를 말씀한 거시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이치는 지금도 해당되고 내세도 해당되고 재림 때도 해당되고  언제든지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 모든 말씀을 진리이기 때문에 어데든지 맞습니다.

고 이치대로 하나님은 심판하십니다.

노아가 이렇게 준비하는 것이 홍수가 없으면 모든 사람들이 조롱했지 만일  노아가 그 방주를 만들면서 하나님의 일백 이십 년 후에 홍수로 멸하신다는 그  홍수의 하나님의 약속을 인정치 안 했다면 노아의 생애는 참 허무할 것입니다.

인정치 안 했으면 인정치 안 한 거는 그에게는 고통이 됐겠지. 힘이 떨어졌겠지  인정하는 그거는 그이에게 담대와 평강이 됐지.

오늘 이 봉독한 말씀에는 너무도 큰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인이 도적이 어느  시간에 올 줄 알면 지켜서 도적 맞을 사람 어디 있습니까? 다 지킨다 했소. 알면  지킵니다. 알면 도적 안 맞아 알면 도적 안 맞는데 몰라서 도적 맞고 도적 맞는다  해도 그 말을 무시하고 인정 안 하기 때문에 도적 맞아.

예수님이 대속 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가지신 것은 아무도 멸할 수 없지마는  예수님이 가지지 안 하신 것은 전부다 멸망입니다. 저 정죄와 저주아래 저 정죄와  저주와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으니까 멸망할 수밖에 더 있습니까? 사람도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전부 멸망 받을 것을 예수님께서 대신하시고 이리  옮기 놨기 때문에 사람도 예수의 사람 아닌 것은 다 멸망 받습니다. 물건도  예수의 물건이 아니면 다 멸망 받습니다. 일도 예수님의 것 아닌 것은 다 멸망  받소 행동도 예수님의 행동 아닌 것은 다 멸망 받습니다.

예수님의 것 주의 것 이것 되면 하나도 도적 맞지 안 하지마는 예수님의 것  삼으니까 자기 것은 아닌 것 같이 이렇지마는 이것은 참 영원한 자기 것이  되지마는 이것은 예수님의 것 되면 자기에게는 잊어버린 이런 것 된다고 해서  제것으로 가지면 이것은 전부 도적 맞습니다. 무엇이든지 자유도 예수님의 것만 기쁨도 예수님의 것만 평강도 예수님의 것만 예수님의  것만 남아있고 그 나머지는 다 하나님의 정죄와 진노로 멸망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시면 자기가 죽으면 그만 그것으로서는 영원히  도적 맞고 끝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

믿기가 좀 어렵습니다. 주님이 대속으로 우리를 값 주고 샀소 주님이 나를  대속하신 그 대속을 주님이 모든 것 다해서 나를 대속 했으니까 그 대속의  공로를 내가 믿으면 내게 있는 이것은 당신의 것이 되어야 될 것 아닙니까?  대속도 내 것 나도 내 것 네 소유도 내 것 대속 받은 내가 당신의 것인데 내게  있는 모든 것도 당신의 것 되는 것이 필요한 일 아닙니까 이것이 대속을 입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자기 맡은 식구를 때를 따라 양식 나누어주면 주인이 와  가지고 주인의 모든 것 모든 거라 했어 주인의 모든 것 그에게 다 준다 맡겨준다.

그러나 자기 맡은 식구를 술이 취해 가지고 뚜드리고 이래하면 주인이 와 가지고  엄히 그를 벌하신다 이런 게 다 무서운 소리입니다.

자기 맡은 식구가 누구입니까 자기 이웃 아닙니까 자기가 관련된 사람은 관련이  있는 사람 아닙니까. 자기와 관련된 관련되어 있는 사람에게 술 취해 가지고 그를  해했다. 술은 세상주의의 이 사상이요. 주의요. 이 모든 운동들입니다. 말은 안  해도 그 사람이 세상주의로 세상 위주로 살면 그 사는 그것이 곧 술입니다.

세상주의로 사는 세상을 보고 불택자들이 같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 그거  위주로 사는 이 인생관이 이 사물관이 이 주위가 사상이 이것이 술입니다. 이  술이 무슨 술이냐 음행의 포도주입니다. 음행의 포도주 이 술에 취해 가지고 이 술에 취했으니까 택자가 내나 불택자와 꼭 같은 그  욕망으로 그 방편으로 거게 붙들려서 술에 취해서 술의 사람이 되어 가지고 주  주정대는 움직이는 체하면 움직이는 것처럼 그런 사람이 되어 가지고 이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에게야 믿음이야 해치지 믿음에 무슨 유익을 주겠습니까? 만나면  그 사람에게 하늘의 소망은 해를 주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것도 손해를  주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도 손해 주고 회개하는 것도 손해 주고 이것이  두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접할 때에 내가 이 사람 접하는 것이 내가 술이 취했나 정신이  바로 있나 내가 지금 세상주의에 취했나 천국주의에 지금 정신이 까랑하이 깨어  있는 사람인가 나는 천국백성인데 천국 백성으로 지금 내가 이 시간에 행동하고  있느냐 세상주의로 살고 있느냐 내가 이 시간 상대방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느냐  믿음을 손해를 보이느냐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느냐 이것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살아도 잘못하면 자기가 만난 그 사람에게 믿음의 손해를 보이고 하늘에 소망의  손해를 보이기 쉬운데 이런 생각 아무것도 없이 밤에도 밤새껏 세상 것 생각하고  하루종일 세상 것 생각하고 행동도 세상 것 세상을 위주로 하고 이러니까 그  사람이 어떻게 맡은 식구를 술 취해 가지고 때린 그 사람의 그 방해로서 벗어  나오겠습니까? 이게 참 놀랠만한 일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없기 때문에 이거  업수이 보요. 자꾸 말하면 미치괭이 같이 보여! 뭐라고 해석을 할랍니까. 술이 취해서 주객으로 더불어 술을 먹고 그 주객이  누구였습니까? 세상 주의자들이 주객 아닙니까? 그 술은 뭐이요. 세상 주의로  살게 하는 인간의 지식이 아닙니까? 네가 하나님의 뜻은 떠나 생각지 안하고 사람의 뜻만 생각한다. 네가 세상 일만  생각한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들아  너희들은 대로 하나님 삼고 있다. 그 결말은 멸망이다.

음행의 포도주에 취해서 세상이 다 무너졌다. 이 멸망에서 나오너라 그 죄에 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니 그 죄에서 나와야 멸망을 네가 피하는 것이지 그거 아닌  것이면 너도 멸망한다. 대체로 그 죄가 무슨 죄입니까?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며 사치하였든지 그 만큼 갚아줘라 한말로 말하면 이 죄 입니다. 자기를 부인치  아니하고 주님의 십자가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기 부인치 안하고 자기는 자기  것으로 자기 욕심으로 자기 위주로 자기 주관대로 자기 소원대로 자기 좋게  자기대로 사는 이것이 세상 인간주의 아닙니까? 이것이 음행의 포도주입니다.

왜? 하나님으로 짝이 되어 가지고 살자가 하나님 버리고 자기든지 세상이든지  세상하고 짝해 가지고 사니까 그것이 음행한 것 아닙니까? 이것으로 음행한 것  아닙니까. 이것이 자기 맡은 식구를 술 취해 가지고 두드리는 것이라.

그러면 교인도 보면 그 사람 한번 만나면 아 저기 저가서 만났으니까 또  물들었겠군 버뜩 한 시간 만났는데 사람 획 디비져 버렸습니다. 그만 세상 사람  돼버렸습니다. 이 죄악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어떤 분이 말하기를 큰 도자기를 갖다 놓고서 독을 만들라고 하는데 와서  쇠뭉치로 탁 때리니까 독이 금이 짝 갔습니다. 암만 붙일래야 붙이지 못해.

인간이 인간을 만들어 볼라고 하나님이 하나님의 종들을 붙들고 인간 만들어  볼라고 애쓰는 데에 어떤 자가 망치로 때린 거와 같이 그 사람에게 하나의  미혹의 한말 한 행동으로써 음행의 포도주에 취해놓으면은 다시 그것을 치료할  길이 없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공로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기는 하지마는  얼마나 힘드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내가 맡은 식구라는 것은 그 사람과 나와 상관이 없는데 내가 그 사람을  알고 그 사람이 나를 알고 그 사람의 소문을 내가 듣고 내 소문을 그 사람이  듣고 나와의 이 관련 있는 그 모든 사람을 가르쳐서 자기에게 부담됐다 그  말이요. 우리가 옆에 있는 전부는 다 내게 부담된 사람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부담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상호 인간은 부담되어 있는 사람이라 책임 있는  사람들이라.

이런데 때리는 것이 아니면 양식 나누어주는 것 둘이 밖에 없습니다. 이 두  결과밖에는 없습니다. 이 지극히 큰 말씀이라 해도 무슨 말인지 이 큰  수지계산인데 이 수입 수지계산 쳐놓고는 이보다 더 큰 계산이 어데 있다는  말입니까? 소련이나 미국이나 그 나라가 지금 하나를 판다고 그 나라를 판다고 흥정을  하면은 그게 큰 흥정입니까 그까짓 거 지구땅덩어리의 먼저만도 못합니다. 네?  지극히 작은 일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모든 것 하나님의 모든 것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지극히 큰  일인데 이것을 상대해서 여기에서 눈뜬 사람이 일 국을 차지하고 세계를  차지한다는 것이 그의 마음에 요만치나 충격을 주고 있겠습니까? 공연히 허영심입니까? 과장된 말입니까? 아니요. 획 하나도 과장 없소. 사람을  접촉할 때에 내가 형제를 때리는 형제를 때려 상하게 하는 이 일이 이 시간  되든지 그렇지 않으면 내가 형제에게 양식을 나누어주는 일이 되든지 이 시간 내  행동이 구속하신 만유의 주님 앞에 벌을 받을 일이 되든지 당신의 모든 소유를  나에게 맡겨주시는 이 지극히 큰 수입이 되는 일이 있든지 이 시간 이 둘 중에  하나다. 하나도 안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둘 중에 이기나 저기나 이루어진다.

이것을 자기가 아는 것이 깨어 있는 것입니다.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준다. 어떨 때는 그 사람이 내게 대한 기록한 글을 보고  양식을 먹을 수 있고 어떨 때는 내게 대한 것은 기록한 걸보고 그 사람이 상하지  버립니다. 맞습니다. 우리의 생애는 얼마나 범위나 넓어서 널리 퍼져나가는지  모릅니다. 널리 처져나가는지 모르요. 이러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대로 좁게  살라고 애를 씁니다. 아무도 모르게 살라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왜? 흠이 없는 자신이 있으면은 퍼져나가면은 상이 많겠지만 자기 양심으로  생각할 때에 흠점이 있으니 아무도 내게 솔직한데서 살아서 고 몇몇 보는 사람  고 사람들에게나 덕을 끼치고 유익을 끼치고 요래 지금 했으면 뒤에 가서 엄히  두드리고 엄히 때려서 엄히 처벌을 해서 바깥 어두운데 내어쫓는다 하는 이런  일은 당하지 않겠다. 이래서 유명해지기를 원하는 사람은 심판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지금 믿지 않는 사람이요.

그러기에 인간은 유명한 사람들은 다 기어 들어가서 숨으려고 애를 씀으로써  유명해지는 그것이 억지로 되어지는 것이지 유명해지기를 원하는 사람은 참  뜨거운 국에 멋도 모르고 벌려 덤비는 자요.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을 접할 때나  접하지 안 해도 사람들이 말하기를 낮말은 새가 물어가고 밤 말은 쥐가 물어간다  그 말은 어디로 퍼져 번져 나가는지 모른다 그 말이요.

요새는 엄비천리라는 말이 말은 천리를 날라 간다 거게 씁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명심해서 자기가 혼자 있든지 누를 접하든지 다른 사람을 죽이는 행동을 해서는  안됩니다. 다 세상 사람을 해치는 행동을 해서는 안됩니다. 본야 세상에서 살다  나왔는데 세상을 주는 자 되면 안됩니다. 세상에 욕망을 가지게 하면 안됩니다.

하늘나라의 욕망으로 자기를 주의 것으로 주님만이 자기의 전부로 이렇게  삼으라고 암만해도 이 일이 잘 안 되는데 겨우 물에서 끌어내 놓으면 끌어다가  집어 넣어놓고 겨우 하늘나라의 소망을 조그매 가지게 해 놓으면은 배나 지옥의  자식으로 만나면 세상 깊이 빠진 세상 사람으로 우리는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면 그의 언행심사가 상대방에게 믿음의 유익을 그리스도인의 그 인격의  성장을 주는 우리의 언행심사 그것이 양식 주는 것입니다.

자기 언행심사가 나를 보고 듣고 접하는 모든 사람에게 내가 손해보이는  세상주의자가 되어질라 내가 그들에게 어떻게 하면 유익이 될까 아브라함이 소돔  왕을 만났을 때에 아 그 적산이니까 자기가 전쟁 이겼으니까 의례히 자기 것  되는 것이 법적 아니요.

이렇지만은 그 재물을 자기가 취할 수 있는 그것 취하면 아브라함도 같은  사람이지 이방인이 별게 없기 때문에 그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줄 걸 보여주지  못하고 그들에게 양식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이것 때문에 치부됐다 할까  해서 실나끈 하나도 내가 취하지 않겠다. 나는 하나님으로 전부 된다 하는 그것이  그때 아브라함이 이 시간에도 소돔 왕에게 양식을 줘야 될 터인데 내가 무슨  양식을 줄까 양식을 가만히 생각하니까 그 양식이 나왔을 것이요.

이렇게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하는 이자에게 하나님이 영계와 물질계를  맡기지 누구에게 맡기겠습니까? 이것이 필연한 일입니다. 자기가 비록  못났을지라도 자기 있는 대로 이웃에게 양식이 되도록 하려고 양식을 줄라고  애를 쓰고 이 사람을 다만 얼마라도 세상으로 끌어내리는 일이나 그 믿음이  허약하게 되는 것이나 소망이 흔들리게 하는 것이나 하늘나라의 욕망이나  소망이나 동정이나 이런 이것을 주지 못하고 이것을 주면 양식 주는 것인데. 이걸  주지 못하고 그들을 상해하려 하는 이것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한사람 한사람을  접해야 되지 이 생각 없이 그냥 접한 것도 참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가까웠어.

무화과비유는 유대인들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합니다. 제자들이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이때이니까 삼백 년 동안이나 이스라엘  회복을 못하고 있는데 예수님 오시니까 아마 이스라엘 회복될란갑다. 물으니까  이것은 너희들이 알 것이 아니니라.

성령이 임하면 너희들이 할 일이 있다. 무화과나무가 가지가 연하고 잎이  나거들랑 여름이 가까운 줄 알아라. 이런 징조를 보거든 뭐 무화과나무 보고서  무슨 징조라 말이요. 해마다 그런 것인데 이것이 유대인들 이스라엘백성들을  상징해서 말씀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회복이 되거든 주님이 문 앞에 이른 줄 알아라 이스라엘이 이천 근  삼백여 년을 나라 잃고 있다가 이천 근 삼백여 년 만에 저 지난번에 독립을 안  했습니까? 재림이 가까웠습니다.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한다는 이것만 들어 사람들이 또  미혹을 받고 있는데 그 날과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한다는 것은 언젠지  모르니까 한날을 있어야 된다. 이 말이 무슨 말씀이요. 그 날과 그 시를 모른다  그 말은 하루에 여유도 두지 말라 그 말이요. 한시간의 여유도 두지 말라 그  말이요. 하루의 여유도 두지 말라 한시간의 여유도 두지 말라 아 오늘은 안 오고  내일 올 거다 오늘이야 안 오겠지 모르니까 오늘 올지 모른다 말이요.

오늘 하루도 그 사이에 간격을 두지 말라 말이요. 설마 이 시간에야 안 오겠지 이  시간에 올지 모르기 때문에 한시간도 간격을 두지 말라 말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깨서 준비해야 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징조로는 안다 그랬어  징조를 보면 안다 이랬어 이런걸 보거든 주님이 문 앞에 이른 것을 네가 알아라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역사가들이 지금은 82년이지만은 그 역사가들이 다시 대조할 때에 사  년이 틀려서 지금 86년이라 이래 말하는데 또 뭐 4년인가 틀려 가지고 지금은  90년이라 이랍니다. 이제 그 역사 그 역사가 지금 대조해서 발명한 것이 그것이  거의 신빙을 가지고 있답니다. 인정하는데 이것까지 이렇게 되어 가지고 있으니까  뜯어 고치려고 하면 힘이 드니까 그대로 하자 실상은 지금 일천 구백 구십  년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재림이 만일 예수님 이천년동안이나 그걸 우리가 딱 말하면 고  마귀라는 놈이 이천 년이라 하면 날짜 말하는 것 보니까 이단이다 딱 정죄해  버립니다. 이천 년에 온다 오신다는 말이 아니고 이천 년이 이천 년 그때쯤이  안되겠느냐 사람들이 짐작을 한다면 요 말도 입고 못 내게 해요. 이러니까  예수님의 재림이다 말도 못하게 해 말을 못하게 해.

창조 이천 년에 노아 홍수 심판이 왔고 노아 홍수 후 이천 년 되는 때에  예수님이 초림하셨고 나머지 이천 년이 아니겠나 이천 년인지 뭐 똑 그런 함부로  정죄 하는 게 겁이 나서 이천 년인지 삼천 년인지 모르지만 주님이 엿새 동안에  만물을 창조하시고 이레 되는 그 날이 안식년입니다. 안식일이요. 창세 육천 년이  지난 지 후 예수님의 재림으로 영원한 안식이 시작되지 않느냐 하는 것을 말은  못해도 사람들이 모든 짐작을 보아서 짐작은 하고 있습니다.

내가 예수님이 이천 년 되는 그 해에 주님이 재림하신다 고 말은 아니요. 잘못  듣고 가서 정죄하지 말라 그 말이요. 내가 겁이나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그래 안 해도 이단이라 해 가지고 이 복음을 듣지 못하게 해  세상주의만 잘 들으라 하고 만일 가정해서 이천 년이라면 몇 해 남았습니까? 몇  해 남았소. 십 년 십 년 그럴는지도 모릅니다. 그럴는지도 모릅니다. 이종교가들이  모든 이종교가들이 그들도 인간은 영물이기 때문에 영이 죽었지만 영의 모든 게  있기 때문에 그들도 말하기를 예수 이천 년이면 세상은 끝난다. 그 사람들은 또  이천 년이라고 똑똑히 말해 예수 믿는 사람 요 성구 때문에 그 말못해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한다" 그 말은 하루도 여유 두어서는 안 된다. 한시간이라도 여유  두어서는 안 된다. 이날인지 이 시간인지 모르기 때문에 이날 이 시간 주님  맞이할 준비 후회된 것이면 다 그거는 정리하고 내가 하고싶은 것은 다하고 뒤로  미루지 말아라 다음시간으로 미루지 마라 이 시간 다음시간은 네 시간이  아니라고 계산해야되지 네 거라고 계산하면 안 된다.

이렇게 지금 긴박하고 참 눈을 뜨고 세상은 평화주의를 화평 주의를 이렇게  주장하고 있지마는 여러분들 주장하고 있지마는 껍데기 속에서도 속이려고  가루고 있지 속에는 전부 저걸 죽이야 내가 살고 내가 저것을 점령해야 되지  다른 사람의 행복과 평강을 진정 고속에 영광 원하는 것은 기독교뿐입니다.

없습니다.

도덕면으로나 정치면으로나 사상면으로나 과학면으로나 모든 면을 다 볼 때에  예수님의 재림이 안 와도 세상은 필연적으로 얼마 유지되지는 못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이렇게 악독하고 악독하더라도 요렇큼 예민하고 요렇큼 날카롭고 요렇큼  명철해 가지고 악만 자라가고 무기가 없으면 주먹가지고 때려봤자 그 여럿이  때려야 죽을 것 아닙니까? 이렇지만은 이렇게 악독이 자라 가는데 날카로운  무기를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땅 눌리면 너 죽고 나죽자 하기만 하면 딱  눌리기만 하면 다 전멸이라 다 끝나.

이러기 때문에 강대국이 이런 신발견의 이 핵을 가진 것은 겁 안 나지만  약소국이 가진 것을 제일 겁이 나가지고 강대국들이 가지지 못하게 했습니다. 왜  도마 위에 오른 고기와 같으니까 더 죽여봐야 나죽고 너 죽지 막다른 약소국이  핵 가진 것이 이것이 제일 겁이나 강대국은 모든 게 영원히 좋아지니까 죽기가  두렵고 하니까 좀 잘살자 남한테 누르고 사니까 재미가 있지마는 약소국은 절  눌려 가지고 앞지르니까 눌려봐라 버튼만 눌려라 너희가 눌리나 죽자 이러니까  약소국이 핵 가진 것을 제일 겁을 내고 있습니다.

뭘 가지고 홍수 멸망을 피하려고 하고있습니까? 어리석은 소리하지 마십시오.

어디로 갑니까? 너희들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을 떠나 애굽으로 가면은 내가  애굽의 재앙을 가지고 먼저 가서 너희 오도록 기다리겠다고 했습니다. 성경에  어디로 갈 것이요. 이는 하나의 우리에게 거울로 주시는 형식계시입니다.

오늘의 하나님의 말씀대로 또박또박 하는 것이 오늘에는 필요가 없어. 인간의  것이 다 허사가 될 때 그때가 필요하지 노아 방주 만드는 거와 같습니다. 오늘의  말씀대로 하는 것이 돈이 나오요 뭐이 나오요. 말씀대로 하는 것이 항상 고난  되고 십자가의 도인데 죽는 것뿐인데 우리 할 일은 죽는 일만 우리 할 일이요.

주의 말씀대로 순종함으로 내가 낮아지는 것 순종함으로 희생되어지는 것  순종함으로 손해보는 것 순종함으로 주는 것 순종함으로 빼앗기는 것 순종함으로  고생 당하는 것 우리는 십자가에 죽는 것이 우리 할 일이요. 부활은 당신이  시킵니다.

바울이 왜 십자가 이런 길을 갔는가 내가 의뢰하는 자를 내가 알고 내가 그분의  어려워서 하는데 내가 의뢰하는 자 안다. 내가 의뢰하는 그분을 안다. 그분이  신실하다. 불변하다. 영원히 주재자다. 주권자시다.

그런데 내가 그분을 의뢰해서 십자가의 미련한 길을 걷는다. 부활이 없으면 인간  이하의 우리가 제일 불쌍한 인간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에게 의탁한 것은 그  날까지 잘 보존해서 지켜줄 것을 확신한다.

이러기 때문에 미련한 것 같으나 지혜로운 자다 말씀을 했습니다. 어리석지  맙시다. 자기 꾀대로 노아 홍수 때에 홍수 밑에 들어간 그 모든 문인 과학자  예술가 정치가 굉장한 사람들 거게 네피림 다 들었소. 거 가면 네피림이라는 것은  유명한 사람이라 유명한 사람 다 들었지만 홍수 오니까 그게 소용이 없어.

미련하고 어리석고 조롱받았지마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한 조각 두 조각 시간  시간이 붙여 들어감으로 그것 만이면 필요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구원의  방주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잠시후면 참 부자를 볼 것입니다. 잠시후면 참으로 부자를 볼 것이요. 하나님의  모든 것을 상속으로 딱 넘겨줘서 하늘과 땅에 있는 것이 그의 것이 되어 그를  바라보고 그가 통치하고 그에게 시험하는 시은자가 되어지는 외모를 중하게  여기시지 안 해요. 외모는 세상사람들이 가지고 사는 것이 외모요. 세상을 떠날  때 다 빼앗기는 그것이 다 외모요. 그거는 하나에 평가하지 안하고 그거 없어도  좋아. 용모 없어도 좋고 학벌 없어도 좋고 지위 재산 없어도 좋아. 아무것도 능력  없어도 좋아. 늙어 빠져도 좋아. 아무 것도 없어도 좋아. 다만 믿음 하나만  됩니다.

자기가 그리스도의 것만 되면 모든 것은 그의 것 되는 요런 비결 요것이 인간의  생명과 성공과 행복의 바로 지름길입니다. 바로 첩경이야 바로 족 곧은길이요.

얼마나 빠릅니까? 그게 그리 쉽습니까? 우주와 영계를 자기 것 만드는 것이  그렇게 멀지 않아요. 어쩌나 아주 측근에 왔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원수는 자기요.

원수는 자기. 주관 사욕 자율 원수는 자기입니다. 바울은 이스라엘동안 내가 그  허공을 치는 거와 같이 이렇게 내가 싸움을 싸우지 않는다. 내 싸움의 노선을  단단히 보고서 원수로 더불어 싸운다. 원수가 누구냐 내가 원수이기 때문에 나를  쳐 복종시키는 이것이 나의 싸움이다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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