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09 20:40
영론-인론
1986. 12. 5. 밤 (금)
본문:갈라디아서 5장 2절∼26절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거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너희가 달음질을 잘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치 않게 하더냐 그 권면이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케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하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핍박을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거치는 것이 그쳤으리니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이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할례받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가 헛것이요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이 끊어진다 하는 그 말씀은 무슨 말씀인고 하니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않다” 그러면 율법 아래 있다, 은혜 아래 있다.
믿는 사람들이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도 있고 은혜 아래에 있는 사람도 있고 두 종류가 있습니다.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지켜야 하는 사람으로 있는 것입니다. 또 그 율법에 하나라도 범했으면 그는 범죄자로서 죄의 값에 사망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율법을 행함으로 의를 얻은 자는 하나도 없다” 그렇게 갈라디아서에 많이 말했습니다. 이 갈라디아서의 중요성은 그겁니다. “율법을 행함으로는 의인이 하나도 없다. 다만 사람이 믿음으로만 의인이 될 수 있다.” 믿음으로만 의인이 될 수 있다 그말은 예수님이 우리 대신 사활하심으로 일곱 가지 대속을 베푸신 이 대속을 자기 것으로 믿는 그 사람만 의인될 수 있고 그외에는 의인되는 길이 없다 그말입니다.
믿음으로만 의인될 수 있다 하는 그말이나 또 은혜 아래에서만 의인될 수 있다는 말이나 꼭 같은 말입니다. 은혜 아래에 있다는 것은 자기가 행하지 안했는데 예수님이 대신 이 사활의 역사를 베푸신 이것을 우리 대신 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공으로 주시는, 이 공으로 주시는 것을 자기 것 삼는 그 은혜 아래에 있는 사람은 의인으로 인정함을 받을 수가 있고, 이 예수님의 대속을 자기는 상관하지 안하고 자기가 하나님의 그 모든 법도를 지켜 행함으로 의를 받을라고 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대속은 자기에게 상관이 없고 은혜 아래에 있는 사람은 예수님의 대속을 자기 것 삼고 하는 그것을 분간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제일 중요한 것이 어떤 것이 제일 중요한고 하니 예수님의 사활의, 예수님이 죽으시고 살아나신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이 자기 것인 것을 믿는 이것이 중요하고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이 자기 것 되었으니 예수님이 사활하심으로 그 설정된 그 공로를 나에게 줘서 내것 삼았기 때문에 그 공로를 입은 나는 이제 예수님의 것이 되는 것, 예수님이 내 대신 모든 거 해서 죽기까지 하셨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죽은 것이요 죽으심으로 설정해 놓은 일곱 가지 공로를 내것 삼아서 내것 됐으니까 나는 예수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 사활의 대속을 자기 것 삼는 이 사실을 알고 이 사실을 자기가 인정하는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면 그 믿음을 가지는 것은 순전히 공짜배기로 가지기 때문에 은혜 아래에 있는 사람이라, 은혜로 가진 사람이라. 그러나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자기 것 삼는 이것으로써만 인생이 일곱 가지, 하나님의 심판에서 정죄받은 이 죄에서 자기는 해방받을 수 있고, 또 이 사망에서 해방받을 수 있고, 마귀에게서 해방받을 수가 있고, 또 예수님의 대신 행하심을 믿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안한 것이 하나님의 율법을 다 이행한 하나님의 의를 자기 것으로 가질 수가 있고, 또 하나님으로 더불어 원수된 것이 완전한 화친을 가질 수가 있고, 이래서 이제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이 다섯 가지가 자기의 공로가 된 사람은 예수님이 자기 대신 이 다섯 가지를 행했지마는 다섯 가지 행한 것을 자기 것이 됐으니까 이 다섯 가지 이 공로를 자기 것, 믿음으로 자기 것 삼은 사람은 죄도 상관하지 못하고, 사망도 상관하지 못하고, 악령도 상관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심판도 상관하지 못하고, 하나님과 이 화친된 것도 아무도 방해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대신 죽으심으로 설정해 놓으신 이 다섯 가지 공로가 우리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죽으심은 두 가지 죽으심인데 하나는 우리의 범죄의 형을 받아서 죽으셨고 하나는 또 우리 대신 하나님의 율법을 행하고 우리 대신 하나님과 화친하는 것과 하나님의 율법을 이행하는 일을 이 일을 하시는데 악령은 이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해 가지고서 우리 대신 예수님이 하나님 율법 지키는 것을 못 지키고 실수하도록 하고 또 하나님으로 더불어 원수된 것을 화친하는 이 화친을 삐끌트려 가지고서 화친되지 못하도록 할라고 예수님을 꼬우다가 안 되니까 무력을 가지고서 예수님을 자꾸 이렇게 고문과 고형하다가서 예수님은 고문과 고형을 해도 하나님의 이 완전 입법을 지키는 것이나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한 이 생애를 양보하지 안하고 버리지 안하고 화친과 지키는 이 생활을 함으로써 생명이 끝났습니다.
그러면 죽을 때까지 이 두 가지를 하는 주님으로 죽으셨기 때문에 주님은 이 두 가지를 완전히 이행자가 되어졌고 이행하지 못하게 할라고 방해하던 악령은 다시 더 예수님으로 이 두 가지를 행하지 못하게 할 수 있는 그런 방편이 없어져 버렸고 그런 아무런 지금 그런 길이 없어졌기 때문에 완전히 사탄은 패전했고 주님은 승리한 것입니다.
주님이 이 두 가지 죽으심으로써 우리에게 이 해방의 자유를 주셨고 하나님의 의를 주셨고 또 하나님으로 더불어 완전한 화친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이 자유 준 그것이 한 말로 말하면 해방하고 자유 주셨는데 해방을 몇 가지에게서 해방했느냐 하면 세 가지에게서 해방을 했습니다. 죄에게서 해방하니까 사망에서 해방이 되고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니까 마귀에게서 해방이 됐습니다.
이래서,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다섯 가지 우리를 대속하신 이 대속을 믿음으로, 예수님이 나를 주시기 위해서 내 대신 했기 때문에 다섯 가지 이 설정된 것은 자기 것으로 믿는, 자기 것을 삼은 것을 깨닫고 자기 것으로 믿는 그것은 은혜 아래 있는 사람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이 다섯 가지 공로로 우리를 자유와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화친을 주셨지마는 화친된 자로 사는 생활과 또 사는 기능과 또 자유하는 자로 사는 기능과 하나님의 의를 가진 의인으로 사는 그 기능은 이것은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이것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다시 인성을 입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셔 가지고 예수님이 이제 신인양성일위로 가지고, 신성만 가지고는 하나님에게 복종할 아무 의의가 없습니다. 없기 때문에 인성을 가진 신인양성일위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복종할 수가 있고 또 우리 대신 복종할 수가 있습니다.
이래서 신인양성일위로 하나님을 향하여 영감과 진리대로의 이 순종 생활 이 생활로서 영생하는 그 영생을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당신이 이렇게 하나님을 향한 영감과 진리대로의 온전한 행위인 이 영생을 대신 했습니다. 대신 하셔 가지고서 대신 하신 이 영생의 생애를 우리에게 주셔서 이것도 공으로 은혜로 받았습니다.
우리에게 주시고, 온전한 이 일곱 가지를 우리에게 주시니까 일곱 가지를 당신이 내 대신 해 가지고서 이것을 주셨기 때문에 나는 이제는 예수님의 것이 됐습니다.
예수님이 내 대신 전부 다 생애를 다 기울여 가지고서 나 대신 한 그것을 나에게 주셨기 때문에 그걸 받은 나는 이제 주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것을 가리켜 성경에서 “피로 값주고 샀다” 또 “하나님의 종이라” “이는 값에 팔린 주의 것이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그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요것은 좀 아주 깨닫기가 어렵고 믿기가 어렵습니다. 어려운데 그러기 때문에 지금 이제까지 믿는 사람들이 요 깊은 속에서 신앙을 간추려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그 구원이 지금 많이 의문스럽습니다.
히브리서에 보면은 “믿음에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온전한 믿음 곧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완전히 자기 것을 삼지 못하고 껍데기로 믿는다는 이런 말만 가지고서 그 실상은 이루어지지 않는 그 외식이 되는 데에서 이 지극히 큰 능력이 와 가지고 역사하지를 못하고 실상을 믿을 때에는 지극히 큰 능력이 와서 역사합니다.
이래서,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다는 그 말씀은 예수님의 이 사활의 대속을 자기 것 삼은 자는 그자는 영생자요, 그자는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 이행자요, 하나님과 완전 화친된 자요, 죄와 마귀와 사망에 대해서 완전히 자유한 자라. 그래 이자는 그는 뭐 능치 못할 것이 없습니다. 그는 완전자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자기 것 삼는 것으로만 자기가 의인 될 수 있지 율법을 제가 행할라고 하면은 다 정죄받아 가지고서 멸망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사활의 대속으로서 일곱 가지 대속한 것을 자기 것 삼은 사람은 이 일곱 가지 완전, 일곱 가지 대속은 죄에서 자유, 사망에서 자유, 마귀에게서 자유, 또 하나님의 율법에서 완전 이행의 자유, 하나님과 완전 친밀자, 또 하나님을 향하여서 영감과 진리대로의 완전 생활하는 영생하는 자, 요 일곱 가지를 가진 자기가 되어 있을 때에는 요 일곱 가지의 그 죄가 와 가지고서 해하지를 못합니다. 사망이 해하지를 못하고, 죄가, 마귀가, 하나님의 공심판이, 하나님과 불목의 그 모든 해독이 와 가지고서 해하지를 못합니다.
이래서, 예수님의 일곱 가지 대속으로 이 대속을 받아 자기는 일곱 가지 대속으로 인해서 자기는 완전한 자입니다, 완전한 자. 온전한 자. 털끝만치도 흠이 없는 완전한 자입니다. 이 완전한 자가 자기는 됐고 완전한 자 자기는 예수님의 것이 됐습니다. 예수님의 것이 됐습니다.
예수님의 것이 됐는데 예수님의 것 된 그것이 범죄했습니다. 예수님의 것 된 것이 그것이 범죄한 것은 자기는 예수님의 대속을 입고서 대속을 입은 자기기 때문에 그런 거와 상관이 없고 예수님의 것 된 것이 그것이 범죄했습니다.
예수님의 것 된 것이 범죄할 때에 예수님은 완전자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것 된 것은 범죄하지를 안합니다. 요거 잘 알아들으십시오. 범죄하지를 못합니다.
예수님의 것 된 것은 범죄하지를 못합니다.
범죄하지를 못하는데 요 범죄를 했습니다. 범죄를 했습니다. 범죄한 그것은 로마서 7장 20절에 말하기를 “원치 안하는 것을 행하는 것은 내가 행한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있는 죄가 행했다” 그러니까 이 몸의 습성 가운데에 들어 있는 죄 그놈이 들어서 예수님의 것이 된 자에게 때를 묻혔습니다. 예수님의 것이 된 자에게 때를 묻혀서 이 때라는 이 죄, 이 죄는 속에 배지는 아니했고 껍데기 묻어 가지고 있습니다. 묻어 가지고 있을 때에 그거는 그 죄라는 것은 다 전부 예수님이 대형을 한 죄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으로 씻으면 즉시 깨끗이 씻어집니다.
그런고로 그것을 가리켜서 “원치 안하는 것을 행한 것은 내가 행한 것이 아니라” 그말은, 내가 행한 것이 아니라 그말은 대속을 입고 있는 대속 가진 내가 행한 것도 아니요 또 예수님의 것 된 것도 행한 것이 아니요 이 육체 속에 죄악의 습성 이놈이 들어서 범죄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예수님의 대속에 고하면 깨끗하게 씻어집니다.
이래서, 원치 안하는 것을 행한 것은 내가 행한 것이 아니고 내 속에 있는 죄가 행한 것이라고 그렇게 구별해서 말한 것은 자기가 예수님의 대속을 완전히 입었을 때에 되지 그전에는 안 됩니다.
20절에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죄니라” 죄 이놈이 지금 육체의 습성 속에 들어 가지고서 자꾸 합니다. 육체의 습성 속에, 속으로 속사람으로는 원치 안하고 이라는데 육체 속에 있는 습성 이놈이, 이 습성, 이 습성의 이 악성 악습 말이요, 악습 이놈이 들어 가지고서 고기덩어리를 잡아 끌고 이래 가지고서 금방 해 놓고 후회되는 놈의 일을 하게 되는 것은 그놈이 하는 것입니다. “원치 안하는 것을 하는 것은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절에,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요거는 대속받은 자기를 말하고 예수님의 것 된 그 자기를 말합니다.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악이 함께 있는” 악이 어데 있는고 하니 그 악습 속에 들어 있습니다. 이 제일 악습 요놈을 죽이기가 힘듭니다. 그러기 때문에 일생 우리 싸움은 악습 그놈을 죽이기를 지금 힘쓰는 것입니다.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속사람으로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한다 말은 대속받은 사람은 대속받은 그것을 좋아하고 이제는 죄와 적이 되었고, 마귀와 적이 되었고, 사망과 적이 되었고, 자율과 주관과 적이 되었고, 영감과 진리가 자기 것이고, 자기 본능이고, 자기 주장이고, 하나님과 이 화평된 것이 자기고,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한 의가 자기인데,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거, 이거는 대속받은 사람과 또 예수님의 것이 된 사람은 “속사람으로는 하나님 법을 즐거워하되”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 한 다른 법이” “내 지체 속에 한 다른 법이” 지체 속에 다른 법이라 말은 지체 속에 이 악습된 법이 있다 말이오, 악습.
악한 습성으로 자꾸 악을 행동해서 습관이 들었어. 이래 놓으니까 술먹는 그놈도 습성이요, 습관이 들어서 그래 하는 것이요, 노름 하는 것도 악습이요, 일종의 악습이요, 그 음행하는 것도 악습이요 그런 게 다 악습이라 말이오. 악습 그놈이 들어 가지고서 자꾸,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절에 “내 지체 속에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마음으로는 안 할라 하는데 이 육체 속에 이 습성이 들어서, 버르징이가 들어 가지고 그 습성 그놈이 강해 가지고서 내 마음으로는 ‘안 해야 되겠다’ 이라는데 그놈에게 또 싸워 또 꼬임받고 또 져 가지고서 이제 금방 후회할 걸 또 한다 그말이오.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보니까 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지키고자 하는데 이 지체 속에 악한 습성 그놈이 자꾸 그 나를 끌고 이 고기덩어리가 자꾸 악습 그걸로 가지고서, 악한 습성, 더러운 버르징이 그것이 자꾸 들어 가지고서 그렇게 하도록 자꾸 이래 강제하고 이래 하니까 이 마음 이놈이 어리석어서 그놈에게 꼬여 가 가지고서 악습대로 움직여 가는 걸 봅니다.
악습대로 움직여 가니까 이제 하나님의 일곱 가지 대속을 입은 이 사람과 하나님의 것 된 사람은 고기덩어리 이놈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이놈이 차를 몰고 가니까 어짤 수 없다 말이오. 이놈이 자꾸 이래 가니까 지금 그리 끌려가는 거라 말이오.
원치 안하는데 그놈에게 끌려서, 이 고기덩어리 이놈이 말을 안 들으니까 자기로서는 그렇게 일곱 가지 대속을 가지고 살고 싶고 또 하나님의 주님의 것으로 살고 싶은데 원치 안하는 이것을 고기덩어리 악습 요것이 들어 가지고서 자꾸 끌고 가니까 원치 안 하는 데로 끌고 간다 말이오, 원치 안하는 데로. 악습 그놈이 들어서 자꾸, 그 버르징이 나쁜 버르징이 그놈이 들어서 자꾸 원치 안하는 데로 끌고 간다 그말이오.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마음의 법과 싸우는 것은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하고 둘이 싸운다 말이오. 둘이 싸워 가지고 지체 속에 있는 그 죄짓던 법, 죄짓던 습성, 그 죄짓던 버릇, 사기 협잡하던 버릇, 술먹던 버릇, 노름하던 버릇, 또 이 모든 계집질 서방질 하던 이런 더러운 버릇, 또 거짓말하는 버릇, 또 그 모든 혈기내는 버릇, 또 다른 사람에게 자기를 나타낼라 하고 자기 명예나 지위나 권세나 영광이나 그 버릇, 모든 고집 버릇, 모든 혈기 버릇, 이 오기 버릇 이게 다 전부 고기덩어리 이놈 속에 들었기 때문에 이놈이 그 속에 죄가 습성이 많이 들어서 이것만 뽑아 내면은 그 고기덩어리의 기능은 참 온전한 기능이 되어지는데 이 물이 들어 가지고 이런데 원청 이놈 하는 행동이 나쁘니까 김현봉 목사님은 이 고기덩어리는 순전히 죄뭉텅이라 이렇게 말했어. 순전히 죄뭉텅이라.
또 이 육체는 싹스라 이거는 부패성이라, 그 하는 행동을 보니까 그렇다 그말이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은 그 속에 악습이, 악령하고 악성하고 둘이 들어서 고기덩어리를 시켜 가지고 자꾸 처음에는 악한 일을 한 번 하고 두 번 하고, 자기 중심의 일 한 번 하고 두 번 하니까 이것이 버르징이가 돼 가지고 나중에 그만 악습이 강해져 놨다 말이오. 강해져 놓으니까 죽어도 못 합니다. 그래 가지고 어떤 사람은 노름하는 사람이 손가락을 끊어 버려도 노름 안 하고는 못 견딘다 말이오.
어떤 사람은 술먹는 거 나쁜 식습, 먹는 습관, 이것이 있어 가지고서 술로 패가를 하고 다 이 집구석이 망하고 이라니까 이거는 어짤 수 없어 자기 옷단에다가 여게다가 딱 요래 보며 ‘내가 술먹으면 개자식이다’ 지금은 개자식 하는 거 그렇지마는 부모에게 효성, 그때는 한번 말 한 마디 잘못하면 망발예를 했다 말이오. 부모에게 대해서 잘못된 말 한 마디 하면 망발예라고 그때 한턱 내야 됩니다.
이러니까 부모에게 대해서 개자식이라 하는 그런 거는 뭐, 미국 사람들은 지금 하나님에게 버림 당했다 하면 막 사생 결단하요. 그거 제일 큰 욕으로 알지마는 과거에는 부모에게 불효한 것이 제일 큰 욕이기 때문에 이제 ‘내가 술먹으면 개자식이다’ 여기다가 딱 요래 써 붙여 놓고도 또 그래 써 가지고 장 보며 요래 보고 술 안 먹을라고 요라고도 나중에 술을 먹고 노름하는 사람도 그래야 소용이 없다 그말이오. 그거 그렇게 우리 속에, 이 육체 속에 나쁜 습성 그놈이 들어 가지고서 우리를 마구 더럽힙니다.
이래서,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이 지체 속에, “지체 속에” 요걸 똑똑히 구별해야. 이 고기덩어리 지체는 선한 것인데 지체 속에 죄 그놈이 들어 가지고서 그놈이 들어서 지체를 악용을 하니까 그 지체가 죄를 짓는 것이지 지체 그 자체가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그거요.
이런데 모든 사람들이 로마서 7장 23절 요 성구를 연구를 못 했다 말이오. 요 연구를 못 해서 그만 육체 그놈은 죄악 뭉텅이인 줄로만 알았지 육체 속에 죄는 따로 들어 있고 육체의 기능은 따로 들어 있고 서로 분리했으면 분리할 수 있는 것인데 탈색만 되면은 탈색이 되는데 탈색이 안 되니까 빨갛게 보였지 탈색하면 하얗게 된다 그거요. 요걸 구별하지 못해서 육체는 다 죄악으로 또 육체를 다 싹스를 전부 부패성으로 이렇게 봤던 것입니다.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그 보니까 이 마음으로는 안 할라 하는데 이 고기덩어리 속에 악한 습성, 죄의 법이라 하는 건 악한 습성이라 말이오. 악습, 악습이라. 이는 악습이 돼 놔 놓으니까 ‘이 노름하면 안 되는데’ 했는데도 옆에 그만 친구들이 이라니까 하면 안 될 줄 알면서 퍽 끌려서 노름을 하게 된다 말이오.
또 이거는 ‘나는 이제 술 먹으면 개자식이다’ 이래 놓고도 그만 옆에 술을 보면 술먹던 습성이 있어 가지고 마구 못 먹으면 안 먹으면 못 견뎌서 죽을 지경이라서 술을 한 잔만, ‘한 잔만 먹고 말지’ 이래 또 두 잔 먹고 이래 가지고서 자꾸 먹게 된다 말이오. 모든 게 다 그런 것입니다.
이거 돈을 탐하는, 돈을 사랑하고 돈을 탐하는, 돈을 탐하는 욕심이 있는 자는 뭐 ‘하나님 앞에서는 정함이 없는 물질이라. 있다가도 없어지고 돈이 있으면 좋으나 돈 가지고서 화도 만들 수 있고 복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돈 그게 하나님의 축복이라야 되지 뭐 그거 가지고 되나?’ 이래도 돈을 탐하던 요놈은 습성이 속에 들어 가지고서 돈만 보면 마음이 우쭐해진다 말이오.
돈만 보면 마음이 우쭐해져 가지고서 그만 자기 무슨 사람하고 교제하는 가운데서, 요게 돈이 지금 제 역량대로 작은 사람은 몇십만 원일 것이고 큰 사람은 항상 많이 만져 봐야 백만 원밖에는 못 만지는 사람에게 천만 원이나 오면은 그만 마음이 뒤비져 가지고서 그만 돈 욕심 내나 그것이 월쩍해 가지고서 탐심으로 물질적인 죄를 짓고, 또 식물적인 죄를 짓고, 감정적인 죄를 짓고, 흥분적인 죄를 짓고, 명예적인 죄를 짓고, 모든 정욕적인 죄 온갖 죄를 짓는다 말이오.
그러면 이 자기 속에 싸움이 있어서 이 일을 안 할라고 하지마는 고기덩어리 이놈의, 고기덩어리의 습성 이놈이 좋아서 그만 그리 죄하고 한덩어리가 돼 가지고 이래 하니까 이 지금 이 차에 납치돼 가지고 가는 사람이 차에 집어 넣어 놓고 그만 달아나니까, 달아나고 문을 잠궈 놓고 딱 거석해 놓으니까 가기 싫지마는 막 빼고날을 쳐야 내려오지도 못하고 끌고 가는 거와 같은 그런 그 현상을 자기가 느낀다 그말이오. 마음이 끌려가고 이래 가지고서 이래 하는 것을 그거 느껴져.
인제 그게 엔간이 살아났을 때에는 느끼고 처음에 그거 독에 깊이 파묻혔을 때에는 그것도 느끼지 못해. 그때는 그만 죽을둥 살둥 못 하고 ‘이거 안 하면 안 된다’ 이래 가지고서 온갖 죄를 죽자 살자 하고 그래서 이렇게 지어도 자기가 정신없이 고기덩어리 이놈이 막 끌고 뭐 도망을 치니까 가지마는 자기 속에는 ‘이거 아닌데’ 이라고 또 몸에 소름이 끼지고 이거 또 양심에 가책이 되고 이래 ‘아닌데’ 하면서도 끌려간다 말이오. 그것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사망의 몸에서” 이 고기덩어리 속에 이 사망의 독이 들어 가지고 있는데, 죄악의 독이 들어 가지고 있는데, 죄악의 독, 이 사람의 속에 사망의 독이 들어, “사망의 몸에서” 몸이 사망이 아니고 몸 속에 사망이 들어 있다 말이오.
사망이 들어 있는 것도 사람마다 달라요. 어떤 사람은 그 공명심이 있어 가지고서 곧 죽었다가 살아나면은 ‘내가 아무래도 지금 또 이 시험 준비를 해 가지고서’ 그뭐 고시 시험에 행정고시나 사법고시나 그런 거 시험 쳐 봤자 찍해야 그게 크게 올라가는 것도 아닌데, 그거 내가 어떤 사람 보니까 폐병이 들어 다 죽어가는데도 그때 명치대학에 공부를 했었는데 이거 다 죽어가는 걸 살려 놓으면은 겨우 살아. ‘인제 내가 공부 안 합니다. 공부 안 하고 내가 예수님만 믿을랍니다.’ 이래 가지고 살려 놓으면은 겨우 며칠 살아 놓으면은 또 보따리 배낭 짊어지고 니꾸사구 짊어지고서 갑니다. 나를 모르게 피해 가요. 피해 가도 하나님이 간섭을 하셨어요. 피해 가다가 저 가다가서 병이 나 가지고서 타지도 못 하고 도로 기어 올라와.
그런 꼴 몇 번이나, 그렇츰 그거 이 공부해 가지고 달성해 보겠다 하는 그 욕심이라 하는 게 그렇게 있어. 자기를 벌써, 신앙 비판해서 아닌 줄 알면서도 자꾸 끌려가는 그것은 그게 막바로 선악과입니다. 그것 먹으면 그만 자기는 그만 전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일곱 가지 대속으로 말미암아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일곱 가지 대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고기덩어리의 이 습성으로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희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그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체의 모양으로 보내사 육체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모든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을 좇는 자라 이래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참 알라고 달라드는 사람은 알기가 쉽습니다. 알라고 달라드는 사람은 알기가 쉽고 또 달라들어서 행하는 사람은 그만 저절로 압니다. 중생된 사람은 신구약 성경 가지고 자기가 행할라고 하면은 아무 학자에게 배울 필요가 없소.
성경 가지고 아는 대로 실행하고 아는 대로 실행하면 요것이 제일 진짜로 성경을 바로 깨달은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늘 사람들이 자꾸 이렇게 주석이니 뭐이니 이래 내놓은 이것들은, 지금 저도 이거 설교록을 거석하지마는 설교록 이것이 참 게을하고 이런 느린 자들에게 그게 도움이 된다고 해 가지고 자꾸 이렇게 원해서 이래 하는 것이지 실상 진짜로 하나님을 따라서 하나님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은 이런 것이 다 장애물입니다. 주석 그런 게 장애물이오.
저는 그래서 주석을 그런 것을 보지 안하고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행하는 대로, 행하면서 자연스럽게 깨달아지는 그대로 깨달아져 가지고서 비로소 이 교계에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저 산골에 있으면서 그저 성경 보고 실행하고 실행하는 대로 깨닫고 이러니까 내가 깨달은 것과 이 세상에 깨달은 것이 정반대라.
이래 가지고서 모두 다 반대니까 그뭐 이상스러운 말을 한다고 해 가지고서, 그분들은 다 지위가 있지, 권세가 있지, 학위가 있지 이래 놓으니까 마구 때려 누르니까 이거는 꼼짝도 못 한다 말이오.
이러나 인제 이래 보면은 자꾸 그래도 틀린 거니까 말을 하면은 나중에 가서, 이단이 지금 해방 많이 됐어요. 그 이단이 여러 뭐 수십 가지가 이단이었었는데 지금은 이제 이단이 거의 없고, 거의 없고 뭐 마지막으로 ‘중생된 영이 범죄하지 않는다는 그거는 이단이라’ 이렇게 말했지마는 그것도 지금 벌써 반고개가 넘어갔습니다. 지금 이것이 옳다 하는 사람이 아마 수효 가운데에 반 수효가 넘었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누가 담대히 그게 이단이라 그라고 나서는 사람은 지금 없습니다.
또 그거 이단이라고 논문 쓰겠다고 미국 가 가지고서 장담해서 논문 쓰겠다고 미국 건너간 사람 많았지만 벌써 간 지가 이십 년이고 뭐 거의 다 돼 가는데 내가 소식을 들어 보니까 논문은 뭐 쓰고 어짜고 할 것도 없이 거게 가서 그만 잦아지고 말고, 가 보니까 그 논문 쓸라고 보니까 거기 가서도 아마 해결이 안 되고 하기 때문에 그렇고 또 그분들도 이제는 ‘중생된 영은 과연 범죄하지 않는다’ 인제 이걸 깨달아져서 안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깨달아져도 또 안 하는 것은 고집통이 있어서, 자기가 아니라고 하던 것은 냈들바람으로 꼭 굴복하기 싫은 그게 있거든요. 그게 뭐이냐 하면은 옛날 서기관과 바리새 교인들과 제사장들이 예수님이 오셔서 가르치는 것이 옳고 저거가 틀린 줄 알았지마는 명예가 아까워서 부인하다가 마지막에는 예수님이 부활하시니까 생명이 아까워서 부인하다가 마지막에 이제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가 가지고는 ‘아이고 한번 아무래도 죽을 거, 그때 죽어도 할 걸.’ 이 후회가 되지만 소용이 있습니까? 그거 모앙으로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변론하지 말아라” 하는 것은 그것을 방어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자꾸 그게 틀렸다 이게 맞다 이라면은 갑론을박 하면은 그 사람들이 금방 아니라고 하던 사람이 겸손히 ‘내가 틀렸습니다’ 자복하고 돌아오기가 어렵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그런 걸 그만 가만히 냅두면 저절로 돼져요. 그거는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실 것 같애.
암말도 말고 가만히 두면, 논문 쓸라 하는 것을 가만히 둬 뒀어요. 둬 두니까 이제 그 모든 것이 순조롭게 이와같이 돼져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 내가 오늘도 물었어. 물으니까 지금 어느 신학교에서 유명한, 우리 나라의 유력한 교수하고 또 뭐 화란에서 공부하고 온 어떤 또 신학박사 교수하고 서로 그라는데 ‘중생시킨 성령과 성령의 세례 받는 그 성령의 역사와 그 역사가 다르다, 같다 다르다.’ 이래 가지고서 논쟁이 나서 뭐 야단이 났답니다. 그 좋은 문제가 났습니다. 좋은 문제가 났어.
이제 자꾸 인제 그분들이 거게 대해서 착안을 하고 거게 대해서 눈을 뜨고 연구를 할라 하면은 나는 앉은뱅이 모양으로 기어가는데 그분들은 날아갈 수 있도록 모든 선천 후천의 자격이 나보다는 뭐 훨씬 뛰어난 사람들입니다.
이러니까 이제 영에 대해서 좀 착안을 해 가지고 연구하게 되면은 나보다 깨달은 것이 십 배 앞설 것이기 때문에 내가 그 소식을 듣고 참 기쁘고 즐겁습니다.
왜? 이 교회들이 도무지 성령에 대해서나 사람의 영에 대해서 여게 대해서 생각도 안 가지고 그저 ‘과거에 선배들이 이래 믿었으니까 그대로 믿자’ 이래 가지고 그것만 자꾸 보수해 나가지 그 성령이라는 영, 악령이라는 영, 사람의 영이라는 영 이 삼 영에 대해서 연구심이 전연히 없어 놓으니까 여게 대해서, 이게 기독교의 뿌럭지인데, 이게 기독교의 뿌럭지인데 이 뿌럭지가 없어 놓으니까 아무리 말해 봤자 뿌리 없는 화초는 해 돋으면 말라 버립니다. 뿌리 있는 화초는 해가 돋아도 해가 돋으면 더 자라는 것입니다.
이래 놓으니까 이거 짜다라 믿는 척하지만 환난만 오면 환난 바람만 불면 싹 말라 버린다 말이오. 왜정 말년에 신사참배의 그 뜨거운 바람이 부니까 다 말라 버리고 그때 뿌리 붙어 있는 것만 남아 있지 뿌리 없는 건 다 말랐다 말이오. 6 5 때도 다 그랬소.
앞으로 공산주의가 오면 이 공산주의 바람은 더 독하고 뜨거운 바람인데 와 가지고 독침을 쑤셔대고 이래 뭐 꺼꾸로 이래 해 버리면 다 그만 예수 믿는다는 이 꽃이 다 떨어져 버리고 그때 생생하게 그래 청청하게 아름답게 꽃을 피우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란지? 저 먼저 내가 물으며 ‘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죽고 싶은 사람, 순교할 사람 손 드십시오.’ 하니까 전부 다 들어. 순교하고 싶은 사람 하니까 다 들어요.
순교하는 것은 순생이 먼저입니다. 주를 위해서 죽는 생활을 해야 이제 주를 위해서 마지막에 죽는 생활 순교가 돼지는 것이지 순생도 못하고 자기 감정만 조금 건드려도 마구 일어납니다. 조그매 감정에만 좀 부딪혀도 마구 죽자 살자 하고 이를 갈아붙이고 달라드는데 뭐 순교하겠습니까? 이 뿌리가 없어 그렇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뿌리는 영의 연구를 못 해 그렇습니다. 이러니까 영의 연구를 지금 하기 시작했다 하니까 기쁘고 즐겁다 그말이오.
중생은, 중생은 근거가 뭐입니까? 중생은 뭣이 중생의 근거입니까? 중생은 뭣으로 중생되지요?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써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 중생의 근거입니다.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 뭐라 했습니까? 그다음 뭐라 했소?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거듭나게 하사” 이랬습니다. “거듭나게 하사” 그러면 예수님의, 중생시키는 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중생이 되는 것인데 중생은 본인이 알게 됩니까 모르게 됩니까? 모르게 됩니까 알게 됩니까? 중생이 본인 모르게 됩니까 중생이 본인 알게 됩니까? 알게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하나도 없고. 이거 참 대신학자요. 그러면 중생은 본인 모르게 중생되는 것으로 믿는 사람들 손 들어 봅시다. 봐, 다 들어. 이거 저 신학박사들도 잘 모르는 것입니다. 이거는 서부교회 교인들은 이거 다 알아. 다 아는데 행함이 없어. 그러기 때문에 이거 앵무새라. 행함이 없어.
성령 세례는 언제 말했습니까? 사도행전 1장에 “너희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허락하심을 기다리라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그러면 그렇게 말한 것이 중생한 자들에게 말했습니까 중생되지 안한 자들에게 말했습니까? 중생 아니한 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그걸 여러분들이 또 배웠는데.
예루살렘을 왜 떠나지 말라 했습니까? 예루살렘에 밥이 없어 떠나지 말라 했습니까 다른 데 좋은 구경 있어 떠나지 말라 했습니까? 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부탁했습니까? 왜 그랬습니까? 저 ○○○집사님, 왜 떠나지 말라 했지? 예? 성령님? 참으로 못 알아듣는다 그말이오. 예루살렘을 왜 떠나지 말라 했어요? 왜 떠나지 말라 했어? 예루살렘 유대 나라의 제일 서울인데 서울 살기 좋은데 왜 예루살렘을 떠나? 예루살렘을 뭣 때문에 떠나는고? 떠나기 때문에 떠나지 말라고 부탁을 했겠지. 뭣 때문에 떠나, 떠나기를? 예수 믿는 사람들 잡아 죽일라 하는 큰 환난이 왔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 다 잡아 죽일라고 지금 막 이렇게 군인들 다 총동원했지, 바리새인들 총동원했지, 유대 교인들 총동원했지, 제사장 서기관들 총동원했지, 예수 믿는 사람 외톨이밤 모양으로 몇만 남아 있지 나머지기는 총동원해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일라고 하니까 그때 그 죽기가 두려워서 예루살렘을 떠나면은 성령 세례 못 받는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려라 그러면 몇 날이 못 되어서 성령 세례를 받으리라” 이라니까 그때 예수님의 이 사활의 대속을 믿는 사람들을 대해서 말씀한 것입니까 안 믿는 사람에게 대해서 성령 세례 받는다고 말했습니까? 누구에게 말했지요? 안 믿는 사람에게 말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의 대속을, 죽으심과 부활하심 사활의 대속을 믿는 사람들에게 이 부탁을 하신 것으로 아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뭐 다 알기는 다 알아. 말은 못 해도 알기는 아는 모양이라. 알면 돼요. 알면 행하면 돼요.
예루살렘은, 그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예루살렘에 있으면서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부정하는 사람들에게는 예루살렘에 있으면 그 사람들에게 박해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예수님의 사활을,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 사활의 대속을 믿지 안하고 사활의 대속을 부인하는 자들에게, 사활의 대속을 부인하는 자들에게 예루살렘에서 박해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사활의 대속을 부인하는 자들에게 박해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부인 안 하는 자들에게는 죽이는 순교의 박해가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확실히 들어요, 들라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것은 예수님의 이 사활의 대속을 부인하지 안하면 다 죽일 터이니까 죽기가 두려워서 ‘내가 그라면 예수님을 안 믿습니다’ 안 믿을라 하면은 그만 박해가 없어질 터인데 안 믿을라 할 수는 없고 이라니까 거기 있으면 이 죽을 지경이면 예수를 내 놔야 될 터이고 이러니까 안 내놓고 딴데로 도망가야 되겠다 싶어서 도망갈 터이니 그리 도망가지 말라 했어요.
그러면 거게 있는 사람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믿는 사람입니까 안 믿는 사람입니까? 믿는 사람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 세례를 기다리라 했소. 그러면 그 사람들 중생된 사람입니까 중생 안 된 사람입니까? 중생된 사람입니까 안 된 사람입니까? 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이게 지금 신학교서 큰 시비가 났어. 알겠어요? 중생된 사람에게 한 게 아니라 중생 안 된 사람에게 말했다, 이러니까 성령 세례의 영감과 또 중생의 영감이 다르다 같다 이랬는데 다르다는 시비 같다는 시비, 시비가 났대요. 시비가 날 만해요.
중생은 본인이 모르게 영감으로 중생되고 중생된 사람이 성령 세례 받는 것은 네가 예수를 믿으니 예수님과 함께 살고 예수님과 함께 죽는 그 일을 할 수 있는, 신앙의 실행 생활할 수 있는 그 역사 영감을 가리켜서 성령 세례 영감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라면 달라요 같아요? 다릅니까 같습니까? 중생시킨 영감과 세례 영감과 같애요 달라요? 같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봐요. 다르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봐요. 이것도 저것도 뭐 아무것도 뭐 어째? 참 암만 가르쳐야 여기 들어 버리고 들어 버리고 하니까 이제 마비가 돼서 들어 버려고 들어 버리고, 처음에 들은 데, 처음에 들을 때는 들어서 조그매라도 쌓여 가지고 있지마는 그만 들어 버리는 그놈의 습관만 자꾸 자라 버리고 들어 가지고 강직 안 해 놓으니까 이제는 들어도 그만 마비가 돼 가지고 소용없지 강직은 안 하지, 어째야 되겠소? 이러니까 환난밖에는 없어. 환난이 되면은 그때사 지금 죽을 지경이라야 되는데 아무래도 환난이 오기는 와야되지 이 강퍅과 이 완고를, 이 망령을 이걸 뭘로 가지고서, 대패침으로 찔러야 되는데 그냥 찔러 안 되겠고 6 5 같은 그런 대패침으로 찔러야 막 죽을 지경이라. 옆에 곧 죽어서 송장이 돼 척척 뻐드러지고 이래야 좀 자극이 오지 그래 안하면 인제 뭐 마비가 돼서 그런 것도 자극도 안 와요.
이런 것을 여러분들이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자, 아침에도 말하다가 말았는데 이래 또 시간 다 갔어. 벌써 사십 분 설교했어요. 했는데, 우리 속에서, 중생된 사람 말입니다. 중생되기 전에는 속에는 인도자가 둘입니까 하나입니까? 중생되기 전에는 인도자가 둘입니까 하나입니까? 하나. 이 반사들이 똑똑히 학생들에게 가르쳐요, 이걸. 하나. 그러면 중생하고 난 다음에는 인도자가 둘입니까 하나입니까? 인도자가 둘.
하나는 육체의 욕심, 육체의 생각. 육체, 하나는 인도자가 육체고 또 하나는 인도자가 성령이고 이런데 육체라 하는 것은 그것은 고기덩어리만을 말하는 것입니까, 고기덩어리, 고기덩어리라면은 내나 심신이 다 육이기 때문에, 자기 마음, 자기 생각, 자기 몸의 모든 기능 이런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육체라 하는 건 사람의 심신만을 가리켜서 육체라고 말합니까 심신 외에 뭐 다른 것이 안에 끼어 가지고 있는 걸 말하는 것입니까? 육체의 생각이라 육체의 소욕이라 하면은 심신, 사람의 마음과 고기덩어리. 심신 이 둘만을 가르칩니까 거게 딴것이 뭐이 합해져 가지고 있는 것을 가르친 것입니까? 심신만을 가르치는 것으로서 아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그러면 심신은 독립성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심신은 독립성을 못 가지기 때문에 그 심신을 말하는 것은 성령이 인도하면 그 심신이 달라지고 성령 떠나면은 그 심신은 악령이 다 사로잡기 마련이지 심신은 독립할 수는 없기 때문에 성령에 붙들리든지 악령에 붙들리든지 둘 중에 하나지 독립은 하지 못한다, 이러니까 성령의 그 인도가 끊어지고 성령의 인도가 없어졌으니까 그 심신은 누가 사로잡고 있습니까? 독립하고 있습니까 누가 사로잡고 있습니까? 혼자 있습니까 둘이 있습니까? 둘이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봐.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 둘이 있어요, 둘. 심신하고 악령하고 둘이 합동했다 그거요.
그러면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하는 것은 이 심신의 생각은 사망이라 말입니까 이제 심신의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심신을 성령이 사로잡지 안하면 악령이 사로잡기 때문에 성령이 사로잡지 안한 그 심신은 악령이 사로잡고 있는고로 악령이 사로잡고 있는 그 심신의 모든 움직임은 사망이라 하는 이 말인 것을 믿습니까? 이 말씀인 것을 믿습니까? 믿어야 돼요. 확실히 믿어야 돼요.
이러니까 이제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은 인도자가 하나뿐인데 육신의 인도뿐입니다.
육신의 인도뿐인 것은 그 심신의 인도입니까 악령의 인도입니까? 심신의 인도인데 왜 악령의 인도라 합니까? 심신은 독립 독존은 할 수 없는 자이기 때문에 성령의 것이 안 될 때에는 악령의 것이 된다 그말입니다. 알겠습니까? 자, 이 물질이라는 것은, 지금 거창 시장에는 가면은 그 소가 아마, 소가 그 시장에 나는 것이 요새는 이거 좀 달라져서 시장이 적은지 몰라도 한 천 몇백 마리 나옵니다. 그 시장에 천 몇백 천 수백 마리가 지금 팔러 나오고 사러 나옵니다. 나는데 그 천 수백 마리 있는 소가 주인 없이 혼자 제 자유로 있을 때에는 혹 하룻 동안이나 한 시간이나 혹 찰나나, 그래 그 찰나 동안에는 그 소가 주인 없이 제가 주인에게 매이지 안하고 제 자유하는, 주인 없이 자유하고 있는 그런 시간이 천 수백 마리가 모였는데 그 소가 자유하는 시간은 하루 몇 시간이나 가집니까? 몇 시간이나 가집니까? 혹 한 시간은 가질 수 있습니까? 혹 십 분은 가질 수 있겠습니까? 십 분은, 짤막한 십 분은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그러면 십 분은 못 가지면 찰나라도 가질 수, 찰나라도 주인 없이 제가 자유할 수 있는, 이것의 소도 아니고 저것의 소도 아니고, 이것의 물건도 아니고 저것의 물건도 아니고 제가 자유할 수 있는 그것이 찰나라는, 찰나라는 짧은 시간 그런 시간은 자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그러면 그만 찰나도 자유하지 못해요? 그러면 찰나도 독립은 못 합니까? 그럴 수 있어요? 어째 이게 느껴져요? 독립 못 합니다. 이 김가 소를 이가 소가 됩니다. 그러면 김가가 이가 소를 살 때는 돈을 탁 주면 말이지, 돈을 탁 주면 돈 주면은 돈 받는 동시에 그 소는 돈 준 사람의 소가 됩니까 제가 자유합니까? 돈 주고 받을 때에 그 찰나라도, 찰나라도 자기가 독립할 수 있습니까 독립은 찰나도 못 하고 이 소에서 벌써 저 사람 주인으로 건너갈 때에는 찰나도 그 사이에 공간이 없이 계속 건너가는 요것을 주인 없이는 찰나도 독립할 수는 없다 하는 요 말이 믿어집니까 안 믿어집니까? 믿어집니까? 믿어지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이 말귀 못 알아들으면 헛일이라. 새벽으로 나오는 사람들은 말귀를 좀 알아듣지, 재독을 자꾸 듣는 사람은 말귀 알아듣지 재독을 안 듣는 사람은 여기 이 아주 유력한 장로 목사들 와도 ‘무슨 말인지 내가 한 마디도 모르겠다.’ 내가 송도에, 신학교 다닐 때에 송도 가서 일주일 동안 집회를 했는데 거게 ○○○ 그때 목사님이 전도사노릇 했었는데 일주일 내 공부하고 난 다음에 나중에 말하기를 ‘조사님 하는 말씀을 알쏭 알쏭한데 한 마디도 알아듣지를 못 하겠습니다’ 한 마디도 모르겠대요. ‘한 마디도 못 알아듣겠습니다' 이라더니마는 환도를 해 가지고서 서울 올라가서 김현봉 목사님에게 삼 년을 배웠어. 삼 년 배우고 난 다음에는 ‘야 그때 백 조사님이 말하던 말이 알쏭알쏭한데 그말과 비슷한 거 같은데 우리 백 조사님을 한번 청해 가지고서 집회를 하자’ 서울에 있는 교역자들이 다 단합을 해 가지고서 저를 청했습니다.
제가 갔어요.
가 가지고서 설교를 하니까 그때 그분들이 말하기를 다 모두 말하기를 ‘이제 우리가 알겠습니다. 그때 송도 와서 말할 때는 한 마디도 못 알아듣겠더니마는 이제는 알아듣겠습니다. 꼭 김현봉 목사님 가르치는 말과 꼭 같이 가르칩니다.’ 이래 말해요. 나는 김현봉 목사님 보지도 못하고 설교도 듣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라.
이라며 그들이 그래 말하기를 그때 말했어요. 말하기를 막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우리가 이제 한국 교회를 살릴 수가 있다. 우리가 한국 교회고 뭐 세계 교회 제일 곧고 바른 유명한 선생님 두 분을 우리가 차지하고 모셔 놨으니 우리가 한국 교회를 살릴 수 있다.’ 그들이 모여 가지고 그렇게 얘기를 해요, 나한테.
얘기를 하면서 이제, 그렇게 좋아하고 그라면서 이랬는데 나하고 그만 좀 나뉘어졌습니다. 나뉘져 가지고 이랬는데, 그거는 김현봉 목사님 수제자가 서로 될라고 하는 데서 그랬는데 나는 김현봉 목사님 그뭐 만나기 전에 그랬는데 거기 별로 배운 게 없어요. 이랬는데 이래 가지고 서로 그만 나뉘어 있다가서 오랫 동안 거게는 거기로 나가기로 하고 나는 이래 나가고 이랬는데 얼마 전에 전화를 해서 제가 서로 통화를 하고서 서로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이거 못 알아들어, 말귀 못 알아들으면 헛일이라. 재독을 자꾸 하는 사람은 말귀 알아들지만 재독 안 하는 사람은 말귀를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요. 목사들도 와 가지고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데 여러분들이 알아들어요? 못 알아들어. 자꾸 들어야 돼. 새벽기도 한번도 안 빠지고 자꾸 듣지 또 재독 듣지 자꾸 들으면 비로소 말귀를 알아들을 수가 있어요.
자, 여러 천 수백 마리 말이요, 수백 마리 소가 있는데 그 소는 주인 없이 자기 독립으로 있는 시간은 찰나도 없다 하는 그말이 이해가 됩니까 안 됩니까? 이해가 됩니까 안 됩니까? 이해가 돼요? 정말로 독립 시간은 찰나도 안 돼, 찰나도 없어? 돈 주고 받을 때 그때 이 사람 소도 아니고 저 사람 소도 아닐 수가 있지 않애요? 돈 주고 받을 때는 이 사람 소도 아니고 저 사람 소도 아니고 아무 소도 아니고 자연히 아무 주인 없이 독립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돈 주고 받을 때에 설마 한 시간이야 안 돼요? 한 시간 그렇게 독립할 수 없습니까 있습니까? 혹 일 분 같은 거야 안 되겠소? 일 분도 안 돼요? 뭐 찰나도 안 돼요? 찰나도 안 돼요.
이 사람 소를 벌써, 이 사람 소를 독립할 때가 없이 딱 돈 주고 받고 딱 요라고 난 다음에는 그 주인이 와 가지고 소 고삐를 딱 끌러 가지고서 어짭니까? 소 고삐를 딱 끌러 가지고서 그 손에 딱 쥐이면서 ‘인제 나는 소 줬습니다.’ `녜, 받았습니다.' 그라면 그 소가 주인에게 매이지 안하고 자유하는 시간이 찰나라도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요, 없어요.
요거 뭐할라고 내가 말해요? 사람이라는 것은, 사람이라는 것은 영은 하나님만이 주장하도록 그렇게 만들어 놨고,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그래 만들어 놨고 요 심신은 영이 주인이든지 하나님이 주인이든지 또 마귀가 주인이든지 이거는 독립은 찰나도 못 합니다. 알겠습니까? 독립은 찰나도 못 하는 요걸 여러분들이 꽉 잡아야 돼요. 이게 지금 신학에서 잘 말이 안 나오는 것이오.
사람의 육이라 하는, 심신으로 되어 있는 이 육체라 하는 것은 찰나도 독립하지는 못한다. 중생된 영의 것이 되든지 또 하나님의 것이 되든지 악령의 것이 되든지, 찰나도 아무것이 것도 되지 안하고 제 자유로 독립하는 시간은 찰나도 없다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굳게 잡아야 돼요.
이 말이 세간에 나가면은 이 교계에 나가면은 다 사람들이 모두 다 공통으로 그렇게 알고 있으면 문제가 없지마는 다 이렇게 알고 있지 안하고 정반대로 알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알아도 어실므실하게 알면은 나가 가지고 뺏긴다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나가 가지고 뺏기요.
그런 건 다 가 물어 봐요. 물어 봐서 ‘사람의 심신이라 하는 것은 영의 것도 아니고 악령의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것도 아니고 자기 심신은 독립할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물어봐요. 가 물어봐요. 백 명 가 가지고 물어봐요.
‘독립할 수 있지. 내가 무슨 내가 악령의 것이 돼? 그따위 소리 하지 마. 나는 독립이라. 악령의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것도 아니고 나는 내 마음 내가 가지고 있고 나는 독립이라.’ 그라는 사람이 천 명 만나면 천 명이 다 그랄 것이오.
이러한 세상인데 여러분들이 ‘사람의 심신은 찰나도 독립할 수 없다’ 하는 이런 교리를 배운 것이 성경이요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안하는 올바른 지식이지마는 이 지식을 가지고 세상에 나가면은 전부 반대하는 사람뿐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유혹받아 가지고서 이 교리와 신조를 뺏길 거라 그말이오.
알겠소? 자, 인간의 심신은 악령이나 하나님이나 중생된 영의 소유가 되지 안하고, 죽은 영은 소유할 권리가 없어. 이 셋의 소유가 되지 안하고 독립하는 그 시간은 찰나도 독립은 할 수 없다 하는 것을 믿습니까? 믿습니까? 믿는 사람 손 들어 봐요. 믿어요, 믿읍시다. 세상이 반대하면, 반대하면 그말에 유혹을 받을 거요 안 받을 거요? 받지 말아요.
가 보십시오. 잘난 사람들, 대학 교수들 만나 보십시오. 만나 가지고 열 교수를 만나 가지고서 ‘여보시오, 당신의 심신은 누가 주관하고 있습니까?’ ‘내가 주관하고 있지 누가 주관하고 있어?' ‘아니오. 우리가 배우기는 마귀가 주관하든지 또 중생된 영이 주관하든지 하나님이 주관하든지 하지 그 독립 못 하는데요.’ ‘그따위 소리 마십시오. 내 심신을 누가 주관해? 내가 독립하지.’ 안 하는 교수, 백 명 만나면 백 명이 다 할 것입니다. 알겠소? 이런데 여러분들이 그 말 안 들어? 그 말에 꼬여 넘어가지 안해요? 꼬여 넘어가기 쉬워. 넘어가면, 넘어가면 하나님과 적이 돼 버려. 마귀에게 사로잡히고 말아요.
이런데, 우리 속에 안 믿을 때에는 지도자가 하나뿐이오. 뭣입니까? 육체뿐이오.
믿고 난 다음에는 성령과 육체 둘입니다. 둘인데, 그러면 육체라고 하는 말은 내나 그건 독립할 수 없기 때문에 악령에게 사로잡혀 있는 육체라 그말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와 가지고서 성령이 우리 인도하면, 성령이 우리를 인도해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면은,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그거는 뭐라 했습니까, 성경에?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그거 뭐라 했소? “영의 생각은” “영의 생각” 성령 말입니다. 영의 생각은 성령을 말하는 거라.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강이라.
육체의 생각은? 사망이라. 망하고 죽는 것. 망하고 죽는 것.
그러면, 성령의 인도가 아니면 전부 망하고 죽는 겁니다. 성령의 인도가 아니면 망하고 죽어요. 뭐 대학 교수 인도도 망하고 죽고 어떤 이종교, 종교가 꽉 찼지만 그 종교의 모든 인도도 다 망하고 죽고 성령의 인도 외에는 전부 망하고 죽습니다. 알겠습니까? 요것도 믿어야 돼요, 요거 확정을. 믿어야 돼요. 성령의 인도 외에는 전부 죽고 망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 외에는 죽고 망하는 것.
그러면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다 평강과 생명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을라면은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야 성령이 우리를 인도할 것 아니겠습니까? 성령이 인도한다는 것은 우리 영을 인도하는 것을 말합니까 우리 심신 인도를 말합니까? 성령의 인도는 심신 인도를 말합니까 영의 인도를 말합니까? 심신 인도요. 영의 인도는 인도할 것 없이 한 덩어리입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인 그것만 구별했지 하나입니다. 하나인데 다만 성령이 인도하는 것은 심신 인도라 그말이오.
심신 인도인데, 인도할라면 그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야 됩니까 안 들어오셔야 됩니까? 들어와야 인도할 수 있소 안 들어오고 인도할 수가 있겠소? 들어와야 인도합니다. “내가 문을 두드리노니 문을 열면 내가 들어가서 너는 나로 더불어 먹고 나는 너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래 문을 두드리는데 문 두드리는 것은 누가 두드립니까? 누가 두드리요? 예수님이 두드리는데 예수님의 영이 두드립니다. 성령은 무슨 성령?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 성령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영이 성령이요.
그리스도는 누가 그리스도입니까? 예수님이 그리스도라. 알겠습니까? 이제 문을 두드리는 것은 성령이 두드린다 그걸 아십시오, 성령이 두드린다.
성령이 두드린다 해도 되고 예수님이 두드린다 해도 되고 또 그리스도가 두드린다고 해도 되고 그리스도의 영이 두드린다고 해도 되고, 같은 말입니다.
이제 성령이 두드리는데, 성령이 두드리는데 성령이 우리 속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데 성령이 우리 속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데 우리가 성령을 들어오게 하는 거, 영접하는 것이 어떤 것이 성령이 들어오도록 영접하는 것입니까? 자, 성령이 우리 마음 속에 들어오도록 영접하는 거 아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하나도 몰라? 성령이 우리 속에 들어오도록 영접하는 방편을 모르면 성령 영접 못 하지. 자, 우리 ○○○조사님이 알 것 같다. 그래. 자,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내가 믿을 때에 성령은 내게 들어오실 수가 있고 안 믿을 때에는 들어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예수님의 대속의 사활을 믿을 때에 성령이 내 속에 들어올 수가 있고 그리 안 하면 내 속에 못 들어옵니다. 알겠소? 성령을 우리 마음에 영접해야 성령이 나를 인도하시지 영접하지 안하면 인도할 수가 없어. 그러니까 성령을 내 마음에 영접하면 그만 성령이 인도해. 인도하는데 영접 안 하면 인도할 수가 없어.
그런데 영접하는 방편을 부장들 ○○○부장도 손 들고 ○○○부장도 손 들었는데 아마 이 ○○○부장은 잘 알 거고 ○○○부장한테, 임시 부장입니다, 지금. 중간반 임시 부장인데 물어보자 하고 물어 보니까 예수님의 대속을 믿을 때에 된다고 믿음으로 된다는 그 대답을 했는데 그 대답이, 예수님의 대속이라 하면 틀린 소리 아니오. 거기다가 더 똑똑히 할려면 사활의 대속이라 하면 더 좋고 사활의 일곱 가지 대속이라면 더 좋은데 어짜든지 사활의 대속이라 했으니까 맞기는 맞아요.
답이 맞았어요.
그 맞았는데 사활의 대속을 믿을 때에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실 수가 있고 사활의 대속을 믿지 안할 때에 성령이 우리 속에 들어오시지를 못합니다. 요 대답, ○○○조사님이 성령을 우리 속에, 우리를 인도하는 데는 우리 속에 들어오셔야 인도하는데 우리 속에 성령님이 들어오시도록 영접하는 방편은 예수님의 대속을 믿는 것이라고 하는 요 대답이 백점입니다. 자, 박수로 축하합시다. 마구 뚜드려, 마구 뚜드려요. 백점. 왜? 왜 박수해? 여러분들이 이거 좀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서 지금 하는 것이라.
그러면 성령의 영접은, 문을 두드릴 때에 성령의 영접은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을 믿을 때에 성령이 우리 속에 들어오시는데 예수님의 대속을 안 믿는데 예수님의 대속을 믿지 않는 자에게 성령이 들어오시면 어찌 됩니까? 어찌 됩니까? 예수님의 대속을 믿지 안하면 성령이 와 가지고서 우리 심신에 대해서 뭘 합니까? 대속을 믿지 안한 자의 심신에 들어오면 성령님은 와서 뭐 하지요? 어? 심판해. 알겠습니까? 성령이 떡 들어오면은 우리가 죄 그대로 있지, 불법 그대로 있지, 마귀하고 한덩어리 돼 가지고 그대로 있지, 사망 아래 있지, 하나님의 지공법 다 이거 어겼지, 하나님과 원수되어 있지, 마귀를 향하여서, 영감과 진리대로 하나님을 향해 사는 게 아니라 마귀를 향하여서 자기 주관과 욕심대로 살고 있지, 이라니까 성령이 오시면 전부 성령의 대적뿐입니까 성령하고 한덩어리가 있습니까? ○○○선생? 대적뿐이라.
대적뿐이니까 성령이 오시면은 그 할 일이 뭐입니까? 자, ○목사 사모님, 대답해 봐. 성령이 들어오면 할 일이 뭐이야? 저 알 줄 알고 했는데 그거 몰라? 할 일이 뭐이야? 성령이 오시면 할 일이 뭐이지? 그 옆에 ○집사? 성령이 오시면 그 사람 속에 와서 할 일이 뭐이야? 어? 심판. 그래 심판이라. 막 모조리 죽여 버려야 돼.
막 모조리 죽여 버려야 된다 말이오.
그러니까, 성령이 못 들어오시는 것은 겁이 나서 못 들어옵니까, 막아서 못 들어옵니까, 죽을까 싶어 못 들어옵니까? 이 성령님이 예수님의 대속을 믿지 않는 자의 심신에 들어오지 못하는 것은 능력 없어 못 들어옵니까 사랑으로 인해서 못 들어옵니까? 능력이 없어 못 들어오요 사랑으로 인해서 못 들어오요? 사랑으로 인해서 못 들어오는 거라. 왜? 들어오면 죽여 버려야 되거든.
죽여 버려야 되는데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딱 믿어서 일곱 가지 대속의 의를 딱 가졌을 때에는 성령이 오시면 한 덩어리요 두 쪼가리요? 성령이 오시면 자기 비위에 딱 맞은 것뿐이요 대립되는 게 있소? 어? 맞은 것뿐이라. 하나뿐이라.
이러니까 들어오시요.
그러니까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내가 믿을 때에 성령이 내 속에 들어오셔 가지고서 나를 인도해. 영접합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예수님의 대속을 믿을 때에 성령이 와서 나를 주관하게 됩니다. 알겠습니까? 예수님의 대속을 믿을 때에 성령이 내 속에 들어와서 나를 주관하시고, 나를 주관하시면 내 생각도 마음도 소원도 성질도 뜻도 모든 비판도 평가도 지식도 전부 성령의 것이 돼 버리고 맙니다.
성령의 것, 성령하고 한 덩어리가 돼요. 왜? 예수님이 일곱 가지 대속해 놓은 것은 전부 성령과 한 덩어리뿐이거든. 한 덩어리 되는 거.
깨달아집니까? 자, 이제 성령이 우리 속에 예수님의 대속을, 일곱 가지 대속을 믿지 안하면 들어오실 수가 없고 대속을 믿을 때에 우리 속에 들어와 가지고서, 우리 속에 들어오면, 대속을 믿을 때는 성령이 우리 속에 들어오면 우리하고 한 덩어리고 대속을 믿지 안할 때는 성령과 정반대기 때문에 들어오면 소멸시키니까 성령이 들어오면 다 소멸될 터이니까 우리를 사랑하시는 성령님이 들어오면 소멸할 터이니까 우리를 피해야 돼요 우리에게 멸망을 시켜도 들어와야 돼요? 들어와야 돼요 피해야 돼요? 피해야 된다 말이오.
비유는 안 되지마는 아버지가 형사인데 이 아들놈이 지금 노름을 하고 있어. 우리 나라에서는 지금 노름하는 그런 거는 상관 없어. 제가 일본 있을 때에 봤는데 노름하는데 형사가 오니까 뭐 싹 다 잡아 가 가지고서 징역을 단단히 시켜.
노름하다 잡히면 석 달 가요. 우리 나라는 뭐 잡혀도 소용 없어. 이거 뭐 봐도 예사지만 그때는 보니까, 그러니까 그 나라의 법은 깨끗합니다. 우리 나라 법은 이거 엉망이야.
이런데 그 형사가 말이지요, 이거 떡 ‘여기 노름을 한다’ 하는데, `노름을 한다’ 이라는데, 그 말을 듣고 이래 왔는데 그래 와 가지고서 저거 아들놈이 노름을 자꾸 하고 못된 짓 하고 다니니까 이걸 문제가 돼서 슬그머니 묻기를 ‘야, 여기 우리 애 아무것이 놈 그놈 있지?’ `예, 하고 있습니다.' 그라면 아버지가 들어가면 뭐 어째야 돼요? 아들 묶어가야 되지요.
이러니까 부득이 가면 그놈 묶어 가지고 가야 될 것이고 애비가 자식을 포승줄 이래 가지고 간다는 건 좀 참혹한 일이고 이러니까 할 수 없어 그 형사가 피한다 말이오. 그래 인제 그 방에 못 들어가요. 못 들어가고 피하고, 피하고 그 형사가 피해서 노름하는 걸 냅두면 안 될 것이고 이러니까 다른 형사를 보내. 알겠소? 자기는 못 들어온다 말이오. 그와 마찬가지라.
그러면 예수님의 대속의 일곱 가지, 사활의 대속의 공로를 우리가 믿을 때에는 완전한 의인 됩니다. 죄와 사망과 마귀에게서 완전히 해방된 완전 자유자요, 또 하나님을 향해서 영감과 진리대로 사는 영생자요, 하나님의 공법에 완전히 통과자요, 하나님과 완전 화친자가 됐으니까 이자 속에는 들어가면 하나이니까 앞으로 하나가 돼 가지고서 인도해서 자꾸 영생을 이루어 가도록 이래 하지마는 예수님의 대속을 믿지 안하는 데에는 성령님이 들어오지 못하는 것은 성령이 들어오면 전멸시킬 수 있는 전부 더러운 것뿐이기 때문에 안 된다 말이오.
예수님의 대속을 믿을 때에는 죄인이 완전한 의인이 된다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성경에 말하기를, 갈라디아서에 보면은 “너희들이 성령 영접한 것이 믿음으로냐 율법을 행함으로냐?” 그 말씀이 갈라디아서 몇 장 몇 절에 있어? 어? 찾을라면 또 시간 많이 걸리겠는데. “성령을 받은 것이 믿음으로나 율법을 행함으로냐” 어? 몇 장? 뭐라 하노? 3장 2절? 그 한번 읽어 봐. 그래.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믿음으로냐” 그러면 성령을 받은 것이 성령을 영접한 거라 말이오. 성령을 영접한 것은 무슨 행동 가지고 영접했느냐 믿음으로냐? 믿음으로 영접했다 그말이오. 믿음으로 영접했다 말은 뭘 믿는다 말이요? 뭘 믿는다 말이요?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알겠습니까? 이러니까 성령님을, 예수님의 대속을 믿지 안하면 우리가 소멸되기 때문에 성령님이 못 들어와요. 못 들어오는 거는 당신의 사랑 때문에 못 들어옵니까, 우리의 힘이 강하고 당신이 들어올 능력이 없어 못 들어옵니까 당신의 사랑 때문에 못 들어옵니까? 능력 없어 못 들어온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사랑 때문에 못 들어온다 하는 사람 손 들어 봐요. 사랑 때문에 못 들어와.
들어오면 소멸시킬 것이기 때문에 못 들어온다 그거요. 이러니까 예수님의 대속을 믿는 데에서만 우리 생명 역사는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아멘) 믿읍시다.
이제 광고합니다.
장기간 결석하는 데 대해서, 주일 학교는 한 달 결석하면은 그다음에 어느 반사가 인도해도 인도한 반사로 옮겨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학생이 한 달 결석해도 먼저 있는 반에 가고 싶다 하면은 강제하지를 못합니다. 만일 한 달 결석하면은 그 주일학생은 이 반에서 저 반으로 얼마든지 옮겨 갈 수가 있습니다.
또 중간반은 이제까지는 여섯 달을 말했는데 중간반은 몇 달이지요? 중간반은 이 개월. 우리가 반사회에서 결정했어. 중간반은 이 개월 나오지 안한 중간반 학생은, 지금부터 말이지요, 지금부터 어디로든지 갈 수 있어. 중간반에 이 개월 나오지 안한 그 학생은 어느 반으로도 갈 수가 있습니다. 인도하면은 인도한 데로 갈 수가 있습니다. 왜? 중간반은 두 달 동안 안 나오면 그만 죽어 버리요. 신앙이 죽어 버려. 이러기 때문에 두 달 안 나와도 꼭 그전 먼저 반에 있어야 된다 이라니까 살릴 걸 살리지 못하고 그만 죽어 버리요.
그래서 주일학교는 한 달, 중간반은 두 달, 장년반은 장년반은 삼 개월입니다, 장년반은 삼 개월. 지금부터 장년반은 자기 구역이지마는 삼 개월 동안 안 나왔으면은 그다음에 삼 개월 동안 안 나온 다음에는 다른 사람이 인도했으면 인도한 그 구역으로 소속하게 됩니다.
왜 이렇게 장년반 육 개월을 삼 개월로 했고, 또 중간반은 삼 개월이지? 중간반 삼 개월이었지? 삼 개월을 이제 이 개월로 했고, 또 주일학교는 이 개월을 일 개월로 했고, 반을 단축시킨 이거 이유는 어데 있느냐 하면은 그거 그래 버려 두면은 그 심령들이 마귀의 것이 돼 가지고 다 죽게 되기 때문에 구원하기 위해서 이렇게 신앙 잠자는 기간을 짧게 해 가지고서 짧은 기간 내에 그를 이 반사가 아니면 저 반사라도, 이 구역장이 아니면 저 구역장이라도 이렇게 심방해 가지고서 다 죽기 전에 살려 내야 된다는 그런 이것도 사랑에서 이렇게 하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지금부터 그렇게 알고 실행을 해 주십시오.
자기가 인도하지 안하면서도 공연히 자기 반이라 이래 가지고, 다른 사람이 인도 해 가지고 오면은 떡 있다가서 말하기를 ‘이 학생은 우리 반인데’ 일 년이 지나가도 떡 그래 가지고서 ‘너 우리 반에 와야 된다’ 그래 가지고 들이 조아대고 이라니까 그만 학생이 ‘아, 나 안 갈랍니다.’ 자, 그 반사는 살인자입니까 구인자입니까? 살인자입니까 구인자입니까? 왜 큰 소리 못 해? 살인자요 구인자요? 살인자입니다.
또 권찰도 벌써 일 년이나 돼도, 떡 구원안 하고 있다가서 나오면은 ‘그거 우리 식구라’고서, 떡 다른 사람이 인도해 가지고 떡 오랫 동안 아래 나오고 있는데 그때 늦게사 알아 가지고서 ‘우리 식구인데, 너 우리 식구 아니가?’ 거머쥐고 이라니까 그 사람이 과거에 인연도 있으니까 구역 바꿀 수도 없고 자꾸 이래 보니까 ‘에, 그러면 안 나가는 게 좋겠다’고서, 뭐 내가 자꾸 이래 쌓으니까 그러면 안 나간다고. 이래 가지고 죽이는 역사한다 말이오. 그런 구역장은 살인자요 구인자요? 그러면 예수님의 적입니까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왜 대답 안 해? 예수님의 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 들어 봐요. 예수님의 적이오. 손을 뻐뜩 들어. 예수님의 적입니다. 그래 가지고 어짜든지 우리가 구원하는 일을 놓지 말고 합시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내일 새벽에 모두 다 나와요. 이렇게 나온 이 사람들이 다 나오면 근 삼천 명이 나올 터인데 새벽기도 안 나와. 자, 내일 새벽기도 나올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한번 또 한번 다져 봅시다, 속아도. 녜, 내일 새벽기도 다 나와 봐요. 새벽기도 못 나오게 하는 육체 그놈하고 싸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