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09 11:25
영광의 자유
1987. 1. 17. 새벽 (토)
본문:로마서 8장 18절∼23절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의 기다리느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참사람 새사람으로 살 때에 세상에서 대립되고 마찰되는 그 어려움과 새사람과 참사람이 영광의 나라에 가 가지고 누리는 그 영광과는 족히 비교할 수 없다 그 말입니다.
19절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들이 고대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하나님의 아들들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받은 자들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받은 자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는 것이니” 고대한다 말은 심히 고통을 하면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20절에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모든 피조물,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아들 외의 것을 다 총칭합니다. 천군 천사도 다 여게 포함됐고 이 우주에 있는 모든 것도 다 여게 포함됐습니다. 영계에 있는 건 영물이요 우주에 있는 것은 물질이란 것이요 이 피조물은 다 포함됐습니다.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이 모든 피조물들이 참 허무하다 말은 완전치 못하다 말이요, 영원치 못하다 말이요, 변할 것들이라 말이요, 없어질 것들이라 말입니다. 허무하지 안한 것은 완전을 두고 말합니다. 영원 불변을 두고 말합니다.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이 자기 뜻이 아니요” 이 모든 피조물들이 그것들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것은 이 피조물들의 그 소원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이 모든 것에게 이용되도록 하셨기 때문에 하신 그분 하나님입니다. “굴복케 하신 이” 그런 것들에 이용되게 하신 그로 말미암아 하고 있다.
밥을 썩썩 씹어 먹으니까 씹히니까 ‘밥 그까짓 거’ 아니오. 홍포 입은 부자가 물 한방울도 제 마음대로 뭣을 할래야 어림도 없소. 물 한방울이 저의 입에 먹혀지지 않습니다. 암만 소원해도 그에게 이용당하지 않습니다. 굴복당하지 않습니다. 모든 무궁세계는 다 그런 세계입니다.
21절 “그 바라는 것은” “그 바라는 것은” 그 피조물들이 뭣을 지금 소원하고 있는가? “피조물도” 모든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모두 썩어질 거 완전치 못한 거 변할 것들 이런 것들에게서 해방되어, 이런 것들에게서 해방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하나님의 자녀들,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입은 택한 자들,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이 자유는, 자유는 불의의 자유가 있고 의의 자유가 있습니다. 제한된 자유가 있고 영원한 자유가 있습니다. 실력 없는 자유가 있고 완전 자유가 있습니다. 여게 말하는 것은,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하는 이 자유는 완전 자유입니다, 완전 자유.
사망도 해하지 못하고, 마귀도 죄도 해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공심판도 해하지 못하고, 하나님에게도 하나도 거리끼지 안하고 자유하는 거. 그러면 모든 피조물에게 다 자유하고, 모든 피조물들이 움직이는 것에게도 하나도 얽매이지 안하고, 하나도 종되지 안하고, 하나님에게도 거슬리지 안하고, 하나님에게도 정죄받지 안하고 어데든지 자유하는 이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 외에는 이런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이 자유가 뭣인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입은, 대속을 자기 것 삼은 자, 대속을 자기 것 삼은 자, 자기는 대속의 것이 완전히 된 자, 대속은 자기 것 됐고 자기는 대속의 것이 되니 대속하신 이가 주님이시기 때문에 주님의 것이 된 자입니다.
대속은 자기 것, 대속 입은 저는 주님의 것, 이제는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대속하신 주님이 안에서 대속으로 사시는 것이라. 대속 가지고 나를 살려.
대속으로 살려. 이러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그리스도가 어떻게? 대속하신 그 대속을 가지고 내 안에서 살리요. 그러면 대속으로 사는 거라.
대속으로 살다니? 하나님을 향한 진리 생활 이게 영생이라. 하나님을 향하여, 자기를 향하여 피조물을 향하지 안하고 하나님을 향한다 말은 하나님만을 상대하여. 제 일계명을 지킨다 말입니다. “내 앞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 그러면 하나님 앞에 하나님만 상대하지 하나님 외에 딴것을 상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일계명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그 말은 하나님을 상대하여, 하나님만 소망하여, 하나님만 상대하여, 이것이 하나님의 신부입니다. 어떤 면으로 나타내서 하나님의 신부라.
세상을 간부라 하는 것은 세상을 자기의 상대로 삼고 세상을 소망으로 삼고 세상과 관계를 가지는 거, 하나님만 관계 가지요. 그것이 신부요 그것이 정절이라 말한 것입니다.
자유는, 자유는 마귀에게도 죄에게도 사망에게도 하나님에게도 하나님의 율법에게도 이 모든 피조물에게도 어데든지 정죄받지 안하고, 어데든지 저촉되지 안하고, 어데든지 간섭을 받지 안하고 어데든지 자유해. 이것은 완전이면 자유해.
완전이면 아무데도 간섭받지 안해요. 하나님은? 하나님도 좋아해요. 그분도 완전이시거든. 완전은 좋아하시요, 진리도 좋아하시고.
이러기 때문에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 하나님을 향한 영감 생활, 하나님을 향한 진리 생활 이것은 다 영생이라. 또 죄에 대해서 자유, 죄에 대해서 털끝만치라도 그에게 제재받지 안해. 종이 되지 안해. 그것에게 붙들리거나 그것에게 지배를 받거나 그것의 침노를 받거나 거게 대해서 간섭을 받거나 그에게 대해서 내가 붙들리거나 그렇지 안해.
죄에 대해서 완전 자유, 마귀에 대해서 완전 자유, 사망에 대해서 완전 자유, 하나님의 공심판에 대해서 완전 자유, 또 하나님 본체에 대해서 완전 자유, 하나님의 본체에 들어갔다가 나갔다가 뭐 하루 억만 번 들어가고 나가고 하나님 속에 억만 년 있을래도 억만 년 있고.
왜? 하나님과 이질이 없어 동질이라. 생각도 같고, 소원도 같고, 뜻도 같고, 성품도 같고, 지식도 같고, 모든 속성도 같고, 다 같으니까 피조물 창조주만 다르지 마찰될 것이 하나도 없어. 자유라. 이것이 최고의 자유입니다. 하나님의 전지의 입법에도 하나도 거리끼지 안해. 입법이 ‘야, 너 이래야 되는데 왜 이라느냐?’ 그게 없어. 전지의 입법이 다 찬성이야. ‘아, 됐다. 됐다.' 전지의 입법이 다 찬성, 이게 자유라.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그러면 이 자유인데 이 자유는 어떤 자유냐? 영광의 자유라, 영광의 자유. 영광의 자유라 말은 무슨 말입니까? 영광의 자유라 말은 모든 피조물들이 다 좋아하고 찬성하는 ‘감사합니다’, 모든 피조물들이 다 감사하고 존경하고 이 자유를 `아, 참 감사합니다.’ 이렇게, 왜? 모든 피조물들이 뭣 때문에 그렇게 할까?○조사님? 혜택을 입었기 때문에. 혜택을 입었기 때문에. 혜택을 입었기 때문에 영광을 돌리지.
자, 그 동리에 아주 잘나서 한국에 권세를 제일 많이 가졌소. 제일 부자요. 제일 능력 있고 제일 지혜 있고 권위 있소. 그런데 그 동리에서 욕을 합니다.
‘잘났으면 제놈 잘났지, 부자면 제놈 부자지 뭐, 똑똑하면 제놈 똑똑하지.’ 그거 뭐입니까? 그거는 영광입니까 그게 욕입니까? 욕이라.‘왜? 왜 그렇게 욕을 하노?’ ‘그까짓 놈 잘나봤자 내게 무슨 소용 있나?' 이런데 그렇게 그 사람이 잘났는데 그 사람 잘난 것을 온 동리 사람들이 다 좋아하고 원하고, 지혜 있는 것도 원하고, 실력있는 것도 원하고, 부자된 것도 원합니다.
다 이제 얕은 우리들은 아주 어리기 때문에 돈밖에 몰라. 그 사람이 아주 돈이 많은데 온 동네 사람들이 그 사람 돈 많은 걸 다 좋아합니다. 왜 좋아할까?○선생? 돈 많은데 돈 많은 혜택을 입거든. 그 사람 돈 많은 게 제 돈 많은 거라. 그 사람 돈 많은 것이 제 돈 많은 거와 같은 효력이 제게 오니까 다 영광을 돌리고 감사한다 그 말이오. 알겠소? 예수님의 사활의 일곱 가지 대속은 다 영광스러운 대속이오. 이걸 알아야 돼.
영광스러운 대속이라.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모든 만물이.
이러니까, 공산주의가 독침을 가지고 우리 앞에 나타나도 그 독침 자체는 뭘 원합니까? 우리가 뭘 하는 걸 원하요? 우리의 영육이 뭘 하는 걸 원합니까? 자유하는 걸 원해요, 자유하는 것. 자유하면 어찌 되는데? 자유하면 저거에게 좋아요. 이러기 때문에 영광의 자유라. 이걸 뜻을 깨달아야 돼. 이 구원이 얼마나 큰지? 이 구원이 가치적으로 몇째 갑니까, 손가락으로? 가치적으로 몇째? 가치적으로 몇등? 이등, 이등. 맞았어. 이등 맞았어. 진리는 하나님 안에 있어요. 자존하신 하나님. 하나님에게 진리랑 다 들었어. 영감도 들었고.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신 곧 택함을 정하신 이 구원입니다.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허무한 것들에게 굴복하고, 굴복하고 나면 멸망받고 굴복하고 나면 멸망받고 이러니까 피조물이 탄식이라.
그러기에 밥이 허무한 것들의 입에 들어가기는, 들어가기는 들어가지마는, 들어가게 하기 때문에 들어가고 씹어 먹혀서 그 영양이 되게 하시는 자로 말미암아서 하지마는 실은 입에 들어가면서 불평의 밥이 씹히고 있습니다. 영광의 자유자의 입에 들어가는 밥은 기뻐해.
이 면은 좀 깨달은 사람들은, 박인순 선생이 낙동강에 가다가 배에 잉어가 한 마리 뛰어 들어오니까 사공은 있다가 ‘이거 내 배에 들어왔으니 내것이다’ 하고, 또 선객들은 먼저 붙들었으니까 ‘이거 먼저 붙들었기 때문에 내것이다’ 하고 나중에 시비해 가지고 선주가 차지했어요.
그래 그 박인순 선생은 이것이 이 성도의 입에 들어가고 싶어서 들어왔는데 이것을 저희의 이 탄식하면서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이걸 알기 때문에 그 돈을 많이 주니까 사공이 줘. 많이 주고 사 가지고 ‘이게 이렇게 하는데’ 그러면 그걸 사 가지고 바다에 던지는 게 좋아요 먹는 게 좋아요? 바다에 던지면 내나 지금 아직까지도 미결에 있어. 영광의 자유가 그것을 먹었으면 영광의 자유 것이 됐기 때문에 그 고기는 성공했고 만물이 새롭게 될 때에 다 영생으로 살아나요.
이러기 때문에 만물이 고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뭇아들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이뿐 아니라 우리가 아나니” 우리가 아나니 이 우리는 누굽니까? 우리는 중생된 영들을 말합니다. 육은 아니오. 영들을 말합니다.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중생된 영단체입니다. 영은 암만 많아도 우리 됩니다. 왜? 본질과 본성이 꼭 같애. 소망도 목적도 꼭 같애. 하나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여게서 이제 중생된 영이라는 것을 똑똑히 밝혔습니다.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 처음 익어, 성령의 역사에서 처음 익었으니까 처음 결실이라 말이오, 성령의 처음 결실. 성령의 처음 결실한 것이 뭐입니까? 성령의 처음 결실한, 인간에게 있어서는 성령의 처음 결실한 요것이 중생입니다, 중생.
예수님은,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에게 성령이 먼저 역사했고 이 역사해 가지고 일곱 가지 대속의 사활의 공로를 완전히 설정하셨고 이 공로를 이제 설정하고 인간들에게 성령이 와서 역사하신 거 예수님의 이 대속의 구원을 우리 것 만들라고 책임지신 이가 누굽니까? 여게서 이것을 보증하고 보증인으로 나타나신, 보증한 이가 누굽니까? 성령님이시야. 성령닝이 보증하고 나타났어요.
이랬는데 이 성령이 보증하고 나타나 가지고 제일 처음에 한 일이 뭐입니까? 중생이라. 성령의 처음 익은이라 말이오. 익었다 말은, 처음 익었다 말은 성과를 결실했다 말이오. 성령이 결실, 성령이 성공했다 말이오. 성공은 뭐이냐? 중생된 영 그거는 그대로 성공한 거라.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그 결과를 받은 우리까지니까 우리는 누굽니까? 중생된 영들입니다. 환하지 안해요? “우리까지도 속으로” “속으로” 이 중생된 영들이 말입니다. 영들의 그 의지에서, 영들의 의사에서 “속으로 탄식하여” 이것도 탄식, 중생된 영들도 탄식해. 만물도 탄식하고 중생된 영도 탄식하고 또 누가 탄식합니까? 성령도 탄식해. 삼 탄식이 한 소원이라.
“탄식하여 양자 될 것” 양자 될 것 말은 양자가 됐다 말이요 양자가 지금 앞으로 될 것이라 말이요? 양자 될 것은 소망입니다. “양자 될 것 곧 우리의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 몸은 뭐입니까? 심신의 육을 말합니다. 심신의 육을 말해.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구속이 뭐이 구속입니까? 몸의 구속이 뭐입니까? 구속이 뭐이 구속입니까? 구속이 뭐이 구속입니까? 구속이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손가락 뻐뜩 한번 들어 봐요, 쭉 펴서. 한번 뻐뜩 들어 봐. 그래 일곱 가지. 영은 구속 받았습니다. 영은 구속 받았어. 아직까지 이 육은 구속을 못 받았어. 그런데 누가 탄식합니까? 영들이 탄식해. 성령도 탄식하고 만물도 탄식해.
어떻게 하라고? 몸의 구속을 받아야 이제 하나님의 아들이 완전히 되는데, 구속을 받는 것인데. 이러기 때문에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영은 양자가 됐기 때문에 아바 아버지라고 부른다고 거게 말했는데, 아바 아버지라 부른다고. 영은 양자가 됐기 때문에 아바 아버지라 불러요.
15절에 보면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종의 영은 뭐입니까? “종의 영을 받지 안하고” 종의 영이라 하는 건 종된 그 사람의 영 말합니다.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양자의 영을 받았다 이 영은 무슨 영입니까? 중생된 영. 그러면 영은 양자가 됐습니까 안 됐습니까? 양자가 됐다 말이오.
됐는데, 아직까지 “탄식하여 양자될 것” 양자 안 된 게 있어. 양자 된 게 있는데. 우리 영육의 사람인데 영은 양자가 됐고 아직 양자 안 된 게 있어. 양자 안 된 게 뭐이냐?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 몸이 구속을 받아야 양자가 될 것이기 때문에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하는 것이 양자될 것을 기다리느니라 하는 말이오. 이해가 됩니까?
그러니까 또 한번 익힙시다. “육체의 생각이라” “육체의 욕심이라” “육체의 일은” 육체가 하는 일이 있어.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그 모든 시기 질투 당 짓는 이런 전부라 말이오. 또 “육체의 욕심” 또 “육체의 생각” 있는데 그 육체는 몇 가지 종류 있습니까, 손가락으로? 두 가지 종류.
그러면 왼편에 인제 부득이 자꾸 왼편 오른편, 알기 위하도록 하기 위해서 틀린 거는 왼편으로 하고 바른 것은 오른편으로 그래 지금 표시를 합니다, 왼편에 있는 게 아니고 말이지. 그거는 표시상 알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거라. 왼편에 있는 육체 육신 그것은 몇 가지가 합한 것입니까? 쑥 한번 들어. 쑥 한번 팔을 내 봐요. 영광스럽고 좋은 거야, 얼마나. 나쁜 게 아니라. 셋.
셋인데 거게는, 자, 한번 말해 봐요. 거게는 뭣뭣 합한 것입니까? 죽은 영. 죽은 영은 사람의 영입니까 악령이나 하나님의 영입니까? 사람의 영. 죽은 영, 또? 심신으로 된 육, 또? 악령 요 셋이 합해 가지고 하고 있습니다.
요 셋은 그 모든 자체가 의사나 형편이나 사정이나 주장이나 속의 사상이나 그 모든 것이 하나입니까 둘입니까? 하나입니까 둘입니까? 하나입니다. 다 마귀화돼 버렸습니다. 육도 마귀화되었고 또 마귀는 마귀고 영은 마귀화 됐습니까 안 됐습니까? 이 죽은 영은 마귀화 됐습니까 안 됐습니까? 마귀화 안 됐습니다. 안 됐으나 기능이 완전히 죽어 있기 때문에 유야무야라. 있어도 없는 거 한가지라.
그까짓 거 있어 봐야 아무 작용을 하나도 못 한다 말이오. 영이 죽었기 때문에.
영은 하나님과 연결돼야 사는 것인데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졌기 때문에 아무 작용을 못 해. 이러기 때문에 영은 있으나 시체기 때문에 아무 작용이 없어.
그러니까 지금 불택자의 육의 생활은 악령하고 육 이놈하고 두 놈이 뚤뚤 뭉쳐 가지고 좋다고 일사천리로 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죽은 영은 거게서 감각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탄식을 합니까 안 합니까? 탄식해요? 안 해요. 감각 없어요.
완전히 기능적으로 완전히 죽었습니다. 요것을 똑똑히 밝혀. 그거 짜다라 성경 본다고 잘 알아지는 게 아니라. 그러기 때문에 오늘까지의 교리가 지금 파묻혀 가지고 있고 지금 아는 사람들 많지를 못해요.
아는 학자들도 있는데 아는 학자들은 다 유명치를 못하고 그만 파묻혀 버리요, 자꾸. 세상이 모른 말 하고 하니까 세상이 찬성하는 사람이 많지를 안해요.
찬성하는 사람이 많지를 않다 그 말이오.
자, 오른편에 있는 육체의 생각, 육체의 욕심, 또 육체의 소원, 이 오른편에 있는 것은 그 육체의 생활할 때에, 육체의 생각할 때에 그때는 몇 가지가 지금 한테 뭉쳐 있습니까? 손가락으로. 내나 셋이 뭉쳐 있습니다.
그런데 거게는 뭐입니까? 첫째 뭐? 산 영, 또? 육, 또? 악령. 이라면 이 셋은 사상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다릅니다. 누구하고 다릅니까? 중생된 영과 악령이 다릅니다. 이 육 이거는 끌려 돌아다니기 때문에, 끌려 돌아다니기 때문에 이거는 아무 사상도 아무것도 없어요.
이 심신은 능동할 수 있는, 심신은 이 능동의 그 권위가 있다고 했습니까 없다고 했습니까? 없어. 언제든지 피동으로 살아요. 일시도 일 초도 저는 독립할 수가 없어. 독립할 수가 없고 언제든지 피동입니다. 그는 자기 영에게 피동이 되든지 악령에게 피동이 되든지 피동입니다.
그런데, 그라면 사상이 다르니까 여게는 싸움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오른편에 있는 이 육의 생활에는 싸움이 있소 없소? 있습니다. 싸움이 있어. 그 싸움을 성경 어데 똑똑히 기록해 놨어? 로마인서 7장에 똑똑히 기록해 놨어.
그러면 이 새사람으로 사는 것, 그리스도를 향하여 새로 지음을 받은 새 피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새 피조물인 그리스도인 참사람 새사람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인 하나님의 사람 이 사람은, 이 사람으로 살 때는 사는 요소가 몇 가지 종류입니까? 몇 가지 요소가 합해 가지고 하나님 아들인 새사람으로 삽니까? 새사람은 몇 가지가 합한 것입니까, 손가락으로? 내나 셋입니다.
그러면 뭣뭣 합해 가지고 사요? 뭣뭣 합했소, 뭣뭣? 자, 우리 중생된 영, 또 뭐? 또 심신 육, 또 인제? 하나만 있으면 돼. 성령. 성령. 그러면 참 사람으로 사는 것과 육체로 사는 것에 같이 셋은 셋인데 바꿔진게 뭐이 바꿔졌습니까? 악령과 성령이 바꿔졌습니다. 악령과 성령이 바꾸어졌소.
이러니까 이제 악령하고 있을 때는 속에 중생된 영하고 시비가 있었어요 없었어요? 시비가 있었어요. 이제는 성령과 중생된 영과 육과 셋이 합작됐으니까 여게는 시비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시비가 없습니다. 시비가 없이 하나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새사람이라 참사람이라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 연습했고 또 간단하게 한번 먼데서 온 사람들이 있으니까 한번 연습합시다.
우리가 나와 나를 구별해야 되는데 이 내인지 저 내인지, 참 내가 있고 내가 아닌데 원수 이놈이 가장을 해 가지고 내라고 거석하니까 이 고기덩어리 심신 이놈은 내라는 주인이 떡 나타나니까 이 심신 이놈은 원수가 주인이라고 나타나도 저인 줄 알고 참 주인이 나타나도 주인인 줄 알고 이 심신은 등신입니다. 알겠습니까? 심신은 여러분들, 요거 지금, 심신은 능동의 권위가 없다. 하나님이 능동력이 없도록 해 놨다. 능동력이 없도록 해 놨다. 요것이 지금 아직까지 교리에 안 나왔습니다. 세계 교리에 안 나왔습니다. 이거 설교록에 나가. ‘이 교만한 소리 한다.’ 심신의, 심신은 독립할 수 없어. 농동할 수 없는 존재로 지음받았어 왜? 이제까지 심신이 제가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일이 없어. 왜 그라면 선악과를 먹었는가? 아니야 선악과 먹을 때는 배암에게 유혹받아 가지고 거게 피동돼 가지고 움직였습니다. 제가 능동으로 움직인 게 아니라.
이것이, 심신이 악령에게 피동되면 옛사람이 되어지고 육체가 되어지고, 육체가 되어지고 “육체의 생각은” “육체의 욕심은” “육체는 성령을 거스리고” 하는, “사람이 육체가 됐기 때문에 하나님의 신이 영원히 그와 같이 할 수가 없다” 육체. 거게 이제 악령이 쫓겨 나가고 성령이 와서 하나가 되면은 이것을 가리켜서 참사람이라 새사람이라 완전한 사람이라 하나님의 자녀라 이 자유하는 자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우리 영은 자유하는데 몸의 구속을 기다리는데 몸의 구속이 뭐입니까? 몸이 이 육이 자유하는 것입니다, 육이 자유하는 거. 육이 자유하는 것은 어떻게 자유합니까? 이것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입을 때에 자유합니다. 입을 때 자유.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이 없이는 자유할 수가 없어.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이 없이는 이 모든 피조물들에게 상대하면 다 그에게 다 해를 받아.
마귀에게 대해도 해를 받고, 사망에게도 해를 받고, 또 죄에게도 해를 받고, 하나님이 심판에도 해 받고, 하나님과 모든, 모든 피조물 창조주에게 다 해를 받아요. 모든 피조물과 창조주에게 이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입지 아니한 이 영육은 다 해를 받아서 전부가 깨지고 박살이 돼서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거라. 이게 왜? 다 이게 불완전하기 때문에.
그러나, 이 영육이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척 받아서 대속을 입었을 때에는,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제것을 삼아 가지고 사활의 대속을 척 입고 있을 때에는 모든 피조물은 어짭니까? 피조물은 동등입니까 피조물을 초월합니까? 예? 피조물은 발등상이라. 이 대속을 입은 영육은 하나님의 몸이라. 그리스도는 머리라. 하나님은 머리고 몸이라. 모든 피조물은 발등상이라. 요 위치를 알아야 돼요. 그러기 때문에 한쪽으로만 아는 사람은 안 돼. 전체를 알아야 돼. 전체를 알아야 이게 깨달아져요.
대속을 입으면 이렇게 존귀해지고 대속을 벗으면 죄에게도 피해를 받고, 마귀에게도 피해를 받고, 사망에게도 피해를 받고, 진리에게도 피해를 받고, 영감에게도 피해를 받고, 하나님의 심판에도 피해받고, 하나님에게도 피해받고, 안 받는 데가 없어. 이건 전부 멸망이라. 고거 이해가 돼요? 이해가 됩니까? 하나님께 피해받는다 말이 이해돼요? 하나님이 죽여버리요. 알겠습니까? 유황불 구렁텅이가 그거라.
이 영육의 인간은 그럴 만한 원인이 있어. 원죄와 본죄가 있어. 원죄와 본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에게도 죽임 받고 모든 것에게 다 죽임을 받아요. 사망에게도 죽임받고 죄에게도 죽임받고 전부 멸망이라.
이런데 이 예수님의 사활의 일곱 가지 대속을 척 제것으로 입어 놓으면 모든 피조물과 동등입니까? 모든 피조물과 동등입니까? 피조물을 탁월해. 피조물보다 무한히 위에 있어. 발등상은 이거 내 지금 밑에 있는 마루 이게 발등상인데 이게 발등상이요, 이거. 발등상. 내 발은 그게 아니라. 발은 하나님의 몸이요 하나님의 지체요 하나님의 발이라, 암만 낮아도. 암만 못나도 하나님의 발이라. 하나님의 발바닥이 되겠지. 이런데 모든 만물은 천군 천사 어떤 것이라도 이게 발등상이라, 발등상.
이런데, 이라면 세상에서는 자기 위에 있는 것을 좋아해요 싫어해요? 어느 나라서든지 자기 위에 제일 권세면 정권 잡으면 그 국민들이 다 좋아해요 국민들이 시기하고 어서 내가 대통령 됐으면 싶어해요? 다 그래 해요. 왜? 그 권세에게 눌리기 때문에. 그 권세의 혜택을 보는 사람들은 좋아해요.
우리○대통령도 그 권세 혜택 보는 사람들은 다 좋아해요. 다 좋아하고 이 권세에 눌리는 사람들은 지금 어서 저 정권 저거 바꿔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요.
그런데, 그러면 위에 있는 걸 다 싫어하고, 다 저 밑에 있는 걸 좋아하고 위에 있는 걸 다 싫어하는데, 이 세상은 전부 제 밑에 있는 걸 좋아하고 위에 있는 걸 다 싫어하는데 “너희들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해요? 위에 있는 걸 좋아해요 위에 있는 걸 시기해서 싫어해요? 위에 있는 걸 좋아합니까 위에 있는 걸 다 싫어합니까? 위에 있는 걸 싫어서 저거 없애버리고 어서 죽어버리면 좋겠다 합니까 위에 있는 게 안 죽고 살기를 원합니까? 안 죽고 살기를 원해.
왜? 이거는 영광의 존재라, 영광의 존재. 영광의 존재라 말은 무슨 말이요? 위에 있는 것이 밑에 있는 것에게 제 생명이 되고 제 모든 부요가 되고 그 지혜와 능력이 되고 행복이 되어지니까 위에 있는 것 있는 것이 전부 제게 유익이 되니까 자꾸 있기를 원한다 그 말이오, 있기를 원해. 이러기 때문에 영광의 자유라, 영광의 자유.
이런데, 자, 우리 구속받은 사람은 그러면 이렇게 되면은 몸의 구속을 기다리는데 영은 뭣을 가지고 이래 자유하게 됐습니까? 영이 무엇을 가지고 만물에게 자유하고 또 만물에게 영광 칭찬 환영 찬송 이렇게 받는 이 영광의, 모든 것에 대해서 자유하니까 종이 아니라. 모든 것에 제재받는다 않는다 그 말이오. 자유.
또 그런데 또 영광이라, 모든 것이 좋아하고 환영해요.
뭘로 가지고 이렇게 영이 이렇게 됐습니까? 뭘로 가지고 됐습니까? 몇 가지 세력으로 이렇게 됐습니까? 일곱 가지 세력. 몇 가지 덕택으로 이렇게 됐습니까? 몇 가지의 이 능력 가지고 이렇게 됐습니까? 일곱 가지 능력 가지고 이래 됐어.
능력 가지고.
그러면 이제 영은, 영은 어떤 영이 됐느냐?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은 누구 것 됐습니까? 중생된 영 저의 것 됐어. 저의 것 됐어. 사활의 대속은 저의 것이 됐어.
저의 것이 돼야 중생하지 저의 것 안 되면 중생 못 해요. 저의 것 됐어. 그러면 사활의 일곱 가지 대속을 제것 만든 영은 제대로 있습니까 이것은 주님의 것이 됐습니까? 주님의 것이 됐어. 주님의 사활의 대속은 영 제것 됐고 저는 사활의 대속으로 값주고 산 주님의 것 됐어. 주님의 것 됐어.
그러면 영이 주님의 것 됐으면 이 영은 사활의 대속을 입은 영이 주님의 것 됐습니까 주님의 사활의 대속은 저 구석에 갖다 놓고 주님의 대속과 상관없는 영이 주님의 것 됐습니까 대속을 제것 삼은 영이 주님의 것 됐습니까? 똑똑히 알아요. 대속을 제것 삼은 영이 주님의 것 됐습니다. 알겠습니까? 이러니까 영은 항상 저는 제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저는 제것이 아니고 주님의 것입니다. 사활의 대속은 제것입니다. 사활의 대속을 입었기 때문에 저는 주님의 것 됐습니다.
그러니까 이 영은, 영은 제가 능동으로 제가 영이, 이 영이, 영이 지금 제가 할 거는 뭐입니까? 제가 할 권리는 뭐입니까? 제가 사용하고 제가 할 거는 영 제것은, 영 저의 것은 뭐이 저의 것입니까? 일곱 가지 사활의 대속만 저의 것이라. 저는? 저는 주님의 것이라.
이러니까 자, 제것을 제 마음대로 합니까 남의 것을 제 마음대로 합니까? 이 지금 중생된 영이 일곱 가지 사활의 대속을 제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까 대속을 입은 저를 제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까? 어떻소? 대속을 입은 그것을 제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사활의 대속을 받은 대속을 입은 자체, 자체를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할 수 없어요, 할 수 없어요.
그러면 중생된 영은 뭣만 제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일곱 가지 사활의 대속만 제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알겠습니까? 요걸 똑똑히 알아야 돼요. 대속만 제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이러니까, 대속을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다니? 영은 하나님을 향한 두 가지 영생만 할 수 있어. 그외에는 할 수 없어. 영생만 할 수 있어요. 또 죄와 사망과 마귀에게 대해서 자유만 할 수 있어요. 또 하나님의 공심판에 완전타 인정했으니까 공심판 이 공심판 통과만 할 수 있어, 공심판 통과. 공심판에 자유만 할 수 있어요.
하나님의 공심판에 매이지 안하고 하나님의 공심판에 대해서 자유만 할 수 있어요. 또 하나님께 대해서는 뭐입니까? 화친만 할 수 있어. 화친 생활 할 수 있어. 이거는 암만 해도 좋아요. 밤새도록 해도 좋고, 하루 종일 해도 좋고, 억만 번 해도 좋고, 해도 좋고 해도 좋고 자꾸 얼마든지 좋아요.
그런데 이 사활의 대속을 입은 영육의 자기는 자기 주장대로 할 수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요거 알아요. 없어요, 없어.
이러기 때문에 나 아닌 그놈은-요 예수님의 사활의 일곱 가지 대속만 제가 생각할 수도 있고, 제가 뭐 이리저리 대속의 움직임만 할 수 있고, 그것만 제것이지 사활의 대속을 입은 제것, 이 마음을 제 마음대로, 제 생각대로, 제 뜻대로, 제 욕심대로, 이 자기의 영이나 육이나 이걸 제것으로 알고 제 마음대로 이걸 움직일라고, 제가 능동으로. 제가 이 심신을 능동으로 움직일라고 하면은 고거는 무슨 사람이라요? 그게 옛사람이라. 요거 몰라. 요거 몰라. 요걸 구별 못 해요, 지금. 요렇게 말해 줘도 모르면 어림도 없어.
이러니까, 내것은 사활의 일곱 가지 대속만 내것, 인제 그 다음에 해석할라면 또 복잡하니까. 내것. 일곱 가지 사활의 대속만 내것. 나는 주님의 것. 나는 사활의 대속에 대해서는 자유할 수 있어. 사활의 대속은 내 마음대로 해요. 사활의 대속은 내 마음대로 얼마든지 해요.
대속을 입은 나는 주인이 누구요? 이제 주님 마음대로만 해. 사활의 대속을 입은 나는 내 마음대로 할라 하면 안 돼. 내 마음대로 할라 하면 대속을 내 놔야 돼.
사활의 대속만 내 마음대로 하고 대속을 입은 나는 누가 주권해요? 주님이 주권해요. 알겠습니까? 주님이 주권해.
주님이 주권하는데, 이 자기를 주님만이 주권할 수 있는데 제가 주권할라고 달라들면, 제 마음대로 할라고 달라들면 그놈이 도적놈입니까 참 자기입니까? 그놈이 도적놈이라. 원수라. 그놈을 죽여야 돼요. 알겠습니까? 사활의 대속만 내것이기 때문에 거게 대해서만 내가 자유해. 그것은 뭐 얼마든지 밤새도록 해도 좋고 하루 종일 해도 좋고 하루 천번 만번이라도 할 수 있어.
그러나 대속을 받은 나는, 대속에 팔려서 대속을 입은 나는 누구의 것이라요? 털끝만치라도 자유할 수 있어요? 제것으로 할 수 있어요? 없어요. 할라 하는 그놈이 나 아닌 나 원수인 나 그놈인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요걸 구별해야 돼.
그러면, 나는 그러면 나는 누가 자유해요? 나는 누가 자유해요? 주님이 자유해요.
이러기 때문에 “내가 사는 것은 내 속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 그리스도께서 자유해요. 알겠습니까? 요것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요거 모르면 암만 제가 믿는다고 떠들어 쌓아도 마귀 올무에 걸려 놓으면 못 벗어나요.
이러기 때문에 이 세상이 자꾸 속화되는 대로 나가지 요걸 알면 이 세상을 보면 검은 거 흰 것이 환하게 이질이고 다르기 때문에 갈수록이 세상과 자꾸 멀어집니다. 이러니까 의로운 자는 점점 의롭고 더러운 자는 점점 더러워집니다.
녜, 요렇게만 알고 자꾸 눈을 감고 생각해요, 자꾸 생각해요. 성경 보며 생각하면 자꾸 압니다. 지난밤에 재독할 때도 보니까 “성경은 능히” 너희가 아니라. 개인 “너로 하여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성경이 어떻게 지혜가 있게 하나? 성경이 어떻게 하는데?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래 가지고 어짜는데?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케 하지.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케 해.
온전이 어데 온전이 하나 있습니까, 온전이 하나입니까 둘입니까? 온전이 둘이 있을 수 있습니까 하나뿐입니까? 하나뿐이라. 하나님 한 분만이 온전해. 이거는 온전이 우리가 어떻게 온전이 돼? 온전 속으로 들어가, 온전 속으로. 온전한 그분으로 말미암아 온전돼 버리요. 이것이 피조물이면서 하나님화돼 버리는 거라.
이게 성화라.
“모든 선을 행하기에” 선은 뭐인데? 하나님 중심 행위를 하는 데에 온전케 해.
“하나님의 중심 행위를 하는 데 온전케 하려 함이라” 그러면 행위가 온전타 말이요 행위를 할 수 있는 실력이 온전타 말이요? 행위를 할 수 있는 실력이 온전타 하는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구원에 완성인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 세상 껍데기 자꾸 날뛰면은 안 돼요. 자꾸 성경을 읽으며 자꾸 파고 들어가요.
성경이 가르치는, 성경을 찾아 자꾸 성경을 따라 들어가요. 성경을 따라 들어가면 하나님 만납니다.
지난밤에는 권사님들은 다 나왔고, 목사님들도 다 나왔고, 장로님들도 장로님들은 열 분 나왔고 했습니다.
하루 삼십 분 기도 놓지 말아요.
성경을 봄으로 기도함으로 그 결과를 봐서 알 수 있어. 마귀 기도 했는가 마귀에게 붙들려 성경 봤는가? 성경을 보면은 자기 심령이 자꾸 밝아집니다.
하나님에게 대해서 똑똑히 알아져요. 자기에 대해 자꾸 알아져요. 자기에 대해 자꾸 알아지면은, 자기를 자꾸 똑똑히 알아지면은 잘났어요 못났어요? 저○집사? 어? 자기를 자꾸 성경 보며 기도하면 자기 보여지니까 자기는 잘났어요 못났어요? 자기는 말이요 보니까 둘이야. 아주, 아주 더럽고 못났는데 그놈은 침을 받고 죽여버리면 싶어요. 미워서 못 견디겠어요. 또 자세히 들여다 보니까 참 좋고 곱고 아름다워요. 뭐이냐? 예수 안에 있는 새사람으로 구속받은 자기는 아주 이렇게 좋고 아름다울 수가 없고 예수님의 구속 밖에 있는 거는 당장 죽여야 되겠어, 그거는. 일시라도 용납을 못 하겠어.
이러기 때문에 성경을 보고 기도를 하면은 자기가 둘입니다. 죽일 놈도 있고 살아서 기를 자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는 살아서 자꾸 길러야 되겠고 하나는 자꾸 죽여야 되겠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교회는 살인소요 구인소입니다. 이 설교는 오늘 아침에도 사람을 죽이고 사람을 살립니다. 참사람을 살리고 옛사람 그놈은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