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09 11:19
영광,기쁨,평화, 3가지는 내 할 일
1987. 12. 27. 주일오후
본문:누가복음 2장 14절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예수님은 신성을 가지신 참 하나님이시요 또 인성을 가진 참 사람이십니다.
성부도 신성이신 하나님이시요 성령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성부와 성령의 하나님이 예수님의 신성의 이 영광과 역사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이래서 모든 영계나 물질계의 피조물이 다 예수님의 신성으로 인하여 주를 삼고 소망하게 되었고 또 모든 천상 천하에 수많은 피조물들이 있지마는 예수님의 인성이신 그 피조물의 영광과 역사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이래서 하늘에 있는 권세와 땅에 있는 권세를 다 예수님에게 상속시켰고 예수님은 하늘에 있는 권세와 땅에 있는 권세를 다 상속받았습니다. 그런고로 사람을 심판하는 권세가 예수님의 신성에 있고 그 인성에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들이 소망하는 그 소망이 예수님의 인성에게 있고 인성으로 말미암아 신성에게 있습니다.
이래서 다 같은 신성이나 예수님의 신성과 성부의 신성과 성령의 신성이 다르고 또 모든 피조물의 존재와 예수님의 인성의 존재가 다 피조물이지마는 그 영광과 직위가 각각 다릅니다.
다른 그 이유는 그 하신 일이 영계에 있는 모든 존재들이 꼭 같이 다 감화를 받고 은혜를 입어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존재로서 통일됐습니다. 이래서 알파와 오메가가 되는 하늘나라인데 이 나라에서도 영원히 하나님에게 영광 돌리는 모든 존재들이 다 되었습니다.
영광 돌린 존재들이 됐다 말은 영계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에게 한 마음 한 뜻 한 모든 욕망으로 다 하나님에게 감사와 찬송과 소망을 같이 가지게 됐습니다.
물론 이 전에도, 예수님이 도성인신하시기 전에도 하늘나라는 분쟁이 있거나 무슨 서로 이질적인 그런 것이 있는 거는 아니고 다 통일된 나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도성인신하신 이 역사로 인하여서 영계는 다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영광의 나라가 됐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더 확실히 깨닫고 더 숭배하며 찬양하며 높이며 존귀히 여기고 소망하고 기뻐하는 이런 한층 더 온전해지고 깨끗해지고 거룩한 그런 영계가 되어졌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더욱 더 좋아졌습니다.
또 이 물질계로 있는 우주도 예수님의 탄생을 인해서 다시 새 소망이 생기게 되었고, 또 자체들과 모든 그 움직이는 생애 방편과 그 모든 것이 다 완전히 새롭게 돼서 갱신하게 됐습니다. 다시 아주 깨끗하게 새로워졌습니다. 그러고 새로운 능력을 받아 가지고서 다 새생명으로 영생하게 됐습니다. 이것은 다 예수님 한 분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하신 세 가지 일,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셨고 땅에서는 그 은혜를 입어 모두 말할 수 없는 쾌락과 만족을 가진 모든 존재들이 되었고 이럼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화평이 이루어져서 먼데 있는 것이 가까워졌고 둘이 하나가 되어서 먼저 창조주와 피조물이 합하여서 하나가 되어졌고 또 영계의 모든 것과 물질계의 모든 것이 하나가 되어졌고 또 물질계에 있는 모든 각 종류들이 다 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화를 이루어서 하나가 되어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모든 피조물의 다 구주십니다. 그래서 빌립보 2장 9절 이하에, 그는 죽기까지 복종하였으니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고 모든 존재들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경배하게 하였고 또 그들이 다 자원하는 그 중심에서 주님을 다 자기의 주라 확실히 인정하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게 됐습니다.
모든 존재들이 주님이 이렇게 도성인신하셔 가지고서 그분이 역사하시는 그 일이 하늘에는 영광으로 충만하고 땅에는 기쁨으로 충만하고 그 모든 것이 영원무궁토록 다 평화 가운데에서 영생하게 되었기 때문에 평가적으로 아무래도 예수님 외에 믿을 이가 없고, 의지할 이가 없고, 맡길 이가 없고, 바라볼 이가 없고, 그의 인도와 그의 모든 도우심을 바라볼 거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하기 때문에 평가적으로 다 주라 시인하여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리게 했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하신 것이 오전에도 말한 거와 같이 사랑과 희생 이 두 가지를 가지고서 이 세 가지 결실을 이루었습니다.
이랬는데 빌립보 2장 5절에는 말씀하시기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하고서 예수님께서 도성인신하셔 가지고서 역사하신 그 모든 것을 간추려서 강령적으로 말했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말하기 전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하는 말은 우리들도 이 중보자이신 완전자이신 이 중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런 모형적 걸음을 걸어서 예수님은 원형이라면 우리는 그와 꼭 같은 모형, 예수님은 선생님이라면 우리는 그 제자, 예수님과 같은 그런 생애를 걸어서 예수님과 같은 그런 성질의 이 영광, 그 성질의 모든 것에 주는 기쁨, 또 그 성질의 모든 것이 평화하게 할 수 있는 이런 것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가능하다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과 같이 이렇게 우리가 그 하신 일을 우리도 해서 성공을 한다는 그 일은 얼마나 그거는 참 말로 다할 수 없는 지극히 큰 영광이요 구원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전에도 증거한 대로 우리는 평생 세상을 떠날 때까지 우리가 노력할 것은 이 세 가지를 우리가 목표하고 열매를 맺도록 그렇게 언제든지 뭐 바쁠 때나 틈날 때나 어떤 그 환경에 현실에 처하든지 그 현실은 이 세 가지를 만드는 내 일터라, 이 세 가지를 만드는 나의 무대라, 이 세 가지를 만들어 열매 맺게 하는 농장이라, 자기의 처소라, 구원을 이룰 모든 구비한 자기의 구원 처소라 그렇게 우리는 생각하고 살아야 합니다.
이래서 그 안에 있는 세부의 뜻을 생각하기 전에 강령적으로 우리는 항상 생각해서 잊어버리지 말고 이 강령적으로 이 세 가지를 항상 생각하고, 그러면 그 세 가지를 생각하는 가운데서 우리가 다시 눈감고 새김질하고 또 마음을 써서 새김질하는 데에서 거게서 구체적으로 세부적으로 이렇게 자꾸 알아 나가야 되고 또 소망해 나가야 되고 노력해서 건설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이래서, 그저 우리는 늘 생각하기를 어데서든지 ‘영광’ 기억합시다. 어데서든지 ‘영광 나는 이 자리에서도’ 교회라 하는 것은 지상 천국입니다. 교회라는 것은 땅위에 있는 천국이오. 또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서 새 하늘과 새 땅에 가서 사는 그곳이 이 물질로 장소성 있는 물질 이 껍데기에 있지 안하고 물질로 되어 있는 장소성 물질성 이 속에 신령한 세계니 곧 진리의 세계요, 영감의 세계요, 예수님이 모든 것을 완료해 놓으신 이 완전 승리 성공 완료의 완전한 세계입니다. 그 세계가 곧 교회입니다. 교회를 그렇게도 말하고, 또 땅위에 있는 것은 교회라 이렇게도 말합니다.
이래서 교회는 눈으로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교회가 있고 육안으로 보지 못하고 심령의 눈으로 믿음으로 볼 수 있는 그런 신령한 교회도 있습니다.
하늘나라 새 하늘과 새 땅에는 거게는 모두가 다 주초는, 열두 기초가 있는데 십이 사도들이 열두 기초가 되어 있고 또 열두 진주문이 있는데 그 진주문들은 십이 지파가 진주문이 돼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은 다 교회를 가리켜 말합니다.
이렇게 교회는 뭘로 된 것이 교회인가? 교회는 하나님과 이 피조물과의 결합을 이 친합을 가지고 있는 곧 예수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돼 가지고 있는 그것이 교회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피로 살아나고, 영감으로 살아나고, 진리로 살아난 그 모든 사람의 영과 또 부활한 신령한 육,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영과 또 그의 심신으로 돼 있는 육의 그 신령한 면 그런 것들을 합해서 교회라 그렇게 말을 합니다.
교회는 그래서 하나님과 진리와 사람이 합해서 하나로 되어 움직이고 있는 그것이 교회입니다. 그것을 하늘나라라고 그렇게 말씀을 할 때도 있고, 교회라고 할 때도 있고, 무궁세계라고도 할 때가 있고, 거게는 생명 세계라 또 사랑의 세계라 그렇게도 할 때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항상 생각하기를 사람이 타락해서, 영은 주격이요 이 육은 피소유격이기 때문에 육보다 영이 확고하고 가치 있고 권위 있건마는서도 타락해서 영은 완전히 잊어버린 상태에 있었고 또 마음은 가지고 있었지만 마음은 보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 있었고 다만 이 고기덩어리, 피와 살로 되어 있는 고기덩어리 이것만 보고 있기 때문에 이것만 위주로 표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귀는 자꾸 우리 사람을 유혹시켜서 ‘네가 육안으로 봤나, 네가 손으로 만져봤나, 네가 입으로 먹어봤나?’ 자꾸 이 보이는 이걸 가지고서 위주를 하고 주님은 보이는 것 속에 보이지 않는 심령으로 보는 이것이 더 실존적이요 더 귀중하고 심령으로 보는 것은 없어지지 안하고 이거는 영원한 것이고 육안으로 보는 것은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자꾸 이 천한 데에서 귀한 데로, 약한 데에서 강한 데로 이렇게 자꾸 성장시키고 진출시키고 향상을 시킬라고 애를 쓰는데 마귀란 놈은 자꾸 끌고 밖으로 나가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우리가 이 세상에 있어서 예수 믿는 사람들, 우리 서부교회 교인들이 있고 우리 총공회라는 모든 교회들이 있고 또 여러 각 교파의 모든 교회들이 한국에도 많이 있고 세계에도 많은 교회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교계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 교계가 예수님으로 말하면 지극히 높은 곳이요 곧 우리들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교회가 이 세계 교계가 볼 수 있는 이 교회인 동시에 볼 수 있는 교회 속에 우리의 심령으로 듣고 보고 아는 그 신령한 교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육체로 육안으로서는 지금 뭐 이 서부교회에 지금 예배보는 이 가견적 교회밖에는 못 보지마는서도 우리의 심령으로는 벌써 이게 아니고 ‘부산에 몇 교회가 있다, 지금 오후 두시에 예배보는 교회는 몇 교회가 있고 또 일곱시에 예배보는 교회는 몇 교회가 있다, 어떤 교회는 어떤 그 모양으로 자라가고 있다, 어떤 교회는 넓다, 동글다, 길다, 뾰족하다, 깨끗하다, 좀 추하다.’ 하는 그런 것으로써 우리 심령으로 보는 그런 교회들이 있습니다.
이래서 이 세상에서 볼 수 있는 교회와 보지 못하는 신령한 교회를 합해서 땅위에 있는 교회라 이렇게 말하는데 이 교회가 우리들로 말하면 우리가 이 교회에 영광을 채워야 할 우리들의 천국입니다.
이래서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높은 곳에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그 영광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하신 일입니다. 그러면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들은 이렇게 볼 수 있는 교회, 또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신령한 교회, 온 세계 교회가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채워야 할 높은 곳이라 그렇게 우리는 생각하면 바로 아는 것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두 가지를 가지고서 지극히 높은 곳에 하나님에게 영광 돌리는 그 영광으로 충만케 한 그것이 곧 우리의 구원이 됐고 우리는 우리가 노력해 가지고서 가견적 교회와 불가견적 교회로서 되어 있는 온 세계에 흩어져 있는 모든 교계 이 교계에 그 영광을 채울 것은 우리에게 분담되어 가지고서 우리의 할일입니다.
그러면 지극히 높은 곳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처럼 이 온 세계의 이 모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신령하고 또 물질로 되어 있는 이 교회, 온 세계 교회에게 우리는 주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그 일로 가득 채우는 것이 우리의 할일 중에 첫째라 그것을 언제든지 기억해야 합니다.
손양원 목사님 같은 그런 분도 그분의 그 행한 일을 인해서 그래도 온 세계에 그런 분은 주님에게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그 영광을 세계에 그렇게 채웠습니다.
세계에 채워지기를 어느 정도에 채워졌는지는 모르지마는 온 세계가 동양에 코리아라 하는 데에 손양원 목사님이라는 그런 목사님이 있어 가지고서 이렇게 했단다 하는 걸 가지고서 주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그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또 인도에 있는 산다씽 같은 그런 사람들도 그이의 생애를 인해서 참 세계 교회에 주님에게 영광 돌리는 그 영광이 가득 차게 했습니다. 이래서 그 산다씽 그분의 그 생애를 보고 모두 다 예수님에게 감탄하면서 이런, 예수님은 이런 사람을 만들 수 있다. 그 사람이 주님이 아니면 인도에 무슨 힌두교 교인이라든지 그리 안 하면 불교 교인이라든지 그런 그 잡종교의 한 종교인으로서 끝을 마치고 말았을 터인데 주님이 그 사람을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빛이 되어서 주님에게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주님에게 대해서 모든 듣고 본 성도들이 감탄을 하면서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영광 조성을 그는 하는 데에 전력을 기울이다가 갔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때 한 삼십 년 전에 산다씽전을 보고서 그 산다씽이라는 그 사람이 어데 가 있는가 할 때에, 그때 벌써 저 구미 지방을 돌아서 자기가 마지막에 그 몸에 중한 병이 들어 가지고서 참 촌보를 하기에 어려울 때까지 그는 복음을 가지고서 외치면서 사람들이 가지 않는 그런 곳을 찾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다가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다.
그런데 그분이 어데로 갔는지 없어져서 그분을 찾으려고 세계에 있는 교회들이 많이 애를 썼지만 그를 찾지 못하고 마지막에 결론지우기를 그분은 원청간 참 땅위에서 엘리야와 같고 에녹과 같은 그런 거룩한 성자 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는 산 채로 승천했다 다 그렇게 하는 말을 그때 들어서 책자들에 ‘산 채로 승천했다’ 그렇게 했었습니다.
했는데, 그 오랜 후에 산다씽 전기 끝에다가 더 부록으로 조금 덧붙여 가지고서 그분이 눈에 보이지 아니한 지 사 년 만에 그분의 해골을 찾았다. 해골을 찾았는데 찾으니까 저 서장이라는 곳에 사람이 가지 않는 그 아주 맹수의 곳이요 아주 그런 높은 산, 춥고 높은 산인데 그곳에 가 가지고서 기도하다가 그분이 세상을 떠나서 그분의 그 떠난 해골이 발견됐다 하는 것을 기록한 것을 제가 봤습니다.
그분이 평소에도 말하기를, 자기가 어떤 그 히말라야 산 속에 기도하러 들어가서 어떤 것을 만났는데 보니까 털이 하야이 나서 아주 흰털 난 그런 짐승같은 동물이 하나 있었는데 그게 무엇인가 해서 가까이 가니까 사람이더라고.
사람인데, 그분이 거게 기도하러 들어와 가지고서 거게서 기도하다가 죽으려고 작정을 하고 거기서 기도하고 있었는데 그 산다씽이 그때에 자기가 성경에 대해서 의문되고 모르는 것이 있는 것은 그때 그분에게 가 가지고 물어서 다 성경 해석을 바로 배워 가지고 깨닫고 또 나와 가지고 얼마 지나다 보니까 성경 모르는 것이 있어서 다시 그분을 찾아 가지고서 성경을 배우려고 찾아가니까 벌써 그분은 기도하다가 세상을 떴고 해골만 남아 있더라는 것을 산다씽 전기에다가 본인이 기록한 것을 제가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래서, 그런 사람들은 다 자기가 살아서도 그랬고 또 자기의 죽는 죽음을 가지고도 이 교계에 주님에게 영광 돌리는 그 영광을 채우는 이 일을 전공하고 전무하다가 갔습니다.
이것은 우리도 이 걸음을 걸어가야 하고 우리가 땅위에 사는 것도 각각 각 분야에서 각종의 생애를 하고 있지마는서도 어느 생애든지 그 생애에서 우리의 목표는 모든 천국인 이 세계 교회에 주님에게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이런 일을 우리가, 그저 허영과 허욕을 가지고서 하지 말고 자기 힘에 알맞게 하나님이 자기에게 은혜 주시는 대로에 그 분량대로 역량대로 힘써서 하나님의 교회에 주님에게 돌리는 감사의 이 영광이 다문 얼마라도 나로 말미암아 한 구역이라도 한 구멍이라도 막고 가는 우리가 되도록 우리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이래서 참 그분들이 전해 줌으로써 사람들에게 기쁨이 온 것, 토마스 목사 그이도 그가 우리 나라에 와 가지고서 복음을 전할 때에 그때에 이해를 못 하고 그를 적인 줄 알고 죽일라고 할 때에 다 죽고 그가 비로소 하나 육지에 상륙을 했는데 상륙해서 올라올 때에 그때에 그것을 도끼로 가지고서 쪼아 죽일라고 달라드니까 그래 말하기를, 약간은 우리 나라의 말을 배워 가지고서 ‘나는 도끼에 맞아 죽어도 좋으니까 이 성경책ㅡ한 권을 주면서ㅡ이 책을 자기가 가서 읽고 이 책만 전해 달라. 이 책을 가서 읽고 책을 전해 달라.
나는 죽어도 하늘에 소망이 있기 때문에 상관없다.’ 하고서 그는 죽었다고 합니다. 그것이 그래서 우리 나라에 제일 첫 순교자가 토마스 목사입니다.
그랬는데, 그분이 그 책을 들고 와 가지고서 다시 읽고 읽고 연구하다가 그 사람이 둘째로 우리 나라에 순교자가 됐고 우리 나라에 목사로서 목회를 그분이 하고 전도하다가 떠났습니다.
이분들도 다 그렇게 그 생애한 것이 어짜든지 자기는 예수님의 이 도성인신하신 이 희생으로 말미암아 받아진, 예수님이 사랑과 희생으로 끼쳐 준 이 복음을 가지고서 자기도 과연 원수되어 있는 모든 사람에게 이 기쁨을 안겨주고 그들이 기뻐 즐거워할 수 있는, 이 절망된 자들에게 소망을 주고 영원한 죄인들에게 다시 양털같이 희어지는 의인되는 이 길의 소망과 또 영원한 사망 속에 있는 자를 영생을 주어서 기쁨을 가지게 해서 이런 사람들이 다 이 상대방에게 자기를 희생하여 기쁨을 가지는 이 소망 중에 기뻐할 수 있는 이런 사람들을 만들기 위해서 다 자기의 일생을 바친 그런 모든 사람들의 이 땀과 피와 그의 모든 해골들이 뭉쳐 가지고서 온 것이 우리에게 복음이 돼 가지고 우리가 예수 믿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참, 모두 다 우리가 생각하면 저도 예수 믿었는 데에 내가 철몰라서 알지 못하는, 그 모든 하나님의 종들이 와 가지고 무슨 이유인 줄도 모르고 많은 희생을 하고 많은 그렇게 눈물로 간구를 하고 내가 이해 못 하는 그런 수많은 그런 사랑의 그 희생을 했기 때문에 내가 빛을 받게 됐고 믿게 됐고 그저 그분들이 떠날수록이 떠나고 난 다음에도 자꾸 우리 속에서 역사해서 우리에 기쁨과 구원이 되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참 누가 말하기를 우리의 구원은 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무르녹은 모든 종들의 그 피와 생명으로 얽혀 가지고서 우리에게 온 구원이라 그렇게들 다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받은 달란트가 많든지 적든지 다 기울여서 우리도 그 절망된 자에게 소망을, 원수된 자에게 화친을, 멸망된 자에게 생명을 주는 이 일을 해서 어짜든지 영광과 기쁨, 어데서든지 자기는 이 기쁨을 건설하는 것이 자기의 사명이라고, 또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영광을 건설하는 것이 자기의 사명이라고, 둘이면 둘이 화합하고 서이면 서이 화합해서 이렇게 평화를 마련하는 것이 자기의 사명인 줄 이래 알고 우리들은 어떤 처지에서라도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런데 우리가 만일 아직도, 아직도 내가 내 중심으로 나를 위해서 갑과 을이 서로 이간 붙여 가지고서 그 사이가 서로 벌어짐으로 나와 합해지게 하는, 사람과 사람을 이간 붙여 벌어뜨려 자기 욕심대로의 그 욕심을 채우려는 이런 일을 우리가 꿈에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꿈에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런데 우리가 그저 예사롭게 생각하고 말 한 마디 가지고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불화를 일으키고, 내가 행동 하나 가지고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불화를 일으키고, 내가 사소한 그런 물질이나 사건이나 그런 것 가지고서 사람과 불화를 일으키는 그런 일을 우리가 하는 것은 참 이것은 못할 일이요 우리에게는 도무지 맞지 않는, 맞지 않는 원수의 생애인 것입니다.
이래서 어데서든지 ‘나도 땅위에 사는 모든 생애는 그저 영광, 기쁨, 평화 이 세 가지가 나 할일이라’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영광을 돌리는 것도, 영광을 만들어서 영광으로 충만케 하는 것도, 영광을 자기가 조그만한 콩쪼가리만한 영광이라도 영광을 만들라고 하는 데에는 사랑과 희생의 자본이 안 들고는 안 됩니다.
또 자기가 거리 먼 상대방을 이렇게 기쁘게, 그로 하여금 속속들이 기쁘게 하는 데에는 양이 많든지 적든지 우리에게는 사랑과 희생이 아니고는 상대방을 기쁘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상대방을 기쁘게 하는 이것이 하늘나라에 실력이요 이것이 하늘나라에서는 다 환영을 마련하는 것이요 그것이 모든 사람이 다 소망하고 대우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나와 모든 사람이든지 다른 사람과 모든 사람이든지 이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 화평을 만드는 것, 가정과 가정 사이에 화평을 만드는 것, 식구와 식구 사이에 화평을 만드는 것, 교회에 장로와 장로 사이에 화평을 만드는 것, 권사와 권사 사이에, 집사와 집사 사이에, 교인과 교인 사이에, 반사와 반사 사이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를 만드는 화평을 만드는 이것이 우리의 할일이지, 이 화평을 깨뜨려서 자기에게 무슨 유익이 왔든지 돈이든지 권세든지 지위든지 사업이든지 무슨 유익이 왔다 할지라도 화평을 깨뜨려서 화평을 녹혀서 자기에게 무엇이 수입이 됐다고 하면 그거는 두말 할 것 없이 다 사망이요 영원한 고통이요 멸망이요 후회할 것들이지 자기에게 유익된 것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영광과 기쁨과 평화를 조성하는 것이 우리들이라, 우리는 이 세 가지를 건설할 자들이라, 우리는 교계에 주님의 영광을 건설할 자들이요 또 우리는 모든 나와 관계 없는 상대방들에게 없어지지 안할 기쁨으로 충만을 일으키는 그 건설자들이요 우리는 모든 존재와 존재 사이에 화평을 건설하는 그것이 우리의 사명인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 서부교회서는 지금 이 서부교회 주일학교를 모든 사람들이 어떤가 보고 시찰하러 오는 사람도 있고 또 견학하러 오는 사람들도 있고 또 견학하러 한번 왔다가 유익이 있으니까 두번 오고 세번까지 오고 그 이상도 온 사람들이 있고 이래서 이 서부교회를 방문한 그 방문의 수가 지금 팔백 얼마인데 아마, 얼마요? 팔백구십사 차례가 됐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저는 항상 마음이 쪼립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한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셔서 모든 세계에 지금 이것으로나마 이렇게 모든 교계에 주님에게 돌리는 영광을 돌리려는 그 사명을 우리가 맡아 놨기 때문에 그렇게 벌써, 여섯 사람이 오면은 구백이 되는데 이렇게 그 큰 교회들이 오고 세계에서 오고 이렇게 하는 이런 입장에 있으면서, 그들이 왔다가, 과연 와서 보니까 참 이는 하나님의 은혜요 능력이요 감탄이라, 어떻게 이 사람들이 이렇게, 무슨 돈을 주는가? 돈도 주지도 안하고 이것은 순전히 그리스도의 이 사랑에 무르녹아 가지고서 이와같이 한다고 하니 감탄된다고 그렇게 은혜를 받고 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데, 제가 어떤 한 교회에, 우리 진영 교회인데 그 교회 반사들이 와 가지고서 오히려 실망을 하고 가서 ‘뭐 소문에 그렇더만 가 보니까 별것 없고 우리도 다 그렇게 할 수 있겠더라’ 이래 가지고 그 여반사 한 분이 혼자 말하기를 ‘별것 없네’ 하고서 실망을 하고 갔다는 그 말을 제가 듣고 참 마음에 오래 동안 그것이 삭아지지 않습니다. 지금도 잘 삭아지지 않습니다. 그 마음에 그들이 왔다가서 실망을 우리가 그들에게 준다면 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루는 것 아닙니까? 이러기 때문에 제가 이 주일학교 반사들에게도 말하고 또 자꾸 모든 사람들에게도 말을 해서 우리가 다 반사가 되고 보조반사가 되고 다 반사에 협조자들이 되어져서 그 먼데서 오는 그 사람들이 볼 때에 먼저 그 양을 보고 그들이 은혜를 입겠고, 또 둘째로는 모든 질서를 보고 은혜를 입겠고, 또 셋째로는 반사든지 그 모든 학생들이든지 이 주일학교에 관련된 반사나 학생들의 그 사람됨이 어떠하고 행동함이 어떻다 하는 것을 그들이 보고 감화를 받아서 주님에게 영광을 돌린다면은 그 일이 얼마나 크고 우리로서는 얼마나 참 가치 있는 일이요 떳떳한 일이요 할 의무와 본분을 한 일이 되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우리 이 서부교회는 이거 참 말로 다할 수 없는 이 큰 직책을 받았는데 이 등대의 등불이라 하는 것은 높아야 멀리 비취고 효력을 내는 것인데 이 낮아지면 안 보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일년 이태는 거석하지마는 벌써 우리 주일학교가 이렇게 이상하게 이름이 나 가지고, 우리는 날라 한 게 아니고 이상하게 나 가지고 지금 우리 서부교회를 방문한 것이 얼마 됐습니까? 몇 해 됐어? 칠십구년도부터라고 하니까 벌써 팔년 한 구년 됐는데 지금 구년 된 오늘에 지금 더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이런 일이 더 충만하게 되면 참 이는 등대가 높은 것인데 벌써 구년이 됐는데 다 오래 동안 그래 놓으니까 낡아지고 그때에 힘있게 일하던 반사들은 다 늙어지고 쇠해지고 하니까 힘이 줄어지고 이래서 우리 서부교회는 지금 쇠퇴한 가운데 있습니다. 이러니까 바다에 흉흉한 바다 속에 있는 그 등대가 빛을 많이 발하지 못하는 거와같이 이렇게 많이 쇠퇴한 가운데 있습니다.
이래서 이번 성탄 때는 어떻게 해서라도 그저 그래도 임시라도 해서 한번 앉아 있는 그 형제들을 좀 자리 뜀이라도 뛰도록 한번 해 보자 그래 가지고서 이십오일날 그날 모인 학생 수는 정확한지는 몰라도 만이천오백이 모였다고 하니까 이제 그 숫자로 말하면 그렇게 많이 쇠퇴해지지는 안한 셈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뭐 그걸 누가 생각이나 가졌습니까? 생각 안 가졌습니다. 아이가 하나 유괴돼 가지고서 유괴된 아이 그것이 그 부모네들이 말하고 소문이 자동적으로 치안본부인 이 서에, 서부경찰서에 그것이 고발이 되었고 그 고발된 그것을 그 형사가 와 가지고 저한테 와 가지고, 동에 와서 그 소문을 듣고 또 그 조사를 하고 저한테 와 가지고서 얘기하다가 그 된 사실을 얘기를 잠깐 했는데 그분이 서에 들어가 가지고서 거게서 서부교회가 이런이런이런 교회 이런 일이 있다 하는 것을 사실대로 얘기하니까 그때 그 출입 그 신문기자가 거기 있다가 그 소식을 듣고 그래 신문에 내 가지고 그것이 이렇게 어째 퍼져 가지고서 이렇게 자꾸 퍼쳐서 많은 사람들이 이 시찰도 오고 견학도 오도록 이렇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데 우리들은 그저 우리에게 맡긴 면으로 우리가 다른 면도 하지마는 이 면에 큰 사명을 가지고 있으니까 이 면으로 우리는 이 교계에 주님의 영광이 가득 차도록 주님에게 영광 돌릴 수 있도록 주님에게 영광 돌릴 수 있도록 이 일을, 또 이것이, 이 노력이, 열이 오든지 다섯이 오든지 혼자 오든지 여게를 소망을 두고서 ‘이 서부교회에 이 어린이 교회를 가 찾아가 보자’ 해 가지고서 왔던 그들이 이곳에 와 가지고 과연 새로운 힘을 얻어 가지고서 ‘나도 하면 되겠다.
나도 이 사명이 있다.’ 해서 새로운 힘을 얻어 가지고서 그 사람들이 여게서 기쁘게 힘을 얻어 가지고서 돌아간다고 하면은 그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이겠습니까? 이래서 벌써 이상하게도 우리 남한에 있는 교회는 이 서부교회로 말미암아 시동이 걸려진 그 주일학교들이 온 남한에 다 곳곳에서 일어나서, 아마 이 서부교회가 일어난 그 이후로 남한에 주일학교는 수백만 명이 지금, 수십만명이 아니라 수백만 명이 불은 줄 압니다.
이번에도 육백만이라고 하는데 육백만이라는 그것은 어른들만 말하지 아동을 말하지 안했는데 우리 주일학교가 그 후로 불은 것이 그 몇백만 됩니다, 몇백만.
분명히 몇백만 된 것은, 왜? 제가 여기 소문들은 대로 여기 교회들도 다 주일학생이 삼 배 사 배 거의 다 불어 가지고서 있다는 말을 들을 때에 그것이 얼마나 주님에게 기쁨이 되겠습니까? 우리는 꼭 서부교회서만 할 게 아니라 서부교회가 어떻게 한국에 있는 학생들을 다 구원하겠습니까? 이러니까 이 서부교회는 서부교회대로의 본분을 가지고 구원하고 이 운동이 전국에 퍼져 가지고서 전국에 있는 주일학교들이 다 힘을 써서 여러 수많은 그 교회들이 한목 힘을 써 가지고서 어린이 구원이 이게 일어난다고 하면은 주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고 우리에 대해서 만족하시겠습니까? 그런고로 우리는 이 면으로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온 교계에 주님에게 영광 돌리는 이 영광을 부절히 우리가 노력해서 건설해야 되겠고 또 우리가 이 면으로, 다른 면도 하지마는 이 면으로 우리와 관련된 모든 접촉하는 사람들에게 참 기쁨을 그들에게 넣어주는, 기쁨을 그 속에서 움트고 불붙게 해 주는, 이럼으로 말미암아 모두가 서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이 복음 운동이 하나가 되어서 온 어린이 구원 운동이 우리 남한에 가득 차면 이것이 지금 뭐 동양에 양사방 퍼지고 서양에까지 퍼져 나가서, 제가 들은 데에 저 미국에서도 이 서부교회로 인한 이 말이 났어서 한국에는 어린이가 어떻단다 이래 가지고 그 미국에서 저거 아는 대로는 그 지역지역에 어린이 구원 운동이 크게 이제 힘을 내서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하는 데에는 사랑과 희생이 없으면 안 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나 할일은 내가 작든지 크든지 하나님이 내게 힘 주시는 대로, 아무도 몰라도, 아무도 몰라도 나 혼자라도 주님만 보시는 데에 내 힘껏 해서 주님에게 영광 돌리고, 또 마주친 상대방에게 기쁨을 일으켜 주고, 또 이 모든 것이 다 합해서 평화를 이루도록 이렇게, 영광 건설, 기쁨 건설, 평화의 건설자들이 우리가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루는 이런 일,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없애고 다 원수의 이 악한 그 악들이 가득 차도록 하는 이런 일, 평화가 없어지고 이와같이 다 분쟁되고 분열되고 이렇게 되어지는 일 이런 일을 우리가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것이 어쩌든지 이번 성탄에서 우리가 확실히 작정하고, 오늘 주일날 작정하고 ‘이 세 가지를 해야 되겠다’ 세 가지 이것을 할일이라 해서 꼭 이 일을 우리가 힘써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뭐 들에 피는 그런 모든 참 쪼끄만하게 쌀내끼만씩한 꽃도 많은데 그런 꽃이 그거 뭐 뉘가 많이 봐 준다고 핍니까? 또 뉘가 알아 줍니까? 피었는지 졌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도 다 본분대로 자기를 만들어 주신 조물주를 향하여서 때가 되면 잎나고, 때가 되면 잎이 펴고, 때가 되면 꽃이 맺고, 또 향기를 피우고, 이러다가 또 없어지면, 추위 만나면 없어지고, 또 때가 되면 또 피고 이렇게 하는 것처럼 우리들도 그저 크든지 작든지 요 세 가지를 작정합시다.
‘나는 어데서든지 주님에게 영광 돌리는 일만 나는 하겠다, 나는 상대방에게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기쁨을 내가 상대방에게 다문 얼마라도 나는 주고 가는 사람이 되겠다, 나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불화를 깨뜨리고 화평을 이루는 이 일을 하다가 가겠다.’ 하는 요것을 우리가 작정을 하고, 이 일을 이루는 데에는 사랑과 희생뿐입니다. 위로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래로 우리들을 사랑함으로 주님이 양면을 걸친 이 사랑으로 당신이 희생하는 데에서 이 열매는 맺어졌습니다. 우리들도 이렇게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이 사랑에서, 우리가 주의 법도대로 희생하는 데에서 이제 이 결실은 맺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함으로 그분은 세 가지 희생했습니다. 세 가지 희생한 것은 당신이 자유를 희생했습니다. 그분이 이 일을 이루는 데는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나도 안 했습니다. 영원히 그분은 당신의 자유를 완전히 다 우리 위해서 내놔 버렸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도성인신하신 이 부활하신 주님은 인성을 입고 부활했는데 인성 입은 부활은 영원히 당신 마음대로는 털끝만치도 못하게 돼 가지고 있습니다.
털끝만치도 안함으로써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기로 그렇게 하나님 아버지와 계약해 가지고서 당신은 영원히 자유를 내놨습니다. 자유를 내놨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죄와 사망과 마귀에게서 해방의 자유를 얻고 공심판에서 자유를 얻게 된 것입니다. 자유를 희생했습니다.
당신이 모든 생명을 희생했습니다. 당신이 생명을 희생했어. 당신이 죽음을 자취했어. 우리도 죽지 안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꼭 이 세 가지를 이루는 데에는 주님과 형제를 사랑함으로 내 맘대로 하면 안 됩니다. 주님과 형제를 사랑하는데 내 오기대로, 내 기분대로, 내 성질대로, 내 형편대로,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전부는 다 멸살이요 사망뿐이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래서 주님은 당신의 자유를 이와같이 희생했으니 우리도 자유를 희생해서 어데서든지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형제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영광을 위해서, 서로 화목하도록 하기 위해서 내 자유를 거게서 다 죽일 때에 거게서 비로소 참 하나님의 영광의 움이 트고, 거게서 상대방에게 기쁨을 다문 얼마라도 주기 시작을 할 수가 있고, 또 인간끼리 서로 화목이라 하는 것이 이것이 살얼음 모양이라도 얽혀지는 것이지 우리가 자유를 내가 희생하지 안하면은 이 일이 안 됩니다.
또 주님은 생명을 바쳤습니다. 내가 죽을 때에, 내가 죽는 것은 주님은 우리 위해서 대신 죽었기 때문에 우리가 내 중심으로 내 위주로 사는, 악령 악성 악습으로 사는 요것을 죽여야 되겠고, 내 중심 내 좋도록 살라 하면 안 됩니다.
요거를 죽어야 되겠고 피와 성령으로 중생된 새사람을 내가, 완전히 죽여 바치는 산 제물이 되어져야 이 죽음이라는, 죽음이라는 성질의 것이, 죽음이라는 이 종류의 이 제물이 되어지는 이것이 있어야 이 세 가지가 이루어지지 그렇지 않으면 이루어지지를 않습니다.
나머지기 주님이 한 가지 희생한 것은 당신의 모든 부요를 다 희생했습니다.
당신의 지위도 희생했고, 권세도 희생했고, 소유도 희생했고, 욕심도 희생했고, 행락도 희생했고 다 희생했습니다.
이러기에 우리가 나 부릴 권세 다 부리고, 내 영광 누릴 대로 다 누리고, 나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내 대우받을 대로 다 대우받고, 나 가진 것 나 위해서 하고 하면 거게 아무것도 사망뿐이지 생명의 역사는 일어날 것이 아무것도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어짜든지 우리는 이 세 가지, ‘나는 영광을 조성하다가 갈 영광의 건설자다. 모든 절망된 자에게 기쁨을 주는 기쁨의 건설자다. 이렇게 모두 다 원수되어 있는 세상에 나는 평화의 건설자다.’ 아무리 내가 그 가정에 들어가서, 그 가정에 들어가 그 가정이 평화가 되어지면 참 내 할 본분 하는 거고 평화가 안 되어지면 그 일을 위해서 나는 죽는 날까지 힘을 쓰다가 갈 것입니다. 힘을 쓰다 가면 죽고 난 다음이라도 하나님이 반드시 하십니다. 결단코 우리의 수고는 헛되지 않습니다. 없어지는 그런 힘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래서, 이 일을 우리가 건설하는 데는 그저 사랑과 희생 외에는 딴것은 이것을 일으킬 만한 그런 힘도 지혜도 없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