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아버지


선지자선교회 1983.6.3.금새

 

본문 : 에베소서 1장 17절∼19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 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17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우리 주라 말은 우리의 현재와 영원  장래, 또 육과 영, 또 금생의 모든 것과 내세의 모든 것 그 모든 것을 책임을  홀로 지시고 잘 해 주실 그분을 나타내서 우리 주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왜 거기에 내 주라고 단수를 쓰지 안하고 우리 주라고 복수를 쓰셨는고 하니  자기 단독으로 개체가 되면 그만 주님과 상관이 없어집니다. '이웃 사랑하기를  네몸같이 해라 그래야 영생 된다' 그렇게, 율법사가 대답 하고 물을 때에  예수님이 말씀했습니다.

 이것이 돼야 주님도 아버지도 상관이 있지 제가 모든 형제가 다 자기라, 모든  형제의 구원을 자기 구원으로, 모든 형제의 불행을 자기의 불행으로 이렇게 택한  자들이 한 몸이 되고 하나가 되는 이 자리에 나아가서 이것이 돼야 비로소  예수님도 그의 구주 노릇을 할 수가 있고 하나님도 아버지 노릇을 할 수가 있지  그것이 되기까지는 할 수가 없어서 기다리고 자꾸 이 일이 되도록 역사만 하시게  됩니다.

 타락한 이후에 사람들의 멸망된 그 원죄는 그 죄는 본질과 본성이 성질이 어떤  것인고 하니 모든 것 다 떼내버리고 제 단독이 이것을 주장하고 이 위주로 이  중심으로 그렇게 되어지는 그것이 멸망된 원죄입니다. 그 죄악이 들어서 모든  사람을 다 주장하고 지도합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우리의 것이 되어 있는 것과 내것이 되어 있는 것과  비교하면 내것이 되어 있어야 마음에 흐뭇하고 또 자기 것인 그런 감이 실감되고  또 거기에 대해서 애착이나 조심이나 노력이나 그런 걸 기울이지 그만 우리 것이  되면 그만 재미가 없습니다. 전체가 개인주의, 그것을 가리켜서 사욕이라 그렇게  말했는데 이것으로 사람이 죽었고 이것이 사람을 주장하고 사람은 전부 이  본질과 본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자기 잘되는 거는 좋아도 남 잘되는 거는 좋아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싫어합니다. 자기에게 오는 불행은 싫어하지만 남에게 오는 불행은  입술로는 말을 해도, 그것도 상식이 있으니까 입술로는 안됐다 해도 속으로는 그  쾌감을 가지는 것이 인생이라 그거요.

 그러기에 요것은 마귀가 준 것이요 요거는 사망의 본질과 본성인데 하나님이  주시는 것과 생명의 본질과 본성은 이와 반대입니다. 정반 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돼야 주님도 자기 주님이 되지, 또 하나님 아버지도 자기  아버지가 되지 우리의 그 위치에 도달하지 안하고 언제든지 자기 개체, 사욕,  여기에서 움직이고 있을 때에는 저는 주관적으로 하나님에게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가지는 것이지 하나님편, 객관적인 하나님편에서는 아무 그런  계약이 없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 '우리 죄를 사해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전부 우리지 우리가 아니면 연결이  없습니다.

 성경에 우리가 나타나지 안하고 자기라는 개체로 나타날 때에는 살펴보면  거기에는 잘못된 것, 잘못된 것, 또 자기의 책임 지워진 것 거기에 대해서는  개체인 자기를 말했습니다. '내 죄를 사하억 주옵소서' 이렇게, '내가 주님 앞에  이렇게 잘못됐습니다. 내 사명을 못 했습니다. 이것이 내 책임인 줄 압니다.'  그런데 그럴 때는 마귀란 놈은 와 가지고 널펑하게 '우리가 잘못됐습니다.

이거는 우리 죄값입니다. 우리 책임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미워하십니다.

그럴 때는 자기의 개체를 가지고 책임지는 것이 이것이 옳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법은 하나님의 법을 맞이할 수도 없고 또 하나님을 영화롭게  기쁘시게 할 수도 없도록 그 본질과 본성이 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주'  '네가 기도할 때에 누가 너에게 혐의가 있거든 먼저 가서 그것을 해결짓고  하라' 그말은 우리에게 도달하라 그말이오.

 '네가 믿음이 있으면 이 산을 바다에 던지워져라 할지라도 네 명령대로  순종한다. 그런 데에는 믿음으로 해야 된다.' 그래 놓고 난 다음에 그다음에  덧붙여서 '네가 누구에게 혐의가 있거든 그것을 용서해 줘라' 용서해 주라 말은  잘못된 것을 얼마든지 허용하고 관용하라 그말 아니오. 허용과 관용, '뭐  잘못돼도 괜찮다. 또 그거 뭐 괜찮다.' 용납을 시키는 그게 아니고 그 용서라는  것은 거기에서 해방시키는 것을 가리켜서 말한 것입니다.

 혐의라는 것은 네가 볼 때에 그 형제가 믿음에 이르지 못하고 구원의 하나님의  축복에 이르지 못하는 그런 것이 형제에게 있는 것이 보여 지거든 그말이오.

보여지거든 네가 그것을 내비두고 그 형제를 가서 거기에서 해방을 시켜 줘라 그  형제를 네가 아는 실패를 네가 돕고 아는 구원을 그에게 전해 주도록 네가  노력을 해라.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너를 사하신다 그러면 어두움에서  하나님 아버지가 너를 해방을 시켜서 이제는 네가 생각하는 것이나 원하는  것이나 구하는 것이나 그런 것이 똑바로 돼서 네가 바른 것을 구하게 된다.

 요한의 어머니가 '나라로 임하실 때에 우리 아들 둘을 좌우에 앉혀 주옵소서'  이러니까 주님이 '네가 구하는 것을 네가 알지 못한다' 그 말은 '이 원죄로  구하고 세상 마귀가 주는 그 지식대로 그 법칙대로 구하지 하나님의 법칙에는 너  구하는 것이 정반대다. 그 자리에 앉게 해 달라 하는 그게 거기에서 제일 천물이  되게 해 달라 하는 그것이다.' 그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 주가  되고 예수님의 하나님이, 예수님의 하나님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아버지가 됐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안하면 성경도 우리에게 오지 못하고  영감도 우리에게 오지 못하고 하나님을 대면하면 죽습니다.

 불택자들이 하나님을 부르나 하나님이 그들을 멸하시지 안하려고 암만 불러도  상대를 안 해 줍니다. 만일 부를 때에 우리와 같이 상대를 하면 즉시 망해버리고  맙니다. 눈이 어두워서 우리가 이걸 잘 모르지 마는 성경으로 그 눈을 밝힌  사람들은 안다 그거요.

 택자가 중생된 자가 하나님을 부르는 것과 속량함을 받지 못하는 불택자가  부르는 것과 다릅니다. 택자는 부르면 하나님과 직접 대화가 되고 또 상호  내주합니다. 이렇지만 불택자에게는 암만 호소해도 하나님이 접하지 안합니다.

접하면 멸해져 버립니다. 왜? 예수님의 공로가, 없기 때문에 거기는 당장 심판이  갈 수밖에 없는 것이오.

 이런고로 우리가 입술로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 이렇게 쉽게 부르니까  어떤 사람은 생각하기를 '천하기 때문에 쉽게 부르고 하나님 부르는 이것이야  아주 천하고 쉽고 아무 가치 없는 일, 아무 권위 없는 일.' 이렇게 쉽게  부르니까 권위 없는 줄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많고, 그거는 그래 여긴다고  해서 그 관계가 맺어지는 것이 맺어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그렇게 여기니까 지극히 크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은 그 효력을 보지 못합니다.

 제가 효력을 인정치 안하고 바라지 안하니까 안 믿는 불신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하는 그것은 죄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일을 못 합니다.

 또 그렇게 무가치한 걸로 여기고 그러니까 아버지를 불러 그 효력을 얻지를  못합니다.

 우리가 접선하는 것이 뭐 세상에 공산주의자를 접선하는 것, 세상 어떤  권력가를 접선하는 것, 어떤 무엇을 접선하는 것, 하나님이 지어놓은 몇천 마력  되는 전기를 손으로 대서 접선하는 것, 또 우주에 수많은 원자들이 작용하는 그  원자들을 접선하는 것, 접선하면 당장에 빠짝 타 버리지마는 그것보다 하나님  접선이 더 크고 더 무섭고 더 큰 것입니다.

 그러나 그거는 다 하나님이 지어놓은 그것들이고 하나님은 그런 것을 지으신  분이십니다. 이런데 이분을 자유롭게 접선하고 교제할 수 있게 되는 그것은  예수님의 공로 때문입니다. 공로가 아니면 당장 타 버립니다.

 출애굽기 33장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내가 사자들을 너거와 같이  보낼 터이니까 가나안을 가라. 나는 같이 가지 않겠다. 왜? 내가 같이 가면  너희들이 가다가 또 패역을 부릴 터이니까 패역을 부리면 나는 같이 가는데 내  앞에서 패역부리면 너희들을 당장 진멸을 해야 될 터이니까 내가 그 진멸하는  것보다는 내 사자를 보내고 내가 같이 가지 않는 것이 좋지 않느냐?'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피조물, 우리가 겁나는 것 많지요. 무서운 것  많지요. 그것을 만드신, 그것으로 비할 수 없는 크신 분을 우리가 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을 어떻게 용이하게 접하게 되는가? 그거는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힘입어서, 이 접하도록 하기 위해서  당신이,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신 당신이 십자가 못박혀 죽으신 이 큰 힘, 큰  희생을 들여서 이 공로를 설정해 놓은 것입니다.

 이 공로는, 무한의 공로인데 이 공로를 설정해 놓은 이 공로를 알든지 모르든지  우리에게 입히셨기 때문에 이 공로로 인해서 하나님을 교제할 수가 있고 또  관계를 가지고 거기에서 오는 무엇을 받을 수가 있지 그것 아니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영광의 아버지라, 영광의 아버지라  하는 이 말은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 것은 엄위의 아버지, 아주  두려우신 아버지, 엄위의 아버지도 됩니다. 전능의 아버지, 전지의 아버지,  대주재의 아버지 이렇게 표시하지 안하고 영광의 아 버지라 하는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영광의 아버지라 말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아버지가 된 이  하나님, 우리 아버지가 된 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우리를 관리하시고, 교훈하시고, 인도하시고, 우리의 관계 가지시는  그 모든 관계는 저 지옥에 있는 그 영들까지도 어떤 멸망 가운데 들어 있는  것들까지도 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상관을 가지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그 일은  그들도 다 감탄하고, 감탄하고 칭찬하고 존귀히 여기고 할 수 있는 그런 방편,  그런 방편, 그런 종류의 그런 본질과 본성의 은혜를 우리에게 끼치시는 그분이라  그 말입니다.

 '영광의 아버지' 이 영광의 아버지라는 이 표시를 좀 알아듣기가 어려운데  영광의 아버지의 정반대가 되면 그말을 무슨 말로 하면 반대가 될런지?  이기주의의 아버지, 사욕의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는 당신과  우리만 좋은, 우리에게만 유익되고 당신만 기 뻐할 수 있는 그건 방편이 아니라  그말이오.

 아버지가 우리에게 아버지 노릇 하는 것, 우리가 아버지의 자녀가 되어 자녀  노릇 하는 것, 또 아버지가 우리에게 베푸시는 모든 은혜 역사, 또 우리가 받는  은혜 이것은 모든 피조물 지옥에 있는 것까지도 다 좋아하고 기뻐하고 감탄하고  칭찬하고 존귀히 여길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교제를 가지고, 그런 성질의 은혜를  베푸시고, 그런 성질의 역사를 우리에게 하시고, 그건 성질의 이 관계를 맺는  것을 가리켜서 영광의 아버지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영광의 아버지의 정반대는 무엇입니까? 영광의 아버지의  정반대라면 그 아버지는 반대되는 아버지라면 뭐라고 불러야 되겠지요? 누가 말,  수치? 영광 반대가 수치라. 그래 수치란 말도 괜찮은데 지금 해석하고 있는 것이  영광이라 수치라, 녜, 수치라 말이 맞기는 맞습니다마는 지금 가르치는 뜻을  아는 것은 좀 미달입니다.

 영광의 아버지는 그 모든 것이 감탄할 만치 모든 것에게, 저거가 안 받아  그렇지. 모든 것에게 다 좋아. 하나 하나 대해서도 이렇게 하나님 아버지가  성도들에게 부자간에 관계를 맺고 역사하는 그런 것이 '저거만 좋지, 자기끼리만  좋지 내게 뭐 상관 있나? 내게는 도로 손해다. 내게는 도로 섭섭하다. 내게야 뭐  해도 없고 유익도 없고 내게 상관이 없다. 상관이 없다. 내게는 해만 오지  유익은 하나도 없다. 내야 보기 싫고 좋지 안하다.'  그러면 영광이 됩니까 안 됩니까? 영광은 그것입니까 그것 반대입니까? 그것  반대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된 이 아버지는  영광의 아버지라는 것을 알면 교파끼리 싸우는 이런 짓 안 합니다. 영광의  아버지를 알면 교파끼리 싸우는 이 짓 하지 안하요. 영광의 아버지로 알면  아버지를 상대하는 자가 남을 헐고 삣고 깎고 하는 그런 짓 안합니다.

 이것은 '아버지' 하지만 아버지를 주먹으로 쥐박고 있는 것이오. '영광의  아버지' 아버지가 우리에게 행하시는 것이나 또 우리가 아버지 기뻐하시는 일  하는 것도 다 영광의 일이라야 됩니다.

 나에게 제일 원수되는 그 원수, 제일 원수되는 그 원수 그 원수도 감탄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그 일이라야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일이 돼지지  어느 하나에게라도 안된 것 섭섭한 것 그게 있으면 아버지와 우리와의 관계는  맺어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너희들이 믿음이 있으면 산을 바다에 던지우라 해도 순종하는데  그 바다에 던지우라고 하는 그 명령이, 명령만 하면 당장 바다에 떨어질 수 있는  그 명령은 절대적인 없는 가운데 천지를 창조한 그런 명령과 같은 그런 명령인데  그 명령을 너희들이 할 수 있다. 그 언행심사를 할 수 있다. 이 권위 있는  언행심사를 할 수가 있다.

 그런데 그 언행심사에 그것은 하나님이 너희에게 인도하는 그 인도에  피동이라야 그게 된다. 피동이면 그러하다.

 피동이면 그러하는데 마귀란 놈이 수많은 넓은 길을 줘 가지고서 한 현실에는  천 가지도 만 가지도 막 말하는 게 꽉 차는데 거기에 좁은 문 하나님의 한 뜻을  찾기가 얼마나 어려우냐?  그걸 찾는 데는 네가 밝아야 찾지 어두우면 찾지 못한다. 네가 밝아지는 제일  급선무의 방편은 '영광의' 영광의 간구를 해야 되고, 영광의 말을 해야 되고,  영광의 사상을 가지고, 다시 말하면 네게 가장 멀고 원수된 그 사람도 위하는,  그 사람의 행복되기를 그 사람을 구원코자 하는 그것이 너희에게 있으면 네  자신이 밝아져 가지고서 이렇게 권위 있는 하나님의 뜻을 찾게 된다 하는 그걸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이 도를 몰라서 여기에도 시기가 있고, 질투가  있고, 훼방이 있고, 뭐 적기심이 있지 그것이 전부 마귀란 놈이 줘 가지고 속에  마귀가 작용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작용하는 것.

 내가 요새, 테레비를 누가 와서 틀어서 그걸 내가 한번, 엊저녁엔가 내가 저녁  때인가 한번 봤습니다. 보니까 마귀 할머니가 있데요, 마귀 할머니가. 마귀  할머니라고 있는데 그 마귀 할머니는 아무도 그걸 제 어하지 못하는데 그뭐  동방박사라던가 그 사람한테는 꼼짝을 못해요. 보니까 마귀 할머니가 만나  가지고 막 빌고 어짜고 이라는데,  동방박사가 아이들에게 말하기를 '마귀 할머니를 지금 찾아다니는데 이놈이  다니면서 이 아이들을 많이 지금 해를 주고 있다 하는데 이게 어데 있는지 이걸  지금 찾아서 가둬야 되겠는데' 찾아다니면서 그 마귀 할머니가 해 지우는 걸  말해.

 그러니까 아이들이 '그거 가두든지 하면 안 되겠습니까?' '그것 가 두는 것도  내나 가둘까 아무도 다른 사람은 가둘 사람이 없다. 그런데 내가 너거한테 하나  가르친다. 너거가 그 마귀 할머니가 암만 그래도 조그마치도 해를 보지  안할라거든 너거 마음을 깨끗이 해 가지고서 너거 마음에 아무것도 더러운 게  없고 깨끗하면, 마음이 깨끗하면 마귀 할머니가 너거 근방에는 오지를 못한다.

네게는 해하지 못한다.'  그것 또 지나가더니마는, 장면이 지나가더니마는 '동방박사 그분은 어떤 분인데  마귀 할머니를 그래 제어를 합니까? ' 그래 말하기를 '그 박사님은' 뭐라고  말하더라? 그런데, '아주 조그만한 먼지만한 때도 안 묻은 분이다.' 먼지만한  때라던가? 그래 작은 걸 그런 걸 표시해, '아주 조그만한 그런 때도 묻지 안한  전체가 깨끗하고 더러움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그 어른한테는 마귀 할머니가  꼼짝을 못 한다.' 그렇게 인제 말해.

 아마 성경도 보고 이래 가지고서 그것 누가 꾸며냈는데 그거는 아이들에게  좋겠어. 그렇습니다. 마귀 제것이 우리 속에 없으면 마귀는 절대 우리에게  범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귀 그놈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사망에 속한 것만 주는 건데, 망하는 것 죽는  것 그것 주는데, 마귀가 그것 주는 것은 그 사람에게 마귀의 것이 있어야  들어가지 마귀의 것이 없으면 못 들어갑니다.

 또 마귀를 암만 물리치려고 해 봐도 인간이 사망에 속한 것을 불행을 아무리  물리치려고 해도 마귀 그놈이 안 나가면 제가 들어서 저 멸망할 일을 자꾸 제가  해서 멸망을 자취합니다. 그러니까 마귀가 나가야 되는데 마귀가 나가는 데는  마귀 것을 다 내 줘 버리면 돼, 마귀의 것을. 하나님의 영감에 배치되는 것만 다  내버려 버리면 마귀는 들어오지를 못해요.

 예수님을 마귀가 무서워한 것처럼 영감대로의 사람이 되면 마귀는 그 사람 있는  데는 가면 죽기 때문에 도망을 쳐서 그 사람 없는 데로 자꾸 피해 돌아다녀.

 이러니까 마음이 정결하면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마음이 더러우면 마귀 찾아  들어오게 됩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세상에 물론 이런 것 저런 것 많은 문제 있지요. 많은 문제가  있지마는, 이해에 큰 문제도 많이 있지마는 아무리 이해가 크다 할지라도  자기에게 하나님이 내주하시고 마귀가 내주하는 그보다 큰 일은 없습니다.

그보다 큰 일은 없소.

 이러니까 자기를 더럽히는 그것이 마귀가 자기를 주장케 하는 것이요 마귀의  종되는 것인데 오면 그놈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사망의 일만 역사하게 되는  것인데 무슨 세상에 어떤 건으로 인해서 자기를 더럽 힌다는 것은 참 그것은 큰  손해입니다. 화약 지고 불로 들어가는 것이오.

 이러기 때문에 상대방이 어떻든지 주변이 어떻든지 뭐라고 어떻든지 할지라도  그로 인해서 자기를 더럽힐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를, 더럽 히는 자는 더럽히면  마귀 것 됩니다.

 지난밤에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 가지고서 말을 해서 참 처음에는 못  알아듣다가 나중에는 말을 알아듣는데 '상대방이야 어쨌든지 내 몸 밖에  그것이야 어떻게 됐든지 나만은 여기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 요 좁은 길을  선택해라. 네가 환경에 어떻다 할지라도 인간적으로 생 각하면 그뭐 어떤 것  어떤 것 어떤 것이 많이 있지마는 거기에 피동되면 너는 더러워져서 결국은  마귀는 너에게 접하니까 직접 당장 지옥이 이루어질 것이고 이제 거기에서 그런  데 피동되지 안하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 하나님에게 피동되면 당장에  태산 같은 그 어려움이 당장 없어질 것이고 칼을 들고 복수할 만한 그런 것이 다  기쁨과 평안으로 즉시 바꾸어지는 것을 볼 것이다. 이러니까 이럴 때에 좁은 문  넓은 문이 필요하다.' 하는 그것을 제가 말을 해 줬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영광의 아버지라' 요것만 해도, 영광의 아버지라, 아버지가  어떤 아버지시며 나에게 어떤 면으로 아버지 되는가? 내게 뭘 베푸는가? 영광된  일만 베풉니다. 영광된 일만 시킵니다. 영광된 일만 지도합니다. 영광되는 것만  요구합니다. 우리가 어떤 존재에게 라도 욕 얻어먹을 그런 것은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욕 얻어먹을 그런 것은 당신이 원치 않습니다.

 어떻게 핍박하고 욕을 해도 하나님 보실 때에 하나님도 감동받고 또 모든  피조물이 몰라 그렇지 그게 나중에 발견될 때에는 참 감화될 수 있는 그것을  우리에게 주시고 그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시지 어떤 하나라도 섭섭하게 하는 그런  것을 하나님은 요구도 안 하시고 받지도 안하시고 우리에게 지도도 안 하시는  영광의 아버지십니다.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징신을 너희에게 주사' 지혜와 계시의  정신이라 그말은 지혜는 요것 하나님의 속성인, 하나님의 속성은 첫째가  지식성이요 둘째는 지혜성입니다. 이런데 지혜, 하나님께서 당신의 지혜를  우리에게 연결시킨 그자를 우리에게 줬다 그말이오. 우리를 중생시켰다  말입니다.

 '계시의 정신을 줬다' 하나님이 열어 주시면 보고 열여 주시지 안 하면 못  보는, 하나님이 알림으로 알아지는 그 연결을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가져지게 해 줬다 말이오.

 하나님이 알려 주시는, 계시의 정신이라 그말은 우리 주관을 가리켜 말합니다.

우리 주관. 우리 주관에 '계시의 정신' 하나님에게 연결이 들어서 하나님이  알려주는 대로 보여주는 대로 보여주는 그 기이한 관계를 맺게 해 주셨다.

 계시라 말은 하나님이 열여 보이시는 것을 가르쳐서 계시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계시 지식이라, 신구약 성경은 계시입니다. 하나님이 열어  보임으로써 알아지는 그런 관계를 너희에게 맺게 해 줬다.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이것 뭐 너무 멀어서  이는 또 내일 아침에 해야 되겠는데.

 위에도, 하나님을 아는 것이 시펀 91편 14절에 말씀한 대로 '저가 나를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인간이 높아지는 길은 하나님 아는 길 외에는 없습니다.

하나님 아는 방편 그 외에는 방편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높아진다 말은 귀해지고, 가치 있어지고, 권위 있어지고  행복스러워지고, 존귀해지고, 영광스러워지고, 더 평안해지고, 더 자유로워지고.

더 기뻐지고 하는 이런 것이 높아지는 것 아닙니까? 그게 높아지는 건데  하나님으로만 인생이 높아지지 인생은 하나님외의 딴것으로는 높아지지  못합니다.

 하나님으로 높아지지 안하고 이 인간과 세상을 가지고 높아지는 그 높아진 것이  마지막에 어찌 됩니까? 세상에서 이제 지옥을 가 보면, 지옥을 가 보면 세상의  정반대 훼딱 뒤벼져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높았던 것이 제일 밑에 가 있고  세상의 영광스러웠던 것이 제일 천하게 돼 가지고 있고 이러기 때문에 저희의  영광은 부끄러움에 있다 그말이오. 영광인데 그게 실은 부끄러움의 뭉텅이가  커지니까 인간 눈이 어두니까 영광이 큰 줄 알아. 이러니까 훼빡 뒤벼집니다.

 지옥은 불택자들이 이 세상살이와 지옥이 뒤벼집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  불택자로서는 제일 천한 자가 지옥에서는 제일 으뜸 갑니다. 세상에서  불택자로서 제일 존귀한 자가 지옥에 제일 밑에 천하고 천대받고 형벌이 제일  많습니다.

 이렇게 높아지는 거는 하나님 앎으로 높아지는데, '마음의 눈을 밝혀서  하나님을 알게 한다' 했는데, 그러면 하나님을 알면 이게 높아지게 되는 것인데,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은 자기를 높아지게 하는 것이고 알던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모르게 하는 것은 자기를 낮아지게 하는 것입니까 높아지게 하는  것입니까? 여기 대학교 아들 보내는 대학생 아들 있는 분들 대답해 보십시오.

 하나님을 점점 모르게 만드는 것은 그 지식이 자기를 점점 낮아지게 천해지게  하는 것입니까 존귀케 하는 것입니까?    장로님 한번 대답해 봐요. 낮아지게  하는 것입니다. 천해지게 하는 것입니다.

 자, 어제도 내가 말했고 어제 내가 그 집에 찾아가 가지고도 내가 강력히  말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안 나왔어. 듣기 싫거든. 듣기 싫으면 저거가 망하고  마는 거라. 별수 없어. 하나님의 명령이야!  어짜든지 멸망 가운데로 가는 것을 '아, 위대하다. 희망 있다. 유력하다.'  이러면 좋아하고, 멸망으로 가는 걸 멸망이라 하면 그만 듣기 싫어합니다. 그게  '개와 도야지에게 진주를 던지지 마라. 밟고 와서 도로 너를 물라고 한다.'  내가 어제 가서 거기 가서   조사님 아들도 말했어. 그게 여기 새 벽으로  나올 때는 가치가 금덩이가 됐는데 요새 똥덩이 됐어. 저는 대학이라고 대학에서  암만 우등생으로 졸업해 봤자 소용없어. 똥덩 이가 됐어. 왜 새벽에 못  나오느냐, 못 나오기를?  새벽으로 오면 하나님 아는 지식을 배우는데 이제 점점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까짓 거 똥덩이같이 집어던져도 된다 그 말이오. 제가 제일 귀하게  여기는 건 인간 대가리에서 나온 그 지식을 귀하게 여기지 하나님 아는 지식은  천하고 '그까짓 거야 무식해서, 그까짓 지식이야. 한글로 기록해 놓은 것. 뭐  꼬부랑 영어로 기록해야 그것 존귀한 것이지.' 어리 석어. 눈이 멀어 그래.

 나는 경험해서 후회가 많아. 자식 공부시킨 것 후회되지 안 시킨 것 후회되지를  안해. 내가 모든 사람을 다 볼 때에 공부를 해 가지고 유익이 된 사람들은  횐쌀에 뉘 모양으로 있고 손해본 사람은 전부라.

 그러면 공부를 안 할 건가? 내가 그걸 금요일날 밤에 한번 설교를 하나 주일날  오전에 하나? 분명히 사람들이 지금 죽고 망해가기는 망해가는데 이 마귀 할머니  모양으로 이거 마귀가 와 가지고 사람들을 막 꾀워서 지금 멸망을 시키는 것이  음행의 포도주를 마셔 가지고서 전부 멸망을 시키고 있는데 이거 어떻게 하나?  그걸 내가 지금 생각 중에 있어.

 세상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이 소유하고 있는 피소유격이요 하나님의 지식은  주격입니다. 자, 주인의 실력은 자라지 안하고, 주인의 실력은 자라지 안하고,  주인의 지능의 실력이라든지, 주인의 건강의 실력이라든지, 주인의 자손의  실력이라든지, 그 주인들의 실력은 자라지 안 하고 점점 오그라지고 그의 소유는  점점 많아지면 어찌 되지?  소유가 많아지면 소유 많은 것이 점점 약화돼 가는 그 주인들에게 소유는  많아지고 주인은 점점 약화돼 가면 거기 뭐 붙지? 뭣이 와 붙어? 그것 모르요?  도적 붙지.사기꾼 붙지. 강도 붙지.

 이러니까 소유보다는 주인의 실력이 위에 가야 됩니다. 주인이 실력 이상의  소유를 가지는 건 자기를 망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소유는 많아지는데 자기 실력은 적어지면 '아이구 이것 내가 공부를  해야 되겠다.' 공부하는 실력을 지능을 늘궈도 늘구고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이것  자꾸 소유 많아지는데 몸이 점점 병들어 약해진다.' 그러면 돈 그놈 막 팔아  가지고라도 몸을 건강하게 하든지 운동하든지,  주인의 실력이 소유의 힘보다 강하면 이 소유는 주인의 소유로서 주인에게  필요있게 요긴하게 이용되지마는 소유의 세력이 주인의 세력보다 그면 소유의  세력 이것이 주인을 까뭉캐서 삼켜버리고 맙니다. 그 소유로? 인해서 그 주인은  반드시 죽을 것이요 망할 것입니다.

 이러니까 세상 지식 그것 소유인데 왜 소유가 나쁘겠소? 그 사람이 만일  고관대작 될 그런 실력이 있으면 고관대작 지위가 좋지. 그러나 자기는 그런  실력 없는 게 고관대작 지위에 있으면 당장 감옥에 들 어갑니다.

 그렇지 않소? 자기 실력 이상의 지위가 자기에게 평강이 됩니까? 안 됩니다.

이러니까 자기 이상의 지위에 앉았으면 그 지위를 감당할 수 있도록 그 실력을  부지런히 배양해서 그 지위가 쉽게 아주 가볍게 감당할 수 있는 실력을  길러야지.

 이러니까 이것 대학을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새벽기도 한 시간 전에 나오던 거는  두 시간 전에 나오고, 성경 한 번 보던 것이면 두 번 보고 자꾸 해서 하나님의  지식이 주격체로 이렇게 점점 강해져 가야 될 건데 이거는 다 집어던져 버리고  전부 세상 지식으로만 나가기 때문에 다 뺏겼어.

 두말 할 것 없이 믿는 사람들이 자식들을 어데가 뺏겼느냐? 전부 음행의  포도주에 다 뺏겼어. 마귀 지식에 다 뺏겼어. 그것을 가지지 말라는 반지식이  아니오. 언제든지 주인이 강하고 종이 약해야 되지 종이 주인보다 강하면 주인은  거기에서 역습당해서 망하고 맙니다.

 이러니까 자, 이 세상 지식에 제가 그만치 주력하면 그보다도 하나님의 지식에  더 많이 주력을 해 가지고서 이래서, 언제든지 가서 공부 배우는 것이 하나님의  지식이 위에 있어서, 모르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가르칠지라도  가르치니까 '이거는 이러니 하나님 말씀이 옳다. 이보다 하나님 말씀이 능력  있다. 이러면 된다 하지마는 이외에 주권자 하나님 그분이 계시기 때문에 그분이  해야 되지 그분이 안 하면 안 된다.'  이래서 모든 지식 배우는 그 지식이 자기가 하나님 아는 그 지식 무릎 앞에 발  앞에 밟히고 이용될 수 있는 그 위치를 가지고 자라가야 될 터인데 이거는 뭐  이것이면 다 된 줄 알고서 하나님을 다 던져 버리고 하나님의 지식 다  던져버리고 이것이면 다인 줄 알기 때문에 망할 수밖에 더 있습니까? 절대  망합니다! 절대 망합니다! 절대 망합니다! 안 망하는 것 억만에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식이 인간 지식 위에 가야 되지 전부 다 거기에 뺏겼어. 어데  자식들을 다 뺏겼느냐? 자식 전부 다 거기에 다 뺏겼습니다. 전부 거기에 뺏겨  버렸소. 마귀의 지식 음행의 포도주에게 다 뺏겼습니다.

 공부 시키지 말라 말 아니오. 봐서, '안됐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하나님에게  소망하는 것과 이 세상 지식을 아는 것, 세상 지식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  인정하는 것이 둘이 같다.' 벌써 위험해요. 위험합니다. 이러면 어째야 돼요?  이거는 인간 지식은 내비두고 하나님의 지식을 가속도로 지금 길러야 될 것  아니겠소?  썩 올라가 있으면 '이제 인간 지식을 네가 가지라. 가지지마는 요 층어리는  언제든지 요 층어리는 두고 해야 되지 네가 요 층어리가 안 되고 이래 되면 너  망하는 것이니까' 제가 모르면 옆에서 보고서 이것을 말해 줘야 될 터인데,  이걸 다 말해 주지 않고 '뭐 하나님의 지식이야 한글로 써놓은 것 그것 뭐  언문,' 옛날로 말하면 언문이오. 국문으로 써놓은 것 언문이오. '언문으로  써놓은 것 그것, 야, 네가 꼬꾸랑 자 에이비를 알고 뭐 영어를 알고 뭐 알고  이래 아는구나. 너 과학을 아는구나.' 암만 해 봤자 그것이 과학 해 봤자 이  물질 안에 있는 것이지 무슨 소용 있는 것입니까? 이런데 그만 이것을 귀한 줄  알고 전부 그리 기울여 가지고서 다 속았어.

 내가 지금 말이요 내가 지금 젊어서 내가 한 스물 두서너 살 먹어서 지금  장가를 가 가지고 지금 모든 경험을 가지고 자녀를 낳는다고 하면 정말로 멋지게  한 번 기르겠는데 이것 다 잘못되고 나면 후회뿐이지 소용이 없어. 소용없어.

 이러니까 내가 후회되는 일을 내가 속은 일을 그것을 경험하고 체험해서  말하지마는 또 뒤에 있는 그 사람들은 속아야 되지, 속고 마지막 죽는 날  후회하지 암만 말해야 안 듣는다 그말이오. 안 듣지마는 나는 말하지 않을 수  없어 말하는 거라! 어리석으면 안 됩니다.

 가만히 내가 눈을 감고서 '아무것이는? 아무것이도 음행의 포도주 에게 자식  뺏겼다. 아무것이도 뺏겼다. 아무것이도 뺏겼다. 아무것이도 뺏겼다.' 전부 자식  뺏긴 건 음행의 포도주에 다 뺏겼고 '또 아무것이 그 사람은 자기 신앙을 어디다  뺏겼느냐? 음행의 포도주에 뺏겼다.' 전부 음행의 포도주에 다 뺏겨버렸어.

자신도 보배를 다 뺏겼고 하나님도 다 뺏긴 건 다 음행의 포도주에 다 뺏기고 다  망해졌어.

 암만 이래 말해도 이    씨는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이게 참 얼마나 큰  말인지 모릅니다. 망하고 흥하는 게 여기에 있어.

 요것만 조절해서, 자신이든지 자녀든지 이것을, 음행의 포도주는 세상 지식을  말한 것인데. 그게 포도주도 음행의 포도주도 되고 하나님의 선물도 됩니다.

하나님의 선물이 되는 건 자기라는, 하나님과 하나님 관계가 더 주격이 되고  강하고 이게 약해 있으면 그게 선물이 돼요. 다 전부 선물이 됩니다. 그러나  이놈이 주격이 되면 음행의 포도주 된다 그거요.

 요걸 알아서 요 말을 삼가 듣고 자기가 자기에게 대해서 요 조절해서 바란스가  맞도록, 주객의 바란스가 맞도록, 또 자녀 양육에 주객의 바란스가 맞도록  요렇게 한다고 하면 그것이 천하를 차지할 사람들이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아무래도 이래 가지고 안 되겠고, 이래서 이것, 대학만 가면 그만 달라져 버려.

대학이 아무리 많아도 인간 지식 속에 든 그것입니다. 인간의 대가리서 나온  것이오. 하나님께 나온 것 아니오. 또 그 주관은 악령에게서 그게 번져 나온  것이지 딴데 나온 것 아니라. 그만 그래 통계를 맞추면 하나도 계산이 틀리지  안해  이러니까 그거는 이용을 해야 되지 거기에 이용을 당하면 안 돼. 세상 지식은  내가 사용할 지식이요 하니님의 지식은 내가 거기 복종해서 모셔야 할 지식이라.

이것도 쉬운 말이 아니라. 이것이 천천 금은보다 나은 말이라. 그렇게 여려 수백  권 책 속에 이런 말이 든 것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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