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09 20:39
영론
1989. 4. 30. 주일오후
본문: 요한복음 14장 18절∼20절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 난 다음에 세상은 예수님을 다시 만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래서 '그날에는' '그날에는' 하는 말은 예수님이 부활하셔 가지고 승천하셨다가 다시 오셔서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이 우리와 세상 끝날까지 같이 계실 그때를 가리켜서 그날이라 말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지금은 신인양성일위로 부활하셔 가지고 항상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지금을 가리켜서 그날이라 이랬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이기 때문에 미래사를 말하면서 그날이라 이랬습니다.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예수님께서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우리가 예수님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는 것을 알게 된다 이랬습니다. 지금도 아는 사람은 알고 믿음 없는 사람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또 읽을 이는 읽고 듣기만 해도 좋습니다. 야고보서 1장 18절 '그가 그 조물 중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 중에 말입니다. '그가' 하는 그는 하나님을 가리켜 말씀합니다. '그가' 하나님이 '그 조물 중에' 그가 창조하신 모든 만물 가운데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우리로' 하는 것은 예수 믿는 우리들을 가리켜 말합니다.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들을 말하니까 복수로 말했는가? 그런 게 아니고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우리의 대속주와 우리와 연함이 된 것을 가리켜서 복수해서 우리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가 그 조물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주권자의 뜻을 좋아 그말입니다. '자기의 뜻을 좇아 하는 건 주권자의 뜻대로, 어떤 것에게 피동돼 그런 게 아니고 당신의 뜻대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출생하셨느니라. 그러면 소가 소 새끼를 낳았다. 개가 개새끼를 낳았다, 사람이 사람 새끼를 낳았다. 하나님이 하나님 새끼 진리 새끼를 낳았다 그 말이오.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 베드로전서 1장 23절에 '너희가 거듭난 것은' 이 거듭났다 말을 성경에 이렇게 많이 말해도 우리가 거듭났다 하니까 중생이라고 말했지, 우리 첫째 아담에게 속한 우리가 살아났다고만 생각했지 우리가 하나님으로 출생했다 하는 것은 이것은 전혀 부인하고 오늘까지 세계가 이래 나오고 있습니다. 이천 년이 돼도.
'너희가 거듭난 것이' 우리가 새로 난 것이, 우리는 처음에는 첫째 아담의 자손으로 첫째 아담의 요소를 타고났고, 두번째는 둘째 아담의 요소를 타고났습니다. 둘째 아담은 뭐인고 하니 참 하나님이시요 참 사람이십니다.
그러면 참 하나님의 요소를 타고났고 참 사람의 요소를 타고 난 우리들입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그러면 썩어질 씨로 났으면 그게 썩습니까 안 썩습니까? 썩어질 씨로 난 그것이 썩습니까 안 썩습니까? 이거 똑똑히 요걸 알기가 어려운 그런, 믿음 없이는 잘 모르는 건데. 썩어질 씨로 난 것은 썩습니까 안 썩습니까? 썩습니다. 썩어질 씨로 난 거는 썩소. 뭐 콩이든지 무슨 곡식이든지 무슨 나무든지 무엇이든지 썩어질 씨로 난 것은 그것은 자라도 결국은 썩고야 마는 것입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오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썩지 아니할 씨로 우리가 났습니다.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의 씨로 되었느니라'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말씀의 씨로 되었느니라' 말씀이면 뭐입니까? 말씀이면 뭐이지요? 말씀이면 진리입니다. 내나 '진리의 말씀으로 너희를 낳았느니라' 하는 그 말씀이나 이 말씀이나 꼭 같은 말씀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첫째 아담의 요소를 타고 난 첫째 아담의 자손이오. 이랬는데 첫째 아담이 부정모혈로 나는 모든 사람을 대표해서 신성 인성, 신인, 하나님과 사람과의 계약을 세웠는데 그 계약을 인류 대표로 아담이 그 계약을 하나님과 상대해 가지고 아담 하나가 계약을 어겼기 때문에 전인류는 다 계약 어긴 게 되어서 정죄받고 다 사망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아담의 사망을 받은 그 사망된 아담 해와의 요소를 받아 가지고 아담 해와의 자손이 됐습니다. 이러니까 아담 해와가 어떻게 생겼던가? 그걸 어찌 알 수 있습니까? 아담 해와가 어떻게 생겼습니까? 아담 해와의 눈이 몇 개입니까? 압니까? 아담 해와의 눈이 몇인지 압니까? 자, 아는 사람 손가락 한번 가리켜 봐요. 아담 해와의 눈이 몇 개인지? 둘이라. 누가 하나 든 사람 있어요? 거기 누가 하나 든 것 같은데? 아니야? 아담 해와의 눈이 둘입니다. 코도 둘이요. 귀도 둘이요. 또 아담은 수염 났고 해와는 수염이 안 났습니다. 그거 뭘 보고 아는가? 성경에 땅에 속한 자의 자손은 땅에 속한 자와 꼭 같은 형상을 가졌고' 이랬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땅에 속한 첫째 아담에게 속한 자손인데, 첫째 아담에게 속한 자손 우리가 코 둘, 눈 둘, 입 하나, 귀 둘, 목, 머리, 뭐 손, 발 있기 때문에 우리의 조상 아담도 우리 형상과 꼭 같은 형상을 가졌다 하기 때문에 우리가 아담을 보지 안했지마는 그가 아담은 오늘 남자와 꼭 같고 해와는 오늘 여자와 꼭 같이 생겼다 그렇게 우리가 할 수 있습니다.
이래서 고린도전서 15장에 땅에 속한 자의 자손은 땅에 속한 자의 형상을 가진 것처럼 또 하늘에 속한 우리는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가진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형상을 가지면은 예수님의 형상은 몇 가지입니까? 예수님의 형상이 몇 가지지요? 요거는 인제 말 안해 놔서 모를란지 모르요, 예수님의 형상은 몇 가지야? 두 가지라. 예수님의 형상은 인성 하나 신성 하나, 인성 신성 둘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인성과 꼭 같은 인성을 우리가 가져야 예수님의 자손이 되고 또 예수님의 신성과 꼭 같은 신성을 가져야 우리가 그 자손이 됩니다.
예수님의 인성은 그는 부정만 없었지 첫째 아담의 자손과 꼭 같습니다.
자손입니다. 그러면 부정만 없었지, 마리아는 내나 첫째 아담의 자손으로 첫째 아담의 형상과 같이 생겼고 첫째 아담의 자손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은 첫째 아담의 자손인 그 인성을 가졌고 또 하나님이신 그 하나님의 신성을 가진 것이 예수님이십니다.
이래서 우리도 인성과 신성을 가진 예수님의 바로 동생이라. 첫 열매니까, 예수님은 첫 열매요 우리는 그 다음 열매라. 그러면 첫 열매나 다음 열매나 같지 뭐 다를 것이 뭐 있겠습니까? 우리가 첫째 아담의 자손된 것도 첫째 아담의 요소를 우리가 타고 나 가지고 실지로 그 요소가 우리에게 와 가지고, 씨가 돼 가지고 우리가 자랐습니다. 씨가 돼 가지고 와 자랐어. 자랐는데, 그 씨는 뭐 정충이라는 것을 현미경으로 보면은 똑 구더기 비슷하게 그까짓 거 볼 것 없지마는 거기에 아버지의 코, 입, 눈 거기 다 들었다 말이요, 요소가. 다 들었어.
그게 정충 그게 자라면 꼭 아버지, 키 큰 아버지의 새끼는 키가 크고, 또 낯이 긴 아버지의 새끼는 낯이 길고, 또 똥똥한 아버지 새끼는 똥똥하고 뭐 꼭 아버지의 형상을 그대로 가집니다. 어머니의 형상도 그대로 가지요.
이러니까 그 요소가 와 가지고 우리가 첫째 아담의 자손이 된 것같이, 둘째 아담의 자손도 우리가 말로만 자손된 게 아니고, 법으로만 자손된 게 아니고 제도로만 자손된 게 아니고, 하나님이 계약을 하시기를 그랬기 때문에 계약적으로만 자손된 게 아니라 계약으로도 물론 됐고, 법으로도 됐고, 또 제도적으로도 됐고 됐지마는 아버지의 그 요소. 아버지의 본체의 그 요소를 우리가 타고 나서 그 요소의 실상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우리가 된 것입니다. 된 것인데 이러기 때문에 유전설이라고 하는 말과 같이 첫째 아담의 그 형상과 꼭 같은 형상을 입고 우리가 생겨났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경이 말하기를 '우리가 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새로 난 것은 하늘에 속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과 꼭 같은 자가 된다'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첫째 아담의 자손은 그 실지의 요소가 우리에게 와 가지고 됐지마는 둘째 아담의 자손은 그 요소가 와 가지고 우리가 됐나 안 됐나 하는 그것을 이제 성경이 말하니까 우리가 압니다. '진리의 씨로 네가 났다' 진리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진리라 했습니다. 진리는 하나님이시요. 또 '하나님이 너희를 낳았다' 이랬습니다. 이래서 이제까지는 중생이라 하는 것을 살아났다고만 이렇게만 봤는데 살아난 게 아니고 살아나. 기도 살아났지만 살아난 것만이 아니고, 실지로 하나님의 그 요소가 우리에게 와 가지고 우리가 됐다는 것을 뭐 알고 보니까 성경이 전부 그렇게 말하는데 우리는 그것이 가리워져 가지고 알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이래서 첫째 아담의 자손된 우리와 둘째 아담의 자손된 우리가 아담의 요소가 우리에게 와 가지고 우리 된 것과 또 둘째 아담의 요소가 실지로 우리에게 와 가지고 우리가 된 것, 둘째 아담의 자손이 된 것. 그러면 이 실지의 요소가 와 가지고 된 이것은 다릅니까 같습니까? 다릅니까 같습니까? 같은 사람들은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뭐 몇 안 드네.
그러면 실지의 하나님의 요소가 실지로 와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된 거 또 첫째 아담의 자손된 것도 아담의 실지의 요소가 와 가지고 아담의 자손된 거 하나님의 자손된 거 아담의 자손된 거 그 실지의 요소가 와 가지고 된 것이 차이가 있습니까 같습니까? 실지의 요소가 와서 내가 됐다고 그렇게 믿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이거 뭐 별로이 안 드네. 예 실지로 왔어요. 꼭 같습니다. 실상이, 그 실존이, 실상이. 그 요소가 요소 그 자체가 우리에게 와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된 것이 꼭 같습니다. 꼭 같소.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로 난 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아들로 난 것을 가리켜서 우리가 '다시 났다' 이랬는데, 다시 났다. 이랬는데 다시 났다는 이것을 이제까지 첫째 아담에게 속한 것들이 죽었는데 죽은 것이 다시 살아났다 이렇게만 생각했지 우리가 다시 났다는 건 다시 출생됐다, 다시 생산됐다, 다시 탄생됐다 이렇게는 도무지 생각지를 안했다 그 말이오. 내가 지금 자꾸 요새 며칠 내가 말하는 거 출생됐다, 탄생됐다, 생산됐다 그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인데 그저 말로만 아들되고, 계약으로만 아들되고, 제도로만 아들되고, 법으로만 아들되고, 우리가 그 기업이나 그런 것을 받는 데에서 만 아들되고 하나님의 실지의 요소가 내가 되지 안했다면 이거는 한 제도뿐이지 하나의 동질성이 없는 것이 재미가 없다 그 말이오.
그래도 우리 육체도 아버지 어머니의 피와 정이 와 가지고 피와 살이 와 가지고 내가 됐기 때문에 끊어질 수 없는, 아버지의 요소가 내게 와 가지고 그 요소가 자라 가지고 내가 됐기 때문에 이제 더 아주 밀접하고 친근한 것인데 이거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라 하는 것은 그런 것은 아니고 하나 법적으로만, 제도로만, 계약적으로만, 유업을 받는 것으로만 되고 실질적으로 하나님의 요소가 우리에게 와 가지고 내가 된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하고 나하고는 항상 이색되고 이렇게 물과 기름과 같이 본질과 본성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뭐 친근할 것이 없다 그 말이오. 알겠습니까? 이 피와 살이 그래 된 거, 그러기 때문에 형제간은 한 군데서 나온 피와 살, 한 군데서 나온 피와 살이 나와 가지고 됐기 때문에 그 형제간은 끊어지지를 못해요.
그러나 남남끼리 만난 사람은 부부간이 그렇츰 좋지마는 그거는 뭐 끊어질라면 싹 끊어져 버리고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 내가 언제 그말 들었어. OOO목사 그분이 그런 면에 자격이 있어요. 자기 부인이 그때 가정에 참 어려움이 있어 가지고 모두 동생들 기를라 하니까 어려움을 많이 겪었는데, 그거 뭐 시동생 와 재나 툴툴 저지르고 뭐 이랬는데 그래 놓으니까 짜증을 아무리 안 낸다 해도, 그런 어진 부인이 없어요. 그뭐 다른 사람 같으면 굉장할 겁니다. 하루도 못 살아요. 나는 그분 앞에 머리를 숙이요.
대개 보면 그런 지경이면 그만 하루도 못 견뎌요. 하루가 뭐이요? 한 나절을 못 견디는데. 그런 가운데서도 꾹 참고 견디는데, 그래 내가 말하기를, 한번 물어 봤어. '아, 남편에게 말해 가지고 모든 사람한테 물어 보라고, 이럴 수가 어데 있느냐고. 좀좀 사람이 살아야 되지 이렇게 이 어려움을 가지고 막 눌러 놓고 이라면 되느냐 이렇게 좀 말을 해 가지고 서로 좀 분산해서 좀 편리하도록 어떻게 해 보지.' 내가 그 부인한테 말했다 말이오.
말하니까 그래 말해요. '아이구 어림도 없습니다. 내가 그라면, 마누라는 또 얻으면 또 마누라 되고 형제간은 새로 더 만들 수가 없다. 이러기 때문에 천상 너하고 나뉘어도 형제간은 그거는 어짤 수가 없다' 이렇게 말하니 뭐 말할 수가 있습니까?' 그 말을 듣고 내가 있다가 말했어. '너 시집 잘 갔다. 너거 남편 참 좋은 남편 만났다.' 그러니까 모두 말하기를 뭐 피는 물보다 진하다 어짜고 이래 쌓아며 이래 말하는 그게 그런 말인데, 이 실지의 그 실상이 와 가지고 내가 된 그런 무슨 연결이 없다고 하면은 그거 참 똑 정다운 부부가 암만 좋지마는 나뉘면 딴 남이 돼. '부부간은 돌아누우면 딴 남이라' 그말 했어. 그게 통계라 이렇지만 형제간 그거는 뗄래야 뗄 수가 없다 그거요 그거 한 요소가 그렇게 연결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거라.
그런데 '우리가 거듭난 것은 뭐 진리와 영감과 예수님의 피와 하늘의 소망으로 우리가 중생됐다' 이렇게 말해도 이거 죽은 아담 해와의 자손인 영육이 다시 죽지 안할 거로 살아났다 하니까 좋기는 좋지마는 살아났으니까 우리를 살려 준 것뿐이지 하나님과 나와의 뭐 끊어질 수 없는 그런 무슨 연결이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항상 내 마음에 섭섭하게 '그게 참 그래 된 것은 그뭐 끊어질라면 끊어질 수가 있지 않겠는가?' 끊어지면 끊어질 수가 있는 것이니 그게 항상 마음에 그저 섭섭하게 의문 가운데 있었어. 의문 가운데 있었는데, 얼마 전에 내가 그걸 깨달았어. 몇 달 안 됐어. 얼마 전에 깨달았어. '아니다. 신적 요소가 실지로 와 가지고 내가 신적 요소로 내가 생겨졌다.' 하는 거게 대해서 확신을 가졌어.
이러니까 이걸 말을 하면 뭐 이 교계 나가서 말해 놓으면 막 이단이라고 굉장히 떠들 것입니다. 천하가 떠들어도 떠들수록이 영원한 보좌 앞에서 내 앞에 머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어야 되지 뭐 소용 없어. 이제 성경을 깨닫고 보니 성경이 전부 그걸 그렇게 가르치고 있어.
이래서 그 실지의 요소가 와 가지고 우리가 생겨졌습니다. 생겨졌는데 무슨 요소가 와 가지고 생겨졌느냐? 하나님은 진리시요, 성령이시요 또 예수님의 대속은 그 모든 행위의 완성이라 하는 완전인데 그 대속으로, 하늘의 소망으로 우리가, 다시 살아난 게 아니고, 살아난 게 아니고 살아나기도 물론 살아났지마는 살아난 것만이 아니고 우리가 실제로 진리가 우리 속에 와 가지고 내가 됐고, 성령이 내가 됐고, 이 내가 돼서 내 안에 내가 됐어.
이러니까 실제로 삼위일체의 하나님과 진리와 예수님의 대속이 내 안에 와 가지고 내가 됐어. 실지가 실상이 나한테 와 가지고 내가 됐어. 이래서 진리로 낳았다 '하나님의 자녀라' 또 하나님의 성전이라 하는 말은 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는 증거를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을 그날에 너희가 알리라'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이오. 이렇게 해서 실지의 요소가 와 가지고 우리가 됐는데, 그러면 첫째 아담의 자손된 우리와 둘째 아담의 자손된 우리가 자손된 것이 같은 것이 뭐 뭐이냐? 그 같은 것을 좀 생각해 보면은 모양도 같고, 또 성질도 같고 또 요소의 실상이 와 가지고 내가 된 것도 같고 다 같은데, 다른 것이 뭐 하나 있으니 다른 것이 무엇인가?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자 다른 것이 뭐인지 그거 한번 말해. 그걸 알면 내가 설교하기가 좀 수월하겠어. 다른 것이 뭐입니까? 자, OOO씨? 다른 게 뭐이야? 녜 하나는 쪼갱이가 났고, 쪼갱이가 났고 둘째 아담의 자손은 쪼갱이가 나지 안하고 한덩어리입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생명 내 생명 하나요 또 지혜는 몇입니까? 지혜도 하나님의 지혜 내 지혜, 아버지의 지혜와 아들의 지혜가 하나입니다. 능력도 하나요, 또 생명도 하나요, 희로애락도 하나요, 소원도 하나요. 이러니까 이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은 머리요 우리는 그 몸이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러니까 그거 어째 그라면 첫째 아담의 자손은 부정 모혈이 떨어져 나와 가지고 그것이 하나의 씨가 돼 가지고 그게 자라서 내가 됐는데, 그라면 나뉘지 안하고 어찌 하나님 아들이 되는가? 그러면 이것이 다릅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이시요, 광대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러면 하나님이 만 명 속에 가 가지고 만 명의 생명이 되고 만 명의 종자가 됐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만 쪼갱이로 갈라졌습니까 갈라지지 안하고 하나님 한 분 그대로 있습니까? 하나님 한 분 그대로 있으면서 당신의 참이라신, 당신의 생각이라면, 당신의 혼자의 생각이 만 인의 생각이 다 되고, 억만 인의 생각이 다 되고 이러기 때문에 하나가 그 전체에 얼마든지 퍼져 나가서 하나가 되는 그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은 광대성을 가졌다 이래서 하나님의 무소부재성, '하나님은 계시지 않은 곳이 없다' 이랬는데 그 말은 모순돼서 잘못돼서 하나님의 광대성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광대성이라 말은 한 분이 억억억억만 명 속에도 제십니다. 억억억억만 명 속에도 계십니다. 천 년 전에도 계셨고, 만 년 후에도 계시고 이렇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가지고 그런 데 제재받지 안하고, 이 한 분이 수많은 그 속에서 있었는데 여게도 하나님 계시고, 자, 그러면 지금 자기 속에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믿는 사람 손 들어 봐요 그러면 계시면, 그러면 여러분들 속에도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고 내 속에도 계시면 그러면 하나님이 몇이요? 그라면 하나님이 몇이야? 한 분인데 어째 그래 있어? 이것이 완전자의 피조물을 초월한, 이거는 하나님의 완전성 광대성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완전성으로 광대성으로 우리에게 와 계시고 영원성으로 와서 계시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가 자라가는 것은 어떤 것이 새사람으로 자라가느냐 하면은 하나님의 생각이 내 생각되고 내 생각이 하나님 생각되고 둘이, 생각이 둘이 아니고 생각도 둘이 아니고, 소원도 둘이 아니고, 마음도 둘이 아니고, 뜻도 둘이 아니고, 자, 힘은 그라면 하나님의 힘과 우리 교인들 만 명의 힘이 있으면 힘은 그라면 몇 개입니까? 만 명이 힘을 가졌으니까 그 힘이 몇 개요? OOO목사? 한 힘이 그라면 어찌, 한 힘이 한 사람 속에만 있지 열 사람 속에 있을 수가 있어? 그게 하나님의 광대성이요, 완전성이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이래서 우리들이 '너희가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 가고 있느니라' '그리스도의 몸으로 자라가고 있느니라'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래서 요것을 요만치 믿고, 이제 첫째 아담의 자손이 둘째 아담의 자손이 되는 데에 변해진 것이 있느냐? 변해진 것이 있느냐? 영이 변해졌습니까 안 변해졌습니까? 첫째 아담의 자손의 영과 둘째 아담의 자손의 영과 영이 같은 영입니까 변해졌습니까? 예? 안 변했어.
영이 하나입니다. 영도 하나요, 육도 하나요. 또 이성은? 속성은 어떻습니까? 속성은 첫째 아담의 속성과 둘째 아담의 자손의 속성과 속성이 그것이 한 속성입니까 또 새로 딴 속성이 만들어졌습니까? 한 속성입니다. 한 속성이오. 한 속성인데 한 속성인데 이제 둘째 아담의 자손의 생명과 첫째 아담의 자손의 생명과 생명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다릅니다. 첫째 아담의 자손의 생명은 죽는 생명입니다. 죽는 생명. 둘째 아담의 자손은 죽지 않는 영생하는 생명입니다.
이러니까 자 첫째 아담의 것이 둘째 아담의 자손이 될 때에 이제 바꾸어겼거나 변동된 것이 뭣뭣입니까? 영이 변동 됐습니까 안 됐습니까? 변동 안 됐소. 육은 변동됐소 안 됐소? 변동 안 됐소. 마음은 변동 됐습니까 안 됐습니까? 마음도 변동 안 됐어. 모든 속성들은 변동 됐습니까 안 됐습니까? 안 됐어. 내나 첫째 아담의 자손 그것입니다. 다만 이제 변동된 것은 뭐이 변동됐습니까? 생명이 변동됐습니다. 하나는 죽어가는 생명이고 하나는 영생하는 생명으로 이와 같이 우리가 영생하는 생명을 타고 났다 말이오.
영생하는 생명이 그라면 생명은 우리가 받았습니까? 신적 요소인 그 진리 영감 그 자체를, 자체의 요소를 우리가 받았습니다. 자체의 요소가 우리 속에 와 가지고, 우리 속에 와 가지고 내 중에 내가 된 것입니다. 내 중에 내. 내 안에 주인공이 됐습니다. 나는 그를 모시고 있는 성전이 되고. 그라면 자, 첫째 아담의 자손은 이 외모 껍데기고 또 둘째 아담의 자손은 뭐입니까? 지혜와 능력입니다.
지혜와 능력이요 생명이십니다.
이래서, 우리가 잘못하면 첫째 아담에게 속한 그 자손된 우리는 없어지고 딴것이 이래 된 줄로 이렇게 아는데 없어지지 안하고 꼭 그 영, 그 영 그 마음, 그 영 그 마음 그 몸입니다. 그 영, 그 마음, 그 몸이요, 그 속성입니다. 속성인데 영은 이것이 영계에 가 가지고 뭐 억억만 년이라도 살 수 있는 그런 존재지마는, 우리 마음도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지마는 이 고기덩어리 피와 살로 된 이것은 그렇게, 장구히 보존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피와 살로 된 이거 고기덩어리 이거는 자꾸 늙어지고 쇠해지고 낡아지고 하기 때문에 안 되니까 안 되는 이거는 부득이 이걸 다시 변화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에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또 혈육의 것이 신령한 것으로,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그 말씀이 성경 어데 있습니까? 고린도전서 15장에 있습니다.
이러니까, 첫째 아담의 것을 그대로 우리가 가질 것은 가지도록 돼 가지고 있고 가질 수 없는 것은 변화를 시켜 가지고 가지고, 그런데 다만 거게서 둘째 아담의 자손된 내가 첫째 아담의 자손된 이것의 주격이 돼 가지고 이것을 살려서, 그러면 영을, 영을,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 우리가 난 것은, 우리가 나기를 하나님 아버지 아들로 났는데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은 무슨 요소로 됐습니까? 하나님의 요소로 됐습니다. 하나님의 무슨 요소로 됐습니까? 진리의 요소로 됐습니다.
영감의 요소로 됐습니다. 또 예수님의 완전 대속의 요소로 됐습니다. 하나님에게 대해서만 소망하는 그 소망의 요소로 이것이 됐습니다. 이 사람으로 우리가 났습니다.
그러면, 첫째 아담의 자손과 둘째 아담의 자손이 이것이 둘입니다. 자손이 둘째 아담의 자손도 있고 첫째 아담의 자손도 있고 이 두 자손인데, 이 두 자손이 둘이 아니고 하나가 됩니다. 지금은 둘이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둘째 아담의 자손은 첫째 아담의 자손하고 합작을 해서 둘이 하나될라고 애를 쓰고 또 첫째 아담의 자손은 둘째 아담의 자손하고 하나 안 될라고 발동을 하고 도망을 칩니다. 이런 것이 지금 우리들입니다.
이러니까, 첫째 아담의 자손은 이거 자꾸 둘째 아담의 자손하고 합작을 안 할라고 애를 쓰고 하는 그것이 뭐이냐 하면 육체의 생각이요, 육체의 욕심이요 또 고린도후서 5장에 '육체대로 그리스도도 알지 안하며 육체대로 사람들도 알지 않는다' 육체대로 아는 것, 그거 자꾸 그렇게 지금 살라 하는데 왜 이놈은 이래 삽니까? 이 첫째 아담의 자손 이것이 이렇게 살라고 하는 것은 누구 따라서 이렇게 살라 합니까? 요거는 악령을 따라서 살고, 악령에게 감염돼 가지고 제 중심으로 살면 제가 왕될 줄 알고 제 중심 자기 위주로 사는 그게 사는 것인 줄 알고, 마귀 그놈에게 유혹받아 가지고 이래 자기 중심으로 악으로 살라 하고 악령 악성으로 살아온 하나 둘 버르징이가 생겼으니까 그게 습성이라 말이오. 습관이라 말이오. 그놈 가지고 이래 가지고 이것 때문에 지금 이 심신이 합작을 할라 해도 안 할라고 합니다.
그러면 첫째 아담에게 속한 것으로 쓸모 있는 거는 뭐이 쓸모 있습니까? 첫째 아담에게 속한 자손으로서 쓸모 있는 것은 뭐이 쓸모 있지요? 자, 영이 쓸모 있고, 영은 탈색만 하면 씁니다. 영을 악령 악성으로 물을 들였기 때문에 이 탈색만 하면 씁니다. 영도 그 영을 영원히 우리가 쓸 것이고, 영도 쓸모 있고 또 혼은 어떻습니까? 마음은 쓸모 있습니까 없습니까? 마음도 쓸모 있고 또 몸은 어찌 됩니까? 몸도 쓸모 있어. 몸도 쓸모 있어요. 몸도 다 쓸모 있고, 이런데 쓸모 있는데 이거는 시간에 제한을 받고 공간에 제한을 받기 때문에 이거는 부득이 시간과 공간에 제한받는 것을 제한받지 안하도록 이것을 변화를 시켜야 되겠다 그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부활하는 것이 이거 변화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자. 그러면 우리 속성은 지식성, 지혜성, 선성, 사랑성, 진실성, 의성, 거룩성. 주권성 이게 안 믿는 사람들도 다 있고, 우리들도 다 있고 첫째 아담에게 우리가 나 가지고 다 이것들이 있는데 그러면 이 속성은 있는데 이 속성은 못 쓰니까 이거는 버려 버려야 됩니까 이 속성을, 물들어 있는, 악령 악성으로 물들어 있는 그것만 탈색을 싹 해 버리고 이제 중생된 진리, 영감, 예수님의 대속, 사죄, 칭의 화친의 대속, 하늘 나라의 소망, 새사람이 요걸 딱 지배해 가지고 새사람으로 합작이 돼서, 이성이 요거 탈색되고 하나님으로 완전히 감염돼서 하나님으로 염색을 해서 하나님으로 감염돼서 요렇게 하면은 요 이성 쓸모 있소 없소? 쓸모 있습니까 없습니까? 쓸모 있습니다. 그러면, 첫째 아담에게 쓸 거, 못 쓸 것이 뭐이냐? 영도 쓰고. 혼도 쓰고, 몸도 쓰고, 혼이라면 마음이라 말입니다. 또 이성도 쓰고 다 쓰는데 이 행동은 쓸 거 있습니까 없습니까? 첫째 아담의 행동은, 첫째 아담의 자손의 행동은 쓸 거 있소 없소? 쓸 거 있습니까 없습니까? 예? 쓸 거 없어. 쓸 거 하나도 없어. 또 그러면 이것이 가지고 있는 행동도 쓸 게 없다.
지혜는 쓸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첫째 아담의 자손의 지혜는 쓸 거 있소 없소? 못 써. 또 모든 그 능력은 쓸모가 있소 없소? 능력도 쓸모 없어. 형체만 써.
지식도 쓸모가 없어.
이런데, 이제는 둘째 아담의 자손으로 난 이 둘째 아담의 자손이 속에 중심이 되고 첫째 아담의 자손은 그 지체가 되기를, 마치 비유컨대는 우리가 지금 이목구비 수족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가지고 있는데 오전에 조금 그걸 말하다가 말았는데. 그러면 우리가 보는 거는 뭐이 봅니까? 보는 거는 무엇이 봅니까? 자, O목사. 보는 거는 뭘로 봐, 그러면? 그러면? 눈으로 본다. 자, 눈이 봅니까 뭐이 봅니까? 생명이 봅니다. 생명이 눈을 이용해 가지고 봅니다. 보는 것도 생명이 보고, 듣는 것도 생명이 듣고, 또 말하는 것도 혀가 말하는 게 아니라 생명이 말합니다. 또 그 모든 이 수족들도 손으로 하면 손이 하는 줄 알아도 이 손이 못 해요. 이 생명이 해요. 생명이 이 손을 이용해서 해요. 이용해서 하는데, 그러면 그걸 '어데 손이 하는데 생명이 이용해 한다고 말하느냐, 생명 보이지도 안하는 것이?' 생명은 안 보입니다. 천한 것은 보이고 귀한 것은 안 보이는 줄 여러분들이 아십시오 생명이 하는지 안 하는지 뭘 보고 알겠소? 생명 딱 떠나 버리니까 세계의 참피온 딴 사람이 꼼짝도 못하고 송장으로 메어 나가야 됩니다.
맞아요 안 맞아요? 저 O집사 맞아 안 맞아? 그거 그라면 모든 거 하는 움직이는 것이 생명이 움직이고 생명이 이것 저것 필요한 대로 이용해 가지고 움직이고 생명이 움직이는 것이지 생명 아닌 그것들이 단독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해요? 확실해? 확실해.
이와 마찬가자로, 중생, 둘째 아담으로 난 중생은 그 중생은, 우리에게 뭐, 둘째 아담으로 난 거는 전부, 둘째 아담으로 난 것은, 아담으로 난 거는 요소가 나왔는데, 하나님 요소가 나와 가지고 생겼는데 그 요소가 뭐이냐? 진리, 영감, 예수님의 대속, 하나님께 대한 소망 이것인데 이것이 눈에 보이요 안 보이요? 눈에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안 보여. 안 보이는데 우리 육체 속에 생명이 들어서 이 육체를 모두 다 통치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둘째 아담의 자손이 이 첫째 아담의 자손 속에서 생명이 돼 가지고 이것들을 지금 움직여서 역할하기를 영원토록 한다 그 말이오.
그러면 둘째 아담의 자손이 지금 영원토록 그 모든 일을 하늘나라에서 하고, 또 영계에서도 하고, 이 물질계에서도 하고 이렇게 하는데 할 때에는, 할 때에는 뭣이 합니까? 둘째 아담의 자손이 와 가지고 합니까 첫째 아담의 자손이 합니까? 첫째 아담의 자손이 보기에는 꼭 그게 혼자 합니다. 첫째 아담의 자손이 하는데 그게 마치 비유컨대, 하는데 그 실상은 하기는 첫째 아담의 자손의 영, 육. 마음, 몸뚱이 이것이 하는 게 아니라 실상 하는 것은 둘째 아담의 자손이 한다 그 말이오.
알겠습니까? 손으로 하는데, 실상은 속에 있는 생명이 한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이 표현을 우리 사람들 방언이라 하는 거 이거 몇 가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방언이 다 발표를 못 해요.
이래서, 우리가 다시 난 거는, 거듭 살아났다라는 요 말도 있지마는 우리가 새로 생산됐어. 새로 우리가 출생했어요. 우리가 다시 우리가 출생을 했습니다. 여게 말하기를 고건도후서 5장 16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새것 되니까, 이제 새것 됐으니까 새사람으로 모든 사리 판단, 가치 판단, 모든 취사 선택을 새사람이 주인돼 가지고 새사람이 하지 옛사람 고기덩어리 그 사람으로 하는 거 아니라 말이오.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니' 육체대로 안다는 육체는 이것은 첫째 아담의 자손을 가리켜 말합니다. 그러면 첫째 아담의 자손대로 살지 안하고 둘째 아담의 자손대로 산다 그 말이오. 알겠습니까? 이러니까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그러면 우리가 세상에 이래 살든지 저래 살든지 사는 그것이 다 그리스도의 심판 앞에 가 가지고 우리가 산 그대로 이제 성화돼 가지고 나타날 것인 것입니다. 또 그거 두고, 그러면 우리 육체의 생명을, 우리 육체의 생명을 이십세기의 최고의 의학자, 최고의 의학자가 육체의 생명은 어떤 것이라고 발표를 할란지? 육체의 생명에 대해서 정의를 알란지? 육체의 생명을 알란지? 그들은 모릅니다. 그들은 몰라요.
암만 떠들어 쌓아도 몰라요. 육체의 생명 이것도 뭐 현미경으로 들여다 본다 해도 들여다 보이지 안하고, 몇천 배 돋보기로 본다 해도 안 보이고, 육체의 생명은 보이지 않습니다. 육체의 생명은 보이지 않는데 육체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살게 해 주신 그것이 생명입니다. 살게 해 주신 그게 생명인데, 살게 해 주신 그것이 생명인데 요 생명을 가지고 살게 해 줬으니까 그분이 살게 해 주신대로 살면 그것도 얼마든지 살 수 있을 터인데, 하나님과 딱 끊어져 버렸으니까 하나님이 살게 해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살게 해 주신 게 끊어져 버리니까 끊어질밖에, 그게 죽음이라. 이런데 이거는 다 유한한 생명이요 저급의 생명이요 온전치 못한 생명 이것도, 이십세기의 과학들이 떠들고 자랑하지마는 '생명이 어찌 생겼노, 생명이 뭐꼬?' 하면 정의를 못 내려요. 우리 믿는 사람은 그래 말했지마는 그 사람들은 또 말해도 그 믿어지지도 안해요.
이런데 그러면 영생하는, 영생하는 생명으로 우리가 살아났습니다. 우리가 둘째 아담으로 살아난 그것은 무슨 뭉텅이입니까? 고기덩어리 뭉텅이입니까 그것이 무슨 뭉텅이입니까? 둘째 아담의 자손으로 난 것은 그거 무슨 뭉텅이지요? 하나님과 꼭 같은 뭉텅이입니다. 뭉텅이인데 그것이 진리 뭉텅이요, 성령 뭉텅이요, 죄 없는 뭉텅이요, 의로운 뭉텅이요, 하나님하고 한덩어리된 뭉텅이요, 하나님께 대한 소망하는 그 뭉텅이요 이렇게 된 건데, 그러면 그 뭉텅이가 그렇게 그 뭉텅이가 큽니다. 그 뭉텅이는 몇 개가 합한 뭉텅이입니까? 손가락으로. 몇 개가 합한 뭉텅이요? 녜, 네 개가 합한 뭉텅이인데 또 여섯 개가 합한 뭉텅이입니다.
그런데 그 뭉텅이가 그렇게 뭉쳐서 된 뭉텅이인데 그 뭉텅이 이름이 뭐입니까? 그 뭉텅이 이름이 뭐이요? 그 뭉텅이 이름이 뭐입니까? 골로새서 3장 3절인가? 뭐이요? 우리 뭐입니까? 생명 뭉텅이라, 생명 뭉텅이. 생명, 우리의 생명 뭉텅이라.
생명 뭉텅이인데 생명 뭉텅이 그 뭉텅이 이름을 또 달리 말하면 뭐이요? 그리스도라. 그리스도.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 이러니까, 그러면 육체가, 첫째 아담에게 속한 자손인 이 육체의 희로애락.
지정의, 언행심사, 모든 희로애락 뭐 지정의 이런 것이 움직이는데 그 움직이는 그것이 움직이는 자체입니까 생명이 그것들을 붙들고 움직입니까? 생명이 그것들을 붙들고 움직입니다. 생명 아니면 그까짓 거 하나도 움직이지 못 합니다.
하나도 못 해요. 천하에 제일 능숙한 자라도 생명 떠나 버리면 그거는 그만, 썩어 버리고 송장됩니다. 생명 떠나면 썩어 버리고 송장됩니다. 그거 생명으로 말미암아 움직이는 것같이 첫째 아담의 자손 속에 둘째 아담의 자손은 첫째 아담의 자손의 뭐입니까? 둘째 아담의 자손은 신적 요소로 된 것인데 그것은 첫째 아담의 자손의 뭐입니까? 생명이오. 첫째 아담의 자손의 생명입니다.
생명이요 지혜요 능력이오. 이런데 속성은, 속성은 바꿔졌느냐 안 바꿔졌느냐? 속성은 그 속성인데 그 속성 속에 뭣만 왔습니까? 속성이 살아났습니다. 속성이 살아났습니다. 속성이 살아난 것은 뭘로 살아났느냐? 둘째 아담의 자손으로 살아났어 둘째 아담의 자손으로 살아났는데 둘째 아담의 자손이 누구의 자손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자손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분자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입니까, 연합된 연합성의 것입니까 분산되고 분열되고 분자된 것이고 분식된 것입니까? 나눠졌습니까 안 나눠졌습니까? 안 나눠졌습니다. 그러면 세계의 단일 교회라 하는 것이, 단일 교회라는 것이 단일, 단일의 하나님, 단일의 하나님이 우리 중보자로 나타난 것이 단일 예수 그리스도.
단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단일 생명들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제 희로애락이나 지정의나 모든 것이 단일의 것입니다. 그거 누구의 것입니까? 하나님 자체의 것입니다. 하나님 자체의 것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광대성으로 능력이 와 가지고 역사하는데 그러면 하나님은 어데 계십니까? 하나님은 내 안에 계시요. 또 저 O목사님은 있다가 하나님은 제 안에 있다고 그러면 네 안에가 내 안에가 둘이 서로 시비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안에 계시는데 네 안에 계셔?' '내 안에 계시는데 네 안에 계셔?' 그러면 자기도 자기 안에 하나님 계신다 그 말이 맞고 나도 내 안에 하나님 계신다는 말이 맞고, 그러면 하나님이 몇 분입니까? 한 분인데 그렇게 계십니다. 이것이 인간의 지식으로서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지극히 거룩한 완전성이라는 거게서 이 모든 것이 인간들의 이 유한한 해석 유한한 지식, 유한한 분류, 유한한 표현으로 표현할 수 없게 되는 것이 삼위 일체의 하나님과 꼭 같은 그런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세계 교회는 단일 교회라 하는 것을 이것을 처음에 깨달은 사람은 깨달았지마는 그 사람의 서적만 보고 백지 이래 줄줄 하니까 요새는 단일 교회니 뭐 그 학자들이 떠들어 쌓지마는 단일 교회라 하는 건 어데서 어떻게 돼 단일 교회가 되는가 그걸 알지도 못한다 그 말이오. 어떤 사람이 졸업 논문을 쓰는데 '이 졸업 논문을 쓸 때 신학교 신학 대학원 졸업 논문을 쓰는데 그 어떻게 써야 됩니까?' 그래 '이거 배운 것 하나만 쓰면, 하나만 내놔도 그들이 몰라서 뭐 대가리 싸짜매고 떨떨거리다가 아무래도 학위는 줄 거다.' 내가 그런 말을 했어.
이래서, 이제 거기서 지금 또 뚝 떨어져 나와 가지고 그러면 자, 생명이, 생명이 떠나면 뭐 됩니까? 생명이 떠나면 뭐 됩니까? 생명이 떠나면 어찌 됩니까? 생명 떠나면 썩는 것뿐입니다. 알겠습니까? 생명 떠나면 썩는 것뿐이오. 썩다니? 생명 떠나면 첫째 아담의 자손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이 떠나면 첫째 아담의 자손되고 말아요. 또 첫째 아담의 자손만 된 이것이 사는 데에는, 첫째 아담의 자손 이것이 영생하고, 멸망하지 안하고 영생하고 영광스럽게 존귀하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데에는 어떻게 되느냐? 이 둘째 아담의 자손이 속에서 주권을 가지고 주장이 되면은 이것은 죽지 안하고 썩지 안하고 이거는 다 영생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의 생명이 뭐이라요? 우리의 생명이 그리스도신데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몇 가지로 나타났습니까? 네 가지로, 사죄 칭의 화친은 대속을 말하는 것이고. 사죄 칭의 화친을 할 때에 누가 그렇게 했느냐 하면은 진리가 했고 성령이 했고 진리와 성령이 들어서 사죄 칭의 화친을 하도록 했움니다. 에베소서 1장에 보면은 그 지극히 큰 능력이 예수님을 죽게도 하고 살게도 하고 모든 것 다 그렇게 대속하는 일을 하기를 지극히 큰 능력이 그 일을 했는데 지극히 큰 능력이 지금은 어데 가 있습니까, 일 안 하고? 지극히 큰 능력이 지금은 어데 가 있다 했습니까, 성경에? 지극히 큰 능력이 지금은 어데 가 있어요?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 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대속할 때에 무슨 능력으로 대속했소? 지극히 큰 능력으로 대속했는데 그 능력이 지금은 어데 가서 지금 팔짱끼고 있어요? 그 능력이 지금 어데 가 있습니까? 그 능력이 지금은 어데 가 있어? 그 능력이, 예수님이 대신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으로 모든 피조물을 완전히 살리셨는데 그렇게 큰 대속의 역사를 하게 한 것이 이 능력이 했는데 이 능력이 지금은 어데 가 있습니까? 자, 저 O집사님 한번 대답해 봐. 어데요? '믿는 자 안에' 그래 믿는 자 안에 맞았어, 믿는 자 그 능력이 우리 속에서 지금 역사하고 있습니다. 이걸 믿어야 돼요? 이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으로 다시 두 번 났어, 두 번. 첫째 아담의 자손이요 둘째 아담의 자손이라. 이것이 가리워져 가지고 있어요, 지금. 이걸 믿어야 돼요. 이러니까 옛날도 믿은 사람들 있지만 그 사람들이 믿어 가지고 뭐 하나 설교하니까 그걸 가지고 뭐 국물 울구듯이 울궈 가지고 자꾸 글만 주 대 써놓고 복잡하게만 해 놓고 진리를 가리기만 해 놓으니까 못 알아듣는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암만 설교를 해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사람은.
못 알아듣는 사람은 못 알아들어.
이러니까 우리가 생명 떠나면 썩는다 요것을 기억하십시오. 생명 떠나면 썩는다.
그러면 또 생명이 떠나면 썩고 그러면 생명 떠나면 썩고 할라면 그리스도가 떠나면 썩는다 말인데 진리, 영감, 사죄, 칭의, 화친 하늘나라의 소망 이것으로 움직이는 생활은 다 생명이 사는 생활이기 때문에 영생이 되고 이거 없이 사는 것은, 이거 없이 사는 것은 다 썩는 생활이요 죽는 생활이오. 이거 없이 살 때에는 무엇이 주장하고 있어요? 악령 악성 악습 이것이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래 그만 다 썩고 다 멸해져 버리고 말아요.
이러니까 우리가 우리의 생명이신,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떠나면 나는 죽으니까 이 생명이 살면은 그런 다 영생이 되는 것인데, 이러기 때문에 자, 그 육체 첫쌔 아담의 생명은 썩을 생명이요 죽을 생명인데 이 생명에서 둘째 아담의 생명이, 첫째 아담의 생명이 이거는 죽은 생명이 됐기 때문에 둘째 아담의 생명의 산 생명으로 우리에게 와 가지고 살리는 생명으로 왔다 그거요.
이러니까 그 썩을 생명도. 썩을 생명도 이목구비 수족의 움직이는 것은 보기에는 이목구비 수족이 움직이는 것 같지마는 실상은 보이지 않는 생명이 그 속에서 움직일 때에 이목구비 수족을 이용와 해 가지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제 첫째 아담의 자손은 물질적이요, 다 이거는 신령하지 못하고 물질적의 것이기 때문에 물질적으로 되어 있는 첫째 아담의 자손에게 이제 진리, 영감, 의, 무죄, 하나님과 동행, 하늘나라의 소망하는 이 신적 요소로 난 둘째 아담의 자손이 첫째 아담의 자손의 주격이 돼 가지고 둘째 아담의 자손이 첫째 아담의 자손을 붙들고 이용해서 이런 저런 모든 언행심사를 하는 그것이 다 영생이라. 이해가 됩니까? 이해가 돼요? 그러니까 생명 떠나면 썩습니다. 우리는 생명이라. 생명이 뭐인데? 예수 그리스도라. 예수 그리스도가 뭐인데? 분류하면은 진리요. 우리는 진리 떠나면 그만 썩습니다. 진리 떠나면 썩고, 영감 떠나면 썩고 또 하나님 앞에서 주님이 대형으로 사죄했기 때문에 나는 죄 없는 자다. 죄 없는 자로 살기 때문에 사죄 떠나면 썩고, 칭의 떠나면 썩고, 하나님과 동행 떠나면 썩고. 하나님을 향한 소망 떠나면 썩고 그만, 그러면 자 사람들이 하늘나라와 하나님께 대한 소망 외에 땅위에 이런 거 저런 거, 하루 종일 말이지요, 아침부터 밤까지 그저 소망하는 게 땅의 것만 소망하는데 그 소망하는 그것은, 그 소망해서 하루 종일 살았습니다. 그거는 썩었습니까 살았습니까? 그 하루 종일 살았으면 하루 종일 썩어갔습니까 살았습니까? 썩어갔어.
그러면 썩어간 그거는 어짤 겁니까? '썩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이거 지금 잡아 놓은 고기는 썩지 안해요? 잡아 놓은 고기 그게, 잡아 놓은 고기를 살리는 그 방법이 뭐이야? OOO? 다시 물에 넣어야 돼? 죽은 고기를 다시 물에 넣어야 돼? 죽은 고기를 다시 물에 넣으면 사나? 썩어 버리지. 그것도 자, 그러면 죽은 고기 살리는 법이 뭐이요, 여기 한번 말해 봐. 그래. 그만 OO씨가 먹으면 OO씨 피도 되고 살도 되고 뼈도 되고 다 돼. 알겠어. 그러기 때문에 '썩을 것이 생명에게 삼린 바 되기 위함이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러니까 하루 종일 하나님께 대한 소망은 안하고 땅에 있는 소망만 가지고 부지런히 일했다 말이오. 부지런히 뭐 바느질도 하고, 또 '예, 손님 오십니까?' 자꾸 이래 장사도 하고 이래 했는데 그 소망을 거게서 하면서도 하나님과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하면은 썩은 것이 아니고, 다 같이 장사해도 다 같이, 그 뭐꼬? 아따, 사탕 장사를 해도, 해도 하나는 산 생활 하나는 썩은 생활합니다. 썩은 생활해서 썩은 생활한 그것을 그게 생명에게 삼킴만 되면 돼요. 썩은 생활 해 가지고 벌어 놓은 번 돈, 또 번 돈 그거 가지고 그거 산 생활하면 되고 또 썩은 생활해 가지고 돈 번 그거 먹고 먹은 힘 가지고 이제 산 생활 하면 돼요. 그라면 썩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돼 가지고 생명화된다 말이오. 이거 그렇기 때문에 이 모든 그 만물의 자연계시, 자연 이치의 이것과 성경 이치가 한테 합해지면 서로 성경 이치를 자연 이치에서 깨닫게 되고 자연 이치를 성경 이치에서 깨닫기 때문에 자연 계시 특별 계시가 둘이 상합해 가지고 서로 협조가 되지 안하면은 바른 깨달음을 가지지 못한다 그말입니다.
그런고로 이제 오늘 오후에는, 생명 떠나면 썩는다. 생명으로 산 생활은 전부 영생이다. 생명으로 산 생활은 전부 영생이다. 우리 생명을 몇이라고 했소, 손가락으로? 예, 네 가지. 네 가지로 산 생활은 전부 영생입니다.다.
녜,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