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25 16:20
신앙 양심
본문 : 베드로전서 3장 21절∼22절 제목 : 신앙 양심 요절 :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 (벧전3:22)
양심은 마음 부분에 속한 요소인데 심신으로 된 육의 빛이다. 인생의 양심은 동일한 양심이었으나 변질되어 심히 수많은 양심으로 늘어났다. 양심은 자기의 지식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뱀의 유혹으로 타락후 사이비한 인간 지식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기 때문에 양심의 수도 많게 되었다.
우리는 양심을 믿지 못한다. 왜냐하면 죽은 지식은 죽은 양심을 만들게 된다.
산지식은 하나님 한 분의 지식뿐이다. 그런고로 산 양심은 하나뿐이니 곧 신앙 양심이다. 신앙 양심은 기독자라고 다 가진 것은 아니다. 진실된 신자만 가진 양심이다. 산 양심은 참사람 새사람의 눈이요 또 귀가 된다. 영감 만나 성령과 동행하고 또 성령과 동행하여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육체 중에는 양심이 제일 보배요 전체의 주격은 영이다. 우리는 양심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져야 한다.
1. 신앙 양심은 하나님의 지식 성경 말씀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전심의 인도자이다. 눈과 귀가 된다.
2. 악령으로부터 양심의 화인 맞아서는 안 된다. 화인 맞는 것은 양심이 무엇에게 종이 되는 것이다. 옛사람 자기나 권세나 돈이나 정이나 온갖 욕심이나 혈육의 사랑이나 동류의 사랑이나 정욕의 사랑이나 미(美)나 각종 고(苦)나 죽음이나 이런 것들의 종이 되면 안된다. 종이 되면 전부는 사망이다. 빨리 벗어나야 한다.
3. 양심을 죽여서는 안된다. 양심을 알리는 것을 꺾어 행하는 행동이 양심을 죽이는 것이다.
4. 양심을 매장하면 안된다. 양심이 알리고 호소하는 것을 묵피[默避]하는 것이 매장하는 것이다.
5. 양심을 북돋우어야 한다. 양심을 긴장시켜 양심의 지휘를 받으려고 애쓰는 것이다.
6. 양심을 기를 것이다. 무엇이든지 양심의 판정이 내렸을 때는 이해, 자타, 생사를 불구하고 단행, 불변의 행위이다.
7. 성장하고 능력 있는 양심은 소유와 행위와 몸과 마음과 생명을 주권하는 양심이다.
8. 양심행위와 신앙행위는 판이하다. 양심행위는 인적요소요 신앙행위는 인적요소의 행위를 성령님이 인정하여 동행하여 주시므로 능치 못함이 없는 전능의 신앙행위이다. 내게 있는 것을 다 빼앗겨도 양심행위만 가지면 신앙행위 곧 영감의 전능행위가 이루어지나니 세상을 이기는 행위이다.
9. 모든 지체로 일하는 것보다 양심행위, 양심행위보다 영감행위가 제일 능률이 높다.
문답 1. 양심의 수가 얼마나 되느뇨? 답 : 계수 못할 만큼 많다.
2. 양심은 무엇의 지배를 받느뇨? 답 : 그 본인의 지식의 지배를 받게 된다.
3. 양심행위라고 다 믿을 수 있느뇨? 답 : 아니다, 산 양심행위만 믿을 수 있다.
4. 산 양심이 무엇이뇨? 답 : 산 양심은 하나님의 지식의 인도만을 따르는 양심이다.
5. 양심은 참사람의 무엇이 되느뇨? 답 : 눈과 귀가 된다.
6. 인적 요소의 노력 중에 제일 능률이 많은 것은 무엇이뇨? 답 : 양심 노력의 행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