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생활과 목적(제목?)

 

1983. 5. 11. 수새

 

본문 : 시편 1편 1절∼6절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 하리로다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이 1절 인데, 1절. 1절은 실행해라 그말입니다.

실지로 실행을 해라. 신앙 생활에 중요한 종류 세 가지 중에 하나는 실행하라.

 그러면 실행하면 실행하라 하지 왜 '악인의 꾀를 쫓지 않으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 자리에 앉지 아니하라'고 말했는가? 요것 실행하라  말입니다. 자기가 실행을 안 하면 악인이 누구인지 모 릅니다. 어떨 때는 자기가  악인 되고, 또 자기와 관계된 사람이 악인이 되고,  악인이라 말은 우리 기독자들은 인간 중에도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만 할  기독자가 하나님 중심으로 살려고 할 때에 내 속에도 방해하는 자가 있고, 내  속에서도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 못하게 그 비슷하게 살게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가리켜서 육백육십육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또 나뿐만 아니라 내  가까이 있는, 가까이 있는 그 사람도 전부 육백육십육으로 살라고 이렇게  합니다.

 하나님 중심 빼놓고 그 삐뚤어지게, 어떨 때는 꾀우기를 인간 생각 하는 인간  중심으로, 어떨 때는 이 사건이 닥쳤으니까 사건 해결해야  될 터이니까 사건 중심으로, 또 뭐 물질 중심으로, 어쨌든지 그 중심이 하나님을  두고 '하나ㄴ님을 어떻게 위하나,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나, 어떻게 기쁘게 하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가?' 이렇게 하나님에게 대해서 생각지 아니하고 다른 것에  대해서 생각하도록 그렇게 할라고, 하나님 생각하면서 사는 것을 방해하는 그런  것이 많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기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라고 하지  아니하면 악인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악인을 바로 자기가 발견할 수 없습니다.

 또 "죄인의 길에 서지 안하며" 이 말은 죄인은 누가 죄인이나 하면 하나님  말씀에 삐뚤어진 것이 죄인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삐뚤어지게 하는 것이 전부  죄인이오.

 삐뚤어지게 하는 데는 행동으로 삐뚤어진 것도 있지마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삐뚤어진 것입니다. 마음으로 삐뚤어진 것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자기가 이성으로 계획해 가지고 삐뚤어진 그것보다도 본능, 본능 그것은  이성으로 판단하는 게 아니고 자기의 본 습성이 그렇고 자기의 천성이 그런  것처럼 그것이 본능적으로 나온다 그거요.

 자꾸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아니고 그저 요리 조금 삐뚤어지게, 조금  삐뚤어지게 하다가 또 조리 삐뚤어지게 하다가, 그리 안 삐뚤어 지면 또 위로 또  치우치게 하다가 또 당기다가, 어쨌건 하나님의 뜻에 명중하지 못하도록 자꾸  방해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기가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이런 걸 발견하게 되고 또 살고 난 뒤에 자기의  생활한 것을 한번 반성해서 계산을 대 보면 그뭐 쉬지 않고 요리 조금 조리  조금, 요리 위로 조금 아래로 조금 이래 가지고서 어찌 됐든지 삐뚤어져서 자기  하루 종일 산 생활을 생각하면 그것이 전부 삐뚤어진 것이 아니면 악인의 길이  아니면 또 죄인의 길, 악인의 꾀를 좇은 그 일이 아니면 죄인의 길, 또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그만 게을 부리는 것, 이것을 다 계산해서 간추리고 보면 하루  생활이 허 무했다 그거요.

 그러기에 기독자가 살 위치가 어데냐? 살 위치는 죄가 없는 성결한 자리에  살면서 '나는 참 바로 잘 살았다. 의롭다.' 하는 그것은 기독자가 머물 위치가  아닙니다. 바리새인이 그 위치에 머물렀다가 하나님 앞에 버림을 받았습니다.

 기독자가 머물 위치는 어떤 데인고 하니 죄인 위치입니다. 그러면 자꾸  얼마든지 죄를 짓고 사는 것이 기독자의 생활인가? 그게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준해서 살려고 하니까 그만 악인의 주장하는 그 미혹에 빠졌고, 또 거기에서 안  빠질라고 악인의 자기 중심에 '내가 내 중심대로 안 하고, 다른 사람의  중심으로도 안 하고, 무슨 물질이나 사건 이런 중심으로 내가 하지 안하고  하나님 위주로 하나님 중심으로 내가 하지.' 요 일에 전력을 기울여 가지고  하다가 보니까 중심은 맞았는데 그만 죄인의 길에 섰다 그말이오.

 하나님 중심 그것만 생각하다가 보니까 법칙, 하나님의 법칙을 생각하는 것을  그만 깜막 해서 하나님의 법칙대로 되지 않는 죄인의 길에 섰더라 그거요.

 또 그것을 안 할라고 애를 썼는데 이라다가 보니까 '아이구, 내가 이만치  했으면 다다.' 그만 그래 가지고서 오히려 자기가 지나치게 행한 것같이 자기의  행동을 지나치게 과대평가 해 가지고서 그만 게을하고 퍼드러지기 쉽더라  그거요.

 이러니까 죄인의 자리에 살아야 된다 그말은 과거를 반성을 해 보니 계산을 대  보니까, 따져놓고 계산을 보니까 모두 허무하다 그거요.

 사람이 자기 생활을 시간표를 정해 놓고 알아서 '자, 오늘은 그라면 급속히  많이 할 것이 아니라 그저 아무래도 이 생활이야 할 수 있다 하는, 그렇게 많이  힘을 안 써도 할 수 있는 그런 하루 일과를 정해 놔 보자.'  일과를 정해 놓고 하면 그 일과를 정해 놓지 안하고 계산 대 보지 안할 때에는  자기는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더 너무 잘 살았다 싶어서 오만한 자리에 앉게  되는데 그 일과를 정해 놓고 계산을 대 보니까 요것도 틀렸고 조것도 틀렸고  이러니까 하루 종일 틀린 것뿐이고 또 아무것도 산 게 없어, 열 가지 하기로  했으면 한 가지도 못 했어.

 그러니까 '나는 오늘은 하루 종일 이것 전부 뻐뚤어진 일, 미달되는 일, 또  그리 치우치는 일, 이래서 모두 다 하루 종일 실패가 너무 많다.' 하는 그  반성을, 계산해 가지고 반성하는 그 자리에 살아야 된다 하는 그말입니다.

 인제 그렇게 그 자리에 사니까 자기 보기에는 자기같이 허무한 사람이 없고,  무능한 사람이 없고, 무절제한 사람이 없고, 잘 변하는 사람이 없고 이라는데  제삼자들은 볼 때에 '야, 저 사람 저것 참 대단히 경건한 사람이고 또 말씀  어기지 않고 꼭 말씀대로 사는 참 믿음 지키는 사람이다.' 제삼자는 그렇게  보이는데 제가 보기는 자꾸 실패된 그 자기로 보이는 그것이 죄인 자리에 서는  것이라 그거요.

 이것이 뭐이냐? 또 자기를 시험하는 일입니다. 자기가 하늘에 소망을 가지고도  실행을 해야 되고, 또 자기가 이 세상에서 금을 불로 연단하는 것처럼 '내가  어느 정도 하나님 말씀에 명중하느냐? 어느 정도 어려움을 내가 이겨 나가느냐?  내가 어느 정도 그 어려운 가운데서도 구별해서 구별성을 가지고 나가느냐? 어느  정도 내 행위가 온전하냐?' 하는 그것을 자기 실행해서 시험하는 현실로, 시련을  받는 현실로, 또 만들어서 차차 차차 양육해 나가는, 연성해 나가는 현실로  요렇게,  요것을 보면서 하나님 말씀을 중심해 가지고서 실행하면서 자기는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든든히 의지하고 그를 힘입어서 하나님 법칙을 가지고 해  나가면서 '보자, 내가 앞으로 공산주의자가 오면은 어느 정도 내가 이겨낼 만한  그런 실력이 있나?' 하는 그것을 자기가 시험해 보는 것, 그것이 매일  자기에게서 이루어질 수 있다 그거요.

 그러면 하루 종일 사는 가운데에서 어려워서 삐뚤어진 것도 있겠지마는 또  무심해서 삐뚤어진 것도 있었고 또 내 생각이 이상하게 거기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그만 한 면으로 치우쳐 가지고 삐뚤어진 것도 있고 뭐 흠 투성입니다.

이러니까 여기에서 '나는 내가 말씀대로 살라고 하고 보니까 내라는 사람이 참  허무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면 허무하다는 걸 알고는 낙심할 것이 아니라 '나는 포도나무요 아버지는  포도원 농부라 이랬으니까 하나님이 전부를 다 기울여 가 지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구원 이루는 일을 할라고 할 때에 하나님은 전부를 기울여 가지고 우리  위해서 노력하시고 계십니다.

 또 가물 들면 포도나무 둥치나 가지나 같이 들고, 말라죽으면 같이  말라죽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말은 어데든지 좋 든지  나쁘든지 어렵든지 외롭든지 아주 박해를 받든지 어데든지 주님과 나와는 함께  있습니다. 떨어지지를 않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말은 주님과 나와는 언제든지 함께 있다는  것을 첫째로 말합니다. 함께 있기 때문에 너 혼자 있는 게 아니라 나하고 같이  있다.

 사자구덩이 들어갈 때도 같이 있었고, 불미 그 불 속에 들어갈 때도 같이  있었고, 언제든지 주님은 우리와 같이 있고, 또 하나님의 그 전심 전력은 우리를  길러서 하나님 말씀대로 구원 완성을 하도록 하려고 거기에 전력을  기울이시니까,  제나 나 혼자 있는 게 아니라 주님이 같이 계시고 또 주님의 도우심이 계속하고  있고, 그러니까 주님을 의지하고 바라보고 힘입고 그를 믿으면서 그의 법칙대로  내가 해 보면 하루 동안에 한 시간만 해 봐도 한 시간에 또 넘어지는 것,  삐뚤어진 것, 게을한 것 그게 있었는데 그걸 낙망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그것이 나를 안 것이니까.

 그러면 내가 지금은 살려고 해 보니까 자꾸 그와같이 모두가 다 거짓되니  이렇게 살려고 하지 안할 때에는 거짓된 것이 없었더나? 거짓된 것을  몰랐습니다.

 몰랐다가 말씀대로 살라고 하니까 거짓된 것이 이제 발견돼서 거짓된 것을  거짓된 줄 알고 그래도 거짓되지 안할라고 애쓰는 것이라도 있지 그렇지 안하면  거짓된 줄을 일생을 모르고 자기는 교만해서 모든 일이 부요하여 부족함이 없다  하는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이 될 터인데,  말씀대로 살면서 '보자, 나는 이 시간도 일변은 위로 주님의 그 한없는 은총을  힘입고 내가 어디 있든지 주님과 나와는 하나라. 내가 고난당할 주님이  고난당하고, 내가 욕 얻어먹을 때 주님이 욕 얻어먹고, 내가 칭찬 받을 때  주님이 칭찬받고 주님과 나와는 한 몸처럼 떨어질 수 없는 관계로 주님과 나와  함께 계시고 하나님이 나를 전적 돕고' 이러니까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고독한  감을 느끼지 말고, 주님이 같이 계시니까.

 그라면서 이 시간도, 이 시간도 '나는 나를 시험해 볼란다.' 그러면 실행하는  그것이 '실험해 볼란다.' 이 시간도 실행하면서 '이 시간에도 보자, 내가 어느  정도 진실하며, 어느 정도 정확하며, 어느 정도 견고 한가?'  그러면 자기를 시험해 보는 현실로서 실행을 하면 시험해서 자기를 알게 된다  말이오. 그러니까 현실에서 자기를 알고, 여기에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안한다" 그말은 실행하으로  자기를 발견한 것입니다. 자기를 안 것이라.

 이러니까 자기를 시험쳐 보면은 실력이 어느 정도인고 아는데 자기를 시험하는  현실로, 또 자기에게 있는 잡탱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은 완전한 것이기  때문에 요동치 않은데 인본주의 신앙, 인간 의지, 인간 생각, 또 하나님 의지 안  하고 어만 것 의지해 가지고 나온 힘,또 주님과 하늘나라에 소망하지 아니한 그  다른 소망 이런 것으로 된 것은 하나님께서 연단하실라고 다른 소망으로 된  것이면 그 소망 그걸 딱 깨 버린다 그말이오.

 하나님이 그 소망을 딱 제해버리고 그 소망이 없는 현실을 만들어 주니까 그  소망으로 인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했던 걸 그 소망이 없어 지니까 그만 실쭉하게  그만 마음에 기쁨도 없고 그만 걱정이 되고 여 러가지로 근심에 눌리게 된다  그말이오.

 또 그게 무슨 다른 힘으로 다른 소망으로 했으면 다른 소망으로 했을 때는  하나님께서 우선 딴걸 살리기 위해서 다른 소망으로 한 것 다른 소망을 줘서  사기를 돋궈 일 하지마는 그게 엔간히 되면은 다른 소 망으로 하는 잘못된 소망  그것을 뽑아버려야 되기 때문에 소망 그것을 하나님이 그 현실에서 제해서 그  소망이 깨지는 현실을 줍니다. 깨지는 현실 주니까 뭐 청청하게 용기가 있던  사람이 그 소망이 끊어지니까 그만 삶아놓은 채소 모양으로 턱 퍼드러진다  그거요.

 또 힘도 다른 힘, 다른 힘을 가지고, 주님과 진리의 힘을 가지고서 하지 안하고  다른 힘 가지고서 아주 힘을 내서 열심히 했는데 그래도 딴 면을 살리기 위해서  부득이 그 힘을 둔다 말이오.

 돈 힘으로서, 또 자기는 옆에 사람을 힘입는 힘으로서, 자기의 무슨 기능의  구변이나 활동이나 무슨 그런 힘 이런 걸 가지고서 신앙 생활 이래 하는데 장  그래 냅두면 그것만 크고 잡초만 크지 안 되니까 그 힘 그것을 뽑기 위해서 그  힘이 없는 그 현실을 딱 준다 말이오. 그 힘이 없는 현실, 그 힘을 죽이는 현실,  그 힘을 버려야 신앙 생활 하는 현실, 요러니까 그 현실을 닥쳐 가지고 그것  닥치면은 그만 신앙이 그만 딱 중단이 되고 꺼꾸러집니다.

 이래서 우리가 사는 현실 현실은 하나님을 어떻게 바라보며 의지하며 주의  계명을 어떻게 지키는가? 예수님께서 세상 임금이 오겠으나 내게는 상관 없다.

오면 내가 아버지를 어떻게 사랑하는 것과 그 계명을 어떻게 잘 지키는 것을  그에게 보여 줄 것밖에 없다. 말씀한 대로 우리도 우리 현실은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얼마나 바라보고 의지하고 믿는가? 또 그 법칙을 얼마나 내가 잘  준수하는가? 이런 게 다 시험이라 말이오.

 하나님도 자기를 시험하시기 위해 가지고서 현실을 줍니다. 하나님이 몰라서?  아시지마는 내가 모르니까, 내가 모르니까 하나님이 나를 알게 하기 위해서  현실을 주신다 그거요. 그러니까 현실은 나를 시험해서 알게 하시는 현실이다.

 그러기에 오늘 하루라 하는 이 하루를 만나 가지고 오늘 하루 동안에 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하나님이 이모저모로 나를 시험하시는 그 시험에 하루  종일 살고 밤에 계산할 때에, 시험이 아닌 현실이 없 었는데 '요 시험은 이겼다  요 시험은 졌다, 요 시험은 생각도 못 하고 진 줄 이긴 줄도 몰랐다.' 이렇게,  하루 종일 시험하는 날로, 시험해서 자기가 자기를 아는 날로, 또 시험해 가지고  다른 사람이 자기를 아는 날로,  자기가 자기를 잘못 아는 것도 문제지마는 다른 사람이 자기를 잘못 아는 것도  문제입니다. 공연히 사람을 잘못 알아 가지고 자꾸, 끌어 내루는 거는 괜찮애.

끌어 내루는 건 내려오지 않습니다. 안 하지마는 추켜 올리는 거는 올라갔다  떨어지면 깨진다 그거요.

 이러니까 자타가 다른 자타가 자기를 알기 위해서 하루 종일 치는 것이니까  '오늘 하루 생활에서 내가 나를 알아보자.' '뭘로 알래?' '하 나님이 나를  시험하시니까 오늘 하루 종일 시험치는 데서 다 백점 백점인지 그 시험에서  빵점을 맞았는지 알 수 있지 않느냐?'  시험에서, 또 하루 종일 생활을 연단에서, 연단이라는 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고, 진리로 말미암고, 천국 소망으로 말미암고, 중생된 영 영생으로  말미암았으면 그것이 요동되지 않는데 하루 종일 살아 보니까 거기에서 자기에게  잡탱이가 들어 있은 것을 알았다 말이오. 잡탱이가 들어 있으니까 그만 그것  없으니까 그 신앙 생활 안 돼 버려. 그것 뽑아버리니까.

 이러면 '아, 내가 신앙 생활 한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피동적으로 신앙 생활 한 것이 아니고 내가 들어서 내 신앙 생활 하는 순  인본이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된다 말이오.

 그러면 하루 종일 신앙 생활을 첫째는 위로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며 그  계명을 어떻게 지키는가? 그를 얼마나 힘입는가? 이것을 자기가 시험해서 '네가  스스로 시험해서 너를 확정해라' 네가 이런 자라 저런 자라 '나는 이런 자다  저런 자다' 바로 정확하게 확정을 하면 그래도 희망이 있는 것인데 자기를  확정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과대평가 해도 망하는 일, '또 자기를 지나치게  과소평가 해도 망하는 일,  그러니까 '보자, 주님을 사랑하는 것과 주의 계명을 지키는 게 어찌 되느냐?'  이것을 표준으로 딱 해 놓고 자기가 하루 생활을 '오늘은 시험 생활이다. 시험에  몇 가지 시험은 합격됐고, 몇 가지 시험은 육 십 점이고, 몇 가지 시험은  낙제다.'  '또 오늘은 시련의 날이다. 오늘은 요것 조것 잡탱이를 제거하는 날이다.

그러면 잡탱이 제거하면 내가 신앙 생활 하는데 내게 하나님과 진리로 인해서  생겨진 게 아니고 인간의 그저 꾀로 힘으로 인본으로 전부 불탈 것 인간 요소  인본 요소를 가지고서 된 것이 얼마나 되는가? 요것을 구별해 가지고서 잡것을  제하는 오늘이니까 오늘은 무슨 잡것 무슨 잡것이 제해지나?'  '또 오늘은 연성의 날이라. 나는 오늘 요렇게 조렇게 요것을 연습해 가지고서  어제와 오늘과 비교할 때에 내 깨달음도 좀 낫고, 각오도 좀 낫고, 내 겸손도 좀  낫고, 또 하나님 의지하는 것도 좀 낫고, 내가 기도하는 것도 낫고 모든 것이  조금 나아졌다. 그러면 연성이 됐다.'  요것을 생각하는 요것이 깨어 있는 것인데 이랄라고 하면 필연적으로 성경 안  읽을 수 없고, 성경 읽는 데 성경 안 읽으면 거기서 그만 죽어져 버리고 만다  그말이오. 안 읽을 수 없고, 성경 읽고 나니까 '보자, 앞으로를 어떻게 해야  되나?'  '내일 일을 염려치 말라' 하는 그 말이 앞으로 기독자로서 계획 없이 살라 말  아닙니다. 계획 없이 살라 말이 아니고 성경 말씀대로 '내일은 어떻게 살며  모레는 어떻게 살며 내가 늙어서는 어찌 될 것이며' 그런 것을 미리, 내일 일이  아니라. 내일 일은 염려하지 안하지마는 '한 날의 괴로움어 그날에 족하다' 그날  일은 그날 다 하라 하는 것인데 오늘이라는 하루 생활 속에 들어 있는  예산이라면, 들어 있는 앞으로 욕망이라면, 또 계획이라면, 오늘 생활 속에 들어  있는 계획을 오늘 안 했으면 그건 실패해 버립니다.

 한 날에 괴로움이라는 것은 오늘 하루 동안에 미래에 대해서, 과거 반성에  대해서, 그러면 거기에 대해서 고치는 것 회개에 대해서 오늘 하루에 해당되는  거는 하나님에 대해서, 진리에 대해서, 천국에 대해서, 모든 사람과, 의 인인  관계를 네가 생각하는 일 그 면에 대해서, 오늘에 해당된 것이 하나만 아니라.

오늘에 해당된 것이 자기의 영원까지, 영원 무궁까지 오늘 하루 생활에 해당이  된 부분이 있다 그거요. 그건 오늘 다 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그만하면 족하다  그거요.

 그러니까 하루 생활이 온전하다면 그 생활 오늘 생활 온전, 내일 하루 생활  온전, 그다음에 온전, 이라면 일생이 돼 나갑니다.

 그래서 주야로 묵상한다 말은 성경 말씀대로 생각한다는 것인데 그래서 우리는  그것이 그만 전생활이 성경 말씀대로 생각하는 생활, 또 성경 읽는 생활, 또  그대로 실행하는 생활, 이것이 다 합해서 믿음인데.

 하루 종일 그 생활, 일하면서 그 생활 하고, 밥 하면서 그 생활 하고, 자기는  또 오늘 어떤 누구와 서로 회의 하면서 그 생활, 이러니까 자기는 뭐 믿음  생활을 따로 하는 게 아니라 전생활이 이것이 돼서 살아야 합니다. 전생활이.

 그래서 실행과 성경 보는 것과 모든 것을 생각하는 것, 묵상하는 것, 생각하는  것, 이 세 가지가 자꾸 돌아가면서 이 세 가지가 하나로 이렇게 되어지면  시냇가에 심은 나무 된다. 그라면 시냇가에 심은 나무 된다.

 시냇가는 뭐라고 뭘 비유했다 했지요? 시냇가는? 하나님과 진리. 하나님과  진리에 뿌리를 박았다 그거요. 그라니까 어데서든지 다 성과 있는 일을 하게  된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 시편 1편 이런 성경은 외우는 것이 좋고 그래서 우리가 전생활이  그래야 되는데 그래 못 하면, 실행은 어데서 해야 되느냐? 자기가 제일 많이  머무는 곳, 부엌에서 많이 머물든지, 사무실에서 많이 머물든지, 또 자기는  학교에서 많이 머물든지, 무슨 외교하는 사람들은 외교에서, 무슨 뭐 화장품  장사 하러 다니는 사람 그런 사람은 외판하는 사람인데 외판에 거기에 시간 제일  많이 드니까 거기에서, 또 자기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면 자기 집에서,  어짜든지 자기가 제일 많이 머무는 그 자리가 구원을 이룰 자리요, 그 자리가  죄를 많이 짓는 자리요, 그 자리를 심사하고 조사할 자리요, 그 자리가 자기를  시험하는 자리요, 연단하는 자리요, 연성하는 자리라.

 이러니까 자기가 제일 많이 머무는 그곳에 수입이 많고 또 손해도 많고, 또  고칠 바도 많고, 패전도 많고 승리도 많습니다. 그 자리를 떠나면 헛일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 생활이라 하는 것은 자기의 전생활 그것이 신앙으로  돼져야 되지, "믿음으로 하지 안한 것은 죄라" 이랬어. 자도 믿음으로 자야 된다  그말이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자야 될 때  자면 믿음으로 자는 거라.

 그래서 우리가 그 전체가 그 생활이 돼야 되는데 그리 안 되면 '그래도 나는  성경을 처음에는 오늘 몇 장을 봐야 되겠다 ' 성경 보는 시간과 그 양을 정해  놓고, 자기는 성경 말씀대로 자기 미래를 쭉 한번 생각해서 계획을 가지고, 또  자기의 과거를 쭉 성경 말씀을 생각해서 반성을 하고, 또 미래를 계획하고  과거를 반성하면서 말씀대로 그래 해 가지고 현재라는 요 현재에서 과거  반성하는 것 미래의 계획하는 것을 현재에 끌어다가 현재에 말씀대로 한번 해  보면 해 보는 그것을 뭐 할라고 하느냐?  그 하는 것은 목적은 연성, 완성을 이루는 연성이 이룰라고 하는데, 그러면  연성만 이루느냐? 연성 이루는 그 이면에는 연단이 있다. 잡 것을 제하는 연단이  있다. 또 알지도 못하고 된 줄 알고, 차지도 안하고 더웁지도 않는다고. 자기를  시험하는 시험이 있다.

 그러면 여기에서 이걸 뭘로 하느냐? 내 둥치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힘을  얻는다. 거기서 진액을 받는다. 이런데 하나님은 농부돼 가지고서 전적 나를  위해서 협력하시고 붙들어 주시고 계신다.

 그러면 그분을 바라보고 의지하면서 언제나 대속하신 주님이 나와 같이  계시니까 나는 외롭지 안하고, 이분과 같이 계시는 것을 또 잊어버리는 그것이  시험이라. 잊어버리는 것은 낙제했어.

 같이 계시는 것을 인정하고 주님이 같이 계시니 주님에게 뭣이 나오느냐?  주님에게서는 사죄가 나오고, 칭의가 나오고, 화친이 이렇게 나오고, 이제  주님의 공로로 말미암아 성령의 도움이 나오고, 진리의 도움이 나오고 이렇게  나오는 그것 자꾸 빨아먹고 힘입는 것, 또 이 일을 잘되도록 하나님께서는 전부  농부가 돼 가지고 마구 그래 합니다.

 그러면 내가 이래 할 때에 내가 할 일만 하지 내가 못 할 일은 내가 못 합니다.

내가 못 할 일 내가 할라 하는 건 안 돼. 못 할 일이 어떤 게 못 하는고 하니  예를 들어서 포도나무에 해충이 들어 있으면, 또 포도나무에 병이 들어 있으면  그거는 포도나무가 못 하는 겁니다. 아예 자기를 해치는 것, 자기를 해치는 것은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다. 내게 맡기라." 이랬지 자기를 해치는 것을 자기가  뭘 방어해 볼라 하는 거는 헛일이라 말이오. 그건 자기 할 일 아니라, 자기는  그저 잎사귀 내고, 꽃 피고, 열매 맺고 이것만 자기 하고, 하면은 포도원 농부가  와 가지고서 그 모든 것을 다 제거해 주셔.

 이러니까 자기를 해치는 것은 그거는 농부 할 일이니까, 아버지 할 일이니까  그것은 상관하지 말고 자기는 요 세 가지. 악인의 꾀를 좇지 않으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 요 세 가지가 이루어지는 그게  뭐이냐? 요 세 가지가 이루어지는 것이 뭐입니까? 어데서 요 세 가지가  이루어집니까? 실행에서 요 세 가지가 이루어진다 말이오.

 그러면 이 세 가지가 이루어지는 실행에서는 뭣뭣 세 가지 하고 있습니까?  시험, 연단, 연성, 그것 또 이루어진다 그말이오.

 이랄라 하니까 또 말씀을 안 먹으면 안 되겠어. 말씀 읽어야 뭘 알지. 또 말씀  읽고 보니까, 실행하고 말씀 읽고 하니까 거기에 대해서 과거를 말씀대로  반성하고, 또 미래를 말씀대로 또 계획하고, 또 현재를 말 씀대로 지금  실천하고, 이게 하나입니다. 이 실행과 성경 읽는 것 묵 상하는 것 이 세 가지가  하나지, 하나 되면 다 되는데 세 가지가 다 한목 되지 안할 때는 이게 바로 됨이  아니라 그거요.

 이러니까 우리가 처음에 연습할 때는 그게 안 되니까 어느 시간에는 또  실행하고, 어느 시간에는 성경 보고, 어느 시간에는 기도하고, 이 래라도 해  가지고 차차 차차 성경 보는 그 시간이 기도하는 시간이요, 그 시간이 곧  실행하는 시간이요, 실행하는 그 시간이 자기는 성경 책을 안 봐도 성경 읽는  시간이요, 그 시간이 묵상하는 시간이라. 그래 가지고서 이게 하나 돼 가지고  우리가 돼 갑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무한하신 하나님의 은총이 이 성경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온다.' 요것 단단히 기억하고, 또 이 현실을 줘 가지고 무한하신 하나님에게서  무한하신 은혜가 오되 성경 말씀을 통해서 말씀대로 통해 가지고서 우리에게  오는데 오는 것 가지고 뭐 할라고? 오는 것 가지고 이 현실에 지금 살아본다.

 현실에 살아봐서 뭐 할라고? 거기에서 시험해서 백점이 되기까지. 거기에서  시련해서 잡것이, 암만 태워봤자 이십사금 된 것이야 불에 또 굽고 또 굽고  구워봤자 탈 게 없는 것처럼 이제 하나도 없어질 것이 없는 온전한 시련, 그래  가지고 온전한 연성에 나아가는 요것을 목표로 하고서, 그것 그라면 재미가 있고  이라는데 이것은 전부 게을한 사람은 안 돼요. 예수 믿는 사람은 부지런해야 돼.

게을하면 안 됩니다.

 요걸 계속 요렇게 마음이 깨어 있고 자기의 지성이 깨어 있고 하면서 여기에  맞춰서 요 소망을 가지고 하면은 그것이 재미가 있는데, 아이들도 뭐이든지  실험하면 다 재미 있다 말이오. 실험하면 재미 있어 해요.

 요것을 딱 자기가 생각하고 요래 하면 재미가 있고, 넘어지는 것도 소망이 다시  생기기에 재미가 있고, 또 잡것이 있는 것도 타서 없어지고 또 재미가 있고,  이러니까 계속해서 무한하신 분이 내 뿌리요 내 농부로 배경이 뿌리가 한없는  무진장의 배경이 있지, 또 참 호호양양한 앞으로 회망이 있지, 내 현실은 이것을  자꾸 고쳐서 이렇게 개조해 나갈 수 있는 이런 기회라는 그 현실을 하나님이  주시지, 이러니까 요걸 깨달으면 기쁘고 즐겁고 또 바쁘고, 그러면 우리는 항상  기쁨으로 살 수 있고 참 가치 있는 생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봉사하는 분이 아마 이제 그만, 이게 기진이라. 이 기진해서 처음에는 모두 다  열심히 나왔지마는 이제 다 돼 가니까 기진해서 봉사원이 안 나온대요. 그러니까  일이 뭐 추진이 돼야지? 오늘은 '곧 이제 봉사는 끝나니까 이제 와서 한번  봉사하자' 하고서 열심히 와 가지고 이것 못도 빼고 요거는 냅둡니다. 요거는  냅두는 것이 저 위에 뭐 좀 칠 좀 하고 뺄라고서. 또 그것은 아무래도 저 다른  데는 거석해서 할 것이고 또 다 빼고 그래 할 것입니다. 얼른 이래 놓고 준공  검사 마치고 그라고 난 다음에 이제 의자만 만들면 다 됩니다. 의자 만드는  나무도 곧 아마 주문을 해서 가져와야 되겠습니다.

 일이 착착 재미 있어. 그냥 멍하이 이러니까 그만 재미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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