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노정


선지자선교회 1982년 6월 30일 수야

 

본문 : 마10:11-20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 하리라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27공과  제목은 신앙노정.

 요절은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일 대지, 사람을 사귀기는 신중히 하고 천천히 할 것이며 나누어지지는  아니하도록 노력하라. 사람 사귐은 금생과 내세에 연관된 책임을 가지고  사귀어야 하고 일시의 감정이나 욕심이나 흥미나 환경에 휩쓸려 사귀어서는 안  된다. 진리대로 사귀고 또 진리로 행동하고 진리로 사귐의 법칙을 삼아야 한다.

임시 일시의 사귐 또는 이중적의 사귐은 안 된다. 그 사람과 나의 배후에 주님이  같이 계심을 기억하여야 한다.

 

 둘째 대지, 누구든지 사람을 만날 때에는 상대방에게 행복을 원하고 행복을  빌고, 불행이나 자기 유익을 도모하는 습성을 버려야 한다. 그러나 사람은  사람을 복되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자기가 그 사랑에게 대한 자기의 소원과  자기의 행동을 주 하나님이 보실 때에 감동되어 그 사람에게 축복하실 수 있도록  하면 자기가 못한 축복을 하나님께서 연대 책임을 지시고 복되게 하신다.

 이 마음이 곧 자기를 위한 것이 되어지도록 하나님이 섭리하신다 그런고로  타인을 복빌고 복되게 하고 복되기를 원하는 이것이 곧 하나님으로 자기에게  모든 것을 복되게 해 주시도록 한 것이 된다 정반대로 다른 사람의 복됨을  시기하거나 복되지 못하기를 원하거나 복되지 못하게 한 모든 행동은 사람의  임자인 주님이 모든 잘못된 것을 그 자신에게 임하게 하고 타인에게는 임하지  않게 하신다.

 

 세째 대지, 복음을 전하는 자는 순전히 복음만 전하고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여야 복음의 능력이 역사한다. 전하는 자가 복음의 내용의 가치성과  권위성을 알고 믿는 것만치 전할 때에 효력은 나타난다. 복음보다 그의 가진  것이 더 가치있게 권위있게 인정되는 것은 복음을 부끄럽게 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복음의 능력은 역사하지 못한다. 이것을 가리켜 발에 먼지를 떨어  버리라고 묻혀 오지 말아야 한다고 주의 주셨다.

 

 공과가 있는 분들은 공과를 펴서 보면서 뜻을 깨달으면 되겠습니다. 반사들이  가르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니까 본 공과를 좀 읽으면서 뜻을  말하겠습니다.

 일 대지, 사람을 사귀기는 신중히 해아 됩니다.

 그만 만나면 퍼뜩 사귀어지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사귀는 것은 아주 조심있게  사귀어야 하고 천천히 해야 됩니다. 당장 그렇게 그만 사귀어지는 그런 사람을  가지지 말고 사람은 사귈 때에 조심해서 살피고, 살피고, 그 사람도 살피고 나도  살피고, 이 사귐이 되면 어찌 되느냐 하는 장래도 영원도 살피면서 천천히  사귀는 것이 좋습니다. 한 번 사귀었으면 할 수 있는 대로 죽는 날까지  나누어지지 아니하는 그런 인인관계를 가져야만 합니다.

 사람 사귐은 금생과 내세에 연관된 책임을 가지고 사귀어야 하고 사람 사귀는  것은, 자기가 알든지 모르든지 사람 사귀는 그것이 금생에도 모든 화복이  거기에서 시작되고 영원 내세에도 사람 사귐에서 화복이 결정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을 사귈 때에는 그것이 자기의 이 세상살이가 어떻게 될 그  원인입니다. 사람 사귐에서 이 세상에서 행복 될 수도 있고 사람 사귐에서 이  세상에서 망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친구 하나 잘 사귀어 가지고 아주 그  사람이 금생과 내세에 행복 된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사람 하나 잘못 사귀어  가지고 금생과 내세에 아주 망쳐 버리는 그런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 사람은 금생과 내세에 연관된 책임을 가지고 사귀어야 하고,  이것 생각하면서, 결혼하는 사람들은 요새 그 못쓸 문화가 아니고 아주 망할  마귀의 지금 멸망할 법칙입니다. 선진국 그런 배부른 나라에서는 결혼을 뭐  일주일 결혼, 한 달 결혼 한다 하지마는 그게 다 망할 인생이 돼 있다는 그  증표요. 우리 한국 나라에서는 그래도 결혼하면 일생 동안 좋든지 하잖든지  살아야 될 줄 알기 때문에 신중히 사귑니다.

 신중히 선택을 하고, '자 그만 이제 결혼을 하나 안 하나? 사귀나 그만 안  사귀나?' 이제 사귀는 것 결혼하지 않고 사귀는 그것도 사귐이지마는 결혼하는  것도 서로 친교를 맺는 것이라 그말이오. 이보다도 우리는 '이 사람을 사귀면  금생에 어찌 되며 무궁 세계에 어찌 되겠느냐?' 그것까지를 생각을 하면서  사람을 사귀라 하는 말입니다.

 사람의 사귐은 금생과 내세에 연관된 책임을 가지고 사귀어야 하고 일시의  감정이나, 일시 무슨 어떤 사람은 춤추는 데 가 가지고 당장 그 춤추는 감정에서  사귀어 가지고 그만 그것이 뒤에 폭로가 되어지니까 자기 일생을 망치는 그런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사람은 사귈 때에 일시 당장 짧은 시간에 사귄다는  것은 아주 두려운 일입니다. 얼마나 시간을 걸쳐서 신중히 천천히 사귀어야  합니다.

 일시의 감정이나, 감정은 오만 느낌말이오. 춤추는 느낌도, 또 좋은 화려한  옷을 입은 느낌도, 그 사람에게 좋은 장기가 있으니까 장기 매력에 그만 끌리는  모든 느낌도 그게 다 감정입니다. 일시의 감정이나 욕심이나, 욕심, 그만 돈  욕심에서 그 사람 사귀고, 권세 욕심에서, 안일 욕심에서 그 사람 사귀고, 또  온갖 그 정욕에서 그 사람 사귀고 하는 이런 욕심이나 흥미나 그런 걸로 사귀지  말고, 환경에 휩쓸려 사귀어서는 안 됩니다. 고만 주위 환경의 사람에게 휩쓸려  가지고 자기 본의는 아닌데 옆의 사람에게 수, 회리바람에 몰리듯이 이래 가지고  사귀어지는 그런 일도 안 됩니다.

 사람이 먹을 때에 '이것이 음식이가 독약이가? 이거 먹으면 죽느냐 사느냐?'  하는 그것도 중요하지마는 그것보다도 사람은 더 중요합니다. 독약은 먹어서  죽었으면 그만 구원 이루지 못하고 죄도 짓지 아니하고 그만 끝나 버리지마는  사람은 잘못 사귀어 놓으면 죽지도 아니하고 영원을 망쳐 버리기 때문에 이게  독약이냐 먹으면 참 몸에 좋은 것이냐 살피는 그것보다도 사람 사귐은 더 살펴서  사귀어야 합니다.

 그런고로, 사람 사귐은 이 사람을 사귀어야 될지 안 사귀어야 될지 모르니까  진리대로 사귀고 내가 진리대로 함으로 사귀어지면 사귀고 안 사귀어지면 안  사귀고 그래야 됩니다.

 진리대로 하면 사귀어서 해로울 것은 그것이 배겨나지를 못해 가지고 도망을 쳐  버립니다. 끊어져 버리고 맙니다. 내가 진리대로 하면 사귀어서 해로울 것들은  제대로 다 도망쳐 버립니다. 햇빛이 나면 안개가 사라지는 것처럼 우리가 진리  법칙대로, 진리대로 사귈려고 하면 사귀어서 해로울 사람은 도망치고 사귀어  유익될 사람은 점점 사귀어지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또 진리로 행동하고 진리로 사귐의 법칙을 삼아야 한다. 신구약 성경 이 진리를  인한 사귐의 법칙을 삼아야 한다. 임시 일시의 사귐 또는, 임시 일시 잠깐  사귄다고 이렇게 사귀어지는, 사귀는 그것은 아주 무책임한 일입니다. 그러면  사귐은 일시에 사귀어도 뭐 여러 해 사귄 것보다 더 친근하게 이렇게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나 창기성이요, 몹쓸 것입니다.

 일시의 사귐 또는 이중적의 사귐은 안 된다. 속 다르고 겉 다르는 사귐, 속  다르고 겉 다른 그런 표리적인 그런 사귐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람과 나의 배후에 주 하나님이 같이 계시는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그  사람하고 나하고 둘이 사귀지마는 사귀는 그 배후에는 주님이 딱 보고 계시고  함께 계십니다. 주님은 그 사람의 주인도 되고 내 주인도 됩니다.

 그러기에 사람의 사귐을 이렇게 벌로 하면 안 됩니다. 왜? 사람 사귐에서  그것이 하나님 사귐이 됩니다. 사람을 잘 사귀면 하나님을 잘 사귐이 되고  사람을 잘못 사귀면 하나님을 잘못 사귐이 되고, 사람에게 잘못했으면  하나님에게 잘못함이 되고 사람에게 잘했으면 하나님에게 잘함이 됩니다. 얼마나  중요합니까?  또 사람 사귀는 그것이 자기에게 잘하는 것도 되고 못하는 것도 됩니다. 내가  사귀는 그 사람에게 잘한 그것이 나중에 가서 보면 자기에게 자기가 잘한 것이  되고 맙니다. 내가 사람을 사귈 때에 다른 사람을 아주 해치는 독한 마음을  가지고 사람을 사귀니까 그 사람이 해독을 받을 것 같지마는 그것은 나중에 가서  보면 내가 그 사람 해치는 것이 아니라 그 해가 내게로 돌아와 가지고 내가 나를  해친 것이 된다 그거요.

 사람을 사귀는 데서 인간을 버리기도 하고 인간을 만들기도 합니다. 사람  사귀는 고것이 이 세상 행복을 만드는 것입니다. 제가 사람을 사귈 때에 잘  사귀어서 사람을 '이 사람을 사귈 만하나 못 사귈 만하나?' 사람을 살펴 알아서  사귀고, 또 그 사람에게 잘 조심있게 사귀면 그것이 막바로 돈도 되고 권세도  되고 지위도 되고 영광도 되고 행복도 되고 다 됩니다. 이거 기이한 것이오.

 내가 다른 돈벌이나 지위나 직장이나 그런 일은 잘하지마는 사람에게 대해서,  '이까짓 거야 아무나따나 해도 되지 않겠느냐?' 아, 사람에게 대해서 아무나따나  한 그것이 나중에 보니까 자기의 행복을 아무나따나 해 가지고 막 깨뜨려 버린  것이 돼 있어요.

 또 그것뿐입니까? 사람 사귄 그것이 일생을 살고 늙어서 보면 일생동안 사람  사귄 그것이 무궁 천국의 준비가 됐습니다. 무궁 천국에 준비가 됐소. '인간  사귐 그까짓 거야' 하고 마음대로 벌로 사귀었는데, 사람을 벌로 사귄 그것이  무궁 세계의 심판 거리를 다 만들어 놨습니다. 이 얼마나 귀중한지 모릅니다.

사람 사귄 그것이 나중에 가서 보니까 만물과 사귄 사귐이 됐어 사람 사귐을  잘했으면 만물과 잘 사귀게 됐고, 사람 사귐을 잘못했으면 반물과 사귐이  잘못됐고, 이러니까 이거 뭐 사람은 얼마나 귀중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을 삼가라. 사람을 삼가라 말은 사람을 피하라 말 아니오.

사람을 아주 사귈 때에 조심하고 조심하고 하나님에게 대한 조심 다음으로서는  인간에게 대한 조심이 둘째로 큽니다. 돈 조심, 사업 조심, 일 조심, 공부 조심  그런 것도 좋지만 그까짓 거는 몇 닢푼치 안 됩니다. 그러기에, 그 사람과 나의  배후에 주님이 같이 계시는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둘째 대지에, 누구든지 사람을 만날 때에는 상대방에게 행복을 원하고 행복을  빌고 불행이나 자기 유익을 도모하는 습성을 버려야 한다.

 요것도 참 어렵습니다. 사람 처음 만날 때에 '내가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을  복되게 할까?' 길을 가면서도 만난 사람에게 '내가 이 사람하고 길을 가면 한  오리를 같이 갈지 혹은 한 십 미터를 같이 갈지 모르나 만날 이 사람을 내가  어떻게 하면 복되게 할까? 이 만난 여기에서는 이 사람에게 복되게 할 것이  무엇일까?' 또 그 사람에게 내가 복을 빌고 복되도록 내가 행동을 하고 하는  이것이 자기를 행복되게 하는 것이라 그거요.

 간단한 데에서, 사람들이 그거 바라고 해서는 안 되지마는 제가 늘 말한 대로  시골에 가면 흰죽다랭이라고 있어요. 흰죽다랭이라고 보면, 흰죽다랭이라는 것은  그 들판에 제일 좋은 논이오. 언제 그 사람이 어려움 당할 때 흰죽 한 그릇을  끓여 대접을 하고 그 은혜를 갚는다고 그 큰 논빼미를 줬다 그거요.

 이런데, 시람 사귐에 그 사람이 잡시 한 오십 미터 같이 걸어갔는데, 만나  보니까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하면 요 걸어가는 동안에 이 사람을 복되게  할까? 또 복되도록 내가 행동을 할까? 이 사람에게 복을 빌까?' 하는 고것을 그  상대방이 눈치를 알아채고 알았다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그 위대한 부자에게  잘 보일려고 10년 5년 공들인 것보다도 그 한 50미터 걸어가면서 그 사람의  인격과 인품과 그 사람의 성품과 정신을 보고 홀딱 녹아 버린다 말이오.

 '참 사람, 이 귀한 세상에서 참 사람을 만나 봤다.' 무심히 차를 타고 가면서  잠깐 한 반 시간 동안 앉아가는 가운데서 그 사람의 태도나 행동이나 하는 거  보고 사람을 완전히 파악해서 이렇게 존대할 수도 있고 알아차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에게, 그만 만나면 '이놈이 어찌 해야 망할꼬? 어째야  나보다 더 못해질꼬?' 불행이나 자기 유익을 도모하는 그런 습성을 우리가  버려야 됩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습성이 있습니다. 그것을 버리고 어쩌든지  행복을 비는 이 사람이 돼야 합니다.

 그 사람에게 한 것이 막바로 하나님에게 한 것이요, 그 사람에게 하는 것이  막바로 자기에게 하는 것이요, 그 사람에게 한 것이 막 바로 금생의 행복을  마련한 것이요. 그 사람에게 한 것이 천국의 행복을 마련하는 것이요 그  사람에게 한 것이 세상의 불행을 마련하고, 천국의 영원한 나라에 불행을  마련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사귐 하나에게 한 그것이 모는 데 관련이 다  된다 그거요.

 그러나 사귐을 사람을 행복되게 할려고 해도 사람을 복되게 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능력이 없기 때문에 자기가 그 사람에게 대한 자기의 소원과  자기의 행동을 주 하나님이 보실 때에 감동이 되어 그 사람에게 축복하실 수  있도록 하면 자기가 못한 축복을 하나님께서 연대 책임을 지시고 복되게 하신다.

 내가 그 사람을 아무리 복되게 할려고 해도 내가 복되게 할 수 있습니까?  없는데, 내가 그 사람을 복되기를 원하고 또 복되도록 할려고 기도하고 노력하고  하는 이것을 주님이 가만히 보시면서 '네가 이 사람에게 복되기를 원하는 그  마음은 옳고 바른 일인데 내가 그 일에 동참하지 아니할 수 없고 그 일을 거부할  수 없다.' 이레서 하나님이 그걸 보시고 감동하셔 가지고 그 사람이 그 사람에게  복을 빌지 못한 것을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복되게 해 주십니다. 이 비밀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만 복되게 해 주고 맙니까? '야 너는. 네가 그 사람에게, 그  사람이 잘 되기를, 그 사람이 옳은 사람, 착한 사람, 복된 사람 되기를 원하는  그 마음을 가지고 진정 원하고 원하는 그 말도 하고 원하는 노력도 하니 내가  감동이 됐다. 네가 그 사람에게 복되게 해 주지 못하니까 내가 해 주마.' 복되게  해 주십니다.

 이러니까, 무궁 세계에 가 보니까 그 사람에게 이 사람이 복을 덜퍽 줬어.

'아이구, 내게 이렇게 큰 행복을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그 사람이 인사를 할  것이오. 사례를 할 것이오, 그럴 때 '나는 자기에게 뭐 아무 복을 준 일이  없는데요.' '아, 자기가 나한테 이렇게 복을 줘서 내가 이렇게 복을  받았는데요.' '아, 나는 준 일이 없습니다.' '내게 복이 와 있는데요.' 이러면  주님이 있다가 '네가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 내가 감동돼서 네 소원을 내가  이루어서 이 사람에게 복되게 해 줬다.' 이것이 무궁 세계에 마련하는 영광이라  그 말이오.

 하나님께서 그래 놓으시고 그 사람만 복되게 하십니까? 또 당신이 '야, 너는  다른 사람에게 네게 있는 모든 것 가지고 다른 사람을 행복되게, 행복되기를  원하니까 내가 그 사람에게만 주고 너에게 안 줄 수 있느냐? 감동이 돼서 그  사람도 줬는데, 내가 감동받아 너는 몇 배나 더 주마.' 이래 가지고 그 사람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공평된 역사입니다.

 우리가 옳은 일을 하면 내가 못 하고 간 것을 하나님이 연대 책임을 지시고 그  일을 죽고 난 다음에 그 분이 이루십니다. 내가 나쁜 일, 악한 일, 그 악한 일을  내가 했으면 악한 일을 하는 그것을 그 사람이 복수하지 못하는 복수를 하나님이  복수해 주십니다. 그러기에, 악을 행한 자의 복수는 그 사람이 죽었다고 끝난 거  아니오. 그 복수의 계대자 하나님이 그 복수를 계대해 가지고 복수하십니다.

이런 비밀을 우리가 알고 살아야 합니다.

 이 마음이 곧, 다른 사람에게 복되게 하려는 이 마음이 곧 자기를 위한 것이  되어지도록 하나님이 섭리하신다. 그런고로 타인을 복 빌고, 복되게 하고,  복되기를 원하는 이것이 곧 하나님으로 자기에게 모든 것을 복되게 해 주시도록  한 것이 된다. 요 굳게 잡아야 됩니다.

 정 반대로 다른 사람의 복됨을 시기하거나 복되지 못하기를 원하거나 복되지  못하게 한 모든 행동은 사람의 임자인, 사람의 임자인, 사람은 임자가 있습니다.

사람은 임자가 있어요. 사람의 임자인 -시골에는 그런 말 있습니다. '산 놈의  계집은 호랑이도 안 물어 간다.' 임자 있다 그 말이오. 그런데 사람의 임자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임자인 것을 알고 우리가 사람에게 대해서  취급해야 됩니다.

 사람의 임자인 주님이 이 모든 잘못된 것을 그 자신에게 임하게 하고  타인에게는 임하지 않게 한다. 남 안 되기를 원하고, 남 안 되도록 행동한 것은  그것은 아무리 제가 안 되도록 해도 그 사람에게 못 가도록 막고, 만들어 놓은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못 가도록 하고, 남 안 되도록 한 그거는 꼭 제대가리가  두터 씌워 가지고 제게 오도록 그렇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요것을  알아야 됩니다.

 요 말귀를 알아들으면 잠도 안 오고 참 기쁨도 나고 재미도 있고 이렇지만 못  알아들으면서 예배 보면 예배 보는 데에, 한 시간 예배 보는 것이 어떻게  지루하고 된지 그만 한 시간도 안 되는데도 예배 보고 나면 눈이 쏙 들어갑니다.

재미있게 예배를 보면 한 시간 예배 보고 나면 음식도 안 먹었는데 그만 얼굴이  서기를 하고 광채가 납니다.

 이 사람 사귐을 여러분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사귀었습니까? 이것을 알고  사귀었소? 생각이나 하고 사귀었습니까? 막바로 사귀어서 저놈 해 하면 그 해가  그 놈만 해 받지 나는 해 안 받는다고 알았어. 자기만 복되게 할려고 하면 복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그거요. 성경이 이렇게 가르쳐 줍니다. 사람 사귐에  대해서 얼마나 중요합니까?  이런데 그 사람이 어디가 있는지 내 눈에는 지금 띄이지 않는데, 며칠 전에  존다고 말했더니마는 나한테 시비를 해 왔어. 막 존다고 한다고 이래 가지고,  그러면 다시 말 안 해 주면 안 되냐고, '그래도 존다고 함으로 네가 잠마귀란  놈에게서 해방만 받았으면 나중에 천국 가서는 나한테 감사를 할 것이다.' 내가  그러고 말았습니다. 조는 사람들 보고 잘 말을 안 해 줍니다. 말 안 해 줘요.

말해 달라고 쇠고기를 몇 근 사다 준다고 말해 줄 줄 아요? 안해 줘요. 그것에게  말을 하면 그 본인에게 잠마귀가 달아나니 유익, 또 그 사람 하나 자는 것을  위해서 말함으로 많은 사람이 깨워졌으니까 많은 사람을 깨우는 데에 이용을  당했으니까 유익, 이거 뭐 수입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는데, 존다 한다고 그만  화를 내가지고 달려드는 그 사람은 옛사람인지 새사람인지 그것 좀 살펴봐라  하면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또 셋째로 복음을 전하는 자는 순전히 복음만 전하고, 복음만 전한다 말은  예수님만 믿으면 금생과 내세에 구원된다는 것을 전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왜  구원이 되느냐? 하나님이시요 사람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형 대행 대화친의  이 대속의 공로를 베푸셨기 때문에 누구든지 예수님만 믿으면 금생과 내세에  복을 받고 영생을 얻습니다. 하는 것을 전하는 것이 복음 전하는 것입니다. 요  말 외에 전할 필요 없어. 요것만 전하면 됩니다.

 전하고,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여야 복음의 능력이 역사한다. 내가 순전히 예수  믿어 복된 이것만 속에 가득 차 가지고 '예수 믿어야 복받지 예수 믿는 것  외에는 사람이 복받는 길이 없는데' 하고, 이것만 가지고 가 가지고 그 사람에게  전해져야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지, 복음 전하라 하면서 온갖 생각, 온갖 사상,  온갖 마음, 온갖 두려운 것 이런 것 다 가지고, 이 썩은 것을 속에 가득히  가지고 껍데기 가지고 '예수 믿습니다.' 학생들이 가 가지고 '다음 주일, 주일  범하지 말고 나오도록 합시다.' 이런다고 되어지냐 말이오. 복음을 전할 때는  순전히 복음만 가지고 가고 자기 속에- 속화된 거라 말은 이 세상 이 더러운 데  화해졌다 그말이요.

 제가 속리산에 한번 갔는데 속리산에 특별히 가고자 한 것은 뭐냐면 ? 이름이  좋아서. 이 세속을 떠났다. 떠날 이(離)자 통속 속(俗)자, 이 세상 통속을  떠났다고 속리라 하는 속리산이라고 그래서 가고 싶어서 했었습니다.

 이러니까, 복음 전할 때는 아무것도 없고 내 속에 복음만을, 예수 믿어 구원된  것, 예수 믿어 행복된 것, 예수 믿어 기쁜 것,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존귀해지는  것, 온전한 사람이 되어지는 것, 사죄받는 것, 예수 믿는 것만 속에 가득 차  가지고 전하면 능력이, 지극히 큰 능력이 역사하지마는, 그러기에 복음 전하러  가는 사람이 오만 생각 오만 욕심 오만 연구 오만 계획 다 가지고 껍데기만 발만  슬슬 가 가지고, 가 가지고 학생 떡 만나 가지고, 교인 만나 가지고 그때  전도하는 그런 거는 소용이 없다 그겁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는 순전히 복음만 전하고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여 야, 세속에  세상 풍속에 물들지 아니하여야 복음의 능력이 역사 한다. 이거 단단히 기억하라  말이오. 역사한다.

 전하는 자가 복음의 내용의 가치성과, 자기가 복음을 전하는 그 복음 속에 뭐이  들었는지 복음의 내용과 가치성과 권위성을 알고, 이게 얼마나 보배로운 것인지  알고 믿는 것만치 전할 때에 효력은 나타난다. 이거 없이 전하면 효력이 안  나타난다 그말이오. 자기 속에 있는 것만치 효력이 나타난다 그말이오.

 복음보다, 내가 복음 전하러 가 가지닌 복음보다 그의, 그 사람이 가진 것이 더  가치있게 권위있게 인정되는 것은, 내가 가보니까 예수 믿으라고 전한, 가지고  간 예수는 아무것도 아니고 그 사람 보니까 좋은 옷을 입었고, 권세를 가졌고,  돈이 많고, 뭐 위대한 사람들이 얼룩 얼룩하고 하니까, 내가 복음은 몇닢푼치 안  되고 그 사람들에게 있는 거는 더 많아 보이고 커 보이고 위대해 보이고 고만  그러니까 이거 전하는 것이 부끄럽다 그말이오. 부끄럽고 오히려 내가  부러워졌다 말이오. 부러워지는 것.

 이런 사람은 복음을 부끄럽게 하는 행동이 되기 때문에, 이 사람은 복음을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는 자가 되기 때문에 능력은 역사하지 못한다. 그러면 그  능력은 역사할 수가 없다 말이오. 못한다. 이것을 가리켜 발에 먼지를 떨어  버리고 묻혀 오지 말아야 한다고 주의주신 것이다.

 그러면 오늘밤에 여기서 다 사람을 관계하는 데에서 말씀하신 것인데, 사람을  사귀는 일은 이렇게 신중히 해서 사귀어야 됩니다. 지혜롭게,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어떻게 그렇게 잘 친하는 사람인지?  보면 사람 중에 사람을, 제일, 사람 중에 제일 위대한 사람이, 제일 위대한  사람이 친구 없는 사람 중에 있고, 제일 못쓸 사람이 친구 없는 사람 중에  있습니다. 왜? 고 자기만 알고 욕심쟁이 못돼서 친구 없는 그자는 사람 중에  제일 나쁜 사람이요 또 사람 중에 제일 위대한 사람이 친구가 없는 것은 사람을  만나서 신중히 사귈려고 하니까 다른 사람은 자기를 좋아해서 줄줄 뒤에  따르지마는 그 사람은 그 사람에게 대해서 그 사귀는 것을 신중히 여겨서 그렇게  무엇을 선뜩 선뜩 마음이든지 행동이든지 주지를 않습니다. 그러면 인생 동안 그  사람을 사귈려고 해도 그 사람의 속이 뭐인지 몰라. 요런 줄 알고 사귀어 보니까  또 조런 사람이지, 조런 줄 알고 사귀어 보니까 이런 사람이지. 도무지 만나야  실수도 없지, 비행기도 안 타지 매수도 당하지 않지 어떻게 그 사람의 사귐이  힘이 드는지, 이러니까 사귀기 힘드는 사람 그 사람 사귈려고 노력하다 보니까  자기도 모르게 그만 그 사람과 같이 비슷하게 사람이 되어져 간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친구 없는 사람이, 제일 위대한 사람은 친구 없는 사람 중에  있고, 제일 못쓸 사람은 친구 없는 사람 중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  사귐이라 하는 것은 얼마나 중하게 다루어야 될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이중적으로 속을 안 내놓으면서 겉어머리 '허허' 어쩌든지 창기들이,  창기들이 돈 뺏들어 먹을려고, 속으로는 '이 사람 홀딱 벗겨서 거지를 만들고  집구석을 파괴시켜도 내가 지금 돈을 착취해야 되겠다.' 하는 이런 속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겉으머리는 아주 그 사람을 사랑함으로서 얼마나 사랑하고  했던지, 어떤 청년 내가 하나 봤는데 기생에게 가 가지고 이래 끌려 가 가지고  이러면서 한번은 노래 부르는데 '이 세상은 부모도 쓸데없고 형제도 쓸데없고'  그러면 창기만 쓸데 있다는 말이냐? 이제 그 사람이 제일이라. 이거와 같이  사람들이 이중적인 사귐 그런 사람 못씁니다. 벌써 이중적으로 사귀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상당히 주의를 해야 될 사람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 사귐에 대해서 능숙해서 인간에 대한 유식한 사람이  되어지면 하나님에게 대해서도 유식한 사람이 되어지고 이 두 가지만 유식하면  물질에 대해서 모르는 그까짓 거야 문제도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에게  얼마든지 시키든지 할 수가 있어. 얼마든지 왕 노릇 할 수가 있어.

 그러기 때문에 목회도 사업도 정치도 모든 것도 이 세상일은 사람에게 대해서만  옳게 아는 인간 지식이 유식하면 세상일은 왕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르면  안 돼. 망할 길만 가게 해. 하나님 알고 사람 알면 그 사람은 금생과 내세에  복된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번 더 읽어 봅니다. 이제 해석했으니까, 자세히 듣고 각오를 하십시오.

 사람을 사귀기는 신중히 하고 천천히 할 것이며 나누어지지는 아니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사람 사귐은 금생과 내세에 연관된 책임을 가지고 사귀어야  하고, 금생과 내세를 생각하며 사귀어야 하고 일시의 감정이나, 일시의  감저이나, 일시의 감정으로 사귀지 말아야 됩니다. 일시의 감정이나 온갖  욕심이나, 보면 순전히 욕심 가지고 사귀자 있습니다. 금생도 내세도 아무것도  생각지 않고 어떤 사람은 순전히 돈 욕심만 가지고, 어떤 사람은 권세 욕심만  가지고 사귀었어. 이것도 이래 사귀면 뭐이 되겠느냐 하는 것 생각지도 않고  고만 그때 감정 욕심에 따라서 후딱 사귀어 가지고 일생을 망친다 그말이오.

그래 가지고 망치는 사람 얼마나 많습니까? 이혼 당한 여인들 다 그래 사귀어  가지고 다 망친 여인들입니다.

 감정이나 욕심이나 흥미나, 일시 재미있는 것, 흥미나 환경에 휩쓸려  사귀어서는 안 된다. 사귈 때는 진리대로 사귀고 이게 참 사귀는 법은 참 좋은  법입니다. 진리대로 사귀면 해로울 놈은 저절로 다 달아나 버려요. 해로울 것은  와서 견디지를 못합니다. 해가 돋으면 그림자가 도망치는 것처럼, 빛이 오면  어두움이 도망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대로 내가 사귀면 해로울 것은 다  도망쳐 버리고 유익될 것은 자꾸 꺼벙 꺼벙 기어들어 옵니다. 진리대로 사귀고  또 진리로 행동하고, 진리는 신구약 성경 말씀이 진리입니다. 행동하고, 진리로  사귐의 법칙을 삼아야 한다.

 임시 일시의 사귐, 인시 일시의 사귐 그것도 몹쓸 것, 또는 이중적의 사귐은 안  된다. 어떤 일이라고, 이게. 잘못되면 뭐 전체가 다 잘못되는데. 이 일이 얼마나  큰 결과를 맺는 것인데 아무나 따나 일시에 그렇게 사귈 수 있습니까? 이중적인  사귐도 안 되고 일시적의 사귐도 안 되고 감정적인 사귐도 안 됩니다.

 그 사람과 나의 사귀는 그 배후에는 주님이, 그 사람의 주인이신 주님과 내  주인이신 주님이 인간 서로 사귄 그 배후에 딱 보고 있다 하는 것 이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둘째 대지, 누구든지 사람을 만날 때에는 시람 만나면 그만 두말 할 것 없이  '이 사람에게 어쩌면 해를 안 받을까? 어쩌면 내가 유익을 볼까?' 이것이 우리의  원죄입니다. 이 사람으로 사람 대하기 쉽습니다. 사람을 누구든지 만날 때에는  상대방에게 행복을 원하고 행복을 빌고 불행이나 자기 유익을 도모하는 습성을  버려야 한다.

 그러나 사람은 사람을 복되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자기가 그 사람에게 대한  자기의 소원과 자기의 행동을 주 하나님이 보실 때에 감동되어 그 사람에게  축복하실 수 있도록 하면 자기가 못한 축복을 하나님께서 연대 책임을 지시고  복되게 하신다. 우리가 이런 것도 참 얼마나 우리가 복된 길입니까? 하나님이  요렇게 다 하십니다. 성경은 이것을 많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마음이, 이렇게 다른 사람을 복되게 하는 이 마음이 곧 자기를 위한 것이  되어지도록 하나님이 섭리하신다. 그러면 이렇게 남에게 대해서 한 그것이  자기에게 대한 것이 되도록 하나님은 섭리 하신다 그말이오. 그러면 남 망치는  사람은 자기 망치는 게 되고 남 행복되게 하는 사람은 자기 행복되게 하는  것입니다. 자비한 자는 자비함을 얻을 것이요 잔인한 자는 잔인함을 얻을 것이요  속이는 자는 속임을 받을 것이요 이것이 성경입니다.

 그런고로, 타인을 복빌고 복되게 하고 복되기를 원하는 이것이 곧 하나님으로  자기에게 모든 것을 복되게 해 주시도록 한 것이 된다. 이와 반대로 다른 사람의  복됨을 시기하거나 복되지 못하기를 원하거나 복되지 못하게 한 모든 행동은, 이  세상은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을 자꾸 방해합니다. 방해하는 그게 자기 방해되는  줄을 몰라요. 이러니까 모든 사람이 나는 방해 때문에 못 살겠다 하는데, 방해  때문에 못 살겠나 하는 그 사람은 네가 남 방해한 것이 전부 네게로 와서 그렇지  않느냐? 그렇게 판단하면 틀림이 없습니다.

 모든 행동은 사람의 임자인 주님이 이 모든 잘못된 것을 그 자신에게 임하게  하고 타인에게는 임하지 않게 하신다. 우리가 요걸 똑똑히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또 셋째 대지,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자는 순전히 복음만 전하고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여야 복음의 능력이 역사한다. 전하는 자가 복음의 내용의 가치성과  권위성을 알고 또 확실히 인정하고 그대로 순종하면서 할 때에는 믿는 것만치  전할 때에 효력은 나타난다. 이것이 없는 사람은 효력이 하나도 안 나타난다.

 복음보다 복음 전하러 갔을 때에 그 사람의 가진 것이 더 가치있게 권위있게  인정되는 그것은 전도하러 갔다가 그만 인정되니까 실컷 마음에 '아이구 그  사람은 행복되다. 나는 불행스럽다. 그 사람은 남편 잘 얻었다. 나는 참 그런  남편을 못 가졌다. 그 사람은 참 좋은 아내를 가졌다. 참 잘난 부모를 모셨다.

나는 잘난 부모를 모시지 못했다. 그 사람은 사업을 참 좋으네. 돈벌이 잘하네.

가정이 풍부하네. 모든 것이 훌륭하네. 위대하네.' 실컷 부러움을 가지고 왔고  복음은 부끄러워서 내놓지도 못합니다. 이것이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복음의 능력은 역사하지 못한다. 그 자가 복음을 전하는 게 됩니까?  입으로만 전달하면 전함이 안 된다 그말이오. 역사하지 못한다 이것을 가리켜서  발에 먼지를 떨어버리고 가라, 먼지 떨어버리고 오라. 먼지라도 묻혀 가지고  오지 말아라. 네가 복음을 줘 놓고 거기 것을 속화되어 물들지 아니해 가지고  오면 그 복음이 역사한다.

 전도하러 갔다가 실컷 부러운 것만 가지고 그만 한숨만 푹푹 쉬고 '내가 어릴  젊을 때부터 청춘의 내가 예수 믿으며 전도나 하고 다녔는데 이 꼴이 됐으니,  그런 사람은 참 나와 같이 과부된 사람인데 재혼해 가지고 그렇게 구비하게 잘  사는데 나도 그때 재혼할 걸 그만 혼자 독신 생활 했다. 나도 그때부터 시집갈  걸 공연히 시집도 안 가고 이래 살아 가지고 이 꼴이 됐다.' 한숨만 푹푹 되어서  오니 그것이 참 그것이 뭐이냐? 가 가지고는 먼지는 내비두고 전부 다 그 속까지  둘러 마시고 왔어 막 둘러 마시고 왔다 그말이오. 먼지도 떨어 버려라. 그  하나도 묻혀 가지고 오지 말아라.

 이러니까 복음의 가치와 복음의 능력 이 가치를 알아서 이 세상의 모든 것보다  큰 이 사실을 알고, '너에게 값없이 주지마는 네까짓 가진 것 그런 것 억억  만배도 더 크다. 받아라.' 속에 이걸 가지고 이러니까 삐쭉 삐쭉거려도, 이거  모르니까 내가 큰 소리하면 반감 품을 것이고 '예, 예수 믿으시오' 사정하며  해도 속으로는 '이 바보야, 이 도야지 같은 인간아! 그거 다 너 죽이는 거 다  버려 버리고, 천근 만근 너 죽이는 것 버려 버리고 이 복음 받아라.' 이런 속이  속에서 불이 부글 부글해 가지고 떡 말하면 그때 능력이 가 가지고 그 놈을  사로잡는다 그거요.

 이러니까 복음을 전할 때에 엉뚱한 생각 이런 것 가지고 가 가지고 입술로만  전하니 전하고 나니까 거기에 희특한 것이 안 보이니까 가야 복음 전해야 참  낙망만 되고 낙심만 되고 이래 가지고, 전도하러 갔다가 오는데 그만 풀이 푹  죽어 가지고 들어오고, 이 능력 가지고 가면 나갈 때는 다리를 질질 끌고 나가고  들어올 때는 모두 펄펄 살아서 뛰어 들어옵니다.

 이러니까 사람 사귐에 대해서, 내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함에 대해서 요 두  가지에 대해서 오늘 밤에 주일 공과를 공부했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이제 광고합니다.

 오늘 밤에도 종전과 같이 일층에서 철야 기도가 있습니다. 재독 할 때에 잘  들으십시오.

 건축에 대한 기록 연보도 기도 많이 하고 끝까지 억지 연보도 되지 않고 마음에  근심 연보도 되지 않고 감사와 기쁨에 넘친 간절한 소원의 연보가 되도록  어쩌든지 기도하고 열심히 노력해야 될 것입니다.

 건축에 대때서 일곱 가지 기도해야 됩니다. 벌써 사건들이 나불 거져요.

나불거지는 것이, 여기서 우리 보일러실 했던 그 공굴을 깰려 하니까 계약하러  온 사람들이 와서 그만 그 사람들이 기계가 모자라서 잘 못 깨고 가 버렸습니다.

그런 것도 처음에 좋은 사람을 척 만나 가지고 계약이 돼서 쑥 나가 버렸으면  벌써 오늘 다 팠을 것이오.

 이러니까 그런 것도 하나님이 축복해야 되고, 또 공연한 사람이 트집을 잡아  가지고 돈을 다 줬는네 돈 다 준 그 영수증을, 술이 취해 가지고 돈 안 받았다  하고 왔기 때문에 네가 돈 받고 다 이 영수증을 해 주지 않았느냐?' 하니까  '어디 영수증 해 줬노?' 이래 영수증을 이래 보여 주니까 얼른 뺏들어 가지고  쥐뜯어 가지고 입으로 물어 삼킬려고 하는 것을 달려들어 뺏들어 가지고  이러니까 그 사람이 또 저 때렸다고 진단을 내 가지고 고소를 해서 그래  일꾼들이 가 가지고 공연히 붙들려 가지고 뭐 조사를 실갱이를 했다 이거요.

 그 사람들이 세상 경험이 없어서 그런 사람에게 그 증서를 내 놓으니까, 그  증서 중요한 문서는 안 내놔. 중요한 문서는 원본은 딱 궤 안에 넣어 늫고  복사를 해 가지고 사본을 가지고 이래 다니지 원본을 뉘가 가지고 다닙니까?  가지고 다니다가 잊어버리면 어쩔려고? 나 그거 봤어요. 문서 가지고, 내가  그전부터 주의를 시켰어. 중요한 문서는 가지고 가면 그 문서 하나 자기 신세  오고 가기 때문에 해 놓고 '내가 그때 계약을 뭐라 했습니까?' 진실한 마음  가지고 떡 대하니까 '계약이 이렇습니다.' 퍼뜩 그래 가지고 두말 않고 입에  넣어 버립니다. 쿡 씹어 버립니다. 이런 뭉텅이를 막 죽자 껏 넘겨 삼켜  버립니다. 그런 것 봤어. 그러니까, 그런데 넘어갔어. 기도가 모자라 그래요.

이러니까, 아주 기도 많이 해야 됩니다. 이러니까 일곱 가지 기도를 하십시오.

뭐 재료는 모든 것이 잘 들어 옵니다. 일기도 잘 순환되는 것 같은데 기도 많이  해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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