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노정의 애로와 주의

 

1984. 2. 18. 새벽

 

본문: 창세기 12장 10절∼20절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를 때에 그 아내  사래더러 말하되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고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컨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 하시니라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의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바로의 대신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취하여 들인지라 이에 바로가 그를  인하여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약대를  얻었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연고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바로가 아브람음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대접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나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 가라 하고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  아내와 그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선지자선교회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하나님의 명령 순종으로 갈대아 우르를  떠났습니다. '네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서 내가 지시하는 곳으로 가라. 그러면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또 복의 근원이 되리라' 그렇게 말씀을 하시는 그 말씀을  듣고 아브람이 떠났습니다. 떠나 가지고 벧엘에 이르렀을 때에 하나님께서  벧엘에 거기에 머물라고 해서 아브람이 거기에 서 제단을 쌓고 있었습니다.

 얼마 동안 있는 가운데에 크게 흉년이 들어서 아브람이 그 흉년에 기근을, 굶는  참 기근을 견디지를 못해서 '애굽에는 지금 풍년이 들어서 곡식이 많이 있고  여기에 는 어려우니 내가 애굽으로 가 가지고 이 어려움을 면하겠다' 하고  애굽으로 내려 갔습니다.

 그것은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고 바라보고 의지하고 순종으로 출발한  걸음이었는데 여기에 서 그만 이 흉년에 너무 어려움을 만나게 되니까 아브람이  그 어려움을 견디지 못해서 그곳을 떠났습니다. 떠날 때는 아브람이 어려우니까  그 어려움을 인해서 그만 하나님을 믿는 것이나 바라보는 것이나 의지하는  것이나 순종하는 그것이 완전히 없어진 거는 아니지마는서도 그것이 아브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대로의 첫째 것이 되지를 못하고 그 다음의 것이  됐습니다. 첫째는 자기 형편을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 첫째였고 또 자기 생각대로  자기 위주로 자기중심으로 자기 지식대로 자기 맘대로 어려움을 인해서 떠났던  것입니다. 떠난 그 걸음이 그 뒤가 어떻게 됐던가 하는 것을 그 밑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도 애굽에서 인도하실 때에 이런 일들이 많이 거듭  거듭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작정하고 떠난 걸음이지마는 그만 조금 어려움이  있으면 그만 어려울 때는 변해져서 하나님보다 자기, 하나님의 인도보다 자기  생각. 하나님의 일보다 자기 일, 그때에 자기와 하나님과의 둘이 대립되는 이런  경우를 꼭 만났습니다. 여러번 만났습니다. 만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어려움을 만났을 때에 행동한 것이 아브람과 꼭 같이 행동했습니다. 그때에  자기네들 생각대로 자기 마음대로 자기 비판대로 자기네들 주장대로 한 것이  그때 원망, 불평, 낙망하고 돌로 쳐서 모세와 아론을 죽일려고 할 만치 그렇게  반발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그 출애굽에서 우리는 잘 볼 수 있습니다. 그  애굽은 일반 다 성경 아는 사람들이 이 세상으로 그렇게 상징한 것으로 생각할  뿐만 아니라 또 누구든지 그 면을 주시하면서 그 면을 생각하면서 연구해 보면  꼭 애굽에 대한 것이 우리의 세상에 대한 것으로 그렇게 상징된 것으로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랬는데 그때에 한 번 자기들 생각 대로 하고 하나님에게 범죄하지  안하고도 그런 어려움을 당할 때에 범죄하지 안하고도 얼마든지 발동할 수가  있습니다. 얼마든지 날뛸 수가 있습니다. 애굽에서도 그들은 하나님을 꼭  의심하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행동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하는 행동하고  하나님을 부인하는 행동을 하고 낙망하는 행동을 하고 그라면서 보이는 것은  모세밖에 없었기 때문에 모세에게 원망하고 반발하고 그렇게 달라들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지나간 그 모든 것을 살펴 볼 때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했으면  좋을 뻔 했느냐? 하나님은 그때에 무엇을 하라고 했겠느냐? 지난 밤에 그  재독하는 것 들어 보니까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고 악으로  사람을 시험하지도 안한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는데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갈 때에 출애굽에서도 보면 인도 따라서 가면 반드시 어려움을  만났습니다. 인도 따라서 가는데 어려움이 없는 그 형통 만난 사람들은 별로이  없습니다. 형통을 만날 때에는 별로이 없고 일반 교인들에게 대해서는 어려움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어려움보다도 형통을 만났습니다. 그 기적이 나타났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의심하다가 쭉 따르면서 오병이어(五餠二魚)로 오천 명 먹이는 그런  표적이 나타났을 때에 그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짝 따라서 '아, 이가 우리가  바라는 참 임금이다, 메시아다, 의심할 여지 없다, 이만하면 우리 경제에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지도자되는 데는 통치자 되는 데는 족하다'  이라면서 억지로 임금 삼을려고 그렇게 할 때에 주님은 그들이 높이고 영광을  돌리고 위하고 쭉 따라서 그렇게 인기가 올라갈 때에 그때에 주님에게는 큰  시험입니다. 그때에 만일 그들의 높임에 들리 올라갔고, 그들이 쭉 따르는 그  인기에 그만 거기에, 그것이 함정이요 그것이 사망이요 그것이 적이요 그것이  주님의 받은 아버지의 사명에 변질된다는 것을 깨닫고 주님은 그 자리에서  산으로 피해서 도망했습니다. 산으로 피해가 가지고서 거기에 서 기도함으로 그  어려움의 시험을 면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제일 처음에 오는 것이 그는 좋아서, 영광스럽고 존귀해서, 자기가  세상으로 인해서 높아지지는, 하나님으로 인해서 형통해질 때에 그 형통함을  성령으로 시작한 것을 육체로 바꿔서 이 세상적으로 형통한 것으로 바꾸는 이런  시험이 들어 올 때에 주님은 그것을 받지 안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에게  대해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그 형편을 보면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순종하면  반드시 거기에 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보면 열 가지 재앙이 있을 때 그때 그때 모두 다 해방이  되었고 형통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너거를 대우할 터이니까 우리가 그전같이  그렇게 학대하지 안할 터이니까 여기에 살라' 하는 그런 형통이 있었지마는  모세가 거기에 있지 안하고, 인도하는 그 인도를 따라서 자꾸만 하나님으로  인하여서 오는 그 형통에 만족하고 머물지 안하고, 하나님으로 인한 그 형통과  하나님과 둘을 착각해서 이렇게 오해하고 바꾸질 안하고, 언제든지 아무리  형통이 와도 그것을 보고 거기에 주저앉지 안하고 하나님을 바라봤고, 또  어려움을 어떤 어려움이 와도 그 어려움에게 붙들이지 안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딿고 꼭 요렇게 해야 일이 되는 것인데 사람들은 연약해서 그 일을 하지를  못하고 변질됐습니다.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그랬지마는 모세는 거기에 서  계속해서 하나님을 놓지 안하고 따라 살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세가 애굽에서 나온 그 해방 운동을 한 것이라든지 출애굽을  한 것이라든지 하는 그런 것은 보면 참 그렇게 단순히 생각할 것이 아니라  너무도 거기에 는 굴곡이 많았고 시험이 많았지마는 그 시험 시험을 다 이겨서  그래 가지고 애굽에서 나왔던 것입니다. 나온 걸음에 그들은 모세를  따라서-주저앉는 걸 모세가 또 기적으로 또 인도하고 또 주저앉는 걸 또  기적으로 인도하고-이래서 나오다가 홍해를 만났을 때에 그때에 늘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베푸시는 좋은 것에도 거기에 붙들리지 안했고 하나님이  베푸시는 어려움에 대해서도 거기에 대해서 붙들리지 안하고 그저 끝까지  하나님만 바라보고 따랐던 것입니다. 요것이 아주 좀 어려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함으로 오는 가난이라면 틀림없이 하나님이 주는 가난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또 하나님의 인도대로 땀다가서 그 풍부가 오면은 그  풍부는 하나님이 주신 풍부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왱을 때에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또 하나님 말씀을 어겨서  당했을 때에는 그저 고락간에 좋은 것이든지 나쁜 것이든지 그거는 마귀가 준  것이라 하는 것을 우리는 확정 지우고 따라야 하겠습니다. 따랐을 때에 어려움을  줄 때에는 그만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서 한 그 행동이 어려움에게 순종하고  어려움에게 속한 사람이 돼 버렸어. 하나님에게 접 붙이던 것이 어려워  하나님에게서 그 어려움으로 옮겨 서고, 또 좋은 것을 만났을 때에는 그 좋은  갓에 피동되어서 좋은 것에 사람이 되어졌습니다. 그래 가지고 좋은 것에 사람이  되어진 그것도 성경을 우리가 보면 많이 있습니다. 간 것도 그것도 실패,  어려움에 따라서 오는 어려움에 붙들려서 어려움에 피동되는 그런 것도 다  실패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인도에는 그 어린 사람에게는 자기에게 아무 자본이  없는 사람에게는 어려움이 오고, 또 어려움이 자본이 있는 사람에게는 형통이  오고, 어려움과 형통이 오고, 어려움과 형통이 와서 거기에 서 하나님이 그 사람  믿음을 지킬 때에 하실 일이 있고, 또 형통에서 하실 일이 있는데 어려움과  형통에서 하나님에게 다시 순종하고, 그것들에게, 환경에 피동되지 안하고-그게  하나님이 주신 환경이나 하나님이 주시지 아니하는 마귀가 주는 환경이나 그  환경은 깊이 말하면 다 같습니다-환경을 만났을 때에 그 환경에 소산이 되지  안하고, 거기에 피동되지 안하고 하나님에게 피동된 사람은 그 어려움에서  어려움을 하나님이 주실 때에 그 어려움을 통해서 당신이 하고자 하시는 것과  주고자 하시는 것을 받았고, 또 형통을 주실 때에 그 형통에 삼켜지지 안하고  형통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버리고 거기에 소속하지 안하고 형통 그것을 뒤로  두고서 하나님에게 소속할 때에 형통을 통해서 하나님이 또 주실 것을  주셨습니다.

 그런고로, 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데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형통도 있고  어려움도 있고 자꾸 그것이 교체됐습니다. 몇 번이든지 교체됐습니다. 몇  번이든지 바꾸어 질 때에 그때에 백성들은 주저 앉자 하고 모세는 자꾸 가자  하고서 그것이 좀 달랐습니다. 그러면 어려움을 당할 때에 어려움을 당할 때에는  그때에 어떻게 한 것이 그들에게 구원이 됐던가? 어려움 당할 때에 그때에  하나님을 놓지 안 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에게  호소하면 호소하면 그들에게는 틀림없는 그런,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시는 것이  그들에게 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에게 호소하지 안하고 돌아가  가지고서 원망 불평 시기라는 그것은 아브람이 걸은 거와같은 꼭 자기로 돌아가  가지고 자기로 돌아가고, 자기 위함으로 돌아가고, 자기중심으로 돌아가는 그런  걸음을 걸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이 원망하는 데에도 그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홍해도 해결해 줬고, 또 마라의 쓴 물에도 해결 해 주고, 므리바에 갈증도 해결  해 줬고, 또 양식없는 것도 해결해 줬고. 그게 못 먹는 것도 해결해 줬고 다  해결은 해 줬습니다. 해결을 해 준 것은 그들에게 주실 것은 주지 못하고 해결은  해 준 그것은 하나님이 그들과 약속하신 그 약속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을  하나님이 어기지 못해서 해결해 줬지. 그들은 해결받을 만한 그런 아무 자격이  없었습니다. 없었으나 그 인도자-일곱 별의 비밀, 일곱 별과 촛대의 그 촛대의  비밀-그 인도자인 모세가 거기에 서 변하지 안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는 그 문제가 해결이 돼서 나갔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변했지마는 여게 중심이 되는 모세가 변하지 안하고 이렇게  나갔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줄기를 잡고 당신의 계약으로 인해서 그 일을  이루어 가시면서, 거기에 서 소망을 가지신 것은 모세가 변하지 안했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서-늘 이래 나갔었는데 므리바에서 물 낼 때 그때에 모세까지  변질돼 버렸습니다. 모세까지 변질됐으나 모세는 변질됐으나 모세 밑에  여호수아니 갈렙이니 그런 사람들은 변질이 안 됐습니다. 이러니까 변질된  모세는 제거해서 '너는 가나안에 가지 못한다' 제거해 버리고 변질되지 안한 또  여호수아니 갈렙이니 그런 사람들을 붙들고 하나님께서 가나안 인도하는 일을  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그 어려움을 주시는 것이 악으로 시험을 주지도 받지도  아니하신다고 말씀하신 대로 그 어려움 주신 것은 사람을 시험할라고 하시는 것  아닙니다. 사람에게 시험이라는 것은 어려움인데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기 위해  가지고 어려움 주시는 것 아닙니다. 또, 형통을 주시는 것도 사람을 한번 시험  해서 놀려 먹을라고서 그라는 것 아닙니다. 어려움 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거기에  까지는 인도를 받았지마는서도 이제 그 어려움 주시는 것은 그 어려움을  통하여서 자기를 비울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자기를 비울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자기를 비우면 하나님으로 채워 주시려고 자기를 비우는 기회를  줬는데 아브라함은 자기를 비우지 못하고 그 자리를 떠나서 자기대로 갔습니다.

 '어려움을 당했을 때에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하는 그것은 자기에게 어려움  당할 때는 어려움으로 인하여 고난 당하는 고난 당하는 그 사람을 죽여 없애  버리고 어려움을 당하나 마나 그런 것들이 와 가지고서 침노할 수 없는 그런  온전한 사람으로 살도록 하기 위해서, 그 어려움을 느끼고 어려움을 느끼고 그  고통을 느끼는 그 사람을 제거해서 바꾸어 주시기 위해서 하는 것인데 사람들은  거기에 견디지 못하고 그만 어려움에게 삼켜 가지고서 이렇게 그 지배되어  거기에 피동돼 가지고 함으로 하나님께서 뽑을라고 하는 자기가 뽑히지 안하고  그것이 극단에 이르러서 발동할 때에는 그것에게 피동이 되어 가지고 행동한  것이 아브람의 행동인 것입니다.

 그러면 아브람이 그 행동한 그 행동이 그러면 그 성질과 종류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에게 피동이나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나 의지하는 것이나  하나님으로 인한 움직임이 아니고 그자는 분명히 자기로 인한 움직임이었습니다.

그러면 자기로 인한 움직임 그것을 하나님은 뽑으시려고 하는데 아브람은 자기로  인한 움직임을 극단에 이르니까 그리 기울여졌습니다. 동방박사가 아주 별 보고  따라 오는 척 했지마는서도 예루살렘에 닥치니까 별은 자꾸 거기에 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안하는데 저들이 선입적 관념과 기존 지식과 모든  상식이나 그런 것으로 생각해 볼 때에는 왕자가 났으면 예루살렘에 났지 딴데  났겠느냐? 생각을 하고서 예루살렘으로 들어 간 그것이 그 갈래길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부인하고 예루살렘으로 들어 갔던 것입니다. 들어가 가지고 그 결과는  뭐이냐? 그 결과는 하나님의 능력 아니면 자기 메시아 죽였습니다. 별 수 없이  자기 메시아 죽였고, 자기는 전멸을, 완전히 멸망받는 그런 일이 되었을 터인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때 또 어려움을 면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를 따를 때에 우리에게 항상 시비는  그것입니다. 어려움을 주시는 것도 그것, 목적이 그것, 쉬운 형통을 주시는 것도  목적은 그것. 하나님의 목적은 뭐이냐? 하나님 목적은 첫째는 부패한 옛사람  이것을 버리고 새사람을 가지게 하려는 것이고, 그 다음에 외부적으로는  이것이고, 속에 알맹이는 뭐이냐? 자기와 하나님을 이렇게 위치를 정상적으로  세워서 하나님은 그의 주인이 되고 자기는 하나님의 성전처럼 이렇게 그 위치를  바로 바꿔서 정상적인 위치, 하나님의 복의 기관이 되고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통치할 수 있는 참 하나님의 몸이 될 수 있는 이런 정상을 찾기 위해서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도 그렇게 하는 것이고  형통을 당할 때도 그 형통을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함으로 형통이 왔으니까  하나님이 주신 형통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없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그 형통을  만들어 주신 그분이 크지 형통 그게 큰게 아닌데 형통에 따라서 그만 소속하고  하나님을 버리는 그것은 또 내나 어려움 당해서 그런 것이나 꼭 한가지입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의 목적은 이렇게 하고 했는데 아브람이 그 어려움 당했을  때에 어려움에게 피동돼 가지고서 간 그 걸음이 어떻게 됐던가? 지금 시간이  없어서 이것을 쭉 말을 하면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또 좀 알아듣기가 자꾸  어려워지니까 이제 그만 간편하게 말하겠습니다. 아브람이 어려움에게 피동되고  어려움에게 피동되고 어려움의 소산이 되어 가지고 하나님을 자기는 저버리지  안했지만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버리면 우리는 생각 할 때에, 하나님을  버린 것이 사울에게 왕이 하나님을 버렸으므로 하나님이 왕을 버렸다 하는  그것이 사울 왕이 아주 부인한 것 아니고 배반한 것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가 배척했다 배척을 당했다 이렇게 배척으로 하나님은 여기시는데 사울은  배척이 아니라 하나님 섬기는 것으로써 이렇게 했습니다.

 우리가 거기에 서 오산되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현실을 만났을 때에  그때에 평소에 제가 하나님을 과거에도 하나님의 지식을 확신하고 미래에도  확신하고 하지마는서도 그 현재라는 그 현재에서 하나님께서 '요렇게 해라' 하는  하나님의 지식이 자기에게 왔을 때에, 자기가 그 지식을 현재에 받아들일 때에,  그것이 하나님의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이 현재를 지내고 난 다음에 암만 받아  들여야 하나님께서는 모욕이 되는 것이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멸시받는게 되지  대우가 안 되는 것입니다. 또 순종도 그러합니다. 순종도 현재가 그러합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대해서 뭐 제이로 제삼으로 당신을 대우하는 것, 믿는 것  의지하는 것 바라보는 것 제이로 믿고, 제이로 바라보고, 제이로 의지하고,  제이로 숭배하고, 제이로 무엇을 하는 그것은 하나님을, 좋게 말하면, 하나님을  모르고 섬기는 사람이요. 알고 말하면.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모욕주는 것이요 하나님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보다라고 자꾸 말했습니다. 보다. 보다 나를 사랑치  안하면 안 된다, 보다 미워하지 안하면 안 된다 그렇게 말씀해서 그 위를 두고서  다투었습니다. 제 일위, 제 일위 위를 두고서 다투신 그 교훈을 우리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랬는데 아브람이 그 걸음을 걸어가 가지고 어떻게 됐는가? 첫째  아브람이 그 걸음을 걸어 간 것은 벌써 하나님의 요구대로의 요구는 부인입니다.

또 하나님에게 대한, 아주 낙망입니다. 또 자기로, 완전히 서 버렸어 그  하나님을 부인하고 자기로 주장이 됐고, 자기가 섰고, 자기가 자기의 왕이 됐고,  자주자가 자주장자가 됐습니다. 그래 가지고 걸어간 걸음에 제일 첫째 그가 만난  일이 뭐인가? 만난 일은 그가 벌써 평안과 담대함이 없었습니다. 그에게 행복이  없어졌습니다. 성도에게 이 담대와 평강이라는 이것이 큰 행복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열장에 말씀하시기를 '이 담대함을 버리지 말아라. 네가 모든, 나로  인해서 이도로 인해서 모든 산업들이나 모든 기업들을 그런 것을 다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여기는 것은 더 좋은 것이 있는 것을 내가 믿기 때문에 그런 것이니  이런 담력을 버리지 말아라'고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믿는 사람이 이 담대함이라  하는 것은 큰 축복인데 담대함이 없어지면은 평강이 없어집니다. 담대함이  없어지면 평강이 없어지는데 왜 담대함이 없어지느냐? 담대함이 없어지는 것은  감사가 없어지면 담대가 없어집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역사하는 그 역사는 의심할 것도 없고 그는 변하지도 안하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절대 불변의 하나님이시니 자기가 몰라서 자기에게  너무 지나친 그 후대라고-지내친다 말은 그저 하나님이 어디 지내침이  있는가-이래서 그렇지만. 인간적으로 말하면 자기에게 과분 한 대우를 하니까  대우하시는 그 대우에 대해서 본질과 본성을 모르고 오해 했기 때문에 거기에 서  낙망도 하고 불만 불평을 품었지. 지내간 지내 보내고 난 다음에 볼 때에는  하나님이 그에게 참 지극한 후대를 했는데 그걸 몰랐다 그말이오. 하나님께서  벧엘에서 흉년을 주신 것은 참 가속도로 지극히 큰 축복의 대우를 하시려고  완전히 아브라함을 불행케 하고 있는 그 아브람에게 모든 질병을 완전히  치료해서 완전히 수술해 가지고 치료해 버려서 그 아브람으로 가볍고 방해자가  없이 참 자유할 수 있는 이런 아브람을 만들라고 대우했는데 그 축복을 오해했기  때문에 그렇게 갔습니다.

 그래 가니까 그래 가니까 첫째는 그분에게 뭐이냐? 담대함이 없어. 담대함이  없어진 것은 자기가 벧엘에서 당한 것이 흉년이 당할 때에 흉년이 당할 때에  분명히 그 흉년 주시는 거는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주시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감사를 해야될 터인데 그 은혜를 모르니까 감사함이 없고. 감사함이 없으니까  담력이 없고. 담력이 없으니까 평강이 없고 자꾸 그렇게 타락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드러나지 안한 그 아브람의 심리를 연구하고 인간 심리를  연구할 때에 은밀한 그 순서지마는서도 나타난 순서는 그 다음에 아브람이 죄를  지었습니다. 벧엘에서 떠나 가지고 죄를 지었습니다. 무슨 죄를 지었느냐?  거짓말 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이 거짓말이라는 것이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거짓말 안하는 사람이면 벌써 그 사람은 자기의 모든 것을 거의 바꿨다고 할  수가 있고. 또 그는 참 거의 모든 것을 다 깨달았다 그렇게 할 수가 있습니다.

거짓말 안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자기는 과거야, 뭐 사촌의 그  촌수가 있었지마는서도 결혼했으면 그거는 없어져 버렸고 벌써 결혼이면 부부면  아내지 아내지 거기에 서 꾀를 써 가지고서 벌써 누이 동생이라 하는 그 말이  거짓말이 아닌 말이 아니라 거짓말이라 그 말이라. 거짓말, 거짓말 아닙니까?  그러니까 '인간이 어려움 당할 때에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어려움 당할 때에  이는 참 기쁜데 왜 기쁘지 안하나? 뭣 때문에 기뻐해야 되겠느냐? 자꾸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구하면서 하면서 '주여 감사합니다. 내가 이런 줄을 몰랐습니다.'  하는 그런게 속에 반드시 들어 있습니다. 이해 못할 수 있는 그런 일에는 나중에  알고 보면 뭐 하나님 앞에 뭐라고 감사해야 될지 모를 그런 깊으고 큰 감사가  들어 있는 것을 얼마든지 우리는 경험해서 체험해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랬는데 그걸 샘을 파면 그 속에서 반드시 생수가 나오는데 자기가 팔라고하지  안하고 자꾸 쓸면은 거기에 온전이 나오는데 그걸 자꾸만 해결해서 깨달을라고  애를 쓰지 안하고 그만 껍데기로 피동돼 가지고서 그 어려움에게 피동돼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출발한 것이 그것이 뭐이냐? 담대함이 없었고 평강이  없으니까 '아이구 이거 죽겠다 나를 죽일터니까 어찌 해야 되느냐' 그러니까  감사가 없는 것은 담대를 없애 버리고. 담대가 없으면 평강이 없어 버리고.

그러니까 감사 그것이 없어지면 그 다음에 그 순서가 자꾸 내려가 가지고서  나중에 가서는 거짓말하는 죄를 짓게 됐고, 거짓말하는 죄를 짓고 난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뭐이냐? 가정이 파괴되었습니다. 그말하고 난 다음에 사래를 바로가  아내 삼을려고 데려갔으니까 아브람의 가정은 파괴입니다. 파괴를 당하고 그  파괴를 당하는 그 파괴와 함께 아브람이 기근 중에 있어서 물질에 곤란을 당하고  있는 그 아브람에게 제일 자극성이 되어 있던 그 아브람에게 불의의 재물이  그이에게 왔습니다. 불의의 재물이 오니까 아브람은 그때 그것을 받았습니다.

받고, 뒤에 그것을 이끌고 올라 간 걸 보면 아브람에게는 깨달음이 없었습니다.

아브람은 깨달음이 없었고 그것을 불의의 재물을 받아 가지고. 그렇게 아브람은  그 아내 뺏긴데 대해서만 걱정이지 불의의 재물에 대해서 이것이 화가 자기에게  화를 준다는 그런 것을 자기는 생각지를 못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바로에게 아내가 이제 빼앗겼습니다. 그래 아내 빼앗기고 난  다음에-그때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원망 불평 낙망 하고서 모세를 돌로  쳐 죽일라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해결을 시켜 주신 거와 같은 그와  성질의 해결입니다.-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약속한 그 약속을 인해서 바로에게  다른 데에 보면 꿈에 현몽을 했는데 여기에 도 거기에 기록되지 안했지마는서도  바로가 그렇게 정확하게 안 것 보면 하나님이 그에게 현몽이나 뭐 그렇게 똑똑히  알수 있는 그런 지시가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바로의 집에 큰 재앙을  내리니까 바로가 못 견뎌서 아브람을 불러 가지고서 '왜 네가 날 이렇게  대접했느냐? 네 아내라고 하지 안했느냐? 네 아내라고했으면 내가 그렇지 안 할  건데 누이라 해서 그렇지 안했느냐?' 그라면서 '네 아내를 여기 있으니까  데려가라' 그라고 그때에 바로가 '네가 그러니까 이제 그 예물은' 그러면  아내됐다고 준 재물이니까 말하지 안 했으면 그만 슬그머니 아브람이 놓고  나왔을 겁니다. 그거는 아내 찾고 나오니 아내 때문에 받았으니까 그 아내의  댓가로 받은 것있데 아내를 데리고 가라 하니까 예물 그거는 가져갈 체면이 없지  않겠습니까? 요러니까 마귀란 놈이 백성들에게 명하기를 '그이에게 준 것은  하나도 빼앗지 말고 다 호송해서 보내라.' 그게 마귀의 암병이 또 붙어 온  것이라 말이오. 그게 붙어 와 가지고서 무슨 일을 했느냐 하면은 그 뒤에 16장에  거기에 보면 '사 백년 동안 네가 종 노릇하리라 사 대 만에 나오리라' 하는 그런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암만 찾아 봐도 그 원인이 또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  공재물을 받고 하나님을 부인한 것이기 때문에 그 값을 받아야 됩니다. 이러니까  그 값을 받아야 되는 것을 우리는 계통적으로 체계적으로 연구하면 그것이  분명합니다.

 이랬는데 그 후에 14장에 보면, 14장에 보면 소돔 왕하고 이렇게 물질을 두고서  시비를 할 때에 아브람이. 거기에 서 놀랄 만한 그런 발언을 했습니다. '내가  천지의 대 주재되신 이를 두고서 내가 맹세하노니 이 재물에 대해서 실낱 끈  하나라도 내가 취하지 않겠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까 해서 안 된다.'  이런 말이 어데서 아브람에게 튀어 나왔는가 연구를 할 때에, 아브람이 그  후에는 늘 그이에게 숙제가 되었고 고민이 되었을 겁니다. 이래 가지고 늘 그  물질을 가지고 그 물질을 종자 삼아 가지고 아브람이 부요가 되고 롯도 부요가  되고 그 물질을 종자 삼아 가지고 부요가 돼서 아주 벧엘에 왔을 때는 거부가  됐었습니다. 거부가 됐지마는서도 아브람은 거부를 가지고 있으면서 늘 그이에게  속에 고민스러운 일이 있지 안했느냐 고민스러운 일들이 있지 안했느냐?  이러니까 그렇게 롯으로 더불어 시비할 때에 그 까짓거 물질이라는 것 뭐,  가나안에는 자산이요 소돔들은 다 비옥한 곳이니까 자기의 전 재산이 휘떡  거리는 그런 문제가 생겼지마는서도 벌써 아브람에게는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안하고 그것보다도 더 고민스러운 일이 속에 있지 안했느냐 하는 것을 우리가  여기에 서 믿음으로 생각해 볼 때에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고민스러운 것은 '아. 내가 그때에 그 어려움 당할 때에 하나님을 내가  부인하고 애굽으로 내려갔었다.' 거기에 대해서 깊이 느끼고 애굽으로 내려 간  것은 분명히 그럴 때에 하나님보다도 나를 먼저 생각했고 내 생각대로 내  주장대로 내 뜻대로 내 지식대로 내 형편 생각하고 내 일을 생각하지 하나님  생각하지 아니하려는 그것이 늘 고민스러운 그에게 고민이 있지 안 했느냐? 또,  이와 같이 그때에 그런 광경을 생각하면 부끄럽고 참 화닥거리고 고통이 되지만  그걸 무를래야 무를래야 무를 수도 없는 그런 고민 중에서 나오고 그 불의의  재물을, 가지고 와 가지고 그것이 종자가 되어서 이래 가지고 이래 와 놓으니까  깨끄름하이 도무지 마음에 불쾌한 형편이었는데 마침 소돔 왕으로 더불어 그런  시비가 났습니다. 그 전에 뭐이 하나 있지요? 그 벧엘에 와 가지고서 재산이  크게 늘었습니다. 차고 늘 때에 그때에 롯으로 더불어 시비되는 그와 시비 할  때도 우리는 이 아브람이 그 롯에게 척 양보를 하고 이래 나온 것을 보면 대단히  어렵고 참 귀한 일을 했다 했는데 그 아브람은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했다 하는데 그것을 저도 요즘에 그걸 깨달았습니다. 그 아브람이 귀한 걸음을  걸었다. 이랬지마는서도 그 귀한 걸음을 걷지 안할 수 없는 것은 벧엘에서 그리  애굽으로 내려간 그 순서에 대한 그 순서 그것을 깊이 회개했다고 하면은 그거는  안 생길 수가 없어. 그 회개를 했으니까 벌써 아브람은 재물에 대해서 그렇게  애착심이 없었고, '어떻게 하면 이제는 내가 좋은 일이든지 어려운 일이든지  있으면 절대로 내 주장대로 하지 안하고 주님의 영광과 주님의 존귀 주님의 뜻을  위해서 내가 하지, 내가 나를 앞세워서 나로 인하여서 움직여지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여지는 것을 버리지 않겠다' 하는 그런 속에 깊은 그 느낌이  있었는데 롯하고 그런 시비가 되니까 마치 울고 싶자 때리는 거와같은 그런 일이  되지 안했느냐? 롯으로 더불어 시비된 그것이 아브람에게는 '이것 참 난처한  일을 만났다' 아브람에게 그랬을까? 난처한 일을 만났다가 아니라 '좋은 기회를  만났다' 이제는 내가 그렇게 하나님을 생각지 안하고 나를 생각했는데 지금  하나님을 생각하나 나를 생각하느냐? 두 가지 기로가 되는 요런 입장을  만났으니까 자기가 만들지 못했지마는서도 그런 일이 하나님이 만들어 주셔서  그런 형편이 닥치니까 '이제는 됐다' 하는 그런 속에 회개하는 회개한 그 마음이  하나님을 대우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그것이 속에 있었기 때문에 뭐 그런  기회를 좋다 해 가지고서 '네 좋은 대로 행하라. 네 좋은 대로 행하라.' 자기와  하나님과 과거에는 하나님을 내 놓고 자기를 바꾸었는데 그것이 원통해서 이제는  자기와 하나님과 대할 때에 자기를 내놓고 하나님을 생각하는 기회가 왔으니까  좋다 해 가지고서 어려움 없이 그리 했었고.

 또 소돔 왕으로 더불어 시비할 때도 그것이 벌써 또 한 번 경험이 됐고, 또  자기로서는 자기를 버리고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 절대로 실패가 아니다.

실패도 아니고 평강이 돤다 그것을 자기가 느껴서 그 후에 많은 은혜를 받아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생각하고 롯으로 더불어 시비할 때 그렇게 한 것이  자기에게 결과적으로 좋다는 것을 또 한 번 체험했습니다. 한 번 경험했기  때문에 소돔 왕으로 더불어 그렇게 할 때에 그는 뭐 주저할 수 없는 것이고 닦아  놓은 대로를 가는 거와같이 그렇게 쉬웠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때 볼 때에 그것을 '아, 이거 참 하나님을 어떻게 이렇게 위했을까'  하는데 그렇게 위하지 안할 수 없는 그런 순서가 있었다 그말이오. 이것이 마치  말하면 이 세상에 물질의 그 과학이 과학이 그 과학이 그것이 틀림없는 그런  자체들의 본질과 본성을 생각할 때에 고거는 그 과학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변질  못하는 그 순서적으로 그리 된 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  신앙 도리에 있어서는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그 대답을 하지 안하고 다른 대답은  할 수 없는 그거 다 필연성이다 하는 것을 우리가 여기에 서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거기에 서 여러분들이 듣고 가 가지고 연구를 하면 거기에 서 꺼풀은  일어났으니까 자꾸 거머쥐고 졸졸 연구해 나가면 얼마든지 연구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생각하기를 아브람이 어려움을 만나서 신앙으로 가다가  어려움 만나는 것은 제일 쉬운 길이 어떤 길이냐? 제일 쉬운 길은 하나님에게  호소하는 것이 제일 쉬운 길입니다. 그것까지는 그것까지는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것까지는 죄가 되지 안합니다. 죄가 되지 안했고, 거기에 서 벌써 하나님을  배반하고 제 주장대로 나간 것은 범죄한 것입니다. 제일 좋은 것은 그럴 때에  하나님의 인도대로 해서 닥쳤으니까 닥쳤으니까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것 그것도  좋지마는 그것보다도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인도를 따라서 이런 일을 당했으니까  '분명히 이것은 좋은 것을 주었으리라' 온전히 기쁨을 가지고 참고 견뎠으면 참  좋았습니다. 참고 견뎠으면. 이스라엘 백성들 굶어서 죽었으면 죽었다 다  살아났을 거요. 죽었다가 살아났으면 완전히 변화 됐습니다. '죽어도 하나님이  우리를 속이지 안한다' 이제 죽음에서도 아브라함처럼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더  좋기 때문에 죽는다. 그분을 그렇게 믿고서 끝까지 믿고서 그래 죽었으면 그들이  다 새들새들 해 가지고서 죽었는데 죽고 난 다음에 거기에 다시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을 했다고 하면은 그만 거기에 서 가나안같은 거는 그런 거는 뭐  말할 것도 없이 아주 쉽게 다 통과했을 것이고 하나님의 능력은 얼마든지 그들을  통해서 역사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제일 원하는 것은 뭐이냐?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든든히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다음이 순종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그 다음에, 순종, 그 다음에 못 견디면  하나님에게 부르짖어야 됩니다. 하나님에게 부르짖어. 이거는 아주 어린  행동이나 죄에 나아가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거기에 서 자기를 어려움 당하는 그 어려움과 함께 어려움과  함께 움직이는, 어려움 이것을 벗어나지 못하고 어려움 이놈하고 뚤뚤 뭉쳐  가지고 있는 건데, 그 어려움은 하나님이 인생에게 줄라 하는 것이 아니고,  어려움은 안 됐지마는서도 어려움 속에 속에 들어 있는 병균이 있어. 요것도  알아듣기 어려운 말인데, 어려움 속에 병균이 있어 병균이 있으니까 물질적으로  평강을 주시면 좋겠는데 그 평강 그 속에 어려움이 들어 있으니까 이 평강  이놈하고 싹 끊어 내 버려야 수술이 된다 그말이오. 이거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아, 벧엘에 갔을 때에 하나님이 얼마든지 호의 호식으로 잘 먹일  수도 있고 평강을 줄 수 있는데 평강 속에는 뭐이 들었느냐? 평강 속에 거기에  병균이 들었다. 암병이 있다, 평강속에 암병이 들어 있어. 이게 이해가 됩니까?  이거 이해가 안 되면 말귀를 지금 못 알아듣는 거라. 평강 속에 암병이 들어  있으니 평강 요놈을 끊어 내 버릴 때에 그때에 암병도 끊겨 나갈 수가 있는데 이  평강을 끊어 내버리니까 사람이 죽을 지경이니까 수술을 못하고 할 수 없이  그대로 내비두고 그 병을 그대로 뒀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아브람은 그대로 그 병을 가지고서 애굽에 왔었는데 애굽이라는 한  순서를 통과해 가지고 그 순서를 통과해서 거기에 서 죽을 뻔 했고 아브람이  거기에 가면 둘이다 죽었습니다. 아, 안 죽을 수 있겠습니까? 가면은 바로의  아내 됐으니까 바로가 그 사래를 자기의 아내로 삼을라고 이래 할 때에 사래가  그만 한 순서까지는 갔지마는서도 그, 다음부텀은 그 사래가 호감을 가지지 안할  것이고. 그는 참 죽는 그런 거기에 서 무슨 기절하는 그런 변색이 될 것이요 또  잘 됐다고 하면은 노비들을 줬으니까 나중에 아브람이 그 남편이라는 것이  알아질 거라 말이오. 또 아주 그렇게 아리따운데 아브람 때문에 그런 것 보니까  아브람을 없애 버려야 되겠다 말이오. 사래를 아내 삼기를 위해서도 없애 버릴  것이고, 그 아브람이 없어야 자기에게 정이 사랑이 기울어지겠다 해서도 없어질  것이고 그런 거는 뭐 이런 모든 보통 서민에게서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아브람이 말하기를 '나는 죽이고' 하는 그말이 그때 다  보편성에 있는 인간들이 하는 일이라 말이오. 그러니까, 아브람 죽지. 아브람  죽고 나면은 사래는 또 살아 있겠습니까? 사래는 거기에 서 자살을 안 하면  기절해 죽어도 죽을 것이라 말이오. 말라 죽어도 죽었을 것이라. 이래 둘 다  사망입니다. 전부 가 다 전멸이라.

 그러기 때문에 이 벧엘에서 거기에 서 성도들이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가다가  어려움 당할 때에, 그 어려움이 큰 비밀인데 어려움은 큰 비밀. 어려움 속에는  굉장한 하나님의 그 축복이 들어 있는 건데 그것을 껍데기로 보고 어려운 때에  자기 마음대로 걸어가는 그 걸음은 그만 그것은 하나님 배반하는 걸음이요, 그  걸음은 공포와 불안에 싸이는 걸음이요, 그 다음에는 죄 짓는 거는 거짓말이라.

죄 짓는 걸음이요, 죄 짓고 난 다음에는 더 야나지게 죽이기 위해서 이제 불의의  재물까지 그이에게 주게 된 것이오. 그라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지 안했으면 두 말할 것 없이 아브람과 사래는 죽었고 롯도 거기에 서 다  죽었을는지 모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그 걸음을 따라 갈 때에는 반드시  어려움이 온다. 어려움이 오면 왜 어려움을 이렇게, 이 어려움을 어데 필요하게  쓰시려고 어려움을 주시는가? 그러면 현실은 하나님이 만들어 주셨다 하는 것을  우리가 밝히 깨닫고. 그러면 이 어려움은 하나님이 주는, 무엇 때문에 주셨느냐?  이것을 우리가 알라고 똑똑히 찾아서 바로 찾았으면 바로 찾으면 그 어려움을  연구해 가지고 바로 찾으면 그 어려움으로 인해서 '아이쿠!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큽니까? 이렇게 깊습니까? 내가 무엇이기에 이렇게 깊이깊이 나를  사랑하십니까?' 하는 것을 그 속에 아무든지 발견할 수 있는 알맹이는 들어 있다  그말이오. 그런데, 그렇지 안하고 껍데기로 그 어려움을 하나님의 사랑인 것을  깨닫지 못하고 어려움은 그때 평안보다도 더 좋기 때문에 어려움 줬으니 그  어려움이 자기에게 큰 평강과 큰 존영이 되어지는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어려움 그것만 보고서 거기에 피동되면 그 가는 걸음은 그만 전체가 사망입니다.

그거는 껍데기가 알기 쉬우니까 어려움 당할 때에 그 어려움에게 피동되어서,  어려움으로 인해서 애굽 갔으니까 어려움에게 피동된 것이지, 어려움에게 소속한  것이지, 어려움에게 지배를 당하는 것이지. 어려움의 종이지 그렇지 않습니까?  그것은 완전히 전멸되는 길이라 하는 것을 우리가 생각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가 아니면 전멸됐습니다. 능력의 보호가 아니면 전멸되는데 그것을.

아브람이 우리보다 뛰어난 것은 아브람이 그럴 때 거기에 서 그 숙질 간에  시비할 때나 소돔 왕과의 그와 같이 될 때나, 또 이삭을 번제로 드려야 할 때나  하는 그것은 아브람이 하나 하나 만났을 때에 깊이 회개를 했다 말이오. 시험에  들었으면 회개를 했어. 아브람 회개를 우리가 그저 이름만 말했으니까 롯으로  더불어 시비 할 때에 아브람 회개가 거기에 나왔다. 또 소돔왕으로 더불어  시비할 때에 그 회개가 나왔다. 이삭으로 시비할 때에 회개가 나왔다. 그는  인간이라 실수 안 할 수가 없었으나 실수하고 난 다음에 그것은 몇십 배 몇백  배의 큰 회개로서 그것을 다시 손해 갔던 것을 되찾은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우리의 믿음의 조상인 것입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오늘 아침에 하는 말은 무슨 말인지 여러분들이 아는 사람도 있을 것이 그 못  알아 듣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그것을 빨리했기 때문에 못 알아 듣는 사람이  많는데 거저, 그런 그런 말이 있다면 그 말씀이 여러분들 속에 역사해서 나중에  알려 줄 것이오. 알려 주면 뒤에 가서 이거는 내가 깨달았다 자기가 깨달은  것이오. 말씀이 속에 역사하는 그런 역사가 속에 있을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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