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25 16:15
신앙 생활의 3요소-실행,성경,기도
본문 : 고전 15:42-44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어제 부활에 대해서 증거를 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죽은 것을 다시 살려야 하고, 또 살아난 것을 길러야 하고, 또 죽일 것을 죽여야만 합니다.
죽여야 할 자를 죽이지 아니하고 남겨둔 것은 마지막 세상을 떠날 때에 죽어집니다. 그러나 살려야 할 자를 살리지 아니한 것은 저절로 사는 일은 없습니다.
마지막 세상을 떠날 때가 되면 살아날 그것이 살아나지 못하고 죽은 그대로 죽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죽일 것을 죽여야 하고 살릴 것을 살려야 하고 또 기를 것을 길러야만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하는 일에 전부라고 할 수가 있는데 여게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하는 말은, 죽은 자의 부활이 이와 같다,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하는 여기에 붙은 말이 아니고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다" 그말은 그 위엣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하는 그 부활의 영광이 각각 다르다. 죽은 자가 부활한 그 영광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열심히 죽은 것을 살려내야 한다. 또 죽여야 할 것을 죽이지 아니하고 그대로 둬 두면 그것이 살리는 일에 방해를 많이 한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날마다 현실을 닥치는 현실이 다 죽일 자 죽이게 하는 현실이요, 살릴 자 살리게 하는 현실이요, 또 살아난 자를 힘있게 기르게 하시는 현실인 것입니다.
특별히 주일날은 죽은 것들을, 우리가 죽은 것이 많은데 죽은 것들을 하나 하나 살려내는 날이라, 엿새 동안에는 살아난 것을 기르는 날이라, 그러나 엿새 동안도 기르는 날뿐만 아니라 죽은 것을 살리기도 하는 날이다.
그저 예수 믿고 부활만 하면 꼭 같은 줄 알지마는 같지 아니하고 그 영광이 각각 다르니 부지런히 죽은 것을 살려야 되고, 또 죽일 것을 죽여야 걸거치지 아니하고, 또 살아난 것을 장성하게 길러야 된다 하는 것을 권면합니다.
그러면 죽은 것이 살아나는 데에는 어떤 과정을 통과를 해 가지고 살아나게 되느냐? 그 과정은 죽은 것을, 죽은 것 중에 두 가지가 합 해 가지고 있으니 죽은 것 중에 죽여야 할 부분은 아주 죽여 버려야 되고 죽은 것 중에 살릴 부분은 살려야 한다. 마치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때에 환자의 몸에 아주 죽여서 세내서 수술해 없애 버려야 할 것은 없애 버려야 하고, 또 거게서 살려야 할 부분은 잘 보호해서 살리도록 그래 하는 것이 의사의 수술인 것처럼, 우리는 날마다 그렇게 해 나가야 한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죽여야 할 것은 어떤 것인가? 죽여야 할 것은 마귀에게서, 마귀에게서 온 것들이 있고 또 하나님이 창조하셔서 하나님에게 받은 것도 있고 이래 두 가지가 섞여 있다. 하나님에게 받은 그것은 다 깨끗하고 좋은 것인데 마귀란 놈이 나쁜 것을 줘 가지고 깨끗한 그것도 더러워지고 다 죽어지게 됐다.
마치 좋은 원단에다가 못쓸 물을 들인 것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그것에게 마귀가 못쓸 것을 줘 가지고 감염을 시켜 놓은 것이 있다. 물 들여놓은 것이 있다. 그런고로 물들인 그것은 물을 빼는 것처럼 마귀가 준 것은 제거를 해야 되고, 또 마귀가 주는 것 가지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좋은 것 그것을 죽여 놨기 때문에 마귀가 물들여 놓은 그것만 없앤다고 해 가지고 그것이 되는 게 아니고 마귀가 물들여 놓 은 그 병을 제거하고 살려내야 된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마음이나 몸은 다 하나님이 주신 선한 것입니다. 그런데 악령이 나쁜 것을 가지고 와서 우리 마음과 몸을 도덕적으로 죽여놨고 또 하나님의 법도적으로 죽여놨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다 위반해서 모두 다 심판받아 지옥 가도록 만들어 놨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마귀가 와 가지고, 우리의 마음과 몸의 요소 요소를 악령이 와서 악성으로 만들어 버렸고 악습으로 만들어서 다 죽여 놨으니 마귀의 것을, 낱낱이 물들인 것을 물을 재서 탈색시키는 것처럼 악령의 것을 이것을 다 제거해야 된다.
또 제거하고는 죽어 있는 마음과 몸의 모든 요소 요소를 살려내야 한다. 그러면 살려냈으면 살려낸 그것을, 또 하나님의 주시는 은혜에 따라서 차차 길러 가야 된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선한 것 좋은 것, 몸도 그러하고 마음의 요소들도 그러하고 또 우리의 행동도 그러합니다. 행동도 하나님이 주신 좋은 행동 있는데 그 행동을 악령이 와서 죽여 때렸습니다. 그러니까 움직이고 있으나 죽은 것이 죽음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행동도 그러하고, 또 우리가 누리고 있는 기쁨이나 행복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쁨은 선한 것인데 악령이 와 가지고 선한 기쁨을 죽여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죽은 기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죽은 기쁨을 가지고 있는 그것을 죽인 악령의 요소를 먼저 다 빼버리고 나면 하나님이 주신 선한 기쁨인데 그 기쁨을 죽인 더러운 것은 제거했지마는 그 기쁨이 아직까지는 살아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면 또 그 기쁨을 살려야 합니다.
그래서 예를 들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로 친근하고 서로 사랑하는 그 사랑이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과 사람이 사랑하는 것은 다 하나님이 주신 선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을 마귀가 와서 죽여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산 사랑을 마귀가 와 가지고 죽였기 때문에 지금은 마귀가 하나님이 주신 이 사랑을 죽인 마귀의 요소를 다 뽑아버려 버리면 죽은 사랑이 죽음에서 벗어 나오게 됩니다. 벗어 나왔으나 죽음에서는 해방이 됐지마는 살아난 것은 아닙니다. 죽음에서 해방을 시키고 그 다음에는 살려야 합니다. 그러면, 살리면 이제는 사랑이 살아났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한 사랑이 마귀로 인해서 죽었다가 또 하나님이 살리시는 그 방편을 이용해서 사랑을 죽인 그것을 제거해 버리면 사랑이 죽음에서 해방을 받습니다. 죽음에서 해방을 받았으나 살아나지는 안했습니다. 죽음에서 해방을 받고 또 살아나면, 살리면 살아납니다. 이제 살아났으면 산 사랑이 됩니다. 그것이 부활한 사랑입니다. 부활한 사랑은 하나님이 처음에 주신 그 사랑과 같은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처음에 주신 그 사랑은 죽을 수 있는 사랑이지마는 이제는 마귀가 와서 죽인 것을 예수님의 공로를 인해서 다시 살아난 사랑은 마귀가 죽이지를 못하고 그는 와 가지고 아무것도 침노하지 못하는 사랑으로 살아났기 때문에 그 사랑은 영생을 합니다.
그러기에 사랑도 부활한 것을, 기쁨도 부활한 것을, 그 사람의 인간성 속성도 부활한 것을, 그 사람의 모든 사상도 부활한 것을, 기능도 부활한 것을 전부 죽은 것을 일단 죽음에서 해방을 시켜 가지고 또 살려내야 됩니다. 이것이 심히 바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 하는 일은 이 일 하는 것입니다. 죽은 것은 하나님에게서 떨어지면 죽습니다. 죽은 것은 어떻게 해서 죽는고 하니 하나님에게서 떨어져서 다 죽었습니다. 마귀란 놈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것을 떨어지도록 만들어 가지고 떨어지면 죽습니다. 떨어져 죽은 그것을 떨어지게 한 그놈을 제거해 버리면 죽 이는 독소가 없어졌습니다. 떨어지게 한 그것을 제거하고 떨어지게 한 그것은 없앴지마는 하나님과 연결된 것은 아닙니다. 다시 하나님 과 연결이 되면 이제 그것이 살아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모든 부분 부분 요소 요소를 죽음에서 해방을 시켜야 하고, 해방된 것을 또 살려야 하고, 살아난 것을 또 길러야 합니다. 지식도 하나님께서 처음에 사람들에게 지식을 주신 것입니다. 타락 전 에덴동산 아담에게 하나님이 지식을 주셔서 모든 만물 취급을 이렇게 하라 하는 그 지식을 주셨을 때에 아담이 만물 취급을 그 지식대로 취급했습니다. 그때에는 그 모든 만물이 아담에게 절대 복종입니다.
이런데 마귀란 놈이 와 가지고 하나님과 그 사이를 끊게 만들었습니다. 그 지식이 하나님에게 속해 연결돼 있는 하나님과 연결을 끊어 버린 그 지식은 이제는 죽은 지식입니다. 그것이 배암으로 말미암아 끊어져 배암에게 속한 지식입니다. 그 지식이 죽고 난 다음에는 그 지식은 사람을 죽이는 것만 자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지식을 죽이는 사탄에게서 해방을 시켜 가지고 다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지식을 살리면, 그 지식을 살리면 그 지식은 보배로운 ,지식이 됩니다.
그 지식을 살리는 것은 어떻게 하면 살리는 것인가? 그 지식을 하나님과 연결시켜서 하나님에게 속하게 되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이게 되면 그 지식은 살았습니다.
모든 것이 그러합니다.
잘못하면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세상에 있는 모든 행복은 다 누릴 수 없고 다 세상에는 참 외롭고 고생스러운 사람으로 살다가 가야 하는 가? 그러기에 예수 믿는 사람은 세상에서 기쁨은 누려보지 못하고 항상 고통만 누리고 갈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이 주신 산 기쁨이 인생들에게 있었는데 마귀란 놈 이 와 가지고 산 기쁨을 죽여서 죽은 기쁨을 인간들이 가지게 됐습니다. 모르고 없으니까 죽은 기쁨으로 기뻐하고 즐거워 사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기쁨을 죽인 그놈을 수술해서 제거해 버려 버립니다. 그러면 그 기쁨을 죽인 자에게서 해방을 시키면 그 기쁨은 그 죽음에서 해방이 됩니다. 죽음에서 해방은 됐지마는 그 기쁨 이 살아나지는 못했습니다. 그 기쁨을 다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립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쁨을 인생에게 주셨는데 하나님께 받은 좋은 기쁨을 마귀란 놈이 와 가지고 독을 피워서 이 기쁨을 죽여버렸습니다. 이러니까 인생들에게는 산 기쁨은 없고 죽은 기쁨, 산 행복은 없고 죽은 행복, 산 생명은 없고 죽은 생명, 전부 산 것이 다 죽어져 버리고 좋은 것이 다 못쓰게 돼 버렸습니다.
못쓰게 된 이것을 예수님이 살려 주시기 위해서 왔기 때문에 이제는 죽이는 이 독소를 다 제거할 수가 있습니다. 죽인 독소 마귀의 것을 제거해 버립니다. 죽인 독소 마귀의 것을 제거해 버리면 이제 죽이는 독소를 다 제거했기 때문에 죽는 일은 없어졌습니다. 죽는 일은 없어졌지마는 이것이 살아나지는 아니했기 때문에 산 작용을 하지는 못합니다. 또 산 작용은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살려냅니다. 살려내면 그 다음에는 이것이 살아나서 산 작용을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주신 산 기쁨이 마귀로 인해서 죽어서 죽은 기쁨을 인간이 가지고 있다가 이 죽은 기쁨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죽인 악령의 독소를 제거해 버리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살리면 산 기쁨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살아 난 기쁨은 이 기쁨은 영원한 기쁨이요 아무도 해하지 못합니다. 사랑도 그러합니다. 사랑도 하나님이 산 사랑을 주셨는데, 산 사랑을 주셨는데 이 사랑은 잘아 있지마는 죽이면 죽을 수 있는 사랑이었습니다.
죽을 수 있는 산 사랑을 주셨는데 마귀란 놈이 와 가지고 이 사랑을 죽여 버렸습니다. 이러니까 산 사랑이 이제 죽은 사랑이 돼 버렸습니다.
둘째 아담 예수님께서 오셔서 마귀가 죽여 놓은 그 사랑을 살리기 위해서 오셔 가지고 죽인 마귀의 독소를 다 빼 버려 버리면 이제 죽은 사랑이 그 죽음의 독소에서 해방을 받습니다. 죽음의 독소가 없는 것이 됩니다. 죽음의 독소가 없는 것이 되지마는 그것이 산 것은 되어 있지를 못합니다. 또 그것을 새로 살립니다.
그러면 살리면 살아 난 이 사랑이나 살아난 이 모든 것은 영원히 죽지 아니합니다.
그런고로 주님이 주일을 주신 이 주일은 모두 다 죽은 것을 살리시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는 사람들이 '세상 행복은 아무것도 못 누리고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은 세상에서는 고생만 하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이라' 그렇게 오해를 하면 안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모든 죽은 행복을, 죽이는 독소를 다 수술해서 제거해 버리고 다시 새로 생기를 주어서 그것을 살려냅니다. 살려내 가지고 그것을 잘 길러 가지고 아주 강건하고 장성한 것으로 길러 가지고 이다음에 하늘나라를 가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믿는 사람은 모든 죽은 것을 살리라 그말입니다. 죽은 기쁨을 살려서 산 기쁨을 네가 가져라, 죽은 행복을 살려서 산 행복을 가져라, 죽은 사랑을 살려서 산 사랑을 가져라.
그러기 때문에 죽은 것이 좋습니까 산 것이 좋습니까? 산 것이 좋습니다. 죽은 것은 왜 죽었느냐? 죽은 것은 하나님과 떨어지고 마귀 그놈하고 합작이 된 것으로 인해서 죽었습니다. 마귀란 놈이 살살 요렇게 꾀어 가지고, 꾀어 가지고 하나님에게 속하지 말고 하나님과 떨어지고 나하고 하나 되자 하니까 인간이 어리석게 마귀 그놈에게 붙어 가짜고 그놈하고 하나됨으로 말미암아 모두 다 죽었다 그거요.
죽었으니까 이제는 마귀하고 하나됨으로 죽은 그것을 다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려서 산 행복을 가지라, 산 기쁨을 가지라, 산 부부 행복을 가지라, 산 부부 사랑을 가지라, 산 친구의 우정을 가지라, 산 사업을 하라, 산 행동을 하라, 산 자로 살아라, 모든 산 행복을 죽은 세상에서 누리고 살아라. 산 걸로 가지고 살라고 하시는 것이지 믿는 사람이 세상에서 그저 아무 기쁨도 행복도 없는 고통만 하는 그런 세상으로 살게 하는 것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 있고, 마귀가 준 것은 근본부터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대개는 우리에게 있는 것이 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지 마귀가 준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타락 전 에덴동산 아담 하와에게 있는 인격이라든지 기쁨이라든지 사랑이라든지 평강이라든지 행복이라든지 모든 것이 다 그때는 산 것이었는데 산 것을 마귀 이놈이 들어서 다 죽여 버렸습니다. 왜 그러면 마귀가 죽이구로 냅뒀느냐? 마귀에게 유혹을 받아서 마귀에게 꾀임받아 가지고, 꾀임받아 가지고 그놈 하자 하는 대로 하다가 다 죽어 버렸습니다.
그러면 전부 세상은 다 죽은 것만 가득 차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도, 영도, 육도, 생애도, 행복도, 모든 쾌락도 전부 죽은 것이오. 다 죽어 있습니다. 죽어 있는 이것을 예수님이 살리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산 것을 인생들에게 주셨는데 산 것을 주셨지마는 이 산 것은 죽을 수 없는 산 것이 아니고 죽을 수 있는 그런 약한 산 것이라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이것이 마귀가 와 가지고 유혹을 시키니까 죽어 버렸습니다. 이제 죽어 버린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 살아납니다. 살아난 이 산 것은 다시는 죽을 수 없는, 죽일 수 없는 영생하는 것으로 다 살아나게 됩니다. 이러니까 한번 죽었다가 살아난 것은 이것은 다시는 죽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죽을 수 있는 모든 산 것이 왔던 것이 마귀로 말미암아 죽었기 때문에 마귀로 말미암아 죽은 이 죽음에서 네가 벗어나라. 마귀가 죽인 이 죽음을 네가 버려라. 이 죽음에서 해방을 받아라. 죽음 이것을 떠나기 싫어서 죽음 그놈이 너 죽인 것인데 죽음 그놈을 떨어지기가 싫고, 죽음 그놈과 떨어지기가 싫고 죽은 그것을 내놓기가 싫어 가지고 하다가 사람이 죽어버리고 마는데 담대히 너를 죽인 죽은 것을 던져 버려라. 일단 죽은, 마귀가 죽였는데 마귀가 죽인 그것을 예수님이 살아나는 방편을 주신 그 방편대로 일단 그것을 포기하면 그 다음에 마귀가 죽인 그것을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내놓으면 그 다음에 이것이 하나님으로 인하여서 다시 살아난다.
그것을 가리켜서 '썩을 것으로 심고' 하는 그말은 내놓으라 그말이오. '썩을 것으로 심고' 심으는 것은 내놓는 것 아닙니까? 내가 종자를 가지고 있는 것을 심으려면 종자를 내놔야 되지. 땅위에 집어던져야 되지. 던지나, 심으는 것은 던져도 어떻게 던지느냐? 던져도 소망을 가지고 던지고 더 좋은 것을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서 던지는 것이라 말이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을 믿고 이와 같이 더 좋은 것으로 가지기 위해서 던지라, 포기해라, 버리라. 버리니까 그 다음에 하나님으로 인해서 그것이 더 좋은 것으로 살아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약한 것이 강한 것으로 살아난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도 하나님이 하신 그 역사들을 보면 마귀가 줘 가지고 마귀적인 것, 마귀적인 그 마귀의 죽이는 독소가 들어 있는 것을 하나님이 살릴 때에는 네가 버려라 이랬어. 버리라. 이럴 때에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함을 인해서 턱 던져서 버리고 나면 그 다음에 아주 형언할 수 없는 보배로운, 지극히 큰 가치 있는 것으로 살아나는 것이 모두 다, 아브라함도 그러하고 모두 믿음의 사람들 다 그렇습니다.
요셉이 총리대신 되기까지의 걸어간 그 모든 걸음은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이 주신 것을 마귀가 죽여 놨는데 죽인 그것을 전부 버리는 것이라. 죽인 그것을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대로 하니까 죽은 것은 버리고, 죽은 것은 포기하고, 죽은 그것은 내놓게 되고, 그래 죽은 것을 내놓게 되니까 죽은 것이 절단나니까 죽은 것을 절단나는 그것만 보늑 사람들의 눈을 가지고 '요셉이는 참 불행하고 고생 많이 했다' 하는데 그것을 살펴보면 전부 죽은 그것을 죽음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 죽은 것을 하나님의 말씀을 인해서 던져 버렸어. 말씀을 인해서 포기했어. 세상과 세상에 있는 소망을 포기했다 말이오. 포기했어.
포기하고, 포기하고, 포기하고 자꾸 죽은 것을 포기하고 나니까 그 다음에, 죽은 것을 포기하니 그것이 살아났고, 죽은 것이 살아났고 죽은 것이 살아나 가지고 산 것으로서 이제 장성해 가지고 그게 들어서 애굽에 총리대신 됐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것을 단단히 기억하고, 너무 복잡해서 좀 알기 어려운데, 알기 어려우나 제가 머리를 가지고 배우려 하는 사람은 암만 배워도 스스로 속습니다.
그것이 자기 것이 되지 아니하기 때문에 항상 배워야 돼요. 배우나 또 배워야 돼요.
또.
그러나 실행을 하면, 실행해서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눈으로 본 것이 그것이 더 확실하다. 자기가 또 백 번 본 것보다 자기가 실지로 한 번 행해 보면 더 확실합니다. 이러니까 실행을 해 보면 안다 그말이오. 하나님 말씀대로 죽이라는 것을 죽여 보면 알아. 죽여보면 그 다음에 살아나는 것을 자기가 체험할 수가 있다 그거요.
그런고로 오늘 아침에는 그것을 기억하십시오. 이 세상은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모든 좋은 것을 주셨는데 좋은 것을 주셨지마는 그 좋은 것이 나쁜 것이 될 수 있는 연약성의 것을 주셨다. 그래서 좋은 것이 배암만 안 들어왔으면 좋은 그대로 있을 터인데 배암이 이놈이 들어 와 가지고 좋은 그것을 다 못쓰게 버려놨다.
그러면 못쓰게 버렸기 때문에 세상에는 전부 못쓸 것들만 가득히 차 있다. 다 말하자면 죽은 것들만 가득히 차 있다. 다 더러운 것들만 약한 것들만 가득히 차 있다. 전부 다 그게 아주 죽은 행복이요 죽은 기쁨이요 그런 것들만 가득히 있다.
그것을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죽음에서 해방을 시키기 위해서 주님 의 십자가의 공로가 와서 있다. 그런고로 죽음에서 해방을 시키라. 해방만 시키면 죽음에서 해방은 됐지마는 살아나지 못했기 때문에 해방시킨 그것을 일단 다시 살려내라.
그러면 살아납니다.
그러면 죽은 것은 어떻게 죽었는가? 하나님과 떨어지게 만들어 죽었다. 모든 것을 하나님과 떨어지게 만들어 죽었다. 다시 살아나게 하는 것은 떨어지게 만들어진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이렇게 화합해서 다시 연결시킨다.
연결시키면 살아난다.
그러기에 산 기쁨이라 하면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과 연결된 기쁨이다. 산 사랑이라 하면 하나님과 연결된 사랑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연결됐기 때문에 하나님은 뿌럭지라, 포도나무의 뿌럭지같이 하나님과 연결돼 하나님이 근원이 되고 근본이 되셔 가지고 하나님으로 인하여서 그 사랑이 움직이는 그 사랑은 영생하는 산 사랑이다 하는 말입니다.
어제 오전 오후에 말했는데 예수님의 공로로 인해서 우리에게 인간 이 할 수 없는 큰 것 네 가지를 해방시켰다. 큰 네 가지에서 해방을 받았다 하는 것을 말했는데 그 큰 것 네 가지가 무엇 무엇이오?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목회자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한번 대답해 봐. 어? 또? 또 악령, 또? 또? 사망 녜, 요 넷에서 해방시켰습니다.
요 넷을 성경이 말하기를 악령도 왕이라 했습니다. 왕이라는 것은 절대권을 말합니다. 왕이라 하는 것은 전권을 말합니다. 왕의 그 주권, 악령의 주권에게 딱 매였다 그말이오. 못 해. 악령의 주권에서 인간이 해방 못 합니다. 예수님이 요걸 해방을 시켰습니다. 악령이 왕노릇하는 거게서 해방됐기 때문에 악령이 택한 중생된 자에게는 왕 노릇을 못 합니다. 왕노릇 못 하기 때문에 항상 숨어 다니고 쫓겨다니요. 중생된 사람이 '사탄 이놈은 나가거라' 하면 제가 쫓겨나가야 된다 말이오. 중생되지 아니한 예수님의 공로를 입지 아니한 자에게는 악령 이놈을 나가라고 해도 이놈 내가 네 왕인데 '이놈 어데 불복하느냐'고 때리고 그반 절단을 내 버립니다.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왕권은 뺏겼여.
또 성경에 말하기를 '죄가 왕노릇 한다' 이랬어. 우리는 '너희들은 죄가 왕노릇 하지를 못한다' 말했어. 또 무슨 왕이오? 또 무슨 왕이지? '사망이 너희들에게 왕노릇 하지 못한다' 성경에 그래 놨어. 이 넷 왕권에서 해방시켜 주신 것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입니다. 해방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를 죽이는 마귀의 이 죽임에서 해방받을 수 있고 또 여게서 하나님으로 더불어 다시 연결돼서 살아날 수가 있다 그거요.
세상은, 기독자는 모두 다 산 것을 가지라고 하는 것이지 기독자가 고생스러운 건 아닙니다. 그러니까 신앙 생활 잘한 사람들이 다 썩은 것 죽은 것 그런 것이, 다 싫어서 썩은 것 죽은 것을 다 산 것으로 바꾸어 가지고 있으니까 참 산 행복을 가지고 있지마는 인간들이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인간들이 모르기 때문에.
어떤 예를 들면, 그것도 잘 비유가 안 되지마는 어떤 사람이 자기가 돈 천 원을 가지고 있는데 '나는 돈 천 원을 가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보니까 정부에서 책임진 그 수표를 일억짜리 수표쪼가리를 한 쪼가리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돈 천 원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돈 천 원 가지고 있는데 너 돈 천 원 있나?' 아주 그런데 나는 수표 가졌다. '수표 그게 무슨 가치 있노? 무슨 소용 있노? 돈 이게 제일이지.' 돈 천원만 아는 그자는 돈 천 원은 재물로 알지마는 나라에서 보증 한 자기앞 수표라는, 은행은 다 나라에서 보증한 겁니다. 보증한 건데 일억짜리 수표 있는 그거는 제가 무식하기 때문에 그것을 재물인 줄을 모른다 그말이오.
그렇지마는 아는 사람이 볼 때는 '헤, 돈 천 원 가지고 자랑을 하고 저거는 아무것도 없고 거지 같은 사람이라' 고 이럴 때에 보고 '야, 너는 천 원인데 저 사람은 일억의 수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네 일억 배 부자다. 일억 배 재산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보고 알지마는 무식한 사람은, 그걸 모른다 그말이오.
예수 믿는 사람이 이렇게 참된 가치 있는 행복을 누리고 있지마는 그들 눈이 어둡기 때문에 죽은 것만 보고 죽어 있어 그래. 눈도 죽었고, 정신도 죽었고, 지식도 죽었고, 지혜도 죽었고, 비판도 죽었고, 평가도 죽었고, 전부 죽은 것뿐이니까 죽은 것이나 알지 죽은 것은 산 것을 모른다 그거요. 그런고로 기독자의 생애가 이 세상에도 불행스러운 생활하는 게 아니고 참 행복스러운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항상 기뻐하라는 것도 하나님을 안 사람은 하나님으로 인해 기쁜 그게, 하나님으로 기쁨을 맛본 사람이 돈이나 지위나 행락이 나 세상에 그 모든 온갖 정욕의 생활이나 그런 것의 그 기쁨을 그것을 기쁨으로 삼을 수 없어. 벌써 척 보면 죽음부터 먼저 보이는데. 가치 없는 것 먼저 보이는데. 썩은 것인 것을 먼저 보이는데 어떻게 그것을 가치 있다고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그의 마음의 지혜의 눈이 밝고 어두운 데에서 모든 것이 그와 같이 평가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십 분 기도하고 난 다음에 권찰회 모입니다.
예수 믿는 것은 꼭 예수 믿는 이치를 알고 그 이치대로 해야 됩니다. 이치를 모르면 소용없어. 암만 떠들고 막 울고 불고 주먹을 때리고 암만 해도, 지진이나 큰 음성이나 불꽃에나 거기에 하나님이 안 계셔.
'세미한 음성에 계셨다' 말은 이치를 깨닫고 이치대로 믿어야 된다 말이오.
이치대로 믿어야 되지 이치대로 안 믿고 떠드는 그것은 마귀에게 속한 것이라. 마귀 그놈은 어짜든지 떠드는 것 좋아합니다. 징도 둥둥둥둥 떠들고 또 북도 막 그저 막 떠들어 가지고 사람을 그만 정신없이 이렇게 만들어 가지고 점령하는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이오. 하나님은 어지러운 하나님 아니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