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에 대해서

 

1986. 6. 10. 새벽

 

본문:사도행전 1장 1절∼8절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데오빌로라는 이 사람은 한 개인입니다. 그런데 그 뜻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은 자라 그런 뜻인데 여게 대해서도 사람들이 해석하기를 이는 개인에게 전한 게 아니라 모든 성도들을 다 총칭한 이름이라 그렇게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나가서 틀렸고, 성경을 처음에는 받은 사람이 한 사람 되는 것도 있고 또 교회가 받을 때도 있으나 개인이 받았든지 교회가 받았든지 이 성경은 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 전부에게 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사도행전을 기록한 사람은, 먼저 쓴 글이라 그말은 누가복음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그런데, 거게 다른 것은 또 뒤로 두고, 2절에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성령으로 명하시고」 하는 말씀이 있는데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활하신 후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여기 기록했는데 부활하신 후 사십 일 동안 땅에 계시면서 제자들과 모든 문도들에게 자주 나타나셔 가지고 당신이 부활하신 후에 어떤 일 하신다는 것을 많이 말씀을 하시고 하늘나라에 대한 일을 증거를 했습니다.

그 증거할 때에, 부활하신 후에 증거하실 때에 예수님이 증거하시기를 「성령으로 명하시고」 그렇게 말씀했어. 「성령으로 명하시고」 그러면, 예수님도 부활하신 후에 그때는 신인 양성 일위는 일위입니다. 신인 양성 일위이신 예수님이 부활하셔 가지고 오늘까지 신인 양성 일위이신 예수님으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 계시마고 승천하실 때에 제자들에게 마태복음 28장 끝절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잘못하면 예수님이 신성으로만 우리와 같이 계시고 인성으로는 계시지 않는 것으로 그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신성 인성 양성 일위로 지금도 우리와 같이 계시면서 부활하신 후에는 신인 양성 일위가 직접 말씀하시지 안했고 성령으로 명령하셨다, 성령으로 말씀하셨다 이랬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 당신 안에 아버지가 계셔 가지고서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그 말씀대로 예수님이 따라서 발표를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아버지의 말씀을 발표하고 아버지는 예수님 안에서 말씀하셔서 예수님은 전적 아버지에게만 순종 피동으로 말씀했지 당신이 개적으로 독단으로 말씀한 일은 한 마디도 없습니다.

그러다가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시고 죽은 가운데서 삼 일 만에 다시 부활하신 후부터는 이제 예수님에게 일하는 영이 다릅니다. 죽기 전에는 아버지가 내주하셔 가지고 예수님 안에서 역사하실 때에 예수님이 그 역사를 따라서 아버지의 역사를 나타내시는 그 일을 했지마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다시 부활하신 후부터는 예수님이 하시는 그 일을 다 성령이 맡았습니다.

성령님이 맡아 가지고 하시기 때문에 그때는 신인 양성 일위가 아버지에게 순종해서 하는 그 일은 끝났고 이제는 성령님이 예수님을 붙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도 성령님으로 말씀했습니다.

신인 양성 일위이신 예수님도 복음 역사를 하실 때에 신인 양성 일위이신 예수님이 과거에는 아버지와 함께 해서 했고, 또 지금은 이제는 아버지와 함께 하는 그것도 안 하고 또 단독이 하는 일도 하지를 안하고 성령으로 일하시는 그 일을 하셨습니다.

여게 예수님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약속대로 그렇게 하시고 약속을 한 마디도 어겨서 자기 단독이 자율대로 독행하는 그런 일은 전혀 없습니다.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사도와 같이 모이사」 그러면 예수님이 말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저희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그때 예루살렘은 어떤 곳인고 하니 사도들이 그때 예루살렘에 모여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모였었는데, 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이렇게 이 말씀을 하셨는가? 그것은 예수님이 오셔 가지고 가르치시는 것이 이제까지의 유대 종교, 제사장 바리새 교인들 그들이 배운 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지 안하고 제사장 서기관들이 가르친 대로 말씀하시지 안하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으로 교훈이 뒤비졌다 그말입니다.

그들이 가르친 것은 벌써 속화되고 속화돼 가지고서 전부 인본화되어졌고 인간 중심으로 말하고 있지 하나님 중심으로 하지 안하기 때문에 벌써 하나님 앞에는 진노를 쌓아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이 성전에서 섬기지마는서도 돌 위에 돌 하나도 첩 놓이지 안하고 다 무너져서 너희들이 자녀의 고기를 먹지 안하면 안 될 만치 그렇게 환난에서 멸망을 받으리라 말씀하시고 승천하셨는데 승천하신 후 사십 년 조금 못 돼서, 예수님이 살아 계셨으면은 칠십 세가 될 때에, 살아 계셨으면 칠십 세가 됐을 때이니까 승천 후 약 삼십 칠 년 정도된 후에 예루살렘이 완전히 전멸로 함락이 돼서 그렇게 멸망을 받았습니다.

왜 그렇게 그때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이렇게 말씀하셨느냐 하면은 이렇게 이들이 교훈을 가르친 것이 다 틀리게 가르쳤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것을 바로 가르치니까 저희들의 가르친 것과 예수님의 가르치심이 다르니 저희들의 세도가 없어지고 저희들이 사람들에게 인정 받지 못하게 되고, 저희들의 교훈이 다 틀렸다 하는 것을 백성들이 알게 되니까 저희들의 입장이 어려워지고 이러니까 예수님을 미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가지고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그들이 못 박았습니다.

누가 못 박았느냐? 예수님을 저희들의 메시야로 밤낮 기다리고 있는 이스라엘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이러니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난 다음에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에 내가 죽은 가운데서 다시 부활하신다 이렇게 말씀을 해 놓으셨으니까, ‘예수님이 또 부활하면은,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면은 더군다나 더 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말을 듣고 우리를 반대해서 돌로 쳐 죽일란지 모르겠다.’ 이러니까 거짓말로, 그때에 로마의 식민지니까 로마에서 총독을 세웠는데, 빌라도 총독을 세웠는데, 빌라도 그때 총독입니다. 이 총독 이름이 빌라도입니다. 빌라도에게 가서 말하기를 ‘저가 왕이라고 지금 말했는데 왕이니까 가이사의 나라를 다 정복하고서 가이사 나라를 뺏들라고 왕이라고 선포했기 때문에 당신이 저걸 냅둔다면 우리가 가이사왕에게 고발을 하겠다. 고발하면은 제가 역적이 돼 가지고 가이사왕을 다 정복하고 왕노릇 할라 하는 것을 그대로 총독 당신이 그대로 둬 두면 우리가 고발하겠다.’ 이라니까, 그 총독 빌라도가 다른 말 할 때는 ‘암만 봐도 이분은 죄가 없다’ 또 자기 아내가 `이분을 죽였다가는 큰 화를 당한다’ 이라니까 ‘나는 그 죄를 찾지 못하였으니 때려서 놓으리라’ 했지마는서도 백성들이 아우성 치기를 ‘그가 왕이라고 지금 말했으니까 가이사에 역적인데 역적을 살려 둔다면 빌라도 총독 당신도 역적이다’ 이렇게 말하니까 그만 역적으로 몰려 가지고 제가 죽을 것 같고 총독 권세도 떨어질 것 같고 이러니까 예수님을 정죄해서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못 박았는데, 예수님께서 죽은 가운데서 사흘 만에 살아나신다고 하셨기 때문에, 빌라도도 예수님을 죽였기 때문에 살아나는 날이면 복수할 터이니까 문제가 된다 하는 이 큰 지금 그들에게 난제가 생겼고, 또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 교인들도 죽여 놨으니 살아나는 날이면 우리는 다 전멸된다 이런 난제가 생겼기 때문에 예루살렘에는 예수 믿는 사람은 씨종이 하나도 없도록 전멸을 할라고 하는 그런 운동이 일어난 때입니다.

그러니까, 사도들이 자기네들이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으면서 예루살렘에서 예수님 때문에 어려움당하는 그 핍박당하는 일을 인해서 그들이 그 어려움을 견디지 못해서 그 어려움을 피해서 예루살렘을 떠나기 쉬울 것이기 때문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아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내가 너거한데 일찍부터 많은 교훈을 했는데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예수님이 말씀하셨고, 또 아버지가 이 약속을 했다. 무슨 약속을 했느냐?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아버지가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내가 너거들에게 여러번 말했고, 또 아버지가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무엇이며 아버지가 약속하신 것은 무엇인가? 그다음에 있습니다.

5절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어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지마는서도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몇 날이 못 돼서 성령 세례를 받을 터이니까 성령 세례를 받기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성령 세례는 오순절에, 사도행전 2장에 보면은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셨습니다. 그 성령 강림은 신약 교회를 세우기 위한 성령 강림이 오셨는데 이 성령 강림은 처음입니다.

구약 시대에도 성령님의 역사가 있었지마는서도 구약 시대에 성령님의 역사는 사람들 마음 안에 항상 상주하셔 가지고 항상 계시면서 그 사람을 붙들고 역사하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안했고, 성령님의 감화가 때를 따라서 가끔 오셔 가지고서 그 사람들을 붙들고 성령의 역사를 하시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또 성령이 또 떠납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때는 성령 역사가 한 번 오면 떠나지 안하고 계시도록 그렇게 하시지 안했고 중복적으로 왔다 갔다 왔다 갔다 이렇게 성령 역사가 있었고, 또 성령 역사가 그들 안에서 역사하지 안하고 외부에서 그들을 붙들고, 역사, 붙들고 역사하셨다가 또 떠났다가 역사하셨다가, 그러니까 구약 교회에는 성령이 외부에서 역사하셨고, 중복적으로 역사하셨고, 신약 교회에는 성령 역사가 단번에 한 번 오셔 가지고는 영원히 떠나지 안하고 계시도록 단번에 오셔서 항상 상주해 계시고, 또 하나님의 백성들 안에서 역사했습니다. 그러면, 구약에는 외부 역사했고 신약에는 내부 역사했고, 구약에는 중복적으로 역사했고 신약은 단번적으로 역사를 하셨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이 이 성령이 임하시면 성령으로 세례를 너희들이 받는다 하는 그 말씀입니다.

그러면, 오순절에 오신 성령은 신약 교회를 세우시는 성령님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대속하신 것은 구약 교회 신약 교회를 다 망라해서 대속했고 오순절 성령님은 구약 시대에는 중복적으로 외부적으로 역사하시다가 이제 예수님이 대속을 완전히 이루셨기 때문에 신약 교회는 단번에 오셔 가지고 항상 상주해 계시면서 내주해 가지고 역사하시는 역사를 하셨습니다.

그러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그러면 이 세례라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죽고 사는 것을 세례라 그렇게 말합니다. 성령으로 죽고 산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물을 머리다가 찍어 흩어 가지고서 세례 주는 것은 구약에 짐승의 피로 가지고서 속량할 때에 그 피를 뿌려 가지고 속죄를 한 거게다 근거 두고서 물을 뿌려서 이렇게 이 세례를 준다 하는 것으로서 그래 세례 주고, 세례를 주지 안하고 침례 주는 교파가 있습니다. 침례교도 침례 주고, 성결교도 침례 주고 이렇게 침례를 주는 교파가 많은데 거게는 침례라 하는 것은 교회마다 이 강단 밑에 사람 그저 한 길 넘어 될 만한 그만한, 한 길 될 만한 고런 물통을 해 놨습니다. 침례를 베푸는 그 교회마다 예배당 강단 밑에다가 그렇게 물이 약 한 길 되는 그 물을 그저 평수로 말하면 한 평 정도, 한 반 평 정도 하는 데도 있고 한 평 정도 하는 데도 있고 이래 해 놓고서 거게서 침례를 줍니다. 침례를 줄 때는 그 사람에게 요새는 뭐 물옷을 입혀서, 입혀 가지고서 딱 거머쥐고 그 세례를 주게 되면은 물속에 푹 잠급니다. 잠그면 이제 그 물 속에 보이지 안하도록 푹 잠가 가지고서 기한이 일 분이면 일 분, 한 삼십 초면 삼십 초 요렇게 물속에 들어가 있다가 그 다음에 건져내 나옵니다. 건져 나옵니다. 고것은 완전히 이 세상에서 죽어서 매장하는 식으로서 그렇게 합니다. 그러면, 그때는 숨을 쉴 수가 없으니까 숨 못 쉬고 그때는 완전히 죽은 사람이라. 그러면, 죽은 식을 하는 것이라. 죽는 식을 하고, 또 죽었다가 살아난 식을 하는 것이 그것이 침례식입니다.

침례식인데, 뭐 이 세례식이나 침례식이나 같기는 같지마는서도 내가 지금 만일 시작한다고 하면은 내가 깨달음으로서는 침례식을 하는 것이 더 좋겠다 그렇게 저는 보고 있습니다.

침례식은 죽고 사는 것을 그것을 거게다가 중점을 두고서 침례식으로 하는 것이고 세례식은 예수님의 피로 우리죄를 씻어서 깨끗게 한다. 씻는다는 거기 그 성구에다가 근거를 해 가지고서 물을 뿌려서 이렇게 세례를 줍니다.

주는데, 세례 주는 사람들은 침례 주는 것이 틀렸다 하고 침례하는 사람들은 세례 받는 것이 틀렸다 하고 이렇게 말하는데 둘 다 성경에 근거되기 때문에 틀리지는 안했습니다. 다 성경에 근거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옳기는 옳지마는서도 더 실감 있는 것이 침례식이 더 실감 있다 그말이오.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히브리 6장에,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이 터 위에 세워라 하는데 터가 몇 개입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소? 녜, 여섯 개 맞습니다. 터가 여섯 개입니다. 여섯 개 가운데에 「세레와」 세례가 거게 하나 들었습니다. 세례가 우리 터입니다. 신앙의 행위 구원의 터가 세례요.

그러면, 성령으로 세례 받는다 그말은, 세례라 말은 죽고 산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성령이 오시면 성령이 오셔 가지고 우리에게 세례를 준다. 성령이 오시면은 무슨 일을 하느냐? 성령이 오시면은 죽이는 일 하고 살리는 일 하고 두 가지 일을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평생 죽을 때까지 죽이는 일과 살아나는 일 이 두 가지를 평생 우리가 힘써야 됩니다.

그러면, 얼마나 힘써야 되느냐?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어데 나아가라 했습니까, 여기 양성원 학생들? 어데 나아가라 했지요? 온전함에 나아가라 했어요. 온전한 데 나아가라. 그러면 죽고 사는 것도 온전히 이루어져야 된다 말이오. 완전히 죽고 완전히 살아야 돼요.

죽기를, 송장은 죽어서 죽은 송장을 불에 태운다고 그뭐 송장이 뻐들거릴 것 있습니까 다시 뭐 움직이겠습니까? 송장은 다시는 그가 활동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다시 활동하지 못하도록 해야 될 자 있다 그말이오. 그게 뭐입니까, 그게 무엇입니까, 그것이? 어떤 것을 죽여야 됩니까? 로마인서 6장에 어떤 사람을 죽이라 했습니까? 옛사람을 죽이라 했다 말이오. 옛사람을 완전히 죽여서 송장처럼 다시는 기능작용이 없도록 죽여야 됩니다.

우리에게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그 옛사람은 완전히 죽여서 다시 옛사람은 급할 때나 뭐 비상시에나 또 좋을 때나 어짜든지 악령, 악성, 악습. 자기 중심의 사람은 잠시라도 용납지 안할 수 있는 여게까지 우리는 나아가야 됩니다.

그러면, 악령은 자기 중심의 영이 악령이요, 악성은 자기 중심의 인간성이 악성이요, 악습은 자기 중심으로 한 행동의 버르장이라 말이요, 버르장이. 그 습관 그런 것이 하나도 용납하지 않고 완전히 죽은 자와같이 나타나야 되고, 또 살리는 것이 뭐이냐? 하나님을 향하여서 예수님의 부활에 연합해 가지고서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을 향해서 사는 것, 예수님으로 인하여 사는 이 생활이 완전히 되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례입니다.

그러면, 성령이 오시면은 성령이 뭐할라고 오셔요? 성령이 뭐할라고 오신다 했습니까, 여게? 성령으로? 뭐할라고? 다 말해 봐요. 「몇 날이 못 되어」 뭐라 했습니까? 「몇 날이 못 되어」 들어서 기억해야 되지 여기 기억 안 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지금 하나님의 탄식을 시키고 하나님의 축복과 권능을 받지 못하고 비참한 자들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실행하면 그렇지 안할 것인데. 다 잊어 버리고 실행 안 해. 기억만 하고 있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기억하고 실행해야 됩니다.

그러면, 성령이 오시면 뭐하러 오십니까? 다 같이 합시다. 세례 주러! 세례를 베풀러! 성령이 오신 것은! 세례를 베풀려고 오셨다! 우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 죽는 날까지! 성령 세례를 받아야 된다! 성령 세례를! 완전히 받기까지! 죽을 때까지! 힘을 써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구원 운동인 것입니다.

성령 세례라는 것이 이것입니다.

성령으로 옛사람은 완전히 죽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새사람으로 완전히 살고 이래서 예수님의 죽으심에 연합하여 옛사람은 죽고 예수님의 부활하심에 연합하여 새사람으로 살아 하나님을 향하여 영생하게 함이라고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 또 이제 그저 이러니까 이 생명의 도를 말할라 해도 시간이 없어 안 돼.

그러니까, 좀 시간 많이 잡아야 될 터인데 뭐 새벽 기도 시간 다 됐지, 지금 몇 시간이요? 다섯시 십분인데, 우리 구원은 건설구원 기본구원 두 구원이 있습니다. 기본구원 건설구원 둘 있는데 기본구원은 힘 안 써도 되고 힘쓸 필요가 없고 기본구원은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에 힘 하나도 쓸 필요가 없고, 건설구원은 힘을 쓰는데 얼마나 써야 되느냐?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해서 전부 다해서 해야 됩니다.

힘을 쓰기를.

그러면, 이렇게 힘을 써서 꼭 건설구원은 제가 하니까 되고 안 하니까 안 되고 제가 해서 된 것으로 자기가 그렇게 여겨질 만치 해야 됩니다. 건설구원은 자기가 자기 힘으로 해서 된 것같이 여겨질 만침 자기가 하니까 되고 안 하면 안 되고 꼭 그래 됩니다. 하니까 되고 안 하면 안 되니까 제힘으로 하는 것같이 그렇게 여겨지도록 그렇게 됩니다.

그러나 이 건설구원은 자기가 생각할 때에는 자기가 하니까 되고 안 하니까 안 되고 꼭 자기가 한 것같이 이렇게 여겨질 만치 자기가 힘을 써 가지고서 되는 것인데 이 건설구원은 실상은 누가 이룹니까? 실상은 누가 이루요? 실상은 누가 이루요? 자기가 한 것 있습니까? 자기가 한 거는 불타 버려. 다 주님이 하셔.

자기가 한 것같이 하는 그것은 주님이 해 주심을 받을 수 있는 자기 준비요, 받을 수 있는 그 간절이요, 받을 수 있는 노력이라 그말입니다.

이런데, 오늘 아침에 여기 하나 좀 가르칠 것인데 요 시간이 다 돼서 그만 안 됐어. 인제 좀 듣고 배워서 잊어 버리지 안하고, 요 복음이 오늘 이십 세기에 있는 사람을 구원하는 복음이라는 요걸 알아야 될 터인데 이 복음이나 저 복음이나 같다고 뭐, 여게서 배우나 딴 데 배우나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오늘에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알지를 못한다 그말이오.

마음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하고 그 목숨 다한다 하니까, 그러면 다하면 어찌 됩니까? 막 죽을 지경으로 합니까? 죽을 힘도 없이 막 이래 죽을 힘을 다 들여서 이렇게 아주, 말하자면 자기 살 여유가 없을 만치 그렇게 극단으로 죽을 힘을 다 써서 있는 힘을 다 써 가지고 하는 것을 가리켜서 여게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라고 이렇게 했습니까, 죽을 힘도 없이 죽을 힘까지 뭐 힘 있는 대로 다해서 하라고 하는 말씀입니까, 힘은 남겨 두고, 힘은 남겨 두고 여유 있게 남겨 두고 일을 하는데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딴 데 쓰지 말고 여게다가 다 쓰라는 말입니까, 없기까지 다하라 말입니까 딴 데 쓰지 말고 여게만 쓰라 말입니까? 그러면 힘을 있는 것 전부 남김 없이 다 쓰라는 말입니까? 무엇인지 여러분들이 좀 생각해 가지고 내일 아침에 내가 혹 나오면은 물을 터이니까, 또 건강 주시면 나오고 안 주시면 못 나옵니다.

주시면 내가 나와 가지고 고걸 묻겠습니다. 여러분들이 기도해 가지고서 이제 내일 아침에는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손들라 할 터이니까 손 들어 가지고서, 연구를 해도 모르는 사람은 좋고 연구해 보지 안한 사람은 제가 서부교회 그래서 삐꿔서 달아나든지 말든지 내일 아침에 세워 놓을 거라. 연구 안 한 사람은 세워 놓을 거라. 그래 가지고 가든지 말든지 이뭐 교인이 수천 명이 모이면 뭐합니까? 하나도 예수 믿어 바로 믿어야 되지. 앞으로 환난오면 이거 다 쭉정이 다 될 터인데.

까짓 거 요새 사람 모이는 거는 좋은데 사람이 모이는 게 문제지마는서도 모이면 뭐할 겁니까? 알곡이 돼야 되지, 쭉정이 그까짓 것는 다 탈 것 아닙니까.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저 예수 믿는다는 형상, 목사되고 장로되고 조사되고 권사되고 뭐 집사되고 권찰되고 반사되고 하면 다 되는 줄 알아도 아니오. 그거 가지고 안 됩니다.

배워요. 여러분들이 안 배우면 안 돼. 여러분들이 여기 배우는 것은 나가면은 반대 많이 받아요. 여러분들이 아는 대로 주석을 빼 가지고 지금 봐. 그래 이걸 듣고 이 해석이 옳은가 그 해석이 옳은가 그것도 또 좀 상고도 해요.

우리는 성령 세례 받아야 됩니다. 성령 세례 안 받으면 헛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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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8 전도에 대해서/ 요한복음 3장 16절/ 860716수야 선지자 2015.12.17
1427 전도에 대해서/ 요한복음 3장 16절-18절/ 860713주전 선지자 2015.12.17
1426 전도에 대해서/ 요한복음 3장 16절/ 860713주후 선지자 2015.12.17
1425 전도에 대해서/ 요한복음 3장 16절-21절/ 860709수야 선지자 2015.12.17
1424 전도의 미련한 것/ 고린도전서 1장 18절-21절/ 851129금야 선지자 2015.12.17
1423 전도자의 자세/ 히브리서 12장 2절-3절/ 841225화새 선지자 2015.12.17
1422 전도지/ 에스겔 2장 3절 10절/ 841014주새 선지자 2015.12.17
1421 전도지 나누기/ 요한일서 3장 16절/ 841225성탄축하 선지자 2015.12.17
1420 전도지 사용에 대해서/ 시편 91장 14절-16절/ 841009화새 선지자 2015.12.17
1419 전도지-회개의 눈물을/ 사도행전 4장 12절/ 841008월새 선지자 2015.12.17
1418 전신갑주/ 유다서 1장 14절-15절/ 811024토새 선지자 2015.12.17
1417 전쟁발발의 징조와 우리할 일-회개/ 이사야 1장 18절-20절/ 830607화새 선지자 2015.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