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7 17:36
전도지 사용에 대해서
1984. 10. 9. 화새
본문: 시편 91편 14절∼16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
15절에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나를 사랑하고 나를 아는 저가 내게 간구할 때에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나를 사랑하고 나를 아는 그자를 환난 때에 내가 그자와 함께하여 그자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나를 사랑하고 나를 아는 그 자를 내가 환난을 통해서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는 알파와 오메가로서 나를 사랑하고 나를 아는 자에게 끝없는 만족의 구원을 주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 세상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하나님이 구원하신다는 것을 보이고 하나님을 아는 자를 하나님이 구원하신다는 것을 보이고. 영원무궁한 지옥은 하나님을 미워하고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께 대해서 전연히 아는 체 하지 않는, 그 사람들을 영원한 증거로 지옥을 하나님께서 이루시고. 하늘나라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했으며 어떻게 하나님을 알았는가 하는 그 양을 그 질을 그것을 영원히 나타내는 것이 하늘나라요 그와 같이 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대우해서 하나님이 그가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알았은즉 하나님이 이렇게 저를 대우하신다 하는 것을 보이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저가 나를 사랑한즉 건지리라' 우리의 모든 생애를 둘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우리가 원치 아니하는 모든 불행이라면, 또 해가 되는 일이라면.
멸망하는 일이라면, 그거 다 같은 말이고, 또 높이리라는 것은 살리는 거, 귀하게 되는 거, 점점 강하게 되는 거, 기쁘고 평안하고 행복되는 그런 것을 다 건설에 속해서 높이는 것으로 한 마디로 발표했고, 또 모든 불행을 제거하는 것을 가리켜서 한 마디로 건진다고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모든 것의 치료받는 것과 모든 것의 강건함을 받는 것, 모든 불행을 다 우리에게서 제해 주심을 받는 것, 모든 행복을 우리에게 갖추어 주시는 것을 받는 것 둘 외에 없습니다. 이 둘에 다 포함됐는데 이 둘은 명문하시기를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이 외에 다른 방편이 없습니다.
그러면, 주님을, 주님의 사랑을 내가 아는 것이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또 주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또 내가 주님의 사랑으로 사는 것이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또 주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 그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내가 아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주님의 사랑을 내가 그 사랑으로 사는 것이 그것이 주님의 사랑을 내가 받아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주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내가 알고. 받고. 그 사랑으로 살고 그 사랑을 모든 것들에게 다 나타내는 것, 모든 것이 다 볼 수 있도록 그 사랑이 나타내는 것. 그 사랑을 나타내는 것 이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주님 한 분만 가진 사랑이요 다른 것들은 가질 수가 없습니다. 왜? 이 사랑은 끝이 나면, 사랑이 끝나면 반드시 큰 위험과 고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랑은 끝이 없어야 사랑이 되고 또 사랑은 어떤 것에든지 제한이 없어야 사랑이 되고, 또 사랑은 지혜에나 능력에나 역사에나 끝이 없어야 사랑이 되지 끝이 있으면 끝이 있는 그때는 정반대로 이루어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리시기 위해서 땅위에 인간들의 사랑을 여러가지를 줬습니다. 뭐 동류의 사랑도 있고 혈통 사랑도 있고 정욕 사랑도 있고 알기 쉽게 표준적으로 말하면 이런 서너 가지 사랑이라 할 수 있고 또 분류적으로 말하면 그다음에도 많은 것들이 있지마는 뭣이든지 그 사랑이 끝날 때에 그 사랑이 끝남을 가리켜서 불행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세상의 사람들이 다 술퍼하고 고통하고 또 견디기 어려워하는 그 모든 고통은 다 사랑이 끝나는 때입니다. 끝나는 사랑은 하나의 미혹을 주는 사랑이지 그것은 사랑이 되지를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랑은 전지자라야 가질 수 있고 전능자라야 가질 수 있고 영원불변자라야 가질 수 있고 영원히 희생자라야 가질 수 있으니 이 사랑은 하나님만이 가질 수 있는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만한 사랑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사랑은 여기에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서 우리를 대속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사랑은 우리에게 없으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당신의 사랑을 내가 받는 것이 당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당신의 사랑을 받는 것이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니 첫째가 당신의 사랑을 아는 것이 당신의 사랑을 받는 것이요, 또 당신의 사랑을 내가 잘 받는 것이 당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사랑을 내가 받지 안하고, 다른 것들의 사랑은 내가 받아도 당신의 사랑은 내가 받지를 않는, 그것이 사람들인데. 모든 사랑보다 당신의 사랑을 내가 받는 것, 쉴새없이 당신의 사랑을 받는 것이 당신을 사랑을 하는 것이요 또 당신의 사랑을 받아 가지고서 그 사랑으로 내가 사는 것이, 그 사랑으로 사는 것이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요, 내가 그 사랑을 모든 것들에게 나타내는 것이 그것이 당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나 우리가 모든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순교하는 것은 당신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저 당신이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다. 이 사랑은 이렇다 하는 것으로써 이 사랑을 세상에게 보여주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당신의 사랑은 뭐인가? 당신의 사랑은 우리를 사죄 주셨고 칭의 주셨고 화친의 새생명을 주셨으니 이 사랑을 내가 연구해서 아는 것이 사랑을 나에게 주셨으니 내가 이 사랑을 받는 것. 내가 이 사랑으로 사는 것, 내가 이 사랑을 나타내는 것 이것이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니, 이것으로만, 모든 택자들과 모든 불택자들과 모든 만물들을 이것으로만 원치 안하는 그 모든 거는 다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 법칙을 내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 돕는 영감과 진리의 은혜를 입지 못하는 사람은 이 사랑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영감이 뭣 때문에 왔느냐? 영감은 주님의 피 때문에 왔습니다.
주님의 피를 증거하기 위해서 영감은 왔습니다. 진리가 뭣 때문에 왔는가? 주님의 피를 증거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주님의 피를 우리에게 똑똑히 알리기 위해서, 주님의 이 피의 사랑을 우리로 하여금 주저하지 말고, 주저하지 말고 참 복종으로 받도록 하기 위해서, 또 이 사랑을 받아 이 사랑으로 살도록 하기 위해서, 또 이 사랑을 모든 어두운 세상에게 나타내도록 하기 위해서 진리와 성령은 왔으니, 진리와 성령은 주님의 되의 공로를 언해서 왔지 피의 공로 아니면 우리에게 올 수 없기 때문에 주님이 제한적 대속을 한 그 대속을 받은 자에게만 이 피의 능력이 성령을 보내시고 진리를 우리에게 보내는 것이지, 이것을 보냄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주님의 사랑을 알지도. 받지도, 누리지도, 또 나타내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세상에 주님의 재림 때까지의 땅위에 있는 모든 불행은, 모든 불행은 그것은 다만 하나님께서 주님을 사랑하는 이것으로만 구출되도록 작정하셨기 때문에 이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서 모든 세상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불행은 당신을 사랑하느냐 안 사랑하느냐 그것을 사랑함으로만 거기서 구출되고 사랑하는 것 외에 딴것으로써는 구출될 수 없는 것을 보이는 것이 이 세상인 것입니다.
'저가 나를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주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우리는 과거에 몰랐지마는 주님의 피공로를 인해서 우리에게 나타내 주신 하나님의 지식이 있고 또 지식에 여기에 더욱 더 보충해서 충만케 하려는 영감이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먼저 문서로 해 주신 이 문서로 가지고 알고 또 문서로 안 거기에 깊이 영감이 우리에게 알려 줘서 압니다. 하나님은 자존자이신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존자시요. 하나님은 전지자시요. 전능자시요, 완전자시요, 하나님은 불변자시요, 한 번 목적 정했으면 그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시는 우리의 구원을 목적하신 하나님이시요, 이를 위해서 모든 걸 예정하신 분이요 창조하신 분이니, 모든 존재 가운데에 이분이 창조하지 안한 것이 하나도 없고. 모든 나타내는 그 순서에 이분이 예정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고 모든 존재가 이분이 또 보존하지 안한 것이 하나도 없고. 주권적을 가지고서 모든 것을 지극히 큰 것 작은 것 모든 것을 홀로 주권의 능력으로 다 섭리하시고 그 주권의 의지의 그 모든 예정대로 다 섭리하십니다. 신실해서 그 예정 가운데는 하나님이 친히 사람 되셔야 되는 어려운 예정이 있었는데 그 예정도 조금도 지체하지 안하고 그대로 이루었습니다. 제일 어려운 예정이 도성인신 하신 그 예정이 제일 어려운데, 도성인신 하신 그 예정을 이루었으니 그다음에 모든 것을 이룬다는 그것은 문제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우리가 지식하는 것, 어떤 분이신 것을 우리가 지식하고 어떤 분이신 것을 아는 대로의 우리 행동이 되고, 아는 행동. 그분이 어떤 분인 것을 아는 행동, 그분이. 행동에 그 분을 어떤 분인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이 어떤 분인 것을 우리가 아는 행동, 또 아는 사람이 된 것. 아는 사람이 된 것. 왜, 기쁘고 즐거울 터인데 뫼 창백해지는가? 오히려 평안하고 즐거워서 참 말할 수 없는 궁지에 들어 있는 그 발견될 기쁨을 인해서 기뻐하는 거와 같은 그런 기쁨을 가질 터인데 왜 우리는 그런 사람 되지 못하는가? 당신을 지식으로 알고, 당신을 행위로 알고, 당신을 아는 행위, 당신을 아는 행위, 당신을 아는 사람, 이는 제가 조작으로 만들지 못합니다. 조작으로 만들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정도에 따라서 현실을 만들어 주십니다. 당신은 어떤 분이신 것을 우리가 보증하는 것, 당신은 어떤 분이라. 어떤 분이신 것을 자기가 아는 대로, 아는 대로 아는, 아는 행동이 되어지고 아는 사람이 되어지고 아는. 아는 것을 모든 존재들에게 증거하는. 보증하는 보증이 되어지고 이것이 당신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만 높아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무엇인지? 이 세상에서 말세에 제일 해독이 많은 것이 사랑이요 말세에 우리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바로 알고, 이 사랑을 우리가 참 단 마음으로 이 사랑을 받고 또 이 사랑으로 내가 살고 아무리 남편이 아내를 사랑한다 해도 남편의 사랑을 모르면 그는 결혼이 될 수 없고 그는 결혼 했으면 이혼 될 것입니다. 남편의 사랑을 받지 안하면 그는 이혼 될 것입니다. 남편의 사랑에 감격해서 그 사랑으로 살지 안 하면 또 이혼 될 것입니다. 그 사랑을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내지 안하면 남편에 대한 대우는 되지 안할 것입니다. 무슨 법적 이혼이나 무슨 생활적 이혼은 안될지라도 그는 벌써 이혼이 된 것입니다. 사람은 결혼이라면 남녀 이성 성교 그것만이 결혼이라는 그거는 짐승적 결혼이오. 그거는 타락 후에 된 것입니다. 타락 전에는 그런 결혼이 아닙니다. 아담과 해와는 타락전의 결혼 그거는 참 인생 결혼이요 타락 후에는, 그는 수성의 짐승의 결혼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당신을 사랑하는 것,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당신의 사랑을 내가 아는 것이 당신의 사랑을 가지고서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요. 당신의 사랑을 받는 것이요, 당신의 사랑으로 사는 것이요 당신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요, '저는 하나님에게 저 사랑을 받았다. 하나님이 이렇게 사랑한다. 그 사랑을 받아서 저 사람은 그 사랑 안에서 산다.' 하는 것을 세상에게 보여 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어떤 분이신 것을 우리가 아는 것, 그 행동으로 우리가 사는 것, 당신을 아는 행동, 전능자이니 전능자가 나를 사랑하는 것은 내가 입으로 암만 말해야 소용없습니다. 그러기에, 고린도후서 5장 10절인가 보면 그리스도 심판대 앞에 나타날터인데 각 사람이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서 갚는다 이랬습니다. 거기에는 몸을 나타내, 마음이나 말이나 그런 것을 말하지 안했습니다. 몸으로, 그분이 어떤 분이신 것을 아는 것과 어떤 분이신 것을 앎으로 인해서 내 행동이 이루어지는 것, 그분을 앎으로 인해서 내가 그 사람이 되는 것. 그분이 전능자인 것을 내가 알고, 전능자인 것을 알고 전능자의 그 보호를 입어서 그 생활을 하다 보니까 전능자를 모신 사람이 돼 버리고 맙니다.
'나를 안즉' 끝까지 이 보증을 하는 것이 그것이 아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연구하는 일을 우리가 해야 되겠고. 주님의 사랑과 주님의 어떤 분이신 것을, 주님의 사랑과 그 모든 자체 역사에 대해서 연구를 우리가 힘써 해야 될 것. 또 알 뿐만 아니라 우리가 주시는 그 현실에서 부지런히 실습을 할 것, 부지런히 주시는 현실에서 실습을 할 것. 또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현실에서 우리는 실습한 것은 연습한 것이요 그다음에는 우리가 연단을 받을 것. 이 두 가지에 대해서 아는지 믿는지 연단을 받을 것. 연단을 받아서 어떤 데서 라도 당신이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내가 받아서 당신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어떤 현실을 만나도 이질 연단 저런 연단, 모든, 연단은, 연단은 아직까지 미완성의 단계입니다. 연단은 이런 현실 저런 현실에서 내가 당신을 사랑함이 어떠한지, 당신을 앎이 어떠한지, 이것을 연단 받아서 어디서든지 변하지 안한 연성된 사랑 연성된 하나님을 아는 지식 이것을 가지고 우리가 살아야 할 것입니다.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가 환난 때에 나에게 간구하면 응답하리라' 이 모든 '저가'라는 말을,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와 함께하여 저를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리라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이렇게 저라고 하는 것은 다 위의 것을 들어 말합니다. 나를 사랑하고 나를 아는 저에게,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아는 그자에게 한해서만 그렇지 그 밖의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고로, 이것은 수단 가지고 안 됩니다. 이것은 욕심 가지고 안 됩니다.
이것은 배짱 가지고 안 됩니다. 여기에는 모든 욕심이나 수단이나 방법이나 그 모든 인간들의 요소, 인간들의 그 모든 요소는 이 은혜의 적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정반대의 적이 되어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게 다 스스로 속는 것이지 하나님이 여기에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습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것만이 구출되고, 또 하나님을 아는 그 앎을 통해서만 건설됩니다. 앎을 통하는 외에는 건설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그 외에는 파괴를 방어할, 파괴를 수축할 길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연습은 자꾸 연습이 돼야 되겠는데. 하나님께서 아무래도, 우리가 벌써 삼십여 년 동안 아무 어려움 없이 우리에게 충격 없이 나왔습니다.
요한계시록 8장에 보면 나팔 부는 것은 다 경고를 표시해서 상징적으로 말했는데, 나팔 부는 거기에는 고요한 때가 있다고 거기에 말했습니다. 그 나팔 부는 것과 또 고요한 것은 다 꼭 같은 뜻입니다. 아무리 경고를 시키지마는 준비할 기회가 없으면 안 됩니다.
준비할 기회를 주고 난 다음에는 반드시 그다음에 시험하는 거는 무슨 시험 할 것인가? 당신을 우리가 사랑하는지 안 사랑하는지 그 시험일 것이오. 당신을 아는지 안 아는지 그 시험일 것입니다. 아는 사람은 기쁘게 지낼 수 있고 모르는 사람은 그는 사지가 녹을 것입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랑을 인해서 모든 파괴가 다 수축되고 다 수리될 것이고, 당신을 사랑하는 고 외에는 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해서 모든 치료하시는 것은 당신을 사랑하는 고걸 통해서만 치료되도록 그렇게 고 현실을 줘 가지고 당신을 사랑하는 그것으로 치료되지 사랑치 않고 다른 길로는 치료되는 길이 없도록 당신이 하시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기도는 하지마는 기도는 하지마는 자유 못 하는 어딘가 매인 것은 그만큼 불행입니다. 신앙에 자유 못 하는 것은 천하를 얻어도 자유 못 하면 그만치는 종입니다. 자유 못 하는 것은 종입니다.
전도지 사용에 대해서 주의 말 드립니다.
한 사람에게 한 장씩만 주지 한 사람에게 두 장 이상 줘서는 안 됩니다. 말을 들으니까 어떤 중에게 그걸 주니까 중이 나 좀 많이 달라고서. 좀 더 많이 달라고서. 이렇게. 그러면, 중들은, 우리는 돈 들여서 자꾸 힘 들여서 돈 들이고 수고 들여서 박아 놓은 거 그 사람은 달라 하면 많이 주면 그 사람은 우리는 자꾸 박아내고 그 사람은 자꾸 많이 들여서 뭐 휴지로 쓰든지 그래 안 하면 불에 태워서 연료로 삼든지 하면은 우리가 당하겠습니까?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라 말이오. 기도하지 않고 조심 없이 전하기 때문에 그런 마귀 역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그라면 요번에 사십만 장 박으면서 팔십만 원 들여서 사십만 장 박았는데 팔십만 원 들여가지고 사십만 장 박은 거 그거 '내 그거 다 주십시오.' 그라면 다 안아 줄랍니까? 다 주십시오 하면 다 줄랍니까, 주기를? 왜 그런 귀신의 꼬임에 빠지느냐 그 말이오.
한 장 주고서 한 장 더 달라 하면은 '예, 이것은 한 장씩밖에는 안 주기로 돼 가지고 있습니다. 한 장만 하면 얼마든지 읽을 수 있습니다. 읽어 보십시오.' '다른 사람에게 전하게' '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은 나는 이거 내가 다른 사람에게 전할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전하라고 남에게 주는 것 아닙니다. 이 가져온 것은, 내가 가진 것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전하려고 가지고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전하라고 전달할 그런 것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아닙니다.' 그라면 다 될 것 아닙니까? 그러고, 많이 가는데 앞의 사람이 그 사람에게 전했으면 내가 그 사람에게 전하는 걸 못 봤으면 내가 전하지마는 앞의 사람이 가면서 그 전도지를 전하는데 나도 또 주고 나도 또 주고 자꾸 그렇게 할 겁니까? 내가 그 사람에게 전도지를 주는 것을 봤으면 나는 더 안해야 되고 그 사람이 전도를 받아 가지고 읽는 걸 봤으면 내가 주는 걸 못 봤을지라도 전하지를 안 해야 되고, 그 전도지가 그 사람에게 가 가지고서 읽을 수 있으면 되는 것이지 그 외에, 뭐 내가 자꾸 이래 주는 것이 무슨 의무입니까? 상대방이 받아 가지고서 전도지를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받아 가지고 제가 보지 안하고 내버려도 나는 그 사람에게는 또 보라고 전해 줄 수가 있는 그런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고, 앞에 사람이 전하면 뒤의 사람은 전하지 안할 것.
또 인사하는 전도지는 인사니까 인사처럼. 인사처럼 하라 그 말입니다. 이제는 뭐 만나서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말하는 그걸 우리가 끊어 버립시다.
그거 끊으면 뭐 다른 사람들이 미쳤다고 할는지도 모릅니다. 미쳐도 주를 위해서 미치면 좋습니다. 왜? 언제 안녕을 말할 게 아니라 내가 주기는 환난을 주면서 전하면서 말하는데 안녕이 뭐입니까? 안녕 하는 것보다도 내가 전하면서. 내가 전하면서, 여기에 말하기를 '밤낮으로 회개의 눈물을 강처럼 흘릴지어다.' 이거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와 같이 해 놓은 것인데, 이 말씀을 전하면서 나는 눈물이 안 나오면 참. 내가 전하면서 스스로 자책을 받아야 될 것입니다. '나는 회개의 눈물이 없다.' 지금 눈물이 없는 때요. 행동 중에는 이런 행동 저런 행동 너무 많이 해 탈이오. 너무 신자들이 뭐 열심히 설교도 않고 행동도 않습니다.
너무 행동 많소. 행동 많은데 그것을 똑똑히 분석하면 전부 인간 저거끼리 하는 행동이지 하나님께 관련된 하나님께 대한 행동은 없습니다. 이것이 멸망할 징조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지금 전도지를 전하면서 회개의 아픈 마음이나 그렇게 심장에 우러나는 그런 눈물이 없을 만큼 그렇게 회개하는 마음이 없이 전하니 전하기는 전해야 될 터인데 이거 가증스럽습니다. 저는 안 그러며 전하는 게 가증스러운 거 아닙니까? 이러니까, 그때 가증스러움을 겸해서 회개를 하면서, 회개한 마음 가지고서 거기에 보니까 너와 네 후배나 네 자손이 어떻게 멸망할 그것을 보는 눈을 쉬지 말라고 했는데, 그 눈동자를 쉬지 말라고 했는데, 그래 나는 그러니까. 그걸 전하니까 나도 봐야 될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진노하시면 우리가 보지 못했지마는 과거에 뭐 월남이나 캄보디아에서 그때 사람 죽인 그것을, 그것을 다 전해 가지고 와서 전해 주면 좋을 터인데 그런 거는 하나도 안 하고 '세계 뭐 선교회 세계 선교회' 제가 돌아다니며 할 말 안 하고. 하나님의 진노만 쌓습니다. 이름만, 명예 영광만 취해 가지고서, 허영과 허욕에서 명예 영광만 취해 가지고 전부 사다리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분을 풀지 않겠습니까? 분을 풉니다. 아는 사람은 사람도 분개합니다. 참혹하게 망했습니다.
과거에 이북에서 이것 말고도 과거 만주에서 그때 사회주의가 돌아다니면서 행마적이라고도 하고 사회주의라고도 하는데 그 사회주의가 돌아다니면서 일시 일시 지방에 가 가지고서 점령을 해 가지고 할 때에 그때 내가 말 들으니까 ○○○, ○전도사, ○○○씨의 아버지도 그때 들었는데, 집사인데, 들었는데, 그분들이 그때 사형시킬 때에 수백 명을 잡아다가 전부 가마니 속에다 넣어 가지고서, 가마니 속에 넣어 가지고 가마니속에 집어넣지마는 발악하면 죽인다 하니까, 그 가마니 속에 들어간 자가 살면 얼마나 살겠습니까? 거기서 발악도 못 합니다. 큰 소리도 못 해. 인간은 그렇게 죽기를 두려워하는 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다 넣어 놓고 쭈루루루 가마니를 집어 가지고서 딱 이렇게 길을 만들어 놓고는 무거운 짐을 실은 소 구루마를 이렇게 끌 때 막 이래 끌고 가니까, 여러 차례 끌고 가니까 툭툭 거리며 터져 가지고서 뭐 피가 굉장히 흘렀답니다. 그 조사님도 그 속에 들기는 들었는데 어째 나중에, 들었으니까 자기 시체 찾을라고, 시체 찾을라고 보니까 죽지 안하고 목숨이 붙어있었어.
그래 살아 나온 사람이오.
우리도 그렇게 할는지 모른다 그 말이오. 우리가 말로 들은 이런 온갖 고문이나 고행이나 이런 거. 뭐 일본 신은, 신사 참배 때문에 그런 박해는 단군 신사 가지고는 안 될 줄 압니까? 우리가 앞으로 그런 환난 만날 거. 그렇게 우리가 당할 거, 그 때에 내 몸이 소 구루마 밑에 찢어질 것, 내가 거꾸로 손가락 둘 달아 가지고 다는 그때의 그 고통을 보는 눈을 우리가 쉬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우리가 오늘 살아야 될 것입니다. 그걸 보면서 오늘 살아. 미래를 내다 그걸 보면서 사는 사람은 그때 웃음으로 즐거움으로 하나님의 보호를 입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다 절단날 것입니다.
그거는 다른 길은 없어. 주님을 사랑함으로만 그걸 면할 수 있어. 하나님이 주시기는 주십니다. 우리는 호호양양한 참 밀림 같은 이 세상에서 어느 길로 갈지 모릅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이 어느 길로 갈지 알지 못해. 그러나 우리에게 아주 돕는 귀한 것이 네 가지가 있는 것을 지난 주일에 증거를 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고, 전하면서 내가 과연 이거 전할 수 있는 사람인가?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뭐 몇 해가 걸려서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까? 즉시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즉시 전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기가 변화가 돼야지. 내가 그것을 받으면, 내가 이제까지 몰랐어도 받으면 즉시 내가 그 사람으로 변화해서 내가 받아야지. 그 도를 받아야지. 그 경고를 받아야지.
그렇게 해서, 어쩌든지 지금은 뭐 돈이니 지위니 세상에서 교회가 크니 교파가 어떠니 그거다, 그런 거 할 때가 아닙니다. 지금 그런 거 할 때가 아니라.
지금은 그저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와도 그때에 주님 나타내는 그 영광이 더 크지, 지금은 모두 하나님 영광 어떻게 잘 나타내고 지금은 뭐 정통 꽉 찼습니다. 정통 꽉 찼소. 진리 꽉 찼소. 하지마는 이제 그때에 오면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충만하리라' 그때는 성전에 출입하는 사람이 없다 했습니다.
'충만하리라.' 성전에 충만하다니? 성전에 뭐 교회의 전성시라 말입니까? 아니오. 그때에 참으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교회 안에서 해를 받을 것이고, 죽음으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 고문과 고형에서 하나님을 나타내는 사람, 그때는, 실지로 나타내는 그 일이 있을 때 그때는 전도는 안 되는 때입니다.
이거 봐. 이렇게 사람은 많은데 새벽기도 요것만 나왔으니 뭐입니까 지금? 이러니까, 다 저거대로 예수 믿소. 저거대로 제 불 가지고 요렇게 수지계산 맞추지만 네 수지 계산이 성경에는 틀렸다.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슨 유익이냐? 천하를 얻어도 자기 잃는 게 뭐입니까? 진리와 성령과 주의 피로 구속함을 받아서 새로 된 새사람입니다. 새사람 잊어버리고 옛사람으로 살면, 뭣 때문에 옛사람으로 사는가? 세상 것 탐해서 옛사람으로 살지. 온 천하 얻어도 너 잃어버리고 옛사람으로 살면 너는 무익해. 자기를 잃어 버려도 소용없어. 자기를 빼앗겨도 소용없어.
우리 현실에서는 자기 될 요소를 전부 다 빼앗겨서 둘째 사망의 해를 받으니까, 우리가 그것도 지금 해결해야 될 것입니다. 이다음에 가면 자기 지체가. 자기 지체가 자기에게 호소하는 그 호소의 소리가 우리에게 들릴 것입니다. 와, 지옥의 소리가 와 안 들립니까? 지옥의 소리가 들리는 것을. 홍포 입은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하는 말이 다 들렸습니다. 왜 지옥이 안 보입니까? 와, 지옥 안 보이게 뭣 때문에 합니까? 하나님께서 지옥을 보라고 영원한 증거로 지옥을 둔 것인데. 하늘나라는 지옥에게 보라고 '저거 보이지 안하는 하나님 하나님 그래 쌓더니마는, 하나님 하나님 그라는 자는 저기 가 있구나. 과연 하나님이 계시는구나' 그때 알 때에 이의를 달지 못해. 이러니까 지옥에 있는 자도 다 주라 하면서 영광을 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