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1 16:26
예수님은 인간의 치료자
본문: 요한복음 5:5∼11 거기 삼십팔 년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한대
오전에는 자기의 병든 점을 찾는 것이 지혜 있는 일이라고 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자기의 장점을 찾는 사람은 결과적으로 교만해지고 또, 모든 이웃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정반대로 자기의 잘못된 점을 찾는 사람은 겸손해짐으로 이웃사람을 얻는 일이 됩니다. 이뿐만 아니라 자기의 장점을 찾는 사람은 점점 기형적으로 무능한 사람이 되어져가고 자기의 단점을 찾아 고치는 사람은 점점 실력 있는 사람으로 자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종의 자기의 현실이 이렇다 저렇다 불평해서 손을 대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의 환경에 손을 대지 말고 자기를 거룩한 사람으로 만드는 일이 첩경이 되는 것입니다. 환경이라는 그 환경을 자기에게 필요 있는 환경이 되도록 하려고 노력하는 그것은 다 허공을 치는 일과 같고 자기가 환경에게 필요 있는 사람이 되어지는 이것이 인간의 진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자기에게 필요 있는 것이 되게 하려고 애를 쓰는 그 어두움을 벗고 자신이 모든 것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어지는 그것이 바른 길인 것입니다. 이래서 마태복음 7장 12절에는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자마다 먼저 남을 대접하는 자가 되어져라고 말씀하시고 이것이 모든 율법과 선지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오후에는 성경에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자기 것이 되게 하는 이 노력을 우리 성도의 세상생활로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 모든 것이 다 자기의 것이 될 수 있는 이 길이 생명 길이기 때문에 이 길을 걸어가라 말씀하시고 또, 너희가 이것은 그리스도의 것이 되어지는 것이 그 방편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천상천하에 모든 것이 내 것이 될 수 있는 그 길은 내가 천상천하 모든 것에게 다 필요 있는 그의 것이 되어지는 그것이 방편이라는 말입니다. 그런고로, 기독자는 그 범위가 심히 넓고 크고 광대합니다. 그는 어떤 지역적이나 지국적이나 대국적이 아니고 전체적인 구원이 기독자의 구원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다 자기의 것이 될 뿐만 아니라 자기에게 필요한 것들이 되어지는 이것이 기독자의 목표요 향방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범위가 넓고 좁은 것이 다르지 다 성질적으로는 이런 것들을 원하고 있습니다. 많은 것들을 자기의 것이 되게 하려는 이 욕망을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습니다.
또, 자기는 모든 것이 필요로 하는 그런 대상이 되어지기를 원하는 마음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서로 잘못 엇갈려서 모순을 찾아내고 폐단을 일으키는 것이지 사람마다 중심에 이것을 가지고는 있는 것이 만물과 달리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는 연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다 이것을 욕망하는 데에서 이제 본문에 기록한 이 세 가지를 인하여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38년 된 병자를 보니까 그가 탄식하는 것 세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자신이 모든 사람보다 병신이라 무능하고 비참한 자체가 되어있는 그 점에 대해서 심히 탄식을 하고 있는 것이 보여집니다. 자기가 제일 중한 환자기 때문에 38년이나 공을 드려도 모든 사람은 거기에 자기보다는 병신이지마는 자기보다는 낫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몇 해 만에 한 번씩이라도 만나서 해결 지웠지마는 자기는 제일 중한 자이기 때문에 그 일이 안 된다는 것을 그가 예수님에게 고백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낫고자 하느냐고 물으며 그 대답이 싫다든지 원한다든지 그런 말 할 터인데 자기가 그 말을 하기 전에 나는 가장 병신이라 내가 가기 전에 다른 사람이 다 들어가서 나는 그런 소망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또, 그가 말하기를 그래도 다른 사람이 앞서 들어가지 안 하면 내가 몇 시간 며칠을 궁글러서라도 먼저 들어가면 해결이 될 터인데 다른 사람들이 앞서 들어가기 때문에 안 된다고 다른 사람이 자기의 가는 일에 방해가 된다는 것을 그가 또 노골적으로 말을 했습니다.
그라면서 또 한 마디 덧붙여 말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나를 방해하고 내가 이렇게 비참한 사람이 되어 있을지라도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그에게 엎혀서라도 당기라고도 해서 못에 들어갈 수 있을 터인데 나는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고 또 그 점을 마음에 한탄을 했습니다.
그러면 이 38년 된 병자가 그가 병 나을 생각은 가지지를 못하고 그저 시간, 시간 매일 매일마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는 구걸하는 이 일에만 참 전심전력을 기울이고 자기의 그 불행에 원인되는 데에서는 생각해 보지도 못했습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먼저 경고시켜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한 이 음성이 우리에게도 들려와야 우리가 이 복음을 받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우리는 모든 불행이라는 그 환경과 사정을 이것을 어떻게 고쳐 보려고 애쓰는 것이 땅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요, 이것이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들에게 필요 있는 사람으로 개조되지 못하고 인간 병이 들어 가지고 있는 이것이 원인이라는 이 점을 생각하고 노리는 사람은 별로 없는 세상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말씀했습니다. 너를 돕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너를 방해하는 사람이 아무리 많고 네 형편이 누구보다 불쌍하고 가련하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도 제재 받지 아니하고 상관없이 너와 하나님과 너를 찾아온 하나님인 너 구주이신 너와 나와 둘이만 합하면 이런 것 하나도 상관없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그럴 때에 그 사람은 이제 모든 과거를 포기하고 주님에게 새로운 욕망을 가지고 주를 향했습니다. 그럴 때에 주님은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에게 어려운 것을 시키지 아니하니 네가 할 수 있는데 까지 해라 하시면서 먼저 일어서 봐라 할 때에 그는 의심 없이 주를 바라면서 일어서려고 발버둥 쳤습니다. 일어서니 일어서집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그 다음에는 네가 이제는 일어섰으니 자리를 들어봐라 하실 때에 자리를 들라고 애를 쓰니까 자리가 들려졌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일어선 것과 자리를 든 것을 둘을 하나도 버리지 말고 그대로 가지고 걸어가라 하실 때에 걸어가니까 걸어가졌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구원의 도리를 가르쳐 주시는 계시입니다. 우리 구원의 법칙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 가지를 가지고 자아를 해결 할라고 하는 그것이 일반이지마는 예수님 앞에 선 사람들은 이 세 가지에 상관없이 주님과 자기와 둘이만 결합이 되면 이런 것들을 다 초월해서 금생과 내세에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그것이 기독교입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 다른 사람의 방해, 자기의 무능 이것 때문에 인간은 자기가 불행스럽다고 생각하는 이것인 전 인류적입니다.
이러기에 개인도 단체도 세계의 모든 국가들도 다 이 세 가지에 기인되어서 살고 있습니다. 싫지마는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대대로 원수되어 있는 그 적국과의 사이에 어쨌든지 방해를 받으면 안 된다. 방해하는 이것을 피하도록 해야 된다 해서 방해하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 유엔이 있고 국제의 국교가 있고 이런 저런 모든 움직임들이 있습니다. 세계의 국가들의 움직임이나 사회의 움직임이나 개인 움직임이나 그것을 진단해서 파악을 하여 분석을 하면 다 이 세 가지 운동들입니다. 자기에게 방해하는 크고 작은 것을 어떤 방편으로서든지 이것을 제거해야 제가 서지 그것을 제거하지 않고는 불행을 벗을 수도 행복을 건설할 수도 없다는 것을 이것을 다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다 통계적인 지식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전부가 공통 지식입니다.
이래서 과거에 어떤 방해를 받았을지라도 앞으로 방해로 복수하자 하는 그것은 벌써 인간들이 다 초월했습니다. 과거에 어떤 방해를 받았을지라도 앞으로 방해를 안 받는 이것이 문제이지, 과거에 방해받은 것 복수할라 하다가는 내가 망한다. 아무래도 방해가 없어야 서지, 방해 있으면 못 선다 하기 때문에 참 원수를 웃는 안면으로 국교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방해라는 이 문제가 극히 큰 세 가지 중대한 요소 중에 하나라고 사람들이 생각하기 때문에 이 방해를 벗을라고 애를 씁니다. 또, 약하든지 강하든지 하나에게라도 서로 협조가 있어야 되지, 협조 없으면 안 된다, 합하면 강해지고 나눠지면 약해진다.
이러기 때문에 통계 경제라는 이 운동들이 일어나고 또 주식이라는 것이 나오고 이리이리 통합이라는 운동들이 생겨지고 서로 동맹이니 연맹이니 이런 모든 협약들이 여기에 저기서 크고 작은 모든 이런 상호 협조의 운동들이 일어나는 것이 이것도 다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이런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외에는 아무래도 남의 돕는 것, 남이 방해하지 않는 것 이것만 가지고도 안 된다. 자기의 실력을 갖추어야 된다 해서 겉으로는 웃고 손을 잡으면서 속으로는 언젠가 이들이 협조하지 아니하고 전적 방해할지라도 능가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어야 된다 하는 그것이 또 모든 개인이나 단체나 국가나 민족의 그 이면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겉에는 방해를 방어하고 협조를 마련하고 속으로는 실력을 갖추어 이 세 가지로 개인이나 단체의 그 불행 제거도 행복 건설도 된다고 이렇게 판정이 됐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이면으로 주력합니다. 이면으로 주력해서 이것 때문에 가속도로 세계는 범위가 좁아져 갑니다. 벌써 국경이 거의 없고 사상경계가 없고 모든 종교의 경계가 없고 민족경계가 없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선악간의 그 경계도 가속도로 없애고 모두 다 방해가 두려워서 어쨌든지 웃어서라도 어떻게 서로 속을 썩이고 희생해서라도 방해를 피해야 된다. 또, 협조를 마련해야 된다. 이것만 보고 살면 껍데기이다. 알맹이로 자기의 실력을 갖추어야 된다, 이래서 이 표리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전 세계입니다. 온 세계는 이 세 가지 선을 넘지 못하고 이 세 가지 선에서 살고 있는 것이 현재의 자랑하고 있는 문화들이며 국가들이며 모든 그 선진의 것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 세 가지가 이렇게 중요하다는 것만 느꼈지 이 세 가지를 마련을 한다 할지라도 이 세 가지가 필요한 이 세 가지를 마련한 그 양보다 이 양을 마련하는 그 이면에 이 세 가지보다 자기들에게 더 해독이 되어지는 그 뭉텅이가 그 뭉텅이가 더 크게 따라오는 것은 세상이 모릅니다. 이거는 온 세계가 모릅니다. 온 세계가 모르고 있는 세상지식의 범위 너머에 있는 것입니다.
그거는 무슨 말이고 하니 이들이 그렇게 세 가지의 필요성을 느끼는 것은 창조주는 그들이 안다고 해도 모르고 생각한다고 해도 외면하고 하나님에게 지음을 받은 이것들과만 해결을 지으려 하는 이 피조물들만으로 상호관계를 맺는 것들입니다. 그것들의 협조를 그것들의 방해를 받지 아니 할라고 어떤 국가, 어떤 개인, 어떤 사상, 어떤 물질, 어떤 과학의 협조를 받아야 되겠다 해서 이런 저런 연극을 해 가면서 일본하고 미국하고 국교를 삼을라고 합니다.
또, 그 나라가 우리 남한에 대해서 어떻게 하면 좋아질 줄 알고 또 그렇게들 하고 있습니다. 다 제 각각 자기 나름대로 자기 지식의 범위 내로 꾀를 쓸 대로 다 쓰고 수단을 부릴 대로 다 부리고 해서 어쨌든 저 사람은 하나의 협조를 받으면 나는 둘의 협조를 받아야 되겠다. 저 사람이 둘의 협조를 받으면 나는 셋의 협조를 받으면 내가 유지된다, 저 사람은 열의 방해를 받으면 나는 그 사람보다 작은 아홉의 방해를 받으면 내가 유지된다.
이래서, 방해제거 협조마련 또 이것은 모든 외부적이요 내적은 실력을 갖추어야 된다고 해 가지고 이를 다물고 은밀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실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나라가 저 나라를 이 가정이 저 가정을 저 사람이 이 사람을 서로 속을 모를 만침 자기들 속에서는 남이 모르는 그런 실력들을 다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갖추면 갖추어집니다. 갖추어진 것만치 피조물 범위 내에서는 효력이 있습니다. 피조물 내에서는 효력이 있습니다. 있지마는 피조물만으로 존재한 것이 아니고 피조물이 있게 된 것도 이 한 분 하나님으로 있게 됐고 지금도 피조물이 모르는 그 자체들의 움직임과 보존은 이 한 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것을 모릅니다. 모르기 때문에 저희들끼리 이 세 가지 면만 보고 주력하고 노력하고 이것이 먼저 이루어지면 부러워하고 머리를 숙이고 이것이 뒤떨어지면 이제 그만 죽을 듯이 날뛰고 이렇게 하는 것이 이 세상이나 실은 이것을 마련할라고 해서 마련할라고 하는 것만치 이 절대자이신 이분에게 거리낀 뭉텅이는 더 커졌습니다. 이것을 마련해서 온전하고 구비 하다고 할 때에는 벌써 이 절대자이신 이분과의 삐뚤어진 그 뭉텅이는 저희들이 마련한 것을 박살을 시키고도 남음이 있는 그 큰 뭉텅이가 생겨졌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이 눈앞에 보는 복만 보지, 복을 깨뜨릴 수 있는 복을 마련키 위해서 절대자에게 범해서 절대자를 범해서 그분의 몽둥이를 맞을 그 마련된 죄악은 그들이 보지 못하기 때문에 위로를 받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역사에 모순된 일이 있습니다. 역사에 수많은 모순된 일이 있지마는 실상은 모순이 없습니다. 모두다 일치입니다. 세상이 아는 대로의 모순은 강자가 왜 약자가 되며 약자가 왜 강자가 되느냐? 이것이 모순이라. 사람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강자면 지능으로 강자이기 때문에 강자는 약자보다도 그 강자의 위치를 유지할라고 노력하는 것이 약자보다도 몇 배나 강합니다. 몰라 그런 것도 아니고 노력을 안 해 그런 것도 아닌데 어쩐지 강자는 약해지고 약자는 강해집니다.
이러니까 인간들이 보이는 것만으로 생각지 아니하고 그 이면에 조금 철학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야 인간만이 아니다, 인간 이면에 운이라는 것이 있다.
인간의 운이라는 거 있어, 운을 잘 타고나야 되지, 운을 잘못 타고나면 안된다.
인간의 운명에다가 그것을 붙여서 결론을 짓는 사람들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그기 아니다. 운명이 아니고 만당이 있으면 골짜기 있는 그것이 현실 아니냐? 높으면 낮아지고 만당이 있고 골짝이 있고 골짝이 있고 만당이 있는 것처럼 이것이 모든 인류가 돌아가는 이 순환이다. 이기 돌아가는 법칙이다. 한군데만 부가, 부강이 있는 기 아니고 이것이 좀 부강하고 저 다음에는 그것이 부강 하는 순환의 이치라.
그렇게들 사람들이 말을 하고 있지마는 성경이 말하는 대로는 그들이 보이는 것만으로 범위를 삼아서 저거들의 생각대로 필요성을 표준해 가지고 노력을 하고 조물주이신 주재이신 모든 것의 주권자이신 그분을 떼 놓고 했기 때문에 인간끼리 단합한 것이 바벨탑을 쌓는 거와 같이 이것이 저희들끼리는 잘 됐지마는 서도 하나님에게는 거리낌이 커지기 때문에 강한 자는 하나님에게 거리낌이 컸기 때문에 망하고 약자는 하나님에게 거리낌이 적기 때문에 그것이 일어서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선포하신 계약대로 되는 것이지, 운명이나 순환이나 모순이나 그런 것이 아닙니다. 천지는 변해도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변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여기에서 이 38년 된 환자가 이 세 가지를 두고서 그는 고민했습니다.
돕는 사람이 없습니다, 나를 방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내가 누구보다도 약자입니다. 그것은 아무리 되풀이 해봤자 저에게 아픔만 더해졌고 저희에게 그 불행만 더 심해졌지 아무런 효력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 예수님께서 그런 것이 상관없으니 내가 너를 구원하러 찾아오신 하나님이시매 너희 구주이시매 그런 것들이 상관이 없으니 너와 나와 단둘이면 해결할 수 있으니 내가 낫고자 하느냐? 예. 그러면 낫고자 합니다.
그러면 네가 나 시키는대로 하겠느냐? 예. 시키는대로 하겠습니다. 이것이 자본은 다 됐습니다. 밑천은 다 됐습니다. 이만하면 다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과 자기와 하나님은 명령하고 자기는 순종하는 이 세 가지면 다 입니다. 돕는 이가 없어도 방해하는 이가 많아도 아무리 무능해도 이 38년 된 환자는 아무를 앞세우지 않는 기쁜 사람이 됐습니다. 아마 그 자리에서 제일 기쁨은 이 사람이 소유했을 것이요, 제일 쾌락은 이 사람이 소유했을 것이요, 넘치는 희망은 이 사람이 가졌을 것이요, 누구보다도 화평은 이 사람이 가졌을 것이요, 욕망도 그러했고 또, 객관의 대우도 모든 사람의 주목은 이리 쏠려졌습니다. 인기는 독점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 사람에게 대해서 입을 다시고 입맛을 다시고 다 욕망을 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하나의 형식으로 알려주시는 계시입니다.
아무리 인간끼리 해도 안 된다는 것 그 세 가지를 거머쥐고 울어도 힘써도 애써도 노력해도 헛되다는 것, 인간이 인간의 자기의 실력을, 국가가 국가의 실력을, 민족이 민족의 실력을, 모든 국교를 모든 사람들의 협조의 인성을 모든 방해를 다 방어하는 그 방어를 해놨다 할지라도 이것은 다 하나님이 저주하는 저주선 아래 있는 것이요, 다 방어하는 사망선 아래에 있습니다. 시기 문제지 시기만 오면 다 죽고 망합니다. 다 없어집니다. 이 저주 아래에서 다 심판 받아 영원히 사망할 그것들이지 잘돼 봤자 그것이요, 못돼 봤자 그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런 것들은 다 시공의 제한을 가진 것들이요 또, 멸망할 그 무로 돌아갈 것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에서 믿음으로 되는 지식, 하나님이 이렇다 하니까? 예. 그렇습니까? 야. 이거는 복이다. 아, 복입니까? 이거는 화다. 아, 화입니까? 이거는 죽는 일이다. 아, 죽는 일입니까? 믿음으로 하나님을 따라서 가지는 지식 하나님을 따라서 가지는 소원, 하나님을 따라 가진 결심, 하나님을 따라 움직인 움직임, 하나님을 따라 조성된 모든 조성 이것은 다 완전성의 것이요 영원성의 것이요 불변성의 것이니 사망 선을 초월한 생명에 속한 것들입니다. 저주를 초월한 하나님의 축복에 속한 것들입니다. 하나님의 대적을 초월한 하나님과 화합해서 생겨진 것들입니다. 이것은 다 전지성을 가진 것들이요 전능성을 가진 것들이요 영원성, 완전성, 생명성을 가진 것들인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와 모든 것을 부인하고 하나님만을 소망하고 하나님을 소망하는 것은 두 가지로 소망하는 것이니 하나는 하나님 자체에 대해서 모든 것 내가 가지지 못해도 이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고자 하는 이것이 하나님을 소망하는 것이요, 하나는 피조물전체가 하는 그 모든 역사보다 하나님 한 분의 역사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한 분의 역사를 온 천하가 다 해줘도 하나님이 안 해주면 안되기 때문에 온 천하가 다해 주는 것보다도 하나님 한 분이 나한테 해 주는 것, 온 천하가 방해하는 그 방해보다 두렵지마는 서도 하나님 한 분이 방해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하나님의 섭리를 소망하는 이것이 하나님을 소망하는 것이요, 하나님 자체를 자기의 하나님으로 모시고자 하는 이것이 하나님을 소망하는 하나님께 대한 두 가지를 소망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나를 보호하시는 것, 하나님이 어떤 것을 사용해서 나를 보호하시는 것, 사자구덩이라도 하나님이 사자를 통해서 보호하시는 그 보호를 입었지. 다니엘 그 다리오 왕의 보호를 입지 안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직접보호와 하나님이 당신이 지으신 이런 것들, 저런 것들을 써 가지고서 보호하시는 어쨌든지 하나님의 보호 하나만을 바라는 것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눈앞에 있는 수많은 세력 있는 것이 나를 보호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 보호를 받겠다고 가지 않는 것이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다니엘도 그러했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도 그러했고 요셉이도 모든 위인 선지자들이 사도들이 성자 성녀들이 가는 걸음이 다 그러했습니다. 하나님 배반한 하나님에게 거슬리는 어떤 보호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는 어떤 박해도 상관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이래서, 하나님께서 문서로 우리에게 명령하신 명령을 순종하는 것과 하나님이 영감으로 양심에게 울려서 명령하는 이 명령을 찾지 못해서 발버둥치고 하나님이 어떻게 지도하며 지시하며 인도하시는가? 하나님이 이 현실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여기에 대해서 전심전력을 기울이고 발견만 하면 불에 들어가도 그것이 좋은 것인 줄 알고 사자구덩이 들어가도 그것이 좋은 것인 줄 알고 명령대로 함으로 말미암아 당장에 벼락같은 불이 오고 벌이 오고 강한 대적의 원수들이 일어나도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그대로 하는 것이 자기에게 생명이요, 구원이요, 평강이요, 성공으로 알고 순종하는 이것이 다 믿음의 사람들이요,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의 이런 행위를 통해서만 하나님은 일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38년 된 병자에게 일어서라 할 때에 일어서니까 일어서졌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됩니다.
어디서든지 하나님이 나에게 명령하시는 그 명령, 이 명령하신 분은 모든 것보다 크신 분이시오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분이시오 능치 못하신 것이 없으신 분이시오 독생자라도 애끼지 아니하고 나를 위해서 주신 사랑의 주시요 생명까지도 버려주신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하신 분이요 내가 잘되고 영광되고 행복되고 잘 되기를 원하시는 분이시오
이 분은 전지전능을 가지시고 나를 명령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내 조브라운 두뇌로 이해가 안 되도 내 짧은 경험으로 비추어서 경험적이 아니라도 통계에 맞지 아니하고 이치에 맞지 아니하고 내 지식에 맞지 아니해도 당신이 인도하시는 이 인도라면 내 명예를 일어서게 하는 것, 내 권위를 일어서게 하는 것, 내 위신을 일어서게 하는 것, 내 가정을 일어서게 하는 것, 내 인격을 일어서게 하는 것, 내 쾌락을 일어서게 하는 것, 내 말할 수 없는 행복을 일어서게 하는 것, 내 만족을 일어서게 하는 것, 내 겸손을 일어서게 하는 것, 내 자비와 긍휼을 일어서게 하는 것, 나를 살리는 것, 나를 일어서게 하는 것, 나를 치료하는 이것인 줄을 알고 순종하는 우리가 되라고 이것을 보이신 것입니다.
어디서든지 주님께서 나에게 명령하신 것은 나를 낫게 하시는 말씀이요 일어서게 하시는 말씀이요 모든 문제를 해결하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내 짧은 눈에 죽은 것 같아도 자기를 부인합시다. 모든 역사의 통계를 부인합시다. 사자구덩이 들어가 가지고서 죽는 것이 역사 아닙니까? 통계 아닙니까? 들어갔을 때에 모든 사람은 다 사자 밥이 됐다고 했을 것 아닙니까? 그러나 살아 나왔습니다.
우리의 조브라운 견해에서 이렇다 저렇다 맞춰 가지고 맞으면 순종하고 맞지 안 하면 제가 아는 통계에 맞지 안 하면 제가 아는 과학에 맞지 않으면 제가 아는 이치에 맞지 안 하면 거부하는 그런 어리석은 것을 하지 말고 이런 것들을 초월하신 사랑의 주님의 인도기 때문에 어쨌건 현실에서 자기 신앙양심으로 요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라 하면 죽어도 놓지 맙시다. 이것을 놓지 안 해야 됩니다. 이것이 영원한 나를 치료하는 것입니다. 모든 면으로 나를 일어서게 하는 것입니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자리를 들어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자리를 들고 가라. 이는 과거에는 그 자리에 앉아 있었지마는 이제는 그 자리를 들어서 자기가 들고 다시는 그 자리를 없애고 그 자리를 들어라. 과거에는 그 자리에 죽발쓰고 앉았지마는 이제는 그 자리를 들어라. 과거에는 네가 인간 중에 비참한 자로 알고 있었지마는 너는 인간 중에 지극히 존귀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이것을 들고 섯거라.
과거에는 너를 돕는 사람이 없어 너는 원망을 했지마는 이제는 정반대로 너는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또, 있다는 것을 네가 들고서라. 다른 사람이 방해하는데 대해서 일생동안 불만과 원수를 품고 있던 너지마는 이제는 너는 정반대로 남을 협조하는 자, 남을 옹호하는 자 이제는 정반대로 앉은뱅이가 38년 된 병신이 앉아있던 그 자리 앉아있던 그 사상의 정반대로 그 사람의 정반대로 그 정신이 정반대로 그 견해의 정반대로 그 낙망의 정반대로서 이렇게 반대를 이것을 네가 잃지 말고 이것을 검어쥐고 이것을 들고 이것을 따라서 하나님의 성소로 들어가라 거룩한 세계로 들어가라 거룩한 세계로 들어가라.
원수 없이 살 수 있는 세계로 들어가라. 원망, 불평 없이 살 수 있는 세계로 들어가라. 감사함으로 일관으로 살 수 감사의 일관으로 사은으로 살 수 있는 세계로 들어가라.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세계로 들어가라. 성소로 들어가라, 성전으로 들어가라.
그럴 때에 성령 없이 성신의 감화 없이 문서계시 법만 가지고 따지면서, 따지면서 사랑도 말랐고 생명도 말랐고 화평도 말랐고 죄는 무성하게 된 그저 율법적으로 성경말씀을 법적으로나 지켜서 까다롭게 나하고 만나면 살얼음 솟고 징그럽고 살해 밖에는 일어나지 안 하는 거기에서 살고 있는 유대인들 현실 그 타락한 영감 없는 교인들이 네가 안식일에 자리 들고 걸어가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이 은혜, 네가 병이 나았어.
과거에 병신생활을 이제는 철거해들고 주의 한 걸음 한 걸음의 인도를 따라서 걸어가는 성전을 향하여 걸어가는 달음질하는 영원한 소망의 성소를 향하여 참 사람의 세계를 사랑의 세계를 완전성 불변성 영원성의 세계를 세상이 모르는 감추어 있는 세상 안에 들어있는 날마다 죽는 세계 속에 생명, 날마다 변하는 세상 속에 영원 불변, 죄악으로 관영해 가는 속에 영원한 의, 살인 속에 사랑 이 세계를 향하여 가고 있는데 걸음을 그들이 저거대로 믿지 않는다고 정죄할 때에 네가 안식일 날 자리 들고 걸어가는 것이 이것이 합당치 않다 정죄해서 우리와 같이 믿자고 할 때에 이 38년 된 병자는 담대히 말했습니다.
나를 낫게 한, 나에게 모든 문제를 해결해준 나를 낫게 한, 나를 변화시킨, 나에게 새 욕망을 준, 나에게 변화의 세계를 준 그가 이렇게 믿으라 했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믿는다 하는 그 은혜 받게 된 그 도리를, 은혜 받게 된 그 방편을 그것을 버리면 안됩니다. 팔면 안됩니다. 이래 가지고 살아났다. 되 죽고 살아났다. 되 죽어 이렇게 하는 이 타락을 거듭 거듭하면 많은 징계로 비용 받고 헛일입니다. 비용만 허비하고 헛일입니다. 주의 징계를 경히 여기면 안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세계가 필요성으로 느끼는 이 세 가지는 필요합니다.
필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떼어놓고 이것만으로 서는 멸망의 뭉텅이가 이것보다 더 마음에 듭니다. 이것이 필요하나 이것도 하나님이 주시는 방해 제거라야, 하나님이 주시는 나를 돕는 협조라야, 하나님이 주시는 내 자체의 실력이라야 이거라야 삽니다. 모든 것을 저주와 사망선 아래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이 있으면 공연히 교만하고 우쭐해서 자멸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의 장점 찾아 교만으로 이웃 잊어버리고 무능한 자 되는 이 자리에 있어서는 안됩니다. 자기의 단점을 찾아 겸손해지면 이웃은 내 이웃이 됩니다.
고치면 실력가가 됩니다. 환경을 내 뜻에 맞추어 달라고 하기 전에 내가 환경에게 필요한 식구가 되면 모든 사람은 나를 애끼고 없어서는 안 된답니다.
이것이 자기를 살리는 유일한 길입니다.
가정에도 그러합니다. 온 가족이 가장 사모하고 없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사람이 되고 싶거든 그 가정에 없어서는 안될 가장 필요한 사람이 됐으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그럴 것입니다. 이것이 그렇게 별스러운 별개의 이치가 아닙니다.
이것이 다 생명의 이치입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어리석지를 맙시다! 피투성이라도 살아납시다! 피투성이라도 일어납시다! 일어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