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1 16:27
예수님은 인간의 치료자
1980. 6. 2. 월새
본문 : 요한복음 5장 10절-14절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한대 저희가 묻되 너더러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가 누구신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
이 삼십팔 년 된 병자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고침을 받은 것은 참 얼마나 그 사람에게는 육적으로는 그 이상 없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큰 은혜를 받았소.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됐습니다.
그랬는데 이 은혜를 받은 그 은혜를 틈을 타서 이 은혜를 없애 버리려는 악령의 역사가 왔습니다. '이 날은 안식일이니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성경에 말씀했는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은 이 성경적이 아니다.' 그때 이 삼십팔 년 된 병자는 바리새교의 교파 안에 들어가지를 못한 사람입니다. 자기가 병신 된 것도 기막히지마는 병신이기 때문에 성전에 못 들어갑니다.
병신은 성전에 들어가는 것을 성경에 금해 놨기 때문에 성전에 들어가지 못하니 바리새교의 이 교파에 들어가야 구원이 있다고 그들은 생각했는데 이 교파 속에 들어가지 못하니까 그 자기가 가깝게는 병든 그것이 병 낫고져 하는 그것이 참 구원일 것이고 영적으로 말하면 성전에 출입할 수 있는 바리새 교회 정통파, 열심파 바리새 교파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 그에게 포원이 될 것입니다.
이런데 그 바리새 교회에서 그 당시 제일 정통이라고 다 자타가 말하고 또 제일 정통이라 할 수 있는 그런 교파였습니다. 그랬는데 그 파에서 이 사람에게 대해서 '네가 안식일날 자리 들고 가는 것은 성경에 위반된 일이다.' 이럴 때에 이 사람이 거기에서 대답한 것이 있습니다. '나를 낫게 한 그분이 자리 들고 걸어가라 하기 때문에 나는 걸어갔다.' '나를 낫게 한 그분이' 그것을 자기가 강조하는 그것이 나를 낫게 한 그분이라는 자기를 낫게 한 그것을 당시 세력을 가진 바리새 교파들이 말하는 그것을 능가했습니다. 거기에 꺽어지지 안했습니다. 거기에 침노를 받지 안했습니다.
또 요한복음 9장에 보면 그것이 얼마나 긴 문장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나면서 눈 먼 자가 예수님 시키시는 대로 해서 병이 나았을 때에 그 다음에 마귀들이 바리새 교회 세력을 움직여 가지고 네가 예수로 말미암아 눈뜬 그것은 그 예수는 마귀 일군이요, 바알세불을 힘입어서 이런 일을 하는 자요 이단자인데 이 이단자에게 네가 속해 가지고 이단자로 인해 병 고쳤다는 그런 지금 선전을 하지 말아라 하면서 강하게 강압했습니다.
저거 친족들까지 다 그 부모들까지 불러다가 경을 치고 이렇게 해도 그 사람이 '나는 그가 내 눈을 낫게 했고, 내가 그로 말미암아 내가 은혜를 입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내가 선지자인 줄 안다.' 자기가 은혜 입은 그것을 어떤 것에게도 꺽이지지 아니하고 빼앗기지지 않고 양보하지 않고 그것을 굳세게 보존해 나간 그것을 여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지나가는 무슨 그 사람이 그런 일이 있으니까 그때 그렇게 했다 하는 그런 것으로 보는 게 아니라 영감이 문제입니다. 영감, 우리는 이 말씀에서 지나간 자기가 은혜 되었던, 자기가 고침을 받았던, 자기가 변화를 받았던, 자기가 새로와 졌던 그 기회를 그 형편을 심지어 그 장소까지도 또 그 집회 또 은혜의 분위기 은혜의 기관으로 쓴 사람 어쨌건 자기가 과거에 은혜를 받은, 고침을 받은, 자기가 새로와진 그것을 놓지 안해야 됩니다. 이것을 없애 버리려고 악령은 도사리고 있습니다.
벌써 주일날 받은 성화를 그것을 없애 버릴려고 은혜 받고 폐회 종치면 악령은 활동합니다. 은혜 받은 것 그 자리서 다 없애 버리고 마귀란 놈이 '야 녹음기 있지 않느냐?' 또 그렇지 않으면 만나 가지고 이럭 저럭 얘기하고 어쩌고 인사하고 어쩌다 보니까 다 잊어버렸소. 그것을 씨부리는 비유에는 새가 와서 주어 먹는다 했습니다. 실행하다가 중단하는 것은 자기가 주어 먹는다 했습니다.
자기 속에 자기 아닌 옛사람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주어 먹는 것은 세상이 주어 먹는다고 했습니다. 덤불이라는 그것은 세상을 가리켜 말한 것이요
그러기에 우리는 그 은혜 받은 그 은혜를 놓지 아니하려면 은혜 받은 그 장소, 그 기회, 그 시기, 그 형편, 또 거기에 하나님께서 쓰신 기관이라면 기관 그것을 놓지 안해야 됩니다. 그것은 던져 버리고 은혜만 놓지 않겠다고 어리석습니다.
"나를 낫게 한 그가" "나를 낫게 한 그가" 나는 이런 방편에서 은혜를 받았다.
나는 산기도 가서 은혜 받았다. 나는 예배당에 밤마다 가서 엎드려 기도하는 데서 은혜 받았다. 나는 설교를 듣는 데에서 은혜를 받았다.
나는 누구를 통해서 은혜를 받았다. 누구를 접하니까 은혜를 받았고, 누구를 접하니까 손해를 봤다. 나는 새벽에 은혜를 받았다. 낮에 은혜를 받았다. 어떤 형편에서 은혜를 받았다. 누고로 말미암아 내가 손해를 봤다. 자기가 고침을 받은 것과 병든 것을 그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했습니다. 그것을 없애 버리려고 악령은 서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여기서 죽습니다.
대구에서도 집회에서 은혜 받은 사람들 많았습니다. 또 과거에 제가 돌아다니면 집회 안한 교회가 별로 없습니다. 그들이 다 만능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바리새교인과 같은 세력이 들어서 그 은혜를 까 뭉케려고 할 때에 다 빼앗겼습니다.
나를 낫게 한 그가 내가 그 집회에서 은혜 받았다. 내가 그 집회에서 변화 받았다. 나는 그 집회에서 예수 믿는 걸 새로 배워서 깨달아졌다. 안 버리야지 지금 저를 통해서 증거하는 이 복음을 이것을 이단이라고 하는 말 외에는 막을 길이 없습니다.
다른 교파에서 거기에는 다른 교훈 교류를 안하려고 도무지 다른 강사를 청하지 안하는다 그런 말로서 한동안 또 말썽이 있었습니다. 그때 내가 말하기를 '아 좋다 여기에 와서도 하루면 하루 한 시간이면 한 시간 교훈을 하고 또 나도 거 거서 한 시간 교훈 와서 했으면 나도 거서 한 시간 교훈하고 일주일 집회했으면 나도 거 일주일 집회하고 그렇게 교훈 교류를 하자' 한 고 말 한 마디 한 뒤에는 고 말이 다 딱 끊어졌습니다.
왜? 그 강단에 가서 서서 설교하면 교회가 뒤비집니다. 저희들이 그 복음 가지고 감당을 못합니다. 그래서 광고를 하고 공설 운동장에서 집회하는 이런 일을 일 년에 두 차례 가져 볼까? 그러면 어찌 되나. 시기지 그러면 교회 안에서 교회마다 이게 분쟁이 일어날 터이니까. 왜? 그 복음 받고는 사람이 살지 못하니까. 영감 없는 껍데기만 날뛰니까, 그리 되면 교회들에게 큰 분쟁이 일어날 모양이니 이것이 과연 구원에 유익이 되겠나 내가 그렇게 다 가르치지 못할 뗀 못할진데 그대로 그기라도 가지고 힘써 믿어 구원 얻도록 한 그것이 결과적으로 유익이 안되겠나 그 유익의 수지 계산에서 지금 안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 모양으로 사람을 꺼서 가려 하면 저희들이 일주일만 들으면 이단이라고 하던 그것을 다 회개를 할 것이고 아는 자는 깨달아서 죄지었다고다 그 눈물 흘리며 회개를 할 수 있는 줄 알지마는 그것이 이제 큰 분요가 일어날 터이니까 그 결과가 어찌 되느냐 결과의 수지가 어찌 되느냐? 그 점에서 하지를 않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고침을 받은 거 나를 낫게 한 그가 자기를 낫게 한 그것을 빼앗기지 안해야 됩니다. 자기가 낫게 한 그것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자기를 낫게 한 그것을 빼앗기면 안 됩니다. 자기는 어떻게 단식기도에서 은혜를 받았거든 단식기도에 은혜 받은 그것을 잊어버리지 말고 단식기도 하는 그 일을 자기는 놓지 마십시오. 그게 다 소용 없는 일이다 해도 놓지 마십시요.
자기는 호별 방문해서 은혜를 받았거든 호별 방문해서 은혜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지 말고 그 은혜 주시는 은혜 받은 그 형편을 그 기관을 또 놓지 않아야 됩니다. 언제든지 은혜 받고 난 다음에는 마귀가 와 가지고 그 은혜를 없이 하려 하는 그런 역사는 없는 일은 한 번도 없는 것입니다. 은혜 뒤는 그 은혜를 없애 버리는 그 역사가 있습니다.
대구에 가 가지고 은혜 받은 그런 것도 벌서 빼앗긴 사람은 다 빼앗겼을 것이요. 내나 가기 전과 같고 생각하면 그때 가서 어떻게 됐더라 하는 그것은 생각은 가질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 생각의 추억까지도 싹 없어지게 되 버립니다. 그것이 악령의 역사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것을 방지할 줄을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사십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려 단식기도 하시고 일할 수 있는 사역적 권능을 받고 난 다음에 그대로 가서 일했습니까? 안했소. 사역적 권능을 받고 난 다음에 즉시 마귀가 와 가지고 그 은혜를 삭감 시키려고 했습니다. 삭감 시키려 할 때에 그는 성경을 들고 악령은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성경을 사이비하게 성경 같은데 성경을 바로 인용치 아니함으로 삐뚤어지게 된 그것을 예수님께서 바로 고쳐서 정죄를 하고 그 미혹을 받지 안했을 때에 뭐라고 말했습니까? 사탄은 물러가고 천사는 수종들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받은 은혜도 놓지 말아야 되고 은혜를 받게 된 그 기관도 버리지 않해야 됩니다. 그것 버리면 그 다음에 버려집니다. 자기가 어떤 사람으로 말미암아 은혜를 받았는데 그 사람의 행위가 나쁘면 행위 나쁜 그것이야 말할 수 있지요. 그 사람을 통해 은혜를 받고 그 사람을 배반하고 자기가 왕 되려고 나가는 그것은 그 끝이 빤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눈이 짧아서 길게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나 그 결과는 다 역사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지난 번에 그 양성원에 성경 연구 가운데 한 제목은 자기가 일생을 살아 나온 과거에 대해서 어떤 사람으로는 어떤 손해를 봤고 어떤 사람으로는 어떤 유익을 봤다 손해 본 것과 유익 본 것을 그것을 사람 이름은 기록하지 말고 자기만 알고 돌뱅이를 쳐놓고서 이거는 누구라 이거는 누구라 해서 자기에게 은혜를 끼쳐서 자기에게 유익을 줘서 유익을 받게 된 그 사람과 자기가 손해를 본 그 사람과를 기록해라. 이름을 기록하면 그것이 보이지면 안될 터이니까 자기만 알고 돌뱅이를 쳐서 요거는 누구라 누구라 그렇게 표시해서 그것을 연구하라 했습니다. 그거 연구하지 못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과거를 그것을 바로 알지 못하면 미래는 실패입니다. 과거는 미래에 대해서 큰 자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은혜 받고 난 다음에 네가 이것 불같다 할 때 만일 그 사람이 '아이구 그렇습니까' 하고 자리 들고 가라 하는데 자리 놓고 했으면 주의 명령 거역했으니까 그거 뭐입니까? 그게 의입니까, 죄입니까? 예 그게 의입니까, 죄입니까? 예 죄 아니요. 죄를 범하지 말아라 고것을 이래 따진 것은 뭐이냐 하면 일어서서 자리 들고 걸어가라 했는데 고것을 고 명령을 거역하라고 하는 고것을 다시 되살리기 위해서 말한 것입니다.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아라 네가 다시는 순종만으로 계속하고 거역하는 일을 하지 말아라 그말입니다.
그러면 그때 자리 놨으면 어찌 되겠지요? 삼십팔 년 된 병자가 어찌 되지요? 그때보다 더 심한 병신 되지. 그걸 바로 맛배기로 해 놓은 거 아닙니까. 그래서 그것을 기록했습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과거를 회상해서 어떤 장소에 가 가지고 내가 손해를 봤다.
어떤 사람을 접해 가지고 내가 손해를 봤다. 어떤 사람으로 인해서 내가 구원을 얻었다. 은혜를 받았다. 어떤 장소에서나 어떤 활동에서나 우리가 활동에서도 손해 본 거, 유익 본거 있고 물건에서도, 사업에서도, 직장에서도, 또 장소에도 어떤 장소에서는 유익을 봤고 어떤 장소에서는 손해를 봤고, 또 사람도 어떤 사람으로는 유익을 봤고 어떤 사람으로서는 손해를 봤고 하는 그것을 우리가 새롭게 가져서 그것을 놓지 않해야 과거의 실패가 미래의 성공의 자원이 되는 것이지 그거 놓으면 뭣 됩니까?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자기의 위신이, 자기의 권위가, 자기의 영광이, 자기의 존귀가, 자기의 가치가, 자기의 소유가, 자기의 영감이, 자기의 진리가 무엇으로 유익되고 무엇으로 손해 봤는가 하는 그것을 모르면 그 사람은 마귀 밥이 되기 마련인 것입니다.
한 십 분 기도하고 권찰회 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