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1 22:42
예수님의 대속
1981. 7. 26. 주일오후
본문: 롬6:5-11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땅의 설교를 하면 좀 좋아하고 하늘의 설교를 하면 싫어하고 저 죽는 멸망할 설교는 하면 마구 좋아서 춤을 추고 하는 사람들이니 참 심히 안타까운 일인 것입니다. 어떻게 속에 그 강팍과 완패 그것은 가득히 차서 죄에 대해서는 지극히 작은 것도 꼼짝 못하고 그것에게 복종하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에게 대해서는 어떻게 그리 간이 크고 억세고 굳센지. 우리가 그것을 자기가 자기를 치료해야 되지 다른 사람이 그 일을 고쳐 줄 자가 없는 것입니다. 설교나 하지 설교해도 마찰이 되어서 듣기 싫어하는데 개인적으로 현실을 만났을 때에 말하면 진주를 도야지에게 던지면 물러 달라든다는 말 같이 그렇게 되기 쉽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 개인의 그 삐뚤어진 것을 누가 희생해 가면서 말해 줄 리가 없는 것입니다.
또 말해줘서 효력이 있으면 즉 기도하는데 형제를 살리기 위해서 희생하는 것 욕 얻어먹는 것 뭐 오해 극해 받는기야 상관이 없지만은 효력도 없고 도리어 해만 되기 때문에 그렇게 다들 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 4장에 보면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울수록 사람들은 자기 귀에 즐거운 소리를 잘 듣고 진리에서는 돌아간다 이랬습니다. 진리에서 그 길을 돌이켜 자기 사욕에 알맞는 그런 말를 잘 듣게 된다 말세가 되어갈수록 그렇다 이랬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종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자꾸 증거해라 그렇게 했습니다. 오늘 오전에 말씀이 참 우주와 영계 그기 크지만은 그것도 크지만은 그것으로 측량 못할 큰 말씀을 주셨는데 그만 오후에는 재미가 없으니까 자리가 텅 비었습니다. 텅 비었어. 부자되는 설교나 땅에서 돈 때인데 돈 받는 설교. 사업 잘하는 설교. 병 낫은 설교 그런 거나 하면 자기 기분에 맞아서 좋아하고 이렇게 하지마는 참구원이 되는 말씀은 듣기를 싫어하는 것이 말세의 성도들입니다.
그런 것들을 잘 돼봤자 오늘이라도 떠나면 그만 이지 그 큰 유익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한 복음을 듣고 믿는 사람이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복음을 듣고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해서 잘 알고 예수님의 부활하심에 대해서 잘 아는 그것은 자기가 복음을 믿는 것이 아니고 복음을 지금 구경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 복음들도 아니고 남의 복음도 아니고 그저 자기는 그 복음을 구경하고 있는 것인데 그 복음이 자기의 복음 되는 것은 현실에서만 자기 복음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현실이 되기 전에 자기가 아무리 주의 죽으심을 내가 믿습니다. 부활하심을 믿습니다. 죽으심에 연합합니다. 부활하심에 연합합니다. 아무리 많이 말을 하고 결심하다 했다 할지라도 그것 가지고 일되는 것은 아닙니다. 죽음심이 자기에게 복음이 되고 부활하심이 자기에게 복음이 되는 것은 현실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복음이 된다 말은 복된 소식이라 그 말입니다.
복된 소식. 그러면 죽으심에 자기에게 참 복이 되는 소식은 현실에서만 됐고 이 사실을 알고 자기에게 복되게 하지 못하면 이 아는 것이 자기에게 정죄로 쓰이집니다. 그러기에 이 복음의 도리를 들은 것이 현실에서 사용해서 효력을 얻으면 이것은 참 자기에게 복음이 되고 듣고 알기만 하고 사용하여 효력을 보지 못한다고 하면 이 복음들은 것이 자기에게는 정죄에 쓰이집니다. 내가 이렇게 이렇게 듣고 배우고 알고 이래 행실 했으니까 내가 이 법대로 너는 심판은 받아야 될 것이 아니냐 하여 심판에 율법이 이 되고 사용하면 복음의 구원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보면 쪽 발로 걸어가라 이것은 하나의 이 상증을 가지고서 교훈을 한 것인데 쪽 발로 걸어가라 쪽 발로 걷는 짐승은 깨끗하기 때문에 먹고 새김질하는 짐승도 먹지만은 쪽 발로 새김질 하지 않는 그런 짐승들을 더러우니까 취하지 말아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하도 우리가 둔하니까 알기 쉽고 그래서 기억하기 쉽도록 하시기 위해서 하신 것입니다. 쪽 발은 이 두 쪼가리 발이 아니요. 염소도 쪽 발, 도야지도 쪽 발, 소도 쪽 발, 노루도 쪽 말, 사슴도 쪽 발, 모두 쪽 발 아니요. 걸음은 자기가 생활하는 생활은 두 쪼가리로 하라 그 말이요 생활은 두 쪼가리로 하라. 생활하는 것이 걸어가는 것 아닙니까. 이러니까 네가 생활해 갈 때에는 꼭 두 쪼가리도 생활해 가라 그 말이요. 또 새김질은 네가 먹는 것은 새김질을 해라. 네가 들어서 먹는 것 보아서 먹는 것 읽어서 먹는 것 접해서 먹는 것 뭐 깨달은 이런 것은 깨달은 것은 그만 깨달은데도 그만 그대로 훅할 것이 아니라 또 네가 들은 것을 또 새기보고 새기보고 눈으로 본 것을 새기보고 새기보고 읽어본 것도 새기보고 새기보고 네기에서 생각이 나는 그것도 또 자꾸 새기봐라 예수님도 새겨보고 새겨보고 진리도 세상 마귀가 해주는 말도 새기보고 새겨보면 아 이거는 토하여 내치야 되겠다 할 것도 생각하고 새겨보면 참맛이 있고 영양이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살라는 말입니다.
오전에 설교한 그 계속인데 우리가 만물 가운데에 사람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사람으로 지음 받은 사람은 다 영과 육 이 두 가지로 되어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도 두 가지로 되어 가지고 있소. 이래서 우리가 생활할 때에 사람에 대해서도 이 두 가지로 걸어가야 됩니다. 아 이것은 이라면 영에 좋으나 육에 좋으나. 영에는 좋지만은 육에는 좋지 않다. 육에는 좋지만은 영에는 좋지 않다. 이런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다 잘못된 것입니다. 영에도 좋고 육에도 좋고 그래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언제든지 나는 영도 있고 육도 있다 영은 주격이고 주인 되는 내게 대해서 주격체고 육이라는 것은 영이 보유하고 있는 영이 소유하고 있는 영에 소유로 되어있는 소유 피소유격체입니다. 영은 하나님의 모형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하나님의 그 신성과 꼭 같은 인격성을 가진 그 존재요. 육은 마음과 이 고기 덩어리로 되어있는 이것이 육입니다. 우리가 안 믿을 때에는 육이 범죄함을 인해서 영이 주격 책임에서 영은 단번에 죽어 버렸고 육은 단번에 죽는기 아니라 일생을 걸쳐서 다 죽습니다.
일생을 통해 가지고서 다 죽습니다. 아야 이거는 내가 아는긴데 하고 척 자기 그만 시작합니다. 아는 긴데 하고 알기는 뭘 알아 알면 좀 다 깊이 뜻을 새기지요. 다 행했는가요. 안 믿을 때에는 영은 단번에 죽어서 죽은 안 믿을 때에 속에 육 속에 머여 다니고 육은 그 사람이 죽는 날까지 원죄에다가 본죄를 고해가지고서 그래 다 죽어버립니다. 그와 반면에 우리 구원도 영은 단번에 구원을 얻고 이 심신으로 된 심신의 구원은 죽는 날까지 해야 그 심신 구원이 다 이루어지는 것인데 어떤 사람들은 죽는 날 까지 해서 심신구원은 다 이루는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죽는 날까지 세상살이를 하면서도 심신 구원은 하나도 이루지 못하고 기다리는 있는 심신 구원을 영원한 사망으로 다 죽여 버리는 그런 생활을 하다가 끝을 마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알면 사람들이 뭐 그렇게 할까 해도 알고도 그기 안 됩니다.
안 믿는 세상 생활도 그렇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세상 생활하는 데에 어떤 사람은 나이가 한 오육십 되면 참 영광스럽고 존귀한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영광스럽고 존귀한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오육십세 되면 참 보기에 비참하고 가련하기가 짝이 없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그렇게 비참하게 만들고 존귀케 만든 것 아닙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그 사람이 자기 닥친 현실 현실에서 자꾸 장례를 위해서 노력을 해서 하나씩 기능을 살리고 자본을 살리고 키우고 살리고 신용을 살리고 다른 사람에게 덕을 살리고 환영을 살리고 인정을 살리고 존대를 살리고 키우고 이래 놓으니까 아 일생동안 그 자기 키운 것이 벌써 오육십세가 되면 모든 사람들이 그 사람들은 다 존경하고 또 그 사람들의 벌써 모아 논 재물도 많고 또 지위와 권세도 높으고 얻 어 논 사람들 인심도 많이 얻어 놓고 이러니까 그야 사람들이 다 부러워 하지만은서도 당장에 그걸 취하고 싶다고 됩니까 어데. 그기 긴 세월을 자기 현실이라는 현실에서 만들어 논 그것입니다. 또 비참한 사람도 어데 당장 비참한 사람이 된 것이 아니고 그 현실에 뒤를 생각지 아니하고 우선 제 좋은 대로 하고 싶은대로 말 다한 그놈이 하고 싶은대로 돈 쓴 그기 하고 싶은대로 논 그 것이 먹고 싶은대로 먹은 그것이 입고 싶은대로 입은 그것이 불항을 빼고 싶은대로 뺀 그것이 그만 이것이 주 모이고 모이가지고서 오육십세 되니까 그 사람이 참 똥과 같이 천한 인물이 되어기지고서 모든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고 이제 뭐 남은 악을 가지고 그 써야 그 악에 힘이 있어야지. 악에 그기 힘이 있어야지 그만 다른 사람들이 아이구 저거는 맹수 같은 저거는 똑 지네 같고 저거는 독사 같은 인간이니까 아야 그거 상종하지 말라. 그래놓으니까 저 혼자 호독거리지 무슨 힘이 있습니까.
안 믿는 사람들도 이 세상살이도 그렇습니다. 그 별기 아니오. 이와 마찬가지로 믿는 사람들도 이 심신으로 되어 있는 이 육을 참 영원히 멸망시키는 것도 죽는 날까지 해야 영원히 멸망을 시킬 수 있고 또 영원히 하늘나라의 구원으로 살리는 것도 죽는 날까지 해야 살릴 것을 다 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이 세상 현실 현실을 만날 때에 이 세상 좋은 것을 표준해서 하지 아니하고 하늘나라 좋은 것을 표준해서 하고 자기 좋은 것을 표준해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이웃 좋은 것을 표준해서 이렇게 하고 이라면 한 것이 어집작한 것이지만은 그것이 하루 이틀 일년 십년 때에 나간 그 공력이 나중에 보니까 하나님에게 대해서 참 하나님이 탄식할만 감탄할만침 귀한 생활을 했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분노 할만치 참 못된 짓 했고 어떤 사람은 보고 듣는 이웃 사람이 접할 때에 참 감격할만한 그 일생을 지냈고 어떤 사람은 모든 사람이 다 입을 비쭉거리면서 조롱할 수 있고 멸시할 수 있는 그런 일생을 지내는 그것이 세상 사람들과 꼭 같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믿지 안할 때에는 언제든지 일방적 지식을 가지고 한쪽 머리만 아는 지식을 가지고 살았고 또 그것은 한 쪼가리만 돼 있었습니다. 접사람이 되지 못하고 쪼갱이 사람으로 또 살기도 살았던 것입니다. 영은 죽었고 심신 이것이 들어서 살기 때문에 반 쪼가리 사람이 살았고 외나 주격은 죽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가르쳐서 옛사람이라고 하고 또 혈육의 사람이라고도 그렇게 성경에 표현을 했습니다. 우리가 이 마음 제 마음만 생각하고 육만 생각하고 사는 것도 그것도 반 쪼가리 사람이요. 또 영만 생각하고 육을 생각지 안하고 사는 그것도 반 쪼가리 사람이니 둘 다 못 쓸 것입니다. 영만 생각하는 길이 없는데 제 마음에 그렇지요. 또 육이 생각하는 길이 없는지 제 마음에 육을 생각하는 것이 다 그렇게 보여지지요. 영이 좋아야 육이 좋고 육이 좋아야 영이 좋고 둘은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주면 둘다 좋은 이것입니다. 그렇게 살도록 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양면을 생각해야 되지 양면을 생각지 안하면 안 된다. 그러므로 천국도 생각하고 세상도 생각하고 영도 생각하고 육도 생각하고 새사람도 생각하고 옛사람도 생각하고 하나님도 생각하고 마귀도 생각하고 나도 생각하고 다른 사람도 생각하고 피조물도 생각하고 창조주도 생각하고 지금도 생각하고 장래도 생각하고 고생도 생각하고 또 평안도 생각하고 만날 고생만 생각할기 아니라 고생과 평안을 같이 생각해야 됩니다. 아 이 평안에는 저런 고생이 따랐다 이 고생에는 저런 평안이 따랐다 다 고생과 평안이 다 있으니 어느 거 취하는기 낫겠느냐. 아이구 그라면 하룻밤 고생하고 영원히 평안한기 낫지 하룻밤 평안하고 영원히 고생하는 길을 취할 수 있겠느냐. 이렇게 쪽 발로 계산해서 걸어가면 우리는 슬기로운 걸음을 걸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의 죽으심은 우리가 옛사람을 예수님의 죽으심에 합쳐서 죽이는 것이 예수님의 죽으심을 믿는 것이요 그 효력을 받는 것입니다.
여게 6절에 보니까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에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라고 했습니다. 이러니까 예수님의 그 죽으심을 지식으로 믿는 것 말로 믿는 것 그것은 아직까지 제 복음이 되어 있지 안하고 그 효력이 자기에게는 오지 아니한 것입니다. 이렇게 알고 예수님이 내 죄를 멸하시기 위해서 죽으신 이 죽으심에 연합을 시켜서 죄짓는 나도 같이 죽은 자 되었으니 이것이 살아있을 때에는 내가 그놈을 죽일래야 못 죽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요거 아주 어렵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인해서 택한 자들에게 죄를 짓게 하는 옛사람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뭉쳐진 이 옛사람 이 옛사람은 우리의 마음과 고깃덩어리를 이 놈이 붙들고 주관해 가지고 제 마음대로 잘라 버리고 있습니다.
마음이 죄가 아니요 고깃덩어리가 죄가 아니요. 마귀 이놈이 마음과 죄를 마음과 몸을 붙들고 이것을 죄짓게 하면 죄짓고 그 마음이 내나 또 의에게 붙들려서 의하자면 의를 해야하고 기관과 같고 도구와 같고 연장과 같은 것입니다. 영이 영원히 우리의 영이 그것을 영원히 편리하게 모든 면에 참 필요하고 요긴하게 쓰는 연장 같고 도구 같고 좋은 기계와 같은 것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내 나를 대신해서 죽으신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무슨 효력이 와 있느냐 하면 죄를 짓던 자 죄가 주장이 되고 왕이 되가지고서 불의를 행하는 자 하나님을 배반하고 제 중심으로 사는 자 이 자 속에는 뭐이 들었는고 하니 하나님 다음으로 강한 마귀가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 또 인간을 죄만 지으면 잘나고 못나고 죽이는 사망의 권세는 죄요 이랬습니다.
이런 권세를 가진 죄가 그 속에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을 받지 아니한 사람은 옛사람이라는 그놈, 그놈을 죽일 권세가 없습니다. 죽일 능력이 없습니다. 못 죽입니다. 천인 만인 중에 하나도 못 죽입니다. 예수님의 구속을 받지 못한 자로서 악령과 죄가 주관하는 그 주관을 벗어날 수가 있느냐 하면은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것을 가르쳐서 마귀가 왕노릇하고 죄가 왕노릇한다 그렇게 성경에 말했습니다. 그것은 왕노릇하는 것을 못 쫓아 냅니다. 예수님도 못 쫓아냅니다. 어림도 없습니다. 예수님도 못 쫓아 냅니다. 이런데 당신이 이 죄의 값을 받을 그자에게 대해서는 호령치면 나갑니다. 왜 네가 뭐이야? 아 나는 악령이라. 뭐할라고 왔어? 내 몫아지 죄가 있기 때문에 왔어. 죄가 어데 있어? 아 이 사람이 범죄 했으니까 죄가 있지 않느냐?
찾아와. 그 죄가 있는가. 그 죄의 값을 예수님이 대속했기 때문에 마귀는 꼼작 못하고 죄도 꼼작 못하고 물러가는 것입니다. 이래서 성경에 말하기를 죄가 왕노릇 하지 못하게 된다. 너희들에게는 죄가 왕노릇하지 못하게 됐다 인제 쫓기 났다 이렇게 말했어. 응 마귀도 우리에게 왕노릇 하지못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못 박기 전까지 전까지는 그는 택자들에게도 왕노릇을 했지만은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우리가 저질어 논 잘못된 것을 다 청산 계산해서 창산다 해버렸고 마귀로 더불어 싸워서 이겼기 때문에 과거에 빚진 것은 청산했고 새로운 시비에서는 예수님이 승리했기 때문에 마귀라는 놈이 예수님을 대항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구속을 받는 사람들은 자기에게 있는 옛사람 이것을 쫓아낼라면 쫓아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죽이라면 죽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죽이지는 못하지만은서도 이놈을 쫓아낼 수가 있습니다.
마귀의 모든 운동을 쫓아낼 수 있고 죄는 죽일 수 있습니다. 왜? 죄는 죽었는데 이것이 산척하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죄의 값을 다 받았기 때문에 죄는 죽은 것이 이것이 산 척하고 나타났기 때문에 호령치면 죽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사람은 자기에게 죄를 지을라고 하는 이것을 자기중심으로 살라고 하는 이것을 하나님을 대적하고 마귀로 살라고 하는 이것을 좇아낼 것은 쫓아낼 수 있고 뽑을 것은 뽑을 수 있고 죽일 것은 죽일 수 있고 꺾을 것은 꺾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예수님으로 죽으심으로 말미암은 혜택을 입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죽으심의 그 은혜를 입기를 언제 입느냐? 예수님이 나를 대신해 죽으심을 믿는 그 믿음으로 효력은 내기에 오는데 믿기를 언제 믿으면 효력이 언제 오느냐. 믿는 것도 평소에 믿는 것은 믿을라고 하는 것이요. 믿는 실효가 나타나는 것은 현실입니다.
현실에 죄를 지을라고 하는 그 현실을 만났을 때에 죄를 짓게 하는 모든 분위기와 모든 형편을 만들어 가지고 악령이 이렇게 둘러싸고 죄를 짓는 분위기를 묘하게 빠질 분위기를 모든 것을 다 이렇게 전법대로 자기들이 기묘하게 공작해 가지고 꾸미가지고 이래 와서 주일로 하여금 범죄케 하라고 할 때에 그럴 때에 예수님이 나를 대신 이 죄를 멸하시기 위해서 죽으심으로 멸해줬으니 내게 죄짓는 자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인데 죽은 자가 어찌 죄를 짓겠느냐. 대신 죽으신 것을 내가 믿으면 내가 죽은 것인데 대신 죽으니 내가 죽으신 것으로 믿는다면은 어찌 내가 또 살아서 죄를 범할 수가 있겠는가 하여 죄짓는 자를 고때에 꺽을 때에 죽일 때에 악령을 쫓아낼 때에 고때에 예수님의 십자가 상에서 나를 대속해 죽으심을 내가 받을 것입니다.
그 효력을 입는 것입니다. 그럴때에 쫓아낼 대에 물리쳤을 때에 나에게 실질적으로 내 행위가 있어서 죄 멸한 자가 되고 없는 자가 되고 내 심신이 기능에는 죄 없는 기능이 됐습니다. 죄에서 구출 받은 기능이 됐습니다. 또 불의를 당한 거게서 불의를 죽여 없앤 자가 되고 불의를 없애 불의 없는 자가 됐고 하나님과 원수된 원수가 없는 자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요러기에 현실에 불의가 와서 나를 다시 유혹을 할 때에 불의의 유혹을 물리치고 불의를 행케하는 그자를 내게서 불의를 행케하는 그 나를 그 내가 아닌데 자기 같지만은 자기 아닙니다. 원수인 옛사람 입니다. 자기를 죽인 옛사람입니다 이런데도 이놈이 꼭 자기 같습니다. 꼭 자기 같소. 이럴 때에 하나님 법을 어기자고 어기자고 하는 요 자기를 꺾어 죽이고 불의 하나님의 뜻을 고 제 뜻대로 제 주장대로 제 욕심대로 살라는 요것을 꺾어 죽여 이겨 하나님 버리고 이 피조물 세상 것 가지고 합작돼 가지고 살자 할때에 그자를 꺾어 버려 물리쳐 그자의 소욕을 이루지 못하도록 그것을 꺾고 죽이고 쫓아내 버리면 그러면 그럴 때에 고것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나 대신 죽으신 그 죽음에 내 옛사람이 같이 사형을 받아 죽게 된 것입니다.
그때에 쫓아내 죽이야 예수님이 나 대신 죽으신 효력을 그때 보는 것입니다. 암만 쫓아내 죽이라고 해도 죽일 능력이 없습니다. 불택자는 억억만명 중에 한사람도 쫓아내 죽이는 인간은 없습니다. 그놈이 와서 하고져 하는데로 다하지 쫓아내 버려 죽이는 자는 없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나쁜 것이 나오면 그것을 꺾어죽이기를 하고 또 그기 나오지 안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 말하나 그 부분적으로 그것은 악한 것 나온 그기나 선한 것 나온 그기나 죽인 그기나 안죽인 그기나 다 인간 노름이요.
마귀 속에 든 것이기 때문에 이거 하던 자 저거 하게하고 저거 하던 자 이것하게 해서 이 죄짓던 자 저 죄짓도록 만들고 저는 이 죄 짓도록 만드니까 저거 딴에는 뭐 나오는 것을 희로애락 나오는 것을 꺾고 중단하고 뽑고 해서 그 선을 한줄 알지만은서도 그것이 다 그 속에 있는 내나 박첨지 놀음이요. 내나 그놈이 그놈입니다. 아무도 이기지 못합니다. 다만 우리 구속받은 사람들은 자기가 자기 현실에 천하 인류가 다 이길래야 이기지 못한 요 범죄하는 자 불의를 행하는 자 하나님을 배반하는 자 요 자를 자기에게서 뽑을 수 있고 물리칠 수 있고 꺾을 수 있습니다. 하면 됩니다. 할라고 하면 됩니다. 이것이 인간 힘으로 되는기 아니고 그럴 때에 예수님의 공로가 자기에게 와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할라고 하면 그놈은 쫓기나가기 마련입니다. 왜? 예수님이 다 그 값을 받아서 죄는 벌써 죽은 죄요. 불의도 죽은 죄요. 원수도 죽은 원수요. 악령도 벌써 패전을 하고 패전해서 그놈도 공연히 와서 그라는 것이지 아무 권리 없기 때문에 우리가 대하면 은 우리가 대항 할 때에 그 물러가지 안하면은 하나님 앞에 그는 견디지 못합니다.
우리가 물리칠 때에 그는 나가야 되지 쫓기 나가야 되지 죽어야 되지 꺾어져야 되지 나가지 안하면 십자가에 대속하신 만유주 하나님이 그놈을 호령처서 물리치게 됩니다. 우리는 자유성 가지고 물리치면 물치치게 되지고 꺾으면 꺾어지게 되고 뽑으면 뽑히게 되고 죽이면 죽어지게 되는 그런 존재로 우리에게 대항합니다. 절대적인 왕권적인 주권적인 그런 세력을 가지고 대항하는 거는 아니고 우리가 환영하면 들어오고 물리치면 쫓기나갈 수 있는 이런 약자로 우리에게 대하는 것은 주의 대신 죽으신 공로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가 그것을 물리쳐 꺾고 좇으면 예수님의 공로가 인해서 그것은 쫓겨갔고 그 공로의 효력을 나는 입었고 그놈에게 들어서 죄의 병기가 되어 죄의 내 심신 기능이 되어 영원히 멸망할 것이 의의 병기 의의 기능이 되어서 영원히 그 영의 소유 하늘나라에 쓰이지는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우리 현실에서 옛사람 요것을 죽이고 악령을 쫓아내고 요 사욕을 꺾어 죽이고 하는 요것이 예수님 죽으심에 효력을 우리가 입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지 안하면 자기의 육의 구원에는 효력을 못 얻습니다. 기본 구원으로 고깃덩어리가 부활은 합니다. 심신의 육이 부활은 하지만은 부활을 해도 기능 없는 부활을 합니다. 부활의 능력이 없습니다. 이래서 바울은 그 예수님의 부활의 그 능력에 자기도 참여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든지 그리스도의 죽음에 자기도 동참하고 그 부활 같은 부활에 동참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죽으심에 효력을 건설구원에 있어서 언제 이 효력을 입을 수가 있느냐 하면 자기 현실에 어떤 죄짓든지 어떤 불의든지 어떻게 하나님의 버리는 것이든지 고 현실에 고것이 닥쳤을 때에 고때에 예수님에 죽으심에 연합하고 죽으심을 본받아 죽으심의 그 공로를 입어서 이놈을 물리치고 꺾고 죽이고 쫓아내고 해서 예수님의 죽으심의 그 효력을 자기가 현실에 입어서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라면 고 옛사람을 죽인 그자가 누구입니까? 옛사람을 죽인 그자가 곧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새사람 자기입니다. 고기 새사람 자기요. 고럴 때에 이것은 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물리쳐야 되겠다 이 생각은 버려야 되겠다 이 욕심은 버려야 되겠다.
이 행위는 버려야 되겠다 이 수입은 버려야 되겠다 이 권세는 버려야 되겠다 이 지위는 버려야 되겠다 이 형통과 유익을 버려야 되겠다. 뭐이든지 죄되는 고것을 고것 현실에서 버릴라고 할때에 그때에 버리라고 자꾸 권유하는 자가 누구냐? 고것이 버리도록 권유하는 자가 그가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자기 속에 새사람이요. 그 배후에 협조를 하고 응원을 하고 있는 자가 누구냐? 그것이 성령과 진리요. 이라다가 신강하다가 그만 그 현실에서 옛사람 그놈을 요 심신이 환영을 하고 새사람을 물리치면 새사람은 쫓기나갑니다. 옛사람의 것이 되어가지고서 고 심신이 옛사람 하고 한 덩어리가 되어가지고 아주 얼렁 뚱땅으로 참 그 인심은 좋습니다. 아주 재미있고 취미 있고 수입 있고 영광 있고 존귀 있습니다. 그러나 고것은 멸망할 고 멸망에 취미를 누렸고 멸망할 영광을 취했기 때문에 고때에 고 심신의 기능은 영원한 사망을 받았습니다. 그럴 때에 새사람을 물리치고 옛사람하고 한 덩어리가 되면 그만 세상이 다 좋아합니다. 세상이 다 좋아하요.
악령도 좋아하고 세상도 좋아하고 세상에 속한 인간들도 다 좋아하고 전부 좋아합니다. 마구 환영이요. 다 좋아하요. 네. 이러니까 사람들이 어리석게 마귀라는 놈이 요것을 요것을 새사람을 꼼작 못하게 결박을 시키고 요 심신을 마귀 고놈 제 욕심대로 옛사람 소원대로 요 심신을 점령을 할라고 하면은 요거는 누구를 심부름으로 보내야 요 유력할까, 요 사람의 유일한 사랑하는 남편을 보낼까 아내를 보낼까 사랑하는 친구를 보낼까 그 사람이 존경하는 무슨 선생이나 상관이나 수상이나 전주나 사장이나 그런 사람을 보낼까 그라면 돈만 보내면 되겠나 음식만 보내면 되겠나 옷 보내면 되겠나 기생 보내면 되겠나 저거 마누라 보내면 되겠나 마귀 요놈이 앉아서 그 작전참모를 할 때에 앉아서 계획을 뎁니다.
누구를 보낼꼬 해가지고서 고것을 보내가지고 고 현실에 자 네가 지금 하나님과 진리를 배반하고 네 욕심대로 네 뜻대로 네 마음대로 내 주장대로 네 중심으로 사는 일, 이라면 나도 좋고 너도 좋고 상관도 좋아하고 아내도 좋아하고 친구도 좋아하고 돈벌이도 되고 사업도 되고 모두 형통하고 마구 이래 가지고 이러니까 어느 것 취할기라. 이렇게 좋은데 이렇게 좋은데 네가 이쪽으로 기울어지면 죄 좋은기 다 네기고 여게서 네가 고집하고 하나님 진리 중생된 새사람 속사람대로 고대로 하면 이 모든 것 다 빼앗겨서 다 빼앗겨서 아내도 빼쪽 돌아가서 남편도 빼쪽 돌아가서 상관도 빼쪽 돌아가서 전주도 돌아가서 사장도 돌아가서 사업도 난파 모든기 난파가 되니까 어쩔 수 없다 이거는 아닌 줄도 알지만은서도 이번만 요대로 살아야 되겠다.
번만 요대로 살자 하고서 사는 삶으로 얻어진 고것은 다 저주 덩어리요. 사망 덩어리입니다. 이러니까 마귀에게 붙들린 사랑하는 가족이 사랑하는 친구가 마귀에게 붙들려 마귀하고 한덩어리 되어가지고 하나님께 붙들려 나까지 죽어 놨으니 그놈을 살려낼 자가 누가 있습니까? 살려낼자가 있어야지. 살려낼 자가 없지. 다 죽었지. 그러나 그때에 아 아무래도 인간이 다 여게서 죽었는데 다 못 이겼는데 나는 예수님의 대신 죽으신 공로가 있기 때문에 공로가 있기 때문에 이것을 이길라면 이길 수가 있다. 지면 세상이 네 것되고 지면 인간이 내 사람 되고 지면 우선 달기야 깨소금 같고 꿀 같고 이기면 이는 다 빼앗기고 하나님 내 하나님 되기 진리 내 진리 되고 하나님 아들된 내가 주격이 되고 심신 이것은 소유격이 되고 이러니까 내가 바로 되고 하나님과 관계가 바로 되고 진리와의 관계가 바로되니 이까짓거 아무리 돼봤자 재물과 친척과 명예와 생명을 원수가 취한들 상관이 뭐이뇨. 내 주께 왔다 하고 딱 나서서 거부하면 그는 도망칩니까. 이것이 땅위에 예수로 말미암은 불화입니다.
불화 불목 내가 세상에 온 것은 화평을 일으키려 온 것이 아니요. 불목을 일으키러 왔다. 부자간에 모녀간에 상하간에 주인과 종 사이에 부부간에 친구간에 불목을 일으키기 위해서 왔다 사망에 한덩어리 되어 가지고 이렇게 우물거리 살면 죽는 날까지 멸망 않는 그때까지는 좋은데 영원히 멸망하고 희망이 없는데 이 생명을 가지고서 안 죽을라고 하니 시비가 일어나고 내가 그걸 이겼으니 진자는 이긴 자의 종이라 내가 이겼기 때문에 고때에 관련된 모든 마귀도 관련된 인간도 사물도 내가 이겼으니 그건 내 종이 되야지. 내게 속하게 됐지. 내가 이기게 됐지. 하나님에게 붙였지. 이러니까 요한복음 15장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은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저희 것이라 하여 사랑하고 보호겠지만은 내가 너를 세상에서서 빼냈기 때문에 세상이 저희 것이 아닌고로 너희들을 미워하고 대적하느니라 너희를 미워하는 것은 나를 미워함이요 나를 미워하는 것은 만유주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으로서 그와 같이 그런 꼴을 당해서 승리했는데 아 피조물 된 네가 그 꼴 당해 승리하는 것이야 지당하지 않느냐.
나도 그런 경로를 겪었는데 내가 그 경로 겪은 것이 뭐이 크다고 네가 별스러운 생각을 가지느냐 지당하지 않느냐. 말씀했습니다. 이래서 자기가 자기에게 있는 옛사람 요놈은 다른데서는 죽이지 못해 현실에만 죽이지. 다른데에서는 죽일 준비만합니다. 주여 내게 있는 옛사람 나는 명예에 대해서 나는 뭐에 대해서 나는 권세에 대해서 나는 직장에 대해서 나는 행락에 대해서 나는 의식주에 대해서 나는 술에 대해서 나는 노름에 대해서 나는 담배에 대해서 나는 계집질에 대해서 나는 춤추는데 대해서 각각 사람에게 마다 고사람으로 잘 잡아 삼키는 그 능숙한 것이 각각 따로 있습니다. 고놈이 오기 전에 내가 이번에는 고놈이 오면 두말할 것 없이 내가 호령쳐서 죽이고 무리치고 꺾겠다 요것을 기도를 합니다. 주여 이번에는 도와주옵소서.
내가 오늘 최고로 이깁니다. 뭐 이번에 친구들이 와가지고 지가 막 아무리 해도 내가 이번에는 술 안 먹습니다. 딱 기도하고 기다리니까 하나님께서 그래 네가 그라면 너 이제까지 죽인 그놈을 인자 죽이고 네가 새사람으로 살고 그놈에게서 벗어나볼래? 예. 이제는 가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슬그머니 기회를 줘가지고 때지 못할 친구들이 주 모아 가지고 좋은 안주를 장만하고 좋은 술을 장만하고 모든 분위기를 만들어 가지고 우 몰리와 가지고 달라듭니다. 야. 오늘만 여 파정리하고 오늘만 한잔 먹어라. 아이구 인자 안먹을란다. 나 예수 믿기 때문에 안 먹는다 난 안 먹는다. 다른데로 갈라 하니까 붙잡아 앉혀 놓고 먹어. 오늘만 인자 끝으로 마지막을 인자해야 될 것 아니가 마지막 잔치로 오늘 한잔만 먹어라. 그래 그라면 마지막이니까 한잔 먹을까 하고서 한잔 먹었습니다. 또 넘어갔습니다. 또 헛일이요. 그리면 또 울면 불면서 기가 찹니다. 또 지금 이제는 이긴다 결심을 하고 어만 결심을 다 합니다. 고 다음에 하나님이 또 한번 줍니다.
고 다음에는 이겼습니다. 이기면 이제 그만 친구와 다 원수로 삼지, 모든 일이 낭파되지지. 이래돼도 어쩌든지 하나님 취하면 조물주 취하면 피조물이야 다 있지 않느냐 이기보자 하고서 이기면 그때부터 고 이긴 그 사람이 사람이요. 요 새사람으로 지금 옛사람 고거 꺾어 이기고 새사람으로 살면 옛사람 좋아하던 친구가 전부 대적이 됩니다. 옛사람 좋아하던 친구가 전부 대적이 되요. 세상이 전부 새사람을 미워하고 다 대적이 되요. 이래 가지고서 새사람으로 살라하면 직장 마찰라 가정 마찰 사회 마찰 학교 마찰 부부마찰 뭐 별별 마찰들이 생겨집니다. 왜? 내가 멸망할 마귀의 사람 옛사람으로 살 때에 나 좋아하던 것은 새사람으로 사니까 다 날 싫어하지 그럴 것 아니겠습니까? 이제 싫어할 때에 아이구 날 싫어하니 이거 안됐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아 싫어하는 것 보니까 멸망할 자로 내가 살 때에는 좋아하지만은서도 구원 얻은 영광스러운 사람으로 참사람으로 살라하니까 싫어하는 것 보니 요럴 때에 싫어하는 저 사람은 멸망에 속한 인간이로구나 멸망에 속한 인간이로구나 마귀에게 속한 인간이로구나 마귀에게 붙들린 꼼작 못하는 인간이로구나 저 사람을 구출하는데에는 새사람 내가 강해야 저걸 빼내지 강하지 안하면 빼내지 못하겠다. 내가 더 장성해서 강해야 되겠다 하고서 새사람으로 이제 술에 대해서 새사람으로 삽니다. 이라니까 마찰이 그만침 있습니다. 그래나 담배는 피웠습니다. 담배 피던 옛사람을 꺾어서 또 담배를 피우는 걸 꺾어서 새사람으로 삽니다. 이러니까 원수가 많아집니까 적어집니까. 얼른 대답을 해요.
많아집니다. 또 이제는 이 사람이 주일을 범하다가 주일을 안 범하고 주일 범하게 하는 놈을 죽이 꺾어서 아무래도 주일 범해야 되겠는데 오늘 주일은 안 범하면 큰 낭파 되겠는데 할 때에 요 사탄아 물러가라 요 원수 옛사람아 물러가라 요놈을 죽여야 한다 요게 내가 아니다 요게 원수다 요놈을 죽여야 된다. 이놈아 그라면 직장 떨지고. 직장 그것도 하나님 계시는데 직장 대중인이 하나님 아니냐 이 놈아 물러가라 하고서 이제는 주일을 범하게 하던 옛사람 그놈도 죽여지 술 좋아하는 옛사람 그놈도 죽였지 나쁜 친구 좋아하는 그놈도 죽였지 춤추러가자 하는 그놈도 죽였지 계 모우자고 하는 그놈도 죽였지 계 모은 그것도 내나 그놈이 그놈입니다. 계 모으는 그놈이 술 먹는 놈이요. 오입하는 놈이 요 마지막에 오만 죄짓는 그놈이 그놈입니다. 제가 안 지으면 자식이 지어도 짓습니다. 여러분들 이렇게 단번에 끝나는 줄로 알지 마십시요.
이랬지. 이제는 거짓말 하는 친구를 거짓말 하는 놈이 죽이고 나니까 그 친구가 없어져졌지 이제는 모든 죄짓는 놈을 내가 다 죽이고 나니까 이제는 내안에 있는 죄짓는 놈은 내 안에 있는 죄짓는 놈은 나 혼자 단독이 이놈을 죽였고 죽였지만은 네 몸밖에 있는 죄짓는 놈 그놈은 내가 죽이기가 쉽지 안해. 이러니까 먼저 내안에 있는 이 불의의 놈 죄짓는 놈 하나님과 원수돼 있는놈 요놈을 내안에 있는 요놈을 죽이고 나니까 그다음에는 내 밖에 있는 이 모든 불의의 당 죄의 당 하나님과의 원수 당 이 세력들이 마구 몰려 가지고서 들이 닥아 옵니다. 와가지고서 나를 달라들어서 시작을 합니다.
그럴 때에 나는 어떤 사람인가 예수님의 부활로 인하여서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예수님의 부활의 효력을 입어가지고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새사람 내가 사니까 새사람 내가 사니까 옛사람으로 살 때에 내편 됐던 자는 전부 내 원수가 다 됐습니다. 그러면 내가 새사람으로 살 때에 새사람으로 사는 나의 원수가 누군가 속으로 한번 헤아려 봅시다. 첫째 악령 둘째 세상 정사 셋째 세상 권세 넷째 소소하게 간교하게 돌아다니는 마귀 이것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 이것들이 움직이고 있는 그 위에 힘줄과 혈맥 같은 모든 인본의 지식 그 위에 당 대가리 마귀 이것이 전부이 우리가 원수에 되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다 원수가 되가지고 있소. 죄도 나의 원수요 불의도 나의 원수요 하나님의 대적도 나의 원수요 저주와 사망 아래 있는 세상도 나의 원수요. 그러면 내편은 없는가? 내편은 하나님이 내편이니라 진리가 내편이니라 중생된 영이 내 편이니라 참사람 새사람들이 내 편이라.
교회가 내편이라. 하나님의 전지전능이 내편이라 이기 내 편이라 눈을 똑 뜨고 보니까 하나님의 창조한 모든 피조물이 실상은 내편이라 눈을 똑 뜨고 보니까 모든 중생되는 움직이는 그 모든 움직임이 나 위해서 예정하신 고 순서대로 이루어지는 순서니 움직임에는 모든 것이 내편이라 만물이 나 죽어서 죽느냐 사느냐 하기 때문에 살겠다고 나로 하여금 진리와 성령으로 자유하는 사람되기를 만물이 탄식하면서 고대하고 있구나 모든 것이 내편이요. 이러니까 하나님 응원대 모든 피조물의 대망 악령과 죄와 마귀는 나를 대항하는 것 같으나 실상은 하나님의 심부름꾼이 되어가지고서 나를 온전케 하기 위해서 그가 있는 것이라 내가 온전해지면 그것도 그대로 두면 나를 범죄케 하면 매를 두드려 맞는다 그말이요. 알겠습니까? 이러니까 아 전체가 내편이라.
이러니까 이제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내가 살 때에 중생된 내가 살 때에 하나님으로 살고 진리로 살고 하나님으로 살고 진리로 살고 하나님과 모든 인류와 피조물을 원하는대로 위하여 사는 요 새사람으로 참사람으로 내가 살 때에 내가 살 때에 내가 살 때에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내 것을 세상과 세상에 있는 내 것이라니 그거는 세상 떠나면 두고갈 것인데 내 것을 이것을 너 그래 살면 그래 살면 이것 절단낸다 너 그래살면 이거 깨뜨린다 할 때에 이대로 살면 그것을 깨트렸으니 이대로 산다고 깨트렸으니까 진리 때문에 깨트렸고 하나님 때문에 깨트렸고 만물을 위하는 것 때문에 깨트렸으니 그것이 누구의 것이 될긴가 그것이 진리의 것이 됐지 하나님의 것이 됐지 내 것이 됐지 만물을 위하는 것이 됐지 왜 모든 것을 그것 때문에 그것이 시행했기 때문에 그것을 위하는 것이 됐지 이러니까 악령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영원히 내 것 만들어 주기 위해서 내가 새사람으로 살때에 뭐 이것을 빼뜰어도 그래 살겠느냐 뺏들어도 뺏기도 나는 그대로 살았으니까 뺏기도 그걸 뺏기도 나는 하나님과 진리와 새사람으로 살았으니까 그 뺏긴 것은 진리 때문에 뺏겼지 하나님 때문에 뺏겼지 참 사람 나 때문에 뺏겼지. 그러니까 고것은 진리에 속한 것이 됐지 진리에 속했기 때문에 그들이 절단을 냈지 하나님께서 속한 것 됐지 내게 속한 것 됐지 그러니까 그것은 영원히 내 것 됐지. 이렇게 해서 세상이 새사람으로 살 때에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절단내는 것은 그것을 새사람의 새사람의 것이 되지 못하고 옛사람의 것이 되어 있는 옛사람 되는 옛사람으로 내가 되어 있을 때에 내 것이 되어 있는 그것을 새사람의 것을 만들고 땅에 것으로 내 것이 되어 있는 것을 하늘의 내 것으로 만들고 일시에 내 것으로 되어 있는 그것을 영원한 내 것으로 만들고 내 것으로 보관했다가 빼앗겨서 빼앗기고 말 것을 영원히 내 것으로 만드는 요 비밀을 깨달았기 때문에 요 비밀을 깨달은 사람은 악령이 와서 위협을 할 때에 그 위협에 넘어 갑니까?
그 위협에 떱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야 내가 좋지만은 너는 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했다. 내가 좋지만은 너는 참 나 좋게 하기 위해서 너는 자꾸 죄만 지으니 그 답답하다 응. 이것이 껍데기를 헤치고 속에 영원불변한 참된 그 이면에 들이 있는 참된 진리의 세계를 바로 파악하고서 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죽임으로 예수님의 죽으심의 효력을 입어야 하고 삶으로 예수님의 부활의 효력을 입어야 하고 요거는 내 자신이 입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입는 것. 내 자신이 입고 내기에 속한 모든 것 내게 속한 모든 것 내기에 속한 모든 것. 뭐? 내 몸에 마음에 죽은 기능 내 소유를 죽은 소유 욕된 소유 약한 소유 혈육의 소유 사형 받은 기능 모든 것. 이러니 이것을 내가 참된 사람으로 살므로 인하여 고것이 참된 사람 때문에 하나님 때문에 진리 때문에 내안에 있는 죽은 기능들이 모든 몸밖에 있는 모든 소유들이 하나님과 진리와 중생된 영, 요 셋 때문에 고 모든 것이 희생되어 짐으로 요 셋 때문에 요 셋에 셋 때문에 희생됨으로 요 셋에게 속하게 되는 요것 때문에 그들이 이것을 박살내서 요 셋의 것이 되고 요게 속하게 되고 요것의 것을 만드는 것 요것의 것이 되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나에게 죽은 나를 살리고 죽은 소유를 살리고 가져가지 못할 것을 가져가게 하고 보관하여 있는 것을 영원히 내 것을 만들고 땅에 속한 것을 하늘에 속한 것으로 만드는 요 비밀을 우리가 깨닫고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응 요 진리를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어떤 나라에서 그 나라에 사람이 저 원수의 나라에 가가지고 원수의 나라에 항복 안하고 하나되지 안하고 자기 나를 위해서 말을 하고 자기 나라를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자기 나를 위해서 공적을 쌓다가 자기나라 때문에 그 사람이 거서 고만 죽임을 받아 죽었습니다. 자기 나라 때문에 죽임을 받아 죽었습니다. 자 그러면 그 자기 나라에서 그 사람을 찾아올 수가 있으면 그 죽은 시체를 찾아오겠소 안 오겠소. 그 시체는 자기 나라에 속했습니까, 죽인 그 나라에 속했습니까? 자기 나라에 속했지 자기 나라에 더 속하게 만들었지 더 자기 나라의 것이 되게 만들었지.
하물며 내 안에 있는 기능과 내 몸밖에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 때문에 진리 때문에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나 때문에 희생이 된 것이니 그것이 진리에게 속하지 안했는가? 속했기 때문에 희생을 당하지. 저희 것이라면 희생을 안하지. 진리에 속했기 때문에 희생을 당하지 내기기 때문에 희생을 당하지 내가 진리에 속했기 때문에 희생을 당했지 그러니까 그것은 그들이 죽임으로 더 진리의 것이 되고 하나님의 것이 되고 내 것이 되어졌지요. 이러기 때문에 중생된 사람으로 사는 자는 세상이 유익되게만 했지 해되게는 하나도 못합니다. 칭찬을 해도 유익 욕을 해도 유익 뺏들어도 유익 또 줘도 유익 받아도 유익 죽이도 유익 매를 때리도 유익 감옥에 갇혀도 유익 모든 것이 유익되게만 피조물이 하지 악령이 유익되게만 하지 해되게는 절대 못하는 것입니다.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새사람으로만 살면 아무도 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새사람이 자라는 것은 새사람이 자라는 것은 죽을 것이 죽음으로 새사람이 자랍니다. 죽을 것이 죽음으로 새사람이 자랍니다. 없어질 것이 없어짐으로 새사람이 부자가 됩니다. 이러니까 새사람은 어데서 자라는가? 새사람은 없어지는 것으로 자라갑니다. 요거 여러분들이 알기가 어려운 말인데 새사람은 없어지는 것으로 부자가 되가고 욕 얻어먹는 것으로서 칭찬 받는 것으로 자라가고 박해를 받은 것으로 환영을 받는 것이 자라가고 욕을 얻어먹는 요것으로서 영광으로 칭찬으로 자라가고 고문과 고행을 당하는 요것으로서 영원한 영광과 존귀의 영광으로 자라가고 죽임으로 완전히 살아 완성이 되어지는 것이 요것이 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 이 생명의 법에서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그 죽으심의 비밀 부활하심의 비밀 그 효력을 우리가 어떻게 입을까. 말로 지식으로 아는 것은 그것은 기본구원에만 속한 것이고 그것은 건설 구원의 자료는 되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에서만 부활도 내가 입을 수 있고 현실에서만 대신 죽으심도 입을 수 있고 효력은 거게서 나타납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세상이 해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삽시다. 세상이 빼앗지 못하는 소유로 가집시다. 세상이 고통스럽게 할 수 없는 사람으로 살고 세상이 죽일 수 없는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람으로 살아났습니다.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돼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로는 이 사람은 모든 피조물은 위하기만 하지 절대로 추호도 해하지는 못하도록 하나님이 정해 놓았습니다. 해하지는 못합니다. 절대 추호도 해하지는 못합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 사람으로 살아야 됩니다. 이 사람이라야 세상을 이깁니다.
전도도 이 사람이 하는 사람 있고 심방도 이 사람이 하는 사람 있고 목회도 이 사람이 하는 사람 있고 설교도 이 사람이 하는 사람 있고 연보도 이사람이 하는 사람 있고 부조도 이 사람이 하는 사람 있고 옛사람이 하는 사람도 더 많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연결이 없으면 상관이 없습니다. 죽으심과 살으심의 연결이 없으면 상관이 없습니다. 죽고 살아 의로운 일을 해야 됩니다. 죽일 자가 죽이지도 안하고 죽일 자를 죽이지 못하고 죽이야 할 그자가 살아가지고서 오만 일을 다 하는 그것은 고것이 인본이요 옛사람이요 적기도입니다. 적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