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부활과 우리의 중생


선지자선교회 1980년 10월 19일 주후

 

본문 : 베드로전서 1:3-7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

 

이 3절과 4절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말로 다 할 수 없는 큰 긍휼을 베푸셔서  하나님이 다시 사람으로 부활하시고 또 이로 인해서 우리를 영생하는 생명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중생시키시고 또 영원한 것으로 우리에게 기업주시는  이것을 여기에 기록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그 창조를 끝난 뒤에 안식일을 주셔 가지고 그 때의  사람들과 그 후 육체의 이스라엘까지 이 안식일을 통해 가지고 구원을 얻도록  하나님이 정하시고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이 안식일에 은혜를 받아 가지고 구원을 이루도록 그렇게 하셨는데 그 분들이  안식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도를 받기는 받았지마는 순종을 하지 아니함으로 이  안식에 이 안식으로 통해서 구원받는 숫자가 많지를 못합니다. 대다수가 다  멸망받고 약간의 숫자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래서 하나님께서 이 안식일로 구원얻는 일을 하나님이 폐지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4장에도 있고 갈라디아 4장에도 있고 골로새 2장에도 있고 로마서  14장에도 보면 폐한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 다시 첫째 안식일로  구원을 이루지 못하고 남아있는 백성들을 위해서 둘째로는 구원얻는 날로 주신  것이 주일입니다. 첫째 안식일로 그들이 구원을 이루지 못한 것은 육체가  연약함으로 인간단독이 그 일을 이루지 못했는데 이제 두 번째 구원 얻는 날로  주일을 주실 때에는 하나님께서 큰 공로를 설정하시고 이 공로 위에서 주일을  통해서 구원을 얻도록 주님이 그렇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제정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주일은 우리가 모든 날 중에 머리가 되는 중요한 날입니다. 이레  중에 첫째날을 주일날로 이렇게 하나님께서 정하셔서 이날은 날 중에 가장  중요한 날입니다.

안식일은 이레 중에 마지막날을 정해서 안식일로 했는데 이제는 이레 중 첫날로  이 주일을 삼아 가지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로 이 주일날 은혜를 받아  가지고 구원을 이루도록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다시 새날을 두시면서 하나님이 여러 번 경고를 하시고 주의를 시키신  것이 너희들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지 말아라 너희들의 마음을 둔하게 만들지  말고 어찌하든지 자꾸 자기의 마음을 깨끗하게 새롭게 예민하게 밝게 이렇게  노력을 해서 모든 보고 듣고 느끼고 접하는 것이 정확성있게 정확하게 되어  지도록 그렇게 노력을 해라 했습니다. 그런고로 날 중에는 주일날이 제일 중요한  날이요 또 중요한 날일 뿐만 아니라 주일날은 제일 중요한 일을 해야 되는  날이요 또 중요한 것을 받는 날입니다.

우리가 일을 아니하고 쉬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일을 돌볼 여가가  없어 이 중한 일을 하기 위해서 일반적인 그 일을 뒤로 두는 그것이 주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엿새동안에 부지런히 일하고 이레 되는 날은 한 번 쉬는 날이라 그렇게 생각하면  아주 그 인식이 잘못된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그런 일을 둬두고 더 큰 일을 하는 날이 주일날입니다.

그러면 주일날은 어떤 일을 하는 것인고 하니 주일은 하나님을 이전보다 더 알고  또 이 하나님에게 내가 올바른 행위를 해서 이전보다 하나님과 가까워져야  합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지면 가까워지는 것만큼 자기는 올바른 사람으로 변화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일은 하나님에게 대한 모든 것이 바로됨으로 자신이 이 주일  이전보다 주일을 하나 더 지켰으면 그만큼 자기는 성화를 받아야 됩니다.

거룩하게 함과 복되게 하는 날입니다. 성화를 자기가 받아야 됩니다. 이날  이전보다 새사람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이  은혜를 자기가 이 주일을 통해서 바로 깨닫고 바로 느끼고 바로 실감을 가지고  여기에 대해서 자기가 올바른 사람이 되어짐으로 하나님의 뜻인 진리를 자기가  깨닫게 되고 또 이제는 이 진리대로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받게 됨으로 이대로  실행하면 이것이 복이 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아는 것만큼 자기가 성화되고  뭐 달리는 어떤 이종교에 교주를 생각함으로 자기가 변화를 받고 어떤 철인을  어떤 도덕가를 봄으로 변화받는 그런 것은 다 사망아래에 있는 것이지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화는 아닙니다.

공자는 그가 늘 주공을 보면서 자기가 변화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몇칠  동안 중에 주공을 보지 못하면 그는 참 죽은 것과 그렇게 여기고 늘 자기에  사모의 대상을 주공으로 삼아 가지고 변화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을  닮은 것이지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하는 그런 것을 아닙니다. 주일날은 자기가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 이 분이 하나님이신데 이 분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자기가 이모로 저모로 차차차차 깨달아짐으로 하나님도 더 알게 되고 또  하나님을 아는 것만큼 자기도 모든 행동과 사람이 다 변화가 되어지고 하는  그것이 성화입니다. 주일날은 이것을 우리가 받아야 됩니다. 주일은 하나님을  가까이함으로 가까이하면 한 것만큼 반드시 성화를 받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간증을 제가 들었는데 그 사람이 예수 믿기 시작한 첫주일을  예배당에 가서 볼 때에 하나님이 창조라는 창세기 1장 그 설교를 듣고 그 들을  때에 우주의 근원과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그 분이 첫 설교를 듣고 그  때에 자기가 하나님께 대한 변화를 받은 그 후 그는 그 뒤에부터 이 하나님을  버릴래야 버릴 수 없고 떠날래야 떠날 수 없고 이 하나님을 배반할래야 잊을래야  부인할래야 부인할 수가 없는 사람이 되어서 그만 하나님을 떠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하는 그 간증을 제가 들었습니다.

그 사람이 주일을 바로 지킨 사람입니다. 우리는 처음과는 성화되는 것이 그렇게  색다르게 되지 않기 때문에 뚜렷이 그렇게 표가 안나도 어쩌든지 한 주일 한  주일 하나님이 주일을 주신 목적과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욕망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그 주일에 이전보다 더 알고 더 가까이 되야 됩니다. 알고 더  가까워짐으로 자신이 거룩하게 변화가 되어집니다. 또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필연적으로 변화가 됩니다. 아마 이번에도 이 기도하는 데에 여러분들이  아직까지 기동에 어려서 어떻게 기도해야 할 것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이 있기는  있지마는 그래도 기도하면서 성경에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라는 것을 증거해  주신 성경증거도 받고 또 자연계시인 이 모든 만물을 볼 때에 성경에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런 하나님이구나 하는 그 깨달음대로 기도하면서 이 하나님을  평소에는 밥 먹으면 그만 가족들이 들썩들썩 하면서 텔레비만 보고 그만 이래  누워자고 그러하면 어떠한 세상이야기나 한 마디나하고 우스운 이야기나 한 마디  하고 또 더 나쁘게 놀면 ( ) 장단이나 하고 이러다가 그만 꼬시라져 자는  우리들인데 이 기도회가 시작하고 난 다음에 저 먼데서부터 한 시간 차타고 오는  그런 사람들도 일을 부지런히 마칠때에도 모든 것이 긴장이 되어서 그 정리를  빨리하고 예배당을 향하여서 오면서도 그 마음이 새로워질 것이고 깨끗해질  것이고 하나님과 가까워질 것이고 와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부르니 쓸데없는  생각하던 것이 차차 없어지고 다른 모든 잡념이 없어지고 하나님이 자꾸 생각이  되지니까 마음도 생각도 밝아지고 또 막상 하나님을 생각하고 보니까 성경에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인데 가책되는 것도 하나씩 둘씩 뜨문뜨문 생각하면서  고쳐지고 이러니까 하나님도 여러분들과 가까워졌을 것이고 여러분들도 하나님과  가까워져 그 본인이 몰라도 많아 성화를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제가 처음 기도할 때에 그 때에 보고 지금 보면 어떤 사람들은 참 기도에 줄을  타고 들어가서 벌써 주님을 만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반에도 많이 있고  남반에도 많이 있고 많이 있어서 이전보다 주님과 가까워졌고 또 자신이  하나님과 진리와 천국으로 신앙으로 변화가 된 것을 본인들이 알 것입니다.

그와 같이 주일날은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가까이 하는 이런 큰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해서 나게 하시고 또 대속의  공로를 입히시고 우리 때문에 만물을 예정하시고 창조하시고 이렇게 섭리하시는  것이 먹이고 입히고 하는 것이 우리가 먹이고 입히고 자녀 낳고 이렇게 살다가  또꾸라져 죽어( ) 그것 때문에 한 것 아닙니까 그까짓 것이야 암만 송장노름이요  송장벌인데 뭐할 것이 있겠서 하나님은 이렇게 하신 것이 우리가 하나님과  가까워져서 하나님을 똑똑히 알고 또 우리자신도 똑똑히 알아서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제일 먼저 바로 맺고 그러면 따라서 모든 사물과의 관계들이  바로 맺어지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이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에게도 친지만물을 창조하시는 것이 큰 일이 아니라 이것들을 이용해  가지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가까워지게 하는 이것이 큰 일입니다.

하나님에게도 이 일이 제일 큰 일이요 그면 이렇게 가깝게 되면 가깝게 된 것  만큼 우리는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가 됩니다.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일이고 그  다음에는 주일날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 어떨 때는 하나님에게  대해서 하나님의 목적에 대해서 섭리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하나님의  법칙에 대해서 우리가 사물에 대해서 이웃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된다는 이 참  사람이 조물주에게 거슬러지지 아니하고 조물주에 기쁨이 되어 복을 주실 수  있는 이런 사람으로 살아가는 그 생애법칙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실  때에 이것을 가르쳐서 진리라 말합니다.

가르쳐 주시는 이 진리를 깨닫고 진리만 깨달으면 지식은 사람을 교만케 하는  결과 밖에는 못 맺습니다. 그 지식은 깨닫고 지식대로 하지 못하면 자기는  성화되지 않고 지식만 알아 있으니까 그 지식은 자기구원에는 써 먹지 못하니까  다른 사람하는데 논평해서 저 사람 성경 이런데 저렇게 행한다 안행한다  성경대로 되었다. 안되었다 다른 사람을 논평하는 어리석게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심판자리에 앉아서 하나님의 진노만 싸지 자기에게는 효력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주일날 하나님이 가르쳐주시는 이 도리를 지식적으로 자기가 외울 만큼  알았다고 그 날은 진리에 대해서는 다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바울이 늘 말하기를 나에 전하는 것이 말에 있지 않고 성령과  능력에 같이 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진리를 배울 때에 성신의 감화감동이 이 진리와 함께와야 내가 이  진리대로 감화감동을 받아서 이 진리대로 감동된 사람 진리대로 변화된 사람이  되고 능력을 또 받아야 이대로 실행을 하고 싶어할 때 실행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도를 받아서 하나를 실행하고 나면 굉장히 기쁜 것입니다. 하나를  실행하고 나면은 기쁜 것을 여러분들이 많이 다 체험했을 것입니다.

또 자기가 무엇 때문에 하나님 앞에 깨닫고 결심한 그 결심을 그만 양보해  버리고 신앙의지가 넘어지고 돈을 취했든지 뭐를 취했다 할지라도 정신없이 취할  때에는 자기가 깨달은 진리를 버리고 그것을 취했지마는 막상 취하고 난  다음에는 구진 고기먹은 것처럼 깨주름한 그만 그 속에서부터 병들어 나옵니다.

명령함이 어쩌든지 옳게 바르게 참되게 살아보자 하는 양심에 속에 서로  용솟음치는 그만 양심에 힘이 없지 의에 힘이 없지 그 사람의 정리가 없지 그면  흐리멍텽하게 이래 가지고 흐리고 부패해지는 것을 우리가 얼마든지 체험을  합니다. 그런고로 주일날 하나님을 찾은 것만큼 자기는 성화가 되고 하나님의  진리와 영감과 능력을 받은 것만큼 반드시 그 다음 생활에 실천이 됩니다.

그 다음 생활에 실천이 되는 것입니다. 실천이 되면 그것이 막바로 영과 육  내세와 금생의 복입니다. 그것이 복이요 하나님이 주일날 복 주시는 것을 복이  되어지는 그 복을 만드는 이치와 능력을 주기 때문에 그 이치 그 능력 가지고  만들면 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주일날 하는 일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이 일과 복이되는 진리와 성령과 능력을 받는 일과 이 두가지 이 일을  우리가 하면 우리에게 오는 수입이 뭐이냐 하면은 성화와 축복 이것이 우리에게  오는 수입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주일날은 이 큰 일 두가지로 큰 수입  두가지를 하는 것이 주일날입니다.

만일 그 사람이 주일을 지키기 전에 사람이나 지킨 그 다음 사람이나 변화가  없다면 그는 거짓 부리요 그것은 외식자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속인 자요 자기를  속인 자요 그는 가증된 자입니다. 주일을 범한 자입니다. 이 주일은 복도 주고  거룩케 하는 날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땅위에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은 33년 동안 계실 때에 그  어른이 안식후 첫 날 안식 후 첫 날 그 때는 주일 지킬 때는 아닙니다.

아직까지 오순절 성령이 강림하시기전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기 전에는 주일이  우리에게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폐지된 그 날만 가지고 버림당하는 그 일만 했지. 구원을 이루지  못했는데 예수님께서 그 때에 신약시대에 관한 일을 하실 때에는 다 안식일날  하지 않고 안식일 지난 그 다음 장차 주일이 될 이레 중 첫날에 이 날에 모든 일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신 그것도 주일날  하셨고 또 변화산에 가셔가지고 변화받은 그 날도 이것은 신약에 속한 일이기  때문에 주님이 이레 중 첫날에 그 일을 하셨고 또 신약시대에 속한 일이기  때문에 예루살렘에 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하신 일도 이레 중 첫날에 입성을  하셨고 또 예수님께서 부활도 이 이레 중 첫 날 부활을 하셨고 또 그 뒤에 여러  주일을 지킬 때도 이레 중 첫 날 주일을 지키셨고 그 후에 사도행전 2장에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신 그 날도 주일날 성령이 이레 중 첫 날에 성령이  강림했습니다. 이래서 이레 중 첫 날로 다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구원을 이루는 이 복의 날로 새날을 정해주신 이 주일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에도 이 생명에 속하고 (99 )속한 신령한 이스라엘에게 관한 행사를  하실 때에는 아직까지 주일이 아니지만 이레 중 첫 날에 이 일을 하셔가지고  이레 중 첫 날 우리의 구원의 날로 다시 하나님이 허락해 주실 것을 예표하고  예고해 두셨습니다. 이러다가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 사죄도  다 이루었고 칭의도 다 이루었고 하나님과 화친도 다 이루었습니다. 이루었는데  이루어 놨지마는 서도 이것을 우리가 가지고 누려야 되겠고 이 사람이 되어져야  될터인데 이 모든 재료는 다 마련해 놨지마는 서도 이대로의 건설을 하는대로는  우리단속이 안되기 때문에 성령님에게만 맡겨 가지고 안되기 때문에 우리의 구속  주 예수님께서 다시 우리 대속적인 제물이 있어야 되기 때문에 부활하심으로써  하나님이 영원히 사람되셨다는 것 하나님이 33년 4개우러 하나님이 피조물로  지내신 것도 이것 참 우리는 암만 말해도 측량 못할 큰 일인데 영원히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우리의 중보자가 되시기 위해서 하나님과 사람이 신인양성일위를  다시 가지신 이 사랑과 희생을 참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암만 크다 크다 해보았자 성령의 감화가 그에게 와서 감동시켜 주지  않으면 아무도 모릅니다. 성신의 감화라야 알지 감화받은 것 만큼 알지 감화받기  전에는 모릅니다. 이렇게 주일 날은 우리가 이로 인해서 하나님을 가까이함으로  성화를 받고 또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대한 법칙을 요구와 명령을 우리가 바로  알아 그대로 실행할 수 있는 영감과 능력과 그 지식인 진리를 우리가 주일 날  받는 이 일과 이 두가지 수입 두가지 일을 우리가 주일 날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주일 날은 자기가 성화가 되어야 되지 그리하지 않으면 주일을 잘못  지켰습니다. 주일 날 나는 어제까지는 이렇게 살았지마는 이제는 안된다 내가  이렇게 살아야 되겠다 하는 새사람으로 변화가 없으면 그 사람은 주일을  껍데기로 지킨 외식자입니다.

이 주일 날 아무 수입보지 못한 사람이요 또 그 사람이 주일을 통하여 자기가  외우던 진리라도 영감이 안오면 거기에 대한 각오나 결심이나 능력은 안오는  것입니다. 자기가 이미 알고 있던 것이라도 새롭게 깨달아지고 그대로 살지 못한  것이 마음에 원통하고 두렵고 이대로는 이제는 요대로 살겠다 하는 그 소원이  생겨지는 것이 영감이요 이렇게 그 다음 날부터 살라고 할 때에 살아지는 그것이  능려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실질적으로 효력이 이루어져야 되지 그 효과가 나타나야 되지 공연히  주일날 일만 안하고 왔다 갔다하면 된 줄로 이렇게 아는 것은 이것은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인데 내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하신대로 이것 믿는 사람되는  것 아닙니다.

옛날 이스라엘이 안식일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이 가르침을 받았지마는  믿음을 화합치 않아서 다 멸망을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도 그 때와 꼭 같습니다.

믿음을 화합치 않으면 우리는 벌써 하루하루 사는 것이 자꾸 죽는 것뿐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몸의 기능이 살아나지 않으면 죽습니다. 안 살아나면 죽습니다.

하나님이 대속으로 살아나서 법적으로 살아나 있지마는 이것이 다시 죽지 않으면  영원히 사는 것인데 살아난 것이 다시 구속을 벗어버리고 죽으면 헛일입니다.

그런고로 우리에게 하나님이 안식일을 주신 것은 만물을 창조해서 그것을 선물로  주시면서 안식일을 주었고 주일을 주신 것은 만물을 주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우리에게 주셔가지고 이 주일을 우리에게 복되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일이 우리에게는 이차적인 구원의 날인 것을 깨닫고 이 날은 날  중에 제일 으뜸되는 날이요 제일 중요한 일 두 가지를 하는 날이요 두 가지 일을  하므로 두 가지 중요한 수입을 우리가 가지는 날입니다.

그러면 이 날만 잘 되었으면 그 다음 날은 문제가 없어 이 날만 잘되면 그 다음  날은 다 잘될 수 있습니다. 잘 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이 날이 바로 못 되면  그 다음 날이 바로 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면 이 주일은 이렇게 큰 일을 큰 일을  하고 큰 수입을 받는 이 주일인데 이런 복된 주일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때에 그 대가를 뭣을 내고 했는가 이 주일은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그 대가를  뭘로 했습니까 하나님이 창조주가 다시 피조물 꺼플을 입고 영원히 피조물 같이  되어 가지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자로 역사하는 이 책임을 짊어 졌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까지에 영원전부터 목적을  정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기 까지에 영원전부터 목적을 정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까지의 예수님이 우리를 대속하신 이 사랑과 이  공로와 예수님께서 삼일만에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앞으로 영원무궁토록 우리의  중보자되시는 이 역사를 계속하시는 예수님의 공로와 이 둘이 양쪽이 중량이 꼭  같습니다. 중량이 꼭 같습니다.

필요도 고통도 꼭 같습니다. 어느 쪽이 무겁고 가볍다 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 우리에게 이 주일을 주신 것입니다. 이 주일을 예수님께서 이  주심으로 우리에게는 무슨 일이 있느냐 거듭나게 하사 이랬습니다. 거듭나게  하서 산 소망이 있게 했다. 영원무궁토록 죽지 않고 쇠해지지 않고 낡아지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완전성 영원성, 불변성의 나라로 불변성의 세계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주일을 주신 그 근거의 공노는 예수님의 부활이요 목적은 우리를  중생시켜서 산 소망을 가져 영생하고 영생하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모든  것을 구비해서 우리의 기업으로 주시기 위해 가지고 하신 것입니다. 암만 내가  여기서 강단에서 말해도 여러분들에게 성신의 감화가 없으면 이는 참 하나의  괴변과 하나의 이종교에서 말하는 것과 같을 것이요 영감이 있는 것만큼 이 일을  우주나 영계나 이런 것 몇 억억만큼더 보다도 큼니다. 큰일입니다.

여기에 자기와 자기를 전부 솔박 다 드려도 조금된 아깝지 않고 마음에 원통치  않고 원하고 원하는 그것이 만족되지 않할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무슨 긍휼 많으신 긍휼 맣으신 긍휼 많으신  긍휼이란 말은 무한의 긍휼이란 그 말이요 우리는 너무 입을 많이 입에만 있고  영감을 뒤따라 오지 않기 때문에 무한이란 말을 예사로 맙시다.

여러분들 이 땅위에 무한이 어디 있습니까 무한히 있는 것 여러분들이 아는대로  말해 보십시오 무엇이 무한입니까 여러분들의 가진 것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가진 것 외에 여러분들에게 무한이 있습니까 무한성의 것이 있습니까 영원성의  것이 있습니까 불변성의 것이 있습니까썩지 않는 것이 있습니까 쇠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까 낡아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까 죽지 않는 것이 있습니까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하나님이 다시 사람으로  살아났습니다. 하나님이 다시 사람으로 살아났습니다.

자기가 주를 인해서 천해질 때에야 주를 위한 천해짐이니까 거기야 뭐 말한 것도  없지마는 자기가 형제를 인해서 천해질 때에 억울하다 손해다 이렇게 할 터인데  하나님을 생각하고 형제를 인해서 천해질 때에 형제를 인해서 천해질 때에  주님이 나 위해서 부활 하셨는데 주님이 원하시는 인간구원에 내가 천함을  받았으면 요만한 천함을 받지 못할 것이 뭐이냐 하면서 형제를 위해서 천함을  받아보고 손해감을 받아보고 억울함을 받아 볼 때에 자기가 이 예수님의 사랑에  영감이 왔을 때에 자기가 형제를 인하여 여러 가지 희생 손해 천함 억울함 이런  것을 당하는 것을 형제가 모르고 형제는 몰라도 자기는 그 형제를 위해서  구원하기 위해서 이것을 당하는 그런 일을 자기가 당할 때에 다 여러분들에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렇게 당할 때에 인간이지마는 하나도 잡것이 섞인 것이  없이 그 형제를 위하여 희생함이 그것이 기뻐지고 희생은 생각지 아니하고 그  형제가 복되게 바로되게 옳게 될 거기만 자기 마음이 집중되어지는 그런 것을  여러분들이 느꼈을 것입니다.

그것을 느껴보면 독사와 같은 나도 예수님 말미암아 형제를 사랑할 때에 이렇게  되어지는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일을 성경에 이렇게 선포해 놨었는데  선포해놓은 그것을 선포해놓고 거짓 것으로 선포했겠으며 하나님이 날  사랑하시는데 권태가 날 것이며 (겨우 --) 질 것이며 거짓부리가 섞이겠느냐  하는 것이 그것이 확신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형제를 그 하나님 편에서 형제를 형제의 구원을 위해서  희생해보는 그 희생으로써 하나님이 자기를 위해서 희생할 것에 대해서 확신이  갑니다. 제가 형제를 사랑해보지 않은 자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한다는 그  사랑이 믿어지지를 않습니다.

자기가 형제를 위하여 많은 손해를 당하면서도 형제를 사랑하는 그것을 보고야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한 것이 느껴집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러분들 여기 주일학교 반사들이 그 학생들을 사랑하는 그  사랑하고 학생들을 위해서 자기내들이 충성의 희생을 하므로 그로 인해서  하나님이 날 사랑할 것이다 뭐 그런 해석도 안 붙여지요 해석도 붙이지 않고  자기가 주일학교 학생을 위해서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를 기울여 보는 거기에서  하나님이 자기의 구원을 위해서 기울인다는 것이 확신이 되어집니다. 이것은  논리로 따진 것이 아니라 저절로 확신이 되어집니다. 그러나 사람을 구원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그 일을 해보지 않은 자는 성경을 보고 암만 외우고 아무리 백  번 천 번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자기가 뭐 각오하고 결심하고  틀림없다고 확신합니다. 예 틀림없습니다. 백 번해도 소용이 없어 믿어지지  않는데 어찌합니까? 믿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네가 남의 죄를 남의 멸망에서  해방시키는 남의 죄를 사해주는 사해 준다는 말은 해방이란 그 말이요 남의  죄에서 해방시켜주면 천부께서도 너의 비뚤어진 것을 해방시켜주신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런고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산 소망 산 소망이 이로 인하여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서 우리에게  산 소망이 생겼습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이것도 (--) 썩지 않을 것 썩지 안할 것을 주님이 준다 여러분들이  생각해 봤습니까 이것을 생각하는 사람들 땅위에 제가 일생을 기울여서  날뛰지마는서도 썩지 않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낡아지지 않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더러워지지 않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를 배척하고 떠나지 않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울리고 떠납니다. 이런 것들을 위해 우리가 살았는데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산 기업이 우리에게 있게 했는데 그러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산 기업을 받아 본사람을 알 것입니다. 받아 본 사람은  그리스도의 형상대로 성화된 것이 죽겠습니까? 죽을 수 없습니다. 아 변화된  자기의 변화된 성화된 것 그것이 죽지 않는다는 절대로 죽을 수가 없고 죽일  수가 없고 죽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보았습니까 볼 수 있습니다. 체험할  수 있습니다. 느낄 수 있습니다. 만일 그것이 죽으면 어찌 되겠습니까 그러기에  다 만져보고 또 자긱가 가져보고 입어보고 벗어보고 그것을 너희들이 알리라  너희가 하나님이신 하나님 안에 죽음이 있습니까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안에  있는 것을 너희들이 다 알리라 알리라 압니다.

이러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20세기 과학이 말하는 눈에 잡은 것, 눈에 보이는  것, 손으로 잡는 것, 입에 빨건 다물고 있는 것 이것은 허무합니다.

없어질 수도 있고 그것이 뭔지도 모르겠소 이러나 주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루어진 것은 그것을 의심할레야 의심할 수 없는 우리 심령속에 확실히 확정이  되어 있는 것을 여러분들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기독교는 보고 믿는 것이지 안보고 믿는 것 아닙니다. 쇠하지 않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하늘에 간직해 놨다  하늘에 간직했다 그 말은 우리 인간들의 말로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는  방편입니다. 하늘에 간직했단 말은 공중에 간직했단 말이 아니요 저 영계에  간직했단 말도 아닙니다. 하늘에 간직되었다 그 말은 지고의 것이기 때문에  지고의 것이기 때문에 지고에 간직되어 있다 완전의 것이기 때문에 완전 안에  간직되어 있다.

영원불변 안에 간직해 있다 하는 것을 말합니다. 진리 안에 간직되어 있다 온전  안에 간직되어 있다 영원불변 안에 간직해 있다 쇠하는 것이나 썩게하는 것이나  낡아지는 것이나 그런 것이 가까이 하지 못할 그 참 속에 간직되어 있다 너희가  5절에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해서 하늘에 간직한 것  완전 속에 들어 있는 썩지 않을 것 쇠하지 않을 것 더러워지지 않을 것 죽지  아니할 것 영은 중생되었고 우리 마음과 몸은 이 다음에 부활할 터인데 마음의  기능과 몸의 기능은 기름 부활을 해야 됩니다. 지금 살아나야 됩니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법적으로 살아났는데 법적으로 살아났고 산 것이 되었는데 요 다음에  현실을 만날 때에 산 자로 살면 됩니다. 산 자로 살면 됩니다. 다시 죄에  얽매어서 자살행위로 죽으면 할 수 없지마는 서도 죄를 범하지 않으면 안 죽으면  영생합니다.

이래서 법적으로 살렸지마는 이것이 죄를 짓지 않아야 살고 의를 행하여야  기업을 얻고 능력을 얻고 하나님과 결합된 이것이 떨어지지 않아야 하나님의  충만이 그의 것이 되어지는 것인데 이 일을 실천해서 하나하나 이루게 하실려고  하나님이 현실을 주시는데 이 현실에서는 이런 것이 이 면이 이루어지고 저  현실에는 저 면이 이루어지는데 이 현실에 이것을 이루라고 주시는데 사죄,  칭의. 새생명의 구속을 받기는 바다았지마는 서도 아직까지 실력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세가지 구속받은 이 사람으로 온전히 이루워지기 위해서 하나님이  능력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말세에 나타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해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와 있습니다. 와  있는데 이 능력을 우리가 쓰면 됩니다. 이 능력을 찾을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와  있는데 이 능력을 우리가 무엇으로 사용할 것입니까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용합니다.

믿음으로 사용합니다. 다니엘이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순종으로 기도를 끊지  아니하고 기도하는 사람으로써의 순종 그것을 인해서 하나님의 능력은 사자의  입을 봉할 수 있었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들어 있는 그 불세력은 태우지  못하게 하는 그 하나님의 능력이 하실 수 있었습니다.

능력은 와 있는데 우리가 믿으면 그 능력이 우리와 함께하고 우리가 믿음을  배반하면 그 능력은 우리에게서 쫒겨 나가야 됩니다. 왜 그 능력이 우리에게  쫒겨 나가야 능력입니까 무한한 능력이지마는 서도 우리에게 자유성을 허락했기  때문에 우리의 자유성을 가지고 우리가 배척하면 그 능력은 밀려갑니다.

그 능력이 제일 하기 어려운 것은 자유성 가진 우리들이 자원함으로 능동적으로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이것만 하면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6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 하도다 이러니까 우리가 현실을 만날  때에는 우리가 잠간 착각하기 쉽단 말이요. 현실을 만날 때에는 이 현실을 나  혼자 그 현실을 통과하는 것인 줄로 이렇게 안단 그 말이요 나 혼자 통과하는  것인 줄로 알고 자기 힘보고 그 앞에 현실 보고 하니까 아무래도 그 현실에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은 내 힘으로써는 내 각오로서는 내 의지로서는 내  결심으로서는 내 신경을 가지고는 아파서 호딱 거리고 그때 변질되지 않을 수  없는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잠간동안 근심합니다.

주여 이 고문과 고행에 내 신경으로써는 나는 아픈 것을 못 견디는데 이 고문과  고행을 닥치면은 나는 원하지 않는 그 신경 자극으로 내가 아파서 못 견뎌서 그  때에 망령을 부릴까 두렵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여 도우시옵소서 이렇게 자기가 기도하고 하는 이런 것이 모두  다 잠간 동안 근심하믐 행동입니다. 이렇게 근심하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그 명령 하나님이 돕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기도 안 해도 좋습니다. 틀림없소 우리가 믿어지지 않기 때문에 믿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가 보호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나는 죽어도  그대로 살아도 그대로 믿고만 나가면 믿을 때에 두렵고 떨리지 않고 믿어 보니까  통과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통과됩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능력으로 통과되니 지나가고 난 다음에는 잠시 동안 근심하게  되지 아니할 수 없는 이 현실을 한 번 순종을 변동하지 않고 통과해 보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자기를 지킨다는 것이 그것이 확실히 인정되어지고 체험되어  지고 경험되어 졌습니다.

이러니까 이제는 이 번보다 조금 더 어려움을 닥치니까 과거에 경험이 있으니까  과거와 같은 어려움은 쉽고 그까짓 것이야 그대로 통과되겠다 하지마는 또 큰  어려움이 되니까 또 자기가 되고 근심됩니다.

그렇지 않고 그 믿음으로 믿고 나가면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하심으로써 승리하고  크게 기뻐하는 기쁨이 우리에게 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려움을 자꾸 통과케 하느냐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더 바라보고 더 믿어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속해서 사죄, 칭의, 새생명 주었는데 죄없는 일이 강해서  점점 큰 죄를 당해도 큰 죄를 당해도 그 죄에게 종되지 않고 큰 의를 당해도  낙심하지 않고 쓱쓱해 내버리고 하나님과 이간 붙여가지고 원수되게 하나님과  벌어지게 하는 것이 점점 강하고 -- 한 것이 와서 이간을 붙이고 하나님과  끊어지게 해도 하나님과 끊이지 않아서 마지막에는 세상의 어떤 것이 다와서  하나님과 나 사이를 벌어지게 하려해도 세상에 어떤 강한 것이 와 가지고 나로  하여금 의를 하지 못하게 방해해 봐라 세상의 어떤 것이 와 가지고라도 나로  하여금 범죄케 해봐라 온세상이 다 와도 사죄를 버리지 않고 칭의를 버리지 않고  하나님과 결합된 이 생명생활을 버리지 안했으니 이는 세상을 이긴 사람이요  이는 아무 것도 하나님과 그를 나누지도 못하고 불의케도 못하고 범죄케도  못하니까 세상을 이긴 사람이요 자기 아닌 원수인 거짓 자기 옛사람 자기 그  놈을 이긴 자기요 죄도 이겼소 불의 이겼소 마귀도 이겼소 세상도 이겼소 하나님  한 분만을 자기 위에 오셨으니까 하나님은 나 위에 왕이 되시고 하나님 다음에  피조물은 내 권한으로 되버리고 내것이 되어야지 영원히 나에게 치리를 받아야지  통치를 받아야지 이것이 교회의 위치요 성도의 위치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주일을 주셨습니다.

그런고로 주일은 엿새동안 자기 일을 힘써 하는데 엿새동안 자기 일이 무엇인가  자기 일은 주일날 성화된 것 만큼의 사람, 과거에는 한 치 성화자가 되었다면 한  주일을 지내서 한 치 한 품이든지 더 장성한 성화자가 되었으면 성화자가 된  그것이 자기인데 그 자기로 하나님 앞에서 진리 지식을 조금 더 범위 넓게  한가지 더 받았으니 과거에 생활보다도 조금 구비하고 원만하게 이대로 살 수  있는 감동과 능력을 받아가지고 주일날 성화받은 성화의 사람대로 주일날 자기가  진리와 능력과 영감을 받은 그대로 엿새동안에 어느 직장에서나 어디서나 요대로  사는 요것이 자기 일 하는 것입니다. 엿새동안 자기 일 한다는 것은 땅위의 무슨  이런 일 저런 일 한다는 말이 아니요 껍데기는 어떤 주부노릇을 하든지  남편노릇을 하든지 자기가 직공노릇 사장노릇 정치노릇 무슨 노릇 하든지 그  일은 그 무대라는 그 무대안에서 ( ) 그 껍데기는 무대안에서 그 속에는 자기가  주일날 성화된 그 사람으로 그 무대에서 사는 연습하고 주일날 자기가 깨달은 그  진리대로 그 무대속에서 하고 이러기 때문에 한 사건에서 인간이 천인이 살면  천인이 다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마는 그 일에 이런 사람으로 일하고 저런  사람으로 일하는 일하는 사람으로 각각 다르고 그의 중심이나 양심은 각각  다르고 그의 생각하는 생의 법칙은 각각 달리하고 있습니다.

욕망도 다르고 다 다릅니다. 이러기에 한 자리에서 두 사람이 같이 누워자되  하나는 멸망 하나는 구원 하나는 버림, 한 밭에서 둘이 일을 하고 있지마는 서도  하나는 버림, 하나는 구원 하는 이것을 간단?게 우리에게 표현해 가지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고로 주일날이 이렇게 중요한 날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일날 하는 일이  성화받는 일이요.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일이요 하나님의 은혜 가까이 하는  일이요 우리가 진리와 능력과 영감을 받는 날입니다.

신령이란 말은 영감을 받아 가지고 중생된 사람이 중생된 사람이 주격이 되어  가지고 성신의 감화받고 진정 하나님을 더 하나님을 점점 더 알고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는 것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는 것 더 닮아지는 것 하나님 형상 더  된 것 예를 들면은 하나님이 생화라면 우리는 조화 같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과 처음에는 아주 하나님과 다르지마는 차차 예수님을 믿는  가운데에서 성질이 하나님과 점점 같아져지고 뜻이 같게 되어지고 지식이 같게  되어지고 또 지혜가 같게 되어지고 소원과 모든 욕망이 같게 되어지고 이러니까  제법 비판도 같게 되고 평가도 같고 또 희로애락도 하나님과 같고 생애도 같고  이러니까 비록 피조물이지마는 창조주이신 그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해서  하나님의 성품과 같이 되어져 가는 이것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ㅛ 이것이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요 이것이 성화요 이  사람이 되어 그 법에 따라서 사는 이것이 의의 행동이요 이것이 결과로  하나님앞에 영육의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어떤 면으로 이해를 할 것인가 저가 나를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하나님을 아니까 높인다 그 말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아서 상대하니까 높아질 수 밖에 더 있겠습니까 그럼 우리가 주일날 성화를  받는데 변화를 받는데 어떤 면으로 변활를 받을 것인가 그 면에 대해서 해석은  여러분에게 지금 할 시간이 없고 간단하게 종목만 몇가지 들어서 말하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그 존재하심이 어떻게 하나님은 존재했는가 누가 만들었는가  아무 것이 그 사람은 어째서 그렇게 그 사람이 큰 사람이 되었나 누구를 인해서  되었나 무슨 사건으로 인해서 되었나 아무나라는 그 강대국이 되었으니까 그  강대국 나라는 어떤 원인으로써 무슨 혜택으로써 강대국이 되었나 이것 모양으로  자꾸 따져 봅니다. 하나님은 무엇으로 인해서 무슨 덕을 봐 가지고 뭘 힘입어서  하나님은 무엇에 도움을 받아서 무슨 재료를 받아 가지고 되었나 생각해  보십시오 땅위에는 그랗게 안 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 분은 자존했습니다. 이 자존은 자존하신 이 자존하신 아무 것도 말미암지  않고 이 분의 자존하신 이 자존하신 이것도 우리가 일생동안 먹어도 양식이  남습니다. 하나님의 자존하심에 대해서 뭐 날라가는 지식처럼 발달 발전으로  신앙으로 이렇게 자기가 발달되 나간다고 해도 하나님이 존재하신 이 존재에  대해서 끝을 못 봅니다. 이런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소망하고 하는 자는 그는 영원한 소망이 있습니다. 끝이  없습니다. 다할 때가 없어 밑천 다 될 때가 없어 세상지식은 그 ( ) 이러니  저렇게 해도 당장 다하고 모를 것 없고 그 까진 것 도매금으로 다 저기라 항상  어차저차 어차저차 그 뿐이라하나님의 ( ) 무한해 그 분은 영원히 자존하셔서  아무 것도 없을 때에 그 분이 홀로 계셔서 모든 것은 그로 말미암아  생겨졌지마는 그는 아무 것으로 말미암지 않고 그 분은 스스로 영원전에  자존하고 계시오 이 분을 자기가 성경을 가지고 깨닫고 이 하나님의 창조하신 이  모든 일반계시 자연계시에서 깨달아 이것 저것에서 하나님을 깨달은 깨달음이  자존하신 그 자존하신 존재하심에 깨달음이 어제보다 오늘 더 확고하고 좀더  범위가 넓어지고 그 분에 자존하심에 대한 느낌이 더 장성해지고 확고해지고  하는 요것으로 성화됩니다. 또 그 분이 어떤 분이냐 얼마나 그 분의 크심에  대해서 크심에 대해서 성경이 알려주고 모든 자연만물 하나님의 섭리 우주  이런데서 하나님의 크심을 자기가 점점 깨닫는 이 하나님의 크심에 재한 사람이  달라지는 그것이 성화입니다. 하나님의 크심에 대해서 달라짐이 하나님의 크심을  아는 자는 땅위에 피조물 중에 어떤 큰 것이라도 하나님과 바꿀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크심을 아는 자는 당신이 지은 것이라면 지극히 작은 것도 멸시하지 못  합니다. 그 분 때문에 그 분 때문에 보고 그 분 때문에 행동하고 그 분 때문에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하기 싫은 것도 하고 그 분 때문에 하는 이것이 이  사람이 되어져 가는 것이 이것이 성화입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창조하신  하나님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 자기가 어떤 것을 보고서 그것을 크다  두렵다하면 그것을 지으신 주님을 거기서 느껴야 우리가 죄가 안됩니다.

 누구인가 천문학자가 별에서 별 거리가 얼마랍니다. 아이구 그렇게 머냐 그것  멀다고만 생각하고 그 거리에 억억만배도 더 되는 것들을 창조하신 주님을  거기에서 연상해서 그것을 만드신 주님의 크심은 어떠하며 이 분에 대해서  느끼지 못한 죄를 지었다 그것이 성화입니다.

이러기에 성화받은 사람을 세상이 그를 놀라게 못합니다. 성화받은 사람이  세상이 부럽게 할 것이 없습니다. 성화받은 사람을 세상이 무엇이 크다고 놀라게  할 것이 없습니다. 그의 안전속에 다 들었고 그가 볼 때에는 달걀 한 개  모양으로 공중에 놓고 요리저리 살살 뒤져가면서 우주를 생각하지 거기에 파묻힐  곳이 없습니다.

우주가 파묻을 수 없는 큰 자가 되어지는 것이 이것이 기독자가 성화되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될 만하고 아들 자격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만큼  위대함이 있는 것이 기독자의 참 성화된 교회입니다.

다음에는 여러모로 하나님은 야 하나님은 날 위해서 그 부요를 다 내놨다 하는데  하나님이 얼마나 부자인고 보자 이것도 우리가 성경을 봐서 하나님의 부요를  깨달을 수가 있고 자연만물을 보아서 깨달을 수 있지 여러분들도 다 하나님의  것이라 하나님의 소유라 하나님 사람 부자입니다.

많은 사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지구 땅덩어리 하나만 봐도 그 속에 뭐 굉장한  것이 많이 있는데 그것 다 주님이 가졌습니다. 부자요 지구와 같은 유성이  얼마나 많으며 유성이 얼마나 많으며 항성이 얼마나 많은지 천문학자가 지금은  몰라도 벌써 몇 십년 전에 발표하기를 항성만 해도 십억만 항성이라 저  견우직녀( ) 하는 그것이다. 항성 뭉텅이라 그렇게 천문학자들이 말한 것이  있습니다. 그 분이 얼마나 부자인지 이 분을 생각하면서 이 분을 이 분으로 알고  그 분이 이 부자를 성경에 분명히 날 위해서 내놨습니다. 나 위해서 내놨습니다.

뭐 할려고 우리를 그 부요에 위치에 앉일려고 하나님의 아들의 상속자가 되게  할려고 우리를 부요케 하기 위해서 그 부요를 내 놓으사 가난하게 되셨다고  고린도전서 9장에 말씀했습니다.

그 분은 어떤 능력을 가지신 분인지 그 분은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는 분인지  아는 가운데에서 안것만큼 자기는 그 사람이 되어 버렸소 알면 변화됩니다.

마귀의 주는 것도 자꾸 접하면 자기에게는 배어들어 옵니다.

하나님에게 대해서 아는 것만큼 자기는 변화되고 자기는 커집니다. 그 분의  속성은 크게 말하면 제2계명에 말씀하시기를 극렬의 사랑의 극렬의 미움을  가지신 이 하나님이시오흐리버리티 하신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 분이 미워하는  것 뭔가 무엇이든지 자기 위해서 한 자는 모조리 지옥으로 쓸어 간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온 세상은 뜨거운 불에 녹아집니다. 택한 자라도 자기 위해서 언행심사에  한 것은 다 유황불구렁텅이에 쓸어 버립니다. 조물주 당신을 위한 것만이 영원히  살려두고 무궁세계에 그의 것으로 삼고 조물주 하나님만을 위하는 그 실력만을  무궁세계의 실력으로 하나님이 보존해주십니다.

나를 위해서 네가 땅에 있는 어떤 모양이든지 하늘에 어떤 모양이든지 사도  바울같은 그런 모양이라도 너 위해서 내가 바울같이 되려고 하면은 하나님께서  유황불구렁텅이에 집어넣어 버린다. 왜 완전자 한 분으로 통일이 돼야 되겠고  완전자 한 분으로 단일이 되어져야 그것이 사망이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만을 위하라 하니까 무슨 하나님을 우리모양으로 사욕쟁이  모양으로 이기주의 그 분은 완전자기 때문에 완전을 위하는 것으로 통일이 되고  단일이 되야지 그래야 사망이 없지 이러기에 진리로 하나되고 완전으로 하나되고  영원불변의 것으로 하나 되라는 이 주장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이 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참을 위하는 것이 바른 것을  원하는 것이 깨끗함을 위하는 것이 우리가 모르지마는 하나님의 지식에  인간으로서는 이렇게 살아라 생의 법칙을 주었는데 그 법칙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 위하는 것이요 진리를 위하는 것이지 그것이 영생이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대해서 어떻게 했는가 그것을 바로 찾아 아는 사람으로 되는 것이  성화입니다. 하나님은 내게 대해서 어떻게 했나 그럼 나는 하나님에게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이 자기에게 대해서 한 일을 일생을 연구해서 이것도  끝이 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 이것을 앎으로 변화되는 것이 성화입니다.

하나님이 날 어떻게 사랑하셨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어떤 희생을 하셨는가  하나님께서 이렇게 희생해서 나에게 사죄 준 것이 그 사죄가 죄를 없애겠다는  사죄가 그 범위가 어디까지며 그 죄가 어디까지 관련이 되었는가 어디까지 그  죄가 관련이 되었는지 그만 관련된 그것이 해결이 되어져야 사죄가 된다 그  말이요 사죄도 무한입니다.

칭의도 무한이요 무한한 사망을 무한한 멸망을 해결지운 것입니다. 하나님과  원수된 그 원수가 그 범위가 얼마나 깊게 원수가 되었노 얼마나 크게 원수가  되었나 시간적으로 얼마나 원수가 되었나 한 백년 갈 원수가 천년 갈 원수가  만년 갈 원수가 억만년 갈 원수가 영원무한에 원수를 해결(지우겠다) 이것을  앎으로서의 자신이 변화되어지는 이것이 성화요 주일날 이것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이 큰 희생 큰 사랑으로 구속의 공로를 베풀었는데 그럼 이 공로받아  가지고 우리의 소망이 뭐야 우리의 소망이 얼마나 큰지 어떤것인지 성경봐서  소망보니까 뭐 사슴 뿔 하나 저 사슴목장에 말을 들어 보니까 그 사슴도 큰  사슴이 아니고 조그만한 꽃사슴인데 그 사슴 뿔 하나 그것 꺽어 먹으면 건강하고  장수한다고 하니까 그 요만한 뿔 요것 길이 꼭 요만 안 되는 것 요만 안 되는 것  요것 한 개에 팔십만원 구십만원 현금주고 딱 잘라 그것 둘러 마시고 가는데  영생을 주셨다 영생을 주셨다. 이 주님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신  소망이 어떤 것인지 성경은 지극히 큰 소망을 우리에게 주었다. 지극히 큰  소망이라고 베드로후서 1장에 지극히 큰 소망이라고 했는데 이것도 마구 ( )  설사해 버리고 맙니다.

이 소망이 얼마나 큰지 따져 봤습니까 이것을 따져 자기가 참 느껴 평가란 말은  저 혼자 가격 정하는 것 평가라 안합니다. 평가란 말은 열가지가 있으면 열가지  그것을 비교해가지고 가격 정하는 것이 평가입니다. 그 날에 평가란 말은 그  날에 모든 물물전체 물건가격을 때려서 이 쌀한되 얼마합니까 이것은 얼마해야  되겠고 이 콩 한되는 얼마 합니까 이것 얼마해야 되겠고 그렇게 해서 모든 것을  비판해 가지고 가격정하는 것이 평가입니다. 예수님의 이 주신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이 소망에 이 크신 이 소망이 어느정도 평가가 되는지  이것을 평가해 봤습니까 이걸 우리 할 일입니다. 이것이 우리 할 일이요 일을  하면서도 이런가 밥을 먹으면서도 이런 것 주님이 나에게 주신 이 소망을 얼마나  큰가 내가 돈하고 돈하고 바꿀만한 것이가 . 세상지위나 권세하고 바꿀만한  것인가이걸 팔아가지고 뭣을 바꿀까요 그는 영감이 떠난 사람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세상에서 이런 것 저런 것 다하지마는 그것은 자기구원을 이룰  그 무대요 자기구원을 이룬 그 장소라고 알기 때문에 거기에서 자기는 구원  이루고 저 사람은 저 장소에서 구원을 이루는 것이지 구원에 이 도를 팔아가지고  이 구원을 팔아가지고 세상에 산 것이 무엇입니까 있기를 이것을 우리에게  구속으로 주신 이 소망이 무엇무엇인지 종자도 종류도 모르지 이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도 모르지 이것과 세상 것을 한 번 비판도 비교도 한 번 해보지 안했지  이것을 하는 것이 우리 일입니다.

이것을 성경에서 이것을 깨닫고 자연 만물에서 깨닫고 특별계시 보통계시 이 두  계시에서 우리가 이것을 깨달아 알아가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우리 위해서 또 사람으로 다시 부활하신 것 또 성령님이 우리 구원의  보증자 우리 구원의 책임지신 분이 성령님이 보증자요 성령 하나님이  책임집니다.

일국에 왕이 책임을 져도 감사할 터인데 성령을 우리에게 보증으로 세웠다.

이것을 어떤 사람은 이 성구를 보고 하나님이 내 구원에 대해서 보증자가  되셨으니 이 분이 어떤 분이신지 이 분이 나를 한 번 쳐다만 봐 주는 것도 참  감당 못하겠는데 기억만 해도 내가 감당 못하는 것인데 이 분이 베푸는 모든 것  다 이러니까 모르겠소 하나님이요 생명을 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이것이 알고  싶습니다.) 주여 성신의 감화가 아닌 일을 할 수 없사오니 성신의 감화가 와서  당신의 크심이 어떠하며 당신의 그 사랑이 어떠하며 날 기억해 주심이 어떠하며  나를 위해 희생하심이 어떠하며 뭐 때문에 그렇게 큰 희생을 큰 분이 꼭 하셔야  될 큰 희생을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무슨 죄를 저질렀습니까 내 죄와  불의가 하나님과 원수된 것이 이 큰 것을 희생하지 않으면 해결 안 될만한 그런  무거운 잘못입니까? 그 잘못이 참으로 무한입니까? 이것을 당신의 무한으로  대속해가지고 입혀 주셨으니 이 구속으로 주신 이 구속이 이것이 얼마나 큽니다  얼마나 중려이 무겁습니까 어떤 자만 쓰여집니다. 효력이 얼마나 됩니까 값이  얼마나 됩니까 이것 쓰면 유익이 얼마나 유익을 받을 수 있습니까 얼마나 큽니까  우리가 거기에 대해서 생각지 아니하면 망령입니다.

성령을 우리에게 보증으로 주시고 하나님께서 이 영감과 성경과 이 모든  자연계시를 우리에게 알려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구원과 우리의 소망과 우리의  위대한 생애법칙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 이런 것들을 전부 실물교재로 전부  실물로 가지고 우리에게 알 수 있도록 우리를 가르치는 재료로 실물교재가  되어있는 이 교실로 주시고 이러기에 한 소리도 헛됨이 없고 한 방을 길을  가다가 꾸정물이 튀어가도 그것이 공연히 튀오는 것이 없고 저가 미끄러져도  공연한 미끄러짐이 없고 가다가서 않은뱅이가 그 고무다리 밑에 대고 슬슬  앉아가는 것 봐도 그것이 공연히가 아니고 전체가 나에게 주시는 계시로 나로  하여금 깨달아 회개하고 구원얻게 하시는 이 사랑이 이 성령이 안 오시면 우리가  알 수가 없어 이러기 때문에 엘리사가 엘리아에게 영감을 구했지마는 서도  엘리사 뿐만 아니라 오늘도 성도가 영감을 구할 필요를 아는 사람은 다른 것을  구할 여가가 없소 그만 다 되.

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예정도 하시고 창조도 하셔서 이것 뭐 참  말 못합니다. 하나님이 내 구원에 대해서 모든 것을 예정하시다니 우리가  모릅니다. 알면 다 녹아지요 알면 그 분에게 자기를 맡기지 안 할 자가 없소.

우리 구원 위해서 창조하셨소 우리 구원을 위하여 섭리하고 계셔 공산국이 지금  칼을 갈고 있는 것도 우리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이 그를 붙들고 칼을 갈고 있어  우리의 지식을 초월하시는 당신의 섭리. 우리의 지식을 초월하신 당신의 사랑,  전부 우리 지식을 다 초월해서 이래가지고 우리를 대하시는 이 분을 우리가  연구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요 이 분을 알아서 아는 것만큼 행동하는 것이  바로 복입니다. 애 복은 당신이 검어쥐고 있어 당신이 아는 것만큼 당신이  가까운 것만큼 그것이 생명길이요 그것이 복 있는 길이요 그것이 모든  근심걱정이 물러가고 평안이 있는 길이요 하나님이 그렇게 딱 전해놨소  전능전지자가 그렇게 정해놨기 때문에 이 선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땅에 있는 군왕들이 허사를 경영하고 땅에 있는 모든 자유자들이  다 하나님의 결박을 벗어날려고 하지마는 서도 못 벗어놓습니다. 저 망하는 것  뿐이요, 그런고로 우리가 우리의 상대자 되신 이 주님이 어떠한 주님이신 것을  우리가 점점 깨닫는 것만큼 과거의 자랑스러웠던 생활을 주님을 깨닫고 보니까  거기 또 잘못되서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결심하고 그대로 실천을 해놨는데  당신을 깨닫고 보니까 또 잘못됐소 왜 그 분이 점점 크신 것이 내가 알아지고  나는 그 분에게 대해서 큰 사랑에 빚을 진 그 상대자요 그 분은 나를 책임진  자로써 나의 보호자로 되어있는데 내가 그 분을 든든히 믿고 살지 못했어  의지하고 살지 못했어 그 분에게 등을 대고 살지를 못했어 그 분은 나를 그  분으로 대접하지 못하고 만홀히 여겼소. 하나님께 내가 떨면서 가로막지  않을려고 애씀이 너무도 빈약했소. 여기에서 우리의 반성도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 새로 고칠 것이 생겨져서 고쳐지는 이것이 우리의 생명이요 복이요  영광이요 권위요 평강입니다.

이것 떠나서는 제가 어떤 그 알속같은 것을 했다할지라도 속았소, 그것은 죽는  것입니다. 망하는 것입니다.

이 외에는 사는 길이 없고 하나님이 정해놨어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가 이 변화받읍시다.

우리는 변화되야 됩니다. 우리는 땅에 살지마는 서도 위의 것을 찾고 위의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우리는 세상에 있지마는 세상이 우리의 영주처가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에 있는 것은 하늘나라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에서 하늘나라의  생활을 연습합니다. 생명세계의 생명생활을 연습합니다.

세상에서 연성된 것만큼 자기의 실력이요 하늘나라의 그 힘 가지고 삽니다. 사람  속이고 속이고 세상 위해서 인간들이 좋아하고 인간들이 부러워하는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위하는 인간대로 자기대로 사는 그 생애는 하늘나라 하나도  용납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다 쓸데없는 정력을 기루는 것이요 쓸데없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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