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29 01:00
씨뿌리는 비유
1983. 5. 1. 주전
본문 : 마13:18-23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리운 자요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이 말씀을 택하게 된 동기는 오월 이일 밤부터 우리가 대구에서 집회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집회에 가서 은혜를 받는 데는 사람 준비가 필요하고 또 깨달음이 괼요하다는 것을 느껴서 증거하게 됐습니다. 여게 비유에 길가 뿌린 씨, 또 돌밭에 뿌리운 씨, 가시떨기 위에 뿌리운 씨, 옥토에 뿌리운 씨 네 가지 종류가 있는데 셋은 다 실패하고 옥토에 뿌린 씨는 결실이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이루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게 씨를 뿌리는 씨는 주님이 해석하시기를 천국 복음인 말씀을 가리킵니다.
천국을 이루어 가는 말씀을 뿌리는 씨로 비유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 많으나 거게는 길가 뿌린 씨의 종류도 있고, 또 돌짝밭에 뿌리운 종류도 있고, 가시떨기 위에 뿌리운 종류도 있고, 옥토에 뿌리운 종류도 있고 이 네 가지 있는테 세 가지는 헛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나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 사람은 다 헛일 했습니다.
이러니까 이 비유에서는 세 가지 헛일한 이 잘못된 사람들에게 대해서 이런 일을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주님이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길가에 뿌린 씨가 안 되도록, 길가 같은 우리가 안 되어야 합니다. 길바닥과 같은 우리 자신이 되지 아니해야 되겠고, 돌밭과 같은 자신이 되지 아니해야 되겠고, 또 가시떨기와 같은 자신이 되지 아니해야 되겠고 옥토 같은 자신이 되도록 노력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는 한 자리에서 같은 시간에 들을지라도 자기라는 그 사람 준비에 따라서 들려지는 것이 각각 다릅니다.
여기 l9절에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리운 자요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가 들은 그 하나님의 말씀을 악한 자가 와서 빼앗아 버린다. 빼앗아 가 버린다. 그러니까 자기 마음에 말씀이 없는 사람 되어 그 사람의 구원은 다 헛 일된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여게 악한 자라고 하는 이 악은 우리가 늘 아는 대로 악에 대해서 정의가 심히 많습니다. 말 사전을 보고 이 악에 대해서 그대로 지식하면 안 됩니다. 성경 단어는 성경에서 그 단어의 뜻을 배워야 되지 아무것도 모르는 그 속에 악령이 주관하고 있는 세상 사람들의 지식을 가지고 단어를 해석해 놓은 그 해석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악한 자라 말은 자존자 조물주 우리를 구속하신 대주재이신 이분을 위주로 이분을 중심으로 하지 아니한 것은 다 악한 자입니다. 자기를 위주로 중심으로 한 자나, 전인류를 위주로 중심으로 한 자나, 또 세계나 문화나 과학이나 민족이나 국가나 어떤 것이든지, 사람이 알든지 모르든지 결국은 하나님 한 분을 중심해서 모든 것은 이루어 나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 위주의 중심이 아닌 것은 하나님이 심판해서 다 멸망을 시켜 버립니다. 이러니까 악한 자는 하나님을 중심하지 아니한 모든 것을 가리켜서 악한 자라 그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도를 들을 때에 길가밭이 되지 아니하는 것은 '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이분이, 말씀하시는 이분이 엉원 자존자시며, 창조주시며, 또 모든 것에 주인되는 주재시며, 주권자시며, 또 심판자시며, 모든 것이 그의 한 분에게 매여 있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생겨졌고, 그분으로 인하여서 보존되고, 또 그분에게로 돌아가는데 그분 중심이 아닌 것은 다 멸망한다.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말씀이라. 하는 요것을 깨닫는 것이 길가밭을 떠나는 것입니다.
길가는 타락한 인간들이 배암의 지식을 가지고 수많은 인간 지식을 말해 놨습니다. 그러니까 세상 지식은 주가 수없고 또 중심이 그 수가 셀 수 없습니다. 위주가 헤아릴 수 없습니다. 뭐 주인이 얼마나 많고, 주재가 얼마나 많고, 왕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렇게 되어 있는 이 세상에서 이것은 또 저를 위주로, 저 나라는 그 나라를 위주로, 저 민족은 민족을 위주로, 또 어떤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사상은 사상을 위주로, 모든 종교 유사 단체들은 그 종교의 유사들을 위주로, 뭐 위주 증심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이 말씀도, 당신이 주재자요 주권자요 당신 위주로 당신 중심으로 살라 하는 이 말씀을 해 놓은 것인데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오, 하나님 한 분만이 주재시요 주권자시요 창조주시요 영원한 왕이시요 주라. 그분이 말씀을 하신 말씀이라.
그러기에 이분 한 분만이 주재시지 그 외에 있는 것들은 다 거짓 부리라. 다 그것 인간을 미혹시켜서 꾀워서 멸망시키는 것들이라. 하나도 주권자가 없고 모두 주권인 척하고 하지마는 실은 주권자는 하나도 없다. 여호와 하나님, 한 분뿐이시다. 한 분 외에 주권자도 없고 또 모든 것에 주인인 주재자도 없다. 또 창조주도 이 한 분 외에는 없다. 모든 것을 심판하셔서 영원한 결말을 지울 분도 이분 한 분뿐이다.' 하는 이분을 알고, 이분을 알고 이분의 하신 말씀인 것을 알아서 자기가 듣는 사람이라야 이 말씀을 듣고 난 다음에 악한 자들이 와 가지고 이런 말을 해도 저런 말을 해도 유혹받지 않습니다.
왜? '네가 말하는 데 네가 말하는 그자가 주권자냐? 정말로 그자가 창조주냐? 주권자냐?' 주권자 창조주 위주 이것을 들고 말을 하면 세상에 인간들이 천인 만인이 말한다 해도, 자존자, 주권자, 창조주, 위주, 주재자, 영원히 만왕의 왕 이분의 말씀인 것을 자기가 깨닫지 못한 사람은 '그분도 주권자요 여기도 주권자 있네, 저기도 주권자 있네 여기도 주재자 있네, 저기도 주재자 있네. 여기도 중심할 자 있네, 저기도 중심할 자 있네.' 이러기 때문에 악한 자들에게 다 미혹을 받습니다.
하나님 중심이 아닌 어떤 자의 감언이설에도 기이한 열변에도 '너는 주권자가 아니라. 이 철학자야, 네가 주권자 아니라. 네가 자존자가 아니라, 네가 주재자가 아니라. 네가 영원히 홀로 통치할 분이 아니라.' 그자의 말이요, 이 말씀은 '자존자, 창조주, 모든 것에 주인인 주재자, 주권 통치자, 주권 섭리자, 영원히 주권의 왕될 이분의 말인데 네가 하는 말에 그게 있느냐? 네가 철학을 가지고 말하고 이종교를 가지고 말하는데 그러면 그말 한 자가 주권자냐? 주재자냐 창조주냐? 심판주냐?' 하는 것을 깨달아,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이 말씀은 인간들이 지걸거리는 그와 같은 유사의 말이 아니고 자존자가 하신 말씀이라, 주권자가 하신 말씀이라, 창조주가 하신 말씀이라, 심판주가 하신 말씀이라, 영원히 왕으로 통 치하실 분이 하신 말씀이라.' 이 사실을 들을 때에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다 길가에 뿌린 씨입니다.
그래서 악한 자들이 와서 그 말씀을 다 빼앗아 간다. 하나님의 도를 들을 때에 그와 같은 말 꽉 찼지요. 거짓말쟁이 마귀는 얼마든지 말 합니다. 인간들도 말합니다. 그러나 양심을 가지고 들을 때에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서 '이 말씀은 둘이 없는 모든 것에 원인이 되는 한 분 되신 이분의 말씀이다. 모든 것을 창조하신 이분의 말씀이다. 모든 것의 주인이신 이분의 말씀이다. 모든 것을 심판하시고 영원히 보상과 복수로 정의와 공의로 심판하실 이분의 말씀이다.' 말씀하신 이분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말로 가지고 뭐 말이라니? '불교서 하는 말이나 유교서 하는 말이나 어떤 이종교에서 하는 말이나 말은 말이지.' 하고 이렇게 듣는 자들은 다 그게 뭐이냐? 길가에 많은 사람들이 다녀서 다져 가지고 들어가지 않는 것처럼 이 사람의 사상 저 사람의 사상, 이 사람 말 저 사람 말 많은 말 들었기 때문에 이제 그 사람은 들은 많은 말로 자기 마음이 강퍅 해져서 그와 같은 말인 줄로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도 듣는 데에서 다 실패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 자기가 일시에 뭐 깨닫고 어떻게 좋다 할지라도 '이 말씀은 영원 자존자 이분의 말씀이다. 없는 가운데 모든 것을 창조하신 창조주 이분의 말씀이다. 모든 것의 지금 주인이 되시는 모든 것의 주인되시는 이분의 말씀이다. 모든 것을 홀로 주권하고 계시는 이분의 말씀이다.
이분이 모든 것을 심판해서 영원한 멸망과 구원을 당신 혼자 결정해서 인간에게 영원한 복수와 보상을 베푸실 이분의 말씀이다.' 하는 이 말씀하신 분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깨닫는 그 깨달음을 가지지 아니하는 자는 말씀 암만 들어 봤자 헛일입니다.
말은 다 같은 말이니까, 거짓말쟁이나 참말쟁이나 하는 말이면 다 같습니다.
그러기에 예수 믿는 사람의 그 권위가 '나한테 말씀해 주시는 이분이 어떤 분인가?' 하는 것을 인정하는 차이에서 그 사람의 능력은 차이 있고 구원은 차이 있는 것입니다.
또 둘째는.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알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이 뿌리는 사람뿌리가 아니라 말씀뿌리입니다. 말씀이 어데까지 파고 들어가야 되느냐? 돌에 걸리지 안하고 돌을 꿰뚫고 파고 들어간 깨달음을 가진 자라야 됩니다.
돌을 꿰뚫고 파고 들어가는 거게까지 깨달은 자라야 되는 것이니 여러가지 환난과 핍박이 있으면, 환난 핍박이 있으면 환난 핍박이 누구를 해칩니까? 자기를 해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환난 핍박이 있으니까 자기를 해치니 환난 핍박을 당하면 자기 손해보지 않기 위해서 자기가 상하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 말씀을 저버리면 자기에게 아무 탈이 안 나니까. 저버리지 아니하면 자기에게 당장 해가 오고 핍박이 오고 환난이 오고 이러니까 자기 환난과 핍박당하지 않기 위해서 이 말씀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게 돌짝밭에 뿌리는 씨요.
"씨를 받되 뿌리가 깊지 아니해서 그리 됐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깨달을 때에 '나는 이 말씀을 하신 이분이 나를 지었고, 말씀하신 이 분에게 나는 속했고, 이분이 나를 먹이고 입히고 기르고 주권하시고 계시고, 이러니까 나는 이분에게 속하고 이분에게 순종함으로 살 수 있고 이분의 은혜로 살 수 있지 이분 떨어지면 죽는다.'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 그것 들으면서 자기는 이 말씀하신 분에게 지음받은 것과 이 말씀하신 분에게 속한 것과, 또 이 말씀하신 이 말씀은 자기보다 크고 능해서 자기를 없는 가운데서 만드신 크신 말씀이니 이 말씀은 자기 위에 있고 자기는 이 말씀에게 속하고 이 말씀을 하신 분에게 속해서 살아야 되지 그분을 떠나서는 살 수 없고 망하는 것이다 하는,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주님에게 속하고. 자기보다 주님은 크고 자기보다 말씀은 크고 이래서 자기는 주님과 말씀에게 속한 자라는 이것을 자기가 깨닫고 자기를 능가하고, 자기를 초월하고, 자기 위에 있고, 자기의 근본이 되신 이 말씀인 것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그 사람은 암만 들어서 깨달아도 헛일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 이 말씀이 없는 가운데서 모든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시공의 능력이요, 창조의 능력이오. 우리에게 말씀하신 주님이 말씀하신 말씀은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창조하신 그 창조의 능력을 가진 창조력을 가진 이 말씀이요 이 말씀을 하신 분은 말씀을 가지고 모든 것을 창조하신 영원 자존자이신 주재자라. 주재자는 자존자 하나님이 대주재자시요 이 말씀은 주재자가 실지로 시공하실 때에 시공한 능력이 말씀이라.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자기는 들어도 실패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 이 말씀으로 인해서 자기는 이 말씀에게 속해야 살고, 이 말씀에 따라야 살고, 이 말씀의 것이라는 것을 자기가 깨달아야 되지 자기는 주인이고 이 말씀은 자기의 가진 어떤 뭐 소유나 지식처럼 이렇게 생각을 가지는 자는 이 말씀 듣고 그대로 행하다가 자기에게 거슬리면 그만 배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이 말씀은 자기 위에 있고, 자기보다 크고, 또 자기를 지으신 말씀이기 때문에 말씀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자요, 이 말씀에게 속한 자요, 이 말씀을 따라서만 살 수 있다.' 하는 이것을 깨닫는, 이 말씀에서 자기를 초월하는, 자기를 부인하는, 자기를 완전히 이 말씀에게 소속시키는 이것이 안 되면 또 헛일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자기를 부인하는 역사가 그 속에서 있어야 합니다. 또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 '이 한 분만을 중심으로 위주로 살아야 되겠다.' 하는 요 깨달음을 가져야 되고, '나는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지음받았고 이 말씀에게 속한 자니 이 말씀에게 속해야 살고 이 말씀을 따라야 살고 이 말씀은 나보다 크다.' 그러기에 내가 이 말씀을 따라서 움직이면 살고, 또 이 말씀에게 속하면 살고, 또 이 말씀의 것이 되면, 이 말씀대로 내가 삶으로 말미암아 내가 어찌 되든지 내라는 것이 이 말씀의 것이 돼 버렸으면, 내가 이 말씀의 것이 됨으로 말미암아 내가 목을 베이든지 불에 태워지든지 어쨌든지 내가 이 말씀의 것이 됨으로서 어떤 핍박당해도 이 말씀의 것이 됐으면, 말씀에게 속했으면, 말씀으로 인하여 어찌 됐으면 내가 말씀에게 속했다고 박해를 받는 것이니까 이 말씀의 내가 되는 것이, 이 말씀의 소유가 되는 것이, 이 말씀의 것이 되는 것이, 이 말씀에게 속한 것이 되어지는 것이, 이 말씀에 따라 움직이게 되어지는 그것이, 이것이 내가 사는 것이며, 내가 자라는 것이며, 내가 평강을 취하는 것이며, 성공을 하는 것이라는 이 사실을 깨닫는 데까지 깨닫지 못하고 껍데기로 깨달으면 헛 일입니다. 요것은 양심을 써야 깨달아지지.
또 22 절에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말씀을 들을 때에 재리 물질 염려, 또 세상 모든 염려, 또 세상 어떤 유혹 이것으로써 하나님 말씀이 그대로 시행되지 못하게 되는 그것을 가리켜서 말씀한 것인데,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 '이 말씀은 없는 가운데서 세상을 지으신 말씀이다. 지으신 말씀이다. 이 말씀이 지금도 세상을 주관하고 있다. 하나님이 이 말씀을 가지고 세상을 만들었고 세상을 다스리고 있고 세상을 주관하고 계신다. 그러기 때문에 이 말씀은 세상을 주권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이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생겨졌는데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것이 이 말씀을 따라서 움직여 이 말씀과 일치되면 영원히 멸망받지 않는다.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세상이 이 말씀과 배치되면 망한다. 모든 물질도 이 말씀으로 인하여서 있는 것이요 이 말씀이 주권하고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을 버리고 물질 암만 취해봤자 소용이 없다. 이 말씀과 하나되면 물질 그 모든 것은 이 말씀이 주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들은 이 말씀은 모든 물질을 홀로 주권하고 주권을 가지고 있는 이 권위 있는 말씀이요 이 말씀을 하신 분은, 말씀을 하신 그 말씀의 주인되시는 하나님은 자존자시라.
이러기 때문에 '이 말씀은 세상을 지은 말씀이요 세상이 거게 속한 것이요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세상이 보존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보다 이 말씀이 크고, 세상은 이 말씀에게 속해 있다. 이 말씀에게 달려 있다. 이 말씀으로 인해서 세상은 보존도 잘 될 수 있고, 홍왕도 될 수 있고, 영원히 유지도 될 수 있고 이 말씀에게 거슬리면 세상은 불타버리고 만다. 모든 물질도 이 말씀이 주권하고 있다. 이 말씀에게 속해 있다.' 하는, 말씀의 권위를 자기가 인정하는 것, 말씀을 들을 때에 세 가지로 인정하는 이 확신을 가진 그 깨달음이라야 옥토에 뿌린 씨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 '이 말씀은 모든 존재의 근원이 되시는 분이 하신 말씀이다. 또 모든 말씀은 그분이 하신 말씀인데 그분이 말씀하실 때에 당신을 중심해서 말씀하신 말씀이다.' 에덴동산에서 사람이 죽은 것이 선과 악을 규정지우는 것이 하나님께서 선악을 규정지우기를 당신을 중심해서 당신에게 속하면 선 당신에게 떠나면 악 당신을 따르면 생명 당신을 떠나면 사망, 이렇게 하나님이 당신이 완전자시기 때문에 이렇게 한 것처럼 인간이 완전치 못한 것이 제가 완전자와 같은 그 위치에서 모든 비판과 평가를 자기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요것이 인류 시조가 사망하게 된 원인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첫째는 악한 자에게 미혹받지 아니할 악한 자에게 미혹을 받지 아니할 수 있는 이 깨달음을 가져야 됩니다. 악한 자는 자기 중심의 자라 말이오. 자기 중심자에게 미혹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이 깨달음을 가져야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듣고, 들을 때 그것 깨달아서 '이 말씀은 자존자의 말씀이다. 창조주의 말씀이다. 주권자의 말씀이다. 주재자의 말씀이다. 영원히 심판할 심판주의 말씀이다. 영원히 보응하실 보상과 복수의 이 정의주의 말씀이다.' 하는, 말씀을 들을 때에 이 말씀하신 분이 어떤 분이신가? 그것을 깨달아서 이 말씀이 그분의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는 요것 가져야 되고, 또 말씀을 깨달을 때에 들을 때에 이 뿌리가 깊이 내린다. 뿌리는 돌짝밭이라는 돌은, 돌은 죄악을 가리켜 말하는 것인데 원죄와 본죄를 가리켜 말합니다. 원죄 본죄. 원죄는 어떤 게 원죄인고 하니 자기 중심이 원죄요 본죄는 자기 중심으로 행동한 모든 것이 본죄입니다. 돌짝밭에 돌에 뿌리가 막히지 않고 돌이 있는 것 없는 것 상관없이 꿰뚫고 이렇게 들어간 것, 다시 말하면 자기 중심인, 자기 위주인 원죄와 본죄 이것을 꿰뚫고 하나님 말씀 이 주님의 이 말씀은 자기라는 자기가 이 말씀에 속했기 때문에 자기보다 이 말씀이 크고 위에 있고 권위 있으니 이 말씀은 자기보다 크다.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자기가 이 말씀에게 속해야 되고, 이 말씀을 따라야 되고, 이 말씀의 것이 돼야 유지도 되고 살지 자기를 이 말씀과 비중을 달아서 급할 때는 이 말씀을 버리고 자기를 내세울 수 있는 그런 자는, 그렇게 이 말씀을 깨달은 자는 깨닫지 못한 자다. 자기보다 큰 이 말씀이요 말씀하신 분이요 모든 피조물보다 크신 분이 말씀하신 모든 것을 창조한 이 권위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우리가 깨닫지 못하면 헛일입니다.
길가 뿌린 씨라 하는 것은 '말은 말이지 뭐, 수많은 말이 있으니 이 말이나 저 말이나 다 같은 말이라.' 말은 말로만 이렇게 생각하고 이 말씀하신 분이 어떤 분이시며 또 이 말씀이 어떤 권위를 가진 말씀인가 이걸 깨닫지 못한 사람은 그 사람은 성신의 감화를 받지 못한 사람이요 인간적으로 깨달온 사람이기 때문에 다 껍데기로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돌은 원죄 본죄, 원죄는 자기 중심으로 하는 그 자기고 본죄는 자기 중심으로 행동한 모든 죄가 다 본죄인데 그것을 여게 돌밭이라고 이렇게 비유한 것입니다.
이러기에 자기 중심인 이 원죄 이것은 이 말씀을 깨달을 때에 '내가 대 자존자 주재자를 알고 주재자의 능력 있는 말씀을 알고 그 능력 있는 말씀 그대로 행해야 내가 살지, 그분에게 속해야 살지 내가 그분을 대항해서 그분의 말씀을 내가 듣고 내 중심 내 위주라 하는 이것은 자멸하는 완전 멸망하는 이것은 망령이요 패역이요 이건 멸망의 순전히 멸망 뭉텅이가 이게 내 중심 내 위주다.
내가 무엇이 커서 내 위주 내 중심이 되겠느냐?' 하여 말씀을 들을 때에 자기를 완전히 부인하고, 또 피조물 그 중심의 위주를 완전히 부인하고, 또 말씀을 받을 때에 세상과 세상의 재리를 완전히 부인해서, '세상이나 재물이나 자기나 모든 피조물이 이분에게 속해야 살고 이분의 말씀을 따라 움직여야 살지 떠나서는 못 산다' 하는 요것을 깨달은 자가 옥토에 뿌린 씨입니다.
그러기에 그 해석을 주님이 하시기를 길가 뿌린 씨는 악한 자가 빼앗아 간다 그러면 악한 자에게 뻣기지 아니할 수 있어야 그게 깨달음이라 그말이오. 악한 자에게 뺏기지 아니할 수 있는 그 깨달음을 가져야 된다.
또 말씀대로 행하다가 여러가지 환난이나 핍박이 오면, 환난 핍박은 누구에게? 다른 사람에게 오는 게 아니라 환난 핍박은 자기를 괴롭히고 자기에게 어려움 당하는 거라. 그게 자기입니다. 환난 핍박이 와도 이 말씀을 버리지 아니할 사람, 이 말씀은 자기보다 이 말씀을 위에, 자기보다 이 말씀하신 이를 위에 두는 이 깨달음을 가지지 아니하면 헛일이다 그말입니다.
또 '세상과 재리의 염려라' 이 말씀은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이 말씀은 세상보다 크다. 우주보다 크다. 이 말씀이 세상을 지었고 또 이 말씀으로 세상을 지을 때에 이 말씀 하신 분은 자존자 하나님이시다.' 세상은 이 말씀에게 지음을 받았고 이 말씀은 자존자가 말씀을 했고 모든 물질은 이 말씀이 지어 놓은 물질이고, 그런고로 물질을 지은 말씀, 세상을 지은 말씀, 또 말씀을 하신 영원 자존자 하나님,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에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의 권위, 그 다음에 모든 피조물 이 위치를 바로 깨닫는 요 깨달음에 들어가야 되지 요 깨달음에 들어가지 아니하는 사람은 다 그것이 길가에 돌밭에 가시 떨기에 뿌리운 씨요 옥토에 뿌린 씨가 안 됩니다.
그러기에 이것은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는 말씀은 귀는 이 귀야 누가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양심 귀, 인간에게 양심이라 하는 것은 사람에게 있는 빛입니다. 제일 정확하고 공평됩니다. 양심을 써서 자기가 들을 때에 '이 말씀은, 이 말씀은 자존자의 말씀이다. 창조주의 말씀이다. 주권자 주재자의 말씀이다.' 이것을 깨달으면 천인 만인이 중얼거려 쌓아도 '얘, 너 말해 가지고 내가 하나님 말씀 들은 것을 네가 빼앗아 가려고 이 말씀을 부인하도록 이 말씀을 버리도록 네가 하고 있는데 내가 들은 이 말씀을 버리도록 하는데 네가 천언 만언 모든 철언을 말하고 과학을 말하고 네가 수많은 말들을 말해 가지고 이제 내가 들은바 이 말씀을 없애려고 네가 애를 쓰는데 보자, 그러면 네가 철학자 전부의 말하는 그 철학자가 어떤 자냐? 그자가 자존자냐? 그자가 창조주냐? 그자가 주권자냐? 내가 들은 말은 주권자가 말했고, 자존자가 말했고, 창조주가 말했고, 대주재가 말했고, 심판주가 말했다. 내가 들은 말은 말이야 같지만 말하신 분이 다르다. 또 말의 권위가 다르다. 나에게 말씀한 이 말씀은 없는 가운데 모든 것을 창조한 창조의 능력을 가진 말씀이다. 네가 여게 내게 말한 게 창조의 능력 가진 말이 한 마디라도 있나? 자존자가 한 말이냐? 인간들이 한 말이 아니냐?' 이렇게 차이를 가질 만치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헛일입니다.
그러기에 말씀을 들을 때에 중심자, 이 중심, '우리가 무엇을 중심으로 무엇을 위주로 살아야 되느냐?'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중심자와 위주자, 중심자와 위주자 이를 깨달아 가지고 발견해야 되고, 또 말씀을 들을 때에 '나는 이분으로 말미암아 지음받았고 이분에게 속했다. 이분으로 인해서만 살 수 있다.' 자기 위에 자기를 지은 말씀이요, 자기를 주권하고 계신 말씀이요, 자기를 영원히 멸망하고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의 말씀이요 이 말씀을 하신 자존하신 하나님이라.
이 하나님과 하나님이 말씀하신 말씀과 자기와 비교할 때에, 자기를 비교할 때에 뿌스러기 중에 뿌스러기요 이 말씀은 측량 못 할 권위 있는 큰 말씀이요 하나님인 이것을 깨닫지 못 하면 헛일입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헛일이라 그말이오.
또 자기가 말씀을 들을 때에 세상하고 이 말씀하고 비중을 달아 가지고 이 말씀보다 세상이 커서 세상을 취하고 이 말씀을 버리는 것이 가시떨기 위에 뿌린 씨라. 또 이 말씀과 세상 물질을 비교할 때에 물질보다 이 말씀이 밑에 가고 물질이 크다고 생각하는 자가 물질을 취하고 이 말씀을 버린 자라.
깨닫기를 '이 물질과 세상이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생겨졌고, 저거가 몰라 그렇지 지금도 이 말씀이 먹이고 입혀서 살고 있고, 이 말씀이 보존해서 모든 우주 이런 것이 다 자기 궤도를 따라서 이렇게 보존되고 유지되고 있다.' 이 모든 세상과 이 모든 물질과 이 말씀과 이 말씀하신 분과 비교해서 그 비중의 차이를 크게 있는 요걸 깨달아야 됩니다.
이걸 깨닫고, 그러면 세상과 재물과 자기와 모든 피조물 중심하는 이 피조물과 이 말씀과 비중을 볼 때에 이 말씀은 창조의 능력으로서 창조한 것이요, 창조의 능력이요, 이것들이 지음받은 것들이요, 또 말씀하신 분은 말씀을 가지고 창조하신 말씀하신 분이시요, 말씀하신 분이시요, 말씀은 이렇게 모든 것을 실지로 지은 시공한 시공의 능력이요,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예수 믿는 말이나 철언이나 다 이 과학이나 새상에서 말쟁이들 무책임한 모든, 철학자들은 무책임한 인생관을 가지고 많이 말하는데 그런 자들의 말한 것이나 같은 말인 것을 아는 여게서 실패합니다.
우리는 그걸 들어서 깨달을 때에 요 세 층어리로 깨달으십시오. 누가 말하면 '네가 자존자가? 그자가 자존자?' 어떤 종교 창설자를 말하면 '그자가 자존자가? 그자는 원인이 없나? 나에게 이 말씀 하신 분은 원인이 없으시고 그분이 모든 것에 원인되신 분이다. 또 네가 지금 말하고 있는 그 말은 그 말이 없는 가운데 모든 것을 창조했나? 세상을 그 말이 창조했나? 모든 물질을 그자가 창조했나? 그 말이 너를 창조했나? 이 말씀은 세상도 물질도 너도 모든 피조물도 창조하신 분이 창조하실 때에 사용하신 그 창조의 능력을 가진 말씀을 가지고 우리에게 하셨는데 일차 창조는 뒤에 변동이 있지마는 이차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말씀하신 이 말씀은 영원히 변동없는 창조를 하신다. 진동 없는 나라를 창조하실 이 능력의 말씀이요 이분이 말씀하는 것이니까 세상에 말하는 인간들과 이분과 어찌 비교가 되며 또 이분이 말씀하신 전능의 능력, 완전의 독자적인 능력을 가진 이 말씀과 인간들이 쥐새끼 모양으로 찌걸찌걸 짹짹 그래 쌓는 그까짓 말과 같으냐?' 하는 이 가치를 알아야 됩니다.
인간들이 아무리 말해 봐야 다 그것 심판만 받지 무책임한 말이오. 뭐 책임 있는 말이 있습니까? 세상에 모든 종교가 많고 그 철학들을 많이 말하지만 그들은 꿩꼬리 철학이오. 갈 지(之)자 걸음이라. 이랬다가 저랬다가 형편에 따라 말하지 일관된 게 어데 있습니까? 전부 반거짓말쟁이라. 성경이 말해 놨소.
마귀는 근본 거짓말쟁이요 거짓 말쟁이 아비라 이랬습니다.
그래 놓고 너희들도 본야 공중에 권세잡은 이 거짓말쟁이 그놈이 너희 속에 주관하더니마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들이 거 게서 해방되어서 중생됐다 불신자 속에 누가 주관하고 있느냐 하면 이놈이 주관하고 있다 성경이 말해 놨어. 거짓말쟁이 반거짓말쟁이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거짓말쟁이 아비라 이렇게 말해 놨어. 거짓말쟁이 애비니까 거짓말쟁이 새끼는 누굽니까? 새끼는 전 우리 인류 우리 들이오.
이러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의 말운 말한 분이 다르고 그 말의 권위가 다르다는 이것을 깨닫지 뭇하면 암만 들어 봐야 소용이 없다 그말이오.
그런고로 우리가 양심을 써서, 세상에 많은 말과 이 말씀과 다른 것, 세상에 말하는 인간들이 수많은 인간들과 이 말씀을 하신 자존하신 하나님과 다른 이 사실을 말씀을 들을 때에 깨달으면서 여게서 깨달 아져야 되지 거게 근거하지 않고 깨달은 건 다 헛일이라 그말이오. 우리가 요것을 굳게 잡고 이번에는 가서 헛일하지 맙시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악한 자에게 뺏기지 않도록, 피조물 중심하는 그런 유혹의 말들에게 뺏기지 않고 그까것 걸 능가할 수 있도록, 그까짓 거야 담박 능가할 수 있지요. '네가 암만 말해도 그건 피조물의 말이다. 네가 암만 말해도 그것은 늙고 죽는 자의 말이다. 하나님은 늙지도 죽지도 아니한다. 이 말씀은 자존하신 하나님 말씀이다.' 그 한 마디로 다 돼 버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