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29 00:54
씨뿌리는 비유
1981. 10. 28. 수요일 새벽
본문 : 마태복음 13장 8절 - 9절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옥토에 뿌린 씨, 아무것에게도 지장받지 아니하고 땅에 있는 영양을 다른 것에게 빼앗기지도 아니하고 땅에 있는, 제가 숨겨있는 그 땅에 있는 영양을 덤불이나 다른 잡초에게 빼앗기지도 아니하고 또 제가 땅에 있는 영양을 취하려고 할 때에 돌에나 어떤 것에게 자기에게 방해 받지도 아니하고 세상에게도 방해 받지 아니하고 다시 말하면, 자기의 그 마음에 기능과 몸의 기능을 자기에게도 빼앗기지도 안하고 세상에게도 빼앗기지도 아니하고 자기 받은 도의 다 삼키워지는 것, 도가 다 차지하는 것 그것이 옥토에 뿌린 씨입니다.
밭은 자기의 심신의 그 기능이 밭인데 밭으로 비유했는데 심신의 기능을 자기가 차지해도 돌밭에 뿌린 씨라. 그것도 도는 절단나고 자기의 심신의 기능을 세상이 차지해도 도는 절단납니다.
덤불이 그 밭의 지기를 다 먹어버려서 헛 일되는 거와같이 자기 심신의 기능을 세상과 세상에 있는 모든 움직임들이 차지하면 그 심신의 기능은 죽습니다.
망합니다.
또 도리, 심신의 기능을 하나님의 도가 차지하지 못하도록 내가 받은 바의 영감과 진리가 차지하지 못하도록 자기가 들어서 자기의 심신의 기 능이 들어서 방해해도 망합니다.
옥토에 뿌린 씨는, 자기 심신의 기능 영은 이미 진리로 살고 성령으로 살도록 불변적으로 된 것인데, 그러나 아직까지 이 심신의 작용이라는 이 심신 작용은 이것은 영감과 진리의 도리 이 도리가 삼킬 수도 있고 이 도리에게 쓰여질 수 있고 이 도리의 것이 될 수도 있고 이것이 세상과 세상의 것이 되고 세상과 세상의 것에게 삼켜지고 사로잡히고 이용될 수도 있고 또 자기에게 이용될 수도 있는 그런 것들이 다 풀밭에 뿌린 씨요, 또 덤불 위에 뿌린 씨입니다.
그런 것에게 하나도 안 빼앗기고 자기 심신의 기능이 자기가 받은 바의 이 영감의 진리, 하나님의 법칙 이것에게 삼키워지면 이것이 빨아먹게 되면 자기의 심신의 기능은 살았습니다.
우리가 평소에도 자기와 세상을 부인해야 이 구원이 되어지고 또 환난때도 그러합니다.
그러면 자기의 심신의 기능을 많이 바쳐야 될 때도 있고 적게 바쳐야 될 때도 있고 죽음이 왔을 때에는 자기의 심신의 기능은 하나도 남김없이 다 바치지 안하면 그 도를 지킬 수가 없어. 심신의 기능과 생명까지 다 남김없이 솔박 다 바쳐야 그때 죽음에서도 신앙을 지키는 그런 어려운 시험에서도 인내 계속이라 말이오.
'인내하는 자 복이 있다' 이에 대해서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말씀하신 그대로 구원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 도리를 확고히 잡아야 됩니다. 내가 하나님의 도를 받았는데 그 도의 결실이 내게 맺어야 되는데 도의 결실이 내게 맺어야 되는데 그 도의 결실은 성령의 결실이요, 진리의 결실이요.
'성령의 결실, 진리의 결실' 이라 말은 성령님이 내게 와서 성공을 했다 그기요, 진리가 내게 와서 성공을 했다 말이요.
진리대로의 결과, 성령대로의 결과 이것이 곧 백배, 육십배, 삼십배라는 그 결실인데 성령대로의 사람 행위 일, 진리대로의 사람 일 행위 이것은 하나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시요, 진리는 성령님이신 하나님의 뜻이 이것이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의사가 하나님의 의사, 하나님의 주장 이것이 진리입니다.
그대로의 사람과 행위와 일로 이렇게 성화되는데 각자들에게, 어떤 사람은 그 분량을 하나님이 이렇게 주시고 저렇게 주신 그 각자에게 분량을 주셨는데 그 자기에게 분량 받은 대로에는 완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백도 인간의 만수가 들었고, 육십도 삼십도 인간의 만수든 것은 인간으로서는 그 이상 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정한 바, 사정한 바 구원, 자기의 분수의 구원 그것을 다 완성해 가지고 갈 수가 있다 하는 말입니다.
닷 냥쯤이나 두 냥쯤이나 맡은 대로 그대로 다 완성을 해 하나님이 자기에게 은혜 베푸시는 고만침에 결실을 해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을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구원의 도리를 받아 가지고 이 구원의 도리대로의 사람이 돼야 되고 행위가 돼야 되고 일이 돼야, 돼야 그래야 결실이라 말이오. 이것이 되는 데는 이 두 가지 방해를 다 벗어나야 돼.
돌밭 방해 벗어나야 되고 덤불밭 이 방해를 벗어나야 되고 또 길가에 뿌린 씨에 이것이 없어야 도를 받지 이거 있으면 도를 받지도 못한 사람입니다.
길가 뿌린 씨가 있는 사람은 도를 받지 못한 사람이라. 암만 하나님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을 들어 깨닫고 동시에 능력을 받아야 되지 영능을 받아야 되지 그 안 받으면 그 말씀은 그 사람에게 지식으로 담겨 있으면 그 사람을 교만케 합니다. 그 사람을 망령되게 해버립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이라' 그 말은 '곧 하늘에서 오는 처소를 덧입는다' 그 말은 자기 영이 거처할 수 있는 그 심신의 기능을 말하는데, '그리스도의 형상이라' 말은 그 원형은 예수님이신데 예수님은 대제사장이라. 제사장의 원형이요. 비유컨데 원형적인 제사장이요, 원형적인 선지자요, 원형적인 왕이라.
제사장이라는 것은 피조물과 하나님 사이에 그 조화를 바로해서 하나님의 모든 소원을 피조물들에게 이루는 것이 제사장이요, 피조물들의 모든 잘잘못의 모든 것을 하나님과 조화를 바로 맞추게 하는 이것이 제사장 역사입니다.
구약에는 보면 제사장이 어떻게 하는 것을 잘 알수가 있습니다. 선지자는 아직까지 피조물들에게 오지 안한 하나님의 모든 좋은 것, 치료하는 것, 살리는 것, 기루는 것 그 모든 것을 우리들에게 갖다 주는 것이 선지자의 역활이요, 또 피조물들에게 갖다 주는 것이 선지자 역활입니다.
왕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그 다스림을 거기에 받아 가지고 하나님이 다스리는 대로 그 모든 것을 다스리기 때문에 이것을 가리켜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한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 형상이라' 말은 그리스도와 같은 그런 그자 된다 말인데 그리스도의 직책, 그리스도의 실력, 그리스도의 방편, 그리스도의 그 성공 이런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이거면 우리는 성공이 다 된 것입니다.
백 배든지 육십 배든지 삼십 배든지 그거는 보면, 많고 적은 것이 차이있는 것 같지마는 차이가 없고 다 좋은 것이, 눈은 눈만 해야 되지 눈이 그 입만 하면은 그 되겠습니까? 또 눈이 발바닥만 하면 그 병신이지 그 뭐 좋을 것이 뭐 있겠소? 그 자기 지체에는 다 위치도 거기 붙을 때에 붙어야 되고 모양도 또 그대로의 모양이 돼야 아름답고 또 크기도 작기도 그대로야 돼지지, 그 요새는 털 많은 사람들 좋다 하는데 제가 거창 있을 때는 털보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눈썹도 수엽도 많이 나서 자세히 보면 눈만 빠끔하이 보이고, 어째 말하면 입인데 입술만 빨갛지 온 전신은 전부 머리나 거기에나 털이 꼭 같습니다. 그 사람은 뭐 귀도 전부 모가지 위로는 전부 다 그래요. 그 몸둥이도 또 그래 놓으니까 별명이 넘터 모도기 모드기라고, 모도기라고 해 가지고 그 사람이 혹 나가면 어데 산중에 있는 범이 나온 것처럼, 곰이 나온 것처럼, 구렁이가 나온 것처럼 그래. 모든 사람들이 다 보고 '저 모도기 왔다. 모도기 왔다.' 이라면서 막 구경꾼이 모여듭니다. 그래 그 사람이 큰 병신이고 뭐 도무지 세상에 나돌아 다니지를 못해. 너무 모든 사람들이 다 구경하는 괴물로 보기 때문에, 요새 모두 막 털을 자꾸 막 씌워 대는데 붙여 데고 이러는데 그것도 지나치게 많으면 병신되고 수치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 모양으로 주님이 우리를 눈대로 했든지 비유컨데, 눈대로 했든지 귀가 돼라고 했든지 손이 돼라고 했든지, 주님이 돼라고 하는 그것이 돼야 가치가 있고 전 존재에게 귀여움을 받지, 그렇지 않아요? 눈이 눈만치 돼야 그 전신에게서 귀여움을 받고 또 그 눈으로 인해서 전신이 귀여움을 받지 그 눈이 만일 이만해 보십시요. 예 그것 때문에 온 전신이 다 병신되고 그 수치되고 그것도 다 조롱거리 되지. 뭐 좋은 것이 뭐있나?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정해주신 그 분량대로의, 종류대로의 그 성화를 완성해 가지고 가면 그는 영원무궁토록 하늘나라의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데에는 세 가지 뜻을 벗어나야 되고, 자기의 그 옥토는 심긴데 그 지기를 전부 그 곡식이 다 먹어야, 이러니까 곡식이 땅이 여물어서 뿌리가, 약한 뿌리가 들어가지 못해서 박지, 못하는 때 있어. 못하는 때에는 농부가 대게 여물면 곡괭이를 가지고 이렇게 파서 말이요. 곡괭이로 이렇게 파 가지고 여기에를 파면은 그 근방이 물러집니다. 그 물러지면, 그 물러져 또 새로 들으면 이렇게 자꾸 그 곡식이 무성해집니다.
그렇게 매는 것이라.
그것이 요새는 잡초만 딱 기계로 제해 버리고 이러니까 실은, 지질이 아주 나빠서 종자를 자꾸 개량해 그렇지 지질이 나빠서 옛날 그 곡식을 심으면 지금은 뭐 크도 안하고 맙니다. 안 됩니다. 땅은 버렸어. 이 자꾸 디비야 이렇게 되는 것인데 그땅에 지기를 먹고 그것이 크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의 기능을 먹고, 몸의 기능을 먹습니다. 먹으면 그 흙이 뭣 됩니까? 꽃나무가 흙을 먹으면 흙이 뭣 되지요? 예? 흙이 뭣 되요? 예? 예? 이 꽃나무가, 화원에 심어 놓은 꽃나무가 흙을 먹으면 그 흙이 뭣 되요? 응? 꽃나무 되지 그걸 몰라? 또 고추를 심었으면 고추가 그 흙을 먹으면 닯니까? 씁니까? 맵지? 그렇지 안해요? 그 흙이 고추가 먹으면 맵고 또 설탕하는 그런 옥수수를 심었는데 그런 것이 먹으면 달콤해지고 그 종자대로 말이지요.
이러니까 우리 심신의 기능에 영감도, 이 성령은 하나님이시요, 진리는 참된 이치 하나님의 뜻인데 성령과 진리가 내 기능을 먹었으니까 내 심신의 기능을 먹어서 심신의 기능이 뭣 됩니까? 예? 예? 성령과 진리 안 돼요? 성령과 진리, 성령과 진리 돼.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을 입는 것이 그 내나 성령되는 것이요, 그 모형이라 그말이오. 또 그것이 진리가 어력이 나서 진리가 아닌데 진리에게 먹혔으니 그것이 진리 아니면서 진리가 된다 그말이오.
응, 이렇게 고귀하게 돼지는 것, 고귀하게 존귀하게 돼지는 거라. 그런데 그게 뭣 되느냐 하면은 그것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형상이라 했어. 그러면 그 참 제사장, 이러기 때문에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예수님이 대제사장이라, 중보라, 제사장적인 중보요, 선지자적인 중보요, 왕적인 중보라. 그래서 그리스도를 가리켜 왕이라, 선지자라, 제사장이라 말씀한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들은 바의 하나님의 말씀, 읽은 바의 하나님 말씀, 명상으로 깨달은 하나님 말씀 이 말씀이 곧 그 안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이 말씀은 진리고 이렇다 이거요. 응. 이런데 내가 거기에 삼키워져야 되는 거라. 삼키워져야, 그러면 그것이 책상 위에서 연구하면 됩니까? 현실에서 돼야 됩니까? 현실에서 돼야 된다 그말이오. 현실에서 돼야 되는데 사람들은 '현실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면 실패들이라' 이렇게 생각을 하지마는 영과 육이 다 실패되지 안하고 영과 육이 다 성공됩니다. 영이 성공되면 육이 성공되고, 육이 참 성공되면 하나님 영이 성공됩니다.
육이 참 성공이 안 되고, 육이 사람 보기는 성공 같지마는 은행에 가 가지고 돈 훔친 것 모양으로 하나님이 주시지 안한 것 제가 도적질했으니까 벌받을 것밖에 없는 그런 것으로, 제가 세상 성공했으면 성공 그것이 멸망의 원인이 된다 그거야. 그런데 사람들이 '이렇게 하나님 말씀대로 이제는 살자. 어떻게 해도 하나님 말씀대로 살자' 이렇게 결심하고 살라하다가 왜 안 삽니까? 안 사는 그 이유는, 그러면 제 의견에는, 제 의견에는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천국에는 좋지마는 세상에는 나쁘다' 이런 오해를 가지고 있다 이거요.
응, 어떤 사람이, 학자가 신학자인데 해석하기를 '우리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체로는 죄의 법을 이래 믿는다고,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이 우리 몸으로 행동으로서는 자연히 죄악의 법대로 살 수밖에 없다' 이렇게 두 가지로 분리해서 해석해 놨는데 그 해석이 틀렸어. '사람들이 이렇게 살려고 하다가 받은 바의, 깨닫은 바의 도리대로 살면 이것은 실패되고 망하는 것이다' 요렇게 보여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안 삽니다. 이러니까 '말씀대로 살면 천국에는 좋고 영에는 좋기는 좋지마는 이 세상에는 해가 된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을 부인하라 했다' 그렇게 어리석게 억설의 해석을 해 가지고 사람을 절단을 낸다 그말이오.
응, '세상을 부인하라' 말은 세상 그놈이 자기를 주도하고 자기를 주장하도록 하면은 망해 버린다 그거야. 그렇지 않겠소? 응, 세상 그놈이 내게 왕이 되고, 내게 하나님이 되고, 내 주도자가 되면은 세상은 그건 마귀의 세상인데 그렇게 되면 나는 망할 수밖에 없는 거라. 세상을 귀중하게 여겨서, 귀중히 여겨서 보배로 여겨서 보배입니다.
세상이 보배로, 세상이 더러운 것 아니요. 보배로 귀중히 여기고, 귀중히 여겨야 됩니다. 하나님이지 도대로만 세상을 취급만 하면 세상은 보배입니다. 세상없이 무슨 구원이 이루어집니까? 이렇게 부인하라 말은 그게 나를 내게 대해서 주도권을 가지지 못하도록 하라 그말이오.
응, 하나님이 주도권을 가지고 그에게 내가 소속하고, 그에게 다스림을 받아 가지고 세상을 살면 세상 이것이 보배가 묻혀있는 밭입니다. 응, 세상없이 무슨 구원을 이룹니까? 이러니까 요런 오해를 꼭 풀어야 되요.
'하나님 말씀대로 하면 천국에는 좋지마는 세상에는 실패다, 영은 좋지마는 육은 나쁘다, 신앙에야 좋아지지마는 우리 가정은 나쁘다, 안 된다' 안 될 때 있지, 그 가정이 멸망의 원인 뭉텅이가 될 때에 멸망의 원인 뭉텅이가 치료가 되지, 말씀대로 하면 멸망의 원인 뭉텅이가 치료가 되고, 그 가정이 멸망의 원인 뭉텅이가 없으면, 이제는 말씀대로 하면은 영광의 구원의 가정으로 커가지 이러니까 말씀대로 하면,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도 망하지 안 할 완전 무결한 영원한 것으로 자꾸 이것이 성장되고 커지고 많아집니다.
이러니까 말씀대로 하면은 영육이 다 성공인 줄 모르고 '이 영은 좋고, 육은 나쁘고, 천국은 좋고, 뭐 세상은 나쁘고' 그런 줄로 생각합니다.
성경에 "육신의 생각은 망한다" 하는 그 육신은 그것은 부패성을 말하는 것 아닙니다. '육신의 생각이라' 말은 심신이 왕이 돼가지고, 하면 그거는 망할 것밖에 안 된다 그말이오. 심신이 왕이 안 되고, 심신의 왕은 중생된 영이라, 또 영의 왕은 성령이라, 그리스도의 영은 하나님의 것이 돼. "네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이대로 되면은 다 됩니다. 이러니까 그런 오해를 다 풀어야 되요. 하나 예를 하나 들어봅시다.
어떤 사람이, 자기가 다 같은 직장에서 일을 합니다. 예수 믿기 전에 일할 때에는 돈 보고 일했어. 사장 보고 일했어. 사장의 눈가림만, 눈 맞춰서 일했어. 순전히 목적은 돈 위해서, 자기 위해서 이랬는데 예수 믿고 난 다음에는 일하기를, 같은 그 일을 하면은 '아, 인간은 못 보지마는 주님은 보신다' 주님 눈앞에서, 주님 문 앞에서 합니다.
'주님이 보시니 주님이 보실 때에 나로 인해서 걱정하지 안하고 칭찬하도록 해야지 내가 돈 위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돈 때문에 하나, 사장 때문에 하나 사장의 사장, 최고 사장 하나님 위해서 하지, 하나님 중심으로 하지 내가 여기에서 뭐 돈 봉다리 보고, 나중에 월급 봉다리 보고하나 내가 여기에서 사람 수입을 봐야지' 아, 철저히 말씀대로 살아 보이소? 일이 안 되겠습니까? 응 '아! 내가 일 하는데 이 물건이 외국으로 수출했다가 나중에 잘못되고 잘못 돼 있으면은 아주 나라에도 수치고, 이 회사도 수치고, 나도 하나님 앞에 심판 받는다. 이러니까 진실되게 하자' 그렇게 생각하면서 이렇게 하니까 진실되게 하지, 바르게 하지, 깨끗하게 하지. 자 그러면 그 일이 잘 되겠소? 못 되겠소? 하나님만치 잘 되지. 뭐 하나님이 그렇게 하는 데에는 '믿는 것이 나의 일이니라' 말씀했습니다. 그렇게만 하면 하나님이, 그 하나님께서 일거리 만드는 것이라.
그렇게 하다가 모자라는 거는 하나님이 대신해.
이러기 때문에 사랑하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 도다. 언제든지 평안하지, 우리가 이것을 깨닫고 예수 믿는 생활이 그 이상 영광스러움이 없고, 그보다 더 큰 수입되는 생활이 없고, 자기에게 복된 생활이 없고, 또 그보다도 더 기쁜 생활이 없습니다.
방안을 소지하면 어떻지요? 기분이 나빠요? 소지하면 기분 좋지? 그 말씀이 우리에게 지저분한 걸 자꾸 이거 정리하니까 그 얼마나 기분이 좋소? 자기가 남한테로 남하고, 회개할 것을 이것을 주 미뤄 가지고 매일 가 끙 하이 그사람 얼마나 받을 것, 줄 것 이래 가지고 마음이 지저분하게 있는데 오늘은 회개하지.
이래 가지고 어짜든지 줄 것, 받을 것 없으면 돈을 다 줄 것, 받을 것 계산을 딱 해 가지고 딱 밝혀서 얼마 줄 것, 얼마 받을 것 요렇게 있습니다. 요렇게 계산되면 그날 개운해요. 안 개운해요? 응? 개운하지 않아? 자기가 맡은 일을 사물, 자기가 맡은 일을 하지 못해서 주인이 오나 안 오나, 그 계약한 상대가 오나 안 오나 어찌나 마음이 조마 조마한데 어짜든지 밤을 안 자 가면서 요놈을 딱 해서 전부 다 싹 그 완성을 해서 완전히 정리를 하고, 완치를 딱 해버리고 완성을 딱 해놓고 나면은 '어휴' 이제 한숨을 내 쉬는 것이 '아휴, 이제 됐다. 이제 자자' 그 얼마나 편합니까? 그거 다 껍데기 평안인데 그 평안보다 양심의 가책되는 것 다 이렇게 정리를 해서 해놓으면 참 양심적 평안은 더 편소. 더 편해. 성경 말씀이, 진리가 정죄할 것과 진리가 '됐다 됐다' 이러면 진리적 평안은 얼마나 평안하며, 영감의 평안은 얼마나 평안합니까? 거기에는 다 돼. 주홍같고 진홍같아도 문제없다.
응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네가 완성만 하면 된다" 이 이랬으니까 누구든지 다 할 수 있고, 어데서든지 다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이맛을 본 사람은 흐리트버리한 그런 취미에서는 못 삽니다.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렇게 이 '새벽으로 나와야 된다' 하는데 숫자는 항상 안 붙습니다. 여러분들만 살고 다른 사람은 죽일건가? 응? 먼 데 사람 못해도 자기 가까운 사람들은 자기가 좀 깨울 수 있으면 깨우고, 자꾸 해서 새벽기도 안 나온다고 원수가 됐으면 마지막에는 그게 영원히 무릎꿇고 빌어야 됩니다. 우리가 옳게 바르게 그 사람이 유익된 일 해서 말함부터 원수가 된 것은 배짱이 있습니다. 마지막에 제 영원무궁세계에 무릎꿇고 평생 영원무궁토록 이렇게 빌어야 돼. '잘못 했습니다.
잘못 했습니다' 빌어야 돼.
무궁이 있는데 뭣 때문에, 여러분들이 깨달으면 하나씩 둘씩 새벽기도 사람이 늘어나갈 것인데 어떤 사람은 자기 일어나 가지고 원수같이 여기고, 그래도 이래 가지고 그놈이 이제 새벽기도를 나오게 되면은 항복을 합니다. 그게 이기는 거 아니요. 그 우리 투쟁 아니요.
이러면 아, 새벽으로 이렇게 중요한 걸 첫시간 와 가지고 영감의 빛으로, 하나님의 진리의 빛으로 자기 심신을 환하게 비추니까 마음이 더러운 것이 다 물러가지, 깨끗해지지, 밝아지지, 좋아지지 이러니까 그날 사고방식이 전부 달라지지 해할, 해할 인간은 '이 인간이 내 원수다 조심해야 되겠다' 어떻게 해도 '아! 이사람은 나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이다' 전부 자기에게 유익될 것 바로 세우고, 해할 것 바로 세우고 이러니까 모든 것이 다 되는데, 또 그 뿐입니까? '오늘 뭐 해야 됩니까?' 하면 아,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는 사람은 기도하는 가운데서 무엇을 알려줍니다. 자기는 아무리 연구해도 모르는데, 연구해도 몰랐는데 이 기도하는 가운데에 뜻밖에 퍽 알려준다 말이오. 알려주면 나중에 그놈만 생각하면 기도 못 하니까 어쩔 때는 '이게 마귀가 날 기도 못 하도록 이라는 것인가?' 뭐 기도 못 하게 하기는 왜 기도 못 해? 버뜩 눈 뜨고 싹싹싹 써놓고 기도는 기도대로 합니다. 그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거라 말이요, 그렇게 하면 옳고 바르다 그말이오. '이거 내가 못 합니다. 주님이 이거 해 주십시요' '나한테 해달라 하나?' '예, 해 주십시요' '해달라 하면 조건이 있다' '뭐입니까?' '내가 너 해줄터이니까 네가 나 해달라' '뭐입니까?' '나 시키는 대로 할래? 그러면 네 또 네 원하는 대로 내가 해 주지. 나 원하는 대로 해 줄래?' '네, 그러겠습니다' 아, 주님이 그날 시키는 대로만 하면 주님이 다 해준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새벽에 미명에 주님이 산에 안갈 수가 없고, 기도 안할 수가 없었어. 그 회장에 가지 않을 수가 없다 그말이오. 이런데 자꾸 좀 권면해! 암만 해도 안 듣는 거는 이거는 어쩔 수 없어. 안 듣는 거는 그거는 어쩔 수 없이 아예 안 듣는 거는 하나, 하나 안 들으면 포기해 버립니다. '하나님이여! 맡으시옵소서. 나는 이제는 할 수 없습니다' 포기해버려. 그래 가지고 나는 한번도 기도 안하는 인간 있어. 그사람 위해서 한번도 기도 안한 사람 있어. 안하는 사람 있어. 이제는 하나님께 맡기지, 나는 그 대해서 기도고 뭐이고 완전히 포기입니다. '나는 거기에 대해서는 손을 뗐으니 하나님이 맡아 주십시요' 그거는 미워서 그런 것이 아니고 내가 안 되니까 하나님께 맡겨서 하나님 맡아 달라고 그렇게 하는 사람 있다 그말이오. 하나님도 그래 애를 쓰다가, 애를 쓰다가 안 되면 집어 던져 버리고 망하기를 원한다 그말이오. "너희들이 듣고 깨달아 돌이켜 회개할까 내가 두려워하노라" 고놈이 고대로 나갔다 코가 콕 깨져야 되겠는데, 이게 코 깨질 때가 다가가니까 고렇게 패역부리던 것이 돌아옵니다.
돌아올라 하니까 조기 가다 코가 콕 깨져야 지금 제가 그 강팍이 부서질 것인데, 이랬는데 돌아오니까 깨졌다가 돌아오면은 그게 더 수입이 있을 터인데 깨질라 하다가 돌아오니까 그게 또 그짓 또 하겠다 그말이오. 하나님도 우리 심정이나 꼭 같소. 죄가 없고 불의가 없지 유한하지 안하지.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