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뿌리는 비유-구원의 방해자

 

1983. 5. 3. 화후집회

 

본문 : 마태복음 13장 3절∼9절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여기에 씨는 천국을 건설하는 이 복음 말씀을 말씀합니다. 여기 씨는 천국을  건설하는 이 복음의 말씀 곧 성경 말씀을 가리켜서 말씀을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들을 때에 비유하면 길바닥과 같은 그런 심령을 가진 사람이 받는 것도  있고, 또 돌짝밭과 같은 그런 심령을 가진 사람이 받는 것도 있고, 또 가시  떨기와 같은 그런 심령을 가진 사람이 받는 것도 있고, 또 옥토와 같은 그런  심령을 가진 사람이 받는 것도 있는 네 가지를 비유했습니다.

 옥토에 뿌린 씨는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 이것은 하늘 건설하는 복음을  받아 가지고 옥토에 뿌린 씨가 된 사람은 이 세 가지, 길가 돌밭 가시떨기 이  셋을 벗어나고 이런 것이 없는 옥토와 같은 그런 심령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이 말씀을 받으면 그는 인간을 대해서나, 하나님을 대해서나, 악령을 대해서나,  어떤 피조물을 대해서나, 창조주를 대해서나 자기의 받은 복음대로 자기의  의무와 책임과 본분을 다 완수할 수 있는 그런 결과를 맺을 수 있지마는, 그렇지  않는 사람은 다 신앙 생활을 시작했다가 이것에게 방해를 받아서 실패하는 사람  또 저것에게 방해를 받아서 실패하는 사람, 방해 받아서 실패하게 된 그  방해물을 여기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그 방해물을 그것을 어떤 종류의 방해물이  있는가 하는 것을 깨닫고 그 방해물에게 방해를 받지 않을 수 있는 그런  능력있는 지식을 받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첫째는 방해 받는 것이 길바닥에 방해를 받는다 하는 것을 말했습니다.

길바닥의 방해를 받는 것은 길바닥이기 때문에 씨를 심어도 씨 가 땅속에 묻히지  아니하니까 그만 새들이 와서 주워 먹고, 또 악한 자가 다 빼앗아 간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는, 이 길바닥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면서 밟아서 땅이 다져진  것인데, 이 세상에서 자기가 오랫동안 세상살이를 한 사람도 세상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말도 듣고 접촉도 하고 아주 세상으로 말미암아 많이 속화가 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나이가 많을수록 많이 속화되고 세상화 되어 있고, 또 세상에  있는 그 세상 지식을 자기가 많이 가질수록 그 사람이 또 세상화돼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 수많은 인간의 지식 또 인간의 주장, 인간의 경험, 체험, 인간들이 꾸며  놓은 온갖 종교 그런 것, 어쨌건 사람이 만들어 놓은 그 모든 것을, 어떤  종류든지 그 모든 것을 자기가 받은 하나님의 도가 그것을 능가해야 되지  그것에게 지면 헛일입니다. 그것을 이겨야 성공을 하지 그것에게 지면 성공을 못  합니다.

 처음에 하나님의 도를 들을 때에 세상에서 많은 말을 들었고, 또 많은 그런  주장들을 만났고, 많은 사람들을 접촉을 했고, 또 사람이 많은 경험과 체험을 한  그런 것이 있고,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를 들을 때에 그것이 도움이 되는 것  같지마는 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그런 말과 같은 말로 여겨져서 다  예사롭게 듣고 그렇게 조심있게 권위있게 신중하게 사람들이 받아들이기가 심히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고로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그 말씀 받으면서 깨달아지는 그  깨달음이 자기가 접촉한 모든 세상의 말과 지식 그것을 꿰뚫고 '그런 것은 다  아무것도 아니다.' 이 말씀은 그런 것에 비할 수 없이 권위가 있다.

 이래서, 마치 길바닥에, 그 길바닥 단단한 땅을 갈아서 이렇게 물씬 물씬하게  만들면 씨를 뿌릴 때에 그 씨가 딴딴한 거기에 박혀 있지 아니하고,  물씬물씬하니까 그 땅 속에 묻힐 수 있습니다. 땅속에 묻혀야 되지 땅 속에  묻히지 아니하면 안 되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이  세상에서 들은 말 그런 말에게 받치면 안 됩니다. 그런 말에게 받혀서 그런 말  때문에 이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에게 깨달을 대로 깨달아지지를 못하게 되면  헛일입니다.

 그런고로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이 말씀은 이제까지 이 세상에서  듣고 보고 경험하고 체험한 그 말씀과 같은 말씀이 아니라 권위 있는 말씀이라,  이 말씀은 그런 말과 같은 그런 말이 아니고 권위 있는 말씀이라 하는 그것이  자기에게 첫째는 느껴져야 그 사람이 길바닥에 뿌려져서 심겨지지 아니한 그런  사람이 안 됩니다.

 자기가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이제까지 세상에서 들은 그런 말을  능가하는, 그런 말을 궤뚫고 그런 말을 헤치고, 이 말씀은 그와 같은 말씀이  아닌 권위 있고 참 신실한 그 말씀인 이 말씀을 자기가 인정이 돼져야, 다시  말하면 자기가 들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말, 모든 지식, 모든 경험, 모든  사람을 접촉할 때에 접촉된 그 모든 접촉보다 이 말씀이 위에 있고 또 권위가  위에 있는, 그런 것을 발아래 밟을 만큼 그런 것을 궤뚫고 그런 것을 다  제거하고 통과해서 깊숙이 들어가는 그런 깨달음이 없으면 길가에 있는 밭과  같은 심령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읽든지 듣든지 할 때에 이 말씀을 세상 말만큼 못  여기는 사람은, 세상 말만큼 그렇게 권위 있게 생각지 않는 사람은 아주 길바닥  땅 위에 땅이 너무 단단해서 그 위에 드러난 사람이고, 또 세상 말과 동등으로  여기는 그런 사람은 그저 길바닥에 뿌린 씨니까 그 씨가 속에 뚫고 들어가려  하다가 뚫고 들어가지 못한 사람이고,  자기가 받는 바의 이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의 모든 말보다 권위 있어서 그  말보다 그 이상으로 권위 있는 그 사실을 자기가 깨달아서 '아! 이 말씀은 내가  들은 이 세상의 모든 말보다 이 말은 동등의 말이 아니다. 이 말은 그 말의  동등의 말이 아니고 이 말은 그 말로 비교할 수 없는 그런 권위 있는 말씀이며  진실한 말씀이다. 또 이 말씀을 하신 이도 내가 세상에서 이런 말 저런 말 한  그런 많은 사람들을 직접 간접으로 이렇게 상대했지마는 그런 사람들과 같은  분이 나에게 말하는 것 아니다.' 말하는 분도 그런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아주  뛰어난 분이고, 또 이 말씀 자체도 그런 모든 말보다 뛰어난 말이라는 그것을  자기가 느끼고 깨달으면 그 사람은 길바닥이 된 사람으로써 많은 사람이  지나갔지마는 길바닥된 그 땅을 파 뒤벼서 개간을 해서 옥토를 만든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말씀을 들을 때에, 이 말씀이나 이제까지 자기가 수 많은 지식의  말을 들은 그 말이나 다 같다. 또 이 말씀을 한 분이나 세상의 모든 지식을 말한  그분이나 같다. 이렇게 자기에게 여겨질 때는 그때는 그 사람은 벌써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접촉한 그 접촉에 손해를 자기가 벗지를 못하고 그 손해를 입고  있는 자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신의 감화가 와서 그 사람에게 참 길가 뿌린  씨가 옥토에 뿌린 씨로 이렇게 변화가 될 만큼 그렇게 성신의 감화로 감동이  되어서 받을 때에는 이 하나님의 말씀은 말 자체도 세상에 있는 모든 말과  다르고 또 말한 분도 다르다 하는 이것을 본인에게 성령이 깨닫게 해 주셔서  깨달아집니다.

 그러나 성령의 감화가 없으면 이 깨달음을 본인이 가지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말은 다 같은 말이라, 또 말한 분은 다 같은 분이라. 이러니까 예수님이 말씀을  하셔도 예수님이 그저 어떤 종교 유력한 창설자나 또 어떤 도덕가나 어떠한  유력한 그런 인물과 같은 그 인물 중 하나라' 그렇게 자기에게 평가되어지도록  들려지면 그 사람은 길가 뿌린 씨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이 복음이 그 사람  속에 들어가 가지고 역사를 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그것을 우리가 성경에서 읽고 깨달은 데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이 말씀은 이 세상에 있는 다른 말과 같은 말이 아니라 하는 그것을  자기가 인식하게 되는 그것이 성신의 감화입니다. 또 이 말씀을 하신 분이  세상에 있는 어떤 말한 자와 같은 분이 아니라. 하는 그것을 자기가 깨달은  자는, 성신의 감화를 받지 아니하면 그런 것을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런 깨달음을 가져야 그것이 길바닥에 뿌리운 씨를 면한 사람이요  옥토에 뿌려짐을 받은 사람인데, 그러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말과 말한 분과  이것이, 말한 자도 수가 많고 또 말해 놓은 말도 심히 많은데, 수없이 말한 그  사람들에게 자기 심령이 동화되고 속화 돼 가지고 자기 심령이 어두워졌고, 또  그 말에 대해서도 그렇게 감 염되어서 어두워졌고, 이러니까 그 어두워짐을  그것을 벗어나야 한다 하는 것입니다.

 뭐인가 도무지 말을 이렇게 증거를 해도 잘 그게 표현이 잘 안 됩니다. 좀 내가  알기로는 이거 아주 좀 어려운 설교라. 그렇게, 참 꿀 먹은 벙어리라 하더니마는  내 속으로는 깨달으나 여러분들에게 발표를 하려 해도 그 발표가 잘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마음의 문을 닫고 있어서 그런지 또 내가 기도를 많이 못 하고  부족해 그런지..

 어쨌든지 이 씨 뿌리는 비유에 길바닥, 돌밭, 가시떨기 이 셋을 벗어나야 이  하나님의 복음 천국 말씀을 들은 것이 거기에 성과를 거두지 이 셋을 벗어나지  못하면 성과를 못 거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천국 말씀을 들어도 기본구원은 얻어 가지고 있지마는 건설 구원은  하나도 이루지 못한다, 건설구원은 이 세 가지 못쓸 땅, 못쓸 땅과 같은 이 세  가지 못쓸 심령을 가진 그 사람이 요것이 변화가 되어야 되지 요것이 변화가  되기 전에는 아무리 뭐 예수님을 수십년 믿어도 성과는 없다, 구원은 하나도  없다 하는 그런 말씀인데 그것을 세 가지로 나누어 말했는데,

 길바닥이라 하는 것은 많은 사람이 왕래를 하면서 땅을 밟았기 때문에 땅이  다져져서 씨가 들어가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과 많은 사람들의 말이 우리들의 그  마음을 이렇게 속화시키고, 우리 마음을 또 둔하게 만들었고, 우리 마음이  세상의 많은 말들에게 밟혀서 다져졌고,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밟혀서  다져졌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이 말씀이 자기 심령 속에 성공을 할  수 있도록 깨달아지지를 않는다. 심어지지 않는다. 깨달아지지를 아니한다.

그것을 주님이 탄식하셔서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면서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세상에 있는 모든 지식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신구약 성경을 주시기  이전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영감으로 주시고, 또 그때는 사람들의 타락이 덜 됐기  때문에 그 양심을 통해서 이렇게 알려 주시고 이렇게 해서 자유 시대도 있고  양심 시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후에 차차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사람의 지식은 넓어졌고 또  커졌고 높아졌고 깊어졌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주신 이 복음, 천국 말씀이 천국 말씀 외에 세상에 말이 많이  있지마는 그 말은 어떤 말인가?  그 말은 다 배암이 사람 속에 들어가 가지고 사람을 감동시켜저 그렇게 가지게  한 지식인데, 그 지식은 사람을 구원해서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한  지식이 아니고 사람들을 미혹시켜서 구원을 이루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배암이  인간을 통해서 만들어 내어 놓은 지식입니다.

 그 지식은 반은 옳은 것도 있고 반은 잘못된 것도 있어서 반 거짓말 지식인데,  반 거짓말의 옳은 것까지도 그것을 이용해서 결국은 사람이 하나님을 찾지  못하도록 또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을 받지 못하도록 그렇게 해 가지고 만들어  놓은 것이 인간 지식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에는 하나님이 주신 계시 지식 성경 지식이 있고, 또 그 외에  배암이 내어 놓은 배암의 지식 이 배암의 지식도 하나님이 배암을 통해서 만들어  놓은 지식인데, 이 지식을 배암이 만들 때에는 사람을 하나님에게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하고 자기에게 가까이 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렇게 만든 지식입니다.

배암은 그 목적을 그 목적을 가지고 이 배암의 지식을 인간들을 통해서 만들어  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지식을 만들어 내도록 허락을 하시고 이렇게 한 것은 그  사람들이 하나님과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 놔 사람을 구원얻지  못하고 멸망하도록 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그 지식을 하나님께서는 왜 만들게  허락했더냐? 하나님은 그 지식을 배암의 목적대로 결과가 맺지 아니하고 배암의  목적에 정반대인 결과로 만들어 하나님이, 인간 구원에 아주 필요한 보조의  지식이 되어지도록 계시 지식만은 못하지마는 계시 지식을 보조하는 그런 보조  지식으로 이용해서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이 지식들을 내어 놓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길바닥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길바닥에 뿌리웠다, 뿌리운 씨는  새들이 와서 주워 먹었다, 또 악한 자가 다 빼앗아 갔다, 그러면 새들의 해를  받고 악한 자들의 해를 받는다 이렇게 주님이 말씀을 하셨는데, 그러면 사람의  심령을 이 세상이 밟아서 어둡게 강퍅하 게 이렇게 만들어 놓은 그것의 해인데,  그게 길바닥된 손해인데, 길 바닥된 그 손해를, 길바닥이 되어서 실패한 그  실패의 해석을 붙이기를 새가 그 씨를 주워 먹었다, 악한 자가 다 빼앗아 갔다  그렇게 해석을 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지식을 그것을 새로 비유한 것은 세상에 있는  수많은 지식이 있지마는 그 지식은 비유컨데 새와 같다, 아무 정처가 없다 또  어디에 소속한 것이 없다, 박힌 데가 심기워진 데가 없다, 그는 어디든지 붙들려  있는 데가 없다, 그것은 언제든지 기회 기회마다 이렇게 변동되는 것이지  변동되지 못하도록 한군데 꼭 매여 있거나 붙들려 있거나 심기워 있거나 그런  것이 아니다. 하는 것을 표현한 것이고,  또 '악한 자들이 와서 빼앗아 갔다' 그 악하다 하는 그것은 그 모든 말들이 다  하나님 한 분만이 당신 중심으로 모든 것을 처리할 수도 있고 주장할 수도  있는데, 하나님 한 분 그분은 완전자이기 때문에 자기 중심 자기 위주를  주장하는 것이 마땅하고, 그렇게 해야 그게 죄가 안 되고 바로 되는 것이고,  이렇지마는 하나님 한 분 외에 지음을 받은 것들은 어떤 것이라도 그렇게  하나님처럼 자기 중심으로 자기 위주로 그렇게 주장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 다  불완전한 것들이 자기 위주 자기 중심을 말하면 불완전한 것의 중심이요 위주가  되기 때문에 그것은 결과적으로 다 사망이 되어지는 것인데,  '악한 자들이 와서 다 빼앗아 간다. 그 하나님 외에 자기 중심 자기 위주자 그  자들이 다 빼앗아 간다, 그 자들이 빼앗아 간다, 그자들의 모든 지식들이 다  빼앗아 간다 또 새들이 빼앗아 간다, 새들의 지식이 빼앗아 간다 하는 그것을  해석을 붙였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하나님의 도를 들으면 반드시 앞으로 새들이 와서 이 도를  빼앗아 가고, 악한 자들이 와서 빼앗아 가고, 그것들이 빼앗아 가지 못하도록  하려고 하면 그런 새들과 악한 자들이 빼앗아 가지 못하도록 하려고 하면,  길바닥이 이것이 물씬물씬한 땅이 되어서 종자가 그 속에 심기워져야 된다.

심기워져야 된다.

 모든 인간들의 지식, 인간들의 사상, 인간들과 인간들의 그 지식 그것을  파헤치고 들어가서 그밑에 깊숙이 묻혀져야 된다. 그런 것들을 다 헤치고 그  속에 들어가서 심기워져야 된다. 그러면 인간들과 인간들의 지식에게 이렇게  막히지 아니하고 인간들과 인간들의 지식을 파고 들어가서 인간들의 지식이 따라  오지 못하는 거기까지 파고 들어가고 인간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거기까지 파고  들어가서 이 도가 거기까지 들어가야 된다.

 그는 이 말씀을 들을 때에 네 깨달음이 거기까지 들어가야 된다. 거기까지  들어가지 아니하면 결국은 악한 자에게 빼앗기게 되고 또 새에게 빼앗기게 된다.

거기까지 네 깨달음이 파고 들어가야 된다. 모든 인간을 다 탁월해서, 인간을  탁월한 깨달음, 인간의 지식을 다 초월한 깨달음 그 깨달음을 네가 가져서, 네가  받은 바의 천국의 말씀은 지글거리는 수많은 인간들의, 뭐 철학자 도덕가 종교  창설자 어떤 천하 인간들이 다 지꺼리는 그 말, 그 모든 말이 따라 을 수 없는,  그 모든 말을 파 헤치고 그 모든 것을 다 '아니다. 아니다. 이것도 아니다.

아니다.' 헤치고 그 모든 것을 궤뚫어 들어가서 그런 것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그  깊숙한 깨달음을 네가 가져야 되고, 모든 사람이 따라오지 못하고, 모든 사람이  방해할 수 없는, 모든 사람을 능가하고, 모든 사람을 탁월하고, 모든 사람을  초월하는 아주 고차원의 깨달음을 네가 가져야 이 천국 복음 받은 것이 너에게  성공을 하지 그렇지 않으면 성공을 못한다. 그것을 말씀해서 길바닥이라고  비유를 했고,  그러면 너를, 네가 이 도를 거기까지 받아서, 이는 땅 위에 있는 모든 인간들이  지글거리는 그 말은 내가 들은 바의 복음의 하나님의 말씀, 이 말씀이 만들어  놓은, 이 말씀에게 만듦을 받은, 이 말씀에게 지음을 받은 그것들이 징얼거리는  그런 말이요, 내가 들은 바의 이 하나님의 이 복음의 말씀 진리의 말씀은 그런  것들을 없는 가운데에서 만드는 그 창조의 능력을 가진 이 말씀이라.

 또 말씀하신 분은-이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이 이 말씀 가지고 만든, 이 말씀이  만든 인간들이, 김가나 박가나 뭐 어떤 유명한 자 어떤 자든지 이 말씀이 만든,  이 말씀에게 만들어짐을 받는 그자들이 말하는 그자들이요,  이 말씀을 하신 분은 말씀을 가지고 모든 것을 창조한, 이 말씀을 가지고 모든  것을 창조한, 이 말씀을 말씀하신, 이 말씀을 말씀하신, 이 말씀이 그분에게서  나온, 말씀을 말씀하신 그분이 말씀하는 것이라. 여기까지 네가 깨달으면 그것은  네가 길바닥을 면했기 때문에 이제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고 옥토가 되어서  결실함이 있지마는 거기까지 깨닫지 못하고 피상적으로 네가 깨달아서 '말은 다  같은 말이다. 말한 분도 다 같은 그런 한 인격 존재다.' 이렇게, 네가 구별하고  또 평가하는 그런, 피상적인 그런 깨달음에서는 너는 암만 성경 말씀을 배워도  건설 구원의 성과는 이루지 못한다.

 그런데 네가 들은 바의 그 모든 말은 어떤 말이냐? 악한 자의 말이 다. 악한  자의 말이다, 그것은 다 악한 자의 말이라 그말은, 악한 자는 자기를 중심한  자가 악한 자인데, 자기를 중심한 자가 한 말이다.

 그러면 자기를 중심한 자가 어떤 자이냐? 자기를 중심한 자는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먹기 전부터 거기에서 하나님 말씀을 진실되게 말하지 못하고 에누리를  하고 그렇게 하다가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배암이 먹으면 좋다고 하니까, 그  선악과를 보기에 먹고 싶고 보암직하고 참 지혜로울 만큼 탐스럽고 이렇게  자기가 평가가 될 때에 벌써 배암의 미혹을 받아 가지고 그 미혹을 받아 가지고  있는 자리에 있었는데, 선악과를 딱 먹고 난 다음부터 그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됐느냐 하면 선악을 네가 이 선악과를 먹으면 선악을 아는 것이 하나님 같이 될  줄 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런데 요 배암은 심리를 이용해 가지고 하와에게 벌써 약을 질러 가지고, 자기  사욕이라는 것과 자기가 자주장한다는 요 싹이 트는 걸 보고 고 심리를 이용해서  고렇게 하면 조것은 제가 참 하나님처럼 존귀하고 위대한 자가 된다는 말로  생각을 하고 넙죽 먹을 것이다' 하고 말을 했는데, 실은 그렇게 되지는 아니하고  다만 선과 악을 규정 지우기를 자기를 중심해서 선악이 규정되어지니까 천인이면  천 중심이 있어서 선악 규정이 천 종류가 있고, 만인이면 선악 규정이 만 규정이  있고, 사람마다 전부 자기에게로 집합하면 선이고 악이고 요렇게 규정되는  고것이 원죄요, 고것이 자기 중심인 고것인데,  네게 심긴 바의 하나님의 도를, 이 복음을 네 건설구원, 기본구원은 성경  말씀을 들음에서 있는 것 아니고 영원한 때 전부터 벌써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은 자는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고 성경에 말해 놨습니다.

 이러기에 성경 주신 것은 기본구원의 일부분과 건설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 성경 말씀을 주신 것인데, 이 성경 말씀을 받아 가지고 건설구원을  이루는데 이 건설구원을 이루는 방해자, 건설구원을 이루는 이 복음의 말씀을  빼앗아가는 자가 누구인가? 악한 자다. 또 그게 새떼다. 네가 깨닫지 못한 자야!  이렇게 깊숙이 깨달아서, 그 모든 인간의 말은, 인간의 말은 이 말씀의 능력이  지어서 이 말씀의 능력에게 지음받은 그것들이 지걸거리는 말이기 때문에 이까짓  거야 무슨 가치 있나? 그것을 탁월해서 꿰뚫고 들어가고, 또 이런 말 저런 말  중얼 중얼 하는 모든 뭐 사상가나 철인가나 도덕가나 뭐 종교 창설자나 어떤  자라 할지라도 이 말씀이 지어서 만들어서 버러지 모양으로, 개미 모양으로,  무슨 새끼 모양으로, 짐승 모양으로 만들어진 그 지음을 받은 인간들이 이와  같이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을 다 정평 정가해서 그걸 꿰뚫어,  이 말씀을 말씀하신 분은 말씀을 가지고 모든 것을 창조하신 영원 자존자이신  창조주다. 거기까지 네가 깨달음이 들어가서 거기에 지금 뿌리를 박고 거기까지  깨달음을 가지고, 말씀은 인간들의 말과 같은 말이 아니고 없는 가운데 모든  것을 창조할 때에 실지의 시공을 이 말씀이 하셨으니 이 말씀도 모든 걸 창조할  수 있는 독자적 권위를 가졌는데 하나님이 이 말씀을 보내 가지고 이 말씀이,  무인격의 하나의 진리라는 그 이치의 능력을 가지고 창조한, 말한 인간들을  창조한 이 말씀이요, 창조함을 받은 인간들이 말한 말이기 때문에 이 말과 이  사람들과 이 말씀과 이 말씀을 하신 하나님과 어떻게 비교가 되느냐?   이것을 네가 성신의 감화를 받아 깨달아 가지고 깊숙이 깨달았으면 너는 옥토가  돼 버렸고 모든 길가 바닥이라 하는 그런 것을 다 지나 가서 다 벗어서 다  꿰뚫고 들어가서 했지마는 그렇지 아니하면 너는 새에게 먹히고 또 악한 이에게  먹힌다.

 이렇게 깨닫지 못한 자는 하나님의 도를 들은 그 도를, 어떤 자에게  빼앗기느냐? 자기 중심의 자들에게 빼앗긴다. 다시 말하면 원죄자들에게  빼앗긴다. 원죄자에게 빼앗긴다. 또 새떼에게 다 먹혀 버린다. 아무데도 속한  데가 없고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딱 붙어 속해야 이게 이제 영원히 멸망을 안  받는데, 속한 데도 없는 자이지, 뿌리가 어디 박힌 데도 없는 자이지, 이러니까  아무 정처 없이 세월 시간 따라서 울렁울렁하다가 다 유황불 구렁텅이로 다 몰려  쓸려 들어갈 그런 자들, 새떼 같은 그런 자들이 네게 심긴 도를 다 빼앗아 가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네가 이 하나님 말씀 외에 수많은 인간들이 말을 했지마는 그  말은 다 원죄가, 원죄에 빠진, 원죄로 죽은 자들, 원죄로 죽은 자들이 다 죽은  놀음을 하고, 원죄로 죽은 자들이 죽은 발동, 죽은 표시를 하는 그것들이지  그것이 생명있는 것들이 아니다.

 그러기에 자기 중심인 그자들이 다 빼앗아 간다. 그것은 원죄로 말미암아 죽은  자들 원죄자들 원죄인들 원죄, 범죄, 원죄자들, 원죄를 인해 죽은 자들 그자들이  빼앗아간다. 어리석은 자야! 네가 이렇게 깨닫지 못하고 세상 많은 경험과  체험과 모든 광문 다학한 인간들의 많은 지식과 말을 들은 자야! 네가 이렇게  깨닫지 못했으면 이 도를 빼앗아 가는 자가 있는데 빼앗아 가는 자가 누군지  아느냐?  그것이 내나 자기 중심자 원죄로 죽은 자다. 또 그것이 아무 하나도 사흘도  일관이 없다. 날마다 변해지고, 소망도 변해지고, 행위도 변해지고, 목적도  변해지고, 방법도 변해지고, 사상도 변해지고, 희로애락도 변해지고, 이렇게  정처없이 울렁울렁 아무 뿌리 박힌 데 없고, 소속한 데 없고, 어디든지 매인 데  없고, 딱 붙은 데 없고 하나도 근거가 없이 돌아다니다가 멸망받는 그런 새떼와  같은 그런 자들에게 네가 삼키워진다.

 이제 고 해석을 하면서는 길바닥으로 비유해서 네가 이런 것이 지 금 네 마음을  밟고 있으니 이것 때문에 거기에 네 마음이 둔해져서 꿰뚫지 못한다. 네가  옥토가 되려고 하면 이런 것을 다 탁월해서 근 본까지 깨달아져야 된다.

깨달아지고 나면 깨달아진 사람들은 그 사람들은 새에게 빼앗기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게 쉬운 말 같지마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지식과 배암의 지식 둘이 있다' 요것을 구별하고, '배암의 지식은 원죄자가 다  일으켜 놓은 지식이다. 고 배암은 배암의 지식을 낼 때에 제 소원과 목적은  하나님과 인간으로 원수되도록 만들기 위해서 제 목적 제 소원은 그것을 두고 제  인간을 통해서 배암의 지식을 내놨고,  하나님은 그것을 내 놓도록 허락을 하신 것은 하나님은 하나님대로 또 꿈은  꾸는게 있습니다. 그게 뭐이냐? 네가 인간을 하나님과 떨어지게 만드는 고  지식을 이용해 가지고 고것으로서 연단을 받아서 영원히 가도 넘어지지  아니하는, 금을 불로 연단하는 것처럼 그런 지식을 그걸 섞어 가지고 그것으로  인해서 이렇게 저렇게 연단을 해 가지고 영원히 넘어지지 않는 그런 온전한 자를  만드는 데에는 이것도 필요 하다 그거요. 이것도 필요해서 하나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요 첫째 비유에서는 네 가지를 깨달아야 됩니다. 첫째  비유에서는 네 가지를 깨달아야 우리가 바른 깨달음인 것입니다.

 요것을 깨달은 사람은 자기가 언행심사로 실수해서 도덕이나 무슨 생활이나  그런 범죄는 하지마는 근본적인 범죄는 하지 않습니다. 근본적인 범죄 사망에  이르는 그런 죄는 범하지 아니하고 범죄 함으로 도리어 주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는 그런 결과가 되어졌으면 되어졌지 그가 뿌럭지 없이 뿌리까지 뽑혀서  확 넘어가지를 아니합니다.

  네 가지 깨달을 것이 뭐인고 하니, 믿는 사람들이 새에게 악한 자에게  빼앗기는데 두가지 깨달을 것. 세상에 하나님의 복음 이 복음과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있는 인자, 지금은 그리스도의 영, 또 예수님 이제 이분은 하나님이신데,  이 복음을 뺏들어 가려고 지금, 네가 하나님의 복음을 받은 이 복음을 네 속에서  없애 버리려고, 네 속에서 이 들은 말씀을 없애려고 이것을 까뭉개려고 하는,  국민학교 들어가기 전에는 이 말씀을 신실히 들었다가 국민학교 들어가 가지고  빼앗겨 버렸고, 중학교 들어가 가지고 빼앗겨 버렸고, 고등학교 들어가 빼앗겨  버렸고, 대학에 들어가서 빼앗겨 버렸고, 대학원에 들어가서 빼앗겨 버렸고,  사회에 나가서 출세해 가지고 빼앗겨 버렸고,  다 빼앗길 때에는 이 복음보다 그것이 권위가 저희에게 더 있기 때문에 복음은  사그라지고 그것이 권위 있어서 주장이 됐고, 또 제가 평가하기를 복음보다  그것이 직접 자기에게 필요하고 유익하고 요긴 하다고 평가가 되기 때문에 그와  같이 된 것인데 그게 뭐인지 네가 아느냐? 그걸 네가 알아라, 네 복음을 뺏들어  가는 그것이 무엇인가 네가 알아라. 그게 새떼들이다. 새떼들이다. 그게  새떼들이다. 요걸 깨달아야 됩니다. 새떼들이다.

 이것을 지난 주일에 서부 교회에서는 말하니까 좀 알아 듣고 오전에는 조금  거석하더니마는 오후에는 확실히 좀 알아듣고 이러는데 여기 와서는 말하니까  깜깜하네요.

 우리가 하나님의 복음을 받았는데 받은 바의 복음을 누구에게 빼앗기느냐? 이  세상 지식, 세상 인간들의 입술, 세상 인간들, 세상 사상, 세상 주의, 세상 모든  논리, 사상, 종교, 뭐 별별 것들, 어쨌든지 세상에 있는 모든 세상들에게  하나님의 도를 받아 가지고 그것 때문에 그만 미혹 받아 가지고 예수 믿다가  낙심도 하고 하나님의 도도 버리고 그와 같이 하는데 그게 뭐인지 네가 아느냐?  그게 뭐이냐? 그게 뭐 입니까? 새떼. 요걸 똑똑히 알아야 돼요. 새떼. 그까짓 게  무슨 정처가 있습니까? 무슨 소속이 있습니까? 무슨 불변이 있습니까? 영원성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왔다 갔다 이러다가 망해 버리고 마는 것이오.

 기독자는 하나님에게 뿌리를 딱 박아서 하나님과 딱 결박을 했기 때문에 이는  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결박되어서 하나님에게 뿌리박는 이  복음을 받은 자가 이 복음을 새떼에게 빼앗기니 그게 새떼인 줄 알아라. 네  복음을 방해하는 그것이 새떼인 줄 알아라. 네가 예수 믿는 것 방해하는 그자가,  네가 살피 봐라. 그게 무 슨 불변성이 있나, 완전성이 있나, 영원성이 있나?  그게 어디 무슨 절대의 무슨 어떤 그 세례에게 속한 데가 있나? 내일을 아나  모레를 아나? 죽는 걸 아나 사는 걸 아나?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되는 대로 밤  되면 자고 낮 되면 깨고, 배고프니까 밥 먹고, 밥 먹으려고 하니 일하고, 이래  이래 새떼 모양으로 그저 정신 없이 이래 돌아다니다가 마지막으로 뒈지는 게  그게 아니냐? 네가 그 가치를 정평해라. 새떼들이다.

 또 그것이 또 뭐이냐? 자기 중심의 그런 것들이다. 세상에 창조주 조물주  완전자 그분 한 분만이 자기 중심을 주장하고, 모든 피조물은 그분이 자기  중심을 주장하는 거기에 속하고, 거기에 매이고, 거기에 따라서, 그분이  중심하는 그 중심을 자기 중심으로 삼아서 그를 향하여 찾아가고 이래 뭉쳐야  이것이 안 죽고 사는 것이고 그 혜택이 다 뻗쳐 나가 가지고 생기를 받아서 사는  것인데, 이게 자존자처럼 제 중심을 해 가지고 그게 살 것인가 안 살것인가?  그것들이 전부 제 중심의 것이 아니냐? 그걸 네가 좀 비판해 보면 알 터인데  그걸 뭣이라고 그것에게 빼앗기느냐? 네가 평가하는 것은 그걸 높이 평가하고,  그걸 강하게 평가하고, 그걸 권위 있게 더 옳게 인정하기 때문에 네가 복음을  들은 바의 복음을 네가 내주고 그걸 취하고 바꾸는 게 아니냐? 그게 바로  새떼다. 그게 바로, 그것이 자기 중심인 악한 자들이다.

 네가 길가에 받은 씨로 세상에서 모든 것에 감염되고 속화되고, 모 두 다  이렇게 동화되고 이리 되어서 세상에 물이 가득 들어서 있는 네가 하나님의 도를  들을 때에 이 세상에서 들은 모든 말 그런 것을 꿰뚫고 들어가기까지 깨닫지  못하면 마지막에 새에게 삼켜지고 다 자기 중심인 악한 자에게 삼켜진다 하는  이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해 사람은, 예수 믿어도, 목사가 되어도 이것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소용이 없습니다. 보면 알아요. 아! 뭐 도덕도 훌륭하고 주장도 홀륭하고  언변도 좋고 설교도 해서 사람을 일시적으로 감화를 암만 많이 줘도 이 두  지식을 구별하지 못하고, 또 이 두 지식을 가지고 선포한 그들을 자기가 확실히  파악지 못한 사람은 그 것은 언제든지 세상으로 돌아가고 속화되기 마련입니다.

 그러기에 둘은, 네가 미혹받는 것을 새인 줄 모르고 네 딴에는 그 이상, 그게  하나님처럼 보여지지, 크게 보이지. 고게 새떼다. 정처없는 자다. 뿌리 없는  자다. 그러다가 좀 있다가 그만 뒈져버리는 자다. 무슨 권위가 있고 무슨 존재  있고, 어디 지금 무슨 불변에 속했으며 영원에 속했으며 그게 영원성이 있나?  완전성이 있나 불변성이 있나? 그 무슨 진실성이 있나? 그게 뭐 있나?  아무것도 없는 그런 새떼, 또 자기 중심인 그 악한 자 그런 자, 그 자기  중심이, 아! 조물주가, 뚜렷이 이분이 지었고 먹이고 기르고 관할하고 아!  이분이 뚜렷이 주인이 따로 있는데 '내가 주인이다. 나는 자존자다' 하면서  날뛰니까 그것을 하나님이 정한 기간까지 놔 두지 마는 하나님이 그걸  회개하도록 하다가 회개 안 하면 얼마나 때려 부수겠습니까? 그것들을 때려  부수고 그 복수의 원수 갚음이 유황불 구렁텅이입니다.

 우리는 그걸 알고 있지 않소? 하나님 중심하고 자기 중심인 그것은 멸망을  필연적으로 받는다는 것을 우리는 수학적으로 알고 그것은 확실히 우리는  과학적으로 알고 있지 않습니까? 알고 있는 우리들이 우리 받은 바의 도를 그런  것들이 와 가지고 학교 한 번 올라가면 그렇고, 두 번 올라가면 그렇고, 또 사람  몇 군데 접촉하면 그렇고, 또 사회 조금 출세하면 그와 같이 되어지니,  그것이 자기 중심자들의 그 주장이요, 사상들이기 때문에 하나님 중심의 사상과  주장과 반대가 되어지니까 하나님의 주장과 사상에 반대 되어지는 그것이 자기  중심자들의 그 주장이요 사상들이기 때문에 하나님 중심의 사상과 주장과 반대가  되어지니까, 하나님의 주장과 사상에 반대 되어지는 그것이 설것이라고 네가  보느냐? 그게 힘 있다 고 보느냐? 그게 권위 있다고 보느냐? 그게 옳다고  보느냐? 그런데 왜 그것을 네가 정평 정가하지 못하고 거기에 미혹을 받아  가지고 하나님 보다 그게 크다 해 가지고 그리 미혹을 받느냐? 그것은 네가  길바닥이 돼 가지고 있어서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다.

 또 두 가지만 더 깨달을 것은, 길바닥에서 뭐이냐? 네가 말과 말을 구별해라.

말과 말을 구별해라. 천하에 있는 모든 말과 하나님의 말씀과를 구별해라.

천하에 있는 모든 지식과 하나님의 지식을 구별해 라. 말이 지식이고 지식이  말입니다.

 이러니까 말과 말을 구별해서 하나님의 복음을 들으라. 하나님의 복음은 어떤  말씀이며 세상에 지걸거리는 수많은 학자들, 수많은 철인들, 수많은 종교  창설자들, 수많은 사상가들, 수많은 정치가들, 수 많은 권위가들, 도덕가들 말해  놓은 그 자의 말과 하나님의 말씀과, 말씀과 말씀의 그 가치를, 권위를,  진실성을, 그 지위를 요것을 구별하지 못하면 너는 헛일이다. 그걸 구별해라.

 또 말씀한 그 수많은 위인들과 또 이 말씀하신 하나님과 네가 구별을 해라 둘을  비교해라. 말한 자와 말과, 말과 말을 구별해 보고, 말한 자와 말한 자를 구별해  보라. 이것을 깨달아 여기까지 깨달아 들어가지 아니하면 그 세상으로 말미암아  짓밟힌 속화된 그 꺼풀을 벗지 못한 것입니다. 속화된 그 해독을 자기가 벗지  못한 자요.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의 도를 들을 때에 이것을 깨달아서 깊숙이 길바닥이  되지 아니해야 되겠습니다. 길바닥이 안 되는 것은, 이제 말한 대로 길바닥은  말씀을 들을 때에 아! 이 말씀은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창조하신 창조의  능력을 가진 말씀인데, 이 말씀이 일차적으로는 없는 가운데에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고, 이차적으로는 이 말씀이 지어놓은 이 모든 것들을 두번 재창조로 이  말씀이 창조하는 것은 이것은 영원 불변 완전의 진동이 없는 변동이 없는 영원한  것을 창조하기 위해서 다시 이 말씀이 오셨다.

 그러면 이 말씀이 이 말씀이 일차적으로 한것은 모든 변동될 것을 이 말씀이  창조했고, 이차적으로 온 것은 진동되지 아니하고 변동되지 아니할 것들을  창조하기 위해서 이 말씀이 왔다. 이 말씀과 인간의 말과 네가 같다고 아느냐?  요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됩니다.

 벌써 여기에 눈이 뜨인 사람은 마귀가 달려들지를 않습니다. 마귀 가 안  달려들면 그 다음에는 자꾸 핍박하요. 마귀가 달려들어서 수 입 있겠다 싶을  때에는 위협도 줘 보고 또 꾀우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고 자꾸 위협 협박을  주지마는 이제 이렇게 깨달아지는 그런 사람 들은 마귀가 암만 그래 봤자 유혹도  안 되고, 위협해 봤자, 협박해 봤자 코웃음만 웃고 비웃기만 하고 소용이  없으니까 그 다음에는 뭐 이냐 하면 배격합니다.

 배격해. 자꾸 욕하요. 욕하면서 '어라, 거기 이단이다 가지 말라. 거기  이단이다. 이단이다 가지 말라.' 자꾸 그저 못 가게, 저거 편을 거기에 못가게만  자꾸 만들지 이제 꾀우거나 위협을 주거나 달래거나 그런 일은 하지를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땅 위에 있는 인간의 말과 말과 말을 바로 구별한 사람, 말한  자와 말한 자를 구별하는 사람, 요걸 구별해서 '아! 그까짓 것 아무것도 아니다.

이분은 한 분뿐이시다. 이 모든 말은 이 말과 이 말씀이 창조해 놓은 그것들이  지걸거리는 그 말이다. 이 말씀은 지걸거리는 말을 하는 그것들을 없는  가운데에서 지은 말씀이다.' 이것을 깨달은 이 사람은 이 세상에 속화로 인해서  피해를 받는 길바닥 같은 그런 피해를 벗어난 사람입니다.

 그것이 깨달은 사람이오. 그렇게 깨닫지 못한 사람은 항상 길바닥이 라는 해를  받아 가지고 그 안에 깊숙이 스며지지 아니하고 피상적으로 하나님의 도를 받게  됩니다.

 네 가지 단단히 기억하십시오. 네 가지. 새와 악한 자. 단단히 기억을 해요.

새와 악한 자. 이것도 심령이 어두운 사람은 이것이, 심령이 어두운 사람은  이해가 안돼요. 모든 세상에 있는 모든 말이, 자기 중심이 원죄인데, 자기  중심이 원죄인데 원죄가 말한 것이라 하는 이 말이 이해가 안돼요? '어찌  그럴까?' 안돼요. 심령이 밝은 사람은 그것은 자기가 안 배워도 알고 배우면  그만 들으면 퍼뜩 '아! 아멘.' 돼 버린다 그 말이오.

 또 이 모든 하나님의 도를 반대하고 하는 그것이 새떼들이다 하는 말도 이해가  안 되지마는 심령이 밝은 사람은 대번 딱 알아 맞춰요. '아! 과연 새떼다.' 그  소리를 자기는 말로는 못 해도 속으로 '그렇다.' 이렇게 느껴지던 사람은 이제  말만 하면 '아멘. 과연 새떼다. 하나님의 도를 반대하는 그것들이 다 새떼니까  무슨 힘이 있노? 불쌍하고 가련하지. 하나님의, 말씀하는 하나님의 도를  반대하는 그것이 다 자기 중심자니 불쌍하고 가련하고 비참하지.' 아! 주인은  따로 있는데 제가 건방지게 자존자처럼 내가 주인이라 하고 나서니까 뒤에 가서  그것은 뭐 낭파 당하고 수치 당하고 나중에 매맞을 것 외에 벌받을 것 외에 딴  것 뭐 있겠습니까?  그런고로 거기에 대해서 네 가지를 우리가 깨닫고 새떼에게 손해를 보지  마십시오. 새떼를 새떼로 새떼라 하면 듣기 싫어합니다. 그렇지 마는 속으로는  이럴 때 말을 들어보면 알아요. 말을 들어보면 그것이 정처없이. 겨자씨는  작아도 땅에 묻혔기 때문에 부러지면 부러졌지 날아가지 못해. 이리 저리 변동을  못해, 딱 박힌 데가 있어서. 믿는 사람은 하나님에게 속했기 때문에 순교를  당했으면 순교 당했지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지를 못한다 그 말이오.

 그게 속한 데가 있소 갈 곳이 있소? 뭐 불변성이 거기 있소 영원성 이거 있소?  아무것도 없어요. 믿는 사람에게는 전부가 영원성 불변 성 완전성 그것으로만  지금 무장을 하려고 하고 있으니까, 세상이 모르는 걸 가지고 무장하니까 세상  사람 볼 때에 등신이라 어리석다 하지마는 고면에 눈을 떠 가지고 고것를 가치로  안 사람은 아무리 봐도, '보자' 뒤적 뒤적해 보고 이거 불변성이 있는데 이  불변의 것, 불변의 것이냐? 불변, '아! 이거 변할 것이다. 변할 것이면 안 한다.

불변의 것이냐? 영원한 것이냐? 완전의 것이냐? 영생의 것이냐?' 뭐 그게 아니면  다 집어 던지 버려요. '아! 이거 내 것 아니지. 내게 필 요 없습니다.' 세상이  모르는 것을 다 구하고 차지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거기에서 네 가지를  깨달아서 두 가지를 깨달아 가면 그 사람은 단단한 길바닥의 해를 보지 않는  사람입니다.

 또 둘째로, 돌짝밭에 뿌리운 씨. 돌짝밭에 뿌리운 씨 그것은, 돌을, 돌을  어떻게 자기라고 그걸 해석을 하는가? 돌을 죄라고 해석하는 해석이나 자기라고  해석하는 해석이나 다 한가지입니다. 자기가 원죄 뭉텅이 자기요. 또 자기가  하는 모든 행동은 원죄 뭉텅이가 해 놓은 모두 새끼 죄악입니다. 원죄는 죄의  제일 뿌럭지, 죄의 원둥치는 자기를 자기의 주인으로 삼은 그것이 죄의  원둥치입니다. 원둥치. 또 새끼 죄는 자기가 자기 주인이 돼 가지고 제 마음대로  언행심사 해 놓은 그것이 다 새끼 죄입니다.

 어떻게 돌을 그렇게 해석하는가? 이것은, 돌짝밭에 뿌리운 씨는 씨 가 뿌리를  박으려고 해도 돌에 막혀서 뿌리를 박지 못합니다. 못하는 데, 이래도 뿌리를  박도록 하퍽고 이러니까 이제 하나님의도 때문에 핍박을 받고 환난을 받으니까  그 환난을 받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의 도를 저버리고, 또 핍박을 받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의 도를 저버리니까 이제 하나님의 도가 핍박받아서, 핍박 안  받으려고 하나님의도를 저버리는 자, 환난 안 받으려고 하나님의 도를 저버리는  자, 그자에게 쫓겨나간 것이 하나님의 도입니다.

 그자에게 쫓겨나간 것이 하나님의 도요. 그자에게 쫓겨나간 것이 하나님의  도이니까 하나님의 도가 무엇 때문에 이제 말라 죽어 버리고 그만 성공을 못하고  마느냐 하면 돌 때문에 못했기 때문에 돌에게 쫓겨나간 것이 하나님의 도요. 돌  때문에 하나님의 도가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돌 때문에 성공하지 못했는데,  성공하지 못한 하나님 말씀이 성공하지 못한 것은 고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서  어려움을 당하니까 제가 어려움 당치 않기 위해서 하나님의 도를 배반했기  때문에 어려움을 당치 아니하려 하는 자기, 그 자기로 인해서 하나님의 도가  배척 받아서 실패했기 때문에 고 돌은 하나님의 도에 배치되는 자기라 그렇게  해석을 하는 것이 그것이 성경에 된 대로의 바른 해석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요 말씀대로 행할 때에 자기에게  거리끼지 아니할 때에는 잘합니다. 자기에게 거리끼지 아니할 때에는 잘  행하지마는 자기에게 거리끼면 고만 이 도를 버립니다. 또 이도 때문에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못 하게 될 때에도 이 도를 버리고, 또 이도 때문에 자기가 해를  당하게 될 때에도 이 도를 버리고, 이 도를 버리는 것은 누가 버리는고 하니  자기가 버리는 것인데, 돌 밭에 뿌린 씨를 벗어나서 면하려고 하면, 하나님의  도를 받아 가지고 실행을 하려고 할 때에 그 자기에게 막히지 않는 그 사람이  옥토에 뿌린 씨입니다. 하나님의 도를 받아 가지고 말씀대로 살려고 하다가  자기에게 받혀서, 자기 때문에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고 자기 때문에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자기 고것이 막바로 여기에 비유에 돌 덩어리입니다. 돌 덩어리.

 우리가 말씀대로 살려고 할 때에 손해가는 자기, 말씀대로 삶으로 손해가는  자기, 말씀을 어김으로써 자기에게 유익이 되고 기쁘고 좋은 자기, 말씀대로  삶으로 손해가는 자기, 말씀대로 삶으로써 자기에게는 불안하고 고통이 되는  자기 요 자기가 있고, 말씀대로 삶으로 인하여 기뻐지고 즐거워지고 또 말씀대로  삶으로 인해서, 자기는 살려고 하는데 다른 것이 살지 못하게 해도 살려고 하는  자기,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자기, 말씀대로 사는 것을 반대하는 자기. 우리 속에는  두 자기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을 받을 때에는 내 속에 이 말씀을 환영하는  자기도 있고 이 말씀을 반대하는 자기도 있는 이 두 자기가 있는 이것을 미리  깨닫고, 말씀대로 행할 때에 그 말씀을, 말씀대로 행할 때에 자기가 손해가  되니까 이 말씀을 버리는 자기가 있고, 또 이 말씀대로 삶으로 자기에게 손해가  가니까 더 좋아하고, 자기에게 해가 되니까 더 좋아하고, 이 말씀대로 사는 것도  좋아하고 이 말씀대로 삶으로 인하여 손해가는 것은 더 좋아하고 하는 그런  사람이 우리 속에 두 사람이 있는 것을 우리가 발견을 해야 합니다.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것은 영인데, 우리의 마음과 몸이 성령과 영과 우리  마음과 몸이 하나 되었을 때를 가리켜서 새사람이라 이렇게 말하고, 또 성령과  중생된 영을 떼 놓고 자기 마음과 이 몸뚱이만 하나 되어 가지고 움직이는 것을  가리켜서 육신의 사람이라 그렇게 말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받아서 건설구원을 이루어 나가려고 이렇게 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현실을 주셔서 이 말씀을 지켜서 행하려고 하면 어떤  현실을 주실 때에는 이 말씀대로 지켜서 행하여 나가기가 아무 마찰 없이,  어려움 없이 지켜 행하여 나가게 되는 그런 때도 있고, 또 이 말씀대로 지켜  행하려고 하면 여러 가지 애로가 다소 있는때도 있고, 아주 애로가 많은 때도  있고, 이 말씀대로 지켜 행하려고 하면 우리에게 큰 환난이나 고통이 있는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이,-비유가 될런지 모르나 의사가 그 사람에게, 나는 잘 모르지마는,  늑막염을 앓아서 고름이 들었는데, 고름 그것도 한목 빼면 안 된다고. 뭐 고름을  조금씩 그렇게 슬슬 빼서 치료해야 그 사람이 상하지 아니하고 치료가 되지,  한목, 고름이라고, 그것은 빼야 될 것은 빼야 될 것이지마는 많이 빼버리면  사람이 상해서 안 된다고 말하는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우리에게 줘 놓고, 이 말씀대로 우리가 살도록 이렇게 살 각오를 가지고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이 깨달음을 우리에게 줘 놓고, 하나님께서 현실을 만들어  주실 때에 어떤 현실은 말씀대로 살려고 해도 아무 지장없이 말씀대로  살아집니다.

 그러면, 말씀대로 한 달도 살고 일년도 살고 몇 해를 살므로써 말씀 대로 사는  그 일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나중에는 '네가 말씀대로 사는데,  말씀대로 사는 것 중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사는 부분도 있고, 또 네가 네  주장으로 사는 부분도 있고, 네 주장과 하나님의 말씀이 서로 배치가 안 되니까  네가 이대로 살기는 살지마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면 네가 절단나고, 네대로  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버려야 되고 하는 이 둘을 딱 갈라놓으면 네가 그때는  살지 못할 것이다. 살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래서 고 가르는 역사를 많이 할  때도 있고 적게 할 때도 있고, 차차 차차 그 사람의 정도에 따라서 이렇게 갈라  가는 이 역사를 하는데 고것을 가리켜서 '불로 금을 연단한다' 고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할 때에 그때에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나에게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그 박해나 환난이  옵니다. 박해나 환난이 올 때에 그때에 박해와 환난이 오는 것은, 그것은,  하나님 말씀대로 우리가 살려고 할 때에 박해가 오는 것은, 그러면 박해를  당하는 그 사람이, 그 사람이 우리 속에 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할 때에 박해가 오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하고  이렇게 한덩어리가 되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하고 나하고  둘을 갈라 가지고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 버리게 하고, 나는  나대로 하나님 말씀과 떨어져서 세상과 마귀 저하고 한덩어리가 되고 이러기  위해서 세상이 박해를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돌짝밭에 뿌리운 씨가 그 박해를 당하게 되는 그때는  하나님의 말씀만 버려 버리면 그만 그 박해는 안 옵니다. 하나님의 말씀하고  자기하고 함께 손을 잡고 있기 때문에 이제 박해가 오는 것인데, 그때, 박해가  올 때에 하나님의 말씀만 그만 버려 버리면 박해를 주던 세상이 고맙다고,  고맙다고 아주 칭찬도 하고 대 우도 잘합니다.

 좀 전에도 어떤 학생이 자기가 뭐 와서 '지금 자꾸 무엇이 독촉하러 왔는데  어떻게 할까요?' 묻기 때문에 '네가 뭐라고 배웠노? 배운 대로 해라.' 내가  이랬는데,  하나님의 말씀하고 우리하고 둘이 떨어지지 아니하고 하나가 돼 가지고 이렇게  있으면, 하나님이 현실을 만들어 주실 때에 그 현실을 만드는 데에는 하나님이  만들었지마는 마귀 제딴에는 또 제 욕심을 차려서 제대로 또 제가 제가 만든 줄  알고 날뛰는데, 그러면 그때에 우리를 박해하는 자는 누구냐? 박해하는 자는  속에는 악령이요 껍데기는 세상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박해하는 것은 왜 박해를 하느냐? 네가 무엇 때문에 하나님하고  하나님 말씀하고 머뭇 머뭇하게 그렇게 둘둘 버무려 가지고 하나가 되어 가지고  이러느냐? 딱 선을 긋고 그렇게 똑똑히 구별해서 똑똑히 구별있게 살지 아니하고  네가 뭣 때문에 한테 뒤 타 가지고 그렇게 하고 있느냐? 그러면서 세상이 저희  편이 되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말씀과 한덩어리가 되어 가지고  있다고 그 사이를 갈라 뜨리기 위해서 이제 그렇게 환난과 핍박을 주는  것입니다.

 그때, 환난과 핍박을 줄 때에 그만 하나님의 말씀만 저버려 버리면 세상이  있다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저를 따라오고 제 말을 들었기  때문에 고맙다고 좋아서 뭐 대접도 하고 아주 후대를 합니다. 그러나 그때 '암만  그렇지마는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을 버릴 수가 없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도 버릴 수 없고 세상도 버릴 수 없다. 둘다 거머쥐고  이래 있으면 그때에 이제 세상에게 매를 맞는 때입니다.

 매를 맞다가 못견디면 나중에 뭐 하나님을 내놓든지 세상을 내놓든 지 둘 중에  하나를 내 놓게 되는데, 그때에, 그때가 어떤 때인고 하니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게도 속하여 있고 세상에게도 속하여 있고, 양쪽에 붙어 살고 속해 가지고  있으니까, 그때 지금 세상이 와 가지고 박해를 주는 것은 네가 하나님과 말씀을  버리고 나하고 한덩어리 가 과거 모양으로 그래 되어야 되지 그리 안 하면 안  된다 하고 그와 같이 조우는데,  이 사람은 과거에는 세상하고 한덩어리가 되어 있었지마는 이제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과 이제 이 세상과, 왼쪽 손에는 세상을  잡고 오른쪽 손으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잡고 이 둘을 잡고, 양쪽을  놓지 아니하고 이 둘을 잡고 있으니까 이쪽에 있는 세상이 있다가 '그 오른손 안  놓나? 어서 손 안 놓나? 손 놓고 내게로 안 달라 붙나?' 자꾸 뚜드려 댑니다.

뚜드려 댈 이 때가 어떤 때인고 하니 이때가 하나님과 말씀을 버리고 세상 것이  되는 때요. 그렇지 않으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그 모든 것을 버러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의 것이 내가 되어지는 때입니다.

 이제 여기에서 판가름을 지금 하려고 하는 것인데, 하나님도 세상을 시켜서  판가름을 하려고 고렇게 하시고, 또 마귀는 또 제대로 제 욕심으로, 하나님은  하나님 욕심으로 '네가 보자. 어디 속하는가 보자' 마귀에게 속해도 또 뒤에 또  새로 하면 되니까, 몇번이든지 할 수 있으니까 네가 마귀에게 속하면 속하나  하면서 하나님께서 연단을 시키고 연습을 시켜서 결국은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 가지고, 하나님 목적은 그것이고 또 세상 목적은 그것이고 두 목적이,  한 현실은 하나님하고 세상하고 만들었지마는 그 목적은 각각 딴 목적을 가지고  지금, 그때에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 때문에 박해를 당 하는 그전 것을 그런  현실을 만들어서 닥치게 되는 것이 세상은 제 욕심을 차려서 하나님과 말씀을 떼  내던져 버리고 완전히 제 것이 라고 지금 하는 그때이고, 하나님은 네가 세상과  세상 그것을 떼 버리고 완전히 진리와 하나님에게 속하라 하는 그것을 은연중  바라서 이래 하고, 양쪽에서 그 둘을 바라서 이와 같이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때에 박해를 면하려고 하면 하나님과 말씀을 버리면 그만 박해가 당장  없어지고 없어지고, 또 거기에서 악령과 사망을 버려서 영원한 멸망을 자기가  벗어나려고 하면 그때에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버리면 자기는 영원한  멸망을 벗어나고 영원한 생명을 자기가 얻게 되고, 이러니까 자기는 그때 이  가운데 끼여서 좌하느냐 우하느냐 하는 것이 결정되는 그 시기인 것입니다.

 그때 그것으로서 하나님의 것이 되기도 하고 세상 것이 되기도 하고, 고  자기에게 닥친 고 현실은 하나님의 것이 돼 버리든지 세상 것이 돼 버리든지 고  현실이라는 현실은 두번 오지는 아니합니다. 한번 왔다가 지나가면 다시는 오지  아니합니다.

 그러기에, 고 현실에서 자기가 고 현실에 해당된 고 부분은 완전히 하나님과  진리의 것이 되든지 세상과 악령의 것이 되든지 둘 중에 어느 것이 되든지  판가름을 하는 그런 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과 진리를 버리면 당장 편하고 좋고 살고, 또 세상과  마귀를 버리면 당장 고통스럽고 이제 고통스러운 그 다음에는 영원한 평강과  영생을 얻게 되고, 이러니까 마귀를 따라가면 당장 좋고 편하고 수월하고,  하나님을 따라 가면 당장은 고통이고 그 다음에는 수월하고 평안하고 생명이고,  이래하기 때문에, 고 판가름하는 고 현실이니까 그 판가름하는 데에서 하나님을  따라 감으로 먼저 고생하고 후에 평안하고, 먼저 손해 보고 뒤에 유익보고, 먼저  죽고 뒤에 살고, 먼저 패전하고 뒤에 승리하는, 이 뒤가 좋은, 뒤가 좋은 것이  하나님의 도라. 하나님의 도는 처음에는 안 됐고 뒤가 좋고, 마귀의 도는 처음은  좋고 뒤가 하찮은 고것이 마귀의 도입니다. 이래서 처음은 나쁘고 뒤가 좋은  것을 말해서 십자가의 도라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요 말씀대로 살려고 함으로 인해서  환난과 핍박을 오거든 그만 그 환난 핍박을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서, 환난과  핍박을 면하기 위해서, 벗어나기 위해서 하나님의 도를 저버리는 그런 일을 하면  그것으로 영원히 사망되는 일이 되고, 고때가 아주 판가름을 결정을 지우는  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인해서 핍박이 없을 때에는 아직까지 판가름이  없습니다. 판결이 없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자기에게 환난이나 핍박이  올 그때는 어떤 때인고 하니 이것이 뉘 것이냐 하는 판가름이 나는 그때이기  때문에, 그때는 어떤 때인고 하니 죽느냐 사느냐 하는 때입니다. 세상 것이 되면  죽고 하나님의 것이 되면 삽니다.

 그러면 죽고 사는 것이 판가름 되어지는 그 때인데, 그 때에 자기가 박해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의 도와 하나님을 배반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자라서 결실 못 하게 하는 돌입니다. 돌이오. 그것이 결실을 못하게 하는 그  돌입니다. 돌무더기, 돌 뭉텅이오. 돌 뭉텅인데, 돌 뭉텅이 그게 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 결실 못하게 하는 돌뭉텅이 그게 뭐이라고 했지요? 자기. 또 무슨  뭉텅이? 원죄 뭉텅이요, 원죄 뭉텅이. 원죄 뭉텅이. 원죄 뭉텅이. 하나님의 도를  결실치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도를 저버리고 자기가 살아나는 고것은 원죄  뭉텅이가 살아나는 것이요 고것은 완전히 멸망으로 결정을 지워 버리는  것입니다. 고 결정을 지우는 것이오.

 그러기에, 하나님의 도를 처음에 행할 때에는 아무 어려움 없이 하나님이  행하도록 현실을 이래 만들어 줬다가, 그러면 그때 둘이 섞여 나가요. 섞여  나가다가 마지막에는 판가름을 지울 때에는 어느 때인가 하면,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자기에게 환난과 핍박이 오는 그때는 어떤 때인고 하니 돌을 파내 버리면  결실이 있을 것이고, 돌을 고대로 두면 결실이 안 될 그런 단계인데, 그때에  원죄 뭉텅이를 파내 버리면 하나님의 말씀이 결실이 있고 원죄 뭉텅이를 그대로  두면, 안 됩니다.

 그러기에 원죄 뭉텅이를, 네가 원죄 뭉텅이를 네가 취하고 원죄 뭉텅이를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의 도를 저 버리느냐, 하나님의 도를 결 실하도록 하기  위해서 돌을, 자갈을 파내 던지느냐? 원죄 뭉텅이를 파내 던지느냐? 그것이 자기  현실에서 하나님의 도를 인해서 박해가 오는 때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인해서 경제 손해가 오든지, 직장 손해가 오든지,  사회 손해가 오든지, 가정의 어려움이 오든지, 신체적 손해가 오든지, 생명적  손해가 오든지, 자유 활동에 손해가 오든지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손해가 오는 그때는, 그 해를 주는 그때는 누가 해를 주느냐? 세상이 줍니다.

세상이 제것을 안 빼앗기려고, 제것을 제가 찾아가려고 세상이 주는 박해이고  박해니까, 그때에 하나님의 도만 버리면 세상이 막 업고 춤을 추면서 '고맙다,  잘한다.' 등을 뚜드리고 좋아하지마는 그때 하나님의 도를 자기가 버리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도의 결실이 있도록 이렇게 해서 자갈을 파 던져 버리면,  세상 줄을 끊어 버리면 그러면 마귀가 그 다음에는 이제 자기 할 대로는 합니다.

자기가 할 대로 해도 육체 죽이는 것 그 이상은 못 하요. 할 대로는 해   예수님에게 대해서 하나님에게 속하고 세상을 환영하지 아니하니까 박해를  하다가 하다가, 행여나 항복할까 할까 할까 이래 고문을 하다 가, 마지막에  십자가에 못박아 놓고 '지금이라도 내려오면 된다. 내려오면 된다.' 하다가 고만  숨이 딱 끊어지기까지 하나님에게 속하고 하나님을 순종하고 세상을 반대하는  걸로 끝나 버렸으니까 더 할래야 더 할 수 없어서 그만 손들었다 말이오. 더  할래야 더 할 수 없어서 끝을 맺어 버렸다 그 말이오.

 그런고로, 우리가 돌밭에 뿌린 씨,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받을 때애  앉아서 계산하기를 '이 말씀대로 내가 행하려고 하면 나는 세상에 속했고 죄악에  속했고 죄아래 있기 때문에 내가, 이 말씀은 지금 생명이요 평강이요 빛인데,  죄와 마귀에게 속한 내가 이 말씀을 받았으니 이 말씀대로 실행을 하려고 하면  이 간부 이 세상이,마귀가 이것이 들어서, 지금까지는 제것이니까 제 하자 하는  대로 하고 제 마음대로 나를 했기 때문에 이제 내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씀대로  내가 말씀에 속하고 하나님 말씀을 따라 가려고 하면 세상 이것들이 지금 나를  박해를 할 것이다 하니까 내가 어느 정도 그 박해를 참고 견디겠는냐? 하는  그것을 앉아서 계산을 해야 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는 내가 세상에 속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상이 나를  박해 줄 때에는 어디까지 주겠느냐? 그것은 뭐 매매도 못하게 할 것이고, 먹지도  못하게 할 것이고, 입지도 못하게 할 것이고, 자유도 못하게 할 것이고, 감옥에  갇힐는지 죽일는지 모르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세상이 빼앗기지  아니하고 제것으로,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 버리라고 가서 위협도 하고, 꾀우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고, 강제도 하고 이렇게, 반드시 그것이 서둘기는 서둘 지,  달려들기는 달려들지, 그대로 있지는 않는다 그 말이오. 그대로 있지는 않으니까  그때에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반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내가 손해가  가도 세상에게 박해를 당하고도 견디겠느냐 하는 고것을 앉아서 계산을 해야  됩니다.

 그러면 어느 정도 박해가 오겠느냐? 이러면 아마 무슨 환난이 오겠 다. 무슨  가정에 파괴가 나겠고, 이혼이 되겠고, 뭐 또 직장이 떨어 지겠고, 또 감옥에  갇히는 일이 있을 것이고, 또 나중에는 뭐 고문과 고형도 있을 것이고, 또  죽이는 일이 있을 것이고, 아예 그런 것을 예산을 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면 이런 이 세상이 들어서, 이 제 제가 뺏길 판이니까, 뻣길 판이니까  뺏기지 않도록 제게로 돌아오라고, 나를 강제로 끌고 가지는 못하니까, 왜 끌고  가지를 못하느냐? 왕노릇을 못하기 때문에 강제로 끌고 가지는 못하니까 이제  자꾸 위협이나 박해는 줄 수 있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박해가 올 때에 그 박해에 대해서도 우리가 각오를 가져야 됩니다.

그러면 내가 이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어떤 박해를 받겠느냐? 세상에서 박해의  종류, 고문의 종류, 고통의 종류, 외로움의 종류, 손해의 종류, 억울함의 종류,  뭐 핍박 종류, 환난 종류, 종류 있는 대로는 어떤 종류가 올런지 모릅니다.

이러니까 어떤 종류가 와도 나는 내가 받은 바의 하나님의 도는 배반치 않겠다  하는 요것을 우리에게 예산을 딱 세워 놔야, 예산을 세워 놔야 이제 망대 짓다가  수치 안 당하지요.

 예산을 세워 놓고 기다리면 반드시 그런 것이 올 때에, 예산을 세우지 아니한  사람은 그런 것이 오면 '아이구, 나는 이럴 줄 몰랐네. 예수 믿어 이럴 줄  몰랐네' 이래 가지고 실패하지마는 고것을 미리 예산한 사람은 '그래. 이런  박해는 올 줄로 내가 미리 예상했다, 올 줄 예상했다. 이뿐 아니라 어디까지  이제 박해가 올 것이다.' 자기가 예산을 해 놓은 박해이니까 갑자기 놀라지는  아니하고, 또 그 예산에 대해서, ''미리부터 피할 길을 내사 감당케 하게 한다'  했소. 그런 걸 예산하는 사람 말이오. 예산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피할 길을 줘. 하나님께 기도를 해 가지고 기도로 그걸 이기게 하든지, 또  자기가 성경을 읽어 가지고 이기게 하든지 어쩌든지 이겨 가지고,  그 어려움이 오는데, 둘이 꼭같이 어려움이 오는데 미리 피할 길을 받은 사람은  자체에게 믿음을 강하게 해서 이기는 법도 있고, 깨달음을 환하게 줘 가지고  이기는 법도 있고, 또 기도를 해 가지고 이기는 법도 있고, 자기가 미리부터  등불 기름 준비하듯이 올 줄 알고 조그만한 데서부터 연습을 자꾸 해 가지고  이기게, 승리를 연습해 가지고 무난히 이기게 하는 그런 것도 있고 여러가지  방편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것을 미리 딱 각오를 하고 그렇게 예산을 해 가지고 있는 것이  좋고, 또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은 무엇이냐? 고때가, 고때가, 고때가 어디  속하느냐? 누구의 것이 되느냐 요것이 판가름 되는 때입니다. 판가름 되는 때  요것을 깨달은 사람은, 요것을 깨달은 사람은 그럴 때에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것이 우리 가 평생 기도하는 것, 그것 아닙니까? '주여 나는  주의 것입니다.' 평생 소원이라.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이 창조하셔서  창조적으로 주님의 것이요, 또 억만 죄 가운데 사망 가운데 빠진 것을 대속으로  피로 샀으니까 또 주님의 것이요, 영원히 주님이 나를 구속하실 주님의 것이요.

주님의 것이 되기를 원해서 '주여, 완전히 주의 것이 되게 해 주옵소서.' 자꾸  이래 기도하는데, 그때가 완전자의 것이 되어 지느냐 사망의 것이 되어지느냐,  영원불변자의 것이 되어지느냐 지존 자의 것이 되어지느냐, 멸망자의 것이  되어지느냐 이것이 판가름되는 것입니다.

 이제 그때가 우리가 시집가는 때요. 알겠습니까? 그때가 우리가 결혼하는 때라.

시집가는 때라.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 그이에게 내 가 속해서 그이의 모든  것이 내것이 되는 때요, 내가 그분을 다 배반하고, 좋은 것 다 배반하고 순  거짓말쟁이, 속이는 마귀 이놈의 것이 되어지느냐 하는 이것이 판가름나는 때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그런 판가름이 있는 것이 좋겠소 없는 것이 좋겠소? 있는 것이  좋습니다. 그 말이, 말은 옳은 말입니다. 말은 옳은 말인데 있는 것이 좋은 것인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고 있는 것이 좋은 것인 것을 알고 고런 때를  기다리는 사람, 삭개오가 미리 질러 가 가지고 있다가 예수님 만나서 구원 얻지  아니했소? 그게 뭐이냐? 모든 것을 미리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삭개오 제자요.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앞질러 가 가지고 주님 오시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삭개오 제자입니다.

 이제 주님의 구원 역사가 임하기를, 구원 역사가 임하기를, 판가름 이 오기를,  내가 주님의 제자가 되느냐 마귀의 제자가 되느냐, 주님의 그 신부가 되느냐  마귀의 그 아내가 되느냐, 내가 주님에게 속해서 완전자에게 속해서 완전이  되어지느냐 이 거짓부리에게 속해서 거짓부리가 되어지느냐 이제 내가 이 두  판가름이라 말이오. 주님은 완전자인데, 내가 그때에 완전자에게 속해서 완전이  되는 것입니다. 고만 하나님과 진리 때문에 박해가 을 그때는, 그때가 완전자의  것이 되느냐 마귀의 것이 되느냐, 영생의 것이 되느냐 마귀의 것이 되느냐,  하나님의 것이 되느냐 마귀의 것이 되느냐 이것이 판가름 나는 고런 좋은  기회라는 것을 자기가 깨닫고, 고때에 어떤 사람은 단번에 됩니다.

 그러니까 다니엘이 사자 구덩이에서 그때에 만일 고것으로서 끝이 났으면  다니엘은 완전 승리요. 그러나 그 뒤에 살아 나왔기 때문에 아직까지 다니엘은  미결수에 있어. 완성이 못됐어.

 이러니까 요 구원 도리를 깨닫고, 말씀 때문에 우리에게 박해가 올 때에 그때에  우리는 놀라지를 말아야 됩니다. 그때가 판가름하는 때 이니까 우리는 참 그때가  대목장이요. 박윤선 목사님이 말하기를, 나는 글은 못 봤는데 그 어른이  말하기를 '그때가 대목장이라.' 장사꾼으로 말하면 대목 장에 이제 한세월 안  봅니까? 이제 어느 것이냐 하는 판가름하는 때이니까 그때가 대목장이라. 그때가  정말로 이제 이제까지 공들이던 것이 이제는 성공을 보는 그런 때라 그거요.

 녜 시간이 많이 지나갔습니다. 그러면 다같이 우리가 기도합시다.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좀 어렵습니다. 어려워도, 이것은 왜 어려우냐? 우리 구원 얻는 방편을, 구원  얻는 방편, 구원을 이루는 원리 원칙을 말하는 것이고, 다른 성구는 한 구원,  부분적인 구원, 한 쪼가리 구원 고걸 이루는 고 쪼가리만 말하기 때문에  단순하지마는 이 말씀은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전체의 구원을 이루는 방편이기  때문에, 이 구원에도 이 방편 저 성구에도 이 방편 모든 성구에 대해서 이  방편은 다 쓰여지기 때문에 이 방편은 한번만 잘 익혀 놓으면, 마치 한글 배운  사람이 모음 자음 고 둘만 단단히 익혀 놓으면 그 나머지기는 다 이제 맞추면  되는 것처럼 이것만 알아 놓으면 모든 구원얻는 방편을 다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좀 어렵습니다.

 길가에 뿌린 씨에 네 가지 깨달을 것, 또 길바닥을 개간해서 나가는 것은 그  깊숙이 고 두 가지를 깨달으면 거기까지 가는 것입니다.

 말과 말을 구별하고, 말한 자와 말한 자를 구별할 줄 알아야 돼요. 그걸 모르면  안돼.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 가지고는 설교 하려하니까 거석하니까,  하나님 말씀만 하면 아무 재미없고 무식하니까 책을 뒤벼 가지고 세상 어떤  유명한 말이나 그런 말 한마디를 턱 내 쓰면서, 하! 이것은 유식하다고  교인들에게 그 말을 척 내면서 주 먹을 뚜드리면서 '봐라, 내가 이만큼 유식하지  않느냐' 그것은 말하는 자와 말한 자를 구별하지 못하는 자요, 말과 말을  구별하지. 못한 자인데,  우리에게, 하는 말씀은 모든 없는 가운데에서 창조했고 모든 열국과 열방을  파괴도 건설도 뽑기도 심으기도 하는 이 절대적인 전능의 말씀이요, 인간의 말은  그런 말이 아니라 그 말이오. 말한 이도 달라요.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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