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뿌리는 비유


선지자선교회 1985년 8월 21일 수야 

 

본문 : 마태복음 13장 1절∼9절  그 날에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섰더니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쌔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오늘 밤에는 이 말씀을 증거할 필요를 느껴서 증거합니다.

 우리가 이 씨뿌리는 비유에 대해서는 다 잘 알고 있습니다. 기억하기도 쉽고 또  깨달아 알기도 쉽습니다. 그러나 이 실행하는 데는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아는 것을 표준으로 삼는 사람은 오늘밤 이 자리에 있어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는 그 지식은 그대로 믿고 실행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 믿지 안하고 실행 안 하면 아는 것은 자기에게 크게 심판만 되지 유익이  하나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또 알고 실행하는 것도 그러합니다. 알고 실행하는  것은 알고 실행하는 가운데에 차차 자기가 변하여서 하나님의 법에 합당한  의인이 되는 그것이 문제지 아무리 알고 실행한다 할지라도 의인이 안 되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우리가 여러 번 다 듣고 읽고 또 새김질해서 아는 말씀인데  오늘밤에 또 증거하는 것은 혹 이 도리를 모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모르는 사람은  오늘밤에 들어서 이 도리를 아는 것이 중요하겠고, 또 이미 들어서 알고 깨달은  사람은 이대로 믿고 행하지 못했으면 믿고 행하는 그 능력을 이 시간에 받도록  노력을 하여야 하겠고, 또 이미 믿고 행하는 사람은 믿고 행할 뿐만 아니라 이  말씀대로의 사람이 되어서 성령으로 결실이 백 배, 60배. 삼십 배 그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노력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열매 맺기 시작한  사람이라도 또 열매를 맺고 맺어서 백 배 60배, 삼십 배라고 말씀하신 대로의  결실을 하도록 힘을 쓰면 오늘 밤에도 할 일이 있고 은혜 받을 일이 있고  자기에게 큰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백 배를 결실한다 그말은 성령으로 결실하는 것을 말하는데 성령의 감동으로  결실하는 것을 말하는데, 성령의 감동으로 백 배를 결실한다, 그 백으로 말한  것은 그 숫자는 백이니 육십이니 삼십이니 하는 것을 우리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이 계시하실 때에 사용한 그 숫자를 가지고 하나님이 백 배 60배 삼십  배의 그 숫자로 나타내신 그 뜻을 우리가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백 배는. 사람의 수를 열로 해서 성경에 발표를 했습니다. 하나에서 열  하면 또 열 하나, 또, 열이 둘이면 이십, 스물 하면 또 그 다음에 또 스물 하나  또 열이 또 차면 삼십, 서른이라고 또 서른 하나 또 만일 열이 넷이 됐으면  사십, 마흔 하기도 하고, 사십 또 사십 하나 마혼 하나 이렇게 열을 사람들의  만수로 세상에서도 사용하고 있고. 계시 말씀에서도 그렇게 많이 계시들을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에도 보면 서머나 교회에 말씀하시기를 '열흘 동안  네가 시험을 받으리라' 이랬습니다. 열흘 동안 시험을 받으리라 하는 그 열흘을  말한 것은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족족한 시험을 해 주신다  그말입니다. 열흘 동안 시험해 준다 그말은 하루 이틀 십 일 동안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으로서의 구원 이루기에 만족한 그 시험을 하나님이 해 주신다.

사람들은 한 번 시험 치고 재시하기를 원하지만 재시가 어디 있습니까? 이러나  주님께서는 인간에게 족족한 그 시험을 하신다 하는 걸 가리켜서 열흘 동안 네가  시험을 받을 것이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백 배로 말한 것은 열 수를 열로 곱을 하면 백이 됩니다. 이래서  성령의 결실을 백 배한다 그말은 인간에게 대해서 인인 관계, 인인 관계에  대해서 만만수를 이룰 수 있다. 인간 관계에 열 점을 이루는 거 아니고 열 점을  열 하면 백 점인데 인간 수의 만만점을 이룰 수가 있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백  배 결실함이 있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에 게 대해서 무슨  도덕면이나 사회면이나 윤리면이나 또 경제면이나 정치면이나 모든 사교면이나  또 봉사면이나 화목면이나 뭐 그런 인인관계의 면이 많이 있겠습니다. 모든 면에  만만점을 이룬다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옥토에 뿌린 씨가 되면 인인  관계에 만만점을 이룰 수 있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백 배 결실함을 얻는다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또, 두 번째 60배라고 말한 것은 여섯 수는 마귀의 수로 그렇게 하나님께서  계산해서 많이 발표를 했습니다. 그래서, 인본, 모든 세본 그런 걸 가리켜서  여섯 수로 해서 육수라, 육십 수라, 또 더 많이 말할 때는 666이라 그렇게들  말씀했습니다.

 이래서, 여게 60배라 그말은 성령의 행위로 마귀에게 대해서 만점을 이룬다.

여섯 수가 십 배하면 60배가 됩니다. 이래서 악령이 이 세상에서 온갖  유혹시키는 일도 있고 협박하는 일도 있고 간교하게 하는 일도 있고, 또  우리에게 대해서 악령이 우리를 미혹시키는 것이 뭐 하나 둘이 아니고 수십 수백  가지도 넘고, 또 마귀가 요리 꾀우고 조리 꾀워 가지고 실수하도록 만드는 것도  수십 수백 가지도 넘습니다. 또 마귀가 우리를 손 통에 몰아 넣어 가지고 꼼짝도  못하게 하는 온갖 그 어려움을 마귀란 놈이 우리를 주어서 당하는 어려움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 마귀가 우리에게 대해서 간교, 유혹, 또 유혹은  우리를 올렸다가 낮췄다가, 뭐 또 협박을 했다가 달콤하게 했다가 쓰게 했다가  그 마귀가 우리 사람들에게 대해서 우리를 신앙 생활하지 못하도록 할라 하는  그런 방편을 우리가 가만히 하루 동안도 보면 금방 요 사람을 통해서 마귀가  놀음하고 저 사람을 통해 놀음하고 그 뭐 전부 보면 마귀에게 이용당해 가지고  사람들이 말하지 안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참 하루를 살고 보면 하루  살은 가운데에 그 사람이 마귀에게 이용물이 안 될라고 성령에 이용이 될라고  애를 써서 깨어서 사는 사람은 별로 없고, 모두 다 마귀의 이용물이 돼 가지고  뭐 지걸거리고 이렇게 행동하고 하는 것을 거의 전부라고 해 만치 그만치 세상은  악령의 소굴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60배 결실을 맺는다 그말은 성령의 생활로 악령이 온갖 그 수단 방법을  가해도 전부 다 거게 대해서 완전히 결실을 맺는다. 좋은 결실을 맺는다. 60배  맺는다 말은 마귀로 말미암아 좋은 결과를 맺는다 그 말입니다. 마귀로 말미암아  영광의 결과, 상급의 결과. 존귀의 결과. 하나님에게 칭찬 받는 결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결과, 또 마귀로 말미암아 시험을 이겨서 하나님의 상을 받는 결과,  우리의 심신이 심신의 기능이 장성해지는 결과 이렇게 마귀로 말미암아 원만한  완전한 그런 승리의 결실을 맺는다 그런 것을 가리켜서 육십 배 결실한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삼십 배 결실 있다고 하는 그 삼십은 하나님의 수를 언제든지  삼십으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삼위 일체의 하나님이라. 성부, 성자, 성령 삼위  일체의 하나님이라. 또 하나님께서 삼 수로 종종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래서 삼  수는 하나님의 수라 이렇게 모두 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깨닫고 알고  성령의 감동을 받지 못하고 트집을 지겨 가지고서 기독교를 박해할라고 하는  그런 사람들은 암만 읽어도 깨닫지 못하도록 그렇게 성경은 상징적으로 계시한  일이 많습니다. 더우기 요한계시록은 거의가 다 상징적이요 또 모형적으로  그렇게 표현을 하셨습니다. 이 삼 수는 하나님의 수입니다.

 그러면 삼십 배 맺는다 그말은 하나님에게 대해서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  결실을 완전한 결실을 맺게 된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삼십 배라. 십은 인간의  수로 만수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대해서도 원만한 완전한 만수의 성과를 이룰  수가 있다 하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에게 대해서 믿는 것도 만점. 또 바라보는 것도 만점 맡기는 것도  만점, 의지하는 것도 만점, 복종하는 것도 만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도  만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도 만점, 하나님의 사랑을 든든히 바라보는 것도  만점, 하나님을 중심하는 것도 만점, 하나님을 위주로 하는 것도 만점,  하나님에게 대한 모든 지식도 만점 이렇게 해서, 그것을 가리켜서 삼십 배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옥토에 뿌린 씨가 되면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 그러면 제일  처음에 말한 것은 인인 관계의 만점을 먼저 말했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동기가 되는,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으로 인한 모든  신앙생활이지만 그 신앙 행위가 이루어 나가는 외부적인 과정을 볼 때에는  언제든지 사람편에서 먼저 이루어 나갑니다. 이래서 신령한 것은 다음이요  혈육의 것이 먼저라. 완전한 것은 다음이요 시작은 불완전한 것이라. 그래서  처음에는 쉬운 것으로 차차 어렵고 처음에는 그렇게 세밀하지 아니한 것으로  시작해 가지고 차차차차 세밀한 데로 이렇게 나야가고, 처음에는 그 견고함이  연약함에서 시작해 가지고 차차차차 견고하게 이렇게 해서 우리를 길러 가시는  것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일 먼저 말하기를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 말했습니다.

 그러면. 우리 신앙생활은 초보적으로 인인 관계를 바로 하는 것이 이것 이  초보의 입학 생활입니다. 보이는 인인 관계를 바로 하지 못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악령으로 더불어 관계 맺는 이런 일은 바로 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인인  관계를 바로 할라고 애를 쓰는 데에서 경험하고 체험하고 깨닫고 그 모든 것을  살펴 보면 껍데기는 다 같은 사람이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뭐 별별 사람이  있습니다. 두 껍데기 세 껍데기가 아니라 열 껍데기도 더 꺼풀 쓰고 있는 사람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그 꺼풀을 셀 수 없을 만치 그저 이 꺼풀 썼다가 저  꺼풀 썼다가 아주 어떻게 꺼풀을 바꾸어 쓰는 사람도 있고 또 이중 삼중 그래  가지고 노리는 사람도 있고, 그런데 그것이 다 복술이라 한말로 말해서 마귀가  주는 복술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은 전부가 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자기  속이는 것이고 진실만이 자기에게 유익을 주지 그런 것은 다 자기 속이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인인 관계를 성령의 감동대로 바로 할라고 하면 거게서  사람에게 대한 유식한 지식이 나옵니다. 사람에 대해서 유식한 사람이 됩니다.

그 사람이 과학에 대해서 유식할라고, 이 세상의 모든 세월이라는 그 역사에  대해서 유식할라고. 모든 세상의 온갖 모든 조직과 나열되어 있는 그런 것들에  대해서 유식할라고 애를 쓰지만 그까짓 거는 몰라도 되고 알아도 됩니다. 알아도  밥 먹고 몰라도 밥 먹습니다. 그것보다는 사람에게 대한 지식을 배워서 인간  지식을 공부해 가지고 인간 지식이 바로 되는 것이 그것이 유리한 것입니다.

사람을 가르칠 때에 사물을 가르치지만 사물만을 가르치는 것이 과학인데,  사물을 가르치는 그것은 다 죽은 지식입니다. 사물을 가르치는 사람이 이 사물을  통해 가지고 사람을 가르칠라고, 사물, 일과 물건을 가르치는 것을 가지고  사람을 가르칠 그 목적으로, 자기 목적은 사람에 대한 지식을 알리기 위해서  모든 사물들을 공부한다면 좋지만 사물 그것이. 과학 그것이 사람을 살리는  것으로 아는 사람은 다 그것은 죽음에 속한 것이지 생명력은 거게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렇게 옥토에 뿌린 씨가 되면. 옥토에 뿌린 씨가 될라고 애를 쓰면  거게 대해서 기이합니다. 옥토에 뿌린 씨가 될라고 애를 쓰는 것은 길바닥에  뿌린 씨가 안 될라고 애를 쓰고, 돌짝 밭에 뿌린 씨가 안 될라고 애를 쓰고 덤불  밑에 뿌린 씨가 안 될라고 애를 쓰고. 그런 것들 다 이기고 나면 옥토에 뿌린  씨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이기는 가운데서 무엇을 배우는고 하니 인간을  배우게 됩니다. 인간의 지식을 알게 됩니다.

 인간 지식을 알고 나면 인간 지식을 공부하는 가운데에 귀신을 배우게 됩니다.

귀신. 인간을 배우게 되면 아, 저 사람 속에 귀신 들어갔다. 야, 말 말아라. 그  사람 속에 지금 금방 아무것이나 말 한 마디 하는 거게 '너, 네 자존심을 꺾는  거 아니냐?' '그렇지' 그만 금방 말 한 마디에 얼굴이 새파랗게 변해집니다.

노랗게 변해집니다. 그렇게 사람에게 대해 바로 할 라고 애를 써서 보면. 옥토에  뿌린 씨가 될라고 하면 옥토에 뿌린 씨 그거는 다 사람에게 대한 행동이요  마귀에게 대한 행동이요 하나님께 대한 행동입니다. 세 가지, 길 바닥 뭐 돌밭  또 가시덤불 그런 것을 다 이겨서 벗어나는 그것이 사람 공부요 마귀 공부요  하나님 공부입니다. 이렇게 하다 보면 아 마귀를 알 수 있습니다. 마귀가 고놈이  간교해 가지고 가만히 와 붙어 있습니다. 붙어 있다가 '보자. 어느 틈을 타  가지고 저 사람 속에 들어갈꼬?' 요래 가지고 있다가서 거게서 조심 안 하고 말  한 마디만 벌로 하면 그 한 마디를 가지고 그 사람 속에 쑥 들어가면서 그만  '봐라. 그 사람 널 무시하지 않느냐? 그 사람이 네게 이런 손해를 보일라 하지  않느냐?' 그거 전부 순전히 거짓말이오. 거짓말 가지고 요리조리 하면 그만 그  마귀가 들어와서 그런 줄 모르고 제 생각인 줄 알고 그 생각을 가지고 이래  나서서 그만 사람이 금방 변해져 버린다 그거요. 이래서 그래 되면 나중에  마귀에게 대해서 육십의 결실을 맺는다 그말은 마귀에게 대해서도 이제 하나도  속지도 안하고 꼬이지도 안 하고 협박에 떨어 지지도 안하고 마귀에게 대해서도  완전 승리의 결실을 맺을 수 있다 하는 그말입니다.

 또, 그렇게 하다가 보면 사람 공부해, 마귀 공부해 이라다가 보면 하나님  공부가 저절로 됩니다. 이라다가 보면 '아,' 그라다가 보면 자기가 혹  거짓부리로 이렇게 외식을 해도 뭐이 안 될까 이래 싶었지만 사람 공부를 해  보고 마귀 공부를 하다가 보면 외식이라 하는 것은 꿈에도 보기 싫을 만치  밉습니다. '외식 이런 거는 없어야 돼. 이거는 죽어야 된다. 이 외식 이거는  불에 태워 버려야 된다.' 외식이 안 됐다는 것을 자기가 알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외식에 대해서 진노하실 것이다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중도  그러합니다. 그래 연구해 보면 하나님은 겸손한 것을 얼마나 좋아하시며 진실한  것을 얼마나 좋아하시며 정직한 것을 얼마나 좋아하시며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시며 화평을 얼마나 좋아하시며 자기를 양보하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시며 봉사하는 걸 얼마나 좋아하시며 그저 못 참고 그만 덜덜덜 떨리지만  꾹 참고 견디는 그 인내를 얼마나 좋아하시며 그라다가 보면 마귀 공부와 인간  공부를 하다 보면 하나님 성품이 어떨 것이라 하는 것을 짐작하게 됩니다.

짐작하게 되니까 이제는 하나님 앞에서도, 하나님께 대해서도 참 삼십 배 결실을  맺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해서도 후회할 것이 적고 하나님이 보실 때에  그 사람의 행동에 대해서 감동을 받아서 기뻐하셔서 그 사람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 사람과 동행해 주시고 그 사람을 지켜 주시고 그 사람의 하는 일에 하나님이  도와서 이제 사람이 하는 거 아니라 하나님이 도와서 모두가 다 기적으로  이루어지는 그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 그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이 성공을 하도록 우리가  힘을 써야 하겠습니다. 왜?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가면, 그리스도의 심판 앞에  가면 뭣만 남느냐 하면 네가 인인 관계에 어떤 성과를 가져 왔느냐. 인인 관계에  어떤 성공을 가져 왔느냐. 네가 마귀와의 서로 관계에서 어떤 성과를 가지고  왔느냐, 네가 또 하나님에게 대해서 어떤 성과를 가져왔느냐? 그 열매를 이제  조사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한복음 15장에 '결실을 많이 맺느니라.

이렇게 결실을 많이 맺는 사람은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그를  기뻐하시느니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어떤 현실을 만나든지  반드시 그 현실에서는 백 배라고 하는 인인 관계에 좋은 성과를 맺든지 또  악령과의 관계에 좋은 성과를 맺든지 하나님과의 관계에 좋은 성과를 맺든지 그  좋은 성과를 맺어야 그것을 가지고 갑니다. 세상을 떠날 때는 뭣 가지고 가느냐  하면 그것을 가지고 갑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는다' 그말은 자기가 그 현실에서 어떤  성과를 이루느냐, 어떤 결과를 맺었느냐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다 그대로  평가하시고 대우하시고 심판하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하는 그것도 보십시오. 그것 도  보면 '악인의 꾀를 좋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그 말씀을 묵상하는 자로다'  이러니까 세 가지 싸움이라 말이오. 세 가지 싸움에 악인의 꾀에 안 빠져 갈라고  싸워대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안할라고 싸 워대고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안할라고  싸워대고 이렇게 전투해 가지고 이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해서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다. 이  현실에도 수입을 하고 저 현 실에도 성과를 거둔다. 성과는 뭐이냐 하면 성과라  하는 것은 투쟁 결과에 있는 것이지 투쟁이 없으면 성과가 없는 것입니다.

투쟁이 없으면 승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전투가 없이는 성과가  나오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시절을 좋아 과실을 맺는다' 그말은  성과를 거둔 다 그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디서든지 이 결실을 맺을라고 애를 써야만 하겠습니다.

그저 현실마다 반드시 거게는 사람과 관계가 있습니다. 사람과 관계에도 사람과  관계에도 육박전으로, 육박전으로 뚜드려서 이기는 것이 이기는 것이 아니고  진리로 이겨야 되겠고 사랑으로 이겨야 되겠고 의로 이겨야 되기 때문에 그만  이기는 것은 죄 안 지어야 이기지 죄 지으면 다 졌습니다. 죄에게도 이기고,  죄를, 내가 저 사람을 나에게 죄를 백 개를 죄를 가할 때 나는 죄 하나만 지어도  그거 죄의 종이 되었습니다 벌써 죄에게 졌기 때문에 죄의 종이 된 거 아닙니까?  이러니까 우리의 성과는. 성령으로 결실한다 그말은 진리로 결실한다는 말이요.

주의 대속의 공로로 결실한다는 말과 같은 말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어떻게  마귀가 와도 마귀에게 패전하지 안하고 어떻게 죄악이 와도 패전하지 안하고,  이래서 그 사람이 내게 와 가지고 별별, 내가 범죄치 안하면 안 될 그만한 여러  가지 방편을 쓰고, 물질적으로 명예적으로 또 사람의 정신적으로 그 심리적으로  모든 인권적으로 뭐 별별 어떤 수단 방법을 가지고 사람이 내게 대해도 그로  말미암아 성신의 결실을 맺고 그로 말미암아 죄에게 종이 되지 않는 그것이  우리의 성과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현실에서는 '아, 사람을 닥쳤구나, 여게는 백 배의 결실을  해야 되겠다 백 배의 결실을 하는데 백 배의 결실에 소속한 백 배 결실에 소속한  단 한 개라도 맺어야 되겠다. 이 인인 관계의 성과를 내가 맺어야 되겠다.' 하는  그것을 우러가 명심하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반드시 성령으로 승리한 그 결과를  맺도록 항상 조심해서 이것을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또, 그리 하면 눈에 보이기는 사람이 보이지만 사람이 보이는 그 이면에 가만히  눈을 닦고 생각해 보면, 마음의 눈으로 보면 마귀가 옵니다 그 제직회를 하면,  제직회를 하면 어떤 사람이 말 한 마디를 떡 합니다 그 말하는 그 제직이 벌써  마귀가 돼 가지고 마귀 고놈이 들어서 그 말 하면 저 사람이 퍼뜩 그걸 받아  가지고 또 그 부하가 될 줄 알고 그 입에서 마귀 말이 나옵니다. 마귀 말이  나오면 그만 그것이 저 사람에게 들어가고 저 사람에게 들어가고 저 사람에게  들어가고 나중에 보다 보면 그만 그 제직회가 마귀 제직회가 돼 버리고 맙니다.

그럴 때에 벌써 그것을 그거 보면. 심령의 눈이 밝은 사람은 그 제직회를 '다시  기도 합시다.' 하고 기도하고 마귀를 쫓아내고 회개를 하면 제직회를 하고 회개  안 하고 마귀를 쫓아 내지 안했으면 제직회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중단합니다. 중단해요. 또 중단 안하고 중단 안 하고 말로 해 가지 그 하나님  진리 말씀해 가지고 마귀를 쫓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합니다. 그래 가지고  진리의 말씀 하면 마귀 그놈이 달아나서 마귀 들렸던 사람이 회개를 하고 웃음을  가지든지 그리 안하면 부끄러워서 머리를 콱 숙여 버리든지 그만 마귀 고놈이  꼼짝 못 하게 됩니다.

 이러니까 인인 관계를 하다 보면 그 마귀의 온갖 술책을 우리가 알 수 있기  때문에 이제는 사람과도 관계에서 좋은 성과를 이룰 뿐만 아니라 거게 마귀가  침노해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하고 무단히 와 가지고 다른 사람이 와서 간사한  소리합니다. 거짓말하고 간사한 소리합니다. 이래서 '아 '그 사람이 나한테  너무한다. 내가 자꾸 이렇게 그저 예예 하고 서로 화목주의로 이래 나가니까  사람을 참말로 어째 보노?' 고게 마귀라 고게 '어째 보노?' 하면 제 속에 마귀가  들어왔다 그말이오. '그 사람이 어째 보든지 말든지 나만 마귀에게 안 지면 되는  것이고 나만 실패 안 하면 되는 것이지 그 사람이 어찌 되든지 모든 사람 내가  간섭 다 하고 어찌 살 거고? 내가 하나님도 아닌데.' 이러니까 뭐라 하든지  말든지 자기 하나만 단속을 해서 마귀가 와도 이 마귀를 닥쳐도 훼방 마귀를  닥쳐도 시기 마귀를 닥쳐도 또 조롱 마귀를 닥쳐도 촉분 지르는 마귀를 닥쳐도  혈기 마귀를 닥쳐도 또 도적 마귀를 닥쳐도 어떤 마귀를 닥쳐도 그 마귀에게  백전 백승 한 것이 육십 배의 결실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육십 배의 결실.

 그러니까 우리가 이런 결실을 하도록 이렇게 해야 되겠고, 또 삼십의 결실은  하나님께서 '보자. 네가 나를 믿어?' '네, 믿습니다.' 이라니까 갑자기 저 산에  가서 기도하는데 그만 후닥딱 그라더니만 보니까 뭣이 와닥딱 그러더니  '아이구야 뭐이 오노?' 머리가 쭈삣하더만, 또 그 라니까 나중에는 어흐흐홍!  합니다. 어흐흐훙! 이거 뭐, 그러며 소리가 막 어그르르르 합니다. 산이  어그르르르르 하는데 아따야 이거 여기서 또 이제 졌다 그말이오. 지기 쉽다  그말이오. 그럴 때에 '주여! 당신의 능력을 믿습니다.' 하고 믿으면 그거 두려워  할 리가 없고. 또 하나님이 지으시 것인데 문제가 있습니까? 그러면 한참  기도하면서 이래 씨름을 하고 난 다음에는 승리하고 난 다음에 이제 처음에는  옹그렸지만 나중에 척 일어나면서 '야, 보자. 호랑아. 너거 주인 하나님의  아들인 내가. 여기 왔다. 나오너라. 보자. 이리 오라. 같이 놀자. 오너라.'  이라고 그래 '에헴' 하고 이렇게 찾으면 그놈이 간 곳이 없이 어디로 갔는지 안  보인다 말이오. 그 다음에 그만 꼼짝도 안해. 어디 숨었는지 갔는지? 그런  하나님의 능력을 내가 믿는 데 대해서 그것이 삼십 배 결실에 속한 결실을 했다  그말입니다.

 또. 다른 사람이 내게 한 번 참아 두 번 참아 자꾸 참으니까, '이게 요  참으니까 열 번 참으니까 또 그래. 요번에는 안 참는다. 요번에 그라면 내가 안  참는다.' 아, 고리 됐으면 그거는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대해서 일체 참았기  때문에 우리 구원이 되는 것이지 당신이 그만 부아질 한다고 .오기대로 했으면  뭐 여러분들은 몰라도 나는 벌써 지옥가고 말았을 것입니다 오기대로 하면.

그분이 참고 참고 용서하고 용서하고 하기 때문에 우리 구원이 있는 것이지 그리  안 하면 안 된다 그거요. 그런 때에 '아, 하나님이신 주님이 내게 어떻게  했느냐? 주님이 내게 대해서 이렇게 뭐 백 번 아니라 천 번도 더 참았는데, 내가  열 번 참고 난 다음에 이 제는 못 참겠다 하는 이거 하나님 앞에 죄송스러운  일이다. 이제 주여 자복합니다. 내가 얼마든지 참고 기도해서 그 사람을 옳은  사람으로 돌이키기까지 노력하겠습니다. 이랬으면 그만 삼십 배 결실에 속한  열매 한 개 딱 맺었다 말이오. 이게 뒤에 하늘나라 가면 상급이 돼요.

 이러니까, 우리가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하도록 현실에서 항상  깨어서 노력을 해야 되겠고, 그러면, 이렇게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 결실을 할  라고 하면 옥토에 뿌린 씨가 돼야 되지 옥토에 뿌린 씨가 되지 안하면 안  됩니다. 옥토에 뿌린 씨는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 맺는다고 했거든요. 이러니까  옥토에 뿌린 씨가 돼야 되지 옥토에 뿌린 씨가 안 되면 안 된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이제 옥토에 뿌린 씨가 돼야 되겠다.

 내가 그때 진주 성경학교 가니까 최상림 목사님이라고 왜정 말년에 순교했는데,  감옥에서 순교했습니다. 그분은 멋진 순교를 했습니다. 감옥에서 순교했는데  그분에게 내가 가 가지고 학생들에게 물으니까 최상림 목사라 하는 그분이 참  권위가 있다 해서 그 지방에서 온 학생들 보니까 전부 학생들이 살아 있어.

그래서 내가 고대 했는데 오늘 최상림 목사님이 왔다 이 말을 듣고  찾아갔습니다. 내가 참. 마음은 작아서 잘 다른 사람한테 안 나타나는  사람이지만 그런 데는 재빠릅니다. 찾아갔어 찾아가 가지고 그래 문을 노크를  하니까 들어오라 해 그래 가서 절을 하고 '아, 저 최상림 목사님이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래 내가 뭐 많은 시간 뺏들 수도 없고, '목사님, 그렇게 거게서  온 학생들은 다 신앙이 모두 살아서 움직이는데 목사님은 표어가 뭐입니까?  목사님이 요절로 가지고 계신 요절은 뭐입니까?' 그거 하나 물었어요. 물으니까.

그래 말씀하시기를 '아, 예, 좋은 걸 물었습니다. 저는 옥토에 뿌린 씨가 내  요절입니다.' 이래요 옥토에 뿌린 씨가. 그때 듣고 올 때는 그렇게 그걸 예사로  들었는데, '그래요' 하고 인제 시간 없으니까 그만 나와 버렸는데, 살아가  볼수록 그분에게 배운 거는 옥토에 뿌린 씨, 옥토에 뿌린 씨면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 모으니까 그만 최고 승리 아닙니까?

 옥토에 뿌린 씨가 된다고 이랬는데 우리가 옥토에 뿌린 씨가 나는 돼야 되겠다.

옥토에 뿌린 씨가 돼야 이 인간 대, 악령 대, 하나님 대 모든 것이 완전을 이룰  수 있는 성공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옥토에 뿌린 씨가 돼 야 되는데, 옥토에 뿌린  씨가 될라면 전투 세 가지를 해야 됩니다. 옥토에 뿌린 씨가 될라고 하면 세  가지 전쟁을 이겨야 합니다. 옥토에 뿌린 씨가 뒬라면 세 가지 전쟁을 이기면  절로 옥토에 뿌린 씨 됩니다. 이 세 가지 전쟁을 이기지 못하면 옥토에 뿌린  씨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면, 세 가지 전쟁에 하나는 길 바닥에 뿌린 씨라고 비유했고, 하나는 돌  밭에 뿌린 씨라고 비유했고, 하나는 덤불 밑에 뿌린 씨라고 비유했는데, 그  길가에 뿌린 씨라 하는 그것은 무엇을 가르치느냐 하면 육천년 동안 사람들이  살고 가고 오고 걸어가고 걸어오고 이런 행위하고 저런 행위한 모든 인간들이  걸은 그 발자욱 그 발자욱을 가리켜서 사람들이 밟은 길바닥이라 그렇게 비유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육천 년 동안 인간들이 밟은 것이 그것이 무엇입니까? 인간들이  밟든 것이 인간들의 모든 관념. 체험. 경험 그 모든 지식들이 쌓인 건데 그것을  가리켜서 소위 육천 년된 역사라 그래 말합니다. 육천년 역사라. 육천년 동안  세월이라 그말입니다. 육천 년 역사라. 시공 역사라 그렇게 말하고, 또 그것을  가리켜서 육천 년 동안. 이천 년 동안 것은 홍수에, 침몰됐지만 홍수는 그때  이천 년 동안 문화를 그대로 가지고 나왔습니다. 지금도 여기 고고학에서  고고학에서 발굴해서 지금으로부터 뭐 오백 년전 천 년전 신라 때 어떤 고고에서  발굴해 가지고 그때에 문화를 지금, 문화의 한 자본으로 삼고 기초로 삼아  가지고 지금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노아 홍수 후는 사천 년이지만 그  전까지를 말 하면 육천 년이라 그말이오. 육천 년 동안의 시공 역사. 세월이라는  역사 그것을 가리켜서 육천 년 동안 건설해 놓은 인간 문화라 그럽니다. 인간  문화라. 인간 문화 그것을 가리켜서 육천 년 동안 인간들이 이렇게 저렇게 다  쌓아 놓은 세상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육천 년 동안 내려온  오늘까지의 인간들의 지식이라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수많은 사람들이 밟아 나온 것인데. 길가에 뿌린 씨가 되지  안해야 되는 것이니 하나님 말씀을 우리가 읽든지 듣든지 할 배에 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게 하는 것이 이 세상 모든 인간들의 지식들이요. 인간들의  경험들이요. 역사요, 통계라 말이오. 역사요. 통계요, 인간들의 경험이요,  체험이요, 모든 간증들이요 이런 것들인데, 온 천하 이걸 한 말로 말해서 온  세상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을 통틀어 말하면, 한 말로 말하면 세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이 다 달라 들어 가지고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든지  듣든지 할 때에 이 말씀을 내가 확실히 믿을라고 인정 할라고 할 때에 인정하지  못하게 하면 세상을 발 길로 차서 집어 던졌으면 던졌지 이 말씀을 인정하지  못하게 하는 그런 것을 부인하고 성경 말씀을 인정하는 것이 그것이 우리의  전투인 것입니다.

 또 온 세상이. 이 말씀대로 네가 믿고 맡기고 의지하고 복종하고 기다렸다가는  헛일이다. 온 세상이 다 말해도 그런 것들을 부인해서 다 집어 던져 버리고 그런  것을 다 버리고 그런 걸 완전히 정복하고 승리하고 세상이 뭐라 해도 나는 이  말씀을 나는 믿는다. 요 말씀대로 믿고 요 말씀대로 바라보고 이 말씀대로 내  모든 걸 맡겨놓고 요 말씀대로 의지하고 요 말씀에게 순종해서 영생을 나는  얻겠다 하는 요것은 온 세상이 방해해도 이것을 이 기고 하나님 말씀을 내가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맡기고 복종하는 이것을 온 세상을 다 이기고 날 수  있는 이것이 되어야 옥토에 뿌린 씨가 되는 것입니다. 이 전쟁을 이겨야 합니다.

이겨야 되지 이기기 전에는 소용 없습니다. 암만 알고 있으면 소용 있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 뭐 독침으로 찌른다 어쩌고 이래 쌓는데  독침 말을 못 들었으면 또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 요만한 침 하 나 가지고 뭐  이렇고 쌓는다고 하면 공산주의를 몰랐으면 그거 뭐 별로 이 두려워 하지 안할  건데. 우리는 공산주의라는 그 지식이 들어 있기 때문에 '아 이 공산주의는  이자들은 사람을 이렇게 하는 행동이 있다. 이 독침에 이거 찔리면 죽는다.'  이걸 상식이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두렵습니다. 두렵다 말이오. 그것도 내나  뭐이냐 하면 그게 뭐이냐 하면 그 게 길바닥이라 말이오. 길바닥. 이 세상  문화라 말이오. 세상이라 말이오.

 그런게 암만 해도 하나님의 권능이면 너는 소용 없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허락지 안하면 한 생명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너희들은 전혀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들에게 대해서는 머리털까지  내가 세고 있다. 죽을까 두려워하지 말아라.' 성경 말씀이 이랬는데 독침 가지고  삭 찌른다고 달라드는데, 그때 찌른다고 달라 들 때에 아이구 성경 말씀에  '강하고 담대해라. 그런 걸 두려워 하지 말아라. 너희들 지옥에 보내지 못하고  육체에 피해 주는 그런 자들을 두려워 하지 말아라. 참새 한마리도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면 생명이 떨어지지 않는데 네가 죽을까 두려워 하지 말아라.' 이  말씀을 믿을라 하니까 이제 '공산주의기 때문에 안 된다' 세상은 못 믿구로 하고  나는 믿는다고 하고 그럴 때에 못 믿구로 하는데 나는 믿는다 그말이오. 세상이  아무리 해도 '나는 믿는다.' 네 까짓게 암만 한다 해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와  같이 '아, 불에 집어 넣어도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  구원 해 안 주신다 해도 나는 그런 소리를 안 들을 줄 아십시오' 하는 거와같이  '네가 독침 아니라 독침 더한 거 가지고 있어도 독침이 날 죽이지 못하고  하나님이 날 죽게 하셔야 죽지 그리 아니면 죽지 못해. 또 하나님이, 나를 네가  독침으로 죽일라 하지만 나 죽일라고 하는데 나 죽이기 전에 네가 죽을란지도  몰라 생명은 주님에게 주권되어 있는 것이지 네게 주권되어 있는 게 아니고  독침에 주권되어 있는 게 아니라.' 요렇게 성경의 말씀대로 딱 믿는 그게  싸움이라 말이오. 싸움을 이겨야 되요. 그 싸움을 이겨야 되요. 이 세상 어떤 것  아니라 온 세상이 어짠다 해도 세상이 내가 어느 성구를 믿지 못하게 할지라도  나는 그 세상에게 져서 '아이구 내가 안 믿겠습니다. 못 믿습니다.' 이런 내가  되지 말고 세상이 다 달라 들어도 자기는 믿는 그 믿음이 요동치 안하고 믿어야  승리한 것이라 말이오. 믿으면 그 면에 대해서는 옥토에 뿌린 씨가 됐습니다.

그러면 이제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가 된다 그거요.

 그 다음에 돌짝 밭에 뿌린 씨는 뭘 가리켜 말한 건고 하니 돌짝 밭에 뿌린 씨는  자기를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아, 말씀을 듣고 깨닫고 실행을 시작했지만  뿌리가 없어서 밑에 돌이 받쳐 가지고 그것 때문에 그만 뿌리가 안 내려 가서  말라 버렸다 하는 그것은 무슨 비유냐 하면 그 돌은 자기를 가리켜 말하는  겁니다. 자기,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요대로 실행할라고 해도.

실행할라고 해도 다를 때는 실행을 잘하고 실행하는데 뭐 옆에 사람이 손해 가도  실행 잘하고 저거 가족이 손해 가도 실행 잘하고 제게 해가 되면 실행 못  합니다. 제게 해가 되면 실행 못 한다 말이오. 자기에게 해가 되면 실행 못 해.

하나님 말씀대로 살라고 할 때에 내 소유가 어떻게 되고 몸이 어떻게 되고  생명이 어떻게 되다 할지라도. 이게 자기인데 자기 소유나 몸이나 생명이나  자유나 모든 그런 것이 자기 것, 자기 몸 자기 생명. 자기 모든 자유 이것이  자기입니다. 이 자기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하니까 자기가 절단난다 말이오.

자기에게 받쳐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하다가. 그만 돌에 받쳐 가지고 그  뿌리가 내리지 못해 가지고 마르는 것처럼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시작을  했지만 자기에게 거리끼니까, 자기에게 낭파되니까, 자기 때문에 못 믿고 믿던  것을 중단하는 것을 가리켜서 돌밭에 뿌린 씨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믿고 나갈라 할 때에 자기가 자기 욕심이나 자기 주관이나 자기 감정이나 자기  취미나 자기 소유나 자기 몸이나 생명이나 자기에게 어떻게 되든지 간에 이  말씀은 나는 요대로 믿고 순종할란다 해서 이 말씀 앞에 자기는 완전히 내어  놓고 자기로 인해서 이 말씀 순종하는, 믿고 순종하는 이것이 중단되지 안해야  돌밭에 뿌린 씨를 이긴 사람이 된다 그말이오. 돌 밭에 뿌린 씨가 되지 안하고  옥토에 뿌린 씨가 된 것입니다.

 이제 그라고 난 다음에는 하나 싸움만 있습니다. 한 싸움은 뭐이냐 하 면 덤불  밑에 뿌린 씨는 세상 염려와 재리입니다. 세상 염려라 말은 세상에 사건들이  닥치는데 그 사건이 어떻게 놀랠만한 다급한 사건이 닥쳐. 다급한 사건이  닥칩니다. 아. 참 다급한 사건이 닥치면 답답합니다. 굉장한 다급한 사건이들이  닥칩니다 이 사건들이 닥치면 가만히 경험해 보면 사건이 하나 닥치거들랑은  아예 하나 닥치리라고 생각지 마. 사건은 그것이 하나 닥치면 둘 닥치고 둘  닥치면 셋 닥치고 셋 닥치면 넷 닥치고 넷 닥치면 다섯 닥치고 어째 됐든간에  그만, 그만 죽자 함으로 그만 뭐 이 닥쳐옵니다. 물론 사건이 닥쳤을 때에는  처음에는 이게 닥치면 요래 해결해 볼까 조래 해결해 볼까, 요래 꾀를 쓸까 조래  꾀를 쓸까 그것 다 많이 해봤어. 아야 그런 방법을 쓰지 마십시오. 사건이  닥치면 어떠한, 사건이 닥치든지 닥치거들랑은 그만, 그리 아니면 문 딱, 문  열고 들어 가 가지고 문 딱 안으로 걸어 잠궈 놓고 집안에 있든지 그렇지 않으면  담요 한 장 싸 가지고 그만 저 무인 지경으로 가버린다 말이오. 가 가지고 뭐  그만 사건이야 뭐 깨지거나 말거나 뭐이 되거나 말거나 '주여 맡으시옵소서'  하고 그대로 하나님 앞에 가 가지고 말씀대로 실행하는 그 실행만 하고 합니다.

 이라면, 나중에 좀 있으면, 뭐 태풍 온다고 쌓지만 나중에 가 보면 태풍 하나도  없습니다. 막 폭우가 쏟아져서 사람이 죽는다 하지만 나중에 얼마 있다가 보면  빗방울 한 방울도 안 떨어집니다. 또 막 뇌성 벽력하고 야단지기지만 나중에  보면 짱짱한 날에 그저 선선한 바람만 솔솔 붑니다. 폭우가 지나가고 난  다음에는 청청한 밝은 날이 오고, 태풍이 지나가고 난 다음에는 조용한 세상이  되어 오고. 뭐 구름이 끼고 뇌성 벽력이 야단 지기고 난 그런 때가 지나가고  나면 또 청명한 그런 날이 오는 것처럼 우리가 세상 염려 모든 재리. 물질 문제.

물질 문제, 뭐 어떤 사건 문제 어떤 것이 와도 하나님 말씀을 믿는 거. 의지하는  거. 바라보는 거, 맡기는 거, 순종하는 것은 요동치 안하는 그것이 옥토에 뿌린  씨가 됩니다.

 이래서 덤불을 다, 덤불의 해를 받지 안하니까 덤불을 다 쳐서 이겨서 이겨서  덤불을 다 없애 버리니까 옥토가 됐고 또 돌밭을, 돌을 없애 버렸으니까 옥토가  됐고 길바닥을 다진 땅을 다 개간해 버렸으니까 옥토가 됐습니다. 이래서 그런  것을 다, 세상 문화를 다, 온 세상을 다 해도 내가 부인해 버리니까, 부인해  버리니까 나는 그것이 나를 믿지 못하게 하는 길 바닥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게  옥토가 돼 버리고 말았어. 내가 아무리 방해해도 나를 부인해 버리고 나니까  이제, 내가 들어서 하나님 말씀을 믿지 못하게 하는 이 돌밭이 다 변해서 옥토가  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또 이 세상 모든 염려와 재리들이 다 와도 이제 거기에  지지 안하고 그대로 그런 걸 이기고 다 말씀대로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이 일을  하고 보니까 옥토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래서 길바닥을 이겨라 돌 밭을. 돌을  이겨라. 또 가시떨기를 이겨라. 요 세 가지만 이기면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가져 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현실에서, 요 현실에서 요 세 가지를 이길라고. 요 세  가지 때문에 기독자가 고통을 당하는 것이고. 요 세 가지 때문에 기 독자가  고통을 당하는 것이고, 이 세 가지 때문에 기독자가 기독자 노릇하기가 힘이  드는 것이고. 이 세 가지 때문에 기독자가 승리해 가지고 면류관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고, 이 세 가지 때문에 기독자들이 전지한 지혜와 전능한 능력을 얻게  되는 것이고, 이 세 가지 때문에 인류에게 대 해서도 만만점 마귀에 대해서도  만만점 하나님에 대해서도 만만점, 아, 이러니까 인간과 마귀와 하나님으로 되어  있는 이 온 세상을 거게 대해서 만 점을 이루었으니까 하늘과 땅의 것이 통일될  때에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할 자격이 있소 없소? 있어. 기독자들이 이 세  가지 전투 때문에 괴로움이 오고, 이 세 가지 전투 때문에 힘이 들고. 기독 자의  모든 실력은 이 세 가지에서 오고, 기독자의 영광도 이 세 가지에서 오고  기독자의 참된 기쁨도 이 세 가지에서 오고. 기독자의 평강과 담력과 영광과  존귀와 모든 부강도, 영원 불변의 부강도 요 세 가지에서 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 가지를 믿는 사람들이 싸워서. 싸울 줄 알고 싸워 보면  힘이 나고, 싸워서 이기면 굉장히 기쁨과 즐거움과 큰 수입이 오고, 이 세  가지를 보고 아예 싸우지 못할 것이라 알고 세 가지에게 패전을 당해 가지고  도망을 치기 시작하면 그거는 어디까지 종이 돼 버리고 참 비참하고 가련한 자가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제일 존영한 사람 있고 참 비천한 사람 있습니다.

비천한 사람은 이 세 가지 싸움을 아예 항복하기 때문에 항복하고 싸워서 이기지  못했기 때문에 점점 비천해지고 아무리 못나도 이 세 가지 싸움을 이기는 사람은  그 사람은 굉장히 존귀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사람을 높일라고  이 세상에 오셔 가지고 피까지 흘려 구속하셨는데 이런 사람 안 높인다  말입니까? 못나도 좋습니다. 앉은뱅이도 좋고 누운뱅이도 좋습니다 그저 이 세  가지 싸움을 이기기만 이기면 그 사람은 천하에 존귀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아멘!) 믿습니까! (아멘!) 믿습니다 믿고 용감스럽게 나가면  됩니다. 용감스럽게 나가요. 뭣을 두려워 할 것입니까? 하나님은 전능자가  생명을 버리기까지 나를 사랑하셨는데 뭐 두려울 것이 뭐 있으며 또 엿새 동안에  만물을 지으신 분이 생명까지 나를 위해서 버리시고 또 독생자도 주셨는데 먹을  것 입을 것 염려될 것이 뭐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대로만 살면 사업도 잘 되고  뜻대로만 살면 모든 것 다 잘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거게는 뭐 돈도  나오고 권세도 나오고 지위도 나오고 평강도 나오고 거룩도 나오고 의인도  나오고 성자도 나오고 성녀도 나오 그 성공도 나오고 다 나옵니다. 행복스런  가정도 나오고 다 나옵니다. 요대로 살면 다 나옵니다. 요대로 살아서 안 나오면  그것은 마귀가 역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언젠간가 나옵니다. 안 나오지 않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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