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8 12:00
대적을 멸하는 방법
1988. 6. 14. 화새.
본문: 엡 6:10-13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0절로부터 11절까지는 우리 자체를 어떻게 보호하면 된다 하는 보호의 유일한 방편을 말씀하셨고, 유일한 방편이라 많은 하나 있고 둘 있고 그런 게 아니라 하나만 있는 그 방편 말입니다. 하나만 있는 것을 유일이라 그래 말합니다. 혹 일등을 유일이라 말한 게 아니고 하나뿐인 것을 가리켜서 유일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유일한 호신,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호신책을 말씀했고, 또 12절에는 우리가 자기를 호신할라고 하면은 어떤 자를 경계해야 되느냐 나를 삼킬 자가 어떤 자냐 나를 해할 자가 어떤 자냐? 나 해할자를 바로 알아야 되겠고 나를 삼킬 자를 바로 알지 못하면 자기 호신이 안 됩니다. 대적을 모르면 대적과 하나가 돼 가지고서 자살행위를 하게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대적을 똑똑하게 지금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또 13절에는, 대적을 할라면 어떻게 하면 대적할 수가 있는가? 이것은 대적을 내가 멸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처음에 전신갑주를 입으라는 것은 자기 호신하는 면을 말했고 두번째 전신갑주를 입는 것은 그 대적을 멸하는 방법을 가리켜서 말했습니다.
우리 기독교에서 이것이 우리의 전투인데 이 전투를 바로 하지 못하면 헛일입니다. 우리의 가해자가 우리를 해칠 자가 어떤 자냐 하면은 ‘혈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우리가 무슨 몸으로 서로 밀고 당기고 때리고 맞고 하는 그것이 우리의 싸움 아닙니다. 우리가 대적을 다 때려서 상했다고 해 가지고 이긴 것 아니고 대적을 다 죽여 없앴다고 해 가지고 이긴 것 아닙니다.
우리 싸움은 사상전이요, 사상으로 싸우는 것이요 또 우리의 싸움은 죄로 더불어 싸우는 것이요 우리가 서서 있는 것은 의로 서서 있어야 합니다.
상대방을 전멸을 시켰다 할지라도 내가 범죄했으면, 그 전멸하는 것이 범죄가 됐으면 나는 패전했고 나는 죽습니다.
상대방에게 어떤 박해를 당해서 내가 그 손에서 죽었다 할지라도 우리의 전투는 사상전이기 때문에 내가 그 사상에게 지지 안했으면 우리는 승리한 사람입니다.
내가 죄에게 지지 안했으면 우리는 승리한 사람입니다. 내가 의를 보수했으면 승리한 사람입니다. 또 예수님의 대속을 버리지 안하고 대속을 입고 대속을 기념하는 일, 대속을 보수하는 일, 이라면 우리는 이겼습니다.
아무리 뭐 참 대립되는 자를 전멸시켜서 한 사람도 없게 만들었다 할지라도 우리가 의를 잃었으면 그 전쟁은 원수에게 패전 당해서 나는 죽었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잃어도 나는 패전했고, 의를 잃어도 패전했고, 죄에게 져서 죄의 종이 돼도 패전했고, 마귀에게 나는 져서 마귀에게 결국은 나는 마귀에게 점령을 당했으면 패전했습니다 그래 이것을 잘 깨닫지 못하면 싸워도 헛일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씨름은’ 여게 씨름이라는 것은 힘을 대결하는 것입니다.
씨름은 힘을 대결하는 것이오. 우리의 전투는 씨름입니다. 우리의 전투는 힘을 대결하는 것이오.
그러기 때문에, 내가 지지 안하면 이긴 것 됩니다. 내가 상대방을 없애는 개 아니고 멸하는 게 아니고 우리는 지지 안하면 이기는 것인데 우리의 전투 방법은 껍데기로 말하면 상대방에게 지지 안하는 것이 전투 방법이고 알맹이로서는 내가 세 가지를 지키는 것이 우리의 전투방법입니다. 세 가지를 지키는 것.
세 가지 지키는 게 뭐인데? 믿음 생활입니다. 세 가지 지키는 것이 믿음 생활이라 말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이 진리에게 순종하는 것이 믿음 생활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감을 주셨으니까 영감대로 순종하는 것이 믿음 생활이요 우리에게 대속 주신 이 주 하나님의 대속을 입고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을 우리가 입고 대속 입은 생활하는 그것이 신앙생활이요 곧 하나님에게 순종 생활입니다.
하나님께 순종 생활은 어떤 게 하나님께 순종 생활인고? 하나님께 순종 생활은 진리대로 행하는 게 하나님께 순종 생활이요 의로 행하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 생활이요 또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을 입고 사는 것이 순종 생활입니다.
진리대로 산다는 말은 진리를 어기지 않는 것, 진리를 범하지 않는 것, 진리대로 실행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을 우리가 입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의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우리가 힘입어서 행동하는 그것이 우리의 의가 됩니다. 하나님의 의를 내가 입고 벗지 않고 사는 것이 우리의 의가 됩니다. 그것이 믿음 생활입니다.
우리는 이 싸울 때에, 씨름을 할 때에 혈과 육으로 씨름하고 이 싸우고 하는 것이 아닌데 잘못하면 우리는 혈육 싸움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혈육 싸움은 우리 싸움 아닙니다. 상대방이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 혈육적으로 그를 대적하는 것은 우리의 싸움은 아닙니다.
우리는 뭘 대적할 건가? 모든 나쁜 정사로 더불어 정사를 대적할 것입니다.
정사라는 것은 사람들을 다스리는 게 있는데 사람들 다스리고, 지도한다는 말이나 다스린다는 말이나 거라 같은 말인데 지도하는 것은 듣든지 말든지 그저 그에게 이렇게 하라 인도하는 것이고, 교훈보다 조금 높은 그 지도고 또 지도보다 강한 것이 다스리는 정치입니다.
내나 그 사람을 주관하고 그대로 행동하도록 지배하고 강력하게 해서 그 행동하지 안하면 안 되도록 하는 그 무력을 강력을 가해 가지고서 그렇게 하는 것이 그것이 통치입니다. 다스리는 것입니다.
교훈은 이렇다 그저 옳고 그른 것을 이렇다 하는 것을 말만 하는 것이 교훈이오. 고것을 조금 적극성 있게 행동하도록 이리 하라 저리하라 이렇게 지도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을 지도라 그렇게 말하고 지도는 해도 안 들으면 거기서 어떻게 댓가를 치르게 되는, 지도해서 안 들어도 거기서 형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스림은 그보다 더 강해서 지도해 가지고서 안 들으면 안들은 그 댓가 그 형을 가하는 그 가형하는 그것이 정치입니다. 다스리는 것입니다.
이래서, 교훈한다 훈계한다, 또 지도한다, 또 다스린다, 여게 정치라 말은 다스린다 말인데 그러면 우리나라에 지금 노사분규가 일어나는 그런 것이 다 하나의 정치입니다. 그것이 교훈도 아니요 지도도 아니요 그것이 정치입니다. 또 이 데모 일어나는 것 그런 것도 다 정치에 속했습니다.
그러면 그 정사, ‘모든 정사와’ 그러면 그 정사로 더불어 싸우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싸워야 되느냐? 그 정사가 옳은 것을 이렇게 옳게 사람을 다스릴 때에는 그 옳은 다스림에 성경대로 옳은 다스림에 거게 복종하는 것은 곧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것입니다. 옳은 다스림에 복종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상전에게 복종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에 일치된 것에 죄인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은 그게 막바로 하나님에게 복종이라고 있는 충성을 다하라 그렇게 했습니다. 눈가림만 하지말고 충성을 다하라. 에베소서 6장에 말씀했습니다.
이 정사로 더불어 우리가 씨름하는 것은 그 정사는 나를 자기들의 사상대로 자기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가지고서 나를 거게다 복종을 시킬라고 굴복을 시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일에다 복종을 시킬라고 굴복을 시킬라고 이렇게 강제합니다. 그래도 나는 그 다스리는 정사에 내가 복종하지 않는 것이 그것이 내가 거게서 씨름할 씨름인데 복종하지 않는 그것이 우리의 일이라 하는 것은 외부를 말하는 것이고 복종하지 않는 그것이 우리 할 일이 아니라 곧 믿음을 지킴으로 복종이 될 수가 없는 일 하는 것이 우리 할 일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믿음을 지킴으로 복종 안 되는 그것이 우리 할 일이지 믿음은 지키지 안하고 잘못된 정사에 대립하여 거게 복종하지만 않는다고 해 가지고서 우리 할 일은 아닌 것입니다.
복종하지 않는 것은 어부의 일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세 가지,믿음 지키는 것. 우리는 진리대로 하는 것이 우리의 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의 씨름은 정사인데, 모든 정치, 잘못된 정치인데 잘못된 정치를 대항하는 것이 우리 일이 아니고, 잘못된 정치에 복종하지 않는 일이 우리 일인데 복종하지 않는 그것만 가지면 우리 일이 아닙니다. 믿음을 지킴으로 믿음 지키는 것으로 인해서 복종함이 되지아니한 그것이 우리의 싸우는 방법입니다.
요것을 잘 모르면 우리의 그 신앙생활은 다 전투 생활이요 다 씨름하는 생활인데, 힘을 대결하는 생활인데 정치는 모든 정사들은 나를 거게 복종시킬라고 하고 또 하나님은 당신의 이 세 가지에 복종을 시켜서 믿음을 지키도록 할라 하고, 하나님은 믿음을 지키도록 하실라고 하고 세상에 있는 모든 정사는 가정에도 정사가 있고, 회사에도 정사가 있고, 노회도 정사가 있고, 뭐 공회에도 정사가 있고, 제직회도 정사가 있고, 크나 작으나 나라에도 정사가 있고 전부 정사가 있습니다. 정사는 다스리는 일입니다.
자기의 사상대로 주장대로 말하고 또 지도하고 또 안 들으면 세력을 가지고서 이렇게 다스리고 또 그대로 안 들으면 형을 주고, 그 세력을 가지고 형을 주고 이랄 때에 그 이치로 하는, 이치로 하는 이치와 거게 무력의 강력이 겸할 때에 그걸 가리켜서 정사라 그자게 말합니다. 그라면 고것을 우리는 요 정사에 지면 안 됩니다.
정사에만 지지 안하면 되는가? 그것이 정사에 지지 않는 것은 결과입니다.
정사에 지지 않는 것은 결과요 내가 믿음 지키는 그것은 우리의 생활입니다.
우리의 믿음 지키는 생활함으로써 그 결과가 정사에 굴복하지 안하고 하나님에게 복종하게 된 고것이. 우리의 생활입니다.
그러니까, 정사는 저희에게 복종시킬라고 우리를 하고, 우리를 복종시킬라고 하고 하나님은 당신에게 복종시킬라고 할 때에 그분에게 복종함으로써 정사에 복종이 안 된 그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 없고 그 정사에만 복종하지 안하는 것이라면 또 다른 종류의 정사에 악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 지키는 게 아니면그 정사에 승리가 못 됩니다.
그래서, 로마서 13장애 보면은 모든 권세에게 복종하지 안하면 다 심판 받는다 권세는 위로부터 나지 안한 것이 없다 하는 그 권세는 하나님의 진리에 딱 들어맞은 그런 권세를 가리켜서 말합니다. 대개는 이 세상에서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은 그 모든 권리 행사를 하고 있는 건데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권리 행사 그거는 하나님에게 역적이기 때문에 곧 우리는 그로 더불어 대적이 되고 그에게 복종하지 안해야 됩니다.
그래서, 13장에 권세에게 복종하라는 이 성구를 가지고 왜정말년에는 ‘신사참배는 이 총독은 권세를 가지고 있는데 총독 권세에 복종하지 않는 것은 이것은 하나님 앞에 심판 받을 죄라’ 그렇게 목사들이 다 해석을 했습니다.
또, 해석하는 사람들은 또, 다른 사람들은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지 안한 것이 없으니 하나님의 법칙에 위반되는 ‘권세는 하나님에게 역적 노릇하는 것이기 때문에 역적과 협동되면 그것이 곧 하나님의 역적이기 때문에 죄가 된다.
신사참배 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역적 행위다.’ 이렇게 다 같은 성구를 이래 해석하고 저래 해석해 가지고서 안 하는 사람 안 하고 하는 사람은 하고 그래 가지고서 한 사람들은 실패했고 안 한 사람들은 승리했습니다.
‘정사와 권세’ 또 다스리는 것이 아니고 이 권력 가지고, 권력을 가지고서 우리를 기합하고 또 압도하고 이렇게 강제해 가지고 이 권세가 들어서 강제해 가지고 우리를 믿음 지키지 못하게 하는 일들이 가득히 찼습니다. 가정에도 있고 교회 안에도 있고 사회도 있고 그런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권세를 가지고서 우리로 믿음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또,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 그러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이라 말은 곧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주관자들 전부를 다 가리켜 말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주관자들 전부를 다 가리켜서 말하는 것이니 어두움은 하나님의 진리와 영감에 속한 것이 아니면 다 어두운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내가 그로 인해서 믿음 뺐기지 않는 것이 우리 할 일입니다.
그러면 그로 더불어 우리가 싸워서 뭐 강제하는 게 아니고 고 자기네들이야 하거나 말거나 자기네들 할 일은 하도록 하고 우리는 믿음 지키는 게 우리의 할 일인 것입니다.
그 전투에 대해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세상 임금이 오겠으나 내게는 무슨 상관이 없노라 나는 다만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그 명령을 어떻게 지키는 것을 세상에게 보여 줄 것 뿐이라.’ 그러면 예수님의 할 일은 둘 뿐이라 말이지.
예수님의 할 일은 둘뿐인데 ‘저거야 무슨 일하든지 상관없다. 나 할 일은 둘뿐이다.’ 하는 그것이 예수님의 올바른 전투 방법을 써 가지고서 이긴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 그러면 교회서도 보면은 그 어두움이 주관하는 그 모든 일들도 있고 또 하나님이 주관하는 그 일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어두움이 주관하는 그 일에는 안 따라가면 외로와지고 박해가 돼지고 많은 손실이 자기에게 옵니다. 그래도 믿음 지키는 일 그것에게 뺏기지 안하는 것이 씨름에 이긴 것이고 뺏기면 내가 그 씨름에 진 것이라 말이오.
또,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니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라 말은 이 하늘이라 말은 이 공중을 가리켜 말하는 것인데 이 공중에 지금, 영은 이 땅에만 붙어서 땅을 밟아야 다니는 게 아니라 공간에 다닐 수 있기 때문에 공중의 권세 잡은 악의 영들이라 말한 것입니다.
악의 영들은 자기중심 자기 위주로 움직이는 영이라, 그러면 천사들은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로 하나님을 따라 움직이는데 영도, 요한1서 4장 1절 이하에 보면은 영을 우리가 잘 구별하지 안하면 큰일납니다. 악령 이놈이 천사인 척 하고 가장을 해 가지고서 그렇게 나타나는 일이 있기 때문에 이 영이 하나님 중심 위주의 영이냐 자기중심 위주의 영이냐? 피조물 중심 위주의 영은 다 악입니다.
이래서 악의 정의를, 제가 연구해서는 그런 걸 알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그런 걸 알 수 있겠습니까? 얼마나 범위가 넓은데. 이 악의 정의를 말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설교할 때에 말을 쑥 나오게 해가지고 내가 배웠지 그거 뭘 논리하고 해석해 가지고서 그런 게 아니고 말을 선포하고 난 다음에 뒤에 자꾸 따져보니까 악의 정의가 맞습니다. 신구약 성경에 다 있는 악을 이 정의로 해석을 하면 바로 알게 됩니다.
그러나, 악은 인간들이 말하는 악, 세상이 말하는 악, 악은 이거 세상과 공통된 것으로 알고 세상이 말하는 악 그걸 악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아 다 지식한 사람들입니다. 광문 다학한 사람들은 다 그렇게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그런 사람들은 악의 정의를 창조주 아닌 모든 피조물들을 중심하고 위주하는 것, 이 악이라 하는 것을 이런 것을 이해를 잘 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맞습니다.
영원히 가도 맞습니다.
그래서,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영도 자기중심 자기 위주의 것이 그 마귀요 그게 타락한 것인데 이 네 가지 세력에, 악의 영들은 우리에게 뭐 말을 합니까 뭘 합니까? 그것은 우리에게 그 영감으로 감동으로 우리를 감화시킵니다.
우리 속에 우리 마음에 와서 일한다 말입니다. 악령은 우리 마음을 그렇게 만들어요.
우리 마음을 그렇게 만들어 성경에 보면은 ‘내가 그에게 거짓말하는 영을 넣어 주겠다. 내가 그에게 자기 아주 사욕을 달성하고 싶어하는 그런 영을 넣어 주겠다.’ 하나님이 넣어 줘요. 하나님이 허락해 넣어 줘요. 이러니까 사람들이 뭐 돈에 죽고 살자 하고 하고서 막 달라드는 그 사람은 하나님이 물욕 영을 그 속에 넣어 줘서 그렇습니다.
그 모든 영을 하나님이 이건 영 저런 영 넣어 주니까 시기 영을 넣어 놓으면 또 시기 영이 들어서, 또 공명 영을 넣어 줘 놓으면 그 공로가 세우고 싶고 명예를 가지고 싶어서 그게 다 악령을 하나님이 다스려서 부려서 거게다가 들어가도록 해서 그런 것입니다.
이러면, 요 씨름은 우리가 그것을 혈육으로 대적해서 없애 버리는 것이 이기는 것도 아닌 것, 또 그를 대적해서 그것을 아주 그 사상을 그만 다 없애 버리고 막 이래 가지고 하는 것도 우리가 이기는 것 아닌 것, 우리는 다만 믿음 지키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인데 믿음을 지키니까 그런 결과가 나타나야 되는 것이지 그것을 우리의 행위로 하면 헛일이라 그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씨름하는 거, 성도의 이 전투, 성도의 이 실력 대결하는 이것을 잘 구별하지 못하면 헛일입니다. 요것을 잘 구별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요거 바로 구별하는 사람들이 많이 없어요. 이러니까 모두 엉뚱이 짓을 하고 있지.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하루 삼십 분 기도 이것을 하면서 첫째는 눈이 밝아야 되니까 눈도 밝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귀도 밝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눈이 밝아야 보지. 다 같이 봐도 하나님이 마음의 눈을 열어 주지 안하면 몰라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듣는 것을 다른 사람은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다. 듣는 귀가 복이 있고 보는 눈이 복이 있다. 이 세상에 번연히 모든 일이 다 이렇게 돼 가고 있는 마귀 역사가 있는데 마귀 역사 그걸 못 봅니다. 그 보는 각도가 달라. 이래 보고 저래 봐서 거게서 자기 망쳐질 거 자기 운동하고 자기의 노력하고 소속하는 것이 전부 보고 듣는 데서 결정되기 때문에 잘못 보고 잘 못 들으면 다 헛일이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우리 눈을 밝혀 달라고 기도해야 되지 않겠소? 귀를 밝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되지 않겠소? 또 이런 세력에게 내가 지지 안해야 되지 다 신앙 양보해 버리면 헛일이니까 또 위해서 기도해야 되겠다 그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