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8 11:52
대속의 목적
1984. 7. 15. 주일오전
본문 : 고린도후서 5장 15절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이렇게 특수 창조를 받아 모든 피조물을 정복하고 통치하게 되는 것은 창조주 한 분에게 완전히 정복을 당하고 통치를 받아서 하나님 앞에 털끝만치도 자유함이 없고 자존자 창조주, 주재자 주권자, 전지전능자 그분 한 분에게 완전히 정복을 당해 그분의 것이 되어 그분에게만 복종하여 살도록 되어 있는 지위를 가진 것이 사람인 것입니다.
신약 성경 고린도전서 3장 20절 이하에 내려보면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과 사망과 생명 모든 것이 다 너희 것이고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인간이 근본 창조 받았을 때의 지위를 가진 것이 희망은 모든 피조물을 정복하고 통치할 희망은 가졌고. 임시는 물질계 이 우주 안에 있는 것만 정복하고 통치권을 가졌던 것인데 하나님에게 정복당하지 아니하고 반항하여 독립하고 하나님에게 통치받지 안하고 자주 통치하는 이것 때문에 원 지위에서 쫓겨나서 타락했습니다.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셔 가지고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셨다 하는 말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불순종한 그 죗값으로 영원히 멸망 받게 된 그 원인인 죄를 예수님이 대신 담당해서 그 멸망을 받느라고 우리가 멸망 받는 그 멸망을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을 이유가 없는데 대신하여 죽으신 이유는 우리가 지극히 높은 지위를 가지고 하나님의 법칙대로 우리가 하나님에게 정복을 당해서 하나님의 것이 되고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요 위치를 지키면 일차적으로 우주에 있는 것이 다 정복을 당하고 아담에게 복종하게 되고 그것이 그대로 성장돼 나가면 영계에 모든 것도 다 아담 앞에 복종하고 굴복을 당해서 정복 받고 복종하게 될 터인데, 그만 하나님에게 정복당하지 아니하고 제가 주장해서 제가 왕노릇하고 제가 머리 노릇을 하려고 하는 그 값과 하나님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 제 생각나는 대로 욕심나는 대로 한 자율대로 행동한 고 두 가지 죄 값으로 영영히 멸망 받게 됐습니다.
아담이 멸망 받은 것은 아담이 정복하고 위임 통치권을 가졌던 그 통치 아래에 있던 이 우주는 다 멸망을 받고 정죄와 저주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3장 이하에 보면 사람들로 인해서 모든 만물이 다 저주받았기 때문에 만물들도 사람에게 저주를 해서 이제는 땅에서 가시와 엉겅퀴가 나게 한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아담의 멸망은 전 인류의 멸망이 되고 우주의 멸망이 되고 하나님의 계획대로 한다면 영계의 모든 것이 멸망되니 모든 피조물이 다 멸망되는 멸망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이 멸망의 원인인 그 값을 예수님이 치르시기 위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죽으신 것은 이것 때문에 죽으신 것입니다.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이것 때문에 죽으셨기 때문에, "산 자들로 하여금" 산 자들이라 말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구속을 입고 진리와 영감과 주의 피로 다시 살리움을 받은 성도를 말합니다. 산 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공로로 인한 진리와 영감. 공로 이 세 가지로 산 자들로 하여금 이렇게 예수님이 멸망함으로써 멸망에서 다시 살리움을 받은 자들은. 그 말입니다.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말은 앞으로 중복할 수 없이 영원히 계속해서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이제는 과거에 하나님에게 정복을 당하지 아니하고 자주장자로 하나님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 제 생각 제 마음 제 욕심 제 자율대로 살던 그 행위를 다시는 하지 말고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이제는 자기 위해서 살지 않고 자기 위해서 살다가 멸망 받은 것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되시기까지 해 오셔 가지고 이 벌을 받아 가지고 대신 죽으셨습니다.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가 그 멸망을 벗어나서 죄 없는 자로 의로운 자로 하나님과 화친된 자로 영생하게 되었으니 다시는 아담이 타락할 때와 같이 그렇게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가 주장돼서 자기대로 살지 않고, 다시 말하면 자기 위해서 살지 않고 제 주장대로 살지 않고 자기 위해서 살지 않고 제 주장대로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우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죽은 것은 우리의 영원한 멸망을 대신해서 죽으셨고 살으신 것은 우리를 하나님을 향하여 영원히 죽지 안하고 멸망하지 안하고 살도록 하기 위해서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함이니라' 요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뭐 때문에 자존하신 하나님이신데 예수님이 만물을 창조했고 주권자시요 주재자시요 지극히 거룩하신 분이시요 한 분뿐 되는 하나님이신데 영원히 자존하신 하나님이요 모든 존재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지음을 받아 생겨진 그분인데, 그분은 자존자시요 모든 것을 존재케한 창조주시요 지금도 모든 것의 주인이시요 모든 것을 주권하고 계시는 분이시요 전지전능자시요 계시해 안 해 놓은 것이 없으시고 모든 걸 주권하고 계시는 분이신데 그분이 죽으실 필요가 뭐 있는가? 그분이 죽으실 이유가 뭐인가? 그분이 죽으신 것은 그분이 죽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멸망입니다. 우리가 영원히 멸망 받으면 하늘에 있는 영계도 멸망 받고 물질계도 멸망 받고 영계와 물질계 하나님의 창조하신 모든 것은 다 멸망 받게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모든 것이 멸망하기 전에 그 원인인 택한 자들의 멸망을 예수님이 대신하시고 멸망에서 구출하셔서 그 멸망이 차차 차차 인류에게 만물에게 우주에 영계에 감염돼서 번져 나가서 모든 피조물이 다 멸망 받을 이 멸망을 방지하기 위해서 주님이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것은 우리가 멸망 받는 그 멸망으로 우리만 멸망 받을 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 다 멸망 받기 때문에 멸망 받는 모든 피조물의 멸망을 방지하기 위해서 주님이 대신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법적 해결을 해서 우리를 구출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신 이유가 뭐인가 우리가 다 죽었고 죽게 되고 영원히 멸망 받도록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멸망을 예수님이 대신해서 멸망 받으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멸망을 받으셨는데 우리가 왜 멸망을 받았는가? 우리가 뭐 때문에 멸망을 받았는가? 우리가 멸망 받은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멸망 받은 것은 뭐 때문에 멸망을 받았느냐? 자기 위해서 살고 피조물 위해서 산 요것 때문에 멸망을 받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시는 자신을 위해서 살면 또 멸망 받기 때문에 다시는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주님이 이렇게 십자가에 못 박혀서 멸망을 받으신 것입니다.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대신 죽었다가 사신 자가 누군데? 하나님이십니다. 다시는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고 하나님이신 주를 위해서 살게 하려 함이라 하는 것입니다.
주를 위해서 살게 하는 것이 뭐하기 위해서 주를 위해서 살게 합니까? 주를 위해서 살게 하는 것이 뭐 때문입니까? 주를 위해서 살게 하는 것이 뭐 때문입니까? 뭐 때문에 우리도 다 제대로는 잘났고 제 욕심 주관 다 있는데, 우리를 우리 자신 위해서 살지 말고 주를 위해서 살라고 한 그 이유가 뭐입니까? 자신을 위해 사는 그것으로서 인간이 영원히 멸망을 받았기 때문에 거기서 주님이 대신 멸망 받으시고 우리를 구출해 내셨기 때문에 이렇게 주님이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 우리를 구출해 내셨는데 또 자신을 위하면 또 죽는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다시는 자신을 위하지 말라 말은 다시는 죽지 말라 그말입니다. 다시는 죽지 말아라.
자신을 위한 것은 영영히 죽습니다. 성경에 둘째 죽음이라고 말하는 것은 첫째 죽음은 첫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제 자신 위하다가 죽은 것이 첫째 죽음이요, 예수님이 대신 죽으심으로써 죽음에서 구출해 내셨는데 구출받은 것이 또 제 자신 위하다가 죽는 것이 두 번 죽음입니다. 둘째 죽음입니다. 둘째 죽음에는 구출이 없습니다. 둘째 죽음에는 다시는 구출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두 번 십자가에 못박아야 되는데 예수님이 또 다시 사람되어 오는 그런 일은 못 합니다. 당신이 하지를 못합니다. 우리를 첫째 대속했기 때문에 다시 그분은 다른 사람을 입고 오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깨집니다. 하나님이 변해집니다. 안 됩니다. 절대 그 불변의 그 진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하는 말은 이렇게 주님이 죽기까지 하셔서 우리를 구출해 놓으셨는데 "다시는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고" 다시는 자기가 영영히 멸망 받는 그 멸망을 하지 않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자주자이시요 자존자시요 하나님이신 이 창조주이신 완전자이신 이분을 위해서 살라. 이분을 위해서 살라 그말은 다시 죽지 말라 그 말이오. 자신을 위해서 살지 말라 말은 다시 죽지 말아라 그 말이오. 주를 위해서 살라 말은 다시 죽지 말고 영원히 살아라 그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요것을 굳게 잡아야 됩니다. 다 스스로 지혜 있는 척하고 우리 현실 현실은 두 번 만나지 못하는 중요한 가치 있는 현실인데, 현실은 반드시 주님을 위하느냐 자기를 위하느냐 둘 중에 하나로 판정되고 지나갑니다. 자기가 현실을 주님을 위하지 안하고 저를 위해서 천하를 다 점령해도 그 자는 정신 빠진 자요 멸망자입니다. 자신을 적게 위한 자도 멸망이요 크게 위한 자는 더 크게 멸망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현실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살아났으니 구원을 받아 있으니 현실에서 두번 죽음으로 다시 죽느냐 두번 죽음을 죽지 안하고 한번 죽음에서 주님이 살려 주신 그 살려 주심으로써 영원히 사느냐 하는 것이 결정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살았습니다. 영은 완전히 살았고 우리의 심신은 법적으로 대속을 입었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살았습니다.
살았는데, 우리가 실질적으로 현실에서 대속을 벗지 안하면 안 죽습니다.
현실에서 자신을 위하지 안하면 안 죽고, 주님을 위하면 중생된 것이 영생으로 결정돼 버립니다. 그러므로 현실은 두 번 죽음을 하느냐, 현실에서 두 번 죽음을 하느냐 현실에서 영생으로 결정을 하느냐 하는 것이 현실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것을 모르고 동양을 잡았다, 서양을 잡았다, 20세기 과학 만능을 잡았다, 어리석습니다. 20세기 과학 만능을 말하지만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에 창조한 것의 하나님의 엿새 동안에 창조한 것 중에 하나를 지금 발견한 것이 원자입니다. 원자 그것보다 큰 것이 억억 만이 숨어 있는지 모릅니다.
소경같이 자기 교만으로써 자기가 소경되고, 욕심으로 자기가 어두워져서 멸망 받는 여기에서 '하나는 예배당에 가서 예수 믿는 어리석은 소리 듣지도 안 하고 나는 내대로 해가지고 큰 빌딩을 하나 마련했다.' '야 이 사람아 네가 빌딩 하나만 아니라 천하 빌딩을 네가 만들었으면 어쩔 것이고?' '나는 이 정권을 잡아서 큰 대국을 차지했다.' '네가 소련을 차지하면 어쩔 것이며 미국을 차지하면 어쩔 것이며 우주를 다 차지하면 어쩔 것이냐? 조물주는 따로 있다.
주권자가 따로 있다. 주님이 구름 타고 오시면 다 불탄다. 네가 첫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영원 멸망 받은 것을 예수님께서 대신 멸망을 받으시고 거기서 구출해서 너희에게 영생하는 생명을 주었으니 네가 현실에서 다시 너를 위하는 일을 해서 두 번 죽음을 네가 해서 영원히 멸망 받느냐. 네가 주를 위하는 일을 해서 영생으로 확정을 지우느냐 하는 이것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은 다 영생으로 결정이 됐습니다. 우리의 마음의 기능이라든지 몸의 기능. 우리 마음의 기능과 몸의 기능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영원 멸망에서 법적으로 구출돼 가지고 있기는 있지만 아직까지 이것은 영생으로 결정된 것은 아닙니다. 왜? 내가 이 현실에서 주를 배반할는지 주의 구속을 입고 지날 란지가 문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수많은 현실을 만날 때에 요것을 단정짓는 지식을 가지십시오. 우리는 심신의 기능이 살아난 것은 법적으로 살아났고 실질적으로 살아난 것은 아닙니다. 법적으로 살아난 것이 현실에서 내 심신이 현실에서 주를 위하면 영생으로 결정되고, 내 심신이 나를 위하면 두 번 죽음 영멸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인생이 죽은 것은 저를 위함으로 죽었고. 살아난 것은 하나님을 위함으로 살아났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것은 우리가 우리 위함으로 죽은 것을 대신해서 형벌 받아 죽으셨고,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죽기까지 하나님을 위하는 것으로써 위하다가 위하다가 마지막에 위하는 것으로 끝을 마쳐 죽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새생명이 왔습니다.
우리의 현실은 두 번 죽음으로 영멸을 하느냐. 다시 살려 주신 생명으로 영생을 하느냐 하는 것이 현실에서 결정되는 것이니. 현실에서 주를 위한 것은 살아난 것이 영생으로 결정이 되고, 고 부분적으로 토막 토막이 결정되고 현실에서 자기를 위하면 그 현실에 관련된 살려 주신 것은 두 번 죽음으로 죽어서 영원히 멸망을 받는 것입니다. 요것을 견고히 잡으십시오. 요것이 능력입니다. 요것이 능력.
우리 현실에서는 자신을 위하지 안하고 주님을 위할 라고 하면 반드시 자기에게 있는 것이 없어지고 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래서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사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금을 사라. 횐 옷을 사라.
안약을 사라. 물을 사라, 생수를 사라 말하는 것은 자기에게 있는 것을 주지 안하면 그것을 취할 수가 없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현실 현실에서 우리가 알기 쉽기 위해서 사라는 말 한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에게 있는 것을 내어 주고 주님을 사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사야 합니다. 주님에게 호감을 받아야 합니다. 아무리 주여 주여 하지만 이놈아 나는 너 위해서 십자가 못 박혀 죽기까지 구속했는데. 이 시간도 또 나 위하라는 것이. 나 위하라 나 위해서 살라는 것이 나를 위함이 아니고 너를 죽지 말라는 말인데, 하나님을 위하면 완전을 위하면 참을 위하면 진리를 위하면 안 죽고 사는 것인데, 너 위하다가 죽은 것을 내가 죽기까지 해 가지고 거기서 벌을 내가 면하게 감당했고, 너를 대신해서 죽기까지 주를 위해서 너에게 생명 줘 놨더니만 이 시간에 또 너 위해 가지고 죽는구나. 자기를 위하면 죽는 것인 줄 아십시오.
그러므로 우리 현실에서 뭐 때문에 내게 있는 것을 내어 줍니까? 알기 쉬운 면으로 표시하기 위해서 사란 말한 것입니다. 우리의 물질을 내놔야 주님을 살 수 있을 때도 있고 주님을 내 주님 만들 수도 있고, 또 내 건강을 내놔야 주님을 살수도 있고, 어떨 때는 내 혀를 내놔야 주님을 살수도 있고, 어떨 때는 내 눈을 내놔야 주님을 살수도 있고, 어떨 때는 내 귀를 내놔야 주님을 살 때도 있고, 어떨 때는 내 사업을 내놔야 주님을 살 수 있을 때도 있고 내 생명을 내놔야 주님을 살 수 있을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현실 현실로 지나가는 이 세상에서 어쩌든지 있는 것을 다 팔아서 이 보화요 진주인 비유인데 우리에게 영영히 보배가 되는 주님을 사야 됩니다.
우리에게 있는 것을 다 주고 사야 됩니다. 또 한 가지 살 것은 우리에 있는 것을 다 주고 진리를 사야 합니다. 또 우리에게 있는 것은 다 주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야 합니다. 양심을 사야 합니다. 이 세 가지는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샀으면 진리를 샀고 하나님과 진리를 샀으면 인간은 샀습니다. 인간은 저의 것이 되어 있습니다.
땅 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이 비밀의 세계를 모르고 인간 위에 진리가 있는 것을 모르고, 진리 위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모르고, 인간이 최고의 것인 줄로 알고 모든 종교, 모든 철학, 모든 사상, 모든 도덕, 모든 정치, 모든 주의 그들은 어쩌든지 무슨 사상이나 주의나 방편이나 정치나 철학이나 과학이나 무엇이든지 그것이 결론을 지우면 사람을 살 수 있어야 되지 사람 얻지 못하면 소용없다 그들은 그래 말합니다. 옳습니다. 하나님이 안 계시고 진리가 없다면 인간 얻지 못하면 소용없습니다. 아무리 민주주의. 공산주의. 철학, 도덕 뭐 이런 종교 저런 종교 뭐라고 말해도 그것이 사람을 얻지 못하면 소용없습니다.
인간의 마음을 사지 못하면 소용없습니다. 인간을 차지 못 하면 인간을 제 사람 만들지 못하면 소용없습니다.
그러나 천하 인간을 제 사람 다 만들었다 할지라도 그 인간은 진리 하나에 죽고 살고 하기 때문에 그 위에 진리가 있으니까 진리를 제가 제 진리 삼지 못했으면 다 허공입니다. 다 헛일이오. 진리를 제가 다 제것 삼았다 할지라도 진리 위에 인격 존재이신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모르고 진리 만 제것 삼았으면 저는 하나의 율법주의요 하나의 이치자가 되었기 때문에 그 이치자는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것을 살리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현실을 알기 쉬운 말로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진리를 내 진리로, 마귀의 사람이 저가 그 마귀의 사람 주관으로 나를 환영하는 그까짓 거를 바랄 필요가 없습니다. 그 속에 양심이 있고 그 속에 다 영들이 있으니까 지금 원수라고 반대해도 세상 미혹에 끌려서 반대하지 그 속에 양심은 죽일 놈이라고 반대는 하면서도 나중에 극단에 마지막에 다 다를 때에는 그가 사람이다 하고 그 앞에 머리를 숙이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모든 권력자들이 사람들을 다 점령했지만 중공에 모택동이가 그렇츰 많은 사람들을 점령하고 참 세계 일류 가는 대인물이라고 말했지만 그가 죽은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그 사람은 한 사람의 마음도 사지 못한 것이 발표됐습니다. 얼마 전에 어떤 책이 저한테 한 권 왔는데 그 책을 초두만 내 좀 보고 말았습니다. ○정권에 대해서 약간 좀 말이 나오는데 무슨 말이 나올는지 모르겠습니라.
그러기 때문에 정승 말 죽은 데는 온 전국민이 다 모아드는데 정승이 딱 죽고 나면 조문군이 한 사람도 가지를 안한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들.
그러기에, 제가 일시에 어떤 그 권력을 잡고 한다 해도 제가 사람의 마음을 사지 못했으면 사물을 얻지 못했으면 그는 실패자입니다. 아무리 천하 인간의 마음을 다 샀다 할지라도 만물보다 거짓된 인간의 마음이기 때문에 진리를 사지 못했으면 그것도 다 허탕입니다. 진리를 제가 아는 대로 진리를 제가 잡고 가졌다 할지라도 자존자요 주재자이신 진리의 근원이신 그분을 알아서 그분을 제 하나님으로 모셔서 그분을 사지 못했으면 헛일입니다. 그분을 얻지 못했으면 헛일입니다. 그분이 자기에게 마음을 쏠려서 그분이 자기에게 쏠려서 자기의 하나님이 되지 못했으면 헛일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진리를 내 진리로 인간이 시시비비를 해도 인간의 참된 그 영이 나를 찬양하는 내 영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 오늘날 현실입니다. 이것 때문에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실에 이 세 가지는 내가 가지고 있는 물질, 내가 가지고 있는 사건들. 내가 가지고 있는 몸, 마음, 내 영 내라는 이 자체 인격 이것이 내가 가진 것인데, 이것은 이것을 투자해서 하나님을 얻고 진리를 얻고 사람을 얻었으면 이것으로 더불어 성공입니다. 그 외 무슨 성공이 있습니까? 왜 이 일을 얻는데 에 생명이 죽을까 싶어서 주저해 가지고 그럴 때 생명이 아까와서 얻지 못하고 내놓고, 재물이 아까워서 얻지 못하고 내놓고, 자기 욕심이나 주장이나 자기의 감정이나 자기의 정서가 아까워서 사지 못하고 이와 같이 허탕을 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됩니까? 있는 것을 아낌없이 다 팔아서 사는 자가 지혜 있는 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모든 것을 주를 위해서 살고 진리 위해서 살아라. 주님을 위해서 살고 진리 위해서 살아라. 그 다음에는 인간을 위해서 살아라. 주님 위해 살고 진리 위해 살고 인간 위해 살아라. 인간 위에 진리요 진리 위에 하나님이다. 네 말도 현실에서 생각해서 이 말 하는 것이 주를 위함이냐 진리를 위함이냐 사람을 위함이냐? 네가 한 행동하는 것이 이것이 이 행동이 이라면 주를 위하고 진리를 위하고 인류를 위함이 되는 것이냐? 내가 이 시간 판정하는 것이 계획하는 것이 이것이 이러하면 주를 위하고 진리를 위하고 인류를 위함이 되는 것이냐? 언제든지 이 세 가지를 내가 얻기 위해서 세상에 머물러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이 세 가지를 계산해 가지고 내가 이 시간 이 말하면 내 육의 생명은 취할지라도 주도 진리도 인류에게 참된 복음도 주지 못한다. 이 세 가지는 내놓고 내 생명 얻는 자. 이렇게 하면 이 세 가지 내놓고 돈 얻는다.
이렇게 하면 이 세 가지 내 놓고 내가 권세 얻는다. 이렇게 하면 이 세 가지 내놓고 내가 죽을 데에서 살아 나온다. 이렇게 하면 이 세 가지는 빼앗기고 세상 권세와 점령과 모든 성공을 한다 하면 뭐할 것입니까? 어리석지 맙시다.
어리석지 맙시다.
천국은 가치 있는 것을 보배를 발견한 사람은 자기의 있는 것을 다 팔아서 산 거와 같다 했습니다. 팔지 않고는 사지 못합니다. 내가 목숨을 끊겨져야 주를 위함이 되고 진리를 위함이 되고 인류에게 영원히 부끄럽지 안 하고 인류를 위함이 될 때에는 생명을 내놔야 이제 주와 진리와 인류를 내 것으로 삼을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못 삼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생명 내놔야 될 때 몸을 내놔야 될 때 자유를 내놔야 될 때 호의 호식을 내놔야 될 때 평강을 내놔야 될 때, 공연히 고행주의로 우리가 고행하는 것 아닙니다. 내어놓아야 될 때에는 아낌없이 내어놓아야 됩니다. 내놔도 당신이 그것을 끝맺지 안하면 나는 내놓는데 생명이 또 유지되면 또 그것 가지고 또 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는 저의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고 대신 죽었다가 살아나신 주를 위해서 내 소유도 몸도 현실에서 아낌없이 투자해서 삽시다. 주저할 게 뭐 있습니까? 뭐 이보다 더 좋은 거 뭐 있습니까? 생명을 얻어 봤자 반드시 죽습니다. 반드시 죽습니다. 죽는데 안 죽기 위해서 이 보배로운 주님과 진리와 인류의 환영받는 인류를 얻는 이 세 가지를 내놓을 것이 뭐 있습니까? 죽는데.
아무리 재벌가가 됐다 할지라도 오늘이라도 부르면 다 내놓는데 내 놓고 갈 재벌 때문에 이 셋을 내놓는 어리석은 우리가 되겠습니까? 한 됩니다! 어리석지 맙시다! 주저하지 맙시다! 이랄까 저랄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뭐 때문에 이렇게 주저합니까? 우리는 이 세 가지를 얻기 위해서 나의 가진 자본을 가졌습니다.
내게 있는 거 이것 하나만 가지고 현실이라는 그 기회를 통해서 하나님도 내 하나님으로, 진리도 내 진리로, 모든 인간들도 내 사람으로 살아서 지금은 원수라고 나를 순교로 죽인다 할지라도 마지막은 나는 찬양합니다. 환영합니다.
하는 사람 점령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생명길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곧은길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뭐 때문에 주저합니까? 당장 합시다. 자기에게 귀나 눈이나 내가 이 말을 들으면 주님을 위함이냐 아, 이말 들으면 주님을 위함이 아니다. 이말을 안 들으면 주님을 위함이 아니다. 이 말을 하면 주님을 위함이 아니다. 내가 요 눈을 가지고 요걸 보면 주님을 위함이 아니다. 요걸 보는 거는 주님을 위함이다. 이목구비 수족 전체 이거. 내 소유 이것만 하면 이 세 가지를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실에 귀나 눈이나 입술이나 자기 수족이나 자기 소유나 자기 생명이나 어떤 것이라도 주를 위하느냐 너를 위하느냐? 주를 위하느냐 너를 위하느냐? 너를 위하느냐 진리를 위하느냐? 너를 위하느냐 인류를 대면할 것을 생각하고 인류를 위하느냐? 주님 위하고 진리 위하고 인류를 위하는 것이 세 갈래로 있다면 이거 얻으면 저거 못 얻고 이렇지만 셋이 하나기 때문에 하나 얻으면 셋 다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현실에서 실지로 걸어갈 때에 이 세 가지 삼 층이 있으니 인류와 진리와 주님이 계시니 이 셋 중에 둘을 위하고 하나 못 위할 때도 있고, 하나만 위하고 둘 위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이 셋을 한목 다 위하는 그런 거 되면 좋지만 서이다 한목 위하지 못하고 그 중에 하나밖에는 위하지 못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는 하나님 위하려 하면 진리 못 위하겠고 진리 위하려 하면 사람 못 위하겠고 요렇게 될 때에는 언제든지 위의 것을 취하십시오 위에 것, 위엣 것 하나를 위하면 밑에 거는 저절로 위함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머리가 모지래서 계산 착오지 그것은 언제 주님 위하면 그 밑에 진리 위함되고 인류 위함이 됩니다. 인류를 위해도 진리와 주님을 위함이 안 될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인류를 위하는 것이 진리와 주님을 위함이 안 될 때에는 인류를 위함이 되느냐? 제 오산과 착각에서는 인류를 위함이 됐지 인류를 위함이 진정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아들어서 단정 지웁시다. 남은 때는 현실 현실에서 모든 것을 주를 위해서 살고 자기를 위해서 살지 않기로. 자, 주를 위해서 죽든지 몸이나 생명이나 지위나 권세나 어떤 것이든지 현실에서 나는 이제부터는 주를 위하는 것으로 단정 짓겠다 주를 위하는 것으로 단정 짓겠다. 나는 이제는 나를 위하지 않기로 단정 짓겠다. 작정합시다. 다시는 자기를 위하지 않기로 단정 짓는 사람 손 한번 듭시다. 쏵 들어요. 뭐 주저합니까? 놓읍시다. 남은 때는 주님만 위할 것으로 확정 지웁시다. 손 들읍시다. 주님을 위합시다. 뭐 위할 거 있습니까? 확정 지웁시다. 오늘도 주님 오실는지 모릅니다. 어서 빨리 빨리 일러서 해 가지고 앞선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앞서는 자 된자 많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제까지 못 해도 지금부터라도 이제는 내 현실 현실에서 내 언행심사도 내 이목구비 수족도 내 생명도 몸도 모든 소유도 일도 전부는 다 주를 위하고, 나를 위하는, 이것은 옛사람이고 죽는 것이기 때문에 나를 위하지 안하고 주를 위하는 내가 산 내입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어리석지 맙시다. 머뭇머뭇하지 맙시다. 뭐 때문에 머뭇머뭇 합니까? 의심이 납니까? 천지는 변해도 획 하나도 가감이 없습니다. 믿고 합시다. 의심하지 마십시오. 확정을 짓고 요대로 단행 짓고 달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