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

 

1989. 8. 20.주일새벽

 

본문: 요한복음 1장 10절∼13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그가 하는 것은 내나 주님을 말합니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창세기 l장에 천지를 창조하시다 하는 그 하나님, '물 위에 운행하셨다'  는 그 하나님이 내나 주님이 사람되어 오시기 전 주님이십니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당신이 만든 이 우주에 들어오셨다 말입니다. 사람되어 오셨다  말입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 하였으나' 모두 다 주님을  영접했습니까? 다 배척했지.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영접하는 것이  주님의 이름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주라 이렇게 믿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이런 권세를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 난 것이 아니라' '이는 혈통으로나' 혈통이라는 것은 이  핏줄을 통해서 모두 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이라면서 저거 동족주의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교회서도 혈통주의들이 많습니다. 혈통주의를 떠나기 전에는  하나님에게 연결되는 신앙주의에는 속하지 못합니다.

 한 사람이 대구에서 부산 가는 차 서울 가는 차 두 차는 타지 못합니다  동시에는 못 탑니다. 양쪽 차를 거머좋고 제가 안 놓치고 두 군데 다 갈라 하면  팔이 떨어지든지 몸뚱이가 갈라지든지 그 결과가 나오지 한 사람이 두 군데는 못  갑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한 사람이 대구에서 한 차는 부산 가고 한 차는 서울  가는데 두 군데 다 탈라 하면은 결국 꼭 거머쥐고 놓지 안하면은 팔이  떨어지든지 몸뚱이가 두 쪽으로 쪼 개지든지 하지 그 두 군데는 갈 수 없는  겁니다. 쪼개져도 못 가요.

 이래서,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를 주셨는데, '이는 혈통으로나" 하는 건  혈통으로 된 것이 아니라 그말이오. 혈통주의든지, 혈통주의는 자기 핏줄에, 자기  혈육주의는 '아버지 어머니, 또 할아버지 할머니, 층조 할아버지 할머니.' 자꾸 그  계통에 속하든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곧 나.' 이렇게 붙어 있는 것이  믿음주의요. 혈통주의는 자기 혈육에 붙어 있는 게 혈통주의입니다.

 혈육에 붙어 있는 것이 먼지만치 붙어 있으면 먼지만치 붙어 있는 것만치는  하나님께 붙지 못합니다. 혈육에 십분지 일이 붙어 있으면 하나님께는 십분지  일이 붙지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본토 친척 애비집을 떠나라 한 것이 우리 믿음의 조상에게  처음에 말한 것입니다. 이것을 말하니까 이게 맞지 않다고 이 정치가 저거  마음에는 맞지 않는다고 '교훈은 좋지만 정치가 안 됐다' 이라면서 모두 피피  달아나 버렸습니다.

 달아난 그것은 저들은 그거 회개하지 안하면 우리와 같은 길을 가지 못합니다.

인본주의를 회개 안 하면 신본주의의 길을 못 갑니다. 혈 육주의를 회개하지  안하면 신앙주의의 걸음을 걷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앙주의 걸음을 걸으면  혈육주의는 다 버리는가? 신앙주의 걸음을 걸으면 혈육주의를 완전히 구원해서  영생으로 살릴 수 있습니다.

 '혈통으로나 육정으로' 그러면 육정이라 말은 이 육신의 정 애정 그런 정리를  가지고 된 거 아니라. 육체적인 그런 애정을, 그 정리를. 혈육정, 부모 형제 자매  다 우리가 사랑하지마는, 그 정이 있지마는 하나님으로 인해서 이제 그 정을  가져야 되지 하나님께 반대되는 그 정 가질라 하면 하나님의 정 못 가지겠고  하나님의 정 가질라 하면 그 정 못 가지게 되는 하나님과 대립되는 그런 정은 다  우리가 없애 버리고 전적 하나님께 기울여야 되지 인간에게 대한 그런 정욕을  가지면 안 됩니다.

 '육정으로나' 육정으로 난 것도 아니라 말이요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사람의 뜻이라는 것은 사람 생각으로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된 거 아니라 말이오.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안했다 그말은 사람  생각으로 하나님의 자녀된 것이 아니고. 그라면 민족 생각으로 된 것도 아니고  이거는 어떤 피조물의 그 주장이나 그런 계획이나 그런 뜻에서 된 것이 아니고  자존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 자녀된 일이 됐다 그말이오.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오직 하나님 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이러니까 예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주셨는데  믿는다 말은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우리가 똑똑히 인정하고 그분에게 따르는  것을 가리켜서 믿는다 그랍니다.

 그분을 알고, 지식적으로 알고 참 그분을 인징하고 그다음에는 그분을 따르는 것,  그분이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고 그분이 이렇다면 이렇고, 지식으로 따르고  행동으로 따르고 이렇게 따르는 것, 그 따르는 그것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됐습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러니까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건데 믿음 떠나면 이거는 즉시 끊어집니다.

 우리가 비유컨대는 억만 년 하늘나라에 가서 하나님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영광을 누리고 영생하고 죽지도 늙지도 쇠하지도 병들지도 아프지도 아니하는  항상 사랑과 기쁨만 충만한 이 하늘나라에 가 가지고 억만 년 살다가도 주님  믿는 믿음 딱 버려 버리면 그만 그때 떨어져 버리고 아무 소용 없습니다. 다시  멸망으로 돌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요 믿음만 가지고 하나님과 연결됐다는 것, 하나님이 우리를 대속하신 것을 알고  인정하고 내가 그대로 사는 것이 믿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나와의 연결을 시킨 것이 믿음이오. 믿음이 뭐인데?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내가 알고 인정하고 그대로 사는 것이 믿음이라 그말이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이것은 이는 혈통으로 난 것도 아니요 육정으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의 뜻으로 난 것도 아니요 오직 자존자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공과, '요한복음 l장 l0절로 l3절' 제목은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 하면 하나님의  자녀 권세 되는 걸 말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서론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의 대속 공로로' 사활이라 말은 죽을  사(死) 자 하고 살 활(活)자, 죽으신 것을 가리켜 사라고 말했고 부활' 하신 걸  가리켜서 활이라 이래서 사활,  '대속으로' 대속이라 말은 우리 대신해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을 가리켜서  대속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를 구원하셨다 그말이오.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고, 의로 구원하고, 하나님과 원수된 데서 구원하고, 또 절망과 낙망  모든 희망 없는 데에서 우리를 구원하고,  이래서 이것은 다 주님이 대신 행하심로서 우리가 행한 게 되어서 우리를  구원한 것을 가리켜서 '사활대속 공로로' 공로는 네 가지 공로 아닙니까? 대형으로  죽으신 공로. 대행으로 행하신 공로, 대화목으로 화친의 공로, 또 죽은 가운데시  영원히 피조물을 입고 부활하신 이 공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본론에 '창조자시며' 창조 다 알지요? 창조라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서  만들어 낸 것을 가리켜서 창조라고 말합니다. 이미 있는 재료 가지고 만드는 것은  창조라고 하지 안하고 그런 것은 재창조 흑은 재제조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있는 재료 가지고 만드는 것은 재창조라고 말하고 있는 재료 가지고  사람들이 만든 것은 창조라 말을 못 합니다. 재제조라고 이라지. 제조, 제작.

 '창조자시며 전지 전능자시며' 전지 전능이라 말은 알지 못하심이 없고 능치  못하심이 없다는 말입니다.

 '전능자시며 대주재시며' 대주재라 말은 .모든 것에 주인이라 그말이오. 모든 것을  소유하고 하나도 하나님 것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어. 이래서 그걸 '대주재시며'  '만주의 주시며' 또. 이 세상에는 주인이 여러가지 있습니다. 이런 주인 저런  주인, 주장하는 주가 억억만도 넘지마는 그런 것들의, 전부의 총칭 그런 것들의  주가 된다 그말이오. 만주의 주시라 말은 그건 것들의 다 주가 된다 그말이오.

그래서 '만주의 주시며'  '만왕의 왕이신, 만왕의 왕이신' 만왕의 왕이라 말은 세상에 다스리는 권세를  가진 것이 뭐 우리 한국은 OOO대통령이 다스리고, 또 일본은 누가 다스리고, 뭐  중국은 누가 다스리고 다 다스리는 그런 것들이 있는데 그건 걸 가리켜서  왕이라고 말합니다.

 또 우리 부산에도 그러면 시장이 왕이요, 또 정치적으로서는 그다음에 뭐 구청장  있고, 또 자기 가정에서는 자기 아버지가 다스리는 왕이 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고, 가정 왕. 또 어머니가 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고 또 꺼꾸로 돼서 자녀가  돼 가지고 있는 가정도 있고 요런 그 모든 것 그런 것을 가리켜서 왕이라  말입니다.

 '만왕의 왕이시며' 그 모든 왕들이 다 이래 있지마는 그런 것들을 총 통치를 한,  그런 것들을 다 부하에 수하에 두고 그런 것들을 다 주권하고 계시는 그런  왕이라는 걸 가리켜서 '만왕의 왕이시며' 모든 왕에게 왕이 되신 자시며,  또 '주권자' 주권자라 말은 홀로 뭐이든지 다 하고, 주권이라는 것은 다른 권세를  힘입어서 하는 게 아니고 혼자 단독이 하는 것을 가리켜서 주권이라고 말합니다.

 '주권자 하나님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로 말미암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아버지 되셨고' '우리 아버지 되셨고 우리는 그의 영원한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됐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 해야 됩니까 '내 아버지' 해야 됩니까? '내 아버지,  하나님 내 아버지.' 대단히 가깝고 짧은 거 딱 들어붙은 거 같지마는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이라면은 하나님이 대답을 할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대답을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대답을 못 해. 우리 아버지라야 되지 내 아버지라 해  가지고는 대답을 못 해요.

 왜? '우리' 하면은 그 중보자 예수님과 나와 둘을 합해 가지고 복수로 해서  우리라고 이라는 것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의 이 대속 공로가 아니면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가 되지 못하고 하나님은 우리 원수돼 있지 우리와 상관이  없어요. 심판주로만 상관이 있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아버지 되셨고 우리는 그의 영원한 아들이 되었습니다'

 둘째 '영생하는 생명과' 이제 둘째는 생명이라.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됐으니까 두 번 째는 생명이라. '영생하는 생명과 병들지도 아니하고 죽지도  아니하고 고통도 없는 몸으로 부활하여' 지금은 이래 있는 것이 이거 지금은 이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몸뚱이는 혈육 이 피와 살로 되어 있는 몸뚱이요 늙어지고  쇠해지고 죽어지는 몸뚱이기 때문에 이 몸 가지고는 영생을 못 애요.

 이러기 때문에 지금은 영생하는 것은 뭐이 영생하는고 하니 우리의 영이 지금  영생을 하고 있고, 또 우리 마음이 영생을 하고 있고, 우리 몸이 지금, 영생하면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의 공로로 몸이 살 때에 속에 기능만 영생하게 됩니다.

 이미 영은 영생을 가지고 있고, 우리의 마음도 영생을 가지고 있고, 우리의 이  몸뚱이는 영생을 가지고 있지마는 이 몸뚱이는 죄지으면 사망하고 죄 안 지으면  영생을 가진다 그말이오. 그러나 이 몸뚱이는 피와 살로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거는 썩어지고 늙어지고 또 쇠해지는 이것이기 때문에 이거는 영생을 못 해요.

이게 이제 완전 영생할라면 한번 죽었다가 신령한 몸으로 변화가 돼야 되지  변화되기 전에는 안 됩니다.

 '영생하는 생명과 병들지도 아니하고 죽지도 아니하고 고통도 없는 몸으로' 이거  뭐 이거는 말할라면 많지요. 쇠해지지도 안하고 낡아지지도 안하는 그런  몸이지요. '없는 몸으로 부활하여 신령한 영육으로 영생할 우리들입니다' 신령한  영육이라는 여기 신령이라 하는 이 말은 시간과 공간에 제한을 받지 않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신령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신령한 몸이라 말은 억만 년 가도 변동 없는 그런 몸을, 예를 들면 시간에  제한을 받지 않는 것, 공간에 제한을 받지 않는 것, 그거는 뭐 돌 속에라도  들어갈라면 들어가고 아무 공간에 대해서 제재가 없이 자유로 활동할 수 있는  그런 몸을 가리켜 말하는 젓이니까 시간과 공간에 이 자유하는 거, 사망에  자유하는 거. 하나님의 심판에 자유하는 거, 어데서든지 자유하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신령한 영육으로 영생할 우리들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온갖 충만을 우리가 기업으로 받아' OOO조사님이 설교할 때에  그때에 '사죄와 칭의 화친 사활의 대속을 기업으로 받아' 이랬는데 그거는  기업으로 받는 게 아니고 구원으로 받는 것이고 생명으로 받는 것이지 그거는  기업은 되지 않습니다. 그게, 하는 가운데서 교리적으로 그게 틀렸습니다.

 '하나님의 온갖 충만을 우리가 기업으로' 온갖 충만이라 말은 영감을 우리가  충만히 받고, 또 지혜도 충만히 받고, 사랑도 충만히 받고, 은혜도 충만히 받는  그런 모든 것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지 우리가 생명으로 받는 것과 우리의 소유로  받는 것과 우리의 지위로 받는 것이 다릅니다. '하나님의 온갖 충만을 우리가  기업으로 받아 충만하고' 하나님의 가지신 그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어서 우리가  가져 충만하지요? 하나님의 가난해지심으로 우리가 부요하게 됐다는 그런 것을  다 가리켜 말합니다.

 '충만하고 천상 천하의 모든 피조물들에게' '천상 천하의 모든 피조물들에게 이  충만으로 그들에게 충만케 하는' 그러면 하나님의 충만을 우리가 받아 가지고  내것 삼고 이 충만을 가지고 또 '모든 천상 천하에 있는 피조물들에게 내가  은혜로 베풀어주는 그 직위로 살 우리들입니다.' 이런 위치에 있어.

 그러면 지금 만물들이 다 하나님께 직접 받아 가지고 삽니다. 이 대나무 이거  하나도 하나님에게 직접 은혜받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은혜 없으면 이거 당장  죽어 버리요. 흙 있어도 못 살고 물 있어도 못 살아요. 이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이거 살고 있는데 이다음에는 이 대 나무 이런 것도 우리에게 은혜받아 가지고  삽니다. 하나님에게 다 우리가 받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걸 가지고 이들이  은혜받고 삽니다. '살 우리들입니다. 이 구원에 대한 모든 준비를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기울여 전력하여야 합니다.' 이제 이것이 본론의 일이삼으로 다  됐습니다.

 또 문답에는, 일 문답에는, '우리는 이 구원에 대하여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우리는 이 구원에 대하여 어떻게 하여야 됩니까?' 요거 중요합니다. '해야  됩니까?' '감사와 기쁨과 충성으로 충만하겠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우리 할  일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항상 감사하고 기뻐하고 이러니까 나는 있는 전부를 다  기울여 충성할 요 각오 가지고 충성하는 그것이 우리 생활이라.

 그러면 우리의 생활은 뭣이 우리 생활인가? 이 주님의 사활의 대속을  생각하니까 얼마나 감사한지, 이 대속의 공로를 생각하면서 감사하고 기뻐하고  '나도 이제는 주님에게 충성 다하겠다' 하는 요것이 우리 신앙 생활이라.

 에베소교회를 요번에 공부했는데 그렇게 온갖 것 뭐, 진리 아닌 것 구별했고,  거짓부리를 구별했고, 악한 자를 용납지 안했고, 모든 사업도 또 이렇게 오만 것이  충만했지마는 주님의 사활의 대속에 대한 감사와 기쁨이 없는 그 충성은 필요가  없다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네가 어데서 떨어진 것을 네가 알라 그말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으로 인해서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이지 사활의 대속이 없으면 주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러니까 네가 어데서 떨어진 걸 네가 사활의 대속을 잊어버렸으니까 너는  하나님과 상관 없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촛대 옮긴다' 네가 기름 떨어지면은 불이 꺼지는 것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혜가 떨어지면, 너는 지금 하는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하고 있는  것인데 네가 이 원줄기를 믿는 믿음을 버렸기 때문에 능력 안 주니까 이다음에는,  촛대를 옮긴다 말은 그건 생활도 하나도 안 된다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그래서, '감사와 기쁨과 충성으로 충만하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데는 '감사와 기쁨과 충성으로 내가 여생을 살겠습니다' 하는 것이 우리 할 일이라  그말이오.

 또 둘째로, '받은 이 구원을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밤낮 쉬지 않고 감사와  기쁨으로 생활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내 전부를 다 하여서 전하겠습니다.'  이게 우리 할 일이라 그말이오.

 그러니까 우리 할 일은 뭐 중요한 거 많이 있지마는 이거 잊어버리고 난 다음에  말하는 건 소용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계명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는 '것이 유교에도 있고,  불교에도 있고, 뭐 회회교에도 있고, 뭐 이 모든 철학에도 있고 어데든지 부모에게  났기 때문에 부모를 공경하라 하는 효라 하는 것은 다 주장하지 효 주장 안 하는  데가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데서 효를 주장하는 것과 우리 지키는 효는 아주  다릅니다.

 천하 사람들이 다 효라고 이래 칭찬해도 하나님 앞에는 불로 태워 없애 버릴  것도 많이 있습니다. 왜? 이는 믿음으로,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의 공로를  감사하면서, 주님이 나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이렇게 나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 구원을 주신 이 구원을, 인해서 감사하면서 해야 가치가 있지  이거 상관 없이 하는 거는 그까짓 거 천하,  그러기 때문에 천하에 선이 얼마나 많습니까? 천하 선이 얼마나 많으며 천하에  효가 얼마나 많습니까? 천하에 효가 많지마는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인하여서  자기가 받은 구원을 인하여 감사하고, 주님이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이 구완을 인해서 감사하고 기뻐함으로 인해서 효성한 것이 아니면 다 유황불  구렁텅이입니다. 아무 소용이 없어.

 그런고로 감사와 기쁨으로 인해서 충성하는 것, 감사라니? 뭐 감사? 주님이 나를  대속해 주신 것을 인해서 감사하고 또 대속해 주신 이 구원을 생각하니까 기쁘고  즐겁고, 이래서 감사와 기쁨과 '이러기 때 문에 나도 이제는 주님을 위해서 살아야  되겠고 이 구원을 나만 받을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줘 가지고 이 구원을  받도록 하겠다' 하는 이걸 위해서 하는 그것이 가치 있는 것이라. 인제 이것을  깨달으면 자기 몸도 모든 것 다 바쳐서 순교도 하고 순생도 다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이 오늘 아침에는 지금 심방 갈 때 심방 가도 '아이구 이 학생들 오늘  주일에 데리고 와야 되겠다. 또 이거 출석수가 적으면 또 내가 일등 못 하겠다.'  그런 것도 쫓지만 그런 것은 생명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는  것은 생명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 항상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면 우리  속에 생명이 있고 생각지 않으면 생명이 없습니다.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그  말은 내 피와 살을 생각하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다 피와 살을 먹지 않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다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의 대속을 생각지 안한 데는 그  속에 생명이 없습니다.

 이러니까 주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건 뭘 기뻐하시느냐 하면은 제일 기뻐하시는  것은 주님이 나를 사활의 대속으로 주신 이 구원을 보고서 '이렇게 큰 구원을  주님이 주셨다' 이 구원을 보고서 기뻐서 못 견뎌서, 이 구원이 크니까. 이 구원은  이 세상에 뭣과 비교할 수 없는, 이 구원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이 세상 생활  전생활을 이 구원을 위해서 투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주신구원으로  인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거, 또 기뻐하고 즐거워해도 구원만 인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거는 가치가 없어. 주님이 주셨기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게  가치가 있어. 어떤 부인이 자기 남편이 뭘 하나 선물을 줬는데 그 선물을 돈으로  주는 거 있고 돈을 가지고 산 선물이 있고, 또 (저 자꾸 자는 걸, 살을 찝어.)  돈으로 사 가지고 준 선물이 있고, 선물이 자기의 생명을 바치지 안하면 안  되는데, 그 아내가 지금 죽을 병이 들었는데 좋은 반지니 그런 것보다도 죽을  병이 들었으니까 죽을 병에는, 약은 좋은 약이 있는데 그 약을 가져올라 하면  옛날, 지금은 뭐 기세로 하지마는 물 속에 들어가서 물 속에 들어가 가지고 이런  아름드리되는 배암 그놈 한테 그놈 속에 들어 있는 그걸 뺏들어 가지고 와야  되는데 그 뺏들라 하면 물 속에 들어가니까 죽어야 되지 또 거석할라 하면 생명  내놔야 되지 그래 가지고 그걸 참 가져와 가지고 아내를 먹여서 아내가 살았다  말이오.

 그러면 그 아내가 남편이 자기에게 금반지 보석반지 해 준 것과 자기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생명을 다 기울여 가지고 구원해 준 거와 그 비교할 때 어떻게  돼요?  이래서 그아내가 그렇게 준, 자기 남편이 준, 그런 자기를 치료해서 구원해 놓은,  자기를 건강하게 해 가지고 살게 해 놓은 남편이 큰 수고해 가지고 자기를  사망에서 구출해 놓은 그 구출을 항상 감사하면서 '내가 지금 살아 있는 것은,  내가 살아 있는 것은,' 기뻐하면서 '내가 살아 있는 것은 남편이 어떻게 어떻게 해  가지고 나를 사망에서 구출했다.' 과거에 유래의 역사를 생각하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그것이 남편을 대우하는 것이라 말이오.

 '내가 살았으니까 좋다. 이제는 안 죽고 살았으니까 좋다.' 산 것만 좋아하는 그것  가지고는 재미가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 살려 줬다는 그 사의 유래를 깨닫고  생각하면서 감사하면서 기뻐해야 그게 남편을 대우하는 것이요 남편이 만족하게  여긴다 그말이오. 그렇게 수고한 걸 모르고 살아 있는 것만 좋아하면 또 안 돼.

 그러기 때문에 자기를 구출한 그 사랑에 대해서 감사하면서 그 사랑보다도 자기  생명을. 나를, 산 게 좋은 게 아니라 '나를 이렇게 살린 것은 이리이리 해 가지고  살렸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를 구출한 남편의 공로가 있고, 자기가 살아 있는 거  있고, 자기가 이렇게 남편을 위해서 충성할 거 있고 이 세 가지가 있는데 세 가지  가운데에 살아 있는 그것이 중점이라.

 살아 있는 거, 살아 있는 게 아니라. '나는 내가 살아 있는 것은 이렇게 이렇게  해 가지고 내가 살아 있다. 이러니까 나는 이 생명 가지고 어떻게 어떻게 하겠다.'  이렇게 하는 그것이 당연한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수 믿는 것이 감사와  기쁨과 충성 이 세 가지가 항상 우리에게 계속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이 계속 있는 데는 주님의 사활의 대속의 생각하는 것이 계속해야  되겠고, 또 그로 인해서 내가 얻은 구원을 생각하는 것이 계속해야 되겠고, 또  이러니까 이 몸 가지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하는 자기의 생애를 생각하는  것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오늘 심방 갈 때도 어만 거 가지고 가지 말고 주님이 나에게  사활의 대속 주신 사활의 주님의 사랑의 그 공로를 생각하고 '주님이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모든 부요도 내놨고, 하늘에서부터 땅에까지  내려오기도 하셨고, 또 죽기도 하셨고,' 부활이라 하는 거는 부활이, 하나님이  피조물 입었으니까 우리가 송장 껍데기 입는 것보다 뭐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송장, 저를 하나 구원할라 하면은 내가 송장 껍데기를 입어야 구원할 수  있다면 송장 껍데기 입는 그게 자기에 더럽고 추접하고 이거 냄새나는 거는  상관하지 안하고 구원한 것이라 그말이오.

 그러니까, 그 사랑을 생각해서, 내가 어떻게 천대받고 낮아지고 고생스러워도  주님이 나를 사활로 대속하신 거게 비교할 때 아무것도 아니라 그말이오!  그런고로 자기가 이래 가다가 여러가지 어려움으로 남한테 압제도. 천대도,  멸시도 받을 때에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생각하니까 거게 대해서 좀 섭섭히  생각했다가 사활의 대속을 생각하니까 '주님은 나에게 억억만 배도 더 된 이런  어려움을 당했는데 이 구속을 받은 내가 그 억억만분의 일도 안 되는 이것을  가지고 내가 여기서 뭐 조금 섭섭하다 해 가지고 찡찡거리고 이렇게 자극을  받는다는 이거는 가증스러운 것이다.' 이래 가지고 거게서 나온 힘과 거게서 나온  결심과 거게서 나온 그 회개라야 된다 그말이오.

 그래 가지고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에 감격해서 심방을 가야 되고,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으로 나는 영생과 영원히 늙지도 죽지도 않는 이 생명을 가졌다는 이  생명을 인해서 기쁨으로 이제 권면해야 되겠고, '이러니까 나도 주님 앞에 어떻게  충성해야 되느냐?' 있는 걸 다 기울여 충성해야 될 이것을 우리가 생각한다  그말이오.

 그러면 내 속에 이게 꿀밤만치 있으면 사람에게 가는 게 꿀밤만치 있을 것이고,  내 속에 태산만치 있으면 그 가는 것이 태산같이 갈 것이고, 내 속에 내 전부를  다 기울일 수 있는 지극히 큰 구원이 내 속에, 속에서 움틀거리고 속에서 뜨겁게  역사하면은 그 사람들에게 이 능력 가지고 말할 수 있다 말이오. 이 능력으로는  하지 안하고 엉뚱한 말만, 가지고 자꾸 이래 하기 때문에 안 돼요.

 이래서 여러분들이 심방을 가도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으로 인한 이 구원을  생각하면서 여기서 깨달음을 가지고 가야 되지 이거 없이 그냥 가 가지고 '이거  인도나 해야 되겠다.' 또 '오늘 이거 안 나오면 출석이 줄어진다.' 그런 것도  좋지마는 그런 것은 껍데기 중에 껍데기입니다.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에 충격돼서  감동돼서 오늘도 심방을 가십시오.

반사 선생님들은 공과를 외우고 또 그대로 실천을 해 봐요. 경험과 체험의 지식을  가르치고. 하루 삼십 분 기도 빼지 말고 계속해야 됩니다. 새벽기도 계속해  나오도록.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가다가 힘이 안 나오니까 '이거 내가 힘이 안 나와서 커피를 한 잔 먹어야 되겠다'  해 가지고 나오는 그 힘도 좋지마는 그 힘 가지고는 안 돼요. 가다가 힘이 없으면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생각하고 자기 받은 구원을 생각하니까 힘이 나옵니다.

이래 가지고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으로 인해서 나오는 그 힘 가지고, 그 감사  가지고, 그 열심 가지고, 그 담력을 가지고, 그 소망을 가지고 해야 하나님이 같이  동행하신다 그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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