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주권

 

1986. 10. 18. 새벽(토)

 

분문:요한계시록 3장 7절∼13절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선지자선교회 로마서 11장 33절∼36절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지난밤에 넓은 문 넓은 길, 좁은 문 좁은 길을 또 지난밤에도 말씀했습니다. 넓은 문 넓은 길은 사망하는 길이고, 좁은 문 좁은 길은 생명과 모든 성공과 승리의 길입니다.

그러기에, 문이라고 한 것은 문을 열고 들어가는 거와 같이 우리 앞에는 문이 첩첩이 있습니다. 오늘 내가 알았으면 다인 줄 알아도 내일 닥치면 또 새로 알 것이 또 있습니다. 오늘 일했으면 다 한 줄 알아도 내일 또 새로 할 일이 또 있습니다. 이제는 내 소원이 이것뿐이라 이래 생각하지마는 내일 닥치면 또 새 소원이 우리에게 또 옵니다.

그래서, 뭣이든지 새로 하는 것, 새로 시작하는 것, 새로 깨달은 것, 새로 아는 것, 새로 소원하는 것, 새로 기쁜 것 이것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것이 거기에 매여 있는, 문이면 문으로 들어가면 그 다음부터는 문으로 나오지는 못하는 것이니까, 들어가면 나오지는 못하는 문입니다, 이 문은. 나오지 못한다는 말은 다시 그 세월을 돌이켜서, 아무리 후회가 된 날이라도 그 날을 새로 자기가 한번 맞이하지는 못합니다. 그만 그것으로써 끝나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난밤 재독에도 국민학생이 입학을 했으면 입학한 거는 평생 처음이요, 마지막입니다. 그러면 입학하는 거기에서 자기 자멸하는 입학생도 있고 자기 구원 이루는 입학생도 있다 그말입니다. 자멸하는 입학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입학은 하기 쉽고, 자기를 구원하는 입학은 하기도 어렵고 찾기도 어렵고 걸어가기도 어렵기 때문에 그것은 자기가 성공하고 사는 그 국민학교 입학생은 적다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자기가 공부하는 것도 자기는 어릴 때부터 공부한다는 그런 거 생각 가지고 있지마는 자라가는 데 따라서 ‘내가 이 공부를 해야 되겠다’ 하는 소원 가지고 공부를 시작하는데 그것도 역연 문입니다. 문이기 때문에 하나는 멸망이요 하나는 구원입니다.

무엇이든지 다 그렇다는, 절대 변할 수 없는 요 사실을 우리는 요걸 따라서, 하나님 말씀하신 요 사실을 따라서 내가 인정하고 따라가야 되는데, 믿어야 되는 데 요것을 믿지 안하고 떠나서 제 마음대로 하는 그것은 멸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무엇이든지 자기가 매일, 날마다 뭐 어제 사는 생활 오늘 살고 오늘 사는 생활 또 내일 살고 이러니까 ‘날마다 맞이해도 같은 날이라’ 이렇게 생각을 하고, 또 ‘참 쇠털같이 많은 날인데 오늘 못 하면 내일 하고 내일 못 하면 모레 하지’ 자꾸 이렇게 같은 줄로 생각하고 있는데 한 번도 두 번 거듭 닥치는 날은 없습니다. 두 번 거듭 만나는 날도 없습니다. 두 번 거듭 만나는 아침도 없고 새벽도 없습니다.

이런데, 자기가 첫날 맞이하는, 모든 사람이 오늘을 처음으로 맞이하지마는 오늘 맞이가 그 사람에게 멸망되는 맞이도 있고 구원되는 맞이도 있습니다. 오늘 하루는 그 사람에게 구원이 되는 날로 되는 사람도 있고 멸망으로 되는 날도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아침도 그 사람에게 멸망이 되는 아침도 있고 구원이 되는 아침도 있고 이 두 아침이 있는 줄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멸망으로 가는 그 아침으로 맞이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많고 구원으로 맞이하는 사람은 수가 적습니다.

오늘 이 하루를 맞이하면서도 ‘내가 지금 첫시간,첫 맞이하는 것이라, 첫새벽.이날을 시작하는 시작을 내가 하는데 이 시작이 멸망으로 이 시작하는 날도 있고 구원으로 시작하는 날도 있다.’ 이런 줄 알고서 자기가 무슨 어제 하던 일 무슨 일 그런 일을 부지런히 하겠다고만 날뛸 게 아니라 내가 이 아침 첫날 첫시간을 맞이하는데 내가 멸망으로 맞이하는 사람도 있고 구원으로 맞이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나는 멸망으로 맞이하는 것은 어떤 것이 멸망으로 맞이하는 것이냐? 어제 말하기를 미신 신앙, 또 고행주의, 또 인본주의, 성경 가감주의 이런 것이 다 넓은 길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오늘 아침 맞이하는 것이 이 너이에 속했는지, 그리 안 하면, 이 넷에 속하지 안했으면 내가 성경대로의 오늘 아침을 맞이하는 것인지, 내가 성경주의인지, 내가 또 하나님주의인지, 내가 오늘 아침에 시작하기를 하나님으로 시작하는지 나로 시작하는지? 자기로 시작하면은, 자기로 시작하면은 그거 뭐입니까? 그게, 자기로 시작하면 그거 뭐입니까? 인본주의 아닙니까? 그게 멸망입니다. 또 하나님으로 시작하면 그것이 생명으로 가는 길입니다. 또 하나님의 성경 말씀으로 이 첫새벽, 첫시간을 시작하면 그 날은 그 사람에게 구원의 길로 시작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안하고, 이 세상 미신이라 하는 것은 어떤 게 미신입니까? 미신이라 하는 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라” 그러면 미신이라 하는 것은 성경을 우리가 보기 전에 이 세상에서 많은 것을 듣고 봤습니다.

그러면, 미신이란 어떤 게 미신이냐? 미신은 사람들이 그걸 좁혀 가지고 무슨 사신 우상 섬기는 것이라든지, 점하는 거, 뭐 오행 이런 걸 미신이라 하지마는 미신은 그거는 미신의 정의는 그거 그렇지 않습니다. 미신의 정의는 어떤 게 미신의 정의냐? 하나님의 선포해 놓으신 인간 생애 법칙으로서 신구약 성경 66권을 내놨는데 그 법칙과 그 규범을 벗어나는 것은 전부, 벗어나면서 뭣이 되겠다고, 벗어나면서 뭐이 좋을 것이라고, 벗어나는 길 가면서도 자기에게 행복이 오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전부 그거 미신 행위입니다.

이러니까, 오늘 내가 첫날 첫시간 맞이하는 이것이 성경대로 맞이하는 것이냐, 성경을 탈선한 미신으로 내가 맞이하는 것이냐, 이거 하나님 위주로 하나님 중심으로 맞이하고 있는 것이냐, 이것이 무슨 제 공로를 세워서 제 노력으로 제 수고로 뭐이 된다고 하고서 생각하느냐? 이것이 다 결정이, 멸망과 구원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여게도 써먹고 저게도 써먹고, 전부 이거 이치기 때문에. 이치기 때문에 이 이치는 한번 쓰이고 마는 게 아니라 이 이치는 평생 쓰입니다. 그러면 신구약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이치를 가르쳐 놨기 때문에 이 이치는 여게도 쓰이고 저게도 쓰이고 아침에도 쓰이고 저녁에도 쓰이고 내게도 쓰이고 남에게도 쓰입니다.

지난밤에 재독을 들었으면 자기가 신본주의라 하는 것은 하나님을 근본으로 삼고 하나님으로 인한 것인데, 그러면 모든 것을 다 사랑도 하나님만 사랑하고, 의지도 하나님만 의지하고, 믿기도 하나님만 믿고, 또 위하기도 하나님만 위하고 이렇게 하는 그것이 내나 신본주의인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가 사는 길이요, 그것이 성공하는 길이요, 그게 형통한 길인 것입니다.

여게 말씀하시기를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이렇게, 하나님이 이렇게 한 시간에, 하나님이 한 시간인지 두 시간인지 그거는 우리가 말할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 단번은 단번입니다. 단번에 모든 것을 설계했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명철하다고 쌓아도 제가 설계하는 것이 조그만한 집 한 채를 설계를 할라고 해도 상당히 설계하는 시간이 걸리는데 하나님은 물질로 되어 있는 이 우주와 영계의 모든 피조물에 대한 영원을 설계할 때, 영원을 설계할 때에 그 설계하심이 단번에 설계했습니다. 그러면 지금 닥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이 설계하지 안한 거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예정하시지 안한 거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볼 때에 ‘오늘은 개미도 봤다, 오늘은 굼뱅이도 봤다, 오늘은 사람도 누구를 만났다, 또 오늘은 무엇을 먹었다, 무엇을 접했다.’ 자기와 자기와의 관련된 크고 작은 모든 전부가 다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예정에 대해서 어떻게 믿느냐? 개미 한 마리가 나고 죽는 거, 한 마리가 그 수염을 요래 흔들고 요래 흔들고, 이래 자꾸 흔들어 쌓는데 요리 흔들고 요리 흔드는 거 그것도 전부 하나님의 예정이다. 하나님의 예정대로 요리 흔들고 요리 흔들고 하고 있다. 이것을 우리가 예정은 이렇게 배웠고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이 예정이 맞습니다. 사람들이 다 심령이 어둡기 때문에 ‘어느 부분만 예정돼 있고 나머지기는 예정되지 안했다’ 이렇게 말하는데 그러면 이원론이 되고 맙니다. 일원론이라는 거 그것만 잡으면 다 됩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예정된 대로 되는 것인데 이렇게 머리가 있는 분이오. 하나님은 이렇게 단번에 모든 것을 다 계획하시고 예정하시고 또 예정하신 그대로 당신이 하시지 당신이 한번 예정해 놓고 난 다음에는 다시 딴걸 변동하지 않습니다. 예정한 그대로 합니다.

왜? 예정이 참이요, 완전이요, 곧은 것이요, 바른 것이요, 영원한 것이요, 불변한 것이기 때문에 당신도 예정을 어기면 죄가 됩니다. 어기지를 또 못 합니다.

이렇게 이런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지혜와 지식을 측량을 못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분이 판단하는 것도 측량을 못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의는 뭐이 의냐? 당신이 선포해 놓으신 이 선포가 다가 아니라. 신구약 성경 말씀을 우리에게 선포해 놓으셨는데 이 선포한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이 신구약 선포해 놓으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우리가 가까이 접할 수 있는 그 범위 내의 것을 우리에게 기록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기록해 주셨는데 기록해 주신 이 기록은 이것으로 다인가?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기록해 주신 이 기록을 내가 접할 때에는 기록을 접하면 이 기록은 신구약 성경 육십육 권의 말씀은 이 말씀은 뭣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까? 이 말씀은 무엇을 하고, 말씀은 우리에게 지식을 주는 것인데, 지식과 지혜를 주는 것인데, 이 지식과 지혜, 성경 지식과 지혜는 우리에게 무엇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까? 무엇을 하고 있다고 말했지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목사님? 이 말씀은 성령을 영접하도록 성령의 인도자입니다. 성령님에게까지 우리를 인도하는 소개자입니다. 성령님을 찾아가는 하나 다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령을 맞이하게 되는 그 도화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래서, 성령을 맞이하면 성령은, 사람의 마음은 자기가 아는 것처럼 하나님의 그 마음을 누가 알겠느냐? 성령님이 안다 했습니다. 이러면, 성령님으로 인도하면 성령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하나님의 단번 예정을 우리에게 다 가르쳐 주십니다.

단번 예정을 한번에 다 가르쳐 주는 게 아니라 단번 예정을 우리에게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다 인도하기 때문에 성령님이 인도함을 가리켜서 “너희에게 기름 부음이 있어 기름부음이 너희에게 옳고 바르고 참되게 너를 인도하고 가르치고 있으니까 그대로 행하고 있으면 되는 것이지 사람에게 물을 필요가 없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대로 하면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인간에게는 의가 뭐이냐? 인간에게는 이 신구약 성경을 통해서 사람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라’ 하나님 바로 아는 것이 우리 할 일이오, 하나님 바로 아는 것. 하나님을 바로 알라면 어떻게 아는가? 신구약 성경이 가르쳐 주는 대로 아는 것이 바로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 우리 할 일, 또 하나님이 선포해 놓으신 그것은 ‘이거는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다, 이건 변할 수가 없다, 하나도, 획 하나도 변경할 수가 없다, 하나님이 선포해 놓으신 것은 절대다, 이것은 가감도 못 하고 변하지도 못한다.’ 요것을 우리가 믿는 것, 변할 수 없는 걸 믿는 것.

그라는데 그 다음에 우리가 할 일은 뭐이냐? ‘이분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좋게 복되게 모든 것 좋은 것을 다 우리에게 주실려고 하나님이 이와 같이 하셨다.

하나님 알고, 하나님이 또 당신이 선포해 놓으신 당신의 뜻은 절대성 있는 것을 자기가 알고 믿고, 또 그라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을 믿고 이 세 가지를 믿으면 자기 현실이 닥칠 때에 행동이 나옵니다. 행동 나오는 것은 이 세 가지를 아는 행동만이 영생이 되는 것이지 이 세 가지와 상관없는 행동은 다 멸망이 되지 영생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34절에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주의 마음 알아? 안 사람은 아무도 없어.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그러기 때문에 인간들은 하나님을 인도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들은 하나님의 원인이 될 수 없습니다.

원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존재적으로만 하나님의 원인이 될 수 없다는 말이 아니고, 존재적으로도 하나님의 원인이 될 수 없고, 행동적으로도 하나님의 원인이 될 수 없고, 생각으로도 하나님의 원인이 될 수 없습니다. 멸망할 생각이 나는 것도 제것 아니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나오요. 좋은 생각 나는 것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나는 것이오.

그러면, 생각도 여러 천천 억억억만도 더 많은 사람의 생각이 있는데 그 생각에 복된 생각도 있고 나쁜 생각도 있는데 그게 전부 하나님으로 말미암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구원 얻은 것이 어느 범위에서 보면은 사람이 행동할 때에 사람의 행동에 하나님이 따라서 “행동하는 대로 너에게 갚아 주겠다, 네 행한 대로 갚아 주겠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셨지마는 조금 넓은 범위에 들어가서 보면은 사람의 행동이 그라면 하나님 앞에 상을 받을 수 있는 행동이 있고 벌을 받을 수 있는 행동이 있으면 그 행동이 자기에게서 났느냐? 하나님께서 벌 받을 행동하도록 했고, 상 받을 행동 하도록 했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았지 달리 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목적이 뭐이냐? 하나님을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또 하나님의 하신 말씀을 믿는 사람 안 믿는 사람, 안 믿는 사람은 안 믿는 사람 제가 안 믿습니까? 안 믿는 그게 안 믿는 근원이 어디 있습니까? 한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한 사람은 하나님 믿지 않는데 안 믿는 근원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을 안 믿는 근원이 어디 있습니까? 안 믿는 그 행동, 그 지식, 그 사상 그 근원이 어디 있습니까? 어디서 나왔습니까? 하나님에게서 나왔습니다. 요걸 알아야 돼요. 하나님에게서 나왔어. 또, 그러면 하나님을 믿는 그 행동은 어데서 나왔느냐? 하나님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러면, 모든 멸망, 지옥에 가서 멸망하는 그 모든 멸망이 다 피조물이 그와 같이 한 것 아닙니다. 알겠습니까? 요거 지금 아직까지 나타나지 안해서 이게 만일 이 교계에 나간다면 교계에서 또 한참 막 분주해서 야단지기지마는 죽기 전에 그들이 모를란지 모릅니다. 알겠습니까? 모든 지옥에 가서 있는 그것이 ‘너는 요 행동 했기 때문에 요 심판 받고, 요 행동 했기 때문에 요 심판 받고, 요 모든 행동 했기 때문에 요 심판 받는다.’ 하는 그것이 전부 어데서 나왔습니까? 하나님에게서 나왔어. 그것이 뭣대로 된 것이요? 하나님의 예정대로 된 것이오. 그것이 예정대로 된 것을 누가 그렇게 예정대로 다 성취를 했습니까? 누가 했소? 하나님이 성취했습니다. 알겠습니까? 하나님이 성취했는데 이 피조물은 하나님이 이렇게 돼라 하는 대로 요래 꼬불꼬불 이래 되라 하면 그대로 됐고 하나님이 쭉 곧게 높이 이래 돼라 하는 자는 이래 됐고, 이것이 뭐이냐? 그래 놓고 왜 여게는 왜 멸망을 주느냐? 그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이런 것은 멸망한다’ 하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멸망의 길을 걸어감으로 멸망하도록 해 가지고 멸망을 가르치고 구원의 길을 걸어감으로써 구원이 되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해 놓으신 것이기 때문에 통틀어 그 전체를 다 한목으로 말하면 하나님이 당신은 어떠한 분이시며, 또 당신의 지혜와 지식으로서 계획한 것은 뭐이냐? 하나님께서 멸망을 가르치고 구원을 가르치고, 멸망을 가르치고 구원을 가르치고 또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은 멸망을 성취하고 구원을 성취하는 것이 하나님 혼자 일입니다. 하나님이 혼자 하시는 것이오.

그러기 때문에 지옥도 하나님이 설계하지 안한 게 없고 하나님이 성취하지 안한 것이 하나도 없고, 또 하늘나라도 하나님이 설계하지 안한 게 하나도 없고 하나님이 성취하지 안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어떤 분이신 것을 바로 알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절대 불변인 전지 전능의 하나님이신 것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 또 사망이 무엇이며 생명이 무엇인 것인 것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 또 유한한 인간이 점점 무한을 향하여서 소망하고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그러면, 이것이 모순됩니다. ‘왜 하나님이 이렇게 범죄하도록 해 놓고 네가 이래 범죄했노 이래 벌을 주시는가? 이거 불공평하다.’ ‘불공평해? 너는 내가 준, 내가 준 네 지혜 총명, 네 힘, 내가 준 모든 재료 가지고 너도 하루 종일 네게 필요한 거 만들데? 네게 필요한 것.’ 사람도 자기에게 있는 지능 다 해 가지고 자기에게 필요한 것 만들지 안해요? 자기에게 필요한 거 만드요, 자기에게 필요 없는 것 만드요? 뭣 해, 하루 종일? 뭣 합니까? 하루 종일 필요한 것 만들지.

필요한 것 만들면 하루 종일 불에 태울 것 만드는 것도 있고 또 태움으로 말미암아 그로써 어떤 좋은 제작품을 만드는 것도 있고, 그 천층 만층의 이것이, 이것이 소멸되므로 이것이 성립되고 이것이 파멸되고 이게 건설되고 하는 이것이 뭐 천 가지 만 가지 억억만 가지도 넘는다 그말이오. 당신이 당신에게 필요한 대로 알리기 위해서, 보이기 위해서, 이렇게 시험해 보이기 위해서, 알리기 위해서 당신이 당신의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을 위해서 하신다면은 한 그것이 뭣이 잘못입니까? 뭐이 정죄가 되겠어?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조부라우면 안 됩니다.

또 35절에 “누가 주께 먼저 들여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주님에게 드려서, 우리가 하나님에게 뭐 드리면 몸을 드린다, 뭘 드린다 이렇게 다 드리면 제가 ‘내가 드렸으니까’ 제것 가지고 드린 줄 알고 이렇게 교만하지마는 제가, 누가 제가 제것을 먼저 하나님께 드리고 갚음을 받고, 제가 드릴 때에 제것 가지고 드린 게 어데 있습니까? 하나님이 전부 없는 가운데서 드리구로 만들어 가지고 드리는 순서까지 다 해 가지고 그렇게 드리고, 또 드리니까 잘 했다 칭찬하시고 또 거게 대해서 갚아서 상을 주시고 이래 하시지 인간으로 동하고 정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36절에 이런 말씀 했습니다. “이는 만물이” 만물이라 말은 영물 물질물, 만물이라 하면은 영계의 것 물질의 것 모든 피조물을 전부 다 총칭해서 다입니다, 전부.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에게서 나오고”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에게서 나왔다 말은 주님으로 말미암아 생겨졌다 그말이오. 주님으로 말미암아 생겨졌다 그말이오. 모든 존재가 주님으로 말마암아 생겨졌어.

이러기 때문에 비참한 것을 볼 때, 비참한 사람을 보고 아주 천하의 악인을 보고서, 천하의 제일 악인을 보고, 그것이 어디서 나왔습니까? 천하의 제일 악인이 어디서 나왔습니까? 하나님으로 나와, 하나님에게서 나왔어.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천하 제일 악한 인간도 하나님에게서 나왔어. 천하에 제일 의로운 사람도 하나님에게서 나왔어.

천하에 제일 의로운 사람이 천하에 제일 악한 사람을 보고서 어떻게 해야 돼요? 어떻게 해야 정당해요? ‘하나님께서 나는 이렇게 만들어 내셨고 하나님이 저 사람은 저렇게 만들어 내셨으니 하나님이 만듦으로 말미암아 이와같이 됐으니’ 그 사람이 그 악한 자 보고서 교만하고 멸시해야 되겠소, 그 사람 보고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나도 저와 같이 만들면 저와 같은 자 될 터인데’ 하나님께서 잘 만들어 주셨으니 감사해야 되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감사해야 되지.

그러면 그 사람 보고 자기는 겸손해서 ‘저 사람이 그런 게 아니라 하나님이 저래 만들어 그러니까 나는 하나님께서 이래 만들어 이러니’ 그 사람 보고 하나님에게 좀 잘 해 달라고 기도를 해야 되겠소, 그 사람에게 정죄하고 멸시를 하고 나쁘다고 욕을 해야 되겠소? 기도해야 되지.

이렇게, “모든 것이 주에게서 나오고” 모든 것이 주에게서 나왔습니다. 안 나온 게 하나도 없어. 그러기 때문에 지옥에 있는 모든 것이 어디서 나왔어요? 하나님에게서 나왔어. 이걸 아주 사람들은 몰라요. 그걸 알 만한 믿음이 어리기 때문에, 믿음이 어리기 때문에 오해하기 쉬워서 몰라요. 아는 사람은 하나님이 알게 해 주셔.

“모든 것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에게서 나왔다 이라니까 주는 누구입니까? 주는 누구요? 예수님이십니다. 주님이시라. 그뭐 하나님은 뭘로 가지고 이 세상에 피조물을 가지고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라 하는 것을 ‘피조물 요것 같으냐 조거 같으냐?’ 암만 말해 봤자 그 피조물에는 유한한 것이요 피조물이기 때문에, 창조주는 자존자 무한한 자이기 때문에 유한한 걸 가지고 무한한 걸 요렇다고 그렇게 그와 같이 비유할 것 없고 비교할 것도 없고 비슷한 것도 없고 상징할 것도 아무것도 없다. 못 된다.

그러나 우리가 알기 쉽게 조금 비유한다면, 이것도 맞지 안하고 그렇지마는 하도 애가 터지니까 우리로 하여금 알라고 하면은 ‘사람은 하나인데 호주도 되고 아버지도 되고 남편도 된다’ 하는 이런 것을 말했는데 이런 것을 하나 양태주의라고, 형태주의 양태주의라고. 그 천리 만리 모르고 하는 소리라. 근방에 오지도 안했어.

그거는 그런, 하나님도 그런 형태가 있다는 게 그렇지, 그런 건, 하나님은 무한하기 때문에 이뭐 피조물을 가지고 말할 수가 없다. 다만 알릴라면은 이런 것으로 ‘이와 비슷한 것이니 그대로 맞지는 안하지마는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한 분이 자기의 직위가 서이다. 그러기에 아버지 직위, 아들 직위, 성령 직위, 직위가 서이지 하나님은 한 분뿐이시다, 그 본체는 하나시다.’ 이랬는데 뭐 그런 엉뚱한 소리를 자꾸 하고 있어? 그래서,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에게서 나오고” 요것 믿어야 됩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하는 데에서 사람은 바짝 커집니다. 사람은 바짝 커지고 사람이 자기 할 일을 알게 됩니다.

누가, 자기가 뭐 ‘하나님에게 헌신했다’ 이라면 ‘헌신해서 나는 순교했다, 헌신했다.' 이라는데 그것을 제가 먼저 하나님에게 드렸소 하나님께서 드리도록 해 가지고 드려졌소? 그러면 천하에 제일 의인으로서 복되게 걸어갔으면 그 사람은 제일 하나님 앞에 제일 감사해야 되고, 제일 겸손해야 되고, 제일 자기로서는 모든 데 대해서 동정하고 그를 위해서 겸손히 동정하고 ‘나는 이런데 다 같은 피조물로서 저 사람을 저래 만들어 저러니까 참 안 됐다’ 위로해야 되고, 권고해야 되고, 그 사람 위해 동정해야 되고 이렇지 제가 자, 교만할 것이 있습니까? 교만할 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다 그말이오. 이걸 모르기 때문에 자꾸 모순돼서 하고 있다 그말이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왔고” “나왔고” 그러면 주에게서 나왔다 그말은 우리 주, 우리를 책임지신 주님에게서 나왔다 그말은 주님이 지으셨다 말이오.

당신의 필요한 대로 예정하시고 창조하셨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우주와 모든 존재를 우리 구원을 위해서 창조했다 말이 맞아요 안 맞아요? 맞아요 안 맞아요? 모든 지식은 다 두 가지 지식인데 배암의 지식과 하나님의 지식, 배암의 지식은 죽은 지식이요 죽이는 지식이라. 하나님의 지식은 산 지식이요 살리는 지식이라. 지금은 이게 나가서 지금 아직 통일이 안 됐어요.

아직까지 이거, 다 주 모으고 모아 가지고 마지막에 이 모든 것이 다 통일이 되지 안했기 때문에 남아 있지 통일이 됐으면 백 목사 죽여 버려, 당장. 알겠습니까? 통일되는 때에는 백 목사를 죽여 버린다 말이오. 알겠소? 지금 일흔두 노벨상 받은 과학자가 이제 이거, 창조론도 말하니까 지금 반대하는데 이 전부를 이와 같이 배암의 지식이요, 죽은 지식이요, 죽이는 지식이라는 이 말을 여러분들이 예사로 들어도 이게 앞으로 이거 다 잡아서 불에 태워. 이런 거는 기념해서 죽일 게 아니라 이거는 우리 과학에 대해서 아주 우리 세상 지식에 대해서 원수기 때문에 이거 그냥 죽일 게 아니라 이거 말려 죽여야 되고 저 구워서 온 세계가 알도록, 천추만대를 알도록 이렇게 할라고 지금 전 악이 괘씸해서 품을 것입니다.

그거 누가 그래요? 누가 그렇게 해서 악을 품습니까? 악을 품는 자가 누가 품소? 세상이 품지. 그 뭐인데? 마귀지, 사탄이지. 제 진상을 내놓으니까 그라지. 이러기 때문에 “음행의 포도주라” 음행의 포도주는 아주 진주로 꾸미고 비단옷 입고 이래 가지고 아름답게 꾸민 그 여인의 손에 금잔이 들렸는데 금잔 속에는 거게 오만 가증한 것과 더러운 것과 모든 것이 들었는데 그것이 뭐이냐 하면은, 거기 뭐이 들었느냐? 음녀의 에미가 거기 들었다. 모든 음녀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인간을 하나님 배반하게 하는 모든 운동들이 거게서 나왔다. 그게 낳았다. 거게서 나왔다. 그 금잔이 뭐인데? 금잔이 이 모든 인간 지식이라 하는 것을 말했는데 이게 얼마나 첩첩이 첩첩이 들어가 가지고 어떻게 돼 있는 이걸 하나님이 알려 주지 그리 않으면 모른다 그거요.

그러기에, 모든 것이 다 주님이 우리 위해서 지었다. 그러면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우리 주님이라 말이오. 그러니까,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피조물이 내 구원 위해서 있다는 말이 맞소, 안 맞소? 맞아요 안 맞아요? 여러분들이 이렇게 범위 넓은 걸 뭐 냉장고에서 나왔느니, 죽었다 나왔느니 이거는 알지만, 그래 나는 기쁨이 있는 것이 어제 책이 세 권 왔는데, ○○○ 집사님이 줬어요.책을 갖다 줬는데 그거 읽어보니까 그 책에 그 사람들은, 여기 우리 가르친 거 그래도 간추려서 일권은 거의 간추려서 바로 해 놨어. 이권은 보니까 조금 삼권은 조금 더, 아마 오륙권은 거석하고, 사람들이 자꾸 앞으로 수정해 나가면 될 거라 말이오.

○○교회서 늘 집회에 오고 자꾸 따라다니고 그래 가지고 목회설교록이 몇 권이라? 지금 몇 권? 이십팔 권을 전부 다 가지고 갔대요. 그것 모두 가져가고 미리 돈 선금을 질러놨대요. 그래 가지고, 그 사람들은 파고 들어가 가지고 이래 간추려 놓으니까 내가 봐도 은혜가 돼요.

그것을 누가 간추려 가지고 이래 가지고 이걸 가르친 이걸 간추리면, 이 시대에 하나님이 줬습니다. 이걸 간추려 가지고 이렇게 해 놓으면 사람들이 살 터인데 이 도무지 듣고 난 다음에 실컷 누워자고 게을부리고 이걸 설교하는 것도 외우지를 못하고 익히지를 안했으니까 보고 더듬더듬, 그말 있어. ‘읽기나 줄줄 읽으면 사람이 좀 애 안 터지지. 잘못 읽어 놓고 위에 새로 읽고 또 더듬더듬 이러니까 사람이 죽을 지경이라’고.

이렇게 게을하니까, 게을하니 이 사람들을 위해서 내가 가르치고 있나? 아니야.

그거는 게을뱅이 모양으로 멸망하게 되는데 뭐 그걸 보고 가르치고 있어? 그게 아니고 나는 주일학교에 소망이 있어요. 또 중고등학생에게 소망 있어요. 여기도 젊은 사람에게 소망이 있어요. 나이 많은 사람들은 속에 부패성이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암만 들어야 몰라.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로 말미암고” 그의 생각이나 마음이나 뜻이나 소원이나 그 모든 게 다 주로 말미암지 않은 건 하나도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사람이 어떻게 저런 마음을 가질 수가 있을까?’ 그라면, 그말이 자기에게는 하나님의 진노하는 말이겠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말이겠소? 어떤 말이 되겠소? ‘사람이 어데 저런 마음을 가져? 어데 저런 말을 해? 사람이 저런 말을 해?’ 그라면 그 사람 나쁜 말, 아주 못쓸 말 하는 걸 보고서 ‘어데 사람이 저런 말 해? 못쓸 사람이 아주 저런 말 해?’ 이렇게 할 때에 ‘어째 저런 말 해?' 나쁘다고 생각하는 그것도 조금 좋습니다. 그러나 그거 아직 도통은 못 했어.

“모든 것이 주로 말미암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서 나왔다 말은 존재가 주로 말미암아 존재했다 말이요, “주로 말미암고” 하는 그말은 존재한 것이 주로 인하여 움직인다는 그말입니다. 알겠습니까? “말미암고” 움직인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아는 사람은 ‘주님이여, 저럴 때 나도 저럴 수 있었는데 나를 이렇게 만들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그러면 저 사람은 저런데 나는 이러니까 내 할 일이 뭐인가? 나는 그 사람에게 대해 할 일은 뭐인가? 그 사람에게 대해서는 하나님이 듣든지 안 듣든지 ‘저 사람도 나와 같이 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럴 것이고, 또 그 사람에 대해서 내가 ‘나는 이런데 너는 왜 이렇노?’ 이래 교만 부릴 게 아니라, 나는 그런데, 나는 밥을 먹는데 그 사람 밥 못 먹으면은 밥 먹은 사람이 자랑해야 돼요 거기서 미안하고 겸손해야 돼요? 미안하고 겸손해야 돼.

이것이 인간에게 대한, 의에 속한 자가, 의는 모든 불의와, 구원은 멸망을 보고서 대해서, 구원이 멸망 대해서, 의가 불의를 대해서 대할 태도는 겸손한 이것이 태도입니다. 알겠습니까? 겸손한 이것이 자기 태도, 자기 정상의 태도라.

또 자기가 할라면 그를 동정해서 하나님에게 간구하는 것이 저 할 일이라. 또 하나님께 대해서 뭐 할 일입니까? 하나님께 대해서 뭐 할 일이요? 감사 할 일이지요. ‘나를 어떻게 이랬습니까?’ 감사할 일이지요.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마직막에는 주님께로 다 돌아가요. 지옥도 돌아가고 모든 것 다 돌아가요. 결국은 하나님 앞에 이거는 다 심판받고 결국은, 이리저리 하지만은 결국은, 결론에 마지막에는 하나님에게 뽈끈 쥐이고 맙니다. 알겠어요? 하나님에게 뽈끈 쥐여져.

이게 다 주님이 계획하신 그대로 결말이 된다 그말이오. 주에게 돌아간다 말은 주님이 예정하신 그 결론대로 되고 만다. 모든 게 그 결말이 그와 같이 된다.

그러면, 그에게서 나왔고 그로 말미암아 움직이고 마지막에는 그의 결론 지운 그대로 결론은 그에게로 가고 만다 이것이 모든 존재에 대한 이치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데,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이러기 때문에, 모든 것 다 보면 참, 모든 것 지옥 가 있는 그 모든 것이나 하늘나라 가 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라 하는 것을 그걸, 그의 지혜가 무한하시고, 능력이 무한하시고, 그의 계획이 무한하시고, 그분의 사랑이 무한하시고, 그분의 목적이 무한하시다. 그게 뭐이냐? 지옥을, 하늘나라를 가르치기 위해서, 피조물은 지옥과 하늘나라를 가르쳐서, 이래서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바다의 물이 넘침같이 넘치는 때가 옵니다.

그러면 지옥에 가서 있는 것이 하나님께 대해서 원망 불평을 합니까, 영원히 불평합니까, 하나님께 대해서 감사하고 찬양을 합니까? “모든 것이 주라 시인하여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했어. 이렇게, 이 물샐틈 없이 광대하게 이렇게 역사해 가지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로 존재해 있는 제가 하나님을 이렇게 반대할라고, 이래 꿰뚫어 갈라고 하는 그것이 뭐이냐? 그것이 어리석은 일인데 그것도 하나님이 그래 어리석게 만들어 놨어.

그걸 이제 어떤 자에게 ‘저와 같이 가는 거는 어리석은 길을 걷고 있다, 저거는 안된 길을 걷고 있다.’ 그러면 너는? ‘옳은 길 가고 있다' 저거는? ‘안된 길 가고 있다’ 안된 길 가고 있는 그게 뭣으로 말미암지? 주에게서 나왔어. 주로 말미암는 거라.

이래 가지고, 영원 자존하신 한 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다 존재하고, 모든 것이 다 하나님 뜻대로 움직이고, 모든 거 하나님 뜻대로 움직이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고 간다. 하나님께로 돌아가. 목적을 이루게 한다.

목적 뭐이? 하나님의 목적, 선택, 목적을 이루는데, 영원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단강 돌 열두 개를 한테 포개 놓고 그들이 항상 그것을 보고 새로와지라고 한 거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하늘나라도, 지옥도 하늘나라 위해 있다 말이오. 지옥도 영원히 하늘나라 위해 있어.

이러니까, 이것은 ‘하나님이 하후하박이라’ 좁으면 하후하박이지마는 당신이 당신의 선을, 당신 같은 온전한 것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의 목적의 달성이지 악의 목적의 달성이 아니라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자꾸 자기가 넓어야 되지.

이러니까, 이 생명의 도를 이 피조물이 자기 대가리 속에 배암 지식 가지고 자, 배암 지식 가지고 하나님의 지식을 연구하면 반대로 깨달아집니까 바로 깨달아집니까? 반대로 깨달아집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 가지고 연구하면 바로 깨달아져. 그러기에 “믿음으로 믿음에 나아간다” 하나님의 지식을 인정함으로 하나님의 지식을 점점 인정하게 되어진다.

이러니까, 이 무한함을 우리 유한이 알라고 하니까, 하나님의 지식은 들어서 알았고, 그 다음에, 듣는다고 아는 게 아니라. 듣고 난 다음에는 반대하는 자도 있고 부인하는 자도 있고 긍정하는 자도 있고 별것 있는데 하나님의 지식을 아는 순서가 뭐라요? 첫째 듣고 읽고, 또 그 다음에는? 그 다음이 뭐입니까? 듣고 읽고 그 다음이 뭐이요? 행하고. 읽고 들어서 안 대로 행하고, 행하면 그 다음 순서가 뭐입니까? “참 내 제자가 되고” 듣고 행한 것만치 예수화되고. 자기가 사람이 변화, 성화됐다 말이오. 예수님의 제자 된다 말은, “참 내 제자 된다” 말은 지식으로 줄줄 따르는 게 아니고 예수님의 실상을, 예수님의 그 속성이나 신성을 닮아간다 말이오.

닮아간 것만치 “참 내 제자가 되고 된 것만치 진리를 안다” 된 것만치 안다. 된 것만치 안 그것은, 된 것만치 안 거 자기 본능입니다. 알겠습니까? 안 됐는데 아는 것은 그거는 뭐이냐? 타율을 알고 있어. 안 됐는데 아는 것은 그게 객관입니까 주관입니까? 자기는 그와같이 안 되고 아는 것은 그것이 객관이겠소 주관이겠소? 객관입니다. 자기가 된 그대로 알면 그거는 주관이 됩니까 뭐입니까? 주관이 된 거라.

이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주관이 되면은 우리가 불에 들어가면 타 죽을 줄 알고 힘있는 대로까지는 불에 안 들어갈라고 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 하나님의 도리가 자기 주관이 되면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건 힘을 두고는 안 행하지 안해요. 힘을 두고는 있는 힘은 다 기울여서 이제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고야 만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것은 알고 행해야 되지 행하는 거 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입니다. 왜? 이거는 뭐이냐? 그는 무한하시고 우리는 유한하고 그는 완전하고 우리는 거짓되기 때문에 여게는 당신을 따라 알고 당신을 따라 움직이고 당신을 따라 변화되는 이 외에는 아는 길이 없어. 있을 수가 없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새벽기도 안 나오면 몰라요. 오늘은 한 구백 명은 조금 더 나와 약 천 명 될란지 모르겠어. 나왔는데, 어짜든지 이거 빼앗기지 말아요. 내일 새벽에도 뺏기지 말아요. 뺏기면 안 돼요. 뺏기지 말아요. 자, 오늘 새벽기도 나와 가지고 후회되는 사람 ‘오늘 새벽기도 잠도 못 자고 나왔더만 후회된다’ 후회되는 사람 손 한번 들어봐요. 후회 없어요.

하나님 말씀 외에는 자기를 넓히고 키울 수가 없습니다. 완전케 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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