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기적과 축복


선지자선교회 1985년 7월 5일 금야 

 

본문 : 출애굽기 20장 4절∼6절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이 이계명이 유치반 중간반, 중간반 이부 다음 주일 공과의 본문입니다. 지난  주 한 번 공부했고 이번 주에 다시 한 번 더 공부를 하게 됩니다.

 공과에 거기에 첫째로 가르친 말씀이 사람은 두 종류라 하는 것을 첫째로  말씀했습니다. 근본부터 두 종류요 결과도 두 종류요 또 생의 법칙도 두 종류라.

그러나 시작과 끝은 뚜렷이 두 종류가 분별돼 있으나 그 중간 생의 법칙에  있어서는 두 종류의 법칙이 뚜렷한 것을 하나님이 말씀하셨지만 사람들이 어둡고  연약하고 악령의 미혹들을 인해서 두 종류의 생애가 뚜렷하지를 못하고 심히  혼잡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불택자들은 의례히 첫째 아담의 자손의 생활을 흔들리지 안하고 그  생활로 일관하고 있지만 택한 자들은 거기서 구출돼 나와 가지고 택한 자의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옛날 살던 첫째 아담에게 속한 그 생의 법칙에서  완전히 구출된 새사람의 생의 법칙으로 옮겨야 되는데도 그것을 옮기지 못하고  알고도 머뭇거리고 있고 또 몰라서도 머뭇거리고 있어서 생의 법칙에 있어서는  두 종류의 사람의 생활이 뚜렷하지를 못하고 전체적으로 말하면 혼잡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두 종류가 다른고 하니 하나님이 영원전 자존하시면서 당신이  목적을 정하신 것 있는데 그 목적에 대해서 사람들은 그것을 똑똑히 몰랐으나 그  후 많은 성경 말씀을 가지고 목적이 어떠하다 하는 것을 뚜렷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피조물이면서 하나님과 같이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해서 하나님의 지능과 꼭 같은 지능을 가지고 하나님의 하시는 그 일을 모든  피조물에게 대해서 대리자로 행하는 그런 존재를 창조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었다 하는 것은 그 후 모든 성경과 또 선민의 그 취급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목적을 정하셨으니 목적은 하나님의 모든 지으신  피조물들에게 창조주의 대리 실력을 가지고 대리 직책을 다 감당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목적 안에 있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와 같은 제사장으로 선지자로 왕으로 그렇게 직책을 맡겨서  영원토록 그 직책을 감당하게 한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목적이 있고 또 그 목적을 위해서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처음에 계셨고 그 다음에 목적이 있었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이 예정을 하셨고 또 목적을 위해서 예정하신 대로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시고 섭리하시고 또 통치하시는 그 일을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그 일 하시는 가운데에 하나님께서 도성인신 하셔 가지고 십자가의  대형 대행 대화친의 대속을 베푸셨습니다. 그래 가지고 대속의 공로를 입은  사람들은 그 모든 타락에서 구출함을 받아 가지고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게 하는 그 은혜를 입어서 우리가 중생까지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 대해서 오늘밤에 특별이 좀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목적 안에 예정을 하셨습니다. 우리를 예정하시되  목적을 위한 예정을 하지 않으셨고 목적으로 우리를 예정하셨고, 또 목적으로  우리를 창조하셨고, 또 목적으로 우리를 보존하시고 관리하시고 우리를 점점  주님의 목적하신 그 목적대로의 점점 성취해 나가도록 그렇게 이 택한 자들을  위해서 역사하십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이 목적안에 예정하시고 목적 안에  창조하신 것이 이것이 뭐 우리의 어떤 자격이나 또 우리에게 어떤 장점이나  우리의 노력으로나 그런 것으로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목적 안에서  예정하셨습니다. 목적을 위해서 예정하는 그 예정에 우리가 예정되지 안했고  하나님의 목적으로 우리가, 목적 그 자체로 우리가 예정되고 또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예정하시고 또 목적 안에서 우리를 창조하셔서 목적 안에 우리는  지음을 받은 우리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목적 구원이라는 이 구원이 우리가 가만히 좀 생각 해 볼  때에 이 구원을 우리 노력으로 만일 이 목적 구원에 우리가 참가를 하도록  할라고 하면, 우리 노력뿐만 아니라 한 사람을 목적 안에 들도록 하기 위해서  역사한다면 이 피조물 전부가 다 달라들어 가지고 운동한다고 해도 목적 안에  들게 하지를 못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썩어지고 없어질 사소한 그런 것들도  인간의 그 운동력을 가지고 무엇을 한번 해 볼려고 또 인간들의 모든 협조를  받아서 해 볼려고 하면, 참 그까짓 거 이런 데 비유할 때는 억억억억  억억억억만분의 일도 안 되고 그 근방에 비출 수도 없는 그런 참 가치 없는  사소한 것들이지만 그런 것도 인간의 그 자체의 힘으로나 다수의 협동 힘으로  가지고 할라고 하면 못 할 이 지극히 큰 목적 안에 든 것입니다.

 우리가 목적 안에 든거 이것을 가리켜서 생각할 때 '아, 참 다행스럽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다행스럽다, 요행스럽다 다행스럽다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없는 것은. 당신이 전지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어째 오 가다가  노름하는 사람 모양으로 어떻게 하다 보니까 그런 요행스러운 일이 닥쳤다  그렇게 행복스러운 선택함을 입었다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의 그  전지의 지혜를 가지시고 우리를 목적 안에 있게 하셨기 때문에 그분이 뭐 어째  오다 가다 보니까 그렇게 만나지게 목적 안에 우리가 들게 한 것도 아니고 또  촉망중에 우리가 뛰어들게 된 것도 아니고 하다 보니까 우연히 들게 된 것도  아닌 것입니다. 절대 그분이 전지한 지혜를 가지고 우리를 사랑하실려고  우리에게 대한 전지한 지혜로 우리를 당신이 목적을 정하시고 목적 안에 우리를  존재케 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참 목적 안에 내가 들지 안하고 만일 목적 밖에 있어서 목적을  위해서, 나는 것도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전부 목적인 그 사람들을 위해서, 똑  같은 사람인데 목적에 들지 못한 사람들은 그 목적을 위해서 나고 죽고 움직이고  이렇게 하는데, 우리가 목적을 위한 존재로 되었다 할지라도 우리는 어떻게  거기서 뭐 회피할 수도 없고 불만을 품을 수도 없고 어떻게 어떻게 우리가 손을  써서 운동해 볼 수도 없는 그런 일인데 우리가 목적 안에 들게 되었으니 '아.

이것은 참 요행스러운 일이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없고,  요행이라 다행이라 이렇게 할라고 하면 당신을 무지하신. 당신의 그 신성에  대해서. 전지하신 하나님이신데 전지한 신성을 무시하는 일이 되겠고 그 전지한  신성에 맞춰 볼 때에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목적 안에 존재케  하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목적 구원, 이 목적 구원을 우리가 받은 데  대해서 목적 구원을 받은 데 대해서 이 구원에 대한 가치를 우리가 연구해서  깨닫는 것이 그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이 구원의 목적 안에 우리가 들었다는 이 목적 얀에 든  이것의 참 행복스러운, 한없이 존귀스러운 이 목적이 얼마나 존귀하며 얼마나  보배로우며 얼마나 귀중하다는 이것을 자기가 사람됨에 따라서 차차 차차  느껴감이 점점 자라서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사람이 죽을 사람들이지만. 죽는. 죽을 생명이지만 죽음 속에 여러  수천 명이 들어 가지고 있을 때에 거기서 우리를 그 죽음에서 구출해 냈다고  하면 우리는 거기에 대해서 마땅히 감격한 그런 감사가 있을 것입니다. 또 천에  하나 만에 하나의 성공을 우리가 잡았다고 하면 또 우리는 대단히 기뻐하고  즐거워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목적에 든 이 목적 구원의 그 가치를 우리가 좀 비교해 봐야  되겠습니다. 목적 구원이 세상에 어떤 지금 정권으로 말하면 왕이나 무슨  대통령이나 어떤 세계를 홀로 통치할 수 있는 그런 어떤 정권과 이 목적과  가치를 비교해 보면 어찌 될까, 그러면, 세계에서 제일 갑부라는 그런 재벌과  우리 목적과 가치를 비교해 보면 어찌 될까 그러면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강건한  그 신체를 가지고 또 세상을 주름잡는 그런 무슨 체육이나 기능이나 그런 기능과  체질의 강건함으로써 모든 기능이 온 세상에 뛰어난 그 기능을 가진 그 기능의  가치와 우리가 목적 안에 들었다는 이 목적의 가치와 비교해 보면 그 가치가  어떨까, 그러면 세상에서 행복되다고 부귀 영광을 누리고 또 많은 자손들을  가지고 그저 날마다 평안한 가운데서 즐겁고 평안하고 기쁘게 행복되게 그렇게  모든 것이 구비하게 다른 사람들 이 부러워할 수 있는 그런 세상에서 사는 그런  사람의 행복과 우리의 이 목적 구원을 받은 이 목적 구원과 비중을 달아보고  비교해 보면 어찌 될까 하는 그런 것을 우리가 도무지 생각지 않는 그것이  너무도 우리는 마귀에게 가리워져서, 이를 참 생각해서 깨달아질 때에, 우리가  목적 구원 얻은 이 목적 구원이 온 천하보다도 낫고 이 우주보다도 낫고, 왜?  우주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우주보다 낫습니다. 우리가 입으로는 우주 하지만 뭐  우주일랑 냅두고 쪼끄만한 부산 부산시 하나 요거 권리만 해도 굉장할 것이고  쪼끄만한 지역에 무슨 대통령이나 왕이나 된다 해도 한없고. 무슨 큰 회사를  가졌다 무슨 재벌을 가졌다 기업체를 가졌다 이렇게 하는 것도 행복감을 느끼고  있는데 우리가 받은 목적이 그거만 못한가 목적 구원이, 우리 목적 구원이  얼마나 큰가?  이 목적 구워 이것은 곧 우리들이요 또 목적 구원은 이것이 우리의 가치 요  우리의 권위인데 우리가 이 목적 구원에 대해서 아무런 느끼지를 못하고  깨닫지를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우리는 가지 없는 사람 돼 가지고 있고 우리는  아주 아무것도 아닌 허무한 그런 사람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만일 이 목적  구원을 우리가 깨달아서 세상에 있는 모든 것과 비판해 보고 비교해 보고 평가해  보고 그와 이거와 비판 비교해서 평가를 해 보고 그거와 이거와 비교해서 비판을  해 보고 한다고 하면 우리의 이 목적 구원과 같은 이 구원이 이 땅위에  없습니다. 온 세계에 없습니다. 우주에 없습니다.

 왜 우주에 없는 우리가 이런 행복을 이런 영광을 가지고 있으면서 왜  영광스러운 자로 행복스러운 자로 느끼지를 못하고 누리지를 못하고 그런  사람으로 행복을 가지지 못하고 그렇게 이 악령에게 끌려서 돈 몇 푼에  쪼그만만한 권세 뭣에 하루 평안 열흘 평안 한 달 평안 일 년 평안 뭐 이런 사소  한 지지한 먼지 같은 이런 것들에게 사지를 쓰지 못하고 종이 돼 가지고 끌려서  이렇게 움직이고 있는가? 이거는 분명히 우리 자신의 가진 이 가치를 알지  못하는 가운데서 그런 것인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가치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가치가 하나님 한 분이 자존하셨고 자존하신  하나님 다음에 당신이 제일 가치로 삼은 것이 이 목적이십니다. 그러면, 하나님  다음에 우리는 가치있는 존재들입니다. 뭐 아무리 사람들 이 무시해도  그렇습니다. 이것을 깨닫고, 이렇게 자기의 행복스러운 가치를 깨닫고 이런  가치있는 자신인 걸 알고 이 가치자로서 살면 그 사람은 행복스러운 사람이요 그  사람은 세상에 종이 되지 안할 것이요 마귀와 죄악의 종이 되지 안할 것이요 그  사람은 온 우주를 자기 것으로 통치할 수가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에게 주신 이 구원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도 진실이 없이 입술로만  가지고 뭐 우리는 택함을 입었다 어쨌다 이라지 이 택함이라 하는 이 택함이  얼마나 크며 얼마나 귀하며 뭣만한가, 그러면, 택함이 뭣만하다, 이 택함의  가치는 뭣만하다 자, 택함의 가치와 같은 그런 것을 하나 어떤 한번 동류를 한번  내놔 보십시오. 하나 이 택함의 가치의 그 동등의 쌍이 될 만한 그런 것을  세상에서 찾아 보십시오. 이 우주 전부와도 이 가치와는 비중이 같지 못합니다.

비중을 달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 사실을 잊어버린 통에 우리의 행복은  잊어버리고, 억만 장자이지만 그 사람이 아침 먹을 거 없다고 끙끙 앓아 가지고  굶어 뒈지는 그자와 우리와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택함의 이 구원을 우리가 비교하면서, 자기 택함의 구원은  다른 사람은 삼칸 집이 있는데 나는 집은 그런 거는 없고 택함 구원 밖에 없다  이래 볼 때에 '아, 내가 아무것도 없어도 내 구원과, 삼칸 집보다는 내 구원이  크다. 그러면 나는 아무것도 없는데 큰 빌딩을 가진 사람과 비교하면 어찌  되느냐? 아, 그 어떤 빌딩을 가진 사람보다도 내가 더 행복되다.' 온 세계를  점령한 그런 대정권자와 비교하면? '아, 그보다 나는 행복되다.' 그러면 우리와  같은 이런 행복을 가진 자가 어디 있습니까? 이것이 공연한 과장입니까? 이것이  정말로 조그만치라도 과장한 그런 양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털끝만치도 과장  없습니다. 이 택함은 우주보다 크다 가치 있다 하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온 천하를 얻고도 이 택함에 들어 있는  네 자신이 어떤 자인 것을 모르는 그것은 더 손해간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성경에 말하기를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과 사망과 생명과  모든 전부는 다 택한 자의 것이라고 하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택함의 구원이 얼마나 크며 이 택함의 구원을 받은 택한  우리들의 이 구원 완성을 위해서, 그 구원이 뭐인데? 이 구원 완성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주의 모든 순서를 다 하나님이 이것을 위해서 예정하셨다. 그러면  예정이 뭐인데? 예정은 이 우주의 하나 둘 이렇게 자꾸 새로 전개돼 나가는 거  아닙니까? 하나 둘 새로 전개돼 나가는 게 아닙니까? 모든 전개가 택함 받은  나를 위해서 모든 전개가 되어 있다 하는 이것을 우리가 믿습니까? 믿으면  행복될 것입니다. 믿으면! 우리는 말뿐이지 믿을라고 하지 않습니다. 믿을라고.

우리가 어짜든지 믿을라고 애를 써서 믿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이 택함의 가치도  비교해 봐서 '아, 천상 천하에 나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의 귀한 축복을 받은 자는 없다. 나는 모든 것보다 택함 받았으니 나보다  더 하나님에게 은혜를 입은 자는 없다' 하는 것을 자기가 느끼고 실상으로  느껴서 이 택함을 받은 이 구원의 존귀함을 자기가 깨닫고 그 사람으로 사는  것이 주님 앞에 주를 섬기는 것이요 그 사람으로 사는 그것이 자기의 행복이요  그 믿음으로 자기 가치를 조성해서 가진 것입니다.

 모든 예정 모든 전개되는 것, 전쟁이 일어났다 뭐 어떤 양 강대국의 수뇌들이  아무 날 모인다, 모여도 그것도 나를 위한 순서요 예정이다. 그것도 날 위한  전개다! 그것이 나 위해서 내 구원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하며 어떤 이용을 당할  것인가! 아. 깨달으면 그거 많은 이용이 있지요. 깨달으면 거기서 우리가 깨닫고  받을 것 많지요.

 아, 모든 존재. 아, 저게 그런 무슨 우주의 많은 별들이 있다. 지구 땅 덩어리  같은 그런 그보다 큰 그런 별들이 뭐 억억억억억억도 더 많다 그게 뭐 할라고  있는가?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인 내 구원을 위해서 그것이 창조되어 존재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성경이 이렇게 가르쳤기 때문에 다 이는 모든 것이 다  주를 위해서 지음 받았다 이랬습니다. 계시록에. 주를 위해 지음 받았다 했는데,  주를 위해서 지음 받았다 그 말은, 주님은 뭘 위하는데? 주님은 우리 위해서  도성인신 하셔 가지고 죽기까지 하시지 안 했습니까? 모든 존재는 우리 위해서  우리 구원 위해서 지음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창조의 구원 얻어서 창조될 때에 나는, 모든 창조는 내 구원을  위해서, 내 구원을 위해서 창조되었고 나는 모든 창조의 위함을 받는 구원을  이루어 가야 될 내라는 것을 우리가 자꾸 연구해서 깨달아야 될 것입니다.

 이번에 양성원 학생들에게도 내가 교학실장에게 부탁하기를. 성경을 연구해서  답안을 쓰면서 거기서 세 가지를 살펴라. 거기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거기서 살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거기에 대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지도록 하라.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이 모든 이루시는 그 뜻이 어떤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예정도 하나님의 뜻 중에 하나 요 창조도 하나님의 뜻  중에 하나인 것이니까 하나님의 뜻이 뭐인가 그것을 알도록 노력하라 그라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과 뜻을 연구하고 난 다음엔 네 자체라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고  알아 봐라. 이럴 때에 연구하면 내라는 존재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지극히  존귀한 자인데 지극히 존귀한 걸 지극히 천하게 버렸으니까 나는 우매무지한  짐승보다도, 나보다 더 우매무지한 인간은 없고 존재는 없다 하는 것이 그것이  자기의 결론의 답안이 될 것입니다.

 모든 창조인 모든 존재, 모든 존재의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모든 존재관을 바로 가져야 되겠고, 모든 예정관을 바로 가져야 되겠고,  선택관을 바로 가져야 되겠고. 하나님에 대한 신관을 바로 가져야 되겠고,  하나님의 이 모든 섭리. 예정대로, 예정하신 대로 하나님의 주권의 능력이 그  일을 성취시켜 나가시는데 성취해 나가는 나가시는 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섭리라 재창조라 그렇게 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우리가 자꾸 연구해야 되겠고, 하나님의 모든 보존성을 연구해야 되겠고, 또  놀랠 만한 하나님이 사람되어서 도성인신해서 오신 일을 연구해야 되겠고,  그분이 십자가의 대속을 베푸신 것을 연구해야 되겠고, 또 삼일만에  부활하시기를 무엇 때문에 부활했는고 부활관에 대해서도 연구해야 되겠고, 또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 보혜사 성령을 보냈으니까 성령관도 우리가 또 연구해야  되겠고 이렇게 하면 마구 우리의 구원이라 하는 거는 참 측량 못 할 구원인데.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부득이 세상을 잠깐 권세 잡고 있는, 암만  장자이지만. 장자이지만 어릴 때는 그 집을 맡아 있는 하인에게 이렇게 다스림을  받는 것처럼 우리는 이런 것들에게 다스림 받는 이것은 세상 권세자에게 이렇게  하지만 잠시 잠깐 후에 주님 구름 타고 오시면 다 종은 종으로 아들은 아들로  이와 같이 다 본 지위에 서게 될 것입니다.

 이거는 다 믿음으로 얻습니다. 믿음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대접할 거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가 몸을 바쳤다 해도 그분이 만든 것이요 내게 있는  재물을 다 바쳐도 그분의 것이오. 다만 우리는 인격 존재인데 내 인격이라는  것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의지하고  그분으로 전부를 삼아 가지고 그분에게 똑똑 따박 따박 그분 인도하시는 대로 예  하고 복종하는 것 그 외에는 당신을 대접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구원을 연구할 때에 이 구원이 얼마나 보배로운 구원인가  이 보배로운 이 구원을 보배로운 그 가치를 깨달을 때에 이 구원에 대해서  필연적으로 이렇게 큰 귀한 구원을 나에게 주셨다. 그러면, 그 다음에 나올게  뭐이겠습니까? 우리는 진심으로 이 감사를 위해서 몸과 소유와 생명을 다 바쳐도  부족한 우리는 감사의 덩어리가 될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이 구원의 가치를  깨달을 때에 우리는 그 감사에 넘쳐서 그 감사의 여생이 될 것이요 감사의  덩어리가 될 것입니다. 감사의 덩어리는 행복의 덩어리요 감사의 덩어리는  평강과 기쁨의 덩어리요 만족의 덩어리입니다. 우리가 얼마든지 만족하게 살 수  있고 얼마든지 기쁘게 살 수 있고 얼마든지 평안하게 살 수 있는데 우리가 전부  깜깜하게 눈을 봉해 놓고 하나님이 주시지만 보지도 안하고 듣지도 안하고 먹어  보지도 않기 때문에 우리는 말라 죽고 있는 우리들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구원의 가치를 우리가 연구하는 것이 우리 할 일입니다. 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아라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말씀은 당신이 엿새 동안에 이 우주를 만들었는데 우리 의식주라는 그것은  당신에게 원하시는 일만 하면 의식주 그까짓 거야 일초 동안에 억억만 명 먹을  것도 당신이 넉넉히 남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무엇을 우리가 염려합니까? 우리  할 일 안 하기 때문에 저주받으니까 그래라도 살아야지.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지극히 보배로움을 우리가 자꾸 연구해서 그 보배로움의  가치를 깨달아 우리는 견딜 수 없는 참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는 사람이  되면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무엇을 아깝게 여기시겠습니까? 아깝지 않습니다.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지쳐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리라는 그 명령이 뭐입니까? 그  명령대로 믿고 또박 또박 가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알고 하나님이 주신  구원이 얼마나 보배로운 것을 우리가 알고 그러면 우리는 얼마나 그분에게 이  은혜를 감사해야 될 것을 깨달아 감사하는 사람이 되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이렇게 귀중한 구원이니까 이 구원은 내가 어떻게 취급하며 이 구원 생활을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이 구원 생활을 내가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한다 할지라도 이 구원  생활에 족하지 못하고 이 구원 생활은, 지극히 큰 구원인데 나는 이 구원 생활에  대해서 근방에 가지도 못하고 마는 자이기 때문에 죽도록 자기가 이 구원 생활을  조심해서, 아주 정신들여서, 성심 성의를 다 기울여서 이 구원 생활을 한다  할지라도 답안에는 참 나는 무익한 종이요 큰 은혜에 대해서 형용 못 할 그런  미약한 감사의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 하는 그것을 자기가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의 하나님 이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 구원을 받아 가지고 섭리에서 우리가 중생돼 가지고  중생하는 데도, 주님이 우리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대속하기 위해서 사람되어  오심도 우리가 연구하면 주님이 날 이렇게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하면, 주님이 날 이래 사랑하셨으니 사랑하시는 그분에, 그분에게 대해서 내가  어떻게 할까, 그분이 날 이렇게 사랑하셔서 이 큰 대속을 주셨는데 내가 대속에  대해서 어떻게 간직하며 이 대속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될까 우리의 모든 거는  거기 기울어질 일이지 우리가 뭐 내가 어떻게 되나 하는 그런 것을 생각할  여지없는 것이 그것이 정상인 것입니다.

 대속을 생각할 때도 거기서 우리가 이런 대속을 받은 자이니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 하는 것을 살고 부족하고 살고도 부족하고 살고도 부족하고  살고 부족하고 또 그렇게 자꾸 살라고 갈급하고 살고도 부족하고 이것이 우리  생활인데 그 생활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우주도 아끼지 않습니다. 그 생활하는  자에게 천하도 아끼지 않습니다. 우리가 한 시간을 그 생활 할 때 한 시간  당장에 하나님의 혜택이 옵니다. 한 달을 그 생활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존귀케 하고 그 사람의 일을 위해서 모든 천리만리의 모든 주위 환경에서부터  마구 햇빛이 돋는 거와 같이 짜 들어옵니다. 이것이 자기 신앙생활에 체험이  없으면 아, 내가 주님 앞에 조금 다를 때에 모든 산천 만물과 모든 만인간이 다  달라지고 내가 그분에게 대해서 섭섭해서 어두워질 때에 모든 것이 달라지는  것을 우리 심령의 눈이 밝으면 환하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중생 된 것도 참 진리로 살아났습니다. 진리로 살아나.

진리로 살아났기 때문에 우리 힘은 진리가 우리 힘이오. 진리로 살아났기 때문에  진리가 우리 힘입니다. 진리의 힘으로 우리는 살아났오. 성령의 감동의 힘으로  살아났오. 예수님의 삼대 대속의 힘으로 우리가 살아났습니다. 우리는 대속의  뭉텅이요 영감 뭉텅이요 진리 뭉텅이라 우리는 썩을 것이 이 세 가지 무한하시고  영원하신 이 능력으로 우리가 살아났습니다. 살아났기 때문에 우리 힘은 뭐인가?  우리 힘은 진리가 우리 힘이요 영감이 우리 힘이요 대속의 피가 우리 힘입니다.

이 힘을 피조물이 뭘 대항하겠습니까 이 힘은 피조물을 무한히 탁월한, 무한히  초월한 비교 못 할 고차원의, 아주 고차원의 별개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것은 다 발등상의. 우리가 그 위치에 갈 때에 '모든 만물은 다 발등상이  되고' 하는 그 위치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중생돼 가지고. 예수 믿는 데. 오늘 보면 교파가 뭐 기독교도 교파가  수십인지 뭐, 한국에 처음에 왔을 땐 좀 생각했는데 지금은 모르지만 아마  기독교 교파가 수백이 될 것입니다. 벌써 지금 기독교 교파가 다 못 헤아려  그렇지 수백 교파가 될 것이오. 이래 가지고 예수님을 믿는다 하지만 별별  미혹에 빠져 가지고 아주 참 사이비한 모든 기독교라고 하면서 기독교 아닌 그런  탈선되는 갈래길이 많은데 우리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바로 깨달아서. 이 구원  도리를 바로 깨달아, 바로 깨닫게 해 줬으니 우리가 얼마나 이게 행복됩니까?  저는 여기에 대해서 참 감사합니다. 왜? 나는 공부 못 한 사람이오. 내가  독서를 내가 하지 못한 사람이오. 나는 모든 학자들의 책은 누가 사 주고 이래  와도 그 책을 나는 한 반 권도 보지 못한 사람이라. 볼 힘이 없어보지 못합니다.

성경이나 보지. 이번에는 ○○○목사님이 책을 이런 무더기를, 뭐 나는 힘이  없으니까 들라고 하면 내가 둘을 들라고 하면 빠듯이 들란가 말란가 할 만치  그만치 잘 재어 가지고 뭉쳐서 보냈읍디다. 그래도 나는 아직까지 한 페이지도  내가 읽어보지를 못했습니다.

 이렇게 무식한 사람인데, 세계의 교리사 세계의 여러 수백 년 동안, 뭐 수천  년동안 내려왔다고 하는 그 교리, 모든 세계 교리를 종합해 가지고 만든 교리사.

또 교회사 그걸 팔 년 동안이나 ○○○목사님은 미국의 웨스터민스터 신학교 가  가지고 공부를 했습니다. 그 신학교는 지적으로서는 세계에 첫째 간다고 할 만한  그만한 지금 지적으로는 구비해 가지고 있는 학교입니다. 거기서 한 팔 년 동안  공부하고 왔으니까, 내가 처음에 올 때 내가 부탁을 했어. '목사님, 목사님은  그렇게 많은 모든 세계의 학자들의 그 모든 중론들을 다 열람해 봤고 들어 봤고  또 읽어 뷜고 이랬는데 나는 그거는 하나도 읽지 못했고 그저 성경 한 권만  가지고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시는 대로 내가 깨달았는데 나 혼자는 좋고  이렇지만 남한테 발표력도 없고 이런데, 이 깨달은 것이 샘 안에 개구리  모양으로 저 혼자 주관적으로 깨달아 가지고 잘못돼서 이게 어떻게 탈선이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것은, 그 두 박사에게 내가  부탁을 했고, 또 박사는 아니지만 박사에 못지 않는 지식가가 또 있습니다.

○목사님 부인은 ○목사님 부인이지만 실은 지식은 ○목사님만 뭐 못지  않습니다. 내가 무식해도 거의 아요. 거기서 같이 공부했는데, 말하기를 노트를  내가 그때 내가 사서 줬던가? ○목사님, 내가 사 줍디까? 노트 사 줍디까?  노트를 사 줬어. 이만한 큰 노트를 사 주면서 '이것 가지고 혹 여기서 넉 달  동안 있으면서 나한테 설교를 들으면서 잘못된 게 있는가. 그런 분들과 비교해서  잘못된 게 있는 거 그걸 적어 주십시오' 그걸 내가 말을 했고, 또 가르칠 때에  내가 혹 틀린 게 있는가 이렇게 들으면서 이래 대조를 해 봤습니다.

 보니까 내가 깨달은 거와 틀리지 안하고. 내가 깨달은 거와 틀린 거 있는 것은  가서 얘기해 볼 때에 오히려 내가 깨달은 것이 바로 깨달은 것이 많았었습니다.

○목사님이 나한테 하나 지적해 주는 것은 시편 9편에 새 사냥군이 새  사냥군이라 하는데 새 사냥군의 올무에서 건져 주시겠다는 새 사냥군이라 하는  것을 나는 그 전에는 나는 그걸 새(新), 새사냥군이라고 그것을 나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나는 그때 새 사냥군의 힘으로 도운다 하기 때문에 새 사냥군이면  사냥군이 나중에 사냥 많이 하다 보면 지쳐 가지고 마지막에는 힘이 없는 것이고  새로 출발한 사냥군은 힘이 많으니까 새로 출발하는 사냥군이라고 나는 그렇게  해석을 했다 말이오 일본말 성경을 내가 그때 봤으면 그만 '도리'라 하는 그게  기록돼 있으니까 그랬을 것인데 그걸 보지 못했으니까 새라는 것은 새로울  신(新)자 새것이라고 말했다 말이오.

 이랬디만 ○목사님이 그 뒤에 나한테 와 가지고 '그것은 새것이 아니라  새(鳥)라는 새입니다.' 그렇게 말을 해서 내가 충고를 참 받고 고맙게 내가  고쳤습니다. 다른 것은 하나님이 이렇게 깨닫게 해 주셔서, 모든 그 학자들에게  감동시킨 그 성령이 내게도 감동시켜 가지고 옳고 바르게 구원 얻는 도리를  이렇게 깨닫게 해 주신 데 대해서 나는 얼마나 감사한지 항상 매일 감사합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또 여러분들도 그렇게 배워서 깨달았으니까 또 얼마나  감사합니까!  오늘도 카브난트 신학교 가서 공부하는 그 학생이 신관에 대해서 지금 공부를  하는데 신관에 대해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서 거기서는 하나님이, 하나님 자체  영광이 있고 또 이 모든 선포에 대해서 피조물에 대한 영광이 있고 영광이 둘로  그렇게 공부를 했다 그랬는데, 거기에 대해서 말을 해서 두 영광이나 그 영광  있는 것은 자체 영광 있는 게 자체는 한없이 영광스러워, 완전이기 때문에  영광스럽지만 그거는 그때는 영광이 생기지 안했다. 완전이지 피조물이 생길  때에 피조물이, 그로 인하여 피조물이 되어졌을 때에 피조물로 인해서 그분의  영광이 드러났다.' 그것을 말을 해서 그분들 다 학생들도 알고 조금 아마 보니까  쪼끔 뭣이 어떻더라 그렇게 말하면서 그래 요걸 똑똑히 알라고 그래 피차 말하고  말았습니다.

 이러니까 우리에게 대해서 진리를 바로 깨닫게 하신 이 구원, 이래 가지고  성경이 많이 있지만 여러분들이 가 보십시오. 성경 있어도 성경 못 보는 사람  있고 성경을 보고 예수를 믿어서 목사가 돼도 이 성경의 도리를 모르는 사람  있는데 우리는 알게 했으니까 얼마나 감사한지, 또 우리를 이렇게 회개케 해  가지고 믿음 생활하게 하니까 얼마나 감사한지. 또 우리가 믿지 못하니까  하나님께서 믿도록 하기 위해서 이번에 대창골에서도 육백여명이, 육백여 명이  그렇게 볼 수 있는 몸의 병 고침으로써 보이지 않는 죄 사함 받았다는 증거로  몸의 병을 고쳐 주시고 또 마음의 병 고쳤다는 증거로 그와 같이 해 주셨으니까  이런 것도 우리에게 자꾸 믿을 수 있는 증거를 보여 주시니까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래서, 우리가 불만을 찾는, 불만을 찾는 그런 마귀 노릇을 하지말고 불만을  찾는 마귀 노릇하지 말고 불평을 품는 마귀 노릇을 하지말고. 뭐 자차의  자존심을 꺾었다는 그런 남한테 굴욕을 당했다고 그런 거 찾는 마귀 노릇하지  말고, 다른 사람이 '너 이놈아' 죄인이라고 하면, 죄인이라고 하면 얼른 '아  죄인이라 그러면 내가 찾아보겠습니다.' 하고 죄인이라하면 얼른 찾아 가지고 죄  있으면 '감사합니다. 선생님이 아니면 나는 못 찾았을텐데 감사합니다.' 하면서  고칠 것이고 죄를 암만 찾아도 아무래도 그 죄는 없는데 말하면, 없는 죄  말했으면, 아, 없는 죄 말하나 그분이 고치라고 한 것이니까 감사한데 없는 죄  그렇게 말했으니까 나는 없는 죄 분하게 여기지 말고 없는 죄라도 나 고치는.

세상은 고치는 세상에 고치라고 한 것인데 고칠 게 없다 할지라도 감사함으로  받아서 기쁨으로 지내 보내면 당신이 또 위로해서, 거짓 걸로 핍박하면 기뻐하고  즐거워해라 하늘에 상급이 크다 이랬으니까 막 우리는 이래 누워도 상이요 저래  누워도 상이요 이래도 기쁨이요 저래도 기쁨이요 아무래도 행복뿐인데.

행복뿐인데 우리가 귀신이 들어 가지고 자꾸 망령을 부리기 때문에 자꾸  불행스러운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시편 136편에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자꾸  감사하면. 감사할 거 자꾸 감사할 거 찾으면 하나님의 인자가 자꾸 뭐 막들이  쏟아 부어지지 하나님의 인자가들이 붓지. 붓는데, 영원한 인자가 들어붓지. 또  우리가 무지하지만. 무식한 사람이 말이오, 무식한 사람이 아주 유식한 그런  아주 최고의 문화인과 같이 지낼 때에 같이 지낼 때에 그 무식한 사람이 최고의  문화인과 같이 사귀어서 지내려고 할 때에 제일 좋은 방편이 뭐입니까? 제일  좋은 방편이 뭐이요? 지혜 쓰는 것이 좋은 방편입니까, 수단 쓰는 것이 좋은  방편입니까, 연구하는 것이 좋은 방편입니까, 뭐를 쓰는 것이 좋은 방편입니까,  배짱을 부리는 것이 좋은 방편입니까, 뭐를 조심을 하는 것이 좋은 방편입니까,  솔직하게 진실한 것이 좋은 방편입니까? 그 가운데 좋은 방편이 어느 게 좋은  방편입니까? 어느 게 좋은 방편이오? 수단부리는 게 좋은 방편이요. 자기의  지혜를 써 가지고, '아, 나도 이런 지혜가 있다' 지혜를 써 가지고 그렇게 하는  게 좋은 방편이겠소 이제 거기서 배짱부리는 게 좋은 방편이겠소 연구하는 게  좋은 방편이겠소 어떤 게 제일 좋은 방편이겠소?  그러면, 무식한 사람이. 무지 무능한 사람이 아주 유식하고 유능한 사람하고  같이 이래 살게 될 때에 그 사람에게 가장 호감을 받고 인정을 받고 동정을 받고  그에게 신임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말해 보십시오. 뭐입니까? 진실.

어리석으니까 어리석은 일 해도. 어리석은 일을 해도 진실되게 했습니다. 제  진실로 했습니다. 이러면 그것이 그 지혜로운 자에게 동정이 됩니다. '이게  무지하긴 무지해도 진실하긴 진실해' 이거 꺼꾸로 붙였오. 이래 붙일 걸 이래  꺼꾸로 붙였다 말이오. 꺼꾸로 붙여도 그게 진실이 들어 있으면 칭찬을 합니다.

'네가 잘못되기는 잘못됐어도 네가 진실은 진실이야' 진실 하나 가지고 모든 거  다 통과요.

 이와 마찬가지로 그분은 무한한 것을 다 우리에게 예정해 놓으시고 무한한  축복과 선물을 우리에게 주시고 우리가 이해 못 할 일을 우리에게 자꾸 하시는데  우리가, 세상에서 이해 못 하고 하늘나라 가 가지고 천 년 후에 이해를 할란지  만 년 후에 이해 할란지 만 년 후에 이해할 것도 있을 것이고 천 년 후에 이해할  것도 있고 우리가 이해를 백 년 이백 년 이 해 못 할 것도 있고 그 무한함을  그에게 주시는데, 그분에게 대해서 우리 가 요거는 좋으냐 나쁘냐 우리가  비판하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이겠소 가리는 것이 좋겠소 조심하는 것이 좋겠소,  우리가 그분에게 대해서 제일 그분을 상대해 가지고 사는 데에 좋은 방편이  무엇이겠습니까? 무엇이겠소? 뭣이겠소?  감사뿐이라. 그분에게 감사할 거, 그저 뭐이든지 나는 모르니까. 모르니까 어떤  일이 와도 '아, 내가 이해 못 하나 감사합니다. 내가 이해 못 하나 감사합니다.'  분명히 그분의. 그분의 사랑을 깨닫고 그분의 전지 전능을 깨닫고 그분이 내게  벌써 선포해 놓은 목적이라든지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라든지 십자가의  대속이라든지 이 모든 걸 볼 때에 그 안에 자잔한 그런 모든 것 내가 이해 못  하지만 그저 가다가 엎어져 죽어도 '감사합니다.' 왜? 내가 엎어져 죽는 걸 이해  못 하지만 분명히 그분은 나에게 나에게 행복되게 좋게 이래 해 주신 것이기  때문에 나는 나 할 것은 내가 진정 내가 그분에게 대해서 감사할 것 뿐이요 나는  그분이 나에게 좋게 해 주실 것뿐이기 때문에 나는 '감사합니다.' 감사 하나  가지고 다 통과 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의 구원을 마구 무시하지 맙시다. 하나님의  구원을 연구해 보지 안하는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이게 하나님을  멸시하고 천대하고 죄를 짓는 것인지 모릅니다. 이렇게 큰 구원을 주셨지만 그  구원에 대해서 아주 등한히 여기는, 이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것 연구해 보지  안하는거, 이 구원을 제가 아무리 무식해도 한 시간만 연구해 보면 '나는 이게  있습니다.' 하고 하나님에게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고, 어떻게 좋은 게  있다 할지라도 이것이 이 구원보다는 낫다 그렇게 높이 평가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이 구원을 우리가 연구하지 안함으로써 이 구원의 가치성과 보배성을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이것을 마구 막 삼켜서 파묻어 버리고 그저 짓밟아 버리고 이래  등한히 하는 이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모르겠습니다. 그까짓 거 뭐 도적질을  했다 거짓말을 했다 사기 협잡을 했다 횡령을 했다 뭐 사람을 어떻게 했다  죽였다 하는 그 죄가 크지만 그 죄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구원에 대해서  구원의 가치를 모르고 마구 묻어 버리고 등한히 여기는 그 죄와 하나님 앞에서는  비교 못 합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이 구원을 깨달아 이 구원에 감격한 그 사람이  어떤 인간들이 말하는 그 모든 죄를 다 범했다 할지라도 당신이 주신 이 구원의  가치를 깨닫고 이 구원의 가치에 진정 감격하다면 하나님은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을 천하에 제일로 높이들 것입니다. 높이 들 것이오.

 그런고로, 우리는 주님이 주신 이 구원의 가치를 우리는 연구합시다. 우리가  기도하는 거 뭐입니까? 밤낮 묵상하는 게 뭐입니까?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한다' 여호와의 율법이라 말은 하나님의 계약의 이 말씀  말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계약의 말씀을 자기가 생각할 때에, 이 계약의  말씀을 생각하니 하나님도 거기에 나타나 있고 하나님의 은혜도 나타나 있고 다  있으니까 날마다 생각하는 것이 '아, 주님은 이런 분이시다. 또 주님은 이렇게  나에게 큰 것을 주셨다 주님은 이렇게 광대하시다. 내게 대해서 이렇게 관대하고  관용하시다. 또 이렇게 주님은 모든 것에 대해서 알지 못하심이 없다' 이렇게  자꾸 연구하니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다형 통하다, 다 형통하다, 그 사람에게  형통 안 주고 뭣 주겠습니까? 이러니까, 그 사람이 초자연의 능력으로 자꾸  가속도로 자꾸 성화돼 나가니까, 성화돼 나가니까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청청하고 마르지 안하고 어디서든지 그 사람은 때하고 시간이라고 가지면. 다  결실 시간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의 이 가치를 연구하는 그것이 우리 기도하는  것입니다. 뭐 기도하러 모두 다 새벽에 모두 수원지 산에 차를 타고 가고  이라는데 기도하러 가면 무슨 기도합니까? '주여, 뭐 주십시오 뭐 주십시오 뭐  주십시오.' 도둑놈 기도 모양으로 막 달라고만 주 늘어놓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아멘 하고 돌아옵니까?' 그거 다 도적 기도요. 그거 다 무지의 기도입니다.

기도하면서 며칠 밥 먹을 줄도 모르고 기도하고 또 며칠 밥 먹을 줄 모르고 단식  기도를 하고 이렇게 그만 기도하다가 그만 까무러져 가지고, 기도하다가 밥 먹을  여가도 없고 이래 가지고 뭐 며칠 하다가. 그러니까 나중에 열흘 넘어가고  스무날 넘어가니까 힘이 없어 가지고 다 늘어져 가지고 있을 때에 그때에 입술은  놀리지 못하고, 입술은 놀리지 못하고 마음으로 기도하고 나중에는 마음도 힘이  없어 가지고 못 따라 가고 이제 자기는 보고만 있습니다. 자기를 중생시킨 그  성령이 기도해서 이래 나가는 것을 그저 보고 안 있다 말이오, 보고만 있어.

그러다가 보니까 자꾸 보니 새로운 걸 자꾸 새로 연구해서, 새것을 연구해서 새  감사를 하지 새 자기가 행복스러운 것을 깨닫게 되지 자꾸 이 구원을 자꾸  이렇게 내 보여 주니까 구경하고 보고 보고 또 깨닫고 깨닫고 이래 감사하고  어쩌고 이라다 보니까 그만 며칠 가 가지고 기진해 가지고 그래 있다가 매여  오는 사람도 있고 또 뭐 몇십 일 단식 기도했다는 그런 사람들도 있고 하는 것  아닙니까?  이러니까, 우리가 성경 보다가도 성경이 가르치니까 성경 보다가, 성경 보니까  거기에 대한 어떤 은혜가 하나 있으니까 그 은혜를 내가 그냥 그만 썩 지내 보내  버리고 '성경에 이렇다, 구원이다, 또 택함이다' 이랄 수 없고 그 택함에 대해서  자기 지식대로 자꾸 이래 생각하니까 자꾸 깨달음이 나옵니다. 비교도 나오고  비판도 나오고 환경도 나오고 이라니까 나중에 가서 보니까 모든 피조물과 내  구원과 다. 마지막에 종점에 나가 가지고 모든 피조물이 내 구원 위해 있다 모든  전개되는 모든 역사가 내 구원 위해 있다 이러니까 자기가 거기서 이 구원의  사람으로서 이 구원을 귀중히 여기지 안할 수 없고 이 구원에 대해서 감사하지  안할 수 없고 이 구원에 대해서 조심있는 생활 안 할 수 없고 주의하는 생활 안  할 수 없고 이 구원의 사람으로, 이 구원의 사람으로 죽자 껏 살고도 나는  무익한 종이라. 그러니까, 이 구원에 대해서 흠과 점과 주름 잡힘과 티가 없이  살기를 힘쓰라 성령은 다 이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 구원을 등한히 여긴 죄를 우리가 오늘밤에 회개를 합시다. 이  구원을. 이 구원의 보배로움을 알지 못하고 막 등한시하고 막 묻어 버린 이 죄를  회개하고 이 큰 구원을 받은 여기서 우리는 밤낮 감사해도 모자랄 우리들이 왜  감사가 없습니까? 감사 없는 이 죄를 회개를 하고, 이 구원을 아주 경솔히  취급을 하고 이 구원에 대해서 합당하게 귀중한 취급을, 이 구원받은 자로서의  이 구원 행동을, 구원받은 자의 행동을 구원을 내가 구원 생활하는 이 구원  생활하는 구원 생활을 내가 함부로 조심 없이 이렇게 한 이 죄를 회개합시다.

 오늘밤에 세 가지만 회개합시다. 이 구원의 지극히 고귀함을 내가 알아 볼라고  하지 못한 이 죄을 회개하고, 이 큰 구원, 밤낮 생활에서 우리는 뭐 뭣을  소망해서, 뭣을 바라서, 부자 되기 위해서, 뭐 병 낮기 위해서. 뭐 위해서 내가  영광스런 구원 얻기 위해서 그거 다 실은, 좋기는 좋지만 실은 그게 유치한  생활입니다. 유치한 생활. 내가 구할 것 없어. 이미 주신 구원 이 구원에 대해서  뭐, 감사에 대해서, 감사에 대해서 죽어도 생명을 감사에 다 바쳐도 모자라고 내  생애를 다 바쳐도 모자라고 내 몸을 다 바쳐도 모자라고 내 모든 소유를 다  바쳐도 모자라고 내 생명을 다 바쳐도 모자라고 이 감사에 다 바쳐도 모자라는데  이 감사에도, 감사에만 바쳐도 다 모자라는데 뭘 얻을라고 뭘 달라고 언제 할  여가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구원을 아주 업신여긴, 등한히 여겼던 이  죄를 회개해서 이제 우리는 시간을 걸쳐서 이 구원을 연구합시다.

 이 구원을 연구하면 하나님 연구가 됩니다. 구원 연구하고 하나님 연구해서,  하나님 연구하고 구원 연구해서 만일 들어간다면 그 사람이 열흘이고 스무날이고  밥 안 먹어도 하나님이 그 사람의 생명을 유지시켜 주실 것이오. 이 구원 위해서  모든 식음을 전폐한 사람에게 생명과 건강을 유지해 줄 것이요, 이 구원을  위해서 돈벌이와 사업을 다 버리고 이 구원 연구에 바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그에게 주어서 풍성하게 부요하게 할 것입니다.

 나는 그 체험 있습니다. 내가 예수 믿었는데 여기 그때 같이 믿은 사람 몇 사람  있소. 저 뭐 술도가 치워 버리고 없애 버리고 예수 믿으면서 삼 년 동안 배 쫄쫄  골았습니다. 골고 난 다음에. 그때 삼 년 동안 배 골을 때에는 항상 주님  연구하고 또 주님의 구원이 얼마나 큰가 그거 연구하니까 그러니까 뭐 말라도  기쁘기는 기쁩니다. 말라도 기쁘고. 콩 이파리죽을 먹었소. 콩 이파리도 썰면  그거 좀 안 붇는다고 이것을 온 잎으로 이래 가지고 서 쌀은 가끔 가다가 혹 한  내끼 있을까, 쌀은 온 식구에 다 해봤자 한 숟가락도 안 되고 콩 이파리만 이래  넣어 가지고 그래 가지고 삼 년 동안 살았어.

 그래도 기쁘고 즐겁고 이랬는데, 자꾸 그래 연구하니까 다른 사람이 자꾸 갖다  줘요. 이거 뭐 이거 사라고 하는데 내가 돈이 없어 못 산다 하면 돈이 없으면 돈  대 줄 테니까 사라. 돈 대 줘 가지고 그거 샀는데. 사 가지고 좀 있으니까 일 년  지내니까 돈든 거 다 갚고 그거는 또 내 것 되고 뭐이든지 그래서 전부 그  사람들이 자꾸 하라고 해서 안 한다고 하면 해 줘서 이래 가지고 나는 아무 힘  안들이고 부자 됐어. 힘 안들이고 부자 됐습니다. 이 도시의 재산으로. 금전으로  말하면 뭐 그 까짓거 얼마 뭐 되지 안하지만 그 시골서는 그때 그 골짝에서는 뭐  거의 갑부라고 할 만한 부자가 됐었습니다.

 뭐 할라고 하나님이 줬는고? 지금 가만히 생각하니까 뮈 주는 것 보니까  이상하게 줘버려요. 백 배가 아니라 백 배도 더 돼. 불워 주는 것은.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뭐 할라고 줬을까?' 그때 내가 뭘 했느냐? 그때 말한 거 찍해야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주의 구원이 얼마나 되는지. 구원을 뭐 주님 보니까 좋고  주님 구원 보니까 좋고 그러니까 감사하는 것뿐이라. 감사하는 것뿐이라. 그래  감사하는 것뿐이니까 못 견뎌서.

 거기서 저 웅양이라고 하는 데는 큰 태산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녹음진 잿  만당에는 낮으로도 뭐 호랑이 나오고 짐승 나오고 그렇다고 아주 그 잿 마당만  이십리인가 그렇습니다. 이런데, 뭐 아주 첩첩 산중이지요. 거기에도 저녁 먹고  거기 가면 아예 밥 해 줄 터이니까 밥 안 얻어 먹을라고 여기서 도시락 하나 싸  가지고 가다가서 저 잿만당에 가 가지고 실컨 찬송하고 있다가 거기서  내려가다가 인제 밥 먹고 들어가 가지고. 예배 시간 딱 돼 들어가 가지고  설교합니다. 기쁘고, 또 그래 설교하고 난 다음에는, 새벽 설교 딱 마치고 난  다음에는 통성으로 기도시켜 놓고 또 넘어옵니다. 그때 내가 뭐 월급 받거나 뭐  전도사도 아니오. 못 견뎌서 그래 돌아다니면서 그렇게 했습니다. 기쁘고  즐거워서, 감사해서. 아, 그짓 하고 돌아 다는데 돈은 다른 사람이 갖다 줘서  부자 됐소. 나는 체험이 있어요. 당신이 엿새 동안에 모든 걸 지었는데 당신이  주실라고 하면 뭐 안될 게 뭐 있어야지요?  누가 닭 한 마리 갖다 주면서. 내가 아래도 그랬지만 닭 한마리를 갖다 주면서,  볶아 먹으라 하며 갖다 주는데 그걸 냅뒀다 말이오. 냅뒀더만 그 해에 닭이  그때는 닭이 귀한 때요. 얼마나 새끼를 쳤던지 세 배 인가 네 배인가 깠는데 한  번에 뭐 스물 몇 마리씩인가 이래 낳으니까 마구 닭 부자가 됐오. '아, 야. 닭만  기르면 당장 이거 자본 장만해 가지고 가족들 다 맡겨 놓고 나는 십자가의 깃대  들고 이래 돌아다니면서 세계에 전도하러 다녀야 되겠다' 이랬는데. 그래서 이제  닭을 기르자 하고 닭을 기를라고 하니까 자연히 그때 주님 연구 구원 연구 이  연구는 뒤로 가버리고 '이것만 어뜩 해 놓고 구원 이제 전파하자' 이래 가지고  했는데. 나중에 전심 전력을 해 닭을 길렀는데 나중에 보니까 닭 뭐 있는 닭도  그 많은 닭이 다 병이 들어 다 죽어 버리고 나중에는 병아리 한 마리도 못  키웠습니다.

 거기서 온 식구들이 말하기를, 내가 뭐이든지 인제 할려면 '아이구 안 됩니다.'  나는 안 할라고 하는데 잘됐는데 내가 그걸 인제 잘되니까 할라고 하면 그만 안  돼. 그러니까 우리집의 아내는 그래 말해요. 채소밭에 내가 떡 가면 '아이구.

집사님 그거 보지 마십시오. 집사님이 보면 그만 그 채소 저주받아 안 됩니다.'  내가 좀 가요. 하도 심심하니까. 자꾸 성경보고 연구하고 이라다 보니까 안  됐어서 한번 본다 말이오. 가서 이제 바람 쐴려고 가서 보니까 나풀나풀하이  크는 게 안 좋습니까? 이래보고 좀 섰습니다. 섰으면 '어, 저 또 저거 저거 채소  또 망할세' 이랍니다. 거기서 한참보고 있다 보면 나중에 뒤에 보면 빠짝 말라  버리고 망해 버린다 말이오. 가서 보면 망해, 뭐이든지. 보면 망하기 때문에  아예 가족들이 다 알기를. 무엇이든지 그만 내 마음만 거기다 기울이면 망해  버립니다. 기울이면 망하고 마음을 하나님에게만 기울이고 아무 데도 기울이지  안하고 이래 아무것도 안 하면 다른 사람이 뭐 자꾸 갖다 줘. 갖다 주는 대로 안  할라 해도 억지로 갖다 맡겨서 냅두면 그게 돈이 되고 냅두면 그게 보배가 돼져.

 왜정 말년에 얼마나 곡식이 귀했습니까? 귀했는데, 뉘가 와 가지고 정미소를  차리라고 하는데 나 정미소 그런 거 할 여가도 없고 못차린다고 그러니까  자기네들이 돈 가져 와서 다 만들어 가지고 갖다 주면서 자꾸 그래, 나는 그래도  할 마음 없다고 그래도 해 보라고. 그래 억지로 갖다 놓으면서 그래 놨는데  나중에 그게, 뭐 왜정 말년에 쌀이 참 귀했습니다. 내가 대구 와 가지고 일등  여관에 올라가서 여기는, 여기 가면 아마 밥 줄 거다 싶어 가니까 일등 여관에  식사가 들어오는데 딩겨떡 요거 요런 거 두 개 들어옵디다. 딩겨떡 두 개.

여관에 쌀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집에는 마구 쌀이 궤마다 마구  철철 넘고 있습니다. 또, 공출은 모두 다 공출해서 또, 공출을 받으러 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믿는 자라면 하나님의 기적을 불 것이오.

 이러니까. 우리는 종자부터 딴사람이오. 종자부터 딴사람이오. 우리가 있기  전부터 딴사람입니다. 딴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택한  사람이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의 사는 법칙이 뭐인가?  하나님의 자녀의 사는 법칙은 말 안 했습니까? '네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면 천대까지 은혜를 베풀리라' 은혜라 말은 뭐이냐 하면 공이라 말이오.

공짜배기로. 우리가 뭣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서 받는 것도 은혜 아니오. 또  우리가 무슨 공로 있어 받는 것도 은혜 아니오. 받을 자격도 없고 가질 만한  자격도 없고 누릴 만한 자격도 없고 보관할 자격도 없고 또 그런 공로도  아무것도 없는데 전부 은혜입니다. 자격 없는데 주시니 은혜요. 실력 없는데  주시니 은혜요 공로 없는데 주시니 은혜요 자본 들인 것 없는데 주시니 은혜요  전부 은혜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면 내게 천대까지 은혜를 베풀겠다 천대까지  베푼다 하는, 천대까지 베푸니까 자기의 사돈 팔촌까지 전부 다 자기에게 속한  자는 다 축복해 준다 그 말 아닙니까? 이 말씀이 오늘도 우리가 안 믿어서 이  일이 안 되지, 우리가 믿는데 주님이 안 해 준 일 있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지금 이래 가지고 있는데 우리가 안 믿어서 이 일이 안 이루어지는지, 우리는  믿는데 주님이 안 해 줘서 안 이루어지는지, 믿은 사람들은 다 장담합니다.

'나는 믿으니까 이렇게 되더라' 다 말합니다. 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는  사람은 안 믿은 사람들이 의심하지 믿은 사람으로서는 의심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믿은 대로 안 된 사람 있습니까? 믿은 대로 안 된 사람 여기 손들어 보십시오.

믿는다고 하는 것이 십분지 일를 믿고 십분지 구는 마귀 놀음 하니까 하나님이  그거 되구로 해 주면 제가 마귀 놀음 한 그것 때문에 됐다 할 터이니까 그 사람  더 배나 마귀 자식이 될 테니까 줄 수가 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거룩한 고기를  옷자락에 쌌다고 해서 그 거룩한 고기 그것만 거룩하지 그걸 어디든지 대면 대인  그게 다 거룩해지겠느냐 거룩해지지 않는다. 그것만 거룩하다. 그러나, 죄는  하나 지었으면 그 죄 지은, 시체를 만져서 더러워진 사람이 그 사람이 다른 거  만지면 어찌 되느냐? 다른 거 만지면 전부 더러워진다 이랬습니다. 죄는 하나  지으면 하나 죄로 말미암아 모든 게 다 죄가 되고 더러워져 있다. 깨끗한 거는  하나만 깨끗하다, 그러기 때문에 네가 애를 써서, 애를 써 백분지 구십 구는  깨끗하게 했는 데 백분지 일이 죄가 돼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지 못하니까  그것만 고쳐라 고쳐라 하니.

 우리가 안되면 안 되면 이거는 '고치는 거 못 고쳐 죄가 섞여 안되는가 보다'  또 안 되면 '죄가 있는가 보다' 자꾸 '보자 보자' 안 되면 하나님을 의심하지  말고, 하나님이 신실치 않다고 하지말고 안 되면 '내가 뭐이 죄가 섞여 그런가  보다'하고 또 죄 고치고 죄 고치고 자꾸 고치면 나중에 고치다가 보면 죄가 다  고쳐졌을 때는 주님께서 아멘 하고 당신이 팍 쏟아 줄거라 말이오. 얼마든지  줄거라. 이래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날 것 아니겠습니까? 이것도 전부 다  되고 난 다음에 할라고 하면 언제, 다 되고 난 다음에 우리가 뭐 죽을지도  모르는데, 하나님께서, 한계가 있어. '요거는 요 범위이니까 여기에 대해서는 요  범위만 네가 완성하면 여기에 대한 요 보응을 주겠다' 요 각 구분 구분을 해  가지고 이렇게 해 주실 것을 우리에게 약속했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의 생의 법칙은 뭐인가? 믿는 사람의 생의  법칙은 주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생의 법칙이오. 만날  주님만 사랑하고 그 계명만 지키면 어짤라고? 그라면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이  우리에게 옵니다. 기적과 축복이. 기적과 축복 그거는 공으로 주는 건데. 내나  공으로 뭣 주는데? 기적과 축복 줍니다. 기적은 인간이 하지 않는 거. 하나님이  전지 전능의 능력 가지고 직접 와서 하는 것을 가리켜서 기적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당신의 기적으로 우리에게 모든 것을 해 주시니까 기적으로 해 주시니  기적으로 기적으로 엿새 동안에 우주를 다 만 들었는데 그분의 기적 가지고 만일  한 시간을 한다면 뭐 어찌 되겠소? 세계를 내게 주시고 남음이 있을 것이라  말이오. 기적. 축복은 뭐입니까? 축복은 우리가 꼬물꼬물 하는. 우리 꼬물꼬물  하는 거기다가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태 가지고 막 되게 한다 그말이오. 우리가  꼬물거리는 우리 힘에다 가 당신의 전지 전능을 보태 가지고, 이래 가해 가지고  하니까. 아무리 날뛰어도 우리 힘은 하나밖에 없지만 전지 전능이 보탰으니까  우리의 하는 일이 전지 전능의 일이 되어지니까 이것이 축복이라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킴으로 당신이 주시는  기적과 축복 가지고 우리는 잘되고 형통하고 평안하고 잘 살 수 있고 금생과  내세도 다 행복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법칙은 그것이오. 안 믿는 사람은  뭣 가지고 삽니까? 안 믿는 사람들은 근검 절약. 부지런히 하고 조심하고 아끼고  또 저축하고 요거 가지고 살고, 또 세상 물리에 딱 맞춰서 살고 물리에 맞춰  사니까 그 사람들은 물질로 사는 것이요 피조물 맞춰 사니까 피조물로 사는  것이요, 우리는 피조물 맞이 사는 것이 아니라 물리 맞추는 게 아니라 창조주  그분에게 맞춰 삽니다. 창조주에 맞췄으니까 창조주로 우리가 잘 살고 다른 것은  모두 피조물로 잘 살고. 피조물이 큽니까 창조주가 큽니까? 피조물로 잘 살라  하는 자에게 창조주가 방해하면 헛일입니다. 하나님 백성들이 바벨에서 팁을  쌓았지만 하나님께서 다 헛일되게 해 버렸으니까 하나도 효력보지 못하지  안했습니까? 세상 사람은 과학으로 살고 근검 절약으로 살고, 우리 믿는 사람은  하나님 사랑하고 그 계명 지키는 것으로 살고, 그라면 뭣 하고? 그라면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 주시니까 그것 가지고 우리는 모든 걸 성공하는 것입니다.

 이거야 인간의 지식으로 보면 물에 부어도 붓지 안하는 말이요 인간의 지식으로  보면 이거는 통통 거짓말이요 하나님의 지식 성경에서 보면 이거는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면, 성경이 말하는  거는 모두 하나님 사랑하고 그 계명 지키면 하나님이 전부를 다 가자고 주신다  '내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내가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늘과 땅의 것을 다  가지신 주님이 그 사람을 통해서 모든 거다. 하늘의 것과 땅의 것 다 권세를 다  가진 권세를 나타낸다 하니까 그 사람 이 전능의 하나님 노릇 한다 말 아니오?  그 성경 어떻게 해석합니까? 그것 밖에 더 돼요? 또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을  것이요 우리가 와서' 삼위 일체 우리가 와서 '거처를 함께 하리라' 그 사람을  보듬고 그 사람과 동거 동행하겠다. 요한복음 14장에 말씀해 놓지 안했습니까?  성경은 하나님 사랑하고 그 계명 지키면 막 된다고 성경 말씀은 전부가 다 이  성경에도 보면 그래 증거하고 저 성경도 그래 증거하지만 세상 뱀이 내놓은  인간의 지식으로 보면 통통 거짓말이오. '안 된다. 과학으로 살아야 된다.

물리를 맞쩌 살아야 된다. 네 힘으로 살아야 된다'말 했는데, '네 힘 가지고는  하나님 섬기고 계명 지키는 것만 하고, 네 힘 가지고는 그 두 가지만 하고. 네게  대한 것은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으로 하나님이 해 주신 그거 가지고 살고'  이렇게 말씀하지 안했습니까! 이런데 우리가 이 법칙을 바꾸지 안하고 항상  중생된 사람이 옛사람 첫째 아담에게 속한 그 법칙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우리는  망할 수밖에 없지요.

 이러니까 오늘 이 말씀에서 우리가, 첫째 아담에 속한 예수 믿기 전에 있는 그  생의 법칙 가지고 살면 저는 골만 빠졌지 헛일입니다. 죽을 때 가면 구원만  헛일이고 골만 빠졌지 헛일이오. "하나님이 집을 세우지 안하면 건축자의 수고가  헛되도다." 또 "하나님이 성을 파수하지 안하면 파수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저녁에 늦게 자서 수고를 네가 암만 해 봤자 그 모든  것이 다 헛되도다'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어 놓고 뭣 만드느냐? 당신만 바라보고 당신만 섬기고  당신의 법칙대로만 지키는 사람을, 지키는 존재를 잘 살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주를 지으셨습니다.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피조물이 하나님 무시하고  제 힘으로 살라고 하는 자는 망하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것,  지옥은 뭐입니까? 지옥은 하나님 무시하고 제 힘으로 살라 하다가 다 가서  영원히 멸망받는 것이 지옥이요. 하늘나라는 뭐입니까? 하늘나라는 자기 힘 전부  다 가지고 하나님 사랑하고 그 계명 지키는 데만 기울인 그 사람들만 영광  가운데 사는 것이 하늘나라입니다.

 이러니까 하늘나라에 가는 사람 가운데에서 기본구원은 얻었지만 자기 전부  전심 전력 가지고 하나님 사랑하고 그 계명 지키는 요소가 백분 지 일이 있으면  백분지 일 그것만 하늘나라 갔소. 천분지 일이 있으면 천 분지 일만 갔어.

천분지 일도 없으면 기본구원만 얻어 가서 영생은 가지고 하늘나라에 있지만  기능은 없으니까, 뚱뚱하지만 힘없으면 구불지도 못하고, 구불지도 못하고  어디든지 점만 되고 그런 것 모양으로 힘없으면 그렇지 않소? 이 세상에서도  아무리 그 사람이 사람은 사람이지만 기능 없으면 인간 중에 제일 천물  아닙니까? 설 수도 없지 앉을 수도 없지 누워 있자 아무 지식도 없지 감각도  없지 그라면 그거 산송장 아닙니까? 하늘나라도 그런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늘나라는 '봐라. 하, 한 시간 하나님 말씀 지키고 난 다음에 그 값이 저렇게  크다. 한 시간 지킨 게 저렇게 가치가 크다. 한 시간 제 잘 살라고 하다가 이거  다 그 기능 다 죽여 버리고 기능은 다 유황불 구덩이에 태워 버리고, 한 시간  세상 것 취 할라고 하다가 다 불태워 버리고 벌거벗은 구원 얻고 와 있다. 불  가운데 구원 얻고 있다' 그것이 하늘나라에서 우리가 대면해 볼 것 아닙니까?

 그런고로 우리 힘이 어디서 나오는가? 생각에서 나와요. 생각에서. 주님의 주신  구원을 자꾸 생각하면 막 힘이 나와요. 생각하면 아무것도 눈에 안 보여요.

생각하면 그저 살든지 죽든지 '주여! 털끝만한 죄도 짓지 않겠습니다. 털끝만한  죄도 짓지 않겠습니다! 내 욕심이라는 것은 일초도 용납지 않겠습니다! 주님  사랑하고 주님의 계명대로 살겠습니다! 왜 내가 죄는 짓겠습니까!' 아. 구원을  생각하고 당신 생각하면 '왜 내가 죄를 지을꼬? 왜 내가 죄를 지어? 죄  안짓습니다.' 이랬는데. 구원을 생각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세상 것만 생각하다  보면 죄 안 짓고는 못 견디는 사람 됐습니다. '죄 안 지을 수가 어찌 있겠느냐'  하는 사람이 돼 버리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구원을 우리가 연구합시다. 구원  연구하면 하나님 연구하고 구원 연구하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우리가 감사가  나을 것이오. 감사 나오면 기쁨 나을 것이요, 그라고 나면 성신이 우리 주관해서  마귀와 세상을 다 우리를 사로잡지 못하고 성령과 천국의 사람이 돼 가지고  우리가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랑은 두 종류라 근본부터 두 종류라. 주욱 내리 생각하면서  시발을 생각하고 결과를 생각하고 그 생활 방편을 생각하기 때문에 처음이 딴  종류요 결과가 뚜렷이 딴 종류인데, 그러면, 층하가 얼마나 되나? 억억만층도 더  됩니다. 뭐 세상 것과 우리와 이 두 종류의 사람을 시작과 결과를 보니까 그  비교가 뭐 비교가 안 돼. 하늘과 땅 보다도 더 층하가 더 커. 이런데, 생활  법칙도 다르거든. 생활 법칙도 다른데 이 다른 것을 깨달은 사람이 생활 법칙을  하늘에 속한 이 생활 법칙을 하지 안 하고 멸망받는 그 생활 법칙을 취할리가  있습니까? 죽어도 안 취합니다.

 우리가 이 구원의 시발과 결과를 이 사람이 두 종류가 있다는 것을 연구하지  안하는 가운데서 죄를 이기지 못합니다. 이 두 가지를 연구하면 죄를 못 이길  자가 없고 이 두 가지를 연구하면 순교 못 할 자 없고 이 두 가지를 연구하면  순생 못 할 자 없습니다! 이 두 가지를 연구하면 세상을 탐할 자가 없습니다.

세상을 밥으로 이용물로 삼지 안할 자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꾸 여기 우리가 연구해야 된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주야로 묵상하는 모든  것이 다 형통합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새벽기도에 빠지지 말고. 어짜든지 자기를 아끼십시오. 자기가 자기를 아껴서  내가 뭐 뉘를 볼 게 아니라 한 번 작정했으면 내가 '죽어도 변치 않겠다' 하는,  자기를 팔지 말고 자기를 아끼십시오. 자기를 하나님 다음에는 자기가 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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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 출애굽기 20장 6절/ 1985. 6. 26. 수저녁 선지자 2016.01.02
509 하나님의 기적을 증거하지 안한 죄/ 마가복음 5장 18절-20절, 32절-34절/ 1985. 7. 19. 금새벽 선지자 2016.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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