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기적과 축복


선지자선교회 1985년 6월 23일 주일오후 

 

본문 : 출애굽기 20장 6절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주님을 사랑하는 자요. 이렇게 하는 자가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고. 또 주님에게도 사랑을 받고 주님이 그 사람을 통하여 주님의 모든  하시는 역사를 다 나타내십니다. 금생도 그러하고 영원 무궁세계에도 그러합니다.

지금은 영원 무궁을 결정하는 세상입니다. 그때 가서 무슨 다른 새로운 변동이  있는 게 아니고 지금 그가 주님과 자기와의 관제를 맺은 그 맺은 그대로  무궁세계에서는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세상을 가리켜서 영원한  기초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세상은 영원 무궁세계의 원인이 되고 영원  무궁세계는 이 세상 잠깐 한 토막 사는 그 생애대로 보응되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근검 절약의 그 생애를 가지는 것이 기독교 아닙니다. 부지런하고  모든 것을 아끼고 조심함으로 잘 되어 나가는 그런 것이 기독교 아닙니다. 물론  그것도 다 좋지만 그것은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 것인데 그것은  안 믿는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사는 거기 대한 상당한 댓가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세상에서 그렇게 살면 그렇게 사는 것 만치 댓가를 받습니다. 그러면  그것도 이 세상에서는 행복이라 성공이라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부지런히 하고 모든 것을 조심하고 아끼고 그렇게 힘을 쓰므로 그 효력을 상당히  받아서 다 세상에서도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조반 석죽을 하고 그래도 세상에서  남에게 누 끼치지 안 하고 제 생활을 제가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다 인간만으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또 그런 거는 다 그것이  실은 사망 아래에 있는 것이며 저주 아래에 있는 것이며 다 멸망 아래에 있는  것이어서 그것이 현재에 어떻게 찬란하고 구비하게 서 있다 할지라도 시간  문제지 조만간에 다 멸망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기독자들이 그런  것을 가지고 자기를 성공되게 복되게 유력하게 강하게 그렇게 할라고 하는 것은  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의 방편이지 기독자의 방편은 아닌 것입니다. 기독자가  그렇게 살라고 하면 세상살이 되고 세상 사람들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이 좋지만 기독자들에게는 몹쓸 생활입니다. 그거 가지고는 안 됩니다. 암만  잘 해 받자 불신자와 같은 생애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또 기독자들은 과학으로 사는 것 아닙니다. 과학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말은  무슨 이 물리에 맞추어 살므로 이루어지는 그런 것으로 사는 것이 기독자의  생애가 아니요 그런 것으로 성공할라고 하는 것이 기독자들이 가지는 성공  방편이 아닌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모든 일을 할 때에 과학적으로 하는 것이  효력을 가지고 또 성공 못 합니다. 성공을 한다도 해도 그것은 다 피조물만으로  이루는 성공이기 때문에 그것은 다 저주 아래에 있는 것이요 원죄와 본죄로 사망  아래에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그것이 사망을 꿰뚫고 생명선에 올라가지를 못하는  것이고, 또 멸망의 선 아래에 있고 멸망을 꿰뚫어 영원 불멸의 그 위치에  성장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세상에서는 이 두 가지 생애를 제일 이상적인 최고의 방편이라고  그렇게 사람들이 평하고 있습니다. 근검 절약하는 것, 또 과학적으로 사는 것  그것이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하나님의 그 대속의 이 은혜의 약속을 받기 전에는  그것이 제일 좋은 방편입니다. 좋은 방편이나 그 방편은 다 사망 아래에 있는  방편들인 것입니다. 이북에 있는 김일성씨는 그는 가르치는 모든 그 가르침의  원리를 들어보면 그는 모두 다 과학적으로 살아라 그렇게 말합니다. 대단히 좋은  것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 세상에 속한 것이요 저주 아래에 속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것이 우리에게는 해당되지를 아니합니다. 기독자들은  그렇게 아무 침노가 없는 그런 위치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악령들이 우리의 생애를 방해 합니다. 또 악령의 일군들이 되어 있는, 악령이 그  속에 주관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궁극적으로는 다 우리의 대적이요 우리 하는  일은 방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나아가는 신앙 걸움에는  우리의 대 적이 뭐 천천이요 만만이라고 하는 그 말이 지나친 말이 아니고 다  우리 기독자들은 그렇게 방해자가 천천 만만의 방해를 받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말한 그 두 가지 방편 그런 방편 가지고는 성공을 못 합니다.

 그러면 기독자들은 어떻게 사는가? 육체의 이스라엘 때로부터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기독자들이 사는 것은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으로 사는 것입니다.

전지 전능의 대주재이신 주권자가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그의 초인간의 능력의  도우심의 그 기적으로만 우리가 성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기적으로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이 방해할 수 없는 방편입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이 축복하심으로 그 축복으로 모든 것을 성공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독자들이 이렇게 적이 많은 것을 깨닫지 못하고, 또 우리가 믿기  전에 세상에 속한 그런 최고 이상적이라고 하는 그 두 방편도 우리에게는 다  무용한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그 방편이 수지가 안 맞습니다. 폭이 안 닿습니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그런 생활 가지고 그런 방편 가지고 되리라고 생각하지  참된 기독자는 이런 거 가지고는 까마득하게 바라보지도 못하고 종적도 찾을 수  없다는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아예 그런 방편은 지금 쓸라고 하지 안하고 다  포기합니다. 기독자들은 근검 절약으로써 우리가 뭣을 해 보겠다, 또 우리가  과학적으로 이렇게 뭘 해 가지고 무슨 성공을 해 보겠다 하는 그런 것을 생각을  가지는 사람들은 아예 그것은 몰라 그렇기 때문에 철이 없는 그 어린이의  생각입니다. 경험이 없는 사람들의 판단입니다. 해 보면 안 됩니다. 해서 된다고  하면 되는 것은 마귀가 볼 때에 해도 안 해도 제 것이 되어 있을 때에는 그  한계까지는 내비둡니다. 방해하지 않습니다. 암만 해 봤자 다 마귀의 것이요  사망의 것이기 때문에 그 뭐 하나 안 하나 상관 없기 때문에 마귀가 방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 가지고 영원히 멸망하지 안할 수 있는 그런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할 수 있는 영원 불멸의 뭣을 해 볼라고 하면 아예 얼토당토 안 하고  그만 다 전멸된다는 것을 사람이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들은  근검 절약의 생활이나 과학의 생활로 가지고는 그 방편 가지고는 안 된다  그런고로 기독자들은 초인간의 그 모든 기적으로만 살 수 있다. 기적이 아니고는  살수가 없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나온 해방도 기적이요 또  거기에서 뭐 남부 여대 하고 출발한 사람들이 그만한 노비가 될 만한 것을  가지고 오지를 못했습니다. 또 그들이 사십 년 동안을 살면서 농사 하나 지을  겨를도 없었고 농토도 없었고 또 길쌈할 만한 그런 것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러면 그들이 먹은 것이나 입은 것이나 다 기적입니다. 그이 나오는 그 도중에서  만나지는 그 모든 어려운 일들도 다 기적으로 해결했지 무슨 인간의 노력으로나  무슨 과학으로 해결한 것 하나도 없습니다. 의식주의 어려움이라든지 자기의  전진에 대한 어려움이라든지 자기네들을 호위해 주는 그 호위의 어려움이라든지  무슨 물 한 방울 마시는 그런 어려움이라도 그 전부는 다 하나로부터 끝까지  전부는 하나님의 기적으로, 초자연의 능력으로 지내 나왔고, 또 통과해 나왔고,  보존되고 유지돼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성경에 말하기를 고린도전서 10장에 보면 신령한 이스라엘들에게  그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해 주신 것은 우리의 거울로 삼으라고 기록해 주셨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거울로 삼으라 말은 거울을 보면 자기를 알 수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그때에 그들의 모든 생애를 보면 우리의 당면한 생애도 알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된 대로 되고 우리도 그들이 한 대로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실패한 그 걸음은 걸어 가지고 실패 안 할 수가 없고 그들이  성공한 그 걸음을 걸어 가지고 성공이 안 될 수도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 거울로  우리에게 이것을 줬다, 말세를 당한 너희들에게 거울로 이 모든 것을 줬기 때문에  이를 보고 너희들의 생애를 깨닫고 너희 자체를 깨닫고 너희들의 흥망성쇠를  깨달아 가져라 그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가지는 방편은 뭐이냐?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하나님의 기적  아예 초자연의. 능력의, 하나님의 도우심의 초인간의 능력, 이제까지로 모두  사람들이 보고 있는 그런 자연이 아니고 초자연의 능력, 신비한 그 하나님의  기적. 기적으로 우리는 살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적이 많은 세상이니 기적으로  사는 것만이 그 적의 해를 받지 안하지 기적이 아니고는 적의 해를 받지 안할  수가 없다. 그것을 잡고, 하나님의 기적이 나와 함께 하기를 운동하는 이것이  우리의 생애인 것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이 복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 하나님의  그 축복으로 무엇이 돼지지 축복 아니고는 안 된다.

 우리가 세상에서 사람들과 모든 생활할라 하면 생존 경쟁이 있습니다. 사업 쳐  놓고 경쟁 없는 사업이 없고 투쟁 없는 사업이 없고 또 모든 건설에 대해서도 그  마찰과 투쟁이 없는 일이 없습니다. 또 우리가 어떤 것을 방위하고 호위할라고  하는 데도 거기에는 마찰과 투쟁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같이 일대 일로 정당 방위를 해서 이렇게 악으로 더불어 악을 대항해서 이래  나갈라고 하면 성경에 그것이 위반이 되지, 그러니까 악으로 악을 대항해 가지고  그래도 안 되겠지. 롯이 그런 방편을 취해 가지고 나갔지만 결말이 다 멸망이요,  아브라함은 그런 것을 대항하지 안하고 나갔기 때문에 성공했으니 아브라함은  어떤 방편을 취했던가?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축복을 자기 방편으로 삼았어. 인간  대 모든 사물 대하는 것은 이것은 이 세상 사람이 취하는 그 두 가지 방편  가지고 할라고 하면 결국은 패망이 되겠고 이러니까 하나님의 축복의 그 방편을  취했고 또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해 주시는 그 기적을 바라봄으로 출발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출발이 이삭을 생산하는 거기에부터 그 씨가 시작된 것인데, 그 씨가  난 것부터도 전부가 하나님의 기적이지 뭐 과학적이 아니요 자연적인 그런  방편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적과 하나님의 축복으로 되는 이 두 가지를 우리의 방편으로  주셨기 때문에 이 방편을 우리가 써야 되지 이 방편 외에 다른 방편 세상이  가지는 그런 방편 써 가지고. 야고보서 4장 1절 이하에 보면 너희들이 다투고  싸우고 시기하고 또 피흘리기까지 그렇게 해도 너희들은 성공 안 된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오늘 기독자들이 그런 일을 해 가지고 성공을 그저 아당아당 싸워  가지고 복음을 다 가뤄 버리고 예수님의 이름을 다 팔고 하나님 영광을 가루고  더럽히고 이래 가지고 근근히 아침밥 저녁 죽을 먹을 수 있도록 이렇게 했다  할지라도 그로 인해서 쌓여 놓은 그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는 태산 같습니다. 그  비참하고 끝이 없습니다.

 그런고로, 아예 그런 방편은 치워 버리고 하나님이 약속하시기를 내가 너를  축복하면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또 너로 말미암은 일. 네 몸의 소생은 제  맘대로 못하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모든 전부를 내가 축복 하나 가지고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겠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주님이  이렇게 신실하게 우리와 계약을 맺었으니까 이 계약에 대해서 당신에게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이 일을 하도록 우리 가 노력을 하는 것이 우리 할 일이지  하나님의 축복이야 어찌됐든지 내 힘을 가지고 어떻게 해 보겠다 하는 그런 것은  참 화약 쥐고 불로 들어가는 일이지 안 됩니다. 어떤 일이든지 과학적도 아니고  무슨 인간의 그 실력도 아니고 이는 순전히 초자연의 그 전지 전능자 그분이  나를 도우심으로 이 일이 해결되고 나를 도우심으로 성공되고, 나를 도우심으로  모든 대적들 이 해할 수 없는 그 길을 택하는 것이 우리의 택하는 길입니다  파사 나라에서 다니엘을 시기해 가지고 전국이 단합되어서 왕까지 단합이 돼  가지고 거기에서 다 그들이 지혜로 매수를 해 가지고 그 파사 나라 전부는  다니엘의 그 지위를 뺏들라고. 또 다니엘의 생명을 뺏들라고 이스라엘 민족들의  그 모든 생명을 뺏들라고 그렇게 계획을 가졌습니다. 가질 때 그때에 다니엘이  무슨 이 과학적인 방편 그런 방편을 아예 쓰지를 안했습니다. 다리오 왕은  다니엘에게 하루 종일 말하기를 '네가 사자구덩이 들어가면 물려 죽는 것은 정한  이치인데, 제가 지금 그만 기도하는 거 기도 안 하겠다 하면 되는 것인데 아,  말로 그래 해놓고 속으로 기도해도 안 되나? 그러니까 그만 기도 안 하겠다, 그  말 한 마디만 하면 다 되는 것인데 네가 그 사자구덩이 자꾸 들어갈라고 그렇게  하고 있느냐? 들어가면 너는 죽는 것 아니냐? 그 말이 뭐이냐? 네가 과학적으로  해결해라. 과학적으로 해결하고 네가 그런 허망한 짓을 하지 말아라.

 그랬으나. 다니엘은 아예 알았습니다. 과학은 우리의 법칙이 아니다. 인간의 어떤  모략이나 그런 모술이나 또 노력은 우리의 방편이 아니다. 왜 그런 걸 능가할 수  있는 대적들이 가득히 싸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대적들을 이길 수 없다. 이는  하나님의 그 전지 전능의 능력이 내 편이 되셔 가지고 나를 도와 주셔야 되지  그리 안 하면 안 된다. 이라기 때문에 아 예 다리오 왕이 그렇게 과학적인 방편을  말했으나 듣지 안하고 자기의 생의 방편을 바꾸지 안했습니다. '아. 나는 하나님의  기적으로 살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살지 우리 생의 방편은 이것이니까 다른  방편을 쓰지 않겠습니다. 해가 질 때까지 신강해도 이 두 가지 방편을 버리지  안하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기적이 도와 주시기를 바라서 그 계명을 지킬  때에 과연 하나님의 기적이 사자의 입과 발톱을 다 가루고 죽음 가운데서 그  이튿날 살아나옴으로써 모든 대적들은 다 멸살을 당했고, 그 사자들에게 멸살을  당했고, 다니엘은 순전히 하나님의 기적으로 거기서 구출했을 때에 그 구원 이 참  바른 구원이 돼서 원수도 그렇게 복수할 수 없고 원수를 그렇게 아주 정리해서  원수 하나도 부스러기 하나도 남지 못하도록 그렇게 잘 정리하고. 또 잘 승리해서  세 총리 있었는데 단독 총리로 그렇게 등장하게 되는 그런 깨끗하고 온전한 그런  승리를 하나님의 기적의 도우심으로 했던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다 이런 것을 다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가지는 인간의 그 근검 절약의 인간의  방편으로 절제, 조절, 열심 그런 걸로 하는 그 방편도 좋은 방편이나 우리에게는  폭이 닿지 않습니다. 또 과학을 맞춰서 이리 하는 것도 좋은 방편이지만  우리에게는 폭이 닿지 안하고 우리에게는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대적이  많습니다. 또 우리는 금생만이 바라는 게 아니고 영원 무궁을 바라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영원 무궁에 대해서는 털끝만한 건설도 승리도 하지 못하는 모든 그  이하의 것들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그런 방편으로 오늘까지 살아오던 이런 답답한 방편을 다  포기합시다. 포기하고. 그저 이제 말한 대로 우리 방편 두 가지, 두 가지 뭐이냐?  하나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되는 거, 얼마전에도 제가 말했지만 우리 서부교회  교인들이 주일 학교까지 말하면 벌써 수만 명인데 그 수만 명이 다 모두 거지를  면하지 못하고 근근 생활하고 거지 생활하고  있는데 우리가 뭐 돈을 벌어 가지고 무슨 경제의 어려움을 면한다든지 우리가  또 해야 될 그 모든 경제면의 일을 할라고 하면 언제 그래 얼마삼 십 년 동안을  우리가 먹고 살고 하루 오천 원씩 저축하니까 한 달에 십이만 오천 원인데 일  년이면 얼마요? 일 년에 백오십만 원. 십 년이면 천오백만 원. 백 년이면, 백 년해  봤자 일억 오천만 원, 오십 년 살면 까짓 거 뭐 오 육천만 원밖에 안 되는 거.

오육천만 원 그까짓 거 가지고야 우리 집집 마다 오육천만 원씩 다 들어와 봤자  그거 가지고는 폭이 안 닿습니다. 언제 뭐 접방 살이도 못 해서 이라고 있는데  접방이나 하나 쓸만한 거 하나 얻고 또 뭐 그냥 근근히 생활할라 하면 언제  연보할 거 있겠소? 그래 가지고는 안 되겠어. 그래서 아무래도 하나님의  축복이라야 쫙 늘어가지고 뭐 돼 지지 축복 아니면 안 되겠다, 우리 방편을  그렇게 하나님께서 역사했어.

 그러니까, 이제 하나님의 축복으로, 아, 축복이면 당장에도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날 수 있으니까 우리가 뭐 연보도 하고, 또 분교에 터도 사고, 또 거기에  예배당도 짓고, 또 그 지교회도 만들고, 우리가 도와 줄 사람들이 많은데 어려움  도와 줄 사람 또 구제할 돈도 있고, 또 우리가 어려움 없이 자녀 공부시키고  의식주 할 것도 있고, 이러니까 어짜든지 축복이어야 되겠어요. 축복 아니고는  딴거는 폭이 안 닿아요. 벌써 공중에 날라올라 가듯이 그런 속도로 그런 실력으로  가야 되는데 언제 굼벵이같은 그런 걸음 가지고 무슨 일이 되겠습니까? 안  되겠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이 방편이 참  우리에게는 맞습니다. 또 그것이 허무한 소리가 아니야. 그것은 가장 절대성 있는  정확한 방편입니다. 하나님의 축복 또 하나님의 기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능력의 도우심으로 이루어 나아가는 것, 이 두 가지 방편을 우리가  가지도록 합시다.

 이 두 가지 방편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성경에도 보면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내  능력은 약할 때에 강하여지느니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약 할 때에, 그 사람이  가장 약할 때에 하나님의 강한 능력은 그와 같이 해 가지고 그 사람은 강한  사람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강한 자는 그 강한 자, 지식으로 강하고 경제로  강하고 무슨 선천 후천의 그 인품으로 강해서 내가 이만치 잘났기 때문에, 뭐  실력 있기 때문에 하는 그것은 도리어 그것으로 인해서 오히려 꺼꾸로 실패하고  멸망하지 그것 가지고는 하나님 앞에 쓸모가 없다 이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린도전서 1장에 보면 세상에서 학벌 좋고 문벌 좋고. 문벌 좋다는 것은 가문이  좋다 그 말입니다. 문벌 좋고 세상에서 다 유력한 그런 것들은 다 없는 거와 같이  돼 버렸고, 세상에서 천대받고 멸시받고 아무것도 아닌 그런 것들을 들어 가지고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위대하다 하는 그런 것들을 다 누르고 꺾고 다스리게 했고  높였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성경에도 그러하고 또 우리가 교회사를 들여보는 데도 그 루터는 종교  개혁가인데, 그 사람은 개혁을 했는데 개혁할 때에 보면 그가 뭐 죽음 앞에서도  담대하였고 세계가 떨고 있는 그 회의에서도 담대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그 사람이 근본 사람으로 말하면 겁쟁이라서 길을 가다가서 만일  번개가 치고 뇌성을 하면 못 견뎌서 그만 길 밑에 그 구렁텅이로 파고  들어간다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겁이 났던지 겁쟁이라서 그 겁쟁이가 승리해요.

겁쟁이가 승리하고, 겁쟁이가 승리하고, 못난 자가 승리하고, 약한 자가  승리합니다. 이것도 참 좋소. 아, 잘난 자가 승리한다 하면 우리가 잘나지  못했으니까 우리가 뭐 되겠소? 그런데 약하고 못나고 겁쟁이 무지한자 그 자가  승리할 수 있다 이렇게 말씀했어  제가 8월 15일 해방 후에 그 뒤에 대구에서 전국 총회가 모였는데 그때 보니까  승리한 사람들은 가운데, 그때는 그래도 대우했어. 승리한 사람이라 하고 가운데  똑 앉혔는데 몇 사람 안 앉았어. 몇 사람 앉았고 나머지기는 다 패전했는데  패전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머리가 굵닥 굵닥하고 뚱뚱하고 인물이 잘났고 또  뭐 모두 뒤에 뒷꼭지에 살 한 뭉텅이씩 더 들어 붙이고 이래 가지고 쩍쩍  이래되고 이 앞면 위는 크고 밑은 좁고 영웅이고 다 영웅이라. 영웅이고 배짱  있고 뭐 참 대패침으로 찔러도 꿈쩍 안 할 그런 사람들이라. 이런데 그 사람들이  다 패전했어. 그때 승리한 사람 보니까 모가지는 똑 새 모가지 같애.

달랑달랑달랑 하고 뭐 어떻게 못났는지 뒷꼭지만 똑 볼가진 게 조그만한 게 모두  뭐 아주 겁쟁이라서 꼼짝도 못 할 그런 사람인데 다 승리했어. '내 능력은 약할  때에 강하여지느니라' 주님이 사도 바울에게 대해서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저도 겁쟁이 중에 한 겁쟁이요. 겁쟁이 중에 한 겁쟁이인 아주 겁쟁이 중의  겁쟁이인데 앞으로 지금 어찌 될지 모르겠어 과거에 6.25때나 왜정 말년에는 참  멋지게 이겼습니다. 왜정 말년에 황거 요배할 때에 예배 보러 가니까 그 장로님이  교역자인데 '모두 일어섭시다' 하기 때문에 나는 멋도 모르고 일어섰다 말이오.

그거 난 처음 들었어. 일어섰는데 '지금 모두 황거 요배들고 예배보지 그래 안  하면 예배를 금하기 때문에 저 천황 폐하 있는 데로 향해서 절을 해야 됩니다.

하면서 다 그쪽으로, 오른쪽으로 돌아서라 이랄 때에 그 소리 듣고 난 다음에  그만 나는 거기에서 앉아 버렸어요. 그런 일 할 수 없다 해서 앉았어. 그래  가지고 황거 요배는 안 했습니다. 안 했는데 그거 하나님이 그렇게 알게 해 줘  그렇지 뭐 그때 한 거 요배 처음 들었고 황거 요배가 그게 죄다 그렇게 해석도  안 했는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지켜 주시니까 황거 요배 안 하고 지냈습니다.

 신사 참배 안 한 그것도 그때 뭐 뭘 믿음이 없었어. 믿음이 어렸어. 믿음이  없었어. 믿음이 없는데 아. 일본 부장이 날마다 쪼우는데 그래도 꼭 신사 참배는  할 수 없다, 이래 가지고 끝까지 그래 가지고, 제가 있던 그 ○○교회의 교인들이  여기 와서 있는 사람이 몇 사람 있습니다. 그 ○○교회 교인들은 한 사람도 신사  참배 안 했습니다. 여기 여러 사람들 와서 있어요, 지금 이랬는데 그때도 뭐  '그까짓 것 뭐라 하든지' 그런 일은 한번도 없었어 이거 항상 그들이 만일 말하는  날이면 나는 믿음이 없으니까 이거 신사에 끌어다가 강제로 절을 시키는 날이면  이거 내가 어떻게 하노? 만날 발발 떨면서 겁쟁이 뿐이지 내가 있는 거는 겁이  있었고, 내게 있는 거는 겁이 있었고 내게 있는 거는 두려움이 있었고, 내게 있는  거는 떠는 거 있었고 내게 있는 것은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간이 적어서 이렇게  비겁과 공포자의 겁쟁이니까 이게 어찌 되나 그것만 내게 있었지 딴거 하나도  없었어. 그게 있으니까 하나님 앞에 다른 사람은 안심하고 누워자도 나는  안심하고 누워잘 수가 없고 또 다른 사람은 담대해도 나는 담대할 수가 없고.

그러니까 내게는 조급하니까 부득이 기도해야 되겠고 당신에게 기도해야 되겠고  그렇게 했다 말이오.

 이러니까 그것을 이겼어. 그것도 내가 그런 거 아니야. 아, 일본 부장 앞에서  '일본 저거 섬기는 신을 나한테 달라. 그라면 내가 불에 사를 것이. 국기를 달라.

일본 국기를 달라. 내가 불에 사를 것이다. 벌이 내게 오는가 봐라' 이렇게 말한  것도, 어째 그때 그런 말했던고 그런 말했는데도 또 그 사람들도 그만 뭐  놀래면서 이랬지만 그래도 또 아무 말이 없었다 그 말이오. 그게 순전히 하나님이  내게 와서 말하게 했고 그렇게 했지 내 담력으로나 무슨 인품으로나 그런 걸  가지고 한 거 하나도 없어. 이러니까 꼭 내게 있는 것은 겁쟁이 겁밖에 없었어.

겁쟁이 겁밖에 없었고 간이 작아요. 간이 작아 겁쟁이 겁밖에 없었고, 또 항상  두려워서 떨면서 어짤꼬 하는 그 만날 떨면서 나 혼자 하나님 앞에서 졸리고  간장국에 졸우듯이 골탕 쥐먹었지 그들을 대해 놓으면 아무 문제없다 말이오.

대해 놓으면 무슨 말이든지 다 한 거 그거는 어째 그런 말을 했던가? 이래요.

 이러니까, 모두 다 주목해 가지고 거창서에서 고제에 이 한 놈이 있는데 그놈은  요번에 그 제등이라 하는 그 부장 하나 있었는데 네가 가야 그놈은 처리할  터이니까 가라고 이래 가지고 왔어. 왔는데 신가파 함락할 때에 저거 딴에는 수단  쓰다고 '내일 신가파 함락 축하하니까 내일은 꼭 나오셔 야 됩니다.' 이라기  때문에 주일날 와서 그라기 때문에 '내가 그때 한번 생각해 봐서 하겠다'그라고  그만 그 이튿날, 그리 안 하면 뭐 그까짓 거 가 가지고 뭐 하면 안하면 되지 이럴  건데 나는 겁이 나서 못 갔어 겁이 나서 그날 오라 하는 거 안 가고 그만 산으로  기도하러 가 버렸다 말이오. 전부이 그러니까 나는 전부 겁뿐이요. 겁, 겁쟁이  겁쟁이 겁하고 간이 작은 간 작은 거 하고 항상 두려워 놀래 떠는 거 하고  그거밖에는 내게 없었어. 지금 생각하면 성경대로 됐어. 그것이 들어서 모든  승리했습니다.

 뭐 6.25때도 다른 데는 다 그렇게 그랬는데, 그들이 점령하고 난 다음에도 석 달  동안을 하루 세 번씩 위천교회서 모아 가지고 거기에서 집회를 했는데 여기도  거기 있던 사람들 많이 와 있습니다. 그 어찌 그리 했는지 인민군이 와 가지고  잡으러 와 가지고 막 포위하고 있을 때에 어떻게 이렇게 호통을 치고 담대하게  말했는지 그 이상합디다. 일을 만나기 전에 겁쟁이가 일을 만날 때에 겁쟁이  그것이 담대함이 되고. 일을 만나기 전에 두려워서 못 견딜 조급해서 못 견디는  그것이 그때에 평안함과 담대함이 된다는 것을 저는 깊이 체험했습니다  이 말을 왜 하는가? 이 말 하는 것이 하면 내가 한 게 아니라 주님이 전부  주님이 한 것이지 나는 겁쟁이뿐이라. 내게는 겁쟁이, 간 작은 거, 못난 거 무식한  거뿐이라. 지금 나는 무식을 자랑해요. 무식한 것뿐이라. 내가 배우지를 못했어.

국민학교 오 학년밖에 못 했어. 아. 재주가 없어서 에 A B C 그거 암만 배워야  지금 A자 요거 보면 알고 B자는 요래 쓰던가 어째 쓰던가 그거 내가 지금 잘  몰라. 영어 한 마디도 몰라요. 무식한 거 그러니까 설교하는 것도 다른 사람이  들으면 다 조롱해요. 뭐 문법이 맞습니까. 또 어학법에 맞습니까. 무슨 문자가  있습니까? 이래 놓으니까 다 모두 누구든지 시골뜨기라도 다 들을 수 있도록  이런 말로 이래 하니까 그 뭐 무식한 설교로 이래해서 들어 보고. 아이고 거기  무식이 많다. 무식군이다.' 이라면서 그만 또 그라는 사람 그러는데. 그것밖에 또  못 해요, 나는. 그래서, 내가 말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오늘 담대한 자는 그날에  비겁해서 다 패전할 자다, 오늘에 간 큰 자는 그날에 다 패전할 자다, 오늘에  벌벌 떨면서 못 견디는 그 자가 그날에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자이다 하는 것을  지금 말하라고 여러분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잠도 못 자고 기도도 못하요, 이거 뭐 늙은 게 이러니까, 힘이 없으니까  기도도 제대로 하지 못해. 기도하다 보면 또 그만 자고 졸고 뭐 기도도 옳게  되지도 안해요. 옳게 되지도 안하는데 '그래도 양심의 가책이 되니까 기도해야  된다.' 이래서 아. 이러니까 한번도 마음 턱 놓고 누워 자지는 못합니다. 자꾸  겁이 나고 앞으로 공산주의 독침 앞에서도, 내가 뻔히 알기는 아는데 독침  앞에서도 그때 하나님의 주권 개별 섭리를 믿으면 문제가 없는데, 믿으면 문제가  없는 그때 내가 믿겠나 안 믿겠나, 내가 어찌 되겠나 하는 것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그만한 자신이 없어. 이러니까 통통 패전자라. 패전할 수밖에 없고,  이거는 승리할 그런 희망성은 하나도 없어.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긍휼을 구할  수밖에 없는 고로. 그래서 자꾸 하루 30분씩 기도하자, 이래 가지고 우리  교회서는 세 번 시작했어요.

 처음에 한번 30분씩 기도하기로 시작해 가지고 그때 기도하고 난 다음에 주일  학교와 교인들이 많이 불어서 주일 학교는 그때에 한 오육 천까지 올라갔었고  그라다가 그만 내가 병이 나 가지고 그만 주일 학교가 내려가 버렸고, 고 뒤에 또  새로 기도하기를 시작해 가지고 우리 교회서 이래 하다가 그때에 팔천 구천이  가끔 가다 있는 거기에까지 올라갔다가 또 병 나 가지고 또 푹 내려갔다 말이오.

그러니까 팔십 이년 칠 월 그때까지 최고로 올라갔는데 82년 8월 달에 제가  병들어 누워 가지고 그만 그 다음에 푹 내려갔습니다. 내려갔다가 또 요번에 또  새로 세번째 기도를 시작해 가지고 한, 지금 기도 시작한지 한 이 년 됐습니까?  ○○○집사님 얼마나 됐소? 우리가 새로 기도 시작한지가? 어? 얼마나 됐어?  이거 알지? 어? 두 달 되면 이 년 돼? 아, 구 월 달 되면 이 년이랍니다.

이년인데. 우리 주일 학교가 전에 팔천 오백까지 올라갔고, 고 전 주일도, 또 고  다음에는 팔천 오백 뭐 이십 얼마인가 또 그래 됐고, 이래 됐었는데. 지금은 내가  병나지 안하도록 이거 절제한다고 조심하기는 하는데 모르겠습니다.

 이게 뭐이냐? 우리가 연약하고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사람 모양으로  그렇게 자신이 없는 사람들이라,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그저 벌벌 떠는 이것이나 하지 딴거는 없어. 겁쟁이, 또 간 작은 거 무지 무능한  거, 이러니 당신의 도움을 입는 거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어째 그때는 아이들 말로 참 황소 뒷발로 쥐 잡듯이 어째 발을 떼놓다 보니까  쥐가 잡힌 거 모양으로 어째 그때는 승리를 했지만 앞으로는 이거 뭐 암만 봐도  승리 못 하겠다 어찌 되나? 이래서 지금 고민 고통이 있는데. 조금 내가 생각하는  것은 그때에 내가 겁쟁이 되고 그때에 간 작은 거와같이 지금도 그때와 같이 간  작기를 원하고, 그때와 같이 겁쟁이 되기를 원하고. 그때와 같이 벌벌 떨면서  어짤꼬? 근심 걱정이 내 맘에 가득 채이는 그것을 원합니다. 그것만 있으니까  하나님이 승리케 해 주시오.

 그런고로 우리들은 앞으로 하나님의 이 기적과 축복을 받는 데에는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오전에도 말했지만 주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킬라 하면 이 일을 방해하는 것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 안에  원죄와 본죄와 악령이 있기 때문에 우리 안에 있는 이것이 주를 사랑하는 것과  계명 지키는 것을 계속하지 못하도록 해서 방해를 지기니까 내 안에 대내전을  싸워 가지고 내 안에서 이거 승리해서 내 속에서 내가 주님 사랑하는 것과 계명  지키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는 이 적이 내 속에 원죄, 본죄, 악령이 들어  있으니까 이것을 우리가 다 제어해서 여게서 싸움이 계속해야 되겠고. 싸움이  계속해서 '아, 나는 또 패전했다. 나는 패전했다. 주여 나는 패전했습니다. 용서해  주옵소서. 다시 일어섭니다. 고 사함이 승리하는 것이지 나는 승리했다 할 때는  벌써 패전한 줄도 모르는 눈먼 자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패전한 것을 알고  다시 패전했으니 주님에게 자복하고 일어서는 그때가 좋은 때요. 그때 가  승리하는 때인 것입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우리가 주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킬라고 하면 그 다음에는  물질하고 나하고 싸워야 되는 일이 있습니다. 물질 그것이 들어서 주를 사랑하는  것과 계명을 지키는 거를 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 닥쳤을 때에 우리는 물질로  더불어 싸워서 그것을 이겨서 물질을 내가 다 포기해도 내가 주를 사랑하고 계명  지키는 것을 양보하지 안할라고 해야 되지. 그러니까 그런 것도 미리 앉아서  누워서 항상 그것만 생각하는 거라. 그것만 생각해. 누워서 '아, 만일 내게 이래  물질이 있으면 뭐 이런 물질 저런 물질 물질에 대한 거 이런 건 저런 건이 와  가지고 이렇게 와서 부딪히면 어찌 되느냐? 그럴 때에 그까짓 거 뭐 포기해  버리면 되지.' 이라지만 자세히 생각하면 '그때 막상 포기할라 하면 어떻게 힘이  드느냐? 그때 포기 할라고 하면 힘이 들겠다. 포기할라 하면 어려움이 있겠다.'  어려움이 있고 힘이 들겠다는 그 진상을 오늘 미리 당겨서 진상을 고 진상대로  바로 파악을 하고 고게 대한 올바른 대비가 있는 사람이라야 이기지, 미래에 두면  시쁘고 현재 닥치면 어려워지는 그런 인간은 못 이깁니다. 그런 외식자는 못  이기요. 그거 다 허영으로 날뛰는 사람들입니다.

 그 물질로 더불어 싸워서 주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일을 하지 못하게  방해되는 일이 있을 것이고. 그 다음에는 모든 사건들이 들어서 그럴 것이고  물질과 싸움이 있고, 그 다음에는 사건과 싸움이 있고, 그 다음에는 사람으로  더불어 싸움이 있고, 그 다음에는 가정으로 더불어 싸움이 있고 가정으로 싸움이  있다 말은 가정이 들어서 주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킬라 하면 가정을 버려야  되겠고 가정을 돌볼라고 하면 주를 사랑하는 것과 계명 지키는 것을 포기해야  되겠고 롯도 거기에서 떨어졌습니다. 롯은 거기서 떨어졌어. 아브라함은 거기  떨어지지 안했는데 롯은 거기에서 떨어졌어. 자, 거기에서 안 떨어지겠다 하는 그  자신이 있는 사람 손 한번 들어봐요. 손드는 사람들은 떨어질 것이 뻔했다. 자,  가정이 이렇게 문제가 되는 거기에서 안 떨어질 수 없다. 나는 안 떨어질 수  없으니 그때 내가 가정을 버리고 주를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이 일하기가  얼마나 어려우냐? '나는 그때 할 수 없으니 주여 나를 도와 주시옵소서 하면서 할  수 없는 자인 줄 알고 주님에게 발발 떨면서 도와달라고 간구 하는 그 사람이  그때 주님이 불쌍히 여기시면, 도와 주시면 됩니다. 도와 주시면 돼. 또 사회로  더불어 싸움. 국가로 더불어 싸움. 마지막에는 생명의 싸움. 이러니까 우리가 주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이 참 하나님의 기적을 내가 받는 것이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이니까 그 기적과 축복 받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 아닙니다.

그것도 크지만 기적과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주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기  위한 이 전투에 승리한다는 것도 상당히 어렵습니다. 안 어려운 것 아니오. 뭐  지금은 결심해 찼지만 간 큰 사람들은 져요.

 제가 그 왜정 말년에도 보니까 거창읍에서 모두 그 사람들은 뭐 누가 말도 못  해. 어떻게 배짱이 있는지? 배짱이 있고 간이 크고 상당이 모두 뚝뚝한 그런  사람들인데 그렇게 간 큰 사람들은 그때 닥쳐 놓으니까 그만 고양이 앞에 쥐  모양으로 어쩔 줄을 몰라, 그만. 그때는 뭐 예의고 체면이고 명예고 아무것도  없는 거 어짤 줄을 몰라 그만. 뭐 생명 문제가 닥쳐 놓으니까 어짤 줄을 몰라. 다  패전했어요. 그래도 그 겁이 나서 뻘뻘 떨며 주님이 도와 주시지 않으면 안 된다,  큰일났다 하면서 떨고 겁이 나고 차지 못 하고, 그러니까 산에 가서 기도하고 뭐  철야하고 야단지긴 그 사람들은 아. 그럴 때 되니까 저렇게 간 작은 저게 그거  닥쳐 놓으니까 뭐 서장이고 부장이고 뭐 검사고 판사고 와 가지고 뭐라 해야  눈도 꼼짝저리지 안하고 어떻게 그 입에서 그 총살같이 그 튀어나오는지 마구 내  해대는데 아무도 당하지를 못해. 우리에게는 이런 싸움이 있으니까 우리가 이것을  각오하고 기도해야 됩니다.

 우리는 십계명에 첫째 계명은 다른 신을 섬기지 말아야 됩니다. 다른 신 어떤  신이든지 섬기면 안 됩니다. 또 이계명은 어떤 모양이든지 만들어놓고 거기에  절하고 섬기는 일을 하지 않아야 됩니다. 나라마다 국신이 있습니다. 국신. 처음에  나라가 건국 초기에는 그런 것이 없이 이렇게 그런 것이 없이 다 전설에만  전력해 나가지만 나라가 건설 턱 되고 나면 그 건설된 열매를 따먹을라 하는  도적이 생깁니다. 건설해 놓은 것을 따먹을라 하는 도적이 생기기 때문에 도적이  도적질해 먹는 방편을 취하기 위해서 무슨 국신, 무슨 국신 이래 가지고 이  국신에 핑계를 대 가지고 이 국신에 절해라. 이래 가지고 정신 통일 국민 통일  이래 가지고 거기다가 절하라 하는 그런 일들이 생겨진다 말이오. 나라가  건설되고 나면 그게 생기고, 그게 생기고 나면 나라가 망합니다. 안 망한 나라가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애국자는 만일 자기 사랑하는 나라가 그런 일  하면 거기에서 그 말 하다가 죽임을 당해도 '이라면 우리나라가 망합니다. 안  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그것이 자기 생명을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 내 놓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게 참 애국자요 애민족자이지.

 이러니까, 우리가 무슨 국기에 경례하는 것이나 뭐 단군 신사든지 기자 신사든지  무슨 무슨 신사든지 어떤 신사든지 뭐 천조 대신 신사든지 무슨 신사라도 그 산  사람이 아닌, 산 사람이 아닌 외의 거는 금이든지 나무든지 돌이든지 글씨든지  뭐이든지 뭐 집이든지 거기에다가 잘 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이 계명인  것입니다. 거기에 절하면 안 됩니다. 또 산 사람이라도 서로 맞보여 가지고  절하는 것이 볼 수 있는 데 있는 사람에게만 절하지 볼 수 없는 그 먼데  사람에게 절하는 그것은 또 내나 우상 섬기는 게 됩니다. 그건 왜? 그 사람을  신격화시키기 때문에 먼 데서도 내가 절하는 것을 알거라 하는 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지 그까짓 거 무슨 절을 받을 수 있습니까? 초짓장만 가리워져도  모르는데. 그러기 때문에 뭣 이든지 그 실상 이상으로 들어올리는 것은 다 우상이  되고 만다 그거야.

 이러니까, 앞으로 여러분들도 이제 지금 이렇지 지금하고 이 다음에 가 가지고는  엉뚱이같이 와서 그랄 거라. '아. 지금 천조 대신 신사 참배가 있는데 신사 참배  해야 됩니까. 안 해야 됩니까?' ○집사. 그때 나한테 와서 물을 거라? '여게 이거  국기 배례가 있는데 해야 됩니까 안 해야 됩니까? 그때 와 물을 사람 지금 말해  봐요. 물을 사람 지금 물어요. 그 때 묻지 말고. 그때는 내가 안 가르쳐 줄  터이니까. 지금 물어요 지금 어리석게 이용당하고 내 싸움도 못 싸우는데 그래  놓으면 어만 일 마귀 이용당할랄고? 네야 하든지 말든지 네가 이제까지 진리  배웠으니까 네 진리 비판대로 해라. 네 신앙 양심대로 해라. 네 신앙 네 지킬  일이지 나한테 물을 게 뭐꼬? '아, 그라면 목사님은 어짤랍니까?' '왜 나한테  묻느냐? 내가 어떻하든지 너 나한테 물을 게 뭐꼬? 네 일 네 해. 내 일 내 할  터이니까' 그때 엉뚱이 같은 일하지 말고, 그런 데에 과거에 국기 배례에 대해서  파동이 일어났는데 우리가 지금 구미 정치를 본 받아 가지고 이렇게 하는 민주  정치로 이렇게 하는 데에는 그런 일이 있기 어렵지만 그것도 또 변해지면 그럴  수가 있습니다. 국기 배례는 국기 앞에 절하면 안 됩니다.

 또 어떤 신상에든지 신상을 만들어 놓고 거기 가서 절하면 안 됩니다. 산  사람이라도 거리 먼 데서 절하면 안 됩니다. 자기가 만들어 놓은 기업체든지  물질이든지 명예든지 과학이든지 기술이든지 자기가 만들어 가지고 있는 어떤 그  요긴한 것이라도 하나님이 동으로 가라 하는데 그것을 살릴라고 하면 서로 가야  될 때에 이제 서로 끌려가면 그것이 우상에게 절하는 것이 되고 마는 것이고  그걸 다 포기하고 헛일해도 주님만 향하여 가는 그것이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주를 위해 그런 것을 버린 자는 세상에서 여러 배 백 배를 얻을 수 있지만 아.

이제까지 공부하고 노력해 가지고 이제 그만 주님 사람하고 그 계명 지킬라면  이런 거 다 시기 놓쳐 버리고 다 시험치는 날자 지내 버리고 하니까 헛일이다  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너 그거 가지고 먹고 살아라. 너는 그것만 가지고 살아라.

나는 네 하나님되지 앉겠다 아. 뭐 주님이 당신 것 다 거둬 가 버리면 제까짓 게  빠짝 말라 뒤지지 어짤 거요? 어리석지 말라 그 말이오. 어리석지 말아요. 오늘에  똑똑히 알아요. 아 기독자들 암만 오늘 오전에 말해도 잘 안 들어. 뭐 예사롭게.

 그때 왜정 말년 때 보니까 뭐 넙죽넙죽 큰 소리 잘하는 어떤 그 ○집사라 고 한  분 있었습니다. 여기 따님이 여기 와 있어요. 따님이 우리 교인이오. 있었는데,  그분은 뭐 참 태평 세계고 뭐 간도 크고 그런 사람이오. 아무리 산골에 사자고 뭐  호랑이고 있다 해도 겁도 안 내고 혼자 다니면서 하는 그런 간 큰 사람입니다.

이랬는데, 아. 왜정 말년에 신사 참배하는 데 가 가지고 붙들려 가서 이제 예수  안 믿겠다는 그 각서를 쓰고 도장을 찍고 왔어. 그 소리를 듣고 내가 쫓아가서 그  집에 재를 넘어서 가니까 그만 가니까 '어디 갔노?' 논에 갔다 해. 이래 놓고 논에  갈 정신 있나? 가보니까 논 가에 뻐드러져 버렸어. 하도 그만 그라고 나니까 기가  차서 고만 쭉 뻐드러졌어. 그만. 죽은 사람같이 뻐드러져 가지고 있어. 그래 내가  붙들어 가지고 다시 위로를 하고 거기에서 말을 하고 해서 이랬지만 다시 가  가지고 안 하겠습니다. 그 소리를 하지를 못하더라 그거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그 앞으로 어떤 분위기가 된다는 그 분위기를 지금  상상으로 해 가지고 그때의 분위기를 지금 생각하면서 그때에 어떤 일이 내게  닥쳐오며 내가 거기에 대해서 어떠한 사람이 되겠느냐? 그거 이길라 하면 어떻게  되느냐 하는 그것을 자세히 연구해 보면 나중에 가서는 결론이 '나는 안 됩니다.

나는 공포의 사람이요 비겁의 사람이요 무지 무능의 사람이기 때문에 안 됩니다.

주님이 도와 주시지 안하면 안 됩니다.' 하며 주님에게 도와 주시기를 부르짖는  그 사람이 된다 말이오. 그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도우셔서 승리하도록 해 주시는 것입니다. 아. 이러기 때문에  그거야 뭐 잘난 자가 이기는 것도 아니고 못난 자가 이긴다 하는데 우리가 못할  게 뭐 있습니까? 아. 잘난 자가 한다 하면 우리는 낭패지만 가장 못난 자. 두려워  떨면서 하나님께 자꾸 애걸복걸 자꾸 달라드는 그 사람만이 승리한다 하는 그  승리야 우리 못난 사람의 승리 아닙니까? 못난 사람들은 다 이 승리할 수 있어.

겁쟁이는 다 이 승리할 수 있어. 겁쟁이는 다 이 승리할 수 있어요. 잘 나고  똑똑하고 담대한 사람들은 승리 못 해요. 꺼꾸로 돼요. 그런고로, 우리는 이계명에  우상 숭배하는 그것을 하지 안하고 지켜야 되겠습니다.

 또 셋째 계명 이런 계명도 이거는 혼자 지키는 것이기 때문에 좀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이 섭리 하셔 가지고 오늘 가고 내일 가고 자꾸 하루 이틀 이렇게 모든  새로운 역사가 전개돼 나가는 그 모든 전개에 자연 섭리나 내 개인에게 대한  섭리나 내게 어떤 현실이나 무엇이나 봉착된다 할 지라도 거기에 대해서 원망  불평이 있으면 안 됩니다. 원망 불평이 없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내  구원에 유익되도록 하기 위해서 이런 모든 시대도 주셨고 현실도 주셨고 내 모든  당면한 이런 일을 주셨으니 감사한 줄 알고 이것을 내 구원에 유익하도록 해  주셨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요 현실이 내 구원에 유익이 되겠느냐 하는 그것을  연구해 가지고 우리가 양식으로 삼아서 활용할 일인 것입니다. 그것이 삼계명  지키는 사람이오.

 사계명은 주일입니다. 다 안식일은 다 폐해졌고 안식일은 참 것의 그림자라고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주일 지키는 일을 안식일 지키는 거와 같은 그런,  날짜만 변경되고 지키는 방편은 변경되지 안했으니까 그 안식일 지키는 고  방편으로 주일을 지켜야만 하는 것입니다. 주일을 엄격히 지키는 거 주일 지키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왜? 주일날은 주님의 죽으심과 주님의 살으심으로써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가 주일날 우리에게 담뿍 오고 우리는 그 은혜를 받아  가지고 승리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기 때문에 주일날이 제일 중요합니다.

주일날은 주님이 우리 위해서 대형, 대행, 대화친의 이 대속의 공로를 베푸신 그  원만하고 구비하고 완전한 우리가 상상도 못 할 완전 대속, 완전 구비의 대속.

광대한 대속, 이 전체의 대속 이 대속을 우리에게 해 주신 것이 주님의  죽으심이요, 부활은 이 대속해 주셨는데 이 대속을 우리가 실질적으로 누리고  행복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두 종류의 은혜가 주일날 우리에게 오는 것이기 때문에  주일날은 날 중에 제일 중 한날이 주일날이라. 그것은 ○○○목사님이 좋은 걸  남겨 두고 갔어. ○○○목사님이 주일 학생들에게 여러 분들 날 중에 제일 귀한  날이 무슨 날입니까? 주일날입니다. 시간 중에 제일 귀한 시간이 뭐입니까? 예배  시간입니다. 그 ○○○목사님이 그럭저럭 이래 말하고 갔지만 그 뒤에 모두  후배들이 모두 다 이걸 말하니까 이 주일 학생들, 누가 보니까 내가 들으니까  강단에서 그래 인도하는 선생님들이 '여러분들 날 중에 제일 귀한 날이 무슨  날이지요? 주일날입니다. 시간 중에 제일 귀한 시간이 무슨 시간이지요?  예배시간입니다. 얼마나 귀하고 중한 일인지 모릅니다. 거기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주 주일을 잘 지켜야 됩니다.

 이랬는데, ○○○목사님 보낼 때에 이게 어려서 가 가지고 이거 되겠니 이라면서  ○○교회 보낼 때는 염려를 했는데, 내가 소문을 들었는데 ○○교회,  ○○○장로님 그 ○○교회의 교역자인데 그 작은 아들이, 지금 막내 아들이  거창에 고등학교 공부하고 있는데, 올라오더니만 말하기를 참 우리 ○목사님같이  그렇게 설교 잘하시는 분은 없다고. 영 귀에 쏙쏙 들어오고, 그러니까 교회가  자꾸 부흥이 돼. 자꾸 부흥이 돼요. 옳은 정신 가지고 박히면 교회는 부흥됩니다.

그 인간이 다 제가 잘났다고, 내가 뭐 대학을 졸업했고 대학원에 졸업해서 내가  박사라, 또 내가 뭣이 언변이 있어 어짜고 제게 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썩었다고 그만 더럽다고 집어 던져 버립니다. 내게는 아무것도 없고 있는 것도 다  버려 버렸고. 아무 것도 없고 당신의 것 만으로만 된다고 생각하는 그분에게  당신의 것을 줘 가지고 썩지 안할 영원한 것을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바로 알고 믿어야 됩니다  제 사계명을 우리가 어떻게 하든지 지켜야 됩니다. 주일을 잘 지켜야 됩니다.

주일날은 매매하는 것도 다 중단하고 또 모든 자기 일을 다 쉬고, 왜? 쉬는 것은  그 날은 더 중요한 것이 내게 수입이 되고 중요한 걸 얻기 때문에 그 나머지기  그런 거는 중요치 안하기 때문에 그건 내비두고, 이제 주일날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다 부활하심으로의 모든 거기에 관련된 그 은혜를 우리가 받아  가지고 세상과 죄와 마귀와 사망을 이기는 구원을 이루는 참 진짜 요지를 얻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주일날은 그런 것을 다 중단해 놓고 주일을 잘 지켜야  됩니다.

 주일을 잘 지키는 데는 엿새 동안에 생활을 잘해야 되요. 어떤 사람이 자기 맡은  책임이 있는데 그 책임을 내일 주일이니까 내가 내일 주일날이니 이 일을 미리  잘 단속해서 주일날 내가 일하지 안해도 이 일이 잘돼야 되겠다 하고 잘 되도록  준비해 놓고 주일 지켜야 될 건데 뻐드렁이 놀면서 일을 아무나 따나 했는데  주일날 일이 낭파가 턱 걸렸습니다. 낭파가 돼 가지고 그만 그 일 때문에 다른  사람이 피해를 많이 봅니다. 그라면 그 날 그 사람 일을 하고 고쳐야 됩니까.

오늘 주일날이라 안 고쳐야 됩니까? 자 대답해 봐요. 주일날도 그 사람은 제가  다른 날 준비해서 그렇게 하지 못했으니까 주일을 범하면서라도 고쳐야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 번 들어 봐요. 암만 제가 못 해서 그랬지만 주일은 일할 수  없으니까 주일날 그날은 일을 안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봐요. 이래  모두 거꾸로 예수 믿어.

 나는 정 반대야 그 사람 주일 지킬 자격이 없어 그 날 일을 해야 돼. 왜? 저  때문에 지금 다른 사람이 왜 피해를 보느냐 그 말이오. 그렇지 안해요? 안 돼요.

주일 못 지켜. 너는 주일 지킬 자격이 없어. 엿새 동안에 제 할 일을 해야지  안하면 주일 지킬 자격이 있습니까? 그래 예수를 믿고 그런 모든 사상 가지고  깨닫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핍박을 당하고. 무책임 자 돼 가지고 모두 다  복음을 가리고 핍박을 받게 된다 말이오. 제가 지킬라면 내가 내일은 주일이니까  내일 주일 지킬 때에 이거 한번 점검도 해 보고 검사해 가지고 자기가 무슨 그  외. 이외에 자기는 인간적으로 할 대로 했는데 안 되는 거는 자기에게 책임  없지만, 아. 자기가 무슨 선 끊어진 건 선을 이으면 될 것이고. 뭐 요거는 여게  놓으면 될 것이고 할 수 있었는데 제가 게을해서 안 한 것은 제가 주일을 못  지켰으면 못 지켰지 저 주일 지키느라고 다른 사람이 피해를 봐요? 안 돼요.

그거는 하나님의 공의가 용납지 안해요. 예수 믿는 걸 요렇게 바로 깨달아라 그  말이오.

 아, 자기는 할 대로 했는데. 그 위에서 전체적이나 시대적이나 뭐 그런 걸로  가지고 국가적이나 그게 잘못돼 가지고 그리 된 것은 자기 잘못이 아니라 위에  잘못이기 때문에 그가 주일을 담대히 지킬 수가 있다 말이오. 오늘 손드는 거  보니까 전부 다 틀렸어. 이렇게 예수 믿는 걸 거꾸로 깨닫기 때문에 공연히  복잡합니다. 예수 믿는 거는 정당한 걸음을 걷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어짜든지 계명은 십계명이 한 개입니다. 한 계명 어기면 나머지 구  계명 다 어기게 돼요. 한 계명 지키면 차차 고 다음에 자꾸 지켜서 다 지켜  나가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 계명은 부모를 공경하라 하는 것인데, 요 부모  공경하는 요거 안 하면 일계명을 어기게 됩니다. 요거 지키면 일계명도 지킬 수  있어요. 요 지키는 데에서 허락한 땅에서 오래 산다 그말은 요거 지키면 다른  계명도 지켜서 하나님의 축복 받을 수 있다 그 말이오, 그러기에 모든 계명이 한  계명인 줄 알고, 우리 서부교회 교인들은 유치반이니 중간반이나 장년반이나  부모에게 효도하는 일을 언제든지 가르쳐서 우리가 하도록 해야 됩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계명을 어겨 가면서 하는 게 아니라 계명을 지키면서  효도하는 게 효도입니다. 만일 부모가 주일 지킨다고 야단을 치면 '아, 부모에게  순종해야 되지. 하고 주일을 범하는 것이 아니고 그러면 부모에게 '주일날 가지  못한다' 이라면 '아, 하거나 말거나 나는 간다.' 못 씁니다. 그거는 부모에게 이제  울면서 부르짖어야 됩니다. 아. 아버지 내가 오늘은 주일인데 어짜든지 주일만  가구로 하면 다른 날은 내가 잘 순종하겠습니다.' 울면서 자꾸 애걸해서  아버지에게 그랍니다. 아버지에게 그라면 아버지가 허락지 안하면, 허락지 안하면  주일에 안 갑니다. 안 가고 웁니다. 자꾸 울면서 애걸합니다. 그래도 안 되면  울면서 거기서 혼자 앉아서 하나님에게 기도하면 주일 지킵니다. 그러면 나중에  하나님께서 주일 지키도록 해 주실 거라 말이오. 그 아버지의 마음을 감동시켜  주시든지 안 시켜 주시면 나중에 달리도 할 것이라 말이오. 그만 주일 못 지키게  하는데 그만 어째어째하더만 빠들빠들빠들 죽어 버렸다 말이오. 아들이 죽었다  말이오. 하이고 죽어 놨으니까 이거 죽었으니 그만 주일날 가지 말라 했더만  이놈이 죽어 버리네 주일날 가지 말라 했더만 내가 죽은 걸 보고 말하기를 '야,  이놈아 일어나서 주일 가거라. 이놈아 일어나 주일 가거라.' 이렇게도 할 수가  있다 그 말이오. 아주 죽어 버렸어 딸각 아주 죽어 버렸는데 그래. 가지고라도  어짜든지 하나님 첫째는 저버리지 말고. 사람 저버리지 말고, 그 사이에 희생은  자기가 희생하고 이렇게 해서 나가는 것이 기독교기 때문에 기독교는 알고 보면  핍박이 없고 마지막에는 모든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도 다 주라 시인하면서 다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린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이렇게 원만하고 참된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런고로 어짜든지 부모에게 효성합시다. 부모에게 효성해야지  불효하면 안 됩니다. 부모에게 효성하고, 또 나이 많은 이를 대우하고, 또 나이  많은 이들 대우하고 또 세상에서도 그 지위나 그런 권세있는 이들을 그 지위  있는 이들을 우리가 대우를 해 줘야 됩니다. 교회는 아주 예의가 없어요. 뭐 내가  그런 말 자꾸 듣고 있어요. 조그만한 청년들이 노인들에게 뭐 이렇고 저렇고  틀렸으면 그만 틀렸다고. 저거는 좀 새벽 기도 나와 가지고 배웠거든. 배웠으니까  '아, 그것도 모릅니까? 장로님이 그것도 모릅니까? 뭐 모릅니까?' 나무라면서 이와  같이 나이 많은 이 대우를 하지 못하는 그것이 아주 상놈입니다. 상놈. 그걸  가리켜서 상놈이라 해요. 상놈. 기독교는 그런 게 아닙니다. 기독교는 윤리법이  뚜렷합니다. 기독교 윤리, 기독교 사회, 기독교 도덕 기독교 모든 질서 이런 것이  무엇보다도 어디보다 제일 정연하게 되어 가지고 있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장로님은 장로님으로 대우하고. 권사님은 권사님으로 대우하고, 집사님은  집사님으로 대우하고 권찰님은 권찰님으로 대우하고, 또 부장 선생님은 부장  선생님으로 대우하고. 그 집사님은 집사님으로 대우하고 반사는 반사로 대우하고  그만침 대우 할 만침 정당한 대우를 해 주는 것이 그것이 모든 조직의 안녕  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것이지 그런 것을 다 혼동하는 것은 전부가 다 분요케 해  가지고 파괴시키는 그 행동인 것입니다. 우리 서부교회에 이 젊은 사람들 나이  많은 이 대우 못하는 그런 거 가진 거 회개해야 됩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 대우를  해야 돼. 또 목사도 목사님으로 대우를 해야 됩니다. 뭐 이거는 그만 버러지기가  없으니까 얼러 키운 호로 자식이라고 고만 이래 허허 하니까 아주 그만 버릇이  없어 그래 하면 못 씁니다. 그래서 그런 것이 다 오계명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육계명에 어짜든지 공을 들여야 됩니다. 사람을 미워하지 안 할 거,  미워하지 안할라 하면 또 미운 게 닥칩니다. 미워하지 안할라고 기도하고 나면 그  다음에 또 미운 사람이 닥치요, 그 닥치는 것이 그때에 우리는 연습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할지라도. 뭣이 손해 가고 어떻게 돼도 사람을 미워하지 않기로  작정을 해야 됩니다. 단정해. 사람은 미워하지 안하고 하는 행위는 미워할 수  있지요. 그러나 그 사람은 미워하면 안 돼 사람은 어짜든지 사랑해야 됩니다.

살인 이 뭐이냐? 사람을 사랑치 않는 것이 살인이오. 그게 짙어지면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오. 미워하면 그 사람을 해하기 시작하는 그것이 뽀듯이 살인  계획으로 추진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고, 일곱 째로, 간음하지 말 것, 남녀 이성끼리 어짜든지 지금은 세상이  이렇게 음란스럽고 더러워지기 때문에 이성면에 깨끗하면, 이성면에 깨끗하면 그  가정이나 교회나 그 구역이나 그 단체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이오. 이성 면에  깨끗하면. 그 마귀의 유혹이라 그렇지 그것이 백해 무익이지 아무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남녀 이성에 어짜든지 깨끗하게 지냅시다. 만일  지금 이 20세기에 음란스러운 20세기에 깨끗한 교회를 드러내라. '깨끗한 교회야  오너라. 상을 주겠다. 할 때에 서부교회가 깨끗한 교회로 썩 가면 얼마나  영광스럽겠습니까? 앞으로 이성면에 깨끗한 사람이 큰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왜?  인류 시조 때도 이것으로 인해서 인류가 망했고, 소돔 고모라 성도 이것으로  인해서 망했고. 또 이스라엘 종교 말년에도 이것으로 더불어 망했고. 예수님이  말씀하지 안했습니까? 시집가고 장가가느라고 멸망을 깨닫지 못한다 이렇게  말하지 안했습니까? 그로 망했고, 또 예수님의 재림 때도 이 모든 음란 가지고  망한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이제는 자기가 자기 남편 아내 있으면 그 하나로써 족하고 또  음란스러운 그런 행사는 연습하지 말고 그런 거는 안하는 게 좋고 금하는 게  좋고, 할 수 있는 대로. 그런 것을 눈을 뜨지 말고 기울이지 말고 힘을 기울여  연습을 하지 말고, 또 자기가 무슨 남편이 죽었다든지 혹은 이혼을 당했다든지  했으면 혼자 살 것이 아니고 이혼을 정당하게 법적으로 이혼이 돼 버리고 했으면  어디 재혼을 해 가고 안할라면 깨끗이 지내고. 공연히 재혼을 안하고, 요새 나이  많은 총각들 보면 '일찍 장가갈 게 뭐 있느냐? 모든 게 계집인데.' 이래 가지고  장가 안 가고 마누라가 열이고 스물이고 돌아다니며 하는 그래 가지고 자기 신세  망치는 그런 자와 마찬가지로 과부들도 그렇다 그 말이오. 시집가지 안하고 그만  그래 있으면서 여게 저게 이래 가지고 그저 시집 갈 것 없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어지럽혀서 이 사회를 더럽히고 교회를 더럽히고 하나님의 진노를 자꾸  쌓아 가지고 망치는 그런 일 하지 말고 어짜든지 결혼해 가고 안 갈라면 아예  깨끗하게 자기를 더럽히지 말고. 뭣 때문에 거기에 뭐이 나온다고 자기를  더럽히겠소? 자기를 정금같이 삣고 깎고 옥같이 다듬어서 얼마든지 하나님 앞에  참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고 사는 이런 정결한 깨끗한 여성이 되지.

 그라고 남반들은 아예 자기들에게 무슨 그런 공부하는 일이 있다든지 또 아무  그런 일이 없이 무슨 목적 때문에 좀 혼사가 늦어지는 그런 사람들은 할 수  있으나 그리 하되 자기가 마음이 어지러워져 더러워서 깨끗지 못하고 자기가  더러워질 판이면 아예 결혼하는 게 옳습니다. 결혼을 빨리 해야 돼 요새는  사람들이 자꾸 그 결혼 늦게 하는 것을 주장하는데 늦게 하는 걸 주장하는 것은  생활하는 것과 자녀 낳는 그런 것을 두고 말하는 건데. 그 면은 좋은 점이  있습니다. 늦게 하면 자녀가 덜 나오고, 또 그 생활에 모든 것이 능숙해지고  이렇지만 이성면에 죄를 더불어 말하면 늦게 결혼하는 통에 전부 그 죄악이  음란이 막 성한 것이 다 그것 때문에 성해 가고 있습니다. 아. 이 테레비는 전부  음란을 막 조장시키는 것이 이 테레비인데 어떻게 사람이 거기에서 견딜 수가  있겠소? 이러니까 얼마나 그것이 이기기가 어려운 죄악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힘을 써야 될 것입니다  도적질하지 말 것, 남의 물건을 부정하게 취할라고 하지 말아요. 적은 노력을  가지고 많은 수입을 얻을라고 어찌 되든 간에 편하게 살고 쉽게 돈 벌라 하는  그게 다 죄악입니다. 그러면 돈은 그래 벌지라도 반드시 거기에 불의가 따라  들어올 것이고 의가 가난해지고 없습니다. 거짓말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것을  탐하는 그런 거 하지 말아서 어짜든지 계명을 지키기로 단정을 해요.

 단정해 가지고 이 계명을 한번 지켜봐요. 지키면 이 계명 지키면 하나님께서 뭣  줍니까? 이 계명 지키고 주님 사랑하면 몇 가지 줍니까? 두 가지. 뭐? 기적과  축복. 주를 사랑하고 계명 지키면 기적과 축복 줘요. 이만하면 다 될 것  아니겠소? 우리들이 뭣 때문에 이런 거 저런 거 때문에 다 팔고 뺏기고 그렇게  못난 사람이 우리가 됩니까? 얼마든지 존영한 사람으로 살 수 있는 길을 주님이  가르쳐 주셨고. 살 수 있는 밑천을 다 구비해 주셨고, 우리만 힘쓰면 되는데. 또  잘난 사람이 되는 것 같으면 하지만 못난 사람이 겁쟁이가 무식한 자가 잘 돼.

그런 줄 알고 하나님께 자꾸 기도하고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잘해 주신다 그  말이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작정합시다. 이제부터는 계명 어기지 않고 계명대로 살겠다. 계명대로 살 아서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으로 이제는 살겠다. 내 근검 절약으로 뭐 흉측하고  악독하게 해 가지고 잘 살 것이 아니라. 과학으로 살아서 잘 살 것이 아니고,  고게만 맞출라고 애를 쓰고 자기 노력이라 하는 그것 가지고 하면 될 줄 알지만  그거 가지고는 언제든지 저주선 뛰어 넘지를 못합니다. 저주선 이하의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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